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novel

16

132화.

시체로 만든 검.

그것을 깨닫자마자 시검과 관련된 이야기들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관찰자에게로부터 메시지]

-함께하는 파티가 자주 전멸하고 사라진 사례가 몇 있기는 하네요. 하지만 그런 일은 흔하니까요.

'그러고 보니 그는 외출이 잦은 편인데 한번 나갈 때마다 여자를 데려오고는 했거든요. 제 착각일지 모르겠지만... 그 여성분들이 다시 나가는 걸 보지는 못했습니다.'

파티의 전멸.

데려온 여인들의 실종.

그게 전부 여기 진열된 다양한 검들로 모두 설명이 되었다.

여기에 있는 다양하고 많은 검.

이것들이 전부 사람의 시체로 만들어진 검이란 뜻이었으니까.

내가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내자마자 강철 군주는 허리춤의 검을 뽑았다.

"사실인가."

"보이는 대로다."

그것과 동시에 시검도 검을 뽑았지만, 한발 늦은 뒤였다.

강철보다 늦었고, 빛고리 또한 주위에 원형의 고리를 만들어내 그를 향해 조준하고 있었다.

그렇게 되자 살기 가득한 눈의 시검은 이내 허탈하게 웃었다.

"숨기고 싶었습니다. 이렇게 될 게 뻔하니까요."

"무슨 소리지."

"보이는 대로 제 기프트는 시체를 검으로 만드는 능력입니다. 검마다 능력이 다르고 숫자가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전체적인 능력치도 올라가죠."

꽤 신기한 기프트다.

그런데도 아직 랭킹이 낮은 걸 보면 대기만성형인 기프트인거겠지.

포텐셜이 높은 기프트다.

물론, 사람의 시체를 이용해야 한다는 점이 단점이라면 단점이겠지만.

"그래서 여자들을 죽였나."

"아닙니다. 죽이지 않았어요. 전 그냥 악마들한테 당한 시체들을 이용했을 뿐입니다. 제가 미쳤다고 사람을 죽여 검으로 만들었겠습니까?"

"..."

시검의 목울대가 고저를 그렸다.

놈의 말은 이러했다.

이미 죽어 있는, 길거리에 널브러져 있는 시체들을 이용했을 뿐이다.

"처음 기프트를 얻었을 때는 저도 거부감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세상이 이 모양인데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요. 안 그렇습니까?"

그의 말은 일부 타당함이 있었다.

반은 진실, 반은 거짓으로 보였지만 안타깝게도 누굴 명확하게 죽였다는 증거는 우리에게 없었다.

그걸 밝혀낼 방법도 없고 말이다.

의심은 된다만 그것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는 없지 않은가.

단지 그것만으로 벌할 수 없었다.

적어도 나는.

그러면 안되는 사람이니까.

"정말인가?"

"죽이지 않았어요! 애초에 제가 죽였다는 증거도 없지 않습니까!"

정말 억울하다며 제 가슴을 두드리는 시검의 모습은 정말 결백해 보였다.

지금부터는 나도 더는 뭐라 말할 수 없다. 감정서로도 얻을 수 있는 진실은 이게 전부니까.

다른 검들을 감정해도 이와 비슷한 설명이 나올 게 뻔했다.

하지만.

"정말 결백하다면, 내가 사람 하나를 불러도 되겠나."

"누굴 말입니까."

"관찰자."

감정서로도 보이지 않는 부분.

이 집에서 육안으로만 확인하기 힘든 부분을 관찰자는 면밀하게 관찰하여 작은 단서도 찾아낼거다.

그는 항상 그런 식으로 위기를 모면했고 돌파구를 마련했으니까.

정말 오해했다면 정식으로 사과하고 협회에서 극진히 보상할 거다.

하지만 만일 그가 했던 말들이 전부 거짓이라면 반드시 제거해야 더 이상의 피해자가 나오지 않을 테니까.

"관찰자...?"

관찰자의 이름이 언급되자 시검의 얼굴이 잔뜩 찌푸려졌다.

랭킹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네피림이라면 관찰자의 이름을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다.

어떻게 보면 나 다음으로 굉장한 영향력을 뻗치고 있는 게 그니까.

내가 푸르푸르와의 격전에서 정신을 놓은 상태에서도 관찰자의 능력으로 그녀를 공격하고 막았기에 그나마 그 정도의 상처에 그친 것이라 바바리안과 주변인들이 말해주기도 했다.

아무튼.

지금 다양하게 바쁜 삶을 보내고 있는 관찰자지만 내 말 한마디면 기꺼이 이곳으로 날아와 사실조사를 해줄 것이다.

"당신도 결백하다면 상관없겠지."

하지만 시검은 말이 없었다.

돌연 주먹을 꽉 말아쥐고 고개를 숙이며 묵묵부답이었다.

척 봐도 뭔가 걸리는 게 있는 사람이 할법한 행동이었지만 아직은 확신할 수 없어 기다리고 있자.

갑자기 진열대에 걸린 검들이 모조리 덜덜 떨어대기 시작했다.

넓은 집에 존재하는 모든 검들이 동시에 덜덜 떨며 떨어지자 심상치 않음을 감지한 강철이 소리쳤다.

"너, 뭣 하는 거야! 움직이지 마!"

강철이 소리 지르는 순간. 시검이 삐딱하게 고개를 들며 씩 미소 지었다.

"이래서 여자들은 짜증 난다니까. 너무 시끄러워."

그때였다.

돌연 이곳에 있는 놈의 시검들 전부에서 날카로운 비명이 쩌렁쩌렁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아아아!!

고막을 강타하는 날카로운 음.

나와 일행 모두 갑작스레 터진 소음에 귓속에서 이명이 터져 괴로워하는 사이.

놈이 짓쳐들어왔다.

"죽어!"

시검의 실력은 랭킹 1위인 내가 보아도 꽤 뛰어난 검사였다.

밀폐된 공간에서 시검들의 비명으로 빈틈을 만들어냈고, 가장 상대하기 까다로워 보이는 빛고리를 먼저 공략했다.

지닌 신체 능력은 물론이고 상황판단과 검술, 그리고 전투 센스가 숱한 전장을 겪어온 사내로 보였다.

살인자가 된 것만 아니었다면 협회의 전력으로 삼고 싶을 정도로.

"큭!"

빛고리를 만들어내려 했으나 도중에 시검의 검과 함께 베어버렸다.

붉은 피가 허공에 흩뿌려졌다.

"이런!"

강철이 기수식을 취했으나 시검이 더 빨랐다.

그는 마치 악귀에 빙의하기라도 한 듯 눈은 붉게 충혈되고 주위로 검은 기류가 떠다녔는데, 몸놀림이나 표정이 흉신악살과 다를 바 없었다.

캉! 카앙! 콰창-!

폭풍처럼 쇄도하는 시검의 검격에 강철은 귀에서 피가 흐르면서도 대항했으나 막아내는 데 급급했다.

아마도 여기 있는 다양한 시검들 하나하나가 그의 신체 능력을 증폭시키는 것만 같았다. 아직도 진열된 검들의 떨림은 멈추지 않고 공명하는 것 같은 모양새였으니 말이다.

능력적으로만 본다면 얼마나 더 강해질지 모를 힘이었다.

시검이란 기프트엔 그만한 잠재력을 가지고 있었다.

카차차차차차차창-!

한 호흡에 수십 연격을 쏟아내며 싸우는 강철 군주와 시검의 전투를 관망하고만 있었으나 슬슬 보고만 있으면 안 될 지경까지 흘러갔다.

'밀리는군.'

커뮤니티에 레벨 랭킹은 랭킹일 뿐이라는 말이 가끔 언급된다.

레벨이 전투력의 전부가 아니라는 뜻인데 지금 보니 그 말이 허울뿐인 말은 아닌 듯했다. 강철 군주는 확실히 레벨 랭킹은 높지만 콜로세움의 랭킹은 그렇게까지 높지 않다.

아마 기프트의 차이 때문일 텐데 그건 여기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하하! 랭커라는 강철 군주의 실력이 고작 이 정도인가?! 랭킹 3위가 이 모양이면 데몬시드 실력도 얼마나 뻥튀기됐는지 모르겠는데!"

"닥, 쳐!"

강철의 검은 점점 이가 빠지지만 왜인지 시검의 검은 더욱 강해졌다.

아마도 기프트의 차이일 것이다.

처음과 비교해서, 시검의 모습은 더욱 귀신처럼 변해가고 있었고 등 뒤에는 악귀의 음영이 더욱 짙어지고 있었다.

그에반해 강철군주는 기프트 자체가 일신의 무력을 강화하는 용도가 아니다 보니 밀릴 수밖에 없었다.

더는 내버려 두면 위험하다.

콰앙-!!

검격을 받아내던 강철군주가 시검의 발차기에 맞아 벽에 처박혔다.

내가 나서려는 찰나.

"다가오지 마! 놈은, 내가 처리한다."

강철이 손바닥을 펼치며 날 저지했다.

"고집부리지 마라. 죽을 수도 있다."

"고집이 아니야."

후드득.

무너지는 벽의 잔해들과 함께.

입가의 피를 닦아낸 강철 군주가 다시금 검을 맞잡았다.

