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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미믹 [2]

174화.

17군단장 후보.

그것이 주는 칭호의 임펙트는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강했다.

'유리엘이 그랬지.'

군단장은 얼마든지 채워진다고.

솔직히 바바리안의 증언만으로 확신하기에는 조금 긴가민가했었다.

잘못 본 거일 수도 있으니까.

하지만 이렇게 두 눈으로 보게 되니 인정할 수밖에 없다.

'정말 군단장 후보가 있군...'

그것도 17군단장 후보.

얼마 전 카오스 게이트로 한국을 공격했던 티타누스의 자리였다.

다른 넘버도 아니고 17.

숫자의 의미가 시사하는 바가 컸다.

저 숫자를 보는 순간, 거대한 경각심을 느낄 수밖에 없었으니까.

'놈 또한.'

티타누스와 같은 수준의 힘을 지녔거나 엇비슷한 힘을 가졌다고 봐도 이상하지 않다.

군단장의 넘버란 그런 것이니까.

이제까지 겪어온 군단장이란... 대체로 그런 편이었다.

숫자가 낮으면 낮을수록 그들은 강했다. 1에 가까워질수록 강력했다.

17군단장 티타누스.

놈을 상대할 때, 난 죽을 뻔했다.

나를 비롯한 대한민국 전체가 멸망했을지도 모를 위기라고 생각했을 정도였으니까.

놈의 존재감은 그러했다.

이제껏 만나본 군단장이 주었던 절망감은 애들 장난이었다고 말하듯 인류의 희망을 잔혹하게 유린했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17군단장 후보라는 알두바드 또한 비슷한 힘을 가졌으리라 생각하는 게 맞다.

'그게 맞긴한데.'

하지만 의심이 드는 것도 사실.

저 노인장이 정말 티타누스와 비슷한 힘을 가지고 있을까?

겉모습으로 악마를 판단하는 건 아주 멍청한 짓이다.

하지만 풍기는 분위기와 겉모습은 그저 깐깐한 대장장이 그 이상도, 이하로도 보이지 않았다.

'힘만으로 군단장이 되는 건 아닐지도 모르지...'

놈은 미스릴을 다루는 대장장이.

거기다 아다만티움으로 무기를 만들어내는 녀석이라면... 그 능력을 인정받아 군단장 후보로 등용됐을지 모르는 일이다.

'한 명이 아닐 수도 있다.'

게다가 군단장 후보가 한 명이 아닐 수도 있는 일 아닌가.

알두바드말고 다른 후보자들도 몇 있다면 대충 이해가 된다.

쿵!!

그가 도가니를 열자 푸른 불길이 치솟았다. 알두바드는 불길 속에서 스스럼없이 손을 뻗어 무기를 꺼냈다.

하지만 뭔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걸까.

주형으로 찍어내 만들어진 검을 들어 유심히 살펴보더니 단숨에 도가니에 내려쳐 분질러버렸다.

그러고는 잔해를 먹어 치웠다.

"역시 쓰레기 같은 맛이군."

퉤! 뱉어내자 검이었던 그것은 검은 액체로 변해 바닥에 딱딱히 굳었다.

'뭐지.'

권능일까.

티블이라는 종족 자체가 저런 능력이 있단 소리는 듣지 못했다. 아마도 권능의 일종이지 않을까 싶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들은 쉼 없이 일을 진행했다. 도가니 안에 푸른 용암과 금속을 넣고 그것을 주형으로 옮겨 담으며 다시금 도가니 위로 올려 망치로 내려친다. 그럼 주형의 틀에 맞춰진 무기가 불순물의 제거와 함께 만들어지는 간단한 시스템이었다.

끼익, 쿵! 도가니를 닫고 소리치자 다시금 트롤들이 사슬을 놓았다.

콰아아아아앙-!! 트롤들이 끌어 올린 거대 해머가 도가니를 때렸다.

"다시!!"

쩌렁쩌렁한 노호성에 트롤들이 허겁지겁 쇠사슬을 끌어 올리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망치를 올렸다 떨어뜨리기를 반복했다.

대장일을 하는 부분만 봤을 때는 약간의 감동마저 있었다.

스케일이 남다르다고 해야 할까.

무기 하나를 위해 이처럼 많은 인원들이 모여 일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절로 가슴이 웅장해졌다.

가슴이 뜨거워졌다.

하지만 그것을 위해 행해지는 일들을 보노라면 분개할 수밖에 없었다.

-꺄아아아악!

"이제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여전히 시끄럽구만."

중앙의 알두바드가 담금질하는 곳 외의 재료를 준비하는 곳에는 꽤 많은 자들이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제일 먼저 보인 건, 인간.

정말 많은 수의 인간들이었다.

'네피림이 아니군.'

그냥 평범한 인간.

입고 있는 복장으로 보건대, 우리 세계의 인간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중세 시대의 복장으로 보이는 자들이 꽤 있는 걸로 보면 말이다.

"이거, 죽었는데?"

"미믹 먹이로 던져줘 그럼."

"으쌰."

버티지 못하고 죽은 인간은 이곳에 존재하는 미믹이나 악마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다.

콰작, 과즙이 흐르는 것처럼 미믹에게 씹어 삼켜지는 인간을 보노라면 마음속에서부터 시꺼먼 무언가가 피어올랐다.

'네피림. 악마... 저건 천사인가.'

화이트의 동료들로 보이는 러시아 인들도 조금 보이고, 다양한 악마들과 날개가 찢긴 천사도 보였다. 그리고 압도적으로 많은 수를 자랑하는 놈들이 있었는데, 바로 미믹이었다.

무슨 짓을 당했는지, 뚜껑을 열어젖히고 놓고 있었는데 겉보기에도 상태가 썩 좋아 보이지는 않았다.

약에 취해 있는 상태라 해야 할까.

꼭 그래 보였다.

'무기를 만드는 곳에서 대체 왜 이렇게 많은...'

그 이유는 곧 알 수 있었다.

이곳의 대장간에서 대장장이들은 각각 붙잡혀 있는 이들의 피를 뽑았다.

"옳지. 조용히 해라. 시끄러운 건, 올타스의 망치로도 충분하니까."

올타스의 망치.

중앙의 거대한 망치를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그들은 곧 미믹의 입을 억지로 벌려 여러 광물과 혈액을 넣었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기괴한 방식이었다.

하지만 잠시 뒤.

나는 그리 행하는 이유를 알았다.

"정확하게! 칼같이 재라! 한치라도 어긋나면 미믹 놈들이 블랙펄을 만들지 못하니까! 블랙펄이 없으면 미스릴 연마도 어려워져!"

미믹의 블랙펄.

해석하자면 검은 진주지만 미믹이 채 소화하지 못한 불순물.

이른바.

'똥이군.'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미믹의 똥. 그들은 인위적으로 똥을 만들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알두바드가 조수들에게 뭔가를 받아서 도가니 안에 차곡차곡 넣고는 했는데 지금 보니 그게 바로 미믹의 똥이었다.

놈들이 미믹을 필요로 한 실체가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똥이 대체 뭐길래.'

이렇게까지 할까.

사람들은 누구나 몰라도 될 이야기로 불쾌감을 얻은 적이 있을 것이다.

예를 들자면 우리가 맛있게 먹는 삼겹살을 예로 들어보자.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가 삼겹살과 구운 김치의 조합엔 사족을 못 쓰며 군침을 흘린다.

하지만 가축으로 길러지는 돼지의 도축 현장을 보고도 침을 흘릴까.

아니다. 사람들은 시니컬하게 도축하는 기계의 단순함과 단호함이 만드는 참혹한 현장에 제대로 보지도 못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어느 날 이런 뉴스를 본 적이 있다.

다리에 철심을 박은 애완견이 보신탕집에서 나왔다든가, 고급 커피로 유명한 루왁 커피가 사실 사향 고양이 똥으로 만들어지기에 철창에 갇힌 채 똥만 싸게 만들었다는 불쾌한 소식들이 말이다.

그렇다.

블랙펄로 나 또한 이런 불쾌감을 느꼈다.

고품질의 미스릴 장비의 비밀이 사실 미믹의 블랙펄, 똥이란 소리를 듣게 됐을 때의 기분이 딱 그랬다.

그 블랙펄이 만들어지기까지 어떤 희생이 들어가는지 알아버렸기에 올라오는 메스꺼움이다.

"이봐, 이 미믹들, 원래 이런 똥을... 아니 블랙펄을 만드나?"

"내가 알기로는 아니라더군. 미믹한테 똥구멍이 있어야 똥을 싸지. 놈들이 블랙펄을 만드는 것도 소화하다 못하고 죽은 뒤에 남는 결정을 말하는 거잖나. 원래는 아니지. 그래서 똥이 아니라 블랙펄이라 부르는게고."

