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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화.

결론만 말하자면 레아는 날 오빠라고 부를 수 없었다.

오빠 소리는 이제 신물이 난다.

전 와이프도 날 오빠라고 불렀고 처제도 불러댔어서 그랬을까.

별로 듣고 싶지 않았다.

"... 데몬시드는 어때?"

"너무 길어요."

"그럼 나인은?"

"나인이요?"

"잠깐이지만 그렇게 불렸었거든."

이제는 아무도 그렇게 부르지 않지만 초반엔 많이 불렸었다.

전투시작 9초만에 각성한 남자.

나인. 그게 바로 나다.

"그냥 화성님이라고 할께요."

"어, 그래..."

머쓱해하며 레아가 홀로 쓰러뜨린 헬뮤트의 배를 갈랐다.

갈라진 배, 내장을 만져보자 놈이 삼긴 지옥석이 만져졌다.

얼추 그것들 전부를 세척하고 수거하니 내가 가진 수량은 1000개가 넘어가고 있었다.

[지옥석x1183]

"오늘은 여기까지 할까."

"네. 배고파요."

"집에 가서 밥 먹자."

포탈서를 펼치자 물결처럼 푸른 포탈이 허공에 펼쳐졌다.

편안하고 안락한 우리집.

불별도였다.

"음?"

"왜 그래?"

"저기, 뭐가 있는 거 같아요."

"감지한거야?"

"네."

포탈로 반쯤 몸을 들이밀었을 때.

레아는 돌연 누군가 있다고 했다.

오거 길드 놈들은 전부 죽었을텐데 누가 있다는걸까.

창을 들고 혹시 몰라 바닥에 표식까지 새긴 이후, 레아가 말하는 방향으로 조금씩 다가갔다.

"지하 계단이네."

"지하요?"

"응, 지하 2층으로 가는 입구인 거 같아."

"지하 2층도 있었구나....."

넓이는 꽤 크다.

헬뮤트 한마리 정도는 올라올 수 있는 비탈길 정도.

"잠깐 구경만하다 갈까."

"그럼 이 포탈은..."

"지워야지."

텁.

펼쳐졌던 포탈의 서를 덮으니 포탈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졌다.

우리가 자리를 떠난 이후에 누가 올지도 모를 일이다. 누군가 불별도로 들어가기라도 한다면 괜한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없애버리는 게 낫다.

스크롤은 얼마 안 하니까.

"내가 앞장설게."

"네."

광산은 그렇게 어둡지 않다.

지옥석 때문인지, 주변이 붉은 빛이 은은하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지옥석 자체가 열기와 밝기를 지니고 있기에 정육점에 온거 같지만 썩 빛이 없지는 않다.

애초에 어둡다고해도 레아와 나는 추종자의 열매를 먹기 때문에 밤눈이 밝다. 야간 시야가 증가했기 때문.

"여기는 더 밝네."

"더 더워요."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점점 밝아지는 불빛과 찌는 듯한 더위가 우릴 반겼다.

땀이 비처럼 쏟아지려는 찰나.

"이건..."

"와!"

지옥 광산 지하 2층.

그곳은 마그마가 들끓는 용암지대였다.

"저건....."

"지옥석이네."

게다가 1층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 거대한 지옥석등이 곳곳에 보였다.

사람 머리보다 큰건 기본이고, 집채만한 크기의 지옥석도 꽤 보였다.

물론.

"헬뮤트도 꽤 있네."

"네."

헬뮤트들에게 여기는 식사창고라도 되는 것처럼 벽에 처박혀 있는 지옥석등을 갉아먹기 바빴다.

"레아, 네가 감지한 건 헬뮤트야?"

"아니요. 사람이었어요."

"여기에 사람이 있다는건가..."

마그마가 들끓는 지형이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줄줄 나는 곳인데 이곳에 사람이 있다는 소린가.

신기해서 잠시 둘러보고 있자, 어디선가 캉! 캉! 소리가 들려왔다.

'곡괭이 소리다.'

하나가 아니다.

꽤 여러개의 곡괭이 소리가 들린다.

살금살금. 거대한 암벽을 지나보니 또 다른 커다란 공간이 존재했다.

그곳에는 땅에 파묻혀 있는 어마어마한 크기의 지옥석이 존재했는데, 처음 보는 사람, 수백명이 그곳에서 곡괭이를 두들기고 있었다.

"... 한국 사람은 아닌데?"

"까매요."

그렇다고 흑인은 아니다.

살갗이 까맣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흑인처럼 새까맣지는 않다.

게다가 작은 키와 평균적인 얼굴들이 동양인에 가깝다.

곡괭이 소리가 연신 들리기는 하지만 중간중간 특유의 억양으로 이야기하는 소리도 간간히 들렸다.

"똥똥거리는 거 보니까 베트남 사람들 같은데?"

근데 베트남 사람이 왜 여기에?

아니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다.

조금 더 접근해서 정보를....

"사람이다!"

"저놈 누구야?"

"처음 보는데?"

들켰다.

분명 들리는 건 베트남어가 맞다. 근데 머릿속에서 자동적으로 해석이 되고 있다.

"이땅 놈들아냐? 여기 누구땅이지?"

"원래 한국놈들 꺼일 걸?"

"그래?"

"대장, 저놈 혼자같다."

"눈깔 삐구냐? 둘이잖아."

"그러니까 저게 다인 거 같다고."

이래저래.

날 보는 눈빛들이 썩 달갑지 않은 걸 보니 한차례 푸닥거리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곡괭이를 내려놓고 각자의 무기를 꺼내기 시작하는 놈들은 아마도.

"베트남 네피림들이냐?"

묻자, 놈들은 대답 대신, 무지성 돌격으로 답했다.

"죽여!!"

"알려지면 안된다! 바로 죽여!"

"한 놈은 살려! 저거 여자아냐?"

"여자는 살려! 정보도 캘겸!"

와다다다 돌격해온다.

그중에는 이상한 기프트 스킬을 쓰는 놈도 있었고, 곤충 날개를 만들어 날아오는 녀석도 있었다.

다양한 무기들은 물론이요, 공성 기계와 암석 마법까지 사용하려는 여러 소서리스들도 있었지만.

"오늘이 날은 날인가보네."

지독한 열병의 물소 투구를 쓰고 있는 나를 위협할 놈은 없었다.

"지독한 열병이 발동됩니다."

"페스틱 사드가 열병을 타고 흐릅니다."

"커억!"

"뭐, 뭐야!! 아으아아악!"

"쿠웨에엑!"

"무, 물러나! 마법이다! 저주계열이야 접근하지마!! 쿠웨엑!!"

단번에 수십명이 쓰러져 피를 토하거나 죽었다.

"1620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354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963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

.

.

하지만 그럼에도 돌진하는 놈들이 있기는 했다.

그들은 내게 오기도 전에 쓰러졌다.

바보는 아닌지 삼백미터 멀리 바깥으로 물러난 자들은 멀리서 날 노려보고 있었지만 이대로 포기하지는 않았다.

"죽어라!"

돌연 그림자에서 검이 튀어나왔다.

"화성님!"

카앙-!

두손을 합장하고 있는 놈 하나가 그림자를 통과해 검을 찔러 넣었다.

하지만 레아가 곧장 검을 튕겨냈고 난 방패를 들었다.

"녹음진 혈맹."

후우우웅-!!

녹음진 바람이 휘몰아쳤다.

붉은 빛 가득한 지옥의 광산에 오크들의 호기로운 혼들이 차곡차곡 대군을 형성했다.

딱 오백.

오백마리만 소환했다.

한번 소환한 오크는 혈맹의 숫자에서 사라지지만 이 정도는 되어야 가볍게 쓸어버릴 것이다.

소환된 혈맹의 오크 전사들은 모두 생전의 힘을 일부 갖고 실체를 지닌다. 물론 생전보다는 약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만한 숫자라면 놈들을 쓸어버리기엔 충분하다.

'굳이 안 써도 되지만.'

생각난 김에 한번 써봤다.

어느 정도의 힘을 지녔는지 이번 기회에 확실히 평가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테니까.

"레아는 그냥 뒤에 있어."

"네? 하지만 저도!"

"아까 타이탄 썼잖아. 그거 한번 쓰면 디버프 생기지?"

"아, 네..."

광전사 계열이 대부분 그렇다.

생명을 대가로 단시간에 강한 힘을 발휘하지만 덕분에 하루나 이틀 정도 디버프로 약해진다.

레아의 것도 그중 하나다.

능력치의 십퍼센트가 낮아진다고 했던가. 게다가 오늘 하루 종일 싸웠으니 이번은 쉬어도 좋다.

상대는 일반적인 악마도 아니다.

네피림들이다.

각기 다른, 다양한 기프트를 가진 놈들이니 무슨 기발한 공격을 해댈지 모른다.

방금처럼 그림자를 통해 공격하는 기습을 가할 놈들이 또 없다는 보장도 없으니 조심해서 나쁠 게 없다.

게다가 놈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너네 우리땅 침범한거지?"

주인 없는 땅을 침범해서 우리 자원을 캐고 있었을 확률이 높다.

그렇지 않고서야 들키네 마네 하는 소린 하지 않았을테니까.

난 창 하나를 꺼내 높이 들었다.

"전군, 진격하라!"

-우오오오오오오오!!

-명예를 위해!!

녹음진 혈맹의 오크 군대가 저마다의 도끼를 꺼내 들고 우렁찬 함성을 내질렀다.

"뭐냐고 젠장!!"

"아니 어떻게 한 사람이....!!"

"네크로맨서 계열인가? 아니 이건 대체.... 제기랄!"

시끄럽게 떠드는 사이 격돌했다.

쾅!! 카앙-! 끼기긱!!

도끼와 검이 부딪쳐 불티가 흩날리고 선혈이 흩날렸다.

뜨거운 피는 용암에 떨어져 매케한 냄새와 함께 사라졌다.

"그럭저럭 약하네."

"정말이에요. 약하네요. 저런 사람들이 화성님한테 반기를 들다니!"

베트남 네피림들은 약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오거 길드의 길드원들이랑 별 다를 게 없었다.

그게 요새 네피림들의 평균이라는 거겠지. 대한민국의 평균 전투력이랑 크게 다를 건 없었다.

저들의 평균 레벨은 2에서 3.

잘 싸우는 놈들은 레벨 3의 랭커일테고 쉽게 죽는 이들은 2렙일거다.

물론 눈에 띄는 자들은 꽤 있다.

'잘 싸우네, 곤충 날개.'

비행이라는 이점을 가지고 연신 날아다니며 공격하는 네피림은 단검을 들고 오크들의 목을 따고 다시 하늘로 도망치기를 반복했다.

어떻게보면 얍삽한 수법이기는 했지만 자기 기프트가 그런 쪽이라면 당연한 수순이다.

그리고 날 공격했던 그림자를 사용하는 놈도 다양한 변칙적인 공격을 통해 오크들을 섬멸했다.

자기 그림자, 또는 다른 사람의 그림자로 검을 찔러 넣어 상대의 뒤를 찌르는 음침한 기프트였다.

하지만 허를 찌른다는 점에서는 확실히 훌륭한 무기다.

그리고.

쿵!!

"내 방패는!! 무적이다!!"

커다란 타워실드를 들고 있던 네피림은 그중에서도 가장 잘 싸웠다.

오크들의 도끼를 모조리 막아내고 그대로 밀어붙인다. 오크들을 밀어낼 정도의 강력한 체력과 근력이 꽤 인상적으로 보였다.

그리고 놈이 지닌 스킬.

땅에 방패를 찍더니 무형의 힘으로 오크들을 모조리 날려버렸다.

"으하하하하! 꺼져라 괴물놈들!"

전투방식은 극 마초.

하지만 시원시원하다는 점은 확실히 사내답다고 평가할 수 있었다.

'막아낸 데미지를 축적해서 튕겨내는 방식인가.'

흥미로운 기프트다.

저 셋으로 인해 베트남 네피림들은 조금씩 후퇴하고 있지만 적은 피해로 퇴로를 마련하고 있었다.

"후퇴! 후퇴해! 물러나면서 싸워! 저기까지만 가면 돼!"

"이놈! 네 얼굴 똑똑히 기억했다!!"

"다음엔 모가지를 따주마!!"

"한국은 우리와 적이다!"

팔짱끼고 구경하고 있으니 자기들을 보내줄거라 생각했던 걸까?

아니면 내가 지닌 패가 이게 전부라고 생각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온갖 욕지거릴 다 뱉어내며 후퇴하는 놈들을 보다 헛웃음을 다 나온다.

"누가 보내준댔나."

꽈악.

말아쥔 적창에 빛이 깃든다.

"카이삭스의 표식이 새겨집니다."

"오크전사의 씨앗을 섭취합니다."

"시드로긴을 발동합니다."

"오크전사의 잠재력을 80% 발휘합니다."

"페스틱 사드가 창에 스며듭니다."

"카탈린의 벼락이 깃듭니다."

"투창 스킬을 발동합니다."

콰자자자작-!!

일순 내던진 투창.

벼락처럼 쏘아진 적창이 오크 군대의 머리 위를 빛살처럼 통과하며 오직 한 놈에게로 향한다.

"헉!!"

"내 뒤로! 내 뒤로 와라!!"

목표는 타워 실드를 든 네피림.

놈의 방패였다.

방패가 꽤 단단해 보이긴한다.

오거 길드들이 만들었던 텅스텐 방패보다 훨씬 더 견고하다.

아마도 매직 아이템, 아니면 유니크 정도는 되어 보이는 방패.

하지만 그 방패가 과연.

"내 창을 막을 수 있을까."

그 궁금증은 한순간에 풀렸다.

"끄어어어아아아아악!!"

콰아아아아앙-!!

벼락처럼 뻗어나간 적창.

그것은 수많은 네피림들을 등에 업은 타워실드를 꿰뚫었다.

대단할 것도 없었다.

헬뮤트의 외피보다 말랑한 방패다.

그만 믿고 방패 뒤에 숨은 베트남 네피림 대부분은 벼락과 함께한 독이 퍼져 어떻게든 몰살당했다.

"시드로긴까지는 심했나?"

조금 너무했나 싶던 찰나.

"2378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아토믹 시드의 숙성도가 1% 상승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시드로긴의 부작용이 다소 감소됩니다."

씨익.

힘을 시험해보는 시험대였던 것치고는 썩 나쁘지 않은 성과였다.

아토믹시드를 어찌하면 숙성도가 상승할까 고민했는데, 역시 시드로긴으로 복용하면 숙성이 빨라졌다.

중요한 정보였다.

"악마보다 사람이 경험치 더 많이 주네. 참나."

파직.

카이삭스의 표식으로 타워실드를 꿰뚫은 적창으로 전이한 나는 그대로 창을 휘둘러 놈들을 죽였다.

"사, 살인자!!"

"너희들도 나 죽이려고 했잖아."

살인자라니 웃기지도 않는다.

그리고 살인자면 어떤가.

안 죽이면 죽는 세상인데.

'아니, 세상은 원래 그랬지.'

죽이지 않으면 죽는다.

와이프가 날 죽이려했고, 처제가 나한테 그랬던 것처럼.

똑같다.

죽이지 않으면 죽는 건 나다.

잠시 뒤.

"사, 살려주십쇼!! 뭐든 하겠습니다! 개가 되라면 개가 되고! 선생님의 구두라도 핧겠습니다!! 제 여자들도 드리겠습니다!"

모두가 죽은 전장의 한 가운데.

곤충날개를 한 놈만이 납작 엎드려 목숨을 구걸했다.

수식언 [1]

64화.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착한 중국인은 죽은 중국인뿐이다.

이제는 이 말을 베트남 네피림에게 적용시켜도 괜찮지 않을까.

"선생님! 알고 싶으신 거라든가 아니면 제 애인이라도 전부 드리겠습니다! 제발, 제발 살려주십쇼! 제 아내와 자식들이 절 기다리고 있습니다!"

베트남은 저런 게 일상인가.

애인과 아내와 자식이라니.

이놈 뭔 소릴 하는거야.

"저 사람 방금 애인 얘기를 하지 않았나요? 근데 아내도 있다고..."

"애인도 있고 아내도 있나 봐."

"호, 혹시 관심 있으신 건 아니죠?"

"그, 그렇습니다! 드리겠습니다!"

"필요 없어! 내가 왜!"

방금전에도 나 좋다는 전 처제의 눈물 섞인 고백을 피로 물들인 사내가 바로 나다. 그런데 얼굴도 모르는 베트남 여자를 내가?

말도 안 되는 일.

'너무 납작 엎드려서 오히려 신용이 안 가.'

하지만 흥에 취해서 싸우다보니 오크 혈맹들이 전부 다 죽여버려서 남은 게 이놈 하나밖에 없다.