"난 강철 군주다. 하나의 검에는 하나의 소명이 담겨있다."

허나.

"시검. 네 검에는 그게 없다."

강철의 검이 낮게 진동한다.

맞잡은 그녀의 검에 빛이 어린다.

"군주의 맹세."

낮게 읊조리자 그녀의 곁으로 강철기사가 나타났다.

함께 싸우는가 했지만, 아니었다.

강철 기사단은 신하 된 도리를 다하겠다는 듯 그녀의 곁에 섰다.

이내 그들의 생명과도 검을 바로 세우자 잠시 뒤, 가루처럼 무너져내려 강철에게로 흘러갔다.

강철군주의 모습은 가벼운 경갑을 입은 상태에서 점점 제대로된 군주의 차림으로 갖춰지기 시작했다.

전신 갑옷으로 무장되며 등 뒤로는 은빛의 망토가 나타나자 진정한 군주의 모습으로 탈바꿈했다.

기사들의 검으로 이루어진 갑옷.

그것이 주는 존재감은 일대를 짓누를 정도의 위압감을 지니고 있었다.

"악을 처단한다."

그 직후.

전투는 어렵지 않게 흘러갔다.

콰앙-!!

군주의 맹세를 발동한 강철군주는 시검에게 밀리지 않았다.

힘, 속도와 더불어 궁지에 몰린 시검이 잡다한 마법을 사용해도 모조리 돌파하여 놈의 검을 부러뜨리고 어깨에 검을 찔러 넣었다.

"카아아아악!!"

악다구니를 써대는 시검의 모습을 보고 나서야 나 또한 안심했다.

'군주의 맹세.'

이번에 5레벨이 되며 얻은 스킬이었을까. 기사들을 뒤로 물리고 군주가 나서서 전투력을 끌어 올려 싸우는 종류의 스킬인 듯했다.

군단의 무력과 함께, 일신의 힘도 강화된 강철군주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의 랭커가 확실했다.

"씨발 새끼들아! 치워! 치우라고! 내가 뭐가 나빠! 쓸모도 없는 기생충 같은 머글들을 죽인 게 뭐가 나쁘냐고! 그런 무쓸모들을 검으로 만들어서 악마를 죽여주는데, 내가 왜 나빠! 뭐가 나쁜 거냐고!!"

강철군주는 놈의 어깨에 꽂힌 검에 힘을 빼지 않았다.

벽을 관통해서 그런지 시검은 꼼짝도 하지 못한 채, 피 튀기며 소리만 질러대며 변명했다.

"어차피 기생충처럼 여기저기 기생하며 들러붙는 버러지 같은 것들이야! 그런 것들 수십보단, 날 살려두는 게 사회에 도움이 된다고!"

악마의 토벌만을 생각한다면, 놈의 말이 맞을지도 몰랐다.

싸우는 걸 두려워하는 사람들 수십이 모여봤자, 랭커 하나만 못하니까.

시검이 보여준 능력은 1,000위 대의 랭커라고 하기엔 월등히 강했다.

강철도 조금 애먹을 만큼.

"맞지 않아? 그렇지 않냐고!"

"그럴지도 모르지."

나 또한 시체를 제물로 사용해 내 이득을 취한다는 점에선 시검과 그다지 차이가 없다. 나로서는 그를 벌할 이유도, 그를 비난할 자격도 없다.

그러나 나와 그가 다른 한 가지는 무의미한, 죄 없는 자를 살해하냐 하지 않느냐라는 차이일 뿐일 거다.

난 데몬시드를 얻고 난 후, 단 한 번도 무의미한 살육을 한 적이 없다.

물론 내 것을 탐하거나 날 죽이려 하는 자들에 관해서는 미련 없이 단칼에 베어 죽였다.

하지만 능력의 성취를 올리기 위해 죄 없는 사람을 일부러 죽인 적은 하늘에 맹세코 단 한 번도 없다.

강한 힘에는 책임이 따른다.

그리고 네피림 대부분은 그 힘을 악마를 죽이기 위해 사용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본래 영위하던 삶과 사회로 돌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내 가족과 동료들이 평안하게 살 수 있는 날을 희망하며, 오직 그것을 위하여 힘을 쓰고 더욱 강해지기 위해 노력한다.

우리가 바라는 힘은 평안을 비롯한 것이지 살인을 위한 게 아니니까.

그게 나와 그가 다른 점이다.

그리고 그 다른 점으로 하여금 나는 살고, 그는 죽을 것이다. 우리가 꿈꾸는 평화로운 세상에 무분별한 살인자가 있을 자리는 도저히 없을 테니까.

*

랭킹 1,462위 시검은 그날 이후, 세상에서 사라졌다.

그가 죽기 전에 실토한 이야기로는 시검은 여성들과 관계를 맺고 난 이후 교살하였다고 한다.

목을 졸라 죽이며 눈을 마주치고 죽음과 동시에 시검으로 만들어야 검의 특성이 좋아진다고 했던가.

그렇게 죽인 숫자가 못해도 백 명은 넘을 거라며 관찰자는 추측했다.

아무튼 난 가장 최근에 만든 시검을 들고 백동남을 찾아갔다.

아마도 그의 딸이라 생각되는 푸른기가 가미된 검을 들고서 말이다.

"아, 아아... 이게."

"아마, 그럴 겁니다."

간단하게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시검이란 자가 있었다.

그는 사람의 시체를 검으로 만드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아마도 당신의 딸도 그로 인해 검으로 만들어져버린 것 같다.

백동남은 눈물을 흘렸다.

날카로운 검이 되어버린 제 딸의 도신을 쓸어내며 눈물을 감추지 못했다.

"차갑네. 추웠겠지."

날씨는 뙤약볕이었으나 칼이란 게 으레 그렇듯 차가웠다.

금속이었으니까.

하지만 괜히 쓸데없는 소릴 하지는 않았다.

한참이나 검을 바라보던 백동남은 이내 사람 좋은 웃음을 보였다.

억지로 웃는 모양새였다.

그도 아니면 습관이라 그랬을까.

나는 그 웃음이 괜히 서글펐다.

"답례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구먼. 정말 에어컨이면 되겠나?"

"예, 그거면 됩니다."

이전이면 사기꾼이라고 매도했겠으나 그의 사정을 안다.

장사하며 많은 이들을 먹여 살리고 있는 그는 웬만한 랭커보다 더 대한민국을 위하는 사람일지도 모른다.

애초에 내가 이곳에 왔던 건 에어컨 때문이었으니까.

그거만 받으면 충분했다.

백동남은 사기는 칠지언정, 약속을 저버리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에어컨 중 최신형 기기를 건넸고 난 만족하며 받았다.

내가 떠나기 전, 백동남은 말했다.

"언제든 찾아오시게. 필요한 게 있다면 찾아주고, 다른 곳보다 싸게 팔아줄 테니. 자네라면 언제나 30% 할인이니까 말이야."

그래도 딸을 찾아줬는데 30%밖에 할인 해주지 않냐고 하려다 참았다.

그는 먹여 살릴 사람이 많았으니까.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그런 일이 있었음에도 여기에 살거냐는 물음이기도 했다.

백동남은 많은 말을 하지 않았다.

"산 사람은 살아야지."

난 무어라 말하려다 고개만 끄덕이고 불별도로 돌아갔다.

*

몇달 후.

"화성님! 전기 안 들어와요!"

"발전기가 고장 났나 본데."

이번엔 발전기가 고장이었다.

하지만 새로 살 필요는 없었고, 커뮤니티에 물어가며 관련 지식을 얻어보니 부품만 교체해주면 고칠 수 있는 수준이었다.

하여 거래소에서 부품을 뒤지던 중.

난 익숙한 닉네임의 판매자가 올려둔 하나의 물건을 보곤 그만 헛웃음을 흘렸다.

[전설급 명검 서리한]

3,000금

판매자-폿팡퐁커리Lv.6

그것은 내가 그에게 넘겨준 푸른기가 가미된 깔끔한 시검이었다.

"그래, 산 사람은 살아야지."

백동남이 했던 말을 그대로 떠올리며 장사꾼의 비애에 쓰게 웃었다.

류설연 [1]

133화.

어제와 다름없는 평화로운 날.

아직도 바람은 뜨겁고, 햇살은 강렬하지만 그런데도 마음만큼은 편하다는 사실이 거친 환경에서도 미소 지을 수 있는 사실이었다.

제대로 된 불볕더위는 악마가 나타난 세상에서도 '어쩌라고'라고 말하는 듯 기승을 부렸지만 난 괜찮았다.

"춥다 추워."

반소매를 입고 있음에도 으슬으슬 떨리는 추위.

실외기가 펑펑 돌아가기에 가질 수 있는 에어컨의 찬바람이 더위로 불타는 내 몸을 식혔기 때문이다.

파워 냉방으로 돌려놓고 먹는 라면은 무엇으로도 따라올 수 없는 법.

매콤하고 뜨끈한 라면 한 그릇을 가볍게 해치우고 배를 두드리자 어김없이 식곤증이 몰려왔다.

시원한 집에서 배부르게 밥 먹고 낮잠 누는 삶.

이게 행복이지 무엇일까.

