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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화.

무인도 생활 19일 째.

카타콤을 공략하고 4일이 지났다.

화살처럼 빠르게 지나간 시간.

난 그동안 여지없이 바빴다.

"찬양자의 항아리를 사용합니다."

"무럭무럭 자라라~"

찬양자의 항아리는 내가 생각했던 것처럼 물뿌리개의 역할을 다했다.

"정을 소모합니다."

"남은 정: 191"

인간의 정을 소모하여 데몬시드를 성장시킬 수 있었다.

본래의 용도가 궁금하긴 하지만 나한테는 거름을 주는 물뿌리개 이상의 용도는 없었다.

"데몬시드를 성장시키셨습니다."

"10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검은 산양의 추종자 나무+3]

추종자들의 열매는 크고 길쭉했다.

생긴 건 바나나였는데 색은 그렇게 썩 좋지 못했다.

보라색의 바나나라면 알겠는가?

그렇다.

색이 영 맛있어 보이는 색이 아니었다. 이 바나나를 보고는 레아마저 그들의 피 색깔이 떠오른다고 얼굴을 구겼을 정도였다.

물론, 그 맛만은 악마의 열매답게 두 눈을 빛낼 정도로 달았다.

바나나가 지닌 단맛은 그대로 가지고 있는데 약간 짠기가 느껴졌다.

단짠단짠의 극의라고나 할까.

간식용으로 먹기는 딱 좋았다.

"용장이 발휘됩니다."

"야간시야 0.36 상승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검은 산양의 추종자 나무는 내가 원하는 능력치를 올려주지는 않았다.

"야간시야라... 물론 좋지."

어둠에 익숙치 않은 전투가 얼마나 위험한지 카타콤에서 알게 됐으니까.

추종자 씨앗을 거울로 합성해서 +3까지 강화해서 0.18, 그리고 용장 효과로 0.36까지 오른다.

'개미친. 3강이 이 정도라고?'

너무 사기다.

웃음이 삐져나올 만큼!

바나나 3개를 먹으면 야간 시야가 +1 오르는 거나 다름없었다.

그야말로 미친 효율.

'이게 야간시야라서 크게 체감이 안 되는 거뿐이지.'

근력이나 민첩. 뭐 마력이었다면 지금쯤 날아다녔을지도 모른다.

야간시야는 애초에 밤에 잘 보이는 것 말고는 딱히 뭐 없으니까.

물론 이제는 밤이 주는 전투에 대한 불안감이 해소되었지만, 솔직히 추종자의 악과는 조금 아쉬웠다.

그동안 확실하게 와닿는 능력치들을 얻어서일까.

분명 밤을 틈타 살아가는 악마들의 천적이 되어가고 있음에도 난 마음 한켠의 아쉬움이 남아 있었다.

"차라리 냉기 내성이나 독 내성 같은 걸 올려주면 좋았을 텐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다른 좋은 아이템들도 얻었고, 쌍성의 거울만 있다면 강해지는 건 이제 시간문제나 다름없었으니까.

"영락없이 시간 때우면서 과일 열리기만 기다려야 했는데 물뿌리개 얻어서 기다릴 필요도 없어졌으니까."

4일 동안 내가 한 일이라고는 기부도의 나무들을 모조리 베고.

듬성듬성 나타나는 고블린이나 좀비들을 죽이고, 추종자도 섬멸하면서 정성껏 데몬시드를 심는 거였다.

[해골기사의 씨앗+6]x326

일만 개가 넘는 해골기사의 씨앗을 +6까지 합성에 합성을 거듭하여 만들어낸 300개의 씨앗을 심는 거였다.

한그루에 수백 개가 열리는 오디는 하나 먹으면 0.001이 올랐다.

하지만 이제는?

"용장이 발휘됩니다."

"강골이 0.056 상승하셨습니다."

이젠 0.056이 오른다.

나야 용장의 효과로 두 배가 되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0.028이 오른다.

뭐 이런 개 사기템이 다 있을까.

무협지에 나오는 영약 비슷한 거라 봐도 무방하다.

올라가는 게 뼈의 골밀도일 뿐이지만 이거라도 잘 챙겨 먹으면 진짜 뭔 짓을 당해도 부러지지 않는 강인한 뼈를 갖게 되는 것이다!

[악마의 오디+6]

+6의 합성수치가 이 정도인데 +7이 되면 얼마나 높아질까? 벌써부터 손이 근질근질하다.

"파는 건 강화 안된 거 팔아야지. 이건 절대 못 팔겠다."

해골기사의 씨앗은 워낙 많다 보니 판매용으로 심어둔 것도 꽤 된다.

한 천개 정도? 이렇게 근 4일 정도는 기부도를 과수원으로 만들기 위해서 시간을 할애했다.

생각보다 섬이 크기도 컸고,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추종자들이나 악마들 때문에 꽤 애를 먹기도 했다.

왜 애를 먹었느냐면...

"그렇게하면 안된다고 했잖아요! 그러면 과실이 다친다니까요?"

[캬, 캬캭...]

저기 있는 그렘린들 때문이었다.

기부도에서도 그렘린은 있었다.

솔직히 그냥 죽이려고 했는데 놈들이 레아를 보고는 꼬랑지만 개새끼처럼 벌벌 떠는 게 아니겠는가.

하여 놈들을 그램의 수하들로 만들기 위해 레아에게 교육해달라 했다.

결과적으로는 정답이었다. 이 큰 기부도의 과수원을 나 혼자 관리했다가는 몸이 두개라도 힘들었을거다.

"두 마리라도 길들여서 다행이네."

처음에 네 마리를 발견했는데 두마리는 너무 난폭해서 데몬 트리를 몇개 분질러버리거나 악과를 터트리길래 열받아서 죽여버렸다.

"힘 조절 안되면 그럴 수도 있지만 그거 가지고 장난치는 건 선넘었지."

지금있는 놈들은 그나마 낫지만 그램보다는 확실히 지능이 떨어졌다.

시킨 걸 겨우겨우하는 정도?

역시 그램이 굉장히 똑똑한 편에 속한 거였다.

저놈들도 레아가 아니었다면 절대 나랑 거래를 하거나 내가 하는 말을 알아듣거나 하지도 못했겠지.

"네네! 그렇죠! 오디는 이쪽! 바나나는 이쪽으로!"

그렘린들은 내가 만들어놓은 땅굴 냉동고에 들락거리며 악과를 옮겼다.

블리자드를 활용해서 얼어붙은 우박들을 모아서 넣어뒀는데 생각보다 꽤 오래간다.

"사흘이 지났어도 안 녹고 멀쩡한거보면 한 두달은 시원하겠네."

4월이 가고 5월이 곧 온다.

시간이 흐른다면 여름도 오겠지.

아직 이르지만 그때엔 더 많은 냉기 마법을 익혀서 냉동고를 관리하면 될 것 같았다.

'여름이라...'

여름까지 내가 살아있을 수 있을까.

"살아야지."

죽지 않으려고 이러고 있는거나 다름 없으니까 말이다.

"화성님!"

"응, 교육은 잘 돼?"

"네, 착한 아이들이에요. 조금 말귀를 못 알아먹지만..."

"그래... 고생이 많아."

"그것보다, 이제 곧 가시죠?"

"아, 응. 시간이 됐네."

오후 4시부터 6시.

내가 잠시 알바하러가는 시간이다.

기부도를 제 2의 과수원으로 만들기 시작하며 짬이 나는 시간에는 [뉘우치는 망치]로 돈을 벌기 시작했다.

[뉘우치는 대장간]

커뮤니티 옆에 뉘우치는 대장간이라는 것이 생겼다.

이걸 누르면 20 금화를 지불하게되고 포탈이 열린다.

포탈 속에는 시뻘건 용광로와 어디선가 많이 보았던 대장간이 있다.

그렇다.

리벨롬이 있었던 카타콤의 대장간.

그것이 그대로 구현된 대장간으로 연결되는 곳이었다.

대장간의 용광로는 뜨거운 불길을 내뿜지만, 그 주인은 죽어서 없다.

그래서.

"여~ 리벨롬! 기다렸다고!!"

난 이전에 얻었던 검은 산양의 투구를 쓰고 대장간에 앉았다.

처음엔 대장간 앞을 서성거리던 사람들도 이제는 내가 오길 기다린다.

비록 데몬시드도, 뇌창도 아닌 뉘우치는 대장간의 주인, 리벨롬을 기다리는 거지만 말이다.

'내가 리 벨 롬 해주지 뭐.'

하루 중 딱 2시간.

두시간만 일하는 알바다.

하는 일도 간단하다.

"리벨롬, 여기 금화 20개."

"받았다."

"20금화를 획득합니다."

"10금화를 소모합니다."

까앙-!

"+1 강화를 성공하셨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리벨롬님. 저도..."

스윽, 무기를 건네는 청년은 내 손에 금화 주머니를 넘겼다.

"오... 이런 거금을."

"+2 강화 부탁드립니다!"

이름 모를 사내는 나한테 30금화를 건넸다.

"30금화를 획득합니다."

"강화 확률은 80%이니 신에게 맡겨보자고. 신의 은총이 있기를."

"넵!!"

"20금화를 소모합니다."

까앙-!!

"+2 강화를 성공하셨습니다."

이런 식이었다.

어떤 강화를 하던지 나는 딱 수수료 10금화만 먹었다.

아무리 나라도 일말의 양심은 있다.

나름의 죄책감도 가지고 있고.

그러니까 딱 10금화.

10금화만 챙겼다.

"여기있네."

"감사합니다!!"

신이 나서 사라지는 젊은이를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길고 긴 행렬.

기웃거리는 끝없는 줄을 바라보노라면 참으로 기가 차다.

'저게 다 돈이야 돈.'

끝이 보이지 않는 줄을 보노라면 조금 질릴 만도 하지만, 저게 다 돈이라고 생각하면 꽤 즐거운 일이다.

내가 하는 건 망치 두들기는 거 말고는 딱히 없으니까.

"여기. 빨리 해."

물론, 리벨롬이 된 나에게 호의적인 놈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나 저 사람 알아. 랭킹 63위 독손이잖아!"

"아, 나 알아. 손에 닿는 거 전부 독을 끼얹는다는?"

"저놈 때문에 사람 죽는 것도 봤다던데? 나쁜 놈이야 저거."

하지만 랭킹 63위 독손이 뒤를 돌아보니 웅성거림은 삽시에 멎었다.

난 잘 모르지만, 저들 사이에서는 꽤 유명한 놈인 모양이다.

'물론 나쁜 쪽으로.'

날 대하는 것도 영 싸가지가 없다.

"빨리. 3강이다."

금화 주머니를 휙 던졌다.

"50금화를 획득합니다."

"3강의 성공 확률은 60%일세."

"알고 있으니까 빨리 해. 엔피시 새끼가 말은 더럽게 많네."

날 엔피시로 생각하고 하대하거나 돈을 떼먹으려고 하는 놈들도 꽤 있었다. 그리고 난 그럴 때마다 소란 만들기 싫어 넘어가는 편이었지만.

"40금화를 소모합니다."

'실패! 실패! 제발 실패!!'

까앙-!!

"+3 강화에 실패하셨습니다."

"강화에 실패하여 무기가 파괴됩니다."

'나이스!!!!!!'

무기 강화에 실패해서 박살나는 순간 이야기는 급변한다.

"헉, 무기 박살났다."

"좆된 거 아님?"

줄서 있는 사람들의 예상처럼 랭킹 63위 독손이라는 놈은 무기가 박살나자마자 대장간으로 들이닥쳐 내 멱살을 잡았다.

"야이 시벨롬아! 내 무기 어쩔꺼야!! 자그마치 매직 무기였다고!"

만약 이렇게 됐을 때.

정말 리벨롬이었다면 어땠을까.

참았을까? 참지 않았을까?

난 리벨롬이 참지 않았으면 했다.

"난 시벨롬이 아니라 리벨롬이다."

우드드득!!

"아! 아아아!!"

멱살을 잡은 놈의 손목을 부러뜨릴 듯 비틀었다.

내 근력은 30에 근접해있다.

이제 겨우 10이나 될법한 놈이 멱살 잡아봤자 귀엽기나 하지.

"랭킹 63위? 어딜 감히."

한 주먹거리도 안되는 게 말이야.

부러뜨리려다 말았다.

"내 망치 맛을 보고 싶지 않으면 당장 꺼져라. 네 머리통도 강화가 되는지 한번 시험해보고 싶어지니까."

"두, 두고 보자 염소 대가리!!"

염소가 아니라 산양인데. 하긴, 염소나 산양이나 차이는 없으니까.

"... 다음."

"넵! 1강입니다!"

그렇게 2시간이 지나고 기부도로 돌아오고 나서야 하루 일과가 끝났다.

역시나 했더니 커뮤니티는 벌써 대장간의 이야기로 흥분의 도가니였다.

강화한 무기의 효과가 어느 정도인지부터 강화 시스템은 누가 열었을까 하는 것들까지 온갖 추측성 글들이 잔뜩 올라와 있었다.

"오, 떴네."

[오늘자 상남자 리벨롬 성님의 양아치 정의 구현]

-랭킹 말하고 글쓰는 게 룰인데 이번만 빼주셈. 독손한테 죽을 수도 있어서 익명 제보함. 아무튼 난 팔라딘인데 오늘 강화 좀 시키려고 줄섰다가 독손이 강화하는 거 봄. 3강 띄우려다가 실패하니까 리벨롬 성님 멱살잡고 죽이려고 들더라? 와 나 진짜 일나는 거 아닌가 했음. 리벨롬 성님 죽으면 우리 강화 못하잖아? ㅈ됐다 싶었는데 리벨롬 성님이 딱! 가만히 있더니 포스 존나 풍기면서 독손 손을 똭! 비틀어가지고 한마디 하더라고.

[난 시벨롬이 아니라 리벨롬이다.]

캬! 지렸지 씨발. 그러고는 독손한테 '네 머리통도 강화되는지 시험해보고 싶어지니 꺼져라' 하는거임 간지 미쳤음 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독손 개망신 ㅈㄴ 당햇네 ㅋㅋ

┗이거 리벨롬한테 대들다가 혼구녕 난 전직 깡패, 양아치새끼들 개많음

┗엔피시가 괜히 엔피시냐? 왜 까불어 ㅂㅅ들이 ㅋㅋㅋ 꼴 좋다 ㅋㅋ

이후로 사람들은 내게 더 공손해졌고, 소문 못 들은 팔푼이들은 망치로 멍청한 머리통을 조금 두들겨 줬다.

뉘우치는 대장간 [2]

36화.

무인도 생활 20일 째.

생활은 풍족했다.

기부도의 온돌방에서 일어나 기분 좋게 등을 지지고 아침을 먹는다.

아침은 가볍게 기부도에 열려있는 오디나 바나나를 먹거나 물린다 싶으면 거래소에서 쌀을 사서 해 먹었다.

"힘들게 악마 안 잡아도 되겠는데."

금화 주머니를 보니 제법 두둑하다.

『소지금 7850 금화』

뉘우치는 대장간이 열리고, 첫날이나 둘째 날은 손님이 별로 없었지만, 이후에는 물밀듯 밀어닥쳤다.

20초에 한 명꼴로 망치질을 했을까.

그렇다 보니 두시간동안 내가 벌어들이는 돈이 제법 됐다.

솔직히 이 정도면 종일 앵벌이를 해서 돈을 버는 게 더 나은 삶을 위한 방법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조금 양심은 찔리지만."

어차피 망치는 내가 아니었다면 이 세상에 나오지 못했을 물건이다.

게다가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

랭킹 1위라는 사람의 인건비를 생각해보면 이 정도 수지는 맞아야 하지 않겠는가.

이는 적법한 대가다.

"여기도 얼추 끝나가네."

산을 등진 초가집.

그곳으로 5분만 걸으면 1,000평 정도가 전부 데몬시드를 심은 밭이다.

개중에는 찬양자의 항아리로 미리 성장시켜 수확을 끝낸 데몬트리도 꽤 많이 보였다.

해골기사 씨앗 1,000개.

합성된 +6 해골기사 씨앗 300개.

추종자 나무 10개 정도가 있다.

그중 하나가 엘리트 서펜트 나무였는데 내 걸음은 여기서 멈췄다.

[발빠른 서펜트 나무]

다음 수확시기: 115일.

용과를 수확하게 해주는 서펜트.

용과의 맛은 훌륭하지만 그걸 제쳐두고서라도 이 녀석이 지닌 악과의 효과는 더 챙겨두고 싶을 정도.

자그마치 독 내성을 길러주는 녀석이라 더 키울 필요성이 있다.

"그렇게 어렵지는 않겠지."

"서펜트, 사냥하시게요?"

레아였다.

서펜트 나무 앞에 있다 보니 내 생각을 읽힌 모양이었다.

"응. 어렵지는 않을 테니까."

놈들을 불러 모으는 건 쉽다.

플라이로 날아다니면서 유인하고 레인스톰과 블리자드로 약화한 후 [카탈린의 벼락]으로 뿅뿅 쏴대면 어렵지 않은 사냥이 될 것이다.

와이번이나 데몬이글 같은 다른 방해 요소가 없다면 말이다.

데몬이글의 씨앗이 있기에 속는 셈 치고 심어봤는데 체리 비슷한 열매가 맺혔었다.

먹어봤더니 민첩을 0.01 올려주는 효과길래 더 심지는 않았다.

"옛날이었으면 겁냈지만, 지금은 조금 다르지."

"그렇죠! 강해지셨으니까."

레아 말이 맞다.

전체적인 스펙업을 이뤘다.

네피림 세트의 방어구는 전부 +3 강화했고 무엇보다 유니크 창인 적창의 출혈 효과가 대폭 증가했다.

증가한 적창의 출혈 효과는 카타콤의 안주인인 로자리를 죽이며 확실하게 확인했다.

출혈이 아니라 거의 피를 뽑아내는 수준까지 증가한 적창도 있고, 많은 원거리 스킬들이 있으니 서펜트라 할지라도 이제는 겁나지 않는다.

게다가.

'위험하면 튀면 되니까.'

안 되겠다 싶으면 섬으로 도망쳐서 레아가 선물해준 브로치에 내장된 스킬로 원거리 사격을 이어가면 그만일 뿐이다.

"서펜트의 수가 생각보다 많았으니까 나쁘진 않아."

무엇보다 용과는 맛있기도 하고.

