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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롤로그

0화 프롤로그.

이른 새벽.

안개 낀 바다를 작은 통통배 하나가 바다를 가로지르듯 유영했다.

해가 뜨지 않아 거무죽죽한 바다를 멀거니 바라보고 있는 사내 뒤통수가 영 이상한지 선장이 말을 걸었다.

"근데 총각! 거긴 무인도고 뭐 아무것도 없는디 뭣하러 가는 겨? 총각도 뭐 유튜브인지 뭔지 찍으러 가남?"

"... 하하, 네. 그렇죠."

"그려~ 요새 많이들 뭐 무인도를 찾더라고. 저가 그, 땅은 넓은데 뭐 할만한 위치가 못되서 계속 무인도로 있는 곳인디, 영상 찍기는 좋을거여."

"감사합니다."

거짓말이다.

유튜버가 아니다.

영상을 찍을 생각도 없다.

큼직한 캐리어 세개에 들어 있는 건, 삽과 침낭. 약간의 캠핑 용품들.

그리고 농약이 전부다.

덜컹덜컹! 쿵!

"음? 총각, 뭔 소리 못들었남?"

"캐리어가 쓰러졌네요."

"그려? 파도 때문인갑네."

흔들리는 캐리어 위에 앉은 채 담배 한개피를 입에 물었다.

'그래, 해! 이혼하자고!'

서른 넷.

순탄한 삶을 살았다.

남중, 남고, 공대.

어려서부터 고아원에서 자랐다.

하지만 열심히 공부했고 알바를 병행하며 나름 순탄한 삶을 보냈다.

그 순탄한 삶에 마가 낀 건 어릴적부터 가지고 싶었던 가정.

즉 결혼이었다.

사랑하는 여자를 만났다.

고아였고, 빚도 있었지만 사랑만 있으면 문제가 없으리라 생각했다.

주변의 만류에도 혼인신고부터 하고 빚을 갚기로 했다.

나도 고아고, 상대도 고아다.

가족이 되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간다면 그보다 더한 행복이 없었다.

사랑하니까. 사랑했으니까.

함께하면 마냥 행복할 거라 생각했고, 그렇게 만들고 싶었다.

투잡을 뛰었다. 낮엔 직장에, 밤엔 대리운전이나 배달 알바로 차곡차곡 빚을 갚았다.

몸은 힘들었지만 집에 돌아가면 와이프가 있었고, 조금씩 변제되는 빚을 보며 행복을 위해 천천히 나아가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그렇게, 힘낼 수 있었다.

'배달 갔던 모텔에서 전 와이프를 만나기 전까지는 말이지.'

"후우..."

왜 그랬느냐 물으니 기분 전환이라고 했다. 남자는 소개팅 어플로 만난 나와는 다른 양아치 같은 놈이었다.

모델 일을 한다던가.

빚 갚느라 일만하고, 여행도 제대로 못가고 자길 방치했다며 피해자인 척 눈물을 보였다.

'내가 누구 때문에 이 빚을 갚고 있는데! 네가, 네가 어떻게 이래!!'

'누구? 우리 빚이라며! 당연히 갚아야 하는 건데 왜 내 탓을 해!?'

이혼했다.

순탄치는 못했다.

외도의 증거를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전 와이프는 도리어 날 폭력남편으로 만들었다. 화를 참지 못했던 게 화근이었다.

여자의 눈물 몇방울이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할 줄 알았던 법도 등돌린단 사실을 이때 뼈저리게 느꼈다.

전 와이프의 억대 빚은 사랑한다는 이유로 나한테 위임되어 있었고, 내 재산은 아내 빚으로 전부 빼앗기게 되었다.

집도 없고, 차도, 아무것도 없다. 아니, 잃었다고 보는 게 맞는 표현일거다.

그래서.

"읍! 읍읍!!"

"읍읍읍!!"

아무도 피해 끼치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죽기로 했다.

푹, 후두둑. 푹, 후두둑.

왕년에 해봤던 삽질은 나이가 들어 어색하기만 하다. 숨은 차오르고 단련되지 않은 근육은 땀을 쥐어짰다.

그래도 팔다리가 묶인 채 발버둥치는 응원하고 있는 두 년놈을 보니 제법 힘이 난다.

죄책감은 없다.

패소하기 전에는 날 죽이고 보험금까지 챙기려 했던 놈들이니.

"하, 이정도면 됐나."

적당한 깊이. 사람 두 사람 누울 정도의 크기다.

"아... 배고프다."

곧 죽을건데 배는 또 고프다.

사람 몸이란 게 참 신기하고 번거롭고 귀찮다.

배 채울 밥을 꺼내는 대신.

난 가방에서 우유라도 담겼을 것 같은 농약을 꺼냈다.

그라목손. 사람 하나쯤은 순식간에 죽이는 걸로 유명한 놈이다.

이거 한병이면 ㅈ같은 인생도 끝.

여기까지 아무에게도 피해 끼치지 않고 죽으려고 왔다. 더 거리낄 것도 없고 주저할 것도 없다.

"이제, 죽을까?"

"으으읍!!"

"읍읍!!"

심호흡 한번. 두번.

농약을 든 손은 통의 무게를 느끼고, 두 눈은 땅 구덩이에 내던져진 한쌍의 남녀가 보인다.

"그냥, 재수가 없었을 뿐이지. 여보, 그렇게 울지마. 여보가 먼저 저 놈이랑 짜고 내 보험금 노렸잖아. 나도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어. 아, 이젠 여보가 아닌가. 이혼 했으니까."

"읍읍!!"

"으으으읍!!"

손이 떨렸다.

이 떨림은 농약통이 무거워서일까.

아니면 내 눈앞에서 떨고 있는 두 연놈 때문일까.

"농약을 먹으면 식도부터 장기까지 전부 깔끔하게 녹아서 죽는대. 조금 고통스럽겠지만... 다른 사람 죽이려고 했으면 대가는, 치뤄야하잖아."

찌익.

입가에 붙은 테이프를 뜯어내자 가장 먼저 날아든건 애원이었다.

"여보! 내가 잘못했어! 내, 내가 미쳤었나봐!! 이 자식이 날 꼬셨어!! 정말이야! 정말!! 그, 그러니까 제발...!"

스윽, 내연남을 바라보자 자긴 절대 아니라는 듯 고개를 도리도리젓는다.

"읍! 읍읍읍! 으으읍!!"

난 뜯어냈던 테이프를 다시 전 와이프의 입에 붙였다.

그런 말이 듣고 싶은 건 아니었다.

"걱정마. 차례대로 죽여줄테니까."

그래서 가져온 농약이다.

원래는 하고픈 게 많았다.

내가 겪은 아픔이나 고통을 맞보여주며 철저하게 후회하게끔 만들어주려 했다.

"하아..."

하지만 이젠, 저 꼬라지를 보고 있는 거 자체가 괴롭다.

끝내자. 이대로 끝내는 게 맞다.

이 꼴을 더 안 보는게 날 위한 일이다.

"읍! 읍으브읍!!"

"으읍읍읍읍!!"

농약을 들고 년놈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뭔가를 보고 소릴 내지른다.

"뒤에 뭐가 있는... 왁!"

화악! 뭐가 덮쳤다.

철제덫처럼 날카로운 이빨을 지닌 짐승인데 날개가 달려 있었다.

"저게 뭐... 어, 어! 내 농약!"

농약을 뺏겼다.

갈고리 같은 손이 농약을 낚아챘다.

뭔지 모를 괴물이 농약을 입에 물고 있었다. 콰작! 콰직콰직! 과즙처럼 터지는 농약통을 씹어먹었다.

"아니, 그거..."

내 껀데.

크아악!!

끼긱. 괴물이 돌연 피를 검은 피를 토하며 고통에 몸부림쳤다.

놈은 잔뜩 피 흘리며 몸 가누지 못하고 여기박고 저기박고 난리를 치다 고꾸라졌다.

"축하합니다!"

"최초로 그렘린을 처치하셨습니다."

"죽었... 뭐야 이 글자는."

"보상이 주어집니다."

"사용자가 사용한 무기와 전투상황을 측정, 기록합니다."

"조우한 시간 00시23분 전투 종료시간 00시23분. 전투시간 9초가 랭킹에 기록됩니다."

[랭킹 1위 9초]

"축하합니다. 토벌 랭킹 1위를 달성하셨습니다."

"'1위 특전 보상 상자'를 획득합니다."

"전투 상황을 측정하여 가장 알맞는 기프트를 생성 합니다."

"결정 되었습니다."

"기프트가 주어집니다."

"... 뭐야 이게."

[데몬시드 Lv.1]

모든 걸 포기 하고 죽으려던 그 날. 난 죽지 못했다.

대신.

세상이 죽어가기 시작했다.

멸망의 시작 [1]

1화.

"... 뭐야 이게."

눈앞에 펼쳐진 메시지.

그것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데몬시드 Lv.1]

-데몬시드: 생명을 잃은 악마를 씨앗화 한다.

-제물성장: 제물을 이용해 성장 시간을 촉진시킨다.

놀람과 두려움에 경직됐던 심장이 퍼득거린다.

눈앞에 보인 메시지 창은 솔직히 제대로 보이지도 않았다.

꿀꺽.

폰을 잡은 손이 떨렸다.

데몬시드인지 뭔지, 악마인지 뭔지도 잘 모르겠다.

다만, 내 눈앞에 사람이 죽었다는 사실이 먼저 들어올 뿐.

"죽은거지...?"

풀썩. 다리에 힘이 풀렸다.

아까 전 나타났던 괴물 놈이 농약 먹고 발버둥치면서 저 연놈을 할퀴었나보다.

목과 가슴의 살이 찢겨져 벌어진 전 와이프와 내연남이 피 흘린채 그대로 죽어 있었다.

제아무리 죽이려 했어도 전 와이프였다. 살 부대끼며 살았던 여자가 눈 앞에서 죽었다.

"하, 하하... 하하하하하! 크크큭!"

자꾸 어이없는 웃음이 흘러 나온다.

이게 바로 권선징악인지 뭔지 하는 걸지도 모르겠다.

"죽을 잘못 했잖아. 배신했잖아! 내 보험금 노리다 실패하니까 이혼으로 내 재산 다 빼돌리려 했잖아!!"

푹.

옆에 있던 삽을 잡아 찔러 넣는다.

곧장 일어나 땀 흘려 팠던 흙구덩이에 다시 흙을 퍼날랐다.

후두둑!

"그렇게 물고 빨고 하던 놈이랑 같이 죽었으니 좋았겠어."

머릿속이 복잡하다.

그러나 마음 한켠은 시원하다.

푸욱-!

"다음 생엔 바람피지 말도록 해."

후두둑!

애초에 날 죽이려 했던 연놈이다.

죽었는데 뭐 어쩌라고. 꼴 좋다. 사람 뒤통수를 때려도 유분수지 죄값 달게 받았다. 생명보험도 백만원짜릴 들어서 날 죽이려고 했던 연놈이다.

잘 죽었다.

암만 생각해봐도 잘 죽었다.

후두둑.

하지만 아직도 손이 떨린다. 눈앞에서 사람이 죽어서인가. 아니면 웬 정체모를 괴물이 튀어나와서일까.

"뭔 일인지 참..."

갑자기 튀어나온 괴물.

그리고 이상한 메시지 창.

"이런건 소설 속에서나 일어나는 일인줄 알았는데..."

검색해볼 필요도 없었다.

실시간 검색어엔 이미 괴물, 악마. 메시지 창 등등으로 점철이었으니까.

[지금 도시는 정체를 알수 없는 괴물들이 나타나.... 악! 으아아악!!]

건물이 무너지고 군부대가 도륙된다. 총과 포탄으로 괴물들을 죽여도, 다시 나타난다.

하늘을 날고, 바다를 헤엄치는 괴물 놈들이 삽시에 득시글거린다.

비행기를 띄울 수도 없고, 해로를 이용할 수도 없으니 전세계적인 교류는 끊겼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렇다.

세상은, 종말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난 무인도에 있고... 하필 여기로 와가지곤. 아니다. 오히려 다행인건가."

생각을 정리하자.

본래 난, 여기서 죽으려 했다.

전 와이프와 내연남 새끼를 삽으로 때려 죽이고 농약 먹고 콱 죽어버리려고 했다.

요즘 세상에 사람 죽여놓고 버젓이 살수 있는 사회가 아니니까 나랑 이혼한 와이프가 죽었다면 틀림없이 용의자 명단에 오를 건 나고, 결국엔 잡혔을테니까.

그러니 죽으려 했다.

근데.

"경찰은 커녕, 괴물들 때문에 세상이 망하게 생겼네... 하!"

이걸 좋아해야할지 모르겠다.

감옥 안가게 됐음을 좋아해야하나, 아니면 세상이 망했으니 그냥 예정대로 깔끔하게 죽는 게 나으려나.

"내가, 더 살 의미가 있나."

잠시 고민했다.

자연스레 흙으로 덮인 두 연놈이 보였다. 삽을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간다.

죽었지만, 저 개자식들 생각하니 삽으로 대가리라도 한번 더 찍고 싶다.

"저놈들보단 살 가치가 있겠지."

쓰레기보다 못한 개자식들보다야, 내가 살 가치가 더 있다.

애초에.

"내가 죽인 것도 아니잖아."

죽이려고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알아서 죽었으니 죄책감 가질 일도 없다.

"아무 잘못도 안 한 내가 죽는 게 이상한거지. 그래, 내가 왜 죽어. 죽는건 잘못한 놈들이 죽는거지."

"기프트 '데몬시드'를 사용합니다."

죽은 괴물한테 손을 대자.

우드득드득!! 뼈와 살이 부서지고 피까지 일점으로 모여 하나의 씨앗으로 변했다.

"성공적으로 악마를 정화시켜 씨앗으로 만들었습니다."

"경험치가 +1 증가합니다."

「그렘린의 씨앗」

-데몬시드로 만든 악마의 씨앗.

성장 시간: 30일.

"진짜되네."

몸에서 뭔가가 빠져나간 기분.

이내 기분 탓이 아니라는 걸 떠오른 상태창이 말해줬다.

『이화성』

「데몬시드 1 레벨」

「생명력」 – 99/100

「능력치」

근력 – 5

민첩 – 5

건강 – 5

"게임같네."

꼭 90년대를 강타했던 악마 사냥 게임과 같은 상태창이다. 묘하게 아날로그한게 어릴적, 피시방 아저씨들과 했던 그 게임이 생각난다.

확인해보니 라이프가 1 깎였다.

데몬시드의 사용 소모량이 1인 걸 보니, 아마도 라이프가 깍인 듯 하다.

"그러고보니 이거 디아블로 그거 아닌가?"

묘하게 비슷하다.

하지만 데몬시드라는 이상한 능력을 보면 마냥 그건 또 아니겠지.

"30일이 지난 이후에야 뭐가 나올지 알수 있다는건가."

괴물들로 난리도 아니다.

세상의 종말이 찾아왔다고 전세계적으로 난리인데 30일이나 살아 있을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겠다.

자살이고 나발이고, 그냥 무인도에서 고립되서 죽을 거 같았다.

대충 손가락으로 흙을 파 씨앗을 넣고 덮으니 메시지 창이 뜬다.

"제물을 사용하시겠습니까?"

제물 수 -2

"제물? 두개...? 아아."

생각해보니 방금 묻었던 시체 위다.

사용하겠다고 하자, 묻었던 씨앗에서 은은한 빛이 발하며 새싹이 돋기 시작했다.

"오오..."

새싹은 금세 자라라 떡잎을 만들고 가지를 뻗어 내 머리만한 얇은 나무로 변해 열매까지 맺혔다.

"제물을 사용해 작물을 성공적으로 성장시켰습니다. 경험치가 +20 증가합니다."

"와....."

고작 씨앗이었던 게, 캐시템 쓴 작물처럼 훌쩍 자라났다.

마치 마법이라도 쓴 것 같아 괜히 뿌듯하다.

"이걸 내가 만들었단 말이지? 개 신기하네."

게임 같다.

모바일 게임에서 봤던 그런.

"하, 평생 도움 안되더니 죽어서야 도움이 되는구나 경아. 그러게 바람 피지 말았어야지."

전 와이프 이름을 부르며 귤만한 크기의 열매를 똑 땄다.

"최초로 열매를 채취하셨습니다."

"경험치가 +100 증가합니다."

[그렘린의 열매]

-어느정도의 공복감을 채워줍니다. 민첩을 상승시킵니다.

"생긴건 사과랑 비슷한데."

한입 베어 물자.

"맛있다."

입안에 과즙이 터졌다.

키위랑 딸기가 섞인 듯한 맛.

악마로 만든 열매는 달고 맛있었다.

한입에 털어넣자.

"민첩이 0.1 상승했습니다."

민첩이 상승했단 알람이 떴다.

"총 열개니까... 이거 다 먹으면 민첩이 1 오르는거겠네."

그러고보니 그렘린이라는 악마는 꽤 날렵했다. 아마도 그래서 민첩력이 오르는 게 아닐까.

"이거, 엄청 개사기 능력 아냐?"

게임에서라면 트리플 S급 능력과 맞먹는 그런 게 아닐까?

악마 한마리로 만든 나무가 열개의 열매를 생성했으니 한마리당 능력치가 1씩 오르는 거나 다름이 없다.

비록 한달이나 걸리지만.

그 점을 감안해도 대단한 능력이다.

"약간 후반에 포텐터지는 그런..."

게임으로 따지면 후반에 좋은 캐릭터 같은 능력이다.

씨앗을 많이 심으면 심을수록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누구도 넘볼 수 없는 힘을 얻게 되는 걸지도?

물론 능력치가 어떤 형태로 오르는건지는 아직 모르기에 확단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데몬시드는 꽤 좋은 능력이라 생각된다.

"설마 그럴려고, 다른 사람들은 나보다 더 대단한 능력 얻었겠지."

내 능력은 전투직이나 아니냐로 따지자면 명백하게 비 전투군이다.

분명 좋은 기프트지만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 하나 있지 않은가.

"이걸론 악마 못잡잖아."

그러니 악마를 잡아 씨앗으로 만드는 일 자체가 어렵다.

핸드폰으로 잠깐 본 악마들은 형태도 다양하고 지닌 힘도, 능력도 다양한 것처럼 보였다.

총에 죽는 놈들이 있는가하면, 총도 튕겨내고 폭탄을 터트려도 죽지 않는 놈들도 있었다.

'그런 놈들로 씨앗을 만들어 심으려해도 애초에 잡을 수가 있어야지.'

처음 맞딱뜨린 그렘린인지 뭔지 하는 고블린 같은 놈도 지 혼자 독이나 다름 없는 농약을 씹어먹지 않았으면 절대 못잡았을 거다.

"겨우겨우 만든다고해도 한달이나 걸리니까."

그렇다고 사람을 죽여 제물로 쓸 수도 없고 말이다.

애초에 이곳은 무인도.

그래선 안되겠지만 잡아 죽여서 비료로 쓸 사람도 없다.

"꽤 넓기는 하지만... 악마가 더 있을지 없을지도 몰라. 그냥 깔끔하게 죽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는데."

이대로면 그냥 굶어죽는 게 빠를 정도다. 악마로 만든 나무에서 열린 열매는 이제 아홉개.

하루에 하나씩 먹어도 9일 뒤면 먹을 게 없다.

"음? 이건 좀 다르게 생겼네."

열린 열매들 중.

유난히 금색의 은은한 빛을 발하는 열매가 하나 있었다.

그것을 똑 따자.

[빛나는 그렘린의 열매]

-행운이 깃들었습니다. 악마의 혼이 정화되어 특별한 힘이 깃듭니다.

"재밌네."

특별한 힘이 깃든 열매.

앞선 평범한 열매와는 달리, 무엇이 오르는지 조차 쓰여져 있지 않다.