물어볼 건 물어봐야지.

"우선, 여긴, 너희 구역이 아니지?"

"예! 저희 구역은 이미 다른 놈들이 자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희 길드는 이쪽으로..... 주, 주인이 없길래 그랬습니다!"

주인이 없다라.

그건 맞는 소리다.

지하 2층까지 내려온 사람이 없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관찰자는 뭘 하는건지, 재깍재깍 탐험해서 빨리 정보 공유 안 하고.

"지하 2층은 전부 연결된 건가?"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 그럴거라고 예상됩니다. 이만한 크기의 지옥석은 채석량이 아직 확인되지도 않았을 만큼 거대합니다. 이거 하나면 수만에서 수십만 지옥석을 캐낼 수 있을거라고 예상되니까요."

그래서 몰래 점령한거다 이말이다.

우리쪽은 정보가 없어서 이런 게 있는지 없는지도 몰랐고.

"5구역 지하 2층에만 있는건가? 아니면 구역마다 이런게 있나."

"아마 지하 2층은 어디로 향하듯 전부 연결되어 있을 겁니다."

지하 2층은 전부 여기로 연결.

그러고보니 주변을 둘러보니 한 두개씩은 계단이 보인다.

어느 구역으로 향해도 여기로 통한다는 소리였다.

'지옥광산은 그러니까.... 차원마다가 아니라 통합이라는거군.'

이걸 모르는 한국 네피림들은 개개인별로 곡괭이질이나 하고 있는거고.

"이건 알려줘야겠네."

몰랐다면 모를까 알게 된 이상 귀중한 자원을 가만히 내버려둘 순 없다.

원래라면 나혼자 독식했을지도 모를 정보지만 그럴 이유가 없다.

오히려 이건 국가 차원에서 대거의 사람들을 이끌고 자원을 캐내야 할 부분이지 않을까.

그래야 우리 차원의 자원이 늘어나고 자원이 늘어난 만큼 평균적인 전투력 또한 높아질테니까.

대한민국의 전투력이 높아져야 다음 카오스를 방비하기도 쉬울 터.

'다른 나라보다는 우리 나라가 먹는 게 차라리 낫지.'

애초에 이만한 크기의 지옥석을 나 혼자 채굴하기란 역부족이다.

이 더운 곳에서 땀 뻘뻘 흘리면서 곡괭이질하고 싶지 않기도 하고.

이럴 때는 혼자보단 단체가 낫다.

강철군주나 아마존한테 알려서 사람들을 모아서 내려오라고 하는 게 낫겠지. 안 그래도 차별적으로 구역을 나눈 것 때문에 불만의 소리가 많았는데 그것도 전부 해결되겠지.

"이런거 많나?"

"찾아보면 꽤 있습니다..."

연신 눈치보는 걸 보니 굳이 말하지 않는 부분이 있는 거 같다.

대형 지옥석이 많다는 걸보니, 이놈들 이미 한국 구역의 상당수를 침범했을지도 모르겠다.

"너희들, 두번째 카오스에 나타난 악마들은 뭐였지?"

"예? 예! 저흰 파리 둥지였습니다."

"파리 둥지?"

"네, 둥지를 만들어내는 데몬파리인데 덩치가 사람만한 징그러운 놈들이죠. 입이 빨대라서 체액을 빨아먹고 껍데기 안에 알을 낳는 흉악한 놈들입니다. 그놈들과 피터지게 싸웠죠."

"어떻게 공략했지?"

"둥지들 위주로 불을 질렀습니다. 놈들이 불에 취약해서 솔직히 큰 피해 없이 무난하게 잡았죠!"

"대진운이 좋았군."

"그런 편이었습니다."

챔피언 데몬은 어떻게 잡았냐까지 물어보려다가 참았다.

뭐 어떻게든 잡았겠지.

그럼 한가지 더.

"베트남에도 레벨 랭킹이 있겠지?"

"예! 저는 1683위의...."

"그건 관심없다. 랭킹 1위의 레벨과 기프트 명이 알고 싶다."

"좋습니다. 저희 베트남 랭킹 1위는 5레벨이고 기프트는 만트라입니다."

"5레벨?"

"아, 예..."

5레벨!!

지금 내가 겨우 4레벨인데 5레벨이라고?! 이건 꽤 충격이다.

베트남 네피림들 실력이 형편없어서 비슷하거나 아래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레벨이 5일줄이야.

게다가 기프트가 만트라.

마음의 명상이니, 뭐니하는 불교적 용어가 아니던가.

어떤 기프트인지 도통 알수가 없으니 감도 잡히지 않는다.

'베트남 1위... 만만히 볼 수는 없겠는 걸.'

일주일정도 휴식을 취한 걸로 이렇게까지 차이가 벌어졌다는 걸까.

하기사 그럴 수 있다.

운이 좋아 강해진 나와는 달리, 이 세상에는 진짜 실력으로 힘을 쟁취한 실력자들이 정상에 있을테니까.

어쩌면 레벨뿐이 아니라 나보다 강한 진정한 랭커들도 있을지 모른다.

"그, 그럼 저는...."

"딱히, 살려준다고는 안했다만."

"뭐, 뭐든 하겠습니다!!"

"꼭 아무 쓸모도 없는 것들이 그런 말만 많이 하더군."

살려둬서 괜찮을까.

놈을 살려두면 내 정보를 베트남 놈들한테 발설하겠지.

아마 베트남의 랭커들도 날 알게되고 만일에 상황에 놈들과 싸울 때.

나는 패 하나를 잃은 채 싸우게 되고 말거다.

그걸 생각하면 죽이는 게 낫다.

"그런 심한 말씀을..."

"그랬나?"

창을 들이미니 경기를 일으키며 고개를 내저었다.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하지만 전 날개가 있어서 어느쪽이라도 쓸모가 있습니다! 이것 말고도 여러 정보를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지하 2층의 대형 지옥석의 위치라던지 하는 것들 말입니다..."

"흠."

확실히 아는 게 많아 보이긴 한다.

지금 여기서 죽이기 보다는 옆에 데리고 다니면서 많은 정보를 뱉어내게 만드는 게 더 낫지 않을까.

죽이는 건 이후라도 괜찮을테니.

그렇다면 일단.

"한시가 급하네."

지금도 다른 나라 녀석들은 지옥석을 두고 다투고 열심히 캐며 꿀빨고 있을 거다.

그런데 우리는 하루종일 한두개 나오는 지옥석을 캐겠다고 난리치고 있으니 정보의 부재로 이어지는 무지함에 눈물이 앞을 다 가린다.

"글, 써볼까."

아마존과 강철에게 쪽지 정도는 보내겠지만 일단 많은 사람들이 알게 하기 위해서는 역시 이만한 게 없다.

[네피림 커뮤니티]

"인기글 한번 먹어볼까."

그동안 욕심은 조금 났지만 한번도 해보지 않았던 것.

글 작성을 해볼 기회다. 닉네임 뇌창보다 더 임팩트 있는 녀석으로 닉변까지 마치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짧지만 간결하게.

[지옥으로 와라]

-지옥광산 지하 2층은 통합 점령권을 지닌 채굴장이다. 대한민국의 구역에 있던 [대형 지옥석]을 캐고 있던 베트남 인들을 말살 완료했다.

모든 네피림들은 1구역을 통해 지하 2층으로 안전하게 내려와라.

"이 정도면 되겠지."

거리가 있다보니 여기까지 찾아오는 시간이 꽤 걸릴거다.

분명 그럴거라 생각했는데...

"뇌창?"

"어이! 뇌창! 우왁! 이 시체들 다 뭐야!?"

"저거 설마 지옥석이야? 엄청 커!"

강철과 바바리안을 비롯한 수많은 랭커들 몇몇이 뜬금없이 나타났다.

"미친, 시산혈해군."

"뇌창 혼자서 다 죽인건가?"

"이놈들 베트남인이군."

"대체 무슨..."

당황스러워하는 이들을 보며 난 커뮤니티를 보라고 말했다.

내가 쓴 글은 순식간에 인기글 베스트로 선정되서 일만개 이상의 따봉과 함께 수천개의 댓글이 달리고 있었다.

묘한 뿌듯함이 밀려오는 그때.

대강의 상황을 이해한 강철군주가 먼저 다가왔다.

"이놈은?"

"정보를 캐고 있었다."

"알아낸 정보는?"

"이런 곳이 꽤 있다는 것. 그곳들이 이미 점령당해 있다는 거 정도."

"그렇군. 되찾아야겠군."

"전쟁인가!? 난 좋지! 근데 데몬시드는 어딨는 거야? 커뮤니티에 글 써놓고 사라졌네."

전쟁.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할까 싶었다.

악마들하고 싸우기도 바쁜데 여기까지와서 사람들과 싸워야하다니.

"우리 권리를 찾아야 해."

"그건 맞지."

하지만 본래 우리의 것이었어야 했을 땅을 되찾아야 하는건 맞다.

일주일이나 늦어 한국 지역의 대부분 광산을 빼앗겼을 터.

그걸 되찾아야 한다.

빼앗긴만큼, 더 많이.

그러기 위해선 먼저.

"레아."

"넵!"

"우린 쉬러 가자."

"네?"

되찾아야할 건 반드시 되찾아야 하지만 휴식은 휴식이다.

이보 전진을 위한 일보 후퇴.

애초에 레아와 나는 오랜 시간 싸웠고 꽤 지쳐있는 상태다.

지금 여기있어 봤자 할 수 있는 것도 없으니 우선 전력을 가다듬고 충분한 휴식을 취한 뒤에 해도 늦지 않다. 할 일은 했으니까.

나머지는 맡겨도 되겠지.

"뇌창! 어디가는건데!"

"휴식."

배도 고프다.

난리통을 치느라 아직 밥도 제대로 못 먹은 상태다.

솔직히 인벤토리엔 브릴뤠의 빵이나 간단히 먹을 음식들이 있기는 하다.

악과도 있고.

하지만 제대로 된 밥을 먹고 싶다.

이지경이 된 세상인데 밥이라도 든든하게 제대로 차려 먹고 싶은 건 작은 욕심이자 보상심리.

그 정도는 하고 싶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도 필요하고.'

지옥광산의 의미.

통합 채굴장의 진의.

그리고 각국의 랭커들.

강해질 이유는 차고 넘쳤다.

'독 내성은 물론이고, 헬뮤트나 지옥의 환경을 생각하면 와이번을 잡아 나온 화염 내성도 챙겨둬야 해.'

상황을 보니 각국과의 소규모 전투는 피할 수 없을 터.

그렇다면 준비를 하는 게 맞다.

"여기까지 했으니, 나머지는 너희들이 정리하고 있어라. 그 정도는 할 수 있겠지?"

"칫."

"문제가 생기면 연락은..."

"때가 되면 오겠다."

"그래."

곤충 날개 놈은 강철이나 바바리안에게 맡겨도 충분하겠지.

내가 생각하지 못한 정보를 빼낼 만큼 뺀 이후에 알아서 처분하라고 말해둔 상태다.

"가자."

"네!"

포탈이 열리고.

나와 레아는 불별도로 돌아갔다.

벌써 어둑해진 하늘.

석양을 배경으로 난 쌀을 씻고 김치찌개를 끓여 배가 두둑하게 먹었다.

역시 한국사람은 김치찌개지.

레아도 처음에는 맵다고 어려워했지만 점차 익숙해졌는지 밥 세공기를 돌파하며 김치찌개를 비웠다.

밥 해주는 보람을 느꼈다.

간단한 후식으로 악과를 먹고 나서야 기대하던 데몬시드를 심었다.

"헬뮤트의 데몬시드가 개화합니다."

"제물성장을 성공적으로 이룹니다."

"10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헬뮤트의 열매는 딱딱한 껍질 속 아주 시원한 음료가 들어 있었다.

야자수 열매와 굉장히 흡사했다.

달고 시원한 야자수 열매의 음료.

"캬아! 맛 좋다!"

"헬뮤트의 열매를 섭취합니다."

"용장이 발휘됩니다."

"화염피해가 0.02% 상승합니다!"

이건 또, 생각치도 못한 놀라운 효과.

와이번의 용과와는 다르다.

화염 내성이 아니라 화염 피해!!

"설마 내 모든 공격에 화염이?"

는 당연히 아니었다.

아마도 내가 화염 관련된 능력으로 공격할 때의 피해 증가율일 가능성이 대단히 높았다.

지금의 내게는 썩 무용지물인 능력.

하지만 장래성은 대단히 높았다.

왜냐하면.

이제 슬슬 때가 됐기 때문이다.

"불타는 기사왕 오그의 열매를 섭취합니다."

"용장이 발휘됩니다."

"수식언 '불타는'이 0.02 상승합니다."

"수식언, '푸르게 불타는 영혼의 불'을 얻으셨습니다!!"

"놀라운 업적을 이뤄냅니다."

"악마의 권능을 훔치셨습니다!"

"당신의 눈부신 업적은 존재하는 모든 악마들이 알게 되고 두려워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이름, 데몬시드를 증오하며 두려워하게 됩니다."

"당신의 수식언이 개방됩니다."

"수식언이 확정됩니다!!"

[불타는 데몬시드]

삼시세끼 악과를 먹어댄 보람이 이제야 드디어 빛을 발했다.

수식언 [2]

65화.

지옥 광산.

관찰자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지옥석으로 알레이슈를 교환하기 위해 들어간다.

하지만 꼭 전부가 그런건 아니다.

랭커가 아닌 네피림들은 알레이슈인 강화석은 커녕 제대로 악마 사냥조차 못하는 자들도 부지기수다.

그들에게 지옥석은 강화석이 아닌 하나의 아이템 파밍 장소다.

[콜로세움 상점]

-미확인 망토 (15)

-미확인 검 (34)

-미확인 대검 (63)

-미확인 지팡이 (75)

-미확인 반지 (53)

-미확인 스킬북 (5550)

-알레이슈 (1000)

콜로세움 상점에는 알레이슈만 있는 게 아니다.

미확인 장비들도 부지기수다.

잘 찾아보면 지옥석이 몇개 안 들어가는 장비들도 있다.

최소 5개에서 많개는 100개까지.

레벨이 낮거나 전투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도 장비 욕심은 있다.

장비가 튼튼하면 실력이 모자라도, 레벨이 낮아도 제 한 목숨은 지킬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옥석을 캐는 일은 힘들었다. 콜로세움 랭킹이 낮으면 낮을수록 목숨을 걸어야했다.

이럴 바에는 그냥 악마를 사냥하는 게 나을 정도로 말이다.

거기에 더해.

"하아, 잣밥들이 까부네 진짜. 언넝 언넝 꺼져라잉."

고레벨 네피림들은 저레벨들을 얕잡아보고 낮춰 부르기 마련이었다.

덕분에 그들은 어디서도 힘들다.

살아남기도, 배 부르기도 말이다.

그래서일까.

[지옥으로 와라]

(데몬시드)

-지옥광산 지하 2층은 통합 점령권을 지닌 채굴장이다. 대한민국의 구역에 있던 [대형 지옥석]을 캐고 있던 베트남 인들을 말살 완료했다.

모든 네피림들은 1구역을 통해 지하 2층으로 안전하게 내려와라.

데몬시드의 글은 살아남기 급급한 네피림들 전원에게 하나의 구원이나 마찬가지였다.

하루에 하나 캐기도 힘든 지옥석.

그마저도 위험천만한 헬뮤트들이 도사리는 곳에서? 미치지 않고서야 도전하지 않을 짓이다.

하지만 헬뮤트도 없고 대량의 지옥석을 단기간에 캘 수 있는 곳?

그걸 랭킹 1위.

강함의 상징이나 다름 없는 데몬시드가 장담했다.

사칭일 수도 있다.

하지만 뜬금없는 내용과 누구도 말하지 않았던 내용이다보니 글 자체에 모종의 힘이 담겨 있었다.

사람들은 홀린듯이 너도나도 광산으로 물밀듯 달려나갔다.

"이, 이봐! 여긴 랭킹 1위부터 3000위까지 들어갈 수 있다고! 이봐!!"

1구역 경비를 서던 네피림이 사람들을 막아세우려 했으나 소용없었다.

아무리 힘없는 이들이라도 숫자로 밀어붙이니 막을 도리가 없다.

"비켜 멍청아! 데몬시드가 쓴 글도 안 봤냐!?"

"데몬시드? 아니 무슨..."

강자들만의 권리나 다름 없던 성역의 1구역이 깨졌다.

안전한 그 지하 밑에는.

"진짜다! 엄청큰 지옥석이야!!"

반쯤 파묻혀 있는 거대 지옥석.

그리고 들끓는 용암지대와 이곳을 지키듯 경계서는 랭커들.

사실이었다.

데몬시드의 말이 전부 사실이었다!