"두 달째인가."

이런 삶을 보내는지 두 달이 지나고 있었다. 엄밀히 말하면 군단장 레이드를 완료한 지 두 달이 지났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그렇다.

대한민국은 안전하다.

군단장 레이드를 성황리에 마친 이후, 대한민국은 흔하게 치렀던 카오스 게이트도 나타나지 않았다.

백만금을 채웠던 나만의 상점도 그 이후로는 잡템들만 가득한 상태.

지옥 광산의 땅따먹기도 어느 정도 소강상태에 접어들어 대한민국은 더없는 평화로움을 보냈다.

트라움 아파트 단지는 얼마 전에 완전한 복구 작업을 마쳤고, 많은 랭커들이 그곳에 입주했다.

안 그래도 땅값 비쌌던 서초동은 그야말로 인산인해로 악마가 나타나기 이전의 도시처럼 변해갔다.

길거리엔 사람들이 걸어 다니며, 갖가지 노점상들이 즐비했다.

물론 그중 한 상가는 요리점을 운영했는데, 그곳에는 점심이든 저녁이든 항상 사람들이 줄지어 있었다.

"감사합니다~ 또 오세요!"

이제는 어엿한 식당 사장님이 된 레아였다.

계산대 앞에서 가만히 앉아 돈만 받는 레아를 보니, 시간이 흐르긴 많이 흘렀다는 것을 깨닫는다.

정부와 협회의 도움으로 100평 이상 되는 식당에 직원들을 고용해 운영하는 'rearstaurant'이다.

레아스토랑.

음식은 기본적인 스튜와 빵이 전부.

하지만 그날그날 바뀌는 재료에 음식 맛이 하루도 같은 날이 없다.

물론, 뉘우치는 대장간에서 하던 때와는 180도 다른 음식 맛이다.

"크으! 오늘도 맛있어!"

"옛날이었으면 고춧가루 한 포대를 쏟아부었을 텐데."

"사람은 성장하는 법이지."

"사장님은 이제 요리 안 하시잖아."

"가끔 하신다던데?"

경력직 요리사들을 대거 모집해 운영하는 터라 음식 맛이 좋다.

물론, 레아 자체의 음식 솜씨도 훌륭해졌다. 꾸준하게 음식을 못 할 수는 없는 법이니 말이다.

아무튼 이렇게 시장 경제가 돌아가고, 네피림들은 점차 강해졌다.

"근데 왜... 카오스 게이트 안 뜨지? 진짜 이상하네."

정부는 물론, 관찰자와 협회의 고위직인 이들에게도 이러한 내용을 중심으로 의논해본 적이 있었다.

이런저런 몇 가지 가설이 나왔지만 가장 유력한 것이.

"쫄았을 듯?"

바바리안이 말해서 그렇지 대부분의 네피림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균열이라는 게, 악마들이 비집고 들어오니까 생기는 거지 침략할 의지 자체가 없으면 카오스 게이트는 애초에 성립되지 않는다.

그런고로, 군단장 레이드 이후 발길이 끊겨버린 카오스 게이트로 보면.

"군단장도 죽였는데 지들이 뭐라고 한국을 노리겠냐 이거지."

카오스 게이트는 차원석 덕분에 군단장 자체가 나서지 못한다.

그런데 군단장을 죽인 나라에 침입할 이유가 뭐가 있을까.

개죽음일 뿐인데.

"덕분에 북한으로 자꾸 나가게 되네요. 다시 갈 일이 있을까 했는데."

아마존이 한숨을 쉬듯 말했다.

랭커들은 더 강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편인데, 한국은 기존의 네피림들 양성으로 위해 내버려 두고 아직도 미지의 영역인 북한으로 자주 나간다.

북한까지는 포탈 스크롤도 좌표가 고정되어 왔다 갔다 하기 쉽다.

중립 차원석 복구라는 이유도 있으니 순위가 높은 랭커들은 웬만하면 북한으로 밀어 넣는 추세다.

그곳은 아직 악마들도 많고, 히든 던전을 찾아볼 여지도 높았으니까.

어쩌다 보니 대한민국은 다른 나라 중에서도 꽤 평화로운 곳이 되었고 이젠 악마가 있는 곳을 직접 찾아가 사냥하는 지경이 되었다는 것이다.

물론 대한민국이 잠잠한 거지, 다른 나라도 그렇다는 건 아니다.

"정부에서 건넨 자료에 따르면 31개의 국가가 아직 존속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저번엔 한 쉰 개의 국가 정도는 살아 있었던 거 같은데, 이제는 벌써 서른 개 가까이 줄어버렸다.

"인도가 패배했다더군요."

"인도는 중국 다음으로 인구수가 많던 곳 아닌가?"

"인구수로만 따지면 인도가 더 많았을 거예요."

그 인도가 이제는 군단장이 지배한 땅이 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정보는 그게 다인가."

"살아남은 인도인의 말에 따르면 군단장의 분신이 나타났다고 해요."

카오스 게이트를 치루기 전.

군단장의 분신이 나타나 인도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어떤 식으로 나타났는지까지는 알 수 없었지만, 우리나라도 횡성에서 그런 일이 있었으니 흡사한 조건이 아니었을까 의심해본다.

"그런 와중에 카오스 게이트까지 연계되니까 전력은 분산됐고, 챔피언급 악마가 셋이나 나타났는데 그들은 죽여도 죽여도 부활했다고 해요."

한 달여 간의 치열한 공성전을 치렀지만 인도는 패배했다고 한다.

"그 사람은 어떻게 그걸 다 아는 거지? 카오스 게이트에서 패배했다면 빠져나오지 못했을 텐데."

"그건 아니라던데."

바바리안이 내 질문에 답했다.

"차원석이 모조리 부서지면 포탈이 열린다더군. 도망가라는 것처럼."

하지만 군단장이 도래한 땅에서 도망치는 건 힘든 일이라고 한다.

"겨우 지옥 광산으로 피신한 네피림이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아서 목숨을 건졌다고 해요."

"그게 되나."

"예, 지옥 광산을 이용하면 타국의 사람도 차원석의 영향을 받지 않고 편입될 수 있거든요."

그건 또 처음 듣는 소리였다.

"그게 가능해서... 가망이 없는 네피림들을 대거 영입하는 것도 가능하다고는 하더라고요."

이른바 대 영입의 시대가 열렸다.

중립지역, 그리고 군단장이 지배한 악마의 땅을 제외하고는 국가 간의 이동은 차원석으로 막혀 있다.

솔직히 인간은 차원석의 영향을 받지 않지만, 어느 미친놈이 머나먼 거리를 직접 이동하고자 하겠는가.

물론 기프트의 특성에 따라 가능한 자들도 있겠지만 굳이 그런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다.

자신이 나고 자란 땅을 버리고 도망칠 이유는 전쟁으로 박살이 나지 않고서야 하지 않을 짓이니까.

"그래서, 한국은 어떻지?"

"몇몇 이민자가 있기는 합니다만..."

"문제가 있나."

"아닙니다. 그냥 언제 다시 건너갈지 모를 이들이니까요."

무슨 말인고 하니.

염탐을 위해서 일부러 이민해온 사람일 확률이 높다는 뜻이었다.

"그렇군."

따로 무슨 문제를 일으키려고 건너왔다기보다는 그냥 정보 획득을 위해 온 경향이 큰 것으로 보인다는 뜻.

위성으로 각국끼리 정보를 전달하고는 있지만, 그건 제한적이기도 하고 감추고 있는 것들도 많을 테니까.

'살만해지니까, 다들 난리군.'

확실히 이전과는 다른 방향이다.

"미국이나 유럽 쪽 국가들의 헤일로 관련해서는 들은 바 없나."

"예. 그건 역시, 극비로 통하는 부분이라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

두 달 전.

미국과 프랑스, 독일은 합심하여 하나의 군단장을 레이드 했다.

우리처럼 꽤 많은 희생을 치렀고 거의 전멸 직전까지 갔으나 가까스로 군단장을 꺾었다고 한다.

"어디 군단이랬지."

"67군단의 암두시아스라는 군단장이었습니다."

67군단 군단장 암두시아스.

일각공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는 자로 이마에 돋아난 하나의 뿔이 특징적인 악마라고 한다.

"미국과 한국 정부 쪽에서 거래를 한 결과 대강의 정보를 건네받았는데, 수식언은 달과 춤추는 암두시아스라고 하더군요."

"달과 춤추는?"

"예. 달과 관련된 권능을 부렸는데 악기를 연주해서 웬만한 네피림들은 군단장의 꼭두각시 인형처럼 변해 춤을 춰댔다고 합니다."

"끔찍한 능력이군."

"예, 따라서 많은 네피림들이 사망했고, 몇 번의 시행착오 끝에 자체적으로 고막을 훼손하고 싸워 끝내 승리했다고 합니다."

"고막을..."

듣기만 해도 끔찍한 전투였다.

스스로 고막을 훼손한 전사들은 아무 소리도 듣지 못하고, 서로의 눈과 행동만으로 어렵게 소통하며 싸웠다는 게 아니겠는가.

듣기만 했는데도 얼마나 처절한 싸움이었을지 예상할 수 있었다.