"먹어보면 알겠지."

콰득.

과즙이 터진다.

"우왁! 뭐야!! 왜 이렇게 맛있어!"

한입에 털어 넣었던 게 아쉬울 정도로 엄청 달고 맛있다.

5천원짜리 딸기 먹다가 3만원짜리 킹스트로베리를 먹은 느낌이랄까.

게다가.

"축복으로 이루어진 행운이 깃든 악마의 열매를 섭취하셨습니다."

"마력이 +1 상승합니다."

"마력?"

『이화성』

「데몬시드 1 레벨」

「생명력」 – 95/100

「마나」 - 20/20

「능력치」

근력 – 5

민첩 – 5

건강 – 5

마력 - 1

"최초로 마력을 깨우치셨습니다."

"최초 특전 아이템이 주어집니다."

"오오!"

달칵. 소리와 함께 허공에서 장갑이 떨어져 내렸다.

[푸르푸르의 반장갑] (magic)

방어력 +5

-번개와 태풍의 악마, 푸르푸르가 어린 시절 애용했던 반장갑. 그녀의 기운이 깃들어 있다. (볼트 1일 2회)

내구력 +10% 증가.

번개 내성 +5% 증가.

「볼트」

-여러개의 번개 파장으로 다수의 적에게 피해를 줌. (볼트+1)

"별게 다 있네."

어쨌든 간에 최초 특전!

뭐든 최초는 기분이 좋다.

스윽,

장갑을 껴보자 느낌이 좋다.

매직 아이템이란 걸 보니, 일반적인 장비보단 좋겠지.

시작부터 이런 장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봐도 될테니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간다.

"차지 볼트면 번개네. 완전 소서리스 스킬인데..."

하루에 2회, 사용할 수 있다고 하니 불 걱정은 안해도 될 듯하다.

번갯불로 불 정돈 피울 수 있겠지.

"아, 맞다. 그러고보니까 뭐 1등했다고 특전 얻었다고 했는데... 어디보자. 랭킹이..."

알람 목록을 조금 뒤로 넘기자 아까 전 보였던 랭킹이 떠올랐다.

"축하합니다. 최초 토벌 랭킹 1위를 달성하셨습니다."

"1위 특전 보상 상자를 획득합니다."

"상자가 어디있는건데."

인벤토리 같은 데에 있으려나.

확인해보니 정말 있었다.

"클릭, 클릭."

게임 시스템 같은 인벤토리에 상자를 클릭하니 그림 같았던 게 현실로 툭 튀어 나왔다.

영 적응이 안됐다.

이내 상자를 열자.

"오."

"축하드립니다. 미확인 장비-세트를 얻으셨습니다."

"특전 보너스로 초급 원소 랜덤 스킬북이 주어집니다."

「???-세트」

세트효과- 미확인.

투구와 상하의, 그리고 건틀릿과 각반. 신발과 허리띠까지. 무기로는 단검, 활과 화살. 그리고 도끼까지 있는 초보자 세트였다.

"소가죽인가? 고급지네."

검은 가죽 갑옷 세트였다.

단검과 활, 그리고 도끼는 평범하게 영화에서 봤었던 그런 물건들이었다.

"근데 가죽이 이렇게 무거운거였구나. 생각했던 거보다 무겁네."

은근히 두껍고 단단하다.

무겁기도하니, 이걸 입고 돌아다니면 금세 땀이 한 바가지 쏟아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

"가죽이 이렇게 무거우면 철갑옷은 대체 어떻게 입고 다니는걸까. 중세시대 기사들 진짜 초인들이었네."

가죽갑옷을 입고 잠시 걸어보자 금세 이마에 땀이 송글송글 맺혔다.

"세트 아이템인데 미확인이면 감정 스크롤이나 관련 직업군의 엔피시가 있으면 알 수 있는거잖아."

이런 세트 아이템은 감정해서 제대로 감춰진 능력이 나오기 전까지는 일반 장비나 다름이 없을거다.

감정 스크롤도 주변에 엔피시도 있을 리 없으니 한동안은 기본 능력치로만 사용할 수밖에.

진짜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 게임이랑 너무 비슷하다.

"진짜 활은 장력 엄청 쎄구나."

활시위를 당겨보자 제대로 다 당겨지지도 않는다.

단검이야 그럭저럭 날카로웠고 도끼 또한 유용하게 쓰일 거 같다.

"좋네, 좋아."

무인도에서는 전부 쓰일 곳이 많은 장비들이다.

게다가.

"판타지에서는 역시 마법이지."

「초급 원소 스킬북」

-랜덤으로 원소 스킬을 배운다.

이내 스킬북을 펼치자.

후웅-!

가벼운 바람과 함께.

적힌 글자가 빛났다.

생전 처음보는 생경한 문자였지만 이내 머릿속에 주입되듯 입력됐다.

"워터볼?"

「워터볼」

-대기중의 수분을 모아 물의 공을 만들어 날린다. (MP소모: 5)

"농사나 지으라는건가."

솔직히 파이어 볼 같은 걸 내심 바랐는데, 아니었다.

워터볼이라니.

"물 걱정은 안 해도 되겠네."

악마 사냥은 개뿔.

농사나 지으면서 살아야 할거 같다.

'어, 잠깐만.'

장갑낀 손을 보았다.

푸르푸르의 반장갑.

워터볼, 그리고 차지 볼트.

"괜찮지... 않나?"

멸망의 시작 [2]

2화.

드르륵.

단검으로 나무에 작대기 세개를 새겼다. 그 날로부터 3일.

삼일이 지났다.

"차지볼트."

파지지지직!!

손에서부터 세줄기의 번개가 바다속으로 천천히 쏘아졌다.

퍼덕이는 바닷물과 함께 기절한 물고기들이 물 위로 떠올랐다.

"하루에 두번밖에 못쓰는 게 좀 그렇지만, 확실히 편해."

이게 마법의 편리함이란걸까.

바닷물에 번개좀 뿅뿅 쏴대면 물고기들이 기절해 올라온다.

"우럭이랑, 감성돔! 싯가로 삼십정도 하려나."

이제는 팔 수도 없겠지만.

무인도에서 벌써 삼일이 지났다.

사람이라는 게 며칠은 심란함에 배도 고프지 않았는데 며칠 지나니 배고파서 눈에 불을 켜고 식량을 구하게 된다.

사람이 죽어도 배는 고프다.

그게 아마 인생의 진리겠지.

"뭐 재료라도 있으면 매운탕이라도 끓여 먹을텐데."

그냥 물고기를 먹으려니 처음에는 몰라도 점점 질리고 기생충도 걱정되고 그닥 맛도 없다.

아무것도 못먹고 쫄쫄 굶는 것보다야 낫다지만 이것도 하루이틀이지.

콰직.

그렘린의 열매를 하나 먹었다.

이것도 오늘로 3일째

첫날에 열매 하나와 빛나는 열매를 먹고 어제 오늘 하나씩 먹었다.

이제 그렘린 나무의 열매는 6개가 남았다.

앞으로 6일은 더 버틸 수 있겠지만 그 이후엔 물고기나 잡아서 배를 채우워야할거다.

쌀밥도 없고. 그나마 바닷물이 있으니 어느정도의 짠기는 있다만 그래도 열악한 환경임은 부정할 수 없다.

"농사만 잘되면 딱히 걱정은 없을텐데. 이거 은근히 배가 잘 찬단 말이지. 영양가가 높은가? 하긴..."

밑에 비료로 있는 연놈이 영양을 한가득 빨려주고 있으니 그럴지도.

"오늘도 맛있네."

콰즈즉.

[민첩이 0.1 상승했습니다.]

기분좋은 알람과 함께 갑옷을 무장하고 검과 활까지 몸에 멘다.

단검은 허리춤에, 활과 화살통은 몸에 메고 도끼로는 장작을 잘라 만들어둔 모닥불에 쑤셔 넣어둔다.

불은 꺼지면 귀찮으니까.

"가볼까."

이름없는 무인도.

크지도, 작지도 않은 무인도지만 나름의 풀숲과 지형을 가지고 있다.

독도보다는 조금 크려나.

솔직히 잘 모르겠다.

"해가 저쪽에서 떴으니까... 여기가 동쪽이고 여기가 서쪽이네."

내가 동쪽에서 왔으니 일단 천천히 외곽부터 서쪽으로 가본다.

언제 어디서 악마가 나타날지 모르지만 그래도 탐색은 해봐야하지 않겠는가.

침낭을 가져와서 자는 건 문제가 없지만 언제 어디서 튀어나와 공격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요 며칠 잠을 자도 제대로 자질 못했다.

어차피 무인도에서 나가질 못한다면 차라리 이곳을 정복하는 게 낫다.

"어제 여기까지 왔었으니까... 오늘은 좀 더 가보자."

베이스캠프에서 한 천미터 왔나.

그냥 걷는 게 아니라, 사방을 경계하면서 천천히 걷다보니 하루에 천미터 이상 가는 것도 상당히 힘들다.

"돌과 암석이 많은 지형이라, 어디서 뭐가 튀어 나올지 몰라."

차지볼트랑 워터볼 등의 마법이 있다지만 그래도 갑자기 튀어나온 괴물을 상대하기엔 두렵다.

최선은 먼저 발각되지 않는 것.

먼저 발견하고 먼저 공격하는 것.

그것 말고는 답이 없다.

그게 되지 않는다면 도망치면서 주도권을 먼저 잡는 게 최선.

다른 방법은 없다.

"군대에서 배웠지. 정찰의 요점은 조용히, 발각되지 않는 것이 첫째. 그리고 둘째는..."

흠칫.

벌려진 입을 손으로 가볍게 막는다.

몸에 멘 활을 꺼내 화살을 잡아 암석 위에 자리잡은 바닷물을 묻힌다.

"혼자 있으면 즉각 사살."

이전과 같은 놈이다.

그렘린.

작은 날개, 어린아이같은 몸집.

그러나 이번 놈은 나무 창을 가지고 있었다.

바다 위에서 물고기라고 낚으려고 하는 건가. 출렁이는 바다 위에서 자꾸만 창을 찔러 넣는다.

사냥에 집중하고 있는 지금.

내 화살이 시위에 걸린다.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가까이.

놈과 나의 거리는 약 30미터.

내 활 솜씨는 효자 종목인 양궁으로 이름 날리는 한국인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형편없다.

고작 3일전에 생전 처음 만져봤으니 10미터 안은 되야 그야 맞을만하다.

'그래도 내가 군대에선 스나이퍼 출신이었는데.'

단궁 주제에 실전용이라 그런지 장력이 엄청나서 활시위를 당기고 있는 것 조차도 힘들다.

천천히 다가간다.

20미터.

10미터.

암석에 몸을 숨기다가 바로 지금.

"죽어라!"

피융! 쏘아진 화살이 그렘린을 향해 날아간다.

푹!

"맞췄다!"

하지만.

[캬야아아아악!!]

화살 한대가 복부에 맞은 정도로 악마는 죽지 않았다.

"타임! 타임!!"

터득, 다닥!

당황해서 그런지 등 뒤의 화살이 잡히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그렘린은 작은 날개를 퍼득여 맹렬한 속도로 날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조악한 나무 창을 뻗어오며 말이다.

"에라이!"

겨우 화살을 잡아 활시위를 놓았다.

피융!

놈과 나의 거리는 오미터 쯤.

화살은 꽤 날렵하게 날아갔지만 안타깝게도 맞지 않았다.

가볍게 보고 피한 놈이 더욱 매섭게 괴성을 내지른다.

코앞까지 다가왔을 때.

"워터볼."

휘잉! 퍽!

놈의 안면에 워터볼이 적중했다.

"예상은 했지만 더럽게 약하네."

「워터볼」

-대기중의 수분을 모아 물의 공을 만들어 쏜다. (MP소모: 5)

데미지: 1-3

1-3이라는 데미지는 더럽게 약했다.

나무 정도는 뚫리길래 기대했는데 전혀 아니다.

아니면 그렘린이 질긴거거나.

'효과가 없진 않아.'

적중한 머리통에서 푸른 피가 줄줄 흐르는 붉은 악마를 보니 함께 식은땀이 흐른다.

[크아아아아악!!]

드르륵 고개를 바로 세운 그렘린이 다시 한번 포효하며 창을 날린다.

"왁!"

내던진 나무 창이 퍽! 소리를 내며 발치에 꽂힌다.

대앵-!

돌덩이를 꿰뚫고 들어가는 나무 창을보니 그렘린의 힘이 얼마나 강한지 알수 있는 대목이었다.

창이 빗나가자 발작적으로 분노조절장애를 일으키는 놈이 날카로운 손톱의 두 손을 뻗으며 짖쳐든다.

그리고 바로 그때.

"지금이니?!"

「차지 볼트」

-여러개의 번개 파장으로 다수의 적에게 피해를 줌. (1일 2회)

데미지: 2-4

번개 파장 3개가 오른손에서 발사되어 모두 그렘린에게 직격한다.

차지볼트의 번개 파장은 한번 쏘면 3개로 나뉘어 부채꼴로 퍼지는데, 당연히 멀리서 쏘면 두개는 피해지고 가운데 하나밖에 맞지 않는다.

그걸 세개 다 맞췄으니 놈이 입은 데미지는 최대 출력.

'거기에 더해.'

미리 맞춘 화살과 워터볼.

화살의 데미지와 워터볼을 맞춰 몸이 젖은 이때야 말로 차지 볼트가 빛을 발하는 때.

파지지지지지직!

[케캬야케야케캬아아악!!]

"나이스!"

"물에 닿은 적에게 차지 볼트가 적중했습니다."

"감전 효과가 증폭됩니다!"

전기 통구이가 되며 발작하는 그렘린을 보며 방심하지 않고 허릿춤의 단검을 꺼내 두 손으로 들었다.

퍽!

차지볼트에 구워진 그렘린이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그렘린.

푸른 피를 울컥울컥 토하고 있지만.

'살아있다.'

아직 살아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도 살아있다니 더럽게 질긴 목숨이다.

"농약이 개사기였네."

처음에 나타난 놈이 농약 먹어주고 죽어준 게 천운이었다.

이렇게 질긴 놈이었을 줄이야.

농약이 날 살렸다.

무인도를 나간다면 농업 공장 털어서 농약이나 한박스 가져와야겠다.

"우, 움직이지마. 움직이지말라고!"

심장을 겨냥하고 그대로 체중을 다해 찌른다.

뿌직, 뿌드득!

[컥! 카아악!!]

뼈가 으스러지는 소리.

손끝으로 느껴지는 감각들이 미친듯이 소름돋는다.

그럼에도 살고자 꿈틀거리는 괴물 놈의 모습이 너무도 두렵다.

"죽어! 죽어! 죽어! 죽어어!!"

푹! 푹! 푹! 푹!!

더이상 움직이지 않을 때가 되어서야 단검을 내려 놓았다.

"사냥꾼 그렘린을 처치하셨습니다."

"경험치가 +100 상승합니다."

"이 땅에서 최초로 사냥꾼 그렘린을 처치하셨습니다."

"최초 특전이 주어집니다."

〈그렘린의 목걸이〉

"후, 후아... 이 짓을 시발 몇번이나 더 해야되는건, 가?"

두손이 덜덜 떨린다.

고작 한마리.

생각했던 대로, 연습했던 대로 화살과 워터볼도 맞추고 차지볼트까지 완벽한 타이밍에 적중시켰다.

게다가 마무리까지.

만약 이중 하나라도 빗나갔다면 죽는 건 놈이 아니라 나였을 거다.

"게임처럼 쉽지는 않네."

털썩.

주저 앉아 깊은 숨을 내어 쉰다.

온몸은 땀으로 흠뻑 젖었고, 깊은 피로감이 동시에 몰려온다.

"일단 할건 해야지."

[데몬시드]

화아앗.

꾸드드드득!

그렘린의 육신이 한줌 씨앗으로 변해 손바닥 위에 올려진다.

"경험치가 +1 상승합니다."

"이거 하나 땜에 뭔 짓이냐 진짜."

그래도 어쩔 수 없다.

이게 내 밑천이자, 동아줄이니까.

씨앗도 하나 만들었겠다.

오늘은 이 정도로 하는 게 낫겠지.

"최초 특전도 얻었고, 그냥 그렘린보다는 다른 놈 같으니 이놈 심으면 다른 능력치가 오를지도 모르겠네."

[사냥꾼 그렘린의 씨앗]

-사냥꾼 그렘린으로 만든 씨앗.

성장시간: 30일.

게다가 최초 특전으로 얻은 아이템.

[사냥꾼 그렘린의 목걸이] (magic)

-명중률 +2

-그렘린 부락의 식량을 책임지는 악마. 창을 들고 다니며 일반 그렘린보다 힘이 강한 편.

명중률 +2나 올려주는 목걸이.

매직 아이템이다.

조악한 돌과 조개로 만든 목걸이 같은데 명중률을 2나 올려주는 매직 아이템이다.

"좋은 템이겠지? 시험해볼까."

놈에게 꽂혔던 화살을 주워 활시위를 걸어 쏴봤다.

피융- 퍽!

"어, 나 국대 나가도 될거 같은데."

삼십미터 쯤 되는 나무에 쐈는데 정확히 맞았다.

"이번엔 좀더 멀리..."

오십미터.

나무가 나무젓가락처럼 보인다.

아무리 명중률이 올라도 이 거리에서 맞추기는 어렵지 않을까.

퍽-!

"맞네 이게."

역시 세상의 진리는 템빨.

명중률이 2 오른 정도로 활 솜씨가 국대 수준이 되었다.

아이템의 효과가 생각보다 대단했다.

최초 특전.

특전이란 특전은 모조리 욕심나기 시작했다.

"이거라면 멀리서 세발은 더 맞출 수도 있겠는 걸."

조금 더 수월하게 그렘린을 청소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이건 뭐야. 동전? 금인가?"

꾸깃꾸깃하지만 나름 동그란 금 색깔을 유지하고 있다.

아무래도 금화 같다.

그것도 8개 씩이나.

"금화... 이거 설마 나중에 뭐, 엔피시도 나오고 거래소도 나오고 하는 그런 건 아니겠지."

왠지 불길한 예감이 드는 걸 보니 아무래도 수상하다. 금화 하나를 챙겨놓은 뒤, 일어나자 놈이 있었던 자리의 바닷물이 출렁였다.

그리고 그 속에 뭔가가 있었음을 깨달았다.

"물고기라도 잡으려고 그러나 했더니... 그냥 장난치고 있었네."

멀리서 봤을 땐 몰랐다.

근데 이제보니 바닷물 위에 시커먼 것들이 잔뜩 둥둥 떠 있었다.

파도에 떠밀려온 돌고래. 커다란 이름 모를 물고기.

그리고.

"비료로 쓰면 되겠다."

죽은 사람들까지 떠밀려 왔었다.

멸망의 시작 [3]

3화.

경기도 의정부.

"사격 개시!!"

탕탕탕탕!!

거리는 불타고, 그 사이를 이미 죽어 쓰러져야 할 시체들이 걷는다.

죽었으나 걷는 워킹데드.

살아있는 시체. 언데드가 거친 발톱과 이빨을 들이밀며 달려든다.

"죽여! 저 좀비 새끼들!"

좀비였다.

5분여에 걸친 총알 세례에 겨우 잠잠해진 의정부 거리에 다시금 비명이 자아난다.

"또 뭐야!"

"그렘린입니다!"

붉은 악마.

어린아이와도 같은 체형에 작은 날개를 달고 있는 악마. 하지만 그 속도도, 강력함도 남다르다.

"뭐!? 젠장! 퇴각! 퇴각한다!"

"예? 그, 그래도 저기 사람들이...!"

그렘린한테 머리채를 붙잡힌 여자가 소대장 눈에 걸렸지만 중대장이 곧장 멱살을 잡고 욕지거릴 박는다.