스테이크랑 잘 어울렸던 용과라서 그런지 많이 만들어두고 싶었다.

"바로 하실 건가요?"

"아니, 나중에."

"넵!"

물론 지금 당장 서펜트 사냥에 나서고 싶지는 않다.

그것 말고도 할 일이 많다.

[나만의 상점]

-1일 1시간 23분 남음.

[딱딱한 빵x10] - 1금화

[푸른 성수x2] - 15금화

[포탈 스크롤] - 20금화

[미확인 스킬북] - 3333금화

"돈 벌었으니까 써야지."

"미확인 스킬북을 구매하셨습니다."

"3333 금화가 소모됩니다."

"감정 스크롤을 소모합니다."

"미확인 스킬북의 숨겨진 이름이 드러납니다."

[브램블리-스킬북] (magic)

-골드캐넌의 골짜기 아래 무덤에 유폐된 모든 소서리스들의 어머니. 그녀가 생전에 적은 마법.

"꽝인가."

등급도 매직 등급이다.

딱히 이렇다 할 설명도 적히지 않았고 무엇보다 3333 금화나 주고 산 스킬북이 매직 등급이라는 게 벌써 돈이 아까워졌다.

호구 당한 기분.

'리버슬로우 때는 등급이 유니크라도 됐지.'

기대해볼 만했는데 이번엔 애초에 매직 등급의 스킬북이다.

일단 뭔지는 알아봐야 하니 스킬북을 펼치니 머릿속으로 마법에 대한 지식이 대량으로 들어왔다.

"으음..."

브램블리.

가시덤불이란 뜻의 마법이다.

땅 밑에서 가시덤불을 만들어내 적을 붙잡거나 하는 일종의 속박마법.

사용하기에 따라서는 가시덤불의 숲을 만들어 길을 가로막는 류로 사용할 수도 있는 마법이지만 내게 딱 알맞은 건 아니었다.

있으면 좋지만 없어도 상관없지 않을까 싶을 마법이랄까.

"암만 생각해봐도 호구 당했는데."

미확인 스킬북이라고해서 솔직히 기대했는데 이번엔 꽝인 모양이다.

하긴 이제까지 얻었던 스킬북들이 전부 사기급이었으니 슬슬 꽝들이 나올 때가 됐다.

"운이 다했나."

그럴지도 모르겠다.

악마들이 나타나는 첫날부터 지금까지 내 운은 이상하게 좋았으니까.

[브램블리]

-소서리스의 어머니가 만든 마법. 가시덤불을 자라게 만들어 조종한다.

(소모값:10)

"굳이 사용한다고 치면..."

가시덤불로 적을 묶어두고 투창한다든지 하는 연계 정도일 거다.

"브램블리, 리버슬로우 후에 투창. 이거면 되겠지."

꽤 강한 악마라고 친다면 가시덤불의 속박은 힘으로 벗어나려 할 테고, 그걸 조금 늦춰줄 리버슬로우 후에 투창이나 카탈린의 벼락을 사용한다면 손쉽게 끝이 날 것이다.

"벽을 만든다고 한다면. 브램블리."

쿠구구궁.

땅 밑에서 가시덤불이 자라난다.

내 마나를 듬뿍 먹고 자라난 가시덤불은 내 머리 위까지 자라났는데, 꽤 촘촘하고 두껍게 자라났다.

가시덤불답게 가시가 돋아나 있었는데 이 전체를 페스틱사드의 독으로 뒤덮으면 충분할 것이다.

가시덤불을 자라게 만든다고 나와 있지만 하나, 하나를 조종할 수도 있다.

"음. 괜찮으려나."

아직 확 와닿지는 않지만, 생각보다 자유도는 높다. 내 뜻대로 움직이는 편이라 다른 고정적인 스킬과는 조금 활용도가 높다.

잔몹들을 처리하는 거라면 괜찮아 보이지만 강적을 상대할 때는 잘 모르겠다.

챔피언들한테는 안 통할 것 같다.

그놈들은 가시 따위에 상처나는 것쯤은 감수하고도 날뛸 놈들이니까.

"가시덤불도 그냥 찢길 거 같고."

돈이 조금 아깝지만 그래도 아예 못 써먹을 마법은 아니었다.

예전이었다면 방방 뛰고 욕이나 해댔겠지만, 이제는 다르다.

돈 나올 구석이 있으니까.

'삼천 금이면 하루 이틀 알바하면 되는 돈이긴 해.'

[뉘우치는 망치]

이놈이 정말 효자다.

그리고 리벨롬에게 감사한다.

삼천금 쯤은 하루 이틀이면 벌 수 있는 돈으로 만들어줘서!

"역시 사람은 돈이 있어야 하는구나... 여유가 막 생겨버리네."

옛 기억이 떠오른다.

전 와이프 빚 갚겠다고 배달 뛰면서 찬바람이란 찬바람은 잔뜩 맞고, 알게 모르게 무시도 많이 당했는데 지금 와서 다 보상받는 기분이다.

"나만의 상점은 하루 뒤면 갱신되니까. 또 기회가 있겠지."

돈은 하루하루 쌓인다.

그래도 쓸만한 스킬을 얻었으니 더 생각하지 말자.

그보다는 이거다.

"슬슬, 돌아가 볼까."

기부도에서의 일은 대부분 끝났다.

레아가 교육하에 림과 밈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렘린들이 이곳에서 살며 작물들을 관리해줄 것이다.

난 가끔 왔다 갔다 하면서 수확물을 확인하고 먹기만 하면 될 일이다.

'저놈들도 슬슬 악과의 맛에 빠져드는 것 같기도 했고.'

알아서 빼먹기는 해도 까불면 나한테 죽는 거 뻔히 알 텐데 선을 넘지는 않을 거다.

삐빅! 삐빅!

손목시계에서 알람이 울렸다.

"알바 시간이네."

오후 4시.

알바할 시간이었다.

*

"잘 부탁 드립니다!"

"신의 축복이 있기를."

까앙-!

"+3 강화에 성공하셨습니다."

"나이스!!"

어김없이 망치를 두들기는 시간.

돈과 무기를 받고 강화를 한다.

이것도 익숙해지다 보니 노가다나 다름이 없다.

그렇게 힘들지는 않다.

건강 스탯이 많이 올라서 그런지 체력적으로 요새 지치거나 하는 적은 없으니까.

아마도 이건 정신적인 피로겠지.

단순 반복 노동은 육체보다는 정신을 피로하게 만드니까.

"야, 야. 근데 이거 진짜냐?"

"... 그거 말이야? 진짜라던데?"

까앙-!

망치질하다 보니 이젠 줄 서 있는 사람들 잡담까지 들려온다.

"용트림인가? 그 사람 글 꽤 신빙성 있다고 그러던데?"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죽이냐고... 난 진짜. 이게 맞나 싶다."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

흠.

악마들이 도래한 아포칼립스.

그러다 보니 악마를 잡는 거보다 같은 사람을 잡아서 터는 게 쉽다고 판단한 쓰레기들이 있는 모양이다.

'글이면, 커뮤니티인가?'

한 손으로 망치질하면서 몰래 커뮤니티를 살펴보자 글이 있었다.

[방공호에서 다람쥐하는 사람들 조심해라.]

-54위 용트림임. 요새 방공호에 다람쥐처럼 비축 식량이나 생활용품 모아두는 다람쥐들 많을 텐데 조심해라. 너희들 전문으로 털고 죽여서 방공호 뺏는 약탈자들 많이 생겼음. 전문적으로 방공호나 거점 털어가면서 사람 죽이는 애들 많아졌으니까 조심해.

그거 알지? 네피림 죽이면 금화 가지고 있던 거 그대로 토해진다.

재산 랭킹보고 사냥하는 애들 내가 본 것만 해도 다섯이 넘어. 조심해. 그룹이라면 돈은 확실하게 나눠서 관리해라 혼자 가지고 있으면 약탈자 개새끼들한테 물린다.

"멸망기는 멸망기네."

"예? 리벨롬님 뭐라고 하셨습니까?"

"아니오."

까앙-!

"+3 무구 강화에 실패하셨습니다."

"무구가 파괴됩니다."

"아."

"시, 신은 언제나 이리도 우릴 시험하시지... 아쉽게 됐소."

"아..."

"다, 다음!"

멋쩍음에 소리치자 다음 차례의 사람이 나타났다.

철컥, 철컥.

탁.

은색 갑옷을 입은 기사.

그가 내려놓은 것은 하나의 검.

"이번에 새로 얻은 검. 3강까지 강화해줬으면 해."

스윽.

시선을 올려보니 아니나 다를까.

"난, 싸게 해줄 거라고 믿는다. 리벨롬."

"...."

강철 군주였다.

어디서 또 새로운 검을 얻어서 강화시키려고 온 모양이었다.

'알고 있네.'

아는 게 당연하긴 하다.

강철은 리벨롬이 죽은 걸 아니까.

"싸게, 해주겠지? 지난번처럼."

"18금."

"15금으로 해줘. 리, 벨, 롬."

"쯧."

협박까지 하다니.

원래 이런 성격이 아니었던 것 같은데 묘하게 웃음기를 머금고 있다.

하지만 잘 있는 모습을 보니 썩 반갑기는하다.

"강철은 리벨롬이랑 잘 아나본데?"

"뭐야 잘 알면 싸게 해 줘도 되는 거야? 나도 싸게 해줘! 리벨롬 형님!"

"어이, 내가 들었는데 강철이 리벨롬 구하는 그 공략에 있었대. 당연히 자기 구해준 사람이니까 싸게 해주는 게 당연한 거지. 은인 D.C인거지."

"뭐야, 그런거냐. 쳇."

알아서 해석하는 구경꾼들은 내버려 두고 난 망치를 두들겼다.

"요새 분위기가 영 별로다. 그건 알고 있겠지?"

"... 약탈자들인지 하는 놈들?"

"그래. 카오스 게이트가 다시 열리기까지 2주하고 조금 남았다. 근데 우리끼리 싸우고 있으니 큰일이야."

까앙-!

"강화에 성공하셨습니다."

"성남과 부천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라 나도 놈들을 토벌하는 데 끼게 됐다. 현시점에서 나보다 추적 능력이 뛰어난 사람은 없으니까."

그럴거다.

강철군주는 강철마인지 뭔지 하는걸 만들어서 타고 다닌다고 하니까.

까앙-!

"강화에 성공하셨습니다."

"그걸 왜 나한테 말하는 거냐."

"섬에 있으면 외롭잖나. 외부 소식도 잘 모를 테고 말이야."

"흥, 관심없어."

"악탈자 그룹이 늘어나고 있어. 이건, 좋지 않은 조짐이다. 카오스 게이트는 반드시 막아야 할 사안이야. 근데 전쟁 준비 전에 자기들끼리 싸워서 힘을 약화할 필요는 없지."

우뚝.

망치질을 멈추고 그녀를 바라봤다.

"난, 그런 약탈자들이 성횡하게 둬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그래서. 랭커들끼리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들기로 했다."

"교류?"

"그래. 교류."

벌써부터 좋지 않은 느낌이 든다.

설마.

"그게 여기는 아니겠지."

아니나 다를까 강철의 입가가 호선을 그렸다.

"여기만큼 좋은 곳은 또 없다고 생각한다. 안전하고! 랭커들이라면 어디서든 이곳으로 올 수 있으니까."

간편하기도 하다.

금화만 지불하면 포탈이 열리니까.

이곳은 카타콤의 대장간.

리벨롬의 뉘우치는 대장간이다.

하지만 내가 있는 기부도의 카타콤과는 확실히 별개의 공간이다.

그러니 강철이 말하는 랭커들의 교류회로는 여기만 한 곳이 없다.

"말이 약탈이지, 사람 죽이는 미친 살인자 집단들이야. 반드시 놈들을 토벌해야 해. 그렇지 않으면 그나마 남아 있는 사람들의 선악이 비틀려 버릴거다."

강철의 말에는 뜻도 힘도 있었다.

애초에 내가 거부할 권리는 없었고 난 수락의 의미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뇌창도 함께했으면 좋겠어."

"싫다."

즉답했다.

관심도 없고 간다해도 할 수 있는 일은 딱히 없었으니까.

정보 교류 정도는 가능하겠지만 그거 말고는 메리트가 없다.

솔직히 바쁘기도 하고.

까앙-!

"+3 강화에 실패하셨습니다."

"무기가 파괴됩니다."

"아앗!! 진짜 어렵게 구한 건데!!"

"... 크흠."

강철 군주도 이런 큰 소리를 낼 줄 아는 여자였나. 항상 무게 잡던 위엄어린 목소리와는 달랐다.

랭킹 1위의 나조차도 깜짝 놀랐다.

"... 리벨롬을 구했던 뇌창도 와주었으면 좋겠군. 전해줘 리, 벨, 롬!"

강철의 울 거 같은 눈을 피하며 난 고개를 끄덕였다.

챔피언 열매 [1]

37화.

"후훗, 그래서 가시는거에요?"

대장간에서의 일을 들은 레아가 웃음보를 터트렸다. 그녀 또한 강철과 안면이 있어서인지 내 이야기에 친근감을 느낀 모양이었다.

"와달라고 하니까."

한 번쯤 가는 건 상관없을 거다.

"강철은 배려가 깊네요."

"그 녀석이?"

"네. 화성님이 가봤자 할 수 있는 게 없음에도 굳이 불렀잖아요. 아마 섬에 갇혀 있으시니까... 나름 걱정해서 부른 게 아닐까요?"

강철이 그런 배려를 했다고?

"에이 설마."

"강철 군주님은 배려심이 깊어요. 저는 싸울 때 봤는걸요."

"뭘 봤는데?"

"함께 싸워보면 알아요. 옆 사람이 안 다치게, 싸우는 데 불편하지 않도록 움직이며 배려했어요. 자기 목숨 급급한 가운데 그런걸 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거에요."

나는 모르는 일화였다.

"흐음. 그런가."

왠지 모르게 소외감이 느껴지는 건 기분 탓이겠지.

내가 모르는 사이 강철과 레아의 전우애가 꽤 상승해 있었나 보다.

"왜 그러세요?"

"흠... 아니야."

"아, 언제 보기로 했는데요?"

"... 내일."

"내일이요? 빠르네요."

"전달만 하면 모이는 건 간단하니까 그렇겠지. 아마 이전부터 미리 말을 해왔던 거 같아."

"하긴, 중요한 일이죠. 인간이길 포기한 자들이라뇨... 산적들은 제가 있는 곳에서도 많았어요."

"산적이라니..."

하긴, 그녀가 살던 세상은 중세 시대였으니까.

성 주변으로 개발되지 않은 땅은 산적들이 우글거렸을 것이다.

그녀에게는 약탈자로 변한 쓰레기들이 산적들과 다를 바 없겠지.

"유구한 역사 때부터 인간의 적은 인간이었으니까."

그렇게 생각해보면 별로 특별한 일도 아니다.

세상이 이렇게 변하기 전에도 전쟁이다 뭐다해서 사람끼리 죽이고 싸우는 일은 비일비재했었으니까.

그때는 남일이라 생각하고 돈벌기 바빴지만 이렇게 가깝게 와닿으니 좀 어색할 뿐.

"어쩌실거에요?"

"어쩌고 자시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지. 기부도에서..."

나갈 수는 없으니까.

그리고 약탈자들이 난리치는 구역은 성남과 부천 쪽이다.

거기로 주로 활동하는 강철 군주를 주축으로 랭커들이 협력해서 약탈자들을 대거 쓸어버린다는데...

"응원이나 해줘야지."

약탈자한테 내가 뭐 그렇게 큰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애초에 섬에서 나갈 수도 없는데 뭘 어째.

"아뇨, 앞으로 교류회를 대장간에서 하신다고 했잖아요."

"아, 응. 그렇지."

"그럼 거기 혼자 가실거에요?"

"... 응?"

스윽.

돌연 레아가 몸을 뒤척여서 내 쪽을 보고 누웠다.

"저는요?"

"... 가고 싶은거야?"

"넵!"

"그럼 나 대신 갈래?"

"... 아니요."

팔자 눈썹을 만들더니 이내 등을 돌려 누웠다.

화났나? 왜 화가 났지? 교류회인지 뭔지 가고 싶어 했던 게 아니었나.

"안녕히 주무세요."

"어, 어..."

저 나이대의 여자아이는 참 알다가도 모르겠다.

그렇게 다음날.

무인도에서 21일 째.

촤악.

포탈로 이동해 오랜만에 돌아온 불별도는 여전했다.

그램은 우뚝 솟아 있는 데몬트리 한 구석에서 날아와 우릴 반겼고 난 적당히 주변을 살피고 곧장 챔피언 씨앗들이 있는 보스존을 찾았다.

"많이 자랐네요."

"응, 꽤 자랐네."

떡잎들이 파릇파릇했던 때와는 달리 잠깐 못 본 사이에 세뼘정도 자랐다.

[덜자란 그렘린 킹 엘데의 새싹]

-다음 수확까지 83일.

상태: 양호.

[덜자란 기사왕 오그의 새싹]

-다음 수확까지 65일.

상태: 수분 부족.

기본적으로 성장까지 세달 네달 정도가 걸리는 녀석들이라 그런지 아직도 한참이기는 했다.

물론.

[찬양의 항아리] (unique)

(남은 정:190)

이 녀석이 있다면 그것도 끝이다.

"귀여운 놈들. 너네도 그동안 목말랐지? 아빠가 물 줄게~"

"찬양자의 항아리를 사용합니다."

"무럭무럭 자라라~"

일단은 기사왕 오그 녀석부터.

불타는 죽음의 기사왕 오그.

녀석이 맺어줄 악과는 과연 무슨 맛이며 어떤 효능을 지녔을까.

처음으로 성장시키는 챔피언 트리.

참으로 기대됐다.

"정을 소모합니다."

"정을 소모합니다."

"정을 소모합니다."

"남은 정: 186"

"최초로 격을 갖춘 작물을 완전하게 성장시키셨습니다."

"경험치 1850를 획득합니다."

"위대한 업적을 세웠습니다."

"누구도 이루지 못한 업적입니다."

"모든 능력치 +1이 상승합니다."

"오!"

"왜, 왜요?"

"모든 능력치가 올랐어!"

"축하해요!!"

최초 업적으로 올스탯 +1이라.

시작이 나쁘지 않다.

『기사왕 오그의 나무』

-수확 가능 열매: 14.

