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novel

2

*

[나만의 상점]

-2일 11시간 11분 남음.

[부드러운 빵x10] - 1금화

[붉은 성수x2] - 7금화

[포탈 스크롤] - 20금화

[브로켈의 부적] - 67금화 (품절)

[푸르푸르의 은반지] - 131금화 (품절)

[레인스톰 스킬북] - 666금화

[브로켈의 부적]

-브로켈이 어린시절 지니고 다녔던 애장품. 그녀의 염원을 담았으나 이루어지지 않아 버려진 부적이다.

(프로스트 노바 - 1회)

프로스트 노바.

그 위력은 대단했다.

단 한순간에 수십마리의 그렘린들을 모조리 얼려버리는 게 아닌가.

그 뿐이랴.

성채 일대를 모조리 얼어붙게 만들어 겨울성을 만들어버렸다.

고작 1초 남짓한 시간.

눈깜짝할 사이에 주위의 모든걸 얼려버려 새하얗게 만든 것.

'이게...'

진짜 마법.

그가 사용하는 워터볼 따위의 마법과는 차원이 달랐다.

전율이 일었다. 전신이 짜릿해질 만큼의 통렬한 전율이.

자신이 사용하는 것들은 애들 장난 수준으로 느껴지는 마법.

이것이 진짜배기의 마법이었다.

쩌적, 쩌저적.

"저, 저기...!"

"비켜."

하지만 그럼에도 아직 죽지 않고 움직이려하는 놈이 있다.

[패도적인 그렘린 킹 엘데]

수식언도 종족명도 이름도 있는 놈.

'챔피언이라는 건가.'

보스.

히든 던전의 보스라면 이 정도는 되야 하는 게 맞긴하다.

물론 지금 내 처지에서는 그닥 바라지 않던 놈이지만.

"그냥 죽어줬으면 좋았을텐데."

콰창-!!

놈을 꽁꽁 옭아멨던 얼음이 깨진다.

[크아아아아!!]

괴성.

아니, 비명을 내지른다.

놈 또한 멀쩡하진 않다.

콰직! 지면과 하나로 얼어붙은 다리의 얼음까지 부수진 못했다.

그대로 깨지며 두 다리를 잃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두 눈은 목표를 잃지 않았다. 놈에겐 다리가 없어도 등에 돋아 있는 날개가 있었다.

놈의 무기인 날카로운 적창은 힘있게 머리 옆으로 당겨졌다.

당장이라도 내던져질 적창.

지금 내게는 저 창을 막을 힘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

물론.

"돈 쓰게 만들지 말라고!"

힘이 없어도 돈은 있었다.

[나만의 상점]

-2일 11시간 10분 남음.

[부드러운 빵x10] - 1금화

[붉은 성수x2] - 7금화

[포탈 스크롤] - 20금화

[브로켈의 부적] - 67금화 (품절)

[푸르푸르의 은반지] - 131금화 (품절)

[레인스톰 스킬북] - 666금화

[푸르푸르의 은반지를 구매하셨습니다. 131 골드가 차감됩니다.]

코앞까지 다가온 창날.

사락.

떠오른 푸르푸르의 은반지를 낚아채 놈의 앞에서 끼웠다.

『푸르푸르의 은반지』

-푸르푸르가 애용하던 은반지. 그녀의 기운이 은밀하게 깃들어 있다. 번개 내성 +5 마나 재생 +5 (에너지 쉴드 1일 1회)

"에너지 쉴드."

"에너지 쉴드에 같은 속성인 기프트가 감응합니다. [카탈린의 감전 쉴드]로 업그레이드 되었습니다."

[마력과 생명력 수치에 근거하여 쉴드가 대폭 강화됩니다.]

촤자자자작! 내던져진 적창.

날카로운 창끝이 날 노렸지만 안타깝게도 눈 앞에서 멈췄다.

쾅! 휘리릭.

카탈린의 감전 쉴드에 튕겨나가 하늘로 치솟는 적창과 함께.

"기프트 포인트를 사용하셨습니다."

아직까지 여유로 남겨두었던 스킬 포인트를 사용했다.

〔시드로긴〕

-시드를 섭취하여 모든 능력치를 10분간 일시적으로 강화시킨다. 시드의 원본이 된 제물의 능력치에 근거하여 상승. (이후 24시간동안 모든 능력치 -20% 하락)

"시드로긴을 배우셨습니다."

"시드로긴."

인벤토리에 있는 데몬시드 중 가장 강한 건 애석하게도 또 그렘린이다.

[대전사 그렘린의 씨앗]

"데몬시드를 섭취합니다."

"대전사 그렘린의 잠재력을 일시적으로 100% 발휘합니다!!"

「생명력」 – 104/140 ▶ 104/560

「마나」 - 5/120 ▶ 5/320

「능력치」

근력 – 8 ▶ 28

민첩 – 8 ▶ 28

건강 – 7 ▶ 27

마력 - 6 ▶ 16

휘리리리릭.

척! 튕겨져나가 떨어지는 적창을 잡아챈다.

힘이 넘친다. 체력과 마나 또한 빠르게 차오름이 느껴진다.

일종의 각성제.

대전사 그렘린의 잠재 능력을 모조리 뽑아다 사용한 효과였다.

[카탈린을 그리는 적창]

-그렘린 킹의 피와 뼈를 갈아 만든 적창. (강한 출혈)

[크아아아아아아!!]

자신의 창을 내놓으라는 듯 달려드는 그렘린 킹과 함께.

나 또한 창을 내지른다.

쾅-!

'무슨!'

능력치가 뻥튀기 됐음에도 그렘린 킹의 힘은 상상을 초월했다.

고작 주먹을 휘둘러서 내 창을 튕겨냈으니까.

창을 잡은 두 손이 흔들렸다.

하지만 놓치지 않았다.

이를 악물고 절대 놓지 않았다.

이걸 뺏기면 죽는다.

그 일념뿐.

[카탈린을 그리는 적창의 출혈 효과가 발동합니다.]

촤아악-!

주먹으로 적창을 후려친 반동이 오고 있었다. 자신의 주먹에서 튀어오르는 푸른 피가 새하얗게 얼어붙은 성채를 적셨다.

콰지직!

놈을 스쳐지나간 난 곧장 지면을 즈려밟아 멈추고 다시 적창을 뻗었다.

[크아아아-!]

마치 통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만 같았다. 하여 나 또한 대답했다.

"그럼 이건 어떠냐!!"

콰지지지직!

적창에 휘감긴 검붉은 뇌전.

[카탈린의 감전]이었다.

"소모할 자원이 없습니다."

"마나 대신 생명을 소모합니다."

전신의 피가 땀구멍으로 뽑혀져 나올만한 고통이 엄습했다.

'크윽!'

허나 여기서 주저하면 죽는다.

쾅! 쾅-! 콰아앙!!

힘도, 속도도 몇배나 강해졌다.

놈의 주먹을 피하고, 막고 다시 공격한다. 한번 움직일때마다 주변 건물들이 박살나고 성벽이 부서진다.

그러나. 그럼에도!

승산은 있었다.

"흐아아아압!!"

촤아악-!

[크어어어!]

놈의 피가 한번더 흩뿌려진다.

적창의 출혈 효과가 놈의 피를 더욱 빼낸다. 그거면 된다.

그걸 위해 지금까지 버텼으니까.

"카탈린의 감전이 발동됩니다."

"생명력이 소모됩니다."

검붉은 번개와 함께 내질러진 적창.

저도 모르게 뻗은 그렘린 킹의 주먹에서 흐르는 피가.

푸른 피가.

파지지지지지직-!!

"카탈린의 감전은 피를 따라갑니다."

그렘린 킹 엘데의 오른팔을 구워버렸다.

[카악!]

통렬한 일격에 고통에 찬 비명과 함께 오른팔을 올린 순간.

"죽어!!"

푸욱-!

적창이 놈의 목을 꿰뚫었다.

"적창의 출혈 효과가 발동합니다."

콰아아아-!!

그리고 이내 놈의 목에서 푸른 피가 분수처럼 뿜어졌다.

"그렘린 킹 엘데를 처치하셨습니다."

"위대한 업적을 세우셨습니다."

"히든 보스 '패도적인 그렘린 킹 엘데'를 처치하셨습니다. +3000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홀로 '히든 던전' '불타는 그렘린의 성채'를 클리어 하셨습니다."

"성채 내의 모든 그렘린을 섬멸하셨습니다. 가산점이 주어집니다."

"최초로 히든 던전을 클리어 하셨습니다. +5000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단 한명의 생존자, 레아 드 카탈린을 구출하셨습니다. +1000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보상으로 3000 골드와 아이템 [카탈린을 그리는 적창]을 획득합니다."

"카탈린의 감전이 레벨업 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

.

.

털썩.

"괜찮아요?!"

"히든 던전이 폐쇄됩니다."

"도전자의 포탈이 생성됩니다."

"당신의 명성이 널리 퍼집니다."

*

[레벨이 상승하셨습니다!]

"됐다!"

『진수아』

「아마존 2레벨」

「생명력」 – 80/80 ▶ 80/100

「마나」 - 10/20 ▶ 10/40

「능력치」

근력 – 4 ▶ 5

민첩 – 6 ▶ 7

건강 – 4 ▶ 5

마력 - 1 ▶ 2

스탯 포인트: 3

「스킬」

[매직애로우]

"드디어! 레벨이 올랐어!"

어차피 1위는 데몬시드의 나인이 먹었겠지만 이걸로 2위는 지켰다.

"레벨 순위좀 봐볼까."

[레벨 랭킹]

- 0시간 04분 남음.

4분, 딱이다.

보상이 뿌려지기까지 4분.

"딱 좋게 레벨업 했으니 2위는 따놓은 당상... 어?!"

[랭킹 1위 데몬시드 - Lv.2]

[랭킹 2위 카탈린의 감전 - Lv.2]

[랭킹 3위 네크로맨서 - Lv.2]

[랭킹 4위 아마존 - Lv.2]

"어어!?"

[자신의 순위 - 4위]

"어어어어어어!?"

갑자기 나타난 카탈린의 감전도 모자라 네크로맨서한테까지 밀렸다.

"내 순위... 내 보상!! 하아.....!"

레벨 순위의 보상까지 4분.

보상은 자그마치 감정 스크롤.

"1등 5개. 2등 3개. 3등 2개..."

그리고 4등 5등은 1개씩.

"레벨 순위의 주말 보상이 지급됩니다."

지금까지 쭉, 레벨 순위 2위의 아마존이었던 진수아의 보상.

[주말 랭킹 4위 보상]

-감정 스크롤 1개

감정 스크롤 1개였다.

하지만 절망하는 그녀와는 반대로.

"음..."

[주말 랭킹 1위 보상]

-감정 스크롤 5개

[주말 랭킹 2위 보상]

-감정 스크롤 3개

"이걸 두개로 받아버리네. 이래도 되는건가? 버그인거 같은데..."

머리를 긁적이면서도 올라가는 입꼬리를 감추지 못한 랭킹 1위.

데몬시드. 카탈린의 감전.

이화성이 있었다.

혼돈의 카오스 [1]

12화.

본래라면 3렙이 됐어도 모자람이 없었을 경험치라 생각한다.

이유는 아마도 이것 때문이겠지.

『이화성』

「데몬시드 Lv.2」

「카탈린의 감전 Lv.2」

「생명력」 – 134/160

「마나」 - 40/140

「능력치」

근력 – 9

민첩 – 9

건강 – 8

마력 - 7

포인트: 3

「스킬」

[워터볼] [투척] [돌진]

"카탈린의 감전..."

기프트는 네피림의 능력임과 동시에 하나의 직업이라 봐도 무방하다.

랭킹에서도 나타나 있는 것들은 대개 그런 편이니까.

아마존, 바바리안, 네크로맨서. 등등이 우리가 알고 있는 일반적인 직업.

"오, 소서리스도 있긴 하네."

[42위 소서리스 Lv.1]

어쨌든 직업인거다.

기프트라는 건.

근데 나는 그게 두개다.

그러니까 순위도 두개가 된거다.

[레벨 랭킹]

- 6일 15시간 54분 남음.

- 17일 23시간 12분 남음.

[랭킹 1위 데몬시드 - Lv.2]

[랭킹 2위 카탈린의 감전 - Lv.2]

[랭킹 3위 네크로맨서 - Lv.2]

"기프트가 두개니까..."

순위도 두개.

렙업시 오를 능력치도 두배.

스탯 포인트도 두배.

스킬 포인트도 두배.

그리고.

"경험치도 두배..."

필요 경험치도 두배가 됐다.

콰즈즉.

[근력이 0.1 상승합니다.]

"아니 뭐, 그거야 상관없는데 이래도 되나 싶긴하네... 이거 나중에 버그 사용자라면서 정지 먹는거 아냐?"

내가 말하면서도 어이없다.

지금 세상은 게임처럼 이루어지고 있지만 전혀 게임이 아닌데 말이다.

"일단 능력치는 마력 몰빵하자."

[스탯 포인트 사용하셨습니다.]

[마력이 7 ▶ 10으로 상승합니다.]

「마나」 - 40/140 ▶ 40/200

다른건 악과로 채울 수 있으니까.

애초에 사용하는 스킬들이 마법이니 마력을 올리는 게 맞다.

마나통이 커야 전투도 오래 유지할 수 있으니 말이다.

아무리 악과가 있다고해도.

"마나 회복이 그렇게 빨리 되는 게 아니더라고."

마나 회복률이 한시간에 1 정도?

악과를 먹으면 2, 3배 빨라지지만 그렇다해도 느린 건 매한가지다.

"아마 소서리스 순위가 낮은 것도 이런 메커니즘 때문이겠지."

마법을 쓰고 싶어도 마나 회복이 더디니 사냥 자체가 느릴 수밖에 없다.

나야 악과랑 아이템이 있으니까 꽤 빠른 편이지만 말이다.

『푸르푸르의 은반지』

-푸르푸르가 애용하던 은반지. 그녀의 기운이 은밀하게 깃들어 있다. 번개 내성 +5 마나 재생 +5 (에너지 쉴드 1일 1회)

구매한 반지에 마나 재생이 들어가 있어서 그런가.

본래 한시간에 1씩 오르던 효율이 난 한시간에 6에서 10 정도 오른다.

악과랑 합쳐진 회복률 인듯 하다.

"상관 없지. 카오스 게이트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그때까지는 좀 쉬어야겠다! 아이고 뻐근해."

[카오스 게이트]

-3시간 23분 남음.

"아직 움직이시면 안된다니까요? 상처가 깊어요!"

[캬캭!]

"..."

[히든 던전]

'불타는 그렘린의 성채'를 무사히 클리어한 것도 좋다.

카탈린의 감전이 2레벨이 되서 데몬시드의 렙업이 늦어진 것도 별로 상관없다.

카탈린의 감전은 그만큼 좋은 기프트이고 스킬들이니까.

덕분에 감정서를 8개나 얻게 됐으니 두팔 벌려 환영할 처사다.

근데.

"너는 왜 여기 있는거지?"

레아 드 카탈린.

그렘린의 어머니라는 그녀가 대체 왜 나와 같은 무인도에 있는건지 전혀 모르겠다.

"네? 제가 따라왔으니까요!"

"아니아니, 그런 걸 묻는 게 아니라 어떻게 온거냐고."

"그거야 당신이 포탈에 빨려들어갈때 이렇게! 이렇게 껴안아서!"

곁에 있는 그램을 껴안으며 그때의 상황을 재현했다. 내가 묻고 싶은건 그런게 아니었지만 말이다.

'뭐, 던전 안에 있는 '엔피시' 같은 거 아니었냐고... 아니면 다른 차원에 있는 존재라서 당연히 여기로 같이 못올 줄 알고 개무시했는데.'

그냥 와버렸다.

처음에 기절했던 날 깨운 것도 저 여자였다.

"그래도 이제 괜찮죠? 프리스트님도 저한테 재능이 있다고 했거든요."

"아, 어..."

"다행히 상처는 잘 아물었네요. 정말 다행이에요."

날 더 당황시키는 건 그녀의 기프트였다.

"힐러는 있으면 좋긴하지."

"네?"

"아냐."

그녀의 기프트는 [피의 축복]

피를 가진 존재라면 누구든 축복을 내려 회복을 돕는 능력이다.

덕분에 나도 큰 어려움 없이 상처가 쉽게 회복됐다.

"그렘린의 어머니, 레아 드 카탈린이 동료가 되었습니다."

다만, 왜 제멋대로 동료가 되어버렸느냐는 문제인데...

"이것봐요! 저랑 그램이 땄어요."

"응."

뭔가 붙임성있게 말 걸어오니까 조금 당황스럽다.

이제 스물이 되었을까 싶은 여자애가 서른 넷 아저씨한테 허물없이 구니까 조금 그렇다고해야하나.

어떻게 대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애초에.

'왜 시키지도 않은 일을...'

무인도가 그렇게 편한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 내 나름의 보금자리였는데 지금은 썩 불편해졌다.

"이걸 보금자리라고 표현하는 것도 조금 그러려나."

높이 솟은 데몬트리들.

심어져 있는 새싹난 작물 밭.

그리고 그 근처에 대충 파져 있는 땅굴과 널부러진 침낭.

"심각하긴하네."

아니 심각하다 못해 처참한 생활 환경이었다.

조금 창피하기도 하고.

"보여주고 싶은 게 있어요!"

"뭔데."

"이거봐요."

웬 나뭇잎으로 쌓여진 것이었다.

불속에 들어가 있었는데 꽤 좋은 냄새가 나고 있었다.

"당신이 키운 거 불에 쪘어요! 그냥 먹는 것도 좋지만 불에 익혀 먹는 게 좋을 거 같아서요. 먹어봐요. 아뜨!"

[캭!]

레아가 떨어뜨린 나뭇잎 뭉치를 그램이 겨우 받아냈다.

"에휴, 워터볼."