"야 이새끼야! 그렘린은 총알도 안통해! 철갑탄이라도 쏴야 뒤질 새낀데 몸집도 잡고 빨라서 맞추기도 힘든데 우리 병력으로 어떻게 잡아!!"

탁!

"잔말말고 빨리 퇴각해! 지금은 전시 상황이다! 상관 명령에 불볼종하면 어떻게 되는 지 알고 있지?"

"알겠습니다..."

"퇴각! 퇴각해!"

"운전병 어딨어! 야! 너희들 5톤 타고! 남은 병력은 소대장이랑 행군해!"

"옙!"

재빠르게 5톤 트럭에 올라탄 병력들과 남은 병력들이 소대장과 함께 행군 준비를 시작했다.

"소대장 짬찌 새끼가 뭔 말이 많아. 걍 까라면 깔 것이지. 괜히 걸어가게 생겼네. 안 그러냐."

"이해하십쇼. 소대장님 부모님이 해군이신데 지금 연락이 안되신답니다. 그쪽도 육지만큼 개박살 나고 있다니까 좀 그러신거겠죠."

차라리 육지는 낫다.

해상전투는 배가 터지면 모조리 몰살이니 여기보다 사상자가 더 많다.

"쯧."

"근데 김상철 병장님, 그렘린이 그렇게 쎕니까?"

"모르냐? 그렘린 한마리한테 저기 옆부대 아저씨들 다 죽었다잖아."

"정말임까?"

김병장이 고개를 주억였다.

"다 뒤졌대. 씨발... K2든 K3든 안 통하고 K6는 되야 비빌만한데, 조옷~나 빨라서 맞질 않는데요~"

"K6면 맞는답니까?"

"옆부대 포병부대잖아. 맞추니까 피 터지긴 한다더라. 근데 뒤지게 안 죽어서 탱크로 세번정도 밟아죽였대."

잘근잘근 으깨주고 나서야 겨우 죽는 괴물중의 괴물이다.

생긴건 붉은 악마라서 월드컵이 생각나서 나름 친근하지만 무섭도록 두려운 존재다.

다른 악마들은 크기도 큼직하고, 여러 약점이 보이지만 그렘린은 현재로서 약점 파악이 되지 않은 악마.

군대에서는 악마들의 수준을 크게 다섯개로 나뉘어 놨는데, 그렘린은 그중에서도 2레벨에 속하는 놈이다.

"씨발, 이럴 줄 알았으면 선임들 다 총으로 쏴죽이고 나도 죽을 걸. 괜히 참아서 이지랄 중이네. 말년 휴가도 못나가고 이게 뭐야 씨발."

"그러게나 말임다. 어, 박산 병장님. 뭐 보십니까?"

"랭킹."

"그거 정말임까? 전 상태창이 아직 안 나와서 믿기지가 않지 말임다."

"랭킹 1위, 9초. 라고 쓰여있다."

[네피림 순위]

[랭킹 1위 9초]

[랭킹 2위 3분 25초.]

[랭킹 3위 7분 51초.]

"와, 9초만에 악마 어떻게 잡았지? 미친놈 아님까?"

"그러니까 말이다~ 세상 존나게 불공평하다니까. 2등이 3분대인데 9초는 말도 안되지. 씨바거. 애초에 저 랭킹 좀비 죽여서는 안 오르잖아."

"좀비는 악마들한테 당한 사람들이 일어난거니까... 악마를 죽여야지."

좀비는 언데드.

명백히 악마로 통용되기는 하지만 온전한 악마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들을 만들어낸 괴물.

악마를 잡아야만 각성하고 랭킹에 등재될 수가 있다.

"커뮤니티에서는 나인이라고 불린다더라."

나인.

그게 랭킹 1위의 이명이었다.

이름도 닉네임도 적혀있지 않아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그렇게 부르게 됐다고 한다.

"3등이 7분대였나. 특전으로 도끼 얻었는데 엄청 좋대. 철도 쉽게 잘린다더라. 사람이 만든 거랑은 아예 다르다던데?"

박산이 네피림 커뮤니티를 살펴보며 말했다.

네피림.

악마를 죽이고 각성한 능력자들을 시스템은 네피림이라고 불렀다.

"3등이 그런거 받았으면 대체 1등은 얼마나 개사기 장비 받았을까."

"막 마법 퓽퓽 쏘는 거 아님까?"

"에라이 씨, 아무리 그래도 마법이 있겠냐. 말이 되는 소릴 해야지."

"야, 야. 얼른가자 소대장 또 장군 빙의해서 머라하겠다."

"옙! 알겠슴다~"

*

"워터볼."

펑!

워터볼로 두들겨도 미동도 없는 걸 보니 확실히 죽었다. 사람으로 위장한 무언가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한번 쏴봤다.

"나무아타미불. 성자와 성령이 어쩌고 극락왕생하세요."

바닷물에 밀려든 시체는 다섯 구.

함께 딸려온 철 조각 같은 걸 보니, 배를 탔다가 악마들한테 당한 게 아닐까 싶다.

인상착의는 군복. 해군으로 보였다.

"어차피 괴물들한테 뜯겨 먹힐테니 제가 잘 묻어주고 자연으로 돌려 보내드리겠습니다."

잘됐다 싶다. 사냥꾼 그렘린 씨앗을 묻어봤자 30일이나 이후에 열매가 열린텐데, 이 시체들이 있으면 기간을 단축 시킬 수 있다.

"처음엔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냅다 성장시켜버렸지만, 이번엔 좀 확인 좀 해야지."

사람 한명분의 비료가 성장 촉진을 얼마나 하는지 좀 알아보고 싶다.

"어차피 이 지경이 됐으면 바깥도 사람 꽤나 죽었을테니까."

나중에 무인도를 나가게 된다면 괴물들 먹잇감이 될 바에야 땅에 묻히고 자연으로 환원됨이 좋지 않는가!

뭔가 장의사가 된 느낌이지만 그게 내 능력이니 어쩔 수 없다.

효율적으로 씨앗을 성장시킬 방법이 있는데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내가 죽인 것도 아닌데 뭐.'

질질 시체를 끌고다니니 힘들고, 기분도 나쁘지만 어쩌랴.

살려면 이럴 수밖에 없는데.

"제물성장하면 나무야 금방 자라니까 가서 악과 좀 먹어야겠다."

악마의 열매이니, 악과.

열매열매거리긴 좀 이상해서 내가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6개가 남아 있지만, 오늘 한마리 잡고 제물 바쳐서 성장시킬거니 자기 전에 하나 먹어도 상관없다.

밥 없이 생선만 먹기엔 비리고 간이 되어 있지 않아서인지 왠지 맛도 별로 없다.

회로 먹으면 그나마 괜찮겠지만, 차지볼트로 잡다보니 어중간하게 익어서 나오기에 그러지도 못한다.

그보다는 악과를 먹는 게 맛있고, 배도 금방 차기 때문이다.

'능력치도 오르니까.'

악과를 먹는 게 이득이다.

수량 공급이 잘만 된다면 말이다.

"어우, 무거워!"

털썩, 다 왔으니까 좀만 쉬었다 가려고 잠시 앉았다.

"이젠 핸드폰도 못보고, 어떻게 되는 지 알 수가 없네. 이럴 줄 알았으면 동생한테 전화 좀 할걸."

그때 이후로 연락을 끊었던 터라 생각조차 하질 못했다.

시간이 지나서야 생각 나 전화했지만 이미 전파가 통하지 않았다.

그때즈음 데이터도 끊겨서 바깥 상황을 전부 알 수 없게 됐다.

"살아있겠지."

고아원에서부터 악착같기로는 저리가라 했던 동생이다. 피가 섞이지는 않았지만 고아원에서 내가 동생이라 생각하는 그 아이 하나 뿐.

가족 같은 애였는데 결혼할 때 다툰 이후로 연락이 끊겨서 자꾸 생각난다.

지금 같은 세상이 됐으니 더 그런거지만.

"... 지 알아서 하겠지."

내가 누구 걱정할 처지는 아니다.

"일어날까."

괜히 생각이 많아지니 울적하다.

시체의 발을 잡고 끌고간다.

커다란 바위를 지나니 풀숲에 가려져 있는 그렘린의 나무가 보인다.

근데.

'!!'

뭔가가 있다.

다급히 바위 뒤로 몸을 숨겼다.

심장이 콩닥콩닥 뛴다.

흠칫 보인 건, 조그만 놈 둘.

'저것들 뭐야.'

겨우겨우 한 놈을 잡고 왔더니만.

'두 놈이 몸소 찾아오셨네...'

다행이라면 다행일까.

그냥 베이스캠프에 죽치고 있었으면 놈들한테 기습이라도 당할 뻔 했다.

그렘린 둘. 앞서 [사냥꾼 그렘린]을 봐서 그런가. 창을 들고 있던 놈과는 확실히 근육의 크기라던가 피지컬, 그리고 생김새가 조금 다르다.

놈들은 뭔가를 찾는 듯 코를 킁킁대거나 [그렘린의 나무]를 건들이고 내 침낭까지 들썩거렸다.

'뭘 하는거지.'

그러다 문득.

나무에 매달려 있는 악과에 관심을 보이더니 하나를 똑 땄다.

곧장 입으로 넣어보더니.

[캬악!]

맛있다는 듯 방방 뛰고 난리가 났다.

'저 새끼가 내 식량을!'

저 모습만 보면 꽤 귀여운 아이와 같은 반응이었지만, 이후의 행동은 전혀 귀엽지 않았다.

[캭! 캬캭!]

[캬아악!]

자신도 주라는 듯 다른 그렘린이 손을 뻗자 저기 있는 악과가 전부 자기꺼라는 듯 밀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다툼이 시작되고.

[카악!!]

악과를 먹은 그렘린이 다른 놈의 목을 순식간에 물어 뜯어버렸다.

[카아아아악!! 카아아악!!]

털썩.

푸른 피가 흘러나온 그렘린은 순식간에 절명했고 하나 남은 놈은 만족스럽게 다른 악과를 탐내려 했다.

'동족을 죽이는 데도 서슴없어.'

별로 신경쓰지도 않는 듯 했다.

난 놈의 행동을 유심히 지켜봤다.

악과가 꽤 마음에 들었는지 손을 뻗었다가 거뒀다가를 반복한다.

먹고는 싶지만 몇개 남지 않아 주저하는 듯한 인내력을 보이고 있었다.

생각보다 계산을 해보이는 지능에 놀랐고 나름의 인내심에 또 놀랐다.

그러다가도 결국엔 악과 하나에 손을 뻗어 입안에 털어놓고는 데몬트리 주변을 덩실덩실 돌며 춤을 췄다.

난 곧장 화살을 꺼내 활시위를 당겼다. 명중률의 보정을 받은 내 활솜씨는 이전과 다르다.

놈과 나의 거리는 약 30미터.

충분히 맞출 수 있는 거리다.

남은 건 타이밍.

놈이 잠시 멈췄을 때.

그때가 타이밍이다.

드르륵.

활시위를 당기자, 활이 비명을 내지른다.

그때였다.

휙.

그렘린의 커다란 귀가 쫑긋이더니 내 쪽을 휙 쳐다봤다.

그리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난 천천히 활시위를 돌려놓았다.

이미 들켰다면 화살은 의미가 없다.

날개 달려있는 민첩한 그렘린이 내 화살을 피하지 못할리 없으니까.

'해볼까.'

난 곧장 내가 가져온 시체 위에 [사냥꾼 그렘린의 씨앗]을 올렸다.

놈이 보란 듯이.

[데몬시드 Lv.1]

-데몬시드: 생명을 잃은 악마를 씨앗화 한다.

-제물성장: 제물을 이용해 성장 시간을 촉진시킨다.

"제물성장."

"제물을 이용해 데몬시드를 성장시키겠습니까?"

예스.

곧장 작은 빛과 바람이 불어오고 순식간에 씨앗이 시체를 잡아먹고 자라나기 시작했다.

우드드득.

뻗어나온 가지와 함께 데몬트리의 악과가 열린다.

열린 열매는 12개.

사냥꾼 그렘린으로 만들어서 그런지 나무가 조금 더 크다 열매도 많다.

'제물은 하나로도 충분하네. 다행이야.'

난 곧장 악과 하나를 땄다.

그리고.

"먹고 싶냐?"

놈에게 데구르르 굴려줬다.

[캬캭!?]

이건 일종의 도박.

안된다면 죽인다.

하지만 된다면?

'무인도에 내가 모르는 그렘린의 소굴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이놈을 죽여봤자 또 다른 정찰조가 올지도 모른다.

놈들이 처음 뭔가를 찾으려고 했던 건, 내가 죽인 그렘린일 터.

그럼 놈을 죽여도 다른 놈이 온다.

본래라면 놈도 죽였을테지만...

'걸어볼 가치는 있어.'

놈은 동족을 죽일 정도로 거침없고, 악과의 매력을 똑똑히 안다.

욕심 많지만 약간의 인내심과 계산 가능한 두뇌까지 있다.

"내가 만든거다. 이 열매."

그렘린이 잔뜩 경계하며 자기 발치의 열매를 잡았다.

그리고 한입 베어 물더니.

[캬캭!!]

맛있다는 듯 귀를 쫑긋거리고 팔짝팔짝 뛴다. 그러다 머쓱한지 흠칫 정신 차리고 날 노려본다.

"네 동족들, 잡아오면. 더 많이 만들 수 있는데... 어때?"

[캬캭!?]

멸망의 시작 [4]

4화.

청와대 지하, 방공호.

담배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방안. 쿵쿵 떨려오는 진동음이 바깥 상황이 여의치 않음을 보여줬다.

"상황은 어떻나."

"확인된 피해만 수십만명의 피해가 예상됩니다."

고작 사흘만에 수십만명의 사상자가 나왔다. 이 또한 예측일 뿐이라 실제로는 더 많을지도 모른다.

대한민국은 현재, 조선시대때나 겪었던 멸망의 기로에 서있었다.

"타, 타국도 사정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고 합니다. 좀비, 스켈레톤, 고블린, 그렘린 등등, 총 25종류 이상의 악마들이 나타나 전세계를 쑥대밭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대한민국 뿐만 아니라는 사실이 그나마 위안이라면 위안일까.

그걸 위안으로 삼아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UN에서는?"

"일단 '네피림'이라는 각성자들의 보호와 성장을 도우며 각 악마들의 위험 정도를 정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네피림. 일반인들 사이에서 각성자라 불리는 자들.

성경에서는 천사와 인간 사이에서 나온 사생아를 뜻한다.

갑자기 나타난 악마.

그리고 함께 나타나는 네피림.

이것들로 인해 종교쟁이들은 벌써부터 세상의 멸망과 함께 하느님의 시련이라 울부짖고 있다.

"그나마 군대를 동원해 토벌할 수 있는 개체는 un에서 보내온 1레벨이나 2레벨 이하만 통용됩니다. 3레벨부터는 전술무기를 사용해야만 토벌이 가능하다고 전해왔습니다."

"브리핑 해보게."

띡.

화면에 우선적으로 나온 건 당연하다고 해야 할 정도로 흔한 좀비.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악마들.

"지금 가장 위험 순위가 낮은 개체는 꽤 많습니다. 식물부터 벌레와 짐승까지 다양한 악마화된 이들은 셀수도 없이 많습니다."

"한국에는 없잖나."

"예, 맞습니다. 한국에는 대표적으로 좀비와 고블린등이 현재 위험순위가 가장 낮습니다."

좀비와 고블린.

이들은 보통적으로 인간과 비슷한 레벨로 죽일 수 있는 존재들.

무장한 총만 가지고 있다면 손쉽게 토벌이 가능한 개체들이다.

"좀비의 토벌 방법은 좀비 무리의 리더를 우선적으로 제거하는 게 좋다고 합니다."

"리더?"

"예, 좀비가 무리를 짓고 있을 시에는 반드시 무리의 리더격 좀비가 존재하고 있는데, 육안으로도 식별이 가능할 정도라고 합니다."

띡. 화면이 전환되자 좀비 무리들 중, 한 가운데에 있는 좀비가 유달리도 눈에 띤다.

"드론으로 촬영한 사진입니다. 사진상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각성자' 즉, 네피림들에게는 저들의 머리 위에 이름이 뜬다고 하더군요."

"이름이? 게임 같구만."

"예. 일어나는 현상 전부가 게임에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흡사합니다."

"더 해보게."

"좀비의 리더격 존재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간혹 리더격들 중 푸른색이나 붉은색으로 색이 구분되어 있고, 수식어가 붙어 있는 놈들도 있습니다."

[발빠른 좀비 이조르]

"이런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악마들을 챔피언 데몬이라 부릅니다."

"챔피언?"

"예, 본래라면."

[좀비]

"이렇게만 적혀 있고, 간혹 엘리트라 불리는 것들이."

[추적하는 좀비]

"수식어만 붙어있군."

"아직 부여받지 못했거나 깨닫지 못했음을 암시하는 걸지도요."

"하지만 좀비라는 이름이 보이게되고 풀네임이 붙어 있는 것들을 챔피언이라고 부르는데, 이들은 엘리트 데몬보다 더 강력하다고 합니다."

약 2배에서 3배.

일반 데몬보다 5배 정도 강한거다.

"흐음..... 흥미롭군."

엘리트 좀비라니.

이게 정녕 우리가 알고 있던 현대 사회가 맞는지조차 의심스럽다.

하지만 세계는 단기간에 바뀌었고 지금도 시시각각 멸망의 길을 걷고 있다. 믿고싶지 않아도 믿어야 한다.

"하루 빨리 네피림들에게 이런 정보를 전달하고 그들의 신병을 확보해 데몬 토벌에 나서야 합니다!"

"예비군들도 다 도망가서 징집이 안되는데 그들이라고 될까요?"

"해봐야지요. 이대로가면 멸망입니다. 듣기로 네피림들은 각각의 능력들이 있다합디다. 그들의 힘을 잘만 키운다면 난리쳐대는 괴물들을 타개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타계.

하지만 네피림만에게 기대하기엔 현 상황은 너무도 부조리하다.

"그럴 필요 있습니까? 저희는 전술지대지유도무기인 현무가 있는데요!"

"현무는 현재, 북에서 내려오는 대량의 악마들을 막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해상 괴물들도 현무를 총 동원하고 있음을 모르십니까!"

"게다가 현무의 폭발 여파에 민간인들까지 다칠 수 있어요. 현무의 사용 여부는 극히 제한됩니다."

"허허... 그럼 뭐 이렇게 손가락이나 빨자는겁니까! 뭐라도 해야 할거 아니요!"

쾅!

테이블을 내려친 국방부장관이 방공호에 모인 장관들을 노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

"지금으로서는 네피림 커뮤니티인지 뭔지에 대량의 정보들을 흘리는 것 뿐입니다. 그렇게라도 해야 네피림들의 생존률과 힘을 강화하는 방법이 최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장관."

"예, 각하."

"네피림이라는 자들의 힘이 그렇게 강한겁니까. 장관이 목멜만큼."

그러자 국방부 장관이 품에서 usb 하나를 꺼내 컴퓨터에 연결했다.

화면에 작은 문서들과 사진등이 떠올랐다.

"현재 저희는 랭킹 2위에 속하는 네피림과 연이 닿았습니다. 그가 말한 정보에 의하면 2레벨 위험개체는 어렵지 않게 토벌이 가능하다군요."

군부대를 동원해야 겨우 토벌이 가능할 2레벨 위험개체들을 혼자서?

그러자 회장은 잠시 소란이 일었다.

랭킹 2위의 네피림.

그 혼자서 군부대와 동급의 힘을 지녔다는 말과 다르지 않았다.

"그는 자신을 아마존이라고 소개 했습니다."

"아마존?"

"듣기로는 활을 다룬다더군요."

