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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나비는 이름모를 산 정상에서 어깨를 풀고 있는 데몬시드를 보며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의 곁에는 해골기사의 창, 수백자루가 늘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혼나비, 놈들 위치는?"

"이렇게 멀리 있는게 정말 가능한 거야? 아니 아무리 투창이 특기라고 이건 좀..."

"위치나 말해라."

혼나비는 손으로 자신의 눈 한쪽을 가렸다. 뿌려둔 나비는 시야까지 공유가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2시 방향에 한무리, 거리는 3Km 정도. 챔피언 데몬은 더 멀어."

뇌창이 창을 들어 거리를 가늠하기 시작했다.

"차라리 챔피언 데몬부터 투창으로 잡는 게 낫지 않나? 도망이라도 간다면 골치 아파질텐데."

글로리안의 지적.

하지만 뇌창은 아랑곳 안 했다.

"어차피 투창으로는 놈을 못죽여. 푸리린들의 레벨이 6이다. 놈들의 챔피언이라면 족히 8레벨은 되겠지. 전력으로 던진다면 가능할지는 몰라도 확률은 낮아. 그렇다면 차라리 숫자부터 줄이고 공략하는 게 낫다."

"..."

"10시 방향에도 꽤 있네요. 숫자는 족히 수백마리 이상인 거 같은데요. 38선 부근엔 전부 놈들이네요."

드루이드였다.

애묘, 미미가 빙의한 드루이드의 시력은 3Km이상 떨어진 곳도 꽤 정확하게 보고 있었다.

"윽, 저는 마나 떨어졌어요."

합체 유지 시간이 짧은게 흠이다.

"뇌창, 가능하겠습니까?"

"안되면 도망쳐야지 뭐."

아마존의 물음에 뇌창은 답했다.

되면 되는거지만 위험하다 싶으면 도망가면 된다고.

여기가 카오스도 아니니까.

"혹시라도 엘리트나 챔피언 데몬이 움직이면 주시하고 있다가 말해줘."

"예, 알겠습니다."

"오케이~ 나한테만 맡겨."

"저도 마나만 회복하고..."

"흥."

혼나비는 썩 나쁘지 않았다.

비장한 정의에 사로잡혀서 반드시 전부 몰살시켜야 된다고 난리치면 어쩌나 했는데, 딱히 그렇지도 않다.

랭커라는 것들은 의외로 정의감에 도취된 사람들이 많다.

자신들의 나라의 희망이라며 남들에게까지 그런걸 강요하는 놈들이 꽤 되는데 랭킹 2위의 랭커 위의 랭커인 뇌창은 딱히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투구에 가려져서 얼굴이 잘 보이진 않지만..... 꽤 잘생겼을지도.'

남자의 외모는 원래 지닌 능력에 비례하지 않는가.

멸망이 도래한 세상에선 가진 능력이 곧 외모나 다름 없었다.

그런부분에서 뇌창은 상위 0.1%의 외모를 가지고 있는거나 다름없었으니 혼나비는 자연스레 호감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뇌창은 관심도 없었지만.

"간다."

드루이드가 가져다주는 창을 잡아 그대로 투창한다.

후웅-!!

정확한 자세. 거의 일직선상으로 쏘아지는 투창은 대포나 다름 없는 파괴력을 지니고 있었다.

"명중!! 즉사야!"

나비를 보내 염탐하고 있던 혼나비가 소리쳤다.

한번의 투창에 즉사.

목을 꿰뚫은 뇌창의 투창이었다.

"계속 간다."

"북동쪽 무리 날아올랐어!"

"상관없어."

거리가 멀다.

한 무리가 날아올랐대도 어디에서 날아온 공격인지 알아차리려면 시간이 꽤 걸릴 터. 그리고 그 정도 시간이면 충분히 저격이 가능했다.

"내다보는 눈을 사용합니다."

그의 눈에 날아오른 푸리린.

곧장 투창한다.

"명중!!"

혼나비가 신난 듯 소리쳤다.

"10시, 11시 방향도 움직였습니다!"

"1시쪽도 움직였어요."

"어이, 12시 방향도 움직이는데?"

"상관없어. 창이나 줘."

지금부터는 시간 싸움.

"명중! 근데 즉사는 아냐! 엉덩이에 맞아서 그런가봐!"

파지지직!

뇌창의 손에서 붉은 뇌전이 깃든다.

"지금부터 창 열자루씩 꽂아줘."

"네, 넵!!"

창 열자루를 한팔에 안아 뇌창의 앞에 전부 꽂아뒀다.

뇌창은 바로 뽑아 투창하기 시작했는데 그 속도가 아마존이 화살을 쏘는 것과 비슷했다.

어마어마한 속도.

그리고.

"명중! 즉사!"

명중률은 백발백중.

"세상에..."

벌써 창 백자루를 투창했는데도 그는 지친기색 하나 없다.

"창!"

"아, 넵!!"

드루이드가 헐레벌떡 창을 꽂는다.

"근데 괜찮은 거 맞아?"

그럼에도 푸리린들의 숫자는 줄어들 기색이 없다.

천마리가 아니라 수 천마리가 모여 있었던 건지, 산에서 날아드는 놈들의 숫자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어마어마하게 많아진다.

서서히 하늘을 검게 물드는 사슴 떼가 위치를 특정하고 몰려든다.

"이, 이봐 뇌창!"

"오히려 좋아."

쿠구궁-!

쿠르르릉-!

먹구름이 몰려든다.

"아."

카오스에서도 자주 봤던 그것.

비구름과 붉은 벼락이 몰려들었다.

그리고 그날 하늘에선 사슴비가 우수수 떨어져 내렸다.

북에서 내려온 똥 [3]

81화.

"푸리린을 처치하셨습니다!"

"푸리린을 처치하셨습니다!"

"푸리린을 처치하셨습니다!"

"푸리린을 처치하셨습니다!"

"푸리린을 처치하셨습니다!"

"푸리린을 처치하셨습니다!"

"푸리린을 처치하셨습니다!"

"푸리린을 처치하셨습니다!"

.

.

.

'딱 좋네.'

도핑하지 않은 마력 상태에서의 뇌격이라 조금 불안하기는 했다.

하지만 네피림으로 각성했을 때부터 난 오로지 모든 능력치 포인트를 마력만을 찍었다.

현재 도핑하지 않은 순수 마력 스탯은 자그마치 51. (장비효과 빼면 45)

마력 능력치가 본래 존재했다는 전제하에 51의 수치는 기프트 레벨이 10이 되었을 때에나 찍을 수치다.

'난 기프트가 두개니까.'

레벨업시 오르는 올스탯의 증가폭도 두배, 능력치 포인트도 두배다.

게다가 챔피언을 데몬트리로 완전 성장하게 하는 것 만으로도 올스탯+1 을 얻는다.

한마디로 지금의 내 마력 수치는 레벨 10 이상을 웃도는 정도다.

고작 Lv.6 악마가 내성 조금 있다고 버텨낼 수준이 아니다.

-삐이이이이익!!

사슴떼들이 비처럼 떨어진다.

'애초에 카탈린의 뇌격은 자원의 소모가 피와 마나야.'

생명력과 마나 둘을 동시에 사용하는 기프트의 특성상, 일반적인 마나만 쓰는 스킬보다 강하다.

같은 벼락이라도 밀도가 다르다. 이 말이다.

'내성이 있어도 방비는 완벽해.'

레인스톰으로 소낙비가 떨어진다.

지금의 레인스톰은 서펜트의 독니로 강화된 독비. 번개에 내성이 꽤 있어도 과연 독까지 내성이 강할까?

답은 지금 미치도록 올라가고 있는 시스템 창이 보여주고 있었다.

"적이 독에 중독당합니다!"

"적이 독에 중독당합니다!"

"적이 독에 중독당합니다!"

"적이 독에 중독당합니다!"

게다가 난 벼락만 치는 게 아니라 투창까지하는 중이다.

비를 맞으며 데미지를 입는다.

뇌격이 내려치며 감전된다.

투창의 물리피해와 벼락을 깃들여서 번개 피해를 입힌다.

그것만으로 수백마리가 우수수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

"레벨 안 오르네. 빨리 5렙 찍고 싶은데."

빨리 5레벨을 찍고 싶다.

만트라가 말하기를, 5레벨부터 스킬의 임펙트가 확 올라간다고 했는데 데몬시드나 카탈린의 감전이 5레벨을 찍으면 어떤 스킬들이 나타날지, 어떤 힘을 얻게 될지 벌써부터 몸이 근질거려서 참을 수 없다.

하지만 아마도 오래 걸리겠지.

남들과 달리 난 기프트가 두개니까.

"그건 그렇고. 이제 슬슬 제대로 해야 겠는데."

대부분은 쓰러졌다.

나머지는 달아나고 있는 놈들과 아직도 자리에 앉아서 가만히 날 지켜보고 있는 챔피언 정도.

확실히 사슴들과는 다르다.

사슴의 발굽. 가벼운 하체는 그대로지만 목 위로가 아예 다르다.

"사람인데 저건?"

"저게 무슨 사람이야. 나 저거 알아. 켄타우루스 뭐 그런 거 아냐?"

반인반마.

말은 아니고 사슴이지만.

상체는 사람의 것. 하지만 하체는 사슴의 것을 한 네개의 다리가 굳건히 자리해 있다. 손에는 지팡이로 보이는 걸 들고 있었는데 한 눈에 봐도 심상치 않은 무언가였다.

"머리에 녹용있는 거 보니까 사슴이 맞긴 한거 같은데요. 머리가 길지만 가슴은 없는 거 보니 남자..."

"드루이드, 넌 지금 그게 중요해? 잘못하면... 윽!"

눈 한쪽을 가린채 드루이드를 타박하다 돌연 허리를 꺾었다.

"뭐, 뭐야 왜그래!"

"내... 내 나비가 찢겼어!"

연동되어 있던 나비가 단번에 찢겼다며 고통을 호소한다.

아마 챔피언 데몬을 살펴보다 들켜 찢겨진 것이겠지.

그건 그렇고.

[뇌풍의 34군단 부관 기시기시]

놈의 수식언은 뇌풍.

챔피언인데도 부관이라는 직책.

아마도 푸리린 무리들을 34군단.

그리고 군단장은 그들의 우두머리인 푸르푸르겠지.

이곳에 오기 전 브란스에게 물었다.

'뭐 푸르푸르? 72 군단장 중 하나가 아니신가. 어릴적부터 번개와 폭풍을 다루는 천재였다지. 꽤 유명하네. 누군가 악마숭배로 푸르푸르를 소환한 적 있었는데... 악마란 것들이 대개 그렇지 않나. 소원을 빌어도, 제대로 이뤄주지는 않지.'

푸르푸르를 소환한 악마 숭배자는 자신의 어린 딸이 지닌 병을 치료하기 위해서 불렀다고 한다.

'병을 치료하기는 했지! 몸 속의 병균이라는 걸 없애 준다면서 몸이 산산조각 날 정도로 벼락을 내리쳐서 말이지.'

소환자의 딸은 물론이요, 소환자와 그를 주동한 다른 이들과 주변 나라 까지 모조리 박살을 냈다 한다.

어린 나이에도 34군단의 군단장을 차지한 천재.

브란스는 그녀를 한단어로 말했다.

'미친년이니 엮이지 마시게.'

군단장.

시스템은 엘더라 부르는 존재.

"딱히 엮이고 싶은 생각은 없다만."

눈앞의 챔피언은 잡는게 맞다.

"우리나라는 남침에 민감하다고."

정상에서 뛰어내리며 창을 잡았다.

"가볍게 인사해볼까."

해골기사의 창이 아닌 이번엔 항상 애용하는 적창이다.

[카탈린을 그리는 적창]

적창을 손에 쥐고 벼락을 모은다.

감전보다 고도로 높은 밀도를 지닌 카탈린의 벼락을 담아 그대로 투창.

아직 내다보는 눈의 사용시간은 널널했고 내 근력 수치는 시드로긴을 도핑하지 않아도 43에 육박한다.

거기다 바로 어제.

적창의 강화도 성공했다.

[카탈린을 그리는 적창 +4]

-그렘린 킹의 피와 뼈를 갈아 만든 적창. 〈더 강력한 출혈〉 〈강한 관통〉

알레이슈는 강화율을 30% 올려주는 강화석.

일반적으로 +4강의 성공률은 40%.

하지만 알레이슈를 사용하면 70%나 올라간다.

혹시라도 파괴될까 몇시간을 고민하다 망치를 두들 긴게 바로 어제다.

결과는 눈부신 성공.

출혈 효과는 한층 더 엎그레이드됐고 부가옵션으로 관통까지 붙었다.

본래 강했던 창이 더 강해진 것.

이거라면 된다.

최소 레벨 8의 챔피언 데몬도 내 적창을 무시하지는 못할 거다.

팡-!

쇄애애애액-!!

붉은 벼락이 감긴 적창이 무서울 정도의 파공음을 내며 쏘아졌다.

그때였다.

적창이 붉은 궤적을 그리며 기시기시에게 날아간 그때.

파직, 파지직!

후우웅-!!

놈이 지팡이를 들어올린 순간.

내 적창의 움직임이 일순 멎었다.

아니.

콰자자자자작!!

놈의 푸른 벼락이 폭풍과 함께 솟아나 적창을 날려버려졌다.

"뇌풍..."

벼락이 담긴 바람.

회오리처럼 휘몰아친 뇌풍은 정확하게 내 적창을 가볍게 날렸다.

절대 가볍지 않은 일격을 말이다.

"닿지 않으면 의미가 없긴하지."

레인스톰으로 만들어낸 독비도 뇌풍을 실드처럼 이용해 튕겨내고 있다.

단순한 짐승형 악마들과는 다르다.

'능력을 쓰는 수준이 달라.'

번개와 바람의 조합.

번개는 바람과 맞물려 있고 바람은 회전을 기본 축으로 삼았다.

내가 쓰는 거스트도 분명 돌풍이지만 놈의 것과는 결이 다르다.

출력도 낮아서 아마 내 번개와는 어우러지지 않겠지.

균형이 맞지 않는다.

거스트는 내 뜻대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바람이 아니니까.

"재밌네."

나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녀석이다.

놈의 수식언이 탐나기는 하지만... 극복하지 못할 건 또 아니다.

파직!

역시 레벨 8 이상의 챔피언 데몬.

제아무리 거리가 있다해도 이만한 근력 수치로 날린 투창이다.

그걸 막아냈다는 것 자체가 만만치 않은 상대라는 뜻.

'원거리 공격은 통하지 않아.'

아마 블리자드도 마찬가지겠지.

탓, 탁.

뇌풍에 날려진 적창으로 전이해 적창을 잡았다.

'적창은 이상 없고.'

건물 벽에 붙어 서서 적창을 쥐자 기시기시가 날 뚫어져라 노려보며 한쪽 입꼬리를 올렸다.

어떡할까.

"적창 하나 막혔다고 그렇게 비웃으면 자존심이 상하는데."

+5 푸른 성수 하나를 들이켰다.

'시드로긴은 확실해질 때까지 대기.'

오랜만에 만난 강적이다.

시험해보고 싶은 건 아직도 많다.

'바람을 다룬다.'

어중간한 독과 벼락은 안 통한다.

모두 날려버리거나 튕겨낸다.

아마 불도 안 통하겠지.