손안에 모이는 물방울을 잘게 만들어 레아의 손을 적시고 인벤토리에 있는 천을 찢어 감았다.

"잠시 이러고 있어. 화상은 초기에 잡는 게 좋으니까."

"아, 네..."

많이 아팠나.

얼굴이 시뻘겋다.

"이건 맛있겠네. 고마워."

"아, 넵..."

커다란 나뭇잎으로 싸여진 걸 풀어보자 그렘린 열매와 고블린 당근들이 잘라져 들어가 있었다.

그중 몇개를 주워 먹자.

[민첩이 0.02 상승했습니다.]

[건강이 0.005 상승했습니다.]

잘려진 조각들이라 그런지 아주 미세하게 오르고 있었다.

"맛있네."

불에 구워서 그런지 악과들의 단맛이 증폭된 느낌이었다.

그냥 먹는 것도 좋지만 가끔은 이런 맛도 꽤 나쁘지 않았다.

"정말요?!"

"응, 잘 먹을게."

딱히 이런 수고를 하지 않아도 됐다.

악마들로 인해 사회가 무너졌다.

사람이 사람을 경계해도 이상하지 않는 세계이니 괜히 깊게 연루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상황을 보니...

'데리고 있어야겠지.'

무인도를 나갈 방법도 없고, 그렇다고 저 여자를 다시 되돌릴 방법도 딱히 없는 것 같으니.

그래도.

'심심하지는 않겠네.'

적발에 홍안. 한국에서는 흔히 보기 힘든 조합의 외양이다.

게다가 미인이기도하고 행동거지에 품격이 묻어나기도하다.

성의 공주라고 했던가.

그래서 그런거겠지.

"도와줄까요?"

"음? 아니야."

갑옷과 각반등을 벗으려하자 굳이 나서서 도우려 한다.

공주라면서 뭘 자꾸 도우려 할까.

'불안한건가.'

성에서는 자기 빼고 전부 죽어버렸다고 했다.

그렘린들 때문에.

그래서 그럴지도 모른다.

아무것도 하지 못한 자신 탓에 모두가 죽어버렸으니까.

"아무것도 안 해도 돼."

"네? 아, 아녜요. 도움이 되고 싶어요! 저, 여기가 꽤 마음에 들어요. 바다도 아름답고...!"

퍼엉-!

쿵!

돌연 바다쪽에서 거대 괴물이 나타나 날아다니던 새를 잡아먹었다.

꽤 흉흉한 모습이었다.

"푸, 풀숲도 울창하고 이뻐요!"

레아가 당황했는지 바다를 가리켰던 손가락을 풀숲으로 향했다.

그러자.

[그어어어]

떠돌이 좀비가 나타났다.

"꺄악!"

[캬캭!]

나타나자마자 그램이 목을 비틀어 뽑아 버리고는 공 차듯 뻥- 찼다.

[캭!]

어떠냐는 듯 좀비의 피와 몸뚱이를 짓밟은 채 의기양양한 모습.

레아의 얼굴은 하얗게 질려 있었다.

"되돌아갈 방법, 정말 없나?"

"어, 없어요!"

"그래..."

"저, 검도 다룰 줄 알아요! 그러니까 짐이 되지 않을게요!"

어디서 챙겨왔는지 검을 한자루 가지고 있었다.

말로는 기사들한테 몰래 배웠다던데 재능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레아 드 카탈린』

「피의 축복 Lv.1」

「생명력」 – 159/160

「마나」 - 100/100

「능력치」

근력 – 5

민첩 – 6

건강 – 8

마력 - 5

동료가 됐다고 해서 그런지 그녀의 상태창이 보이기도 했다.

의외로 능력치는 준수하다.

아마 그렇겠지.

내가 1레벨 때와 비교하면 능력치 자체는 근사한 편이니까.

잘 키우면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애초에 그녀의 피를 이용해서 만들어졌던 게 그렘린이었으니까.

'피에 뭔가가 있는건가.'

모르겠지만 차차 알아가면 될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보다는 이게 더 중요하다.

[감정 스크롤x 8]

게이트가 열리기까지 시간이 있으니 이걸 써볼 참이다.

[투구] [가죽갑옷] [하의] [건틀릿] [각반부츠] 이 다섯개는 미확인 아이템이다.

이것 전부를 확인한다.

전쟁에 나서기 전에 제 몸을 지킬 장비를 점검하는 건 당연한일이니까.

'전쟁이라...'

떠오르는 상념을 지운다.

중요한 건 앞일을 대비하는 것.

그게 멸망을 향해 달려가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다.

"일단 투구부터."

감정 스크롤 한장을 꺼내 가볍게 찢자 작은 빛무리가 나타나 투구로 스며들었다. 스르르.

"장비의 숨겨진 이름이 드러납니다."

「네피림의 눈」

-시작의 네피림이 지닌 눈의 힘을 빌어 시야를 밝혀주고 볼 수 없는 것들을 보게 해준다.

(시야 +2)

"좋아 다음."

"감정 스크롤x4개를 사용합니다."

"장비의 숨겨진 이름이 드러납니다."

「네피림의 심장」

-시작의 네피림이 지녔던 심장의 힘을 뜯어내 만든 갑옷.

-방어력 +15 (건강 +5)

「네피림의 힘줄」

-시작의 네피림이 지닌 힘줄을 이용해 견고하게 만들어진 하의

-방어력 +10 (건강 +2)

「네피림의 손톱」

-시작의 네피림이 지닌 손톱에 깃든 힘을 엮어 만든 건틀릿.

방어력 + 5 (근력 +2)

「네피림의 발톱」

-시작의 네피림이 지닌 발톱에 깃든 힘을 엮어 만든 각반부츠.

-방어력 +5 (민첩 +2)

「네피림 세트」

-세트 효과

2중: 근력 + 5

4중: 생명력 +100

5중: 마나 +40

[스킬: 피조물의 영광 한달 1회, 신의 피조물 스킬 사용가능.]

「피조물의 영광」

-한달에 1회. 신의 이름을 빌어 자신의 생명력과 마나를 100% 회복합니다.

"대박."

이것만 있다면.

"카오스 게이트 1위도..."

휘리릭, 턱.

내 손 안에서 돌아가는 스킬북.

[레인스톰]과 함께라면 충분히 노려볼만 했다.

혼돈의 카오스 [2]

13화.

『이화성』

「데몬시드 Lv.2」

「카탈린의 감전 Lv.2」

「생명력」 – 194/300 ▼ 194/200

「마나」 - 75/200 ▼ 75/160

「능력치」

근력 – 16 (+7) ▼ 13

민첩 – 11 (+2) ▼ 8

건강 – 15 (+7) ▼ 10

마력 - 10 ▼ 8

「세부 능력치」

명중률 +2 시야 +2 방어력 +40 마나재생 +5 번개내성 10%

[디버프] - 시드로긴 (-20%▼)

-07:23:52 남음.

「스킬」

[워터볼] [투척] [돌진] [레인스톰]

「장비 스킬」

[차지볼트(2)] [에너지쉴드(1)] [피조물의 영광(1)]

네피림갑옷 세트를 전부 착용한 모습이다.

"디버프는 7시간 남았나."

시드로긴을 사용한 여파로 전체 능력치 -20% 디버프가 걸려 있지만 어쩔 수 없다. 그거라도 쓰지 않았으면 죽었을지도 몰랐으니까.

네피림 세트를 착용하고 레인스톰까지 배웠다.

디버프가 있어도 관계없다.

「레인스톰」

-거대한 비구름을 불러 강력한 빗방울을 떨어뜨린다. (물 관련 마법 1개 보유마다 데미지 10%씩 증가) (소모값: 50)

굳이 지금 써보지는 않았다.

어차피 카오스 게이트가서 써보면 될 일이다. 거긴 여기보다 넓고 달려드는 악마들도 많을테니까.

"카탈린의 감전 스킬은..."

『카탈린의 감전 Lv.2』

-카탈린의 감전: 피로 이어진 번개는 피를 쫓는다. 오직 피를 따르는 번개를 일으켜 피해를 부여 한다.

-카탈린의 총애: 뇌전의 효과를 더욱 강하게 만든다.

(뇌속성 데미지 +50%)

데몬시드와는 다르게 애초에 선택지 자체가 없었다.

패시브 속성의 스킬.

아쉽지만 어쩌랴.

'감전은 좋으니까.'

'불타는 그렘린의 성채' 에서도 확인했다시피 효과는 확실했다.

카탈린의 감전이 더욱 강해졌을 게 틀림없다.

게다가.

『카탈린을 그리는 적창』 (uniqe)

-그렘린 킹 엘데의 피와 뼈를 갈아 만든 적창.

(강한 출혈)

내게는 카탈린의 적창도 있으니까.

카탈린의 적창이 주는 출혈 효과는 킹을 상대하면서 충분히 봤다.

유니크 등급의 무기.

지금 이거보다 강력한 무기를 지닌 네피림은 나 말고는 없을거다.

"죽을 고생 다 하고 얻은건데 당연하지. 보기만해도 좋네."

떼깔도 참 곱지.

그렘린 킹 놈이 자기 뼈와 피를 갈아서 만들었다던데 어쩜 이렇게 잘도 만들었는지 모르겠다.

나선형으로 꼬아져 있는 창의 중심부부터 쭉 뻗은 창날.

아름답기 그지 없다.

[나만의 상점]

-0일 21시간 55분 남음.

[부드러운 빵x10] - 1금화 (품절)

[붉은 성수x2] - 7금화 (품절)

[포탈 스크롤] - 20금화 (품절)

[브로켈의 부적] - 67금화 (품절)

[푸르푸르의 은반지] - 131금화 (품절)

[레인스톰 스킬북] - 666금화 (품절)

「금화x 3259」

이렇게 썻는대도 금화가 남아돈다.

"상점 더 없나."

[카오스 상점]

[마력의 엘릭서 - 금화 3000개]

[근력의 엘릭서 - 금화 1000개]

[민첩의 엘릭서 - 금화 1000개]

[건강의 엘릭서 - 금화 1000개]

[간이 성역 - 금화 1000개]

.

.

.

[견습 가슴 갑옷 - 5개]

[견습 판금장화] - 3개]

"솔직히 이거 골드로 사는건 너무 손해지."

돈이 아무리 많다고해도 엘릭서와 간이 성역을 골드로 사는건 가성비가 별로 좋지 않다.

대신.

[붉은 성수 - 5금화]

[푸른 성수 - 20금화]

[빛무리 성수 - 100금화]

[카오스 상점] 목록을 내리자 성수라 적힌 것들이 있었다.

붉은 성수는 나만의 상점에서도 봤던 터라 생명을 채워주는 회복 포션임을 알고 있다.

내가 본 건 이거.

[푸른성수]

-마나 100을 천천히 회복시킵니다.

아무래도 디버프가 걸려 있고, 대부분의 공격을 마나로 사용하려다보니 마나 포션은 충분히 있어야 했다.

"10개만 사둘까."

혹시 모르는 거니까.

"푸른성수x 10개를 구매하셨습니다."

"200금화가 차감됩니다."

[금화x3059]

됐다.

인벤토리에 들어간 성수를 보자 한결 마음이 놓인다.

"침대 같은 건 안 파나. 방공호 재료 같은 거 팔아도 될만한데..."

안타깝게도 그런걸 팔지는 않았다.

카오스 상점은 카오스에서 사용할만한 물건들만 취급하는 모양이었다.

"역시 거래소가 활성화되기를 얌전히 기다려야하나..."

포탈 스크롤도 사봤지만 좌표를 설정하고 사용하는 귀환서일 뿐이다.

무인도를 나갈 순 없다.

그러니 무인도에서 뭔가를 얻기 위해서는 자신과 같은 '네피림' 들의 거래소를 기다리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커뮤니티도 대강 그런식이고."

[네피림 커뮤니티]

[랭킹 1위 뭐하는 새끼임?]

[거래소에 뭐 있는지 아시는분! 사례금 드립니다!]

[의정부 백화점 털어보실 분?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2분만 모심! (여성분이면 더 좋음)]

[거래소 열려면 2렙되야 함?]

게시글들이 대강 이런식이었다.

그중에서 난 카오스에 관한 글들을 중 몇개를 들어갔다.

[카오스에 관해서...]

-본인. 현재 랭킹 20위대의 고레벨 랭커인데 카오스 게이트에 관한 정보가 너무 부족해서 끄적여 봄. 이거 제대로 못 막으면 한국에 악마들 많아진다던데 사실이겠지?

└사실이겠지... 애초에 게이트 열리는 거 자체가 악마들 침공 때문이라고 명시 되어 있잖아요.

└걱정되니까 하는 말이죠... ㅠㅠ

└랭커들이 막아주겠지 ㅎㅇㅌ

└랭킹 1위 나인 느님이 있으니 어떻게든 될거임 ㅇㅇ

└나인이 너네 밥 먹여줌? 왜케 물고 빰? 적당히좀;

└좀비들 피해서 참치캔 구하다 구울만나서 뒈져라 10련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말 심하노!

└급발진 개웃기넼ㅋㅋ

"그만 보자..."

내가 커뮤니티를 잘 안 보는 이유다. 영양가가 없다.

제대로 된 정보를 뿌리는 사람은 극소수고 잘 없다.

그럼에도 내가 커뮤니티를 간간히 들어가는 이유는 이런 사람들 때문이다.

[수식어에 관해서]

-랭킹 42위 관찰자입니다. 오늘은 수식어에 관해서 제가 알아낸 정보 공유해보려고 합니다.

지금까지 알아낸 수식어는 [저주] [냉기의] [화염의] [강력한] [쾌속의] [돌가죽] [마법저항] 입니다.

저주는 말 그대로 주변에 다가가기만 해도 저주를 거는 부류입니다.

냉기는 냉기를 뿌리고 화염은 화염을 뿌리는 경우나 폭발하기도 합니다. 꼭 조심하셔야 해요.

그리고 강력한은 일반 악마에 비해서 힘이 2, 3배 강합니다. 쾌속도 그런 유형으로 빠르고요.

제가 꽤 애먹은 타입은 돌가죽과 마법저항이 있는데 전 마법저항이 특히나 까다로웠습니다.

마법저항은 말 그대로 마법 저항력이 강해서 마법 공격이 거의 통하지 않는 녀석이었거든요.

전 매직볼트를 주로 사용하는 마검사 타입이라 주력 딜링기가 통하지 않아 꽤 애먹었습니다. 그렇다고 녀석이 둔한 것도 아니었거든요.

겨우겨우 잡긴 했는데 아무래도 또 이런 수식어를 가진 엘리트 악마를 마주친다면 도망갈 거 같습니다.

└어떻게 잡으심?

└좁은 곳으로 유인해서 꼼짝 못하게 만들고 두들겼어요.

└돌가죽이랑 마법저항 둘다 가지고 있는 악마는 어떡하나요?

└도망가시는 편이...

└헉

└근데 돌가죽이랑 마법저항이 완벽하게 딜이 안 들어가는 건 아니라서 결국 때리다보면 죽더라고요. 전 좀비를 만났는데 다른 악마는 또 어떨지는 모르겠네요! ㅎㅇㅌ!

"유익해."

돌가죽이랑 마법저항.

다른 사람들은 활동반경이 넓어서 그런지 수식어를 가진 악마들을 제법 많이 만나는 모양이다.

노말, 레어, 엘리트, 챔피언.

같은 악마들 중에서도 특히나 수식어와 진명을 가진 악마들을 이런식으로 분류해서 부른다.

난 그중에서도 노말과 챔피언밖에 만나보지 못했다.

아마 대다수는 레어나 엘리트 악마들을 자주 만나는 편이겠지.

그마저도 못하는 사람들도 부지기수일테고.

[성남시 시내 경찰서 앞 i이쁜치과 지하에서 도움부탁드려요...]

-좀비들 때문에 갇혀서 오도가도 못하고 있어요. 배가 고파요. 제발 누구나 아무나 구해주세요... 제발.

"쯧."

구원 요청 글이 하루에도 수십개.

아니, 수만개씩 쏟아진다.

유익한 글이 있더라도 내가 커뮤니티를 잘 보지 않는 이유다.

안타까워서 도와주고 싶지만, 결국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없었으니까.

"랭킹 1위면 뭘하나... 무인도에 갇혀서 아무데도 못가는데."

커뮤니티 창을 끄고 기지개나 한번 펴고 일어나 인벤토리에서 데몬시드 꺼내 살폈다.

[패도적인 그렘린 킹 엘데의 씨앗]

성장시간: 100일

자그마치 성장기간이 100일.

얼마나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길래 100일이나 되는 걸까 궁금하기도 했지만 섣부르게 심지 않았다.

'보험은 많을 수록 좋으니까.'

이번에 찍은 스킬.

[시드로긴.]

씨앗의 힘을 일시적으로 얻을 수 있는 이 힘이 있었기에 엘데와의 싸움에서도 승리할 수 있었다.

이 스킬의 장점은 일시적 각성 효과와 함께 무엇으로 만든 씨앗이느냐에 따라 효과의 폭이 달라진다.

그러니 아직 갖고 있는거다.

혹시 모르지 않는가. 지금의 힘으로도 타개할 수 없는 상황을 [시드로긴]으로 돌파할지 모르니까.

"근데 심고싶다... 맛있겠지?"

자그마치 챔피언 랭크.

심으면 얼마나 달고 맛있는 열매가 맺힐까. 상상만해도 침이 고였다.

"화성님! 저, 준비 끝났어요!"

그때 돌연 레아가 다가왔다.

"... 뭐가?"

"저도 싸울 준비요!"

어디서 주워 입었는지 입고 있던 드레스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이상한 옷을 입고 있었다.

마치, 드레스를 찢어서 몸에 달라붙게 만든 것만 같은... 해괴한 꼴.

아니 애초에.

"레아, 너도 싸울 수 있나?"

"네!"

검을 들어보이며 활기차게 말한다.

"카탈린식 검술을 배웠어요."