"저희와는 다르게, 미국과 독일, 영국이 한 사람씩 헤일로를 차지했다고 합니다. 독일은 랭커들이 꽤 많이 죽었더랬죠."

그리곤 은근한 귓속말로 말했다.

"초 정상의 랭커들도 말입니다.

초 정상. 독일의 1, 2, 3위들을 말하는 것이었다.

대거 랭킹 교체가 이루어진 참사.

그나마 다행이라면 독일에서 한 명이 헤일로를 얻었다는 거겠지.

"이야기는 그게 다인가?"

"본격적인 이야기는 지금부텁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려고 날 여기까지 부르지는 않았을 거다.

여긴 정부의 배려로 서초동에 있는 협회 본부 건물이었으니까.

관찰자는 웬만해서는 날 소환하지 않는다.

용건이 있거나 알려줄 사항이 있으면 웬만하면 불별도로 직접 찾아오고 마땅치 않으면 쪽지로 대신한다.

그런데 이번만큼은 날 불렀다.

협회의 본부가 만들어진 날이라 그런 것도 있었지만, 그보다는 중요한 일을 협회 간부들과 함께 알려주기 위함인 게 컸다.

"러시아에서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도움?"

"예. 군단장 레이드입니다."

거의 두 달여간의 휴가에 종지부가 찍히는 기분이었다.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는다기보다는 올 게 왔다는 느낌.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위치는."

"우크라이나입니다."

"음..."

"우크라이나? 거기 패배했었나?"

바바리안의 말에 관찰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우크라이나는 항거했으나 카오스 게이트로 무너져내린 땅이 되었다.

"우크라이나 옆에 벨라루스도 있지 않나요?"

"거기도 마찬가집니다."

"그렇군요."

이미 악마의 땅으로 변한 지 오래라는 말이었다.

"참여국은?"

"대한민국. 그리고 러시아와 독일입니다."

"중국은?"

"그쪽은 그쪽대로 군단장 레이드를 따로 진행한다고 하더군요."

"그런가."

미룡과 재회하게 되었나 싶었는데 조금 아쉬웠다.

가면소드가 전사한 뒤, 미룡과 난 한차례도 레이드 채널에서 대화하지 않았다.

한번 하게 되면 가면소드와의 채팅 로그가 언젠가는 묻히게 될 테니까.

따로 그렇게 하자고 말을 맞춘 건 아니다. 하지만 아직도 채팅하지 않는 걸 보면 그녀도 나와 같은 생각이라는 뜻이겠지.

그건 그렇고.

"러시아의 요청이라."

거절할 이유는 없다.

러시아에 빚이 있지는 않지만, 가면소드에게는 나름의 빚이 있다.

굳이 한국을 짚어 요청했다면 가주는 것이 도리이다.

"근데, 우크라이나까지 어느 세월에 가지? 꽤 먼데."

"그래서 앞서, 광산에 관한 이야기를 먼저 해드린 겁니다."

"아."

그 말인즉슨.

"러시아의 지옥 광산을 통해서 러시아 땅으로 이동 후, 우크라이나로 간다는 말인가?"

"맞습니다."

내가 놀라워하자 바바리안이 참다못해 질문했다.

"그게 가능해?"

"러시아의 광산을 입구로 향하면 국적이 달라도 포탈 스크롤을 이용할 수 있다고 하더군요. 알다시피, 특이하게 광산은 포탈의 이용이 허용되는 곳이니까요. 그래서 저희는 러시아의 땅. 모스크바로 이동해 최종적으로 우크라이나에 도달할 겁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광산으로 가야겠군."

"예."

광산을 통해 러시아로.

후에 러시아를 통해 우크라이나로.

"시간은 언제지?"

"2주 뒤입니다."

준비 기간으로는 길지도 짧지도 않아 딱 적당했다.

"독일이라."

독일의 랭킹 1위는 어떤 사람일까.

또, 새롭게 등극한 러시아의 1위는 누구일지 벌써 기대됐다.

하지만 모두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 건 아니었다.

"말해라. 강철."

회의에 자리한 협회의 간부진.

그중에서도 은발의 강철 군주가 거수하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난, 이번 레이드에서 빠지겠다."

그녀의 발언은 랭커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류설연 [2]

134화.

쾅!

제일 먼저 입을 연 것은 다름아닌 바바리안이었다.

"왜지?"

그의 표정에는 놀라움과 더불어 약간의 분노 또한 있었다.

강철군주를 노려보는 바바리안의 눈빛과 목소리로 보건데, 그가 느끼는 감정은 짙은 배신감이었다.

난 그의 감정을 이해했다.

일반적인 네피림들이라면 모를까 우리들은 랭커다. 그냥 랭커도 아니고 랭킹 상단을 꿰찬 아포칼립스 초기 때부터 이어온 랭커란 뜻이다.

우린 서로를 경쟁자로 삼아 경쟁했고, 또는 함께 싸우는 전우로서 서로를 의식하며 싸워왔다.

싸운다면 당연히 함께 싸워야 하는 게 당연한 사람들이다.

우린 랭커니까.

줄곧 함께 생사를 넘어왔으니까.

동료니까.

그렇기에 바바리안이 느끼는 배신감은 지극히 당연했다.

레이드에 빠지겠다는 소리는 더이상 함께 싸우지 않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현재에 안주하겠다는 소리요, 숨어 살겠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앞서 죽어나간 이들을 외면하겠다는 소리였다.

가족, 친구, 동료, 또는 연인을 잃은 사람들이 또 관계를 형성하고 또 죽어가는 일이 당연한 세계다.

우린, 누군가의 죽음으로 성장했고 살아남은 사람들이다.

그러니 우리는 싸워야했다.

먼저 죽어간 이들을 위해서라도.

그렇기에 이곳에 모인, 나와 레아. 그리고 관찰자나 아마존도 강철을 옹호하는 태도를 취하지 않았다.

우선, 바바리안의 감정에 동조하는 바이며 동시에 강철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강철군주는 작게 한숨 쉬었다.

"말하고 싶지 않다. 미안하다."

그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포탈을 타고 나가버렸다.

"강철!!"

바바리안이 소리쳤으나 물결치는 포탈의 잔재만이 그녀가 사라졌음을 말해주고 있었다.

"데몬시드!"

모두가 날 쳐다봤다.

왜 이럴 때는 항상 날 찾는건지.

"저희는 강철이 필요합니다. 강철 기사단의 위력은 저번 레이드 때도 느꼈지만 강인합니다."

"알고 있어."

강철마를 탄 강철기사단을 이끄는 강철군주의 모습은 대부분의 네피림들의 뇌리에 새겨져 있을 것이다.

그녀의 힘은 충분히 랭커이기에 부족함이 없고 꾸준한 성장으로 보건데 이제는 본인 개인의 무력 또한 확실히 성장함을 알고 있다.

일인군단이나 다름없는 그녀가 빠지게 된다면 전력의 손실이 매우 클수밖에 없다.

설득함이 옳다.

그러나.

"본인의 의사다."

그러나 그건 우리들의 사정이다.

그녀가 스스로 그런 결정을 내렸다면 함께 싸운 전우로서, 친구로서 그 결정을 존중해줌이 맞다.

"무슨, 사정이 있다고 생각해요."

레아였다.

테이블 밑에서 손을 잡는 레아의 모습에 나 또한 작게 한숨을 내뱉었다.

"알겠다. 그럼, 내가 가보지."

어차피 그녀의 집은 알고 있다.

공개적인 자리에서 이야기하는 것보단, 나 혼자 따로 가서 이야기를 들어보는 게 나을지도 모르겠다.

레이드 한번 빠진다고 손절할 만큼, 우린 얄팍한 사이가 아니니까.

*

트라움 아파트.

꼭대기 최상층에 살고 있는 강철군주의 집은 꽤, 으리으리했다.

지난번 시검의 집을 봤을 때도 상당히 놀랐지만 강철의 집은 그보다 배는 더 넓어 보였다.

"들어와."

문을 열어주는 강철군주의 안색은 썩 좋지 않았다.

낯빛에 그늘이 있어 보였다.

"앉아. 차 내올테니까. 커피?"

"그래."

이번엔 슬리퍼를 신고 오지 않았다.

맨얼굴도 아니다.

데몬시드로서 왔다.

달칵.

찻잔소리와 함께 은은하게 퍼지는 커피향이 집안을 가득 메운다.

난 그녀의 집을 둘러봤다.

혼자 사는 집 치고는 너무도 넓은 방이었다.

딱히 이렇다 할 가구가 배치되어 있지 않아 더욱 그랬다.

집 평수는 굉장히 넓은데 반해 가구들이 조금 부실한 모양새였다.

덕분에 집에 꽤 휑해보였다.

사치 부리는 것과는 거리가 먼 그녀였기에 딱, 필요한 물건들만 자리해 있는 듯 보였다.

예를 들자면, 갑옷.

거치대에 걸려 있는 여러 갑옷들과 그것을 손질하는 테이블과 물건들이 눈에 띄었다.

꽤 다양한 무구들이 있었는데 그녀는 혼자 그것들을 전부 손질하며 나름의 컬렉션을 모아놓은 듯 했다.