"우와아아아!"

"데몬시드 말이 맞았다!"

"빨리 캐자! 빨리 캐!!"

"이게 웬 횡재냐!!"

"데몬시드! 감사합니다!!"

"데몬시드, 그는 신인가?"

"데몬시드! 데몬시드!!"

수 백의 베트남인들을 살해한 데몬시드였지만 그것으로 대한민국의 네피림들은 구원 받았다.

그래서일까.

채굴장을 점령하고도 홀연히 사라진 데몬시드에게.

사람들은 채굴을 끝내고 떠날 때.

"야, 뭐해? 그걸 왜 버려."

"데몬시드님은 하나도 안 캐고 가셨다잖아. 그분 올 때까지 강철군주가 있는다고 하니까 가져가는 사람도 없겠지. 그리고 나 오늘 엄청 많이 캤다. 벌써 10개나 캤는데 세개 정도는 괜찮아! 내일도 캐면 되니까."

광산 한켠. 지옥석을 내려놓았다.

자신이 캔 지옥석의 일부를.

그 사내의 시작으로.

작개는 하나, 많게는 수십개를 광산 한켠에 쌓아놓게 되었다.

수많은 사람이 오고 갔다.

그럴수록 쌓여 올라가는 지옥석의 산도 높게높게 올라갔다.

감사의 마음으로.

*

데몬트리에 열린 야자수 열매 아래.

내 손은 불타고 있었다.

[불타는 데몬시드]

수식언.

권능이라 불리는 악마의 능력.

그것을 드디어 갖게 된 것이다.

푸른 불.

진명은 푸르게 불타는 영혼의 불.

푸른 불을 오른손에 그러모아 불꽃으로 만들어보니 아름답다.

가스렌지불 같기도 하지만 묘하게 일렁이는 모양새는 영혼의 불이라는 맞는지 절규하듯 일렁거렸다.

권능이란 마법과 다르다.

권리를 행사하는 능력.

권능이란 당연한 권리의 행사다.

푸른 불을 내 뜻대로, 의지대로 마음대로 변형하고 움직일 수 있다는 뜻.

마법처럼 형식으로 얽메인 술법이 아닌 자유자재의 이능.

그것이 수식언.

권능이라 불리는 능력이었다.

하지만 권능에도 단점은 있다.

"아뜨뜨뜨뜨! 아 뜨거!"

일단 뜨거웠다.

"이게 말이 되나..."

수식언이 불타는 데몬시드가 됐는데도 그 불이 날 불태우다니!

내가 뜨겁다니!

생각치도 못한 병크였다.

"그럼 그렇지, 어쩐지 오그는 뼈밖에 안 남았더라니."

뼈만 남아서 쓸 수 있는 불이지 않았을까.

그리고 또 하나.

"화력이 별로 안 쎄네?"

지금 화력은 뭐랄까.

"중식당 가스 불 정도...."

화력 좋은 중식당에서 쓰는 가스불 정도였다.

뭔가 마력적이어서 엄청 엄청 뜨거운 그런 불이 아니라 그냥 불.

가스불.

"영혼의 불은 개뿔."

그냥 가스불이었다.

온갖 실망감에 그간의 노력이 헛수고였다는 사실에 분노가 치미면서도 어느 정도 예상했던 부분도 있기에 한숨만 푹푹 나왔다.

"기사왕 오그의 레벨은 낮았지."

첫번째 카오스에서 만난 보스.

챔피언 데몬 불타는 기사왕 오그.

놈의 레벨은 아마 3레벨 정도였을테니 놈의 권능이라해도 그렇게 강하지는 않을거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오그가 권능을 제대로 쓰기도 전에 죽여버려서 얼마나 강한 힘을 지녔는지도 알지 못했고.

그냥 불을 다루는 게 괜찮아보여서 익히려 했을 뿐이었으니까 어쩌면 약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긴 했다.

"그래도 괜찮아. 가스불이면 어때, 요리할 때 쓰면 되지."

게다가 기분이 금방 회복할 수밖에 없는 이유도 있다.

그 이유는 헬뮤트의 열매!

야자수 열매 때문이다.

"지금은 여섯개 밖에 없으니까. 좀더 모아서 합성한 뒤에 심으면 화염피해 증가도 금방 오르겠지."

헬뮤트 열매를 먹어서 화염피해가 증가하게 된다면 가스불의 위력도 점진적으로 늘어나게 될거다.

그렇게 생각하면 안심이 된다.

"자체적인 성장도 가능은 하니까..."

[불타는 데몬시드]

『수식언』

[푸르게 불타는 영혼의 불 Lv.1]

-영혼에 각인된 공포가 커지면 커질수록 위력도 강해진다.

(영혼에 각인된 공포 Lv.1)

"수식언의 효과로 화염 내성이 영구적으로 +1 상승합니다!"

『이화성』 - [불타는 데몬시드]

「데몬시드 4레벨」

「카탈린의 감전 3레벨」

「생명력」 – 899/900 (+200)▲

「마나」 - 868/920 (+80)▲

「능력치」

근력 – 37 (+14) ▲

민첩 – 29 (+4) ▲

건강 – 36 (+14) ▲

마력 - 42 (+6) ▲

강골 - 14 ▲

「세부 능력치」

명중률+4 시야+4 야간시야+4 방어력+80 마나재생+10 번개내성+25% 냉기내성+5% 독내성+2% 저주내성 +5% 화염내성 +1%▲

『수식언』

[푸르게 불타는 영혼의 불 Lv.1]

「기프트 스킬」

[데몬시드] [제물성장] [페스틱사드] [씨드라] [아토믹시드]

[카탈린의 감전] [카탈린의 증폭] [카탈린의 벼락]

「스킬」

[워터볼] [투척] [돌진] [레인스톰] [블리자드] [리버슬로우] [용장] [브램블리] [카이삭스의 초급 창술] [카이삭스의 표식]

「장비 스킬」

[볼트(2)] [에너지쉴드(1)] [피조물의 영광(1)] [플라이(3)] [내다보는 눈(1)] [지독한 열병] [애작의 사랑(1)]

영혼에 각인된 공포라.

"이 불로 공포를 느껴야 레벨이 올라가는건가?"

공포를 누가?

그건 상관 없나.

악마든, 인간이든.

공포에 종족의 차별은 없는 법.

"누가 느끼냐에 따라 공포의 경험치가 따로 들어오는건가? 흠..."

영혼에 각인된 공포.

사용해 보면서 수식언 레벨을 올릴 방법을 찾아봐야겠다.

하지만 그 전에 먼저.

"쓰고 싶어도 내가 뜨거워서 못쓰면 성립 자체가 안되지..."

화염 내성을 길러야 했다.

지옥 광산 일로도 화염 내성의 필요성은 필수다.

문제는 화염 내성의 열매를 맺게 하는 종자가 와이번이라는건데...

"와이번 둥지 한번 털어야겠네."

이건 내 생각이지만, 쪼렙들이 느끼는 공포보다는 격이 높은 악마가 공포를 느끼게 되는 게 경험치 수급이 더 좋지 않을까 싶다.

조무래기가 느끼는 공포와 강자가 느끼는 공포의 질은 다른 법이니까.

공포.

"마치 악마같네."

악마의 수식언.

권능이라서 그런걸까.

꽤 흥미롭다.

"그러고보니 레아는 그렘린 킹 엘데의 열매를 자주 먹던데."

맛이 좋아서 먹는거겠지만 틈틈히 먹었으니 근시일내로 레아도 수식언을 얻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되면 [패도적인 피의축복]이 되려나.

"잘 어울리는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지만 상관없겠지.

수식언을 얻으려고 한다기보다는 그냥 마음에 들어서 먹는거니까.

"로자리의 괴력도 레아한테는 잘 어울리지 않으려나."

같은 생각도 있지만 알아서 하겠지.

가만히 내버려둬도 레아는 레아 나름대로 강해지고 있다.

굳이 참견할 필요는 없다.

"수식언도 얻었겠다... 오그의 데몬트리는 이제 필요 없는건가?"

혹시나 싶어 다시 한번 오그의 열매를 먹어봤지만.

이제는 아무런 효과 알림도 뜨지 않는다.

더이상은 무의미하다는 뜻이겠지.

"내다 팔까."

싶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그렇다. 자그마치 악마의 권능이다.

아무한테나 내다 파는 건...

"좀 그렇지. 폐기할까."

손안에 푸른 불꽃을 피워냈다.

이 푸른 불은 이제 내 것이다.

오직 나만의 것.

그러니 다른 놈이 가지게 할 바엔.

"아니지. 일단은 두자."

후후 불어 꺼뜨린 가스불을 지워내고 오그의 데몬트리를 툭툭 두들겨 줬다. 아무리 그래도 날 위해 자라난 놈인데 쓸모 없어졌다고 불태워 버리는 것도 조금 그렇다.

그리고.

나중에 필요하게 될지 또 누가 알겠는가.

"레아가 갖고 싶다고 하면 주지 못할 것도 없으니까."

일단 보류.

그보다는 와이번을 잡는 게 먼저다.

지옥이야 강철과 다른 랭커들이 알아서 관리하기 시작할거다.

관찰자도 나타나서 기프트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공략이 곧 나오겠지.

그리고 지하 2층의 통합 채굴장이 얼마나 넓은지도 알려질 터.

나는 그 뒤에 움직여도 늦지 않다.

채굴장 특성상 다른 네피림의 세력을 경계하며 지옥석을 채굴해야 한다. 한번에 얻을 수 있는 지옥석은 많지만 그만큼 위험부담이 존재하고 전투병력과 비전투병력이 힘을 합쳐져 영역을 지켜야 한다.

"채굴한 일부를 전투병력한테도 세금 내듯이 나눠주겠지."

그렇게 된다면 굳이 곡괭이 질 할 필요가 없다.

전투에 자신 없는 사람들은 어딜가나 있는 법이니까.

"독내성이랑 화염내성부터 기르고 나서 광산을 차츰 점령하면 돼."

대한민국 지역은 거기 하나만이 아니고 다른 곳도 있을거다.

높은 확률로 베트남에 먹혔을테지만 다시 되찾아오면 그만이다.

'베트남의 랭킹 1위랑 만날 수도 있겠지.'

그때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

싸우게 될까.

만약 싸운다면, 이길 수 있을까.

"싸우고 싶은데 싸우기 싫다."

싸워보고는 싶다.

하지만 목숨을 논하고 싶은 생각까지 가지는 않았다.

"지옥은 통합인데 왜 콜로세움은 통합이 아닌거야? 감질나게..."

그러고보니.

"카오스 보상 상자가 있었지. 이거나 한번 열어볼까."

까먹고 열어보는 걸 잊었는데 첫번째 카오스 보상 상자였다.

"카오스 보상 상자를 개봉합니다."

"원소 마법 스킬북을 획득합니다."

「원소 마법 스킬북」

-원소 마법을 랜덤으로 습득한다.

"추억이네."

꽤 익숙한 물건이 나왔다.

처음 무인도에서 각성했을 때.

특전이랍시고 이런걸 받았다.

그때는 초급이 붙어 있었는데... 지금은 없는 걸 보니 이젠 잘 안 쓰는 워터볼 같은 게 나오진 않겠지.

"뭐가 나오려나."

아무래도 수식언을 배워서 불 속성 마법보다는 차라리 물이나 얼음 종류가 좋지 않을까 싶다.

아무래도 내가 익힌 마법들은 광범위하긴 하지만 살상력이 뛰어나다고 할 정도는 아니니까.

방비할 대책이 마련되면 무용지물인 대단위 마법들 뿐이다.

대표적으로 레인스톰과 블리자드.

게다가 블리자드나 레인스톰은 같은 속성의 마법을 익히면 익힐수록 속성 피해량이 증가하는 스킬들이다.

"블리자드 쪽이 좋겠지."

레인스톰은 블리자드를 쓰기 위한 발판 같은 스킬이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스킬북을 펼치자.

바람 한줄기가 내 몸을 흝듯이 머릿속으로 스며들었다.

"거스트를 습득합니다."

『거스트』

-거친 돌풍을 만들어낸다.

(소모:20)

아쉽게도 얻어낸 건, 물도 얼음도 아닌 바람의 마법이었다.

수식언 [3]

66화.

높게 치솟은 지옥석의 산.

데몬시드의 것이라 표지판까지 쌓여 있고 지옥석으로 돌탑까지 쌓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아마존은 묘한 이질감을 느꼈다.

"무슨 종교 같아."

자신이 캔 지옥석으로 돌탑을 쌓으며 기도하고 사라지는 네피림들을 보면 참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신이나 다름 없지. 여기 있는 사람들 중에는 자기 입에 풀칠하기도 힘들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니까."

랭킹 10위. 팔라딘이었다.

"지옥석으로 교환할 수 있는 아이템들이 많다. 그걸 사서 파는 사람도 있지. 덕분에 감정 스크롤이 꽤 비싼 값에 거래되기도 하고 있어. 사람들이 말하는 선한 영향력이란 말은 이럴 때 쓰는 거겠지."

누구나 지옥석을 캘 수 있도록 허락한 게 데몬시드다.

자그마치 랭킹 1위의 말.

카오스의 전장에서 단 한번이라도 그를 봤던 사람이라면, 그의 일화를 들어본 사람이라면 미치지 않고서야 데몬시드의 말을 거역할 수 없었다.

선한 영향력.

그가 만들어낸 조화였다.

"거래소에서 지옥석이 올라오더군. 개당 100금이었던게 지금은 30금까지 내려갔다. 그런데도 사는 사람보다 파는 사람이 더 많아."

"오래 지속되지는 않을걸요."

"그렇겠지. 채굴장의 지옥석도 점점 크기가 줄어들고 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지하 2층 전체가 지옥석이 많이 발견되는 공간이다.

대형 지옥석이 사라진다고해도 얼마 동안은 지옥석의 채굴량이 그렇게 떨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때쯤이면 그도 나타나겠지."

"데몬시드 말인가요."

"말을 듣기로는 베트남 놈들이 우리 구역의 것까지 노렸다고 하더군."

"네, 되찾아야죠."

몰랐다고는 해도 뼈아픈 굴욕이다.

알게 모르게 품고 있는 그런 마음들이 말이다.

"미국이라면 몰라도 베트남이라니, 자존심 상한다니까."

"그렇긴하죠."

서양권 국가라면 차라리 모른다.

하지만 베트남이라니.

괜히 더 열이 받는게 사실이다.

"아마존."

"네?"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될거 같아? 역시 데몬시드를 기다리는건가?"

"그래야죠. 판을 깔아준 건 데몬시드지만 저희가 섣불리 다른 진영을 공격하기에는 조금 리스크가 있죠."

첫번째로는 아무 정보가 없다.

이 근처에 베트남이 있는지, 아니면 다른 국가 네피림들이 자리잡았는지.

지리적 정보가 아무것도 없다.

어느 지점을 차지했는지, 근처엔 다른 진영은 없는지, 또는 그 국가의 평균 전투력은 얼마인지 등등.

아무것도 모르는 상황에서는 섣불리 움직이기 힘든 게 사실이다.

"강철을 비롯한 다른 랭커들이 관찰자와 함꼐 정보 수집에 나섰으니 일단은 기다려봐야죠. 데몬시드도 아마 그걸 기다리고 있을겁니다."

"그렇겠지. 그래도 무섭긴 무서워."

"뭐가요?"

"여기 있던 베트남 사람들. 못해도 족히 삼백명은 됐다지?"

"그런데요."

"그거 모두 몰살당했잖아. 아무리 그래도 같은 사람인데.... 필요에 의한거였다지만..... 난 무섭더라고."

무섭다라...

분명 그럴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무서움으로 저 사람들은 지옥석의 산을 쌓았다.

뭐가 옳은걸까.

그런 건 이런 세상이 된 이후부터 의미가 없어진 게 아닐까.

아마존은 홀로 생각했다.

"어이, 팔라딘. 그딴 위선은 그냥 속으로 생각하라고. 데몬시드님이 주신 기회를 폄하하지말고."

돌연 가까이 다가오는 깃털의 날개를 접은 남자. 랭킹 11위 글로리안이었다.

"뇌창한테 찔린 날개나 제대로 고치고 말하지 그래."

"진, 작! 고쳤어!!"

두번째 카오스.

오크전에서 뇌창이 던진 적창에 날개를 찢길 뻔한 글로리안이었다.

뒷담화하다가 눈먼 창에 죽을 뻔 한 글로리안의 별명은 그 이후로 걸레짝날개가 되기도 했지만 지금 중요한 건 딱히 아니었다.

"뒷담화는 안좋지. 아니, 애초에 뇌창이 바로 있는데 입을 나불댔으니 앞담화였나?"