하기사. 상태창에 나와있는 능력치는 꽤 준수한 편이었다.

"아니... 애초에 카오스 게이트 갈 수가 있는거야?"

"네! 저도 네피림인걸요!"

"아... 그래?"

"네! 자그마치 랭킹 12592위에요!"

"그렇군..."

그렇게 된 모양이다.

12592위라니.

생각보다는 높은 것 같기도 하고.

'그러고보니 우리나라 랭킹순위는 몇까지 있는거지.'

주르륵 내려보니 대충 일백만 순위까지 있었다.

"네피림이라..."

네피림.

그러고보니 레아 또한 기프트를 지니고 있는 네피림이다.

그럼 레벨이 오르면.

"상점도 열 수 있으려나."

나만의 상점은 일주일에 한번 품목이 갱신된다.

가장 좋은 건 비싸지만, 그만큼 쓸만한 것들이 나온다.

[레인스톰]이나 [브란켈의 부적]처럼.

"괜찮네."

며칠 뒤, 갱신되는 내 상점에서 쓸만한 게 없다면 레아의 상점을 내가 대신 구매해서 사도 되는 것 아닌가.

"키워도 될거 같네."

"네?"

'그러고보니 레아의 근력이 5였던가. 좀 모자라긴 하네.'

난 인벤토리에서 [사냥꾼의 그렘린 열매]를 건넸다.

히든 던전에서 사냥한 덕분에 악과는 널널하게 있다.

시간이 지나면 더 많이 생길테니 이 정도를 아까워 할 필요는 없겠지.

이건 투자다.

게다가.

"갈꺼라면 준비해."

난 카오스 상점에서 견습기사 갑옷을 몇개 사서 레아에게 줬다.

저런 천쪼가리 엮어놓은 옷은 도저히 못 봐주겠으니.

"카오스 게이트가 곧 열리니까."

"네, 넵!!"

[카오스 게이트]

-0일 0시간 1분 남음.

레아가 부랴부랴 갑옷을 걸치며 부산떠는 그때.

[카오스 게이트가 열립니다.]

쩌어어억!

허공에서 아가리를 벌리며 찢어진 포탈이 열렸다.

그 안에 자리한 것은 잿가루가 휘날리는 전장.

반쯤 부서진 성벽.

그리고 물밀듯 쇄도하는 능선 너머의 검은물결. 불사의 군단이라고도 말하는 죽지 않는 뼈다귀들.

스켈레톤 군대였다.

"아....."

뼈만 남은 군대.

그들에게는 독도 피도 없다.

페스틱사드도 카탈린의 감전도 제대로 사용할 수 없는.

"좆됐네."

그들은 내 하드카운터나 다름 없는 악마 군대였다.

혼돈의 카오스 [3]

14화.

잿가루만이 휘날리는 삭막한 대지.

그 위에 선 뼈만 남은 군대.

들고 있는 것은 녹슬고 이빨 빠진 볼품없는 검이지만 흉흉한 죽음의 기운은 뜨거운 피를 지닌 이들에게 강렬한 탐욕의 눈빛을 향한다.

[카오스 게이트가 시작되었습니다.]

[결속된 네피림은 모두, 그가 이끄는 불사의 군대를 토벌하십시오.]

[게이트의 성역이 수복되기 전까지 바사르 성채에 잠들어 있는 차원석을 지켜내십시오. 차원석의 수호 실패시 '대한민국'에 [대악마]가 현신하게 될 것입니다.]

[대악마가 현신하면 하위 악마들의 전투력이 3배 상승하고 지능적인 학살이 시작될 것입니다.]

[침공하는 악마들을 막아 반드시 당신들의 차원을 지켜내십시오.]

(카오스 게이트가 수복되기까지 23시간 59분 55초 남았습니다.)

[신의 은총 아래 태어난 이여, 그대들에게 신의 행운이 깃들기를.]

장황한 메시지가 끝이 났다.

이내 보이는 것은 진군을 시작하는 스켈레톤 군대.

그와 반대로 우리쪽은 웅성거리는 소음이 성채를 지배했다.

"불사의 군대? 이, 이거 우리가 막을 수 있는거야!?"

"좀비들이나 나올 줄 알았더니 저 해골들은 뭐야... 이럴줄 알았으면 안왔지! 도, 돌려보내줘!!"

"그래 돌려보내줘! 이야기가 다르잖아! 적어도 성채 안으로 들여보내줘야 할 거 아냐!"

웅성웅성.

잿가루 휘날리는 바사르 성채.

그곳의 중심에 자리한 결정처럼 생긴 거대한 돌, '차원석'의 모습이 꽤 돋보인다.

"디펜스 게임이네."

소란스러운 가운데 내 눈은 보랗고 푸른 차원석을 바라보고 있었다.

오묘한 빛을 내는 차원석.

아마도 이걸 지켜내야, 대한민국 차원의 결계인 성역이란 게 수복되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악마의 침공.

카오스 게이트라는 것이었다.

"화성님, 어떡할까요?"

"일단 조용하고 있어보자."

이곳에 모여있는 네피림들의 숫자는 십만명이 훨씬 넘는다.

대단위 숫자가 포탈을 타고 한순간에 넘어온 탓이었다.

'저쪽 멀리에도 다 따로따로 있네.'

차원석은 하나가 아닌 듯, 한참 멀리에 성채들이 여럿 보였다.

그 앞에는 우리들처럼 네피림들이 모여 있었다.

'랭킹 순위가 일백만명까지 있었으니까 대략 그정도 모인건가?'

대한민국 네피림 VS 불사의 군대.

"숫자는 대략 비슷하려나."

능선에서부터 천천히 걸어오고 있는 터라 정확한 숫자는 모르겠지만...

"끝도 없이 몰려오고 있어요!"

"그러네."

절대 우리보다 숫자가 적지는 않아 보였다. 백만명은 가볍게 웃도는 숫자이지 않을까.

[네피림의 눈]에 붙어 있는 시야+2 때문인지 저 멀리 불사의 군대 놈들의 이름들이 아주 잘 보인다.

[해골병사] [해골궁수] [해골창병]

[해골전사] [해골방패병] [해골기사]

[불타는 죽음의 기사왕 오그]

보스까지 있는 걸 보니, 그냥 게임에서 자주 보였던 카오스 던전처럼 가벼운 마음으로 막아내야 하는 건 아닌 모양이다.

'그렘린 킹 엘데처럼 종족명이랑 이름 모두가 있는 놈이다.'

챔피언. 그렘린 킹도 강했는데 저 녀석은 또 얼마나 강할까.

그나마 다행이라면 나 혼자 싸워야 하는 상황이 아니라는거지만...

"진짜 그냥 전쟁이네."

이쯤되니 게임하는 마음으로 여겼던 나 조차도 긴장되기 시작했다.

하도 시스템이 게임처럼 만들어져서 간혹 착각하는 이들이 있지만 이번 기회에 그들도 알았을 거다.

이건 게임이 아니다.

그 사실을 확인이라도 시켜주듯.

후우웅-!

"돌려보내줘!! 돌려보내달라고!!"

"어, 저거 뭐지?"

애새끼마냥 떼쓰던 놈들 중 하나가.

"돌려보내..."

퍼억!!

날아든 커다란 창에 맞아 즉사했다.

"꺄, 꺄아아아아악!!"

"으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아!!"

눈 앞에서 사람이 꼬챙이처럼 꽂혀 성벽에 처박혀 죽었다.

안 그래도 불안감으로 웅성거리던 사람들은 저마다 달아나기 시작했다.

목적 잃은 발은 땅을 제대로 지지하지 못했고 넘어지고 쓰러지기를 반복하면서도 어딘가로 달아나려 애썼다.

그래봤자 여기서 달아날 수 있는 곳은 전장밖에 없는대도 말이다.

"꺅!"

"조심해."

"아, 네..."

멘탈이 박살난 사람들이 여기저기 도망치다 레아를 밀쳤다.

십만명 정도가 빼곡하게 모여있다 달아나자 넘어진채로 짓밟힌 사람들도 꽤 많이 보인다.

저러다 압사라도 당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비규환이다.

"당나라 군대가 따로없네."

카오스 게이트는 게임이 아니다.

불사의 군대를 막아내지 못한다면 아마도 한국은 더욱 많은 위험에 노출되고 말거다.

어째서 악마들이 나타나고 이런 힘들이 주어졌는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건.

명백한 인류의 적이 존재한다는 사실과 그들을 섬멸하지 못한다면 도리어 멸망하는 건 우리라는 것.

그러니 내가 할 일은 하나다.

"싸워야 해."

그리고 그건 여기 있는 사람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화성님?"

모두가 죽음으로부터 멀어지려 달아나는 데 집중할 때.

난 오히려 그것에게 가까워졌다.

길은 뚫려 있으니 쉬웠다.

성벽에 꽂혀 있는 사내. 한순간에 절명한 창에 손을 가져갔다.

[해골기사의 창]

-죽음을 빼앗긴 어느 기사의 창.

꽤 고품질의 창이다.

창대에 손을 가져가 뽑아내려 했으나 잘 뽑히지 않을 정도로 강하게 성벽에 박혀 있었다.

근력 +12인 내가 뽑으려고해도 안 뽑힐 정도로 강하게 말이다.

"흡!"

조금 더 힘주자 창이 뽑혔고 [해골기사의 창]을 인벤토리에 챙겼다.

"당신, 의로운 사람이군요. 저도 돕겠습니다."

그때 누군가가 다가와 전사자의 시체를 도우려 했다. 하지만 난 됐다는 듯 손을 들어 그가 다가오는 걸 저지했다. 적들이 몰려오고 있는 시체를 치울 시간 따위는 없다.

"필요 없습니다."

철푸덕. 쓰러지는 시체의 위에 난 데몬시드를 꺼내 올렸다.

"뭐하는겁니까?"

"미안한 말이지만 살 사람은 살아야지. 안 그래요?"

[그렘린 씨앗을 제물성장 시키겠습니까?]

죽은 사람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인류의 존망을 건 전쟁이다.

죽어서라도 도움이 되면 이 사람한테도 좋은 일 아니겠는가.

"제물성장."

시체가 사라지고 그 자리에 한 그루의 나무가 치솟는다.

빛으로 성장하는 데몬 트리의 나뭇가지를 잡아 올라갔다.

열린 열매는 5개.

난 그중 하나를 따 씹어 먹고는 높은 위치에서 전황을 살피기로 했다.

[그렘린의 열매를 섭취해 민첩이 0.1 상승합니다.]

어차피 디버프에 걸려서 능력치가 -20%가 된 나는 전장에서 큰 도움이 되지 못한다.

힘을 비축하고 있다가 상황봐서 온전한 때에 도움을 주는 편이 좋다.

'난 원거리 법사니까.'

「생명력」 – 194/300 ▼ 194/200

「마나」 - 75/200 ▼ 75/160

「능력치」

근력 – 16 (+7) ▼ 13

민첩 – 11 (+2) ▼ 8

건강 – 15 (+7) ▼ 10

마력 - 10 ▼ 8

디버프 걸려 있는 채로는 아마 그렇게 큰 도움은 못 되겠지.

악과를 먹으면서 소모되어 있는 생명력과 마나를 채우고 디버프가 해제되는 3시간 정도 뒤부터 전장에 합류하는 게 좋을거다.

'내가 없더라도 다른 랭커들이 활약해주겠지. 디버프걸린 나보다는 지금 걔들이 더 쎌테니까.'

솔직히 내 기프트와 스킬들은 전투에 특화되었다기보다는 비전투군에 더 적합하지 않은가.

애초에 카탈린의 감전은 피가 없는 대상한테는 쓰지도 못하고 데몬시드도 전투에 활용할 수는 없다.

그나마 페스틱사드가 있는데...

"해골들한테 독이 통할리 없고."

사용할 수 있는 건 워터볼이나 레인스톰 뿐이니 힘을 비축했다가 합류하는 편이 더 나을거다.

애초에.

「레인스톰」

-거대한 비구름을 불러 강력한 빗방울을 떨어뜨린다. (물 속성 마법 1개 보유마다 데미지 10%씩 증가)

(소모:마나 50)

레인스톰은 잡아먹는 마나가 굉장히 많은 마법이기도 했으니까.

지금사용하는 것보다는 마나를 모았다가 한번에 두번을 연달아 사용하는 편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이곳의 전장은 드넓은 평야이고 적들의 수는 백만이 넘어가는 대군이었으니까.

"활이라도 쏘면서 기다려볼까."

[디버프] - 시드로긴 (-20%▼)

-03:23:52 남음.

어차피 카오스 게이트의 전장은 24시간 동안 막아내는 디펜스 유형.

3시간 정도야 막아낼 수 있겠지.

*

"으, 으아아아앙아악!"

콰직!!

쓰러진 사람의 골통을 내려치는 해골병사의 도끼에 사방으로 붉은 피가 튀었다. 잿빛의 땅에 내려 앉은 붉은 피는 이내 차갑게 식었다.

"전열을 가다듬어라! 방어선을 구축해! 구축!! 근접직군은 막고! 원거리 들은 아군 맞추지 마!!"

"당신이 뭔데 명령이야!?"

"그럼 그냥 뒈지던지!"

퍼억!

부서지는 해골병사의 뼈다귀가 쓰러졌다고 다시 움직인다.

뼈들이 맞춰지며 다시금 일어나려 하는 스켈레톤의 두개골을 도끼로 박살낸 사내가 큰 소리로 외쳤다.

"머리를 박살내!! 안 그럼 다시 일어나니까!!"

전장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전황이 불리하네요..."

망원경으로 전황을 살피는 사내는 랭킹 49위의 관찰자라는 기프트를 가지고 있는 자였다.

대략적으로 악마의 특성과 능력치등을 수치로 알 수 있는 자.

간간히 커뮤니티에 공략 글을 쓰는 장본인이기도 했다.

"상황은 어때요?"

"불리해요. 백만명이 모여있다고해도 겁먹은 사람들이 절반이라서 제대로 싸우려고 하지도 않아요."

그러다보니 눈먼 화살에 맞거나 던져진 창에 맞아 목숨을 잃는 중이다.

제대로된 리더.

군대로 따지면 지휘관이 없다.

그러한 이유로 통솔이 되지 않으니 제대로 된 전투를 이어가는 거 자체가 불가능한 시점이었다.

"그에 반해 저쪽은 잘 통솔되고 있죠. 지휘관의 유무가 커요."

부대 단위로 통솔되는 불사의 군대는 말을 타고 있는 기사들에 의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해골 병사의 스펙 자체는 뛰어나지 않지만..."

망설임이 없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니 숫자가 비슷하다하더라도 전열이 밀리는 게 당연하다.

"고마워요, 관찰자."

"아닙니다. 랭킹 2위 아마존을 뵈서 제가 더 영광입니다."

"지금은 2위 아닌데..."

랭킹 2위 아마존이었지만, 그럼에도 초반의 임팩트 때문에 아직도 2위라 불리는 진수아였다.

"최초 랭킹은 2위시잖아요. 아직도 2위라고 하면 다들 아마존님을 떠올릴 겁니다."

스윽, 탕!

활시위를 당기고 쏘아내는 아마존의 활솜씨는 간결, 정확했다.

퍽-!

해골병사의 머리통만 노려서 박살내는 그녀의 궁술은 활을 사용하는 네피림들이라도 놀라워했으니까.

그 뿐이랴.

날아드는 도끼를 피하고 해골 병사의 등을 밟아 반대편에 화살을 날리며 근접 전투까지 눙수능란하게 벌이고 있는 자가 바로 아마존, 진수아다.

그녀의 기프트는 그리 놀라운 게 아니다. 그녀와 같은 아마존이라 불리는 기프트를 가진 자는 많았으니까.

하지만 그녀보다 잘 싸우는 아마존은 많지 않다.

"관찰자! 혹시, 저 사람은 확인해봤나요?"

"저기 나무에 올라탄 사람이요?"

"네. 혹시..."

나무 위에 앉아 전장을 구경하고 있는 이상한 사람.

진수아의 눈이 그 사내를 의심스럽게 바라봤다.

"랭킹 1위 아니냐고요? 하하, 저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아닐겁니다."

"이유는요?"

"아 그게... 저는 대상의 대략적인 정보가 색이랑 숫자로 떠오르는데..."

"그러는데요?"

"저 사람, 녹색이에요."

퍽!! 해골의 두개골을 박살낸 관찰자가 숨을 고르며 말을 이었다.

"녹색이요?"

"네, 병이나 상처 입어 병약한 사람은 녹색으로 뜨거든요."

그의 색은 녹색.

악마들의 등장이후, 꽤 많은 사람들을 만나본 관찰자이기에 안다.

녹색으로 변한 사람은 큰 상처를 입었거나 좀비에게 감염되어 곧 죽을 사람이라는 걸.

"숫자는요? 숫자로도 떠오른다고 했잖아요. 그 뭐라고 했었죠."

"처치한 악마의 숫자를 뜻하는거라고 추측하고 있습니다."

[진수아 - (파랑) 1243]

대부분의 사람들은 흰색.

하지만 간혹 강한 사람들을 보면 푸른색으로 보이고는 한다.

그의 기프트는 관찰자.

시스템적으로 파랑색은 아이템을 구분하는 희귀.

즉 레어 등급과 일맥상통한다.

[진수아 - (파랑) 1245]

말하면서도 진수아의 화살이 해골병사들의 두개골을 박살낸다.

숫자 수치는 점점 올라갔다.

그에 반해, 저 나무 위에 올라탄 사내의 숫자는...

[이화성 - (녹) 248]

랭킹 2위였던 아마존보다 훨씬 낮은 편이다.

데몬시드라면 랭킹 1위에서 내려오질 않는 왕좌에 앉은 사내.

현재 레벨 랭킹 또한 1위를 석권한 인물이 바로 그 자다. 이변 시작 9초만에 악마를 박살낸 사내. 그런 랭커중의 랭커가 죽인 악마의 숫자가 겨우 세자릿 수일리 없지 않은가.