"활? 아무리 우리나라가 활의 나라지만 그래봤자 총보단 약할텐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만... 이 자가 지닌 활은 조금 다르다고 합니다. 숨겨진 능력이 있다더군요. 그는 이걸 '매직' 아이템이라고 했습니다."

"....."

"마치 게임같군. 하지만 그도 3레벨 위험군 토벌은 못하는건가?"

"예, 안타깝게도 현재로서는 그렇지만 잠재력만큼은 무시할 수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지금은 아니라도 근 시일내로.

그는 3레벨 위험군인 그렘린을 홀로 토벌할지도 모른다.

"랭킹 1위의 소재는 아직입니까?"

"안타깝게도 그렇습니다."

랭킹 2위는 그들만의 커뮤니티에서 우연찮게 연락이 닿았을 뿐이다.

1위는 완전한 베일에 쌓인 존재.

'1위와 연락이 닿았다면 좋았을테지만 어쩔 수 없지.'

랭킹 1위 나인(nine).

전투시작 9초만에 악마를 토벌한 위용은 누구라도 놀랄 정도니까.

"하지만 랭킹 1위라도 현재로서는 3레벨 개체를 토벌하진 못하겠죠.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보고 있습니다."

"3레벨이면 그... 그렘린 말인가."

좀비나 고블린이 1레벨 위험개체.

구울이나 스켈레톤등이 2레벨로 지정되어 있다.

그리고 3레벨 대표격이 그렘린.

대한민국에서는 3레벨 위험개체인 그렘린이 가장 골치 아프다.

대통령도 알고 있을 만큼.

"그렘린이 골치로군."

"그렘린에 대한 정보가 있습니까."

"예, 5살에서 7살 아이 정도의 지능을 가졌고 완력은 자동차를 찢을 정도고 비행 능력은 높지 않습니다만 크기가 작아 토벌이 매우 어렵죠. 행동 패턴이 단순하고 즉흥적이지만 그렇기에 예측이 불가능합니다."

"지능이 있다면 사로잡아 길들여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거래라던가 하는 것들로 말일세."

대통령의 말에 국방부장관은 고개를 내저었다.

"애초에 언어적 소통이 불가능하고 가능한다할지라도 인내심 결여로 그 확률은 1퍼센트 미만입니다."

"불가능하단 소리군."

"지금까지로선 그렇습니다."

그 수는 소수이나 대다수의 인명피해를 만들어낸 장본인은 그렘린이다.

그들은 왜인지 인간의 기계장치를 부수는 걸 좋아하기에, 여객선이나 비행선을 닥치는대로 부수고 놀기를 좋아하기 때문이었다.

"악마라 불리는 것들이, 괜히 그런 게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만일 그렘린을 길들일 수 있는 자가 있다면 제 이름을 걸고, 그를 국방부장관인 제 옷을 넘기도록 하죠."

*

[캬캭!!]

무인도 생활 4일 째.

내 무인도 생활은 격변을 맞이했다.

털썩. 자신의 동족 악마의 사체를 던져놓는 그렘린.

"그램."

그렘린이니까 줄여서 그램.

난 놈을 그렇게 부르기로 했다. 앞으로 자주 거래하게 될 동업자이니 이름 정도는 있어야지.

[캬캬캭!]

"그래, 여깄다."

인벤토리에 있던 악과를 꺼내 휙, 던져주자 그제야 희희 웃으며 야금야금 조금씩 아껴 먹는다.

허공을 날아다니며 맛에 취해 춤을 추기 시작하는 꼴을 보면 어린아이 같아 귀엽지만, 그 실상은 맛있는 것좀 먹겠다고 제 동족을 죽여서 가져다 바치는 '악마' 그 자체였다.

'그래도 덕분에 일이 쉬워졌다.'

콰즉.

"사냥꾼 그렘린의 열매를 섭취하셨습니다."

"근력이 0.1 상승했습니다."

그램이 그렘린을 한마리 데려올때마다 악과 하나씩을 주기로 했다.

놈이 그렘린을 가져올때마다 난 데몬시드로 농사를 짓고 과실이 맺히면 최소 10개의 악과가 생긴다.

힘 하나 들이지 않고 악과 농사를 지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의식주중 식이 대충 해결됐다.'

사냥꾼 그렘린을 심었더니 맺힌 과실은 이번엔 힘을 올려준다.

수량 또한 일반 그렘린보다 많다.

총 12개.

일반적인 그렘린이 민첩을 올려줬었는데 사냥꾼이란 수식어가 달린 녀석들은 속도보단 힘 위주의 특성을 가진 놈들인 듯 했다.

"하지만 이번엔 빛나는 악과가 없는 게 아쉽단 말이지."

제물을 하나 바쳐서 성장시킨 악과에 빛나는 이란 수식어가 붙은 녀석은 나오지 않았다.

그건 아마도.

'제물을 하나만 바쳤기 때문이겠지.'

처음 데몬시드를 심엇을 때.

그 밑에는 전 와이프와 내연남이라는 두개의 비료가 있었다.

그렇기에 빛나는 악과를 얻었고 특수 능력치인 마력을 얻었다.

'하지만 이녀석은 없어.'

앞선 데몬트리와 다른 게 있다면 녀석이 먹어치운 제물은 사람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늘 하나 더 가져왔지."

[제물성장]

-제물성장: 제물을 이용해 성장 시간을 촉진시킨다.

사냥꾼으로 만든 데몬트리 앞에서 제물성장을 사용한다.

"제물을 사용해 작물을 성장시키겠습니까?"

"예쓰."

그러자 시체가 가루가 되어 풍화되고 데몬트리로 흡수된다.

[캬캭!?]

허공을 날아다니던 그램이 화들짝 놀라던 그때.

사냥꾼 나무에서 악과중 하나가 은은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성공적으로 제물을 바쳐 작물을 성장시켰습니다."

"열매 중 하나에 행운이 깃듭니다."

똑.

당장 빛나는 악과를 따자.

"행운이 깃든 열매를 수확했습니다."

"경험치가 +50 상승합니다."

[빛나는 사냥꾼 그렘린의 열매]

-행운이 깃들었습니다. 악마의 혼이 정화되어 특별한 힘이 깃듭니다.

"먹어보실까."

그때였다.

[캬, 캬캬캭!!]

그램이 화들짝 놀라서 커다란 눈망울로 두손을 꼬옥 모았다.

그리고는 자기가 꼭 먹고 싶다며 입을 벌려 손가락질 한다.

"오늘치 할당량은 이미 받았잖아."

[캬악!!]

"얌마, 이 상처 안 보이냐? 우린 거래했다."

[캭....캬캭....]

이내 시무룩해져 고개를 떨군다.

하루 전.

그램은 곧바로 내 제안을 받아들인 게 아니었다.

본능적이었던건지, 자신과 동급이 아니면 거래하지 않는다는 생각이었는지 놈은 날 공격했다.

기습적인 공격에 난 팔뚝에 상처를 입었고 그램 또한 내 워터볼과 도끼에 찍혀 상처 입었다.

서로 빈사 상태가 되어서야 놈은 나와의 거래하기로 했고, 서로의 상처를 표식으로 삼기로 했다.

난 팔뚝에 그램의 손톱자국.

그리고 놈은 이마에 도끼로 찍힌 자국이 선명하게 자리해 있었다.

한때는 어떻게 되나 했지만... 지금으로선 이게 최선이었다.

콰직.

"빛나는 사냥꾼의 그렘린 열매를 섭취하셨습니다."

"행운이 깃든 악마의 열매를 섭취했습니다. 관련 악마의 귀중한 능력이 당신의 몸속으로 스며듭니다."

「투척 스킬을 깨닫습니다.」

"???"

멸망 쉽다 [1]

5화.

「투척」

-무기를 투척했을 때, 명중률과 데미지를 높여준다.

(마나 소모: 5)

이번에도 마력이나 그런 게 오르려나 했는데 스킬을 깨달아 버렸다.

"스킬도 배울 수 있는거구나... 그러고보니 사냥꾼 자식, 나한테 나무 창 같은걸 던졌었지. 스킬의 보정을 받아서 그렇게 강했던거였나?"

창처럼 보이지도 않았던 기다란 나무 말뚝 같은걸 던지니 바위를 부수고 박혀 들었던 게 생각난다.

위력이 엄청나다 생각했었는데, 이게 스킬의 영향이었다니.

"잠깐 시험을..."

특전으로 얻은 도끼를 잡았다.

스킬을 쓰지 않고 던져봤다.

휘리릭, 툭!

단순히 나무에 박히는 정도.

그나마 도끼가 예리해서 겨우 박혀든 정도다.

나무와 나의 거리는 대략 5미터.

이번엔 10미터 정도로 물러나고 도끼를 다시 잡아 들었다.

"투척!"

스킬을 사용하며 던져보자.

쩡! 콰직!!

[캭!]

그램도 놀라서 나뭇잎이 와르르 떨어지는 나무를 쳐다봤다.

"오....."

확실히 스킬을 사용한 것과 안한 것에 차이가 크다.

명중률은 목걸이를 착용한 보정으로 큰 차이를 모르겠지만, 힘의 차이는 크다고 볼 수밖에 없다.

"완전히 박혀 들었네."

그냥 던졌을 때보다 약 2~3배 정도 강하게 던져진 것 같았다.

꽤 강하게 박혀서 그런지 도끼가 잘 뽑히지 않을 정도였다.

"그램, 이것 좀 뽑아줘."

[캬캭!]

그러자 그램이 손을 펼쳤다.

악과를 내놓으란 소리였다.

"순 날강도 같은 놈을 봤나. 이 정도는 서비스로 해줘!"

[캬캬캭!]

일 없다는 듯 날아가 버린다.

"저 악마같은 새끼..."

어쩔 수 없이 안간힘을 써서 겨우 도끼를 뽑아내고 나서야 자리에 앉았다.

어느새 완전히 사라져버린 그램을 뒤로하고 모닥불에 장작을 던져 넣으며 악과 하나를 더 꺼냈다.

타닥, 타다닥.

"데몬시드."

그걸로 만들어낸 작물과 열매.

악과.

"이대로만 되면 편하게 먹고 살 수도 있을 거 같은데."

그렘이 3, 4일에 한번씩 그렘린을 가져오고, 내가 바닷물에 떠밀려 온 시체를 비료로 쓰기만해도 먹고 사는데엔 문제가 없어 보인다.

악과는 이상할 정도로 맛있고 많은 포만감을 채워준다.

바다에서 잡히는 물고기가 맛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뭔가 상처도 잘 낫는 거 같고.'

어제만 해도 피가 철철 나서 큰일났다 싶었는데, 악과먹고 하루 자고 일어나니 꽤 많이 나았다.

피는 멎었고 살은 벌써 딱지가 져서 아물기 시작했다.

'악과 때문이라기엔 시기상조인가.'

하지만 마냥 아니라고 생각하기엔 이상하다. 꿰메야 될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금세 아무는 걸 보면 확실히 영향이 없지는 않은 것만 같다.

"데몬시드..."

우연히 농약 들고 있다가 얻은 능력치고는 굉장히 뛰어났다.

악마를 사냥할 능력만 된다면 올릴 길 없는 능력치를 무한하게 올릴 수 있는 게 아니던가.

"경험치는 쌓이는 거 같은데 아직도 레벨이 안 오르는 거 보면 그렇게 좋은 게 아니려나."

나무도 세개나 만들었고 악마도 좀 잡았는데 아직도 레벨은 1이다.

경험치가 오르고 있다고는 창에 나오지만 그래도 좀처럼 오르질 않으니 이대로 안주하기는 좀 불안하다.

게다가 그램으로 인해 무인도의 생리에 대해 알게 되기도 했다.

말을 꽤 잘 알아들어서 내가 물으면 답은 땅에 그림을 그려 알려줬다.

'내가 있는 곳이 동쪽 해변가.'

그리고 그렘린 소굴이 있는 곳이 북쪽 끝 벼랑 위라고 한다.

무인도 중심에는 그램도 모르는 무서운 뭔가가 있고, 서쪽과 남쪽에 자신들과 비슷한 악마가 산다고 한다.

'나는 하필 이런곳에 와서는...'

그 얘기를 들었을 때는 잠시 내 모자람을 탓했지만 이제와서는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미 벌어진 일이었고, 난 바람핀 전 와이프보다는 살 가치가 있는 놈이니까 더 살아야 한다.

'죽으려다가 세상이 게임처럼 변하니까 재밌기도 하고...'

죽기는 뭔가 아깝다.

그러니까.

"한번, 살아볼까. 나, 그래도 랭킹 1위니까."

레벨이 1이라서 벌써 최하위로 랭킹이 떨어졌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그러고보니 랭킹도 여러가지 막 있는 거 같던데."

시스템 메뉴를 클릭하자 '네피림 랭킹' 과 '레벨 랭킹'이 나온다.

네피림 랭킹 1위는 최초 9초만에 악마를 토벌한 내 꺼.

그리고 레벨 랭킹은...

"이것도 내가 1위네??"

나 레벨 1인데?

[랭킹 1위 데몬시드 - Lv.1]

[랭킹 2위 아마존 - Lv.1]

[랭킹 3위 바바리안 - Lv.1]

"그 게임 직업 레벨인 거 같은데 난 데몬시드가 직업인건가?"

아마 그런 거 같다.

네피림 랭킹과는 달리, 레벨 랭킹에는 시간제한이 적혀 있었다.

3일 15시간 31분 24초 남음.

26일 15시간 31분 23초 남음.

"설마 주말 보상, 한달 보상 같은 걸 주는 건 아니겠지?"

모바일 게임 같은 짓을 하고 있었다. 살펴보니 주말 보상으로는 감정 스크롤을 주고 있었다.

"이건... 필요한데."

1등은 5개.

2등은 3개인 식이다.

3등은 2개이며 5위까지 1개씩.

그 이하는 없었다.

"1위 유지하면 주말마다 감정 스크롤 다섯개씩을 준다고? 이건 개혜자가 아닌가..."

지금 가지고 있는 아이템들 전부가 미확인 장비들이다.

머리부터 시작해서 가죽갑옷과 하의 각반 건틀릿과 무기들까지.

어떤 세트효과가 있을지도 모르는 아이템들을 스크롤이 없어서 썩히고만 있었는데 이제 3일만 지나면 스크롤을 얻을 수 있으니 안심이었다.

"안심은 아닌가."

랭킹은 레벨.

3일뒤에도 자신이 1위를 차지하고 있으리란 법은 없다.

"레벨, 올려야겠지..."

앞으로 3일.

"사냥 좀 해볼까."

*

빌딜 숲 사이.

"헉, 헉! 사, 살려주세요! 누가! 누가 좀!!"

퍽, 퍽. 휘융 퍽!

어디선가 화살 한대가 날아와 좀비의 머리를 박살낸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디서 날아왔는지도 모를 화살에게 감사하며 사람이 사라진 뒤.

스륵.

건물 잔해 틈에서 후드를 뒤집어 쓴 네피림이 나타나 좀비의 머릴 꿰뚫은 화살을 수거해갔다.

휘잉.

바람이 불어 걷어진 후드 안에는 어여쁜 검은 머리 여자가 있었다.

"경험치가 +1 상승했습니다."

좀비 한마리에 경험지 +1.

한방으로 잡기는 쉬우나 경험치의 수급이 굉장히 까다롭다.

"하긴, 힘들게 구울 잡아봤자 경험치 10밖에 안 주니까."

간단한 좀비를 여러마리 잡으면서 경험치를 늘리는 게 낫다.

「레벨 랭킹」

[랭킹 1위 데몬시드 - Lv.1]

[랭킹 2위 아마존 - Lv.1]

[랭킹 3위 바바리안 - Lv.1]

랭킹을 확인한 여인은 이내 눈가를 좁혔다. 그녀의 시선은 오직 랭킹 1위에 못박혀 있었다.

"잠도 2시간밖에 안 자면서 좀비만 사냥하는데도 못 따라잡고 있어. 이 사람은 대체 뭘 어떻게 잡고 있는거지...?"

데몬시드.

아마도 이 사람이 화제의 랭커.

9초만에 악마를 때려 잡은 네피림.

나인.

"2레벨은 내가 먼저야."

그때였다.

돌연 건물 안 창문이 와장창 깨지더니 좀비들이 쏟아져 나왔다.

[역병을 전하는 좀비]

그 중심에 저들의 리더.

엘리트 좀비가 랭킹 2위, 진수아의 시야에 포착됐다.

피식. 미소를 내건 진수아의 손은 좀비가 쏟아져 나오자마자 활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그리고 즉시.

[가이드 애로우]

타앙-!

열댓마리나 되는 좀비들 사이를 지그재그로 피한 진수아의 화살이 정확하게 [폭발의 좀비]의 이마에 명중했다. 유도 화살의 위력이었다.

퍼억! 콰앙!

독가스와 함께 폭발하며 주변의 좀비들이 모조리 분해되어 날아갔다.

"경험치가 +5상승하셨습니다."

"경험치가 +1상승하셨습니다."

"경험치가 +1상승하셨습니다."

"경험치가 +1상승하셨습니다."

"경험치가 +1상승하셨습니다."

"경험치가 +1상승하셨습니다."

"1위 탈환, 금방 해주겠어."

[크어어어어어!]

폭발 소리를 듣고 내달려오는 좀비들을 바라보며, 랭킹 2위 진수아는 다시금 화살을 손에 잡았다.

[매직 애로우]

푸른 빛이 화살에 깃들며 삽시에 쏘아내는 그녀의 눈에는 한치의 망설임도 존재하지 않았다.

*

"제물을 사용합니다."

"성공적으로 작물을 성장시키셨습니다."

"경험치가 +10 상승합니다."

"쑥쑥 커라."

시체 하나를 가져와 제물로 바치자 경험치가 올랐다.

"좀 쉴까."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엮어 만든 침대에 눕자 좀 살 거 같았다.

"지붕이라도 만들어야하려나. 비 올수도 있으니까... 내일 할까."

물먹은 시체를 옮기는 일이 여간 힘든 게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데몬트리는 총 4개. 수확한 악과는 2개, 10개, 8개, 8개였다. 28개의 악과가 수중에 있는 것이었다.

"그래도 하루에 하나씩만 아껴 먹으면 한달은 버티겠네."

하지만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이대로만 진행된다면 하루에 3개씩 먹으면서도 무인도에서 살아남기는 충분히 가능해보이니까.

"그래도 이걸론 부족하지."

지금은 바닷가에서 시체들이 밀려와서 빠르게 데몬시드를 성장시킬 수 있지만 언제까지 사람 시체가 몰려올지는 모른다.

지금만해도 비료로 쓸 시체가 두개밖에 남지 않았으니까.

'미리 데몬시드를 만들어서 심어둬야해 그렘린 뿐만 아니라 다양한 악마들을 이용해서.'

그렘린보다 약한 악마를 데몬시드로 만든다면 수확 날짜가 짧을지 모른다. 적어도 먹을 걱정은 확실하게 없애고 봐야 하지 않겠는가.

랭킹도 중요하지만 우선 아포칼립스에서는 살아남는 게 우선이니까.

콰직. 배가 고프지 않음에도 민첩용 악과를 하나 씹어 먹었다.

그때였다.

"민첩이 0.1 상승합니다."

"민첩이 +1 상승합니다!"

『이화성』

「데몬시드 1 레벨」

「라이프」 – 100/100

「마나」 - 20/20

「능력치」

근력 – 5

민첩 – 5 ▶ 6

건강 – 5

마력 - 1

"올랐다."

악과 열개를 소모해서 만들었다.

민첩 6!

"만들긴 했는데... 이거 오른다고 뭐 크게 달라지나? 아직은 모르겠네."

시험해보면 될 일이다.

갓 수확한 악과를 전부 인벤토리에 집어 넣고 완전 무장했다.

무인도에서 6일 째.

내 랭킹은 아직도 1위를 달리고 있고 민첩을 1 상승시켰다.