그렇다면 내가 쓸 수 있는 건...

"리버슬로우, 브램블리, 씨드라."

그것들 모두를 쓰는 거다.

왼손에 야탄의 숲 지팡이를 쥐었다.

내가 쥐자마자 기시기시 또한 앞발굽을 들어 올렸다.

콰드드득-!!

놈이 움직이는 것과 동시에 리버슬로우를 걸었다.

"적의 흐름을 느리게 합니다."

"적의 힘이 강합니다."

"리버슬로우를 일부 저항합니다."

"브램블리를 사용합니다."

어차피 리버슬로우는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다음은 브램블리.

가시덩불이 꽈배기처럼 꼬여들어 순식간에 기시기시를 옭아멘다.

쿵!!

하지만 놈 또한 가만히 당해주지는 않았다.

땅을 박찬다.

뇌풍을 몸에 휘감아 순식간에 하늘로 뛰어올랐다.

"나도 아직이다."

쿠드득! 쿠우웅!

날아오른 놈의 땅 밑에서 수십개의 가시덤불이 치솟아 올랐다.

"브램블리를 사용합니다."

"브램블리를 사용합니다."

"브램블리를 사용합니다."

"브램블리를 사용합니다."

"브램블리를 사용합니다."

나무와 건물 사이사이를 뛰어다니며 가시덩쿨을 피해 거리를 좁혀온다.

때로는 피하고, 때로는 뇌풍으로 날려버리고, 때론 응축시켜 덩쿨을 터트리며 서서히 거리를 좁혔다.

놈은 등에 있는 날개를 쓰지도 않았다. 가볍게 발굽으로 지면과 건물의 잔해를 밟아 튀어오르는 것 뿐으로 내 브램블리를 모조리 피해냈다.

'근접전도 자신 있다는 건가.'

일반적인 푸리린과는 다르다.

전투의 경험 역시 풍부해 보였다.

하지만 그건 나 또한 마찬가지.

"뒤 조심해라?"

"!"

-키에에에에엑!!

씨드라의 등장이다.

가시덩쿨에 숨겨놨던 데몬시드.

그것이 개화함과 동시에 수백 마리의 씨드라가 앞다퉈 아가리를 벌렸다.

그들에게 있어 기시기시는 단순한 먹잇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하앗!!]

기시기시가 처음으로 감정을 드러냈다. 꽤 당황한 모습.

하지만 움직임 만큼은 노련했다.

번개가 담긴 날카로운 바람으로 씨드라들의 목을 쳐내고 다급하게 날개를 펼쳐 하늘로 날아오른다.

물론,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적창을 투창했다.

콰앙-!!

[이놈!!]

말을 할 수도 있는건가.

꽤 놀랍지만 의미는 없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니까.

파지직!

가까스로 내 적창을 막은 기시기시의 머리 위로 뇌격이 자리잡는다.

꽈광-!!

"좀 더 빠르게 가보자고."

머리 위에는 뇌격.

아래는 씨드라 밭.

그 와중에 건물들을 뛰어다니며 틈틈히 벼락처럼 투창한다.

쾅! 콰앙-!

[으아아아아악!!]

이것 만으로도 놈은 열 받아 미쳐버리 겠다는 듯 분노의 함성을 지른다.

그때였다.

돌연 놈의 눈이 푸르게 빛나며 온몸에 푸른 뇌전이 발광했다.

쿠우우우우우웅-!!

동시에 놈의 주변으로 소용돌이치며 거대한 토네이도가 휘몰아친다.

고속으로 회전하며 모든 걸 찢어발기는 기시기시의 뇌풍이 일대를 집어 삼키기 시작했다.

점점 비대해지는 놈의 토네이도.

마을 하나쯤은 손쉽게 멸망시킬 놈의 라이트닝 토네이도를 바라보며 난 손안에 쥔 씨앗들을 바라봤다.

"내가 씨드라를 잘 사용하지 않은 이유는 약해서가 아니야."

오히려 강하고,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직도 리벨롬이 잡아 먹힌 일은 내 가슴 속에서도 강렬하게 남아있다.

데몬시드의 유일한 소환 스킬.

동시에 무엇보다 파괴적인 스킬.

씨드라를 익히며 나는 하나의 가정을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오크전사의 씨앗 +5]x13

+5 합성한 씨앗으로 씨드라를 만들면 과연 어떻게 될까.

강력하게 모든 걸 빨아들여 가루로 만들어버리는 토네이도로 손바닥의 씨앗 수십개를 날려보내며 그간의 호기심을 풀어줄 주문을 외웠다.

"씨드라."

랭커 채널 [1]

82화.

씨드라.

그것은 본디 데몬시드에 내재되어 있는 악마의 힘에 근간을 둔다.

일시적으로 억지로 성장시켜 악마의 힘을 발현하고 주변의 모든 걸 닥치는대로 씹어먹는 모습은 제대로 잠들지 못한 분노요, 내재된 탐욕이다.

해골기사의 데몬시드로 만들 때.

오크전사의 데몬시드로 만들 때의 기량과 힘의 차이가 다르다.

한데 같은 씨앗이라도 수십, 수백개가 하나로 합체된 것으로 씨드라를 발현시키면 과연 어떻게 될까.

답은, 지금 보이는 대로다.

"씨발... 저게 대체 뭐야!?"

혼나비가 경악했다.

곁에서 함께 그의 전투를 바라보던 이들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토네이도.

마을은 물론, 도시까지 초토화시켜버릴 거대한 라이트닝 토네이도다.

전투가 어찌됐든 일단 도망가는 게 산책이라 달아나려 했다.

근데.

"이게..."

토네이도를 씹어 먹으려 하는 거대한 용들이 나타났다.

본래 삼미터에 불과했던 씨드라의 크기가 웬만한 빌딩보다 거대해진 것이었다. 게다가 그게 한마리도 아니고 수십마리.

삽시에 토네이도 속에서 나타난 거대한 씨드라들의 머리가 토네이도를 향해 아가리를 쩌억 벌렸다.

콰아아아앙-!!

"크윽!"

씨드라가 토네이도를 씹어먹을 때마다 강렬한 광풍이 멀리 떨어져 있는 자신들에게까지 미친다.

터억! 퍼어어어억!!

쾅 콰앙-!!

"피해! 피해야 돼!!"

돌연 다른 씨드라의 아가리에서 빛의 입자가 모이더니 돌연 브레스를 날려버렸다.

콰아아아아아앙-!!

"뭐야 저거! 쏠라빔이냐?"

"솔라빔이 뭔데!!"

"몰라 일단 피해! 우와아아아악!!"

솔라빔의 여파로 건물들이 모조리 날아간다.

주변의 나무들은 모조리 뽑혀나가 하늘을 날고, 물렁한 산 또한 중구난방으로 쏴대는 솔라빔에 모조리 쥐어 터지고 박살이 나기 시작했다.

"미친!"

글로리안은 날개를 펼쳐 파티원들을 안고 날아가려 했으나 어마어마한 폭풍의 여파에 날기는 커녕, 광풍에 휩쓸려 내던져지기만 했다.

죽음의 공포가 찾아왔다.

포탈이라도 펼쳐야 하나 싶었으나 그럴 여력조차 없었다.

"포, 포탈! 누가 포탈 열어!! 이러다가는 다 죽어!!"

"제가 열겠습니다!"

"끄으으으윽! 아아아악!"

촤악!

간발의 차이로 포탈을 열어 피신한 사이.

씨드라의 솔라빔이 포탈을 찢어버리고 일대를 초토화시킨다.

콰아아아아아앙-!!

[크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기시기시의 괴성이 토네이도를 뚫고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것을 기점으로 씨드라들의 머리가 앞다투어 토네이도를 씹어먹고 몸을 날려 쥐어 뜯기 시작했다.

콱! 콰즉! 콰직!!

마치 먹잇감을 찢어 먹듯 기시기시의 토네이도를 순식간에 찢어버린다.

[이놈! 이노오오오옴!!]

하지만 기시기시도 가만히 당하지는 않았다.

꽈과광-!!

푸른 벼락 천벌처럼 떨어져 내린다.

벼락에 맞은 씨드라의 움직임은 잠깐이지만 확실하게 마비됐다.

이게 벼락의 본래 용도다.

제아무리 거대하다 한들, 벼락은 나무를 쪼개고 불꽃을 튀긴다.

씨드라의 몸 일부가 쪼개지고 불이 붙자 태풍은 불꽃에 휘감긴다.

그 와중에 벼락들이 비처럼 쏟아지니 몸집이 거대한 씨드라들은 저들끼리 부딪치고 빔을 쏴댔다.

무리한 출력을 끌어낸 기시기시가 피를 쏟아내며 뇌풍의 토네이도를 다시 한번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번엔 그 규모가 작다.

손바닥에서 쏘아진 토네이도가 일직선상으로 씨드라들의 몸체를 터트린다.

퍼어엉-!

이내 자기 자신에게 뇌풍을 씌워 씨드라의 몸속으로 침투해 내부에서부터 부수며 싸우기 시작했다.

벌써 쓰러진 씨드라는 열셋 중 다섯이었다. 기시기시의 피해도 대단했지만 이만큼이나 싸운 그의 능력에 화성은 박수를 쳐줄 수밖에 없었다.

씨드라의 몸을 찢고 그들을 밟아 피해다니기를 십수 분.

허나 그리 잘 싸우던 기시기시도 결국 끝은 찾아왔다.

쐐애애애애애액-!!

푸욱-!!

[컥!]

씨드라한테 정신 팔린 작은 틈.

화성이 날린 투창이 지쳐있던 기시기시의 심장을 꿰뚫었다.

회심의 일격이었다.

그의 적창은 교묘하게도 기시기시가 찢어발긴 씨드라의 몸체를 뚫고 나왔다. 죽어 쓰러지고 있던 씨드라의 뒤통수에서 나타난 적창은 아무리 그라고 해도 예상하지 못했다.

씨드라를 상대하기 바빴던 기시기시의 방심이 불러온 일격이었다.

[푸르푸르... 님...]

그것으로 전투는 마무리됐다.

휘몰아치던 광풍과 벼락이 서서히 사라지고 씨드라들이 앞다퉈 벌린 아가리의 밑으로 수직낙하하는 기시기시의 모습이 보였다.

파직!

"이건 내꺼다 이놈들아."

적창으로 전이한 화성은 씨드라들의 난리통에 기시기시의 몸을 회수했고 성공적으로 씨앗으로 만들었다.

"휴."

"뇌풍의 34군단 부관 기시기시를 처치하셨습니다."

"75,135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5320 골드를 획득합니다."

"데몬시드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데몬시드 Lv.5가 되었습니다."

"모든 능력치가 +1 상승합니다."

"능력치 포인트 +5 획득합니다."

"기시기시의 뿔 지팡이를 획득합니다."

"마력의 엘릭서를 획득합니다."

"기시기시의 녹용을 획득합니다."

"34군단에 당신의 악명이 널리 퍼지게 됩니다."

"수식언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푸르게 불타는 영혼의 불 Lv.4▲"

『기시기시의 뿔 지팡이』 (Epic)

-34군단 부관 기시기시가 애용하는 뿔 지팡이.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조상의 뿔을 이용해 만든 지팡이.

〈번개 피해+20%〉

〈마력 +5〉

〈라이트닝 오브(1)〉

[라이트닝 오브] (d-15)

-번개의 구슬을 생성해 일정 시간동안 연속해서 벼락을 쏘아낸다.

(소모MP:500)

『마력의 엘릭서』

-전설적인 명약으로 알려져 있는 엘릭서. 마력에 특화된 것으로 영구적인 마력의 증진을 꾀한다.

(마력 +3)

「기시기시의 녹용」

-기시기시의 마력이 담긴 녹용.

푸리린 족의 녹용은 특별한 배합으로 다려 먹으면 이로운 효과를 축적시킨다는 전설이 있다.

기시기시를 처치하고 얻은 전리품과 레벨업을 확인해볼 틈도 없다.

-콰아아아아악!!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씨드라들이 자신의 먹잇감을 빼앗아간 나한테 도리어 화를 내기 시작했으니까.

"내가 니들 주인이야 임마!!"

억울해서 소리쳐 보지만 놈들의 귀에 이런말이 통할 리 없다.

아가리에서부터 모여지는 빛 입자가 솔라빔을 쏜다.

콰아아아아아아-!!

"에너지 쉴드를 사용합니다."

"카탈린의 감전과 융화됩니다."

키이이이이잉-!!

에너지 쉴드에 부딪친 솔라빔이 불티로 변해 사방으로 튀어 산불을 만들어낸다.

"아니 미친!"

콰창-!!

에너지 쉴드가 단번에 깨진다.

다급하게 변색된 뼈방패를 꺼내 들었지만 어림도 없다.

파직!

"와씨!"

흩뿌려져 있던 해골기사의 창으로 전이하고 나서야 한숨 돌릴 수 있었다.

"내 뼈방패!"

잠깐 막았는데 씨드라의 공격에 뼈방패가 조금 일그러졌다.

쓰지 못할 건 없지만 손색이 있는 건 분명했다.

"괜히 열세마리나 꺼내서는..."

설마하니 저렇게 괴물이 될 줄은 몰랐다. 본래의 씨드라라면 만들어내고 1분에서 5분이면 시들었는데 저놈들은 도통 시들지도 않는다.

"일단 엘릭서 하나 먹고."

꿀꺽!

맛은 무슨 콧물 같았다.

"웩!"

"엘릭서를 섭취하셨습니다."

"마력이 영구적으로 +3 증가합니다."

52였던 마력은 단숨에 55로 상승.

거기에 레벨업 포인트 +5도 바로 올려버렸다. 기프트 레벨이 5가 되어서 그런지 레벨업 포인트도 3이 아니라 5나 얻어버렸다.

모조리 올리자 마력은 자그마치 60.

강해진 마력과 함께 기시기시의 지팡이를 착용하자 +5가 더 상승한다.

총합 65.

야탄의 숲 지팡이+2를 동시에 들자 71까지 상승한다.

소모 마나가 500이나 되는 대마법.

하지만 그렇기에.

"안 써볼 수 없지."

자그마치 에픽 등급의 지팡이.

그것에 각인된 마법 라이트닝 오브.

하나의 오브를 생성해내 연속해서 벼락을 쏘아내는 고등 마법이다.

15일에 한번 쓸 수 있는 걸 보니 기시기시는 나와 싸우기 전에 이걸 한번 썼던 거겠지.

그렇지 않고서는 이 강력한 마법을 쓰지 않을 리 없으니까.

"라이트닝 오브."

어차피 기시기시랑 씨드라 때문에 개박살 난 곳이다. 마법을 시험해본다고 더 안 좋아질 것도 없겠지.

"라이트닝 오브를 사용합니다."

"카탈린의 피가 감응합니다."

"카탈린의 라이트닝 오브로 변모합니다."

쿠구궁!

먹구름이 몰려든다.

이내 먹구름진 하늘이 열린다.

악마의 눈과 같은 시뻘건 번개의 구가 먹구름 속에서 모습을 나타냈다.

크기는 씨드라의 머리만한 그것.

어마어마한 위용이다.

존재만으로 소름이 끼친다.

저걸 내가 만들어냈다는 것 만으로 작은 희열이 용솟음쳤다.

시뻘건 라이트닝 오브.

