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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1위 [2]

89화.

지옥광산.

한국과 베트남 공동 광산구역에서 팔다리가 묶여 있는 포로들 중 하나.

안경 쓴 한국의 네피림.

관찰자가 어금니를 짓씹었다.

'실수했다.'

치명적인 실수였다.

상대 주요 랭커들의 능력을 알아보기 위해 접근한 건 좋았지만 적들의 능력을 알아보기도 전에 당했다.

'설마 그런 기프트를 가지고 있었을 줄은...'

강할거라고 생각은 했다.

하지만 설마하니 눈을 마주치는 것 만으로 온몸이 마비되듯 움직이지 못할 줄은 몰랐다.

일본 랭킹 3위 메두사.

눈을 마주치는 것 만으로 몸이 구속당하자 포로가 되는 건 한순간이었다.

어찌할 방도도 없이 포로 신세가 되자 무력감이 공허하게 맴돌았다.

"관찰자님, 저, 저희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글쎄요."

생포당한 포로 전부를 묶어둔 걸 보면 당장 죽이진 않으리라 본다.

자신이 모르는 이유가 있겠지만 거기까지는 알 수 없다.

일단 살아있으니 기회는 온다.

반드시 올 것이다.

"암시만 아니었다면..."

당장 이 밧줄을 풀었을 거다.

일본 랭킹 1위. 마인드컨이 걸어놓은 암시 때문에 포로들은 기프트란 신의 능력이 있음에도 단순한 밧줄 하나를 풀어낼 수가 없었다.

'너희들은 밧줄을 풀지 못한다. 지닌 이능 또한 쓰지 못한다.'

단순한 암시.

손가락을 이마에 가져가며 하나하나 새겨 넣은 암시다.

하지만 이 암시 하나 때문에 조약한 밧줄 하나를 풀어내지 못한다.

암시의 제압력이 생각보다 대단했다. 역시 Lv.6의 랭킹 1위.

랭킹 1위의 힘은 역시나 대단했다.

그와 별개로 생긴 것도 음침하게 생긴 게 영 마음에 들지 않았는데 능력 자체도 뒤가 구려 보였다. 얼굴에 표정 없는 여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걸 보며 관찰자는 자신의 첫인상에 견고한 확신을 가졌다.

'기프트 능력으로 생각해본다면 좋아서 옆에 있어 보이지는 않아.'

놈의 여자 문제야 차치하고서라도 현 상황이 썩 좋지만은 않다.

포로들은 자체적으로 해결할 능력을 잃었고 왜놈들은 그들의 목에 칼을 겨누고 광산 구역을 내놓으라 말하고 있다.

하지만 마냥 들어줘서도 안됐다.

"제가 아까 들었는데... 이놈들, 광산을 내놓으면 차지하고 바로 기습할거라고 했어요. 어, 어떡합니까? 또 많은 사람들이 죽을겁니다...!"

"...."

침통할 따름이다.

제아무리 세상이 망하고 사회의 질서가 무너졌다한들 이런 치졸한 방법으로 싸우다니.

악마랑 싸워도 힘에 부치는데 사람끼리 서로를 뜯어 먹어 이득을 보려고만 하지 않는가.

통탄할 노릇이다.

"어이, 거기. 입 닥치고 있어. 죽고 싶은거냐?"

스릉.

검을 들이데며 말하는 감시관의 검에 관찰자와 대화를 나누던 네피림의 목에서 핏방울이 흘렀다.

"한마디만 더 하면 네놈도 목을 날려버릴테니까 입 닥치고 있어. 귀찮게 하지 말라고."

까드득.

이를 짓씹어 화를 참아내는 관찰자의 눈에 한 사내가 담겼다.

"!"

물소뼈를 뒤집어 쓴 마법사.

한손엔 지팡이와 로브를 휘날리는 건장한 체격의 사내.

한국의 랭킹 1위 데몬시드였다.

몸 주위가 이상하게 이글거리고 흐릿하지만 그가 맞았다.

묘하게 음산한 분위기가 풍기는 게 이상하지만 분명한 데몬시드였다.

반가웠다.

이 참혹한 상황에서 그들이 기댈만한 유일한 사내였으니까.

데몬시드는 두손을 들며 다가왔다.

손에 쥐었던 지팡이까지 내려 놓고 천천히 다가왔다.

그리고는 말하기를 자신이 랭킹 1위의 데몬시드이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청해왔다.

'안돼.'

이야기를 나누면 안된다.

랭킹 3위 메두사는 보는 것만으로 상대를 마비시키고 1위는 손대는 것으로 암시를 건다.

제아무리 데몬시드라도 몸이 마비되고 신체의 제어력을 잃어버린다면 아무런 힘도 쓸 수 없다.

그가 사실 데몬시드이며 뇌창이라 해도 불변할 기정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때였다.

데몬시드는 포로에 관해서도, 광산에 관해서도, 전쟁도 아니고 뜬금 없는 이야기를 전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합동 작전으로 북한의 군단장을 잡기로 했다."

뜬금없다면 뜬금없는 내용.

하지만 그 내용이 가져다주는 궁금증과 이어질 보상이라는 것에 대해서는 누구도 무시할 수 없었다.

자그마치 한 차원의 네피림들 전체 레벨 격상. 그리고 지금으로서는 의문 투성이인 헤일로라고 하는 것.

'헤일로...'

일반적으로는 광명. 후광.

하지만 관찰자가 알고 있는 헤일로란 천사가 머리 위에 띄우고 있는 빛의 고리를 뜻하고 있었다.

일명 천사링.

헤일로가 보상으로 주어진다면 네피림은 어떻게 되는걸까.

어떤 효과를 가져다주는 걸까.

인간은 천사에 근접해지며 더욱 강해질 수 있는걸까.

악마들을 몰아낼 힘을 받아내나?

돌연 갈증처럼 생겨난 의문은 메마른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유쾌한 해답을 원했다.

그리고 그건.

일본의 랭킹 1위도 다르지 않았다.

"잠시 기다려라."

침착한 척 하고 있지만 어마어마한 정보다.

이와 같은 정보를 전하려 간 랭커의 발이 얼마나 재빠른지 랭킹 1위의 마인드컨이 금세 찾아왔다.

옆에는 랭킹3위 메두사도 함께였다.

'이건... 가능할지도.'

북한에 자리잡은 대악마.

군단장 레이드다.

광산의 자리 싸움에서 명제가 단번에 바뀌고 있는 것이다.

데몬시드가 말하는 레이드는 단순한 레이드가 아니었다.

전쟁 단위의 레이드.

보상 또한 탁월하다. 게다가 군단장 휘하의 악마들을 때려 잡으며 나올 부산물들도 무시할 게 못된다.

일본 놈들의 관심사가 광산에서 단번에 레이드로 바뀌고 있는 거였다.

"랭킹 1위, 마인드컨이다."

"랭킹 1위, 데몬시드다."

간단하게 인사한 뒤.

멀찍히 떨어진 거리에서 각 나라의 1위끼리 대화가 시작됐다.

"네 말이 사실이라는 증거는?"

"퀘스트 창을 공유할 수 있다."

데몬시드는 자신의 퀘스트 창을 켜서 모두에게 공개했다.

랭킹 1위만 있는 채팅창도 공개하고 나서야 일본측은 믿는 듯 했다.

"그래서 네가 원하는 건 뭐지?"

"포로들의 생환. 그리고 광산도 하나 넘겨주지."

"... 그렇게까지?"

"생각해봐라. 군단장 레이드는 손쉬운 일이 아니다. 삼국이 모여도 나는 힘들다고 본다. 당신들과의 협력은 오히려 레이드 성공 가능성을 높이는 일이지. 우리 나라에 비해서 일본은 보유 네피림의 숫자도 두배나 될테니까."

"흠... 우리가 너희를 공격하고 포로까지 잡았는데 말이냐."

"너는 알텐데. 약해빠진 놈들 몇이 죽는다해도 큰 차이는 없다는 걸."

충격적인 대화였다.

데몬시드가 그렇게까지 말하자 일본의 랭킹 1위는 푸핫! 웃음을 터트렸다.

"맞지. 아, 확실히 1위 끼리는 말이 통하는 법이네. 보는 시선이 같아."

마인드컨 또한 데몬시드의 말에 동조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렇게까지 말하다보니 관찰자는 덜컥 겁이 났다. 데몬시드가 정말로 일본과 손 잡고 레이드를 할 거 같아서였다. 일본의 네피림 숫자는 한국의 두배 이상이다.

레이드를 확실하게 성공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힘이 있으면 확실하게 좋았다.

하지만.

'하지만...'

레이드를 생각하면 그들과 손 잡아서 나쁠 게 없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견디기 힘들었다.

이런 놈들이랑 손을 잡고 싸워야 한다는 말이었으니까.

"그리고... 여기서는 하기 힘든 다른 이야기도 있는데. 따로 얘기할 수는 없나?"

데몬시드는 아직도 멀찍히 떨어져서 두 손을 들고 있었다.

은근히 뒤에 기립해 있는 베트남과 한국 네피림들을 바라보며 말하는 투가 그들에게는 알리고 싶지 않은 뉘앙스였다.

단번에 알아들은 마인드컨이 흔쾌히 수락했다.

"좋아."

"하지만 대장. 함정일지도...."

주변 랭커들이 만류했다.

하지만 마인드컨은 손사래쳤다.

"메두사도 있고, 나도 있다. 뭐가 문제지?"

하늘을 뚫을 듯한 자신감.

마인드컨은 그들끼리 들리는 소리로 속삭였다.

"악수를 유도해서 암시를 걸을거다. 그러면 놈은 우릴 배신 못해. 애초에 이딴 광산보다 레이드가 더 일본 전체의 성장률을 기대할 수 있다."

"맞아, 어차피 나랑 대장이 있는데 무슨 걱정이야. 아무리 한국 랭킹 1위라도 그래봤자 혼자야. 그리고 레벨도 낮다며? 레벨 5 정도면 랭킹 1위라도 별로 어려울 것도 없지."

랭킹 1위와 3위가 말하자 신빙성이 있다.

메두사와 마인드컨.

둘의 조합은 그 어떤 악마와 네피림이라도 이겨낼 수 없었으니까.

"데몬시드라고 했나. 와라. 한국과 달리 우린 손님 대접은 확실하니까."

마인드컨이 허락하자 두 손을 들고 있는 채로 데몬시드가 걸어왔다.

저벅, 저벅.

포로들이 무릎꿇고 있는 곳을 지난다.

관찰자와 다른 포로들은 입도 열지 못한 채 데몬시드를 노려봤다.

그중에는 눈물을 흘리는 자도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데몬시드는 그들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그리고 이내.

랭킹 1위 끼리 마주보며 섰다.

이내 악수한 순간.

"판포비아."

"마인드컨트..."

랭킹 1위끼리 통하는 게 있었을까.

악수와 함께 나온 건 인삿말이 아닌 스킬의 시동어였다.

"하! 멍청하....."

동시에 마인드컨의 말이 끊겼다.

데몬시드와 악수한 채로 잠시 멍하니 있더니 이내 뒷걸음질쳤다.

"뭐야?"

영문을 모르겠다는 바보같은 표정을 지은 마인드컨은 이내 얼굴을 구겼다.

"나한테, 나한테 뭘 했지...?"

"딱히?"

"그럼 왜! 왜 내 기프트가 기억나지 않는건데!!"

빼액, 두려워하며 비명을 내지르는 마인드컨의 모습에 일본 랭커들이 앞다퉈 식겁하기 시작했다.