준비할 수 있는 건 다 했다.

랭킹 종료까지 남은 시간은 이제 하루. 막판 스퍼트를 달릴 때다.

"그램이 말했던 남쪽으로 가자."

어제 왔었으니 그램이 오늘 제 동족을 가지고 오지는 않을거다.

그렘린들의 소굴이 있다고해도 그 숫자가 스물 남짓일테니 이틀 뒤에나 찾아오겠지.

"남쪽."

그램의 그림을 떠올린 난 남쪽에 있는 괴상한 놈들을 생각했다.

그렘린과 비슷한 체형이지만 그들보다 추악하고 날개 없는 종족.

"고블린."

남쪽에 있다는 고블린들이 있는 곳에 가볼 생각이다.

비교적 가깝고 그렘린보다는 약하다고 그램이 말해줬다. (그렘린한테 고블린이 짓밟이는 그림)

날아다니는 그렘린보다야 고블린이 상대하기는 훨씬 수월할테고 여타 소설이나 게임에서 나왔던 것처럼 그들은 나약하다.

'잔인하고 떼로 몰려다니니까, 그거만 조심하면 어려울 것도 없지.'

게다가 그렘린 말고 다른 악마로 만든 데몬시드가 어떤 열매를 맺게 할지도 궁금하고.

준비는 철저히 했다.

최대한 악과를 먹어 민첩을 올렸고 [푸르푸르의 반장갑]에 붙어 있는 차지 볼트의 사용횟수도 아꼈다.

놈들은 그렘린을 두려워해 동굴이나 땅굴을 파 생활한다고하니 조금만 조심하면 당할 일은 없다고 했다.

다만 조심할 게 있다면.

"함정이랑 독이려나."

긴장하며 고블린 소굴로 전진하기를 잠시 뒤.

"... 왜 이렇게 쉽지?"

커다란 동굴 앞.

내 앞에는 고블린의 시체들이 즐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데몬시드의 레벨도 올랐다.

멸망 쉽다 [2]

6화.

[끼에엑!]

콰직!! 날아든 도끼에 대가리가 찍혀 죽은 고블린의 외마디 비명이 숲속에 울려퍼졌다.

"대주술사 고블린을 죽여 경험치 +30을 획득합니다."

"그래도 나름 보스 같은 거 아니었나? 경험치를 이거밖에 안 주네... 그렘린은 100씩 주던데."

지팡이 들고 다니면서 불 같은 걸 뿜길래 꽤 강한줄 알았더니 딱히 그렇지도 않았다.

투척 스킬을 이용한 단검과 도끼를 이용하자 대가리가 깨져 죽었다.

"레벨이 상승했습니다."

"소모된 체력과 마나가 채워집니다."

"레벨업 효과로 능력치가 전부 +1 상승합니다."

"능력치 +3 포인트가 주어집니다."

"최초로 레벨을 상승시켰습니다."

"인벤토리칸이 +10 증가합니다."

"신의 축복이 주어집니다!"

"특전 보상 상자가 주어집니다."

"2레벨을 달성해 '네피림 거래소'가 해금됩니다."

"2레벨을 달성해 '나만의 상점'이 해금됩니다."

「데몬시드 Lv.1」

-데몬시드: 생명을 잃은 악마를 씨앗화 한다.

-제물성장: 제물을 이용해 성장 시간을 촉진시킨다.

「데몬시드 Lv.2」

-데몬시드: 생명을 잃은 악마를 씨앗화 한다.

-제물성장: 제물을 이용해 성장 시간을 촉진시킨다.

[스킬 포인트 +1]

레벨이 상승하니 데몬시드와 제물성장에 뭔가가 덧붙여졌다.

거기에 더해 스킬 포인트가 생겼는데, 세개의 선택지가 생겨났다.

〔페스틱사드〕

-농작물을 해치는 벌레나 짐승들을 물리거나 죽이기 위한 농약을 제조하고 살포합니다. (배합과 재료에 따라 농약의 효과가 달라진다.)

〔시드로긴〕

-시드를 섭취하여 모든 능력치를 10분간 일시적으로 강화시킨다. 시드의 원본이 된 제물의 능력치에 근거하여 상승. (이후 24시간동안 모든 능력치 -20% 하락)

〔빅스톤〕

-제물이 될 대상을 작은 돌로 바꾸어 휴대하기 편리하게 만든다.

이 세가지중 선택하라는 거 같다.

"엄청난 갈림길에 선 거 같은데... 기분 탓 아니겠지."

한번 선택하면 절대로 되돌릴 수 없는 느낌이 든다.

이번 선택으로 데몬시드의 성향이 갈릴 것 같은 느낌이랄까.

일단 [페스틱사드]

농약을 만드는것.

설명은 단순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냄새가 난다. 농약을 만들기만 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무쌍을 찍을 수 있을 것 같은 냄새가...

"애초에 내가 데몬시드를 얻게 된 것도 농약. 이렇게 살아있는 것도 다 농약 때문... 아니 덕분이지."

농사에 있어서 농약은 중요하다.

벌레들이 농작물을 갉아먹거나 하면 일년 농사 다 망치는거니까.

농사는 시간을 들이고 정성을 들인만큼의 티가 난다.

호시탐탐 농작물을 노리는 놈들은 어디든 있으니, 그런 개자식들을 위해 친히 농약을 제조해 뿌려둔다면 그런 근심 걱정 따윈 모두 NO!

"일단 그렘린들은 다 뒤지겠네. 이거 거의 트랩수준인데."

나쁘지 않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그렘린들은 내 악과 훔쳐먹다가 알아서 죽어줄 것만 같은 예감이 든다.

"자동사냥 냄새가 난다."

악마들 많은 곳에 데몬트리 하나 성장시켜두면 알아서 악과 먹으려다가 죽고 그럴 거 같다.

장기적으로 보면 자동사냥으로 이것만한 놈이 없다고 할까.

"그래도 일단 패쓰."

그 다음은 [시드로긴]

"이것도 괜찮단 말이지."

데몬시드의 직업 특성상 농업쪽으로 치우쳐져 있는데 시드로긴은 씨앗을 섭취하여 자신을 강화하는 쪽이다.

만약 이쪽 트리를 탄다면 레벨이 올라갈수록 데몬시드나 트리등을 이용해 공격적인 부분들이 강화될 수밖에 없지 않을까.

"사용 이후의 디버프가 좀 뼈 아프긴한데... 그래도 위급시에 사용하기에 이만한 스킬이 없긴 해."

이 다음은 [빅스톤]

설명도 단순하다.

제물로 사용하게 되는 사체를 스톤화하여 휴대하기 용이하게 만드는 것. 단순히 그것 뿐이다.

"단순해서 끌려."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던가.

해변가에 떠밀려오는 물 잔뜩먹은 시체를 베이스캠프까지 옮기는 일.

덕분에 근육통도 생기고 체력도 조금 붙은 거 같긴하지만 여간 귀찮은 일이 아니다.

'무인도니까 지금은 상관없어도 나중에 이곳을 나가게 되면 도시쪽은 시체 밭일지도 몰라.'

몹시 슬픈일이지만 결국 나한테는 비료 밭이라는 소리다. 그때, 시체 하나하나를 손으로 옮기며 가지고 다닐 수도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하지만 이 스킬이 있다면?

'수십이든 수백이든 가능...'

인벤토리에 시체를 넣을 수가 없다.

칸도 5개밖에 없어서 시체를 넣을 수 있다해도 겹치기가 안될테니 휴대하기는 턱없이 부족하다.

하지만 조그마한 돌로 만들어서 가지고 다닐 수 있다면?

"모든게 해피..."

생각하면 할수록 빅텀스톤으로 마음이 기우는 게 사실이다.

요 근래 농사꾼의 마음으로 데몬시드를 사용해와서일까.

전투쪽 스킬보단 이쪽이 더 끌린다.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패스틱사드도 꽤...

"고민 좀 해보자. 급한 건 아니니까."

스킬은 일단 스킵.

그 이후는 스탯이었다.

『이화성』

「데몬시드 Lv.2」

「라이프」 – 120/120

「마나」 - 40/40

「능력치」

근력 – 6

민첩 – 7

건강 – 6

마력 - 2

포인트:3

"와, 3개밖에 안주네."

레벨업도 이렇게 빡센데 포인트를 3개밖에 주지 않았다. 물론 올스탯이 +1씩 오르긴 했지만 말이다.

그럼 다음 고민은 필연적으로 신중해질 수밖에 없다.

"뭘 올릴까. 역시 마력인가."

마력.

마력이 1 생겼을 때 마나가 20 생겼다. 필연적으로 마력 1당 마나 20이 상승하는 것일 터.

"마법... 좋지."

내가 지닌 마법은 워터볼과 장갑에 인첸되어 있는 차지볼트.

둘다 강력한 마법이다.

워터볼은 그렘린한테는 약세를 보이지만 고블린 정도는 원큐에 죽여주는 강력함을 보여줬다.

그보다 강력한 차지볼트는 두말해야 입아플 정도.

"민첩이 좋긴하던데."

고블린들과 싸우면서 민첩의 상승이 주는 효과를 톡톡히 느꼈다.

분명히 평소라면 못 피했을 공격.

고블린의 독침 공격이라던가 돌팔매질 말이다.

아차, 늦었다라고 느끼는 순간들이 간혹가다 있었다. 입고 있는 갑옷을 믿고 버텨보자까지 생각했는데 피해버린 적이 두 세번 정도 된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능력치의 증가가 주는 효과는 대단했다.

"그래도 마력이겠지."

다른건 올릴 수 있다.

현재 근력과 민첩은 악과로 만들어 수중에 가지고있기까지 하다.

하지만 마력은?

'제물이 필요해.'

쉽게 구할 수 없는 열매다.

제물을 다시 바친다 하더라도 다시 구할 수 있을지도 아직 미지수.

게다가 마력이 오르면 마나통도 커지고 마법의 데미지도 오를 터.

"능력치도 혹시 모르니까 여기 마저 뒤져보고 할까."

급한 건 아니니까.

할일이 많다.

"데몬시드."

콰드득 팟.

고블린들을 시드화시킨다.

[대주술사 고블린의 씨앗x1]

[독침 고블린의 씨앗x4]

[고블린의 씨앗x8]

"그리고... 거래소랑 상점도 생겼었지. 이건 집에가서 확인할까."

집. 저도 모르게 말해놓고 헛웃음이 나온다. 땅굴파서 침낭 하나 놓은 곳을 보고 집이라고 하다니.

그렘린 때문에 커다란 나무 밑에 땅굴을 파서 잠들고 있다.

현역 시절을 생각해 참호를 만들어서 잠만자고 있는데 여간 불편하다.

"집도 좀 제대로 만들어볼까. 땅굴은 너무 불편해... 차라리 이놈들이 나보다 더 편하게 자는 거 같네."

커다란 동굴.

지푸라기들을 한껏 모아 만든 고블린표 침대들이 꽤 멋져 보였다.

냄새는 좀 났지만.

고블린 소굴 구석구석을 살폈지만 이렇다 할 건 보이지 않았다.

무인도에 사람이 있었던 것도 아니라서 그런지 짐승 뼈조각이나 뭐 이상한 석기시대 도구같은 것들만 즐비해 있었다.

"딱히 뭐 없네. 보물같은 거라도 있지 않을까 했는데."

그나마 수확이라면 이거다.

[금화 x34]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금화를 가지고 있는 녀석들이 더러 있었다. 고블린 주제에 금화라니 이상하기도 하지.

금에는 사족을 못 쓰는 건 고블린도 사람과 같은걸까.

대주술사란 놈은 금화를 무려 스무개 넘게 가지고 있었다.

"그렘린이 가졌던 금화랑도 비슷한데 쓸모가 있는거겠지?"

금화주머니를 만지작거리던 순간.

"아 상점."

혹시 금화가 상점에서 쓰이는거지 않을까란 생각이 미쳤다.

곧장 '나만의 상점'을 클릭했다.

[나만의 상점]

-6일 23시간 51분 남음.

[부드러운 빵x10] - 1금화

[붉은 성수x2] - 7금화

[포탈 스크롤] - 20금화

[브로켈의 부적] - 67금화

[푸르푸르의 은반지] - 131금화

[레인스톰 스킬북] - 666금화

"와..."

혹시 몰라 '네피림 거래소'도 살펴봤지만 등록된 거래 물품 자체가 없었다.

아마도 2레벨을 찍은 게 나 뿐이라서 그런 것 같았다.

"상점 대박이네."

부드러운 빵은 그냥 일반적인 밀빵이었다. 딱딱하지 않고 부드러운 빵으로 보였다.

그리고 붉은 성수 두개.

설명을 보니 체력 회복 포션이다.

혹시모를 사태를 대비해 구비해 놓으면 좋을 적절한 물건.

다음은 [포탈 스크롤].

"이것도 좋긴한데... 금화 스무개로 사기엔 나한텐 필요가 없지."

무인도에 짱박혀 있는 사람이 나인데 포탈이 무슨 필요일까.

차라리 부적을 사는 게 낫다.

[브로켈의 부적]

-브로켈이 어린시절 지니고 다녔던 애장품. 그녀의 염원을 담았으나 이루어지지 않아 버려진 부적이다.

(프로스트 노바 - 1회)

"프로스트 노바..."

[프로스트 노바]

-시전자를 중심으로 파문처럼 퍼지는 극한의 냉기 마법으로 광역 데미지를 주며 적을 모두 얼린다.

"위급시에 사용하기 딱 좋지."

적들에게 포위당해 위급해져 있을 때, 도리어 역관광을 노려볼 수 있는 스킬이기도 하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소모성 물건.

"한번쓰면 끝인 게 아쉽네."

장비템에 달린 매직 아이템도 아니고 단순한 부적이다.

1회성 아티팩트이니 금화 67개에 판매하고 있는 거겠지.

[푸르푸르의 은반지]

-푸르푸르가 애용하던 은반지. 그녀의 기운이 은밀하게 깃들어 있다. 번개 내성 +5 (에너지 쉴드 1일 1회)

그나마 은반지는 꽤 좋다.

"푸르푸르면 내가 쓰는 반장갑이랑 세트 같은건가."

[푸르푸르의 반장갑] (매직).

방어력 +5

-번개와 태풍의 악마, 푸르푸르가 어린 시절 애용했던 반장갑.

그녀의 기운이 깃들어 있다. (차지 볼트)-(하루 2회)

내구력 +10% 증가, 번개 내성 + 5% 증가.

이 반장갑과 은반지는 꽤 연관이 있어 보인다.

"애초에 지금 수중의 금화로는 살 수도 없지만."

그리고 마지막.

[레인스톰 스킬북] (unique)

-골드캐넌의 골짜기 아래 무덤에 유폐된 모든 소서리스들의 어머니. 그녀가 생전에 적은 책.

"이거..."

〔페스틱사이드〕

[레인스톰]

"이 둘, 같이 쓸 수 있나?"

농약과 레인스톰. 농약을 비처럼 뿌릴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렇다 할지라도.

"지금 당장 필요하지는 않지."

무인도에 있으나 나름의 전투력을 가지고 있다.

놈들이 한꺼번에 몰려드는 것만 아니라면 어찌어찌 살아갈 수 있다.

굳이 무리해서 강해질 필요성이 내게는 없다는 말이다.

'언젠가는 도전해보고 싶긴하지만... 지금은 그보다 삶을 윤택하게 하는 쪽이 더... 잠 좀 편하게 자고싶다.'

언제 공격해올지 모르는 악마들이 득시글거리는 곳에서 해방되고 싶다.

무인도에서 벗어나 사람들을 좀 만나보고싶은 욕구가 더 크다.

금화도 꼴랑 34개밖에 없는데 언감생심 뭘 눈독들이겠는가.

[차원을 침공한 악마들에 의해 카오스 게이트가 생겨납니다.]

[대한민국 차원의 카오스 게이트가 4일 뒤 개방됩니다.]

[모든 네피림들은 카오스 게이트 안의 악마 침공을 막아주십시오.]

『카오스 순위』

1위 -----------

2위 -----------

[보상]

1위 금화 1000개. 성역 1개.

2위 금화 600개.

3위 금화 400개.

4위 금화 200개.

5위 금화 100개.

[카오스 상점]

[마력의 엘릭서 - 금화 3000]

[근력의 엘릭서 - 금화 1000]

[민첩의 엘릭서 - 금화 1000]

[건강의 엘릭서 - 금화 1000]

[간이 성역 - 금화 1000]

.

.

.

-주의-

카오스 게이트의 침략 방어 실패시.

대한민국 차원에 대량의 데몬들이 발생하게 됩니다.

"... 금화 앵벌 해야겠는데."

[간이 성역]

-악마가 다가오지 못할 안전지대를 만듭니다. (181m X 181m)

악마들이 판치는 이 세계에서.

안전지대는 최우선 순위니까.

멸망 쉽다 [3]

7화.

발뻗고 자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다시금 깨달은 시대.

안전지대라는 것의 필요성을 누구보다 깊게 깨달은 난 열렬히 원했다.

"성역!"

반드시 최우선 순위로 가져야 하는 물건이다. 불안에 떨며 잠들지 않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역이 필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1등 해야겠네."

카오스 게이트.

그게 열려 들어가면 아마도 악마들이 득시글거리겠지.

1위며 뭐며 점수를 매기는 것도 아마 그들을 최대로 많이 처지하는 것으로 순위를 매길거다.

그렇다면 해야할 건 하나.

"레인스톰. 배워야겠어."

거기에 스탯 투자.

"전부 마력 찍자."

어차피 다른 부분은 데몬시드로 올릴 수 있다.

마력을 올리는 건 카오스 상점에서도 금화 3000개가 들 만큼 어려운거니 마력부터 찍는 게 이득이다.

『이화성』

「데몬시드 Lv.2」

「생명력」 – 120/120

「마나」 - 40/40 ▶ 40/100

「능력치」

근력 – 6

민첩 – 7

건강 – 6

마력 - 2 ▶ 5

포인트:0

됐다.

지금있는 마법인 [워터볼]이나 [투척] 전부 마력을 필요로 한다.

그러니 마력을 올리는 게 낫다.

투척은 아니라도 마법은 내가 지닌 마력에 영향을 받아 데미지 또한 강해지는 게 국룰이니까.

레벨업으로 올스탯이 +1 올라가 있어서 마력은 이제 5가 됐다.

"그리고 다음은 스킬인데."

방향은 정해졌다.

그러니 찍어야 할 건 당연히.

"패스틱사드를 배우셨습니다."

「데몬시드 Lv.2」

-데몬시드: 생명을 잃은 악마를 씨앗화 한다.

-제물성장: 제물을 이용해 성장 시간을 촉진시킨다.

-페스틱사드: 농작물을 해치는 벌레나 짐승들을 죽이기 위한 농약을 제조및 살포한다. (배합에는 무엇이든 제조에 사용할 수 있다. 재료에 따라 농약의 효과가 달라진다.)

배합과 재료에 따라 효과가 달라진다. 페스틱사드는 결국 독이다.

배합과 재료에 따라 그 효과가 달라진다는 말은 즉.

"내가 어떻게 만드냐에 따라 그 효과가 천차만별이라는 소리지."

이 스킬을 찍은 이유는 두가지.

스킬의 설명을 보면 알 수 있다.

'제조및 살포.'

제조하고 살포할 수 있다는 말이다.

이게 뭐 어떻냐고 물을 수 있지만 이는 그냥 넘길 사항이 아니다.

독을 제조할 수 있다.

그리고 살포가 가능하다.

살포. 살포의 사전적 단어는 액체나 가루 따위를 흩어 뿌린다는 뜻이다.

그렇다.

"일종의 인첸트 개념이라고 봐도 되겠지."

게다가 제조쪽 설명을 자세히 보면.

(무엇이든 제조에 사용할 수 있다.)라고 적혀 있다.