블랙펄을 만드는 과정에서 들어가는 금속들이 꽤 친근한 녀석들이었다.

일단 지옥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광석인 지옥석. 다음은 미스릴이었다.

지옥석과 미스릴을 9:1 비율로 삽으로 퍼서 미믹에게 억지로 먹인다.

그럼 며칠 뒤 블랙펄이 만들어진다.

"블랙펄 말야... 미스릴 무기를 만들 때도 쓰이지만, 다른 것도 쓰이지? 저기 저쪽은 다른 제조법이던데..."

일꾼들 중 한 명이 은근한 눈으로 미믹의 사육장 중, 따로 마련된 곳에 있는 커다란 미믹을 향해 말했다.

"쓸데없는 호기심은 죽음을 자초할 뿐이다. 성주께서는 그 비밀로 자식들까지 버리신 분이야. 괜한 걸 캐내려고 했다간, 목숨을 연명하기 힘들 텐데, 괜찮겠어? 로티."

"아, 알았다고..."

로티.

그가 향했던 곳, 그곳에는.

[단단한 미믹 대장 울]

챔피언 미믹이 있었다.

일반적인 미믹들은 일꾼들이 삽으로 불순물이 많은 지옥석과 미스릴을 삽으로 퍼서 먹이고 있다.

그것으로 보건대 미믹이 불순물을 제거하고 광물의 높은 순도만을 담아 블랙펄을 생성하기 때문이겠지.

그렇다면 여기서 의문.

저 챔피언 미믹은 대체 뭘까.

'조합식이 정말 다르군.'

지옥석과 미스릴을 9:1로 먹이는 다른 미믹들과는 조금 다르다.

지옥석과 미스릴도 들어가는 건 맞지만 이미 광석에서 추출한 순도 높은 것들이 들어간다.

놈에게는 인간과 악마, 그리고 천사의 피가 모두 들어가고 있었다.

인간들 중에서도 네피림.

"으아아아악!"

"아프다고 개새끼들아!!"

네피림의 피가 균형 있게 섞여 들어가는 것이 아니겠는가.

거기에 구리와 청동. 황산이 들어가며 심혈을 기울여 만들고 있었다.

저 녀석은 대체 뭘 만들길래 저렇게 공들이는지 궁금했지만, 아쉽게도 내 호기심은 풀리지 못했다.

"이 녀석들은? 새로 왔는데."

"일단 소독 방으로."

나와 화이트를 비롯한, 오늘 도착한 미믹들은 소독 방이란 곳으로 들어가 갇히게 되었다.

처음 알게 된 사실이었지만, 미믹은 의외로 소금에 취약한 존재였다.

소금물에 담가지면 약에 취한 것처럼 힘을 쓰지 못했는데, 미믹들의 상태가 영 메롱이었던 게 전부 소독 방에 들어가 소금물을 머금었기 때문이란걸 알 수 있었다.

나와 화이트를 비롯한 대부분의 미믹들은 그날 하루를 젓갈처럼 소금방에 갇혀 소금에 절여졌다.

*

같은 시각 베이스캠프.

바바리안과 일행들은 초조한 기색으로 아마존을 바라봤다.

"어떻게 된 거냐."

"대장님이 놈들 소굴로 끌려가셨어요."

"뭐라고!?"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미믹으로 변하셨거든요. 그랬더니 놈들이 미믹이 된 대장님을 데리고 지하로 들어갔어요."

강철이 화들짝 놀랐다.

"데몬시드는! 그는 괜찮나?"

"아직은요."

강철은 눈에 띄게 당황한 상태로 비장한 각오를 다졌다.

"어딜 가게요."

"당연한 걸 묻는군. 구하러 가겠다."

아마존이 강철을 붙잡았다.

"대장님 방해하지 마시죠. 아직 잡힌 것도 아니에요. 놈들은 미믹이 대장님이라는 걸 모르니까."

"하지만..."

"그리고 장군급들이 대거 있는데 당신이 가서 뭘 하게요."

동서남으로 흩어진 장군급 미스릴 전사들과 전투를 벌였다.

동쪽의 미스릴 전사 스물은 바바리안 팀에 의해 절반은 죽었고, 절반은 부상을 입고 퇴각했다.

서쪽의 열 명은 거대한 손에 의해 3명이 죽고 7명이 살아 돌아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쪽의 마흔 명에 달하던 미스릴 전사는 10명이 죽고 서른 명이 부상을 입거나 퇴각했다.

확실한 한국의 승리였다.

전리품으로 꽤 고품질의 미스릴 장비들도 얻었다.

경험치를 비롯한 희귀한 아이템과 여러 단서도 얻었다.

하지만 대신. 많은 피해를 입었다.

그만큼 장군급이라 불리는 미스릴 전사들의 힘은 위협적이었다.

전투 중에 헤일로를 지닌 랭커들도 꽤 많이 다쳤기 때문이다.

강철도 부상이 없는 건 아니었다.

"그건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쾅!! 강철이 테이블을 내려쳐 부서뜨렸다.

"데몬시드가 위험하다는 거야."

"... 그래도 아직은 아니에요."

이대로 강철이 갔다간 그의 일을 방해할 뿐이다.

아마존은 그렇게 생각했다.

아직은 괜찮다.

데몬시드의 곁에 달의 눈을 밀착시켜서 상황을 볼 수 있는 지금이라면 아직은 상황을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애초에 그가 그걸 원한다.

미믹으로 변해 있는 지금이라면.

그가 나서지 않는 한 위험한 일은 크게 없을 테니까.

하지만 잠시 뒤.

아마존의 동공이 크게 떨렸다.

아다만티움 대장간. 그곳에서의 주조 과정에서 붙잡힌 자들의 피가 뽑히는 광경에 아마존의 몸은 경직될 수밖에 없었다.

미믹으로 변한 데몬시드가 어떤 처지로 변하게 될지 뻔히 보이는 상황이었으니까. 아마존은 에어팟에 손을 가져간 채, 물었다.

-저희가 움직일까요.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더라도 데몬시드를 살리는 게 우선이다.

그가 죽는다면 한국은 거대한 희망의 등불이 꺼지는 거나 마찬가지니.

하지만 아마존의 물음에도 데몬시드는 어떠한 답도 하지 않았다.

-대기하겠습니다. 언제라도 말씀해주세요.

통신에는 문제가 없다.

데몬시드가 답하지 않는 것뿐.

"기다려보죠."

데몬시드는 항상 위기의 상황에서 가장 최선의 선택과 결과를 만들어내는 사람이니까.

이번에도 믿을 수밖에 없다.

그를 믿으며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대비를 하는 것뿐.

"스미스씨. 가능하죠?"

스미스는 바르바제의 미스릴 장비들을 만지작거리며 씨익 미소 지었다.

"물론이오."

스미스의 머리 위에는, 그를 닮아 단단한 검은 철갑의 헤일로가 자리해 있었다.

미믹 [3]

175화.

그로부터 이틀이 지났다.

-데몬시드. 우리 언제까지 이렇게 절여져야 하는 거야?

-참아.

-얼마나 더! 지금도 동료들은...

화이트가 러시아 네피림들이 잡혀있는 곳을 바라봤다.

모두가 피를 뽑히고 있는 건 아니었다. 건장한 몇은 뽑히고, 부상당한 이들은 수감되어 있었다.

그들도 네피림이 귀한 건 알고 있는지 꽤 조심스럽게 피를 뽑았다.

죽지 않을 만큼.

딱 그 정도였다.

-구하고 싶으면 구해라. 말리지 않아. 물론 난 돕지 않을 거다.

-왜지? 악마들한테 붙잡혀 있는 사람들을 우리가 구하지 않는다면 대체 누가 구한단 말이야! 너! 그러고도 랭킹 1위냐?

-... 지금은 때가 아니니까.

때가 아니다.

그 말만으로 화이트를 진정시키기란 역부족이었다. 하지만 나도 마땅히 더 해줄 수 있는 말이 없었다.

때가 아니다.

정말 그것뿐이었다.

-기약 없이 널 기다리다 내 동료들이 죽으면 네가 책임질 거야?

그녀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다.

동료가 저렇게 붙잡혀 있다.

그리고 그게 자신의 부족함 때문에 그리됐다면 당연히 한시라도 빨리 구하고 싶어 안달이 나겠지.

하지만 지금은 감정적으로 일을 처리해야 할 때가 아니다.

-그럼, 감정적으로만 움직여서 우리 모두가 죽게 되면. 넌 책임질 수 있나.

구하는 건 좋다.

하지만 그때가 있을 것이다.

-대장간의 크기는 넓다. 그만큼 이곳에 배치된 전사들도 많아.