보기만 해도 세상의 멸망을 초래할 것만 같은 분위기에 강력한 번개의 밀도를 지닌 녀석이 천천히 씨드라들의 중심으로 내려왔다.

-카아아아아악!!

화를 참지 못하고 오브를 향해 씨드라 하나가 아가리를 벌린 그때.

콰자자자자자작-!!

사방으로 수백개의 벼락이 비처럼 뿌려졌다. 벼락 한줄기 한줄기가 씨드라의 몸을 꿰뚫었다.

마치 산탄총처럼 단번에 뿌려지는 수백개의 벼락이 그 강력한 씨드라를 눈한번 깜빡인 순간에 터트렸다.

"크윽...!"

꽤 멀리 떨어져 있는 산맥에 있는데도 여파가 어마어마하다.

당연히 남아 있던 씨드라들은 단번에 몸이 산산조각 나 불태워졌다.

라이트닝 오브는 그로부터 10분을 더 일대에 벼락을 쏴대며 모든 걸 가루로 만들다가 사라졌다.

"기시기시놈, 배좀 아프겠네. 이 대단한 걸 제대로 쓰지도 못하고 나한테 죽어버렸네."

운이 좋았다.

놈이 라이트닝 오브를 썼다면 나도 꽤 고전을 면하지 못했을 테니까.

"아마존들은 알아서 피한 거 같고."

그럼 남은 건.

"내 창이랑 푸리린들 시체를 좀 회수하는 건데..."

주변이 전부 초토화되서 남아있는 게 별로 없다.

산으로 멀리로 날려져 있는 푸리린이나 창들을 수거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한숨이 다 나왔다.

"아마존한테 연락이나 할까. 푸리린 사체랑 내 창좀 회수해달라고 해야지..."

애초에 정부의 부탁이었다.

가만히 기다리면 알아서 나타나 귀찮은 일들은 다 처리해주겠지.

악과 몇개 건네면 좋아할테니 미안한 마음 들 필요도 없다.

솔직히 나 아니었으면 기시기시를 잡을 수 있는 사람도 없었으니까.

"기시기시의 라이트닝 오브는 북한 놈들을 궤멸시킨 거겠지."

솔직히 갈루란타보다 꽤 고전했다.

기본 스펙이나 가진 권능의 수준이 갈루란타랑 비교할 바가 안됐다.

지금까지 싸웠던 챔피언 데몬 중 기시기시가 제일 강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푸르푸르는 얼마나 강한거야."

현, 북한을 지배하고 있는 존재.

34군단장, 푸르푸르의 강함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다.

기본적으로 챔피언 데몬의 강함은 일반 악마에 비해 3배로 본다.

그럼 그 위의 엘더.

군단장 급은 몇배나 더 강한 걸까.

푸르푸르에 관해 생각하고 있자 뜬금없는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퀘스트 자격이 주어집니다."

[퀘스트- 푸르푸르의 처치]

-악마에게 빼앗긴 땅을 되찾아라.

자격-중국, 러시아, 한국의 네피림.

보상-해당국가 차원 확장. 해당국가 참가 네피림 전원 레벨 +1상승. 처치 기여도 1, 2, 3위 차등 헤일로 획득.

"이건..."

"엘더 레이드 채널이 해금됩니다."

-한국-데몬시드 Lv.5가 입장하셨습니다.-

[중국-미룡 Lv.6]

-한국도 왔네.

[러시아-가면소드 Lv.6]

-이제야 제대로 된 이야기를 하겠어. 반갑다 한국 1위.

한, 중, 러 랭킹 1위 채팅방에 초대되어 버렸다.

랭커 채널 [2]

83화.

돌연 정상들의 채팅방에 초대될 줄은 몰랐다.

[중국-미룡 Lv.6]

-한국놈, 무슨 말이라도 해라.

[러시아-가면소드 Lv.6]

-한국은 수준이 낮나보군. 랭킹 1위의 레벨이 이제 겨우 5라니.

[중국-미룡 Lv.6]

-그렇네? 랭킹 1위가 5라면 밑에 수준은 안 봐도 뻔해. 베트남이나 일본놈도 그렇지 않나? 아시아의 수치야 정말...

[러시아-가면소드 Lv.6]

-이래서 똥양인들이란... 굳이 레이드를 함께할 필요도 없겠어.

"이새끼들이 뭐라는거야."

가만히 듣자듣자하니까 지들끼리 북치고 장구치고 있다.

한때, 낙엽게임의 키보드 워리어로서 참을 수 없는 언사다.

역시 초반엔 기선제압이 우선이지.

[한국-데몬시드 Lv.5]

-겁에 질린 개일수록 크게 짖는 법이지. 그만 짖어대라. 귀 아프다.

"캬! 이거지!"

낙엽의 시대를 살아왔던 몸으로서 아직 말빨이 죽지 않았다.

내 기선제압이 통했는지 중국과 러시아 둘다 말이 없었다.

[중국-미룡 Lv.6]

-어이가 없네. 소국 주제에.

[러시아-가면소드 Lv.6]

-맞는 말이야. 애초에 북한도 한국이랑 하나 아닌가? 집안 단속을 제대로 못하니 우리한테까지 똥이 튄거다. 똥쟁이 자식.

[한국-데몬시드 Lv.5]

-북한은 뿌리가 같을 뿐, 한국과는 엄연히 다른 나라다.

[중국-미룡 Lv.6]

-됐어. 어차피 칠칠치 못한 건 러시아나 한국이나 똑같으니까. 지금은 그런 것보다 푸르푸르를 어떻게 할건지나 얘기해야 하지 않겠어?

그래도 머리가 아예 없지는 않다.

꽤 개성들이 넘치긴 하지만 채팅으로 보는거라 그냥 머저리들 같았다.

이게 한 국가를 대표하는 자들이라고? 솔직히 그냥 초딩들 같았다.

[러시아-가면소드 Lv.6]

-똥양인답지 않게 정곡이군.

[한국-데몬시드 Lv.5]

-듣는 똥양인 기분 나쁘다.

[중국-미룡 Lv.6]

-미룡은 북한만 신경 쓸 게 아니야. 다른 곳도 너희처럼 변변치 못해서 레이드 공략이 떴다고. 시간 없으니까 날짜나 정해. 어차피 푸르푸르는 내가 쓰러뜨릴 거니까.

[러시아-가면소드 Lv.6]

-어딜 공략할 셈이지? 대만인가? 그곳이 이번에 터졌다고 들었다.

[중국-미룡 Lv.6]

-알려줄 의무는 없을텐데?

정부가 알려준 소멸 국가 중에 대만도 있었던 거 같다.

중국 근처에는 작은 국가들이 꽤 있어서 그런지 골치를 꽤 썩는 모양.

[러시아-가면소드 Lv.6]

-깐깐하게 구는군. 광산에서 만났으면 죽이 밥이 되도록 달궜을텐데.

[한국-데몬시드 Lv.5]

-반대 아냐?

[중국-미룡 Lv.6]

-날짜를 정하라고!!!!!!!

자기 할말만 하는 편이라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다.

여기서는 내가...

[한국-데몬시드 Lv.5]

-급할 거 없지 않나? 시간 제한이 있는 것도 아니니 최대한 힘을 키운 뒤에 공략했으면 한다.

[중국-미룡 Lv.6]

-쫄았네.

[러시아-가면소드 Lv.6]

-쫄았군. 무섭나? 소국의 똥양인.

"죽인다. 반드시 죽인다 개새끼들."

하지만 절대로 흥분하지 않는다.

감정의 표출이 채팅에 보이는 순간 오히려 더 얕보인다.

감정은 절제하고 채팅은 우아하게.

[한국-데몬시드 Lv.5]

-원래 말이 많은 법이지. 뒤지게 얻어터지기 전까진.

[러시아-가면소드 Lv.6]

-너 어디사냐?

[한국-데몬시드 Lv.5]

-한국 살지 어디살겠냐. 꼬우면 오시든가. 왜? 쫄?

[러시아-가면소드 Lv.6]

-한 주먹거리도 안되는게 아오!

[한국-데몬시드 Lv.5]

-덤벼 보든가ㅋ 가면소드는 개뿔, 가면 개박살 내줄라니까ㅇㅈ?

[러시아-가면소드 Lv.6]

-너 어디냐? 지금 간다 딱 기다려

[한국-데몬시드 Lv.5]

-화나셨세요? 북한을 가로질러야 되는데 대체 어떻게 오시려고? 푸르푸르 먼저 잡고 오든가 ㅋㅋㅋㅋㅋㅋ

러시아 1위가 부들부들 떨어대는 진동이 여기까지 들리는 거 같다.

"꼬시다. 어딜 감히 한국을 얕봐! 초딩때부터 현피뜨는 동네가 우리 나라야 팍씨!"

하지만 승리의 기쁨은 잠깐 뿐.

[중국-미룡 Lv.6]

-추잡하게도 싸우네...

서른 넷 처먹고 채팅 이겼다고 기뻐하고 있자니 현타가 찾아왔다.

[중국-미룡 Lv.6]

-결론이 안 나네 정말. 내가 정할게 지금부터 2주 뒤 공략 들어간다. 그때까지 알아서 인원 모으고 들어가. 쫄았다면 안와도 돼. 어차피 곧 세계를 지배할 대 중화인민공화국이 영토를 넓힐 거니까.

[러시아-가면소드 Lv.6]

-헛소리마라. 땅은 러시아가 제일 넓다. 중국도 한국도 소국이야.

[중국-미룡 Lv.6]

-땅만 넓고 거지들만 있는 나라가 러시아라던데? 너희는 악마가 아니라 가난이랑 싸워야 하는 거 아냐?

내가 가만 있으니까 또 둘이 싸우고 자빠졌다.

이런 놈들이랑 같이 싸워야하는 게 정말 맞는지 의심이 될 지경.

"그래도 푸르푸르를 혼자서 잡을 자신이 있지는 않지."

지금 신나게 서로를 헐뜯고 있는 놈들도 아마 마찬가지일거다.

중국이 아무리 인원이 많다고해도 정상에 선 녀석일수록 안다.

수가 많다고 유리한 게 아니다.

강한 네피림 하나가 전장을 좌지우지 하는 게 지금의 현실.

그러니 지금 서로 우위를 가져가려고 헐뜯으며 싸우면서도 어떻게든 합공하려는거다.

퀘스트가 중국과 러시아, 그리고 한국이 등록된 건 아마도 북한에서부터 뻗어나간 푸리린 때문일거다.

'놈들도 챔피언 데몬을 잡았겠지.'

나도 기시기시를 잡고 나서야 퀘스트가 오픈됐으니 말이다.

"기시기시 급의 챔피언 데몬을 잡았다는 말은, 놈들도 그럭저럭 실력이 있다는 거겠지."

그렇다면 확실히 도움이 될거다.

놈들도 그렇게 생각하겠지.

어쨌거나, 여기에 있는 놈들은 모두 챔피언 데몬을 잡아본 놈. 미룡과 가면소드도 기시기시급의 놈을 쓰러뜨렸으니 저렇게 떠들고 있는거니까.

군단장이라 불리는 엘더 데몬, 푸르푸르는 아마 그보다 훨씬 강할거다.

족히 두배, 다섯배 이상일지도 모를 일. 강함의 수위가 미지다.

그것만큼 불안하고 두려운 건 없지.

[러시아-가면소드 Lv.6]

-2주뒤 아침?

[중국-미룡 Lv.6]

-악마들이야. 밤에 싸워서 좋을 건 아마 없을테니까.

[러시아-가면소드 Lv.6]

-확인.

[중국-미룡 Lv.6]

-알아 들었으면 답해. 한국.

[한국-데몬시드 Lv.5]

-확인.

[중국-미룡 Lv.6]

-재수없어.

[한국-데몬시드 Lv.5]

-?

[중국-미룡 Lv.6]

-너 레벨이 왜 그렇게 낮아? 정말 도움 되는 건 맞아? 챔피언 데몬 어떻게 잡았지? 몇명 데리고 잡았어?

갑자기 화살이 나한테 튀었다.

뭐 여기선 솔직하게 말하는 게 낫겠지. 아무래도 같이 싸우게 될 놈들이고... 전투력은 정확한게 작전을 짜기에도 좋으니까.

[한국-데몬시드 Lv.5]

-혼자 잡았다. 잡고 레벨업 했음.

그러고보니 채팅하느라 아직 기프트 스킬을 찍지도 못했네.

뭘 찍을까 잠시 보고 있으니 채팅창에 급하게 알람이 울린다.

[러시아-가면소드 Lv.6]

-? 아무리 그래도 거짓말은 좋지 않다. 똥양인. 정보는 확실하게 주고 받는 게 좋지 않겠어?

[중국-미룡 Lv.6]

-가면 말에는 미룡도 동의해. 전투력의 정보는 확실하게 하는 게 맞아. 혼자라니 암만 그래도 너무하잖아.

[러시아-가면소드 Lv.6]

-똥양인에게 본보기를 보여줘야겠군. 난 고작 12명으로 잡았다. 넌 아마 백명 정도 돌격했겠지. 그게 아니면 저 레벨로는 불가능이니까.

[중국-미룡 Lv.6]

-뻔하긴 하네. 난 5명으로 잡았어.

"나도 다섯명이었는데... 싸우다보니까 혼자가 됐다고..."

거의 처음부터 혼자긴 했지만.

그거까지 말할 필요는 없겠지.

[한국-데몬시드 Lv.5]

-ㅈ밥들 ㅋ

어차피 안 믿을 거 같으니까 열이나 받게 해야지.

"어딜 솔플도 못하는 놈들이 랭킹 1위라고 거들먹거려!"

채팅창을 꺼버렸다.

한동안 거짓이니 마니 지랄해대며 싸울 게 뻔하니까.

"스킬이나 찍자."

체감상 이번 레벨업은 빨랐다.

와이번과 푸리린 떼를 급하게 잡고 무엇보다 챔피언 데몬인 기시기시가 주는 경험치가 많았다.

게다가 만트라가 말했던 5레벨은 능력치 포인트부터가 통이 크다.

당연히 스킬도 남다르겠지.

스킬창을 열어보니 확실히.

조금 다르긴 했다.

〔데몬시드+2〕

-악마를 씨앗화 할때 더 많은 양분을 흡수하여 씨앗으로 만든다.

〔시드융합〕

-서로 다른 씨앗을 융합하여 이로운 효과를 낳는다.

〔트리거인〕

-성장시킨 데몬트리를 주인에게 충성하는 트리거인으로 만든다.

"셋다 괜찮기는 하네."

하지만 기대했던 것보다는 전부 뒤떨어지는 효과이기는 하다.

트리거인.

이것도 씨드라와 비슷하게 사용하면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다.

합성한 씨앗으로 성장시킨 데몬트리는 +5강이나 다름 없으니까.

그렇게 성장시킨 데몬트리를 트리거인으로 만들어 싸우게 한다면?

게다가 무차별적으로 주인도 몰라보고 모조리 공격하는 씨드라 놈과는 달리 트리거인은 주인에게 충성한다.

그것만으로도 포인트를 줄 여력이 있었다.

"그래도 씨드라가 있으니까..."

주인까지 집어삼킬만큼 난폭하지만 씨드라의 힘은 강력하다.

씨드라를 배우지 않았다면 찍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이미 내게 씨드라라는 무기가 있는 한, 트리거인을 굳이 찍을 이유는 없다고 본다.

