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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4화.

푸르푸르가 데스와이번을 탄 브란스를 향해 지팡이를 겨누자.

콰광-!!

벼락이 브란스를 적중시켰다.

와이번의 뼈가 박살나고 브란스가 허공에서 떨어져 내렸다.

"브란스!!"

울컥.

토해내는 피와 함께 소리쳤다.

군단장의 벼락에 적중당한 브란스는 와이번을 잃고 격추당했다.

"난 괜찮네!! 정신 똑바로 차리게!! 자네의 선택이 전장을 바꿀테니!!"

브란스는 피를 토하면서도 마법을 사용해 달아났다.

푸르푸르가 짐승처럼 포효하며 브란스를 쫓아가려 했으나 그때는 이미 내가 정신을 차린 직후였다.

푸르푸르는 날 보며 초승달처럼 만든 눈으로 조롱했다.

-어머니라 불러보렴. 너도 그걸 원하고 있잖니.

"닥쳐."

단숨에 달려가 창을 찔렀다.

하지만 푸르푸르는 지팡이로 내 창을 막고는 히죽이며 답했다.

팔은 가냘프고 길다.

하지만 힘은 약하지 않았다.

-널 죽이지 않으마. 신기한 벼락을 담고 있지 않니. 양자로 삼아줄게. 너라면 그런 가치가 있단다.

"꺼져."

쿵!

손에 힘이 없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린 상태였다.

몸은 물에 잠긴 것처럼 무겁고 정신은 혼미하고 집중이 잘 되지 않는다.

이내 멀어진 푸르푸르가 고개를 젖히며 폭소했다.

-꺄하하하! 아쉽네? 진짜 엄마가 되어주려고 했는데!! 아니면, 엄마가 아닌 아내가 되어줄까?

이내 지팡이로 허공을 찍었다.

작은 파문과 함께 벼락이 떨어졌다.

전조 없는 벼락.

소리조차 늦게 들리는 빛살과도 같은 속도. 하지만 반응할 수 있다.

지팡이로 허공을 찍자마자 표식을 이용해 피해냈다.

콰아앙-!!

내려친 벼락은 날카로운 예기를 지니고 있었다. 벼락 주제에 검처럼 지면에 거대한 흉터를 새겼다.

꽈아악.

말아쥔 창이 떨렸다.

끈적끈적한 피가 흘렀다.

-화내는거니? 아니면 창피한거니?

조소하는 푸르푸르는 이 상황이 마음에 드는 듯 한껏 들떠 있었다.

마치 참을 수 없다는 것처럼.

"재밌나?"

-이보다 더 재밌을 수 없을걸? 너는 개미떼들이 널 죽이려 찾아왔다면 어떻게 하겠니? 그냥 죽이기보단 그들에게 작은 희망과 간절함을 쥐어주며 때때로 멍청한 얼굴을 하며 자신의 실책을 후회하게 만들어주고 싶지 않겠니? 나 또한 그런 것 뿐이란다.

악마란 이런 식이다.

사람의 마음을 비집고 약점을 찾아내 조롱한다.

이제까지 내가 만났던 악마는 진짜 악마라 칭하기도 미안할 만큼.

이 녀석은 진정한 악마였다.

'놀이일 뿐이다.'

놈에게 이것도 저것도 전부 놀이다.

날 놀려대며 가지고 놀고 있고, 이 전장도 가벼운 유흥일 뿐.

놈에게 어떤 피해도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맞다.

그렇다면 나 또한 내 모든 걸 쏟아 부을 수밖에 없다.

본능적인 직감이 그렇게 말한다.

그래야만 이길 수 있을거라고. 그렇다면 전적인 내 감을 믿기로 한다.

씨앗을 꺼냈다.

씨드라는 소용이 없다.

놈의 영역으로 변한 이 땅에서 덩치가 큰 씨드라는 맞추기 쉬운 표적일 뿐 그 이상의 가치는 없다.

+3 합성한 진철.

아니, 벽충의 씨앗이다. 이것으로 씨드라를 만들어도 의미는 없다.

심어도 큰 의미는 없을거다.

진짜 힘을 드러낸 놈의 권능은 땅을 비틀어 버리니까.

벽충 나무를 심어 벼락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일이 어려울거다.

이곳은 놈의 땅이니까.

그러니까.

난 한번도 하지 않았던 도박수를 던질 수밖에 없다.

물론, 상처 입은 몸을 회복할 수단은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피조물의 영광을 사용합니다."

"신의 이름을 빌어 생명력과 마나를 모두 회복합니다!!"

피조물의 영광으로 다친 신체를 모조리 회복한다.

그리고.

"벽충의 씨앗+3을 섭취합니다."

"시드로긴을 활성화합니다."

"경고!!"

"몸이 견디지 못합니다!"

"아토믹시드의 숙성도가 1% 상승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시드로긴은 씨앗의 원본이 된 악마의 능력치를 일시적으로 체내에 흡수하게 하는 스킬이다.

하지만 난 항상 생각했었다.

그렇다면 씨앗을 합성시키면 그 강화폭은 어느정도로 증가하는가.

2배? 3배? 다중 섭취로는 활성화되지 않는 그것이 가능할까?

결과는 보이는 대로였다.

"강력한 힘이 담긴 씨앗의 힘을 신체가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강골이 단단히 지탱합니다!"

"아토믹시드의 숙성도가 1% 상승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아토믹시드의 숙성도가 1% 상승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아토믹시드의 숙성도가 1% 상승합니다!!"

"모든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아토믹시드의 숙성도가 1% 상승합니다!!"

"숙성도가 10%를 달성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10 상승합니다!"

"벽충의 씨앗+3을 완전히 흡수합니다!!"

"지닌 모든 능력치가 186% 상승합니다!!"

"번개내성이 204% 상승합니다!"

"번개피해가 126% 상승합니다!!"

"유지 시간이 감소합니다."

"남은시간: 258초."

유지 시간은 4분 남짓.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좀 맞자."

"판포비아가 상대를 공포로 물들입니다."

"상대가 진명을 공포로 잊습니다."

"건강 능력치가 감소됩니다."

-너...! 네가 어떻게!!

비처럼 쏟아져 내리던 푸른 벼락이 사라진다.

하지만 그 대신.

피처럼 붉은 벼락이 온 세상을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온 세상이 붉게 변했다.

먹구름을 지배한 것은 푸른 벼락이 아닌 붉은 색이었다.

피처럼 붉고 황혼보다 붉은 천둥이 먹구름을 뒤덮었다.

그곳에 푸른 벼락은 없었다.

-...

푸르푸르는 말이 없었다.

자신의 지팡이를 손을 펼쳐보았다.

하지만 태어날 때부터 존재하며 자유자재로 부릴 수 있었던 권능이 사라진 박탈감은 채우지 못했다.

존재 자체가 사라진 듯한 감각.

자신의 힘을, 권능을 부리지 못하는 악마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공포시여, 절 버리시나이까.

붉어진 하늘을 고개 높여 바라본 푸르푸르의 눈에 눈물이 고였다.

허나 올려다본 하늘에서 그녀에게 손 뻗은 구원은 존재하지 않았다.

지면은 푸른 불꽃이 사방에 자리잡았고 하늘에는 붉은 벼락이 꽃처럼 수놓아 떨어져 내렸다.

분수처럼 쏟아지는 벼락의 향연.

그것은 정확하게 악마만을 향해 신의 철퇴처럼 내리꽂혔다.

"카탈린의 뇌신이 발동됩니다."

"신체가 뇌로 변합니다."

"이동속도 300% 증가, 모든 번개 속성의 피해력이 100% 증가합니다."

"체력의 30% 소모됩니다."

본래 데몬시드의 번개피해는 46%.

하지만 그게 시드로긴으로 더욱 버프되었고 126% 상승되고 방금, 뇌신으로 100%가 더 증가되었다.

합이 번개 피해 226%.

하지만 알고 있는가.

그가 지닌 벼락과 관련된 스킬들은 모두 고유효과를 지니고 있다.

〈강력한 번개피해〉

-추가 번개 피해 30%

하지만 이것들은 단순한 번개피해일 뿐.

대부분의 마법과 관련된 스킬들은 마력 스탯의 영향을 받게 된다.

현재 데몬시드의 마력은 시드로긴으로 인해 168에 육박한다. 그렇다보니 당연히 일반적인 마법 스킬조차 효과가 대폭 강화되기 마련.

"강대한 마력으로 스킬의 효과가 100% 증가됩니다!"

이 효과로 스킬을 써대면 당연히 천지가 박살나고 있었다.

폭풍이 휘몰아쳤다.

앞서 겪었던 대뢰에 버금가는 벼락이 푸리린의 터전을 모조리 박살내기 시작했다. 벼락 한줄기가 이뤄내는 파괴력과 후폭풍은 대뢰에 비할 바가 되지 못했다.

-이, 이따위 벼락으로...!!

번개를 부리는 자는 당연히 번개 내성이 높다.

그렇지 않으면 제 번개에 잡아 먹혀 죽어버리기 마련이니까.

당연히 번개를 다루는 군단장인 푸르푸르는 종족적 특성을 제외하고서라도 번개 내성이 대단히 높다.

꽤 특별한 번개를 부리고 있다지만 그녀가 번개를 두려워할 이유는 무엇 하나도 없었다.

콰아아아아앙-!!

물론, 직접 맛보기 전까진 말이다.

-꺄아아아아아악!!

생전 처음 맞아보는 벼락의 고통.

신체 전반적으로 이루어진 혈관 하나하나를 다 태우는 전류의 감각.

이는 이루말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고 치명적인 일격으로 다가왔다.

'피할 수 없다.'

권능이 봉인 당했다하더라도 자신에겐 기본적인 신체 능력과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마력이 있다.

그 어떤 강력한 공격이라도 맞지 않으면 무용지물.

허공을 밟아 뛰어오르며 내려치는 벼락이야 피하면 그만.

군단장으로 조금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지만 어쩌겠나.

전장이란 때때로 흙밭이라도 굴러서 살아남아야 할 때가 있는 법.

그렇게 자신을 자위하며 벼락을 피하려 했으나.

꽈광-!!

-꺄아아아악!!

피할 수 없었다.

푸르푸르의 턱이 미세하게 떨렸다.

'저 벼락...!'

자신을 쫓는다.

자신처럼 위치를 설정하고 내려치는 벼락이 아니다.

저 벼락은 기묘하다.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어딜 갈 셈이냐."

휘리릭, 촥!

땅 밑에서 사방으로 푸른 덩굴이 푸르푸르의 몸을 찔렀다.

푸확!

쏟아지는 푸른 피와 함께 덩굴의 독이 안으로 스며든다.

푸르푸르의 눈살이 찌푸려졌다.

-고작 이 따위걸로...!

노기를 드러내며 덩굴을 찢어내려 했다.

고작 자신의 분신조차도 제대로 붙잡지 못했던 조잡한 덩굴이었으니까.

-...!

하지만 지금만큼은 달랐다.

그 조잡한 덩굴이었던 것.

데몬시드의 벨로나는 그의 막대한 마력에 영향을 받아 이전보다 더욱 강력해져 있었다.

쉽사리 찢기지 않았다.

그 상태로 푸르푸르는 벼락을 한번 더 맞았다.

꽈아아앙-!!

-끼야야야아아아!!

통렬하게 느껴지는 일격.

전신의 세포 하나하나를 다 태워버릴 것만 같은 강렬한 일격에 푸르푸르의 동공이 흔들렸다.

상처 속으로 스며드는 강렬한 뇌격은 집요하게 혈액 속으로 파고들어 모든 것을 지지듯 고통을 선사했다.

덕분에 덩굴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타격이 너무 컸다.

저벅, 저벅.

놈이 다가왔다.

오만할 정도로 느린 걸음으로.

꿀꺽.

푸르푸르는 저도 모르게 마름침을 삼켰다.

생경한 감정이 일었다.

-너, 너...!

데몬시드는 무표정한 얼굴로 푸르푸르의 목을 잡았다.

꾸욱-!

손아귀 힘마저 어마어마하다.

쉽사리 떨쳐낼 수 없으리라 생각한 푸르푸르가 발버둥치는 사이.

그의 몸에서 붉은 전류가 퍼득였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벼락도 아니다.

그저 뇌전.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푸르푸르에게 강력한 고통을 선사했다.

그녀의 푸른 피가 사방팔방으로 튀었다.

이는 굴욕이었다.

고작 인간에게, 더군다나 자신이 가장 자신있는 번개로 이렇게까지 처참한 몰골이 되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푸르푸르의 몸에는 수많은 창이 꽂히기 시작했다.

일반적인 창부터.

수 없이 강화되고 제작된 데몬시드의 모든 창들이 종류별로 그녀의 몸에 하나, 하나 꽂혔다.

시작은 독니의 클라렌트.

서펜트의 독니로 제작한 작살과도 같은 창.

독 내성이 꽤 있는지 폭발하지는 않았지만 맹렬한 독이라는 고유효과는 그녀에게도 효과적인 독을 유발한다.

고통에 가득찬 비명이 울려퍼지고 다음으로는 적창을 꽂았다.

+6강으로 맹렬한 출혈의 효과가 있는 적창의 출혈효과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힘껏 깊게 찌르며 복부를 관통시키자 푸른 피가 분수처럼 쏟아졌다.

다음은 포착의 올바르를 꽂았고, 드레커니의 용살창 또한 꽂아 폭발을 일으켰다.

맹렬한 폭발로 그녀의 사슴으로 이루어진 하체 전반이 날아갔다.

그리고 마지막은.

-... 버러지 같은 미노우스 녀석.

미노우스의 뿔로 만든 삼지창.

[미노우스의 뿔창] (uniqe)

-명장 스미스가 자신의 은인을 위해 심사숙고하여 만든 명창.

대악마의 말석, 미노우스의 뿔로 만들어 그의 힘이 담긴 창이지만 온전한 힘을 담아내지는 못했다.

〈강화불가〉

〈치명적인 관통〉

-추가 관통 피해 60%

〈맹렬한 출혈〉

-추가 출혈 피해 50%

〈피 묻은 뿔〉

-피를 매개로 미노우스의 치명적인 뿔을 소환한다.

그것을 찌르자 놈의 몸에서 수십개의 뿔들이 피를 타고 푸르푸르의 살을 찢고 나왔다.

전신에 뿔들이 뚫고 나온 푸르푸르의 모습은 절대 좋다 말할 수 없었다.

한눈에 봐도 명을 달리한 모습.

하지만 데몬시드는 그녀의 목을 놓지 않았다.

목을 비틀어버릴 심산으로 말아쥐며 세포 하나하나까지 모조리 태워버릴 기세로 감전과 벼락을 일으켰다.

몇번이고, 몇번이고 지져진 푸르푸르는 이전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하체는 난도질당해 터졌고 상체마저 온갖 창에 다 찔려 있음에도 전신이 숯덩이가 되어 까맣게 그을렸다.

벼락과 불꽃에 의해 태워지며 안구는 터졌고 얼굴마저도 검게 그을려 태워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데몬시드는 그녀를 놓지 않았다. 감정에 지배당한 집착증세 따위는 아니었다.

어느새 목을 쥔 데몬시드의 손에서 목이 사라져 있었다. 정확하게는 머리만이 없어져 있었다.

"빌어먹을 악마 새끼."

드리운 먹구름 속의 울림이 느껴졌다.

이내 먹구름 속에서 거대한 형태가 구름을 뚫고 나타났다.

염소와 사슴이 반씩 섞인 모습.

무성한 뿔과 함께 먹구름에서 나타난 거대한 짐승의 머리가 데몬시드를 보며 조소했다.

떨어져 나간 머리가 어디갔나 했더니 저곳으로 도망갔었다.

엎친데 덮친격으로.

"판포비아의 효과가 종료됩니다."

"일부러 기다렸나."

-크큭, 당연하지 않느냐, 영원할 리는 없을테니. 네가 아무리 그분의 자애를 받고 있다해도!