기프트가 기억나지 않는다니!

그게 갑자기 무슨 소리란 말인가!

"대장 왜 그래! 너 이 새끼 무슨 짓을 한거야!! 뭘하고 있어 얼른 덥쳐!"

"죽여!!"

랭커들이 앞다퉈 뛰어들었다.

하지만 그 순간.

"우리나라 사람이 죽었는데, 내가 가만히 있을 줄 알았냐?"

땅 밑에서 튀어나온 가시덩쿨 수십개 랭커들의 몸을 뒤덮었다.

푸욱!

삽시에 들리는 비명.

화악- 풍기는 피비린내.

한순간에 피바다가 된 곳에서.

데몬시드는 덩쿨에 묶여있는 랭킹 1위 마인드컨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왜 기습했지?"

"너희가 좋은 걸 가지고 있으니까! 뺏어야 했으니까!!"

이놈들은 언제나 그랬다.

남의 것을 탐내는 전범국.

"그래, 그게 너희가 죽는 이유다."

이내 손가락을 튕기더니 가시덩쿨에 꼬챙이처럼 꼬이거나 묶여 있는 이들을 그대로 불에 태웠다.

화아악!

"끄아악!!"

푸르게 불타오르는 불.

삽시에 수십개가 한꺼번에 타올라 랭커들이 덩쿨과 함께 불타 죽었다.

일본의 랭킹 1위.

마인드컨 또한 마찬가지였다.

흔적 하나 남기지 못하고 잿더미로 타버리는 랭커들이 가루가 되었다.

"순식간에..."

그야말로 순식간이었다.

한순간에 일본 랭킹 1위를 무력화시키고 주변에 도사리고 있던 일본 랭커들 백에 가까운 숫자를 한순간에 모조리 죽여버렸다.

차원이 달랐다.

레벨만 보고 데몬시드를 얕잡아 봤던 일본놈들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뤄야만 했다.

관찰자는 생각했다.

레벨이 낮은 이유는 역시 두개의 기프트를 가져서일거라고.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강한 힘은 설명할 수 없었으니까.

'역시 달라.'

자신과 같은 평범한 사람들과는 궤를 달리하는 사람.

그게 바로 한국의 랭킹 1위.

데몬시드였다.

"어, 어디 가십니까?"

"피하는 게 좋을거다."

"하, 하지만 일본인들이 몰려오고 있습니다. 싸워야 하는게..."

데몬시드는 고개를 저었다.

"이미 씨앗은 던졌다."

"네? 그게 무슨."

그때였다.

돌연 달려드는 일본군들 사이에서 하나의 나무가 자라났다.

아니. 그건 나무가 아니었다.

거대한 식물 형태의 괴물. 3개의 머리를 지닌 히드라였다.

-캬아아아아아아!!

광산의 천장까지 닿을 정도로 거대한 히드라가 나타난 순간.

입에서 돌연 빔을 쏘아대며 광산을 난장판으로 만들기 시작했다.

데몬시드는 조금 멀찍히 떨어져서 +5 씨드라 한마리가 보여주는 위용을 조용히 감상하고 있었다.

콰광! 콰앙!!

혼자서 주변을 초토화시키는 씨드라를 보며 관찰자는 침을 꿀꺽 삼켰다.

자신의 능력으로 씨드라를 관찰한 순간. 헛바람을 집어 삼켰다.

[씨드라+5] (black) Lv.8

-데몬시드가 만들어낸 인공 생물.

마의 힘이 광폭화되어 무차별적으로 움직이는 모든 걸 공격하고 끝에는 자기 자신까지 집어 삼킨다.

[시들기까지 9:49]

씨드라의 위험 색상은 블랙.

레벨은 8.

절대로 싸워선 안될 수준의 괴물.

관찰자는 다짐했다.

"하나로도 충분하네."

그에게는 절대 복종하자고.

그의 손 안에서 가득한 씨앗들을 보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아토 [1]

90화.

판포비아.

미지의 공포라며 이름을 망각하게 한다더니 실상은 달랐다.

'기프트를 이름으로 보는건가.'

조금 어폐가 있었으나 멸망기가 다가오며 네피림들은 이름보다는 기프트의 명이나 별명으로 불린다.

그러니 어찌보면 이름이기는 하다.

이름이란 그를 지칭하는 단어니까.

지금의 시대에 기프트는 이름.

그러니 기프트를 망각하게 하여 능력 자체를 봉인하는 것.

'사기적이긴 해.'

굉장히 사기적인 능력이기는 했다.

이 능력만 있다면 웬만한 네피림들은 내 상대가 되지 못한다.

그들의 기프트를 봉인하는 것 만으로 전투력의 낙차는 어마어마하니까.

물론, 리스크 또한 명확하다.

"판포비아를 사용합니다."

"당신의 능력치 중 하나가 랜덤하게 10% 소멸합니다."

"마력이 10% 소멸합니다."

"마력 5가 영원히 소멸됩니다."

"57의 마력이 52가 되었습니다."

"....씨발."

제일 안 사라졌으면 했을 능력치가 사라졌다.

마력은 따로 올릴 수도 없는데 하필 마력이 소멸했다.

설마 마력이 사라지진 않겠지하고 사용해봤는데 이렇게 될 줄이야.

"씨드라 하나 더 뿌릴까."

열받아서 +5강 짜리 씨드라를 던져놨는데 하나 더 던지고 싶다.

세상이 밉다.

"수확이 없지는 않네."

일본 놈들이 죽으면 죽을수록 놈들의 경험치와 아이템이 물밀듯 쏟아졌다. 몇몇의 인벤토리를 확인해보니 썩 괜찮은 아이템도 많고 금화나 지옥석도 꽤 두둑하다.

[마인드컨의 인벤토리]

-65200금화.

-20120지옥석.

.

.

.

나름 잡다한 아이템들도 많았는데 대개 나한테는 필요 없는 것들이라 거래소에 올리면 잘 팔릴 거 같았다.

"바니걸 세트는 왜 있는거야? 이상한 놈이네 이거."

쿵! 쿠웅!!

격렬하게 움직이는 씨드라 때문에 덩달아 일대가 격하게 흔들린다.

천장에서 부스러기가 잔뜩 쏟아져서 무너지는 거 아닌가 했지만 그래도 아직 멀쩡해 보인다.

"이제 슬슬 힘 좀 빠졌으려나."

가시덤불로 두껍게 막아놔서 그런지 비명 소리와 굉음만 들려올 뿐 어떻게 되고 있는지 보이지는 않았다.

"그나저나 쓸만하네."

브램블리로 덩쿨을 만들어내 창처럼 뾰족한 부분을 만져보니 흡족하다.

투왕의 살기를 덩쿨의 뾰족한 부분에 덧입히니 살상력이 강해졌다.

나보다 레벨이 높은 악마한테는 별 소용이 없겠지만 그 아래 것들한테는 이것만큼 강력한 힘이 또 없다.

게다가 살기를 덧 입히는 것만으로도 살상력이 높아진다.

하여 브램블리로 덩쿨을 만들어 왜놈들을 단번에 죽일 수 있던 것이다.

지옥 광산의 지형적 특성 때문에 브램블리를 잘 사용하지 못했는데 투왕의 살기를 이용하니 가능해졌다.

앞으로 지옥 광산의 전투들이 꽤 편해질 예정이었다.

"데몬시드님. 씨드라의 활동 한계가 곧 찾아올 거 같은데... 이제 어떻게 하실 겁니까?"

관찰자였다.

씨드라의 활동 시간까지 알아본건가?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관찰력의 성능이 꽤 좋다.

"천명보다는 많아 보였다. 남아 있는 자들도 있겠지."

도망가는 놈들도 있을거다.

나는 오늘, 그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죽일거다.

물론 나 혼자만은 아니다.

"화난 건, 나만이 아니니까."

사람이 많이 죽었다.

많이 다쳤다.

그리고 잡혀 있기도 했다.

놈들은 협박도 했다.

그런데, 내가 참아야 하나?

"복수해야 할 거 아닌가."

혹자는 말한다.

복수처럼 의미 없는 짓은 없다고.

하지만 복수한 자들은 말한다.

복수처럼 짜릿한 것도 없다고.

"나머지는 저 사람들한테 맡겨도 충분하겠지만."

뒤로 손짓하자 강철을 비롯한 한국 네피림과 베트남들이 모여 있었다.

불과 며칠 전만해도 서로 싸웠지만 이제는 나름 한편이었다.

"데몬시드! 베트남을 대표해서 감사를 표합니다. 제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힘을 빌려주겠습니다."

만트라였다.

진심으로 정중하게 인사한 만트라는 베트남 네피림들을 이끌고 남아 있는 일본인들을 살육하기 시작했다.

그 뒤를 아마존과 강철이 쫓았다.

강철군주의 강철기사는 이전보다 강건해져 기마를 이끌고 일본인들을 무차별적으로 도륙했고 달아나는 놈들도 아마존은 용서 없이 활을 쐈다.

바바리안도 맹렬하게 도끼를 휘둘렀고 나머지 네피림들도 같았다.

그리고.

"빠르네."

가장 활약하고 있는 건 다른 누구도 아닌 레아였다.

"쟤는 왜 저렇게 화난거야."

이유를 모르겠지만 레아도 화가 단단히 났는지 와해된 일본인들을 모조리 죽이고 있었다.

어디서 났는지 쌍검을 들고 붉은 머리를 휘날리며 싸우는 광전사의 모습이란 내가 봐도 무서웠다.

안 그래도 전체적인 신체 스펙이 높은데 타이탄으로 뻥튀기 되면서 눈으로 쫓기 힘들 정도로 빠르게 싸웠다.

힘, 속도, 체력 모두가 웬만한 한국 랭커들보다 월등히 높았다.

'지금 수준이면 신체능력은 나랑 비슷하겠는데.'

타이탄으로 뻥튀기 된 신체능력이겠지만 수준이 나와 비슷해보였다.

만족스럽게 바라보다가 은정의 물뿌리개를 꺼내 죽은 일본인들을 천천히 주워 담았다.

죽일 놈들이 죽었으니 명복을 빌어주는 일 따위는 없었다.

안 그래도 물 뿌리개가 비었었는데 꽤 많이 담아갈 수 있겠다.

슬쩍 움직이며 담고 있으니 벌써 은정의 숫자가 50개가 넘어갔다.

이 숫자면 백개도 금방 넘겠다.

"괜찮을까요."

물뿌리개를 채우고 있으니 뒤에서 관찰자가 말을 걸었다.

"어차피 일본 놈들이 우릴 기습한 이유는 광맥 때문이니까."

달리 바꿔 말하면 놈들에겐 이제 자원이 없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러니 굳이 놈들의 영역까지 처들어가봤자 뺏을 것도 없다.

적당히 분풀이하면 충분하겠지.

난 그걸 막을 권리도 이유도 없다.

그것보다.

"당신, 지금 어디있지?"

"네? 그게..."

"아니, 어디서 살지."

"저는 부천에 있습니다만... 그건 갑자기 왜..."

"자."

관찰자에게 포탈 스크롤을 건네고 나 또한 포탈의 서를 꺼냈다.

물 뿌리개도 대충 채웠고.

여기서 할일은 이제 없다.

"네? 아니, 갑자기..."

"자잘한 건 저 사람들이 할테고 괜찮으니까 나부터 따라와 보라고."

어안이 벙벙한 관찰자를 부추겨서 스크롤을 찢게 했다.

이내 포탈이 열리고 보이는 건 나만의 작은 섬.

불별도.