"제가 알기로도 뇌창은 신체능력 수준이 굉장히 뛰어나서 멀리 있는 소리도 굉장히 잘 듣더군요. 아마 일부러 투창했을지도 몰라요."

"자업자득이지. 안 그래?"

빠득, 빠드득.

이를 가는 글로리안은 뇌창의 욕을 실컷 하려다 주변을 두리번거리고는 꾹 눌러 참았다.

"내 앞에서, 뇌창의 뇌도 꺼내지 말았으면 좋겠어. 이번은 봐주지만 두번은 없으니까."

"그거야 내 마음이고, 글로리안. 자네가 온건 저기 저놈 때문아닌가?"

".... 맞아. 아쉽게도 팔라딘. 널 상대할 시간은 없군. 나중에 시간 나면 결투장에서 두들겨 패주지."

"기대하마. 아직 진적은 없지만."

"흥."

10위의 팔라딘. 11위의 글로리안.

둘은 결투장에서도 자주 부딪치는 라이벌 관계였다.

"점수 많이 벌어두라고. 내가 금방 다 가져가 줄테니까. 지옥석이랑."

"자네가 많이 벌어줘서 아직 괜찮은데.... 뭐 무운을 빌지."

"흥."

콜로세움의 도전장을 던져 승리하면 지옥석을 주기도 했다.

아마존은 팔라딘한테 작게 인사하고는 글로리안을 따라나섰다.

"뭘 물어볼 셈입니까."

"딱히, 그냥 날개에 대해 물어볼 생각이야. 놈이 지닌 건 곤충 날개지만 나와 비슷한 기프트니까."

"당신의 기프트는 실체죠?"

"그렇지. 직업형이나 이능형이 아닌 동물형에 가까운 기프트야."

아마존이 직업형.

초능력과 비슷한 능력이 이능형.

그리고 신체가 변화한 상태로 굳어져 있는 이들을 육체형이라고 구분짓는데 글로리안은 그중에서도 동물형에 가까운 육체파였다.

"직업형은 레벨업시 스킬 선택이 많은 것에 신체능력이 나약하지. 육체형은 신체 능력이 비약적으로 뛰어나지만 스킬 선택은 한정적인 것과는 반대로 말이지."

"네, 그런편이죠."

그렇기 때문에 직업형 기프트는 같은 기프트를 선택받은 사람이 많다.

아마존만해도 랭킹이 가장 높은 그녀를 지칭하는 경우가 많지만 그녀를 제외한 아마존은 무수히 많다.

아무래도 한국은 양궁 선수들의 기량이 굉장히 뛰어난 편이니까.

"그래도 다 같지는 않더라고요."

"직업형의 스킬 선택지는 레벨업까지의 행동 데이터를 토대로 갈래가 나뉜다고 들었어. 맞나?"

"예, 맞을거에요. 몇몇의 아마존들과 이야기를 나눠봤는데, 저와 같은 스킬을 익힌 사람들은 드물었거든요."

"그렇겠지. 그러니까 당신 랭킹이 가장 높은 거 아니겠어. 꼭 게임 같아. 업적을 깨지 않으면 스킬 선택지도 안 나오는 게 말이야."

이 세상인 이미 게임과 하나 되었다고 봐도 무방했다.

악마가 나오는 것은 두렵다.

하지만 성장의 기반을 마련해주는 시스템의 등장이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을 이겨내게 만든다.

"데몬시드님은 대체 뭘까."

"이능형이 아닐까요."

이능의 힘을 발휘하는 기프트.

하지만 이능형은 신체능력도 스킬의 선택폭도 굉장히 좁은 단점이 있다.

"그 힘이 단순한 이능형으로는 보이지 않던걸. 게다가 기프트는 기프트 명과 굉장히 밀접한 연관이 있어."

하지만 지금까지 보인 데몬시드의 능력은 기프트명과 연관이 없다.

그는 하늘을 날고, 비와 눈을 뿌리며 가시덤불을 만들어댔다.

나무로 이루어진 히드라를 만들어내 싸우는 것도 보기는 했지만.....

"모르겠단 말이지. 그렇다고 신체 능력이 약해 보이지도 않았어."

"그렇죠... 그 신체능력이라면 육체형이라고 봐도 무방했으니까요."

데몬시드.

그는 과연 뭘까.

그것에 관한 건 글로리안보다 아마존이 더 깊이 오래 생각했다.

데몬시드면서 뇌창.

그는 온갖 마법을 부리면서도 신체능력까지 어마어마하게 높다.

일명 사기캐.

그게 아니면 말이 안된다.

'아직 우리가 모르는 시스템을 사용한 것일지도 모르지. 그 혼자만 기프트가 두개라는 게 말이 안돼.'

애초에 기프트는 총 두개까지 설정할 수 있는 게 아닐까.

게임 중에서는 본 직업과 서브 직업을 나누어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을 지닌 것도 많은 편이니까.

그 혼자만 기프트가 두개라는 건 너무 형평성에 어긋난다.

아무리 게임같다고는 해도 이 세상은 게임이 아닌 현실이니까.

아직은 그만이 도달한 풍경에서만 기프트를 하나 더 쓰는 걸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데몬시드가 이능형, 카탈린의 감전도 이능형일텐데... 그 신체능력은 대체 어떻게 되먹은건지.'

알면 알수록 의문만 남는 남자다.

아마존이 데몬시드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이어나가던 그때였다.

"어이 이봐! 저놈, 계속 저대로 둔거냐?"

"네?"

글로리안이 가리키는 곳은 포로로 묶여 있는 베트남 네피림.

곤충의 날개를 지닌 사내.

플래핑이라는 사내였다.

그는 팔다리가 묶여 있었지만 날개만은 펼쳐진 상태로 파닥거렸는데 거대한 암석에 묶여 있는 터라 소리만 시끄럽고 별 의미없는 짓이었다.

대부분은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글로리안이 보기엔 달렸다.

"왜 그러시죠?"

"저놈 날개를 펄럭거리잖아! 일정간격으로!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르겠어? 자기 위치를 알리고 있는거란 말이다 이 멍청이들아!!"

모스부호처럼 일정한 간격으로 날개를 펄럭거린다.

새의 날개가 아닌, 곤충의 날개.

기묘한 소음이 발생하는데 일반적인 네피림들은 몰랐지만 동물형에 가까운 글로리안이기에 알 수 있었다.

특별한 기파와 음파를 발생시키는 놈의 날개는 모종의 신호를 어딘가로 보내고 있었다.

"그게.... 가능하다고요?"

"젠장, 저놈 날개 빨리 막아! 아니 찢어버려!!"

하지만 한발 늦었다는 듯.

플래핑은 씨익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미 늦었어."

그때였다.

콰앙-!!

채굴장 한켠이 터져나가며 경비서던 대한민국 랭커들이 무더기로 쏟아져 쓰러졌다.

"무슨...!!"

베트남의 지원군인가 싶었으나 아니다.

"도망쳐!!"

"헬뮤트다!!"

"끄아악!!"

채굴장을 습격한 건 거대한 헬뮤트 다섯 마리.

플래핑 플라이트라고 자신을 소개했던 베트남 네피림은 씨익 웃으며 자신을 묶어던 밧줄을 풀었다.

"너희들의 킹이 강하다는 건 안다. 데몬시드? 확실히 강했어. 하지만 광산에서만큼은 우리가 이긴다."

왜냐하면.

"헬뮤트! 헬뮤트 위에 사람이 있어!"

베트남의 1위, Lv.5 만트라.

"우리들의 킹은 헬뮤트를 조종할 수 있거든."

지옥 광산의 파수꾼.

헬뮤트를 조종할 수 있는 랭킹 1위.

만트라를 이길 수 있는 상대는 적어도 이 지옥에서는 없었다.

"어디 한번 힘내보라고! 너희들은 이제 끝났으니까!"

날아가버리는 플래핑.

"어딜 도망가려고!"

그걸 뒤쫓는 글로리안.

그리고 헬뮤트와 함께 자신들을 습격하는 베트남 놈들을 보며 아마존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자그마치 헬뮤트 다섯마리.

한마리도 힘든데 다섯이나 왔다.

'방법이 없어.'

게다가 헬뮤트를 등에 업고 베트남 놈들도 무더기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가만히 내버려두면 학살의 현장이 펼쳐질 터.

지금으로서는 막을 방도는 없다.

"퇴각! 퇴각하라!!"

상황 파악을 마쳤는지 팔라딘의 퇴각 소리가 채굴장에 울려퍼졌다.

아마존은 채굴장 한켠에 쌓아 올려진 지옥석의 산을 보고는 활을 꽈악 말아 쥐었다.

지독한 무력감이 전신을 지배했다.

"아마존!! 뭐해!! 돌아와!!"

팔라딘의 다급한 외침에도 아마존은 달아나는 인파를 밀쳐내고 활을 쥐고 활시위를 당겼다.

헬뮤트에 탑승한 인원.

저들만 없애면 되지 않을까란 작은 소망이었다.

놓아진 활시위.

날아가는 화살.

동시에 세발을 날린 후, 곧바로 연사로 두발을 더 날렸다.

누간가 보았다면 물흐르듯 이어진 연사에 찬사를 보냈겠지만 헬뮤트가 뿌려대는 마그마로 난리통인 이때 그녀의 활솜씨를 보고 찬양할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맞아라!'

맞기만 하면 승산이 있다.

아마존의 화살은 표적에 적중했을 때, 폭발시킬 수 있다.

마력 소모가 굉장히 큰 기술이지만 연쇄폭발로 전장의 흐름을 뒤바꿀 수 있다면 그거야말로 싼값이었다.

'맞아줘!!'

하지만 그녀의 소망과 달리.

탱-!

"아."

헬뮤트에 탑승한 자들에게는 연꽃 모양을 한 쉴드가 아마존의 화살을 모조리 튕겨냈다.

꺾인 마음은 실낱같은 희망과 자그만 자부심을 박살냈다.

털썩 주저 앉은 그때.

촤아악. 푸른 포탈이 열렸다.

물결처럼 일렁이는 포탈 속.

사내의 발이 전장을 지르 밟았다.

"비켜라."

".....!"

돌연 나타난 그의 손에서 시릴듯 일렁이는 푸른 불꽃이 감돌았다.

"데몬시드!"

푸른 불과 함께 나타난 사내는 다름아닌 데몬시드.

물소뼈를 뒤집어 쓴 그는 로브를 펄럭이며 거친 돌풍을 일으켰다.

바람과 함께 흩날린 불꽃은 무슨 짓을 해도 꺼지지 않았다.

절대로 꺼지지 않는 푸른 불.

푸른 불바다 속에서 허우적거리는 적들은 어느새 일렁이는 불꽃 속에서 비명만을 내지른채 사라졌다.

전장에는 검은 재만이 눈개비처럼 내려 앉아 있었을 뿐.

그 중심에 우뚝 선 것은 오직 하나.

데몬시드.

그 혼자 뿐이었다.

수식언 [4]

67화.

『거스트』

-거친 돌풍을 만들어낸다.

(소모:20)

거스트.

새로 배운 원소 마법 거스트는 그저 돌풍을 만들어낼 뿐인 마법이었다.

돌풍이란 강한 바람.

고작 그것뿐이었다.

"살상력이 강하진 않아."

하지만 쓰기에 따라서는 활용 범위가 무궁무진하기도 했다.

바람 자체는 살상력이 없다.

하지만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는 너무나도 강력한 무기가 되기도 하는 것이 바로 바람이었다.

"거스트."

후우웅-!

손안에 바람이 모여든다.

스킬을 배우자마자 지식이 스며들어 알수 있다.

난 이 바람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다. 마음먹으면 바람을 타고 더 멀리, 도약할 수도 있었다.

돌풍을 만들어 투사체들을 날려버릴 수도 있었고 상대를 밀어내거나 날려버려 떨어뜨릴 수도 있다.

하지만 고작 이 정도로는 아쉽다.

그래서 나는 내가 지닌 다른 이능과 거스트를 함께 쓰기로 했다.

이를테면.

"가스불. 아니, 푸른 불."

화아아아악-!!

타오르기만 하는 불은 내게도 뜨거움을 선사하지만 돌풍과 만나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돌풍은 불을 퍼뜨리게 된다.

화아아악!

"끄아아아악! 이거 이거 좀 꺼줘!!"

"안돼! 안 꺼져!!"

"물을 부어도 안 꺼져! 으아아악!!"

"푸르게 불타는 영혼의 불Lv.1이 적을 불태웁니다."

"영혼의 불은 일반적인 방법으로 꺼지지 않습니다."

"적들의 영혼에 푸른 불의 공포가 각인 됩니다."

"공포 각인이 +100 상승합니다."

"공포 각인이 +200 상승합니다."

"공포 각인이 +100 상승합니다."

"공포 각인이 +200 상승합니다."

"공포 각인이 +200 상승합니다."

"공포 각인이 +100 상승합니다."

"공포 각인이 +400 상승합니다."

.

.

.

"축하합니다."

"푸르게 불타는 영혼의 불 Lv.1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푸르게 불타는 영혼의 불 Lv.2로 상승합니다."

"수식언, 불타는의 화염 피해력이 상승합니다."

"수식언의 레벨 상승으로 화염 피해가 영구적으로 +1% 상승합니다!"

"효과 확실하네."

가스불이라고 짜증내기는 했지만 역시 권능은 권능.

이번에 새로 배운 거스트와 함께 사용하자 전장을 불바다로 만드는 건 누워서 떡먹기보다 쉬웠다.

레벨이 한층 오르자 가스불 정도의 뜨거움이었던 푸른 불의 화력은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

적들이 순식간에 불타 죽는다.

불에 조금이라도 닿으면 재로 변해 검은 그을음으로만 남아 소멸했다.

이게 바로 권능.

이게 바로 악마에게서 빼앗은 수식언의 진정한 힘이었다.

"으, 으아아! 으아아아아아!!"

"공포 각인이 +100 상승합니다."

권능에 대한 공포.

그것을 양분으로 삼아 가스불은 더욱 가열차게 성장을 시작한다.

"더 뜨거워져서 나도 못쓰겠는데..."

레벨이 오른 만큼 가스불의 화력 또한 올라갔다.

이전까지는 썩 참을만했던 온도가 이제는 잠깐도 참지 못했다.

거스트가 없었으면 오히려 이 불꽃에 집어삼켜지는 건 나였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조차 들었다.

'빨리 화염 내성을...'

할 일이 많다.

이곳을 대충 정리하고 나면 와이번 둥지를 찾아내 화염 내성을 올리는 게 급선무였다.

가스불의 레벨이 몇까지 있는지는 몰라도 성장하는 능력이란 면에서는 높은 점수를 주고 싶었다.

앞으로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강해지는 불이니 천천히 성장시키는 재미 또한 있겠지.

화르륵.

"페스틱 사드는 안되네. 독이 타버려."

아쉽게도 가스불에 페스틱사드까지 싣는 건 되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당연한 일이다. 불은 독을 태우니까.

물론 거스트에는 가능했기에 돌풍에 실어 독까지 뿌려주자 전장은 한바탕 난리가 났다.

"독에 중독된 적을 처치하셨습니다."

"1502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362 금화를 획득합니다."

"3023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559 금화를 획득합니다."

"2511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1590 금화를 획득합니다."

"공포 각인이 +200 상승합니다."

"공포 각인이 +100 상승합니다."

.

.

.

시스템 창도 난리 났기에 닫고 전방을 주시했다.

같은 네피림을 죽여도 경험치와 금화가 들어오는 걸 보면, 사람 죽이는 게 오히려 더 이득 아닌가란 생각도 들었지만 작게 기지개 피는 인류애가 가까스로 자제심을 발휘했다.

이 상황에도 레벨이 오르지 않는 걸 보면 경험치는 말 그대로 경험치.

레벨이 오르기 위해서는 특별히 강한 놈을 잡아야 한다는 의심이 확신에 가까이 든다.

"데몬시드..... 어떻게 알았어요?"

아마존이었다.

포탈 열자마자 앞에서 길막하고 있길래 비키라고 했는데, 아직도 주저 앉은 채로 전장을 보고 있었다.

엉덩이 안 뜨겁나.

"..... 강철이 알렸다. 이쪽으로 베트남 놈들의 대군이 오고 있다고 미리 말해줬거든."

"아..."

불별도에서 한창 수식언과 거스트를 시험해보고 있던 찰나.

강철군주의 쪽지가 도착했다.

[강철군주님에게로 메시지]

-지금 우리쪽 광산으로 베트남 놈들이 대거 이동하고 있엉! 헬프!! :(

쪽지를 보자마자 잘됐다 싶어 곧장 데몬시드로 풀무장하고 왔다.

포탈은 진작에 좌표를 고정시켜 놨었으니 어려울 거 없었다.

"그랬군요..."

애초에 예상하고는 있었다.