쿠구궁!

푸르푸르의 무수한 뿔에서 푸른 뇌전이 퍼득였다.

권능의 봉인만 없다면 너 같은 건 아무것도 아니라는 태도였다.

그런 푸르푸르의 모습에 데몬시드는 피식 조소를 머금었다.

-죽음 앞에서 미치기라도 했는 모양이구나. 안타까워라... 그러나 너무 걱정하지마렴. 널 영원한 종복으로 부려 네 벼락을 내 것으로 할테니!

하지만 그녀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데몬시드는 미치지 않았다.

그저 우스울 뿐이었다.

"판포비아."

"판포비아가 상대를 공포로 물들입니다!"

-!!!!

32군단 군단장 푸르푸르.

그녀의 패착은, 권능의 봉인이 영원하지 않을거라 착각한 것이었다.

"이번엔 좀 죽어라."

쿠르르릉-!!

먹구름속에 드리운 거대한 푸르푸르의 짐승 머리 주위로.

시뻘건 천둥이 모여들었다.

군단장 푸르푸르 [7]

125화.

데몬시드의 눈가가 가늘어졌다.

"한번 공포에 물들었던 대상입니다. 효과가 감소됩니다."

"판포비아의 효과 지속시간이 감소되어 40초로 하향됩니다."

한번 사용했던 스킬.

공포의 특성상 한번 사용했던 대상에게 같은 효과를 중첩시키기란 요원한 듯 했다.

이 사실을 놈이 알까.

아마도 알지 않을까 싶다.

정확하게 판포비아의 지속시간이 끝난 순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놈은 악마다.

엘더라 불리는 대악마.

영악하기가 일반적으로 흉포하기만 한 악마와는 궤를 달리하는 녀석.

데몬시드는 생각해야 했다.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몸이 먼저 움직였다.

놈에게 다른 비장의 수가 있더라도 일단 시드로긴의 지속시간이 유지되고 있는 동안이라도 최대한 놈을 죽여놔야 한다는 생각이 앞섰다.

파앙-!

땅을 박차자 지면이 움푹 갈라져 튀어올랐다.

파도처럼 분출되는 용암과 함께 튀어오른 데몬시드의 신형은 빗살과도 같았고 어느새 먹구름 속에 스며든 사슴 대가리를 찾아볼 수 있었다.

-비겁한 녀석!!

"뭐가 비겁하대!"

놀란 눈으로 변한 놈이 먹구름 속으로 스며들었다.

그 거대한 머리가 먹구름 속으로 사라지자 자연히 기척도 사라졌다.

도망친 것이다.

아마도 아까처럼 판포비아의 지속시간이 끝나면 다시 나타나려는 생각일 게 뻔했다.

가만히 시간을 지체했다간 불리해지는 건 당연 데몬시드였다.

"비겁한게 누군데."

뇌신의 지속시간은 끝났다.

강력한 힘을 주는 대신, 지속시간은 현저히 짧은 스킬이라 어쩔 수 없다.

그에따라 번개 피해력도 낮아졌지만 시드로긴의 효과는 아직 유효하다.

데몬시드는 지팡이를 꺼냈다.

기시기시의 지팡이였다.

이 지팡이에 내장된 스킬.

라이트닝 오브를 사용하기 위함이었다.

전세는 역전됐다.

그러나 아직도 이곳에는 악마가 숨쉬고 들끓으며 숨죽이며 호시탐탐 네피림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다.

게다가 이전에 사용해봤을 때.

오브는 사용하기 나름.

먹구름 속에 만들어내도 그 효과는 유효함을 알고 있었다.

아무리 내장된 마법이라도 사용자의 마력에는 영향을 받는 법.

"라이트닝 오브."

15일에 한번 사용이 가능한 마법.

라이트닝 오브가 발현됐다.

쿠구구구궁-!!

푸르푸르가 숨은 먹구름이 회오리치기 시작한다.

"라이트닝 오브가 카탈린의 감전과 융화됩니다."

"라이트닝 오브가 강화됩니다!"

그 속에서 붉은 오브가 괴물을 눈알처럼 나타났다.

콰과광-!!

고막을 진탕시키는 우레소리가 천지를 진동시켰다.

12발의 벼락을 뿜어내는 뇌격과 다르고 벼락과는 다른 라이트닝 오브.

동그란 구체.

오브에서 뿜어지는 분수같은 벼락이 사방으로 뿌려지기 시작했다.

존재 자체가 자연재해나 다름없는 규모의 오브.

아무렇게나 뿌려지는 오브의 파괴력에는 데몬시드조차 마른침을 삼켰고 이내 놈 또한 모습을 드러냈다.

-크아아악! 빌어먹을!! 어째서 네놈이 일족의 마법을 아는거냐!

먹구름 속에서 공격당한 푸르푸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데몬시드는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양손에는 투창을 위한 창이 준비되어 있었다.

왼손에는 명중률을 높여줄 포착의 올바르. 오른손에는 초기부터 애용하던 카탈린의 적창이었다.

놈이 나타남과 동시에 던졌다.

물론, 벼락의 기운을 담은 채였다.

찌를듯한 굉음을 자아내며 날아간 붉은 벼락창.

그것이 긴 꼬리를 늘어뜨리며 푸르푸르의 눈알에 박혀 들었다.

퍽-!

-크아아아아아!! 네놈! 네놈이!!

터져버린 눈알에 박혀든 적창.

데몬시드는 곧장 전이하여 적창의 지지삼아 나타났다.

파직!

카이삭스의 표식에 따라 라이트닝 노바가 펼쳐진다.

넓게 퍼지는 노바와 함께 데몬시드는 미노우스의 뿔창으로 터져버린 안구 속을 한번 더 찔렀다.

아니, 찌르려 했다.

"시드로긴의 효과가 종료됩니다."

"시드로긴의 부작용이 시작됩니다."

"모든 능력치가 20% 하락합니다."

"능력치 하락으로 '비틀린 땅'의 저주에 노출됩니다."

"!!"

힘이 빠지기 시작했다.

연거푸 많은 스킬들을 쏟아낸 상태.

마나는 고갈되었고 체력 또한 꽤 낮아진 상태다.

카탈린의 스킬들은 마나와 체력 둘을 동시에 소모시키기 때문이다.

또한 능력치의 하락과 저주의 작용으로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머리가 어지럽고 몸이 무거웠다.

'위험해.'

겨우 단 한걸음.

이 창 하나만 꽂으면 될 일이었다.

하지만 억지로 강화한 몸의 부작용이 찾아와버렸다.

직감이 경종을 울린다.

안된다.

"흐아아아아아아!!"

푹! 어렵사리 창을 찔러 넣었다.

'힘이 부족해...!'

하지만 부족하다.

피 묻은 뿔을 발동시키기 위해서는 이것보다 더 깊게 박아야 한다.

안된다.

힘이 들어가질 않는다.

놈의 살이 단단하기 때문이다.

터진 눈알 속으로 찔러 넣었는데도 일정 이상 들어가지 않았다.

'안돼.'

절망이 엄습했다.

시드로긴의 지속시간은 끝났고 판포비아의 효과도 이제 끝나간다.

판포비아의 효과가 끝나면 놈의 권능이 돌아온다. 권능이 돌아오면 더이상 놈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이는 곧 죽음으로 이어진다.

마나도 거의 떨어졌다.

푸른 성수는 있지만 마실 틈이 있을 리 없다. 성수를 꺼내는 순간 놈은 눈치챌 것이다.

그리고 거세게 저항할 것이다.

그럼 끝이다.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하던 찰나.

-너, 힘이 떨어진게로구나.

"..."

푸르푸르의 입꼬리가 올라간다.

터진 눈꼬리가 곡선을 그린다.

놈이 눈치채고 말았다.

어떻게 할까.

잠깐의 시간.

찰나의 시간만 있더라면.

아니, 이 미노우스의 창을 놈의 머리 깊숙이 박아 넣을 수만 있다면!!

그때였다.

"어이, 좀 버겁냐?"

"가면!! 미룡!"

그리고 레아까지였다.

그들은 가고일의 가면을 쓴 녀석의 등에 업혀 하늘로 날아왔다.

미룡의 꼬리는 죄다 잘려져 재생이 힘들고 눈 한쪽이 터져 있었지만 기세가 꺽이지는 않았다.

가면 소드 또한 팔 한쪽을 잃고 가슴에 커다란 상흔을 입었지만 입은 실실거리고 있었다.

"너만 활약하게 둘 수는 없지! 안 그러냐! 팬더년!"

"당연하지."

다 꼴이 말이 아니었지만 이렇게 든든할 수가 없었다.

"막타치러 왔나?"

"당연하지."

"내가 가져간다!"

-날벌레 같은 놈들! 꺼져라!!

크게 울어대며 머리를 흔든다.

"어이! 똥양인들!!"

가면소드가 레아와 미룡을 데몬시드에게 던지며 소리쳤다.

"러시아는 이제 너희에게 빚 없다!"

돌연 가고일의 날개를 펄럭인 가면소드가 한손에 대검을 들고 막무가내로 푸르푸르의 얼굴을 난도질하기 시작했다.

어그로를 끌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와 동시에.

"판포비아의 효과가 종료됩니다!"

"대악마의 권능이 되살아납니다!"

판포비아의 효과가 끝났다.

이내 푸르푸르가 힘을 되찾았다.

가면소드의 힘겨운 검격에도 푸르푸르는 아무런 피해를 입지 않았다.

권능이 돌아왔기 때문이었다.

시간이 없었다.

"크아아악!! 빨리해라, 똥양인 자식들아!!"

"가면!!"

콰광-!!

가면소드가 푸르푸르의 번개에 당했다.

휘둘러대던 남아 있던 마지막 손까지 잘려나갔다.

동시에.

-날벌레 따위.

콰직!!

푸르푸르에게 물어 뜯겼다.

"데몬시드!! 빨리이이이!!"

푸확! 피 토하며 외치는 가면.

하체 전반이 푸르푸르의 입안에 있었다.

데몬시드는 손에 쥔 창에 힘을 줬다. 마나도 체력도 끝물.

하지만 손에 쥔 창에 레아와 미룡의 손이 힘을 더한다.

그들에게 더 이상 뒤는 없었다.

죽더라도 찔러야 한다.

"빨리!"

"화성님!"

레아의 피의 축복이 발동된다.

미룡의 꼬리가 재생된다.

일순 그녀의 하나뿐인 눈이 세로로 길게 찢어지며 파충류의 그것처럼 변하기 시작했다.

드러난 피부 위로 비늘이 돋아났다.

울컥, 피를 토했다.

꽤 무리한 기술을 사용한 듯했다.

"흐아아아아아아아!!"

미룡의 괴성.

레아의 기합과 함께 죽을 힘을 짜내는 데몬시드의 함성이 울려퍼진다.

그리고 이내.

푸욱-!!

"피 묻은 뿔을 전개합니다."

-아 안돼...!

푸르푸르가 불길함을 직감했다.

푸욱 찔러들어오는 하나의 창.

하지만 그것이 피를 타고 흐르는 모종이 기운을 그녀는 느낄 수밖에 없었다.

-이러지 말아다오. 나는 네 어미가 되어줄 수 있다! 너, 너를 위해 목숨을 바칠 수도 있어! 나는 널 버린 너의 부모와는 달라!!

살기 위해 뱉어낼 뿐인 말들.

데몬시드는 앞서 경험했다.

놈의 말에 마음이 동하는 순간, 그 대가가 어떻게 돌아오게 되는지를.

"그럼 바쳐. 네 목숨."

놈의 거대한 머리 안에서부터 피를 타고 미노우스의 의지가 전개된다.

바이러스처럼 퍼진 피의 뿔은 단단하게 자리잡고 식물처럼 성장하며 놈의 머리를 뚫고 나왔다.

-안돼! 안돼에에에에!! 이럴 순 없어! 이럴 순 없다!! 내가 고작! 고작 인간 따위한테!! 난! 난 군단장이다!! 32군단의 군단장! 푸르푸르란 말이다! 고작! 고작 인간따위에에게게게!!

콰르릉-!!

뇌전이 사방팔방으로 휘몰아친다.

하지만 이는 죽기 직전의 발광일 뿐.

죽어도 죽인다.

"죽어!"

푹! 푸푸푸푸푹!!

거대한 머리에서부터 쏟아져 나오는 미노우스의 뿔이 빼곡하게 가득찼다.

"치명적인 관통이 적용됩니다."

"맹렬한 출혈이 적용됩니다."

"피 묻은 뿔이 32군단 군단장 푸르푸르의 핵을 파괴합니다!!"

콰직, 콰지직!! 콰앙-!!

풍경이 유리 조각처럼 깨져 무너져 내린다.

"위대한 업적이 천상의 하늘에 새겨집니다."

"수많은 세월, 더없는 세계에서 그 누구도 이루지 못한 업적을 달성해냈습니다."

"32군단 군단장 푸르푸르가 영원한 잠에 빠집니다!"

"천상과 지옥에 당신의 위명이 널리 퍼집니다."

"천상에서는 당신의 이름을 부르며 찬양하고 희망을 노래할 것이며, 지옥에서는 당신의 이름을 두려워하며 기피할 것입니다."

"대악마의 죽음은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는 인류에게 더 없는 희망의 횃불이 될 것입니다."

"대악마와 싸운 전사들에게 보상이 지급됩니다."

"데몬시드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카탈린의감전 레벨이 상승합니다!"

"레이드에 참여한 상위 10명에게 엘더 잉걸불이 지급됩니다."

"레이드에 참여한 상위 3명에게 천상의 헤일로가 지급됩니다."

"군단장을 토벌한 당신에게 특별한 보상이 주어집니다."

"화성님!!"

힘없이 떨어져 내리는 데몬시드를 레아가 공중에서 안았다.

손끝 하나 까딱할 힘이 없다.

마나 탈진이었다.

'아.'

모든 풍경이 무너져 내린다.

지옥의 땅이 정화된다.

먹구름은 걷히고 햇살이 드리운다.

용암이 들끓는 열기의 땅은 차츰 식고 새파란 풀이 돋아났다.

차게 식어가는 몸이 따뜻해진다.

"화성님, 해냈어요! 이겼어요!"

레아의 머리 위가 빛난다.

붉게 빛나는 찬란한 고리.

그녀의 헤일로였다.

피처럼 붉었으나 은은한 후광이 자리한 레아와 퍽 어울리는 헤일로.

어느새 그녀의 얼굴과 온몸에 흘렀던 상처 자국은 사라진지 오래였다.

그것은 그녀 본인만이 아닌, 주변에게도 광대하게 흐르는 모양.

데몬시드의 상처도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걸 보면 말이다.

하지만.

'날지는 못하나 보네.'

헤일로에 비행 능력이 있는 건 아닌 듯 했다.

떨어지는 속도가 그대로인 걸보면 알 수 있었다.

쾅!!

"크윽, 더럽게 아프네."

데몬시드의 말이 아니었다.

그의 밑에는 바바리안과 한국 네피림들이 있었다. 떨어지는 그와 레아를 받아주기 위해서 다친 몸을 이끌고도 그들을 받아냈다.

"우리, 이겼나?"

멍청한 데몬시드의 말에 근처의 네피림들은 모두 씨익 미소 지었다.

데몬시드는 하늘을 향해 움켜쥔 주먹을 높게 들었다.

우리는 승리했다.

그리고 계속 승리할 것이다.

지금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상처뿐인 영광 [1]

126화.

빛 한점 들어오지 않는 심연.

그 속에 잔뜩 웅크리고 있는 상처 입은 짐승이 있었다.

들숨과 날숨의 움직임만이 짐승이 살아 있음을 알게 해줬다.

짐승의 등은 피와 고름으로 가득차 있었는데 바닥에는 떨어진 살점과 핏물로 흥건했다.

스윽.

이내 짐승이 뒤돌았다.

날 향해 똑바로 바라보며 말했다.

