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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

사하라 초원의 하늘은 티끌 한 점 없었다.

균열도, 많게는 20개 이상 열렸던 게이트도, 싹 다 사라졌다.

태주는 비공개 라이브 방송을 종료했다.

슬슬 정리해야지.

천군들은 군인이라 비교적 자유로운 신선들과는 다르다.

그래서 게이트를 넘어 천계로 회군했다.

해맑 선녀는 남았다.

그녀가 원했기 때문에.

탁탑신장이 회군하기 전에 태주에게 해맑을 부탁했다.

"대협만 믿소."

"안전하게 천계로 돌려보내 드릴게요."

"감사하오. 그럼 이만."

천군들이 줄을 지어 넘어가자, 염라의 문은 핏! 하고 닫혀버렸다.

이제 남은 이들은 신선들과 해맑 선녀, 미호 선자, 그리고 제천대성, 다 합쳐서 48명.

"뭐야? 검선과 제천대성은 언제 왔어?"

"보아하니 끝까지 눈치 보다 막차 탔군."

"선계 최초의 왕따 신선을 보나 했더니."

"태세 전환에 따른 위기 극복 능력은 상위계에서 검선을 따라올 자가 없지."

검선과 제천대성은 들은 체도 안 했다.

대신 태주에게 달려가 갖은 아양을 다 떨었다.

"역시 태주 대협이야. 게이트가 막 늘어났을 때 얼굴빛 하나 안 변하고 대응하는 모습이라니, 정말 본선의 가슴이 웅장해졌어."

"헤헤헤, 무엇 하나 모자람이 없습니다. 만천화우의 위력, 용의 현신, 치밀한 전략과 전술, 그리고 잘생긴 외모까지."

태주도 검선과 제천대성이 왜 이렇게 나오는지 짐작은 했다.

아마 자신이 게이트 공략을 쉽게 끝내지 못할 거란 쪽으로 베팅했을 것이다.

그렇지만 하나도 섭섭하지 않았다.

검선의 판단은 정확했다.

염라의 문이 아니었다면 상당히 어려워졌을 수도.

어쨌든 게이트는 완벽하게 처리했고···,

이제 뭘 한다?

어차피 정해져 있다.

신선들이 원하는 게 뭘까?

지구에서 시원하게 놀다가 선계로 돌아가는 거지.

태주는 스마트폰을 들었다.

황제에게 전화를 거는 태주.

"여보세요."

- 어이, 김회장! 방송 잘 봤어. 아주 스펙터클 하더군.

"부탁이 있습니다."

- 뭔가?

"여기 카이로 전초기지 공항에서 뉴서울 공항으로 가려고 하는데, 비행기 한 대 보내주실래요?"

- 알았네. 수호에게 말해두지.

"비용은 제가 부담하겠습니다."

- 아니야. 수호가 내줄 거야. 걔 돈 많아.

"네? 굳이···,"

- 이번에 도박으로 나한테서 100억 땄거든. 에잉! 내가 10분만 빨랐어도.

"···."

황제와 금수호도 내기를 한 모양.

솔직히 기가 막히긴 하다.

지구가 멸망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한쪽에선 토토, 또 한쪽에선 내기.

그 도박의 선택지엔 실패 따윈 없었다.

단지 빨리 끝내느냐, 아니면 시간이 걸릴 것이냐만 존재했을 뿐.

황제가 전화를 금수호에게 넘겼다.

- 김회장!

"네, 금 비서관님."

- 아직 사하라 초원이지? 거기서 대기하게. 카이로 전초 도시 현지에 제정원 요원들을 파견해 뒀었거든. 걔들에게 지시했어. 다 알아서 처리해줄 거야.

다행이다.

비행기 타려면 여러 절차가 필요한데.

삼한제국이면 몰라도 여긴 외국이라 도와줄 사람이 필요했던 참이었다.

비행기를 탈 계획이라 전하자 신선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다들 기대감에 들뜬 표정들.

TV, 혹은 영화에서나 봤던 비행기.

그걸 실제로 타게 된다니.

탑승 경험 있는 신선도 있다.

검선이 으스대면서.

"비행기라, 다들 신발 벗고 타야 하는 건 알고 있소?"

신선들이 코웃음 쳤다.

"거, 누굴 바보로 아나?"

"철 지난 개그가 먹힐 줄 알았소?"

"검선은 비행기 타지 말고 날아서 오시오. 원숭이는 근두운 타고."

순간!

부우우웅!

초원을 향해 달려오는 대형 버스 두 대.

태주 일행에게 오더니 멈춰 섰다.

"김태주 회장님. 제정원에서 나왔습니다."

"번거롭게 해서 미안해요."

"천만에요. 오히려 영광입니다. 어서 타시죠. 삼한까지 빠르게 모시겠습니다."

신선들이 버스에 올라탔다.

카이로 공항에 도착해서 잠시 기다린 후, 출국 수속 없이 현지에서 섭외한 비행기에 올라탔다.

시끌벅적한 기내.

한쪽에 모여서 진지한 표정으로 쑥덕쑥덕 이야기를 나누는 신선들.

여행 계획이라도 세우려는 건가?

이윽고 뉴서울 공항.