"시드융합도 괜찮지."

서로 다른 씨앗을 융합한다.

말은즉슨, 챔피언과 엘리트를 융합할 수도 있고, 종족이 달라도 융합하여 색다른 효과를 낼 수 있다는 뜻.

잠재력이 꽤 무궁무진한 스킬이다.

하지만.

"그래도 데몬시드가 낫지."

내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데몬시드다.

기프트의 이름 자체가 데몬시드인데 이걸 찍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

"설명은 빈약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찍어야지."

씨앗 자체의 양분을 높여준다.

이 말은, 나무로 성장시켜 열매로 맺혔을 때의 효과를 더욱 높여준다는 말이나 다를 바 없다.

애초에 씨앗의 성분 자체가 높아진다면 씨드라나 아토믹시드에 더 높은 효과를 볼 수 있지 않을까?

앞으로 찍게 될 대부분의 스킬은 높은 확률로 씨앗에 관련됐을거다.

그렇다면 반드시 데몬시드의 효율을 높이는 쪽을 찍는 게 바람직하다.

"답은 정해져 있었지."

"데몬시드+2를 배우셨습니다."

원래 게임에서도 대부분 그렇다.

"패시브부터 찍어주는 게 낫다."

그럼 다시 채팅방좀 들어가볼까.

생각해보니 날짜를 정할거라면 하루 더 늦추는 게 낫다.

기시기시의 뿔 지팡이에 각인된 라이트닝 오브의 기한이 15일 뒤니까.

『기시기시의 뿔 지팡이』 (Epic)

-34군단 부관 기시기시가 애용하는 뿔 지팡이.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조상의 뿔을 이용해 만든 지팡이.

〈번개 피해+20%〉

〈마력 +5〉

〈라이트닝 오브(0)〉

"이참에 가지고 있는 장비들 싹다 강화 좀 해야겠다."

야칸의 숲 지팡이도 강화하니까 옵션에 달린 +마력이 높아졌었다.

기시기시의 뿔 지팡이도 강화하면 관련 옵션이 증가되겠지.

"이 녹용은... 어떻게 쓰는거지. 그냥 달여 먹으면 되려나."

잘 모르겠다.

뭐 달여 먹으면 이로운 효과가 있다는데 특별한 배합이라는 게 뭔지 도통 알 방법이 없으니 말이다.

'브란스한테 물어보면 되겠지.'

그건 그렇고 채팅창은 좀 잠잠해졌으려나.

슬쩍 확인해보니.

[중국-미룡 Lv.6]

-야 한국! 대답 안해!?!?!?!?!?!?

[중국-미룡 Lv.6]

-대답해대답해대답해대답해대답해대답해대답해대답해대답해대답해대답해대답해대답해대답해대답해대답해대답해대답해대답해대답해대답해

[러시아-가면소드 Lv.6]

-대답해! 너 혼자 솔플해서 잡았을 리 없자나!!!!!!!!!!!!!!!!!!!!!!!!

[러시아-가면소드 Lv.6]

-똥양인똥양인똥양인똥양인똥양인똥양인똥양인똥양인똥양인똥양인똥양인똥양인똥양인똥양인똥양인똥양인똥양인똥양인똥양인똥양인똥양인똥양인똥양인똥양인똥양인똥양인똥양인

[중국-미룡 Lv.6]

-대답하라고 소국놈아!!대답하라고 소국놈아!!대답하라고 소국놈아!!대답하라고 소국놈아!!대답하라고 소국놈아!!대답하라고 소국놈아!!대답하라고 소국놈아!!

"진짜 어지럽네..."

난 다시 채팅창을 껐다.

랭커 채널 [3]

84화.

기시기시를 해치우고 난 뒤.

널리 흩어진 수 많은 창들과 푸리린의 시체들은 아마존 파티한테 수거해달라고 부탁했다.

나는 할일이 많다.

새로 찍은 데몬시드+2의 효과를 확인해 봐야 했다.

푸리린과 챔피언의 씨앗도 심어야하고 강화도 하고 이래저래 할게 많은데 시체 수거를 언제 할까.

"악과 몇개씩 주면 되겠지."

냉동고에 남아도는 악과 한세트씩 주면 불만은 없어질거다.

푸르푸르 레이드를 위해서도 랭커들은 강해질 필요가 있으니까.

나 혼자 강해지는 것도 각종 컨텐츠 보상을 위해 필요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나만 강해져서는 조금 불안한 점이 많다.

"악마도 힘든데 다른 나라까지 견제해야 할 줄은 몰랐는데."

인구수에서부터 어마어마한 차이가 나는 중국과 러시아에 비하면 우리 나라는 확실히 인구수가 적다.

"중국이 원래 14억쯤 이었던가."

5천만명에 불과했던 한국과 비교하면 확실히 어마어마한 숫자다.

러시아는 1억 4천이 좀 넘고.

물론 인구수에 따라 국력의 강함이 비견되는 건 아니다. 인구수가 많다는 뜻은 그만큼 자기들끼리 경쟁도 치열하고 다툼도 많을테니까.

하지만.

지금 같은 세상에서는 확실히 인구가 많은 게 썩 나쁘지는 않다.

"악마들이 상황 봐주면서 처들어 오는 것도 아닐테니까."

지금도 저 인구수를 가지고 있지는 않을거다. 절반은 죽고, 절반의 절반은 싸우다 죽고 그랬을테니까.

그렇다해도 한국보다는 많다.

뛰어난 네피림들도, 일명 천재들이 많을 확률도 대단히 높다.

그러니 위협이 된다.

만약, 점차 성장해 악마들을 온전히 밀어내고 살아가게 된다면 중국은 차례차례 군단장을 공략해서 자신들의 땅을 넓히려 하지 않을까.

그럼 한국은 또 다시 외세의 압박에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일 위치가 되어버릴 수도 있다.

먼 옛날처럼 말이다.

"그러기 전에 강해져야지."

물론 저건 하나의 가정이다.

저렇게까지 될리는 없겠지만 자국민을 강화시켜서 나쁠 건 없다.

이번 푸리린 원정으로 랭커들의 실력을 가볍게 확인했지 않은가.

푸리린 한마리한테 고전하는 실력.

그런 힘으로 푸르푸르 원정 레이드?

애초에 성립 자체가 되질 않는다.

"+5 악과들도 푸는 게 낫겠지."

물론 공짜로 풀 생각은 없다.

싸게 풀어봤자 사재기하는 놈들이 다시 되팔기만 할 뿐이니까.

굳이 내가 팔지 않아도 된다.

대장간 옆에서 열심히 음식 장사 하는 레아가 있으니까.

"혼자서 하기엔 조금 힘드려나."

음식도 팔고 과일도 팔면...

"레아 음식 아무도 안 먹겠네."

생각해보니 이건 안되겠다.

레아 요리 안 먹고 열매만 사가면 그건 또 그거대로 슬퍼할테니까.

"거래소에 올리되 레아 요리보다 비싸게 올리면 되겠지."

레아의 요리는 근력, 민첩, 건강을 0.1씩 올려주면서 가격은 100금이다.

그렇다면 나는 그렘린 열매 하나를 100금에 팔면 되겠지.

그럼 효율 때문에라도 레아 요리도 먹을거고 여유 있으면 열매도 사서 먹겠지. 요새는 랭커들도 예전보다는 금화 수급을 잘하기 때문에 강해지고 싶으면 잘 사서 먹을거다.

"안면 있는 애들은 따로 50% 세일해서 파는 걸로 하고..... 나머지는 거래소에서 사 먹으라고 하지 뭐."

상황봐서 합성된 악과들은 레아 요리 재료로 넣으면 뒤탈없이 꾸준하게 금화 공급과 네피림 강화로 이어지게 될거다.

"좋아. 이건 나중에 레아한테 말해두면 되겠지."

뭔가 점점 네피림 키우기처럼 되버리는 거 같지만 어쩔 수 있나.

살려면 강해지는 게 우선이다.

"더 강해지자. 우선 그걸 목표로."

물론 확실한 목표도 있다.

[중국-미룡 Lv.6]

-왜 한달이나 필요하지? 난 지금 당장이라도 가능하다고!!

[러시아-가면소드 Lv.6]

-참아라 중국. 거짓말쟁이에게는 시간이 필요하다는거겠지.

"이새끼들은 대체 뭘까."

이런말은 하고 싶지 않지만 세계 정상급 네피림들이다.

근데 둘다 유치해 죽겠다.

어른스럽지 못하다고 해야할까.

반쯤은 장난인 거 같긴한데...

"외롭나."

꽤 많은 시간을 서로 채팅만 치면서 보내고 있다.

얼추 이해는 된다.

랭킹 1위라는 위치.

랭커들은 그에 따른 품위 같은 게 있기는 하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때문에 나도 뇌창일 때는 조금 덜하지만 데몬시드 모드로 사람들 앞에 나설때는 괜히 무게를 잡곤 한다.

기대감 어린 시선을 보내면 나도 모르게 그런 부담을 마주하고는 하는데 이놈들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우리끼리는 그런거 할 필요 없으니까... 사실 편하긴 해."

이놈들이 자꾸 개소리하니까 나도 모르게 헛소리가 자꾸 나가곤 한다.

그만큼 편하다는 거겠지.

익명으로 떠들수는 있어도 모든걸 까발리고 떠들 장소는 우리들한테는 꽤 한정적이니까.

"이게 바로 정상에 선 자의 고독..."

"네? 고독이요? 외로우세요!?"

"아, 아니. 아니야."

그램과 함께 과수원을 둘러보고 있던 레아였다.

괜히 헛소리해서 창피하다.

"오늘은 뭐하실거에요?"

"일단 몇개 좀 심어보려고."

"아, 데몬 스파이더랑 푸리린인가 새로 나타났다는 악마요?"

"응."

데몬 스파이더는 급이 낮아서 나한테 도움될 능력치를 주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일단 심어는 보는 게 낫다.

맛이라도 좋으면 심어둬서 나쁠 게 없고, 정 아니면 팔아도 되니까.

"이쪽, 다 밀었네?"

"틈틈히 다 밀었죠! 그램이 많이 도와줬어요!"

-캭!

"장하네."

그럼 심어볼까.

모종삽으로 흙을 파서 데몬 스파이더 씨앗을 심는다.

다시 흙을 덮어 툭툭 두들기고 비장의 무기를 꺼냈다.

"이게 이번에 개량했다는 거에요?"

"내 새로운 물 뿌리개지."

"헉! 주전자 같이 생겼네요."

『은정의 물뿌리개』 (unique)

-검은 산양의 정욕을 바치는 항아리였으나 흰숲의 현자가 은인을 위해 개량한 은정의 물뿌리개가 되었다.

〈은정:36〉

철원에 도착해서 눈에 보이는 시체들만 수거했었는데 숫자가 36이었다.

몇개 없으니 가볍게 확인만 해야지.

"자 그럼 성장 시켜볼까."

"데몬 스파이더 씨앗에 성공적으로 제물을 바쳤습니다."

"데몬 스파이더 씨앗이 완전한 성장을 이룹니다!"

"10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눈부신 빛과 함께 씨앗에서 새싹이 돋고 한순간에 나무로 성장했다.

그리고 열매가 열렸는데.

"옥수수?"

데몬 스파이더의 열매는 옥수수의 형태를 띄고 있었다.

색, 그리고 형태까지. 틀림 없는 옥수수의 모양이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아래를 보고 있는 형태였지만 틀림없다.

옥수수다.

"삶기 전에는 깡깡한 거 까지 똑같네. 향도 그렇고 틀림없어."

"정말이네요. 옥수수에요."

옥수수라.

구워먹어도 삶아 먹어도 맛있다.

척박한 땅에서도 꽤 잘 자라고 수확 시기도 빠른 걸로 알려져 있는 게 바로 옥수수였다.

옥수수로 만든 빵은 한국이 가난했던 시절 우리내의 배를 불려주던 유용한 식품이기도 했다.

"옥수수라..."

옥수수를 이용한 간식.

먹을거리가 단박에 떠올랐다.

하지만 역시 옥수수라 한다면.

"구운 옥수수에 버터랑 치즈 발라서 숟가락으로 한가득 떠먹으면...."

크으.

술 안주로 제격인 콘치즈가 아닌가!

게다가 옥수수는 가루로 만들면 옥수수 스프로 만들기도 좋다.

옥수수 자체가 고소하고 맛이 좋기도 하고 간단한 간식으로도 쓸만하니 말이다.

"옥수수 가루로는 빵도 만들 수 있는 걸로 알아요."

"아 정말?"

"네! 저도 자주 먹었어요."

옥수수 빵이라니.

거래소에서도 밀값이 점점 올라가고 있는데, 꽤 쓸만한 대체 식품을 얻어버렸다.

"설마하니 나무에서 옥수수가 열릴 줄이야."

한 그루당 옥수수가 한 서른개 정도 열렸다. 데몬 스파이더 씨앗이 지금 한 50개 정도 있었는데, 뭍으로 나갈 때마다 보이는 족족 잡아야겠다.

"그냥 먹기는 좀 딱딱한데. 레아. 이거 삶아줄 수 있어?"

"네, 그럼요!"

넉넉하게 한 스무개 정도 삶아서 브란스 영감님도 가져다 주고, 그렘린들도 가져다주고 하면 되겠지.

"다녀올게요!"

"응, 고마워."

그리고 나는 이 사이에 푸리린 씨앗을 심었다.

데몬 스파이더가 기분 좋은 수확을 보여줬다. 아쉽게도 빛나는 열매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건 푸리린 나무에서 얻어보면 되겠지.

위치는 옥수수 나무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푸리린 씨앗에 성공적으로 제물을 바쳤습니다."

"씨앗이 완전한 성장을 이룹니다!"

"10 경험치를 획득합니다."

「완전 성장한 푸리린의 나무」

수확 가능 열매: 19개

다음 수확까지 250일.

푸리린의 열매는.

"이거 고추네?"

고추였다.

설마하니 나무에서 옥수수가 열리고 고추가 자랄 줄이야.

정확하게 말하면 진짜 고추는 아니다. 고추와 흡사한 모양과 질감을 가진 열매였다.

"모양은 좀... 녹용 같기는 해도 색이랑 질감이 그냥 딱 고추느낌이네."

크기도 그렇고.

끝 부분이 갈라져서 녹용처럼 보인다 뿐이지 다른 건 다 고추의 모양과 아주 흡사하다.

바로 하나 따 먹어보자.

아삭.

상쾌한 식감과 함께.

"와, 맵다."

혀끝이 얼얼해질 맵기가 감돌았다.

"김치 만들어 먹게 될지도 모르겠는데 이거."

안 그래도 슬슬 모든 식재료가 비싸지고 있다.

그중에서도 김치는 가격이 기하급스적으로 오르고 있는 식품 중 하나였는데 자그마치 한포기에 50금을 호가하는 것도 있었다.

"배추만 구해도 김치 만들어 먹는 건 어렵지 않겠네."

물론 제대로 무랑 풀이랑 뭐 이것저것 있어야 하지만 핵심 재료중 하나를 손에 넣었다 봐도 무방하다.

게다가 고추는 한국인이라면 어느 요리에 넣지 않는가.

라면에 넣어도 좋고, 고기를 먹을 때도 먹으며 국을 끓일 때도 넣어 먹으면 알싸하니 맛있다.

"옥수수랑 고추. 딱 좋네."