-잘했다. 나의 아들아.

흠칫!

벌떡 잠에서 깬 나는 어두운 밤하늘을 보며 놀랐다.

하지만 이내 횃불과 지어진 막사를 보며 안심했다.

"왜, 젊은 처녀가 아니라 노인네가 있어서 실망했나."

"아니라고는 말 못하겠네요."

"껄껄!"

내 옆을 지키고 있는 건 브란스였다.

"푸르푸르는 죽었습니까."

다시금 묻자 브란스는 꽤 놀란 눈으로 날보더니 이내 답했다.

"죽었지. 자네가 죽였잖나."

"그렇군요."

알고 있다.

시스템 메시지는 어제 보았던 그대로였으니까.

하지만 묻고 싶었다.

물어 대답을 듣고 싶었다.

그뿐이다.

"기적같은 일이지. 인간이, 아니 인류가 대악마를 죽여버렸으니까."

브란스는 막사 지붕에 걸려 있는 랜턴을 보며 감회에 젖은 듯 눈시울을 붉혔다.

"자네는 희망이네. 등불이야. 인류에게도, 저 높은 천상에게도."

"금칠해봤자 나오는 거 없습니다."

침상에서 일어나자 온 근육과 뼈가 욱신거렸다.

꽤 무리한 신체 능력의 버프로 인한 부작용임이 분명했다.

"좀 더 누워있게. 밤공기는 아직 차고 해야 할 일은 산더미네."

"레아는, 다른이들은 어딨습니까."

"레아 양은 다친 이들을 치료하고 있지. 헤일로가 생겨서 한번에 많은 사람들에게 기적을 선사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더군. 신비한 일이지."

헤일로.

맞다.

정신을 잃기 전, 레아의 머리 위에 떠오른 붉은 헤일로를 보았다.

"그렇습니까."

"표정이 별로 좋지 않군. 왜 그러나. 대악마까지 처치한 영웅이."

레아가 헤일로를 받은 건 분명 축하할 일이다. 세명 밖에 받지 못할 보상이 바로 헤일로였으니까.

하지만 그걸 레아가 받았다는 뜻은.

"러시아의 1위는 죽었습니까."

내가 묻자 브란스는 미간을 좁히다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한 일이었다.

레아가 강하다 한들, 러시아 1위보다 강하지는 않을거다.

한데도 레아가 보상을 받았다는 뜻은 그가 죽었기 때문일 게 뻔했다.

마지막 기억을 떠올려도 그렇다.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 억지로 어그로를 끌다 결국엔...'

아직도 눈을 감으면 잊혀지지 않는다. 피 흘리며 소리치던 러시아 1위.

가면소드의 마지막 모습을.

"대악마를 상대로 한 전투였네. 죽은 이는 셀수 없이 많지. 그러나 우리는 승리했네."

브란스는 내 손을 잡았다.

"각자의 역할이 있는 것이네. 너무 개의치 말게나."

"예. 그렇죠."

수많은 네피림들이 있었다.

그들이 있었기에 난 다른걸 신경쓰지 않고 군단장과 싸울 수 있었다.

군단을 지휘하는 푸르푸르를 나 홀로 대적할 수는 없을테니 말이다.

마지막 일격도 나 혼자서는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날 도운 이들이 있기에 가능했다.

브란스의 말대로다.

각자의 역할이 있다.

그 역할을 수행하다 전사한 것이다.

"오크들의 말을 빌리자면 그들은 전사는 명예로운 죽음이었네."

명예로운 죽음.

그것에 대해 고심하고 있자 브란스가 품에서 약병을 하나 꺼냈다.

"그러고보니 시간이 나지 않아 미쳐 주지 못했어. 이거 받게."

"뭡니까."

"흰숲의 현자, 특제 엘릭서네."

씨익 미소 지으며 말하는 모습이 꼭 돌팔이 의사 같았다.

"엘릭서요?"

"드셔보시게. 내 그동안의 연구가 거기에 다 담겨있으니."

작은 약병이었다.

엄지 손가락만한 길이의 유리병.

하지만 안에 들어 있는 물약은 꽤 오묘한 빛을 자아내고 있었다.

보라색과 남색이 섞인 색에 미묘하게 반짝이기까지 했으니 말이다.

"그냥 먹으면 됩니까?"

"그렇대도. 이미 실험은 마쳤네. 아마 깜짝 놀랄 것이야."

이렇게까지 자신하니 먹지 않을 수 없다.

이내 엘릭서라는 걸 한입에 들이키자 놀라운 변화가 찾아왔다.

"용장이 발휘됩니다!"

"강골이 4 상승합니다!!"

"생명력과 마나가 회복됩니다!"

"1시간 동안 전체 능력치가 10% 상승합니다."

"?!"

"어때? 놀랍지?"

깜짝 놀랐다.

그동안 악과 가지고 자꾸 뭘하나 했더니 이런걸 만들고 있었다.

"우선은 썩어 넘치는 해골기사의 오디로 만들어봤네. 물론 시행착오를 겪느라 꽤 많은 악과를 날려 먹기는 했네만, 그래도 결과물을 보니 만족스럽지 않나?"

"좋네요..."

오디 하나를 먹을 때 0.01의 수치가 오르는 걸로 안다. 하지만 이게 먹는 것도 일이고 먹다보면 배가 불러서 더 먹지 못하는 일이 자주 있다.

더군다나 내 농장에는 오디 말고도 다른 악과들이 차고도 넘친다.

악과들의 생김새는 천차만별이고 그중에는 유달리 크고 포만감을 가득 채우는 과일들도 많다.

그러다보니 능력치의 상승폭이 낮아질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배불러서 능력치를 못올리고 있는데 브란스의 엘릭스가 있다면 능력 상승을 한층 더 가파르게 올릴 수있는 것이다.

"이거 레이드 전에 주셨으면 좋았던 거 아닙니까?"

"아, 그게... 임상실험을 해봐야 했어서 어려웠네. 군단장과 싸우기 전인데 탈이라도 나면 어떡하겠나. 인류의 명운이 달린 일인데 신중의 신중을 기해야 했어."

"그렇군요."

어쨌든 엘릭서 한번에 강골이 4나 올랐다.

난 용장 때문이라지만 다른 사람들은 적어도 2는 오를 것이다.

이번에 강골에 대한 효과도 봤다.

신체가 버티지 못할 도핑에도 강골이 있기에 굳건히 버텨주었다.

"엘릭서 하나에 오디가 몇개나 들어간겁니까?"

해골기사의 나무 한그루에 오디가 수백개는 열린다.

기본적으로 계산해보면 100개는 먹어야 강골이 1은 오를 터.

2가 올랐으니 200개는 소비되었으리라 보는 게 맞다.

"500개 정도네."

"... 너무 효율이 안 좋은게 아닙니까?"

"어쩔 수 없네. 농축하며 날아가는 양도 적지 않아서 말이야. 게다가 브릭서는 버프 효과도 있지 않나."

"브릭서요?"

"브란스의 이름을 따서 브릭서. 꽤 좋은 이름이지?"

"아, 예. 뭐..."

이름이야 뭐 상관은 없으니까.

"지금은 오디만 가능하지만 이후에는 다른 악과들도 전부 브릭서로 만들 수 있을 걸세."

"알겠습니다."

가능성이 보였다는 게 중요하다.

브릭스로 만든다면 보관도 용이하고 단기간에 빠르게 강해질 수도 있을테니까 말이다.

"하나 만드는 데 얼마나 걸립니까."

이제는 수량과 소요시간의 문제.

"하나에 일주일은 걸리네."

"오래 걸리는군요..."

"오래라니! 엘릭서가 7일에 하나 만들어지는건데 엄청 빠른거지!"

그럴지도 모르겠다.

"물론, 연구 시설을 대량으로 증축한다면 수량은 문제가 없겠지."

이는 또 반가운 소리였다.

"필요하신 게 있으면 뭐든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호오! 그런가? 알겠네. 나중에 말 바꾸기 없기네!"

"예. 그럼요."

음흉한 웃음이 썩 불안하기는 하지만 상관없겠지.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브란스의 브릭스는 내게 큰 도움이 된다.

"이럴 때가 아니군. 그럼 난 먼저가서 연구를 이어가겠네. 여기서 내가 따로 할 일이 있는 것도 아니니."

"알겠습니다."

브란스는 곧장 포탈로 기부도로 돌아가버렸다.

조용해진 막사 안.

바삐 움직이는 사람들의 발소리와 말소리가 조금씩 들려왔다.

나름의 백색 소음을 즐기며 시스템 메시지를 점검했다.

"레벨이 한번에 둘다 오른 건 처음인데. 역시 군단장이란 건가."

데몬시드와 카탈린의 감전의 레벨이 한번에 모두 올랐다.

이제는 레벨 6.

데몬시드도 카탈린의 감전도 새로운 스킬을 배울 수 있다.

일단은 카탈린부터.

〔카탈린의 뇌령〕

〔카탈린의 자기장〕

뇌령과 자기장이라는 게 나왔다.

카탈린의 기프트는 본래 선택지가 나오지 않았는데 6렙이 되어서일까.

선택지가 나왔다.

뇌령과 자기장.

아마도 이게 분기점이 될 스킬들이 아닐까 싶다.

'자기장은 푸르푸르가 썼던 쉴드 비슷한거네.'

〔카탈린의 자기장〕

-피로 연동되는 자기장을 만들어 피해를 감소시킨다.

몸의 보호를 위한 스킬이었다.

나쁘지 않다.

베리어의 위력은 푸르푸르가 사용한 걸 그대로 봤으니까.

명중 스탯이 존재하지 않으면 웬만한 공격을 전부 무력화시키는 위력을 똑똑히 지켜봤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게 내게 필요할까.

물론 있으면 잘 쓸거다.

하지만 내게는 표식이 있다.

상대의 공격을 막기보다는 피하는 쪽으로 되어 있는 스킬이 이미 있다는 뜻이다.

그런데 굳이 자기장을 선택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구심이 든다.

그에 반해.

〔카탈린의 뇌령〕

-뇌에 령이 깃든다.

이 얼마나 단순한 설명인가.

하지만 난 안다.

이 새끼들은 설명이 단순할수록 강력한 힘을 내포하고 있음을!!

자기장이 조금 아쉽긴했지만 난 단번에 뇌령을 골랐다.

딱 봐도 성장형.

그도 아니라면 자율형이라서 전투에 반드시 도움이 될 녀석이다.

'공격은 다 피한다는 마인드.'

"카탈린의 뇌령을 배우셨습니다."

"번개피해가 10% 증가합니다!"

딱히 설명이 달라지거나 하지는 않았다. 일단 한번은 사용해보고 정확한 판단을 내려야할 거 같다.

"좋아. 일단 다음은..."

데몬시드.

내 근본 기프트 차례였다.

〔딕스트립〕

-모든 데몬트리는 당신의 눈과 귀가 되고 뿌리가 이어져 이동이 가능해 진다.

〔시드네스〕

-자신을 씨앗으로 만들어 새롭게 태어난다.

〔네메시스〕

-데몬트리의 영혼을 정화시켜 이 땅에 축복을 일으킨다.

데몬시드의 새로운 스킬은 세가지.

무엇 하나 버릴 것 없는 장점들만 가득한 스킬들로 보였다.

딕스트립은 내가 성장시킨 나무들이 내 눈과 귀가 되어 광범위한 정보 수집은 물론, 텔레포트 또한 사용하게되어 여러 사건에 용이해 보인다.

"대체품이 있어서 굳이 필요한 부분은 아니지."

분명 좋은 스킬이기는 하지만 정보 수집과 관련된 건 굳이 내가 하지 않더라도 된다.

나무와 나무로 이동하는 것도 포탈스크롤이나 표식이 있으니까.

다음은 시드네스.

나 자신을 씨앗으로 만든다는 스킬은 신비롭기 그지 없다.

"새롭게 태어난다는 게 뭘까."

일반적으로는 치료 불가한 상처나 저주를 지우고 새롭게 태어나거나 가진 스킬이나 스탯을 초기화시키고 새롭게 찍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더불어 더욱 강화된 상태로.

"의문점들이 너무 많아."

일반적이지 않은 스킬이다보니 예상 범주가 너무 넓다.

섣불리 선택하기에는 많은 리스크를 지닌 스킬이었다.

하지만 그 잠재력 또한 높이 평가할 수밖에 없어 보였다.

"마지막은 네메시스."

데몬트리의 영혼을 정화시킨다.

이는 악마의 혼을 정화시켜 이 땅에 축복을 일으킨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축복의 효과.

그 범위는 아마도 나무가 된 악마 본체의 능력에 한해서 편차가 있어 보인다.

"네메시스..."

일반적인 버프 스킬로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주목해야 할 점은 바로 땅이라는 점이다.

전투 버프라기보다는 농사에 관련된 광역 버프이지 않을까 싶다.

예를 들다면 '생산 능력 30% 증가!' 같은 느낌으로 말이다.

요새들어 제물성장으로도 성장시키기 힘들어지기 시작했기에 네메시스가 주는 버프 효과로 악과의 생산량을 늘릴 수 있다면 썩 나쁘지 않다.

"브란스의 브릭스는 효율이 썩 좋지 않으니까..."

대량의 악과가 필요해질거다.

소모량을 지금의 생산량으로 따라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흠, 뭐가 좋으려나."

시드네스와 네메시스.

둘 중 하나를 골라야만 할 거 같다.

물론, 내 마음은 아까부터 한쪽으로 기울어지고 있기는 했다.

"시드네스."

내 감은 시드네스를 찍으라고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먼저.

"헤일로만 확인하고 결정하자."

대망의 헤일로만 확인한 후에 결정해도 늦지 않을테니까.

상처뿐인 영광 [2]

127화.

헤일로.

천사를 상징하는 고리.

엘더 레이드 보상으로 지급된 헤일로를 확인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엘더 레이드 기여도 1위로 찬란한 헤일로가 지급됩니다."

"헤일로 당신과 함께 성장합니다."

"헤일로는 천상의 기적을 선사합니다."

"당신이 지닌 잠재력과 힘들을 기반으로 이 세상에 하나뿐인 헤일로가 탄생합니다."

"당신의 헤일로가 결정됩니다."

[붉은 가시덩굴의 관]

-천상의 힘이 담긴 헤일로.

〈신의 사자〉 『9급』

-신체에 천상의 힘이 깃듭니다.

모든 능력치 100% 상승. 회복력 100% 상승. 모든 속성내성 100% 상승.

〈붉은 가시덩굴의 굴레〉 『9급』

-무한하게 솟아나는 가시덩굴의 성역을 만든다.

출혈 100% 증가.

번개 피해 100% 증가.

적의 피를 흡수하여 생명력으로 전환, 헤일로가 완전히 붉게 물들 시 모든 능력치 100% 증가.

모든 스킬에 적용.

"붉은 가시덩굴?"

신의 사자라는 건 헤일로의 기본 능력치인 듯 보였다.

9급이라고 써져 있는 걸보면 강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할 것이다.

중요한 건 그 아래.

붉은 가시덩굴의 성역이다.

나 스스로 성역을 만든다.

일종의 나만의 결계를 만든다고 이해하면 될 것 같다. 그 안에서는 적혀 있는대로 전투 효과 버프.

데몬시드와 카탈린의 감전이 크게 적용되어 만들어진 헤일로 같았다.

무한히 솟아나는 가시덩굴.

출혈 효과와 번개 피해.

그리고 적의 피를 내 힘으로 만드는 능력은 레아가 지닌 기프트와 조금 흡사하다고 볼수도 있었다.

"가시덩굴... 벨로나 때문인가."

헤일로 자체에 이런 능력이 생긴다면 이제 벨로나의 입지는 낮아질 수밖에 없었다.

헤일로는 딱히 사용제한이 있는 녀석도 아니었으니까.

"그녀가 강한 의지를 투철합니다."

"벨로나가 헤일로와 결합됩니다."