"오그의 열매라..."

일단 열매의 모양은 둥그렇다.

오디랑 비슷한데 조금 더 큰 느낌.

하지만 색은 그렇지 않았다.

"시퍼렇네."

"그렇네요."

식욕을 감퇴시킨다는 시퍼런 색의 열매였다.

색깔은 영 좋지 못했으나 악마의 열매가 다 그런 것 아니겠는가.

겉껍질에 새겨져 있는 기묘한 돼지꼬리 같은 문양도 신기하다.

"일단 먹어볼까."

옆에 있는 레아한테도 하나 줬다.

"저, 저도요? 하지만 이건..."

"괜찮아. 레아도 나한테 브로치 양보했잖아. 그리고 어떤 맛인지 궁금하니까 같이 먹어보고 싶어."

"화성님....."

감동했나.

눈이 묘하게 반짝반짝한다.

물론 확실히 귀한 과일이지만 레아가 해주는 게 꽤 많고 이 정도는 충분히 받을 만한 사람이다.

"그럼 먹어볼까."

"네!"

아삭.

한입 베어 문 식감은 아삭.

오디랑 비슷하게 생겨놓고 식감은 아삭거렸다.

그렇다면 다음은 맛이다.

"!"

"음!!"

첫맛은 차갑다.

수분이 많은 과육인데 은근히 차갑다고 해야 할까.

근데 끝맛은 매콤하다.

"이거, 이게 무슨 맛이더라."

깔끔한 매운맛이 확 입안을 적시고 그 다음은 달달함이 혀를 감싼다.

이전 추종자의 열매는 단짠단짠 바나나더니 기사왕의 건 매콤이었다.

맵고 달다.

대신 과즙이 많은데 유달리 차가워서 이게 또 밸런스가 맞는다.

"좀 별론데... 자꾸 먹게되네."

과일에서 떡볶이 먹을 때의 매콤한 맛이 나니까 이상했다.

근데 또 오랜만에 먹는 거라 그런지 자꾸 먹게 되기는 한다.

"떡볶이 땡기네."

"저는 파스타가 먹고 싶어졌어요."

뭔가 먹고 싶은 음식이 떠올라버렸지만, 꾹 참고 과일 하나를 다 먹자.

"용장이 발휘됩니다."

"불타는이 0.02 상승합니다."

"??"

"?!"

불타는... 설마!

"이거 설마... 수식어야?"

"마, 맞아요! 오그는..."

놈이 정식 명칭은 [불타는 죽음의 기사왕 오그]

맨 앞에 자리한 수식어.

불타는이었다.

생각해보니 놈은 푸른 불을 다뤘었는데 설마 오그의 열매를 먹고 수식어를 얻어버릴 줄은 몰랐다.

"잠깐만... 수, 수식어가 뭐지?"

지금까지는 대충 데몬이 지니고 있는 특별한 능력 같은 느낌이었다.

한데 수식어를 내가 가지게 될 수도 있겠다 생각하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수식언.

표현을 강렬하게 또는 명확하게 하기 위하여 꾸미는 꾸밈말.

내가 알고 있는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데몬에게 쓰여진 수식어는 대개 그 악마가 지닌 능력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근데 그걸 내가 가져버리면?

"간단하게 침피언의 능력을 내가 사용할 수 있다 이건가...?"

순간 오소소 소름이 돋았다.

그동안 사기다 치트다 이런저런 생각은 했지만 내 능력. 아니 기프트.

신의 선물은 내가 생각하는 것 이상의 이상의 이상으로.

"진짜 개사기네."

사기였다.

"레아, 잠깐만 비켜봐."

"아, 네!"

당장 시험해봐야 할 게 생겼다.

"정을 소모합니다."

"정을 소모합니다."

"정을 소모합니다."

"정을 소모합니다."

"남은 정: 182"

"격을 갖춘 작물을 완전하게 성장시키셨습니다."

"경험치 2850를 획득합니다."

"모든 능력치 +1이 상승합니다."

좋다 여기까지는 같다.

『그렘린 킹 엘데의 나무』

-수확 가능 열매: 8.

오그의 것과는 반데로 엘데의 것은 피처럼 시뻘겋다.

"엄청 큰 딸기...."

같은 생김새였다.

씨는 없었지만, 딸기의 외양과 굉장히 흡사했다.

나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8개밖에 없는 딸기.

킹스베리 같은걸 한입 먹자.

입안에 감도는 단맛이 회오리쳤다.

오그가 시원, 매콤이었다면 이녀석은 그저 시원, 달콤이다.

달다.

엄청나게 달다.

향긋한 단맛이 입안에서 감돈다.

과육은 입에서 그저 녹아내리듯 부서졌고 남는 건 향긋한 향을 흩뿌리는 달달함 뿐이었다.

그리고.

"용장이 발휘됩니다."

"패도적인이 0.02 상승합니다."

엘데의 수식어가 떠올랐다.

"기억났다. 그래 패도적인..."

그게 엘데의 수식어였다

근데 패도적인이란 수식언은 대체 어떤 효과가 있는거지?

팍 하고 떠오르는 게 없다.

일단 킹스베리 맛있으니까 하나 더 먹었다.

"수식어가 오르는 게 맞다."

"챔피언 데몬으로 만든 건 그런 효과가 있는거군요... 이를테면 격을 갖춘 악마의 고유 능력이 그대로 열매로 맺히는 거 같아요."

"응. 나도 그렇게 생각해."

생각이 많아졌다.

지금은 수식어가 0.02씩 올랐지만 이게 1이 되면 스킬로 변해서 사용할 수 있을지, 아니면 능력치처럼 계속해서 올릴 수 있을지도 궁금하다.

아니면 수식어라는 게 따로 상태창에 나뉘어져 배치되던지.

"혹시 수식어를 하나만 쓸 수 있는 건 아니겠지?"

"기본적으로 수식어는 하나이지 않을까요...? 일단은 대상을 대표하는 말이니까요."

"으음..."

그럼 좀 고민이다.

수식어를 함부로 익혀버리면 안된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혹시 모르는 일이긴하지."

그럼 패도적인보다는 역시 불타는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기사왕이 사용했던 걸 생각하면 범용성이 높고 간지가 났다.

푸른 불이라니 일단 분위기에서 상대를 압도할만한 포스를 자아냈으니 합격점이 아니던가.

게다가 내가 가지지 못한 힘.

불이다.

비록 푸른 불이지만.

"패도적인건 딱히 무슨 능력인지도 모르겠고..."

엘데와 싸울 때를 생각해봐도 딱히 뭐가 팍 떠오르진 않는다.

"그러고보니 엘데 녀석. 상처나면 상처날수록 더 강해졌던 거 같긴 한데... 혹시 그런건가?"

광전사 뭐 그런 류일지도 모르겠다.

그렘린 킹이고, 카탈린의 피를 이은 놈이라 피에 관련한 능력을 지녔어도 전혀 이상할 게 없으니까.

"그럼 이번에 얻은 데몬시드는 어떻게 되는걸까요?"

"... 음, 그러게?"

[검은산양의 찬양자 로자리의 씨앗]

-성장기간;153일.

이 녀석은 수식어가 없는 챔피언 데몬이다. 그럼 로자리는 심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궁금증을 유발한다.

궁금한 건 해결해야 직성이 풀리니 당장 심어봤다.

"정을 소모합니다."

"정을 소모합니다."

"정을 소모합니다."

"정을 소모합니다."

"정을 소모합니다."

"정을 소모합니다."

"남은 정: 176"

내 소중한 물뿌리개의 횟수가 6개나 소비됐지만 아깝지 않다.

자그마치 챔피언의 작물.

뭐가 나올지 모른다는 이 기대감은 언제 맛봐도 맛있다.

"격을 갖춘 작물을 완전하게 성장시키셨습니다."

"경험치 4340를 획득합니다."

"모든 능력치 +1이 상승합니다."

일단 키우기만 해도 올스탯+1을 먹고 시작하는 게 참 대박이다.

열린 과실은 추종자의 것과 비슷하지만 조금 달랐다.

바나나의 껍질이 기하학적인 문양이 되었고 껍질 자체도 단단해졌다.

돌처럼 변한 바나나 껍질을 까서 한입에 우겨 넣어보니.

"용장이 발휘됩니다."

"괴력의가 0.01 상승합니다."

어쩌면 로자리가 가지게 되었을 예정일지도 몰랐던 수식언.

괴력의가 나타났다.

챔피언 열매 [2]

38화.

21일 째.

괴력.

괴력이란 말에 난 납득했다.

찬양자 로자리는 거대한 메이스를 양손에 쥐며 주변의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괴력을 발휘했었다.

자신의 동족들까지도 커다란 메이스로 고기 다지듯 다지는 로자리의 괴력은 아직도 인상적이다.

그런 그녀였으니 수식어를 가지게 된다면 필시 괴력을 가졌겠지.

"용장이 적용됐어도 0.01은..."

그녀가 완전한 수식어를 얻지 못했던 상태였기 때문이리라.

이해했다.

수식어.

악마들의 입장에서는 나름의 권능처럼 부리는 격을 갖춘 자들에게만 나타나는 능력.

그것을 나 또한 가질 수 있다라는 건 작은 설렘과 커다란 복잡함으로 다가왔다.

수식어를 가지게 된다면 난 무엇을 가져야 하며, 이것들을 복합적으로 가질 수 있는지, 아니면 오직 하나만 가지게 되는지 궁금했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정황으로 보건데 데몬시드는 날 실망시킨 적이 없다.

"전부 가질 수 있겠지."

그걸 어떻게 사용할지는 모른다.

하지만 내가 손해보는 일은 없을 테니 깊게 생각할 필요는 없었다.

지금만 해도 열매 하나당 0.02가 오르는 상승률을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수식어.

악마의 권능을 내가 얻게 될 날은 꽤 오랜 시일이 걸릴 일이다.

'찬양자의 항아리를 채우는 즉시 전부 퍼붓는다고 해도...'

꽤 시일이 걸리는 일이겠지.

그러니 급하게 생각할 것 없다.

차근차근 음미하듯 천천히 생각해보면 될 일.

"좋아."

아무튼 기분은 좋다.

더 강해질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거나 마찬가지니까.

"찬양자의 항아리에 남은 정이 176개니까..."

우선적으로는 수식어를 가져다주는 챔피언 데몬트리의 과실을 얻는 것에 집중하는 편이 좋아 보였다.

"일단..."

첫 번째로는 기사왕 오그가 지닌 불타는 이라는 수식어다.

불이 주는 메리트는 내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매력적일 게 분명.

인류에게 불이 없었다면 이만큼이나 발전하지 못했을 거라는 게 학계의 정설이고, 악마들이 난장판을 벌이고 있는 지금 세계에서도 불이 주는 메리트는 무시할 수 없다.

빛을 잃은 시대.

불은 던전을 탐험하거나 삶의 편리함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니까.

'스킬북을 얻어서 사용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긴 하지만...'

대부분의 스킬북은 나만의 상점에서 수급하는데, 그 상점에서 나오는 것들은 대개 완전한 랜덤 확률이 아니라 사용자의 행동 양식에 기반하여 필요한 물건이 나오는 식이다.

그러니까 나와 연관성이 있는 물건들만 나온다는 것.

"아무래도 불이 나올 확률은 조금 낮지. 물, 얼음, 나무가 나오다가 갑자기 불이 나오지는 않을 거 같기도하고."

초반 특전으로 워터볼을 얻어서인지 그와 관련된 것들이 나온다.

이번에 얻은 브램블리는 아마도 내가 지닌 데몬시드의 영향일 테고.

그렇게 고민하고 있으니 그램이 천천히 날아왔다.

[캬캭!]

"잘 지냈냐?"

[캭!]

허리춤에 두 손을 가져가 의기양양하게 콧대를 세운다.

아마도 내가 없는 동안 불별도를 잘 지켰다는 의미의 말 같다.

[캭, 캬캬캭...!]

"음? 하늘?"

하지만 돌연 하늘을 가리키며 살기 등등한 표정을 했는데, 아마도 이따금 보이는 데몬이글이나 와이번 때문인 것 같았다.

'데몬이글이 떼로 덤벼도 그램을 어쩌지는 못할텐데.'

데몬이글 챔피언 정도가 아니라면 꽤 힘들지 않을까.

이제 3주 차로 접어드는 시기.

그램은 나와 불별도에서 나고 자라는 악과를 나 다음으로 많이 먹은 녀석이기도 하다.

능력치의 한계가 없다면 녀석은 아마 나 다음으로 순수 능력치가 월등히 높은 녀석일 터.

"이젠 거의 엘리트라고 봐도 되지 않나?"

하지만 그런 거에 비해 수식어도 물음표도 뜨지 않으니 아직 그 정도로 수준이 높지는 않은 모양이다.

일단 그램에 대한건 미뤄두고.

"와이번 때문이겠지."

그램이 걱정스럽게 하늘을 바라보는 이유는 아마도 창공의 왕자.

와이번 때문일 거다.

데몬이글이나 가끔 잡아먹거나 정말 배가 고플 때가 되지 않고서야 지상으로 내려오지 않는 놈들인데.

"자주 나타난다는 거지?"

[캬캭!]

맞다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최근 순찰하듯 와이번 몇몇이 이 근처를 살펴본다고 한다.

'그램이 그리는 그림은 오랜만...'

그램이 그림까지 그려가며 설명에 열을 올렸다.

와이번 놈들이 자꾸 영역을 확대하려는건지 뭔지 불별도를 노리는 것 같다는 소리였다.

"꽤 조심스럽네."

와이번 정도의 스펙이라면 한 마리쯤 그냥 덮쳤어도 상관없었을 텐데 꽤 조심스럽게 정찰부터 하고 있다.

역시 와이번 정도가 되면 짐승계열 악마치고는 지능이 높은 걸까.

그게 아니면.

"성역 때문인가."

내가 설치해둔 성역.

일명, 안전지대 때문일지도.

"놈들이 와도 성역 안은 침범하지 못하니까... 조심스러운걸지도."

와이번에 관해서는 확실히 한번 조사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할일이 많네."

오랜만에 온 불별도의 작물들을 확인하지도 않았는데 일이 많다.

서펜트도 잡아서 독 내성을 기르기도 해야 했고, 와이번한테 과수원을 지켜야 하기도 했다.

어쨌든 간에 와이번이 자꾸 불별도를 노린다니 대책은 세워야 했다.

'근처에 와이번 둥지라도 있나?'

그럴지도 모른다.

문제는 그게 어디 있는지 모른다는 거지만 말이다.

"아무튼 고맙다. 그램."

[캬캭!]

그램은 역시 훌륭한 파트너이자 불별도의 파수꾼이다.

'그램도 더 강하게 해줘야겠어.'

난 적당한 해골기사의 창을 하나 꺼내 그램에게 쥐어줬다.

『해골 기사의 창+3』

-「강한 관통력」

-「강한 마비독」

내가 투창으로 쓰는 해골기사 창들 중 하나다.

그것들 중에서도 +3 강화에 성공한 녀석인데 옵션이 잘 붙었다.

"내가 직접 독을 발라서 강화하니까 독 데미지가 더 강해지더라. 너 써."

[캬?! 캬캭!?!!!]

이걸 써도 되냐는 듯한 표정.

꽤 감격한 얼굴이다.

"물론이야. 혹시라도 와이번이 찾아온다면 이걸로 눈을 찔러버려."

이 창으로 와이번의 비늘을 뚫을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눈 정도는 뚫을 거다. 한번 상처가 나면 독이 다음 전투를 이끌어줄 테니까.

그램은 내 선물에 신났는지 창을 들고 덩실덩실 댄스를 선보였다.

"잘한다! 잘한다! 잘한다!"

[캭! 캬캭! 캭! 캬캭!]

내가 치는 손뼉에 맞춰 리듬 타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이 녀석. 춤에 소질 있을지도?

"화성님! 슬슬 시간이에요!"

"아, 그런가."

흥에 겨워 춤추는 그램을 놔두고 고개를 끄덕였다.

레아가 말하는 시간이란 교류회의 시간을 뜻했다.

뭐 그렇게 내키지는 않지만, 얼굴 비추는 것 정도는 상관없겠지.

어차피 상위 랭커들이랑은 좋은 관계를 유지해서 나쁠 게 없다.

어차피 몇 주 뒤면 또 카오스 게이트에서 협력할 수밖에 없는 사이니까.

"가자."

"넵!"

[뉘우치는 대장간]

시스템에서 뉘우치는 대장간을 클릭해 포탈을 열어 들어가자.

어둑한 대장간 앞.

커다란 원탁 앞에 앉아 있는 랭커들이 있었다.

"오, 왔군."

"기다리고 있었다. 뇌창."

"왔나."

"저 사람이 그..."

"음."

"흥."

포탈에 들어서자마자 꽤 당황했다.

'생각보다 많아.'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많다.

대략 팔십 명 정도 되나?

해봤자 열댓 명 모여서 얘기 좀 할 줄 알았는데 이건 좀 예상 밖이다.

어떻게 된 거냐며 가장 먼저 날 반긴 강철을 보자 어깨를 으쓱였다.

자기도 이렇게 될 줄 몰랐다는 듯한 반응. 덕분에 조금 황당해하고 있어서인지 바바리안이 일어나 손짓했다.

"이쪽이야 이쪽. 자네 자리는 내가 딱 맡아뒀지!"

대장간을 등지고 앉아 있던 바바리안의 대머리가 반짝였다.

다 좋은데 자리 위치가 그랬다.

왜 하필 가장 중앙일까. 있는 듯 없는 듯 있다 가고 싶었는데...

다시 한번 강철을 바라보며 항의했지만, 이번엔 내 눈 자체를 피했다.

괜히 온 거 같다.

"뇌창도 왔으니 시작하지. 아, 우선 뇌창. 축하해. 3레벨이 됐더군."

"오! 맞아! 축하한다고 뇌창!"

짝짝짝짝짝.

가까운 이들은 축하를 건네고 멀리 있는 자들은 박수를 보냈다.

"..."

뭐라고 해야 할까.

이 기분.

괜히 불편하고 창피하다.

한번도 본적 없는 사람들이 축하한답시고 군중심리 비슷하게 박수를 쳐주는 꼴이란...

"난 성남의 강철군주다. 여기 있는 네피림들은 다들 자기 구역에서 한가닥 하는 랭커들이란 걸 알고 있을 거다. 당신들을 한자리에 모은 이유는 세 가지."