거기에 군단장 후보도 있다.

이런 곳에서 섣불리 움직였다간 동료를 구하고 말고가 아니라, 우리가 위험해질지도 모른다.

불행하게도 이곳의 출구는 하나.

중앙에 존재하는 울티마의 망치가 있는 영역을 지나야 하는 곳이다.

움직이려면 신중해야 했다.

한번 움직이기 시작하면, 다시 멈출 수 없다.

-하지만...

-신중해라. 모두를 구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 하지만 너도 한 나라를 대표하는 자라면 생각해야 할 거다. 피 흘리지 않는 승리는 없다는걸.

현실적으로 모두를 살릴 순 없다.

사람은 죽는다.

죽지 않을 상황이라 생각한 현장에서도 재수 없는 죽는다.

접싯물에 코 박고도 죽는 게 사람인데 그 죽음을 우리가 어찌할까.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많은 자를 구하는 것.

많은 사람을 살리는 것.

그리고.

-최대한 많이 죽일 기회가 올 거야.

그것뿐이다.

누군가 말하지 않았던가.

사람을 살리는 것보다, 죽이는 게 훨씬 더 간편한 일이라고.

물론 우리가 죽일 놈들은 사람이 아니라 악마지만 말이다.

-그래서, 그때를 위해서 지금처럼 소금물에 절여지고 있으면 되나? 점점 힘이 빠지고 있는데...

-곧 우릴 사용할 거다.

소금물에 절여 미믹의 혼을 빼놓은 다음, 놈들은 블랙펄을 만들기 위한 준비 작업을 실시한다.

곧 우리의 순번이 다가온다.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겠지만 한번 시도는 해봐야 했다.

"빨리 미믹 소독시켜."

"알겠다고요."

이상하게 미믹은 소금물에 약했는데, 소금물에 빠지면 자신의 상자 안에 있는 장비와 물건들을 모조리 뱉어내고 약해지기 십상이었다.

저들은 이걸 소독이라 불렀는데 어찌 보면 맞는 말이었다.

그렇게 소독된 미믹들은 블랙펄을 생산하게 된다.

하지만 블랙펄을 몇 번 만들고는 힘이 다해 죽는 경우가 있는지 대장간 한편에는 죽은 미믹들의 껍데기.

빈 상자들이 산처럼 쌓였고, 충분히 건조되면 땔감으로 쓰였다.

그제야 왜 미믹이 부족하다고 상단에서 구구절절 편지를 써서 보내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내가 미믹을 그렇게 좋아하는 건 아니지만.'

미믹으로 두 번이나 변한 사람으로서 이건 좀 아니다 싶다. 객관적으로 봐도 꽤 불쾌한 상황이었다.

미믹이 아니더라도 꽤 다양한 인종의 피를 섞지 않는가. 희망을 잃어버린 눈빛이 얼마나 서글플 수 있는지 보여주는 힘없는 눈빛과 앙칼진 비명엔 오래된 세월이 녹아 있었다.

솔직히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했다.

저들을 구하는 건.

내게는 아마존의 눈이 붙어 있었고, 통신까지 가능한 상태니까.

하지만 과연 그게 최선일까.

'조금만 더 참아보자.'

아직 알지 못하는 더 중요한 정보를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

'만약, 여기 말고도 주조소가 있다면 괜히 난리 피우는 건 낭패다.'

확실하게 알아내야 했다.

그래야 이 지옥이 단절될 테니까.

정보를 얻어내는 건 쉬웠다.

-그래서 뭐라고? 다시 얘기해봐.

내 시선은 소금기에 정신이 나가는 중인 한 미믹에게 향했다.

-왕이시여..... 무엇을 말씀하시나이까? 제가 보고 들은 것을 전부 말할 테니 읍소를 거절치 마시옵소서!

일명 소독 방에 있는 미믹.

놈들 중 하나가 날 향해 말을 걸었다. 돌연 날 보며 막내면 막내답게 까불지 말고 먹을 거나 토해내라길래 쥐어패 줬더니 이렇게 됐다.

아무튼 갑자기 날 왕으로 모시겠다며 자신들을 구해달라고 요청한 것.

미믹이 말을 할 수 있는 줄은 몰랐지만 다가온 구조 요청을 무시할 정도로 난 삭막한 사람이 아니었다.

-시끄럽고. 묻는 말에 대답해라. 저 챔피언 미믹들은 저기서 뭐 하는 거냐.

어쨌거나 놈은 이곳에서 몇 번이나 블랙펄을 토해내고 제정신을 유지하는 몇 안 되는 미믹.

얻을 건 얻어내야 했다.

-저들은 우르펄을 만듭니다. 왕이시여...

-우르펄?

-세상에서 제일 단단한 펄이지요. 저 잔악한 놈들은 우리에게 블랙펄을 만들어 재료로 삼고! 미믹의 영웅들에겐 우르펄을 만들게 합니다!

-그래서 우르펄이 뭔데.

-거기까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우르펄을 아주 소중히 여깁니다!

우르펄.

미믹의 설명이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내 직감이 경종을 울렸다.

'저게 아다만티움이랑 관계가 있을지도 모르겠어.'

알두바드는 아다만티움 무기를 선물해줄 수 있으리라 편지에 적었다.

군단장 후보가 어째서 다른 군단장에게 그런 이야기를 했을까.

둘 중 하나다.

'이미 가지고 있거나, 만들어낼 수 있거나. 둘 중 하나... 아니 둘 다일지도 모르지.'

아다만티움을 많이 지니고 있거나.

아니면 만들어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게 아니라도 뭔가 미심쩍은 것은 확실하다.

필요하니 저렇게 두었을 터.

의심해볼 여지는 있다.

-와, 왕이시여... 저, 저희는...

-알았으니까 저리 비켜 있어봐.

미믹.

미믹도 미믹 나름이라는 걸까.

소금에 절여져서 아무것도 못 하는 미믹이 있는가 하면, 얼추 정신을 유지하는 녀석들도 조금 있다.

이곳에 있는 미믹. 그들의 숫자가 수십이 넘어가니 잘만 이용하면 써먹을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녀석들을 한꺼번에 움직인다면...'

놈들의 눈을 돌리기엔 적합하다.

문제는 소금물에 절여져서 젓갈처럼 늘어져 있는 놈들이 문제인데...

-힐링.

화아악.

입 벌린 조개처럼 늘어져 있는 미믹 하나에게 힐링을 사용했다.

내 신성력은 그래도 꽤 많은 편이고 수십 번의 힐링을 써도 될 만큼의 신성을 보유한 자다.

그러니 전부 치료하면 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었으나...

-꿰에에에에에엑!!

-...

내 힐링을 받은 미믹이 새하얀 불꽃과 함께 불타 죽어버렸다.

"금화를 사랑한 미믹을 처치하였습니다."

"일정 경험치와 금화를 획득합니다."

생각해보니 그랬다.

신성력.

그것은 악마에게 독약과도 같은 것.

힐링으로는 악마를 치료하기는커녕, 도리어 죽일 수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니 수문장 놈들한테 마법은 잘 안 통해도 고행의 빛은 잘만 통했었지.

신성력.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더 뛰어난 자원일지도 모르겠다.

미믹과 신성력.

연구해볼 가치가 있다.

-붉은 성수를 마시게 해도 이 녀석들 치료 못 하겠지?

성수도 일종의 신성력 비슷한 게 들어있을 확률이 높다.

어쨌거나 성수니까.

그렇다면 역시.

-무기나 금화를 먹여야 하려나.

고민하던 그때.

"이놈들아, 일할 시간이다!"

바르바제의 일꾼들이 들이닥쳤다.

난 곧장 뚜껑을 열고 흐느적거렸다.

소금에 절여진 연기였다.

곧장 놈들이 내게로 다가왔다.

"어우! 겁나 무겁네! 어이! 이것 좀 같이 밀어줘! 이 자식 이거 겁나가 안 밀려! 왜 이렇게 무거운 거야?"

트롤의 망치질 소리가 연신 들려오는 가운데, 대장장이들이 날 끌고 가며 낑낑거렸다.

"거, 해 봤자 미믹이 무거우면 얼마나 무겁다고... 컥! 뭐야 이거! 왜 이렇게 무거워!"

"돌덩이라도 들었나..."

"소독했는데 뭐가 들어 있을 리 있나. 소독하면 다 토하잖아."

"그렇지... 근데 왜 이렇게 무거워?"

깡! 깡!

망치로 날 두드린 대장장이 하나가 혀를 내둘렀다.

"이거 인간들이 쓴다는 강철인가? 단단함이 엄청나군."

"그래봤자 인간들이 쓰는 금속이지. 어디 우리 미스릴만 할까. 허튼소리 그만하고 밀기나 해!"