"뭐?"

"붉은 가시덩굴의 굴레가 벨로나의 굴레로 변경됩니다."

"벨로나의 능력이 붉은 가시덩굴의 굴레에 맞춰 소폭 상승됩니다."

"아니, 로나로나야... 질투하는거야 뭐야. 어떻게 한건데?"

"'벨로나의 굴레' 급수가 크게 상승합니다."

〈벨로나의 굴레〉 『7급』

-무한하게 솟아나는 벨로나의 가시덩굴의 성역.

*관통력 150% 증가.

*출혈 150% 증가.

*번개 피해 150% 증가.

*적의 피를 흡수하여 시전자의 생명력과 마나로 전환.

*헤일로가 완전히 붉게 물들 시, 모든 능력치와 속성력 150% 증가.

*모든 스킬에 강화 적용.

"미치겠네."

급수는 7급으로 바뀌었다.

출혈과 번개피해가 높아졌고 적의 피를 흡수하여 생명력과 더불어 마나까지 회복되게 바뀌었다.

헤일로가 붉게 물들게 되면 모든 능력치와 속성력이 150% 상승하게 됐고 다른 모든 스킬에도 이와 같은 버프가 강화 적용되게 되었다.

아직 얼떨떨한 느낌이지만 썩 나쁘지 않게 적용이 된 듯하다.

아니, 훨씬 좋아졌다.

뭐가 어떻게 된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헤일로와 벨로나가 어찌저찌 합쳐진 모양이었다.

솔직히 나로서는 전혀 나쁠 게 없다.

벨로나는 단순한 가시덩굴에서 이제 무한히 솟는 가시덩굴이 됐을 뿐.

강화 또한 가능하다.

"급수는 근데 어떻게 올리는거지."

시스템 창을 찾아보자 헤일로를 강화할 수 있는 칸이 새로 생겼다.

[헤일로 강화] -엘더 잉걸불 필요.

강화하기 위해서는 엘더 잉걸불이 필요한 모양이었다.

그러고보니 푸르푸르를 잡고 엘더 잉걸불을 보상으로 받기도 했다.

인벤토리를 뒤져보니.

"10개 정도 있네."

미노우스 분신 잡았을 때는 꼴랑 하나밖에 안 주더니 이번엔 10개나 받았다. 10개도 좀 적은 게 아닌가 싶지만 다 나눠가졌으니 아마도 내가 제일 많이 받았을 것이다.

엘더 잉걸불은 이대로도 가치가 있다. 당연하게도 스킬을 강화하는데 사용할 수 있으니까.

아마 헤일로를 지급 받지 못한 사람들은 그렇게 스킬을 강화했겠지.

"물론, 난 이제 아니지만."

제물을 좀 많이 먹는 녀석을 이용하면 대부분의 스킬을 강화할 수 있다.

헤일로의 강화에 잉걸불이 필요한데 스킬 강화를 할 수는 없다.

"강화."

"벨로나의 굴레를 강화합니다!"

"엘더 잉걸불 3개가 소모됩니다."

"성공적으로 강화했습니다!"

"벨로나의 굴레가 6급이 되었습니다!"

머리 위의 헤일로가 잠깐 반짝거리며 빛이 터져나왔다.

이런 식인 모양이다.

"6급에 3개... 5급은 4개군."

일곱개가 있으니 한번 더 강화가 가능했다. 안 할 이유도 없다.

"엘더 잉걸불 4개가 소모됩니다."

"벨로나의 굴레가 5급으로 성장하였습니다!"

3개가 남았다.

4급 성장은 5개가 소모되니 신의 사자 급수를 올리는 게 낫다.

"'신의 사자'가 8급으로 성장하였습니다!"

"'신의 사자'가 7급으로 성장하였습니다!"

끝.

깔끔하다.

[붉은 가시덩굴의 관]

-천상의 힘이 담긴 헤일로.

〈신의 사자〉 『7급』

-신체에 천상의 힘이 깃듭니다.

모든 능력치 120% 상승. 회복력 120% 상승. 모든 속성내성 120% 상승.

〈벨로나의 굴레〉 『5급』

-무한히 솟아나는 가시덩굴의 성역.

*관통력 200% 증가.

*출혈 200% 증가.

*번개 피해 200% 증가.

*적의 피를 흡수하여 시전자의 생명력과 마나로 전환.

*헤일로가 완전히 붉게 물들 시, 모든 능력치와 속성력 200% 증가.

*모든 스킬에 강화 적용.

"좋아."

헤일로도 정리됐겠다.

데몬시드의 스킬은 역시 시드네스로 찍기로 했다.

씨앗이 되어 다시 태어난다는 건 자신을 더욱 강화시킬 수도 있고, 새로운 생명을 부여받을 수도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었으니 말이다.

"시드네스를 성공적으로 배웠습니다."

[시드네스]

-자신을 씨앗으로 만들어 새롭게 태어난다.

배웠는데도 딱히 이렇다할 설명이 적혀 있지는 않았다.

직감적으로 설명이 얄팍한 스킬은 기대치가 높은 법. 몸으로 깨우친 진실이기에 일단은 덮어두기로 했다.

'지금 쓸 필요는 없으니까.'

헤일로를 사용하자 밤인데도 막사 안이 밝아졌다.

은은한 빛을 뿌리는 가시덩굴의 관이 머리 위에 떠 있었다.

당연히 아까 먹은 브릭스와 헤일로의 관련 효과 때문에 회복력이 상승되어 몸은 괜찮아진지 오래였다.

급한 일은 다 마쳤으니 해야 할 일을 할 차례였다.

날 보며 화들짝 놀라고는 이내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에게 물어 한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이미 선객이 있었다.

"... 늦었네."

미룡이었다.

중국의 1위인 그녀는 진즉부터 이곳에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다.

"무덤은, 네가 만들었나."

"응. 할 일도 없었으니까."

세상이 이렇게 변한 뒤.

웬만하면 사람을 땅에 묻지는 않게 되었다.

악마의 기운에 이끌려 언제 시체가 벌떡 일어설지 모를 세상이니까.

당연하게도 가면소드는 화장되어 뼛가루가 이 땅에 묻혔다.

"러시아로 돌려보내줘야 하는 게 아닐까 모르겠군."

그의 고향은 러시아니까.

미룡은 술병째로 내게 권했다.

무슨 술인지는 모르겠지만 냄새를 맡아보니 꽤 독한 술이다.

"여기서 죽은 놈 잘못이지. 애초에 러시아는 너무 멀잖아."

툴툴거리는 미룡의 말은 왠지, 보러가기 너무 멀다는 듯 들렸다.

한번씩 생각 날 때마다 들리겠다는 듯 들려서 난 조금 웃었다.

"왜 웃어?"

"그냥."

멋없게 털어낼 필요는 없겠지.

그녀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나름의 방식으로 그에게 정이 들었던거라고 생각한다.

"명예로웠다."

"... 그래."

브란스의 말을 빌렸다.

명예로운 죽음이라는 그 말을.

아까도 그랬지만, 이 말은 남은 자들을 위해 하는 말 같았다.

죽은 자는 말이 없는 법이고, 산 자는 떠들어대기 마련이다.

하지만 산 사람은 살고, 죽은 사람은 말이 없으니 이 모진 세상을 이겨내기 위해서는 명예롭다는 말을 해야만 할 거 같았다.

그렇지 않으면 서글픈 마음이 전신을 지배할 거 같았으니까.

"시드."

"응."

"내가 죽으면 내 뼈 한줌은 중국에, 한줌은 이곳에 뿌려줘."

"재수없는 소릴."

"평생 사는 사람은 없잖아."

"그걸 왜 나한테 부탁해."

"나보단 네가 더 안 죽을 거 같아서."

똑바로 쳐다보는 미룡의 눈을, 난 어째서인지 피해버렸다.

"우리 막둥이 귀엽네."

"누구보고 막둥이래."

"아니야?"

"저놈이 막둥이지 이젠."

이빨 빠진 대검이 꽂혀진 무덤.

가면 놈이 직전에 사용했던 검이었다. 이제는 비석 대용이 되었지만.

한참을 우린 서로 비석을 바라보며 술병 하나를 번갈아 마셨다.

남은 술을 대검에 쏟은 미룡은 이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가는거냐."

"응. 가야지. 너 일어나는 거 봤으니까. 더 있을 이유도 없고."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고 있자 미룡이 주변을 돌아보다 말했다.

"여기는 이제 어떻게 되는걸까."

북한을 말하는 것이었다.

"글쎄."

이 땅에 대해 시스템은 침묵했다.

악이 걷히고 정화되었다고는 하나, 모든 악마가 사라진 건 아니다.

"일단은 중립지역 아닐까."

악마도 인간도 아닌 땅.

살고있던 이 땅의 사람들은 대부분 죽어버렸다. 당연히 역사적으로 대한민국의 영토이니 우리의 것이 맞다.

하지만 지금 그 권리를 주장해봤자 이 넓은 땅을 관리할 역량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크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한다.

차차 삶이 나아지면 누군가 살게되고 개발이 되어 터전을 꾸리겠지.

물론 그때가 올지는 모르겠다.

"미국이랑 독일, 영국이 오늘 군단장 레이드에 돌입했어. 아마 며칠내로 결판이 나겠지."

"그렇군."

"승리한다면, 우리처럼 헤일로를 얻게 될거야. 더 강해지겠지."

미룡의 헤일로가 떠올랐다.

용의 비늘 모양이 인상적인 검은색 고리였다.

"헤일로의 효과를 보면 알 수 있지만 한번 얻고 나면 다른 군단장 레이드도 한결 편해질거야."

"그렇겠지."

헤일로의 효과는 편차가 있겠지만 그걸 감안해도 엄청나다.

자격이 있는 자들에게만 전해지는 일종의 증표처럼.

"헤일로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잉걸불이 필요한 거 알지?"

무슨 말을 하나 했더니.

"도와달란거냐."

군단장을 잡으면 잡을수록 헤일로는 강화되고 그럼 더 강해진다.

강해질수록 군단장 레이드는 쉬워질 게 뻔하다. 다른 강대국에게 빼앗기면 그만큼 강해질 기회를 놓친다.

이 말이었다.

"함께 싸우자는거지."

미룡은 한쪽 눈의 안대를 어루만지며 답했다.

이번 싸움으로 잃은 눈이었다.

"... 상관없겠지."

미룡은 믿을만한 녀석이다.

그녀와 가면소드가 없었다면 이번 레이드는 실패했을 수도 있었다.

그들이 조금만 겁이 많고, 자신의 안위만을 위했더라면 지금 난 이곳에 서 있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잘 모르는 타인과 레이드를 할 바엔 그녀와 함께하는 게 낫다.

"그럼 간다. 밥 잘 챙겨먹고. 궁금한 거 있으면 끙끙 대지말고 누나한테 물어보고. 알았지?"

"내가 몇살인데 동생 취급이냐."

"나이는 상관없잖아? 우리 사이에."

피식.

그만 실소를 흘려버렸다.

미룡은 그것으로 만족했다는 듯 포탈 스크롤을 찢었다.

푸른 물결이 물씬 일렁이는 포탈 속으로 들어가기 전.

미룡은 날 보며 말했다.

"누나랑 같이 갈래?"

말도 안되는 제안을 했다.

헛소리말라고 한소리하려던 찰나.

"아니요?"

나 대신 다른 이가 대답했다.

정색하는 음색.

하지만 난 이 목소리를 잘 안다.

"레아."

레아였다.

미룡은 레아와 날 번갈아보더니 이내 싱긋 미소지었다.

"난 별로 상관없는데."

"??"

"그럼 간다. 잘 지내고 있어."

"뭐가 상관없다는..."

의문을 풀어주지도 않고, 미룡은 그렇게 떠났다.

사라져버린 미룡의 포탈이 있던 자리는 황망한 바람만이 불어왔다.

"저는 상관있어요."

"... 어, 그래."

왠지 심통난 레아의 표정을 보니 어이가 없어 웃음만 나왔다.

"팔은, 괜찮아?"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

한쪽 팔이 거의 떨어져 나갈 정도로 큰 상처를 입었던 걸로 기억한다.

다시 살펴보니 조금 큰 흉터가 생겼지만 상처는 아문 상태였다.

"헤일로 덕분에 다 나았어요."

"다행이네."

폭.

레아가 내게 안겼다.

안겼다기보다는 가슴에 이마를 박은 자세였다.

"이번에는 정말 힘들었어요."

"... 그래."

허리를 꽉 안아오는 레아의 모습에 나도 머리를 쓰다듬어줬다.

"힘들었으니까, 오늘은 계속 같이 있을거에요. 온돌방이 아니라서 여기 막사는 추워요."

가슴에 박고 있는 얼굴이 화끈해진 게 다 느껴졌다.

붉고 긴 머리가 많이 상했다.

타고, 잘려진 흔적도 많다.

상처를 치료할 수는 있어도 잘려진 머리칼을 회복시키기는 어려웠나.

어떤 고생을 했는지 알수 있었다.

어떤 싸움을 했는지도 대강이나마 알거 같았다.

"그래도 되죠?"

답지않게 어리광을 피운다.

난 시선을 돌렸다.

아직 처리하지 못한 거대한 푸르푸르의 머리가 보였다.

힘겨운 전투의 기억이 떠올랐다.

한참을 움직이지 않는 놈의 머리를 보다가 결국엔 대답했다.

"그래."

나도 오늘은, 혼자가 싫었다.

상처뿐인 영광 [3]

128화.

악몽을 꿨다.

본적도 없는 어머니가 나타났다.

얼굴은 여전히 생각나지 않았다.

"괜찮아요?"

레아였다.

붉은 머리칼이 흘러내려 몸을 가리고는 있지만, 꽤 이것저것 많이 보인다.

이불을 가슴 위까지 올려주니 이내 얼굴이 붉어져 이불을 꼭 쥐었다.

"악몽을 꿨나봐."

"괜찮으신거죠?"

"괜찮아. 그냥 악몽일 뿐이니까."

그냥 악몽.

악몽일 뿐이다.

아마도 푸르푸르 때문에 괜히 마음이 뒤숭숭해져서 그런 것 같다.

'미안하다라...'

이제와서라는 말이 먼저 떠올랐다.

이제와서 어머니를 찾아봤자 아무런 의미가 없다.

긁어 부스럼일 뿐이다.

이제와서 친부모를 만난다고해서 무슨 말을 하게 될까.

왜 버렸냐, 어떻게 살았냐 등등.

의미없는 이야기만 논하게 될거다.

죽으면 죽은대로, 살았으면 산대로 머리만 아파질게 뻔했다.

'죽었겠지.'

이 난리통인 세상이다.

평범한 사람도 죽고, 강한 사람도 죽고, 악마도 죽는다. 모두가 언제 어디서 죽을지 모르는 세상인데 그 사람이라고 죽지 않았을 리 없다.

애초에 내게는 없는 사람이다.

없다치는 게 낫다.

'그보다는...'

레아를 바라봤다.

정확하게는 복부 쪽.

음, 괜한 걱정이기는 하다.

"왜요?"

"아니, 아니야."

괜한 생각이다.

"나가시게요?"

"확인할 것도 있고, 정리할 건 빨리 정리하고 돌아가야지."

언제까지 북한에 있을 수는 없다.

마음 같아서는 그냥 포탈타고 불별도로 돌아가고 싶지만 그럴 순 없다.

날 믿고 여기까지 따라온 자들이 있다.

그들도 많이 죽었다.

어떤 이는 유해조차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됐고, 또 어떤 이는 실종됐거나 먹혀 사라진 자도 있다.

최대한 그들의 유품이라도 찾아야 가족들 볼 낯이 있을테니까.

그게 아니더라도 푸르푸르의 머리도 씨앗으로 만들어야했고, 북한의 처우에 관해서도 논의할 게 많았다.

"저도 갈게요! 아으..."