이제야 좀 제대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첫째는 랭커끼리의 정보 공유."

정보 공유.

"이건 솔직히 민감할 수 있는 사안이니 적당한 친분을 위한 구실이다."

"그걸 그렇게 말하는 건가?"

"뭐 어때. 어차피 우린 카오스 때문이라도 서로의 능력을 알아서 나쁠 게 없다. 함께 싸워야 하니까."

하지만 이건 반발이 조금 있었다.

자기 능력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면 싸울 때는 그에 맞춰 연계할 수 있으니 장점이 되겠지만.

"서로 반목할 때는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도 있겠지."

"그건 어느 정도 감안해야지."

웅성웅성. 말이 많아진다.

강철 또한 이렇게 될 걸 예상했는지 바로 다음 안건으로 넘어갔다.

"두 번째는 안 그래도 요즘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커지고 있는 약탈자들 때문이다."

강철이 곧장 두 번째 안건을 이야기하자 웅성거림은 잦아들고 대다수의 눈빛에 살기가 깃들었다.

약탈자.

일명 살인자들이라 불리는 놈들은 악마가 아닌 같은 인간의 걸 뺏는다.

공통의 적이 있을 때, 인간과 인간 사이의 허점은 이루 말할 수 없다.

그런 부분을 비집고 들어와 같은 인간을 유린하고 약탈, 강간 살해까지 저지르는 비인간적인 놈들.

여기 모인 랭커들은 저마다의 지역에서 방귀 좀 낀다 하는 자들.

나름의 사명감 또한 가지고 있다. 자리는 사람을 만드는 편이고 그렇다 보니 한시라도 빨리 놈들을 쳐죽이고 싶을 것이다.

힘을 모아서 이 사태를 극복할 생각도 않는 악마보다 더한 놈들이니까.

각각의 지역을 대표하며 자신들의 영역을 다지는 자들이 바로 여기 있는 랭커들이니 좀먹는 약탈자들은 눈엣가시다.

"안 그래도 악마들로 인해 네피림의 숫자는 통 늘어나지 않아. 소위 말하는 각성까지는 해도, 진짜 제대로 싸울 수 있는 네피림은 소수지."

"맞다. 이번 카오스 게이트도 여론을 조사해보면 참가하고 싶지 않다는 자들도 은근히 많더군."

"흥, 쓰레기 놈들."

안타까워하거나 겁쟁이라 욕하는 이도 더러 있었다.

이해한다.

그들이 카오스에 참가하지 않으면 랭커들의 어깨가 더 무거워지니까.

그렇다고 참가하지 않으면 정부가 전달한 이야기처럼 나라 하나가 통째로 대악마의 놀이터가 되어버린다.

갈 곳을 잃은 사람들은 악마에게 유린당해 죽거나, 죽기보다 못한 처지가 되어버리겠지.

놈들은 그렇게 하나하나 정복하여 결국에는 인류의 학살을 자행한다.

그게 현시점의 악마란 것들.

카오스는 반드시 힘을 합쳐 막아야 하는 인류의 전쟁이다.

대악마가 모종의 결계를 깨고 소환되는 순간.

한국은 끝이다.

"대책은 있나?"

"있다."

강철은 세 손가락을 펴 보였다.

"여기서 세 번째. 협회를 만든다."

"협회?"

"그래. 각 지역으로 나뉜 랭커들로 지부를 구획하고 협회를 이룬다. 각각의 정보를 교류하고 협력하면서 약탈자들을 소탕하는 거다."

그게 강철의 계획.

예상했던 이야기였다.

정부가 하지 못하는 구심점을 랭커들끼리 만든다.

장점은 많다.

지금 도마 위에 올라와 있는 약탈자들의 처리와 각종 악마의 정보.

또는 던전들의 정보를 공유하고 그것들의 공략을 협력한다.

그로 인해 네피림들이 더 강해질 기반을 만들어내는 것.

악마들에게 대항해 내는 것.

"언제까지 서바이벌 게임처럼 솔로로 활동할 수는 없어. 카오스 침공에 실패한 나라들이 어떻게 됐는지는 말하지 않아도 알 테니까."

뭉쳐야 한다.

그게 강철의 주장이었다.

"그게 되나?"

"꼭 협회란 걸 만들어야 하는지 나는 잘 모르겠군."

"나 또한 그렇다. 각각의 지역을 길드 형식으로 운용하고 서로간의 교류를 이어가기만 해도 될텐데?"

꽤 반발이 있다.

아무래도 그럴 거다.

저들은 랭커.

지역의 패자로 군림하고 있는 자들.

그 지역의 왕이 될 자들이다.

그런데 누군가에게 그 자유를 억압당하고 싶지는 않다는 이야기겠지.

벌써 왕놀이에 심취한 놈들이 몇몇 보였다.

법치국가에서 법이 사라지고 남은 건 흔적뿐이니 힘을 얻은 자는 꽤 재미난 인생을 즐기고 있겠지.

어찌 보면 반발은 당연하다.

랭커들의 합심은, 다른 방향으로 보면 그들을 옥죄는 것이기도 하니까.

이제는 강철의 말이 중요하다.

어중간한 대답은 하지 않은 것만 못하다. 기대된다.

그녀는 이 반발을 어찌 잠재울지.

잠시 기다리자, 강철 군주는 자리에서 일어나 외쳤다.

"가능하게 할 거다. 나와 뇌창. 그리고 바바리안은 이미 찬성했어."

"...?"

난 찬성한 적 없는데?

"게다가 협회 설립은 현 랭킹 1위 데몬시드 또한 찬성한 일이다."

"데몬시드?!"

"나인과 접촉했단거냐!?"

"래, 랭킹 1위도 찬성했다고?"

강철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데몬시드에게, 현 랭킹 1위에게 대항하고 싶은 사람은 멍청이는 없을 거로 생각한다. 그게 내가 협회를 설립하자는 근거다."

물론.

난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무인도 탈출? [1]

39화.

교류회에 모인 자들은 모두 랭커.

랭커의 뜻은 진취적으로 강해지고자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다르게 말하는 랭킹을 수시로 보는 사람들.

그들에게 랭킹 1,2,3위라는 이름값이 주는 결정은 꽤 크게 와 닿았다.

"랭킹 1위, 2위, 3위. 전부 협회의 설립에 찬성했다. 의의있나?"

이것이 바로 강철의 노림수.

대다수의 랭커들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현시점에서 랭킹의 수치는 절대적.

랭킹의 순위는 레벨과 경험치.

레벨이 높고 경험치를 많이 쌓았을수록 악마 사냥의 숫자가 턱없이도 높을 수밖에 없다.

간단하게 강하단 거다.

랭킹 1위인 데몬시드.

2위인 뇌창의 강함을 모르는 랭커들이 있던가? 지난번 카오스에서 보여준 랭커의 실력은 누구나가 전율이 흐를 정도로 똑똑히 봤다.

그런데도 그들의 뜻에 거스르려 하는 바보가 있을까? 아마도 강철은 이걸 노린 거겠지.

"협회? 난 싫은데?"

물론, 어딜 가나 머저리는 있다.

"어이, 발언을 원한다면 자기소개를 해. 네가 누군지 아는 사람 없다."

바바리안이 놈을 향해 소리치자, 드르륵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는 허리에 곡도를 차고 있는 검사로 보였는데, 체격은 다부졌지만, 패션이 영 양아치였다.

청바지에 체인, 목에는 금목걸이가 치렁치렁하고 어디 보석상이라도 털었나 손가락엔 금반지가 수두룩하다.

겉모습만으로 비호감 사기 대회가 있다면 우승을 했을 것만 같은 패션의 소유자였다.

"29위. 노원구에서 활동하는 울프검이다."

"반대하는 이유는?"

"난 랭킹이 다라고 생각하지 않는데? 아니 여기 놈들 좀 웃긴게... 왜 랭킹이 높으면 강할 거라고 생각하는 거, 너무 멍청한 거 아니냐?"

교류회에 모인 랭커들 대부분을 적으로 돌리기 쉬운 말이었다.

어그로 하나는 인정할 수밖에 없는 놈이다.

"애초에 랭킹이 높다고 강하다는 건 당연한 소리지. 레벨이 높으면 그만큼 사용할 수 있는 공격 수단도 많을테고 스탯도 높아지니까? 하지만 그게 과연 실질적인 전투 능력으로 강함의 정도를 나타낼 수 있을까? 난 절대 아니라고 생각한다."

생긴거랑 달리 말은 잘했다.

어느 정도 울프검의 말은 타당했다.

'내가 데몬시드만 가지고 있었다면 그렇게 강하다고 볼 수도 없지.'

데몬시드의 근본은 악마의 열매를 맺게 만들기 위한 것.

전투능력보다는 생산직에 가깝다.

그래서 내가 다른 스킬들이 없었다면 공격 능력으로는 조금 떨어졌을지도 모를 일이지.

능력치가 높다고 해서 모든 전투에서 우위를 차지할 순 없으니까.

"랭커들이 찬성한다고 해서 그걸 마음대로 할 수는 없는 거 아냐?"

"그럼 넌 어떻게 하면 좋지?"

씨익.

울프검이 진한 미소를 그렸다.

"진짜 일인자를 가려보자고."

"뭐?"

"미친놈이군."

"하하. 웃긴 놈이네."

"승부라..."

저마다의 반응이 터져 나왔다.

어처구니없다는 반응이 있지만 꽤 흥미로워하는 자들도 있었다.

"어차피 랭킹 순위로 말을 따를 거라면 그런 쪽이 더 낫지 않겠냐? 이긴 놈이 협회장이 되는 거다. 그게 아니면 난 인정할 수 없다 이거야."

생각했던 것보다 호전적인 네피림들은 많았다.

울프검의 말에 동의하며 자신의 무기를 만지는 이들이 꽤 많았다.

"양아치 새끼 인정이 필요한 자리라면 난 사양하겠다."

"뭐야?! 뜰래? 너 몇 위야?"

"천박한 놈. 17위, 파이어 펀치다."

"어이어이! 너희들 싸우는 거 보려고 여기까지 시간 낸 게 아니라고!"

한순간에 시끌벅적해지는 가운데.

나 또한 궁금했다. 지금 랭커들의 실력은 어느 정도일까.

랭킹 3위와 6위인 강철군주와 바바리안의 실력은 잘 안다. 하지만 레벨이 곧 힘의 척도라고 할 수는 없다.

레벨의 한계를 뛰어넘는 전투 센스와 기프트의 효율성이 있다면 레벨 랭킹은 힘의 척도가 될 수 없다.

'그렇다고 피 터지게 싸울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바깥에는 아직도 악마들이 판을 치는 와중에 네피림들끼리 피터지게 싸우는 미련한 짓은 삼가는게 좋다.

그때였다.

언성을 높이는 실랑이가 계속되는 와중에 강철이 내게 귓속말했다.

"협회는 엇나가는 이들을 바로잡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단체다."

"그걸 위해 날 이용한 건가."

"이렇게 해도 반발이 일어나고 분란이 일어나는 게 당연하니까. 말하지 않은 건 미안하게 생각해."

하지만 이렇게 해서라도 협회를 구축하고 싶었다는 진심은 느껴졌다.

그거랑 자기 맘대로 날 이용했다는 건 조금 다른 이야기다.

대의를 위해서라고 해도, 이런식으로 마음대로 날 이용한다면 강철에 대한 입장을 나도 달리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강화 할인 없다."

"그건...!"

"빚은 다 갚았어."

호의는 여기까지.

내 할 일은 다 했다.

난 협회의 구축도 별로 관심이 없고 약탈자들의 퇴치에 관해서도 큰 관심이 없는 편이다.

강한 힘에는 그에 따른 책임이 따른다고 하지만 난 아직 내 할 일하면서 살기도 벅찬 사람이다. 다른 부분까지 신경 쓸 여력은 없다.

협회든 약탈자든.

내가 아니더라도 여기 있는 인원들이면 충분하겠지.

솔직히 약탈자에 한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기도 했고.

이 정도로 내 이름을 파는 것 정도야 상관없다. 물론 이 이상 도를 넘는다면 아무리 강철이라도 선을 그어야겠지만, 그 정도로 멍청한 사람은 아니니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만약, 선을 넘는다면.

제아무리 강철이라 할지라도 내 창은 그녀를 향할 것이다.

"발언해도 될까."

"물론이지, 아마존."

"... 랭킹 5위 아마존이다. 여의도에서 활동하며 나와 비슷한 기프트를 얻은 활쟁이들을 모아 단체를 이루고 있어. 그리고, 정부와도 어느 정도 교류를 이어가고 있지 난 전적으로 협회의 설립에 찬성하는 편이야."

물론.

"데몬시드와 뇌창이 협회에 소속되어 있다는 걸 전제한다면."

그리고 아마존은 협회 설립에 반대하는 랭커들을 보며 말했다.

"협회는 설립하게 되겠지. 소속되고 싶지 않은 이들은 독자적인 체계를 구축하면 돼. 그 이후의 일은 각자의 책임이니까."

그리고 아마존은 날 한번 쳐다보더니 그대로 자리에 다시 앉았다.

아마존이 한번 정리하자 시끄럽던 교류회에 다시 평화가 찾아왔다.

그러고보니 아마존은 양궁 국대들을 모아서 여의도를 꽉 잡고 있다고 들었는데 몇 주 못본 새에 분위기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더 늠름해졌다고 해야 하려나.

"협회 설립에 관한 이야기는 나중으로 미루고 일단 약탈자들부터 처리하는 게 급선무겠지. 그 건에 대한 이야기부터 하자."

아마존의 정리로 이야기는 차근차근 진행됐다.

약탈자들을 어떻게 처리할 건지, 어느 랭커들이 모여서 협력할 건지를 논의하게 됐다.

난 솔직히 도움 줄 부분도 없고 할 수 있는 것도 없어서 멍 때리고 있다보니 이야기가 끝났다.

"뇌창, 동의하나?"

"아? 어, 그래."

자꾸 무슨 안건이 나올 때마다 나한테 동의를 구하는 게 이상했지만.

이후에는 각자 마음 맞는 이들끼리 정보를 공유하거나 자기가 찾은 아이템을 거래하기도 했다.

싸우니 마니 했지만 진짜로 목숨 걸고 싸울 만큼 얼간이는 없었다.

"뇌창, 다음에 보죠."

"그래."

아마존이 인사하고 그 뒤를 바바리안이 이어갔다.

"뇌창! 안양으로 오면 날 찾아! 안양의 자랑, 바바리안은 내 친구를 반드시 외면하지 않을테니까!"

"... 그래."

저마다 목례하거나 자신의 지역을 알리며 작별을 고했다.

굳이 나한테 한명, 한명 작별 인사하는 걸 보니 영 기분이 이상했다.

협회 설립은 흐지부지됐고 협회장에 관한 것도 딱히 논의된 게 없는 데 암묵적으로 날 이 무리의 대표로 인정하는 것만 같았다.

이 또한 랭킹의 힘인가?

조금 귀찮았다.

뿔뿔히 사라지는 대장간.

그곳에는 타닥타닥 타는 용광로의 불빛을 등진 내 앞에 한 기사만이 남아 있었다.

"납득할 수 있는 말을 해봐."

대장간에 남은 건 나와 강철뿐.

강철은 내게 고개를 숙였다.

"미안하다. 구심점이 필요했다."

"그게 나다?"

"너와 데몬시드였다."

"내가 찬성하지 않았다면?"

"협회는 지지부진 됐겠지."

하지만 그렇게 했어도 협회의 설립은 두루뭉술하게 넘어갔다.

그것도 시간 문제긴 하겠지만.

"간도 크군. 내 반응이 조금이라도 자연스럽지 못했다면 네 입장이 아주 곤란해졌을거야."

"도와줄거라 생각했다."

"어째서냐."

이상한 자신감이다.

묘하게 꺼림칙하게 바라보고 있자 강철은 자신의 투구를 벗고 말했다.

"뇌창, 내가 모를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뭘 말이냐."

"너와 데몬시드 말이야."

"...."

설마 눈치 챗나?

확실히, 카타콤에서 데몬시드의 스킬을 써버리긴 했다.

씨드라를 사용해 추종자나 문지기를 죽였으니 당연히 데몬시드와 나와의 관계를 추측했을 터.

그때는 살기 바빴으니 어쩔 수 없었지만 역시 들켰던 모양이다.

어쩐지 믿는 구석이 있는 거처럼 행동한다 싶었다.

설마하니 그걸 알아챘을 줄이야.

"그때 있었지? 데몬시드."

"...?"

"누구도 랭킹 1위의 모습은 본적이 없다. 하지만 그는 항상 있었지. 카오스에서 네가 나무를 만들었지만 넌 창을 다뤘어. 카타콤에서조차 넌 씨앗을 뿌렸지. 당연한 거 아냐?"

"..."

"지금도 데몬시드는 네 곁에 있지? 모습을 감추는 스킬이나 부적을 지니고 말이야."

이 녀석.

꽤 허당일지도.

하지만 엇나간 추측은 환영이다.

내가 데몬시드라는 게 밝혀지는 것보다는 낫다.

생각해보니 그렇게 생각하는 게 더 바람직한 추측이다.

설마하니 내가 데몬시드고, 뇌창이라는 걸 알지는 못할 테니까.

기프트를 둘이나 가진 존재가 있을거라고 생각하는 게 애초에 무리다.

"... 맞다. 데몬시드는 지금도 곁에 있어. 오랜 시간 함께한 동료다."

"역시! 어딨지? 여긴가?"

강철은 내 주위를 손가락질 해보며 여기저기를 찔러봤다.

"... 그는 나서고 싶지 않다는군."

"아. 이유는 모르겠지만 존중한다. 사연 없는 사람은 없는 법이니까."

강철은 잠시 흥분을 가라앉히고는 다시 차분한 음성으로 말했다.

"협회는 필요해. 아마도 다음 교류회 때 다시 이야기를 꺼낼 거다. 호의적인 이들을 모아서 공동 설립을 추진할 거야. 나로서는 부족해. 아마 아마존과 바바리안. 그리고 당신과 데몬시드를 공동 협회장으로 추진해서 설립하는 쪽으로 가겠지. 아마존과는 이미 얘기를 마쳤다."

협회의 설립은 나도 찬성한다.

약탈자 그룹까지 나온 마당이다.