라는 건 즉.

"이것도 가능하다."

[고블린의 독침]

-고블린이 사용하는 독침. 독초와 인분 따위를 합쳐 만들어진 마비독.

"페스틱사드."

그러자 고블린의 독침이 가루가 되어 내 손 위에 자리잡았다.

거기에? [고블린의 이빨] [고블린의 단검] [고블린의 발톱]등의 잡다구니한 것들을 모조리 농약의 재료로 만들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 물까지 첨가하면?

[페스틱사드에 저장된 재료]

-마비x출혈x데미지+3x중독x배탈.

특제 [데몬 농약] 탄생이다.

"좀비도 있다고 했으니까 그것들도 전부 농약 재료로 쓸 수 있어."

쌓이면 쌓일수록 강력해지는 농약.

그게 바로 페스틱사드다.

지금 만든 것보다 더 강력한 농약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활용도 또한 무궁무진해진다.

열매에 사용하면 악과를 노리는 악마들을 역으로 죽일 수도 있다.

"자동사냥인데?"

워터볼에 섞어서 써도 좋을 것이며 싸울 때는 함정을 만들어 사용해도 용이하다.

"레인스톰."

그걸 배운다면 농약을 이용해 산성비를 내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카오스 게이트에서의 데몬 사냥은 1위를 따놓은 당상.

"금화 얻을려면 농약 만들어서 이놈들 먹는 음식이나 물에 타서 사냥하면 그만이지."

금화 벌이에 더 용이할 스킬.

그게 바로 패스틱사드다.

게다가 내가 아무 거리낌 없이 패스틱사드를 찍은 이유가 하나 더있다.

[레벨업 최초 달성 특전 상자]

-최초로 레벨업에 달성한 자에게 주어지는 신의 축복이다.

최초 달성 특전.

당연히 레벨업하자마자 특전 상자를 열어봤다.

그랬더니 세상에.

『신의 눈물』

-스킬 포인트 +1 (1회성 소모품)

스킬 포인트 +1 아이템이 튀어나와버렸다.

"이거지...!! 이래야 죽을 고생하고 최초업적 뚫은 보람이 있지."

물약처럼 생긴 아이템.

난 단번에 입안에 털어 넣었다.

신의 눈물이라는 거 치고는 맛이 꽤 달달했다. 약간, 애들먹는 달달한 감기시럽 같은 느낌.

"이거는 아껴두자. 별일 없으면 놔두고 급하면 찍어야지."

그럼이제 남은건 하나.

금화다.

"금화를 모을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 작은 무인도에 있는 악마들이 그만한 금화를 가지고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그래도 어쩌랴.

"할 수있는 데까지는 해보자."

안전하게 두발뻗고 잘 수 있다는 데 무엇인 들 못하랴.

"잠 줄여가며 사냥이다."

카오스 게이트 오픈은 4일 뒤.

그 전까지 최대한 금화를 모은다.

물론 고블린들로는 안된다.

고블린 소굴 몇개 털어봤자 금화 스무개 남짓이 다겠지.

한번 털어봐서 안다.

경험치도 안 주는 걸 보면 고블린들은 그렘린보다 한참 아래. 그러니 내가 상대해야 할 건 정해져 있다.

"그렘린."

놈들을 턴다.

게다가 페스틱사드를 배운 이유중 하나는 그렘린 때문이기도 하다.

최초.

내가 잡았던 그렘린은.

"농약 먹고 죽었지."

농약 한사발에 절명했듯.

놈들은 독에 취약했으니까.

*

파닥파닥.

조그마한 날개로 하늘을 유영하는 붉은 악마. 그렘린.

그중에서도 동쪽에서 날아드는 작은 그렘린이 있었다.

놈의 이름은 그램.

이화성과 거래한 그렘린이었다.

[캬캭!]

그렘린 소굴로 돌아온 그램은 다른 그렘린들과 인사하며 자신의 보금자리로 돌아갔다.

벼랑 곳곳에 뚫려있는 구멍들과 근처 나무에 커다란 둥지들이 만들어져 있었는데 그게 전부 그렘린들의 보금자리였다.

이곳에서 그램의 보금자리는 적당한 크기의 나무에 자리한 지푸라기와 짐승의 털들로 만들어진 둥지.

벼랑에 파여진 굴은 서열이 높은 그렘린들이 사용하는 공간이었다.

[캬캭]

[캬캬캭! 캬캭!]

돼지 한마리를 잡아온 그렘린이 그램을 보며 자기 밥을 자랑하듯 보여줬다.

하지만 그램은 콧방귀 꼈다.

이미 악과의 맛을 알아버린 그램에게 짐승 고기는 영 취향이 아니었다.

[캭]

그램은 생각했다.

오늘은 동족 하나를 죽여 데려갔으니 내일이나 모레즈음 저놈을 죽여 데려가야겠다고.

가만히 둥지에 자리잡은 그램이 짐승고기를 구워먹는 동족들을 바라보며 꾸벅꾸벅 졸기 시작했다.

고개가 흔들흔들하다 이내 툭 떨어졌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고기굽는 냄새가 코를 찌른다고 생각하게 될 즈음.

[캭!?]

그램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떠졌다.

그 이유인 즉슨.

[캬캭! 캬캬캭!]

자신의 동족들이 모두 게거품을 물고 쓰러졌기 때문이었다.

그램은 놀랐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고 기뻐했다. 왜 죽어가는지는 모르겠지만, 저놈들을 데려가면 악과를 많이 먹을 수 있었다.

[캭! 캬캭!]

어차피 죽을 거, 자신이 빨리 목숨줄을 끊어주자고 생각하던 찰나.

[캭!?!?]

있어선 안될 놈이 슬그머니 튀어나와 동족들의 목에 단검을 찔러넣기 시작했다.

놈은 바로.

[캬캭!?]

"아, 그램이구나? 또 보네."

씨익, 웃으며 제 동족의 멱을 따고 있는 악과 주인이었다.

*

운이 좋았다.

고블린 소굴에서 그대로 북쪽으로 올라가니 머지않아 그렘린의 소굴이 나왔다.

그램이 알려준대로 (그림) 그렘린의 소굴은 높은 벼랑과 나무들이 우거져 있는 곳이었다.

바로 옆에는 작은 옹달샘도 있었는데 그들이 식수로한 곳이었다.

맑고 깨끗해 보이는 옹달샘.

많은 들짐승들과 무인도에 자리한 악마들이 음용하는 옹달샘에 난 곧장 페스틱사드를 뿌렸다.

내가 마실 물은 워터볼로 만들어내면 됐고, 데몬시드를 심은 작물은 물보다는 제물로 성장한다.

그러니 옹달샘에 농약좀 탄다고 내가 피해보는 건 아니란 말씀.

자연환경이 어쩌고 저쩌고란 소리는 세계가 망해간 이 상황에서는 멍청하기 짝이 없는 개소리다.

'나부터 살아야지 무슨.'

다행히 페스틱사드로 만든 농약은 무색, 무취, 무미.

한창 식사가 열중인 놈들이니 반드시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물을 마시러 올 것이다.

나무 창이나 돌도끼를 만들어서 사용하는 원시적인 놈들이라고해서 물을 마실까란 의문도 품었다.

그들은 악마니까.

하지만 짐승을 잡아먹고 그 피를 맛있다는 듯 마시는 걸 보며 눈치챘다.

옹달샘에 찾아와 물을 마시는 그렘린이 있다는 것도 이미 확인했다.

'남은 건 기다리는 것 뿐.'

오늘 밤.

그렘린을 모조리 소탕한다.

그렇게 몸을 숨기길 세시간 뒤.

"경험치가 +100 상승합니다."

"경험치가 +100 상승합니다."

"경험치가 +100 상승합니다."

"경험치가 +100 상승합니다."

"경험치가 +100 상승합니다."

"경험치가 +100 상승합니다."

"경험치가 +100 상승합니다."

"이제 나가볼까."

숨죽여 숨어있길 세시간.

밥 먹다가 마비된 상태로 꼼짝도 못하는 그렘린들의 목숨을 손수 제거하기 시작했다.

아직 죽지 않은 그렘린들의 목에 단검을 박아주고 조금이라도 움직이는 놈들은 [워터볼]을 먹여 죽인다.

마력을 올려 한층 강해진 워터볼은 그렘린의 피부를 수월하게 뚫었다.

"경험치가 +100 상승합니다."

[캬캭!!]

소굴을 여기저기 살피다보니 농약을 먹지 않은 멀쩡한 그렘린도 있었다.

"투척."

하지만 크게 상관은 없었다.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던 나무창과 손도끼들을 투척한다.

퍽! 푹푹!

"경험치가 +100 상승합니다."

"경험치가 +100 상승합니다."

"경험치가 +100 상승합니다."

"내가 이래뵈도 랭킹 1위야 임마!"

[캬악!]

던질 게 없으면 워터볼과 차지볼트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높아진 마력은 워터볼의 파괴력과 속도에도 영향을 크게 줬다.

"마나 딸리네."

마나 소모가 극심했지만 80으로 불어난 마나통을 회복시키는 일은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콰직.

"악마의 열매를 섭취합니다."

"근력이 0.1 상승합니다."

악과를 먹으면 체력과 마나의 회복속도가 굉장히 빨라졌다.

마나가 소모되면 악과를 먹고 숨어다녔고 회복되면 다시 적극적으로 모습을 드러내 싸웠다.

악과 만세!

"역시 그렘린이 답이었네."

평균 경험치. 그리고 가지고 있는 금화의 수준이 고블린들과는 수준이 달랐다.

'한마리당 거의 8개에서 10개. 많으면 30개를 가지고 있는 놈도 있어.'

벌써 금화의 숫자가 세자리를 넘었다. 게다가.

"상자가 대박이었지."

그렘린 소굴을 뒤지다가 상자 하나를 발견했는데 그게 대박이었다.

[금화x165]

"이자식들이 금은 왜 이렇게 좋아하는거야? 그래도 이런거 몇개만 찾으면 스킬북 금방 사겠는데?"

벌써 수중에 모인 금화만 300개가 넘어가고 있었다. 이대로 그렘린 소굴 몇개만 정리하면 666개도 꿈이 아니라 생각할 때.

쿵!

[캬캭!?]

"아, 그램이구나? 또 보네."

정신없이 독에 중독된 그렘린들을 잡다보니 그램도 마주쳤다.

내가 알기로 그렘린 소굴은 꽤 여러개 있었는데 여기가 그램이 있던 곳중 하나였던 모양이다.

꽤 당황한 듯한 얼굴이다.

자기가 속한 세력 대부분의 동족이 죽어버려서겠지.

아무리 거래를 한 악마라도 이런 상황이라면 충분히 당황할만하다.

그래서 짐짓 아무렇지 않은 척 놈에게 말을 걸었다.

"여기는 대충 정리됐네. 야, 여기 말고 그렘린들 있는 곳 또 알지? 안내좀 부탁해도 될까?"

악과 하나를 건네주며 부탁했다.

[캬, 캬캭.....]

그램은 고민하는 듯 했으나.

악과를 쥔 손을 끝내 놓지 못했다.

씨익.

불타는 그렘린의 성채 [1]

8화.

같은 시각.

안양시.

"아마 이만큼 모은 사람은 없을거야. 레벨은 몰라도 금화는 내가 최고일거다. 하하하하!!"

퍼억! 퍼억! 퍼억!!

쌍도끼를 휘두르며 구울들의 대가리를 박살내는 사내는 랭킹 3위.

바바리안이라는 기프트를 가지고 있는 장동철이었다.

그의 수중에 있는 금화는 자그마치.

"이게 다 몇개냐."

금화 99개.

자그마치 99개였다.

"크큭, 멍청한 아마존 년. 하루 웬종일 좀비만 처 잡고 있어봐라. 어쩌다 떨구는 골드 한 두개로 어느 세월에 내 집 마련할래?"

바바리안이라는 기프트를 지닌 그는 좀비들을 때려잡지 않았다.

3위 특전으로 받은 쌍도끼는 매직 아이템은 아니었지만 그에게 딱 맞는 무기였다.

바바리안이라는 기프트 자체가 근력과 건강을 대폭 강화시켜주는 능력.

무자비하게 쌍도끼를 휘두르는 그 앞에 좀비 따위는 애들이나 다름 없었다. 국가 공식 2레벨로 지정되어 있는 구울 정도는 때려 잡아야 사냥을 하는 느낌이 났다.

"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오라! 피가 끓는다!!"

진짜 바바리안이라도 된듯 울부짖는 그는 한마리의 맹수.

벽타고 달려드는 구울들의 뚝배기를 날려버리며 맹렬하게 싸워댔다.

좀비들은 골드를 한 두개밖에 떨어뜨리지 않지만 구울은 다르다.

매번 떨어뜨리는 건 아니지만 두마리에 한번꼴로 3, 4개 정도를 드랍하니 장동철 입장에서는 구울을 잡는 게 더 나았다.

"좋았어! 금화 100개 채웠다 으쌰!"

그때였다.

['재산 랭킹'이 해금되었습니다.]

재산 랭킹!

"이것도 경쟁이냐? 만든 새끼 누군지 몰라도 경쟁 유도 미쳤네. K 모바일 게임도 아니고 뭐야 이거."

그래도 입꼬리는 올라간다.

다른건 몰라도 이건 자신있었다.

"뭐 최초 토벌이나 레벨 랭킹은 내가 딸릴지 몰라도 재산은 다르지! 이거야 말로 내가 1위다!"

[재산 랭킹]

1위 데몬시드 - *** 금.

2위 아마존 - 113 금.

3위 네크로맨서 - 106 금.

4위 바바리안 - 100 금.

.

.

[나의 순위 4위]

"내가 4위? 이런 미친놈들!! 대체 어떻게 그렇게 빨리 모은거지!?"

다른 놈들은 고만고만하다.

하지만 오직 한 놈만 다르다.

"또 데몬시드냐? 사기캐자식. 음험하게 금화 숫자도 비공개네."

나인.

또는 데몬시드라 불리는 그 놈.

"개자식, 어디 사는지만 알아도 금화 다 뺏어주는 건데!"

재산에서도 놈은 1위였다.

"어쩔 수 없지... 혹시 몰라서 아직 안 가본 '그곳'으로 가야겠다."

'그곳'이라면 1위탈환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던전으로 가야겠다."

'던전'

같은 좀비라도 그곳의 좀비들은 한층 더 강화된 개체라고 들었다.

떨어뜨리는 금화도 마찬가지일 터.

"1위! 내가 뻇고 만다!!"

*

타다다닥.

흠칫.

화들짝 놀라 보니 새 한마리가 날아가고 있었다.

"새였구나."

어둠이 내려앉은 무인도의 밤.

난 오늘도 선잠으로 부족한 수면을 채웠다.

"하암~ 맘 편히 좀 자고 싶다."

무인도 생활 6일 째.

난 아직도 마음 편하게 두발 뻗고 자본 적이 없다.

전세계 사람들이 다 그렇겠지만 이놈의 악마들 때문이다.

땅굴을 파서 들어가든, 어디 방공호를 들어가든 악마들이 기습해오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는 세계다.

그러니 자도자도 잠이 부족하다.

제대로 푹 잠에 들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내가 1등 꼭 하고 만다."

성역이라 쓰여진 안전지대.

100평 남짓한 넓이를 안전하게 만들어주는 [성역]을 반드시 갖고 싶었다. 그래야 잠 좀 편하게 잘 수 있을 것 같았으니까.

"이제 하루 남았나."

그렘린들의 소굴을 전전하며 밤낮 안 가리고 농약 풀어 싸우길 3일.

내 수중엔 벌써 금화가 500개가량 쌓여 있었다.

베이스캠프 근처의 농장에는 그렘린으로 만든 데몬트리 일곱개가 넘었고 새싹은 스무개가 넘었다.

고블린으로 만든 데몬시드도 서른개 가량 심어뒀다.

고블린의 씨앗은 그렘린과 달리 20일만 있으면 성장이 완료하는 작물이었고 제물 하나를 사용해본 결과 당근이 튀어나왔다.

오도독.

"고블린의 당근을 섭취하셨습니다."

"건강이 0.05 상승합니다."

이런식이었다.

고블린으로 만든 당근은 달고 맛있었지만 그렘린의 악과보단 효과가 그리 좋지 않았다.

어쩌면 당연했다.

'고블린은 약하니까.'

악마의 강함.

그것으로 악과의 효과와 맛이 정해졌다.

"그래도 이제 먹을 걱정은 덜었지."

[나만의 상점]

-2일 21시간 35분 남음.

[부드러운 빵x10] - 1금

[붉은 성수x2] - 7금

[포탈 스크롤] - 20금

[브로켈의 부적] - 67금

[푸르푸르의 은반지] - 131금

[레인스톰 스킬북] - 666금

금화 벌이가 괜찮아져서 농사에 집착하지 않아도 배는 채울 수 있다.

꽤 다행스러운 일이다.

데몬시드는 과실류의 열매만 나온다. 분명히 맛있고 과일답지 않게 포만감도 채워지지만 과일만 먹고 살기엔 현대인의 피가 거부한다.

"슬슬 힘들긴 하지."

그렘린이든 고블린이든 데몬시드를 성장시키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렘린은 20~30일, 고블린은 15~20일정도. 하지만 제물을 사용하면 효과는 극적으로 이루어진다.

하루만에 열매를 맺게 하니까.

'문제는 이제 제물이 없단거지.'

그렘린과 고블린의 데몬시드를 두개 한개 성장시킨 결과. 이제 해변가에 떠밀려온 제물은 없었다.

수중에 남은 악과는 70개 남짓.

고블린의 당근까지 합한 갯수다.

[사냥꾼 그렘린의 사과x17개]

[그렘린의 사과x45개]

[고블린의 당근x10개]

"이제는 시간이 해결해주겠지."

고블린이든 그렘린이든 닥치는대로 잡아들이면서 데몬시드를 심고 있다.

무인도로 나가서 비료로 쓸 제물들을 구해오지 않는 이상, 한동안은 빵과 함께 악과를 먹어야 할듯 싶다.

'악과는 상처회복이나 마나 회복에 큰 도움을 주니까.'

본래라면 깊은 상처였을, 그램이 낸 팔뚝의 상처도 벌써 아물었다.

꿰메고도 남았을 상처라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 흔적만이 어슴프레 남아있을 뿐이었다.

"날이 밝네. 어이 그램. 일어났냐."

[...캭.]

그램은 자기 소굴이 사라진 뒤, 나와 함께 살고 있다.

커다란 데몬트리 하나에 올라타서 자기 둥지까지 만들었다.

이제는 원래 있던 곳에서 살 필요가 없어졌다. 의도치 않게 내가 전부 죽여버려서 그렇다.

"랭킹."

[레벨 랭킹]

- 11시간 54분 남음.

[랭킹 1위 데몬시드 - Lv.2]

[랭킹 2위 아마존 - Lv.1]

[랭킹 3위 바바리안 - Lv.1]

"아직도 2렙 찍은 사람이 없네. 다행이다... 아니, 다행이라고 해야하는 거 아니지 않나."

도시쪽은 어떻길래 아직도 레벨이 오른 네피림이 없는지 원.

커뮤니티를 살펴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은데 말이다.

[랭킹 2위의 위엄]

-오늘 죽다 살아났음. 이제 뒤졌구나 싶었는데 랭킹 2위 아마존 느님이 활 쏴서 나 살려줌. 활솜씨 미침. 엘프 저리가라임. 근데 가슴은 엘프 아닌 듯 ㅈㄴ 큼.

┖또라이 새끼 너 잘때 조심해라. 아마존님이 너 대가리 빵꾸낼듯.

┖얼굴 봄?

┖못봄 근데 ㅈㄴ 이쁠듯

어쨌든 1위는 유지할 수 있을테니 걱정을 덜었다.