옥수수랑 고추를 함께 먹을 일은 잘 없겠지만 따로따로 쓰임이 아주 좋은 식재료들을 얻어버렸다.

"이대로 지구 멸망해도 나는 알아서 잘 먹고 잘 살거 같은 기분인걸."

오랜만에 맛보는 맵기에 고추 하나를 아삭아삭 씹어 먹자.

"용장이 발휘됩니다."

"명중이 0.02 상승합니다."

"직감이 0.02 상승합니다."

"... 어?"

솔직한 말로 번개 피해나 번개 내성이 오르지 않을까 했다.

하지만 아니었다.

생각치도 못했던 스탯이 올랐다.

게다가 두개 씩이나!!

'데몬시드를 올린 탓이겠지.'

그렇지 않고서는 두개나 이렇게 오를 이유가 없다.

〔데몬시드+2〕

-악마를 씨앗화 할때 더 많은 양분을 흡수하여 씨앗으로 만든다.

더 양분.

아마 그 결과가 이거일테니까.

"악마의 열매는 악마의 잠재력을 뽑아내서 만들어지는 걸지도 모르겠어. 푸리린한테 명중이랑 직감? 이 있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명중은 그렇다고 친다.

내가 아직까지 차고 있는 목걸이.

그렘린의 목걸이가 명중을 올려주는 스탯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세부 능력치로 나뉘어진 명중을 올리게 되서 뭐가 좋아질지는 아직 정확하게 모르겠다.

지금만해도 내 투창의 명중률은 그리 낮지 않기 때문이다.

그건 그렇고.

"직감은..."

대체 뭘까.

바로 떠오르는 건 위기를 감지하는 종류나 직감적으로 좀 더 나은 선택지를 고르는 것 정도다.

말로 표현하기 애매모호한데 이건 확실하게 능력치를 올려보고 판단해야 할 부분인 듯 하다.

물 뿌리개도 좀 있으니.

"빛나는 열매도 한번 뽑아보자."

평범한 빛나는 열매라면 능력치의 상승률을 대폭 올려줄테니까.

운이 좋다면 생각지도 못한 행운을 얻게 될지도 모를 일이고.

"물뿌리개가 제대로 작동하는지도 확인은 해 봐야 하니까."

랭커 채널 [4]

85화.

중국의 쓰촨성.

빠른 걸음으로 걸어나가는 여성과 그녀를 따르는 한 무리가 있었다.

"미룡님. 이쪽입니다. 남변파가 숨기려던 걸 저희가 찾아냈습니다. 히든 던전입니다."

히든 던전.

오크들이 튀어나오는 던전을 성큼성큼 들어간 미룡은 순식간에 던전을 주파하고 보스를 섬멸해 빠져나왔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까딱할 필요가 없었다.

그녀의 꼬리뼈에서 튀어나온 검고 날카로운 용의 꼬리가 칼날처럼 모든 걸 도륙했으니까.

"다음."

랭킹 1위 채팅방에서처럼 촐싹맞은 모습은 아니었다.

오히려 눈초리는 날카롭고, 말수는 더더욱 적었다.

그녀를 따르는 무리는 랭킹 차이는 얼마 나지 않았지만 전적으로 랭킹 1위 미룡에게 충성을 보이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다음."

"다음은 웨어울프 동굴과 미노르 던전을 확보했습니다."

그녀의 일과는 특별한 일이 없다면 조직에서 찾아낸 던전과 악마들을 섬멸한다. 그리고 각종 정보들을 취합해 더 나은 던전을 찾을 단서를 찾거나 콜로세움으로 들어가 쉴틈없이 결투를 하는 게 대부분이었다.

"다음."

웨어울프와 미노르 던전을 돌파한 미룡은 다음을 외쳤다.

최단시간 공략.

비서역을 자처하는 미룡파의 간부는 고개를 꾸벅 숙였다.

"훌륭하십니다! 다음은 잠시 휴식을 취하고 타락한 숲으로 가보시는 게 어떨까 합니다."

"타락한 숲은 너무 약해. 쓸데없이 함정만 많아서 효율이 거지 같은데. 거길 나보고 가라는건가?"

"죄! 죄송합니다!"

서슬퍼런 눈으로 노려보는 미룡의 모습은 육중한 덩치의 사내도 절로 고개를 숙이게 했다.

진한 검은 머리에 웨이브진 머릿결.

거기에 코발트 블루의 브릿치가 들어간 중국 미녀 미룡은 이곳의 자랑이자 영웅이었다.

"미룡님이 요새 더 빡세지셨는데."

"중국의 던전이란 던전은 전부 깨부수시잖아..."

"듣기로는 다른나라 랭킹 1위들과 연락이 닿았다던데... 그거 때문에 자극 받으신 게 아닐지."

쿵.

"쓸데없이 속닥거리지마."

"죄송합니다!"

팔짱 낀 미룡은 가늘고 긴 꼬리로 바닥을 내려쳤다.

'이게 정상이지.'

모두가 자신을 두려워하고 자기 말에는 고개부터 숙이는 게 옳다.

그런데.

이 자식들은 그렇지가 않다.

[한국-데몬시드 Lv.5]

-개새끼도 아니고 조용히 좀 해라.

[러시아-가면소드 Lv.6]

-미룡아 일로와봐, 눈 속에 파묻어 줄테니까. 네 얼굴 그대로 포로 떠서 가면으로 쓰고 다녀줄게.

[한국-데몬시드 Lv.5]

-말이 없군. 미룡. 쫄?

[러시아-가면소드 Lv.6]

-쫄?ㅋㅋ

[중국-미룡 Lv.6]

-아 좀 닥쳐!

[러시아-가면소드 Lv.6]

-응, 원래 닥치라는 새끼만 닥치면 세상은 조용한 법이죠? 시드 ㅇㅈ?

[한국-데몬시드 Lv.5]

-ㅇㅈ

한마디를 지질 않는다.

레벨이 낮은 한국 놈도 그렇고 러시아 자식도 그렇고.

피식 웃음을 흘리다 화들짝 놀라 입꼬리를 매만진 미룡은 다시금 빠른걸음으로 걸었다.

"어, 어딜..."

"시간 아까워."

앞으로 한달.

그때까지는 최대한 강해져야 한다.

'한국놈 말이 사실인지는 모르겠지만...'

만약 사실이라면 더 강해져야 한다.

퀘스트 보상. 차등 지급되는 헤일로와 국가 단위의 보상은 반드시 1위를 차지해야 하니까.

앞으로 한달.

그때까지 시간을 허비할 수 없다.

'한달 뒤면 이 자식들도 보겠지.'

어디 한번, 그때도 저렇게 주둥이를 놀릴 수 있을까.

슬그머니 올라가는 입꼬리를 다시금 손으로 눌러 내린 미룡은 급하게 다음 사냥터로 향했다.

*

레이드 채팅창을 끄고 레아가 삶앙온 옥수수를 와구와구 먹었다.

"옥수수 맛있네."

데몬 스파이더로 만든 열매.

옥수수를 쪄서 먹는데 맛은 그냥 옥수수 맛이었지만 감칠맛과 구수함이 장난이 아니다.

역시 악마의 열매라는걸까.

일반적인 옥수수보다 맛과 향이 최소 4배 정도는 진했다.

"정말로요! 삶기만 했는데 이렇게 맛있다뇨! 이건 혁신이에요!"

"그런 말은 또 언제 배웠대."

"재밌는 책이 많아서요. 헤헤."

"옥수수수염으로 옥수수 수염차 끓여 먹어도 좋겠네."

"그런게 있어요?"

"응. 나름 맛있어. 옥수수수염은 버리지 말고 따로 모아놓자."

"넵!"

전기도 끊기고 인터넷도 안 되다보니 즐길거리가 썩 많지 않은 세상이 됐다. 그러니 먹을거리라도 다양하게 하는 게 맞다.

옥수수수염은 차로 끓여 먹으면 썩 괜찮으니 모아둬서 나쁠 건 없겠지.

"옥수수가 이렇게 맛있는 건 또 처음 알았구먼. 아주 맛이 좋아."

브란스도 좋아한다.

곁에 앉아서 먹고 있는 그램도 기분이 좋은 걸 보니 맛있나보다.

그건 그렇고.

"용장이 발휘됩니다."

"시야가 0.002 상승합니다."

"민첩이 0.002 상승합니다."

"민첩의 상승이 실패합니다. 순수 민첩의 능력치가 너무 높습니다!"

민첩이 오르는 건 막혔지만 그건 내 민첩이 너무 높아서다.

그걸 배제한다면 확실히 데몬시드+2의 효과는 대단했다.

악마의 잠재력.

내제되어 있던 힘을 열매로 끌어낸다. 그게 바로 데몬시드+2의 힘이다.

본래라면 민첩이 조금 오르고 말았을 데몬 스파이더에 시야라는 세부 능력치까지 오르니 말이다.

필수는 아니지만 시야가 올라서 나쁠 건 하등 없다.

난 애초에 장거리에서 투창하는 걸 좋아하기도 하니 말이다.

"시야가 좋아서 나쁠 건 없지."

건강 능력치가 높아지기 시작할 때부터 청각과 시각적인 전반적인 신체 부분 능력이 크게 상승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큰 폭으로 오르지는 않았다.

특히 시력.

시력은 건강 스탯이 오른다고 해도 한계가 있었는데 역시 시야라는 세부 능력치로 지정되어 있었기 때문인 듯 했다.

아마 청력도 그렇지 않을까 싶다.

"늙은이라 눈이 침침했는데 앞으로 눈 걱정은 안 해도 되겠어!"

"공짜는 아닙니다만."

"쯧. 귀공은 너무 욕심이 많군. 사내가 이런 사사로운 거에 하나한 신경쓰면 큰일을 못하는 법이네!"

"제게는 사사로우나, 다른 이에게는 아니니까요."

"끄응, 그건 또 맞는 말이로군. 뭐 부탁할 게 있으면 얼마든지 하게. 현자의 호의를 얻는 건 어려운 법이니 귀공은 크게 기뻐해도 좋네!"

장난반 진심반이다.

하지만 별로 걱정하지는 않는다.

브란스는 일부 아이템의 속성을 개변시키는 기술을 지녔으니까.

네피림이기도 하고, 뭣하면 대장간에 레아랑 같이 보내서 일을 돕게 할수도 있다.

'대장간 옆에 좌판 하나 차려서 물건 고쳐주면 떼돈 벌지도 모르지.'

그도 서서히 금화의 소중함을 익혀가고 있으니 곧일지도 모르겠다.

"그건 그렇고 아시겠습니까?"

"녹용 말인가?"

"예."

기시기시의 녹용.

기왕에 구한 물건이다.

적혀진대로 배합법을 알 수만 있다면 먹어보고 싶다.

어떤 효과를 주는지 궁금하니까.

이 부분은 미룡과 가면 놈한테도 얘기를 꺼낸 적이 있는데, 그들은 녹용을 줍지 못했다고 했다.

"흰숲의 현자라 불리며 온갖 것의 지식을 습득한 나일세."

"그러니까. 아시냐고요."

"드래곤의 심장, 가고일의 태생. 깊숙한 심연의 괴물까지 흰숲의 현자인 나는 모르는 게 없지!"

"아시냐고요."

"...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네."

모른다는 뜻이었다.

솔직히 큰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특별한 배합법이라는 건 왠지 쉽게 알아낼 수 있을 거 같지는 않았다.

"사실, 녹용 하나만 달랑 던져주고 배합법을 알아내라는 게 말이야, 방귀야. 이게 무슨 말이라도 되느냐 이 말일세!"

"현자시잖아요."

"그러니까! 아무리 현자라도 없는 지식에 대한 부분은 찬찬히 시간을 들여 조사를 해봐야 한다는게지!"

요즘 들어 화가 많으시다.

너무 들들 볶았나?

"옥수수 더 드시고 찾아주십쇼."

"크흠, 그리 정중히 부탁한다면 내 한번 방도를 찾아봄세."

"... 네."

그래도 현자다.

힌트라도 알아내겠지.

그보다는 푸리린의 고추.

아니, 열매의 확인부터다.

「빛나는 푸리린의 열매」

물뿌리개의 은정을 자그마치 서른개나 소모해서 얻어낸 열매다.

덕분에 물뿌리개의 물은 5개밖에 남지 않았지만 정말 오랜만에 찾아온 빛나는 열매이기에 후회는 없었다.

"빛깔이 고와보이는군."

"이건 안됩니다."

"누굴 도둑놈으로 보는가? 나도 염치라는 게 있는 놈일세! 그리 귀해보이고 대단해 보이는 열매는... 흠, 나도 한입만 먹어보면 안되나?"

"안됩니다."

"매정하긴."

자꾸 눈독 들인다.

은은하게 빛나는 풋고추를 보노라면 마치 보물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얼른 한입에 씹어먹었다.

아삭!

"에잉."

맛은 알싸하면서 코끝이 저리다.

고추랑 와사비랑 같이 먹은 느낌.

썩 나쁜 맛은 아니다.

맵기도 적당하고.

하지만 단독으로 먹기에는 조금 부담스러운 맛이기는 하다.

고추라는 거 자체가 요리에 곁들여 먹기 좋으니 어쩔 수 없겠지.

맛은 중요하지 않다.

효과가 중요한거니까.

"행운이 깃든 열매를 취했습니다!"

"용장이 발휘됩니다!"

"스킬 '클루트'를 배웁니다!"

"명중이 +1 상승합니다!"

"직감이 +1 상승합니다!"

'상태창 한번 볼까.'

『이화성』

「데몬시드 Lv.5」

「카탈린의 감전 Lv.4」

「생명력」 – 1060/1060 (+200)

「마나」 - 1140/1200 (+80)

「능력치」

근력 – 44 (+14)

민첩 – 36 (+4)

건강 – 43 (+14)

마력 - 60 (+5)

강골 - 21

「세부 능력치」

명중률+4 시야+5▲ 야간시야+3 직감+1▲ 방어력+80 마나재생+10 번개내성+25% 냉기내성+5% 독내성+5% 저주내성 +5% 화염내성 +1% 화염피해 +1%

직감은 역시 세부 능력치로 갔다.

말인즉슨, 레벨업해도 직감은 올릴 수 없다는 말이었다.

'그냥 능력치 쪽으로 갔으면 쉽게 올릴 수 있었을텐데.'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딱히 느껴지는 건 없네."

직감이 생겼다고해서 아직은 수치가 1이라 뭐가 느껴지지는 않았다.

사실 정확한 사용법도 모른다.

전투에서 쓸만한 능력치인지 아니면 실생활에서 쓰이는건지 말이다.

이건 시간이 해결해 줄 일이었다.

"그것보다."

아주 오랜만에 악과를 먹어서 스킬을 얻었다.

클루트.

내가 알기로는 발굽을 의미하는 단어다. 악마나 사탄과도 같은 의미를 내포하는 단어. 푸리린에게 나왔으니 사슴의 발굽을 야기하는 거 같은데...

순간 기이한 느낌이 머릴 스쳤다.

"방금 뭐지?"

"왜 그러세요?"

"아니야."

뭔가 등줄기에서부터 머리까지 뭔가가 스쳐지나간 느낌. 그러면서 클루트의 예상 스킬이 떠올랐는데...

'이게 직감인가.'

아마도 그런 거 같다.

『클루트』

-어디든 박차고 오를 수 있다.