"비전투직 군일 겁니다. 나무를 만들어낸 걸 보면 말이죠."

"... 그렇겠죠?"

아쉬움 가득한 음성.

관찰자는 아마존을 이해했다.

불리하기 짝이 없는 전황.

이때야 말로 그들에겐 랭킹 1위의 존재가 더없이 필요했었으니.

"248마리의 악마 처치에 병들기까지 한 사람입니다. 제 기프트를 걸고 보장할 수 있습니다."

저 사람은 절대로.

"랭킹 1위가 아닙니다."

우르르 쾅쾅!!

"비가..."

애타는 속은 아는지 모르는지.

오라는 랭킹1위는 오지 않고 전장의 치열함을 더하기나 할 음울한 먹구름만이 몰려 오고 있었다.

근데...

"비가... 반짝이네요...?"

내리는 비는 왜 인지, 묘하게 황금빛을 띠며 반짝거렸다.

혼돈의 카오스 [4]

15화.

천둥을 동반한 먹구름이 몰려왔다.

드넓은 평야는 삭막함을 연출하려는 듯 잿가루가 휘날렸다.

풀들은 재로 변해 불사의 군대의 발에 짓밟혀 재로 휘날린다.

하여 사람들은 이곳이 공간과 공간 사이의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차원의 경계가 아닐까 했다.

하지만 그 생각은 틀린 모양이다.

누구도 이곳에서 먹구름이 생겨나고 비바람이 불어닥칠 줄은 몰랐으니까.

"왜 비가 오고 지랄이야..."

아비규환의 전쟁터.

해골들과 한데 섞이며 방패를 휘두르는 자가 있으면 그림자에서 뻗어나오는 손을 이용해 싸우는 자도 있었다. 검을 들고 울먹이는 자가 있는가 하면, 지휘봉을 검처럼 휘두르며 맹렬히 싸우는 자도 있었다.

"방어해 방어! 방어선이 무너지면 끝장이라고!! 억!!"

바바리안은 그중에서도 전장의 선봉에 선 용사중의 용사였다.

누가 시키지 않았음에도 우왕좌왕하는 네피림들을 통솔하고 방어선을 구축해 전방과 후방의 전열을 만들어내 필사적으로 싸웠다.

딱히 어떠한 의무감에 한 일이 아니다. 그는 과거 용역 깡패였다.

하는 일은 양아치. 온몸에 문신을 하고 사회의 약자들을 괴롭혔다.

그러다 그런 일에 실증을 느끼고 이종격투기를 배우며 운동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금세 관뒀다.

깡패짓 할 때보다 피가 끓지 않았고, 경기가 잡혀 싸우기까지 자신을 담금질하는 기간이 지독하게 지루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그는 현 상황에 나름 만족하고 있었다.

눈 뜨면 피 튀기는 죽음의 경계선이 언제나 펼쳐졌기 때문이었다.

아드레날린이 항상 폭발하니 절로 신이 나고 목청은 커졌다.

물론.

푹!

그것도 해골 병사의 눈먼 창에 옆구리가 꿰뚫리기 전까지 말이다.

"젠, 장! 빌어먹을 뼈다귀 새끼들!"

겨우 쥐어짠 힘으로 해골병사의 골통을 깨부순 바바리안이 철푸덕 쓰러졌다.

툭, 투둑.

빗방울이 눈동자로 떨어져 시야를 얼룩지게 만들었다.

"사제!! 여기 부상자가 있다!!"

"여기야 여기! 젠장 이 자식 개무거워서 들고가기 힘들어!"

"힐러 어딨냐! 힐러!!"

고래고래 소리치는 사람들과 자신의 상황이 맞물리지 않는다.

마치 다른 풍경인 것처럼 흐릿해지고 먹먹한 소리만이 고막을 때렸다.

'죽나? 아... 괜히 나댔다.'

이럴 줄 알았다면 그냥 조용히 싸울 걸. 괜히 소리지르면서 까불었더니 놈들의 표적이 되었다.

꿀렁꿀렁 쏟아지는 피는 어찌해도 멎을 기색이 없다.

힘이 빠졌다.

주변 놈들이 자신을 구하려 하면서도 해골 군대 때문에 뒷걸음질치다 여기저기를 발로 밟아댔다.

고통에 신음했으나 움직이지도 않아 제대로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러다 이내 몸에 감각이 둔해져 고통도 느끼지 못했다.

제 위에 쓰러지는 함께 싸웠던 이름 모를 여자의 시체를 바라보다 멍한 눈으로 하늘을 바라봤다.

"그래도 여자가 올라타서..."

그나마 기분이 덜 나쁘다고 생각할 무렵이었다.

죽음이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바바리안, 장동철의 눈앞에 작은 메시지 창이 드리워졌다.

[빛무리 성수의 영향으로 천천히 생명력이 회복됩니다.]

"...?"

바닥을 드러내고 있던 바바리안의 생명력이 조금씩 차오르기 시작했다.

*

하늘을 가린 먹구름.

바라본 하늘은 어두운 전황을 더욱 어둡게 만들었고 이내 빗방울까지 하나 둘 떨어지게 만들었다.

툭, 투둑.

옷가지에 닿아 떨어지는 빗방울의 두께가 꽤 굵었다.

무게감이 느껴질 정도였으니까.

"으아아아아악!!"

떨어지는 빗방울처럼 생명이 쓰러졌다.

그와 동시에.

[제 1 성채의 차원석이 공격 당하고 있습니다!]

[제 1 성채의 '불사의 군대'에게 침공당해 차원석이 힘을 잃습니다.]

[수복까지 6일 23시간 59분 59초 남았습니다.]

[제 2 성채의 차원석이 공격 당하고 있습니다!]

[제 3 성채의 차원석이 공격 당하고 있습니다!]

[제 4 성채의 차원석이 공격 당하고 있습니다!]

[제 5 성채의 차원석이 공격 당하고 있습니다!]

"아아... 이대로면!!"

"뭐해! 막아!! 씨발 막으라고!!"

"지금 그냥 막을 때가 아니야! 제기랄 도망가야 한다고!!"

[제 1 성채의 차원석이 폭발합니다.]

"피, 피해!!"

콰아아아아앙-!!

성채를 정복하려 달라붙었던 해골들이 폭발과 함께 비산했다.

휘이이, 툭.

콰직! 튕겨져 나온 해골 머리를 짓밟는다.

은색의 판금장화.

뒤로 젖힌 후드에선 은색의 머리칼이 빠져나왔고, 허릿춤에서 뽑아낸 검 또한 은색으로 형형하게 빛났다.

그녀는 이내 바닥에 떨어진 해골 기사의 검에 손을 가져갔다.

"일어나라 강철 기사."

해골 기사가 떨어뜨린 검.

그것에 손을 대자 검이 액체처럼 변화하며 한명의 강철 기사로 변했다.

"녹슬기 전에 끝내야겠어."

후우.

가쁜 숨을 가다듬으며 들고 있는 검을 척! 다시 맞잡았다.

쿵! 그러자 그녀의 등 뒤로 철의 기사들 수십이 검을 들고 기립했다.

"돌격!!"

쿵! 쿵! 쿵! 쿵!!

전장으로 뛰어 들어가는 은색의 강철 군주와 철기사들이 전장은 잠시나마 은빛으로 물들었다.

촤악!! 퍼억!

베고 짓밟는다.

허나 그럼에도 전황은 불리했다.

물밀듯 밀려들어오는 해골 병사들은 그 끝이 없는 것만 같았다.

강철군주란 기프트를 가진 그녀 또한 '불사군대'의 인해전술에는 도통 다른 타계책이 없었다.

어느새 숨은 턱끝까지 차오르고 은색 투구속에 스며드는 빗방울은 자꾸만 시야를 가린다.

은색의 갑옷 사이로 들어오는 적의 창칼과 눈먼 화살은 갑옷을 뚫지는 못해도 적절한 피해를 줬다.

체력은 떨어지자 자연스레 입는 피해가 커지기 시작했다.

단순한 찰과상은 깊은 상해와 출혈로 이어졌고 돌격하던 강철 기사들은 어느새 그녀를 지키기 위해 소극적인 전술을 취하고 있었다.

푹.

검을 지면에 꽂아 넣은 강철 군주는 흘러내리는 핏물이 빗방울에 흐려지는 것을 보며 차오른 숨을 골랐다.

[제 5 성채의 차원석이 공격 당하고 있습니다!]

.

.

.

[제 9 성채의....]

성채가 점령당한 건 아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성채가 해골 병사들의 침입을 서서히 허용했다.

한마리, 두마리씩 허용하기 시작한 성채는 서서히 수십이 들어가기도 했다. 그렇게 침입을 허용하면 그 성채는 포기하고 다른쪽으로 전투를 이어나가는 식이었다.

잘못되었다.

하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

누구도, 자신의 목숨을 바쳐가며 성채를 지키고 싶지는 않았다.

희생정신의 부족이라기보다는 보다 명확한 실감이 나지 않았기 때문임이 더 적절했다.

성채가 뚫리고, 차원석이 부서지면 대체 어떻게 되는건지.

대악마가 현신하는 게 무엇을 의미하는 지 몰랐다.

그들에겐 대악마가 현신하든 악마들이 더 흉포해지든 지금 당장, 바람 앞 등불처럼 휘청거리는 자신의 목숨이 더 중요했기 때문이었다.

"이러니까! 군대가! 필요한데!!"

강철 군주가 악 쓰며 일어났다.

허나 다시 쓰러졌다.

빌어먹을 빗방울이 지면을 질척하게 만들어 미끄러지고 말았다.

은색의 갑옷이 더럽혀졌다.

"난, 비가 싫어."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어느새 후방 전력이 없다.

자신과 함께 하던 놈들은 전부 차가운 주검이 되거나 도망갔다.

"비가 싫다고!!"

악쓰며 힘들어가지 않는 다리를 주먹으로 내려치며 일어나려는 그때.

불현듯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가 철의 군주의 아미를 좁히게 했다.

[빛무리 성수의 영향을 받아 천천히 생명력이 회복됩니다.]

올려다 본 하늘은 처음과 같은 먹구름 가득했다.

떨어져 내리는 빗방울은 굵고 무거워 갑옷을 더욱 무겁게 했다.

그러나 이제는 조금 달랐다.

"비... 좋아질 거 같아."

은색의 투구를 벗은 강철 군주는 어느새 비를 맞으며 눈을 감았다.

빗방울에서 느껴지는 따스함이 그녀를 치료해주고 있었다.

*

"피가 찬다!! 이거 뭐야!?"

"오, 신이시여..."

돌연 비가 내리더니 소모되었던 생명력과 마나가 차오른다.

그 뿐이랴.

[그어어어!]

해골 병사들이 빗방울을 맞더니 송송 구멍 뚫려 쓰러지기 시작했다.

마치 빗방울 자체에 지대한 데미지를 입는 것처럼 말이다.

"누구지?"

아마존.

진수아는 자신의 스킬인 매의 눈을 이용해서 전장을 살폈다.

허나 그 누구도 돌연 내린 비의 효과에 의아해하며 기뻐할 뿐, 이를 행하고 있을 만한 자는 없었다.

저도 모르게 뒤를 돌았다.

마지막 성채에 우뚝 솟아 있는 나무 위 사내. 그 사내와 눈이 마주친 진수아는 한참이나 그를 바라봤다.

하지만 다를 건 없었다.

그는 처음이나 지금이나 나무 위에 앉아 전장을 바라볼 뿐이었다.

"나인..."

다시금 멈췄던 활시위를 당기며, 그녀는 다시 활을 쐈다.

활시위를 당기는 아마존의 손은 이전보다 한결 가벼웠다.

기분 좋은 비로 전황은 다시금 뒤바뀌기 시작했다.

이 비는 아마도 틀림없이.

랭킹 1위 데몬시드의 작품일테니까.

*

제 10 바사라 성채 앞.

이화성은 자신이 만든 데몬트리 위에서 꺼억 트림했다.

"아, 배불러..."

이곳에서 만들어낸 악마의 열매는 이미 전부 먹었다.

그럼에도 그는 인벤토리에서 유리병을 꺼내 꾸역꾸역 음용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보이는 바와 같다.

비바람 불어닥치는 금빛의 비.

신성력을 머금은 빗방울이었다.

"상점 뒤져보길 잘했네."

가만히 전황을 지켜보며 디버프가 끝나기를 기다렸던 그는 카오스 상점을 구경하다 한가지 품목을 보고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붉은 성수 - 5금화]

[푸른 성수 - 20금화]

[빛무리 성수 - 100금화]

자그마치 100금화.

그만한 값이 매겨져 있을 게 분명한 빛무리 성수의 효과를 보지 않을 수 없었다.

[빛무리의 성수]

-성스러운 힘이 담긴 성수. 음용시 모든 행위에 초급 신성력이 담긴다.

(1분)

그 효과는 자그마치 신성력의 부여.

모든 행위에 신성력이 부여된다는 진정한 의미의 성수였다.

비록 초급 신성력이지만 이거라도 놈들에겐 충분할 거다.

쓰러져도 일어나는 불사의 군대.

두개골을 박살내면 쓰러진다지만 한치 앞도 알 수 없는 전장 속에서 어찌 두개골만 노릴 수 있을까.

카오스 상점은 애초에 '불사의 군대'를 대비할 수 있는 안배를 내놓은 채였던 것이다.

'그래도 백 금화는 비싸다.'

재산 순위를 봐도 아직 금화 백개를 구하지 못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니 대부분은 알아도 쓰지 못한다.

하지만.

"나는 가능하지."

[빛무리 성수 x 8]

랭킹 1위이자 금화가 삼천개 넘게 있었던 그에겐 의미가 없었다.

"레인스톰."

거기에 더해 레인스톰을 사용하며 전장이 모든 지역에 폭풍우를 불러 일으키고 있었다.

효과는 대단했다!

[레인스톰이 전장에 지대한 영향을 끼칩니다.]

[해골병사가 쓰러지며 경험치 +10을 획득합니다.]

[해골기사가 쓰러지며 경험치 +50을 획득합니다.]

[해골병사가 쓰러지며 경험치 +10을 획득합니다.]

[해골병사가 쓰러지며 경험치 +10을 획득합니다.]

.

.

.

눈에 보이지도 않을 속도로 시스템 메시지가 갱신되고 있다.

당연하다.

레인스톰 한번에 수백.

아니, 수천 수만에 달하는 해골들이 쓰러지고 있었으니까.

"여기 사람들은 전부 아군으로 취급되는건가보네. 차라리 잘됐어."

레인스톰을 사용하면 알아서 달아날거라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더 날뛰며 싸우는 중이다.

동시다발적으로 퍼뜨린 레인스톰에 전장의 양상이 뒤바뀌고 있다.

잘된 일이다.

덕분에 해골 놈들이 레인스톰의 영향권에서 달아나지 않고 있으니.

"어우, 배불러."

허나 그럼에도 안심할 순 없었다.

이화성은 푸른 성수를 꺼내 마나를 채우며 레인스톰을 다시 사용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면서도 핏발 선 눈을 부릅뜨면서도 연속적으로 계속해서 마법을 사용했다.

레인스톰이 대단위 마법이라고 해도 적의 수는 수십만에 달한다.

사놓은 물약을 계속 도핑하며 스킬을 써댈 수밖에 없었다.

그래야만 널리 퍼져있는 '불사의 군대' 대부분을 약화시키며 쓸어버릴 수 있으니까.

물론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당연히.

"랭킹 1위는 내꺼다!!"

카오스 랭킹 1위를 쟁취하기 위함이었다.

기사왕의 지명 [1]

16화.

"꺼억."

더부룩한 속을 다스렸다.

지금까지 내가 먹은 푸른 성수와 빛무리 성수만 10개가 넘었다.

디버프는 끝난지 두시간이 흘렀고 차원석의 수복까지 이제 열시간만을 남겨둔 지금. 난 그제야 만들었던 데몬트리 아래로 발을 내디뎠다.

이유는 단순했다.

"화장실 좀..."

너무 많이 마셔대서 그런지 오줌보가 터지기 직전이었다.

콸콸콸!

해방감을 만끽한 직후.

인벤토리에서 [카탈린을 그리는 적창]을 꺼내 무장했다.

"대충 정리됐나."

백만이 넘었던 '불사의 군대'는 이제와서는 절반은 커녕 3분의 1도 남지 않은 상황.

디버프도 없어졌겠다 놈들의 숫자도 줄었겠다 더이상 몸 사리고 있을 필요가 없어졌다.

"소화도 좀 시켜야 될거 같고."

솔직히 제대로 레인스톰을 사용하기 전까지 몸을 사렸다.

거의 대부분 난 악마들을 사냥할 때 원거리 딜러의 역할이 컸으니까.

주로 사용하는 스킬은 워터볼과 투척 같은 원거리 딜링기.

그래서 굳이 전장에 뛰어들 필요성 자체를 느끼지 못했다.

'내가 아니더라도 근접 직군은 많을거라 생각했으니까.'

한데 생각보다 약했다.

물론, 여기 있는 네피림들도 마찬가지지만 그들만 약한 게 아니었다.

"스켈레톤들 개약해."

그들의 약함은 레인스톰을 사용하며 들어오는 경험치로 알 수 있었다.

솔직히 남들이 때리던 걸 막타친거라 경험치가 적은건가? 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근데 아니다.

그냥 이놈들이 약한 개체였다.

그렘린하고 비교하면 조족지혈.

세발의 피도 안되는 것들.

그런 놈들을 상대로 내가 몸 사리고 있을 필요가 하등 없다는 것이다.

"굳이 스킬을 쓰지 않더라도..."