관찰자를 데려온 건 필요에 의해서였다.

그리고 관찰자뿐만이 아니다.

내 정체를 알고 있는 아마존과 강철군주, 관찰자 정도로 믿을 만한 사람들을 모을거다.

그들을 모아서 내가 만든 열매들을 먹여 강하게 만든다.

일단 인성을 확인한 사람들을 강하게 만들어야 일이 수월해진다.

"여기가 당신이 살고 있는..."

관찰자는 나무 위에서 창을 들고 있는 그램을 보고 놀라다가, 돌연 내 어깨에 나타난 하얀 거미.

엘리스를 보고도 깜짝, 깜짝 놀라며 불별도의 풍경을 신기해 했다.

"관찰하고 있나?"

"예. 정말... 대단하군요. 당신이 강한 이유가... 만능형도, 기프트가 두개라서도 아니었네요. 비전투직, 아니 생산직이셨군요?"

"생산직..."

생각해보면 틀린 소리는 아니다.

근데 뭔가 기분이 나쁜건 왜일까.

"뭐 그런 편이지. 어쨌든, 당신이 해줄 일이 많아."

"뭐든 하겠습니다. 레아님을 대신해서 음식이라도 만들어서 팔까요? 아니면 이 열매들을 보상 삼아 정보 조직을 만들어 보는 것도..."

왠지 모르게 꽤 신나 보였다.

안경을 고쳐 쓰면서 연신 뭔가를 메모하고 있었는데 슬쩍 보니 열매들로 할 수 있는 일들이었다.

"그럼 간간히 거래소에 유통되는 악마의 열매들도 모두 데몬시드님이 하신 거였군요. 판매자 이름이 분명 불별이었던... 맞나요?"

"맞아."

부정할 필요는 없겠지.

"들어서 알고 있겠지만 한달 뒤, 34군단의 군단장 푸르푸르의 레이드가 있다. 그 전까지 나는 최대한 랭커들의 수준을 끌어올려야 해."

단순한 카오스 게이트를 침투하는 챔피언하고는 다르다. 완전히 궤를 달리할 수준이라고 확신한다.

그러니까 최대한 강해져야 한다.

"내 악과들은 확실하게 네피림들의 신체 수준을 끌어 올릴 수 있어. 신체 능력이 높아지는 것 만으로도 전투의 질은 확실하게 달라진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관찰자.

"당신은 관찰에 집중되서 네피림들 중에서도 중요도가 높아. 하지만 전투 능력은 형편없지."

"맞습니다."

하지만 난 관찰자를 그렇게 낮게 보지 않는다.

관찰자라는 기프트를 가졌음에도 그의 랭킹은 50위 권이다.

기프트에 전투 기술이 딱히 없음에도 그 정도 순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다.

잘만 키우면 지금보다 더 양질의 수준으로 올라갈 잠재력이 있다는거다.

"당신한테는 악과의 유통권을 줄게."

"유통권이요?"

내게는 쓸모 없는 악과들은 재고가 쌓이고 있다. 레아가 가져가거나 브란스가 훔쳐가서 뭘 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많다.

짧게는 2주 길면 한달만에 과실이 맺히는 것들도 있다보니 그렇다.

게다가 앞으로는 좀비나 레벨이 낮아서 굳이 심지 않았던 것들도 모조리 심어볼 생각이다.

데몬시드 스킬이 +2가 된 터라 뭘 심어도 원래라면 얻지 못한 능력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

쓸모있는 건 먹고, 아닌 건 팔아버리면 그만이다.

레벨이 낮은 악과일수록 열매가 다시 맺히는 속도도 빠르다.

'새 섬을 하나 찾는 것도 좋겠지.'

더 다양하고 많은 작물을 심기 위해서는 넓은 땅이 필요하니까.

"가만히 있어도 쌓이는 열매들이 꽤 많아. 그것들을 가져가서 팔아줘."

짬처리하는 거 같지만 그게 맞다.

쌓여 있는 재고 처리를 하는 것도 이제 귀찮다.

이것 말고도 할일이 많기 때문이다.

"거래소를 이용하면..."

"사재기하는 놈들이 너무 많아졌어. 그건 안돼."

거래소에 팔면 돈좀 있는 놈이 전부 사들이고 도로 비싸게 팔아버린다.

그래서는 의미가 없다.

나한테 도움이 될 놈들한테만 팔고 싶다. 하지만 그걸 내가 일일히 정하기는 너무 번거롭다.

그래서 단체를 만드려고 하는거다.

단체를 만들어서 열매를 나눠주고 보상으로 주고 월급으로 정한다.

이렇게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일 많이 한 놈이 강해진다.

"이걸보면 +5강이나 +3강 된 열매들도 있어. 이것들은 꽤 절차를 걸쳐서 검증된 인원한테만 팔거다."

"예, 증가폭이 높으니까요."

우선적으로는 관찰자, 아마존, 강철군주를 키울거다.

바바리안도 괜찮고 신용할만한 사람이라는 게 검증되면 누구도 좋다.

"물론 판매금액의 일부는 당신들한테도 줄테니까 걱정할 거 없어."

강해지기 위해서는 열매만 있어서 되는 게 아니다.

금화도 어느 정도는 필요하다.

스킬북을 얻기 위해서는 상점에서 금화를 써서 사야하니까.

"협회 설립에 신경쓰면 한달 뒤의 레이드까지 강해지는데만 전념하지 못하니까 조금 어려우려나?"

"아니요. 어차피 레이드를 할 생각이라면 단체를 만들어서 인원을 배정하고 정리하는 게 낫습니다."

"음."

확실히 관찰자가 보는 눈이 있다.

이야기의 핵심을 제대로 본다.

"그럼 이건 이렇게..."

"음."

"그리고 우선 랭커들 중에서 뒤가 구린 사람들은 빼고, 확실하게 검증된 인원들을 추려서..."

"그렇게 하면 될거야."

"알겠습니다. 그럼 여기 좌표를 좀 찍어도 될까요?"

"어, 그리고 저쪽에 기부도라고 있는데 저쪽도 내 과수원이 있어."

"그렇군요. 저쪽 포탈이 있나요?"

"응, 여기."

"감사합니다."

이야기가 착착 진행된다.

관찰자가 적어낸 공략 글들을 보며 생각한 적 있다.

글이 깔끔하고 수려하다.

글을 보면 사람을 안다고 관찰자는 역시 생각한대로 일처리가 빨랐다.

일을 시키면 시킨 일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시키지 않은 것도 알아서 만들어서 척척하는 사람.

'이런 인재를 잃을 뻔 했네.'

조금 무리해서라도 구해내길 잘했다는 생각에 절로 흐뭇해졌다.

"근데 회장님. 확실하게 판매를 시작하고 진행시키면 악과라는 게 조금 부족할 거 같습니다."

"아... 그게 벌써 그렇게까지 계산이 되나?"

"예, 과수원을 더 늘리셔야 겠습니다. 제물성장을 사용하시면... 아, 그리고 기부도의 면적이나 앞으로 늘릴 땅의 예정지는 어떻게 되십니까? 그리고 이쪽 위치가..."

생각보다 열정이 과하다.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관찰자는 일을 너무 잘하는 사람이었다. 조금 편해지려고 불렀더니 왠지 내 할 일이 더 생겨나는 느낌이었지만.

'좋은게 좋은거지.'

전용 비서가 생긴 느낌이라 썩 나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협회의 이름은 무엇으로 하시겠습니까?"

협회의 이름.

난 섬에 처음으로 자라난 나무를 보며 답했다.

"아토, 아토로 하지."

"아토...? 무슨 뜻입니까?"

관찰자의 물음에 피식 웃으며 답했다.

"선물."

대장장이 스미스 [1]

91화.

일본의 후쿠오카.

무너지다 만 빌딩 한켠에 자리잡은 수많은 거대 둥지들.

팔에는 깃털 달린 날개를 지니고 발은 맹금류의 그것을 지녔으나 외견은 아름다운 여성의 모습을 한 악마.

Lv.5 라고 알려진 하피였다.

하늘을 날아다니며 사람들을 잡아 떨어뜨리고는 뜯어 먹기 시작하는 하피들을 바라보는 방독면 쓴 수녀복 차림의 여인이 은밀하게 이동했다.

스읍, 하.

방독면을 쓴 채로 기묘한 바람 소리를 낸 여인은 타이트한 수녀복을 입은 채로 등 뒤의 일본도를 잡았다.

그러자 일본도는 어느새 은색의 액체로 변해 형태를 바꾸더니 대구경 라이플로 변했다.

조준경으로 하피를 조준하고 발사까지 채 1초가 걸리지 않았다.

피잉! 소음기로 인해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떨어뜨린 인간을 뜯어 먹던 하피의 머리통이 팍! 하고 수박처럼 깨졌다.

철컥!

재장전과 동시에 탄피가 튕겨져 나가고 바닥에 떨어짐과 동시에 다시 한발을 발사된다.

피잉!

띠리링.

떨어졌던 탄피는 은색의 액체로 변하더니 슬그머니 움직여 대물 저격총의 일부로 스며들었다.

잠시 뒤.

날개 꺾인 하피들의 시체들이 즐비한 그곳에서 방독면 쓴 수녀복 차림의 여인.

머큐리가 주변을 돌아다니다 문득 들려온 알람에 메시지 창을 켰다.

[메이님에게로부터 메시지]

-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어. 뭐 부터 들어볼래?

머큐리는 나쁜 소식이라고 적었다.

곧장 답이 날아왔다.

[메이님에게로부터 메시지]

-랭킹1위랑 3위가 죽었어. 이제는 머큐리. 당신이 랭킹 1위야.

확인해보니 사실이었다.

레벨 랭킹을 확인해보니 그 지긋지긋한 놈이 사라졌다.

사람들 마음대로 조종하면서 미녀들은 모조리 자기 인형으로 삼던 여자들의 주적 같은 놈.

그놈이 사라졌다는 사실에 머큐리는 들고 있던 일본도를 십자가로 바꾸어 무릎꿇고 기도했다.

[레벨 랭킹]

[1위 - 머큐리 Lv.5]

[2위 - 라이칸 Lv.5]

[3위 - 베딕 Lv.5]

.

.

.

[메이님에게로부터 메시지]

-궁금하지 않아? 누가 마인드컨이랑 메두사의 조합을 부쉈는지? 궁금하지? 단돈 10금에 정보 뿌린다!

방독면속 검은 눈.

머큐리는 거래소를 들어가 메이가 아무렇게나 올린 잡템 하나를 10금에 구매하고 쪽지를 보냈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 답변이 왔고 머큐리는 그 쓰레기가 치열하게 전투를 벌인 것도 아닌.

단칼에 죽었음을 알 수 있었다.

북한에 자리잡은 군단장과 함께.

그리고 그를 죽인 자 또한.

"데몬시드..."

방독면에서 빠져나오는 입김이 불어오는 바람에 휘날렸다.

[메이님에게로부터 메시지]

-이제 그 새끼 피해서 도쿄에서 물러나 있지 않아도 돼. 그놈이 호시탐탐 당신 노려서 후쿠오카에 있는 거잖아. 이제 도쿄로 올거지? 당신 기프트 때문에 몸 상태도 엉망이잖아. 그놈의 수은 중독 때문에.

머큐리는 메시지창을 꺼버리고 하피 엘리트가 자리 잡았던 꼭대기 빌딩 둥지에 앉았다.

꽤 높은 곳이라 그런지 이곳에서라면 한국이 보이지 않으려나 했으나, 안개가 짙어 보이지 않았다.