"알았다고. 하나, 두울... 세엣!!"

끄으으응!!

"아오! 안 되는데?"

"망치로 쳐! 뭐가 걸렸나 보네."

놈들이 해머를 들어 올렸다.

웬만하면 가고 싶지 않아서 버티고 있었는데 어쩔 수 없었다.

"오, 이제 밀린다!"

"빨리, 빨리 해!"

"그래, 이거지! 크흐흐! 네가 버텨봤자 어쩔 건데! 이 미믹 놈아 네가 뭘 할 수 있냔 말이다! 푸흐흐!"

놈들은 비아냥거리며 날 끌고 갔는데, 그곳은 수많은 미믹들이 시름시름 앓고 있는 작업장이었다.

그렇다.

지옥석과 미스릴을 먹이고 블랙펄을 만들어내는 작업장.

놈들은 내게도 지옥석과 미스릴을 먹여 블랙펄을 만들어낼 생각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화이트도 함께 끌려온 상태.

"다음 생엔 미믹으로 태어나지 말고 인마! 가볍게 태어나라!"

내 입안에 지옥석과 미스릴이 가득 찬다. 제련되지 않은 광물의 맛은 생각보다 썩 좋지 않았다.

뱃속에 들어가 소화되지 않는 것들이 단단히 뭉치려는 기분이랄까.

기분이 좋지 않았다.

메스껍다고 해야 할까.

"소화되지 못할 것을 삼켰습니다."

"생명력이 -500 감소합니다."

생명이 500이나 소모되는 일.

어쩐지 블랙펄을 만든 미믹들이 죄다 맥을 못춘다 했다.

하지만 이걸로 끝이겠지.

대충 넘어갈 수 있을 듯싶다.

"용장이 발휘됩니다!"

-어?

"용의 장은 모든 걸 소화합니다."

"불완전하게 소화되었습니다!"

"스킬을 깨달았습니다!!"

"미스릴 외골격을 얻었습니다!"

「미스릴 외골격」 (Passive)

-미스릴을 소화한 미믹이 광물의 특징 중 일부를 몸으로 변화합니다.

*미믹 한정

"소화되지 않은 미스릴의 일부가 외골격으로 변화합니다."

"미스릴 외골격을 완성했습니다."

-....

나도 예상하지 못했다. 어쩌다 보니... 미스릴 미믹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내 변화는 대장간의 일꾼들에게도 놀라 나자빠질 일이었다.

"아, 알두바드님!!!!!!!!!!"

"크, 큰일 났습니다!! 아, 아니! 경사가 났습니다! 알두바드님!!"

그리고 잠시 뒤.

알두바드는 긴 수염을 쓰다듬으며 날 유심히 살펴보고 말했다.

"미믹 중에서도 걸출한 놈이 나오는 법이지. 설마 왕이 될 자질을 갖춘 놈이란 말인가?"

"와, 왕이 자질..."

"미믹 왕?"

알두바드는 날 쓰다듬었다.

"이놈에게 우르펄을 만들게 해봐라. 놈은 분명 만들어낼 것이다."

"우르펄이라면 이 녀석도!

놈은 날 쓰다듬으며 작은 목소리로 혼자 중얼거렸다.

"너야말로, 아다만티움을 만들어낼 수 있어 보이는구나. 내 염원에 한 발짝 더 가까이 다가가리."

아다만티움의 비밀.

그것은 역시 우르펄에 있었다.

그리고 어쩌면 난.

신이 내린 광물이라는 아다만티움.

어쩌면 내가 만들어낼 수 있을지 모를 일이었다.

아다만티움 [1]

176화.

스미스가 미스릴을 다루기 어려워했던 부분은 녹는점에 있었다.

웬만한 화력으로는 미스릴을 녹이고 불순물을 제거하기 힘들다는 게 지배적이었다. 안 그래도 어비스는 혹한의 날씨를 자랑하는 곳이다. 한두 해 얼어있던 땅이 아니라 그런지 용광로를 만들기도 쉽지 않고, 만든다 하더라도 금세 열기를 빼앗기고 식어버리기 일쑤라고 한다.

이토록 평범한 냉병기를 만들기도 어려운 것인데 미스릴은 오죽할까.

하지만 지옥석이 있다면 달랐다.

얼어붙은 땅덩어리인 어비스에서도 쉽게 녹았다.

예를 들어 말하자면 섭씨 만이천도에서 녹아야 할 광물이 지옥석을 곁들이면 삼천도에서도 충분히 녹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솔직히 광물의 용해점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아마도 그 비슷한 느낌이라고 생각한다.

미믹으로 변해 있다 하더라도 물건의 애정도를 통해 기억이나 성분 정도는 알 수 있어도 녹는점에 대해서까지 알지는 못하니까.

아무튼 나는 미믹으로서 대장간에서도 꽤 중요한 위치에 올라버렸다.

그리고 새로운 사실을 깨달았다.

'챔피언급부터는 대우가 다르군.'

일반 미믹들은 아오지에 끌려가는 노예처럼 제대로 된 식사는커녕 생활권을 보장받지 못한 채, 똥만 생산하는 실험체였다면 우르펄부터는 조금 격이 달랐다.

"3호의 상태는?"

"오늘 컨디션, 전반적으로 나쁘지 않습니다. 배를 고파하는 거 같아 미스릴 장비 몇 개를 넣어줬더니 좋아하는 거 같았고요."

"그렇군. 미믹들은 오래된 무기나 사연 있는 것들일수록 포만감을 채운다고 하니... 음, 조금 이르긴 하지만 우르펄 생산을 시도해볼까."

앞서 설명한 대로 우르펄을 만들기 위해서는 순도 높은 지옥석과 미스릴을 사용했다. 거기에 더해 구리와 청동을 넣고 적절한 비율이라 떠드는 티블이 내준 천사와 네피림의 피를 섞은 돌조각을 건넸다.

"악몽의 파편. 이게 들어가야 진짜 우르펄이라고 할 수 있지."

악몽의 파편. 어디선가 들어본 기억이 있는 이름이었다.

곰곰이 생각해본 결과, 내가 미믹의 보물 지도를 얻었을 때를 떠올렸다.

그때 웬 악마 숭배자를 처단하고 퀘스트로 얻었었는데 시스템은 말했다.

악몽의 파편.

악마 숭배자가 가지고 있는 악몽의 파편을 부수라고.

긴급 퀘스트를 내릴 만큼 중요한 부분이었지만, 보물 방에 대한 것 때문에 그동안 까맣게 잊고 있었다.

놈들은 자신만만해하며 내 입속에 온갖 것들을 조심스레 넣었다.

인제 와서 알게 된 사실이지만, 악몽의 파편은 악마 숭배자에게 큰 힘을 내어주며 악마로 만드는 힘이다.

그것이 사실은 네피림과 천사의 피로 만들어진다고 생각하니 뭔가 아이러니했다.

'아다만티움은... 본래 그런 식으로 만들어지는 건가.'

본래 광물이 만들어지는 조건은 까다롭다. 아마도 아다만티움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모든 생명이 죽고 묻혀, 오랜 세월 지각이 변동하며 만난 부분에서 극소량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싶었다.

네피림과 천사의 피. 지옥석과 미스릴과 같은 다른 광맥이 만나야만 발현되는 특수한 광물.

그게 아다만티움 아닐까.

이제까지의 정보들을 근거로 생각해봤을 때, 이게 제일 정답에 가까운 가설이 아닐까 싶다.

"확실히 정량이겠지?"

"예. 제가 세 번이나 확인했습니다."

누군가가 내 입속으로 뭔가를 집어넣는 행위가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그래봤자 상자를 열어 넣는 것이지만 그래도 좋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깨물어버릴 정도로.

하지만 참았다.

단번에 놈을 물어 죽일 수 있지만 긁어 부스럼을 만들지 않았다.

우르펄.

그것이 대체 무엇인지 나 또한 정확히 알고 싶었으니까.

악몽의 파편이란 존재가 내게 해를 입힐 수도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내 직감은 경종을 울리지 않았고 이전 때처럼 썩 괜찮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게는 스킬, 용장이 있으니까.

『용장 +1』 (Unique)

-용의 위장.

깔끔하게도 설명이 없다.

+1로 강화되며 변화한 상태다.

하지만 앞서 보여준 대로, 단순한 강철 미믹이었던 날 미스릴로 탈바꿈한 장본인이기도 했다.

스킬의 효과에 대해서 나와 있지 않지만 본래 용장은 부정적 효과를 감소시키고 입으로 섭취하는 영양분을 극대화 시켰다.

내가 빠르게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준 고마운 스킬이기도 했다.

그런 만큼 +1강이 된 지금은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이다.