(소모 10)

간단한 설명.

하지만 그걸로 충분했다.

"잠깐 다녀올게."

"네? 갑자기 어딜요?"

"잠깐 시험좀."

탓!

바닥을 차니 순식간에 하늘로 도약했다. 여기까지는 내 민첩과 근력 효과로 인한 운동작용.

그리고 지금부터는 스킬이다.

"클루트."

팡!

공기를 차고 한번 더 도약한다.

팡! 팡! 팡!

그리고 몇번 더 허공을 발로 차서 도약하자 어느새 하늘 높이 솟았다.

불별도와 기부도.

그리고 다른 크고 작은 섬들까지 모조리 보일 정도로 높이 올라왔다.

"좋은데."

하루 횟수 제한이 있는 플라이를 사용하기가 부담스러울 때가 있다.

카이삭스의 표식은 마나를 너무 많이 잡아먹어서 난감할 때 쓰면 딱 좋은 녀석이었다.

"돌진은 변칙적인 움직임이 힘드니까. 클루트가 있으면 더 다양한 전투가 가능하겠어."

허공을 차서 도약할 수 있다는 건 꽤 매력적이다. 아마존이 가진 이중도약의 상위호환 스킬이 아닐까.

"역시 열매가 이렇게 나와줘야지."

데몬시드+2를 올린 게 정답이었다.

예전이었다면 스킬을 얻거나 능력치를 얻거나 둘중 하나였겠지만 지금은 둘 다를 얻을 수 있다.

이번에도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다.

띠링.

불별도로 다시금 착지하자 아마존에게 쪽지가 도착했다.

[엘프님에게로부터 메시지]

-창이랑 푸리린 수거 완료했어요.

"타이밍 딱 좋네. 나, 아마존한테 잠깐 다녀올게."

마침 아마존에게 줄 보상도 준비해둔 참이었다.

푸리린을 씨앗으로 만들어 합성시키고 심은 뒤, 아이템 강화만 하면 오늘치 할 일은 끝이었다.

클루트도 사용해볼 겸 얼른 다녀오려고 철원으로 가는 포탈을 열었다.

한데.

"저도 갈게요!!"

정신없이 옥수수 먹던 레아가 검을 들고 내 뒤를 쫓았다.

"금방 올건데?"

"그래도요! 제가 호위해드릴게요!"

"음... 그래."

그리고 잠시 뒤.

스릉-!

레아의 검이 아마존 파티에게 겨누어지기까지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미확인 스킬북 [1]

86화.

산처럼 쌓인 푸리린의 사체.

가지런히 모여있는 투창했던 창.

그 앞에서 레아의 검이 그들을 향한 이유를 설명하자면 지금으로부터 5분전으로 돌아가야만 했다.

5분 전.

난 열병의 투구를 뒤집어 쓰고 포탈의 서를 펼쳐 포탈을 열었다.

싸운 건 뇌창이지만 모아놓은 푸리린의 사체들을 씨앗으로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한 건 아마존에게 미리 말을 해 놓았으니 따로 걱정할 것도 없었다. 이제와서 내 정체가 사실은 데몬시드면서 뇌창이다라고 밝혀져도 딱히 문제될 건 없었으니까.

그리고 아마존 파티는 나름 랭커들이니까 할말도 많았다.

한달 뒤 일정이 잡혀진 군단장 레이드도 말을 해 두어야 했으니까.

"군단장?"

"푸르푸르?"

"북한...? 중국과 러시아?"

처음 내 얘기를 들은 이들의 반응은 당혹과 약간의 불쾌감이었다.

"데몬시드. 당신이 랭킹 1위라고는 하지만 왜 그런 중대사를 마음대로 정한거야?"

혼나비는 불쾌감을 내비쳤고.

"한달 뒤에 네 마음대로 카오스를 열어버린거나 다름이 없군. 그것도 북한을 괴멸시킨 놈들한테."

글로리안을 날개를 퍼덕이며 나를 비꼬았다. 아마존은 침묵했고, 드루이드는 미미와 함께 눈치만 살폈다.

"처음엔 2주 뒤였다. 내가 시간을 더 연장한 편이다만."

"그러니까! 왜 우리들한테 상의 한번 하지 않고 네 마음대로 정하셨냐고요 랭킹 1위! 너한테는 우리들 목숨이 장난이야?"

"혼나비 말에 동의해. 아무리 랭킹 1위라도 다른 사람들 목숨을 제멋대로 좌지우지할 자격은 없잖아?"

혼나비와 글로리안은 자신의 불만 사항을 그대로 전했다.

그들 입장에서는 썩 좋은 소식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하기사.

푸리린 한마리도 겨우 잡는 녀석들인데 그들과 전쟁을 하자고하니 저리 나올 수도 있겠지.

게다가 그들 말대로 누구 한명의 의사도 묻지 않고 독단으로 정했다.

충분히 불만을 표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내가 그럴 수 밖에 없었던 이유와 함께 퀘스트의 보상을 말한다면 저 불만도 금세 들어가겠지.

푸르푸르의 토벌 퀘스트에 불참할 순 없다. 군단장 토벌의 퀘스트 보상은 다른 것들과는 비교도 안될 정도로 대단했으니까.

이제 그걸 막 얘기하려는 찰나.

내가 예상하지 못한 게 있었다.

바로 레아의 반응이었다.

"당신들, 뭐가 그렇게 불만이죠."

스릉-!

순식간에 레아의 검이 아마존 일행을 향해 겨누어졌다.

'...얘가 왜이래?'

솔직히 내 반응은 이랬다.

평소 내가 생각하는 레아는 헤실헤실 잘 웃고 상냥한 여자다.

근데 지금 보여주는 모습은 금세라도 칼부림을 보일듯한 자세다.

'오늘따라 투구도 쓰기 싫다고 하더니 좀 이상하네.'

오늘 레아는 맨얼굴이다.

평소처럼 투구를 쓰지도 않았다.

붉은 머리는 질끈 묶어져 있는 상태였는데 그래서 그런지 여기사의 폼이 제법 난다.

"넌 뭐니?"

혼나비가 레아를 향해 묻는 순간, 글로리안이 허리춤에서 검을 뽑았다.

하지만 그때였다.

후웅-!!

그저 검을 겨누기만 했던 레아의 신형이 한순간 사라지더니 글로리안의 목 앞에서 검이 멈췄다.

"윽...!"

"당신들은 이곳의 싸움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아무런 도움이 되지도 못했다고 들었어요."

"뭐야?"

"하, 한 두마리 정도는 저희도..."

레아의 말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아무런 쓸모도, 도움도 안되는 주제에 뭘 따지는 거죠? 데몬시드께서는 당신들이 참가하지 않는다해도 아무 신경도 쓰지 않을 겁니다. 애초에 당신들한테 거는 기대가 전혀 없으시니까요."

그건 그렇긴하다.

참여는 강제가 아니다.

내가 강제할 수도 없고, 별로 그러고 싶지도 않다.

"제 검을 반응하지도 못하시는 분들이, 감히 따지고들 자격이 있다고 생각되지는 않거든요."

"너..."

일촉즉발의 상황.

본래라면 내가 나서서 중재해야 함이 옳지만.

'조금 더 볼까.'

솔직히 레아가 하는 말에 틀린 점이 있지도 않다. 그리고 여기 있는 랭커들보단 레아가 더 믿음직스럽기도 하고, 강하기도 더 강하다.

저들 넷이 덤벼도 레아 하나를 제압하기는 힘들겠지.

그리고 나도 조금 저들의 말에 언짢음이 있기는 하다.

'주제파악을 시켜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네.'

툭.

기시기시의 뿔 지팡이로 바닥을 한번 찍으며 거스트로 바람을 만들어내니 눈싸움하던 이들의 시선이 내게로 옮겨왔다.

"불만을 표하려면, 자격을 보여라."

말하자, 레아의 입꼬리가 조금 꿈틀거렸고 아마존들의 표정이 구겨졌다.

"한꺼번에 덤비셔도 상관 없어요."

레아가 앞으로 나서며 두 손으로 검을 쥐었다. 한꺼번에 덤벼도 좋다 했지만 자존심 때문인지 글로리안만 나섰다.

"아무도 나서지마! 방심한거야. 나 혼자서도 충분해."

휘어진 곡도를 손에 쥔 글로리안을 날개를 펄쳐 하늘로 날아올랐다.

두 손에 쥔 쌍곡도를 교차시킨 채 수직 낙하했다.

"후회하지마라! 난 여자라고 봐주는 머저리들이 아니니까!"

날개를 이용한 수직낙하.

레아는 때에 맞춰 검을 휘둘렀으나.

그건 페이크.

레아의 코앞에서 일순 날개를 펼쳐서 정지 비행한 순간 글로리안의 곡도와 함께 깃털이 난사됐다.

시간차 정지로 상대의 공격을 피하고 카운터를 먹이는 글로리안의 경험이 돋보이는 한수였다.

그러나.

'레아도 손에 힘이 빠져있네.'

검을 휘둘렀지만 손속에 힘을 온전히 쏟지는 않았다.

한번 휘둘러진 검이 제약없이 다시금 반대로 휘둘러졌다.

카앙-!!

글로리안의 곡도와 부딪친 레아의 검에서 불티가 화려하게 튀었다.

푸푸푸푹-!

깃털은 터프하게 피하지 않았다.

'아플텐데.'

뻐억-!!

"끄억!"

글로리안의 얼굴에 냅다 주먹을 꽂아버리자 승부는 끝.

콰당탕 콰앙-!!

우지끈! 쿠구궁!

주먹 한대 맞고 튕겨나가더니 기어코 나무 몇그루를 쓰러뜨리고 나서야 글로리안이 땅에 떨어졌다.

'개 아프겠다.'

보기만해도 얼굴이 구겨질 정도로 처참하게 당했다.

반면 레아는 자체 회복 스킬인 피의 축복과 흡혈 때문인지 아파 보이지도 않았다. 타이탄도 활성화 했는지 풍기는 기세가 더욱 날카롭다.

"다음 오세요."

이제는 검도 필요 없겠다는 듯 지면에 검을 쑤셔박았다.

같은 여자가 봐도 반할 거 같은 저 늠름한 모습.

기사의 표본이라 해도 좋을 정도다.

물론 그 뒤의 싸움은 뻔했다.

혼나비와 드루이드는 자신의 모든 스킬을 동원했지만 애초에 신체 능력 자체가 다르니 무엇 하나 제대로 통하지 않았다.

그들보다 몇배는 빠르고 몇배는 강한 존재에게 잡스러운 기술이 통할 리 없지 않은가.

드루이드는 원펀치에.

혼나비는 서네번 투닥이고 복부에 주먹이 꽂히고 리타이어 했다.

'이건 좀 볼만하네.'

나름 볼만한 건 아마존이었다.

역시 활을 쓰는 사람답게 주변의 지형지물을 이용했다.

나무 뒤에 엄폐해서 저격하고, 폭발하는 화살로 폭연을 만들어내서 은신하거나 거리를 유지하며 싸웠다.

하지만 결국 따라잡히고 승패는 당연히 레아의 몫으로 돌아갔다.

"끝났어요."

"기뻐 보이네."

칭찬해달라는 것처럼 달려왔다.

잘했다고 어깨를 두들겨주니 평소의 해맑은 레아가 나타났다.

"다 하셨어요?"

"응."

레아가 싸우는 동안 푸리린들은 모두 씨앗으로 바꿨고 창도 회수했다.

할 일도 다 했으니 돌아갈 시간.

"고생한 보상이다."

아마존들에게 악과 한 세트씩을 건냈다. 근력, 민첩, 건강을 올려주는 악과를 열개씩. 총 서른개를 한 세트로 한사람씩 건넸다.

"이렇게 많이 받아도 되는건가요?"

"강철에게도 말할거지만 아마존, 네게 미리 말하는 게 좋겠지."

"네."

"강철과 함께 협회를 만들어라. 정부와도 우호 관계를 유지해서."

"슬슬 때가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썩어도 준치라고 정부가 간간히 보내오는 정보는 썩 쓸만하다.

다른 나라의 현황에 대해 그나마 얻어낼 수 있는 유일한 정보니까.

"협회 소속 네피림이 되면 이 열매를 일정 주기마다 지급할거고, 그들이 각각 지역에서 단체를 꾸려서 악마의 숫자, 동태, 던전 등의 정보를 알아오는대로 금화, 또는 이 악마의 열매로 보상을 지급할거다."

그동안은 썩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지만 이제는 아니다.

성장의 필요성을 느꼈다.

지금의 한국은 중구난방이고 하나로 취합되지 못한 느낌이 강하다.

이 또한 가면과 미룡과의 대화에서 힌트를 얻었다.

때때로 쓸모 있는 대화를 하기도 하는데 던전이나 관련 악마에 관해서였다. 대부분은 자기자랑에 불과했지만 아무튼 미룡과 가면은 자기가 발로 뛰어서 싸우지 않는다는 점이다.

단체를 만들고 그들이 가져오는 정보를 적극활용해서 히든 던전이나 악마들이 많은 곳을 토벌해서 경험치를 획득한다는 것이었다.

'원래라면 굳이 그렇게까지 해야하나 싶었지만...'

한달 뒤, 군단장 레이드.

그리고 세달 뒤 나타날 카오스를 대비하고자 한다면 이게 맞다.

그게 아니라도 경쟁자가 생겼다.

심지어 나보다 레벨도 높다.

그들은 말했다.

시간이 지난다면 살아남은 나라들이 통합될 여지가 충분하다고.

세계 통합 랭킹도 나오지 않을까.

관련 보상도 주어질테고.

'통합 랭킹... 뒤쳐질 수는 없지.'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단체를 만들고 쌓아 올리면 된다.

체계를 만들고 효율을 높인다면 따라가지 못할 이유가 없다.

"알겠습니다. 협회 관련해서는 저와 강철군주가 진행할게요. 말씀하신 군단장 레이드건도 알리겠습니다."

아마존이라면 알아서 하겠지.

알겠다 끄덕이고 포탈을 열어 불별도로 돌아왔다.

"화성님."

"응?"

"제가 실수한 건 아니겠죠?"

"아냐, 잘했어."

힘에서 차이가 나니, 당연히 우위를 가져가는 게 맞다.

조금 난폭한 방법이기는 했지만 지금과 같은 세계에선 간단하면서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도 했다.

'레아를 다시보게 되기도 했고.'

능력치가 높다고해서 싸움을 잘하게 되는 건 아니다. 힘이 강하고, 몸이 날렵하고 체력까지 강한건 어디까지나 전투의 승리 확률이 높은 것 뿐.

전술이나 무기 차이.

또는 수싸움에서 피지컬의 이점은 사라지기도 한다.

'강점이라면 침착하고 감정에 지배되지 않는다는 점이려나.'

시작은 급발진이었지만 그것과 달리 레아는 성급하게 싸우지 않았다.

글로리안과 싸울 때도 침착하게 상대의 수를 기다렸고 언제든 역습을 가할 때를 노렸다.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했기에 놈의 깃털을 그냥 맞았다. 침착하게, 때론 터프하게 피할 건 피하고, 맞을 건 맞으며 확실하게 싸웠다.

이건 누가 가르쳐줘서 되는 게 아니다.

물론 레아가 지닌 기프트가 회복에 특화된 부분이라 담대할 수 있던거지만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배짱과 판단력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전법이다.