더 어떻게 엇나갈지 모르는 세상이고 그걸 바로잡을 사람들은 언제나 필요로 한다.

공동의 적이 있는 상황에서는 더더욱 강철과 같은 선한 마음을 지닌 리더들이 필요한 법이니까.

"뇌창, 넌 이제 뭘 하지?"

"글쎄. 와이번이 내 땅을 노리고 있어서 꽤 바빠질거다."

"와, 와이번?"

"그래."

급한 용건은 와이번부터.

와이번이 나타나는 이유는 모르지만 원인 없는 결과는 없다.

모종의 이유가 있을 터.

게다가 하늘을 나는 와이번들을 정리만 한다면 플라이를 쓰던지 해서 섬을 빠져나갈 수도 있을 거다.

꽤 위험한 일이 되겠지만 진정한 자유를 위해서는 언젠가가 됐든 해야만 하는 일.

언제까지고 섬에 갇혀 있다가는 퇴물이 되기 마련이니까.

'그들이 날 존중하는 건 하나였어.'

힘.

더 강한 힘을 지녔기에 시키지 않아도 내게 잘 보이려 애쓰고 존중하는 것이다.

만약 내가 힘이 없었다면?

저들은 날 본체도 하지 않았겠지.

냉정하지만 당연한 소리다.

자기에게 도움되지 않는 사람을 좋아할 사람은 없으니까.

"약탈자 퇴치는 오늘 새벽이야. 이미 관찰자로 위치는 확보했다. 한번에 덮칠 거야. 네 도움이 있다면 좋겠지만 그건 불가능하겠지."

"뭐, 그렇지."

애초에 갈 수조차 없으니까.

그리 말하며 강철은 내게 스크롤 하나는 건넸다.

"뭐지?"

"포탈 스크롤이다. 좌표는 수원. 약탈자 놈들의 본거지 근처지. 난 약탈자들이 약해빠져서 그런 짓을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아. 놈들은 강해. 그 주축이 되는 약탈자들의 대장은 아마도 랭커일 확률이 높다. 그렇다면 분명 우리 쪽에도 사상자가 나올 거야. 난, 웬만하면 피해를 최소화하고 싶어."

강철이 건넨 포탈 스크롤을 손에 쥔 나는 몸을 떨었다.

"왜 그러... 지? 뇌창, 네가 섬에서 나오고 싶어 하지 않는 건 안다. 그래도 우린 네 힘이 필요해. 조금... 결례됐나?"

난 고개를 저었다.

그저.

'생각하지 못했다.'

섬을 빠져나갈 방법.

이전엔 아니었지만 이제와서는 그랬다. 대장간을 통해서 거래할 수 있는 상황이 되지 않았나.

왜 진작 이 생각을 못했을까.

'바다... 건너지 않아도 되네.'

포탈 스크롤.

이것만 있으면 개고생하지 않아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무인도 탈출? [2]

40화.

멍청하게도 생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솔직히 섬에서 지내는 게 당연시되고 있었고 적응도 마쳤다.

뭍으로 나갈 이유가 없기도 했다.

그래서 생각 조차하지 않았다.

"설마 몰랐나? 바바리안이나 우리한테 말만 했어도..."

강철은 조금 안타까운 원시인을 보는 듯한 눈으로 날 바라봤다.

"크흠."

"그러니까 교류하라는 거다. 커뮤니티 아이디는 뭐냐."

"그건 왜."

"커뮤니티 아이디로 친구 추가하면 근황 정도는 알 수 있으니까."

"뭐...? 그런 기능이 있었나?"

".... 어이가 없군."

몰랐다.

난 원래부터 눈팅족이니까.

글을 쓴 적도 없고 댓글 한번 달아본 적 없다.

그렇다 보니 친구추가 기능이나 쪽지 기능이 있다는 건 금시초문이었다.

"일단 친구 추가부터 할까?"

"아, 응."

닉네임은 짓고 강철에게 말해주자 친구 신청이 들어왔다.

"성남1짱님으로부터 친구 신청이 도착했습니다."

".... 이게 너인가?"

"응 맞아."

"성남 1짱?"

"아..."

강철은 급하게 허공을 만지작거렸다. 아마도 커뮤니티의 닉네임을 새로 설정하는 중이겠지.

아니나 다를까.

[강철군주로부터 친구 신청이 도착했습니다.]

"이게 나다."

"아, 어..."

많은 게 궁금했지만 신사답지 않게 굳이 파헤치지는 않았다.

사람은 원래 저마다의 사생활이 있는 법 아니겠는가.

나 이화성도 어릴 적엔 보이지 않는 적과 싸워 이긴 경험이 적지 않다.

강철의 외면은 척 보아도 젊고 어리니 충분히 이해되는 부분.

그것들을 두루 경험한 선배로서 어찌 헤아려주지 못할까.

"그래서, 올건가? 이런 걸 장점이라 말하기는 싫지만, 약탈자들을 죽이면 그들의 금화는 당연히 네 몫이 된다. 놈들의 무기도... 경험치도."

앞서 교류회에서 논의된 이야기다.

네피림들끼리 살인하면 그 자가 지니고 있던 금화, 경험치 등등을 뺏어올 수 있다고 했다. 마치, 서로 싸우라 부추기는 것처럼.

분명 쓰레기들 죽이고 금화와 경험치를 얻을 수 있다면 이득이다.

하지만 영 내키지 않았다.

약탈자 놈들보다는 내 과수원을 위협하는 와이번 놈들이 더 골칫거리다.

"거절하지."

"... 이유는?"

"호의는 여기까지니까."

한번은 봐줄 수 있다.

함께 싸웠던 동료로서, 또 대장간의 리벨롬을 모른척 해준 정으로서.

하지만 이 이상 날 이용해 먹으려 한다면 그건 선 넘는 짓이다.

"... 알겠다. 미안했어."

그렇게 말하고는 강철군주는 포탈 속으로 사라졌다.

찜찜한 마음에 커뮤니티에 들어가서 성남1짱을 검색하자 허세 가득한 일기장 비슷한 게 여럿 검색됐다.

항상 늠름한 기사도 정신을 내세우던 강철 군주의 뒷계... 아니, 뒷모습은 눈 뜨고 보기 어려웠다.

"누구나 흑염룡은 가지고 있지..."

홀로 남은 대장간.

강철의 뒷계는 대장간의 용광로에 던져버리고 생각할 게 많아 잠시 앉아 있자 알람이 울렸다.

[강철군주님에게로부터 메시지]

-앞으로 잘 부탁행 :)

"행? 오타인가."

아마 그렇겠지.

평소 강철의 말투를 생각하면 오타일 확률이 다분했다.

아니면 습관이 나왔거나.

"답장은 굳이 필요없겠지."

대충 메시지창을 꺼버리고 의자에 허리를 깊게 묻었다.

강철의 사생활도 꽤 충격이지만 그보다는 생각할 게 많아졌다.

"섬, 나갈 수 있게 됐네."

손안에 돌돌 말려있는 스크롤.

수원으로 좌표가 고정된 포탈 스크롤이었다.

이것만 있으면 이제 섬 생활은 끝.

더 넓은 지역을 자유롭게 활보하며 다닐 수 있을 거다.

그렇게 되면 더 많은 악마와 더 많은 던전들을 탐색하며 더 많이 강해지고 더 다양한 인연들을 쌓겠지.

"..."

하지만 과연 이게 맞을까.

쓸데없는 고민이다.

당장 스크롤을 찢어서 수원으로 향한다면 이전의 집. 이전의 터전을 찾아가 볼 수도 있을 거다.

불별도나 기부도는 애초에 내 과수원이 된 지 오래.

한 번씩 찾아가 관리하면 된다.

평소에는 어차피 불별도나 기부도는 그램들이 관리해줄 테니까.

다른 곳에 터를 잡아도 된다.

"... 내키지 않네."

하지만 영 내키지 않았다.

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난 섬을 나갈 수밖에 없다. 필시 그렇게 될 거다.

섬 안에만 있기엔 좁으니까.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섬 생활을 싫어하는 건 또 아니다.

갇혀있다고 생각할 때는 나가고 싶었다.

내게는 힘이 있으니까.

하지만 막상 나갈 수 있다고 생각되자 굳이? 라는 생각이 든다.

게다가.

"내 힘으로도 나갈 수 있어."

알량한 자존심일까.

아니면 지금까지의 노력을 허사로 만드는 게 싫은 걸까.

잘 모르겠다.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건 손안에 있는 포탈 스크롤을 사용하는 게 썩 내키지 않는다는 거다.

"급할 필요도 없고."

지금은 금화도 급하지 않다.

식량도 거래소를 통하면 충족이 가능하다. 굳이 지금 당장 섬 밖으로 나갈 필요가 없다.

"내 힘으로 나가야지."

언젠가 때가 된다면.

꼭 나가야 할 때가 온다면 그때 스스로 나가겠다.

그게 맞다.

지금 당장은 와이번이라는 강적이 불별도를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놈들이 불별도의 악과의 맛을 한번이라도 보게 된다면 그 다음은 제 2 과수원으로 지정한 기부도겠지.

그것만은 막아야 한다.

그러니까.

"일단은 봉인."

인벤토리에 스크롤을 집어넣고 망치와 투구를 꺼냈다.

검은 산양의 투구와 뉘우치는 망치.

둘을 무장하고 대장간 의자에 앉았다.

"슬슬 시간이야."

시계가 가리키는 건 4시.

리벨롬이 될 시간이었다.

*

23일 째.

교류회로부터 이틀이 지난 오후.

불별도의 거점 침대에서 일어나 가볍게 기지개를 켜고 악과를 먹었다.

아침은 역시 가볍게 악과.

기사왕 오그의 열매로 시작한다.

"용장이 발휘됩니다."

"불타는이 0.02 상승합니다."

다른 챔피언의 데몬시드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은 불타는을 우선적으로 습득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매일 아침 오그를 먹는다.

점심도 물론 먹는다.

그리고 자기 전에도 먹는다.

맛이 있긴 하지만 이쯤되면 물려서 거의 고문이다.

하지만 어쩔 수 있나.

수식어가 어떤 식으로 내게 변화를 줄지 너무 궁금한데.

"푸른 불이었지."

마치 죽음을 그대로 쑤셔 넣은 것만 같았던 푸른 불을 내가 사용하게 된다고 생각하면 이 식고문도 나름 즐기게 된다.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기는 하지만 마법을 쓸 수 있다는 사실이 마음에 드는 것처럼.

나 또한 불을 다루는 수식어를 갖게 될 그날을 기대하고 있다.

하루에 3개씩만 먹으면 한달 조금 지나면 얻게 된다.

한달.

한달만 참으면 된다.

"좀만 더 맛있었어도 금방 먹었는데... 맛이 영 그렇단 말이지."

과즙은 찬데 과육은 알싸하다.

단맛 또한 있기는 하지만 영 맛이 있는 건 아니다.

솔직히 가볍게 먹기도 좋고 맛도 좋은 거라면 오그보다는 엘데.

그렘린 킹 엘데의 열매다.

딸기라기엔 너무 거대한 엘데의 열매는 복숭아향이 나면서 맛은 지극하게도 달다.

내가 여자였다면 삼시세끼 이것만 먹으면서 배를 채웠을 거다.

"종족 값이 엘데가 더 높아서 그런가... 아니면 오그가 해골이라 맛이 없는건가?"

딱히 무슨 원리인지는 모르겠다.

깊게 생각해봤자 답이 나오는 것도 아니니까.

그나마 오그의 나무는 열매가 많이 열리니까 다시 갱신하러 가야지.

"정을 소모합니다."

"정을 소모합니다."

"정을 소모합니다."

"남은 정: 173"

"불타는 기사왕 오그의 나무에 성공적으로 제물을 바쳤습니다."

"경험치 10을 획득합니다."

"수확 가능 열매 18."

갱신 시킨김에 하나 더 먹으니 데몬이글이 하늘에서 까악까악거렸다.

"시끄러 이새끼야."

인벤토리에서 해골기사의 창을 꺼내 투창했다.

"데몬이글을 처치하셨습니다."

"23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나이스!"

매일 아침 시끄럽게 이 주변을 날아다니는 데몬이글을 맞췄다.

내 투창 실력도 날이 갈수록 숙련도 남달라진다.

하지만 그때였다.

덥석!

"아니..."

내가 잡은 데몬이글을 허공에서 덥썩 채가는 놈이 있었다.

바로 와이번이었다.

"이새끼들 점점 노골적이네."

점점 불별도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날아다니는데 마치 먹잇감을 보며 간을 보는 거 같다고 해야 할까.

그게 나는 아닐 테고.

역시 불별도의 내 과수원일 테지.

"이 새끼들 어디 있는지만 알아도 이 고생은 안하는데."

다 잡아 족쳐버리고 싶어도 도통 하늘에서 내려오질 않고, 어디에 놈들의 둥지가 있는지를 모른다.

그렇다보니 혹시라도 말벌이 나타날까 두려워 항상 꿀벌 앞을 지키는 양봉업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랄까.

딱히 좋은 기분은 아니었다.

슬슬 열이 뻗치고 있었으니까.

촤악.

그때 포탈이 열렸다.

포탈에서 나온 건 붉은머리 레아.

"어때?"

"기부도 쪽도 비슷한거 같아요."

레아에게 부탁해 기부도의 상황도 봐달라 했는데 역시 그곳도 여기랑 크게 다르지 않은 듯 했다.

"어떻게 알고 오는 걸까."

"향이 나는 걸지도 모르겠어요."

"향?"

"네. 악마의 열매잖아요. 그러니까 악마들은 더 민감하게 냄새를 맡는다거나 하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고서는 냉동고에 있는 쪽으로만 비행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흠."

레아의 추측이 꽤 신빙성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말이 안 되니까.

"그렇게 따지면 지금은 와이번이지만 나중엔 뭐가 올지 모르겠네."

그렇다면 할 일은 하나다.

"마음먹고 한번 사냥해봐야 하나."

서펜트는 강하다.

그에 비견될 정도로 와이번이 강하다는 이야기는 커뮤니티를 통해서 알고 있다.

정부에서 가끔 흘리는 이야기로는 와이번 한 마리가 도시 하나 쯤은 초토화 시킬 무력을 가졌다고 들었다. 총도 미사일도 통하지 않는 비늘.

놈들은 서펜트와 다르다.

내 레인스톰도, 블리자드도 아마 통하지 않겠지.

마음만 먹으면 더 높은 상공을 날아다니는 녀석들이니 말이다.

그래서 나도 웬만하면 놈들과 싸우는 것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판단했다.

하지만 이쯤되니 생각을 달리해볼 수밖에 없다.

머리 위를 자꾸만 돌아다니면서 거슬리게 하는 걸 보니 저놈들을 족치지 않으면 밤에 잠이 안오겠다.

"좋아."

결단을 내렸으면 행동에 옮기는 게 사내된 자의 도리.

나 이화성이 누구던가.

전 와이프가 내연남이랑 합심해서 나 죽이려 했을 때도 필사의 기지를 발휘해 역관광을 했던 놈이다.

날 엿먹이려 하는 놈들?

예전이나 지금이나 난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

"어디 한번 해보자고."

물론 지금 내가 가진 무기들이나 스킬로서는 와이번을 끌어내릴 방법도, 추적할 수단도 없다.

하지만 벌써 섬 생활 22일 째.

나만의 상점은 이미 갱신됐다.

이번엔 쿨타임이 일주일이 아닌 14일이나 된 만큼 그 안에 들어 있는 아이템의 수준 또한 높아졌다.

물론.

"가격 또한 괴랄해졌지만."

와이번을 잡을 방법?

그건 지금부터 뽑으면 된다.

[나만의 상점]

-13일 1시간 55분 남음.

[브릴뤠의 빵x10] - 100금화

[푸른 성수x10] - 150금화

[포탈의 서] - 999금화

[오스칼의 인형] - 3579금화

[열병의 투구] - 6842금화

[미확인 스킬북] - 11111금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알바를 조금 많이 해야할 필요성은 있겠지만 말이다.

굴러 들어온 머리통 [1]

41화.

"가격 돌았나 진짜."

나만의 상점이 아무리 7일에서 14일의 텀으로 바뀌었다고 해도 이건 해도해도 너무한 게 아닌가.

미확인 스킬북 일만.

열병의 투구 육천.

오스칼의 인형 삼천이라니.

"지랄맞네 진짜."

솔직히 나니까 살까 말까 하는 거지 이걸 대체 지금 시기에 누가 살 수 있다고 이런 가격에 내놓느냔 말이다.

"과금 겜의 아픈 추억이 떠오르네."

어마어마한 과금 유도 게임같다.

사면 강해지는 건 분명한데, 그렇다고 사기엔 너무 비싸다.

현생이 흔들릴 정도로 비싸지만 강해지기 위해서는 사야만하는 과금 유도 게임 같달까.

"린저씨들 이해 못했는데..."

지금은 좀 이해가 된다.

미확인 스킬북이야 그렇다 쳐도.

"열병의 투구라..."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사야겠다.

투구라고는 하지만 뼈에 가깝다.

물소의 머리뼈를 그대로 투구화시킨 형태이고, 길고 은근히 휘어져 있는 양옆의 뿔이 인상적인 투구.

물론 옵션 또한 바람직하다.

[열병의 투구] (unique)

-6군단 사령관 아스모디의 부관. 삭스의 유희로 만들어진 물소뼈 투구.

〈지독한 열병〉

반경 300m 내에 시전자와 아군을 제외한 존재에게 느리게 최대, 능력치의 20%를 하락시키는 저주의 오오라를 퍼뜨린다. (소모값: 분당 5)

〈저주 내성 +5%〉

〈마력 +1〉

훌륭한 내장 스킬.

분당 마나 5를 잡아먹기는 하지만 스킬 자체의 횟수 제한도 없는 아주 휼륭한 저주계열 마법이다.

일종의 디버프.

전투가 발생했을 때, 시작과 동시에 사용하면 일단 상대의 능력치를 하락시키고 전투에 임하는 것이니 이만한 디버프 장비는 또 없을 것이다.

물론 챔피언들한테도 통할지는 모를 일이지만 나름 광역으로 디버프를 걸 수 있는 유일한 장비이니 구매해서 나쁠 게 전혀 없다.

'투구가 썩 마음에 드네.'

게다가 투구를 쓰면 얼굴이 완전히 가려지는 것도 마음에 든다.