달칵.

"어렸을 때부터 취미였다."

"갑옷 말인가."

"응. 좋아했거든."

커피를 매만지며 말하는 강철의 모습은 그 나이대 여자애 같았다.

취미가 조금 남달랐지만.

어렸을 때부터라고 한다면 악마가 나타나기 이전부터라는 뜻이었다.

"어릴 때부터 갑옷을 좋아했어. 아니, 정확하게는 기사를 동경했지. 때문에 내가 이런 기프트를 가지게 된 게 아닐까 생각해."

난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이들과 비교해도 강철군주는 조금의 낯섬이 있었다.

아무리 세상이 이렇게 변했다고는 하지만, 갑옷을 입고 여성인데 말투도 남자처럼 하고 다녀서 자신의 기프트에 심취한 게 아닌가 했다.

이제보니 그건 동경으로부터 이어진 일련의 결과였던 모양이다.

"아버지가 좋아하셨거든. 기사의 용맹함과 경건함을 애정하셨지. 기사란 이래야 한다. 자고로 기사란 약한이를 사랑하고 악을 처단해야 한다."

말하며 피식 웃는 강철군주의 표정은 조금 애잔함이 담겨 있었다.

"항상 기사를 부르짖던 아버지는 결국 그 흔한 악마도 아닌, 건물 잔해에 깔려 돌아가셨지만."

"... 그런가."

그래서.

그녀가 기사도에 집착하는지도 모르겠다.

끝내 되지 못한 아버지의 바람.

그것을 대신 이루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며 홀로 생각했다.

"데몬시드."

"말해라."

"내가 우스워 보이지는 않나."

"누구도 널 우습게 보지 않아."

"그래. 그런가."

잠시 분위기가 내려앉았다.

뭔지는 몰라도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것은 확실했다.

내가 아는 강철은 이런 이야기를 주저리주저리 내뱉을만큼 감성적인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아니, 그것도 아닌가.'

생각해보니 난 강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른다.

그녀가 어떻게 살았는지.

어떤 가치관과 방식으로 살아남았으며, 살아가려 하는지 모른다.

당연하다.

동료지만, 타인이기에 많은 관심을 두지 않았다.

"당신이 여기까지 왔다는 건, 레이드에 관한 일 때문이겠지."

"... 아니란 말은 못하겠군."

"많이 실망했겠지. 데몬시드. 미안하다. 당신 어깨에 인 짐을 덜어주지 못할망정 더 무게를 지워버렸으니. 하지만..."

강철은 경거망동하는 성격이 아니다. 그런 말을 내뱉었다면 확고한 확신을 담아 말했을 것이다.

그러니 웬만해서는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지 않을거다.

그녀는 기사들의 군주니까.

"네 결정을 바꾸러 온 게 아니다. 레이드에 참가하지 않는다고 우리과 척을 지겠다는 뜻도 아니지 않나."

"아, 아니다! 척을 지다니..."

"난 듣고자 왔어. 나와 생사를 함께하며 싸웠던 동료의 선택이, 어째서 그래야만 했는지."

협회의 수장으로서.

현 대한민국을 책임지는 랭킹 1위로서 알아야 할 사정이라고 생각한다.

"... 팔라딘을 기억하나."

잠시 머뭇거리던 강철군주는 조심스럽게 팔라딘을 입에 올렸다.

"기억한다. 전, 랭킹 10위였던."

팔라딘.

전투 중에 목숨을 잃은 전사자.

꽤 강한 네피림이었지만 끝내 전사하고 말아버린 랭커다.

"팔라딘, 그는 사실..."

"설마 연인이었나?"

"아니, 삼촌이었어."

"... 아."

그건 또 처음 듣는 사실이다.

"처음... 듣는군."

"말하지 않았으니까. 서로에게 해가 될지도 몰라서 굳이 알리지 않았다. 애초에 알릴 이유도 없었고."

"그랬군."

군단장 토벌 이후.

급격하게 상태가 안 좋아 보인다 했더니 그런 이유가 있었다.

'팔라딘과...'

삼촌과 조카 관계라는거겠지.

그렇다면 그녀의 심정이 충분히 이해가 된다.

가족이 죽었으니까.

꽤 충격이었겠지.

"충격이었고 슬펐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현실이지. 전투에 참여할 때마다 언제고 우린 죽음과 맞닿아 있었다. 그건 삼촌도, 나도 항상 되새기며 싸웠으니까."

그러나.

"죽음이란, 남겨진 자들의 몫이라는 말을 꽤 뼈저리게 느끼는 중이다."

"...팔라딘 때문이 아니군."

그때였다.

방 한켠에서 터벅터벅 걸어오는 작은 생명체가 있었다.

저번에 보았던 작은 백구였다.

새끼강아지다.

"설마."

"아니야."

강철은 강아지를 안아 들었다.

그리고 잠시 뒤.

강아지를 따라온 작은 소녀가 보였다.

다섯살쯤 되어보이는 여아.

"인사드려야지. 언니 동료야."

"안녕하세요..."

"삼촌의 딸이야."

"그런거군."

손망치 인형을 들고 있는 소녀였다.

그녀는 팔라딘이 남긴 자식.

강철의 사촌지간인 동생이었다.

이제야 이해가 간다. 그녀가 왜 레이드에 참가하지 못하는지를.

"말하지 그랬나."

강철은 백구와 소녀를 방으로 돌려보내고 커피잔을 들며 말했다.

"변명이라고 생각했다. 삼촌이 남긴 동생이 걱정되서라기엔, 나도 그날의 공포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까."

"무서운거냐."

묻자, 답했다.

"무섭다. 당연히 무섭지. 그날은 나도 여러 번, 정말 여러 번 죽을 뻔했다. 한번의 위기를 넘기면 또 한번의 위기가 찾아왔고, 나를 대신하여 희생당한 자가 날 보며 곤죽이 되거나 토막나고 찢겨져 죽었다. 주변의 모두가 외마디 비명만을 질러댄 채 죽었어. 난 아직도... 그날의 참상이, 날 보았던 그들의 눈빛과 절규가 아직도 꿈속에 나타난다. 그날은 지옥이었다."

강철은 이내 씁쓸하게 웃었다.

"거창한 이름을 불리고 있지만 난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 아니야. 그냥 운이 좋아서, 분수에 맞지 않는 기프트를 얻어서 사람들에게 조금 떠받들어져 들떴던 여자애일 뿐이지. 사실은 강철 군주가 아닌, 평범한 여자. 류설연일 뿐인데 말이야."

평범한 류설연.

공감 가는 말이다.

네피림들은 대개 그럴거다.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기보다는 기프트 명으로 불린다.

강철도 나도 랭커들은 더더욱 그렇다보니 가끔은 혼동이 온다.

내가 데몬시드인지 아니면 이화성인지 말이다.

"너와는 달리 평범한 사람이다. 난."

평범한 사람.

자조하듯 하는 말이었지만.

평범한 사람이라는 말에 난 웃음을 참지 못했다.

"왜 웃지."

"미안하군."

웃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는 나와 달리 평범한 사람이라고 했다.

하지만 그녀는 잘못 알고 있다.

명백하게 달리 알고 있다.

"어..."

난 물소뼈 투구를 벗었다.

날 보고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고?

정말이지 우스운 말이다.

나보다 평범한 사람이 또 있을까.

그녀와 달리, 오히려 나야말로 평범하기 그지없는 사람이다.

운이 겹치고, 겹치게 되어 만들어진 사람이 바로 나다.

투구를 벗은 내 얼굴은 본 강철의 눈이 화등잔만하게 치켜떠졌다.

저번에 만났을 때의 거짓말을 들키게 되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보다 그녀가 더 중요했다.

강철 군주를, 아니 한명의 사람 류설연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아마, 우리는 모두 평범할거다."

뛰어난 사람은 뛰어나다.

하지만 지금의 세계에서, 아무리 뛰어나봤자 지옥의 미지 앞에서, 또는 절망의 죽음 앞에서 그런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난 평범한 대한민국의 남자다. 남다른 사연은 조금 있지만, 남들과 다를 바 없이 지극히 평범해."

지닌 능력이 출중하지도 않다.

뛰어난 외모를 지니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머리가 월등히 좋지도 않다.

나 또한 평범한 사람이다.

우리는 모두가 평범하다.

악마와 신이 나타난 세계에서 우리는 그저 평범할 수밖에 없다. 그래봤자 결함 가득한 인간이 태생이니까.

"평범한 우리가, 평범하지 않은 세계가 되고나서야 평범하던 우린 모두가 특별해졌다고... 생각한다."

"..."

"강철. 우린 모두 평범했다. 하지만 언제까지고 평범할 수는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이 자리에 있는거다."

평범한 우리를, 이 잔인한 세계가 억지로 특별하게끔 강요했다고.

난 그렇게 생각한다.

"... 생각할, 시간을 줄 수 있겠나."

"많이는 못 준다."

출정 시간은 앞으로 2주나 남았다.

시간은 충분하겠지.

난 자리에서 일어났다.

테이블에는 브란스에게 건네받은 브릭서 한 병을 올려두었다.

"브란스가 만들어낸 브릭서다."