*

같은시각.

불별도에서는 한창 데몬시드와 관찰자가 대화하고 있었다.

좀 더 확실하게는 보고였다.

하지 않아도 된다해도 관찰자는 매일마다 와서 관련 사항을 보고하고 작물의 상황을 확인하고는 기부도에 가서 브란스와 친분도 쌓았다.

"우선, 이번 지옥 광산에서 일본인들에게서 얻어낸 전리품을 판매 결산부터 확인해주십시오."

"아, 어..."

"전부 합해서 54,210 금화입니다. 쓸모가 있어 보이거나 제 관찰력으로도 확인이 불가한 것들은 따로 제외하고 판매한 대금입니다."

가만히 있어도 알아서 다 해주니 나야 물론 편했다.

덕분에 주머니가 두둑해졌다.

전리품 판매값이 아니더라도 앞으로 대장간의 알바비와 더불어 레아의 음식값도 줄줄이 나온다.

가만히 있어도 돈방석에 앉는다는 말이 바로 이 말이던가.

'이 세상이 되어서야 돈 걱정을 하지 않게 될 줄이야...'

비바람 헤치며 배달 알바 하던 눈물 겨운 시절이 눈앞에 스쳐갔다.

왠지 눈가가 촉촉해지는데 마음은 풍족하고 주머니는 넉넉했다.

이게 바로 행복이란 걸까.

"그리고 제가 브란스님과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만."

"아, 그 영감님은 뭐하고 계신데. 요새 계속 틀어박혀서 안 보이던데."

몇번 불별도로 건너와서 옥수수 훔쳐 먹더니 이젠 또 골방에 틀어박혀서 얼굴을 안 비춘다. 기부도의 온돌방 초가집을 브란스한테 빼앗긴 터라 썩 마음에 편치 않다.

다른 곳으로 가줬으면 하는데 벌써 뭐 이상하게 꾸며놔서 그냥 뒀다.

"악과들을 상대로 여러 실험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제 능력으로 조금 도움을 드리고 있습니다."

"도움?"

"예. 제 기프트가 그 분께 적잖이 도움이 되는 거 같더라고요."

"흐음."

하기사, 관찰자의 기프트는 대부분 물건이나 생물의 관찰 정보에 편향되어 있다.

브란스는 숲의 현자로 불렸던 몸이고 골방에 틀어 박혀서 이것저것 실험하기를 좋아하는 노인네다.

브란스에게 있어 관찰자는 부려먹기 좋은 조수이자, 쓸만한 돋보기 정도가 아닐까.

'아니지, 훌륭한 돋보기지.'

근데 그래서.

"그 영감님은 뭘 하신다는데?"

대체 뭘 하는거냐 물으니.

"저도 자세하게는 잘 모르겠지만 악과의 효능은 정말 뛰어나지만 단기간에 큰 효과를 주기엔 배불러서 무리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배 안 부르게 만들거라고 하시던데..."

관찰자도 정확하게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배불러서? 배 안 부르게?'

뭔 소린지 모르겠다.

내 입장에서 악과는 포만감을 채워주고 영양도 뛰어나기에 배부르려고 먹는 거에 가까웠는데 그걸 배가 안 부르게 하다니.

"포만감을 없애고 더 많이 먹게 하기 위한건가?"

대충 무슨 생각인지는 알겠는데 굳이 그걸 그렇게해야 하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래 뭐... 그것보다 협회는?"

"만들어지는 건 기정사실이나 다름 없으니 큰 문제는 없습니다. 여기 명단도 정리 했습니다."

"굳이 이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명단을 확인하자 협회 중진 목록과 악과를 판매할 랭커 명단.

그리고 인성과 잠재력이 높게 측정되어 있는 인원들의 이름들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협회 간부로 선정된 이들은 강철군주랑 아마존, 그리고 바바리안이었다.

관찰자도 끼어 있었고 나머지는 아직 몇몇이 확인중이었다.

「판매자 명단」

9위 혼나비, 11위, 글로리안, 12위 보석별, 15위 푸른백합, 18위 드루이드, 20위 소울피어, 39위 소서리스.

"글로리안... 흠."

썩 듣기 좋은 이름은 아니다.

그 놈과는 좋은 추억이 없어서.

딱히 나한테 뭘 한 적은 없지만 마주칠 때마다 띠꺼웠다.

"뺄까요."

"얘 인성 괜찮나?"

"겉으로 보이는 품성은 좋지 않아 보이지만... 이 사람, 데몬시드님 팬클럽 회장입니다."

"...? 팬클럽?"

"뭔가 종교처럼 생겨나고 있는 단체인데 시드파라고 데몬시드님을 찬양하는 이들이라 보시면 됩니다."

"... 기분 나빠."

그러고보니 글로리안은 내가 뇌창과 동일 인물이라는 걸 모른다.

그래서 그런건가.

아무튼 기분 나빴다.

"뺼까요?"

"아니 뭐... 냅둬."

그냥 주는 것도 아니고 판매할 건데 굳이 뺄 필요는 없겠지.

중요한 돈줄 중 하나인데 사사로운 감정으로 돈 주머니를 놓칠 수 없지.

오히려 마음에 안 드니까 더 돈을 뽑아내야겠다.

"그리고 강화된 열매는 중요도가 높은 정보를 공유한 이들에게 건네기로 했습니다. 예를 들면 히든 던전이나 새로운 데몬들의 군락지 같은 것들 위주로요."

"그건 좋네."

내 몸은 하나다.

그래서 많은 보상을 얻을 수 있는 히든 던전을 찾는 것에 한계가 있다.

하지만 저들이 앞다퉈 정보를 전달해준다면 더할나위 없다.

'히든 던전은 이계의 사람들과 연을 만들수도 있고 얻지 못할 아이템들을 얻어낼 수도 있어.'

히든 던전은 필수로 독점한다.

그거까지 나눌 필요는 없다.

카타콤 같은 경우는 최소 인원이 네명이었던 적도 있으니 필요하다면 협회에서 인원을 추려 함께 가도 상관은 없으니까.

"근데 정보를 팔려고 할까."

"그건 괜찮을 겁니다. 랭커들은 히든 던전을 찾아내면 기본적으로 저한테 먼저 의견을 구하니까요."

"그랬나?"

그건 또 처음 듣는 소리다.

"예. 히든던전은 일반 던전보다 몇배나 강력하고 적들의 숫자 또한 많으니까요. 아무 준비 없이 들어갔다가는 죽기 쉽상입니다."

때문에 관찰자의 능력이 필요하다.

그런 소리였다.

'난 그냥 들어갔는데.'

생각해보니 조심성 없는 행동이었다. 히든 던전은 천문학적인 가치를 지니고 많은 보상을 준다.

레아, 리벨롬, 브란스 모두 히든 던전을 탐사하다 구한 인물이다.

한명은 죽었지만.

아무튼 히든 던전의 중요도는 내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높다.

그런 곳에 대한 정보라면 +5강 악과라도 충분히 내줄 수 있다.

"준비를 잘 했다고해도 히든 던전은 목숨을 걸어야 하는 곳이니까요. 웬만한 네피림들은 도전을 주저합니다. 그러니까 정보를 파는 사람도 꽤 많을 겁니다."

일반적인 랭커들한테 히든 던전만큼 두려운 곳은 없다고 한다.

나한테는 아니었지만.

"그렇군."

"예, 며칠 내로 접선하는 랭커중 하나가 히든 던전에 대한 정보를 가지고 있다고 귀뜸했습니다. 확실하다고 판단되면 협회장님께 알리겠습니다."

"아, 응. 근데 협회장이라는 거 조금 낯간지러운데... 형이라고 하지."

알아보니 관찰자의 나이는 생각보다 어렸다.

나보다 다섯살 어린 스물 아홉.

"데몬시드님을 형이라고 불렀다가는 다른 분들이 크게 반발할 겁니다."

"그런가?"

"예, 위계질서가 무너질 수도 있으니까요. 시드님이라고 부르겠습니다. 그게 좋습니다."

"아, 어..."

더럽게 칼 같네.

"시드님은 저번에 말씀드린대로 과수원을 좀 더 늘려주십시오. 기부도 크기만한 섬이 근처에 몇개 더 있는 걸로 확인했습니다."

지도까지 준비해서 섬들을 청소하고 밭을 늘리라는 소리였다.

"현재, 아직도 와이번은 남아 있고 비행할 수 있는 사람은 몇 없어서 안타깝게도 시드님이 해주셔야 할 거 같습니다."

"어쩔 수 없지."

그렇게 어려운 내용도 아니다.

근처 섬이 있다는 건 나도 모르는 바는 아니니까.

"그게 아니라면 기부도의 나무들과 건물을 밀고 심어주셔도 됩니다."

"거긴 산이 꽤 많았지. 이참에 싹다 밀어버려도 괜찮겠어."

레아는 아직도 지옥 광산에서 강철들과 함께 일본 놈들을 도륙하고 있다고 들었다.

저항이 꽤 거세다고 하던데 별탈 없이 썰고 있다고 하던데 랭킹을 확인해보니 꽤 많이 올라왔다.

그동안 사냥을 잘 안했던 터라 랭킹이 네자리수였는데 이번에 단번에 100위 근처까지 올라왔다.

아마 근 시일내에 50위 권으로 올라오지 않을까 싶다.

현시점에서 웬만하면 레아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없을테니까.

"아, 그리고 말씀하신대로 리벨롬의 대리를 맡길 사람 말입니다만."

"중요한 안건이군."

리벨롬.

한국 네피림들 평균치가 높아지면서 강화하려는 이가 꽤 많다.

하지만 나 또한 할일이 많기 때문에 망치질만 하기에는 시간이 없다.

하여 대타를 구하려고 한다.

이제와서는 망치질 알바로 버는 돈은 나한테 의미 없기도 했으니까.

"후보는 정했나?"

"예, 적당한 인물을 찾았습니다."

"그래, 누군데?"

"아는 사람만 아는 엔피시입니다."

"엔피시?"

"예, 충주에서 발견된 히든 던전. 얼어붙은 좀비 굴에서 구출 된 대장장이 엔피시라고 불리는 자 입니다."

이름은 스미스.

스미스 블랙워커.

"충주시에서 활동하는 네피림들의 보호 아래에 무기들을 수리하거나 만들어주는 일을 하고 있답니다."

근데... 하고 관찰자는 뭔가 석연찮아 했다.

"무슨 문제 있나."

"충주쪽 사람들이 굉장히 폐쇄적이더라고요. 스미스씨와 관련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석연찮은 부분들이 꽤 있습니다."

"그래? 뭔데."

"처음엔 엔피시에 관한 이야기가 자랑스럽게 간혹 나왔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의도적으로 스미스씨에 대한 정보들을 감추더군요."

뭔지는 모르겠지만...

"냄새가 나네."

대장장이 스미스 [2]

92화.

무너진 청주시.

폐허처럼 변한 도심지를 걷는 관찰자와 나는 한적한 길거리를 거닐며 양질의 대화를 나눴다.

"엔피시들이 꽤 많은가보군."

"정확하게는 엔피시가 아니라 다른 세계의 네피림들이지만요."

히든 던전에는 높은 확률로 다른 세계의 네피림이 존재한다고 한다.

"아실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알고 있는 엔피시만 해도 다섯손가락이 넘어갑니다. 그들 대부분은 전투직군의 네피림인데 이야기를 들어보면 대부분 자신들의 세계에서 전쟁을 하다가 던전에 갇혔다고 하더군요."