뇌창인거야 그렇다 쳐도 데몬시드인 거 까지 밝힐 수는 없기에 어쩔까 고민했었는데 딱 좋은 시기에 나왔다.

"이걸 쓸 때엔 데몬시드고, 벗었을 땐 뇌창인걸로 할까."

검은산양의 투구를 썼을 땐 또 리벨롬이 변하니 딱딱 컨셉도 완벽.

데몬시드는 마법사.

카탈린의 감전은 뇌창.

리벨롬은 망치.

어쩌다보니 부캐들이 많아졌지만 내 본캐는 데몬시드니까.

"근데 비싸단 말이지."

투구는 확실히 마음에 든다.

6천 금이라는 게 솔직히 너무 비싸긴 한데... 유니크 스킬이고 내장 마법이 너무 사기적이라 얼추 이해는 된다.

"알바 좀 더 뛸까..."

2시간짜리 알바를 좀 더 늘린다면 얼추 가능할 거 같다.

『소지금 4352 금화』

카오스가 열리기까지야 시간은 충분하고도 남는다.

문제는 와이번인데...

"오스칼의 인형은 뭐 됐고."

[오스칼의 인형] (magic)

-오스칼의 애착 인형

〈애착의 사랑〉

어떤 공격이라도 인형이 대신 맞음.

"뭔가 섬뜩하네."

오스칼의 인형은 실드 스킬이 붙어 있는 장비템인데 매직 등급임에도 가격이 너무 비싸다.

가성비가 별로 좋지 않다.

붙은 옵션도 그닥 끌리지 않았고.

소모성 아이템이라는 게 제일 크다.

정말 절체절명의 위기에서는 쓸만하겠지만 거기까지 여유가 있는 상태는 아니니까.

게다가 나도 실드 스킬은 있다.

반지에 내장된 에너지 쉴드.

번개 속성의 쉴드가 카탈린의 감전과 동화되며 더 강한 쉴드로 변모하는 녀석이라 썩 쓸만하다.

웬만한 공격은 이 녀석이 대부분 막아주는 터라 인형의 구매가 썩 와닿지는 않았다.

여유가 있다면 사겠지만 글쎄.

"그보다는 스킬북이지....."

미확인 스킬북.

감정을 펼쳐야하기는 하지만 그건 아무 상관이 없다.

레벨 랭킹의 1위를 석권하고 있는 이몸에게 감정 스크롤이 부족할 일은 없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역시 돈이 문제다.

"사천금 정도 있으니까..."

대략 만삼천금 정도가 필요하다.

"말해놓고 보니까 어이가 없네."

[재산 랭킹]

1위 데몬시드 **** 금화.

2위 독손 **** 금화.

3위 아마존 713 금화.

4위 강철군주 526 금화.

5위 혼나비 399 금화.

지금 재산 랭킹이 이런 상황이다.

네피림으로 각성한 대한민국 국민이 그래도 수백만인데 천개가 넘는 금화를 가진게 둘밖에 없다.

그런데 상점에 나와있는 금액은 기본이 3천이니 속이 터지는 거다.

근데 잠깐만.

"독손? 이새끼 나한테 대가리 터진 놈 아닌가. 얘 얼마전에 강화 터졌는데 왜 2위지? 돈은 어디서 났대."

현 네피림들의 수준은 잘 안다.

이전보다는 성장했지만 지금도 좀비나 고블린 잡고 있는 이들이 평균.

그건 랭커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무기 강화가 나온 이후에는 확실히 전체적인 수준이 올라갔지만 그렇다고 해도 벌어들이는 금화는 한정적이다.

"저 새끼 랭킹 몇 위야."

독손의 랭킹은 63위.

60위대 레벨에 비해서 금화가 유난히도 많다.

"흠....."

꽤 수상하다.

하지만 깊게 생각하지 않았다.

괜히 오지랖 부릴 일도 아니지 않은가. 내가 모르는 돈 버는 꿀팁이 있을 수도 있는 일이고,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대량 학살해서 금화를 벌어들였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뭐 설마 이 자식이 약탈자 그룹의 대장이라거나 하는 건 아니겠지."

설마 그렇게 허술하게 하려고.

재산 랭킹이 버젓이 있는데 저렇게 티나게 했을까? 금화만 분산시켜도 주목도를 낮추고 의심을 피할 수 있는데 멍청하게 하진 않았을거다.

"흠..."

그래도 묘하게 거슬린다.

강철은 똑똑한 녀석이니까 이런 부분도 놓치지는 않았을테지만.

"쪽지라도 보내줄까."

어제 새벽에 약탈자들의 토벌이 시작됐다. 커뮤니티에는 아직 그 이야기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아마 현재 진행중이지 않을까.

강철은 생각보다 약탈자 무리의 크기가 꽤 크다고 했었으니까.

그녀가 좌시하지 못할 정도라면 세력의 크기가 꽤 컸던 모양이니까.

"혹시 모르니까 독을 조심하라고만 하면 되겠지."

쪽지를 전송하고 망치를 잡았다.

돈이 없으니 벌어야 한다.

하루 두시간 일하던 리벨롬은 없다.

목표치를 달성할 때까지.

휴식 없이 일해야만 했다.

와이번 놈들을 하루 빨리 족치지 않으면 불안해서 잠도 못 잘 테니까.

*

같은 시각.

수원.

수원의 대표격 문화재라 할 수 있는 보물.

팔달문이 무너진 담장을 사이에 둔 네피림과 약탈자의 공방이 이어지고 있었다.

[뇌창으로부터 메시지]

-독손의 독 조심해야할지도?

짤막한 글귀.

강철 군주는 뇌창의 쪽지를 보며 생각에 잠겼다.

"상황은?"

"시간 문제이긴한데... 잘 모르겠네. 저항이 거세. 알잖아. 악마들한테는 총이 별로 소용없지만 우리들한테는 아니란 거."

약탈자들이 대체로 무장한 건 검이나 창이 아니었다.

훌륭한 화력이 뒷받침되는 무기.

현대의 총이었다.

악마들 대부분은 총이 잘 통하지 않지만 인간은 다르다.

확실히 다른 의미로 각성해버린 네피림은 총 한두 대 맞는다고 죽지는 않는다. 하지만 총이 주는 공포.

폭탄이 터지는 두려움에 한해서는 그 무엇보다 강한 것들이 아니던가.

애초에 놈들은 약탈을 일삼던 놈들.

이미 충분할 정도의 탄약을 품에 쥐고 있으니 저항이 거셀 수밖에 없다.

"독이 문제는 아니지만..."

강철은 고심했다.

현 상황에서 독은 문제가 아니다.

솔직히 시간문제이기는 하지만 얼마나 많은 탄약을 가지고 있을지는 모르는 일.

하지만 마냥 무시하기엔 뇌창의 쪽지가 거슬린다.

"혹시, 우리 쪽에 독에 중독된 사람이 있나?"

"독? 아니 독은."

그때였다.

"강철!! 큰일이다!"

피칠갑을 한 쌍도끼를 든 전사.

대머리 바바리안이 한 사내를 들처 업으며 그녀에게 달려왔다.

쿵-!

폴짝폴짝 잔해들을 넘어 다니던 바바리안이 들쳐멘 사내를 바닥에 철퍽 내려놓았다.

"크윽, 좀 살살 시발..."

"울프검? 이 사람은 왜."

다쳤으면 회복 능력을 지닌 네피림한테 가면 된다.

의료반은 사령부와는 다른 곳인데 왜 이곳으로 데려왔을까.

그것도 교류회에서 영 마음에 들지 않는 양아치 놈이 아니던가.

이유를 묻는 듯 바라보자 바바리안이 놈의 손을 가리켰다.

"음..."

울프검의 기프트는 자신의 손을 늑대의 것처럼 변하게 만드는 것.

이른바 변화계에 속하는 스킬이다.

그의 양손은 늑대의 것이고 발톱은 검과 같아서 울프검.

네이밍 센스가 영 아니지만 그 실력은 랭킹 20위 대의 것.

확실히 전투 센스도 좋고, 늑대를 닮은 저돌적인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한데, 놈의 검과 같은 발톱이.

"썩어가는건가."

"아마도."

처음에는 감각이 없었다.

그럼에도 싸웠지만, 이후에 눈치챘을 때는 괴사가 시작됐다.

"어떻게 하다가 이렇게 됐지?"

"팔달문으로 혼자 잠입하면서 벽을 긁으면서 갔대, 이 머저리 자식이."

"벽을?"

"발톱이 간지럽다나 뭐라나. 아무튼 그랬는데 이렇게 됐다더군. 솔직히 잘 모르겠어."

강철은 곧장 재산 순위를 확인했고 고개를 주억였다.

"설마설마했는데 정말이군."

약탈자 무리에 랭커가 끼어있다.

아직도 모르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이 상황을 보니 마냥 힘으로 제압할 일은 아니었다.

"왜 그러지?"

"뇌창의 연락이 있었다. 혹시 모르니까 독손을 조심하라고."

"뭐!? 그럼 약탈자 무리의 대장이 독을 쓴다는 건가?"

"확실하진 않아."

하지만 그럴 확률은 높다.

재산 순위에 대해 이야기를 하자 바바리안이 콧방귀를 끼었다.

"약탈자 무리의 대장이나 하는 놈들이 뭐 누굴 믿기나 하겠어? 리스크를 짊어지고도 포기 못하는거지."

사람은 생각보다 어리석다.

그것이 욕심에 관한 부분이라면.

"철수하는 게 좋겠어."

"철수!? 여기까지 와서?! 저기 놈들을 살려두면 얼마나 큰 피해가 일어날지는 알잖아! 너도 아니까 더 커지기 전에 죽이자는 거 아니었나?"

"바바리안. 놈들의 수장이 독을 쓰는 놈이다. 저렇게 수성만 하고 있을 거 같나? 분명 독을 퍼뜨릴 거다."

그게 언제가 될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 강철의 임시 토벌단은 독에 대한 처치가 완비되지 않았다.

만일 독에 당하는 자들이 속출한다면 그들을 어떤 수단으로 치료할 수 있을까.

"어떤 독인지도 모른다."

일반적인 독이라면 병원을 털어서라도 처치를 할 수 있을지 모르지.

하지만 놈이 지닌 독은 기프트.

신의 선물이라는 미스테리다.

어떠한 독인지 모르니 해독제 또한 듣지 않을 가능성이 농후.

그러니 철수가 맞다.

"끄응...."

이에 관한 생각은 바바리안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했다.

놈이 생각지도 못한 방식으로 공기 중에 보이지 않는 독을 살포하기라도 한다면 싸우다가 죽는다.

독이란 그렇게도 무서운 것.

"빚을 졌군. 그가 아니었다면 독이라고 생각하지는 못했을 거야."

괴사하는 손이 독인지 다른 능력인지 고민하는 사이 당했을지도 모를 일이지. 강철은 일시적 철수를 명했고 우선 독을 파훼할 방법부터 모색하기로 했다.

*

띠링.

[강철군주로부터의 메시지]

-고마웡! 덕분에 피해를 줄일 수 있었엉! 이 보답은 크게 할겡! :)

까앙-! 까앙-!

망치를 두들기던 손이 흠칫 멈췄다.

"... 말투 웃겨 죽겠네."

그것보다.

"강화를 부탁, 합니다."

연신 내 눈치 보면서 강화해달라고 말하는 이새끼를 어떻게 할까.

내 앞에 있는 놈.

예전에 나한테 손목 꺾이고 눈물 질질 짰던 랭킹 63위.

현 약탈자 무리의 대장이라고 추정되는 천하에 개새끼인 독손이었다.

나름 얼굴을 가린다고 가리고 오기는 했는데, 눈빛에 든 싸가지는 어디 놔두고 오지 못했다.

애초에 저 손.

녹빛으로 물든 손톱이 영 더러워서 모를래야 모를 수가 없다.

독손이라고 광고하고 다니나.

"흠."

난 놈을 보며 씨익 미소지었다.

생각해보니.

"금화는 많이 모았나?"

녀석의 재산 순위가 2위였다.

"꽤 됩니다."

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훌륭하다.

"그럼 강화시켜주지."

망치를 든 손은 눈보다 빨랐다.

까앙-!

"크악!!"

역시 사람 머리통은 강화되지 않았다.

굴러 들어온 머리통 [2]

42화.

"뉘우치는 대장간에 입장합니다."

"입장료로 20금을 사용하셨습니다."

촤악.

열려지는 포탈.

어둑한 공간 속 대장간의 용광로가 비추는 불빛들 사이.

줄서 있는 인파와 함께.

까앙-! 까앙-!!

"컥! 커어억!"

망치로 리듬타고 있는 검은산양 머리의 사내와 그 밑에 깔려 대가리 터지도록 처맞는 사내가 있었다.

전자는 대장간의 주인.

리벨롬의 행세를 하고 있는 뇌창이었고 후자는 독손이었다.

"정말이지..."

대장간에 입장한 강철군주는 연신 후드려 맞고 있는 독손을 보며 약간의 동정심을 느꼈다.

[뇌창으로부터 메시지]

-지금 당장 대장간으로 와.

딸랑 이 메시지만 보냈기에 무슨 일인가 싶어 왔더니.

"독손을 두들겨 패고 있을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는데."

조금 허탈하기도 하다.

놈을 잡으려고 새벽부터 하루종일 총격전을 이어나가고 지지부진한 대치만하다 피눈물을 삼키고 철수를 명하지 않았던가.

근데 약탈자 대장으로 추정되는 놈이 저기서 망치로 뚝배기가 터지고 있을 줄이야.

"야 근데 쟤 왜또 맞냐?"

"몰라, 맞을 짓 했겠지."

리벨롬이 사실은 뇌창이라는 사실을 꿈에도 모르는 네피림들은 독손이 처맞는 이유가 있으리라 생각했다.

설마하니 네임드로 알려진 리벨롬이 개인적인 악의가 있어서 그를 패고 있으리라 생각하진 않을테니까.

"그건 그렇고 진짜 잘 때리네."

당연하다고 해야할지.

아무리 그래도 망치 하나만 들고 독손을 복날 개새끼잡듯 두들겨 패고 있는 꼴은 조금 웃기기도 하다.

놈이 약탈자 무리의 대장이라는 걸 모르는 사람들은 조금 심하지 않나 걱정하기도 하지만.

'그래서 날 불렀구나.'

이쯤에서 슬슬 정리를 해줘야겠다.

그렇지 않다면 리벨롬의 평판이 나빠질 수도 있을테니까.

"난 성남의 강철 군주다."

목소리를 가다듬은 강철은 대장간에 자리한 자들을 향해 외쳤다.

"난 수원에서 거대 약탈자 무리들과 새벽내내 전쟁했다. 그리고 저기 독손은 그 약탈자 무리의 대장으로 추정되는 인물이다. 무슨 잘못을 했길래 그에게 맞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사람 죽인 살인자에게 내려지는 벌 치고는 꽤 약하다고 본다."

강철의 말이 이어지자 수근거리던 네피림들의 볼륨이 높아졌다.

쳐 죽일 놈에서부터 사지를 찢어버리라는 소리까지 들리기 시작했다.

요새 들어 같은 인간을 약탈하는 자들에 대한 이야기는 커뮤니티에서도 심심하면 올라오는 주제였다.

그러다보니 주동자라 알리자마자 그에 대한 우려는 원성으로 바뀌었다.

"죽여라! 죽여라!"

"죽여버려! 리벨롬 형님!!"

그때였다.

"이 빌어먹을 새끼들!! 다 죽어!!"

피투성이가 된 채로 대가리가 깨졌던 독손이 두 손을 펼쳤다.

이판사판이라는 듯 그의 손에서는 불길하다싶은 독이 퍼져나왔는데 검녹빛의 독이었다.

"막아! 독이 퍼지면 끝이야!!"

해독제도 방비되지 않은 독.

퍼져나가면 끝이다.

놈이 발작적으로 두손을 펼치자 우선적으로 네피림들이 도망쳤다.

아무리 그들이 각성하여 네피림이 됐어도 독 앞에는 취약.

마땅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닌 독에는 네피림이든 악마든 위험하다.

혼비백산하여 달아나려는 와중.

리벨롬이 움직였다.

"크히히히히! 너도 죽어 염소 대가리새끼야!"

절체절명의 위기.

두손에서 뻗어나오는 어마어마한 양의 독은 모두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강력해보였다.

하지만 그때였다.

"뭐 별것도 아닌 독이네."

돌연 리벨롬의 손안으로 독손의 독이 하나도 빠짐없이 모여들었다.

"뭐, 뭐야! 어떻게 내 독을...!"

"꼴랑 이 정도 독으로 뭘 하려고."

이내 그가 손을 뻗자.

"헉!"

독손의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농도 짙은 극독이었다.

그의 손 끝에서 모인 독이 방울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치익!

독손은 알 수 있었다.

독을 다루기에 여기에 있는 누구보다 분명히 알았다.

이 독은 보통 독이 아니다.

닿으면 죽는다.

독손은 달아나려 했다.

발버둥치려 했다.

하지만 그럴 수 없었다.

독손의 목에는 언제 다가왔는지 강철군주의 검이 드리워져 있었으니까.

"왜 사람을 죽였나."

리벨롬의 질문에 독손은 두려움에 떨면서도 입꼬리를 올렸다.

"그거 알아? 인간은 사고로 죽은 거보다, 맹수한테 죽은 것보다. 같은 인간들한테 죽은 게 더 많다는 거?"

크크큭! 참을 수 없다는 듯 눈물까지 흘려가며 웃었다.

"왜냐고? 진짜 바보 같은 질문이야. 신께서 친히 악마보단 인간을 죽이는 게 쉽게 강해질 수 있는거라고 말해주는데 왜 죽이면 안되나."

"..."

"악마는 죽이면 되고, 같은 인간은 죽이면 안된다? 왜? 그걸 누가 정했지? 신께서 정했나? 아니! 신은 무엇도 정해주지 않았어! 선택은 오로지 내 몫이고 내 인생은 내가 결정해!!"

법이 무너진 세상.

도덕적 사상과 윤리관이 무너졌기에 보이는 궤변이라고.

강철군주는 생각했다.

"그 선택에 대한 책임도 네가 져야했다는 건 몰랐나보군."

"네가 뭐라고 내게 책임을 묻지? 뭐, 신의 사자라도 되나?"

"설마. 네가 말했지? 인간이 인간을 죽이는 일이 더 많다고. 나도 마찬가지다. 내가 지키고 싶은 걸 지키기 위해, 널 죽이는거야."