여기까지 뻗친 놈들의 욕심이라면 바로 복수하러 오지 않을까 했다.

원래 평소에는 자기들끼리 지지고볶고 하는 게 사람이지만, 딴 놈한테 맞고 왔다고하면 같이 때리러 가는 게 집단이라는 거 아니겠는가.

그게 하나로 똘똘 뭉쳐야 하는 지금의 국가라면 더더욱 그렇고.

물론 생각보다 빨라서 놀랐지만.

'그건 그렇고.'

헬뮤트에 탑승하고 있는 다섯명.

놈들의 저항이 꽤 끈질기다.

일반적인 놈들이야 가스불로 전부 죽어가고 있지만 헬뮤트는 다르다.

화염 내성이 남다른 놈들은 나의 가스불로도 좀처럼 불타지 않았다.

확실히 마그마를 뿌려대는 놈들이라 그런지 화염 내성이 제법이다.

게다가 그 위에 타고 있는 놈들조차 반투명한 연꽃 모양의 쉴드를 가지고 있었는데 가만히 보니 놈들 이마에도 연꽃 문양이 찍혀 있었다.

'만트라.'

무슨 짓을 한건지는 몰라도 모두 그의 보호를 받고 있는 게 아닐까.

만트라가 이곳에 온거라고 생각되지는 않았다.

"재밌네."

가스불과 거스트로는 한계가 있다.

'플라이.'

천천히 부유한 상태에서 지팡이를 무장했다.

"리버슬로우."

"헬뮤트의 흐름을 느리게 합니다."

가스불에 난리를 피우던 헬뮤트들의 움직임이 멎어들었다.

그와 동시에 브램블리.

후두두둑!!

땅밑에서 튀어나온 가시덤불이 꽈배기처럼 꼬여 하나의 덩쿨로 변해 헬뮤트들을 옭아멘다.

하지만 이곳은 용암지대.

브램블리는 순식간에 불타오르며 힘을 잃기 시작했지만 그 잠깐이면 내가 할일은 충분했다.

손안에 꺼내진 데몬시드.

이것들에게 씨드라를 발동시키고 리버슬로우로 흐름을 늦춘다.

그 뒤, 거스트의 돌풍으로 데몬시드들을 흩날려 울부짖는 헬뮤트들의 입속으로 넣는다.

난 생각했다.

악마들의 입에서 태어날 씨드라는 과연 어떤 효과를 자아낼까.

"리버슬로우를 해제합니다."

"씨드라가 발동됩니다."

-키에에에에에!!

쿵! 쾅!!

정답은 헬뮤트의 목과 머리가 터진다였다.

"으아! 으아아아악!!"

"마, 만트라님! 제게 구원을! 크악!"

"아아 오지맞! 오지마아아!!"

제아무리 단단한 아스팔트라도 잡초는 틈을 비집고 피어난다.

씨드라도 다르지 않았다.

단단한 암석을 두른 헬뮤트의 외피의 틈을 뚫어내 태어난다.

놈들의 스모그가 뿌려지는 갈라진 목에서 줄기를 뻗는다.

코와 입, 눈과 귀에서 뻗어져 나온 줄기는 씨드라를 성장시키고 거대한 뱀으로 성장해 주변에 있는 모든 것을 닥치는대로 잡아 찢어 먹었다.

"길들여진 헬뮤트를 처치하셨습니다."

"길들여진 헬뮤트를 처치하셨습니다."

"길들여진 헬뮤트를 처치하셨습니다."

"길들여진 헬뮤트를 처치하셨습니다."

"길들여진 헬뮤트를 처치하셨습니다."

"길들여진? 그게 만트라의 능력인가."

만트라라고 한다면 사전적 의미로는 마음을 지닌 도구라는 뜻.

일종의 마음의 힘이다.

그것으로 미루어볼 때 베트남의 1위라는 만트라의 힘은 상대를 조종하는 힘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게 아니라면 난폭하기 짝이 없는 헬뮤트를 길들였을 리 없으니까.

레벨이 5나 되니까 다른 스킬들도 꽤 가지고 있을테고.

연꽃의 쉴드도 비슷한게 아닐까.

헬뮤트에 탑승해 있던 사람들의 이마에 있는 것도 관련된 스킬이겠지.

'공명이나 동화 비슷한건가.'

그렇다면 이 전장의 정보도 놈이 알아차렸을지도 모르겠다.

크게 상관은 없다.

오히려 나라는 존재를 깨닫는 게 놈에겐 좋을거다. 그래야 내 수식언의 효과가 더 강해지게 될테니까.

수식언의 강화를 위해서라도 이제 힘을 숨기고 다닐 필요는 없겠지.

"정리는... 대충 됐나."

대충 정리된 전장을 바라보며 이번에 얻은 가스불과 거스트의 힘에 적당히 만족했다. 아직까지 그렇게 치명적인 힘은 아니다. 하지만 발전 가능성도 높고 범용성이 대단히 높으니 이정도면 썩 괜찮은 수준이다.

"근데 하나 묻고 싶은 게 있다."

"아, 네....! 말씀하세요."

근데 영 자세가 이상하다.

마치 잘못한 어린아이처럼 왜 내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걸까.

이상했지만 굳이 묻지 않았다.

다리가 풀린 거일 수도 있으니까.

"저기 쌓여 있는 건 뭐지."

"아! 그건 데몬시드님을 위해 사람들이 조금씩 모아둔 겁니다."

"사람들이? 날 위해?"

"네!"

저렇게 많은 걸?

지옥석의 산이라고 불러도 괜찮아 보일 정도의 양이다.

족히 수천개는 되어 보이는데 저걸 전부 날 위해 준비했다고?

'거래소에서 지옥석 사려고 했는데 안 그래도 되겠는 걸.'

본래는 거래소에서 유통되기 시작하면 적당히 사서 알레이슈와 스킬북을 사려고 했었다.

근데 돌아가는 꼴을 보니 굳이 사지 않아도 될 듯 싶다.

'개꿀이군.'

데몬시드의 것이라고 표지판까지 붙어 있으니 가져도 되겠지.

인벤토리를 열어 쌓여 있는 지옥석 일부를 수거했다.

[지옥석x 6693]

자그마치 육천개가 넘는 수량.

이것도 전부 담은 게 아니다.

뭔가 돌탑 비슷한 것들이 많아서 그것들은 제외하고 가져갔는데도 이만한 수량이다.

'근데 돌탑은 왜 쌓은거야?'

묘한 기분이지만 어쨌든 지옥석이 공짜로 생겨서 기분은 좋다.

이걸로 알레이슈를 잔뜩 사서 아이템을 강화하고 미확인 스킬북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그러고보니.

콜로세움 상점에는 지옥석 일천개나 일만개를 필요로 하는 물건도 꽤 있었는데 그럼 이건 뭘까 싶다.

'관찰자한테 물어보는 게 낫겠군.'

그나저나.

"이렇게 바로 복수 할 줄은 몰랐는데....."

행동력이 꽤 빠르다.

그게 아니면 우릴 완벽하게 얕잡아 보고 있다거나.

하기사.

지금 시기에 헬뮤트 다섯마리를 보내면 당연히 이 정도 상황은 정리될거라 보는 게 맞겠지.

'자신 있는거지.'

자기들 전력.

또는 자신의 힘에.

어쨌거나 얕보였다는 게 사실이다.

가만히 있으면 또 보내겠지.

"아무래도 쉴 시간은 없겠어."

오랜 전쟁의 역사 속에서도 통용되는 만국 진리가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침략당하고 싶지 않다면 침략하라다.

우리나라가 수백년 동안 수탈당한 이유는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잘 막으면 오히려 더 때리고 싶어지는 게 사람 심리다.

오기가 생기기 때문이다.

막기만하고 반격하지 않으면 오히려 만만하게 보게 된다.

이놈들 심리도 비슷하게 되겠지.

최고의 방어는 공격 일변도.

한대 씨게 처맞아 봐야 얕잡아 보지 않는게 만국 공통인 법.

띠링!

[강철군주님에게로 메시지]

-베트남 채굴장 찾았엉! ㅇㅅㅇv

반격의 때는 생각보다 빨리.

기습적으로 다가왔다.

물론.

"미확인 스킬북을 구매하셨습니다!"

콜로세움에서의 스킬북을 지나칠 수는 없었다.

베트남 랭킹 1위 [1]

68화.

"정말 괜찮을까?"

지옥 광산 지하 2층 서쪽 지역.

곡괭이 소리가 연신 들려오는 바위 뒤에서 강철군주를 비롯한 랭커들이 숨죽인 채 몸을 숨기고 있었다.

"괜찮다. 뇌창에게 알렸어. 지금부터는 속도전이야."

"강철 말이 맞다. 데몬시드라면 뇌창과 함께 대충 정리했겠지."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헬뮤트 다섯마리였습니다. 최악의 상황엔..."

"우리 지역이 점령당하고 여기서 오도가도 못하는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는 거겠죠."

"그래도 어쩔 수 있나? 이미 강철이 그렇게 판단했잖아. 관찰자 양반도 괜찮을거라고 동의했고. 안 그래?"

"예, 뇌창님이라면 괜찮을 겁니다."

"그쪽은 걱정할 거 없다. 순식간에 끝날테니까. 오히려 걱정해야 할 건 우리야."

"어? 강철, 저기저기 저놈 그놈 아닌가?"

"맞다. 잘도 빠져나갔군."

곤충 날개.

예의 데몬시드에게 목숨을 구걸해서 포로로 잡혀있던 놈.

플래팅 플라이트.

대충 플래팅이라는 사내였다.

놈은 뭔가 다급하게 채굴장의 사람들에게 손짓, 발짓하며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그걸 듣는 이들은 무슨 뚱딴지 같은 소릴하냐는 시큰둥한 반응이 이어졌다.

거리가 멀어 제대로 들리지 않았는데 모두가 의아해하자 탐색조의 랭커 한명이 상황을 설명했다.

"들렸나?"

"확실하게 들렸습니다."

대답한 이는 랭킹 18위 드루이드.

길들인 짐승들을 강화시켜 싸우는 특성 때문에 청력이 유난히 좋은 편이었다.

드루이드는 안도하며 답했다.

"전장의 상황은 저희가 걱정할 거 없나보군요. 헬뮤트 다섯마리를 비롯한 베트남 놈들을 쓸어버렸답니다. 그러면서 푸른 불이 어쩌고 저쩌고하는데 거기까지는 잘 모르겠네요."

"푸른 불?"

"역시 뇌창!"

"정말 쓸데없는 걱정이었네요."

"헬뮤트 다섯마리를 어떻게 한 사람이 쓰러뜨릴 수 있지?"

"에이, 사람들이랑 같이 싸웠겠죠. 어떻게 헬뮤트 다섯마리를 동시에 상대해요. 한마리 처치하기도 힘든데."

"데몬시드가 함께 있었겠지?"

"그랬겠죠."

그 둘이라면 헬뮤트 다섯마리가 동시에 덥쳐도 순삭 아니었을까.

강철도 그 의견엔 동의했다.

"그럼 문제는 우리네."

"강철, 뇌창한테는 쪽지 보냈죠?"

"응, 둘이 함께 있다면 곧 오겠지. 뇌창도 승기의 흐름을 타기를 바랄거야."

"그래! 개잡놈들 우리 땅을 침범하다니 배짱도 좋지. 죽여버리자고! 대한민국 침략한 놈들이 어디 네놈들 뿐인줄 알아? 우린 항상 지켰다고!!"

"애국자나셨군."

랭킹 7위.

어쌔신이었다.

"넌 안 빡치냐?"

"물론 빡치지. 내기할까? 너보다 내가 죽이는 숫자가 더 많을거다."

"좋지! 내기다! 지옥석 빵!"

"좋다."

"강철, 작전은?"

강철군주는 관찰자를 바라봤다.

"네 생각은?"

"데몬시드나 뇌창님과 합류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저기 놈이 깨방정 떨어대고 있어. 놈들이 이상을 느끼고 있을거야."

"그렇다면 가두죠."

"가두자고? 어떻게?"

"여기서 가장 가까운 채굴장은 저희말고는 없어요. 길도 둘밖에 없죠."

하나는 한국이 점령한 채굴장.

그리고 나머지는 다른곳으로 향하는 출구.

"출구를 막자?"

"네."

"그러니까 방법은!"

"저기, 천장이 약합니다. 조금만 충격을 줘도 무너질거에요."

천장이 약하다니.

"그것도 스킬로 알아본건가?"

"네, 제 기프트는 전투 능력보다는 관찰에 특화되어 있으니까요. 여기 있는 암석등의 약점이나 질적인 부분들이 모조리 표시됩니다."

아무튼.

뻗어나가야 할 출구의 천장 지반이 굉장히 약하다고 표시되어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어떻게 충격을 주냐겠군."

천장의 돌덩어리들을 어떻게 떨어뜨리냐였다.

아무리 천장이 약하다한들 저 높은 곳에 충격을 줄만한 스킬이 있느냐가 관건이었으니까.

"강철, 가능하나?"

"불가. 내 능력으론 어림없다."

강철군주의 스킬들은 무구를 강철기사로 만드는 것. 그들을 강화시키고 강철마를 만든 기마군으로 만드는 것 정도다. 상점에서 얻은 스킬들도 대부분 신체적인 부분의 보완을 위한 것들 뿐.

폭발을 일으킬 파괴력은 없다.

"어쌔신 넌 어떻지?"

"내 트랩으로도 어림없을거다. 애초에 저렇게 높이 있는 걸 어떻게 트랩으로 떨어뜨려. 설치도 못해."

"드루이드는?"

"저도 힘듭니다. 제 아이들도 그런 폭발력을 기대하긴 힘드니까요."

드루이드의 곁에 있는 고양이가 화라도 난 듯 작게 냥하고 울었다.

쓰게 웃으며 심술난 야옹이의 냥냥 펀치를 손바닥으로 받아주는 드루이드의 모습에 강철은 배시시 미소짓다 짐짓 헛기침을 흘렸다.

"바바리안은 당연히 안되고."

"내 쌍도끼라면 가능할지도 모르지! 무시하냐? 앙!?"

괜히 오기 부리는 걸 보니 안되는 게 분명했다.

"아마존이라도 있었으면 괜찮았을텐데 아쉽군."

"아마존의 화살은 폭발이 가능하니까..... 하지만 지금 없는 걸 아쉬워해봤자 의미는 없다."

그때였다.

관찰자가 손을 들었다.

"제게 방법이 있습니다."

"뭐? 어떻게?"

"저, 이게 있어요."

그가 인벤토리에서 꺼낸 건 유탄발사기였다.

"아니 이걸 어디서?!"

"우연찮게 구했습니다. 저도 잘은 몰라요. 주인 없는 방공호에 있던걸 우연히 구했죠."

"우리나라에도 이런거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있구나..."

"그럼 남은건 합을 맞추면 되나?"

지금 출구를 막아봤자, 혼란을 가중시키고 피해를 입히기는 하겠지만 저들의 숫자가 많다.

아직은 때가 아니다.

"아까 저놈들 점령지가 몇개랬지?"

"세개랬던가? 네개랬나."

"다섯개다."

㉧㉧㉧㉧

그들이 알아낸 지역은 이런 느낌.

맨 오른쪽이 지금 한국이 점령한 채굴장이고 그들이 있는 곳이 바로 왼쪽에 있는 채굴장이다.

놈들은 여기부터 시작해서 출구쪽의 중심에서 동서남북으로 채굴장을 모두 점령했다고 했다.

"중심에 있는 게 가장 크다며?"

"그렇다고 하더군. 제대로 싸울꺼면 이쪽 초대형 광맥을 탈환하는게 먼저일거다."

"하지만 놈들도 그건 알텐데?"

"그러니까 우선 퇴로를 차단하고 여기부터 공략한 이후에 싸우는게 중요하지. 저쪽에서 지원이 오면 오히려 우리가 위험하게 될수도 있으니까."

이야기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뇌창은?"

"어? 답장이 왔다."

"뭐래, 뭐래!"

[뇌창으로부터 메시지]

-작전이 있다. 대기해.

"작전이 있으니까 대기하라는데..."

"뇌창의 작전이라..."

"그럼 잠시 대기해볼까?"

"뇌창이 뭘 하는가 보고 행동해도 늦지는 않겠어. 관찰자. 혹시 모르니까 유탄발사기는 장전해놔."

"알겠습니다."

2구역의 채굴장에 있는 적들의 수는 자그마치 삼천.

이만한 수의 적들을 상대로 뇌창의 작전은 과연 무엇일까.

그때였다.

꽈광!!

천둥소리가 울려퍼졌다.

"왔다!"

휘이이이이잉-!

쾅!!

"뭐, 뭐야!?"

"뭐야 저거!"