잠시 전투를 피하기 위해 숨어들었던 던전 속에 갇히거나 하는 편이 많다고 한다.

아마도 신의 안배가 아닐까.

네피림들은 이 또한 운명이라 생각하고 이곳에서 싸우는 편이란다.

"어차피 다시 돌아갈 길도 없고, 그들에게도 메시지 창이 뜬답니다. 자신을 구한 네피림들과 함께 하라고."

"그렇군."

그런 자세한 사정까지는 몰랐던 터라 꽤 유용한 대화였다.

"그것보다, 놀랍네요. 펫입니까?"

"엘리스. 뭐... 펫 비슷한거지."

엘리스에 대한 건 나도 꽤 놀라고 있는 중이다.

손 마디만큼 작았던 엘리스는 어느새 무럭무럭 자랐다.

하루가 다르게 커져가는 녀석은 이제 사람 주먹만한 크기로 커졌는데 이때부터 슬슬 조짐이 보였다.

무너진 청주시.

이곳을 걸으며 나타나는 좀비, 고블린이나 대부분의 악마들을 갑자기 엘리스가 처리하기 시작했다.

뭐 그렇게 특별한 능력은 아니다.

거미줄을 뽑아서 날리는 게 끝이다.

근데 그 거미줄이라는 게.

"나도 이렇게 투명한 걸 뽑아내서 싸울 줄은 몰랐다."

거미줄이 눈에 보이지 않았다.

투명한 거미줄.

그게 바로 엘리스의 무기였다.

"굉장하네요. 모략의 거미줄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투명한가봅니다. 강도는 철근보다 질기네요. 웬만한 네피림은 거미줄을 자르지도 못할겁니다. 애초에 보이지도 않으니까..."

엘리스의 거미줄은 질기고 날카롭다. 내가 손을 조금 대는 것 만으로도 손가락이 베어나올 정도.

역시 챔피언 데몬의 자식답달까.

아직 레벨이 1밖에 안되는데도 엄청난 힘을 보여주고 있다.

더욱 놀라운건 거미줄을 물어서 발사하기도 하는데, 그게 화살처럼 빨라서 웬만한 악마들은 모조리 픽픽 쓰러져 죽었다.

"덕분에 편하긴 하네."

덕분에 도심지 한복판을 걸으면서도 그다지 번거롭지 않았다.

죽은 악마들을 씨앗으로 만드는 것 말고는 말이다.

'모략의 거미줄이니까 이대로가면 모략이 엘리스의 수식언이 되려나.'

모략의 엘리스.

뭔가 되게 음흉한 수식언이다.

이래도 되나 싶긴하지만... 뭐 상관은 없겠지 싶다.

"며칠 안 됐는데 고새 많이도 먹었나보네."

녀석의 상태창이 벌써 많이 올랐다.

[주인 - 데몬시드]

『거짓된 여왕의 딸』

「모략의 거미줄 Lv.1」

「생명력」 – 120/120 ▲

「마나」 - 100/100

「능력치」

근력 – 3 ▲

민첩 – 4 ▲

건강 – 6 ▲

마력 - 5

강골 - 3 ▲

며칠 사이에 많이도 올랐다.

내가 섬에 있을 때는 하루종일 빨빨 거리면서 나무 사이사이를 돌아다닌다 싶었는데 성장력이 가파르다.

'생각보다 너무 빠른데?'

몸집은 이제 겨우 주먹만해졌는데 자기 몸만한 악과를 언제 저렇게 많이 먹었는지 모르겠다.

'악마가 먹으면 우리보다 효율이 더 좋거나 그런건가.'

그럴지도 모르겠다.

거기까지는 아직 확인해본 적이 없기도 하니까.

"그렇게 따지면 그램도 꽤 강해졌겠는데."

나와 시작을 함께 했다고 해도 무방한 불별도의 파수꾼.

그램의 힘도 꽤 강해졌으리라.

맨날 나무 위에 앉거나 섬 날아다니면서 한량처럼 놀아서 그렇지 간간히 서펜트 놀리면서 창질하는 것도 몇번 보기는 봤으니까.

"아, 이 근처일 겁니다."

"벌써 다 왔나."

"예. 청주 사람들끼리 뭉쳐서 길드를 만들었다고 하더라고요. 초반부터 합심해서 성역을 이뤘다고... 아! 여깁니다."

"으음. 주유소네."

꽤 커다란 주유소였다.

주유소를 거점으로 성역을 만들고 지금까지 생활한 모양이었다.

주유소에 내장된 기름은 이래저래 쓸 일도 많고 기본적으로 들어있는 적재량으로도 꽤 많은 인원들을 먹여 살릴테니 말이다.

물론 주유소 주변으로 이런저런 것들이 많았다.

자동차를 겹겹히 쌓아올려 엄폐물을 만들고 보초병을 둬 경계까지 하는 걸 보니 치열하게 살아온 그들의 노력이 물씬 느껴졌다.

"정지!! 정지! 정지!! 누구요!?"

어디서 구했는지 80년대 방탄모를 쓰고 있는 아저씨가 소총 들고 우릴 겨눴다.

악마들한테는 잘 안 통해도 사람한테는 아직도 총이 통한다.

'그동안 섬에만 있어서 그런가... 세상 망한 게 제대로 느껴지네.'

소설이나 영화에서 봤던 풍경이 실제로 보이니까 그동안 내가 꽤 풍족하고 안전하게 살았구나 싶다.

"전 관찰자입니다. 청주 랭커 분들에게 미리 양해 구하고 왔습니다."

"오! 관찰자 님이십니까?"

관찰자의 이름빨이 제법이었다.

역시 커뮤니티 네임드.

글만 썼다하면 상단 인기글로 올라가는 사나이 답게 단번에 그를 알아보고 반가워했다.

겹겹히 쌓여 있는 차들 옆으로 보초병의 모습이 나타났다. 헌병 방탄모를 쓰고 있는 수염 덥수룩한 남자는 50대쯤 보이는 배불뚝이 아재였다.

"이야, 이거 반갑습니다. 커뮤니티에서만 보던 관찰자님을 뵙다니. 그런데 옆에 이쪽은..."

"아, 이분은 저와 친한 드루이드분이십니다."

신분을 숨기는 건 관찰자의 제안이었다. 뭔가를 숨기는 것 같은데 데몬시드나 뇌창이라고 하면 더 꽁꽁 숨길 거 같다고 해서 어쩌다보니 드루이드가 되었다.

마침 엘리스도 데리고 나왔고, 거미도 동물이니까 상관은 없겠지.

"드루이드요? 드루이드가 거미도 키울 수 있나 보군요..."

내 어깨 위의 엘리스를 유심히 쳐다보던 보초병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이쪽으로 오시죠. 안 그래도 지금 안 쪽에서 랭커 분들이 관찰자님 오시기를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아직 각성하지 못하셨나요?"

내 질문에 보초병 아재가 흠칫했다.

"아니요. 했습니다. 한데 전투에 도움이 되는 직군은 아니고, 써먹기도 애매한 기프트라 이러고 있지요."

"그렇군요."

관찰자를 바라보니 고개를 주억인다.

기프트는 반드시 전투에 도움이 될 것들만 있는 건 아니다.

나만해도 본래의 데몬시드는 전투에 도움되는 능력은 아니었으니까.

전투보단 생존에 가까웠다.

이 아저씨도 그런 종류의 기프트가 아닐까 예상해본다.

"여기엔 몇명이나 살고 있습니까?"

"어제까지... 정확히 142명이 살고 있습니다. 인원이 꽤 되다보니 저처럼 보초를 서는 이들이 있죠. 성역은 악마를 막아주지만, 같은 사람을 막아주지는 않으니까요."

"... 그렇군요."

생각해보니 그렇다.

같은 사람이라고 해서 반드시 호의적이지는 않을테니까.

그를 비롯한 다른 이들이 총을 들고 성역 근처에 페차된 차들로 초소를 세워 경계하고 있는 것도 대부분 같은 인간 때문이었다.

'근데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내 입장에서는 조금 과하다고 생각했다. 예전이었다면 이해하겠지만 지금은 금화 수급도 꽤 원활하고 거래소도 활발하게 교류가 이어진다.

먹고살 걱정은 조금 덜지 않았을까 싶어 이야기하자 관찰자는 전혀 아니라며 고개를 저었다.

"다른 사람들한테 그런 소리 하시면 돌 맞습니다."

"으음..."

예전보다 살기 좋아지지 않았나라 생각했으나 그건 아닌 모양이다.

보초병의 안내를 받으며 몇개의 건물을 지났다.

그때마다 꽤 지저분한 몰골의 여자들과 사내들이 땅바닥에 앉아 있는 채 바라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저분들은..."

"피난민들이죠."

"피난민이요."

"예, 네피림이 됐어도 전투에 도움은 못 주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래서 성역에만 있게 해달라고 애원한 부류들입니다."

"그럼 저사람들은..."

"대개 이곳에서의 잡일이나, 전투직 분들이 악마들을 토벌할 때 짐꾼으로 간혹 데려갑니다."

"여자들을 말입니까."

"전투에 도움은 못 되도 각성 했다면 인벤토리가 있으니 말입니다."

나름 일리는 있는 말이다.

성역 안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식량만 축내게 둘 수는 없으니까.

"자, 조금 누추하지만 여기서 기다리시면 될 겁니다."

작은 소파가 놓여져 있는 응접실 이었다. 보초병이 나가고 난 관찰자를 바라봤다.

"요즘에... 전부 이런 편인가?"

보초병이 나가자마자 묻자 관찰자가 세상물정 모르는 아이를 보는 것처럼 쳐다보며 답했다.

"굶어 죽는 사람도 꽤 많습니다."

"왜지?"

뭔가 프랑스에서 유명한 마리 앙뜨아네뜨 공주가 된 기분이었다.

"악마를 잡지 못하니까요. 그거 아십니까. 군인 신분으로 있던 이들 대부분이 죽은 이유."

"그러고보니 군인들 잘 안 보이네."

각자 각성해서 악마 때려잡고 무기를 바꿔서 그런거 아닌가 했으나 관찰자는 아니라고 했다.

"총으로 악마들을 잡은 이들 대부분이 총과 관련된 기프트를 각성한 탓이죠. 총알은 소모품이잖습니까."

"총알이 떨어져서 싸우지 못하게 됐다는건가?"

"맞습니다."

총알이 있을 때야 잘 싸웠을 것이다. 하지만 총알이 떨어지자 총알을 구하려 했지만 그마저도 먼저 선수 친 사람들이 모조리 가져갔다.

한발 늦은 사람들은 총알을 구하지 못하고 기프트의 능력을 사용하지도 못한 채 싸우지 못해 굶어 죽거나 악마한테 사냥당해 먹혀 죽는다.

그 말이었다.

"그러고보니 협회장님은 어떻게 각성하셨습니까? 생각해보니 그때는 나인이라고 불리셨잖습니까."

"음... 비밀."

반짝반짝 눈을 빛내는 관찰자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다. 농약 먹고 다같이 죽으려다가 그렘린이 훔쳐 먹고 죽어서 각성했다고 하기에는 뭔가... 조금 그랬다.

굳이 환상을 깰 필요는 없겠지.

"근데, 우린 스미스를 보러 온건데 왜 응접실에 있어야 하는거야?"

"글쎄요."

"여기 대장이 누구였지?"

"랭킹 258위 트랩퍼입니다."

그때였다.

휘리릭!

돌연 소파 밑에서 쇠창살들이 튀어나와 그대로 관찰자와 나 사이를 지나가더니 꽁꽁 묶어버렸다.