『이화성』

「데몬시드 Lv.2」

「카탈린의 감전 Lv.2」

「생명력」 – 294/300

「마나」 - 35/200

「능력치」

근력 – 16 (+7)

민첩 – 11 (+2)

건강 – 15 (+7)

마력 - 10

「세부 능력치」

명중률 +2 시야 +2 방어력 +40 마나재생 +5 번개내성 10%

「스킬」

[워터볼] [투척] [돌진] [레인스톰]

「장비 스킬」

[차지볼트(2)] [에너지쉴드(1)] [피조물의 영광(1)]

기본 능력치로도 이놈들은 충분히 쓸어버릴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내가 나서는 이유.

한가지 더.

"쫄아서 못오네."

아직도 레인스톰은 지속되고 있다.

한번 만들어진 먹구름은 연신 빗방울을 쏟아내고 있었으니까.

'그것도 이제 곧 멎겠지만.'

레인스톰으로 인해 생겨난 휴식.

일종의 소강상태가 찾아온거다.

다친이는 치료를 원하고, 지친 이는 휴식을 원해 드러누워 잠을 청했다.

배고픈 이는 인벤토리에 쌓아둔 식량을 먹었고 불안한 이는 신에게 기도하면서 마음을 달랬으며...

전우를 잃은 자들은 눈물로서 자신의 슬픔과 죽은이의 넋을 위로했다.

"화성님!"

"보고 있었어. 잘 싸우더라."

"정말요? 보고 계셨어요?"

"응."

주시하고 있었다.

해골들을 상대로 꽤 방어적으로 싸우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검술 자체가 그런 식인지 공격보단 단단하게 방어하는 느낌이 강했다.

'방패가 있으면 더 좋아보이던데.'

방패가 있다면 전위로 세워서 함께 악마 토벌을 이어가도 좋을 정도로 나름의 센스가 있었다. 재능이 있다고 들었다던 이야기가 그냥 겉치레로 한 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나중에 적당한 방패를 얻게 된다면 레아에게 선물해도 괜찮겠지.

"이제 다 하신거에요? 사람들이 전부 비를 부른 게 누구냐고 웅성웅성거려요..."

레아는 연신 눈치를 살피며 속닥거렸다. 레인스톰을 사용한 사람이 나라는 걸 확실하게 아는 모양이다.

말한 적은 없는데 어떻게 알았지?

"왜 나라고 생각하지?"

"그야 신성력의 기운이 느껴지니까요. 아직도 몸에 남아계셔요."

"아."

효과는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몸속에 잔여 기운이 남아 있었나.

피에 민감한 기프트라서 그런지 알아채지 못해도 되는 걸 잘 안다.

"속이 안 좋아서, 몸좀 풀려고."

물론 그 전에 할일도 있고.

기절한 듯 쉬고 있는 사람들 사이를 천천히 걸어나갔다.

불사의 군대와 대치하고 있는 방향으로 나아가면 나아갈수록 전쟁에서 활약했던 주역들의 모습이 보였다.

어디서 났는지 맥주캔을 마시며 옆구리를 치료받고 있는 바바리안.

성벽에 기댄채 몇시간이나 활시위를 당겼던 손가락에 붕대를 감고 있는 아마존과 은색의 전신갑옷을 무장한 채 돌아다니며 떨어진 기사들의 검을 수거하는 강철 군주.

그리고 총을 든 군인들을 조종하고 있는 네크로맨서 등등. 전장에서 활약했던 다양한 자들이 보였다.

난 그들 사이를 거닐다 전장의 한복판으로 향했다.

"어이. 섣불리 움직이지마. 비가 멎으면 놈들은 다시 돌격할거다. 괜히 도발해서 좋을 게 없어."

"아니 넌 뭐야? 너 어딜가!"

"나 알아. 저 자식 방금까지 저 나무 위에서 구경하던 새끼잖아."

"뭐?"

"하, 이제라도 싸우려고?"

"잘도 그랬겠다. 이제 와서? 해골들이 템 떨어뜨린거 주우러 온 거는 아냐? 야 누가 저놈 막아봐!"

"야, 너 혹시라도 장비들 루팅하러 온거면 내가 쳐 죽인다."

휴식을 방해받았다고 생각한건지 한껏 으르렁거리며 적대감을 표한다.

난 그들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전장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는 죽은 시체를 들쳐멨다.

"아니, 어..."

"그걸 갑자기 왜..."

"크, 크흠."

욕지거리라도 쏟아내려던 놈들이 갑자기 합죽이가 됐다.

전사자의 시체를 처리하는 일은 해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지쳤다.

언제 다시 시작될지 모르는 싸움에서 전사자의 뒤처리를 하는 건 과한 에너지 소비였다.

하여 외면하고 있었는데 내가 시체를 옮기니 욕이 쏙 들어간 것이다.

"말을 하지 그랬어. 말을! 크흠."

"우, 우리도 도와야하나?"

"냅둬. 힘 한번 안 썼으니까 저거라도 한다는거겠지."

"누구나 싸울 수는 없는거잖아. 저것도 안하는 놈들이 더 많아. 저기 겁에 질려서 아무것도 안하는 놈들이 더 비난받아 마땅하지."

"됐어. 싸울 수 있는 사람과 싸울 수 없는 사람은 있어. 우린 전자고, 저들은 후자일 뿐이야."

"우린 뭐 좆빠지게 싸울 때 저 새끼들은 손가락 빨고 있었다니까!?"

"그래서 랭킹으로 보상 받을거잖아. 입 놀릴 시간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쉬는 게 좋을걸. 이제 곧 비가 그치면 다시 죽도록 싸워야 해."

그러거나 말거나 난 시체들을 조용히 옮겼다. 솔직히 내가 죽인 해골들을 데몬시드로 만드는 건 아무 거리낄 건 없지만 전사자들의 시체를 손대는 건 나라도 양심이 찔리니까.

'데몬시드.'

싸우기 전.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으니 확인할 게 있다. 그건 당연히 데몬시드.

스켈레톤을 데몬시드로 만들면 과연 뭐가 나올 것인가.

그걸 위해 시체들을 조용히 한쪽으로 옮기는 중이었다.

놈들의 경험치가 적은 걸 보니 만들어도 딱히 효율 좋은 녀석이 나오지는 않을거다.

허나 그럼에도 알아내야 한다.

'난 다시 무인도로 돌아가니까.'

카오스 게이트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고난 후.

본래의 자리로 돌아게 될 거다.

그때가 되면 난 다시 무인도로 돌아갈테니 다양한 먹거리를 얻어놓고 확인해볼 필요가 있다.

이는 중대사다.

송충이는 솔잎만 먹고 산다지만, 현대의 다양한 K-먹거리에 익숙해진 난 그렇게 못한다.

[해골기사의 씨앗]

-성장기간: 23일.

고블린보다는 길고 그렘린보다는 훨씬 적은 편의 성장기간이다.

뭐가 나올까. 농작물? 아니면 과일류? 뭐가 됐든 맛있는 거였으면... 이라고 생각하는 찰나.

"나도 도와줄게요."

방해가 들어왔다.

"... 아니요. 괜찮은데요."

정색하고 말했지만 갑자기 나타난 여자는 내 얼굴은 보지도 않았다.

"아니에요. 저도 무서워서 뒤에 빠져서 구경만 했는 걸요. 이거라도 해야 제 마음이 편해요."

입에 막대 사탕을 물고 있는 여자는 싱긋 웃으며 시체를 옮겼다.

"저도 돕겠슴다!"

군복을 입은 사내였다.

"박산 병장님! 그런거 직접 하실 필요 없다지 않았슴까! 제가 하겠슴다!"

갑자기 나타난 군인놈이 같은 군복입은 시체들을 조종해 전사자들을 옮기기 시작했다.

'정신이 조금 아픈가보네...'

자기가 조종하는 시체들을 상관대하듯 대하며 혼잣말을 중얼거리고 있는 이상한 사람이었다. 꽤 꺼림칙한 사람이었는데 그런걸로 그에게 트집 잡는 사람은 없었다.

그냥 쉬쉬하며 꺼리는 느낌이었다.

'에라이.'

어쩔 수 없이 조용히 전사자들을 한쪽으로 옮기는 작업을 계속했다.

어차피 오래 걸리지 않을거다.

왜냐면.

"비가 멎고 있다..."

"아... 그치고 있네."

먹구름이 사라진다.

어둠이 걷히자 보이는 건 다시 잿빛의 하늘. 잠깐의 휴식을 취했던 이들이 하나 둘씩 일어나기 시작했다.

'이 틈이다!'

[제물을 바쳐 작물을 성장시키겠습니까?]

잠시 목을 빼내고 주변을 살폈다.

모여있는 사람들은 움직이는 군대에 온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다.

해골 군대가 움직이니까 당연히 나 따위에게 신경쓸 겨를은 없을 터!

난 고개를 끄덕였다.

[제물을 사용했습니다.]

[제물을 사용해 작물을 성공적으로 성장시켰습니다. 경험치가 +5 증가합니다.]

"오..."

새싹부터 피어나 천천히 성장한다.

푸른 떡잎은 어느새 길고 단단해졌으며 갈변하여 잎을 가득 피워낸다.

이번에도 나무.

벼나 밀 같은 게 자라났으면 좋지 않았을까 했지만 아니었다.

가늘고 긴 나무는 내 머리보다 조금 더 자라서 멈췄다. 그리고 그곳에 포도송이보다 작은 열매들이 송송 열렸는데 이는 나도 어릴 적 시골에서 본 기억이 많은 열매였다.

"오디?"

모양은 오디나무에 열리는 오디 그 자체였다. 다만 색이 붉었을 뿐.

아주 영롱한 빛이다.

하나 툭, 따서 먹어보니 맛도 오디 그 자체였다. 적절한 수분과 단맛에 나도 모르게 하나 더 따먹었다.

그렘린의 열매처럼 화려한 맛은 아니었지만 투박하고 정감있는 단맛이 꽤 부담없이 적절했다.

훌륭한 작물이다.

거기다.

[강골이 0.001 상승합니다.]

"강골?"

강골이 상승했다.

강골이 무엇이냐면 나도 모른다.

뭐가 올랐다고 하는데 상태창에 나오는 건 없다.

아마도 소수점이 올라서 제대로 표시가 되지 않는 모양.

애초에 스탯창에는 있지도 않은 능력이라 확인할 수 없었다.

강골이라하니 아마도 뼈에 관한 것 같은데 해골을 작물로 만들어서 그런지 관련 능력도 뼈를 강화시키는 종류로 보였다.

있어서 나쁠 건 없고, 작물은 오디니까 썩 괜찮은 품종이다.

오디야 심심하면 따먹기 좋고, 잼으로 만들어서 상점에 파는 빵에 발라 먹어도 좋으니까.

내가 한창 해골병사로 만든 오디에 집중하고 있을 때.

"저, 저기요."

"네? 저요? 왜요. 이건 사람으로 만든 게 아니라 제 나름의 전사자들을 기리기 위한..."

생각해둔 변명을 토해내보려 했지만 왠지 듣지도 않는 표정이다.

내 등 뒤를 손가락질 하며 덜덜 떨고 있을 뿐이었다.

"저기, 저분? 아니 저기 대장이 그쪽 지명했어요."

"네? 지명이요?"

짝짓기 예능 프로도 아니고 지명이 대체 뭔 소린가하고 등을 돌리자.

[불타는 죽음의 기사왕 오그]

불사의 군대를 이끄는 기사왕 오그가 날 바라보고 있었다.

놈은 우세하던 전황에서도, 그리고 불리해진 지금까지도 한번도 전장에 나서지 않았다.

그런데 바로 지금.

검은 말을 타고 '불사의 군대' 앞으로 나와 검을 치켜들었다.

그 검 끝에는.

"... 나?"

내 목을 향하고 있었다.

기사왕의 지명 [2]

17화.

[불사 군대의 기사왕이 당신에게 결투를 신청합니다.]

기사의 결투.

적장끼리 일대일 전투를 벌여 전장의 양상을 빠르게 보여주고 아군의 사기를 끌어 올리고 적군의 사기를 낮추기 위한 명예로운 결투.

[승락하시겠습니까?]

[거절시 적군의 사기가 올라갑니다.]

일대일 결투? 저 ?챔피언이랑?

말도 안된다.

"거절이요."

단칼에 거절했다.

몇번을 물어도 답할 수 있다.

애초에 보스몹이랑 일대일 뜰 이유가 하등 없지 않은가.

[불사의 군대 사기가 올라갑니다.]

"야, 저놈들 더 커졌는데?"

"뭐야 진짜잖아?"

흉흉한 아우라는 더 짙어졌다.

사기가 그 사기가 아니라 죽음을 뜻하는 사기였나? 해골 병사의 뼈는 더욱 단단해지고 크기는 더욱 커졌다.

골격이 달라졌다.

이걸 위함이었나?

하지만 내 예상은 명쾌하게 빗나갔다.

푸르르르.

거뭇한 사기를 두른 채 푸레질 하는 말 위의 기사왕.

그의 검끝이 다시 한번 날 향했다.

[기사왕 오그가 당신에게 기사의 결투를 신청합니다.]

[주의!]

[그는 끝까지 당신과 결투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거절하면 적군의 사기가 한번 더 올라갑니다!]

놈들의 사기가 오르는 것은 아마도 기사왕의 능력일 터.

안타깝게도 이쯤되면 피할 수 없다.

'나랑 싸우길 원하는거군.'

놈은 아는거다.

비를 불어서 자신의 대군을 무용지물로 만든 게 나라는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는 차치하고...

'거절하면 할수록 적들의 사기가 증가하고 놈들은 더 강해지겠지.'

그리되면 필연적으로 죽는 사람은 더욱 많아질거다. 내가 아무리 무신경한 놈이라고는 해도 지금은 함께 싸우는 사람들이다.

언제 적이 될지는 모르는 세상이지만, 적어도 [카오스 게이트] 안에서는 한 팀인 이들이 아닌가.

게다가 [카오스 게이트]가 이번 한번으로 끝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사람들이 죽어서는 안된다.

빠르면 일주일.

늦으면 한달 뒤에 이곳을 침공하는 악마들이 다시 나타날지도 모르니 네피림의 피해는 적은 게 좋다.

'결국 다 같이 전력이 상승해야 나도 편해질거야.'

돌아가는 상황이 그랬다.

악마들이 지구를 침공한 상황이지만 시스템이 말하는 대악마들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그들은 모종의 이유로 성역이라는 결계에 막혀 현신하지 못하는 상태.

물론 그건 현재까지 그렇다는 것.

언젠가 그들이 나타난다면.

'필드 보스 같은거겠지.'

혼자의 힘으로 처치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사람은 혼자 살 수 없는 존재라고도 하니까.

시스템은 그랬다.

한국 차원의 카오스 게이트라고.

그렇다면 다른 나라 또한 개별적인 카오스를 겪고 있을 게 분명하다.

지금은 나뉘어져 있지만 언젠가는 하나로 합쳐져 굴러갈지도 모를 일.

그게 아니어도 악마들에 의해 세상이 망하게 둬서 좋을 게 없다.

그러니.

"결투를 받아 들인다."

[기사의 결투가 시작됩니다.]

조금은 모습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사회생활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은 알거다. 사람들 눈에 띄어서 좋을 게 없는 게 사회라는 것을 말이다.

군대에서 눈에 띠면 일을 더 시켰고, 그것은 직장에서도 마찬가지.

인터넷에서도 괜히 도마 위에 오르면 잘못하지 않았는데도 온갖 죄인이 되어 인격적 거세를 당한다.

그건 지금도 크게 다르지 않을거다.

랭킹 1위.

사람들은 날 우러러보겠지.

하지만 그건 잠시 뿐이다.

내가 지닌 능력과 아이템들까지 깨닫게 된다면 저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할까? 지금은 같이 싸우고 있지만 기회가 된다면 언제 그랬냐는 듯 내 뒤통수를 칠 것이다.

"전 와이프처럼."

그래서 웬만하면 감추고 싶었다.

드러내고 싶지 않았다.

사람을 믿는 행위 자체에서 기대를 하게 되고 기대는 실망으로 돌아와 스스로를 죽이게 만드니까.

내 몸을 지킬 힘은 있다.

그러나 저들이 수적 우열을 근거로 날 공격한다면 막을 방도가 없다.

지금은 내가 무인도에 갇혀 있지만 언제까지나 거기 있지는 않을테니까.

그나마 위안으로 삼을수 있는 건.

'내 기프트가 두개라는 것.'

그러니까 이정도 노출은 괜찮겠지.

파지직!

내 몸에서 전류가 솟아 올랐다.

조금은 붉은 뇌전.

[카탈린의 감전]이었다.

피를 따라가는 뇌전이라 쓸모는 없지만 특정할 수 있는 단서는 될 터.

"헉! 번개?"

"번개라니... 그럼 저사람 혹시..."

"랭킹 2위!!"

역시나.

사람들은 단번에 알아봤다.

현 레벨 랭킹 2위.

카탈린의 감전이 나라는 걸.

"랭킹 2위? 갑자기 올라온 랭킹 2위 카탈린의 감전이라고??"

"아니 그럼 왜 계속 보고만 있었던 거야 저사람..."

웅성웅성 소란이 일어난다.

날 욕했던 사람도 놀라고, 날 도왔던 사람도 놀란다.

"기사왕 오그는 강한 사람을 지목했던건가... 그럼 역시 데몬시드는 안 왔던거야?"

"랭킹 1위는 뭘하고 있는거야?"

"근데 방금까지 저사람 나무도 키우지 않았나?"

"그냥 스킬북을 얻었겠지. 나무키워서 얻을 게 뭐가 있다고 키우겠어."

"그런가?"

마음껏 떠들어대는 놈들을 내버려두고 난 전장으로 걸었다.

걸으며 생각했다.

'확인해보고 싶은 게 있긴했어.'

겨우 끝난 디버프를 안겨준 기프트 스킬.

〔시드로긴〕

-시드를 섭취하여 모든 능력치를 10분간 일시적으로 강화시킨다. 시드의 원본이 된 제물의 능력치에 근거하여 상승. (이후 24시간동안 모든 능력치 -20% 하락)

게임과 흡사하지만 게임과는 다른 부분들이 있다.