"보상까지는 11시간 남았고. 감정 스크롤 5개는 쓰고 카오스 가겠네."

딱 좋다.

입고 있는 갑옷의 세트효과를 밝혀내고 들어갈 수 있을테니.

그럼 그 전까지는.

"그램, 사냥가자."

사냥이다.

[금화x512]

666개까지 앞으로 한걸음.

그렘린 소굴 하나만 더 털면 가능한 숫자였다.

요 3일.

잠도 제대로 못자고 [페스틱사드]를 남발하며 독을 풀어댄 결과, 내 돈주머니는 두둑해졌다.

앞으로 한걸음. 한걸음이면 레인스톰을 배울 수 있다.

'여유되면 프로스트 노바도...'

[재산 랭킹]

1위 데몬시드 - 512 금.

2위 아마존 - 113 금.

3위 네크로맨서 - 106 금.

.

.

[나의 순위 1위]

재산순위는 다른 랭킹과는 다르게 따로 보상이 있지는 않았다.

주어지는 보상이 없다면 내 알 바가 아니었다.

"불편하네. 이거 비공개 못하나."

옆을 눌러보니 on-off가 가능했다.

그렇다면 당연히 오프다.

[재산 랭킹]

1위 데몬시드 - *** 금.

2위 아마존 - 113 금.

3위 네크로맨서 - 106 금.

애초에 이게 중요한 게 아니다.

시급하게 당면한 문제는 따로 있었으니까.

[캭! 캬캭!]

슥슥, 손톡으로 그림을 그리는 그램의 행동에 내 표정도 시무룩해진다.

"정말로?"

[캬캭!]

그램의 그림은 이러했다. 그렘린이 그려졌지만 전부 물음표가 찍혔다.

요 3일.

그렘린을 닥치는대로 잡았더니 무인도에 있는 놈들은 전부 죽거나 어딘가로 꽁꽁 숨어버렸다.

때문에 그램도 모른다는 말이었다.

"큰일인데..."

카오스까지는 하루.

고작 하루란 말이다.

조급하게 움직여도 될까말까한 금화인데 그렘린이 없다니!

"무인도만 아니었어도 하..."

무인도가 아무리 커봤자 무인도다.

그렇게 많은 악마들이 상주하고 있는 게 이상한 곳이다.

'원래는 좋아야 되는데...'

악마가 별로 없어졌다니 원래라면 좋아야 하는 게 맞다.

하지만 카오스가 열리기 하루 전인 지금은 아쉽기 그지 없었다.

"포기해야하나."

아직 무인도에 남아있는 그렘린들과 고블린, 그리고 만나보지 못한 악마들을 모조리 잡는다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무인도를 이잡듯 뒤지는 거 자체가 하루만에는 불가능하지. 원래 이렇게 큰 섬이 아니었던 거 같은데...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섬이 커졌나?"

배 타고 올땐 적당히 작아 보였는데 직접 걸어다녀보니 은근히 크다.

나무들도 생각보다 크고 울창하고 못봤던 기암괴석이나 벼랑들도 많다.

아무리봐도 원래 알던 무인도와는 조금 달라진 것만 같은 기분.

"흠... 하긴 그랬어도 이상할 게 없는 세상이긴 하지."

섬이 더 커졌다?

솔직히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애초에 지금 세상이 말이 되는 세상도 아니었으니까.

"근데."

그러다 문득 궁금증이 생겼다.

"너네는 어디서 오는거야?"

가장 근본적인 질문.

"너네 소굴 가보니까 새끼들이 있는 것도 아니던데."

악마의 생리.

탄생은 어찌되는가.

그것에 대해 그램은 아주 간단한 그림으로 설명했다.

[캭]

"..... 이게 뭐야?"

그램이 그린건 기다랗고 큰 바위.

안에 성채가 그려져 있는 바위였다.

"벽화 같은건가."

불타고 있는 성채.

그리고 죽은 사람들이 그려져 있다.

그램이 그냥 이런 벽화가 있다는 이야기를 할 녀석이 아니다.

분명 자신들이 어디에서 왔냐 물으니 벽화를 정확하게 그려냈다.

"이거 어디 있는지 알지?"

그램은 고개를 끄덕였다.

한번 가볼 만하다.

내 예상이 맞다면...

[캭!]

그램이 돌연 씨익 미소 짓더니 손을 내밀며 까딱거렸다.

"참나."

난 인벤토리에서 [고블린 토마토]를 하나 올렸다. 그러자 그램은 '캬악!' 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쯧."

할수없이 [그렘린의 열매]를 올려놓자 그제야 빵긋 미소 짓고는 자신을 따라오라는 듯 손짓했다.

"까다롭기는."

피식 웃으며 따라가기를 삼십분 쯤.

난장판이 된 그렘린 소굴 중 한곳의 벼랑 위로 날아올랐다.

"여긴 내가 다 부순 곳인데."

그램이 몸 담고 있었던 그렘린 부족의 소굴이었다.

벼랑에 파여진 굴중 가장 높은 곳.

그곳으로 날아가려던 그램은 내 손을 잡고 꼭대기까지 날아올랐다.

그러자 보이는 건.

"벽화다."

그램이 그렸던 것과 똑같은 벽화.

불타는 성채와 그렘린.

죽어가는 사람들이 그려져 있는 잔인한 벽화였다.

그램은 벽화를 매만지다가 허리춤에 있는 단검으로 자신의 손바닥을 그어 푸른 피를 냈다.

"야!"

놀라서 소리쳤지만 그램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촤악. 푸른 피를 벽화에 뿌리자.

"히든 던전, '불타는 그렘린의 성채'를 최초로 찾아내셨습니다."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최초업적 보상으로 '후회하는 어머니의 일기장'을 획득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내.

"크악!"

벽화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불타는 그렘린의 성채 [2]

9화.

본래는 4개 였을 첨탑이 이제는 하나만 남아 부서져 있었고 그 사이로 붉은 피와 타오르는 연기가 인상적인 벽화가 똑닮은 풍경이 펼쳐졌다.

[캬캬캬캭!]

"꺄아아아악!!"

사람들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놀며 하늘을 박쥐처럼 날아다니는 그렘린들의 모습은 지옥을 불방케했다.

꺄아아아아-!

퍽!

하늘에서 떨어진 사람의 비참한 비명이 둔탁한 소음과 함께 사라졌다.

토마토마냥 터져버린 주민의 마지막을 목격하자마자 곧장 [벌목도끼]를 꺼내 투척하려 했으나 주춤했다.

'많아.'

수가 많았다.

성채를 뒤덮은 그렘린. 히든 던전이라고 적혀져 있던 곳이 바로 여기다.

'불타는 그렘린의 성채' 라고 적혀져 있던 것처럼 여기저기 불타고 있는 성채의 주인은 인간이 아닌 그렘린의 것이었다.

"다시 못 돌아가겠지..."

빨려들어갔던 벽화는 온데간데 없어지고 있는 건 오로지 풀숲 뿐.

불타는 성채와 찢겨 죽어가는 사람들의 비명소리가 난무했다.

어딘지도 모를 숲으로 도망가볼까 생각해봤지만 그만뒀다.

그렘린이 성을 점거했는데 숲이라고 멀쩡할까. 여기서는 그 무엇도 안심할 수 없다고 보는 게 맞다.

"침착해보자."

섣불리 행동했다간 어그로가 쏠려 다굴 맞아 죽는다. 여긴 그렘린의 본거지라 말해도 좋을 장소일 터.

그렇지 않고서야 '히든 던전'이라고 부르지 않았을테니까.

'보이는 것보다 더 많을 수도 있다는거야.'

게다가 지금 보이는 일반 그렘린의 숫자가 서른이 넘어가지만 저 안에 얼마나 많은 수의 놈들이 있을지는 모르는 법.

중요한 건 히든 던전이라고 해도 시간 제한이 있는 건 아니라는 것과 지금 놈들의 시선이 날 향해있지 않다는 게 그나마 다행이었다.

간단한 말로 내게는 놈들을 상대로 준비할 시간이 충분하다는 뜻.

"이거라도 봐볼까."

불타는 성채는 인간의 것이 아닌, 그렘린의 것. 그렇다면 무작정 돌격하기엔 죽기 쉽상이다.

난 벽화에 빨려들어오며 함께 얻었던 일기장을 펼쳤다.

[후회하는 어머니의 일기장]

-그녀의 후회가 고스란히 적혀 있습니다.

'간단하게 생각하자.'

이건 일종의 던전.

일기장은 퀘스트의 도입부를 알리는 아이템이다.

그리 생각하면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

9월 23일.

아버님은 내게 정략혼을 당부하셨다. 정세가 혼란한 지금, 카탈린 성채의 딸로서 사위를 들여 대를 잇게 하는 것이 나의 책임이라 하셨다.

하지만 난 누군지도 모르는 사내의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았다.

혼란을 야기하는 삿된 무리들을 토벌하는데 힘이 되고 싶었다.

프리스트께서는 내게 그랬다.

재능이 있다고...

9월 29일.

아버지가 내 뺨을 때리셨다.

정략혼을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독방에 갇히게 되었다.

난 아무말도 하지 못하고 그저 눈물만 흘렸다. 뭐가 재능이냐. 뺨 한대 맞은 걸로 아파하고 위축되어 생각해온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하는데...

10월 4일.

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독방에 갇힌지 일주일이 되어 간다.

아버님 몰래 넣어주시는 어머니가 만들어주신 미음으로 연명하고는 있지만 너무 힘겹다.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정략혼을 하겠다 하라고.

여자로 태어난 이상, 좋든 싫든 짝을 지어 아이를 갖는 게 맞다고.

흔들리는 잎새처럼 내 마음 또한 그리 정처없이 흔들렸다.

"쓸모 없는 내용 같은데. 이거 계속 읽을 필요가 있나."

그래도 참고 보기로 했다.

10월 19일.

잠을 자고 일어나보니 침대였다.

어머니는 말씀하셨다.

내가 쓰러졌었다고, 며칠을 깨어나지 않았다고 하셨다.

쉬고 있는데 대뜸 아버님이 오셔 말씀하셨다.

결혼 상대가 정해졌다고.

난 절망했다.

하지만 도리어 안심했다.

독방에 다시 갇힐 일은 없겠다며...

10월 23일.

몸이 다시 건강해졌다.

잘 먹고 잘 쉬었으니 당연하다.

애초에 병이 있던 게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마음은 병든 것처럼 쿡쿡 쑤시고 아파왔다.

12월 24일.

내 결혼식이 하루 남았다.

눈 내리는 하늘을 보며 기도 드렸다. 결혼하지 않게 해달라고.

그리고 그 날.

나는 한 남자를 만났다.

그는 말했다. 나의 피를 조금 준다면, 결혼하지 않아도 되게 만들어주겠다고.

난 기꺼이 피를 건넸다.

12월 25일.

결혼식 당일.

나는 내 핏방울 속에서 태어난 아이들이 성을 부수고 사람들을 죽이는 걸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아버지도, 어머니도 나와 결혼하려 했던 사람도 경비병도 병사들도 주민들도 모두 죽었다. 나는 내 아이들에 의해 독방에 갇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아아, 하늘이시여.

부디 나와 아이들을 모두 본래의 한줌 흙으로 돌아가게 해 주소서.

죄 많은 나를 용서치 말아주세요.

당신께서 원하신다면 기꺼이 지옥에 떨어져 악귀들에게 살점을 영원토록 파먹힐테니 제발.

저희를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그러니까..."

일기장을 덮은 난 불타고 있는 성채를 바라보았다.

하나 남은 첨탑의 독방.

"그렘린의 탄생비화, 뭐 그런건가."

그 첨탑의 독방에 아직 그녀.

그렘린의 어머니라는 여자는 아직 존재하고 있을까.

"게임에서는 이런 게 던전 공략의 열쇠가 되는 단초인데..."

크게 관심이 가지는 않았다.

결혼하기 싫다고 자기 집안 다 말아먹게 만든 여자 아닌가. 말이 어머니지, 마녀나 다름 없는 인물이다.

애초에 후회를 하든, 속죄를 하든 나랑은 관계 없는 내용이고.

"결국 내가 할건 다르지 않네."

그렘린을 죽인다.

죽이고 금화를 얻는다.

그게 전부다.

"성채니까 공략하면 금화도 많겠지. 지금으로선 포기할 수도 없고. 좋게 생각하자."

도망칠 수도 없으니 달리 다른 선택지도 없다. 애초에 금화 벌이 하러 시작한거기도 했으니까.

텁. 일기장을 덮은 난 곧장 성채 주변을 샅샅히 살피기 시작했다.

"아, 있네."

성채에서 꽤 멀리 떨어진 시체다.

그렘린들이 가지고 놀다가 떨어뜨린 성채의 주민인 듯 했다.

"명복을 빕니다."

합장하고 혹시 몰라 남겨뒀던 [그렘린의 씨앗]을 시체 위에 올렸다.

[제물성장]

화앗. 작은 빛과 함께 데몬시드가 급격한 성장을 이루었다.

"제물을 사용해 작물이 완전히 성장했습니다. 경험치 +5를 획득합니다."

"신의 행운이 깃듭니다."

"빛나는 그렘린 열매가 열립니다."

"개꿀. 이거지!"

1퍼센트 잭팟이 터졌다.

제물을 하나만 썻는데 빛나는 열매가 열렸다.

맺힌 열매는 총 8개.

그중 [빛나는 그렘린 열매]만 남기고 모두 인벤토리로 넣었다.

"빛나는 그렘린 열매를 섭취하셨습니다."

"근력 +1이 상승합니다."

『이화성』

「데몬시드 Lv.2」

「생명력」 – 120/120

「마나」 - 100/100

「능력치」

근력 – 6 ▶ 7

민첩 – 7

건강 – 6

마력 - 5

「스킬」

[워터볼] [투척]

꽈악.

말아쥔 손아귀에 힘이 넘친다.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널려있는 비료들이나 전부 쓰고 입장해볼까."

불타는 그렘린의 성채.

그 바깥에는 데몬시드의 비료들이 꽤 즐비해 있었다.

내 데몬시드는.

"비료가 많을 수록 풍작이니까."

어차피 들고갈 수도 없는 거.

빛나는 열매나 왕창 만들어서 스펙 업이나 하는 게 이득이다.

공략은?

"몰려오는 놈들 잡으면 되겠지."

[카오스 게이트]

-1일 3시간 53분 남음.

시간은 아직 충분하니까.

*

홀로 남은 첨탑.

그 안에 갇혀 있는 여인은 구슬피 울었다. 자신의 잘못된 선택에 울고 떠나지 않는 가까운 이의 비명 소리를 떠올리며 흐느꼈다.

자신으로 하여금 태어난 악마들의 웃음소리에 귀를 막았고, 그들로 하여금 고통 받는 자들의 소리없는 힐난에 가슴을 부여잡았다.

"왜 날 죽이지 않는거야!! 나도 함께 물고 찢으며 놀아!! 왜! 대체 왜!!"

굳게 닫힌 철문을 두드리며.

그녀는 털썩 주저 앉아 울었다.

"왜 날 살려두는거야..."

또각. 또각.

계단에서부터 올라오는 구두굽 소리가 청명하게 울려퍼졌다.

그렘린의 어머니이자 성채의 하나 뿐인 생존자인 그녀는 이 구두굽소리가 누구를 뜻하는 지 정확히 알았다.

"안데라스!! 네비로스의 개!! 내 할 수만 있다면 저열한 혓바닥을 놀린 네놈을 갈기갈기 찢어줬을테다!"

쾅쾅!

방금까지 흐느껴 울던 여인은 어디가고 분노에 가득찬 폭력만이 철문을 두들겼다.

"레아 드 카탈린. 고결한 카탈린 성의 공주가 이리도 험한 말을 쓰셔야 쓰나. 아니, 이제는 '그렘린의 어머니'라고 불러주는 게 맞나?"

"안데라스!!"

쾅쾅쾅!!

"너무하는군. 난 흐느껴 우는 여인의 도움을 외면하는 못하는 편이라 도와줬을 뿐인데... 이리도 날 원망하니 참 맛있군."

"너만 아니었어도! 너만 아니었어도 이런 비극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래, 그리고 넌 서열 낮은 옆동네 공작가 골칫덩이인 차남과 결혼해 의미 없는 밤시중과 애정없는 아이를 낳았겠지."

"차라리 그게 나았어!!"

"정말인가? 정말로... 그렇게 생각하는건가, 레아 드 카탈린?"

"....."

레아는 이를 꽉 깨물었다.

"놈은 카탈린 성을 갖기 위해 겉으로는 애처가를 연기하나 밤만 되면 제 친족들에게 구박받던 울분을 네게 폭력으로 풀었을 것이다. 이쯤되면 내게 고마워해야 하는 게 아닐지?"

이러나 저러나.

"네 삶은 달라지지 않았을테니까."

아무말도 못하는 레아의 고개 숙인 모습을 본 안데라스는 흡족스런 표정으로 자신의 입술을 핥았다.

"그래도, 적어도... 네 꾀에 빠지지 않았다면 모두 살아 있었을거야."

"그리고 넌 사는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인생을 보냈겠지. 저기 빨랫감처럼 널려있는 저들이 네 인생을 대신 살아준다 그랬나? 네가 고통에 몸부림칠 때! 고통을 나누어보자 하던가? 아니! 그들은 네 고통과 네가 겪어야 할 삶에는 아무 관심도 없었다! 하긴, 그게 당연하지. 인간은 지극히도 이기적인 동물이니까."

"아니야, 아니야..."

"거기서 지켜봐라. 네 아이들이 이기적인 인간들의 내장을 줄넘기하며 놀고 있는 것도 꽤 재미나니까."

또각, 또각.

멀어져가는 발소리에도 레아는 이젠 더 말할 기력이 없었다.

어리석은 나날과 자신의 모자람에 눈 돌린 과거가 현재의 참혹함으로 변질되었음을 느끼기도 벅찼다.

힘없는 목을 늘어뜨려 창살이 가득한 창을 바라보았다.

물기 가득한 눈은 어느새 자신이 나고 자란 성채를 바라봤다.

회색의 견고하고, 든든했던 성채는 붉게 물들고 얕게 무너져 있었다.

그리고.

"나무...?"

성 안에 웬 크고 작은 나무들이 우후죽순 생겨나 있었다.

"저런 건 본적이 없는데..."

이 난리통에 부러지거나 불타거나 했었어야 할 나무들이 아닌가.

성채는 무너졌는데 갑자기 솟아난 나무들이라니.

그것도 일정한 간격을 유지한 것도 아니라 제멋대로 솟아 있다.

마치, 아무렇게나 씨앗을 던져 자라나게 한 것처럼.

그때였다.

자그마한 빛과 함께 창살 바로 앞에 커다란 나무가 솟아났다.

"꺅!!"

"왁! 이거 왜 이렇게 크게 자라냐. 깜짝 놀랐네."

솟아난 나무와 탐스러운 과실. 그 나뭇가지를 잡은 채 매달려 있는 사내와 첨탑 안 레아의 눈이 마주쳤다.

"누, 누구세요?"

"아... 그, 금화를 좀 찾으러 왔는데요."

"도둑이신가요?"

"예? 아니, 도둑은 아니고..."

어떻게 보면 도둑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다 죽었으니.

"도굴꾼정도...?"

불타는 그렘린의 성채 [3]

10화.

"빛나는 그렘린 열매를 섭취하셨습니다."

"근력 +1이 상승합니다."

"빛나는 그렘린 열매를 섭취하셨습니다."

"건강 +1이 상승합니다."

"빛나는 그렘린 열매를 섭취하셨습니다."

"민첩 +1이 상승합니다."

"빛나는 그렘린 열매를 섭취하셨습니다."

"근력 +1이 상승합니다."

"빛나는 그렘린 열매를 섭취하셨습니다."