"창이다!"

중심에 우뚝 솟은 대형 지옥석에 꽂혀진 한자루 창. 돌연 나타난 한자루 창을 멍하니 바라본 그때.

파직.

작은 뇌전과 벼락과 함께 한 사내가 나타났다.

자신이 꽂은 창 위에 서서 팔짱낀 상태로 좌중을 내려다보는 사내의 모습은 마치 오만함 그 자체.

본능적인 공포가 몸을 엄습했으나.

"한놈이다! 죽여!!"

"쏴! 죽여버려!!"

"어차피 한놈이야 쫄지마! 죽여!"

그들에게 뇌창은 적진으로 혈혈단신 침투한 머저리.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수적우열은 웬만한 강함의 정도를 씹어먹는다. 오죽하면 다구리에 장사 없다는 말이 괜히 있을까.

화들짝 놀란 바바리안과 한국측 랭커들이 뛰쳐나가려는 찰나.

강철은 보았다.

자신을 똑똑히 바라보고 말하는 뇌창의 입모양을.

"투왕의 살기."

그때였다.

꾸웅-!

뇌창으로부터 무형의 기운이 삽시에 일대로 퍼져나갔다.

"큭!"

"뭐, 뭐야!!"

"왜....! 왜 몸이 안 움직이는거야!"

아니다.

뭔가에 속박된 게 아니다.

멀리 떨어져 있는 강철이기에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그들의 몸은 떨리고 있었다.

툭, 털썩.

뇌창에게 가까이 있는 자들은 게거품을 물고 쓰러졌고 나머지는 무릎을 꿇고 사지를 덜덜 떨고 있었다.

'살기.'

뇌창이 발현해낸 것은 살기.

누군가를 죽이고자 하는 마음이다.

단순히 그것만으로 적들은 자신의 죽음을 보고 그의 각오를 깨닫고 겁먹어 의지를 상실한 것.

물론.

그걸 가능케한 것은.

"새로 얻은 스킬인가보네...."

그가 새로 얻은 스킬의 효과겠지만 말이다.

*

『투왕의 살기』 (Epic)

-그는 500년간의 결투에서 승리한 명실상부 결투의 왕. 수백, 수천의 결투에서 승리한 투왕. 그의 의지를 잇는 자여, 투왕의 삶을 감당해보라.

"당신이 지금 껏 빼앗은 생명의 숫자가 살심으로 측정됩니다."

"개체 최소 점수 1에서 최대 999,999,999까지 측정합니다."

"측정이 완료 되었습니다."

"살심:26,624,950"

"살기 레벨이 상승합니다."

"살기 Lv.6으로 격상합니다."

"당신의 모든 행동에 살기가 깃듭니다."

"살기에 저항하지 못하는 적은 겁에 질리고 삶의 의지를 잃습니다."

"살기를 개방할 때마다 살심이 소모됩니다."

"초당 살심 10을 소모합니다."

투왕의 살기.

콜로세움 상점에서 구매한 스킬북.

자그마치 지옥석 5550개를 소모하고 구매한 스킬이다.

그 효과는 당연히 대만족!

채굴장에 모여 있는 베트남 놈들 수천명의 움직임이 단번에 정지됐다.

내가 계속 살기를 개방한 채 유지하고 있는 이상 그들은 몸을 움직이지 못한다. 움직일 수 있다고해도 그건 잠시 뿐. 평균 레벨 2에서 3밖에 되지 않는 자들은 내 살기를 버텨내지 못할테니까.

'지금까지 앗아간 생명을 살심으로 측정하고 수치를 매겨서 자원으로 사용할 줄은 몰랐는 걸.'

투왕의 살기.

이걸 계속 사용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살심을 쌓아야만 했다.

그건 악마든 인간이든 관계는 없어 보였으니 신경 쓸 이유는 없다.

난 아마 평생을 악마들을 죽이고 다니게 될테니까.

그럼 다음은 살기의 효과인데.

시스템은 말했다.

모든 행동에 살기가 깃든다고.

그 말인즉슨.

"내 공격에도 살기가 깃든다."

살기가 깃든다는 게 뭘까.

고민하고 있던 찰나.

"으아아아! 죽어!!"

돌연 한 놈이 괴성을 내지르며 뛰어올라 대검을 내려찍었다.

눈은 붉게 변하고 양팔이 짐승의 것으로 변하는 걸 보니 동물계 기프트인 듯 했다. 미친놈처럼 덤벼드는 걸 보니 이성을 유지 못하는 종류의 스킬로 보인다. 인벤토리에서 창을 꺼내 막으려다 그만두었다.

모든 행동에 살기가 깃든다.

살기란 무엇인가.

적을 죽이려 하는 마음가짐이다.

"역시."

투왕의 살기.

그것을 놈에게 집중시켰다.

그러자 비스트로 변해가는 놈의 눈에 공포가 각인됐다.

덜덜 떨리는 대검.

높게 솟아올라 내려찍던 놈의 대검이 내 눈앞에서 멈췄다.

"!!"

"이런건가."

대충 알았다.

그리고 약간이지만 내 무기.

내 의지에 살기가 담긴다.

그 뜻은 아마.

"살기로 인해 무기의 고유 효과가 살기 레벨만큼 강화됩니다."

내 무기까지 영향을 미친다.

[카탈린을 그리는 적창 +3]

(살기 강화)

-그렘린 킹의 피와 뼈를 갈아 만든 적창.

(강력한 출혈) ▶(더 강력한 출혈)

"커헉!"

시스템에는 나오지 않았지만 무기 자체의 예리함과 공격력 또한 강화된 느낌이다.

갑옷을 입은 네피림의 살이 마치 순두부처럼 뚫렸으니까.

피묻은 손을 털고 나서야 카탈린의 감전과 벼락을 일으켜 주변을 초토화로 만들고 곧장 뛰었다.

아직 할 일은 많다.

"나와라, 만트라."

오늘 너 잡기 전엔 안 갈테니까.

베트남의 점령 구역이 다섯개?

오늘부터는 하나도 힘들거다.

'내가 그렇게 만들거니까.'

파직.

지옥광산의 피바람은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었다.

베트남 랭킹 1위 [2]

69화.

흠칫.

베트남의 랭킹 1위.

만트라는 가부좌를 해제하고 자리에서 일어나 눈을 떴다.

그는 기프트 만트라를 이용해 표식을 새겨 수많은 사람들과 길들인 악마와 짐승들이 그의 눈이었다.

만트라는 정신력의 공명. 동화. 그리고 명경지수를 바탕으로 한다.

일종의 파장이다.

상대와 나의 파장을 맞추면 그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알 수 있다.

그것을 어루만지고 달래주면 상대를 나의 것으로 하기가 쉽다.

명령하기보다는 하나가 되는 거다.

만트라는 그렇게 한명 한명의 자신을 늘려나갔다.

그렇게 랭킹 1위의 자리까지 오르는 건 너무도 쉬웠고 거느리는 악마들과 네피림의 숫자는 셀 수 없을 지경.

일신의 무력도 크게 나쁘지 않다.

만트라는 자신의 속에서 끊임없이 속삭이는 잡념과 소음을 단절하고 목표로 한 것으로 향하게 한다.

꾸준한 마음으로 몸을 단련하면 인간에게 한계는 없을 것이요, 두 주먹으로 갑옷을 부수고, 손날은 검날조차 분지를 것이다.

마음의 파장.

그것을 맞춘다면 만트라의 앞에 적수는 없었다.

"분명 그랬어야 했는데..."

만트라의 손이 떨렸다.

그는 분명 보았다.

헬뮤트와 만트라의 세례를 받은 이들의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그건 악마다!"

어찌 사람이 그런 힘을 다룰 수 있단 말인가!

푸른 불. 몸서리 쳐질만큼 흉악한 악마의 불이 틀림없다.

게다가 놈이 헬뮤트를 죽인 방식은 기괴하기 짝이 없다.

씨앗을 뿌려 그곳에서 악마를 소환해서 헬뮤트를 안에서부터 죽이다니.

"놈들을 사로잡기 위해서 내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그 노력은 물론, 자국민을 학살한 푸른 악마를 용서할 수 없었다.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놈은 분명 마법을 주로 사용하는 마법사형 기프트를 가졌을 터.

책을 펼쳐서 사용하는 소서리스가 아닌걸 보면 자신과 같은 특별한 기프트를 지녔을 확률이 높다.

사람들은 직업형, 이능형, 초인형으로 나뉘었다지만 그 위에 소수만 지니고 있는 만능형을 모른다.

자신의 기프트.

만트라는 만능형 기프트.

만능형도 일신의 능력이 없다면 이도저도 아닌 잡캐가 될 뿐이지만 실력이 출중하다면 만능이 되는 법.

그는 다시금 가부좌를 틀어 곁에 놓여져 있는 마체테를 잡았다.

"마법도 소용없게 만들어주지."

놈의 불은 강력했다.

하지만 자신의 만트라와 이게 합쳐진대도 놈이 그리 날뛸 수 있을까?

베트남 1위.

진응우옌은 아니라고 장담했다.

"만트라님!!"

곤충 날개를 윙윙거리며 헐레벌떡 날아온 네피림.

그 기프트로 인해 전투 능력은 강하지 않지만 전령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플래팅 플라이트였다.

사내답지 않게 얼굴이 엉망진창이다. 눈물, 콧물로 범벅된 그의 상태는 좋은말로도 정상이라고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놈이! 놈이 오고 있습니다!! 벌써 저희 구역 두개가!! 두개가!!"

"진정하십시오. 적은 몇입니까."

"하, 하나입니다!! 하지만 그....!"

"누군지 알겠군요. 어딥니까."

"초대형 광맥이 있는 곳입니다!!"

일반적인 대형 광맥이 아닌, 초대형 광맥이 잠자고 있는 곳.

베트남의 본래 구역과 연결되어 있는 최대로 중요한 채굴장이었다.

그곳만은 어떻게든 지켜야 했다.

대형 광맥이 하루 평균 한사람당 열개를 캔다면, 초대형 광맥은 서른개를 캘 수 있는 중요지.

다른 곳은 몰라도 이곳은 안된다.

'일본 놈들이랑 목숨 걸고 싸워서 겨우 희생을 치르며 지킨 곳이다. 이곳 만큼은 절대 빼앗길 수 없어.'

그것도 단 한놈에 의해서는 절대.

"한국의 전력은 어땠습니까. 애초에 그걸 알아보라고 보낸건데요."

"데몬시드! 그리고 뇌창이라 불리는 랭커 말고는 크게 특출난 인재는 없었습니다! 그 놈들, 게임만 잘하지 딱히 볼 것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 한놈이 너무 강했습니다!!"

"푸른 불이라면 저도 봤습니다."

"아니요! 불만이 아닙니다!!"

"예?"

그때였다.

콰자자자자자! 콰아앙-!!

우레소리와 함께 뭔가 터지는 소리가 동시다발적으로 들려왔다.

"적습이다!!"

"만트라님! 놈이 왔습니다!!"

초대형 광맥에 꽂힌 한자루 창.

그리고 물밀듯 밀려오는 대군.

말을 타고 달려드는 강철 기마군.

쌍도끼 휘두르는 바바리안과 팔라딘, 그리고 아마존으로 보이는 이들까지 다양한 네피림들이 한순간에 밀어닥쳐 채굴장을 기습했다.

하지만 그들 중 한명.

만트라가 눈여겨보고 있는 건 오직 한 사내. 어느새인가 광맥에 꽂혀 있는 창을 밟고 선 사내뿐이었다.

"저자가 뇌창? 데몬시드는 오지 않은건가요?"

"그, 그런 것 같습니다!"

"걱정마세요. 제아무리 강하다 한들, 제 앞에서는 꼬리나 흔들 줄 아는 똥개 그 이하가 될테니까요."

그가 이렇게까지 자신감을 보이는 이유는 단 하나.

이번에 얻은 스킬 때문이다.

어떠한 적도 쉽게 움직이지 못하게 하는 단 하나의 스킬.

랭커들 사이에서는 콜로세움에서 얻어야 할 필수 스킬로 거론되는 그것.

바로.

"투왕의 살기."

투왕의 살기였다.

꾸웅-!

만트라의 눈빛에서부터 원처럼 퍼져나간 살기는 삽시에 전장의 소음을 멈추고 난폭하게 날뛰는 이들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데몬시드란 놈이 없는 건 아쉽지만 이 정도면 충분한 힘의 격차를 보여주는 일이겠죠.'

살기는 자신이 앗아간 생명의 수만큼 레벨이 형성된다.

만트라의 레벨은 자그마치.

[살기 Lv.5]

"모두, 내 앞에 무릎 꿇... 컥!"

"당신보다 더 강한 살기에 억압 당합니다!"

"살기에 억압 당하는 동안 신체 능력의 10% 감소됩니다."

"어억!!"

만트라의 어깨가 무거워졌다.

뭔가가 자신의 몸을 짓누르는 기분이 강하게 들렸다.

"이럴, 어째서!!"

"네가 만트라라는 놈인가?"

툭.

허리가 꺾인 만트라 앞에 창을 어깨에 이고 다가오는 한 사내.

"히, 히이이익!!"

플래팅이 두려워하는 남자.

그가 바로.

"한판 붙자."

데몬시드였다.

*

"적의 살기에 억압당합니다."

"당신의 살기가 더 강합니다."

"적의 살기를 저항합니다."

'놈도 역시 가지고 있구나.'

한 나라의 랭킹 1위라면 당연히 가지는 게 당연한 스킬이다.

하지만 살기에도 차이는 있다.

살심이라 하는 수치는 생명을 앗아간 숫자. 하지만 그 숫자의 증가폭은 어떤 존재를 죽였느냐하는 대상의 차이에 큰 폭이 존재한다.

'난 카오스에 있는 악마들 대부분을 나 혼자 죽였다고봐도 무방하니까.'

아마도 만트라는 아닌 거겠지.

게다가 서펜트와 와이번, 헬뮤트에 해당하기까지.

놈은 서펜트나 와이번은 물론, 헬뮤트조차 죽이기보다는 길들이기를 택했을 것이다.

지금의 살기 차이는 그 차이.

그 작은 차이가 지금의 격차를 만들었을 뿐이었다.

"약속을...."

"무슨 약속."

"우린 짊어진 게 많은 사람입니다. 승패에 상관없이, 목숨만큼은 빼앗지 않겠다고 약속하죠. 나라를 위해서."

하기사.

랭킹 1위가 펼치는 영향력은 생각보다 많은 걸 뒤바꾼다.

카오스를 생각해서라도 그를 여기서 죽인다면 다음이 꽤 어려울 터.

데몬시드는 흔쾌히 수락했다.

"흠..... 좋다."

애초에 사람 죽이는 걸 좋아하는 성격도 아니다.

살인마도 아니고, 먼저 침략당했고 공격받았기에 복수를 한것 뿐.

그의 목적도 채굴장의 점령이지 사람을 죽이는 건 아니었으니까.

그때였다.

돌연 꽃잎이 나부꼈다.

"연꽃?"

"만다라입니다."

마체테를 든 사내와는 어울리지 않는 꽃이었다.

그의 발밑은 어느새 연꽃을 밟고 있었고 크고 작은 연꽃잎이 주변을 휘날렸다.

"당신은 이미 제 범위에 있습니다. 살기가 통하지 않는 건 놀랐습니다만 전투는 그게 다가 아니죠."

살기 레벨이 낮다고 해도 만트라의 기프트는 Lv.5 데몬시드보다는 확실한 우위에 선 자였다.

"당신의 레벨은 아직 4밖에 되지 않는다고 들었습니다. 맞습니까?"

"뭐.... 그렇지."

뇌창으로서는 아직도 3이지만 데몬시드는 4가 맞다.

뭔가 착오가 있는 것 같지만 그게 중요한 건 아니니까.

"네피림은. Lv.5가 되었을 때가 진정한 힘을 내게 되는 기점입니다. 아직 레벨이 낮은 당신은! 절 이길 수가 없습니다!"

짝!

"옴마니 반메훔."

-!!

쿠우웅-!!

돌연 하늘에서 거대한 손바닥이 데몬시드를 후려쳤다.

"마력으로 이루어진 거인?"

"단순한 마력이 아닙니다! 의지의 기운! 우주의 지혜입니다!!"

무슨 소릴하는지 이해하기는 어려웠지만 만트라에게서 나온 팔 여섯개의 거인은 확실히 힌두교의 불교에서 많이 보았던 무언가 같았다.

만트라의 머리 위로 형성된 거인은 하체는 없었지만 여섯개의 팔이 휘황찬란하게 움직여대고 있었다.

게다가 전신에 깃든 건 살기.

투왕의 살기까지 두르고 있어 일반적이라면 쉽게 상대하지 못할 것만 같았다.