일어나려던 레아가 고통을 호소했다. 어제 무리한 탓이었다.

"어, 어제 무리를 해서 그런가봐요. 잠시만요. 저 금방 치료할게요."

"쉬고 있어. 다녀올테니까."

"... 그러실래요? 저도 빨리 치료하고 싶지 않기는 해요."

이게 MZ세대인가.

괜한 머쓱함에 빠르게 막사 밖으로 나갔다.

"어이, 데몬시드. 좋은 밤 보냈나?"

"어?"

깜짝이야. 바바리안이었다.

"왜 이렇게 놀래? 밤에 혼자 뭐 맛있는거라도 훔쳐 먹은 것처럼."

"훔쳐먹긴 뭘 훔쳐먹어! 정당하게, 하, 합의하에..."

"합의하에 먹는 것도 있나?"

바보처럼 당황하고 말았다.

새파란 애처럼 이게 뭐하는 짓인지.

"... 그래서, 무슨 일인데?"

"아, 저거말이야. 빨리 치워버리고 싶어서."

"... 머리?"

"응. 저거 때문에 그런지 나랑 다른 애들도 다 악몽 꿨거든. 영 느낌이 좀 그렇잖아. 그래서 어떻게 치울지 의논좀 하려고 했지."

나만 악몽 꾼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죽어서도 존재만으로 이상한 기척을 뿌려대니 빨리 처리하는 게 옳다.

"처음엔 다들 신나가지고 사진 찍고 난리나더니, 이제는 재수 없다고 불지르자는 걸 가까스로 말렸다."

"내가 처리할게."

두고두고 보고 싶은 몰골은 아니긴 하다.

무성하게 자라난 사슴뿔. 염소인지 사슴인지 모를 모습과 섬뜩한 눈.

존재만으로 뭔가 꺼림칙함을 불러내는 불온함의 상징과도 같다.

거기다 여기저기 터져있고 상처나 있는 것은 물론, 미노우스의 뿔이 여기저기 잔뜩 자라나 있어서 기괴한 꼴이 아닐 수 없다.

더 지체할 필요도 없다.

"32군단 군단장 푸르푸르를 성공적으로 봉인하셨습니다!!"

[땅 비트는 푸르푸르의 씨앗]

성장기간-666일.

챔피언은 수식언을 얻을 수 있다.

그럼 엘더.

군단장은 뭘 주는걸까.

"수식언은 더 필요 없는데."

불과 마나번이 섞였다.

그런데 여기에 땅 비트는이 섞이게 된다면 뭐가 어떻게 될지 상상조차 하기 힘들었다.

"아니, 상관없나."

푸르푸르의 수식언.

권능은 일반적인 챔피언 급의 것과는 궤를 달리하는 파괴력을 보였다.

그저 일반적인 스킬이 아닌 일대를 아우르는... 영역.

영역 전체를 자신의 입맛대로 만들어버리는 진정한 권능이었다.

'헤일로의 성역처럼.'

군단장은 그들만의 지옥을 만든다.

지형 자체를 바꿔버릴 정도의 스케일을 다루다보니 군단장의 수식언은 챔피언급과는 사뭇 다르다.

"심어보면 알겠지."

고민해봤자 나오는 답은 없다.

심어보고, 먹어보면 될 일이다.

"바바리안."

"엉?"

"다른 녀석들은 괜찮나."

자세하게는 듣지 못했지만, 내가 정신이 나가 있을 때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 치열하게 싸웠다고 들었다.

한눈에 봐도 내 상태가 이상해 보이니 날 보호하며 싸우느라 다친 이도 있다고 들었다.

"으음... 뭐 대충 괜찮지."

대답이 영 시원찮다.

"대충 괜찮은 건 뭔데."

"몸은 다 멀쩡할거야. 많이 다치기도 다쳤지만, 아가씨가 어제 웬만한 중상자들은 전부 치료해줬거든."

아가씨는 레아를 말하는 듯했다.

"몸은 괜찮은데, 다른 건 안 괜찮다는 말처럼 들리는군."

"음... 뭐 그렇지. 아무래도 힘든 전투였잖나. 너도 우리도."

"누가 제일 상태가 안 좋은데."

"대부분 안 좋지만... 저기."

바바리안이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강철군주가 기사들과 함께 말을 타고 근처를 배회하던 악마들을 잡아 죽이고 있었다.

"쌩쌩해 보이는데."

강철마타고 힘차게 뛰어다는데 뭐가 상태가 안 좋다는 건지 모르겠다.

자세히보니 항상 은빛으로 빛나던 강철군주의 갑주가 꽤 지저분하다.

악마의 피로 물든 것도 있지만, 묻어 있는 피의 양이나 시간이 꽤 오래 경과한 듯 늘러붙어 있었다.

강철군주라는 기프트를 얻고 은발이 된 그녀는 웬만하면 전투 직후 자신의 갑옷이나 검을 정비하며 깔끔함을 유지하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저런 모습을 하고 있으니... 바바리안 말대로 상태가 썩 좋지는 않나보다.

왜 그런가 하니.

"다른 녀석은?"

"팔라딘이 죽었다."

"...그런가."

랭킹 10위였던 팔라딘.

그가 죽었다고 한다.

푸르푸르의 둥지로 돌입하기 전, 이미 한쪽 팔을 잃은 상태였다.

분노로 흥분한 상태였고 전투 중에 끝내 사망했다고 한다.

"파이어펀치도 죽었어. 울프검이랑... 혼나비는 죽다 살아났지."

파이어펀치와 울프검.

깊은 인연은 없었지만 그래도 한번씩 마주쳤던 이들이었다.

팔라딘도 마찬가지. 그들이 모두 죽었다라... 안타까운 일이었다.

남은 이들의 상태가 좋지 않은 건, 가깝게 지내던 랭커들이 죽었기 때문이리라.

항상 전장에 존재하는 네피림이 죽음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 네피림이라고는 하지만, 가까운 사람이 죽으면 우리도 슬프하고 실의에 빠진다.

나라도 그건 마찬가지다.

"글로리안은 살았나?"

"날개가 다 짤렸지만, 몸은 멀쩡해. 날개도 뭐, 금방 자라나겠지."

"그런거냐."

"기프트로 자라난 신체는 복구가 되기는 된다더라고."

"신기하군."

제일 빨리 죽었을 거 같은 글로리안은 멀쩡히 살아있다고 한다.

의외라면 의외다.

"몇명이나 죽었는지 아나."

"도망간 놈들까지 하면 대충 7천 정도 죽었을 거다."

"... 많군."

"중국이나 러시아 놈들은 거의 궤멸했잖아. 그거에 비하면 우리가 적은거지. 알잖냐. 어쩔 수 없는 거."

"그래."

알고 있다. 어쩔 수 없다는 걸.

죽음 앞에 자유로운 사람은 없다.

전장으로 향하는 그때부터 당연히 죽을 각오를 하고 가는거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입맛이 쓰다.

내가 정신을 잃지 않았다면?

전투 중에 놈의 말에 현혹되지 않았다면 조금은 더 살릴 수 있었을까.

더 안 죽지 않았을까하는 미련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돈다.

"시드님. 여기 계셨습니까."

관찰자였다.

"왜."

"봐주셔야 할 게 있습니다."

"뭐길래?"

그를 따라가보니. 처음 푸르푸르의 분신을 만났던 장소로 향했다.

그곳에는 부서진 이 땅의 옛 상징이 자리하고 있었다.

"동상이잖아."

다 부서진 동상이었다.

북한을 통치? 지배했던 집안 수령들의 부서진 동상이었다.

그 앞에선 관찰자는 꽤 재밌는 이야기를 했다.

"이게 차원석인 모양입니다."

"차원석?"

"예."

다 부서진 차원석이 대체 왜?

하지만 관찰자의 말대로 난 금세 납득할 수밖에 없었다.

시스템 창이 떠올랐으니까.

"중립 차원석을 수복하시겠습니까."

"중립 차원석? 아니, 왜... 왜 하필 이게 차원석이라는거지?"

하고많은 것 중에 왜 하필?

"그건 저도 모르겠습니다만... 수복해야하지 않겠습니까? 다른 군단장이 차지하러 나타날 수도 있으니까요."

"그거야, 그래야겠지."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알게된 이상 어쩔 수 없다.

중립 차원석이 뭔지도 잘 모르겠지만 일단 수복하는 편이 낫다.

"그래서 어떻게 수복하면 되는데?"

"저도 잘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차원석이 내부와 외부 모두 존재하는 걸 알았으니 가설을 세워볼 수는 있게 됐네요."

"설명해봐."

"지금 보이는 건 외부의 것이고, 카오스 게이트로 들어가면 내부의 차원석이 있죠."

"그렇지."

카오스게이트는 그 차원석의 균열을 비집고 침공하는 악마들의 난이다.

어떻게 균열을 일으키는지 모르겠지만 차원석을 지키며 균열로 침입한 놈들을 잡으면 카오스게이트는 성공.

차원의 균열은 아물게 된다.

하지만 외부에도 차원석이 있는 걸 알았으니 외부와 내부의 차원석을 모두 지켜야 이 땅은 군단장으로부터 안전해지는 것이라고.

관찰자는 자신의 가설을 내세웠다.

"그럴 듯하네."

"이러쿵저러쿵 떠들었지만, 결국 알려주는 건 이 녀석이 알려주겠죠."

관찰자는 동상을 툭툭 두드렸다.

맞는 말이다.

"중립 차원석을 수복하시겠습니까."

예스를 클릭하니.

"차원석 수복을 위해서는 두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첫번째는 엘더 잉걸불 10개로 완전한 수복이 가능합니다."

"에반데."

5개도 아니고 10개? 생각보다 너무 많다.

엘더 잉걸불은 스킬을 강화시키기 위한 재료로 쓰이는 게 더 낫다.

게다가 난 잉걸불도 없다.

헤일로의 강화로 소모한지 오래다.

다른 이들한테 달라고 하기도 좀 억지스러운 희생이다.

곧장 두번째 방법으로 시선이 향했다.

"두번째 방법은 천만에 해당하는 악마의 피가 필요로 합니다."

『악마의 피』

-3,906,487

생각보다는 꽤 많이 모여있다.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우리가 집결하며 쓸어버린 악마의 숫자가 꽤 되는 모양이다.

『중립 차원석 수복 기여도』

1위, 한국-1,942,122.

2위, 중국-1,221,560.

3위, 러시아-742,805

수복에 기여도가 있다?

"그러고보니 퀘스트 보상에 차원 확장이라는 게 있었지."

기여도가 높은 국가가 이 땅을 가지게되고 그만큼 차원석이 확장된다는 소리인 듯하다.

그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직은 모른다. 하지만 이건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기도 했다.

악마를 잡으면 알아서 수복된다하니 내버려둬도 나쁠 거 없어 보였다.

북한의 악마들을 때려잡는 일이야 다른 나라보다 우리가 더 많이하게 될 테니까.

한가지 문제가 있다면...

"군단장이겠네요."

"... 상관없지 않을까."

다른 군단장이 이사오는건 또 다른 위험으로 우릴 위협한다.

하지만 군단장.

놈을 잡으면 엘더 잉걸불을 준다.

잉걸불은 힘의 증가로 이어진다.

그러니 정화한 땅에 다시 군단장이 터를 잡고 나타난다?

"잡으면 될 일이지."

그럼 다시 잡으면 될 일이다.

군단장을 잡으면 난 아니겠지만 한국의 다른 네피림들도 헤일로를 얻게 될 것이다.

헤일로를 잘만 강화시킨다면 네피림의 전투력은 몇배나 뛰어오르겠지.

물론 많은 이가 죽게 될거다.

죽음을 목도한 이들이 실의에 빠지고 절망에 빠지고 말거다.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바바리안의 말대로 그건 어쩔 수가 없는 일이다.

강해지기 위해선 언제나 죽음과 줄다리기를 할 수밖에 없다.

위험이 두렵다고 안주하면 도태할 수밖에 없는 게 지금의 사람이니까.

언제까지

그리고 이번에 느꼈다.

'따라오지 못하면, 어쩔 수 없어.'

나는 앞으로 더 강해진다.

군단장 따위에 목숨이 위태롭지 않을 정도로 헤일로는 가능성을 제시했고, 그만한 잠재력 또한 품고 있다.

앞으로 이 세상에서 힘의 편차는 더욱 극렬해질게 뻔하다.

따라오지 못하는 자들까지 끌어줄 여력은 내게 없다.

"여기 계셨네요."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한국의 랭커들은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강인할테니까.

"돌아가자."

"막사로요? 아니면..."

그야 당연히.

"우리 집으로."

에어컨 고장 [1]

129화.

펄럭, 펄럭.

"더워..."

군단장 레이드를 성공하고 한 달.

벌써 한 달이 지났다.

이 말은 악마가 나타난지 벌써 네달 째에 접어들었다는 말과 같았다.

5월이었던 봄을 지나 이제는 여름의 더운 바람이 살갗에 다가왔다.

뜨거운 햇살, 타들어가는 목청과 숨쉴때마다 기도를 데우는 더운바람.

"올해 여름은 예전보다 더 더운거 같은 기분이네. 전 세계의 공장도 다 박살났을텐데 왜 이렇게 덥지."

지구 온난화를 가속화 하던 건 인간이 만든 공장 시설 때문이 아니었나.

그게 전부 박살나서 가동도 안 할텐데 왜 이렇게 더운지 모르겠다.

"악마들 때문에 지구 온난화가 더 가속화됐나."

생각해보니 그럴지도 모르겠다.

악마들 중에는 자체적으로 열을 내뿜거나 용암을 토하는 종류의 것들도 있으니 말이다.

게다가 아직도 군단장에게 먹혀버린 나라들이 존재하니 별별 이상기후가 여기저기 퍼지는지도 모르겠다.

일단 군단장이 땅을 지배하면 그 땅은 지옥과 흡사하게 바뀌어버리니.

"덥다, 더워."

아무튼 더워 죽을 지경이었다.

평상에 앉아서 부채질하다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세상이 이 지경이 웬만하면 아끼려고 했지만 더이상은 못 참겠다.

발전기를 돌리고 에어컨을 틀었다.

거래소에서 자그마치 100금이나 주고 산 에어컨이다.

기름도 무한한게 아니다보니 어지간하면 아끼려고 했는데 오늘따라 유독 더워서 참을 수가 없다.

위이잉.

자본주의의 기계가 작동을 시작했다. 발전기가 돌아가고 리모컨으로 스탠드형 에어컨을 돌리자 차가운 바람이 설렁설렁 오두막의 더운 공기를 잡아먹었다.

소파에 누워 현대문명이 주는 안락함을 얻고 있던 것도 잠시.

드륵, 드르륵!

"뭐야."

에어컨이 비명을 토했다.

그리고는 꺼져버렸다. 더 이상 에어컨은 날 시원하게 해주지 않았다.

이럴까봐 아끼고 아끼다 킨건데, 벌써 이렇게 날 배신할 줄이야.

"비싸게 주고 산건데 이게 대체 왜... 역시 가전제품은 삼전이 아니라 엘전이었나?"

당황스럽다.

분명 백화점에도 나뒹굴던 새제품이라고 들었는데 사기 먹었나?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발전기가 문제인가 확인해보니 그렇지는 않았다.

발전기는 멀쩡히 잘 돌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역시 에어컨의 고장이었다. 한여름에 고장나는 에어컨은 현대인에게 재앙이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난 그냥 현대인이 아니라 악마들이 침공한 멸망기의 현대인.

절망과 동시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구 상자를 가져와 문제점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솔직히 거래소에서 새 에어컨을 찾아보는 게 빠를 것이다.

이토록 더우니 분명 에어컨을 찾기란 쉽지 않겠지만 찾아보면 분명히 쓸만한 게 하나쯤은 있을테니까.

하지만 언제까지나 거래소에 의지할 수는 없다.

고칠 수 있다면 고쳐보며 관련 지식을 얻는 것도 생존에 필요한 하나의 방법이니 말이다.