"마력 +1이 상승합니다."

"빛나는 그렘린 열매를 섭취하셨습니다."

"돌진 스킬을 배웠습니다."

"이거지! 내가 무인도만 아니었어도 진작 더 강해졌는데!!"

이 던전을 나가면 만들어둔 데몬트리도 끝이지만 어쩌랴.

이때 아니면 뽕 뽑을 수가 없다.

무인도에선 비료를 찾기가 힘들고 여긴 씨앗도 많고 비료도 많았다.

"꺼윽. 아, 너무 많이 먹었나."

배가 빵빵하다.

안 그래도 포만감이 채워지는 열매가 악과인데 너무 많이 먹었다.

『이화성』

「데몬시드 2레벨」

「라이프」 – 104/120 ▶ 104/140

「마나」 - 100/100 ▶ 55/120

「능력치」

근력 – 7 ▶ 8

민첩 – 7 ▶ 8

건강 – 6 ▶ 7

마력 - 5 ▶ 6

「스킬」

[워터볼] [투척] [돌진]

「돌진」

-민첩과 근력 수치를 합산하여 그에 상응하는 속도와 데미지를 준다. (스탯 1당 1의 속도와 데미지.) (소모 5)

"빛악과 6개를 먹었더니 능력치 5개에 스킬 하나를 배웠다라. 완전 대박이네."

고통스럽게 죽어간 사람들을 생각하면 웃으면 안되는데 자꾸 웃음이 난다.

"감사합니다. 극락왕생하세요. 복 받으실겁니다!"

희희 웃으며 다음 시체가 있는 곳으로 가서 [제물성장]을 발동한다.

무더기로 쓰러져 계시는 비료님들.

여기저기 흩어져 계셔서 잘 모르겠지만 3, 4명 정도 되어 보인다.

모조리 제물로 바쳤다.

"크다, 이번엔 더 커!"

필연적으로 나무가 크고 웅장하면 그에 걸맞는 열매가 나오기 마련.

쭉쭉 뻗어가는 나뭇가지를 잡아 첨탑과 마주할 정도로 올라갔다.

"데몬시드를 성공적으로 성장시켰습니다. 경험치 +5를 획득합니다."

"제물에 행운이 깃듭니다."

"신의 은총이 돌봅니다!"

"제물성장의 효율이 2배가 됩니다."

"빛나는 그렘린 열매가 열립니다."

"빛나는 그렘린 열매가 열립니다."

"찬란한 그렘린 열매가 열렸습니다!"

"와우! 제물 만세!"

찬란하다 찬란해.

빛나는 것도 모자라 찬란한이라니!!

"와 뭐냐 진짜. 오늘 대박날인가. 로또를 샀어야했나?"

똑.

은은한 빛을 발하는 빛나는 악과와는 다르다.

찬란하게 빛난다.

금빛으로 번쩍거리는 열매.

[찬란한 그렘린 열매]

-신의 은총이 깃들었습니다. 악마의 혼이 정화되어 찬란한 신의 힘이 깃듭니다.

빛나는 악과의 상위 열매!

이름 색깔도 푸른색이 아니라 유니크임을 뜻하는 보라색이다.

대체 어떤 효과를 내려줄지 심히 궁금한 상태.

찬란한 악과를 잡아 입에 가져가려는 순간.

뭔가와 눈이 마주쳤다.

"누, 누구세요?"

내가 묻고 싶은 말이었다.

하지만 사람을 마주본 게 너무 오랜만이라서 그럴까.

애초에 동양인도 아니고 적발, 홍안을 가진 외국인이다.

한국말을 하는 거 같지는 않은데 묘하게 뜻이 쏙쏙 귀에 박혀서 나도 모르게 헛소릴 내뱉었다.

"아... 그, 금화를 좀 찾으러."

딱히 틀린 소린 아니었지만 갑자기 누구냐고 물으니 조금 당황했다.

"도둑이신가요?"

"아뇨, 도둑은 아니고..."

다 죽었으니 정확하게 따지자면...

"도굴꾼정도?"

그때였다.

휘익-! 쾅!!

나무창들이 날아들었다.

사냥꾼 그렘린들이었다.

너무 휘황찬란해서 그런가 놈들도 무슨 일인가 싶어 몰려든 모양.

상황이 썩 좋지 않다.

"그럼 이만."

"자, 잠깐만요!!"

"피차 처음본 사이고 관계도 없으니 이걸로 퉁 칩시다!"

데몬트리에 열린 악과 하나를 던지고는 난 곧장 [페스틱사드]를 발동했다. 성채 근처에 만들어둔 나무만 이제 일곱개.

일부러 빛나는 악과 이하의 것은 따지 않았다. 이쯤되면 욕심쟁이 놈들에게 슬슬 반응이 올 때가 됐다.

"그렘린이 당신의 페스틱사드에 중독 되었습니다."

"사냥꾼 그렘린이 당신의 페스틱사드에 마비되었습니다."

"그렘린이 당신의 페스틱사드에 크나큰 데미지를 입었습니다."

"대전사 그렘린이 페스틱사드에 의해 절뚝거리다 쓰러졌습니다."

"경험치 +100을 획득합니다."

"경험치 +100을 획득합니다."

"경험치 +100을 획득합니다."

"경험치 +100을 획득합니다."

"경험치 +100을 획득합니다."

"나이스!"

쾅! 콰직!

날아드는 나무창을 피해 달아난다.

[돌진]

파앗!!

멧돼지 돌진처럼 순간 대시 기능이 있는 그렘린의 돌진 스킬이었다.

스탯에 영향을 받는다더니 확실히 그냥 뛰는 거보다 4배 이상 빠르다.

'거리는 짧지만.'

오히려 좋다.

거리가 너무 길면 오히려.

"크윽!"

콰앙-!

이렇게 벽에 박아버리니까.

"오, 오! 안 아픈데!?"

벽돌집 하나를 부숴버렸는데도 몸이 그렇게 아프지 않다.

조금 긁힌 정도.

이것도 전부 건강과 근력 스탯이 많이 오른 탓이겠지.

원래 5정도였던 근력과 건강이 8이나 됐으니 슬슬 체감될 때가 됐지.

[캬캬캭!]

"워터볼!"

팡!!

[캑!]

자그마치 마력 6의 워터볼.

이전처럼 딱밤 맞은 것과 같은 위력이 아니다.

「워터볼」

-대기중의 수분을 모아 물의 공을 만든다. (마나소모: 5)

데미지: 6-18

마력이 1이었을 때는 1-3이었던 데미지가 6에서 18로 바뀌었다.

털썩.

이마에 바람 구멍이 뚫린 그렘린은 즉시 뇌수가 흘러내리며 비틀거리다 즉사했다.

"경험치 +100을 획득합니다."

"어우, 징그러워."

[카캭!]

중얼거리자마자 그렘린 떼거리들이 다시금 모여든다.

나무창을 든 사냥꾼놈들과 다른 처음 보는 녀석이 나타났다.

나무 몽둥이를 든 [대전사 그렘린]이었다. 놈들의 수는 다섯.

일반적인 그렘린과 비교했을 때 크기는 1.5배 더 컸고 몸에 흉터나 근육이 부풀어 있는 걸 보니.

'잘못 걸리면 뒤지겠군.'

아마도 저놈이 경험치 200을 주는 사냥감인 듯 하다. 제대로 잡히면 뼈도 못 추릴 포스를 풀풀 풍긴다.

놈들은 다섯인데 반해 나는 하나.

숫자 싸움에서 불리한 게 뻔한데 무리하게 싸울 필요가 없다.

다시 튀어야 할 때다.

"돌진!"

파앙-! 콰자작! 순식간에 집 몇개를 부수며 달아났다. 무의미한 시간 낭비라 볼 수도 있지만 놀랍게도 시간은 내 편. 집 안에 있는 시체들도 모두 내 편이었다.

"비료는 놓칠 수 없지!"

죽어있는 시체를 발견!

데몬시드를 꺼내 [제물성장]을 발동하고 [페스틱사드]를 살포한다.

「생명력」 – 94/140

「마나」 - 25/120

하지만 슬슬 위기가 다가온다.

마나가 부족해지고 있다.

워터볼과 투척, 그리고 돌진과 페스틱사드를 남발한 결과이기도 하다.

"슬슬 위험하다."

밑작업은 해뒀고, 효과는 보고 있지만 상황이 그리 여의치는 않다.

생각보다 놈들의 수가 더 많다.

행동력도 빠르고 조를 나누어 추적하는 솜씨도 제법이다.

"경험치 +100을 획득합니다."

그럼에도 악과의 유혹에 빠지는 놈들은 죽어가고 있지만 더 만들어둘 필요가 있다.

놈들의 숫자는 내가 만든 데몬트리의 악과보다 배는 많아 보인다.

성 밖으로 나온 놈들만 해도 수십.

그 안에는 더 많다.

"후우."

숨이 차오른다.

악과를 먹은 탓에 체력과 마나의 회복속도고 소폭 상승한 상태여도 버거운 건 버거운거다.

회복하는 양보다 놈들을 뿌리치고 농약을 살포하는 과정의 마나가 더 많이 들어간다.

[캭! 캬캬캭!!]

[캬캭!!]

성채 내부의 마구간에 숨어들었다.

아무리 코가 좋아 추적능력이 높다해도 마구간의 똥내에 섞여있는 날 찾기란 힘들 것이다.

'토할 거 같아...'

그래도 지금 뿐이다.

잠시 시간이 났을 때 처리해야 한다. 인벤토리에서 꺼낸다.

[찬란한 그렘린의 열매] (uniqe)

금빛으로 빛나며 보라색의 글자색을 지니고 있는 유니크 열매!

아삭! 한입 베어 물자.

"!"

순식간에 물처럼 변해 목구멍을 타고 들어갔다.

무협지에 나오는 영약처럼 오직 상쾌함만이 식도를 타고 위장을 거쳐 장으로 청량하게 꿰찼다.

"신의 은총이 깃든 열매를 섭취하였습니다."

"체력과 마나가 빠르게 회복됩니다."

"그렘린이 지닌 가장 찬란한 잠재력을 개화합니다."

"어쩌면 그렘린이 개화 했을지도 모를 기프트. [카탈린의 감전]을 배우셨습니다."

『카탈린의 감전』

-피로 이어진 번개는 피를 쫓는다. 오직 피를 따르는 번개를 일으켜 피해를 부여 한다. (개체 당, 소모: 5)

일반 스킬이 아니다.

신의 선물인 기프트였다.

데몬시드와 같은 항렬의 기프트.

『이화성』

「데몬시드 2레벨」

「카탈린의 감전 1레벨」

「생명력」 – 140/140

「마나」 - 120/120

「능력치」

근력 – 8

민첩 – 8

건강 – 7

마력 - 6

「스킬」

[워터볼] [투척] [돌진]

"미친."

기프트.

이걸 얻어버릴 줄은 몰랐다. 애초에 이렇게 얻을 수 있는 거였어?

"오히려 좋아."

지금의 내겐, 딱 좋은 선물이었다.

콰자작! 쾅!

마굿간에 들어닥친 대전사 그렘린.

흉악한 몽둥이를 하나씩 쥐고 있는 대전사와 창을 든 사냥꾼들.

그리고 손과 몸에 피칠갑을 하고 있는 그렘린들 전부가 피로 물들여져 있었다.

몽둥이도 창도 손도 모두 피.

성채 전부가 그렇다.

전부가 인간의 붉은 피로 물들었다.

그렘린의 피는 푸르다. 이곳에 저들의 푸름은 한방울도 없다.

"카탈린의 감전."

파지지지지지직!!

내 손안에서 피어난 번개가 피로 붉게 물들고 타들어 검게 변한다.

검붉은 번개.

"뒈져라 개새끼들아."

쿵!!

바닥에 흩뿌려진 핏물을 따라 카탈린의 감전이 사방으로 치닷는다.

지면의 바닥을 타고, 그렘린들이 흘려보낸 핏자국을 올라탄다.

모든 피를 따라가 태워버리겠다는 듯 부서진 성채 위로 치닿아 검붉은 꽃처럼 만개했다.

[캬아아아악!!]

[크아아아야야야아아악!]

[캬아아악!]

[키에에에에에엑!!]

"크윽!"

몸속의 기운이 순식간에 빠져나간다. 찬란한 열매로 차올랐던 마나는 순식간에 동이 나기 시작했다.

「마나」 - 105/120

「마나」 - 95/120

「마나」 - 80/120

「마나」 - 55/120

「마나」 - 35/120

하지만 마나가 빠져나가면 나갈수록 놈들의 목숨 또한 소모되었다.

"경험치 +200을 획득합니다."

"경험치 +200을 획득합니다."

"경험치 +200을 획득합니다."

"경험치 +200을 획득합니다."

"경험치 +200을 획득합니다."

"경험치 +200을 획득합니다."

"경험치 +200을 획득합니다."

.

.

.

.

조금만 더. 「마나」 - 25/120

조금만 더. 「마나」 - 15/120

조금만 더! 「마나」 - 5/120

'더 이상은...!'

파앗!! 털썩! 다리에 힘이 풀렸다.

더 이상은 마나가 없다.

마나를 대부분 소진해서 그런지 머리가 어지럽고 귓가가 먹먹하다.

토할 것처럼 숨이 차고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것만 같았다.

쿵! 털썩!

하지마 나와 마찬가지로 바삭바삭 구워진 그렘린들도 하나 둘 쓰러지기 시작했다.

"하아... 죽을 뻔 했네."

콰직.

인벤토리에서 바로 악과를 하나 씹어 먹어주고 나서야 숨이 트였다.

[민첩이 0.1 상승합니다.]

『카탈린의 감전』 (개체 당 소모: 5)

카탈린의 감전에 나와 있는 소모량이 뭔가 했더니 감전되는 개체당 소모량이 5라는거였다.

120에 가까운 마나가 전부 털렸으니 감전 효과를 준 숫자만 20마리가 넘는다는 소리.

"아오... 이거 나도 저릿하네."

감전이라서 그런가.

나 또한 감전의 영향에 놓일 수밖에 없는 스킬인 모양이었다.

그나마 [푸르푸르의 반장갑]으로 번개 내성이 있어서 망정이지.

그것마저도 없었다면 아마 기절이라도 하지 않았을까.

적진에서 기절이라.

잘못했으면 '레인스톰'이나 '카오스 게이트'는 구경도 못하고 인생 하직 할뻔 했다.

"후우, 지금도 여유롭지는 않은 거 같으니까 빠르게 루팅하고 튀자."

그 난리를 쳤다.

'불타는 그렘린의 성채' 히든 던전은 아직도 끝날 기색이 없으니 보스 몹이라도 있는 모양.

그렇다면 이렇게 늦장부리고 있을 여유 따윈 없다.

빠르게 챙길 건 챙기고, 휴식하고 난 뒤에 다시 공략을 이어가야 했다.

"그냥 가고 싶기도 한데..."

목표했던 골드.

[골드x 731]

목표치는 한참 넘어선지 오래였다.

다만 문제는 나갈 방법을 모른다는 것.

아마도 보스를 잡거나 여기 있는 그렘린 전부를 잡아야 하는 듯 싶다.

"무인도가 그리워질 줄이야."

빨리 도망가야 하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쿵! 쿵! 쿵!

어느새 날아들었는지 그렘린 대전사들과 사람만한 덩치의 처음 보는 그렘린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다가왔다.

[패도적인 그렘린 킹 엘데]

커뮤니티에서 본 적 있다.

일반적인 데몬들 중에서도 극히 뛰어나 개체명이 아니라 진명을 가지고 있는 악마. 일반 개체의 5배 이상 강하다 알려져 있는 보스급 데몬.

'챔피언.'

아마도 이 상황이라면 군대 이등병 시절로 돌아간다해도 돌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죽음이 선고된거나 마찬가지인 상황. 마나는 고갈됐고 내가 가진 능력으로는 타계가 불가능한 바로 지금.

어째서인지 난 웃고 있었다.

왜냐면.

"멈춰!!"

내 앞에, 한자루 검을 든 가녀린 여자가 수십의 악마들을 상대로 가슴을 곧게 피고 있었다.

하지만 피묻은 검은 악마가 아니라, 가녀린 자신의 목에 닿고 있었다.

"내가 너희들의 어미다!"

그렘린이란 악마들의 어머니란 자가 자기 목에 칼을 들이밀며 악마들에게 협박질을 할 줄이야.

"당장 비켜!"

그리고 또 그게 통했다.

주춤 거리며 어쩔 줄 몰라하는 그렘린들이 보인 잠깐의 틈.

내겐 그것이면 충분했다.

"어처구니가 없네."

팅.

내 손에서 내던져진 동그란 구슬.

그것이 그렘린 킹의 발밑을 나뒹굴었다.

[브로켈의 부적]

-브로켈이 어린시절 지니고 다녔던 애장품. 그녀의 염원을 담았으나 이루어지지 않아 버려진 부적이다.

(프로스트 노바 - 1회)

"망설이면 죽어야지. 안 그래?"

자그마치 67골드 짜리 1회용 소모템.

하지만 그 효과는 확실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

불타는 그렘린의 성채 [4]

11화.

검붉은 꽃이 피었다.

강렬하고 맹렬하게.

후두둑, 무너져 내린 첨탑 사이로 레아는 저도 모르게 뛰어들었다.

이렇다 저렇다할 확실한 생각과 계획을 가진 게 아니었다.

성채의 피를 태우는 검붉은 번개의 꽃을 본 순간 매료되었다. 정숙함을 요구했던 걸음걸이는 잊어버렸다.

한창기의 소년들처럼 뛰었다.

구두를 벗어 던지고, 치마가 더럽혀지는 것도 잊은 채 달리고 달렸다.

지면에 떨어져 있던 카탈린 성의 검을 주워 사내의 앞을 막고 섰다.

"멈춰! 죽이지 마!!"

직접 마주하는 건 처음이었다.

두려워 제대로 보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만큼은 똑똑히 바라봐야 했다.

돌연 나타나 내게 과실을 건넨 이 사내를, 이 사내만큼은 반드시 살리고 싶었다.

아니 살려야 했다.

가까운 모두를 죽이게 만들었지만, 적어도 이 사람만큼은 살려야 했다.

검을 쥔 손이 떨렸다.

알고 있다. 내게 이 아이들을 막을 힘은 없다.

그러나 한가지는 안다. 지금까지 내가 죽지 않은 이유.

스릉.

나는 내 목에 검을 가져갔다.

"내가 너희들의 어미야!"

이 잔인하고 흉악한 아이들은. 자신의 어미를 죽이지 못한다.

아이들의 얼굴에 당혹이 서렸다.

"당장 비켜!"

통한다.

주춤거리며 물러난다. 하지만 한 녀석만은 아니었다.

[패도적인 그렘린 킹 엘데]

놈 만큼은 인상을 찌푸린 채 레아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렘린 킹의 손에 쥐어진 피 묻은 붉은 창이 예기를 뿜었다.

"어처구니가 없네."

그때였다.

예의 사내가 어깨를 확 잡아챘다.

팅!

바닥에 떨어진 작은 구슬.

그것에서 새하얀 겨울이 폭발했다.

콰아아아아아아아!!

원형으로 퍼져나가는 순간 지면이고 상공이고 할 것없이 얼어 붙었다.

파아-!

1초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순식간에 터져나간 겨울은 모든 것을 얼어붙게 만들었다.

투둑, 투두둑.

콰창! 콰창! 콰창! 콰창! 쾅!

하늘을 부유하던 그렘린을 얼어붙어 땅으로 떨어졌다.

산산조각나 붉은 얼음결정으로 산화하는 그렘린들의 모습은 애석하기도 아름답기도 했다.

레아는 자신을 안고 있는 사내를 돌아봤다.

잔뜩 지친 얼굴.

그러나 입가의 그려진 호선은 누구보다 빛이 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