그건 바로.

'쿨타임.'

네피림들의 기프트나, 스스로 얻을 수 있는 스킬북에는 결정적으로 쿨타임이란 게 없다.

발동시간이 걸리기는 하지만 쿨타임 자체는 없다. 그렇기에 난 시드로긴을 사용했을 때 떠올린 적이 있었다.

"중복 사용."

일시적 각성제나 다름없이 발휘해주는 시드로긴.

이것의 쿨타임은 없다. 그렇다면 중복 사용하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어차피 싸우게 된 몸이다.

여러가지를 시험해보며 전투의 경험을 축척해나갈 필요성이 있다.

"일단."

와작!

[시드로긴을 발동합니다.]

[대전사 그렘린의 데몬시드를 섭취합니다.]

[대전사 그렘린의 잠재력을 일시적으로 100% 발휘합니다.]

「생명력」 – 294/300 ▶ 295/700

「마나」 - 35/200 ▶ 35/400

「능력치」

근력 – 16 (+7) ▶ 36

민첩 – 11 (+2) ▶ 31

건강 – 15 (+7) ▶ 35

마력 - 10 ▶ 20

놀라운 수치. 여기사 하나 더.

와작. 데몬시드를 먹어준다.

[시드로긴을 발동합니다.]

[대전사 그렘린의 데몬시드를 섭취합니다.]

[대전사 그렘린의 잠재력을 일시적으로 100% 발휘합니다.]

[실패합니다!]

[이미 전신에 시드로긴의 효과가 발동되어 있습니다.]

[중복 섭취로 인해 대전사 그렘린의 잠재력이 50% 발휘됩니다.]

[주의!]

[부작용이 더욱 강화됩니다.]

중복 섭취? 그건 그렘린의 데몬시드를 먹어서인가? 아니면 시드로긴 자체의 중복 섭취인가.

알아볼 필요가 있다.

그렘린이 아닌 다른걸 먹어보자.

[대주술사 고블린의 데몬시드를 섭취합니다.]

[대주술사 고블린의 잠재력을 일시적으로 100% 발휘합니다.]

[실패합니다!]

[중복 섭취로 30% 효과만 발휘됩니다.]

[10분 뒤의 부작용이 더욱 강화됩니다!]

[더 이상의 섭취는 생명을 잃을 수도 있습니다!!]

여기까지.

얻을 수 있는 정보는 다 얻었다.

중복 섭취는 세번이 한계.

중복 섭취는 할때마다 효과가 절감.

이 정도면 충분한 정보다.

우득, 우드드득.

적창을 쥔 손에 힘이 넘친다.

하지만 전신이 고통스럽다는 듯 삐걱거리고 핏줄이 곤두선다.

"콜록콜록!"

눈에서는 피눈물이 흐르고 입가에서는 속에서 검은피가 터져나왔다.

「생명력」 – 294/700 ▶ 295/860

「마나」 - 35/400 ▶ 35/580

「능력치」

근력 – 36 (+7) ▶ 55

민첩 – 31 (+2) ▶ 46

건강 – 35 (+7) ▶ 47

마력 - 20 ▶ 31

하지만 그 효과는 엄청났다.

'시드로긴은 세번까지.'

꾸드득.

몸이 뜨겁다.

전신의 피가 딸궈지고 있었다.

땀샘에서 핏방울이 맺힌다.

갑자기 상승한 힘을 육체가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이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육체가 느끼는 고통이 더욱 배가 됐다.

'약쟁이도 아니고 두번은 못하겠네.'

척.

난 곧장 [카탈린을 그리는 적창]을 잡았다.

이내 역수로 잡아 자세를 취한다.

일단 시작은.

"좋은 말로 할때 말에서 내려라."

놈을 말에서 내리게 하는 것.

우선 그것부터다.

쿵-!

준비 동작으로 내지른 발에 대지가 크게 울린다. 레인스톰으로 퍼부엇던 질척한 땅이 크게 들썩였다.

꾸드드드득!!

온몸의 근육이 비명을 질렀다.

투둑 툭! 뭔가가 끊기는 소리까지.

우둑!! 이내 뼈가 부러졌다.

허나.

콰아아아아아-!!

적창은 투척에 성공했다.

안 그래도 강력해진 능력치.

투척 스킬까지 이용해 그 효과를 배로 늘렸다.

그와 동시에 쾅-!!

발을 내디뎌 몸을 날린다.

내 민첩 수치는 자그마치 42.

그렘린들의 킹, 엘데와 싸웠을 때보다 더욱 빠르다.

놈이 뭘 해도 지금만큼은 자신있다.

투창한 팔의 뼈가 부러졌지만 개의치 않았다.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내지른 일은 아니다.

믿는 구석은 당연히 있었다.

[네피림 갑옷 세트의 효과가 발동됩니다.]

[피조물의 영광을 시전합니다.]

「생명력」 – 95/860 ▶ 860/860

「마나」 - 20/580 ▶ 580/580

「피조물의 영광」

-한달에 1회. 신의 이름을 빌어 생명력과 마나를 100% 회복합니다.

한달에 한번이지만 모든 생명력과 마나를 회복시켜주는 개사기 스킬.

피조물의 영광이 있기 때문이었다.

[전신의 상처와 생명력, 마나를 모두 회복합니다.]

내가 모든 상태이상을 회복했을 때.

콰아아아아아앙-!!

적창은 적중했다.

검은 흑마를 꿰뚫고 불사의 군대가 있는 곳까지 쭉 뻗어나갔다.

무기를 잃었지만 상관없다.

인벤토리에서 처음에 주웠던 [해골기사의 창]을 꺼내 장비한다.

적창이 만든 모래먼지가 기사왕 오그의 모습을 가렸다.

하지만 그보다 빨리. 먼지를 꿰뚫고 내가 놈에게 다가갔다.

그때였다.

놈이 있던 곳 코앞까지 다가간 순간. 묘한 열기가 코끝을 스쳤다.

몸이 예민해서져 인가.

묘한 위협이 경종을 울렸다.

흠칫, 몸을 비틀자.

화아아아악-!!

푸른 불꽃이 내가 있던 곳을 모조리 불살라버렸다.

섬뜩하게 시려보이는 푸른 불꽃.

[불타오르는 죽음의 기사왕 오그]

놈은 자신의 수식어대로 푸른 불로 전신을 불태우고 있었다.

"좋아... 한번 해보자고."

고작 10분간일테지만 난 만전의 상태. 끓어오르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는 상태이기도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봐도 놈에게 지는 모습은 그려지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그때.

털썩!

"?"

[불타오르는 죽음의 기사왕 오그가 쓰러집니다.]

놈이 돌연 무릎을 꿇고 쓰러졌다.

[불타오르는 죽음의 기사왕 오그를 쓰러뜨리셨습니다!]

[기사의 결투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적군의 사기가 떨어집니다!]

"???"

쓰러진 놈의 가슴에는 적창이 지나간 커다란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기사왕의 지명 [3]

18화.

"뭐야."

단 일격.

일격의 투창으로 적이 쓰러졌다.

한 눈에 봐도 어마어마하게 강력해 보이던 불사 군대의 왕.

푸른 불꽃으로 타오르던 기사왕.

그런 보스격 악마를 단 일격.

일격에 말이다.

사람들은 보고 믿기지 않은 지 눈을 치켜뜨고 턱이 벌어진 채로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가 보여준 전투. 무위.

단 일격에 기사왕 오그를 무찔러버린 모습은 충격을 넘어 절대 넘을 수 없는 박탈감까지 불러 일으켰으니까.

"저렇게 강한데 2위야...?"

"레벨이 다르잖아..."

"측정 잘못된 거 아냐? 데몬시드는 코빼기도 안 보였는데 왜 1위야?"

"그래! 저기 저사람은 보스몹 잡았는데도 2위인데!"

저마다의 추측이 오간다.

현 랭킹 2위 [카탈린의 감전]은 기사왕 하나와 적창이 나아간 해골 병사 수십을 잡았을 뿐인 점수.

그리고 데몬시드는.

"데몬시드는 아마, 그거였겠지."

"그거?"

"비 말이다. 비. 그게 놈의 짓이었겠지. 쳇, 얼굴도 한번 안보이다니. 더럽게 음험한 놈이네."

비를 내린 것이 데몬시드라는 것으로 명료하게 좁혀졌다.

어쨌거나 달라졌다.

무엇이 달라졌냐하면 그를 바라보는 시선이 경멸에서 경외로 바뀌었다.

기사왕과 싸우기 전에는 전장을 관망하던 겁쟁이에서 이제는 누구도 넘보지 못할 랭커로 발돋움했다.

단 일격으로 보여준 그의 위용은 모두가 납득할만한 성과를 거뒀기에.

*

"??????????????"

[불타오르는 죽음의 기사왕 오그를 쓰러뜨리셨습니다!]

[경험치 +1989 획득합니다!]

[데몬시드의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스탯 포인트 +3을 획득합니다!]

[오그가 지녔던 1250 금화를 획득합니다!]

[기사왕을 잃은 불사의 군대가 전투 의지를 잃습니다.]

[불사의 군대가 물러납니다.]

띠링!

[카오스 게이트가 완료됩니다]

[카오스 랭킹을 측정합니다.]

[카오스 랭킹]

1위 데몬시드 - 1,702,920점

2위 카탈린의 감전 - 256,530점

3위 철의군주 - 58,520점

4위 바바리안 - 36,402점

5위 아마존 - 34,140점

,

,

,

[카오스 순위 보상이 주어집니다.]

[보상]

1위 금화 1000개. 성역 1개.

2위 금화 600개.

3위 금화 400개.

4위 금화 200개.

5위 금화 100개.

[카오스 게이트 1위 보상상자]

[카오스 게이트 2위 보상상자]

"끝난거야? 아니 씨, 내 고생은? 내 고민은 뭐였는데!? 우욱."

우웨엑!

검은 피를 잔뜩 쏟은 화성은 시드로긴을 해제하려 했으나 할수 없었다.

한번 먹은 음식을 토해내는 것처럼 데몬시드를 도로 뱉어내는 건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화, 화성님! 괜찮으세요!?"

발빠르게 달려온 레아가 피의 축복으로 그를 치료하기 시작하자 그나마 조금 호전됐다.

[축하합니다!]

[카오스 게이트를 성공적으로 방어하셨습니다.]

[악마의 혼들이 이곳에 갇힙니다. 그들의 힘으로 차원석이 수복되면 성역은 다시 발동될 것입니다.]

[한국은 다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허나 평화에 안주하지 마십시오.]

[일곱 군주와 72 대악마들은 더욱 강한 적을 보내 이곳을 침공할 것입니다.]

쩌적.

살아남은자들 앞에 각자의 위치로 돌아갈 포탈이 열렸다.

사람들의 표정이 저마다 엇갈렸다.

누군가는 절망하고, 누군가는 슬퍼했으며 누군가는 결단했다.

그때 덩치 큰 사내가 화성에게 다가와 짤막하게 인사했다.

"뇌창. 오늘 일은 감사한다. 다음에 또 봤으면 좋겠군."

"...?"

뇌창.

카탈린의 감전이라 부르기는 너무 길어서였을까.

죽다 살아난 바바리안 놈이 전우를 보는 듯한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다 포탈 속으로 사라졌다.

"뇌창, 저희들을 위해 희생한 거겠죠. 고마웠어요. 제 도움이 필요하면 여의도로 오세요. 무슨 일이든 오늘의 빚은 갚을테니까요. 그럼."

제멋대로 오해한 아마존도 떠나고.

"다음번엔 지지 않아."

강철기사를 대동한 강철 군주도 사라지고 속속들이 카오스 게이트를 이탈하는 네피림들 사이로.

"저기, 뇌창님."

"뭐요."

"이런 말씀드리기 죄송합니다만... 저희한테 금화 10개씩만 주실 수 없을까요?"

"뇌창님! 저희는 5개여도 좋아요!"

"어차피 보상으로 금화 600개 받았잖아요! 5개만 주시면 안될까요!?"

거지들의 구걸이 시작됐다.

거기에 더해.

"뇌창님, 혹시 실례가 안된다면 어느 지역에서 활동중이십니까?"

"그건 왜 묻죠."

"저희는 의정부에서 터를 잡은 사람들입니다. 어떠십니까? 저희와 손 잡고 성역을 사들여 넓히는 건?"

성역.

저들은 벌써 단체로 활동하고 있는 그룹이었다. 성역을 구매하는 비용이 비싸다고는 하나, 인원이 많다면 금화 또한 손쉽게 모인다.

"이봐! 우리가 먼저 제안드리려고 했는데 웬 새치기야!"

"영입제안에 그런게 어딨어!"

하지만 화성에게는 전부 관심없는 내용이었다.

굳이 다른 집단에 들어가지 않아도 그는 아쉬울 게 없는 사람이니까.

화성은 그들 전부를 무시하고는 날려진 적창을 찾아 회수했다.

'다행히 돌아가는 시간은 마음대로 정해도 되는 거 같네.'

아직 화성의 포탈은 열리지 않았다.

그가 돌아가길 희망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생각보다 허무하게 모든 일이 마무리 됐지만 아직 돌아가기는 일렀다.

할일이 있다.

"레아, 저 사람들 못오게 해."

"넵!!"

레아는 검을 들었다.

"전부 꺼져주시면 안될까요? 제 동료분께서는 당신들한테 할애할 시간이 없으세요."

"아니 당신말고 우린 뇌창님한테..."

"꺼지라니까요!? 당신들은 싸우지도 않았잖아요! 아까 다 봤어요!"

후욱-!

검을 휘두르는 레아의 모습에 구걸하던 거지들도 영입 제안하던 이상한 놈들도 욕지거릴 뱉으며 물러났다.

어차피 아쉬운 소리 하는 자는 모조리 약자들이다.

강자는 자기 힘으로 쟁취할 생각을 하지 누군가를 종용하지 않는다.

"빨리 수거하고 돌아가야겠다."

몸이 피곤했다.

레아가 피의 축복으로 회복해주고 있다고는 하나 억지로 강화시킨 육체는 그것보다 빠르게 피로해졌다.

할일이 많다.

쓰러뜨린 대부분의 해골병사들중에서도 경험치가 높았던 놈들. 기사들 위주로 데몬시드로 만들었다.

그것만해도 한시간이 넘게 걸렸다.

기사왕 오그는 진작 시드로 만든지 오래였다.

[불타오르는 죽음의 기사왕 오그의 씨앗]

그럼 다음에 할건 제물성장.

카오스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라져 있었다.

그중에는 죽은 이를 슬퍼하는 가족들과 연인과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들도 금세 돌아갔다.

죽음의 기운이 감도는 꺼림칙한 공간에 오래있고 싶은 사람은 아마도 없었을테니까.

악마들을 데몬시드로 만드는 동안, 돌아갈 사람은 전부 돌아갔었다.

덕분에 일이 쉬워졌다.

"제물성장."

해골병사의 데몬시드에 제물을 넣고 성장시켰다.

한번에 하나의 제물을 넣는 것도 좋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다.

이곳에서 씨앗 낭비할 필욘 없다.

그러니 하나의 나무에 제물을 다섯개씩 바쳤다.

[제물성장을 성공적으로 이룹니다.]

[제물성장을 성공적으로 이룹니다.]

[제물성장을 성공적으로 이룹니다.]

[성장 한계치가 최대로 도달했습니다. 성장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처음부터 될리는 없지."

주렁주렁 열린 오디 열매들 중.

빛나는 건 없었다.

[다자란 해골기사의 나무]

제물을 많이 바친다고 확정적으로 나오는 건 아닌 모양이었다.

아니면 해골로 만든 데몬시드 자체가 빛나는 이란 수식어가 존재하지 않는 나무일 수도 있었다.

그도 아니라면 해골의 급 자체가 낮아서 생긴 일일 수도 있고.

"다섯번만 더 해보자."

그렇게 화성은 일정간격을 가지고 성벽 근처에 데몬트리를 성장시켰다.

그리고 네번째 데몬시드를 성장시켰을 때.

[행운이 깃듭니다.]

[빛나는 해골 기사의 열매를 획득하셨습니다.]

[빛나는 해골기사의 열매를 섭취하셨습니다.]

[강골 0.1이 상승합니다.]

"와... 개창렬."

그냥 열매는 0.001이라서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그랬다.

빛나는 열매를 띄워도 고작 0.1이 오르다니 창렬중의 창렬이었다.

"오디라서 그런가..."

그도 그럴게 한정된 수량이었던 그렘린의 열매나 고블린의 당근 같은 것과는 달리 이건 그렇지 않다.

주렁주렁 열려있는 오디열매 그 자체였기에 그 수가 압도적으로 많았다. 대략 새어봐도 한그루에 수백개가 열려 있었다.

"대충 이백개 정도 열린다고 치면 한그루 다 먹으면..."

0.02가 오른다.

"틈틈히 먹어야겠네."

조금 귀찮지만 할 수 없다.

시드로긴을 사용했을 때, 그 힘을 견디지 못하고 뼈가 부러졌다.

큰 힘을 지탱하기 위해서는 역시 틀이 되는 뼈가 단단해야 했다.

강골은 아마도 뼈 자체를 튼튼하게 만드는 것일 터.

그렇다면 필수적으로 먹어서 뼈 자체의 강도를 키우는게 좋았다.

그냥 다치는 것과 골절은 치유되는 기간 자체가 달랐으니까.

이후로 몇번 더 해골기사의 데몬시드를 성장시켜봤지만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빛나는 악과를 만들어 먹어도 오르는 수치가 워낙 낮으니 굳이 제물을 사용하는 거 자체가 아쉬웠다.

"그래도 많으니까... 강골 1만 올리고 그만두자."

잠시 뒤.

[강골이 0.1 상승했습니다.]

[강골을 깨닫습니다!]

[강골 능력치가 개방됩니다.]