이번에 새로 만든 모든 능력치를 1씩 올려주는 '올 브릭서'였다.

꽤 귀한 거지만, 강철에게라면 전혀 아깝지 않다. 그녀라면 브릭서의 가치를 잘 알고 있겠지.

"어떻게 쓰든 상관하지 않겠다."

마시든, 팔든, 부숴버리든 어떻게 사용할지는 강철의 손에 달렸다.

"네가 무슨 선택을 하든, 넌 우리의 동료다. 잊지마라. 강철."

난 다시금 투구를 고쳐쓰고, 고민하는 그녀를 바라보다 돌아갔다.

*

2주 뒤.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용암지대.

한국의 지옥 광산에 수많은 네피림의 행렬이 이어졌다.

"이건가."

"예, 이걸 사용하면 러시아 쪽의 광산지역까지 단번에 이동할 수 있습니다. 거기서 다시 한번 포탈을 타면 러시아의 모스크바로 이동됩니다."

관찰자의 설명 아래.

모여있는 대부분의 네피림들이 포탈 스크롤을 쥐었다.

이는 러시아에서 미리 준비해줬기에 힘든 행군을 지속할 이유는 없었다.

난 잠시 광산 입구를 바라봤다가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끝내 오지 않았다.

비난할 생각은 없다. 그러나 아쉬움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허나 더 지체할 순 없었따.

"이동한다."

포탈 스크롤을 찢으려는 순간.

바바리안이 소리쳤다.

"어, 잠시만!"

저벅저벅. 이글거리는 용암지대를 말을 타고 달려오는 기사가 있었다.

물론 그 기사는 우리가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 기다리던 사람.

바로 강철 군주였다. 동료들의 입가에 진한 미소가 절로 피어났다.

나 또한 그랬다.

"데몬시드."

말에서 내린 강철 군주는 날 향해 진중한 낯으로 말했다.

"한 가지 약속해줄 수 있을까."

"무엇을."

"내가 죽으면 삼촌의, 아니 내 동생을 맡아줄 수 있을까."

난 픽 웃고는 답했다.

"알겠다. 류설연."

"!! 난 강철이다!"

화들짝 놀란다.

이 정도는 우리 모두를 마음 고생 시킨 값이라 치면 적당하겠지.

"류, 뭐? 데몬시드. 유서리가 먼데? 뭐야? 모야모야? 둘이 모야?"

"아, 아무것도 아니다! 괜한 걸 묻지마라 바바리안!"

"뭔데? 둘이 뭔데에? 실의 빠진 강철을 우리 대장님이 보듬어주기라도 했던거야? 아앙?"

"바바리안. 말조심하세요."

"아, 응."

레아의 한마디에 바바리안의 장난이 정리됐다. 겨우 진정시킨 상황에 안심하며 날 노려보는 강철을 무시하며 포탈 스크롤을 찢었다.

애초에 강철의 부탁은 의미가 없었다. 강철이 죽으면? 그런 가정은 할 필요가 없다.

'이번 레이드는 금방 끝날거야.'

누구 하나 죽지 않고 순식간에 끝날거다.

"이동한다. 한국."

"예!"

내가 반드시, 그렇게 만들테니.

서열싸움 [1]

135화.

우크라이나행이 결정된 직후 우리는 5만 명의 네피림을 모집했다.

하지만 5만 명을 너무 우습게 봤던 걸까. 쉽게 모이리라 생각했지만, 실상은 조금 달랐다.

[ㅇㅇ:이거 갈 이유 있냐?]

[ㅇㅇ:솔직히 그들만의 리그지]

[ㅇㅇ:북한 때는 바로 위였으니까 처리하는 게 맞았는데 우크라이나를 굳이? 존나 멀자넝~]

[글로리안:당연히 가야지. 그러니까 너네가 비루한 삶을 사는거임]

[ㅇㅇ:아이고 랭커라서 좋으시겠어요~]

[글로리안:꼬우면 당당하게 닉까고 현피 떠 ㅈ밥들아]

[ㅇㅇ:응 다음 비둘기~ 하늘 나는거 말곤 아무 장점도 없는 븅신이죠?]

[ㅇㅇ:맨날 상위 랭커한테 얻어터지는 맛집 주제에 말 많노 ㅋ]

꽤 난항을 겪었다.

저번 군단장 레이드에서 꽤 많은 랭커들의 죽음이 이어졌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전투에서 환멸을 느낀 네피림 들은 잠정적 은퇴를 결정하고 서초동의 트라움으로 향한 이들도 많다.

정부의 소속으로 들어가 비교적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보내고자 하는 이들은 그쪽으로 향했다.

예를 들면 죽다 살아난 혼나비나 드루이드 등등이 그러하다.

그런 사실을 다른이라고 모르겠는가. 누구보다 그런 사실에 민감한 것이 사람인데 말이다.

공포란 전염되기 마련이다.

자신의 실력이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개죽음당하기보다는 안전하게 강해지기를 바랐다.

애초에 강해지려는 이유는 뭔가.

죽지 않으려는 발버둥이다.

치명적인 위험을 무릅쓰지 않아도 강해질 방법이 있으니 저들은 불구덩이로 뛰어들고 싶지 않은 것이다.

덕분에 이번 우크라이나 군단장 레이드는 랭커라기엔 부족함이 많은 자들이 참여하게 되었다.

레벨이 전부가 아니라는 건, 저번 시검 사건 때 확인했으니 난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레벨을 뛰어넘는 강함이라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다른 나라 녀석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듯하다.

"마늘 냄새나는 놈들이 그래도 양심은 있는지 수가 적더군. 꽤 주제는 아는 모양이야."

코를 부여잡으며 말하는 짧은 머리의 사내는 독일 랭킹 1위.

레이지라는 놈이었다.

독일군 소속인지 그 나라 특유의 장교 군복을 멋드러지게 입고 있었다.

하지만 멋진 모습과는 달리, 말하는 꼬락서니엔 싹수가 더럽게 없었다.

모스크바의 동맹 기지의 막사 안.

놈의 뒤에 자리한 독일 놈들도 손가락으로 눈을 찢으며 인종차별의 면모를 여실히 보여주는 걸 보니 썩 원만한 해결을 보기는 어려워 보인다.

'우리가 데려온 네피림 숫자가 적은 거로 이렇게 꼽을 주는 건 아닐 테고. 그냥 시비를 거는 건가.'

이렇게까지 적대할 이유가 있나 싶어서 화가 나기보다는 어이가 없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놈은 권총으로 자신의 미간을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3만. 꼴랑 3만으로 이 레이드에 끼어들려는 건가? 자신감이 높은 거야, 아니면 존나 양아치인 거야?"

"어이, 말이 조금 심하잖아."

"뭐가 말이지?"

"하, 해보자는 거지?"

바바리안이 먼저 일어났다.

그 뒤로 강철 군주가 일어났는데 그와 동시에 독일의 1위, 레이지는 날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탕-!

일말의 주저도 없는 사격.

정확히 내 미간을 향해 발사한 총알 금세 코앞까지 다가왔다.

탱-!

허나 그보다 먼저, 강철 군주의 검과 바바리안의 도끼가 놈의 총알을 막아 세웠다.

"이 씨발 새끼가!!"

바바리안은 놈의 무례함에 분노를 참지 못했다.

곧장 도끼로 놈을 찍으려 했으나.

탕-!

다시 한번 쏘아진 레이지의 권총에 바바리안의 도끼가 튕겨 나갔다.

"!!"

아직도 총은 인간에게 유효한 살상무기다. 하지만 그건 일반적인 네피림들에게나 통할 물건이고, 랭커급이 된다면 총알 정도는 우습게 피하고 쳐내는 게 가능하다.

그래서 레이지도 날 공격했다기보다는 그냥 놀렸다는 거에 가깝다.

물론 가진 기프트나 스킬에 따라 다르기는 하겠지만, 적어도 권총 따위로 위기를 느끼지는 않는다.

권총에 다칠 정도면 랭커라고 불릴 자격도 없는 게 일반적이니까.

물론 그건 바바리안도 마찬가지다.

권총이 도끼에 맞았다고 해서 무기를 놓칠 만큼 그는 방심하지도, 손아귀에 힘이 없는 자도 아니다.

누구보다 위험한 전쟁터를 앞서 구르며 나름대로 잔뼈 굵은 전사라 해도 부족함이 없는 게 바바리안이다.

근데 그런 바바리안이 총알 한 발로 도끼를 놓쳤다?

말이 안 되는 일이었다.

근데 말이 안 되는 일이 벌어졌다.

그렇다면 이는, 말이 안되는 일을 말 되게 만든 독일 놈에게 뭔가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었다.

'기프트랑 관련이 있나보군.'

굳이 권총을 들고 다니나 했는데 기프트와 꽤 관련이 있는 모양.

그게 아니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맛있게도 화내는군. 괜찮은데? 더 화내보는 거 어때?"

"개자식이!"

역시 독일 1위.

헤일로까지 가지고 있는 녀석이라 그런지 강자의 냄새가 풍겼다.

하지만 그것과 반대로 저놈의 싸가지는 교육을 좀 해주고 싶었다.

"바바리안. 앉아라."

"하지만!"