악몽의 파편? 미스릴? 그것들이 다시 내 입으로 들어온대도 용장은 무엇이든 소화해버릴 것이다.

그뿐이랴. 보다 놀라운 힘으로 날 강하게 만들어줄 게 당연했다.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 사실은 달라지지 않을 거다.

"아니."

그때였다.

"성주님, 오셨습니까."

"리안."

바르바제의 성주.

알두바드가 직접 행차했다.

알두바드는 리안 곁의 조수들을 턱짓하여 물러가게 했다.

"리안. 바르바제가 낳은 충신아. 녀석은 우르펄을 만들 필요가 없다."

"예? 하지만..."

"우르펄은 결국 아다만티움을 양산하기 위한 것. 악몽에 자리 잡은 신의 변덕 속에 탄생하는 그것을 만들려 우리가 그토록 애썼지. 겨우 찾아낸 실마리는 우르펄 속의 작은 티끌. 먼지와도 같은 아다만티였다."

녀석의 말엔 놀라운 비밀이 담겨 있었다.

'우르펄 속에 아다만티움이 존재한다는 소리잖아!'

챔피언 미믹으로 만드는 우르펄.

그 속에는 티끌만큼 작지만 분명하게 아다만티움이 존재했다.

녀석들은 아다만티움을 제련하고 무기로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아다만티움 자체를 양산하고 있었던 것!

그것을 깨닫자마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지고한 천상마저도 작은 알갱이 수준의 아다만티움을 보상으로 줄 정도로 귀하게 여기는데, 아직 군단장도 되지 못한 척박한 지옥의 군단장 후보가 아다만티움을 양산한다니 말이나 되는 소리던가.

하지만 놈은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그 눈빛과 음성에 거짓은 없다.

자기들끼리 얘기하고 있는데 뭣 하러 거짓을 이야기할까.

'그래서...'

이제야 놈이 다른 군단장에게 아다만티움 무기를 선물하고 싶다고 쓴 이유와 근거를 알게 됐다.

그토록 귀한 아다만티움을 왜 선물하려 했는지.

답은 간단했다.

'양산할 수 있으니까.'

만들어낼 수 있었으니까.

비록 시간은 오래 걸릴지언정, 우르펄을 만들어낼 수 있는 챔피언 미믹만 있다면 가능하다.

얼마든지 가능한 얘기였다.

그 사실이 주는 파급력은 강력했다.

자연스레 살심이 생겨났다.

가만히 내버려 두면 끝없이 아다만티움을 양산해 지옥의 전력을 천상까지 끌어올릴 놈들이다.

반드시 저지해야 했다.

지옥의 전력 강화는 결국,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갈 것이니.

"그럼 3호는..."

"우르펄의 아다만티는 결국 가짜. 실존한다는 미믹의 시초를 잡을 수 있다면야 또 모를 일이지만 지금으로서는 이 녀석이 최선임을 리안, 그대 또한 모르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성주시여..."

"너 또한 알고 있지 않느냐. 그분들은 기다림을 싫어하신다. 내가 군단장이 되기 위해서는... 그럼으로 이 지긋지긋한 혹한의 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난 그분들의 눈에 들어야 함을 모르지 않을 터!"

의아한 말이다.

본래 이곳에 살지 않았던 것처럼 말하는 뉘앙스였다.

'조급해 보이는군.'

알두바드는 꽤 조급해 보였다.

하루빨리 성과를 내야 한다는 다급함의 기질이 묻어났다.

"이것을."

"..."

알두바드가 건넨 것.

그것은 검은 돌이었다.

나도 익히 잘 알고 있는 것.

'잉걸불이군.'

군단장을 처치하면 주어지는 그것.

엘더 잉걸불이었다.

"3호가 죽을지도 모릅니다. 챔피언급 미믹은 잉걸불을 버텨내지 못했습니다..."

"녀석은 미스릴로 되어있다. 버텨낼지 모르지. 만일, 죽는다 해도 이제는 상관없다."

"성주님. 그건 아니 될 말씀입니다. 안 그래도 미믹의 수가 급감하여 일반 미믹은 물론, 챔피언 미믹의 수 또한 조달이 극히 드물어졌습니다!"

"... 상관없다. 너도 알 것이다."

"설마..."

"이번에 실패한다면 넘기겠다. 그분께서는 흔쾌히 우리의 기술을 갖고, 바르바제를 승천시켜줄 터이니."

"... 어찌."

리안은 눈물을 흘렸다.

승천과 그분. 나로서는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대략적으로 알 수 있는 부분은 놈들이 꽤 많은 출혈을 예상하면서도 진행해야 할 상황이라는 것.

얼추 들어도 어쨌든 간 내게는 썩 좋은 내용이 아닌 것처럼 보였다.

'도망가야 하나.'

아니면 이제 슬슬 싸워야 하나.

말하는 투를 들어보면 바르바제의 제련 기술은 어딘가에 또 존재하지는 않아 보였다.

특히 아다만티움에 관한 것은 그들만이 가지고 있는 특권이고, 그걸 팔아 넘겨 이득을 볼 요량인 것 같다.

그들에게는 아니겠지만 내게는 나름 반가운 이야기다. 더 이상 이곳에 앉아 미믹임을 자처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했으니까.

이제 다른 거 걱정할 필요 없이.

내 존재가 발각당하는 것을 눈치 볼 필요 없이 날뛰면 그만이라는 것.

'슬슬 때가 됐나.'

이 정도면 오래 참았다.

오래 숨어 있었다.

벌써 사흘째.

혹시나 이곳 말고도 다른 곳에서도 아다만티움 무기의 제조가 가능할지도 몰라 최대한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선에서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바르바제의 아다만티움은 오직 이놈들이 유일하게 알고 있는 지식.

이젠 슬슬 움직일 때가 됐다.

'에어팟도 있으니까.'

안팎으로 불러들여 전투를 벌일 때가 왔다.

군단장 후보도 트리가드가 될 수 있을지 확인해볼 차례였다.

"어차피... 우리가 좋든 싫든. 이곳은 그분의 눈이 닿은 곳. 무엇이든 탐하는 그분이니 우린 둘 중 하나네."

"내주든지, 만들어내든지 말입니까."

알두바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 당장이라도 알두바드를 미믹 상태로 씹어먹어 보고 싶었다.

기습은 지금 모습이 제일이니까.

'흠.'

하지만 녀석의 근심 속에 드리운 '그분'이라는 말이 퍽 거슬렸다.

군단장 후보가 그분이라 말한 자.

그게 과연 누구일까.

'무엇이든 탐하는 그분.'

탐한다.

무엇이든 탐하는 자.

군단장 후보가 두려워하는 자.

'탐욕스러운...'

예전, 처음 브란스를 만났을 때 탐욕에 관해 이야기를 했었던 것 같은데 잘 기억나지 않는다.

묘하게 찜찜하다.

뭘까.

"이걸."

"알겠습니다.

내가 고민하는 사이, 놈들은 챔피언 미믹도 죽을 수 있다고 말한 잉걸불과 오르펄을 손에 들었다.

잉걸불과 미세한 아다만티움이 잠들어 있다는 오르펄. 그것과 지옥석, 미스릴과 구리. 악몽의 파편까지 내 상자 안에 넣었다.

내 상자 안에 넣는 리안의 팔이라도 물어뜯으며 싸움을 걸까 했다.

하지만 굳이 그러지 않았다.

내게는 용장이 있었다.

그리고 죽지 않으리란 사실도 이미 알고 있었다.

일반적인 미믹이었다면 죽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미스릴 외골격과 용장을 지닌 미믹이다.

앞서 용장 스킬로 미스릴 외골격을 얻은 것처럼 이번에는 또 아다만티움 외골격을 얻게 될지 모르지 않나.

이번에도 그러리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

입김마저 허공에서 얼어 버릴 혹한.

눈밭에 흩뿌려진 붉은 피마저 흐르다 얼어 버리는 이 지옥에서 관찰자는 거친 숨을 토해냈다.

"이곳의 눈은 진짜 눈이 아니군요."

"그럼 뭔가요?"

"재 비슷한 겁니다. 천장에서 잿가루가 떨어지고 있어요. 근데 기묘한 게 잿가루가 엄청난 냉기를 담고 있어서... 눈이나 다름없기는 합니다."

탁탁.

잿가루를 털어낸 관찰자가 뼈 시린 냉기에 옷깃을 여몄다.

"단추를 잠그셔야죠."

"손이 얼어서..."

"이리 와 보세요."

소서리스가 붉어진 손으로 관찰자의 옷깃 단추를 단단히 여몄다.

관찰자는 추위에 붉어진 소서리스의 손을 바라보다 감사 인사를 건네며 핫팩을 쥐여줬다.

곧 겨울이 올 것을 대비해 구비해둔 핫팩이었다.