"뭐하시는거에요?"

레아였다.

점심 장사를 하고 돌아왔는지 큼지막한 솥들을 들고 있었다.

"에어컨 고장나서 고치는 중이야."

"부수고 있는 게 아니고요?"

"음..."

물론 내 노력은 1시간 동안의 끙끙거림과 힘조절 못해서 에어컨의 부품 몇개를 부숴버린 뒤 좌절됐다.

"재능이 없는걸지도."

"괜찮아요. 재능 없어도."

망연자실해 있는 날 레아가 안아주며 다독여줬다.

그녀의 마음은 정말 고맙지만.

"더워..."

"너무해요!"

"하지만 너무 더운걸..."

"치!"

샤워하러 간 레아의 모습을 바라보다 에어컨 수리 기사님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하지만 이미 죽어버린 에어컨이 살아 돌아오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이 거래소를 눈알 빠지게 찾으며 적당한 에어컨을 물색했고 전보다 비싼 금액인 300금에 구매했다.

[휘젠 무풍 에어컨]

300금

판매자-폿팡퐁커리 Lv.5

판매자 레벨 5.

거래소의 판매자들은 레벨을 가지고 있다. 많은 거래를 할수록 레벨이 올라가서 신용도가 그만큼 있다는 뜻이기에 별 의심없이 물건을 구매했다.

하지만 내가 간과한 사실이 있었다.

"아이씨..."

이 에어컨.

실외기가 함께 딸려 있지 않은 건 둘째치고 코드 선도 뭔가에 밟혔는지 뭉개져 있는 상태였다.

거래소의 사진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부분이었는데, 아무래도 제대로 사기를 먹은 모양이었다.

평소 같았으면 필수로 확인했을 부분이지만 더위를 먹었나 미처 깜빡하고 확인하지 못했다.

레벨만 믿고 거래한 낭패였다.

"거래소 판매명 이거 실명제 도입해야 된다니까."

누군지만 알아도 협회의 정보력을 통해서 바로 참교육 들어갔을텐데 솔직히 알수가 없다.

커뮤니티에 들어가 이놈 거래명을 검색하니 나만 당한 게 아니었다.

꽤 많은사람들이 애매하게 사기당해 열을 올린 글이 한둘이 아니다.

이른바 전문 사기꾼이었다.

"속은 놈이 멍청한거지. 에휴."

어쩔 수 없다.

에어컨을 다시 찾아보는 수밖에.

솔직히 낮에는 참는다해도 밤에는 더워서 깨는 판국이니 에어컨의 유무는 필수라 할 수밖에 없다.

아무리 더워도 레아가 자꾸 옆에 꼭 붙어 자는 바람에 에어컨이 없으면 잠 못자는거나 다름없다.

"거래소는 없고."

일시적으로 블리자드를 써서 온도라고 확 낮춰버릴까 싶은 마음이 혹하긴 하지만 참았다.

엊그제 한번 블리자드 썼다가 브란스 연구시설이 박살나서 한소리들었던터라 그것도 하지 못한다.

"흠..."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

직접가서 에어컨을 공수해오는 방법뿐이다.

군단장 레이드의 성공 이후 많은 사람들이 삶의 태도가 바뀌었다.

될대로 되라는 식이었던 게, 이제는 약간의 희망이 생긴 느낌?

이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는 건 다름아닌 한국의 유명무실한 정부였다.

정부는 대대적으로 레이드의 성공 사실을 전파하며 사람들에게 희망을 심어줬고, 머지않아 이전처럼 전기를 제공하고 천연가스를 재가동해 멸망기에서 벗어난 생활을 영위하도록 노력하겠다 발표했다.

그때 커뮤니티에 올라온 사람들의 반응은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도 있기는 했지만 대체적으로 정부를 응원하는 분위기였다.

[리덕션:저게 가능해지려면 근처 악마들을 모조리 토벌하고 경비대를 만들어서 치안 유지해야겠네. 근데 정부의 병력으로 그게 될까?]

[발광:랭커들 다 모이면 가능하겠죠. 특히 데몬시드님 있으면 뭐...]

[ㅇㅇ:데몬시드는 대체 어디사냐? 진짜 누가 알려주면 조용히 근처에서 숨죽이며 살아갈 자신 있는데 ㅅㅂ]

[ㅇㅅㅇ:ㅇㅈㅇㅈ 그냥 숨만 쉬면서 살테니까 악마들 다 잡아줘!]

[바인드맨:데몬시드님이 정부에 협력하면 진짜 가능하겠네요.]

[시검:이미 하는중인데 ㅋ]

랭커들이야 아니지만, 아직도 일반 시민들은 약탈자의 존재에 두려워하고 악마의 기습에 밤잠을 이루지 못한다. 그 때문에 미치는 사람도 많고, 실제로 악마 숭배자가 되어 악마화되어버리는 사람도 간간이 있다고 알려져 있으니 말이다.

섬에만 있는 나는 잘 몰랐지만, 정부는 이미 몇몇 네피림들을 내세워 그들이 관리하는 주택단지를 복구해 호화롭게 생활하는 이들의 사진을 거래소에 뿌렸다고 한다.

내가 보기엔 좀 과장된 부분들이 없지 않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 시민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아니, 꽤 뜨거운 편에 속했다.

[ㅇㅇ:저거 추첨 어떻게 함?]

[ㅇㅇ:랭커들만 가는 곳 아님? ㅆㅂ]

[빛고리:그건 아님. 부부나 아이 있으면 추첨 대상자라고 그랬음]

[ㅇㅇ:모쏠은요?]

[ㅇㅇ:모쏠은 나가 뒤져야지 ㅋㅋ]

[ㅇㅇ:아...]

보일러 때고 에어컨 틀고, 휴대폰으로 유튜브보는 생활을 사람들은 그리워했으니까.

반응이 나쁘지 않고 결과적으로 시민의 지지를 이끌어냈기 때문인지 정부에서도 빠르게 추진중인 작업이 아파트 단지를 복구하는거였다.

솔직히 악마들이 나타나고 정부의 존속이 유지가 될까 했는데, 군단장 레이드 성공 하나로 이렇게까지 기세가 높아지니 놀랍기는 놀랍다.

아무튼 그나마 덜 부서진 서울 근교의 아파트 단지를 복구해서 수도와 가스. 전기를 공급하여 시범용으로 생활하기 위한 작업에 여념이 없다고 한다.

군단장을 토벌했을 뿐인데, 그것만으로 사람들은 많은 희망을 얻은 모양이었다. 이전과는 조금 다른 희망적인 행보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군단장 이후로 카오스게이트도 영 속이 없고.'

악마들 사이에 대한민국 땅은 기피의 대상이 되기라도 했는지, 그 이후로 카오스게이트는 감감무소식이다.

균열을 비집고 들어오는 악마들이 없어서인지 아니면 다른 무엇 때문인지 꽤 조용했다.

어쨌든 정부에서 아파트 단지를 열심히 복구하고 있는 건 사실이다.

대부분은 철근 빼돌리고 자재 전부 빼돌려서 순살 아파트나 두부 건설이 되어버렸지만, 모든 아파트가 그렇게 지어진 건 또 아니다.

일명 부자들이 살던 동네에는 지진과 재해의 때를 염두에 두고 지하에 방공호까지 만들어둔 아파트가 존재하기는 한다.

내가 왜 이런 장황한 설명을 했냐.

그렇다.

난 폐허더미를 파헤치며 에어컨을 찾아헤메는 승냥이가 되기보다는, 이미 있을 게 뻔한 곳으로 하나만 털어오는 하이에나가 되고 싶었다.

"달라고하면 하나쯤은 주겠지."

위치는 대충 알고 있다.

서울시 서초구에 위치한 아파트.

트라움하우스다.

*

서초구시.

돈 많은 부호의 땅으로 알려진 서초구는 이전과 많이 달랐다.

좀비나 관련 악마들이 보이지는 않았지만 높은 빌딩들이 무너져내려 도로는 잔해들의 산이 이루어져 있었고 이상한 풀들이 많이 자라있었다.

하지만 내 목적지인 트라움하우스까지 가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어느 부분부터 길이 꽤 깔끔하게 치워져 있었기 때문이다.

정부에서 기계들을 이용해 길을 치운지 오래였고, 사람들이 꽤 북적거리고 있었기에 꽤 어렵지 않게 길을 찾을 수 있었다.

한달전만 해도 이런 도심지에 사람이 모여있는 꼴을 보기가 어려웠는데... 확실히 악마들의 수가 급감한 체감이 느껴졌다.

몇몇은 혹시라도 나타날 악마들을 처리할 네피림들로 이루어진 경비대들이었고, 나머지는 대충 난민으로 보이는 사람들이었다.

각성한 사람들은 네피림으로 불리며 악마들을 토벌하며 얻은 갑옷이나 무기를 무장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저기 모인 사람들은 대부분 일상복을 입고 있었다.

날씨가 꽤 더운데도 불구하고 저러고 있는 걸 보니 호기심이 일어 조금 가까이 다가가보니.

"우리집을 왜 못 들어간단 말입니까!"

난민 대표로 보이는 정장입은 50대 아저씨가 고래고래 소릴 질렀다.

까무잡잡한 피부가 검게 보일 정도로 핏대를 세워 소리치고 있었는데 그 논리가 상당히 재밌었다.

"여기는 정부에 의해 새롭게 복구될 시설입니다. 현재는 입주 추첨을 진행하지도 않았기에 아무도 들이지 말라는 대통령 각하의 전언이 있었습니다."

"아니! 대통령이 우리집 샀어?! 우리집 샀냐고! 여기가 원래 우리집인데 당신들이 무슨 권리로 우릴 못들어가게 하는건데! 엉!? 당신 내가 눅군지 알아?!"

돌아가는 꼴을 보아하니, 본래 트라움하우스에서 살았던 시민인 모양이다.

커뮤니티에서도 열띤 토론이 이어지고 있다보니 복구 작업을 진행중이란 이야기를 듣고 찾아왔는데 들어가질 못하게 하니 싸우고 있는 모양.

'나라도 억울하긴하겠네.'

아포칼립스가 터지기 전의 자기집을 들어가지도 못하게하니 왜 애가 타지 않을까.

나라도 그러겠다.

한 두푼하는 집도 아니고 수십억을 호가하는 집이었다.

안 그래도 세상이 망했고 관련 재산이 존재하던 은행도 개박살이 났고 현금가치는 휴지조각이 됐으니 억울한데 집까지 통제당했으니 왜 아니 그럴까.

"우리가 악마들한테 쫓길 때, 당신들이 대체 뭘 했길래 이제는 우리집마저 빼앗느냐고!!"

이름모를 아저씨는 거의 울먹이며 소리쳤는데 그쯤되자 그들을 막아세우던 경비대들도 썩 난감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저씨는 이내 눈물마저 보이더니 홱 몸을 돌리고는 울지 않으려 애쓰는 것처럼 하늘을 바라봤다가 이내 근처의 무너진 담벼락에 기대며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아버지뻘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울음을 보이자 경비대는 더욱 난감해졌고, 모여있는 시민들의 비난은 더 거세졌다.

이내 경비대는 무전기로 어딘가로 연락했고, 곧 정부의 사람이 나타나 시민들과 대화를 시도했다.

여기까지만 보면 집 잃은 시민들의 억울한 현장이었겠으나, 이 뒤의 전개는 조금 어처구니 없는 것이었다.

"신분을 증명할 수단 있으십니까? 신분증이라던지, 이곳에 살았다는 사실을 증명할 증거들이요."

"그, 그런게 어딨습니까! 악마들 때문에 다 난리가 나서 잃어버렸죠!"

"주민번호는 알고 계실거 아닙니까. 다행히 정부에서 트라움하우스의 세대별 주거 명의를 확보했습니다. 성함과 주민번호와 본래 거주하셨던 호수를 알려주시면 대조해서 복구되는대로 입주 수속을 진행하겠습니다."

이것으로 저 사람들도 자기 집을 찾아가겠나하며 떠나려는 찰나.

시민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그, 그게..."

"저는 주민번호가 생각나지 않아서..."

"머리가! 머리가 아파요!"

"우리들은 사고 후유증인지 악마의 저주인지 기억을 잃어버렸어요!"

"맞아요!"

그들의 답변은 어처구니없는 것들이었다. 정부 관계자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 한숨을 푹 내쉬더니.

"자기 주민번호와 살았던 동, 호수는 기억나지 않는데 이 아파트에 살았던 기억은 있으시다고요? 지금 장난치십니까?"

그러더니 자켓 안에서 권총을 꺼내 하늘로 발사했다.

탕-!

"당신같은 사람들이 하루에 몇번이나 오는 줄 알아?! 업무 방해죄로 싹다 구속시키기 전에 안 꺼져!?"

탕탕!

총을 허공에 몇번 더 쏘자, 난민들은 부리나케 도망가버렸다.

문제는.

"에효! 미친놈들이 왜 총을 쏘고 지랄이야 지랄은."

"그러니까요! 거 생각 안 날수도 있지 위협하기는! 내 세금으로 정부가 돌아갔던 거 모르나! 나참."

도망온 사람들이 내 앞에서 멈춰섰다는 게 문제였다.

한참을 지들끼리 쑥떡거리다 날 발견하고는 흠칫 멈춰섰다.

"당신, 혹시 네피림이요?"

"예. 그런데요."

예의 그 아저씨였다.

무리의 리더로 보였는데 날 흝어보는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그럼 나랑 일 하나 안 하겠나. 큰돈 만지게 해줄 수 있네!"

뜬금없는 소리였다.

처음보는 사람한테 일을 하자고 하다니. 전형적인 사기꾼이었다.

그리 말하며 은근히 트라움하우스를 바라보는 배불뚝이 아저씨의 눈빛이 음흉하기 짝이 없다.

"아뇨, 전..."

"내가 거래소에서 큰돈을 만졌거든! 어떠나! 정확히 5대5로 나누지!"

함께하면 안될 거 같은 사람이었지만 이 아저씨.

뒤에 하는 말이 꽤 흥미로웠다.

"풋팡퐁커리라고 내 거래 레벨이 자그마치 5나 되거든! 확인해봐도 좋네! 어때? 나 정도 레벨이면 사람들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사거든!"

"호오..."

풋팡퐁커리.

그는 아까 내가 사기 먹은 에어컨 판매자였다.

에어컨 고장 [2]

130화.

폿팡퐁커리.

그의 실제 이름은 백동남이라는 50대 중년이었다.

삼백 금이란 돈이 다른 사람에게는 꽤 큰 돈처럼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게는 아니다.

그래서 그런지 사기당했다는 기분 나쁨이 있을지언정 금전적인 손해를 보았다는 생각은 별로 없었다.

그래서일까.

난 사기꾼의 멱살을 잡기보다는 일단 그의 이야기를 더 들어보는 결론에 도달했다. 한대 쥐어패는 거야 언제든지 가능했으니까.

악마들만 때려잡고 성장만을 위한 삶을 살다가 이런 사람들이 있다는 거 자체가 내게는 꽤 신선했다는 것도 한몫했으리라.

"저기가 바로 노다지지. 기름진 땅! 노른자위 땅이 바로 저기야! 자네도 대충 알고 있으니까 여기 있는 거지?"

"... 뭐 그렇죠."

백동남은 뭘 보고 생전 처음 본 내게 거래 제안을 했는가 했는데, 왠지 여기 숨어 있는 걸 보며 딱 느낌이 왔다고 했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도둑놈처럼 보였다는 건가.'

대충 그런 소리인 듯하다.

생각해보면 틀린 소리는 아니다.

안 그래도 저기서 에어컨 하나 훔쳐 갈 생각이기는 하니까.

물론 하나 달라고 부탁할 거지만 정부 입장에서는 그게 그거일 거다.