"놈은 그냥 우릴 시험해보고 싶을 뿐이야."

굳이 놈의 페이스에 말려들 이유는 없다.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고 하지 않던가.

양아치 같은 놈들 수준에 맞춰서 어울려줄 필요는 없다는 소리다.

"호오."

레이지는 휘파람을 불며 능글맞은 웃음을 흘렸다.

"쳇!"

겨우 화를 삭인 바바리안이 자리에 털썩 앉으며 팔짱을 꼈다.

눈을 부라리고 있는 걸 보니 기회만 된다면 주먹을 날릴 기세였다.

꼭 바바리안만이 아니었다.

강철 군주, 아마존, 관찰자나 레아도 마찬가지였다.

물론 이 자리에는 독일군만 있는 건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모스크바의 주인.

러시아 네피림들도 함께였다.

본래라면 이 상황을 중재하는 게 맞음에도 불구하고 녀석들은 방관했는데, 이제 보니 방관이 아니라 끼어들고 싶은 모양이었다.

"이기적인 아시아인답군. 너희들이 이기적으로 굴지 않았다면 러시아의 네피림들이 전멸하는 일도! 우리의 랭킹 1위가 죽는 일도 없었다! 더러운 아시아인!"

새롭게 러시아 1위가 된, 화이트.

새하얀 러시아식 털모자와 함께 금발 머리가 인상적인 러시아 미녀였지만, 지들 입맛대로 오해한 듯한 말투라 첫인상은 최악이었다.

연신 으르렁거리는 러시아 1위.

코를 막는 독일 1위.

분명 초대받고 왔는데도, 왜인지 개 같은 취급을 당하고 있었다.

슬슬 머리가 어지러워져서인지 뇌가 생각하기를 포기하고자 한다.

'그래, 미룡이랑 가면이 좀 특이했던 거겠지.'

적어도 그들과는 유쾌함이 있었다.

이렇게 기분이 더럽지는 않았다.

내가 너무 그들과의 추억에 젖어 있었는지 모르겠다.

본래 예의란 것을 갖추게 하기 위해서는 압도적인 강함을 보여주는 것 말고는 없는데 말이다.

잠깐 평화롭게 지내며 잊었다.

때론 대화보단 주먹이 빠른 이해를 돕는 지름길이란 것을.

'어떻게 할까.'

일단 죄다 반 죽여놓고 시작할까.

고민하던 찰나.

"일단, 누가 리더일지부터 정하지."

독일 1위.

레이지의 말과 함께 독일의 랭커들이 움직였다.

이번 레이드의 리더를 정하자는 말.

하지만 그게 놈들에게는 서열 싸움을 하자는 말과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쾅!!

독일의 거구 사내가 바바리안을 향해 냅다 주먹을 휘둘렀다.

그 권압에 막사가 날아갔다.

"내 상대는 너다. 추남."

"누구보고 추남이래. 나보다 못생긴 자식이."

"그럼 대머리라고 해줄까."

"일부러 깎은거야, 개자식아!"

쾅! 쾅!

놈을 통파를 사용하는 네피림이었는데 기프트도 전사 유형으로 보였다.

"그는 독일의 쟈카이다. 랭킹은 3위지. 힘만 쎈 한국의 야만인이 상대하기엔 꽤 힘들거야."

쾅! 쾅! 쾅! 쾅! 쾅!

통파를 사용하며 무차별적으로 몰아치는 쟈카이라는 사내는 척 봐도 강해 보였다.

힘, 속도. 그리고 물고기처럼 기괴하게 유연한 몸놀림은 바바리안이라고 해도 당황할 정도였으니까.

"한국엔 기사 타입이 많은가봐?"

어느새 내 근처로 다가온 독일의 여 장교. 검은 머리의 여인은 드리운 안개와 함께 내게 다가왔으나.

척.

"함부로 접근하지 마세요."

어느새 레아가 검을 꺼내 그녀의 목을 겨눴다. 독일과 러시아가 놀랄만큼 신속한 속도와 정확도였다.

"놀래라. 난 프레블. 반가워."

이번엔 레아의 눈이 커졌다.

자신을 프레블이라 소개한 여자는 어느새 새하얀 안개가 되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사라진 프레블은 어느새 레아의 뒤에 나타나 그녀의 볼을 툭 찌르고 도망갔다.

"거기서요!"

그렇게 한명 한명.

독일과 러시아가 번갈아 가며 한국의 랭커들을 모조리 싸움걸며 데려갔다.

어느새 남은 건, 랭킹 1위들.

독일의 레이지와 러시아의 화이트.

그리고 나였다.

"말한 대로, 한국의 1위는 내가 상대하겠어. 이견은 없겠지?"

"마음대로."

러시아 1위, 화이트였다.

어째 상황이 묘하게 돌아간다 했더니 이미 독일과 러시아는 입을 맞춘 거였다.

단순히 한국군의 숫자가 적어서 그런 게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도 가만히 있을 이유는 없다.

쿠궁-!

일대에 묘한 압박감이 내려졌다.

러시아의 새로운 1위.

그녀는 일대에 잿가루 같은 눈송이를 떨어뜨리기 시작했다.

눈송이와 함께 꽤 거대한 압박감이 온몸을 짓눌렀는데 대부분은 거동키도 힘들어 보일 정도의 강도였다.

기프트명이 화이트라더니.

눈과 관련된 기프트인 모양이다.

어깨에 떨어진 눈송이 하나가 거진 10Kg의 무게를 지닌 것 같았다.

눈이라는 게 옷에 꽤 잘 달라붙다보니 그대로 붙는 경우가 많은데 화이트의 눈은 녹지도 않다보니 눈보다는 잿가루 같았다.

무게가 있는 하얀 가루라고 생각되지만, 슬금슬금 오한이 느껴지는 걸보니 그것만 있는 능력은 아니었다.

상대하고자 한다면 꽤 까다로운 기프트일거라 짐작됐다.

단번에 상대를 해치우기보다는 천천히 말려 죽이는 종류의 기프트.

확실히 이 정도 기프트라면 랭킹 1위를 새롭게 차지할 여력이 됐다.

"네게는 묻고 싶은 게 많아."

눈보라가 몰아친다.

화이트의 모습은 눈 속에 가리어지고 데몬시드의 몸을 짓누르는 눈의 무게는 점점 쌓여만 갔다.

이쯤 되었다면 수백 킬로그램이 아닌 수천 톤에 이르는 눈의 양.

허나 데몬시드는 처음과 똑같이 의자에 앉아있는 채였다.

"... 왜 아무렇지도 않지?"

"그를 자세히 봐라."

앙칼지게 소리친 화이트와 달리, 독일의 1위 레이지는 담담한 어조로 그를 가리켰다.

쌓여진 눈.

그 위로 연기가 피어올랐다.

"결국 눈은 눈이란거지. 상성이 썩 좋지 않았군. 화이트. 녀석은 불과 관련된 스킬이 있는 모양이야."

눈은 결국 눈.

제아무리 무게를 가지고 있다고 한들, 태워 녹여버리면 그만이었다.

데몬시드는 의자에 앉아있는 자세 그대로 전신에 푸른 불꽃을 피웠다.

그것만으로 눈은 모조리 녹아, 연기로 화해버렸고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듯 땅을 타고 흘러 주변을 모조리 불바다로 만들기 시작했다.

"무슨...!"

화이트는 당황했다.

자기 눈이 모조리 녹아내리고 있었으니까. 더 많은 눈을 내리게 해도 그의 푸른 불길 앞에서는 그저 힘없는 눈송이일 뿐.

레이지의 말대로 상성이 좋지 않았다.

"제길!"

"헤일로도 꺼내지 않았군. 단순한 스킬인가? 아니면 기프트?"

욕지거릴 뱉어내는 화이트와 달리, 독일의 레이지는 데몬시드의 힘을 분석하기 위해 여러 질문을 던졌다.

하지만 그는 답하지 않았다.

"그래. 화가 많이 나셨다 이거군."

드르륵.

레이지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내 기프트는 레이지. 분노를 축적한다. 그건 어디에 있는 거라도 상관없이 내 힘으로 만들 수 있지."

어디에 있는 분노라도 축적한다.

그게 악마에겐 통하지도 않는 단순한 권총일 뿐이라도 말이다.

"Lv.6 정도의 악마는 일격에 즉사. 못 막으면 죽고, 막아도 꽤 아플꺼다. 작은 나라의 랭킹 1위."

레이지의 권총에 검붉은 기류가 모인다.

그리고 순간.

쾅-!!

권총이라기엔 있을 수 없는 거대한 총성이 터져 나왔다.

화이트는 안다.

저 권총의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이봐! 죽으면 어쩌려고!"

하지만 레이지는 그저 비릿한 미소만 띤 채, 총을 거두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아까보다 더 많은 분노를 권총에 집약시키고 있었다.

"무슨."

영문을 모르던 그때.

"아직도 앉아있으면 내가 민망하지. 안 그러냐. 한국."

폭연이 걷히고 한국의 1위.

데몬시드의 모습이 보였다.

허나 그는 아직도 앉아있는 채, 푸른 불꽃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뼈 투구를 쓴 그대로.