물론, 어비스의 추위에서는 핫팩도 큰 효과를 발휘하진 못했지만 없는 것보다는 나았다.

"고마워요."

"아닙니다."

그들의 주변에는 꽤 많은 시체가 꽁꽁 얼어가고 있었다.

바바리안의 베이스캠프로 오는 도중에 만난 티블 행렬이었다.

사라라라락.

소서리스의 곁에 두둥실 떠다니던 스크롤이 그녀의 책 속으로 다시 돌아가며 덮였다.

헤일로를 얻게 된 뒤, 소서리스의 불가피한 단점으로 손꼽혔던 캐스팅 시간이 대폭 줄었다.

덕분에 그녀의 전투력이 크게 늘어났는데 이제는 단신으로 일개 중대 정도는 혼자 상대가 가능했다.

어비스의 티블 상단 행렬이라 한들, 그것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어비스의 악마들도, 살아가는 건 저희와 크게 다르지 않은가 보네요."

"괜찮으십니까?"

"예, 미스릴로 무장한 기사들은 조금 벅차긴 했지만요. 관찰자께서 약점을 찔러 주신 덕에 살았네요."

"아닙니다. 소서리스의 헤일로가 강력했기 때문이었죠. 어비스는 정말 위험한 곳이군요. 일개 상단이 이만한 무력을 가지고 있다니... 그건 그렇고 여기 있는 것들은 대개, 먹을 것들과 소금이군요. 거기에..."

꽤 많은 양의 광물들이 함께다.

지옥석과 귀하다는 미스릴을 비롯한 각종 처음 보는 광물들이 즐비했는데, 상단의 주인인 놈의 품을 뒤져보고는 계약서 등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때요?"

"대형 광산이 근처에 있나 봅니다. 그런 종류의 계약이군요."

"데몬시드님이 지금 바르바제에 침투했다고 들었어요. 그것과 관련이 있는 일일까요."

"이것만 가지고는 설명할 수 없죠. 하지만..."

관찰자는 쇠사슬에 묶인 상자 몇 개를 보고는 흠칫 놀랐다.

"왜 그러세요?"

"미믹이군요."

미믹, 광물.

티블이 가지고 있던 계약서.

장부들을 확인한 관찰자는 퍼즐 조각을 맞추듯 정보들을 취합하다 하나의 편지를 읽게 되었다.

[친애하는 아루칼에게]

-미믹이 없어 주조소는 힘들어지고 있어. 우리와 연이 닿은 그분께서는 이 사실을 모르지. 그저 아다만티의 양산 기술을 탐하실 뿐이니... 우리가 어쩌다 이런 나락까지 떨어지게 되었는지. 나의 친구 아루칼. 마지막으로 우리의 꿈을 실현해보지 않겠는가. 난 아직도 코흘리개 시절 했던 우리의 농담을 기억하네. 바르바제를 수호할 위대한 전설을 말일세.

"무슨 내용이에요?"

"아다만티움의 기술을 군단장에서 넘기기로 했다는 이야기군요. 아마 미믹이 주조의 핵심 재료였던 걸로 생각됩니다. 걸리는 게 많은 내용이지만... 우선 캠프로 향하는 게 좋아 보이는군요."

피 냄새가 짙다.

어비스의 짐승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관찰자 일행은 소서리스를 비롯한 랭커들이 모여있지만, 이곳은 다름 아닌 어비스.

눈보라 휘몰아치는 한가운데서 싸우기엔, 이곳의 환경에 익숙하지도 않을뿐더러 이점이 있는 것도 아니다.

"가시죠. 우선 몸을 좀 녹이고 나서 일을 진행하는 게 맞습니다."

일행들이 고개를 끄덕이고 캠프로 발길을 돌리려는 순간이었다.

콰아아앙-!!

돌연 어비스가 진동했다.

거대한 땅울림에 균형을 잡지 못하고 땅으로 처박힌 그때.

저 멀리, 눈보라 속을 뚫고 하늘로 오르는 무수히 많은 무언가가 있었다.

"상자?"

하나가 아니다.

수십, 수백에 가까운 상자들이 폭포수처럼 치솟아 올라 하늘에서 비처럼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잠깐만. 저거!!"

수백 개의 상자처럼 보였던 그것.

다시 보니 그것은.

"미믹이잖아?"

수백 개의 미믹들이었다.

아다만티움 [2]

177화.

"하루 이틀이면 결과가 나오겠지. 그럼 수고하시게."

"울티마의 영광을 위하여."

그렇게 알두바드는 떠났다.

모든 것을 리안에게 맡겨둔 채였다.

"3호. 네게는 미안하게 됐다. 하지만 하루면... 네가 바르바제의 영웅이 될지. 그냥 땔감이 될지 알 수 있겠지. 원망해라. 넌 그럴 자격이 있다."

중얼거린 리안은 내 안에 알두바드에게 건네받은 것들을 넣었다.

리안은 아마도 내가 죽을거라 생각하고 있었다.

정제된 지옥석과 미스릴 등등을 넣을 때, 그는 왜인지 울고 있었다.

"모든 것은 울티마를 위하여."

그가 느끼는 것이 힘없는 자들의 처연함이든, 그럼에도 힘을 바라고자 하는 죄책감이든 간에 내가 상관할 일은 아니었다.

내게는 그저, 악마일 뿐이었으니까.

놈들이 내게 어떤 것을 바라고, 무엇을 하려고 한들.

내 목적은 변함이 없다.

악마는 적이다.

리안은 자리를 떠났다.

대장간이 아무리 불철주야 일하는 곳이라지만 이들도 자는 시간은 존재했다.

밤인지 새벽인지 모를 시간.

대장간의 불길이 유난히 식어가는 시간이 오늘도 찾아왔다.

그 사이.

내 몸속에선 많은 변화가 몇 시간째 이어지고 있었다.

"소화 불능에 빠집니다!!"

"용장이 발휘됩니다!"

"용의 장으로 소화하지 못할 것은 없습니다!"

"미믹의 몸으로 지옥석을 소화합니다!"

"미믹의 몸으로 미스릴을 소화합니다!"

"미믹의 몸으로 우르펄을 소화합니다!"

"미믹의 몸으로 아다만티를 소화합니다!"

"미믹의 몸으로 악몽을 소화합니다!"

"미믹의 몸으로 잉걸불을 소화합니다!!"

"생명력이 -100 감소합니다!"

"생명력이 -240 감소합니다!"

"생명력이 -220 감소합니다!"

"생명력이 -520 감소합니다!"

"생명력이 -200 감소합니다!"

"생명력이 -230 감소합니다!!"

"위험!"

"생명력 감소로 쇠약에 빠집니다!"

무서울 정도로 빠르게 생명력이 감소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소화되지 못할 것들이 내 뱃속에 자리 잡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미믹의 고유 스킬인 애장을 쓴다면 빠르게 이 사태를 자리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난 쓰지 않았다.

빠져나가는 생명력.

그것은 채워 넣으면 될 일이니까.

"힐링을 시전합니다."

"힐링으로 생명력이 소폭 회복됩니다."

내가 지금 미믹으로 변해 있다고, 신성력이 존재하지 않는 건 아니다. 당연히 앞서 힐링으로 죽었던 미믹과는 다르게 난 신성력으로 하여금 회복을 받는다. 소화로 인해 생명력이 얼마나 빠져나간다 한들, 천에 가까운 신성력이 존재하는 한 내가 죽을 일은 없다고 보면 된다.

"힐링을 시전합니다!"

"힐링을 시전합니다!"

"힐링을 시전합니다!"

"힐링을 시전합니다!"

"힐링을 시전합니다!"

"힐링을 시전합니다!"

몇 시간 동안 연속적으로 이어진 생명력 감소는 내가 1,000이 넘어가는 신성의 절반을 사용하고 나서야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생명력이 -42 감소합니다!"

"생명력이 -21 감소합니다!"

"생명력이 -8 감소합니다!"

"생명력이 -3 감소합니다!"

그리고 이 기나긴 소화의 끝이 내게도 찾아왔다.

"소화에 실패합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안타깝게도 내 용장은 소화에 실패했다.

솔직히 아쉽다면 아쉬웠다.

하지만 그만큼 아다만티움이라는 광물 자체가 가진 힘이 강하다는 이야기이기도 했다.

하지만 실패에 집착하고 있을 필요는 없었다.

-퉤.

사람 주먹만 한 돌덩어리가 내 상자에서 튀어나왔다.

오묘한 빛을 자아내는 물결 무늬의 광석.

굳이 상태창이 뜨지 않아도, 난 이것의 이름을 잘 알고 있다.

-아다만티움.

고작 주먹만 한 크기.

하지만 난 알 수 있었다.