'글로리안의 깃털에 독이 있었다면 무모한 판단이었겠지만.'

하지만 독 내성을 최우선적으로 기르고 있으니 상관은 없을거다.

"아차! 저녁 준비할게요!"

"그래."

저녁 준비를 하러가는 레아를 바라보고는 나도 준비를 시작했다.

씨앗의 합성. 그리고 무기 강화.

미루고 있던 상점 스킬북을 구입할 시간이었다.

[나만의 상점]

-22일 1시간 5분 남음.

[브륄레의 쿠키x10] - 100금

[붉은 성수x100] - 500금

[푸른 성수x100] - 2,000금

[미확인 아뮬렛] - 6,475금

[미확인 팔찌] - 15,367금

[미확인 스킬북] - 1,000,000금

지난 일주일.

악마 사냥으로 얻은 돈.

리벨롬으로 망치 두들겨서 번 돈.

그리고 레아가 음식 장사해서 얻은 돈이 내 주머니를 두둑하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소지금 1,167,503 금화」

재산 랭킹은 당연히 1위.

하지만 다시 내려갈 때가 왔다.

"쓸모 없는 거 주기만 해봐라."

그럴 일은 없겠지만.

"미확인 스킬북을 구매하셨습니다."

"1,000,000 금화를 소모합니다."

"감정 스크롤을 사용합니다."

"숨겨진 이름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감정 스크롤이 더 필요합니다!"

"오..."

감정 스크롤이 더 필요하다?

이런 적은 처음이다.

쉽게 이름이 드러나지 않으니 더욱 기대감이 상승한다.

대체 뭐길래 이렇게 비싸고 이렇게까지 까다로운 걸까.

"감정 스크롤은 차고 넘친다고."

일주일에 8개씩 공짜로 들어오는 게 바로 감정 스크롤이다.

몇달 간 쌓여만 있는 숫자는 서른개가 넘어가는 숫자.

두려울 것도 없었다.

"감정 스크롤을 사용합니다."

"숨겨진 이름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감정 스크롤이 더 필요합니다!"

"감정 스크롤을 사용합니다."

"숨겨진 이름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감정 스크롤이 더 필요합니다!"

"감정 스크롤을 사용합니다."

"숨겨진 이름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감정 스크롤이 더 필요합니다!"

"감정 스크롤을 사용합니다."

"숨겨진 이름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감정 스크롤이 더 필요합니다!"

.

.

.

"미친?"

스크롤을 스무개나 썼을 때.

"감정 스크롤을 사용합니다!!"

"미확인 스킬북의 숨겨진 이름이 드러납니다!"

"경고!"

"결코 드러나선 안될 이름이 드러나려 하고 있습니다."

"일부만 드러납니다."

"심연에서 움직이지 못하는 자가 가늘게 눈을 뜹니다."

"????의 군주가 흥미로운 눈으로 당신을 주시합니다."

그리고 이내.

스킬의 이름이 드러났다.

미확인 스킬북 [2]

87화.

"'가장 고결한 자'가 당신에게 적개심을 품었습니다."

"'수없이 베푼 자'가 당신의 욕심에 눈살을 찌푸립니다."

"'끝끝내 되참은 자'가 이번에도 다시 한번 참기로 합니다."

"'쉬지 않는 자'가 모래를 퍼먹으며 쉼 없이 붓을 놀립니다."

"'모아두는 자'가 자신의 금화를 튕기며 껄껄 웃습니다."

"'고개 숙인 자'가 눈물 흘리며 자신의 죄임을 고백합니다."

[p□□h■b□◆] (s???)

-Me□§□ □□‡o◆§◆iti o■■i□m a§ni◆n□◆u■ o□◆r■o □◆t.

"대체 뭐가 뭔지..."

감정 스크롤을 스무개나 썼는데 대체 뭐가 먼지 모르겠다.

일곱 군주는 또 뭐가 메시지 창에 나타난 저놈들은 또 뭔지.

군주라 하면 악마인건가.

근데 악마가 왜 시스템 창에 나타나는건지 이해하기 힘들다.

"'미소짓는 자'가 비웃습니다."

"미소짓는 자의 호의를 받습니다."

"스킬북의 이름이 당신에게 알맞는 형태로 변화합니다."

[판포비아] (???)

-잊혀진 미지의 근원. 미지의 주인. 현상의 막내이며 죽음과 한없이 가깝고 생명과 스스럼이 없으나 그것마저 두려울 수 있는 것의 파편.

스킬북이라고 쓰여져 있었지만 이 책에는 무엇도 쓰여져 있지 않다.

그저 하나의 파편.

아니, 파편이라 부르기도 민망할...

"털... 머리카락인가."

짧다.

짧고 직선이 아니라 유려한 곡선을 그리고 있는 검은 털이다.

'속눈썹인가.'

그때였다.

돌연 속눈썹이 저 혼자 두둥실 떠서 내 눈에 찰싹 달라 붙었다.

"윽! 뭐야!"

눈속으로 들어갔나 싶었지만 아니다. 눈에 이물감은 없다.

눈을 비벼봤지만 속눈썹은 온데간데 없어졌고 새로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만이 그것의 행방을 알려줬다.

"스킬'판포비아'를 익혔습니다."

"공포내성 100%를 얻습니다."

"일정 수준의 공포는 당신에게 위해를 가하지 못합니다."

"수식언이 크게 변화합니다!"

"푸르게 불타는 영혼의 불Lv.4가 영혼에 각인된 공포의 불로 바뀝니다."

"영혼에 각인된 공포의 불의 레벨이 크게 상승합니다."

"경고!"

"수식언을 지닌 존재의 격이 너무나도 낮습니다!"

"영혼에 각인된 공포의 불 Lv.4가 Lv.5로 상승합니다!"

주르륵 나열되는 시스템 메시지.

하지만 난 신경 쓸 수 없었다.

빛 한점 들지 않는 어둠.

그곳에 등 돌린 채 흔들리는 형상의 무언가가 보였기 때문이다.

우는 것 같기도, 화내는 것 같기도 한 그것은 수없이 흔들렸다.

아지랑이처럼 흔들리며 계속해서 모습이 바뀌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모습의 괴물이었다가 부패하여 살이 썩고 녹아내려 뼈만 남았다가도 어느 순간 여인이 되었고 임산부가 되었으며 피칠갑한 기사가 되고 돈많은 노인이 됐다.

"미지, 그렇군."

한순간에 깨달았다.

판포비아.

그것은 미지에 대한 공포.

내 눈에 보이는 것.

그건 모든 공포의 집약체.

공포의 근원.

생명의 시작과 함께하며 스스럼이 없고 죽음과도 한없이 가까운.

"공포."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 속.

내게 등 돌리고 있는 저것.

무엇이라 정의할 수 없는 그것의 정체는 바로 공포였다.

-네 공포는 무엇이냐.

노인의 음성이었다가도 여인으로 바뀌고 이내 괴물처럼 바뀌는 음성의 주인이 내게 물었다.

괴기스럽다.

듣는 것만으로도 오한이 찾아오고 전신이 떨리는 두려운 음성.

하지만 언젠가 들어본 것처럼 그리운 음성이기도 했다.

나의 공포.

그것이 무엇일까 생각해보던 찰나.

-믿음의 소실이구나.

놈은 너울거리는 형상 속에서 긴 혀로 입술을 핥으며 말했다.

내가 느끼는 공포.

바로 믿음의 소실.

의심, 또는... 배신.

-배신 따위를 두려워하는 가. 한없이 빈약한 마음가짐이다.

배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도 있나. 라며 따지려 했으나 말이 나오지 않았다. 몸이 굳었다.

입술이 얼어붙은 것처럼 좀처럼 뜨여지지 않았다.

-나약한 범부, 사소하고도 자잘한 것 모두 두려워하는 머저리, 그렇기에 마음에 든다.

-너의 공포를 내가 가져가마.

-이제 평생을 겁에 질려 살 것이다. 너의 공포를 내가 쥐었으니.

-경외의 겁쟁이가 되거라. 되어서... 공포를 퍼뜨려라.

스르륵.

순간 너울거리던 풍경이 사라졌다.

"허억!!"

"스킬, '판포비아'의 술식이 고정됩니다. 형상이 고착됩니다."

[판포비아] (sole)

-미지의 공포가 항상 당신의 곁에 너울거립니다. 격이 낮은 상대는 이유 없이 당신을 두려워 합니다.

눈이 마주친 자는 자신의 이름을 1분간 망각하게 합니다.

(사용 후 자신이 가진 하나의 능력치를 랜덤하게 10% 소멸시킵니다.)

놀라서 헐떡거리는 와중에도 스킬의 소모 자원을 보고 두번 놀라 자빠질 뻔 했다.

"능력치의 10%를 소모? 미친!"

말인즉슨, 이 스킬을 쓸때마다 능력치의 10%가 소멸한다는 뜻이었다.

랜덤으로 하나의 능력치가 지닌 10%가 소멸하다니!

뭐 이런 미친 스킬이 다 있을까.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보면 그만큼 치명적인 스킬이라는 뜻이기도 했다.

"마력만 제외하면..."

복구할 수는 있다.

어찌보면 나를 위한 능력이다.

지금은 아니지만 마력이 상승하는 열매를 만들어낸다면 능력치의 소멸이라는 게 영구적인 손해를 끼치는 건 아니게 될테니까.

'근데 이거 정말 좋은 거 맞나.'

스킬을 익혀서 감은 온다.

어떤 식의 능력이고 어떻게 사용해야 큰 피해를 입힐 수 있는지.

판포비아.

미지가 지닌 공포의 주인.

그가 건넨 하나의 파편.

"미지의 공포가 그런거였나."

머릿속에 파고든 지식이 그리 말하고 있었으나 영 이해가 되진 않는다.

판포비아는 상대의 이름을 망각하게 하는 스킬.

'기억을 잃는다는 뜻인가?'

모르겠다.

이름을 잃는다는 것.

그게 악마에게 있어서 어떤 의미를 가지고 있는 지 나는 모르니까.

이게 전투에 도움이 될지 말지도 잘 모르겠고 무슨 공포인지도 모른다.

솔직히 능력치 중 하나가 랜덤하게 10퍼센트 소멸한다는 사실이 내게 더 공포였다.

"평생 겁에 질려 살거라고 하더니 이런 거였나... 개자식."

무서워서 스킬도 못 쓰게 만들다니.

"이럴거면 내 100만금 돌려줘!! 아까워 죽겠네!"

자주 쓸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온갖 폼이란 폼은 다 잡으면서 난리더니 결국 뭔지도 모를 걸 다 주고.

물론 마음에 드는 것도 있다.

스킬이 지닌 기본 패시브 능력.

『미지의 공포』

-격이 낮은 상대는 이유 없이 당신을 두려워 하게 됩니다.

모습을 제대로 식별하지 못합니다.

판포비아가 지닌 기본 패시브 능력 중, 하나가 내 모습을 제대로 식별하지 못하는 데에 있다.

나와 비슷한 격.

그러니까 레벨인 녀석들은 알아보겠으나 낮은 사람들은 내 얼굴을 제대로 보지도 못한다는 뜻이었다.

데몬시드와 뇌창, 그리고 리벨롬으로 1인3역을 할 때가 있는 나로서는 썩 마음에 드는 능력이었다.

패시브는 능력치가 소멸하면서 쓰여지는 것도 아니니까.

"이참에 카오스 상점에 있는 엘릭서도 전부 사버려야지."

판포비아가 조금 애매하다.

돈도 엄청 아깝지만 어쪄랴.

이미 벌어진 일이고 미룰 수도 없는 일이다. 제어할 수 없는 일에 골머리 싸매봤자 의미도 없는 법이다.

이거 말고도 강해질 수단은 아직도 많이 있다.

카오스 상점의 엘릭서.

그동안 돈 아까워서 사지 않았다.

애초에 1회 제한이 있는 녀석들이라 나중에 사야지 했는데 지금 그냥 다 사버려야겠다.

카오스 상점은 딱히 갱신 날짜도 없으니 아마 서비스 같은 개념이겠지.

"마력의 엘릭서를 구매합니다."

"근력의 엘릭서를 구매합니다."

"민첩의 엘릭서를 구매합니다."

"건강의 엘릭서를 구매합니다."

"6000 금화를 소모합니다."

「소지금 158,170 금화」

"바로 다 먹자."

"마력의 엘릭서를 사용합니다."

"마력이 +3 상승합니다."

"근력의 엘릭서를 사용합니다."

"근력이 +5 상승합니다."

"민첩의 엘릭서를 사용합니다."

"민첩이 +5 상승합니다."

"건강의 엘릭서를 사용합니다."

"건강이 +5 상승합니다."

"꺼윽, 우윽. 상태창..."

『이화성』

「데몬시드 Lv.5」

「카탈린의 감전 Lv.4」

「생명력」 – 1060/1160 (+200)▲

「마나」 - 1200/1260 (+80)▲

「능력치」

근력 – 49 (+14) ▲

민첩 – 41 (+4) ▲

건강 – 48 (+14) ▲

마력 - 63 (+6) ▲

강골 - 21

「세부 능력치」

명중률+4 시야+5 야간시야+3 직감 +1▲ 방어력+80 마나재생+10 번개내성+25% 냉기내성+5% 독내성+6%▲ 저주내성 +5% 화염내성 +2%▲ 공포내성 +100%▲

『수식언』

[영혼에 각인된 공포의 불 Lv.5]

「기프트 스킬」

[데몬시드+2] [제물성장] [페스틱사드] [씨드라] [아토믹시드]

[카탈린의 감전] [카탈린의 증폭] [카탈린의 벼락] [카탈린의 뇌격]

「스킬」

[워터볼] [투척] [돌진] [레인스톰] [블리자드] [리버슬로우] [용장] [브램블리] [카이삭스의 초급 창술] [카이삭스의 표식] [거스트] [레그릿지] [클루트] [판포비아]

「장비 스킬」

[볼트(2)] [에너지쉴드(1)] [피조물의 영광(1)] [플라이(3)] [내다보는 눈(1)] [지독한 열병] [라이트닝 오브(1)]

"화려하다 화려해."

근, 민, 건강 능력치가 모두 순수하게 30 이상을 찍었다.

덕분에 현재 가지고 있는 열매로는 건강을 제외하고는 오르지 않는다.

"근력이랑 민첩의 상위 씨앗을 찾기는 해야지. 푸리린이 주겠거니 했는데 아니었으니..."

관찰자가 정리한 데몬 공략집 보면서 씨앗으로 만들지 않은 악마들을 사냥하러 가야할지도 모르겠다.

푸르푸르 레이드까지 한달.

그때까지 최대한 강해져야한다.

"관찰자라... 그러고보니 그 사람은 꽤 믿을만하지 않나."

은근히 날 많이 도왔다.

저번에 카오스때도 레아와 함께 푸른 성수를 정리해주기도 했고.

이래저래 사람들한테 도움이 많이 되는 사람이다.

커뮤니티의 네임드이기도 하고 그가 만든 악마 공략집은 참 다양한 것들이 모조리 기록되어 있다.

레벨, 스펙, 습성, 능력, 지형, 위치 등등 말이다.

능력은 심플하다고 쳐도 관찰자 자체가 하는 짓은 꽤 호감상이다. 그런 그가 사라진다면 나는 그렇다쳐도 많은 사람들이 불편해지지 않을까.