"큭! 괜찮으십니까?"

"아, 응. 괜찮은데... 이게 무슨."

끼익.

때마침 문이 열리고 한 사내가 들어왔다.

짧은 머리에 얼굴 관자놀이부터 턱끝까지 긴 자상이 있는 사내였다.

"관찰자가 누굽니까."

"접니다만, 이게 무슨 짓 입니까! 당신이 트랩퍼입니까?"

"예, 제가 트랩퍼입니다."

관상학적으로 봤을 때, 뭔지는 몰라도 저 놈이 범인이었다.

"우리도 다 사정이 있어서 말입니다. 관찰자님. 저도 당신 공략글로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래서 웬만하면 서로 피보고 싶지 않은데..."

휘리릭. 툭.

테이블 사이에 꽂히는 단검.

단검에는 피가 묻어 있었다.

"그냥 아무것도 묻지 말고 그냥 돌아가 주시면 안되겠습니까."

"스미스 때문입니까."

"... 예."

우리는 모르는 사연이 있는 듯 했다. 하지만 그게 썩 좋아 보이는 사연은 아니었다.

오히려 뭐랄까.

피 냄새가 나는 사연 같달까.

"저희랑 함께 하신다고 약속하신다면 살려 드리겠습니다. 관찰자님이라도 제 트랩을 풀지는 못할 겁니다. 그거 그렘린도 못푸는 거에요."

"함께 한다면 뭘..."

"당연히 여기 살면서 저희 일원이 되는 겁니다. 그럼 당신이 궁금해하는 스미스도 어디 있는지 알려주고 하겠습니다. 그놈 능력이 알려지면 저희도 꽤 곤란해서요."

"스미스씨가 무슨 능력을..."

스릉.

트랩퍼의 검이 내 목을 겨눴다.

서양식 바스타드 소드였다.

근데 검면이 조금 특이했다.

글자가 적혀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이상한 문양 같기도 했다.

"알고 싶으면 저희 편에 서시고. 아니면 여기서 죽으셔야 합니다."

트랩퍼의 말에 정적만이 흘렀다.

관찰자는 반대편에 있는 날 심각한 표정을 지은 채 바라봤다.

어찌해야 할지 머릴 굴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쇠창살 사이로 타다닥 움직이는 새하얀 거미 한마리를 보았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투명한 거미줄을 쭈욱- 뽑아내더니.

싹뚝.

"어어!?"

툭.

트랩퍼의 팔을 잘라내버렸다.

"끄아아아아악!!"

트랩퍼의 비명과 핏물이 분수처럼 쏟아지는 사이로.

엘리스가 날 보며 칭찬해달라는 듯 다리 한쪽을 올리고 있었다.

-큐!

"어... 음. 어, 잘했다."

대장장이 스미스 [3]

93화.

전세역전이라는 말을 이럴 때 쓰는 말이겠지.

내 목에 검을 겨누던 트랩퍼는 입장이 완전 반대되어 관찰자의 무릎 아래에 깔려 있었다.

"협회장님. 다 됐습니다."

"붉은 성수가 그래도 성수는 성수네. 팔이 잘려도 금세 아물고."

"크윽!"

커뮤니티에서 하는 얘기 들어보면 잘린 팔도 붉은 성수만 있으면 바로 붙는다고 하던데.

굳이 트랩퍼를 상대로 시험해보지는 않았다. 엘리스가 분이 안 풀렸는지 잘려진 팔을 몇번이고 토막내서 가지고 놀았기 때문이었다.

아무튼, 캐낼 게 좀 있는 터라 관찰자가 붉은 성수를 사용해서 놈의 잘린 팔에 부었더니 금세 아물었다.

"스미스를 숨기는 건 이거 때문인가봐. 그렇지?"

"...."

딱히 대답하지는 않았지만 그걸로 충분한 대답이 됐다.

솔직히 묻지 않아도 될 일이다.

왜냐하면 놈이 들고 있던 검에 웬만한 정보가 나와 있었다.

[가고일 검] (magic)

-명장 스미스가 엘리트 가고일의 석상으로 만든 악마의 검.

〈강화 불가〉

〈근력 +2〉

〈매우 강력한 베기〉

〈더 단단함〉

〈가고일 스킨+1〉

「가고일 스킨」 (패시브)

-돌처럼 딱딱한 피부로 만들어 데미지를 경감한다. (경감률 +10%)

꽤 놀라울 정도의 검이다.

고작 매직 등급의 무기지만 깃들어 있는 옵션이 꽤 화려하다.

'강화가 불가능한게 흠이지만.'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가고일의 스톤 검은 흔치 않은 검임이 틀림없다.

직접 제작한 검, 게다가 가고일의 부산물로 만들어 악마의 스킬이 온전하게 담겨 있었다.

단순한 각인이라면 횟수 제한이 있었겠지만 이건 그렇지도 않다.

썩 쓸만한 스킬은 아니지만 그렇다해도 스미스의 잠재력은 매우 뛰어나다고 봐도 무방했다.

"가고일 레벨이 몇이지?"

"가고일은 4레벨로 알고 있습니다."

가고일의 부산물로 만든 검.

그게 이 정도다.

레벨 4짜리 악마로 만든 검이 이 정도인데 그보다 높은 걸로 만들면 대체 뭐가 나온는걸까.

리벨롬의 대타를 구하려고 할 뿐이었는데 생각보다 대어가 걸렸다.

'히든던전에서 구출되는 네피림들은 모두 어느쪽으로든 쓸모가 많다.'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이걸 스미스가 만들었다라..."

이만한 능력을 뉘우치는 대장간에서 펼쳐만 준다면 한국 네피림의 전력은 한층 더 올라갈 게 분명했다.

될 수 있다면 협회의 사람들을 동원해서 히든 던전을 찾거나, 공략된 히든 던전에서 구출된 엔피시들을 우선적으로 찾는 걸 우선해야겠다.

"이만한 검입니다. 스미스를 감추고 자기들만 독식하려 했겠죠."

"난 좀 이해가 안가네. 굳이 감추고 독식할 이유가 있나?"

듣기로 놈들은 스미스를 구해준 은인이다. 그렇다면 굳이 감추지 않아도 특혜를 받을 수도 있었을텐데.

"거짓말이겠죠. 아니면 이놈들이 스미스씨를 구한 진짜 네피림들을 죽였을 가능성도 없지 않습니다."

"하긴, 그러고도 남겠네."

놈은 트랩퍼다.

함정을 설치하는게 놈의 기프트다.

사람 몇을 기습하는 것도 어려운 일은 아니었겠지.

"스미스씨는 아마도 억지로 감금당해서 무기를 만들고 있겠군요."

관찰자의 말대로다.

애초에 놈은 사람 죽이는 데에 별 거부감이 없어 보였다. 고개를 끄덕이며 트랩퍼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너한테 두가지 선택권을 주마."

첫째.

"이대로 죽는다."

"..."

둘째.

"스미스가 어디 있는지 실토하고 죽는다. 어때, 쉽지?"

능청스레 말하자 트랩퍼는 비릿한 욕설을 내뱉으며 소리 질렀다.

"미친놈. 둘다 죽는건데 내가 그걸 말할 거 같아!? 어차피 스미스가 있는 곳은 너희들은 절대 몰라!"

자신만만하는 걸 보니 정말 어디 산속에라도 꽁꽁 숨겨둔 모양.

절대로 말해주지 않을 셈인 듯 한데 뭐 그래도 상관없다.

"그럼 어쩔 수 없지."

푹.

"으아아아아악!!"

가고일 검으로 하나 남은 손도 찔러넣자 피가 무럭무럭 쏟아졌다.

찌르기 보다는 베기에 특화된 검이지만 크게 상관은 없었다.

"좀 많이 베었네."

"이게 조금이라고! 쫌!?"

그나마 하나 남은 손도 너덜너덜해졌다. 붉은성수로 치료 해도 앞으로 검은 못들지 않을까. 덜렁덜렁거려서 잘리기 직전이니 말이다.

"너 이러다 한쪽 손도 못 쓰겠다. 지금 치료하면 될 거 같긴한데..."

"죽여! 죽이라고! 어차피 이대로는 살아봤자 아무것도 못해! 죽여!"

"관찰자, 성수 뿌리면 이거 회복될까?"

"글쎄요. 한번 시험해볼까요."

"한번 해보자. 조금 궁금하네."

관찰자는 곧장 붉은 성수를 꺼내 덜렁거리는 손에 뿌렸다.

치이익.

금세 손이 아물어갔다.

"하나 가지고는 부족한데?"

"하나 더 뿌릴까요."

"어, 하나 더 뿌려봐."

"개새끼들아 그만해애!!"

두번정도 성수를 뿌리니 덜렁거리던 손은 언제 그랬냐는 듯 흉터를 남기고 아물었다.

붉은 성수를 제대로 사용해본적이 없어서 몰랐는데 효과가 꽤 좋다.

흉은 크게 남았지만 그래도 붙기는 붙었다.

"움직여봐. 움직여지냐?"

"이 씨발놈들이..."

주먹을 불끈 쥔다.

"와, 이게 붙네? 성수 효과가 진짜 좋기는 좋아?"

"그러게요. 저도 이 정도일 줄은 몰랐습니다. 마냥 회복약 정도로만 알고 있었는데..."

관찰자와 눈을 마주친 나는 가고일 검을 들어 놈의 손에 한번 더 꽂아 넣었다.

푹!

"끄아아아악!!"

"내가 마지막으로 인심 쓴다. 지금 스미스 어디 있는지 불면 살려줄게."

"말, 안해.... 개, 새끼들아!!"

난 다시 검을 빼냈고 관찰자는 다시 성수를 뿌렸다.

"씨발! 제발 그만해 개자식들아아!!"

우린 놈이 스스로 말할 때까지 그 행위를 반복했다.

별로 상관은 없었다.

나만의 상점에서 틈 날때마다 사뒀던 게 붉은 성수라서 수량은 많았다.

몇번의 시행착오 끝에 놈은 끝내 스미스의 위치를 불었다.

"그건 그렇고 완전히 잘랐다가 붙여도 붙기는 붙네."

"그러게요. 신경 조직까지 이어 붙여야 하는 대수술이었을텐데 성수는 알아서 다 찾아 붙이나 봅니다."

"성수는 성수네. 신기해."

"씨발놈들 진짜....!"

스미스의 위치는 청주에서 북쪽.

증평이란 곳이었다.

증평은 예전부터 장인이 운영하는 대장간이 크게 있었는데, 스미스를 그곳에 두고 왔다갔다하며 감시하에 무기를 만들게 하고 있다한다.

스미스의 무기는 데몬 웨폰이라는 것으로 악마의 부산물을 소재로 만드는 특수한 제작 검이라고 한다.

"정말 사실인거야?"

"그래... 소재가 좋으면 좋을수록, 많으면 많을수록 강한 무기를 만들 수 있다고 했다."

"근데 왜 가고일 검이지?"

"우리 수준에서는 가고일을 잡는 게 최선이었어. 그리고 내가 가지고 있는 가고일 검은 놈이 만든 것 중에서도 하급이다. 정말 잘 만들어진 검은 가고일 스킨 따위가 아니라 정말 위력적인 스킬이 붙어 있지."

흥미로운 내용이다.

"하나라도 거짓이었다가는 알지? 이번엔 손이 아니라 다른 곳을 뜯었다가 붙여볼 줄 알아라."

난 놈의 다리를 보며 말했다.

"씨발..."