「능력치」

근력 – 17 (+7) ▼ 11

민첩 – 12 (+2) ▼ 6

건강 – 16 (+7) ▼ 10

마력 - 11 ▼ 5

강골 - 1

능력치 포인트:3

일단 생기긴 했지만 직접적으로 뭔가가 와닿는 느낌은 없다.

지금은 디버프 때문에 능력치 하락이 절반 넘게 이뤄졌기 때문이겠지.

3중 중첩해서 시드로긴을 해서인지 디버프 하락률도 어마어마하다.

웬만큼 위험한 상황이 아니면 사용을 삼가야 할것 같았다.

"일단 마력이나 찍자."

마력에 투자해 수치를 11▶14▼7로 맞추고 나서야 시선을 돌렸다.

다음은 스킬.

「데몬시드 3레벨」

3렙이 되어서 배울 수 있는 스킬 목록도 늘어나 있었다.

〔그래프트〕

-형질이 다른 나무를 서로 접목시켜 새로운 종을 탄생시킬 수 있다.

〔트리가드〕

-스스로 열매를 지키는 가드를 만들어낸다.

〔시드라〕

-데몬시드를 강제 성장시켜 무작위로 공격하는 나무뱀을 만든다.

기프트 스킬 포인트: 1

그래프트는 본래 가지고 있는 데몬트리를 서로 접목시켜 각각이 가지고 있는 장점들만 뽑아내 새로운 종을 만들 수 있는 스킬이었다.

확실히 장기적으로 생각해보면 놀라울정도로 좋은 스킬이다.

각각의 장점을 조합하여 새로운 종의 작물을 만든다면 거기에 열리는 열매 또한 특별한 능력을 지녔겠지.

"트리가드는 딱히 필요없고."

있으면 좋지만 스킬 포인트를 소모할 만큼의 메리트가 있지는 않다.

페스틱사드만으로도 충분하고 지금은 무인도에서 벗어날 생각은 딱히 없기 때문이다.

물론 추후에 무인도와 다른 곳을 자유롭게 오갈 때가 된다면 모를까, 지금은 애초에 벗어날 수도 없어서 그닥 눈이 가지 않는다.

"시드라라..."

씨앗을 강제로 성장시켜 무작위로 공격하는 나무뱀을 만든다.

유일한 공격 스킬이다.

다만 걸리는 건.

"무작위가 좀 걸리네."

씨앗에 담긴 악마의 힘만을 성장시키는 일종의 소환물이다.

무작위라는 말은 소환자조차 공격할 수 있다는 말이라 좀 껄끄러웠다.

그래도 데몬시드에 있는 유일한 공격 스킬이고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이 꽤 다양해 보여 긍정적이다.

"빅스톤은 사라졌나."

레벨이 올라서 그런지 이전까지는 배울 수 있었는데 이젠 사라졌다.

조금 아쉽지만 스킬 포인트가 남아돌지 않는 이상 찍지는 않았을 거다.

"스킬 포인트, 보상으로 주는 퀘스트 같은 거 안 나오려나."

나름의 행복한 고민 속.

포탈을 열었다.

"레아. 이제 돌아가자."

"넵!!"

할일은 다 마쳤으니 이제 다시 무인도로 돌아갈 차례였다.

고민은 자신의 보금자리에서 해도 다르지 않으니까.

휘이잉.

아무도 없는 카오스.

그 속에서 숨죽이던 사내가 몸을 일으켰다.

"..."

뿔테 안경 쓴 사내.

관찰자라고도 불리는 자.

"이럴수가...!"

[이화성 - (녹) 1,285,035]

고작 148마리였던 그의 악마 처치 숫자가 백만으로 바뀌어 있다.

그게 뜻하는 바는 단 하나.

"데몬시드...!!"

그가 곧 데몬시드고, 동시에 랭킹 2위 카탈린의 감전인 뇌창이었다.

"당장 이 사실을..."

커뮤니티에 알리려던 관찰자는 순간 그의 적창을 떠올렸다.

기사왕 오그를 단 일격에 죽였던 엄청난 위력을 말이다.

커뮤니티에 들어가려던 손가락이 스르륵 다시 내려갔다.

"감추는 이유가... 있겠지."

마음대로 떠벌렸다가 그의 원한을 사게 될 수도 있었다.

아마 반드시, 자신은 그의 원한을 사리라.

법치국가인 대한민국은 사라졌다. 있는 건 무법지대 뿐.

관찰자는 아직 죽고 싶지 않았다.

거래소 오픈 [1]

19화.

카오스가 끝이 났다.

커뮤니티는 저마다의 무용담을 뽐냈지만 모두들 알고 있었다.

이번 전장에서 가장 활약한 자들이 누구인지를 말이다.

[카오스 썰 푼다.jpg]

-카탈린의 감전이 왜 뇌창인지 그때의 투창을 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와타시, 그때 그 적창을 보고 나도 막대기 주워서 연습해보고 있는데 진짜 소름 개미침

┗미친놈아 감상문 말고 썰을 풀라고 ㅋㅋㅋ

┗내가 처음부터 끝까지 봄.

┗대신 썰좀

┗처음에는 그냥 안 싸우던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불사 군대 왕이 뇌창 지목하면서 결투신청함.

┗헉, 그래서 어떻게 됌?

┗뇌창이 처음에는 거절했는데도 또 지목해서 싸우자고 함. 거의 프로포즈급이었음ㅋㅋ

┗ㅁㅊㅋㅋㅋㅋ

┗근데 거절하니까 불사 군대 사기가 너무 높아져서 어쩔 수 없이 승락하고 힘 끌어모아서 뇌창을 날림(그때 카탈린의 감전인거 알아챔 왜냐면 그때 붉은 번개 몸에서 나왔음) 쨌든 그렇게 뇌창 던졌는데 존나뒤지게 쎄서 기사왕 원큐에 죽음 끗.

┗불사왕이 좆밥아님?

┗기사왕임 ㅂㅅ아

┗솔직히 안 싸워봐서 모르겠는데 불사 군대 평균치를 생각해보면 ㅈㄴ 강했을거임. 뇌창 그거 한마리 잡고 2등 점수 얻었으니까.

[데몬시드는 대체 누구?]

-뇌창은 저렇게 고생했는데 이새낀 대체 왜 얼굴 코빼기 안보임?

┗ㄹㅇ 뇌창님은 전투 끝나고 피 토하셨는데...

┗ㅇㅈ 뭔가 싸우면 수명 단축되는 그런거 있는 듯. 적창 한번 날렸는데 피 엄청 토하시더라 맘 아파 ㅠ

┗진짜진짜! 안 싸우려면 안 싸울 수도 있었는데 우리 뇌창님 안 싸우면 적들 더 강해지니까 어쩔 수 없이 싸운거쟈뉴 퓨 ㅠㅠ

┗님 여자임?

┗이쁨? 쓰리 싸이즈 공개 ㄱ

┗꺼져 좀 ㅡㅡ

┗뇌창 이하 고백 금지임

┗0고백1차임 ㅋㅋㅋ

커뮤니티는 한동안 계속해서 데몬시드와 뇌창. 그리고 다른 랭커들의 활약에 대한 이야기들 뿐이었다.

청와대 방공호.

카오스 게이트의 성공적인 승리는 현 정권의 대통령에게까지 전달됐다.

"각하, 위성통신으로 온 각 회담에서 전달된 내용들입니다."

"우리만 카오스를 겪는 게 아니었군. 72개국 전부가 당했어."

서류를 검토한 대통령의 미간이 깊게 패였다.

요 근래 10년은 더 늙은 모습.

"눈이 아프군. 브리핑 좀 부탁해도 되겠나."

"물론입니다."

띡.

스크린을 띄운 비서실장은 위성 통신으로 전달된 문서를 확대했다.

"여기 보시면 카오스 게이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나라는 총 54개국입니다."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 인도, 브라질, 멕시코, 이집트, 독일, 프랑스, 영국, 이탈리아, 캐나다 등등.

"인구 총량이 많은 나라들이군요."

국방부 장관이 답했다.

그 말대로 앞서 카오스 게이트 공략에 성공한 나라는 인구가 많은 나라였다. 중국과 인도가 14억 정도의 인구수를 가지고 있었고 그 뒤로 미국이 3억, 러시아가 1억 4천 정도였다.

일본과 이집트까지가 1억명.

한국이 5천만명인 것에 비하면 굉장할 정도의 인구수다.

"물론 지금은 그 수가 절반 가까이 준 곳도 많을테지만요."

"그렇죠. 악마들이 나타난 지금, 전세계는 역대 최악의 절멸의 길로 향하고 있으니 말입니다."

이야기가 딴 곳으로 세자 대통령은 비서 실장에게 눈짓했다.

"카오스 공략에 실패한 곳을 듣는 게 더 빠르겠군."

"그렇겠습니다. 어떻습니까?"

"카오스 공략에 실패한 나라는 총 72개국 중 18개국입니다."

모나코, 몰도바, 카타르 등등 총 인구수가 현저하게 적은 소국들 대부분은 카오스 공략에 실패했다.

"그중에서 저희에게 친숙한 몰디브를 한번 보시겠습니다."

리모컨을 조작하자 몰디브의 위성 사진이 떠올랐다.

"흠....."

"크흠..."

휴향지로도 잘 알려진 몰디브.

"인구수 약 39만명으로 알려진 섬나라 몰디브는... 이제 없습니다."

꿈의 휴향지라 알려져 있는 몰디브.

그곳은 거대한 괴물의 둥지로 변해 일대가 전부 박살나 있었다.

"저, 저건 드래곤인가?"

"그와 흡사한 악마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악어나 공룡과도 같은 생김새.

위성 사진이라 자세히 보이진 않지만 마치 용처럼 생긴 모습이었다.

포악한 드래곤.

놈이 터전으로 삼아버린 몰디브는 짐승의 발톱으로 파여진 둥지처럼 이전의 형체는 알아볼 수 없었다.

"다음은 뉴질랜드입니다."

"뉴질랜드도 말인가?"

"예, 인구수 5백만명 정도를 가진 뉴질랜드도 공략에 실패했습니다."

띡.

이어서 뉴질랜드의 위성사진이 나타나 있었다. 몰디브처럼 거대한 악마의 형상은 없었다. 다만 땅덩어리 전부가 검게 변해 있었다. 마치 검은 안개라도 잔뜩 낀 듯 말이다.

"저건..."

"자세한 사항은 모르나, 정보통에 의하면 대악마의 능력중 하나일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나라 하나 정도는 궤멸시킬 정도의 힘을 지닌 존재.

대악마.

"우리나라도 저리 될 수 있었다는 건가?"

비서 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략에 실패했다면 그랬을 겁니다. 그러니 네피림들의 지원과 협력을 더욱 견고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네피림들과의 관계.

솔직히 현 정부는 그 힘을 잃었다.

간신히 위성 통신으로 각 나라와 교류할 뿐.

다른 건 할수도 없다.

대다수의 인원이 악마들에게 죽었고 고위급 장관들만 방공호에 남아 질긴 목숨을 연명하고 있을 뿐이니까.

"북한은 어떤가?"

"북한도 공략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아마 우상화 정책이 잘 맞물려 북한의 네피림들은 군대로서 잘 통치되어 있다고 합니다."

한번도 그래본 적은 없지만 이번 만큼은 북한의 우상 정책이 부러워지는 대통령이었다.

"저희도 저렇게 해야 되는 거 아닙니까? 군대를 딱! 예?"

"그게 되겠습니까? 안 그래도 자유가 어쨌네 인권이 어쨌네하면서 멀쩡한 놈들도 군대 빼려고 난린데요."

"아니, 상황이 상황이지 않습니까. 제가 얘기 들어보니까 저희도 인원의 절반 가까이가 도망가고 안 싸우려고 하고 난리였다던데요!"

"으음..."

침음성을 흘린 대통령은 이내 비서실장에게 물었다.

"이번 카오스 공략이 성공할 수 있었던 건 랭킹 1위와 2위 덕분이라고 들었네."

"맞습니다. 데몬시드와 카탈린의 감전. 뇌창이라 불리는 사내입니다."

데몬시드는 적들 대거를 약화시킴과 동시에 비를 불러 녹여버렸고, 뇌창은 단 일격으로 그들의 수장을 절명시켰다는 건 모르는 사람이 없다.

"그들을, 포섭할 수는 없나?"

랭커의 포섭.

대통령은 알고 있었다.

현 사태에서는 법보다 힘.

힘이 있어야 법이 유효하다는 걸.

"그건 힘들 것 같습니다."

"이유는?"

"둘의 소재 자체를 파악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카오스에서 활약한 랭킹 1위는 그곳에서도 본 사람이 없다고 했고, 랭킹 2위인 뇌창은 사람들에게 살가운 편이 아니었다.

"그가 누구인지, 어디에서 활동하는지를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아무런 정보가 없는데 어찌 포섭이 가능하겠냐는 말이었다.

"그런 말이 어딨습니까. 비서실장. 아는 사람이 없어도 찾아서 와야죠! 그게 대한민국 아닙니까?"

사무총장이었다.

막무가내로 뱉어내는 사무총장의 말에 국방부 장관이 답했다.

"방공호 밖이 무서워서 한발자국 나가지도 못하는게 현실입니다. 그런데 어딜가서 찾습니까."

"아, 아니 거... 참. 크흠."

"그리고 만약 찾는다해도, 그가 협조할지 안할지는 모르는 일이죠."

"협조 하게끔 만들어야죠!!"

"어떻게 말입니까."

"가족들이 있을 거 아닙니까."

가족.

민감한 부분을 건들이자는 사무총장의 말에 비서실장은 미간을 좁혔다.

"그런 힘이 있다면 대한민국의 같은 자국민으로서 당연히 힘을 보태야죠! 아마 가족들과 떨어졌을 겁니다. 지금 대부분이 그렇잖아요? 찾아준다 약속하고 도와달라하면 거절 못할겁니다. 사람이면 당연히 못하지!"

허나 국방부 장관은 반대였다.

"네피림 커뮤니티는 뻘입니까? 거기서 연락 안 닿으면 죽었다고 생각할 게 뻔한데요."

힘이 있다면 그 힘에 매료된다.

그리고 도취되기 마련이다.

정부는 강자들을 두려워해야 했다.

그들이 엇나가기 시작한다면, 제일 먼저 죽게될 건 자신들일지도 몰랐으니까.

"잠시 머리를 식힙시다."

과열된 열기를 대통령이 중재했다.

"1위와 2위는 제쳐두고 지금 손에 잡은 이들을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봅니다."

어차피 연락할 방도도 없는 사람들 아닌가. 의논해봤자 입만 아프다.

그보다는 먼저.

"카오스 이후, 2레벨이 된 네피림들이 많습니다. 한창 거래소의 거래가 원활하게 이뤄지고 있다더군요. 국민들이 정부를 못하다 보고 있었지만 지금은 달라져야 합니다! 지금이라도 구호품들을 꺼내 거래소에 싼값이 올려 보조해줘야 해요."

"하지만 저희 식량도..."

식량은 어디든 부족하다.

정부가 비축해놓은 비상식량 또한 그건 마찬가지였다.

"그래도 해야 합니다."

이게 정부가 할 수 있는 최선.

우선이 되어야 할건 국민이었다.

"어디 농사라도 지을 수 있는 기프트를 지닌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네요. 그렇다면 식량 걱정도 덜할텐데."

"그러게 말입니다."

하지만 아마 없겠지.

기프트는 악마들을 물리칠 수 있는 신의 내린 작은 선물일 뿐이었으니.

*

와그작!

[민첩이 0.1 상승합니다.]

"아 편하다!"

무인도 한켠에서 바다를 보며 소파에 누워 있는 화성은 한손에 와인잔, 한손엔 악과를 들고 미소지었다.

무인도와는 생경한 고급 소파.

그리고 와인잔에 든 와인은 그동안 거지처럼 지냈던 그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풍경이었다.

그렇다.

거지나 다름 없이 지내던 그가 갑자기 럭셔리해진 이유는 다름아닌 거래소 때문이었다.

[네피림 거래소]

[요리용 뒤집개x1] - 1금

[파인애플 통조림x2] - 5금

[신선한 계란x30] - 10금

[최고급 5인용 명품 소파] - 3금

[5월호 맥십잡지] - 1금

[영국 명품 구스다운 거위털 이불세트] - 10금

[건축용 벽돌x100] - 3금

[시멘트 포대x3] - 5금

카오스 이후.

많은 경험치를 받아 레벨 상승에 성공한 사람들이 거래소를 눈에 띄게 활성화 시키고 있었다.

물건을 올리는데에 쓰이는 수수료도 없겠다 돈이 될것 같은 물건들은 모조리 올리고 있다.

덕분에 1초에 수백개씩 올라오는 통에 물건을 살피기도 벅차다.

"이불세트는 사둬야겠다."

내가 알기로 구스라는 명품 이불은 왕실에도 납품하던 걸로 알고 있다.

이불 하나에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명품중의 명품인데 이게 10금에 올려져 있다니...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었다.

"물론 나한테는 이득이지만."

이제와서 명품은 큰 의미를 잃었고 이불은 언제든 더러워지고 찢어질 수 있는 물건이다.

그런걸 10금에 팔면 누가 사겠는가.

대한민국의 인구 대부분은 지금 한끼 먹기도 힘들 정도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다.

1금이면 상점에서 못해도 사흘은 버틸 수 있는 빵을 사먹을 수 있는 돈인데 10금을 투자해 이불을 산다?

어지간히 돈이 넘쳐나는 사람 아니고서는 지금 상황에 그런 사치를 부리지 못한다.

[영국 명품 구스 거위털 이불세트를 구매하셨습니다.]

물론 나는 예외였다.

[소지금 6850 금화]

카오스 1위 보상 상자로 천금.

2위 보상 상자로 육백금을 얻었다.

거기다 내가 쓰러뜨린 악마들의 숫자만 일백만이 넘었고 보스까지 잡아 돈이란 돈은 다 쓸어 담았다.