데몬시드는 처음부터 끝까지, 단 한 번도 움직이지 않은 채였다.

어떻게 저런 게 가능한지 화이트는 경악했고 레이지는 화가 나는지 미소지은 채 이마에 핏줄이 도드라졌다.

하지만 데몬시드는 답하지 않았다.

답할 가치가 없다는 듯.

위이이이잉.

레이지의 권총에 더 많은 기운이 밀집되기 시작했다.

쿠구구궁-! 어느새 머리 위에는 그의 기프트와 비슷한 검붉은 헤일로까지 떠오른 상태였다.

"그 건방진 의자를 없애주지."

허나 그때였다.

탁.

돌연 화이트와 레이지의 시야가 흔들렸다.

"어..."

그들의 코에서는 돌연 코피가 쏟아졌고 머리는 어지러워졌다.

시스템 창에서는 연신, 열병과 독에 중독되었음을 알렸다.

그리고.

'마나가...'

어느새 마나가 바닥 나 있었다.

"내 마나가 왜..."

그 둘이 무력하게 쓰러지고 난 뒤.

데몬시드는 그제야 자리에서 일어나 품에서 약병 두 개를 던졌다.

"해독제다."

이내 등 돌리며 걸어가던 데몬시드는 이내 한마디 중얼거렸다.

"시시하군."

꽈드드득.

"기다... 려!"

허나 그는 기다려주지 않았다.

터벅터벅 걸어가 사라졌다.

레이지와 화이트는 데몬시드의 등만을 바라보다 끝내 정신을 잃었다.

랭킹 1위들의 대결이라기엔.

놀라울 정도로 허무한 싸움이었다.

서열싸움 [2]

136화.

[앞으로는 헤일로를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로 나뉘게 될 거다.]

커뮤니티에서 화두에 올랐던 그 말에는 나 또한 동의했다.

헤일로는 강력한 힘이다.

당연히 헤일로의 고유효과는 너무 할 정도로 좋다.

그걸 제쳐두더라도 기본적인 육체 스펙이 몇 배나 뻥튀기되는 효과는 네피림의 전투 방식 그 자체를 바꾼다.

『신의 사자』

모든 신체 능력을 100% 상승시켜주는 헤일로의 능력은 그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반드시라고 말할 정도로 앞으로는 헤일로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극명하게 차이 날 게 분명했다.

"아직은 아니지만."

난 악과를 먹거나, 그것을 농축한 브릭서를 먹어 현재는 모든 스탯의 평균치가 70을 넘어섰다. 평균 능력치가 70이니 헤일로만으로 120%가 상승하여 평균 능력치는 150 정도.

하지만 다른 이들도 과연 그럴까.

난 아니라고 생각한다.

"높아봤자 삼, 사십이겠지."

그렇다면 헤일로로 버프 된 신체 능력은 고작해야 칠, 팔십.

신체 능력의 평균치가 팔십 정도라면 강화되어봤자 헤일로를 활성화하지도 않은 내 육체 스펙과 비슷하다.

그럼 내성은 어떨까.

내성도 마찬가지다.

아이템의 효과로 내성이 있는 사람도 있겠지만, 대개 네피림들은 내성이 그렇게 많지 않다.

대부분은 지닌 장비나 아이템의 효과로 내성이 올라간 것이고 그마저도 특이한 기프트를 지닌 특성으로 올라가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평균적으로 네피림들이 지닌 내성의 수치는 높아 봐야 10% 정도.

십 퍼센트가 백 퍼센트 버프 되어봐야 이십 퍼센트밖에 안 된다.

그리고 바로 그게, 내가 독일과 러시아 1위를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쓰러뜨린 결정적인 이유다.

"저주와 독에 대한 내성을 챙긴 네피림은 많지 않지. 그들이 쉽게 쓰러진 것도 당연해."

대기 중으로 퍼지는 독을 눈치채기란 쉽지 않다.

아무리 뛰어난 신체 능력을 갖추게 되었더라도 미세한 입자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군단장한테는 안 통했는데 말이지.'

푸르푸르는 당연하다고 말할 정도로 독에 대한 내성, 열병에 대한 내성이 갖추어져 있었다.

군단장한테 통하지 않는 거지 그렇다고 내 독이 아무나 해독할 수 있을 정도로 약하진 않다.

아마 그대로 내버려 뒀다면 독일과 러시아 1위는 죽었을 것이다.

물론, 자기가 열심히 만든 브릭스를 건네줬다고 브란스한테 꽤 혼이 나기는 했지만, 둘 다 랭킹 1위를 잃어버린 나라다.

이번에 한 번 더 죽는다면 그건 그것대로 꽤 문제가 많아지지 않겠는가.

까부는 거 보면 그냥 죽여버릴까 하다가도 미룡과 가면과 놀았던 그때가 떠올라서 그러지 않았다.

그들도 내게 살의를 느껴서 그런 신경전을 벌인 건 아니었으니까.

물론, 그들과 친해진 것처럼 관계가 좋아지지는 못할 거다.

미룡과 가면 때와는 달리 엘더 레이드 채널이 오픈되어 있어도 우린 한마디도 하지 않았으니까.

그건 아마도, 그들이 우리와는 달리 이번에 1위가 된 자들이라 그럴 거다.

러시아 1위는 당연히 그렇고, 독일 1위도 정보에 의하면 저번 레이드 때 본래 1위가 죽었다고 했으니.

'미룡과 가면은 1위 끼리라는 동질감과 나름의 해방감이 있었지.'

1위이기에, 막중한 책임을 지고 있기에 함부로 행동하지 못하고 말도 조심해야 하던 우리에게 엘더 채널은 일종의 탈출구였다.

왜 그렇게 됐는지 뒤늦게 들어간 난 모르겠지만 미룡과 가면이 그러고 놀고 있어서 나도 그렇게 됐다.

자연스럽게 서로를 이해했다.

1위가 가진 고독함, 막중함과 책임감. 그리고 여유가 있었다.

자기 실력에 대한 확신.

한번도 1위를 뺏기지 않은 자신감이 우리에겐 있었다.

그렇기에 터놓고 지냈다.

지금은 그마저도 그립지만.

"그러셨군요."

대한민국 위치의 막사 안.

레아는 내 말을 들으며 간이용 요리 솥에 불을 피우고 스튜를 끓였다.

나만의 상점에서 빵을 팔다 보니 이것저것 다 넣고 끓인 스튜와 함께 적셔 먹는 빵은 나름대로 별미였다.

"자요."

"고마워. 근데 레아 쪽은?"

"저는. 그냥 술래잡기했죠."

"괜찮았어?"

"네. 조금 반성하게 됐어요. 요새들어 힘으로만 다 해결되다 보니까, 요리조리 잘 빠져나가는 적은 신기했어요. 나름대로 재미도 있었고... 페이블이란 사람은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거 같았어요."

싸우다가 조금 친해진 모양이다.

"바바리안은 계속 씩씩거리던데."

"쟈카이라는 사람이었던가요. 그 사람이 물고기처럼 자꾸 공격을 다 피하고 자기만 맞았다고 화내더라고요. 얼굴이 팅팅 부어서 왔는데."

"치료해주지, 그랬어."

"치료를 거절하셨어요."

"단단히 화가 났나 보네."

왜 치료를 거절했는지 알겠다.

그 아픔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며 복수할 생각이겠지.

바바리안다운 생각이다.

"강철이랑 아마존은?"

"두 분은 비기셨대요."

"오... 독일도 만만치 않구나."

"그러게요."

내 말에 동조하는 것치고는 표정이 꽤 좋아 보였다.

"왜 웃어."

"화성님이 버릇없는 타국의 1위들을 손 하나 안 대고 쓰러뜨렸으니까요.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한국의 사기가 굉장히 올라갔어요. 저쪽은 아마 지금쯤 비구름이 몰려온 것만 같은 분위기겠죠."

왜 신나 보이나 했더니.

"참나. 그게 그렇게 좋았어?"

"네!"

희희 웃는 레아의 볼을 조금 쓰다듬어 주었다.

내 일을 자기 일보다 더 기뻐하는 모습을 보니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

"크흠."

입구 쪽에서 인기척이 들려왔다.

강철 군주였다.

"조금... 이따가 오면 될까."

"아니. 들어와라."

민망한 상황이 연출 됐지만, 레아는 얼굴만 붉힐 뿐 막사 밖으로 나가지는 않았다.

"무슨 일이지."

"아, 음. 러시아 쪽에서 공문을 보내왔다. 출발은 사흘 뒤라더군."

"사흘 뒤라. 빠르군."

"우크라이나를 점령한 대표적인 악마들에 관한 자료는 이따 회의실에서 함께 말하기로 했는데, 괜찮나."

뭐가 괜찮다는 거지. 의아해하자 강철이 헛기침을 하며 답했다.

"썩 중요한 내용은 아니니, 쉬고 싶다면 이곳에 있어도 돼."

강철이 은근한 눈으로 레아와 날 번갈아 쳐다봤다.

이상한 오해를 한 모양이다.

"아니, 괜찮다. 회의엔 참석하지."

"그런가. 그럼 알겠다."

강철은 헛기침을 뱉었고, 레아는 입술을 댓발 내밀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