쾅-!

쿠웅-!!

게다가 저 여섯개의 손바닥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접근을 불허하니 그야말로 철옹성.

쿠웅-!!

끼긱, 끼기긱!!

손바닥을 맞받아친 데몬시드의 창이 끼긱거리며 불티가 휘날린다.

강도는 적창과 동급.

어쩌면 그 이상.

살기를 두른 창으로도 저 손바닥을 뚫어내지는 못했다.

'지금이라도 열병의 투구를...'

하지만 그 생각을 읽힌걸까.

"저한테 저주는 통하지 않을 겁니다! 만트라란 자신을 견고히 하는 것! 안정을 위한 것이 첫째니까요!"

뭘 많이 헷갈려하고 있는 거 같다.

"그럼 벼락도 안 통하나?"

"예?"

적창에 벼락이 깃든다.

이내 살기가 깃든다.

그리고.

'거스트.'

돌풍이 깃든다.

"큭! 가만 두지 않습니다!!"

거인의 손바닥이 데몬시드를 덮치지만 그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어디로!!"

처음 나타났던 그곳.

표식으로 이동한 데몬시드는 곧장 붉은 뇌전을 일으키며 투창했다.

"카탈린의 벼락."

꽈광-!!

벼락이 휘몰아친다.

"그까짓꺼!! 마음의 거인으로 충분히!!"

충분히... 투둑!! 툭!

콰창-!!

"아...! 크아아아아악!!"

콰아아앙-!!

"조금 얕았나?"

거대한 폭연 속.

주르륵. 찢겨진 볼에서 붉은 피가 주륵 흘렀다. 만트라가 만들어낸 다섯개의 손은 꿰뚫려 박살이 났고 하나만이 남아 궤도를 겨우 틀었다.

연꽃의 쉴드가 박살난 상태.

그야말로 천운이었다.

그게 아니었다면.

'틀림없이 죽었다.'

게다가 그는 예의 푸른 불도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 생각하자 완패였다.

'아니, 푸른 불은 이 사람이 아니었던가?'

죽을뻔하고 나서야 생각이 차츰 정리가 된다. 이제와서보니 한국의 랭킹 1위가 아니라 2위한테 죽을 뻔 한것 아닌가.

뇌창이라는 자는 레벨이 3이라고 들었는데.... 헷갈려서 착각하고 말았다.

"저의 패배입니다."

털썩.

만트라의 무릎이 땅에 닿았다.

그것은 한창 싸우고 있던 베트남 네피림들이 더 침통해했다.

"만트라님!!"

"만트라님이 졌다고? 그럴수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반응.

하지만 그들도 속속들이 싸울 의지를 잃었다는 듯 무기를 버렸다.

"다른 랭커들은 없는건가?"

"베트남은 제게 의지하고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아뇨, 저의 독식으로 다른이의 성장이 많이 부족해졌죠."

"그렇군."

흘려들을 수는 없는 내용이다.

한국도 크게 다르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어쨌든 약속은 약속.

"죽이지는 않겠다. 하지만 물러나."

"예, 하지만 제안, 하나를 드려도 되겠습니까."

"제안?"

"예, 초대형 광맥은 드리겠습니다. 그 밑의 대형 채굴장도 드리죠. 하지만 저희 구역과 이곳은 저희에게 맡기시는 게 어떻습니까."

"이유는?"

"이곳은 저희말고 적들의 침입이 허용하기 좋은 이동로입니다. 만약 침투한다면 저희가 먼저 나서서 싸우고 알리겠습니다. 그렇다면 한국은 큰 피해 없이 적의 침입을 방비할 수도 있겠죠."

㉧㉧㉧㉧

그러니까 만트라의 말은 북쪽과 서쪽을 자신들에게 맡기라는거였다.

"싫다."

"하지만 북쪽은 저희 지역입니다. 광산에서 바로 투입할 수 있죠. 게다가 서쪽은 일본과 맞닿은 지역으로 저희도 몇차례나 큰 전투를 치룬 곳입니다."

일본에는 꽤 억하심정을 가지고 있는 듯 하다.

"위험부담을 맡겠다는건가?"

"맞습니다."

"하지만 만일 너희들이 배신한다면 우린 양각으로 잡히게 된다."

"그건... 그렇습니다만, 그럴 일은 없을 겁니다."

그 부분에 한해서는 만트라도 딱히 할 말이 없는 모양이었다.

여기서부터는 신뢰의 문제.

딱히 놈을 믿을 이유는 없다.

그렇다고 마냥 죽이기엔 대충 말이 통하는 놈 같기는 하니...

"그것 뿐인가?"

놈들을 화살받이로 두는 것도 나쁘진 않지만 없어도 문제는 없다.

믿을만한 이유도 없고. 허나 놈이 어찌 나오냐에 따라 상황은 바뀐다.

"저희가 캐는 지옥석의 3할을 드리겠습니다!!"

역시, 랭킹 1위 답게 눈치는 빠르다. 캐내는 지옥석 3할을 준다는 것.

하지만 적다.

"7할."

본래 거래란 말도 안되는 액수를 부른 후, 교섭해야 하는 법.

"4할... 4할을 드리죠!!"

"7할."

깎으려 하지만 어림없다.

살기를 일으킨다. 만트라의 얼굴에 식은땀이 도래했다.

"5할로! 5할로 하겠습니다!"

"좋아."

너무 받아 먹는 것도 괜한 잡음을 부를테니까. 훌륭한 거래였다.

덥석, 악수한 내 손아귀에 만트라는 웃는듯 우는듯한 얼굴로 고개를 푹 숙였다.

맹독 스튜 [1]

70화.

[엘프님으로부터 메시지]

-앞서 말씀하셨던대로 5구역은 베트남과 동시 점령하기로 했습니다. 그 외의 1,2,3,4 채굴장도 별탈 없이 넘겨 받았습니다.

베트남전은 이것으로 일단락됐다.

구역을 정하는 일은 나 혼자 정하는 건 미묘했기에 강철과 아마존에게 일임했다. 그 둘이라면 다른 랭커들과 의견을 잘 조율할거라고 생각했고 예상한대로 잘 해주었다.

그리고 난 이번 일로 느낀 게 많다.

'우리나라 약해.'

이런 말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대한민국의 네피림들은 약하다.

랭킹 3위에 있는 강철군주만 해도 꽤 약했고 아마존, 바바리안을 비롯한 이들 중 나와 비슷하게 특출나게 강한 자가 없다.

물론 그들 사이에서는 강한 축이겠지만 내가 보기엔 한참 부족하다.

만트라가 보기에도 그들은 만만해 보였겠고, 때문에 우리 구역을 개의치 않고 점령했던 거겠지.

약하다. 얕잡아 보였다.

예전부터 생각했던 거다.

랭킹 시스템으로 자국민끼리 경쟁을 부추기고는 있지만 한계가 있다.

현 한국의 네피림은 약하다.

콜로세움의 결투장도 그들의 전투력을 끌어 올리고는 있지만...

우리나라는 약하다.

약한 이유는 아마도 나의 존재 때문일 이유가 크다.

한국은 카오스 게이트에서 데몬시드에게 의지하는 바가 너무도 크니까.

'만트라는 강했지.'

자신의 기프트는 만능형.

그런 소릴 했었다.

어느 정도는 이해가 가는 말이다.

아마존이나 강철군주처럼 직업형, 이능형들은 신체 능력이 약하다.

직업형은 발전 가능성이라도 있고 성장하면서 강해질 여지라도 있지만 이능형은 또 아니었다.

'5레벨을 찍으면 또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때까지 약한 건 맞지.'

놈은 말했다.

5레벨을 기점으로 기프트는 한차례 도약한다고. 그 말마따나 놈의 5레벨 스킬은 여타 다른 것보다 훨씬 위협적이고 방대한 힘을 지녔었다.

만트라가 나한테 진 이유는 그보다 내가 더 강했기 때문.

순수 기프트 스킬로만 겨룬다면 아마 나도 꽤 위험하지 않았을까.

'내가 데몬시드만 가졌었다면? 아니, 그건 아닌가.'

솔직히 시드로긴이나 다른 스킬들을 사용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놈도 딱히 전력은 아니었다.

'만트라는 악마를 길들일 수 있다. 그 악마의 힘이 강하면 강할수록 놈의 힘도 강해지니까.'

지금은 아니더라도 후에 어떻게 될지 모를 힘이다.

경계해야 할 힘은 분명하나.

'그래도 인간이야.'

우리의 주적은 악마지 같은 인간이 아니다. 그의 힘은 조금이라도 침략해오는 악마들을 막아줄 테니까.

내가 만트라를 죽이지 않은 이유도 그것 중 하나다. 이 세상은 그래도 인간의 것이어야 한다. 악마에게 빼앗겨서는 안 되지 않겠는가.

'우린 짊어진 게 많은 사람입니다. 승패에 상관없이, 목숨만큼은 빼앗지 않겠다고 약속하죠. 나라를 위해서.'

전투 직전에 만트라가 한 말은 전투의 희열에 빠져있던 내 정신을 차리게 할 만큼 절제되어 있었다.

이성적이었다는 말이다.

앞으로 광산이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만트라와는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해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물론 베트남보다는 한국 네피림들을 빨리 어떻게 해야 하지만.

"어떻게 강화시키지? 역시 섬으로 데려와야하나? 그건 좀 귀찮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섬에 데려오는 건 영 아니다.

역시 그 방법밖에는 없으려나.

하나의 방법을 떠올리며 지금 내 앞에서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는 붉은 머리 여자를 바라봤다.

"정말 너무하세요! 그런 큰 싸움에 어떻게 저를 안 데려가요!"

"시급이 시급인지라..."

상황이 종료됐지만 내게는 또 하나의 시작이었다. 자기를 버려두고 싸우러 간 나를 탓하며 서운함을 가뜩 토로한 레아 때문이었다.

"다음부터는 절대 그러지마세요. 화성님이 싸우면 저도 싸울거에요!"

"알았어. 다음엔 아무리 급해도 같이 데려갈게."

"약속이에요."

겨우 약속하고 나서야 기분을 푼 레아는 다시 음식을 하기 시작했다.

요새는 자기가 요리를 해보고 싶다고 여러 요리책들을 거래소에서 사서 시험해보고 있는데 맛은 영 그랬다.

'차차 나아지겠지.'

밥 차려준다는데 받아먹는 사람이 불평불만해서는 안되지.

"요새는 식재료도 거래소에서 구하기가 힘들어지고 있어요..... 저희도 밭을 하나 만들까요?"

"그렇게까지 해야하려나?"

"이제는 대파 하나가 1금에까지 거래되고 있으니까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점점 더 심해지지 않을까요?"

"그렇네."

이른바 품귀현상이라는거다.

그래도 대파 하나가 저렇게 되는 건 좀 충격이기는 하다.

"우리야 악과가 있으니까 조금 나은 편이겠지만 다른 사람들은 더 심하겠어. 악마들 때문에 제대로 농사를 지을 수도 없으니까."

상점에서 간간히 빵을 판매하고는 있긴 하지만 한국 사람이 어떻게 빵만 먹고 살겠는가.

쌀도 먹고 빵도 먹고 면도 먹고 다양하게 먹는 즐거움이 있는건데.

"텃밭이라도 만들어볼까."

두사람 먹을 만큼의 식재료 정도는 자체적으로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싶기는 하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

한국사람의 힘.

"쌀은 어렵지."

텃밭으로도 쌀을 생산해내는 건 어렵다는 것이었다.

모내기부터 시작해서 여러가지로 손이 많이가는 작물중의 하나.

이런 세상이 되기 전에야 몇만원 내면 손쉽게 구할 수 있는 거였지만 지금 세상에서는 그마저도 쉽지 않다.

거래소에서도 슬슬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는 게 쌀이었으니까.

대책을 세우기는 해야했다.

"먹고 살기 힘든 건 예나 지금이나 별 차이 없는 거 같기도 하고."

쌀 걱정을 해야 할 줄이야.

"데몬시드로는 밭농사 못하나."

아쉽지만 안되는 걸 안타까워만하고 있을 수는 없다.

"짜잔! 오늘은 생선과일찜입니다!"

섬 근처에서 잡은 생선들과 악마의 열매들을 고추장과 함께 쪄낸 요리 비슷한 무언가였다.

"생선은 비려야 생선이지."

"네? 그럼요! 물은 야자수 열매의 그걸로 만들었어요! 그리고 기본으로는 그렘린이랑 오크 열매까지!"

"짬뽕찜이군."

"짬뽕이요? 그게 뭘까요?"

"맛있어 보인다는 말이지."

"빨리 드셔보세요!"

"응."

생선은 생선의 맛이고, 과일은 과일의 맛이었다.

"내다 팔아도 되겠네."

이 심한 걸 나만 먹고 싶지 않다.

"정말요? 에헤헤, 좋아해 줄까요?"

"응, 좋아해주지 않을까."

정말로.

좋아서 죽이려고 할지도.

잠깐만. 내다 판다?

"진짜 나쁘지 않겠는데."

요리 실력도 늘리고 네피림들의 평균 전투력도 상승시킬 수 있는 희대의 묘안이 떠올랐다.

"이거 팔아볼래?"

"헉!! 정말요!?"

본디, 성장을 위해선 고통 또한 감내해야 하는 법.

그들은 감히 거절하지 못할거다.

레아의 요리는 눈부신 성장을 이루고 미각을 앗아갈테니까!

*

[뉘우치는 대장간]

대장간의 주인.

리벨롬은 한동안 모습을 비추지 않았다.

덕분에 커뮤니티에는 리벨롬이 출현했다는 낚시글만 간혹 뜨고는 했다.

대장간에 출입하는 10 금도 아껴야 할만큼 빠듯한 네피림들도 있었으니 말이다.

[리벨롬 성님 떴다!!!!!!!!!!!!!!!!!!!!!!]

랭킹 51위 관찰자.

그는 오늘도 낚시글이겠거니 했으나 조금 게시판을 살펴보고는 진짜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안 그래도 이번에 얻은 장비들이 꽤 좋은데 강화좀 시키러 가볼까."

그는 대장간의 주인이 데몬시드라는 걸 알고 있는 유일한 네피림.

(강철도 뇌창이라 알지 데몬시드인 줄은 아직까지 모른다.)

"뉘우치는 대장간에 입장합니다."

포탈이 열렸다.

푸른 포탈 속에는 으슥한 카타콤에 자리잡은 대장간.

그 앞에서 망치를 들고 있는 산양 대가리 리벨롬이 보였다.

연이어 줄지어 서 있는 사람들을 보자 이번 카오스와 광산에서 많은 득템을 한 자들이 아닐까 싶다.

게다가 요새는 지옥석의 채광이 쉬워져서 알레이슈로 +3 이상의 강화를 시도하는 사람도 많을테니 말이다.

"그런데..."

대장간 옆.

묘한 냄새로 네피림들을 현혹시키고 있는 자가 있었다.

"시, 식사하시고 가세요~"

중세 시대 기사의 투구를 쓰고 있는 여자가 음식을 판매하고 있는 게 아니던가.

냄새도 뭔가 비리고 시큼하고 이상한데 가격도 미쳤다.

"우와, 개비싸."

한접시에 100골드나 하는 스튜였다.

이걸 과연 누가 돈 주고 먹을까.

공짜로 준다고해도 주춤할만한 냄새인데 말이다.

관찰자는 간 크게 리벨롬 옆에서 장사하는 이상한 여자를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우, 와아! 맛있다! 우와아! 맛도 있는데 능력치까지 올려주다니! 정말 사지 않고는 못 베기겠는 걸!"

"..."

음식 파는 여자가 돌연 자기 스튜를 먹어보더니 기계같은 연기로 대사를 읊기 시작했다.

그마저도 잘 기억하지 못해서 손바닥에 적어뒀는지 힐끔힐끔 쳐다보기까지 했다. 줄서 있는 네피림들 모두가 저건 좀 아니지 않나 싶던 그때.

"!!"

호기심에 스튜를 감정했던 관찰자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치켜 떠졌다.

[생선과 과일 사이의 무언가]

-자신만 고통스러울 수 없다는 한 사내로부터 세상에 나온 무언가.

〈근력, 민첩, 건강 영구 증가 0.1〉

자연스럽게 대장간의 줄을 빠져나온 관찰자는 무언가에 홀린듯 100금을 지불하고 스튜 한 접시를 주문했다.

"감사합니다! 첫번째 손님이세요!! 첫손님이니까 많이 드릴게요!"

"아, 아니 그건, 아, 예..."

투구 때문에 잘 들리지 않지만 목소리는 아직 앳되어 보였다.

목소리만 들었을 때는 꽤 미녀.

하지만 투구를 쓴 이유가 있겠지.