이 정도는 사치도 아니었다.

[거래소의 구매 물품이 인벤토리로 귀속되었습니다.]

구매 버튼 하나만 누르면 배달까지 한번에 된다. 인벤토리에서 이불 세트를 펼치자 굉장히 고급스러운 이불과 베게들이 나타났다.

거위털이라 두껍고 가볍다.

포근하고 오밀조밀 장인이 한땀한땀 땋은 것만 같은 자수 또한 기품있다.

영국 왕실이 쓰던 침구.

본래라면 꿈도 못 꿔보고 싸구려 꽃무늬 극세사 이불이나 썼겠지만 이제는 달랐다.

세상이 달라졌다.

난 베이스캠프에 설치한 성역(안전지대)으로 들어가 거래소에서 건진 시먼스 침대 위에 올렸다.

"얼추 사람사는 집 같긴하네."

카오스 게이트가 끝나고 3일.

난 삼일동안 집을 만들기 위해 부단하게도 애썼다.

거래소에서 판매하는 물건들을 구매하고 자체조달하여 드디어 나만의 집을 만들어낸 것이다.

"훌륭해."

유튜브에서 막대기 하나로 만든 진흙집보다 뛰어나다. 큰 틀은 거래소에서 철골을 구매해 깊게 박았다.

인간의 힘을 월등히 초월한 지금의 근력으로는 기계가 필요한 일이 모두 내 손으로 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벽돌을 쌓고 시멘트를 발랐고, 목재들을 덧붙여 멋스러운 산장을 만들었다. 보일러나 수도 시설이 아직은 부족하지만 그건 차차 거래소에 올라오는 것들을 사들여 쓰면 될 것이다.

"힘든 나날이었다."

악마들이 나타나고 무인도에 고립되길 10일.

갖은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하고 드디어 나만의 집을 얻었다.

"내 집 마련의 꿈을 세상이 반쯤 망하고 나서야 얻게 되다니... 나참."

세상 일 참 모를 일이었다.

거래소 오픈 [2]

20화.

"진짜 아무거나 가져다 파는구나..."

집 소파에 앉아서 더 살게 없을까하고 무료하게 거래소를 보면 볼수록 어처구니가 없다.

용접 기계부터 시작해 이제는 쓸모없는 컴퓨터 부품까지 없는 게 없다.

세상 모든걸 다 팔겠다는 듯 기상천외한 것들도 굉장히 많았다.

[0.01바른생각] - 10금

[전동딜도] - 10금

[토끼귀 꼬리 세트] - 10금

[메이드복] - 15금

진짜 별걸 다 팔아대고 있었다.

피임기구부터 각종 약이나 진동 기구들도 올려져 있을 정도였다.

조금이라도 수요가 있는거라면 모조리 올려져 있었기에 집짓기도 그렇게 어려운 부분이 아니었다.

재료와 도구만 있다면 집짓는 데 필요한 대부분은 인력이었고 그건 내가 할 수 있었으니까.

"에효 잠깐 쉬자."

솔직한 심경으로는 지하에 방공호를 만들어두고 싶은 마음도 굴뚝 같았지만 아직까지 그건 불가능했다.

"방공호를 찾아서 거기 사는 게 빠르지... 평생 무인도에 있을 건 아니니까. 이정도도 충분해."

땅굴파서 침낭 하나만 덮고 자던 때를 생각하면 개천에서 용난 수준.

며칠 전을 생각하면 이것만 해도 감지덕지다.

"발전기도 좀 팔았으면 좋겠는데... 기름이랑. 역시 잘 없나."

몇번 보기는 했는데 사려는 순간 다른 사람이 사가버려서 매번 기회를 놓치고 있다.

역시 아포칼립스.

발전기와 기름은 인기 품목이었다.

공급은 적고 수요는 많으니 한번씩 발전기가 나올 때마다 금액이 갈수록 높아져갔다.

한시간 전에 봤던 발전기의 가격은 자그마치 금화 서른개.

카오스 게이트가 끝난지 얼마 안되서 그런지 랭커들이 금화에 여유가 있는 모양이었다.

"나도 촛불로 밤을 보내고 싶지는 않은데... 악과들도 냉장고에 넣어두고 싶고. 뭐 방법이 없으려나."

발전기가 있다면 전등을 달아서 밤에도 환하게 지낼 수 있다.

촛불이 그 역할을 대신하고는 있지만 끄고 키는 게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별로 밝지도 않고.

가장 중요한 게 지금까지 수확한 악마의 열매들이다.

"인벤토리는 냉장고가 아니야."

물건을 보관할 수는 있을 지언정 음식의 보존까지 되지는 않는다.

게다가 내가 지닌 대부분의 악과는 고블린의 당근을 빼고 거의 과실의 형태다.

한 두달은 괜찮겠지만 더 지나면 속이 썩을 수도 있다.

"그래도 악마의 열매인데 금방 상하거나 썩지는 않겠지만..."

혹시 모른다.

잠깐 한눈 판 사이에 썩어버리거나 상해버리면 다 버려야하지 않는가.

다른건 몰라도.

"오디는 안돼."

그렘린 사과나 고블린 당근은 그렇다쳐도 오디는 다르다.

오디는 짓물러지기 자체가 쉽다.

카오스 게이트에서 수확해온 오디들은 고작 3일 지난 걸로 생기를 잃어가고 있으니 말이다.

[해골 기사의 열매x 3145]

오디의 형태라서 더욱 그런거 같다.

[해골기사의 열매를 섭취하셨습니다.]

[강골이 0.001 상승합니다.]

한손에 가득 답아 한입에 털어 넣었다.

[강골이 0.011 상승합니다.]

"먹는거야 어렵지 않지만..."

오디만 먹기엔 질린다.

어느 정도는 잼을 해먹는다고쳐도 오디가 너무 남는다.

"한 천개 정도만 팔까."

어차피 짓물러지면 못 먹는 거.

가지고 있어봤자 계륵이다.

팔아버리면 금화로라도 돌아오니 나쁘지 않다.

카오스 게이트를 해본 결과.

한국 네피림들이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나 또한 편해지는 거니까.

"자선사업 한다치고 열개에 1금이면 사겠지."

강골이란 수치 증가의 효과를 알게 된다면 더더욱.

사지 않고는 못 베길거다.

"해골기사 열매라고 하면 특정될테니까 이름을 바꿔서 올려볼까."

[악마의 오디 1000개를 10개당 1금에 등록하시겠습니까?]

악마의 오디.

적당한 네임이다.

[첫 등록입니다. 판매자의 이름을 작성해주세요. 작성하시지 않으면 기프트의 이름으로 등록됩니다.]

그건 안되지.

"판매자 이름은... 불별로 할까."

내 이름 화성.

한글 이름으로 하면 불별이다.

어릴 때 게임할 때나 자주 썼던 닉네임인데 은근히 정감간다.

"좋아 등록."

*

[네피림 거래소]

[악마의 오디] - 10개당 1금

판매자: 불별

[악마의 오디]

-악마의 열매중 하나. 만든이에 의해 이름이 지어진 오디. 섭취하면 뼈에 관한 능력치를 깨닫게 될지도?

"어? 뼈? 뭐지 이건?"

10개에 1금.

비싸다면 비싸지만 평범한 물건은 아닌 것 같다.

카오스 게이트 3등 보상으로 금화도 두둑하겠다 바바리안은 호기심 반 기대 반으로 오디를 샀다.

[거래 물품이 인벤토리로 귀속됩니다.]

생긴 건 그냥 오디다.

"사기당했나?"

혹시나 싶어 한입에 털어보니.

"!!"

[악마의 오디x10를 섭취하셨습니다.]

[강골 능력치가 0.01 상승합니다.]

맛은 극상.

단맛의 극치. 달고 새콤하고 상큼하기까지 하다.

그야말로 악마의 오디.

악마라는 접두사가 붙을만 한 맛.

지옥의 달콤함이란 말이 절로 어울릴만한 대단한 맛을 가진 오디였다.

"오디가... 이렇게 맛있는거였나?"

게다가.

"강골?"

『장동철』

「바바리안 2 레벨」

「생명력」 – 180/180

「능력치」

근력 – 6

민첩 – 4

건강 – 9

상태창에 떠오르는 건 없다.

하지만 바보라도 안다.

"10개 먹어서 0.01이면..."

백개는 0.1 천개 먹으면 강골이란 능력치 하나가 오르는 것이다!

강골.

단어로 봤을 때 뼈를 강인하게 해주는 스탯임이 분명하다.

바바리안인 자신에게 근력은 필수다. 하지만 근력의 틀이 되는 뼈가 강해질 수 있다면 그 효과는 배가 되는 게 분명하다.

"씨발 바로 사야돼!!"

전재산을 다 부어서라도 사야한다.

상점에서 살 수 있는 능력치도 하나에 금화 천개씩이나 한다.

그런데 다 있는 능력치도 아니고 구하지도 못하는 희귀 능력치!!

그걸 배우는데 금화 100개면 어마어마하게 싼 값이다!

거저 주는 거라봐도 무방하지 않은가!

"악!!"

하지만 이를 깨달았을 떄는 이미.

[악마의 오디] - 10개당 1금 (품절)

판매자: 불별

"아오...!! 벌써 다 팔렸어!!"

오디는 이미 다 팔리고 난 뒤였다.

*

"아우, 눈 뻑뻑해."

하루종일 거래소를 보고 있었더니 눈알이 빠질 거 같다.

솔직히 조금 재밌다. 쇼핑 중독에 걸릴 것만 같아서 계속 보고 싶지만 아쉽게도 할일은 많다.

[거래품목이 전부 매진되었습니다.]

[금화 100개를 획득합니다.]

[소지금 6950 금화]

"벌써 팔렸네."

잠깐 한눈 판 사이에 모조리 팔렸다.

"너무 싸게 올렸나?"

아마 그런 모양이다.

다음엔 개당 금화 1개로 올려보고 안되면 천천히 가격을 내려야겠다.

"오디야 아직 수중에도 많고, 강골은 급하게 올릴 필요도 없으니까."

이번에 카오스 게이트에서 얻은 씨앗도 아직 일만개가 넘는다.

그걸 다 심으면 정확히 23일 뒤 오디 수백만개가 열리게 될 터.

"무인도 전체를 성역화해야 하려나. 못할 거 없긴 한데..."

굳이 그럴 필요는 없겠지.

끼익.

집을 나서자마자 보이는 데몬트리들을 확인해본다.

[다자란 그렘린의 나무]

-다음 수확까지 20일.

상태: 물 부족 49.

데몬트리는 제물로 성장시켰다고 끝이 아니다. 한번 키운 데몬트리는 몇번이고 열매를 맺는다.

그 주기는 대략 한달.

한달동안 가만히 놔두면 크나? 전혀 그렇지 않다. 상태를 보면 알겠지만 한번씩 물도 듬뿍듬뿍 줘야 한다.

나무라는 게 냅두면 지들 알아서 크는 거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는 소리다.

"확인 좀 해볼까."

지금까지

주르륵 서 있는 데몬트리들을 보면 그래도 한켠으로 뿌듯하다.

과수원처럼 만들어놓은 데몬트리 길을 지나 숲으로 향하니 작게 만들어진 공터가 보였다.

엊그제만해도 이곳은 여러 나무가 울창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벌거숭이가 된 듯 말끔해졌다.

그곳에.

[덜자란 기사왕 오그의 새싹]

-다음 수확까지 76일.

상태: 수분 과다.

불타오르는 죽음의 기사왕 오그의 씨앗을 심어 두었다.

"까다롭네 이자식."

어제는 물부족이라길래 듬뿍 줬더니 오늘은 또 물이 너무 많다고 한다.

누가 슈퍼 챔피언 아니랄까봐 까다롭기가 가관이다.

"오그. 너도 엘데 본받아라 좀."

[덜자란 그렘린 킹 엘데의 새싹]

-다음 수확까지 94일.

상태: 양호

이곳은 앞으로 슈퍼 챔피언.

즉, 보스급 악마들의 씨앗을 키울 곳이다. 흙의 질도 괜찮아 보였고 무엇보다 해도 잘들고 위치도 좋다.

무엇보다.

[성스러운 땅]

50평 남짓한 땅 전체가 성역이다.

1위 보상으로 성역을 받았지만 혹시 몰라 이곳에도 구매해 설치했다.

"이놈들은 특별하니까."

앞으로 마주칠 보스급 악마들 씨앗은 전부 이곳에서 관리할거니까 그렇게 낭비적인 일도 아니다.

새싹 상태에 있는데 악마가 찾아와 짓밟을 수도 있지 않은가.

그런 일을 사전에 차단해야 했다.

"내 씨앗 절대 지켜."

지금의 나를 키워준 게 바로 데몬시드고 그것으로 탄생한 악과다.

절대로 지켜야 하는 것들 중 하나인 것이다. 제물이 있다면 빠르게 성장시킬 수 있었겠지만 아쉽게도 해변가로 떠밀려 오는 시체는 이제 없다.

바다에 용인지 뭔지가 떼로 몰려 있는 걸 아는데 그런데도 배타고 나오는 머저리는 이제 없다는거겠지.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사람들이 죽는 것보다는 안 죽는 게 좋은 일이니까.

"날씨 좋네."

안전지대를 지나.

숲으로 조금 들어가니, 연신 도끼질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그곳에는 적발의 여기사.

레아가 도끼를 휘두르고 있었다.

"레아. 잘 되가고 있어?"

"아, 네! 이것봐요! 잘하고 있죠? 그램도 도와주고 있어요!"

"응 좋네. 깔끔해."

이름없는 무인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아서인지 수풀이 꽤 우거지고 나무들이 많았다.

난 이것들 모두를 베어버리고 데몬시드를 심으려고 한다.

'데몬시드가 너무 많아.'

남아도는 이것들을 그냥 인벤토리에 넣어두기는 너무도 아깝다.

[해골기사의 씨앗x15,239]

불사 군대들 중에서도 가장 강했던 기사의 씨앗만 골라 가져온거다.

그런데도 저렇게 많다.

그러니 땅이 허락하는 한에는 모조리 심어 수확하고자 한다.

내가 먹지 못한다면 팔면 그만이다.

아까도 봤다시피 악과의 효능을 아는 사람들은 억만금을 주고서라도 사려고 할 게 분명하니까.

남아도는 씨앗이 많으니 무인도 전체를 과수원으로 만드는 한이 있더라도 모조리 심으려고 한다.

심어두면 심어둘 수록 추후에 수확하는 재미 또한 쏠쏠할테니 말이다.

[캭! 캭캭!]

"뭐냐, 그램."

그램이 레아를 가리켰다가 도끼를 가리키고 다시 날 가리킨다.

"뭐. 나도 일하라고?"

[캬캬캭!]

"너희들 전부 내가 먹여 살리고 있으니까 조용하고 네 엄마나 도와."

자기의 모체라는 걸 아는건지 극진하게도 레아를 살핀다.

그램 자식.

[캬캭!!]

"그램! 그러면 안되요. 화성님 덕분에 맛있는 과일들을 잔뜩먹고 힘도 강해지고 있잖아요. 자! 여기서 편히 쉬세요! 제가 다 베어버릴게요!!"

"응, 고생해줘."

애초에 레아가 하겠다고 나선거다.

밥만 축낼 수는 없다고 할일을 달라길래 나무좀 베어달라고 하는걸 무인도의 나무란 나무는 전부 베어낼 기세로 저렇게 열심히다.

솔직히 나로서는 말릴 이유가 없다.

어차피 무인도에서 레아가 할일이라고는 저런거 말곤 없다.

여긴 악마들이 많은 것도 아니고, 그나마 있는 것도 그램이 레아 곁을 졸졸 쫓아다니면서 전부 청소한다.

한번씩 새 형태의 악마가 내려와도 그램이 전부 쫓아버리니까.

'그러고보니 저녀석 꽤 강해진 것 같던데.'

그렘린의 평균 수치는 아득하게 뛰어넘지 않았을까 싶다.

무인도에서 나는 악과들은 모조리 그램이 관리한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러면서 몰래몰래 하나씩 까먹는 걸 나한테 들키기도 했으니 아마 내 생각보다 스탯이 많이 올랐을거다.

"대전사 그렘린 쯤은 되려나."

아마 그정도는 될거 같다.

"상관없지. 뭐."

그램은 내 과수원의 파수꾼이다.

쟤 혼자서 대부분의 일을 도맡아 해주니 그 정도 급료는 줄수 있다.

"그 정도도 안 주면 악덕업주지."

다른건 못해도 급료는 꼬박꼬박줘야 뒤탈이 없는거다.

레아와 그램 몫의 악과를 하나씩 놔두고 나는 베이스캠프로 돌아갔다.

동쪽 해안가.

저 멀리 능선을 살폈다.

[세피림의 눈]을 착용한 탓에 시력이 높아져서 보인다.

날이 좋으면 유독 잘 보였다.

무인도에 오기 전 보았던 섬.

"기부도였던가."

현재 베이스캠프인 무인도.

그곳에서 비교적 가까이 닿아 있는 하나의 땅. 기부도라는 섬이다.

무인도보다 3배는 큰 섬.

난 저곳에 가보려 한다.

바다에는 괴물들이 득시글거리는데 어떻게 가려 하느냐라 한다면.

[나만의 상점]

-4일 21시간 52분 남음

[부드러운 빵x10] - 1금화

[포탈 스크롤] - 20금화

[미네트의 로브] - 731금화

[블리자드 스킬북] - 2222금화

『블리자드』

-일대를 모조리 얼려버릴 강렬한 눈보라를 내린다.

(소모값: 80)

선행스킬 - (레인스톰)

커뮤니티에서 말하기를 바다에도, 하늘에도 악마들이 있다.

그렇다면.

"바다... 얼려버리면 되지 않나."

바다를 모조리 얼려버리면 되는 일이었다.

미확인 아이템 [1]

2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