"... 난, 그럼 왜 죽는거지?"

"약하기 때문이겠지."

"아..."

독손의 외마디 탄식과 함께.

리벨롬의 망치가 신의 천퇴처럼 떨어져 내렸다.

*

[속보-약탈자 주동자 독손 사망]

-그는 백여명이 넘는 약탈자들을 이끌고 납치, 강간, 마약을 일삼고 그들을 주축으로 세력을 불려나갔던 것도 모자라 네피림의 금화 벌이까지...

[독손을 죽인건 엔피시 리벨롬?]

-지난날 약탈자의 주동자 독손을 죽인 건 어처구니없게도 뉘우치는 대장간의 주인. 리벨롬이었다. 그는 전에도 예의를 중요하게 여겼는데, 독손은 지난번에도 리벨롬에게 한차례 참교육을 당했지만 이번에도 그 버릇 개 못주고 또 예의 없이 굴다가 덜미를 잡혀 그에게 죽임 당했다.

[리벨롬 형님을 국회로]

[리벨롬이 살인자새끼 잡을 때 정부는 뭐했냐 대체?]

[대통령은 원래 하는일 업슴]

[그 노인네 살아있긴 함?]

[대통령 이미 뒤진지 오래임]

[리벨롬과 함께 있는 강철군주 짤]

-미안하다 애들아 이거 보여주려고 어그로 끌었다. 리벨롬 형님 ㅈㄴ 멋있지 않냐? 독손 독도 형님한테는 안 통하더라. 그냥 망치로 뚝배기를ㅋㅋ

┗ㄹㅇㅋㅋ

┗너넨 안 무섭냐? 엔피시가 우리 죽일 수도 있다는건데...

┗우리 형님은 죽을 짓 한 새끼 아니면 안 죽여... 예의를 갖춰라.

┗매너가 사람을 만든다.

[최초의 엔피시 리벨롬, 그는 과연 우리에게 호의적인가?]

-제아무리 죽을 죄를 진 자라해도 그걸 같은 인간이 아닌 엔피시가 처단해도 됐던걸까? 난 이제 무섭다. 리벨롬이 나까지 죽이면 어떡해? 그는 과연 우리의 편인가? 난 아니라고 본다. 인간이면 인간의 처벌과 처우에 따라야지...

┗리벨롬 형님도 인간인데?

┗염소머리가 인간은 아니지...

┗그럼 왜 우리 강화시켜주냐 다 신의 뜻이야ㅋㅋ

┗근데 강화비용 너무 비쌈 ㅇㅈ?

┗ㅇㅈㅇㅈㅇㅈ

[강철군주로부터 메시지]

-뇌창, 당신은 할일을 했을 뿐이양. 사람들 말은 너무 신경쓰지망... 그런데 독손의 독은 어떻게 한거양? :)

독손의 독을 무마시킨 것.

그건 페스틱사드였다.

닿은 것을 독으로 응집하는거라 솔직히 될까 했는데 훌륭하게 가능했다. 뭐든 독의 재료로 만드는 스킬이라 독 자체라면 보다 월등하게 흡수와 저장이 가능했다.

덕분에 독손의 독에도 당하지 않고 역관광 시켰던 거였다.

물론 강철에게 그것까지 알려줄 필요는 없겠지. 메시지를 끈 나는 커뮤니티에 글을 작성했다.

[리벨롬은 인간의 편...]

[리벨롬은 인간 편 아님? ㄹㅇ]

[리벨롬 형님, 인간의 편일지도...?]

"에라이 씨."

작성중이던 글을 모조리 지우고 누워 있던 해먹에서 일어났다.

독손의 죽음 이후.

사람들의 반응은 각각 달랐다.

역시 리벨롬이다.

리벨롬은 정의의 사도다.

신의 편이다라고 찬양하는 쪽과 그래도 사람 죽였다고 무섭다고 하는 놈들로 갈렸다.

솔직히 내가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다. 리벨롬은 내 가짜 신분.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든 말든 난 돈 받고 강화만 해주면 된다.

그거 말곤 없는 부캐니까.

"하여튼 사람들은 참 이상하죠. 좋게좋게 생각하면 될거 가지고. 나쁜 사람을 처리해줬으니 고맙다고 하면 될텐데 또 다른 걱정거리를 만들어내서 스스로 지옥으로 향하네요."

레아였다.

스스로 지옥으로 향한다라.

"그러네. 어쨌든 좋은 일 했으니까 난 괜찮아. 고마워."

날 걱정해서 일부러 저런 말을 했다는 걸 모르지 않는다.

애초에 지금은 그런걸 걱정할 때가 아니기도 하고.

"화성님. 그래서 어떠세요?"

"뭐가?"

"돈은 많이 모으셨나요?"

"아, 응."

독손이 들고 있던 돈과 경험치를 모조리 내가 독식했다. 놈이 지니고 있던 금화는 생각보다 꽤 많았다.

모두 1462금.

그게 내가 모으고 있던 돈과 합쳐져 딱 일만 일천금이 되었다. 열병의 투구까지는 사지 못하겠지만 미확인 스킬북 하나는 살 금액이 모여졌다.

이만한 금화를 모으려면 악마를 대체 얼마나 많이 잡아야 했을까.

리벨롬이 아니었다면 모을 생각조차 못했을 금액이다.

고맙다 리벨롬!

미안하다 리벨롬!

"레아는?"

"저는 적당한 스킬북이 있어서 배웠어요."

"뭔데?"

"감지 스킬이에요."

반경 500미터 내의 생물을 감지할 수 있는 스킬이라고 한다.

"오, 좋네."

좋은 스킬이다.

기습이나 매복을 당할 일은 없을테니 생존률이 더 높아졌다.

게다가 아무래도 레아는 전위보다는 후위에 어울리는 기프트를 지녔다보니 감지 스킬 같은 보조적 마법을 많이 다루는 게 좋아 보인다.

'자기는 전위에 서고 싶어하는 거 같기는 하지만.'

평소에서 짬짬히 검술 연습을 하기는 하지만, 아무래도 영 걱정되서 전위에 세우고 싶지는 않다.

기본 스펙이 악과를 먹으며 점점 상승하기는 하지만 물가에 내놓은 아이같아서 불안하달까.

"그럼 지금 구매하시는거에요?"

돈도 모였겠다 뒤로 미룰 이유가 있을까. 아직도 와이번 새끼들은 호시탐탐 내 과수원을 노리고 있다.

"응, 구경할래?"

"네!"

제발 이번에는 저 파충류 놈들을 죽여버릴 스킬이 나오기를!!

"미확인 스킬북을 구매합니다."

"11111금화를 소모하셨습니다."

"미확인 스킬북을 획득하셨습니다."

"감정 스크롤을 사용합니다."

"숨겨진 이름이 드러납니다."

〈세트〉 [카이삭스의 표식] (Epic)

-마창사로 이름 높은 카이삭스가 생전에 남겨놓은 다섯개의 카이삭스식 마창술 중 하나.

〈미리 새겨 놓는 표식을 통해 번개 속성의 텔레포트를 사용할 수 있다.〉

〈번개 내성 +5%〉

(소모값: 총량의 7%)

에픽.

미리 새겨놓은 표식을 통해 이동.

번개 속성의 텔레포트. 난 그걸 읽자마자 두 팔을 번쩍 들며 외쳤다.

"에픽 텔포 떴드아아아아아아!!"

대박 중에서도 개대박.

드디어 와이번 새끼들을 족쳐버릴 개사기 스킬이 떠버렸다.

와이번 소탕 [1]

43화.

"진정! 진정! 심호흡해요. 우리!"

"으, 응. 후우....."

진정하자. 진정하고 분석을 해보자.

"으흐흐흐."

"화성님 웃음이 이상해요."

"어쩔 수 없어. 이거 봐! 엄청나!"

하지만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이 악물고 망치질하며 돈 모은 보람이 있달까?

스킬북 주제에 엄청난 효과를 다 지니고 있었다.

"스킬북 주제에 세트 아이템이야."

이게 미확인 스킬북의 순기능.

또한 에픽 등급을 받은 이유겠지.

설마하니 에픽 등급을 장비템이 아니라 스킬북으로 받을 줄은 몰랐지만, 오히려 좋다.

'카이삭스의 마창술.'

세트 아이템이라고 명시된 걸 보면 다른 스킬북 네 개가 하나의 세트로 이루어지는 것일 터.

세트 효과가 어떨지는 아직 모르겠지만 분명 어마어마한 세트 효과가 날 기다리고 있겠지.

마창사 카이삭스.

그가 생전에 남긴 다섯 개의 마창술.

그중 하나인 표식을 얻었다.

나머지 네 개가 어떤 건지는 모르겠지만 그 또한 필시 대단한 물건일 터.

"세트를 모으는 건..."

솔직히 하늘이 도와야 할 일이고.

우선 표식부터 배우기로 했다.

오래된 세월감이 느껴지는 책을 펼치자.

"카이삭스의 표식이 당신을 바라봅니다."

책 주제에 날 보고 있다고 한다.

기묘한 분위기 속에서.

난 예전 일을 떠올렸다.

"아 깜빡했다..."

블리자드.

녀석을 배웠을 때도 이런 비슷한 일이 있었다.

스킬 배우다 죽을 뻔했던 그때를 떠올리자 두려움이 엄습했다.

설마 아닐 거라 애써 부정했지만.

파앗-!

불길한 예감은 어째서인지 도통 틀리지 않았다.

*

잿빛으로 가득찬 들판.

그곳을 걷는 자가 있었다.

해는 잿가루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고, 밝지도 어둡지도 않은 하늘은 사내의 희망을 조롱하듯 떠 있었다.

끝나지 않을 걸음이 이어질 것만 같았던 어느 날. 여러 개의 창을 등에 멘 채 걷고 또 걷던 사내의 걸음을 어느 음성이 멈춰 세웠다.

"카이삭스. 위대한 영웅이자 불온의 끝을 품은 자여, 아직도 창을 쥔 자들이 지닌 고즈넉의 미망을 등에 메고 있더냐?"

우뚝.

걸음을 멈춘 사내.

아니, 카이삭스라 불린 자는 걸음을 멈추고 한 여인을 보았다.

"고즈넉한 하늘은 눈부신 희망도 절망도 주지 않으니 비통한 미망을 등에 멜 수밖에 없지."

여인의 조롱거림을 아무렇지 않게 맞받아친 카이삭스는 등 뒤의 창을 꺼내 말아 쥐었다.

"너희들은 수개의 하늘을 재로 물들이고도 언제쯤 만족하나."

"글쎄. 만족이란 걸 할 줄 알았다면 우리가 '밤 깊은 땅' 끝으로 쫓겨났던 일이 있었을까?"

카이삭스는 더 이상의 대화는 그만두겠다는 듯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여인은 왜인지 카이삭스의 태도에 더욱 흡족한 듯했다.

"카이삭스. 무엇 하나 지키지 못한 고즈넉의 미망아. 나라도 지켜보려 하지 않겠니?"

여인은 수려한 외모와 달리 여섯 개의 팔을 지닌 마녀.

여섯개의 팔은 잔상을 이루는 것처럼 유려하게 움직여 카이삭스를 향해 손등을 보였다.

마치 충성의 키스를 원하는 것처럼.

"잘나신 3군단의 대악마 미네트께서 날 원한다니 영광이군."

"어떠니? 3군단장께서는 널 처리하라 하셨지만 난 썩 내키지 않아."

"추악한 밤, 깊은 땅에서 잉태된 악마 주제에 밤엔 힘도 못 쓴다는 훌륭하신 3군단의 군단장 말인가."

그의 조롱에 마녀가 이를 갈았다.

"아무리 너라도 빛의 '사르가타나스'를 욕한다면 살려둘 수 없다."

카이삭스는 웃기지도 않는지 콧방귀를 껴댔다.

"살려달라 청한 적 없다."

"살아서 날 섬기면 그들의 혼이라도 구원받을 수 있을지 모르지 않느냐."

유혹하듯 열망이 뜨인 눈동자.

등에 멘 창의 숫자는 그가 잃은 마음의 숫자였다.

"나는 널 이룬 미망을 구원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여섯의 미네트다."

"구원이라."

철컥. 투구를 쓴 카이삭스는 콧방귀 뀌며 창을 들어 올렸다.

그가 창을 들어 올린 것만으로 잿빛의 들판이 들썩였다.

가라앉은 잿가루가 떠올랐다.

그 잿가루들 사이.

카이삭스의 눈이 이채를 빛냈다.

"이 세상에, 구원이 있을 리 없지 않은가."

"오, 신성모독인가?"

"신 따위."

카이삭스는 건조하게 입꼬리 올렸다.

"있을 리가 없지 않나."

만약 있다면.

"내가 그 신을 찢어 죽일 것이다."

대화는 그것으로 끝이 났다.

메마른 잿빛 땅에서, 카이삭스는 전투에 돌입했다.

이내 머지않아 일대가 모조리 터져나가며 거대한 폭발에 휘말렸다.

그 폭발마저 꿰뚫는 하나의 창이 섬전처럼 번뜩였다.

뻐엉-!

"카이삭스!!"

"네, 빛에게 꺼져라. 애제(愛弟)를 삼킨 비루한 마녀야."

팔 두개와 옆구리가 꿰뚫린 미네트가 분노에 가득차 달아나고.

다시금 잿가루 내려 앉는 정적이 이어지는 때.

카이삭스는 나지막이 말했다.

"나는, 신을... 만들 것이다."

멸망조차 꿰뚫을 신을.

*

"카이삭스의 표식을 배웠습니다."

"당신의 창술이 형편없습니다."

"카이삭스의 안배로 초급 창술의 지식을 습득합니다."

"카이삭스의 초급 창술을 배웠습니다."

"월등히 높은 수준의 스킬을 익혔습니다. 카이삭스의 표식으로 전체 능력치 +1이 상승합니다."

"카이삭스는 멸망한 세계에서 유일한 인간의 편이었습니다."

"당신은 카이삭스의 후계자 중 하나로 선별되었습니다."

"카이삭스와 관련된 운명이 당신을 이끌 것입니다."

"괘, 괜찮으세요?"

"아... 응."

블리자드 때처럼 격통에 시달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뭐랄까.

가슴이 미어진다고 해야 하나.

"아파요? 왜."

"어? 아아. 글쎄."

책 속에서 본 카이삭스의 등이 유달리도 기억에 남는다.

여러 개의 창을 등에 멘 채, 잿빛 가득한 들판을 고독하게 걷던 그의 걸음이 왜인지 슬펐다.

잠시나마 동화되었다고 해야 할까.

그의 심정에서 느꼈고, 그의 신념에 이입하여 그의 입장에서 싸웠다.

아주 잠깐 동안이었다.

체감상으로는 몇 분이나 되었을까.

나는 카이삭스가 되었다.

그래서일까.

아직도 그가 날린 창.

그가 찌른 창의 감각이 손안에서 흩날리기 시작한 연기처럼 머물렀다.

붙잡으려 말아쥐면 더 빨리 사라질 것만 같은 그런 연기처럼 말이다.

"여러 개의 하늘..."

그는 말했다.

여러 개의 하늘이라고.

레아가 있던 곳도 카이삭스가 있던 곳과 비슷했을까.

아니면 곧 그리될 하늘이었을까?

"카이삭스라고 알아?"

"... 아뇨. 처음 들어봐요."

"잿빛 하늘은?"

"글..... 쎄요?"

레아가 모르는 걸 보면 아마도 다른 세계의 인물이었던 것 같다.

신은 없다.

그러니 신을 만들겠다는 그의 처절한 의지는 왠지 모르게 가슴 깊이 울려 퍼졌다.

'신은 없는 건가? 아니면.'

그의 인생에서 신이 없었다는 걸까.

모르겠다.

"왜 그러세요?"

"아니야."

생각해봤자 답이 나오지 않는다.

답이 없는 것을 신경 써봤자 에너지만 소비되는 일이다.

그보다는 확실하고 급하게 처리해야 할 일에 에너지를 쓰자.

무엇보다 한 가지 확실한 건 우리의 세계도 그렇게 될 수 있다는 거다.

잿가루만이 휘날리는 세계.

해도, 달도 사라진 하늘은 왜인지 서글펐고 가슴마저 시렸다.

난 그 하늘을 보고 싶지 않았다.

"상태창."

『이화성』

「데몬시드 3레벨」

「카탈린의 감전 3레벨」

「생명력」 – 720/720 (+200)▲ 800

「마나」 - 660/660 (+80)▲ 740

「능력치」

근력 – 28 (+14) ▲ 32

민첩 – 16 (+4) ▲ 22

건강 – 26 (+14) ▲ 31

마력 - 29 (+6) ▲ 33

강골 - 4 ▲ 7

「세부 능력치」

명중률+4 시야+4 야간시야+2 방어력+80 마나재생+10 번개내성+25% 냉기내성+5%

「스킬」

[워터볼] [투척] [돌진] [레인스톰] [블리자드] [리버슬로우] [용장] [브램블리] [카이삭스의 초급 창술] [카이삭스의 표식]

「장비 스킬」

[볼트(2)] [에너지쉴드(1)] [피조물의 영광(1)] [플라이(3)] [내다보는 눈(1)]

오랜만에 본 능력치는 많이도 올랐다. 그동안 스킬을 익히며 올라간 올스탯들이 꽤 많았다.

게다가 알게 모르게 쉼 없이 먹어대는 악과 때문이기도 했고.

후욱-!

적창을 꺼내 허공을 찔렀다.

머릿속에 입력된 창술로서 허공을 찌르자 이전과는 다른 소리가 났다.

찌르는 폼이 안정적으로 바뀌었고 힘이 분산되지 않고 한 곳으로 집중됐다.

"이래서 기초가 중요한 법이지..."

새삼 느끼는 거지만 기초는 중요하다. 고작 초급 창술 하나를 머리로 이해하자마자 창술의 수준이 확연하게 높아졌다.

근접전이 두려워 투창만 해댔던 게 이전의 나다.

하지만 앞으로는 창술도 배워나갈 생각이 생겼다.

창을 쥔 카이삭스.

그의 뒷모습은 많은 걸 짊어지고 있었지만 왜인지 모르게 따라가고 싶어지는 사내였다.

'창술 확인은 여기까지.'

다음은 당연히 새로 얻은 스킬.

"표식."

카이삭스의 표식이었다.