"저 아파트는 지금 정부가 야심 차게 복구 중인 곳이야. 온갖 부유한 가전제품은 물론이고 보일러 시설과 수도, 그리고 전기까지 모두 공급하려고 하는 중이지. 그걸로 시민들 지지 얻어서 권력욕 채우려고. 앞으로는 뻔하지! 정부 관리하에 살고 싶으면 세금을 얼마 내라는 둥, 뭐 뭐 의무적으로 하라는 둥, 지들 입맛대로 이거저거 시켜댈 게 뻔해. 자네도 군대 갔다 왔으니 대충 알 거 아닌가."

"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정부가 정부로 존속하기 위해서는 시민들의 지지가 필요하다.

물론 돈도 필요하고 이래저래 노동력도 필요한 게 사실일 테니까.

"어떤가. 우리 집단에 꽤 참한 아가씨도 있는데, 이번 일만 도와주면 좋은 만남을 주선하지."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의 뒤를 손짓한다. 방향을 바라보니 아줌마들 사이에 20대 중반의 아가씨가 수줍음 가득한 눈웃음으로 날 바라봤다.

일반적으로는 꽤 참하고 이쁘게 생긴 아가씨였지만, 레아와 비교하면 한참 손색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일단 체형 자체가 다르다.

레아는 애초에 유럽 쪽의 몸매를 지니고 있다. 성의 공주였으니 입 아프게 말해 무엇할까. 그렇다 보니 썩 괜찮은 아가씨였지만 미색에 혹할 만큼은 아니라는 뜻이다.

"괜찮습니다."

"이 꼬라지가 된 세상에서 여자를 마다하는 청년은 처음 보는군. 역시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함께 일해보세! 5대5! 아니 6대4로 해줄 테니."

꽤 끈질기다.

슬슬 귀찮아서 본색을 드러내 볼까 하던 순간.

백동남의 기세가 누그러졌다.

"사실, 딸이 하나 있었네."

"딸이요?"

"내가 저곳으로 들어가려고 했던 것도 전부 딸 때문이네."

"딸이 왜..."

"딸이 마지막으로 향했던 곳이 바로 저기였거든. 그래서. 억지를 무릅쓰고 들어가 보려 한 거지. 아비보다 먼저 간 불효를 저질렀지만, 그래도 시신이라도 제대로 건져 장례를 치러야 하는 게 부모 된 도리 아니겠는가?"

그런 사연이 있는 줄은 몰랐다.

그냥 사기꾼인 줄 알았는데.

"사연 없는 사람은 없죠."

하지만 그건 그거도 이건 이거다.

사연하면 나도 어디 가서 꽤 빠지지 않을 사연을 가지고 있다.

"저도 전 와이프랑 내연남이 짜고 절 죽이려고 했던 걸 가까스로 살아남았었습니다. 꽤 힘든 일이었죠.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식은땀이 납니다. 아저씨는 당해보셨습니까?"

"어? 아니 그게 무슨."

백동남이 답지 않게 당황했다.

하지만 그것은 잠깐뿐.

이내 사람 좋은 웃음으로 위장한 그는 입을 오목하게 만들어 내 마음을 십분 이해한다는 듯 안타까워했다.

"그랬군. 그런 일이... 세상 참 무심하시지 말이야. 내가 그런 일이 있는 줄 모르고 자네에게 실례를 범할 뻔했군. 미안하네. 내 정식으로 사과하지. 받아주겠나?"

고개를 살짝 숙이며 사과의 악수를 건네왔다.

꽤 강적이다.

나이도 지긋하신 분이 머리까지 숙이니 젊은 사람 된 도리로서 가만히 사과받고만 있을 수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자라 몸에 밴 예의범절이란 것은 세상이 바뀌어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아닙니다를 연발하며 건넨 악수를 맞잡았다.

그리고 그게 내 패착이었다.

"미안하니 내 밥을 대접하겠네."

"아뇨, 밥은 좀."

"그럼 술을 하면 되겠군. 좋은 술이 있네!"

악수한 손을 놓아주지 않았다.

생각보다 힘이 꽤 강하다.

일반인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말이다.

아마도 네피림으로 각성은 했으나 그 힘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는 부류인 것 같았다.

'머글.'

어째서인지 힘을 각성했음에도 싸우지 않는 자들을 루저, 또는 머글이라 불렀는데 백동남도 그런 부류 중 하나였다. 빌어먹을 놈들이라고 머글이라 불린다던가.

살기 위해서 별짓은 다 하고 다니는 이들이라 그리 불린다는 걸 커뮤니티에서 들어본 적이 있다.

'꺾어버릴까.'

물론 해봤자 민간인보다 강한 거지 네피림들 사이에서는 어린애 팔목처럼 부러뜨리기 쉬웠다.

손으로 툭 치면 부러질 테지만 딱히 그러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했고, 어쩌다 보니 사기꾼 페이스에 휘말려서 에어컨값을 내놓으라고 할 타이밍도 잃어버렸다.

어떡할까 고민하다 보니 그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 버렸다.

서초동의 어느 구석진 골목.

거기엔 허름한 일상복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꽤 허름하지?"

"사람이 많이 사나 보군요."

왜 이런 곳에 모여서 사는지는 모르겠지만 생각보다 많고,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했다.

그들은 대부분 백동남을 향해 밝게 인사했고 친근하게 한마디씩 걸어오며 그에게 꽤 호의적이었다.

"많이들 이주해오고 있지. 거지처럼 비루하게 살다가 그나마 여기에 와서 사람 비슷하게 살고 있는 거라네."

부서진 폐허를 제 입맛대로 고쳐 쓰며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방음이 전혀되지 않는 곳이라 그런지, 간간이 남녀의 헐떡이는 소리까지 꽤 적나라하게 들려왔다.

"이해하게, 한창때인 놈들이니."

"사람이 많은 이유는 정부 때문이겠군요."

"그렇지. 적어도 이곳의 치안은 꽤 안전하게 바뀌고 있으니까."

아파트 단지를 수복하고, 전기와 가스, 수도를 공급하기 위해서는 꽤 큰 노력이 필요하다.

먼저 해야할 건 악마들을 처단하는 것이요, 그 이후의 문제는 기술자의 유무와 자원이다.

어떻게 할 건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그게 된다면 아마도 서초동은 꽤 안전한 곳이 될 테고, 이곳으로부터 점점 영역을 확대해나가겠지.

그걸 생각하면 하루라도 빨리 이주해오는 게 맞다.

백동남은 머글단체의 수장 격인 인물이었는데 가전제품이나 네피림들이 살만한 물건들을 쟁여놓고 장사하며 이곳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있었다.

사기꾼이기는 하지만 그렇게 나쁜 사람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읏차."

백동남은 부서진 골목의 어귀 모퉁이에서 틈새로 손을 뻗더니 값비싸 보이는 양주를 꺼냈다.

"숨겨놓지 않으면 훔쳐가거든."

"예."

술에 대해 깊이 알지는 못하지만, 한눈에 봐도 오래되어 보이는 양주병에는 꽤 오래된 흠집이 보였다.

아마도 내용물은 다른 걸로 채우되 양주병만큼은 계속 가지고 다닌 듯 보였다.

백동남은 이후, 골목 한쪽으로 들어가 적당한 돌무더기 위에 앉아 나보고 앉으라 곁을 두드렸다.

"누추하지만 한잔 들게."

잔을 받고 냄새만 맡았다.

냄새를 맡으니 그냥 소주였다.

모르는 사람이 주는 술만큼 위험한 건 또 없다. 이런 세상이니 술이나 음식에 독을 타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렇다 보니 모르는 사람이 주는 음식은 꺼리는 게 기본 상식이었다.

내가 술을 입에 대지 않자 백동남은 괜찮다는 듯 웃음을 짓고는 날 이곳에 데려온 본론을 말하기 시작했다.

"사실, 부탁하고픈 일이 있네."

"장사 말입니까?"

"그것도 있지. 하지만... 아까 했던 말은 거짓말이 아니네."

딸에 대한 걸 말하는 듯했다.

"아까 했던 말이라면... 딸을 찾고 있다는 거 말씀입니까."

"그렇네."

"그렇다면 그쪽 관계자들한테 물어보면 될 텐데요. 단지를 복구하고 있는 거 보면 시신의 처리를 하기 전에 신원확인도 하고 있을 겁니다."

내게 부탁하는 것보단 그쪽에 부탁하는 게 빠르다는 걸 알 텐데 왜 굳이 이런 부탁을 하는지 모르겠다.

"당연히 그렇겠지. 나도 알고 있네. 하지만 그놈들을 믿을 순 없어."

"무슨 말입니까."

"내 딸은. 높은 랭커의 남자를 따라 그곳으로 갔네. 근데, 그 이후로 계속 소식이 없단 말이네!"

"그게 무슨..."

"순위가 높고 힘이 강한 랭커들은 여자를 여럿 두며 생활한다고 들었네. 아마 딸아이가 쫓아갔던 남자 놈도 그런 부류겠지. 그렇다 보니 자기가 끼고 있는 여자 한둘쯤은 손쉽게 버리거나 유흥으로 죽이기도 한다더군!"

백동남의 눈이 붉게 충혈됐다.

나도 커뮤니티를 확인해보며 들어본 적이 있는 내용이다.

꽤 높은 순위를 지닌 네피림들은 각각의 구역을 자신의 영역으로 삼고 다니는데,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조직이 구축된다고 한다.

몇 명 없던 파티가 조직처럼 변하고 각각의 역할에서 권력의 힘이 나타나기 시작할 때.

사람들은 그 권력에 취해 자신의 욕망을 한껏 드러낸다고 한다.

그중에서도 성적 욕망이란 것은 강렬하기가 이루 말할 데 없어, 입에 담기도 힘든 일들이 카더라처럼 커뮤니티에 뿌려지고는 했다.

"확실한 겁니까?"

"하루나 이틀에 한 번씩 연락하던 아이가 전혀 연락이 안돼. 내 쪽지도 계속 무시당하고 있지. 자네도 알다시피 이런 경우는, 두가지이지 않나."

무시하고 있거나 죽었거나.

지금 상황으로 본다면 후자에 더 가까운 편이라 보는 게 맞다.

"아마도... 죽었겠지. 어찌 죽었든 악마란 한마디로 모든 것을 포장할 수 있을 테니까!! 정부도 자기들 사람이니 이런 일을 문제 삼기는커녕 그놈 편을 들어줄 게 뻔하네!"

역정내며 말하는 백동남의 모습은 사기꾼의 기색이 없었다.

진심으로 분노하는 한 아비의 표정만이 존재했다.

"부탁이네. 내 이렇게 빌지. 자네가 원하는 게 있다면, 내가 찾아주겠네. 거래소로 장사하면 가지고 있는 물건들이 꽤 있네. 아까 에어컨이 필요하다고 했었나? 그것도 꽤 있지! 일부러 물량을 한꺼번에 풀지 않고 이틀에 한두 개씩만 풀고 있거든."

"..."

마지막 말은 썩 마음에 들지 않지만 한번 확인해주지 못할 건 없다.

꽤 귀찮은 일에 엮였다는 생각에 한숨이 나오기도 하고, 랭커란 이유로 사람을 심심찮게 죽이고 다니는 네피림에는 나 또한 분노가 차오른다.

제아무리 법이 사라진 세상이라지만 사람으로 지켜야 할 정도는 있다.

"이름이 뭡니까."

"시검이란 놈이네."

시검.

곧장 랭킹 목록을 확인했다.

1,462위 시검.

"..."

뭐 얼마나 대단한 놈인가 했더니 고작 1,000위 대의 네피림이었다.

"확인해봐 줄 수 있겠나?"

"... 굳이 저한테 부탁하는 이유를 들어볼 수 있을까요."

"자네, 네피림 중에서도 꽤 강하지? 딱 보면 알거든."

"어떻게 압니까?"

"깨끗하잖아. 손톱도 가지런하고, 입고 있는 옷도 일상복이지만 깨끗하고 주름도 별로 없어. 바깥에서 갑옷도 입지 않고 이런 일상복으로 깨끗하게 돌아다닐 사람은 랭커급의 네피림이 아니면 어렵거든."

씩, 미소짓는 백동남의 말에 난 그만 피식 웃어버렸다.

"해줄 수 있나?"

딱히 어렵진 않은 일이다.

굳이 도울 이유도 없지만, 나도 관련 부분은 궁금하긴 하다.

백동남의 말이 개수작일 뿐일지, 아니면 진짜 시검이란 놈이 여자들을 죽이는 연쇄 살인범일지.

에어컨 고장 [3]

131화.

[관찰자에게로부터 메세지]

-트라움이요? 글쎄요. 거기 사는 랭커들의 개개인 사생활까지는 저도 잘 알지 못합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뭐든지 알고 있을 줄 알았던 관찰자도 랭커의 개인사까지는 자세히 알지 못했다.

[관찰자에게로부터 메세지]

-하지만 아시다시피 랭커들의 사생활이 깨끗하지만은 않다는 걸 시드님도 알고 계실 겁니다. 그들 중 일부는 일반인을 노예처럼 부리는 자들도 꽤 있으니까요. 근데 그걸... 뭐, 우리가 제재할 이유도 없죠. 대부분은 노동력을 빌미로 랭커들에게 안전 요구하고는 하니까요. 상부상조란 거죠.

백동남의 부탁 이후.

관찰자에게 쪽지를 보냈지만, 썩 유의미한 정보를 얻지는 못했다.

[관찰자에게로부터 메시지]

-물론 시검이란 자에 대해서 조금 들어본 적은 있습니다.

시검.

그의 기프트에 대해 자세하게 알려진 건 없지만, 검을 주로 사용하고 꽤 다양한 검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관찰자에게로부터 메시지]

-함께하는 파티가 자주 전멸하고 사라진 사례가 몇 있기는 하네요. 하지만 그런 일은 흔하니까요.

"어쩔 수 없지."

직접 확인하는 수밖에.

들어가는 거 자체는 어렵지 않았다.

3m는 되어 보이는 단단한 담벼락.

그것을 거미 여왕을 잡고 나온 스킬.

레그릿지로 벽을 타고 넘어갔을 뿐이다.

데몬시드임을 밝히고 당당히 입구로 들어가도 상관은 없었다.

하지만 그렇게되면 시선이 너무 몰려서 시끄러워진다.

그건 내가 바라는 바가 아니었다.

'백동남 말이 거짓말이거나 착각일 가능성도 있는거니까.'

그렇게 되면 괜히 애먼 사람 잡는 꼴인데 데몬시드로 그랬다간 개망신당하는 꼴 아니겠는가.

사기꾼한테 속아서 멀쩡한 사람 살인자로 만든 꼴이니까.

그런데.

"... 네가 왜 여기 있지?"

"여기 살고 있으니까."

담벼락을 넘은 순간.

화단 벤치에 앉아 있는 사람이 있었다.

평화롭게 햇살을 맞으며 새하얀 새끼 백구랑 놀고 있는 강철 군주였다.

갑옷을 입지 않은 차림의 강철 군주.

뒤로 묶은 은발과 츄리닝 바지.

속살이 조금 보이는 크롭티를 입은 강철의 모습은 강력한 기사들을 대동한 군주가 아닌, 20대 초반의 일반 여성과 큰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보다 성남의 기사 왕이라 불리는 강철 군주가 여기 살고 있다는 게 꽤 의외였다.

'성남을 버린 건가.'

궁금한 게 많았지만, 왠지 눈을 피하는 강철의 모습을 보니 파헤쳐서 좋을 게 없어 보였다.

심경의 변화가 있었던 거겠지.

군단장 레이드 이후 강철의 낌새가 조금 이상해 보이기는 했으니까.

"근데 넌 누구지. 여기 사는 사람 중, 저 담을 타고 넘어오는 사람은 없을 거라고 보는데."

강철 군주가 어느새 손에 검을 무장했다.

꽤 눈에 익은 걸 보니, 내가 예전에 강화해준 검으로 보였다.

'아직도 저거 쓰는 건가.'