트랩퍼는 욕지거릴 내뱉으면서도 순순히 내 말에 따랐다.

아무리 강해도 눈 앞에서 자기 손이 몇번이나 작살났다가 다시 이어 붙어지는 모습은 솔직히 맨 정신으로 버티기엔 힘들었을테니까.

"다 말했잖아. 이제 난 놔주는거지? 어차피 팔 한짝이 없어서 뭘 하지도 못한다고...!"

"어쩔까요?"

"증평에 있다며. 데려가야지. 증평에 없을 수도 있으니까."

"알겠습니다."

"있다고! 진짜라니까!? 진짜 거기 있어! 애초에 무기 제작을 하는데 아무데서나 만들 수 있을 리 없잖아!!"

억울한듯 소리치고는 있지만 애초에 우릴 먼저 습격한 것도 놈이다.

믿을 수 있을 리 없다.

그리고 이야기를 들어보니 관찰자의 예상대로 스미스의 은인을 이놈들이 다 죽였다고 한다.

"그거야 그렇겠지만, 그래도 혹시 모르니까."

데려가는게 낫다.

거기도 아마.

"이놈들이 설치해둔 함정도 많을테니까."

*

증평의 한 대장간.

꽃샘추위도 날려버릴 정도로 뜨거운 용광로가 들끓는 대장간에서 한 사내가 칼을 들고 있었다.

"이봐요 스미스씨. 정말 이거 밖에 못 만드는 겁니까? 우리가 갖다 바친 게 얼만데 씨발, 이딴거 밖에 못 만드냐고요. 예?"

자신이 만든 검면으로 툭툭 어깨를 맞고 있는 덥수룩한 수염의 사내.

키는 작으나 다부진 체격의 사내가 바로 스미스.

스미스 블랙워커였다.

어릴적부터 대장장이 일을 해왔고 천마대전에서도 그의 무기는 유달리 승전보를 알리는 무구가 되었다.

그의 명성 또한 널리 알려졌으나 아쉽게도 전쟁은 인간 편이 아니었다.

전쟁은 패했고 인간은 도륙되었으며 악마들의 희롱거리로 전락했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싸운 용사들은 그들에게 죽임당하거나 타락하여 악의 노예를 자처하였다.

그런 와중에 스미스는 자신의 가족들과 함께 도망쳤고 어느 동굴에 숨었으나 운명은 가혹했다.

그곳은 어느 악마들이 이미 꿰찬 던전이었고 스미스는 가족들을 모두 잃고 저 홀로 살아남았다.

아니, 놈들에게 잡혀 타락을 종용당했다.

그렇게 자신 또한 악마의 노예가 될 수밖에 없음을 절망했다.

하지만 희망이 찾아왔다.

처음보는 차림의 사내들이 찾아와 자신을 구해준 것이다.

신에게 빌었다.

그가 자신을 보고 있음을 이제는 알고 있다고, 하니 노력하겠다고.

죽은 가족들의 몫까지 그저 악을 멸하기 위해 무구를 만들겠다고.

'그랬는데...'

신은 어찌하여 얄팍한 희망을 주고 다시 절망하게 하는가.

원망하고 또 실망했다.

신이란 것에.

세상이란 것에 염증까지 일었다.

허나 그럼에도 할 수 있는 일은 없었고 그저 은인을 죽인 놈들이 시키는대로 해야했다.

비루한 목숨을 보존하고자 했다.

스미스는 어릴적부터 불을 보았다.

성정 또한 불 같은 사내다.

자신의 은인을 잃었다.

그러니 이 한 목숨 저버린다해도 복수 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스미스 블랙워커.

그는 대장장이이자, 전장의 선봉에 선 적도 있는 네피림.

자신이 만든 모든 무기를 다룰 줄 아는 전사였다.

드륵, 드륵.

투척 도끼의 날을 가는 스미스의 눈이 서슬퍼렇게 빛났다.

'잔인한 신이시여. 이게 당신이 인도한 빛이자, 어둠이라면 용광로 속에 모조리 넣어 녹여버려 내 손으로 직접 빚어보겠나이다.'

스윽.

투척 도끼를 허릿춤에 꽂아 넣고 활과 화살통을 등에 멘다.

그리고 한손에는 모닝스타.

나머지 손에는 방패를 들었다.

몇달 동안 놈들에게 시달리며 대강의 전투력은 눈에 익은 상황.

대장간을 지키는 인원은 셋.

한 놈은 소파에 앉아서 커뮤질을 하고 있고 두 놈은 담배만 뻑뻑피며 노가리를 까고 있다.

몰래 소파에 앉은 놈 뒤로 접근해 모닝스타를 내려쳤다.

퍽!!

영문도 모른채 대가리가 터져 뇌수가 튀어 죽었다.

"뭐야!!"

"이 씨발 새끼가!!"

방패를 견고히 세우며 투척 도끼를 던진다.

몇번이고 연습한 도끼.

아직 검도 뽑지 못한 놈들에게 유효타를 입히기에는 충분했다.

휘리릭! 강하게 회전하며 날아가는 도끼에 놈들의 눈이 커진다.

"윽!"

퍽!

'쯧.'

하지만 놈들도 쓸만한 갑옷을 입고 있었다.

흉갑을 긁고 들어간 투척 도끼는 아쉽게도 두놈 중 한놈의 어깨를 찍는 것에 그쳤다.

"크으윽! 씨발 저새끼 잡아!!"

"아오 시발 요새 좀 잠잠하다 싶었더니 염병할!"

멀쩡한 놈이 달려든다.

덩치는 크지만 느리다.

'싸울 이유도 없다.'

도끼를 투척하고 곧장 출구를 향해 뛰었다.

"튄다! 잡아!!"

"야, 저기는..."

쾅!

문을 부술듯 젖힌 스미스는 곧장 출구를 향해 뛰었다.

이제 이 자갈길을 뛰어나가기만 하면 된다. 보초를 서고 있는 놈들이 있겠지만 무시하고 튄다면 승산은 있다.

'할 수 있다!'

희망이 보였다.

그리고 바로 그때.

팅!

뭔가가 발에 걸리는 소리와 함께.

촤자작!!

발 아래에서 기묘한 형태의 쇠사슬이 튀어나왔다.

"이런!!"

함정이다.

마음이 급해 그만 보지 못했다.

설마하니 출구에 함정을 설치했을 줄이야.

촤작!!

"큭!"

쿵.

한순간에 쇠사슬에 묶였다.

어떻게 된 함정인지 발과 몸을 꽁꽁 묶었는데 안간힘을 써도 풀어지지 않았다.

"하, 씨이팔. 금방 잡힐 거 왜 애써서 도망가고 지랄이세요. 미친 영감쟁이 새끼야."

"나와, 저새끼 죽여버리게."

"아 죽이면 안된다고."

짜증섞인 걸음걸이가 다급하게 다가온다.

"죽이지만 않으면 되잖아! 내 팔뚝 도끼 찍힌 거 안 보이냐!?"

"성수 뿌리면 되잖아. 그렇다고 스미스 죽여? 죽이면 대장이 형님 가만 안 둘걸?"

"하 씨발, 좆같네 진짜."

퍽, 퍽!!

발길질 해대는 사내들의 폭력을 스미스는 묵묵히 감내했다.

그들의 폭력이 주는 고통은 그렇게 대단한 게 아니었다.

다만, 멍청하게 절호의 기회를 날려먹은 자신에게 화가 날 뿐이었다.

'내가 조금 더 똑똑했다면...'

그때도 가족들을 잃지 않았다.

나를 살린 은인들을 그렇게 죽게 두지 않았을 것이다.

지금처럼 멍청하게 잡히지도 않았겠지.

후회하고나서는 늦다.

그러나 멍청한 머리는 이렇게 되고나서야 잘못을 깨닫는다.

"차라리, 죽여라. 이놈들아!!"

"좆까! 좆같아서라도 너 절대 안 죽이고 오래오래 나랑 살면서 무기만 만들게 할꺼니까 감사하라고 씨발!"

퍽! 퍽! 퍽!! 뻐억!!

"신이 있다면! 아니!! 날 보는 악마라도 있다면 내 영혼이라도 팔겠다!! 제발! 이 악몽에서 날!! 나아아알!! 꺼내 달라고 개자식들아아아아아아!!"

피를 토하며 울분을 토해내는 스미스의 모습에 사내들은 낄낄 거리며 그를 조롱했다.

스미스는 소리 없이 울었다.

피와 눈물이 섞여 떨어졌으나 돌아온 것은 사내들의 폭력뿐이었다.

"때리는 것도 지친다. 에효, 야 끌고가자."

"하아, 대장한테 뭐라고 말하지? 진짜 짜증난다."

질질 쇠사슬에 묶인 채로 끌려가는 스미스의 흐릿한 눈에 아지랑이 피듯 일렁이는 무언가가 보였다.

제대로 보이는 건 하나 없었으나 놈이 무엇인지는 알 것 같았다.

저리 사악해 보이는 게 천사일 리는 없을테니.

"내 심장도, 영혼도 모두 줄테니 부디 이곳에서 날... 날 꺼내주시오."

떨리는 입으로 말하니.

악마는 흡족한 미소로 화답했다.

대장장이 스미스 [4]

94화.

증평의 대장간으로 가는 길은 그간 치열한 생존의 투쟁이 처연하게 남아 있는 곳이었다.

악마들의 침공 이후 수개월이 지난 지금은 백골로 변해 있는 것들도 종종 보이기는 했으니까.

난 그들이 보일때마다 명복을 빌어주고 은정을 챙겼다.

〈은정:254〉

틈 날때마다 챙긴 은정은 벌써 세자릿수로 변했다.

광산에서 일본 놈들을 처치할 때도 꽤 많이 구했었는데 청주에서 증평으로 가는 길목에도 악마들에게 당한 사람들이 꽤 많았다.

"똑바로 걸어라."

"걷고 있다고!"

괜히 성질내면서 걷고 있는 놈은 관찰자와 날 죽이려 했던 트랩퍼.

놈은 신중하게 길을 거닐면서 자신이 설치했던 트랩들을 확인하고 해제하면서 길을 안내했다.

이쯤되니 도망칠 궁리는 하지 않는 건지 죽지 않기 위해 꽤 용쓰고 있었다.

증평으로 가는 길은 무난했다.

악마가 보이면 죽였고, 자신들을 약탈자라 소개하는 놈들이 보이면 브램블리로 처 죽였다.

'브램블리가 편하긴 해.'

매직 등급의 스킬인 거 치고는 브램블리는 썩 쓸만한 마법이다.

역시 소서리스의 어머니라 불리는 자가 만든 마법이라 그런지 범용성이 꽤 뛰어나다.

웬만한 네피림이라도 브램블리의 가시덤불에 잡히면 벗어나지 못했다.

"브램블리로는 최대 몇명까지 상대할 수 있으시겠습니까."

관찰자는 나와 길을 거닐며 내 전투력에 대해 물어왔는데, 난 그럴때마다 솔직하게 말해줬다.

"이런 놈들이면 백명 정도는 동시에 몰려와도 브램블리로도 충분하지."

"그렇군요."

"뭘 그렇게 적는거야?"

"혹시 도움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 그래."

습관인지 뭔지 나와 하는 대화에서 유추한 정보들을 하나하나 적는다.

그렇게 길을 걷자 금방 증평의 대장간이라는 곳이 나왔다.

청주의 아지트와 다르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모아온 폐차 상태의 차들을 담벼락처럼 모아두고, 타이어나 고철등을 대장간의 방벽으로 두고 여러 사람들이 총기를 들고 있었다.