곧장 적창에 표식을 새겼다.

적창의 손잡이에 표식을 새기자, 알아볼 수 없는 글자가 새겨졌다.

잘 모르겠지만 룬 문자 비슷했다.

이것이 표식.

그리고 적창을 투창했다.

쇄애액-!

투척 스킬까지 사용한 투창이다.

단번에 섬에서 제일 멀리 있는 해변가까지 떨어져 박혔다.

그때였다.

두근.

심장이 두근거렸다.

마치 창이 나를 부르는 것만 같은 묘한 울림이 전신에서 느껴졌다.

그것에 몸을 맡기자.

파직.

번갯불이 튀는 것과 함께.

"어."

어느새 난 적창을 잡고 있었다.

"화성니임!!"

바로 옆에 있던 레아가 저 멀리 있고 난 해변가에 던져졌던 적창으로 텔레포트 한 것이다.

꽈아악.

말아쥔 적창.

난 이것으로 확신했다.

"와이번 새끼들 이제 뒤졌다."

그때였다.

때마침 와이번 세마리가 오늘도 어김없이 정찰할 요량으로 몰려왔다.

섬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마치 날 약올리 듯.

"레아, 버프."

"넵!"

"피의 축복이 내려집니다."

"생명력과 건강이 상승합니다."

후두둑!

인벤토리에서 해골기사의 창 여러개를 꺼내 해변가에 꽂았다.

"카이삭스의 표식을 새깁니다."

"카이삭스의 표식을 새깁니다."

"카이삭스의 표식을 새깁니다."

"카이삭스의 표식을 새깁니다."

"카이삭스의 표식을 새깁니다."

"카이삭스의 표식을 새깁니다."

"어디 한번 해볼까."

해골기사 창을 잡아 투창한다.

와이번들은 비웃기라도 하듯 더 높이 올라가 투창의 사정거리를 벗어났다.

물론 예상 범주 내의 일이었다.

"카이삭스의 표식을 사용합니다."

파직!

번갯불이 튀는 것과 함께 허공으로 전이했다.

"내가 너네 죽일 거라고 했지."

"레인스톰"

쿠르르릉!!

어느새 떨어지는 빗방울.

난 인벤토리에서 몇개의 창을 꺼내 표식을 새기고 곧장 투창했다.

후욱! 후욱! 후욱!

순식간에 행해진 투창.

세개의 창은 와이번들을 향했다.

그와 동시에.

"리버슬로우"

"대상의 흐름이 느려집니다."

"대상의 힘이 강력합니다. 리버슬로우의 효력이 약화합니다."

하지만 이 정도는 예상했던 일.

잠깐이나마 늦췄다면 성공이나 다름없었다.

퍽! 퍽퍽!!

[크아아아아아아앙!]

투창을 맞은 와이번들의 울부짖음은 고통이 아닌 분노였다.

하지만 난 겁내지 않았다.

콰지지지직!!

"카탈린의 벼락"

이제 주도권은 나한테 있으니까.

오른손에 잡힌 피를 쫓는 벼락.

그것과 동시에 전이하자, 순식간에 내 몸이 와이번에게 꽂힌 투창의 곁으로 이동됐다.

화들짝 놀란 와이번의 반응과 함께 내 입꼬리가 올라갔다.

"뒤져보자."

꽈과광-!!

불별도의 하늘에는 일순. 와이번과 나의 벼락잔치가 벌어졌다.

와이번 소탕 [2]

44화.

쿠르르릉-!!

거뭇한 먹구름을 흙으로 삼은 붉은 꽃이 피었다.

하늘을 수놓듯 피어나 천지를 울리는 굉음을 자아내는 붉은 꽃.

"이쁘다..."

그 꽃은 이전처럼.

화려하게, 강렬하게 피었다.

붉은 꽃은 화성이 피워낸 벼락이었고 레아는 떨어지는 비를 맞으며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와이번.

사람 하나쯤은 가볍게 삼켜버릴 날개 달린 도마뱀.

파충류의 눈과 비늘을 가지고 있는 그들의 크기는 창공의 왕자라고도 불리는 하늘의 주인.

하지만 지금만큼은 그들도 하늘의 주인이라 부르기는 어려웠다.

[캬캭!]

"응, 저기. 저기로 가셨다. 아니 저기... 어? 어디 가셨지?"

촤아아악!!

"화성님!"

"후우!!"

어느새 해변가에 꽂아놨던 해골기사의 창을 쥔 채로 나타난 화성은 다시금 벼락으로 변해 사라졌다.

꽈과광-!!

하늘은 어두워졌고 비가 자꾸 눈으로 떨어져서 어떻게 싸우는지 관찰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레아는 두 손을 모으며 그의 전투를 쫓았다.

'왼쪽, 아니 오른쪽으로...'

와이번은 홀로 다니지 않는다.

항상 둘, 아니면 셋을 이룬다.

그가 싸우고 있는 지금도 마찬가지.

셋이나 되는 와이번과 싸우며 그는 쉴 새 없이 벼락을 내던지고 적창을 휘두르며 표식을 이용해 텔레포트를 반복하고 있다.

그야말로 뇌신이나 다름없는 모습.

[캭!?]

"화성님한테 창은 많으니까."

점점 와이번의 날개는 물론이요, 몸통에도 창들이 꽂혀 고슴도치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그럴수록 와이번들은 화성을 제대로 쫓을 수도 없었다.

잡으려 들면 전이를 쓰고 불을 뿜어내면 텔레포트 하여 자신들의 다리로 이동하기 일쑤였기 때문이다.

서로 부딪치고, 놓치며 성을 내지만 그러면 그럴수록 비에 젖고, 젖으면 붉은 벼락을 맞아 천천히 힘이 떨어지고 있었다.

"강하구나 정말."

화성을 말한 게 아니었다.

그가 강한 건 두말할 것도 없다.

레아는 그의 강함을 안다.

그녀가 보는 건 와이번이었다.

화성이 저렇게 연격을 쏟아붓고 있음에도 쉽게 쓰러지지 않는 와이번들의 생명력에는 그녀라도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다. 쓰러질 듯 쓰러지지 않고 자신의 날개를 퍼덕이며 어떻게든 그를 죽이려 송곳니를 드러냈다.

그때였다.

푸우욱-!! 카탈린을 그리는 적창.

화성의 적창이 와이번의 날개를 크게 찢었다. 바람구멍이 크게 뚫리자 와이번은 균형을 잡지 못하고 빙글빙글 선회하며 추락하기 시작했다.

"저긴 바다인데!!"

풍덩!

빠지는 와이번이 파닥거리는 순간.

파아아! 콰직-!!

[키에에에에!]

바다의 왕자.

서펜트가 쏜살같이 나타나 와이번의 목을 물고 바다속으로 들어가버렸다.

"아! 아까워라!!"

저게 다 화성의 씨앗이 되고 피가 되고 살이 될 놈들인데!

아쉽게도 서펜트한테 뺏겨버렸다.

아쉬움에 레아가 소리쳤다.

"화성님! 바다로 빠뜨리면 안돼요!"

그 또한 바다에 빠진 와이번을 봤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쾅!!

곧장 다른 놈에게 전이했다.

다른 놈이 입에 불을 뿜었지만 적창이 더 빨랐다.

목을 찔러 넣은 적창에서 와이번의 붉은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목에서부터 부풀어 오르던 화염은 피와 함께 옆구리 터진 화염방사기마냥 샛길로 빠져나가 방사됐다.

"큭!"

어마어마한 열기의 화염.

목구멍을 찢어 놨기에 망정이지 제대로 맞았으면 뼈까지 녹을 뻔 했다.

레인스톰을 사용 중이라 먹구름이 가득한데도 순간이지만 하늘이 걷히고 햇빛이 들어왔다.

놈의 화염이 먹구름을 뚫은 거다.

촤아악!

"어우 왜 이렇게 질겨!!"

다시 한번 와이번의 목에 적창을 박아 넣는 화성은 놈의 피를 뒤집어 쓰며 고개를 돌렸다.

피칠갑을 한 그의 모습은 좋게라도 선하다 볼 수 없었다.

[키, 키엑!]

와이번은 우는 건지 분노하는건지 모를 굉음을 뱉으며 브레스를 뿜었다.

콰아아아아아-!!

'못 피해!'

표식을 써 전이하려 했지만 타이밍 좋게 마나가 부족.

할 수 있는 건 죽어가는 와이번의 몸을 사용하며 실드를 쓰는 것 뿐.

"에너지쉴드!"

하루에 한번밖에 쓰지 못하는 쉴드.

"카탈린의 감전과 동화되어 카탈린의 에너지 실드로 강화됩니다."

동료애 같은 건 없는지, 자기 동족이 함께 구워지는 건 관심도 없다는 듯 그를 죽이는 데만 혈안이었다.

그가 탄 와이번의 몸통 절반이 녹아내려 불에 탄 통구이가 됐지만 화성의 피해는 전무했다.

에너지 쉴드는 완벽하게 와이번의 브레스를 막아냈다.

"이 개자식이!"

급하게 푸른 성수를 도핑한 화성이 벼락이 담긴 창을 던지고 전이했다.

파직.

"넌 뒤졌다 개새끼야!"

[키에에에에!!]

푸우욱-!!

"강력한 출혈이 동반됩니다."

다시 한번 와이번의 목에서 피분수가 떨어졌다.

뼈 사이에 끼었는지 적창이 빠지지 않자 화성은 두 손을 치켜들었다.

꽈광-!!

"카탈린의 벼락"

양손에 붉은 벼락을 창처럼 잡아 단숨에 꽂아 넣었다.

콰자자자자자자작-!!

콰아아앙-!!

"위대한 업적을 세우셨습니다."

"최초로 와이번을 쓰러뜨렸습니다."

"2500경험치를 획득합니다."

"150금화를 획득합니다."

"최초업적 보상이 주어집니다."

"업적 보상으로 35000 경험치와 2500금화를 획득합니다."

"업적 보상으로 드레커니의 용살창을 획득합니다."

[드레커니의 용살창] (unique)

-용살자 드레커니가 애용했던 창.

〈더 강한 관통력〉〈더 강한 폭발력〉

--착용제한--

〔근력 제한 40〕x

〔용의 피를 뒤집어 쓴 자〕o

"아이템이고 나발이고!"

휘이이이이잉-!!

고공에서 죽어버린 와이번은 그대로 지면을 향해 곤두박질치려 하고 있었다. 이대로 간다면 바다로 빠진다.

바다로 빠지면 서펜트한테 잡아 먹힐게 분명하니 그럴 수 없었다.

"데몬시드!"

와이번을 데몬시드로 만든다.

〈와이번을 성공적으로 데몬시드로 만들었습니다.〉

"10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데몬시드를 챙긴 즉시 곧장 불별도의 해변가로 전이했다.

파직!

쿵! 쿵! 쿠웅!

떨어지던 운동 가속도까지는 어떻게 하지 못하는 걸까.

전이한 상태 그대로 해변을 데구르르 구르고 나서야 겨우 멈춰 섰다.

"괘, 괜찮으세요!?"

"아, 어... 죽겠다."

"죽어요? 어디가요! 다쳤어요?"

"아니아니. 괜찮아."

호들갑을 떠는 레아를 달래고 나서야 겨우 일어나 모래를 털었다.

'까불다가 죽을 뻔했네.'

솔직히 카이삭스의 표식을 얻고 묘하게 흥분한 상태였다.

아마도 새로 얻은 스킬의 힘을 사용해보고 싶은 호승심도 있었고, 그간 시달렸던 와이번을 떄려 잡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카이삭스의 모습 자체가 내 안의 무언가를 끌어당겼다.

뭐랄까.

동경이라고 할까.

그가 뱉은 호흡. 내지른 걸음.

찔러 넣은 창과 굳건한 뒷모습은 사나이의 피를 끓게 만들었다.

그런 묘한 힘이 있다고 할까.

그래서일지도 모르겠다.

앞뒤 안 가리고 돌격해버린 건.

"후우.... 어딜 남에 농사 망치려고."

어림도 없지.

손안에 있는 데몬시드는 마치 파충류 머리처럼 신기하게 생겼다.

"한 마리는 서펜트가 물어갔고, 한마리는 저쪽에 떨어졌어요. 거의 다 타버렸던데 괜찮을까요?"

"글쎄, 후우.... 한번 봐야지."

싸우던 도중에 와이번의 브레스에 절반정도 숯덩이가 된 녀석이었다.

녀석은 불별도의 미개척지역에 떨어졌는데 이번 기회에 그쪽도 싹다 나무를 베어버려야겠다.

"흠, 처참하긴 하네."

몸 전신이 고슴도치처럼 부러진 창이 꽂혀 있고 상체가 전반적으로 모조리 불타버렸다.

흰 누런 뼈들이 훤히 보였는데 이 상태에서도 데몬시드가 먹힐지는 나도 좀 예상하기 힘들었다.

막연히 될 거라고 생각되기는 한다만 그래도 확인은 해봐야겠지.

"데몬시드."

화아아.

우려와는 달리, 데몬시드는 숯덩이가 되버려도 가능했다.

[와이번의 씨앗]x2

성장기간: 185일.

"화성님 여기 삽이요."

"고마워."

귀엽게 모종삽을 들고 달려온다.

삽을 건네받아 그대로 흙을 팠다.

위치도 생각해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놈이 떨어지면서 적당히 흙이 파헤쳐지고 나무들이 쓰러졌으니 이곳에 심어도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와이번을 최초로 죽였네 어쩌네해도 역시 내가 제일 기대되는 건 데몬시드를 심고 피워낼 때였다.

"뭐가 오르려나."

난 곧장 인벤토리에서 찬양자의 항아리를 꺼냈다.

레아와 내가 물뿌리개라고 부르는 이것만 있다면 급성장은 아무런 문제도 없으니 말이다.

와이번의 성장기간이 꽤 길다.

185일을 달로 치면 6개월.

년으로 치면 반년이다.

반년이나 기다려야 녀석의 성장이 끝나고 열매가 맺힌다는 뜻.

하지만 인간의 시간은 유한하고 그걸 곧이곧대로 기다릴 정도로 토종 한국인의 K-유전자는 인내심이 길지가 않다.

"정을 소모합니다."

"정을 소모합니다."

"정을 소모합니다."

"정을 소모합니다."

"남은 정: 172"

"와이번의 씨앗이 완전한 성장을 이루었습니다."

"와이번의 나무"

"수확 가능 열매: 14"

"응? 4개밖에 안 넣엇는데 왜 벌써 성장해."

보통 하나의 정마다 30일 정도인데 가끔 이렇게 되기도 한다.

본래 두개는 더 써야 했는데 조금 뛰어난 녀석이 숨어 있었던 건지 제물의 급도 차이가 있는 건지 지금으로서는 정확하게 알 수 없었다.

다만 나한텐 개꿀이라는 것뿐.

"이 녀석도 용과네."

서펜트처럼 색이 퍼렇지는 않다.

이녀석은 노란색의 용과였다.

"시퍼런 것보다는 낫네."

허리춤의 단검을 꺼내 반으로 갈라보자 속살은 비슷한다.

뽀얗고 새하얀 살.

그걸 먹어보자.

"음..."

서펜트의 열매와는 또 다른 맛.

뭐랄까.

서펜트의 것이 소고기랑 어울렸다면 이녀석은 돼지고기가 그리워지는 맛이라고 해야할까.

꽤 자극적인 맛이다.

"쌈장 필요없겠는데."

와이번의 용과는 짠기가 가득한데 그게 또 고소한 맛이 있다.

삽겹살이랑 먹으면 쌈장을 따로 안 찍어도 풍미가 가득해서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거 같았다.

레아와 함께 어느 정도 맛을 보고 있자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용장이 발휘됩니다."

"화염 내성이 0.2%상승합니다."

"오..."

서펜트는 독 내성.

와이번은 화염 내성을 올려줬다.

화염 내성이 1% 오른다고해서 뭐가 크게 다르겠다만은, 그게 10%가 되고 50%가 된다면 아마 이야기는 다를 것이다.

"와이번이 불을 뿜기는 했지."

그걸 생각하면 화염 내성은 그들을 사냥할 때 반드시 필요한 준비물.

본래라면 내성류는 아이템으로 올리는 게 일반적이니 능력치와는 달리 우선도가 높은 녀석들이다.

독과 마찬가지고 화염 또한 일반적으로 쓰는 사람이 꽤 되니까.

래벨 랭킹만 보더라도 화염과 연관된 네피림들이 꽤 있다.

악마들도 마찬가지고.

"와이번이 그 세마리만 있을 리는 없을테니까 대비해서 나쁠 건 없지."

내 생각이기는 하지만 와이번의 둥지가 있을 것이다.

거기엔 뭐 와이번 챔피언도 있겠고 그러겠지.

서펜트도 그렇고 와이번도 그렇고 아마 끝도 없이 어디서 나올 거다.

서펜트는 그렇다쳐도 와이번은 간간히 내 과수원을 노릴 테니까 화염 내성을 올려줘서 나쁠 게 없다.

"이러니까 내가 뭍으로 나갈 겨를이 없어."

섬에서도 할 게 너무 많다.

악마의 열매를 먹는 것 말고도 생활을 조금이라도 윤택하기 위해서는 집도 계속 손을 봐줘야 했으니까.

"온돌, 좋았지?"

"네, 엄청 좋았어요!"

"여기에 온돌을 까는 건 너무 대공사라서 못하겠고. 사우나실이라도 만들어야겠다."

얼마 전에 거래소에 올라와 있는 걸 보기는 했다.

꼴랑 10금화에 1인 사우나실을 봤는데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구매했다.

그래도 같이 지내는데 내 것만 살 수는 없어서 레아꺼도 사려고 대기중인데 영 올라오질 않는다.

아무리 그래도 시커먼 아저씨랑 같은 사우나를 교대로 쓰기엔 조금 그렇지 않겠는가. 이게 바로 한번 갔다온 아저씨의 배려랄까.

와이번도 처리했고, 한동안 놈들도 머리가 있다면 다가오지 않을 테니 오늘은 삼겹살이나 먹어야겠다.

"삼겹살 먹자."

"좋아요! 근데 그게 뭐에요?"

"K-삼겹살의 위대함을 알려줄게."

오늘 같은 날은 소주도 한잔 곁들여서 나쁠 게 없겠지.

생각만으로도 군침이 흘렀다.

K-삼겹살

4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