내가 계단을 오르며 받았던 아다만티움 조각은 손톱만 했고, 완전한 것을 얻어도 구슬만 한 정도인데 반해, 이것은 성인 남자의 주먹 정도 크기.

이만한 크기의 아다만티움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내가 유일할 거란 사실도 말이다.

-하, 하하. 이게 정말 돼?

웃음이 나와 미칠 것 같다.

전신에 뜨거운 피가 돌았다.

아다만티움을 만들어냈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내가 말이다!

기쁨에 피가 돈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일 것이었다.

모두가 잠들어 있는 대장간.

그곳에서 오직 나만이 커다랗게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하하하하!

나와 함께 있던 챔피언 미믹들이 들썩거렸고, 경비를 서다 졸고 있던 대장간의 트롤과 악마들이 화들짝 놀라 자세를 바로 했다.

그리고 그때.

껄끄러운 놈들이 찾아왔다.

"쉬지 않는 자가 당신에게 그대가 만든 것을 봉헌할 것을 요청합니다."

봉헌.

교회에서 말하는 헌금을 뜻한다.

쉽게 말하면 기부하라는 뜻.

쉬지 않는 자.

저번에 카탈린의 감전을 랭킹에서 제외한 놈이며, 내가 유력한 용의자로 근면함을 상징하는 대천사라 여기는 놈이었다.

물론 근면뿐만이 아니었다.

"수없이 베푼 자가 당신에게 그대가 만든 것을 봉헌할 것을 요청합니다."

"모아두는 자가 말하기를 그것은 인간이 지니기엔 너무도 위험한 물질이라고 합니다."

"끝끝내 견딘 자가 당신의 결정을 또 한 번 기다립니다."

오랜만에 꽤 많은 대천사들이 나타나 나의 봉헌을 기다렸다.

물론 내 대답은 정해져 있었다.

"좆까."

누구 좋으라고 이걸 기부한단 말인가. 개 같은 거 꾹꾹 참고 만들어낸 거다. 나름 내 목숨까지 걸어가며 만들어낸 거란 말이다. 그런데 힘들게 만들어놓으니까 이제 와서 자기들한테 바치라고? 욕이 안 나올 수가 없다.

"끝끝내 견딘 자가 당신의 결정을 존중합니다."

끝끝내 견딘 자.

아마 고행의 유리엘이겠지.

역시 유리엘이다.

내게 호감도 표시가 있었다면 유리엘이 가장 높았겠지.

"쉬지 않는 자가 당신에게 천벌을 내릴 것을 요청합니다!"

"가장 고결한 자가 동의하지 않습니다."

"수 없이 베푼 자가 침묵합니다."

"모아두는 자가 고개를 젓습니다."

"미소 짓는 자가 눈살을 찌푸립니다."

"쉬지 않는 자가 혀를 차며 본래의 자리로 돌아갑니다."

내게 천벌을 내리려던 쉬지 않는 자의 만행은 결국 종료되었다.

하지만 나는, 오늘 일을 절대로 잊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언젠가 반드시, 오늘의 일을 되갚아 줄 날이 올 것이다.

반드시.

난 아다만티움 광석을 손에 쥐었다.

이미 변신은 푼 상태.

"관찰자가 그랬지."

아다만티움의 놀라운 점.

그것은 진동에 강하다는 것.

진동에 강하다는 말은 즉, 온갖 마법이나 물리 공격에 강하다는 소리이기도 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헤일로."

헤일로를 만드는데 아다만티움이 들어가는 만큼, 아다만티움은 놀라울 정도로 높은 마법 친화율을 보인다.

지금 아무것도 하지 않았을 때는 은색에 가까운 무색이지만.

파지직.

카탈린의 벼락을 손으로 일으키자 금세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미스릴은 그저 마법을 튕겨내거나 막아내는 것이 그친다.

하지만 아다만티움은 흡수한다.

그리고.

"너, 넌 누구냐!!"

대장간의 경비들이 창을 들이밀었다. 놈들은 미스릴 갑옷으로 무장한 장군급에 속하는 미스릴 전사들.

"벌써 왔나. 다시 가라."

콰광!!

아다만티움은 흡수한 마법을 그대로 방출하기도 한다.

물론, 본래의 것보다 몇 배는 더 강력한 힘으로 말이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붉은 벼락이 사방으로 뻗어 대장간이 개박살 나는 꼴을 보고 나서야 나는 아다만티움의 힘을 실감했다.

"아다만티움과 천사의 깃털. 그리고 잉걸불로 만들어진 게 헤일로지.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되네."

헤일로가 왜 그렇게 강한지.

이제야 조금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아다만티움.

이 녀석 자체가 주는 강력함은 도를 넘어설 정도였다.

대천사들이 내가 아다만티움을 만들어내자마자 난리를 친 이유를 이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마법을 저항하는 미스릴 전사들도 아다만티움으로 방출한 벼락 한 번에 그냥 터져 죽어버렸다.

"근면 말고 왜 착하게 구나 했더니... 속내가 있으셨구만."

대천사들은 악마와의 전쟁을 위해서도 반드시 내가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다른 미믹으로 날 대체할 수 있겠지만 아마도 시간이 필요하겠지.

게다가 신성력을 가지고 있는 미믹은 아마도 내가 유일할 테니까.

"슬슬 몰려들기 시작하는군."

어떡할까.

전부 쓸어버릴까.

하지만 이곳은 지하다.

방금의 여파로 벌써부터 천장에 금이 가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제부터는 시간 싸움.

하지만 난 아직 이곳에서 아직 얻어야 할 것을 다 챙기지 못했다.

"화이트!!"

"기다리고 있었다! 데몬시드!!"

내가 부르자마자 화이트는 미믹의 변신을 풀고 인질로 붙잡혀 있던 러시아 동료들과 미믹의 사슬을 모조리 끊어버렸다.

장비는 많았다.

이곳은 대장간.

남아돌며 굴러다니는 게 전부 미스릴 제 장비였으니까.

흘러가는 상황은 내게 이로웠다.

트롤들은 당연하게도 내 상대가 되지 못했다.

휘리릭.

난 근처에 돌아다니는 미스릴 창을 손에 쥐었다.

창을 잡자마자 느껴졌다.

창 하나로 온 세상을 제패할 수 있으리라 생각됐던 그때의 기분을 다시금 느껴볼 수 있었다.

"창 애정도가 12% 상승합니다."

미믹으로 변신해 있을 때의 스킬.

애장은 무기를 보관한다.

그 상태 그대로, 숙성되면 숙성될수록 무기에 담긴 기억을 끄집어내 숙련된 기술을 내 것으로 만든다.

그럼 인간으로 변신했을 때는 그게 단순히 사라질까?

일회용 변신이었던 이전엔 그랬다.

하지만 지금은 일회용 변신이 아니다. 이전과는 다르다.

미믹으로 변신해 있을 때, 용장과 신성 스킬인 힐링이 사용됐던 것처럼 인간일 때도 미믹의 스킬을 일부 사용 가능하다.

'미스릴 외골격은 아니지만.'

미믹 전용 스킬은 쓰지 못하지만 아공간 스킬이나 다름없는 애장.

그리고 어빌리티의 숙련도는 인간일 때도 얼마든지 사용이 가능했다.

꽈앙-!

트롤들이 주변 대부분의 것들을 모조리 부수며 달려들었다.

난 놈들을 보며 떠올렸다.

자연스레 그동안 간질간질했던 창에 대한 의뭉스러움을 해결할 깨달음이 물밀듯 몰려들기 시작했다.

'창의 기본은 찌르기.'

찌르기가 시작이며, 그 끝도 찌르기로 끝나는 것이 바로 창이다.

하나 찌르기엔 시작과 끝을 지워둔 채로 행하는 게 옳다.

찌르기엔 끝이 없다.

오직 과정만 있을 뿐.

다른 것은 모두 부차적인 것.

그러한 깨달음이 머릿속을 휘젓는 것과 동시에 뻗어졌다.

-거어어어어...

트롤의 가슴이 뚫렸다.

트롤의 가슴을 꿰뚫고 놈의 뒤에 있던 울티마의 망치와 연결된 거대한 쇠사슬도 끊어버렸다.

"끄아아아악!"

"도, 도망쳐!"

쾅! 콰앙! 콰아아앙!!

거대 망치가 제어력을 잃고 구르다 어느 한 벽면을 뚫어내고 사라졌다.

"내 동료들을 죽인 벌이다!!"

한쪽에서는 화이트와 동료들이 대장간의 전사들을 도륙하고 있다.

빼앗은 장비로 무장한 러시아 네피림들은 장군급을 상대로도 제법 잘 싸워내고 있었다.