내 옷차림이 가벼워서 그런지, 아니면 투구를 쓰고 있지 않아서 그런 건지 강철은 날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맨얼굴로 강철을 본 건 이번에 처음이기도 했다. 의도한 건 아니지만, 웬만하면 난 네피림들 앞에서는 투구를 벗지 않으니까.

그건 물소뼈 투구를 얻기 전에도 마찬가지였다. 네피림 투구도 얼굴을 대부분 가리는 종류의 투구였으니.

이번에 얻은 헤일로도 내가 마음먹지 않으면 나타나지 않으니 강철이 날 데몬시드라 생각할 일이 없긴 했다. 그녀로서는 못 알아보는 게 당연하달까.

"정체를 밝혀라. 난 강철 군주다."

철컥! 철컥!

강철이 검을 허공에 휘두르자, 그녀의 손과 신발, 그리고 가슴에 가벼운 경갑이 씌워졌다.

명백히 날 적대하는 모양새였는데, 가만히 있으면 검을 휘두를 기세다.

"그건가. 요새 들어 트라움을 노리는 도둑놈들이 많다고 하던데."

꼼짝없이 도둑놈으로 몰리게 생겼다.

아니라고도 못 하겠지만.

여기서는 더 소란이 일어나기 전에 밝히는 게 맞다.

"강철. 나다. 데몬시드."

"?"

하지만 검을 쥔 강철의 손에서 힘이 풀리지 않았다.

두 손은 검을 쥐어 머리 옆으로 가져간 기수식으로 보건데, 내 말을 믿지 않는 듯 보였다.

"데몬시드는 그런 허름한 아저씨 같은 옷을 입지 않는다. 요새 그를 사칭하는 놈들이 많다더니 번지수를 잘못 짚었어. 난 강철 군주다. 누구보다 그를 옆에서 지켜봤지."

"아니, 나 맞는데."

"헛소리! 데몬시드는 슬리퍼나 질질 끌고 다니는 사람이 아니야!"

항상 투구를 써서 그런가.

목소리를 잘 모르는 모양이다.

팟!

강철이 쇄도했다.

날 제압할 생각인가 본데, 이쯤이 되면 진짜 나라고 밝히기도 민망했다.

'아저씨 같은 허름한 옷이라니.'

꽤 비싼 구찌 옷이 거래소에 올려져서 입어본 건데 말이다.

'아저씨 같나?'

아저씨가 맞긴 하지만 면전에서 저런 소릴 들으니 꽤 울컥했다.

나도 검을 꺼냈다.

창을 꺼내면 바로 알 테니 일부러 검을 꺼내 녀석의 검을 맞받았다.

카앙-!

검과 검이 부딪쳐 불티가 튀었다.

내가 꺼낸 검은 가고일의 검.

스미스가 만들었던 그 검이다.

예전, 미믹으로 변해 있을 때, 검도 꽤 많이 다뤘다.

한순간일 뿐이었지만, 그때 내 검술의 숙련도는 최상급이었고 마스터라 불려도 이상하지 않을 수준이었다.

물론, 지금 그 정도의 실력은 없지만, 그때의 감각이 아직도 검을 잡으면 남아 있다.

한마디로.

강철의 검술 수준으로 날 제압하기는 어렵다는 말이다.

"... 누구지? 당신 같은 실력이라면 랭커가 분명할 텐데. 이름을 밝혀."

몇 번의 칼을 맞대고 멀어진 강철의 반응이 바뀌었다.

동네 도둑놈 수준에서 살인강도 수준의 흉악범을 보는 것만 같았다.

"이름은 밝힐 수 없다. 난... 이곳에 억울한 죽음을 맞았을지 모르는 사람을 조사하러 왔다."

뭔가, 다크 히어로같은 대사 같아서 민망함에 얼굴이 화끈거렸지만 어쩔 수 없다.

이제 와서 데몬시드라고 밝히기도 서로 민망한 상황이지 않은가.

"안내를 부탁해도 되나."

"내가 당신의 뭘 믿고."

하지만 경계가 꽤 심하다.

"협회 아토의 사람이다."

"협회의 사람이 데몬시드를 사칭한다는 말이냐."

그렇게 말하면 할 말이 없다.

"그, 데몬시드님의 사람이지."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은 마음이 들어서 그냥 실토할까 하던 찰나.

강철은 곁에서 낑낑거리는 새끼 백구를 보고는 검을 거뒀다.

"데몬시드의 사람이라고... 확인해보면 되겠군."

"확인?"

"지금 확인해보겠다."

잠시 후.

[강철군주님에게로부터 메시지]

-여기에 당신 수족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맞는거야?:(

쪽지였다.

차라리 다행이었다.

이거라면 쉽게 오해를 풀 수 있으니.

-맞다.

가볍게 답장을 보내주자 강철의 미간이 좁혀졌다 풀어졌다.

"... 그가 맞다는군. 어디라고 말도 안 했는데. 뭐지..."

여전히 미심쩍은 구석은 있어 보이지만 대충 의심은 거둔 모양.

"안내를 부탁해도 되나."

"... 안내?"

"여기 살고 있다고 하니까."

"그건, 협회를 위한 일인가?"

"물론이다."

"... 나라도 괜찮다면."

아직도 꽤 의심하고 있는지 여전히 경갑차림과 허리춤에 검을 풀지 않았지만 한 손에는 강아지를 품었다.

아끼는 녀석인가.

근데 강아지를 키우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못 본 한 달 사이에 조금 많이 바뀐 거 같았다.

"이 아파트는 자체 소규모 발전소가 존재한다. 여긴 재난 상황을 대비해 만들어진 단지니까 당연히 있었지. 그래서 지금도 일부 복구 작업을 마친 아파트는 전기도 사용할 수 있다. 인터넷은 아직 무리지만."

"그렇군."

딱히 궁금한 내용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자체적인 발전소가 내재하여 있어 전기를 사용함이 용이하다면 이 아파트에 사는 것도 꽤 편해 보인다.

일단, 개인이 발전기를 돌리지 않아도 에어컨이나 각종 현대 기계들을 사용할 수 있다는 뜻이니까.

'편하긴 하겠어.'

스미스가 레아와 내가 사는 오두막을 증축시켜주고 보수도 해줬지만, 그래봤자 오두막은 오두막이다.

발전기 돌리면서 사는 인생이라 이따금 기름도 찾아다녀야 하고, 없으면 거래소에서 사야 하는 일이 많다.

그런데 이 아파트에 살면 그런 고생은 하지 않아도 되니 괜찮아 보였다.

제대로 보수해서 성역으로 감싸버리면 악마의 침입도 걱정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편하나."

"다른 일은 신경쓰지 않아도 되니까. 편하지. 여긴... 편해."

내 물음에 답하는 강철의 눈이 꽤 촉촉했다.

편하다고 말할 때는 왜인지 모르게 죄책감에 젖은 죄인 같기도 했다.

"근데 여기는 무슨 일로."

"에어컨을... 아니. 시검이란 자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 왔다."

"시검? 난 잘 모르겠군."

강철은 모르는 자인 듯하다.

하긴, 랭킹 1,000위 대의 네피림이니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지.

지금 강철의 랭킹은 3위.

2위는 바바리안, 4위는 아마존이다.

5위는 네크로맨서였는데, 그는 의정부를 완전히 장악했다고 한다.

정신이 꽤 불안정한 녀석이라 관찰자가 나중에 한번 그를 어떻게 해야 하는 거 아니냐며 중얼거리는 걸 들은 적 있다.

"시검이란 자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아는 사람이 있을 거다. 기다려."

잠시 후.

웬 건장한 체격의 사내가 나타났다.

"시검이라면 제가 좀 압니다."

"당신은?"

"저는 258위 빛고리라고 합니다."

빛고리는 자신의 손가락을 하나 펼쳐 빛의 고리를 하나 만들어 냈다.

얼굴은 몰랐는데, 군단장 레이드 때 저 빛의 고리를 본 적이 있다.

차크람처럼 날려대는 빛의 고리는 꽤 강력해서 악마들의 몸이 두부처럼 잘리는 걸 몇 번 본 적 있다.

"그에 대해 아나."

"예, 201호에 산다고 알고 있습니다. 순위는 그렇게까지 높지 않았던 걸로 알고 있어요."

빛고리는 내가 협회의 사람이라는 강철의 소개에 깍듯하게 대했다.

"다른 건?"

"다른. 거요? 다른 거라면 어떤 걸 말씀하시는지."

"그에게 여자가 많다고 들었다. 그에 관련한 이야기는 모르나."

"아, 예. 집에서 데리고 사는 여자들이 꽤 있다는 건 압니다. 하지만 그건 요즘 랭커들에게는..."

흔한 일이라는 소리다.

힘없는 사람들이 랭커에게 빌붙는 일이야 허다하니까.

여자들은 그가 바라는 걸 주고, 안전한 집과 식사와 생활을 요구한다.

이해관계가 맞기에 유지되는 관계이기에 딱히 그런 걸 비판할 이유도 없고, 간섭할 일도 아니라는 뜻.

"1층은 경비와 관리자들이 살고 2층부터 랭커들이 입주했다. 난 꼭대기 층에 살고 있지."

강철이 묻지도 않은 걸 말했다.

여기서도 랭킹에 따라 낮으면 하층, 높으면 고층에 살게 된 모양이다.

"그를 의심하시는 겁니까?"

"맞아. 확신할 수는 없지만, 그가 데리고 간 여자들에게서 연락이 안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거든."

그러자 빛고리의 표정이 미심쩍은 무언가로 바뀌었다.

"왜 그러지."

"아뇨, 그러고 보니 그는 외출이 잦은 편인데 한번 나갈 때마다 여자를 데려오고는 했거든요. 제 착각일지 모르겠지만. 그 여성분들이 다시 나가는 걸 보지는 못했습니다."

"몇 번이나 봤지?"

"제가 본 것만 세 번 정도네요."

이쯤이 되니 의심이 확신으로 굳어지는 기분이다.

"201호라고 했지."

뭐가 됐든 만나보면 그만이다.

201호.

하지만 신기하게도 초인종을 누르기도 전에 문이 저절로 열렸다.

"누구십니까."

마침 외출하려던 참인 모양이다.

가벼운 갑옷과 허리춤과 등에 멘 검 두개가 인상적인 사내.

그가 바로 시검이었다.

"잠깐 들어가 봐도 되나."

"우리 집을 말입니까? 당신이 누군데 우리 집을..."

전체적으로 건장한 모양의 사내는 아니었다. 키는 175 정도 되어 보였고 체구도 적당히 마른 편이었다.

갑자기 자기 집을 들어가 보겠다 하니 당황하며 불쾌한 태도로 허리춤의 검에 손을 짚었다.

당연한 반응이다.

"뭡니까?"

"아, 그게. 이분께서 당신이 데려간 여자들의 생사가 확인되지 않는다고 하셔서요."

빛고리와는 안면이 있는지 그를 향해 눈살을 찌푸리며 묻자, 그가 날 가리키며 답했다.

"하, 그 머글들이요? 적당히 제 등골 빼먹다가 답답하다면서 나갔습니다만? 전 몰라요. 어디 가서 객사라도 했나 보죠."

"들어가 봐도 되겠나."

"... 당신은 뭔데 반말이야?"

시검은 불쾌한 얼굴로 날 노려보더니 이내 내 뒤의 사내와 강철 군주를 보고는 마지못해 끄덕였다.

"집엔 저 말고 아무도 없습니다."

트라움이라는 명성답게 집 자체는 굉장히 넓었다.

"집이 넓군."

"171평이니까요."

으리으리한 집이다.

광활하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커다란 거실과 큼직큼직한 방들이 주를 이뤘다.

20평대 아파트밖에 살아보지 못했던 나로서는 기가 죽을 정도의 평수.

하지만 딱히 중요한 건 아니었다.

중요한 건 여자들의 시체가 있을 법한 공간을 찾아내는 것이었다.

"없군."

여자는 없었다.

창고나 그런 곳도 뒤져봤지만, 딱히 이렇다 할 공간이 있지는 않다.

시체가 있을 만한 공간도 없었고, 여자의 흔적이 느껴지는 그런 것도 딱히 없었다.

좀 특이하다 싶은 건.

"이건?"

"제 컬렉션들인데요. 왜요."

안방에 걸려있는 꽤 다양한 모양의 검들이었다. 단검부터 시작해서 한 쌍이 되는 쌍검이나 대검까지 다양한 종류의 검들이 방 하나에 빼곡하게 장식되어 있었다. 다른 방들도 꽤 다양한 검이 많았는데 그의 말대로 정말 검을 모으는 취미가 있는 모양이었다.

내가 봐도 아름답거나 멋있는 검들이 꽤 많았다. 실전적이지 못한 검들이 있었지만 보기엔 멋있었다.

숫자로 세어보면 40종류쯤 되어 보이는 검이랄까.

난 그것들을 보다가 진열되지 않은 검 하나가 세워진 걸 보고 물었다.

"이건 진열 안 합니까."

"그건 구한지 얼마 안 된 신상이라서 아직 진열 구역을 생각해두지 않았습니다. 그런 거까지 묻습니까?"

도신이 쭉 뻗은 검으로 푸른기가 가미된 바스타드 소드였다.

꽤 아름다운 검이었는데 묘하게 자꾸 눈이 갔다.

"이름은 있습니까?"

"아직 안 정했는데, 왜 자꾸 그런 걸 물어봅니까? 애초에 의심만으로 이렇게 불쑥 남의 집 들이닥쳐도 되는 겁니까?"

이제는 슬슬 참기 힘들겠다는 듯 짜증내는 시검의 태도에 슬슬 나가봐야 할 거 같았다.

"저희가 조금 오해를 했나 봅니다."

"오해? 사람살인범 만들어놓고 오해? 말이면 단줄 아나."

"대신이라기엔 부족하지만 소정의 사례를 드리겠습니다."

난 품에서 악과를 꺼냈다.

"협회에서 드리는 선물입니다."

"협회? 아..."

악과 꾸러미를 받은 시검의 표정이 번쩍 뜨였다.

협회의 열매를 그 또한 랭커라면 들어본 적 있을 것이다.

"크, 크흠. 뭐 원하시면 더 구경하셔도 괜찮습니다."

시검의 태도가 급변했다.

덕분에 난 아까 눈여겨본 검 하나를 손에 잡았다.

『이름없는 검』

-이름이 없는 검.

따로 설명조차 없다.

특성이나 고유효과도 없는 그냥 평범한 검이었다.

"그게 마음에 드십니까? 원한다면 가져가도 좋습니다. 꽝이었거든요."

"꽝이요?"

"아... 꽤 괜찮아 보였는데 아무 효과도 없어서 꽝이란 말이죠."

"예... 어디서 구하셨는지 물어도 되겠습니까?"

"글쎄요, 어떤 동굴에서 구한거라 저도 자세하게 드릴 말씀은 없네요."

예전에도 설명이 빈약한 무기들을 얻고는 했다.

이러한 무기들을 상대로 관찰자는 숨겨진 능력들이 있다고도 했는데, 그걸 확인하는 방법은 감정서를 사용하면 된다는 글을 쓴 적이 있다.

숨겨진 효과가 아니더라도 제작자나 관련 사연이 담기면 그것조차 나온다고 들었다.

하지만 랭킹이나 낮은 확률로 던전을 탐험하다 얻어지는 감정서는 꽤 비싼 금액을 호가하니 쉽게 사용하지 못하는 게 일반적.

찌이익.

하지만 남아도는 게 감정서인 난 가능했다.

"뭐, 뭐 하는 겁니까!"

화들짝 놀란 시검이 소리침과 동시에 검의 설명이 조금 바뀌었다.

『이름없는 시검』

-여인의 시체로 만들어진 검.

시검.

그가 가진 기프트의 능력은 아마도.

"시체로 만든 검이군."

사람의 시체를 이용해 검으로 만드는 능력일 터였다.

에어컨 고장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