"여기가 확실하지?"

"확실하다고... 젠장."

관찰자와 마주보고 고개를 끄덕인 뒤, 트랩퍼를 브램블리로 묶었다.

"살려준다면서! 길 안내하면 살려준다고 했잖아!!"

"여기서 기다려라."

슬쩍 대장간으로 들어서니.

탕-! 탕!

놈들은 무작정 총부터 갈겼다.

"뭐야?"

브램블리로 총알을 막았다.

놈들도 다리부터 쏴서 무력화시킬 생각이었는지 조준점이 허술했다.

브램블리는 땅에서부터 나오기에 총이라도 손쉽게 막을 수 있었다.

'어떡할까.'

애초에 총을 쏜다고해도 내 신체능력이면 맞아도 별 타격은 없다.

강골로 뼈의 밀도가 대단히 높아서 부러져본 적이 없고, 근력과 건강으로 근육과 피부도 단단하다.

웬만한 총알은 몸에 맞아도 내 피부를 뚫어내지는 못한다.

3레벨 이상의 악마들은 총이 통하지 않는다. 웬만한 악마들 능력치는 예전에 뛰어넘어버린 나한테 총이 통할 리 없지 않는가.

내가 브램블리를 사용한 까닭은 단순히 관찰자를 보호하기 위함이다.

"나도 웬만하면 사람을 죽이고 싶지는 않은데."

먼저 공격당한 이상, 배로 갚아줘야 하는 게 당연하지 않겠는가.

쿠구구!

"우와아악!"

브램블리로 꼬아진 덩쿨이 놈들이 방벽으로 만들어둔 폐차들을 꿰뚫고 하늘 높이 올라갔다.

균형을 잃고 땅으로 곤두박질치는 놈들과 함께 화들짝 놀라 총을 쏴대는 놈들로 나뉘었다.

'이렇게도 되는군.'

대부분의 마법.

그러니까 스킬로 지정된 것들은 자유도에 나름의 한계가 있다.

예를 들어 설명하자면 워터볼.

워터볼은 사용과 즉시 대기중의 수분을 모아 발사된다.

발사라는 걸 내가 임의로 조정할 수가 없다.

하여 리버슬로우로 늦춰놓고 주변에 띄워 사용하는 게 그 이유다.

워터볼이 아니라도 대부분의 스킬들은 그런 편이다.

레인스톰, 블리자드를 비롯한 기프트 스킬이 아닌, 일반 스킬로 분류되어 스킬북으로 배운 마법들은 대부분 그런 식이다.

자유도의 한계가 있다.

하지만 브램블리는 그렇지 않다.

이 마법은 가시덤불을 불러내는 것.

하지만 그것을 꼬아 따로따로 조종할 수도 있다.

그 점으로 본다면 매직 등급이 아니라 유니크로 올려도 좋지 않을까.

탕-! 타다다다탕!!

핑!

"확실히 내구력은 떨어지긴 하네."

덤불을 꼬아서 덩굴을 만들어도 내구력은 확실히 떨어진다.

총알을 막다가 찢겨져 내 어깨를 스쳤다. 비비탄을 맞은 것처럼 따끔할 뿐이지만 내구력을 손보지 못한다면 방어용으로 쓰기에는 부적절했다.

물론.

"끄아아아악!!"

레벨이 고작 2에서 3정도밖에 되지 않는 양아치들을 상대하는데는 브램블리보다 좋은 마법은 없었다.

거기에 더해.

"끄아아아!!"

수식언을 이용해 가스불을 브램블리에 일으키자 화력적인 측면에서는 썩 나쁘지 않다.

악마들에겐 권능이라 다름없는 가스불은 내 의지대로 조종이 가능하다.

레벨이 올라서인지 화력도 올랐고 컨트롤 또한 원활해졌다.

이제는 이런 것도 가능하다는 것.

굳이 거스트를 쓸 필요도 없다.

화르륵!

저 멀리 떨어져서 양아치들을 옭아메는 브램블리의 덩쿨에 푸르게 불타오르는 가스불이 피어 오른다.

화악!

순식간에 덩쿨에 옮겨 붙는 가스불은 양아치들을 옭아메 놀이기구 태워주는 브램블리를 모조리 태웠다.

저마다 단말마를 내지르며 불타 떨어졌다.

"왜! 왜 우리한테 이러는겁니까!! 우린 아무것도 잘못하지 않았잖습니까! 데몬시드!!"

브램블리와 수식언 때문인가.

놈들 중 하나가 날 알아봤다.

난 인벤토리에서 물소뼈 투구를 뒤집어 쓰고 놈을 향해 말했다.

"그들도, 너희한테 아무 잘못 하지 않았을 거 같은데."

"그건...!"

뭔가 짚이는 게 있는지 입술을 꽉 깨물고 달려든다.

역시 여기도 저기도 죽일 놈들 뿐이다.

"투왕의 살기가 발현됩니다."

"살기가 일대를 지배합니다."

"살기의 지배 아래, 모든 존재의 능력치가 30% 하락합니다."

"격이 떨어지는 자들이 투왕의 살기에 감히 움직일 수 없습니다."

"적들의 몸이 5초간 돌처럼 굳게 됩니다!"

"적들의 영혼으로 각인된 공포에 수식언의 경험치가 상승합니다!"

"공포의 주인이 만족스러워합니다."

"참나."

이렇게 시스템에 간섭할 수 있는 거였나.

공포의 주인.

"데몬시드! 언제까지 네 세상일 거 같나!! 우린, 죽음이 두렵지... 않다!!"

"..."

브램블리에 묶인 채로 할 말은 아닌 거 같다.

근데 그냥하는 저주 같지는 않다.

뭔가 있나 싶어 잠시 기다리자.

순간 놈의 얼굴에 혈관이 도드라지고 눈이 검게 변했다.

"뭐냐, 넌."

그게 끝이 아니었다.

놈의 몸은 돌연 검은 갑옷으로 뒤덮히고 손에는 창을 손에 쥐었다.

"악마 숭배자를 마주했습니다."

"그는 인간을 저버리고 악의 편에 서서 추악한 심연의 군주들에게 영혼을 바친 숭배자입니다."

[긴급 퀘스트]

-악마 숭배자를 처치하여 그가 가진 악몽의 파편을 파괴하십시오.

보상-보물지도

"죽어라, 데몬시드!!"

악마 숭배자 놈은 내 브램블리를 찢어내고 투창했다.

"네가 아무리 강해봤자 마법사지! 네놈과 한 세트인 뇌창을 부르지 않은 걸 후회해라!"

날아오는 창의 세기가 남다르다.

악마로 따지면 레벨은 5 정도.

물론 내 적수는 아니었다.

턱!!

"말도 안돼!! 막은 것도 아니고 마법사가 어떻게 내 창을 잡는거냐!!"

"누가 나보고 마법사래."

놈의 창을 그대로 되돌려 투창했다.

피융-!

쾅!!

"커흑."

가슴이 뻥 뚫린 악마 숭배자 놈은 피 토하며 쓰러졌다.

검은 갑옷이 박살나 가루로 변했고 입에서 뭔가를 토했다.

작은 돌멩이.

쉼표처럼 생긴 돌멩이였다.

"이게 악몽의 파편인가."

"네, 맞습니다. 그렇게 나오네요."

"별 게 다 있네."

꽤 지저분했기에 난 지팡이로 악몽의 파편을 부쉈다.

"퀘스트를 완료합니다."

"보상이 주어집니다."

「보물지도」

-보물이 있는 곳으로 안내합니다.

"이런 것도 있네."

보물지도를 대충 보고는 인벤토리에 넣고 대장간을 걸었다.

이정도 난리를 쳤지만 꽤 넓은 곳이었기에 아직 건물 안까지 사람들이 있다고, 관찰자가 말했다.

"대장간은 건물 지하에 있네요. 그곳에도 몇명있습니다. 셋 정도."

"감지 스킬인가?"

"아뇨, 기프트의 일종입니다. 지형 관찰의 부가적인 능력이죠."

"오케이."

중간에 이상한 놈이 나오기는 했지만 딱히 큰일은 아니다.

진짜 집중해야 할 건 지금부터.

대장간에 있을 스미스.

우리가 그를 구출하려는 걸 놈들이 알게 된다면 인질로 잡힐 수도 있다.

인질로 잡혀도 두들겨패고 구해낼거지만 괜히 위험한 상황은 만들고 싶지 않으니까.

"먼저 간다."

"예! 따라가겠습니다."

탓.

건물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함정이 발동됐다.

화살 몇대가 쏘아지는 기본적인 트랩이었다.

거스트를 사용해 바람으로 화살들을 걷어내고 지하 계단으로 뛰어들어갔다. 스미스가 있을만한 곳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았다.

'덥네.'

점점 뜨거운 열기가 가득한 곳을 찾아가면 될 일이었으니까.

그리고 마침내 저 멀리서.

"내 심장도, 영혼도 모두 줄테니 부디 이곳에서 날... 날 꺼내주시오."

사내 둘한테 끌려가고 있는 노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스미스."

"내가 스미스요! 악마여!! 그대에게 바치겠소! 내 영혼! 목숨을 바칠테니 이곳에 멸망을!! 부디 벌해주시오!"

목청이 터져라 소리치는 스미스의 절절한 절규는 대장간으로 향하는 길목에 쩌렁쩌렁 울렸다.

'당황스럽네.'

몰골을 보아하니 상태가 썩 좋지 않은 건 알겠지만 날 보고 악마라니 꽤 당황스러웠다.

"데몬시드?"

"아니, 저 사람이 왜 여기에..."

물소뼈 투구를 써서 그런지 스미스 옆에 있는 놈들은 날 알아봤다.

'이거 쓰고 있어서 악마라고 착각한건가. 난감하네.'

하지만 그래도 달라질 건 없다.

내 목적은 스미스를 구하고.

겸사겸사 살인을 일삼는 구제할 길 없는 살인자들을 치울 뿐이니까.

"사, 살려주십쇼!! 우린 그저 시키는대로 했을 뿐입니다!"

"맞습니다! 우린 시키는대로! 예! 그러니까 제발..."

하지만 싸울 의지마저도 잃었는지 놈들은 무기를 버리고 항복했다.

나도 살인자는 아니다.

굳이 싸울 의지가 없는 놈들을 죽일 정도로 사람이 매정하지는 않다.

물론.

"데몬시드... 처음 들어보는 악마의 이름이오. 허나, 그대만이 응답했소. 이놈들을 내게 맡겨주지 않겠소!"

스미스씨는 다른 듯 했다.

얼굴을 보니 쌓아온 정이 남다른 듯 하니, 그에게 맡기면 되겠지.

"뜻대로."

"고맙소. 데몬시드."

이내 대장간에는 처참한 비명이 울려퍼졌고, 스미스는 피 묻은 도끼를 땅에 던져두고 내게 다가와 무릎을 꿇었다.

"가져가시오. 악마에게 영혼을 팔면 영원한 고통을 받을 지언정 당장은 행복할 수 있다더니, 그 말이 그닥 다르지 않군. 난 이미 각오했소!"

난 머쓱함게 뒷목을 긁었다.

악마라고 단단히 오해한 듯 한데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려나.

"당신 영혼은 필요 없습니다."

"영혼이 필요 없다고?! 악마에겐 영혼이 제일이라 들었거늘... 그럼 무엇이 필요하시오?"

스미스의 물음에 난 기분좋게 미소 지으며 답했다.

"노동력."

보물방 미믹 [1]

95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