푸르푸르 레이드 때도 관찰자가 있다면 공략이 수월해질지도 모르고.

제 잇속만 챙기는 강한 놈보다는 확실히 관찰자를 키우는 게 널리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관찰자, 지금 뭐하고 있으려나."

이런저런 생각하며 나만의 상점에서 팔고 있는 '미확인 아뮬렛'과 '미확인 팔찌'를 사서 감정 해보려던 찰나.

강철에게 쪽지가 왔다.

[강철군주님에게로부터 메세지]

-뇌창! 큰일이다!

"뭐지."

이모티콘도 안 붙이고.

아마존과 협회 얘기가 제대로 안 됐나? 싶어서 답변하니.

[강철군주님에게로부터 메세지]

-일본 놈들한테 공격 당했어! 기습당해서 우리쪽 피해가 심각하다! 게다가 상위 랭커 몇몇이 잡혀가기까지 했어!

"일본 이 개새끼들이..."

[강철군주님에게로부터 메세지]

-잡혀간 랭커들 중에 관찰자도 포함되어 있는 걸 확인했어. 안될 말이지만 다른 랭커들은 그렇다쳐도 관찰자는 반드시 구해야 해. 힘을 빌려줘!

우릴 공격한 것도 열받는데 관찰자까지 납치? 절대 가만 있을 수 없었다.

"아니 근데 왜 납치를 했지?"

지옥석 때문에 기습한거면 굳이 납치할 이유는 없을텐데.

강철에게 그 이유를 묻자 답하기를.

[강철군주님에게로부터 메세지]

-세뇌의 기프트를 가진 놈이 일본에 있는 거 같다.

놈들은 또.

[강철군주님에게로부터 메세지]

-광산만이 아니라, 우리나라의 네피림까지 빼앗으려는 거 같아.

일본은 또 다시 우리의 것을 빼앗으러 찾아온 것이었다.

일본 1위 [1]

88화.

뜨거운 열기와 마그마가 부글거리는 지옥 광산.

그곳에 푸른 물결이 갈라졌다.

포탈이 열리자 나타난 것은 붉은 머리와 물소뼈를 뒤집어 쓴 한국 랭킹 1위의 데몬시드였다.

"상황은."

"... 데몬시드인가?"

"보면 모르나."

"가, 가면서 설명할게."

가볍게 1구역을 지나 거닐었다.

곡괭이 소리가 연이어 들리지만 이전과는 달리 쾌활하지가 않다.

뭔지 모를 모종의 불안감에 사로잡힌 채 이들의 눈빛이 흔들린다.

"당신도 알다시피 5구역을 우리는 베트남과 함께 차지하고 있었어. 그곳은 다른 지역과 인접한 곳이었고."

"알고 있다. 하지만 인접한 곳도 경쟁이 치열한 곳이라고 들었는데."

"맞아."

지옥석은 강화석으로 바꿀 수 있는 유일한 화폐가치를 지녔다.

덕분에 지옥석의 공급보다 수요가 훨씬 높은데 광산에 있는 지옥석의 수량은 풍족해도 한계가 있는 법.

"벌써 고갈됐다는건가."

"우리나라의 현 인구수는 많지 않아. 네피림만 특정했을 때. 하지만 다른 국가는 아니지."

현재 한국의 랭킹 순위는 총 삼백만이 안된다. 네피림의 수가 삼백만 언저리라는 것.

오천만명의 인구수였던 한국이다.

다른 국가는 어떨까.

"일본의 네피림은 천만이라더군."

숫자 자체가 다르다.

그러니 고갈되는 자원의 속도도 우리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었다.

"우리도 곧인가?"

"그리 멀지는 않았겠지."

우린 아직 여유가 있다고해도 그것마저도 시간 문제이긴 하다.

시시각각 자원은 고갈되고 있다.

고갈되는 자원을 충당하려면 두가지 방법이 존재한다.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

이곳의 벽은 허물어진다.

새로운 초대형 광맥이 나올 때까지 길을 개척하면 된다.

물론 그게 언제 나올지, 어디에서 나올지는 완벽한 미지수이다.

그렇다보니 당연히.

"침략하는 게 빠르겠어."

"그렇지."

길을 내는 건 어렵다.

많은 인력과 시간을 필요로 한다.

하지만 네피림들은 그렇게 하릴없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다.

지옥광산에만 시간을 할애할 수는 없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강해져야 했고 강해지기 위해서는 악마들을 쓰러뜨려야 했다.

광산에만 매달려 있어서는 강해질 수 없으며 금화도 벌 수 없다.

그렇기에 공격해온 것이다.

일본이.

"피해는 어떻지."

"5구역에서 채굴하고 있던 자들 절반이 죽고 절반이 다쳤고, 그중 일부가 포로로 잡혀갔다."

부상자 182명.

사상자 211명.

포로 40명이 잡혀갔다.

"베트남측의 피해는?"

"그쪽도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아."

5구역은 베트남과 공동으로 지옥석을 채취했던 곳이다.

혹시라도 베트남의 피해가 적다면 의심해볼 여지가 있겠으나, 아직까지는 아니었다.

물론 의심의 여지는 남겨둬야겠지.

"만트라는?"

"먼저 기다리고 있어. 그는 이렇게 될줄 알고 있었다는 반응이던데... 하지만 생각보다 이르다고 하더군."

"하긴."

예상은 했다.

다른 곳에서 우리쪽 광맥을 노리고 공격해올 거라는 걸.

하지만 생각보다 시기가 일렀다.

'적어도 카오스가 다시 터지기 전 쯤에 공격 당하지 않을까 했는데...'

카오스를 대비해 전력을 강화하기 위해 공격하지 않을까라 예상하기는 했지만 벌써 공격할 줄은 몰랐다.

"데몬시드님!?"

"아마존."

헐레벌떡 달려오는 아마존의 모습과 함께 그녀가 급보를 전했다.

"일본이 연락해 왔습니다."

"뭐라고 했지?"

"광맥 둘을 넘겨주면 포로들을 안전하게 넘겨주겠다고 했습니다."

광맥 둘.

"말도 안되는 소리야. 우리가 이 광맥을 어떻게 얻어냈는데!"

강철은 크게 소리치면서 날 슬쩍 흘겨봤다. 도움이 없었다곤 못하겠지만 이 광맥들을 차지한 건 대부분 내가 한 일이긴 하다.

그래서 자기가 말해놓고도 민망해서 쳐다본 거겠지.

어쨌든 간에 골치가 아파졌다.

"일단 포로부터 구하는게 급선무네."

"네, 맞습니다."

"그렇지."

포로.

포로가 잡혀 있는 게 문제였다.

'포로만 없다면 문제될 건 없는데.'

포로만 없다면 쓸어버릴 수 있다.

하지만 포로가 있다.

게다가 그 안에는 관찰자가 있다.

관찰자는 중요 인재다.

그를 잃는 건 뼈 아픈 손해이니 반드시 구해야 한다.

"광맥을 넘겨주는 쪽은?"

"그것도 하나의 방법이기는 하지만 저들이 약속을 지킬지는 모르는 일이라서 확단하기 어렵습니다."

"일본이다. 그놈들이 약속을 지킬거라고 생각하나?"

둘다 부정적이다.

광맥을 일단 넘겨주고, 포로를 송환 받은 이후에 다시 빼앗으면 될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이들의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우리끼리 정할 일도 아니다. 베트남 놈들도 피해를 입었으니까."

문제 해결을 논의하기 위해서는 그들과 함께하는 게 맞다.

복수를 하든 뭘 하든 베트남도 같이 피해를 입었으니까.

빠른 걸음으로 4구역까지 도달하자 베트남 네피림들과 랭킹 1위 만트라가 함께 기다리고 있었다.

"당신이 랭킹 1위인가."

"... 그래."

생각해보니 만트라가 만난 건 뇌창이었지 데몬시드가 아니었다.

아까 강철도 그랬고 아마존도 그랬지만 사람들의 반응이 조금 이상했다. 마치 흡사 괴물을 보는 듯한 표정으로 날 바라봤다.

'판포비아 때문인가.'

나보다 격이 낮은 상대는 날 두려워하게 될거라고 했다.

아마 그 때문이겠지.

격의 차이라는 건 아마도 레벨의 차이를 말하는 거 같고.

그래서 만트라는 그렇게 겁내지 않지만 다른 이들은 이유 모를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효과는 확실하군.'

아마 저들은 내 얼굴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겠지.

뭐 그렇게까지 쓸모가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겠지만, 지금 당장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다.

"상황이 썩 좋아 보이진 않네."

보이는대로 4구역과 5구역 사이.

연결 통로 부근에 베트남과 한국.

그리고 반대편에는 일본과 포로들 몇몇이 대치하고 있었다.

"숫자는?"

"현재 일천명 정도라고 생각됩니다만, 그 뒤에 몇명이 있을지는 미지수입니다."

"흠."

5구역을 점거한 놈들이다.

그 뒤에 몇이나 포진해 있을 지 알수가 없다는 말.

게다가 놈들은 보란듯이 포로까지 무릎 꿇리고 목에 칼을 대고 있다.

그 중에는 관찰자도 있으니 기분이 썩 좋지가 않다.

마음 같아서야 깔끔하게 쓸어버리고 싶다만 그건 좀 힘들 거 같다.

'지독한 열병에 페스틱사드로 전부 쓸어버리려고 했는데...'

포로가 있으니 그건 힘들다.

내 독은 애초에 해독제도 없다.

포로들까지 중독되어 버린다면 더는 손쓸 도리도 없다.

본말전도이니 이건 불가능.

포로 한명에 한명이 붙어서 목에 칼을 대고 있다.

조금만 이상한 움직임을 보인다면 즉시 포로들의 목이 날아갈 터.

확실한 방법이 아니라면 섣불리 움직일 수 없었다.

"놈들은 채굴장 두개를 원했다. 하지만 준다해도 포로들이 무사할지는 솔직히 장담하지 못하겠군."

"이유는."

"여기까지 밀고 들어온 놈들이다. 고작 채굴장 두개를 원했을까?"

하나를 내어주면 둘을 원하고, 둘을 내어주면 다섯을 원하는 게 바로 사람이다. 게다가 기습으로 5구역의 인원 절반을 죽인 놈들.

"우리도 그렇지만, 저들도 예전의 전쟁법 따윌 지키리라 보긴 힘들다. 애초에 한국과 일본은 그... 사이가 좋지 못하잖아?"

"그렇긴하지."

만트라의 말은 핵심을 짚고 있었다.

"포로가 문제다."

만트라 또한 포로가 문제라며 팔짱끼고 고심하고 있었다.

그것만 처리할 수 있다면 일본과 싸우는 걸 주저할 리가 없다는 듯이.

"포로들을 감시하는게 최소 두자릿수 랭커들이야. 섣불리 움직였다간 바로 죽을거다. 역시 일단은 놈들이 원하는대로 구역을 내주고....."

"아니. 그건 잠시 뒤로 미루지."

"달리 방법이 있나?"

방법.

있기는 있다.

하지만 그 방법을 사용하기엔.

"거리가 멀다."

조금 더 가까워질 필요가 있다.

'브램블리는 거리가 멀면 멀수록 제어가 쉽지 않아. 구현 속도도 느려.'

빠르고, 재빠르게 주둔해 있는 포로 감시자들을 한번에 죽이기 위해서는 가까우면 가까울 수록 좋다.

'게다가 주변 환경도 좋지 않아.'

브램블리는 가시덩쿨이다.

지옥이라는 것 답게 용암이 부글부글 끓고 있는 이 땅에서 브램블리는 오래 쓸 수 없다.

금세 힘을 잃고 불타거나 메마른다.

그러니 중요한 건 거리와 시간.

그럼 문제는 어떻게 가느냐인데.

"시도는 해볼까."

길을 열게하고 나는 그들 앞에 서서 두 손을 들었다.

놈들의 칼이 포로들의 목을 바짝 눌렀지만 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다.

"너희들의 리더를 만나보고 싶다."

두손을 들어 명백한 공격 의사가 없음을 전달하고 기다린다.

다른 나라이고 언어가 다르다 한들 알아서 번역될테니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한 건 아니다. 그러니 기다리면 어떤 식으로든 답이 나오기 마련.

"난 한국의 랭킹 1위 데몬시드다. 밧줄로 묶든 어쩌든 상관 없으니 너희들의 리더와 얘기를 나누고 싶다."

조금씩 가까워진다.

흐릿하게나마 보였던 놈들의 인상착의와 얼굴 윤곽이 조금씩 보인다.

'오백미터쯤 됐나.'

아직도 멀다.

조금씩, 천천히 두 손을 든 채로 천천히 가까워진다.

"멈춰라."

반응이 왔다.

저놈들도 바라는 게 있을테니 겨우 이 정도로 사람을 죽이진 않을거다.

제아무리 쌍놈이라도 이득을 위한 목적 행동은 반드시 있는 법이니까.

"어이, 네가 정말 랭킹 1위냐?"

"맞다."

"우리들의 리더를 만나보고 싶다고? 어째서지?"

포로들을 안전하게 송치받고 싶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면 포로들을 더욱 압박해 뭐라도 받아내려 하겠지.

오히려 터무니 없는 제안을 해올 가능성 또한 없지 않다.

그렇다면.

"중국과 러시아의 합동 작전으로 북한의 군단장을 잡기로 했다."

"!"

"!?"

아예 다른 화제로 돌린다.

저들이 전혀 모르는 이야기로 주도권을 잡는다.

어렷을 적.

고아라는 타이틀로 나는 항상 약자였고 내 편은 없었다.

짓궂게 날 건드는 무리들 앞에서 학창시절 내가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고작해야 화제 전환.

나만이 알고 있는 정보와 이슈로 대화의 주도권을 잡는 것 정도다.

보잘 것 없어 보이지만 나름의 생존 방법이다. 이슈가 날 겁박하는 놈들에게 얼마나 큰 이득을 주느냐에 따라, 먹이를 무는 속도도 다르다.

'어릴 때는 담배나 술을 살 수 있는 편의점이나 구멍가게였지만...'

지금은 군단장.

한 나라를 지배한 악마. 놈의 토벌로 이어지는 퀘스트 보상이라면 그들 또한 욕심내지 않을 수 없다.

반드시 통한다.

'일본은 아마 모르겠지.'

외딴섬 섬나라.

주변 국가들이 아무리 박살나도 일본은 모른다.

그로인해 벌어질 퀘스트?

알 턱이 있나.

일본은 바다를 건널 수도 하늘을 날 수도 없다. 악마들도 굳이 힘겹게 바다를 건너 일본까지 가지 않는다.

일본은 고립되어 있다.

고립은 성장의 정체다.

랭커라면 놈들도 알거다. 그러니 이 기회를 놓치려고 할 리 없다.

알게 된다면 어떻게든 한다리 걸치려 할거다.

내가 그렇게 만들거고.

"보상으로는 국가별 레벨 한단계 상승과 각각의 헤일로가 주어진다."

놈들이 제대로 미끼를 무는 순간.

난 어릴 적 그랬던 것처럼.

확실하게, 빠져나갈 틈 없이 놈들의 뒤통수를 때릴 것이다.

어렸을 때도, 커서도 그랬다.

물론.

"잠시 기다려라."

씨익.

지금도 그럴 것이다.

일본 1위 [2]

8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