그리고 한쪽은 미믹 떼가 기회를 틈타 난동을 피우고 있었다.

-왕의 뒤를 따르라!!

나한테 처맞았던 미믹이 다른 이들을 이끌고 대장간에서 자유를 갈망하며 싸우고 있었다.

"저놈... 리덤이랬던가. 쓸만하네."

꽤 지능도 높은 거 같다.

애초에 미믹의 활용법을 알게 된 이상, 미믹을 내버려 두고 싶지는 않다.

악마라도 쓰임이 있고, 지능이 있다면 잘 써서 나쁠 게 없다.

'레아라면 미믹을 치료할 수도 있을 테니까.'

내 힐링과 붉은 성수로는 놈들을 치료할 수 없지만, 피 그 자체를 활성화시켜 치료하는 레아라면 아마 미믹의 생명력을 회복시킬 수단이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아다만티움 양산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물론 바르바제의 놈들보단 더 인도적인 차원에서 행해지겠지만 말이다.

"나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아직 놈들이 상황을 알기 전이다.

곧 바르바제의 주인.

알두바드가 나타날 터.

그 전에 나는 나대로 작금의 이득을 취해야 함이 옳다.

일단 다시 미믹으로 변신해 상자째로 쌓여 있는 대장간의 무구들을 그대로 입안에 털어 넣었다.

"창 보유량이 54로 늘어납니다."

"검 보유량이 29로 늘어납니다."

"채찍 보유량이 24로 늘어납니다."

"망치 보유량이 42로 늘어납니다."

"도끼 보유량이 12로 늘어납니다."

"각각의 애정도가 증가합니다!"

"아마존! 병력들 이끌고 당장 바르바제를 공략해!!"

-알겠습니다!

"강철은 서쪽을, 바바리안은 동쪽을 맡고 나머지 랭커, 그리고 관찰자가 오는 대로 사방을 포위해. 진격은 빠르면 빠를수록 좋다."

-알겠다!

오늘.

바르바제를 무너뜨린다.

그때였다.

드르르륵!

-속박된 자유를!! 갈망하라!! 우리는! 나무 상자의 생쥐가 아니다!!

"야, 야!! 거긴 안 돼!!"

미믹을 이끄는 선봉장.

리덤이 대장간 중심의 도가니와 연결된 파이프관을 물어뜯었다.

그리고 즉시 푸른 용암이 터졌다.

물론, 대장간도 함께 폭발했다.

바르바제의 거신병 [1]

178화.

손끝이 따가울 정도로 시린 추위.

눈 속에 숨어든 아마존이 에어팟을 들어 말했다.

-아마팀, 준비 완료.

-바바팀도 완료.

-강철팀도 준비됐다.

-거손도 완료.

이제 곧 그의 신호가 나타나는 순간 바르바제의 침공을 시작한다.

그를 위해 각각의 팀을 나누어 바르바제를 포위했다.

아마존의 달의 눈으로 데몬시드가 본 것을 대부분 보았다.

에어팟으로 들을 걸 전부 들었다.

상황의 전반적인 흐름을 알고 있으니 그가 따로 말하지 않아도 미리 대기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천지가 개벽할 진동과 함께 굉음이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화산 폭발이라도 일어난 듯 격한 진동에 대부분을 몸을 가누지 못하고 넘어졌다.

"뭐야!"

"무슨 일이야 젠장!"

"야, 야! 저거!"

바르바제엔 푸른 분수가 쏟아져 오고 있었다.

분수처럼 쏟아진 푸른 용암이 버섯모양처럼 흘러내리다가 추위에 그대로 굳어졌다. 그 사이로 미믹 떼들이 분수처럼 쏟아져 나와 바르바제를 재앙처럼 덮쳤다.

그리고 바로 지금이 타이밍이었다.

"덮쳐!"

"다 죽여!!"

"포탑부터 요격해!!"

"포탑, 오케이!"

쾅! 콰아앙!!

아마존의 화살이 포탑 하나를 박살 냄과 동시에, 반대쪽에서 거손의 거대한 손이 나타나 포탑을 덮쳤다.

"으럇차아아아!!"

콰아앙-!!

그와 동시에 바바리안이 헤일로를 띄워 거대화.

성문을 그대로 몸통 박치기로 날려버림과 동시에 강철의 강철 기사들이 파도처럼 밀고 들어갔다.

이전이었다면 이곳에서 제대로 활동하는 것도 힘들었던 강철 기사.

하지만 스미스의 미스릴 무기로 생성한 그들은 이제 달랐다.

푹, 퍽 푹!

"끄으윽."

바르바제의 장군급 미스릴 전사라 해도 미스릴제 무기로 만든 강철 기사들을 당해내기란 요원.

숫자 앞에 장사 없다는 옛말이 드디어 통용되기 시작했다.

그뿐이랴.

"으럇챠!!"

거대화한 바바리안이 거대화 특제 도끼를 꺼내 바닥을 한번 내려치자.

쿠아아아아앙-!!

지면이 갈라지고 폭음이 날뛰었다.

어마어마한 괴력의 여파에 바르바제의 전사들이 휩쓸린다.

"으하하하하하! 이거지! 이게 바로 야만 전사다 이거야!! 크하하하하!"

시원시원하게 적들을 무찌르는 바바리안을 선봉으로 앞세운 네피림 군대는 무적이나 다름없었다.

"죽여라!"

"악마는 몰! 살!"

"와아아아아아아-!!"

휘리리릭!

그때였다. 장군급 여러 명이 바바리안을 향해 갈고리를 던졌다.

미스릴제 갈고리는 바바리안의 힘으로도 잘 끊기지 않았고, 그들의 권능 때문에 힘으로 제압하기 쉽지 않았다.

"끄으으응!!"

대머리에 핏줄이 도드라질 때까지 놈들과 힘겨루기하던 그때.

피피핑!

아마존의 화살이 하늘에서 적들을 일차적으로 요격했고, 자세가 흐트러진 순간 강철 군주가 고속비행으로 순식간에 적들에게 은뢰가 담긴 검으로 베고 지나갔다.

그 순간을 놓치지 않은 바바리안이 힘으로 갈고리를 잡아당겨 놈들을 위로 쳐올리자 디딤발이 없는 허공에서 놈들은 허우적거리다 거손의 거대한 손에 의해 붙잡혀 땅으로 곤두박질쳤다.

쿠우우웅-!!

한순간에 죽어버린 미스릴 전사 다섯의 모습에 한국의 네피림들이 환호성을 지르며 바르바제를 침략했다.

"데몬시드를 위하여!!"

그중에는 헤일로를 지닌 스미스도 존재했다. 그는 들고 있는 해머로 광석을 쳐 날렸는데, 그럼 날아가는 도중에 검이나 창으로 변하고는 했다.

그뿐만이 아니다.

적들이 떨어뜨린 병장기를 해머로 때리기만 해도 금세 변화했다.

바르바제의 미스릴제 투구.

갑옷들을 모조리 한 번의 해머질로 검이나 창으로 바꿀 수 있는 힘.

그것이 바로 스미스가 지닌 헤일로였다.

물론 전투에 그렇게 특화된 기술은 아니지만, 무엇이든 변화시킬 힘은 광물의 특징적 용해점을 무시한다는 사기적인 능력이기에 대장장이에겐 무엇보다 필요한 힘이었다.

"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습니까!"

이제야 도착한 관찰자와 일행이 전투에 합류하고 상황을 전달받았다.

"협회장님은?"

"안에 계십니다!"

바르바제의 전투는 승기가 보인다.

적들의 기세가 아무리 드높다고 한들 곧 꺾여질 허장성세에 불과했다.

승기는 우리에게 있다.

미믹이 왜 이렇게 많이 돌아다니는지는 모르겠지만 상황 자체는 크게 나쁘지 않다.

하지만 한가지.

데몬시드가 보이지 않는 게 걸렸다.

"저곳에 계신다는 겁니까?"

쏘아진 분수 모양 그대로 굳어버린 푸른 용암. 그곳이 뻗어 나온 지하.

그곳에 갇혀 있다는 소리.

"예."

관찰자의 눈이 빛으로 물든다.

지하를 관찰하기 위함이다.

그의 레벨도 이제 Lv. 6이다.

관찰에 필요한 투시 스킬 정도는 이미 얻은 지 오래. 관찰자의 눈이 지하를 뚫고 그 아래에 존재하는 것들을 바라보기 시작했다.

흔들리고, 용암이 들끓어 오르며 폭발하는 그 사이.

'있다.'

아직도 지하에서는 폭발하는 용암들 사이에, 데몬시드가 있다.

물론, 혼자가 아니었다.

17군단 군단장 후보. 알두바드와 대치하며 지하에 존재하는 미스릴 전사들과 전투를 치르는 중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