그런 생각을하며 스튜를 떠 먹어본 그때였다.

"음!!"

지독히도 맛없다.

그냥 생선을 넣지 않고 물만 넣고 끓였으면 안됐나? 싶을 정도로 괴상한 맛이었다.

과일 본연의 맛은 특출난 것으로 보이지만 그걸 생선과 이상한 조미료들이 망쳐놓은 걸로 보였다.

아무튼 비리고 시고 무슨 고약한 잡내까지 나는데 과일 자체는 맛있다.

뭔 개같은 맛인지 모르겠지만 도저히 참고 먹기는 힘든 수준.

하지만 관찰자는 참고 먹었다.

인내의 시간은 길었다.

하지만 그 과실은 달디 달았다.

"생선과 과일 사이의 무언가를 만복하셨습니다."

"근력과 민첩, 건강이 영구적으로 0.1 증가합니다!"

고작 백금화에 이런 스탯의 증가폭을 누릴 수 있다니!!

관찰자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관찰이라는 기프트를 가지고 얼마나 개고생을 하며 싸우고 있던가.

그런 그도 능력치만 높아진다면 얼마든지 수월한 전투를 이끌어나갈 수 있었다. 광산에서의 소규모 전투도, 카오스에서의 치열한 전투도!!

"하, 한 그릇 더!!"

"헉!! 고마워요!!"

맛없다는 소린 할 수 없었다.

기분 나빠서 팔지 않는다고 하면 자신만 손해였으니까!

관찰자는 연신 눈물을 쏟으며 요리 비슷한 뭔가를 먹었고, 앞으로 매일 장사할거라고 하는 주인장의 말에 잠시 소름이 돋았다.

"뭐야, 그렇게 맛있어? 아가씨, 나도 한 접시 줘!"

"나도 나도!"

"나도 한 그릇 먹어볼까."

"와! 그럼요! 잔뜩 드릴게요!!"

그녀의 스튜가 팔리는 걸 물끄러미 바라보는 리벨롬.

그는 작게 혀 차며 망치질 했다.

'미안하다. 성장통이라 생각해라.'

고통스러움 속에서 작은 희열을 맛보듯 기뻐하는 자들을 보며 일말의 죄책감을 가졌으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그저 하루 빨리 그녀의 요리 실력이 나아지기를 기대할 뿐!

그날 이후.

한동안 커뮤니티에는 대장간 옆에 가게를 차린 여기사의 맹독 스튜에 대한 정보가 비밀스럽게 퍼져나갔다.

맹독 스튜 [2]

71화.

"으흐흠~"

기분 좋은 콧소리가 흘러나오는 햇살 따사로운 오후.

부엌에서 복작거리며 열심히 요리를 만들고 있는 레아였다.

"오늘도 많이 파는거야!"

군부대에서나 쓸법한 거대한 솥단지에 삽으로 요리들을 휘젓고 있는 레아의 모습은 썩 그녀의 모습과는 어울리지 않았다. 하지만 레아는 점점 만들어지는 요리의 모습에 큰 뿌듯함을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근데 맛이 조금 애매하네."

뭔가 2% 부족한 느낌.

뭐가 문제일까 고민하던 찰나.

촤르르륵.

테이블에서 서펜트의 이빨들을 꺼내 하나하나, 페스틱사드의 독으로 만들고 있는 그가 보였다.

이내 빤히 쳐다보자.

"이건 요리에 넣으면 안돼."

서펜트의 엄니를 황급히 숨겼다.

다량의 극독이 스며들어 있는 서펜트의 엄니는 그가 페스틱사드의 독으로 사용하는 주요 재료였다.

"화성님! 아무리 그래도 제가 독을 요리로 쓸 정도로 바보는 아니에요!"

"크흠, 장난이었어."

"정말!"

사람을 대체 뭘로 보는거람.

입술을 대빨 내민 레아는 스튜를 휘저으며 고춧가루를 넣었다.

조금만.

부와아아아아악!

"아! 오히려 맛있어졌을지도!!"

조금 매운 냄새가 나기는 하지만 밍밍했던 맛에 매운 맛이 돌게 됐으니 오히려 더 좋지 않을까싶다.

실수로 넣었지만 럭키! 라는 느낌?

"화성님! 한번 드셔보세요! 제 자신작이에요!"

"음..... 매운 냄새가 나네."

"네! 영감이 파박! 떠올랐지 뭐에요!? 엄청 맛있을 거에요!"

"왜 넌 네가 간도 안 보고 맛있을거라는 걸 알 수 있는거야?"

"당연히 요리사의 감이죠!"

언제부터 자신만만하게 자신을 요리사라 자칭할 수 있게 된거지?

화성은 기이한 생물을 바라보는 것처럼 레아를 바라보다 한술 떴다.

빛깔은 붉다.

아니, 검붉다. 고춧가루를 대체 얼마나 넣었는지 스튜 전체가 헬뮤트가 뿌려대는 마그마보다 혐오, 아니 아무튼 굉장했다.

"저기 뭐지?"

"네? 뭐가요?"

레아가 다른 곳을 보는 사이, 화성은 수저에 담긴 내용물만 던졌다.

그의 근력 스탯은 내용물을 저 멀리 섬 바깥의 바다까지 날리고 먹은 척 했다.

잠시 후.

수면 위로 기절한 물고기들이 대거 올라왔다.

"음, 맛있네!"

"정말요!? 다행이에요!"

천연덕스럽게 거짓말을 한 화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더 안 드시고요!"

"오늘은 속이 안 좋아서. 매운 건 조금..."

"요새 자주 속이 안 좋으시네요. 어디가 아픈 거 아닐까요? 제가 죽이라도 따로 만들어드릴게요!"

"아니, 이건 굶으면 낫는 병이야."

"세상에 그런 병이 어딨어요!"

"속이 안 좋을 때는 원래 아무것도 먹지 않는 게 나아."

그리고는 화성은 근엄하게 무게를 잡았다.

"게다가 독내성을 우선적으로 올릴 필요가 있어서 앞으로는 용과만 먹을거야. 그거만 먹을거니까 다른 게 들어갈 자리는 없어. 아니, 없어야 해!"

"하긴.... 그렇기는하죠."

"휴, 오늘도 점심 장사 하는거야?"

"그럼요. 일 보고 오셔요."

"그래, 그럼 난 와이번 둥지 좀 찾아보고 올게."

"넵!"

플라이와 거스트를 사용해 날아가버리는 화성을 바라보던 레아는 두 주먹을 불끈 쥐었다.

한동안 찾아오던 와이번도 이제는 오지 않는다.

오는 족족 화성이 격추시켰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주는 화염 내성은 익히 필요한 바. 화성은 간간히 플라이와 거스트를 사용해 불별도 주변의 섬들을 샅샅히 뒤지고 있었다.

"좋아, 나도 일해야지!"

뉘우치는 대장간의 리벨롬은 요새 저녁 시간에만 운영하기 때문에 레아는 따로 점심 장사도 시작했다.

사람들의 반응은 역시 대환영.

"앗, 바바리안님! 오늘도 감사해요!"

"음! 이 맛있는 걸 만들어주는 데 나야말로 감사하지! 오늘도 냄새가 아주 그냥..... 윽. 아, 아주 좋군!"

"그쵸? 오늘은 제 자신작이에요!"

시꺼먼 부글부글 거리는 스튜.

오늘따라 더 난이도가 높은 무언가였다.

바바리안은 잠시 주저하다 스튜를 한입에 털어넣고 꿀꺽 삼켰다.

요새 커뮤니티에 돌고 있는 여기사의 맹독 스튜 마시는 법 공략법에 의하면 목구멍을 확장시키고 냅다 들이 붓는 꿀꺽삼킴법이 유행하고 있었다.

바바리안 또한 꿀꺽삼킴법을 사용해 스튜를 냅다 삼켰다.

"오, 확실히 맛은....."

"고춧가루와 과일의 무언가를 섭취하셨습니다."

"소소한 복통이 찾아옵니다."

"근력, 민첩, 건강의 능력치가 영구적으로 0.1 상승합니다."

"오오, 바바리안! 남자답다!!"

"역시 이 시대 마지막 상남자!"

"어이! 해버린거냐고!"

배를 움켜쥔 바바리안은 지옥으로 향하는 스튜를 줄선 이들을 향해 작게 엄지를 치켜세우고는 황급히 포탈을 열어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터프하기로 소문난 바바리안이 저리 꽁지빠지게 도망가다니.

"자, 아직 많이 있어요!!"

줄 서 있는 네피림들은 두려움에 가득찼다. 인생이란 어찌 이다지도 고통 속에 성장을 안배했을까. 신이란 어째서 성장통을 이리도 험준하게 주시는 것일까.

절망스럽다.

하지만 애써 환호했다.

자신의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서.

고통후에 찾아올 자신의 강함을 위해서. 맛없다고하면 손수 망치 들고 쫓아오는 공포스러운 리벨롬의 폭력을 회피하기 위해서!!

*

"에취!"

바다 위를 날고 있는 화성은 재채기하며 주변을 연신 살폈다.

그야말로 망망대해.

몇개의 섬이 보이긴 하지만 와이번의 둥지로 보이는 건 몇 없었다.

"찾지도 않을때는 뻔질나게 보이더니 찾으니까 안 보이네. 출근길 양말같은 놈들."

그래도 지루하지는 않았다.

플라이 자체는 속도가 느려서 부유하기만 하는 느낌이었다면 거스트를 통해 바람을 부리니 완전 달라졌다.

이전에는 달리기보다 느렸다면 지금은 자동차보다 빨랐다.

아직은 거스트를 이용한 이동 방법이 익숙해지지 않아서 그걸 연습해볼 겸 놈들을 찾고 있는거니까.

"근데 하다보니까 여기까지 왔네."

눈에 익은 부둣가.

내가 세달 전에 배를 탔었던 곳.

바로 전곡항이었다.

후우웅.

탓.

항구에 내려 앉아 주변을 살펴보니 그 잠깐 사이에 많이도 변했다.

"폐허네 폐허."

이전에도 뭐 그렇게 깨끗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난리도 아니다.

새인지 악마인지 모를 놈들이 뼈에 붙은 살점을 뜯어 먹고, 항구 근처엔 온통 악취가 진동한다.

어쩌면 그동안. 오려고 했으면 올 수 있었으면서도 오지 않았다.

왜인지 그때는 몰랐는데 지금 생각해보니 이 참혹한 현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 아닐까.

"지금와서는 굳이 올 필요도 없고."

무인도.

지금의 불별도에서는 거래소나 상점을 통해 생필품은 쉽게 구할 수 있었으니까.

지금도 날아다니다보니 온거지 굳이 오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제는 마주해야지."

외면했던 진실.

참혹한 대한민국의 현실을 마주할 때가 왔다.

"혹시 누구 만났을 때를 대비해서 알아볼만한 장비는 벗어둘까."

요즘도 구걸하는 글이나 도와달라는 글은 많다. 괜히 시비거는 사람들이 있다면 모를까 여기는 생존자 집단이 있을 거 같지는 않으니까.

"누구 만나면 와이번 봤는지나 한번 물어봐볼까. 가까우니까 이 근처엔 제법 나타났을 거 같은데."

이럴거면 레아랑 같이 올걸 그랬다.

그랬다면 감지 스킬로 누구 있는지라도 찾아봤을텐데 말이다.

"어쩔 수 없지. 지금쯤이면 한창 스튜나 왕창 팔고 있을테니까."

사람들이 괴로워하는 게 보이니까 넌지시 열매만 넣고 끓이는 게 어떠냐고까지 했는데 말을 안듣는다.

그럼 맛이 없지 않겠냐면서 이것저것 뭘 자꾸 넣는데... 역시 공주는 공주라서 그럴까.

"공주님은 역시 그런법이지."

공주란 신분에 더더욱 믿음이 가는 환상적인 요리 실력이다.

불쌍한 사람들.

하지만 어쩌랴, 누가 사 먹으라고 강제한 것도 아니다.

자기들이 나서서 먹고 있다.

단지 강해지기 위해서.

"굳세어라 대한민국. 힘내라 네피림! 그럼 난 산책이나 좀 해볼까."

여기저기 무너진 곳이 많지만 그럼에도 아직 쓸만한 건물들은 많다.

섬과 가까운 곳이기도 하고 혹시 모를 때를 대비해 예비용 거점을 찾아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지.

"역시 쓸만한 건 하나도 없네."

이쪽에 악마가 없어서 그런지 쓸만해 보이는 물건들은 하나도 없다.

그 흔한 잡지조차 없는 걸 보니 죄다 거래소에서 올려서 판 모양.

게다가 이 근처엔 인기척이 전혀 없어서 꽤 심심한 산책로였다.

"와이번 때문인가? 개미새끼 하나 안 보이네. 거미줄만 많고."

무너진 건물.

폐허 더미를 걷고 있자 슬그머니 뭔가가 나오긴 했다.

"거미?"

섬에는 없던 악마다.

"아 이거, 관찰자 공략집에서 본 거 같은데. 데몬 스파이더였나. 레벨은 뭐 그저 그랬던 거 같기도 하고."

레벨이 2였나 3이었나 그럴거다.

근데 생각했던 것 보다 크기가 작다. 머리 부근과 꼬리 부근에도 눈이 달린 걸 보니 데몬 스파이더가 맞는 거 같은데 꽤 소형이다.

조금 큰 누렁이 정도 크기.

"원래는 조금 더 크지 않나. 삼, 사미터는 된다고 했던 거 같은데."

난 놈을 향해 손총을 뻗었다.

"빵!"

피융-!

워터볼이 생성되서 데몬 스파이더의 머리를 꿰뚫었다.

"데몬 스파이더를 처치하셨습니다."

"60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4 금화를 획득합니다."

"음, 약하네."

아마 3이 아니라 2가 확실하다.

스르륵.

한마리를 죽이니 다른 놈들이 연달아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무너진 건물 아래.

꽤 커다란 거미가 나왔는데 놀랍게도 수식언을 지닌 놈이었다.

[마법저항 데몬 스파이더]

"엘리트인가보네."

마법저항이라.

얘기만 들어봤는데 처음 본다.

시험해볼 요량으로 워터볼을 사용하자 묘한 막이 있어서 워터볼을 모조리 막아냈다.

'워터볼이 기초마법이기는 해도 내 마력이 높아서 꽤 강한데.....'

마법저항의 수식언은 역시 워터볼의 80% 데미지를 막아냈다.

그래도 생채기는 조금 생긴 느낌.

-키이이이이이!!

덕분에 놈이 화난 모양이다.

"마법저항인거 보니까 오히려 마법으로 죽이고 싶어지네."

묘한 오기가 생겼다.

비효율적인 걸 알아도 멈출 수 없는 남자의 자존심 싸움이랄까.

"브램블리."

쿠두두둑!!

가시덩쿨이 날 향해 달려들고 거미줄을 쏘려 하는 스파이더들을 모조리 옭아멨다.

엘리트조차 한방에.

콰지직! 후두둑.

"어라."

힘 조절을 했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이렇게 그냥 찢어지네."

브램블리의 가시덩쿨이 저항하는 스파이더를 옭아메는 과정에서 놈의 몸을 터트려버렸다.

"브램블리도 꽤 쎄네. 아니, 얘네가 약한건가? 모르겠다."

"마법저항 데몬 스파이더를 처치하셨습니다."

"120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10 금화를 획득합니다."

"얘는 데몬시드로 만들어둘까."

"마법저항 데몬 스파이더를 성공적으로 데몬시드로 만들었습니다."

인벤토리에 넣어두고.

나머지 놈들은 지금 여기서 제물성장이나 시켜볼까 하던 찰나.

"뭐야 이건."

자세히보니 그늘진 폐허더미 사이사이에 흰색의 고치들이 즐비했다.

사이즈가 딱.

"사람인데."

난 곧장 찬양자의 항아리를 꺼냈다.

"부디 좋은 곳 가십쇼."

"정이 쌓입니다."

이렇게 변해버린 세상이지만 그래도 이 정도는 가능하다. 할 수 있는 건 명복을 빌어주는 것 뿐이니까.

"도와주지 못해서 미안합니다."

한명, 한명 명복을 빌어주던 그때.

"다음 생에는 좋은 곳...? 뭐야 왜 안 들어와."

돌연 정이 안 들어온다.

명복 빌어서 손해 봤네 하던 찰나.

돌연 고치가 꿈틀거렸다.

"... 느낌이 묘한데."

싸늘하다.

순간 멀찍이 떨어지려는 찰나.

고치가 찢어지며 순식간에 실들이 뻗어나와 그를 삼켜버렸다.

폐허더미의 고치는 언제 그랬냐는 듯 고요한 적막 속에서 유유히 흔들리다 멈췄다.

거미 여왕의 히든 던전 [1]

72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