이번에도 입국 절차 없이 공항 밖으로 나왔다.

신선들의 숫자가 꽤 많다.

누가 보면 효도 관광 온 패키지 관광객들인 줄 알겠다.

가이드라도 붙여드리고 싶었지만 신선들은 이미 비행기 안에서 정리가 끝난 모양.

"태주 대협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되오."

"여기부터는 알아서 움직일 테니 걱정하지 마시오."

"맞소. 우린 없는 셈 치고 집에 가서 푹 쉬시구려."

살짝 미심쩍긴 하다.

"그럼 돈이 필요하실 텐데 제가 카드를 드리겠···,"

"어허! 그동안 진 신세가 얼만데, 민폐를 끼치면 쓰나? 우리가 벌어서 우리가 쓰면 되오."

신선님들도 다 계획이 있구나.

무엇인지 모르겠지만,

설마 또 광고를 찍으려고?

'뭐, 알아서 잘하시겠지.'

해맑 선녀는?

일이삼백이가 고양이 상태로 해맑 선녀에게 폭 안겨서 헤롱헤롱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저 새끼가···,'

게이트 괴수를 이빨로 찢어버리는 놈이, 가증스럽게 귀여운 척 냥냥거리면서···, 제 주인하고 있을 때보다 더 좋아하는 것 같다.

'일이삼백이도 있고, 옆에는 미호 선자와 하선고님도 있으니까.'

해맑 선녀는 전혀 걱정 안 해도 되겠다.

그동안 밀린 일 처리하고 시간 내서 선계나 한 번 더 갔다 오자.

텅 빈 선계.

독선 혼자서 얼마나 외로울까.

※ ※ ※

뉴서울 리더스 클럽.

다이아몬드 등급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백두 그룹 정욱철을 포함해, 발해 그룹 회장, SH 그룹 회장, 유텔레콤 CEO, 삼한일보 사장, CK 미디어 그룹 대표 이사···, 삼한에서 난다긴다하는 재계 인사들이 다 왔다.

그들을 초대한 사람은 정욱철 회장.

솔직히 부를 마음이 없었다.

그러나 어르신의 명을 거역할 수도 없고.

다이아몬드 회원들이 모이는 클럽 전용실.

그런데 정욱철 회장이 초대하지 않은 사람도 있었다.

여유롭게 소파에 앉아있는 금수호 비서관.

"비서관님은 어떻게 여길···,"

"나라고 그분과 연이 없을까? 연락받고 왔네. 그러니 혼자 독차지할 생각은 말아."

"끄응."

큰일이다.

매우 위협적인 경쟁자다.

치열한 전투가 벌어질지도.

그때!

리더스 클럽 오너 이고르 바라노프가 문을 열고 들어와 말했다.

"그분들께서 오셨습니다."

"오! 그래?"

반색하는 정욱철.

금수호도 벌떡 일어나서 옷매무시를 가다듬었다.

다이아몬드 회원들도 엉겁결에 따라서 일어났다.

들어온 사람은 10여 명.

회원들은 깜짝 놀랐다.

그중의 한 명이 너무 유명한 분이었기 때문이다.

"아!"

"저, 저분은···,"

"시, 신선님?"

지구에도 잘 알려진 선계의 신선.

바로 검선이었다.

그럼 함께 온 노인들은 누구겠나?

당연히 같은 신선들이겠지.

검선이 앞으로 나와서 말했다.

"생각 같아선 따로 인사도 하고 담소도 나누고 싶다만, 시간이 아깝다. 그래서 즉시 본론으로 들어가마."

신선님이 자신들에게 할 이야기가 있다니.

"팔 물건들이 있다. 그대들이야 삼한에서 부족함 없이 살아왔겠지만, 지금 보일 물건들은 꽤 쓸만할 것이다. 사고 싶으면 액수를 말하라. 경매 형식으로 진행하겠다."

검선이 눈짓하자, 품에서 부적 한 장을 꺼내는 단주 선인.

부적의 정체는 1회용 아공간 부적.

찢으면 미리 담아뒀던 물건들이 쏟아져 나온다.

태주 대협이 지구로 가는 문을 열 수 있다는 걸 알았을 때부터 세운 계획.

언젠가는 자신들도 지구로 넘어오게 될 터였다.

하지만 독선의 통제가 만만치 않다.

선도 하나에 만원이라는 터무니없는 환율을 책정한 것도 모자라, 벌금과 세금이라며 검선과 제천대성에게서 거액의 돈을 뜯어 가지 않았나?

거렁뱅이 신세로 지구에 놀러 가면 뭘 해?

쓸 돈이 없는데.

게이트 토토에 그렇게 열을 올렸던 이유도 이것 때문.

물론 태주 대협이 챙겨주기야 하겠지만 그 또한 독선이 가만히 있을까?

반드시 제재가 들어온다.

그래서 은밀하게 계획을 세웠다.

직접 벌어서 시원하게 쓰자고.

번 돈은 추적이 안 되게 현찰로 받는다.

쓸 만큼 쓰고 남은 돈은 아공간 부적에 보관한다.

그럼 독선도 모를 것이다.

각자 선계에서 팔만한 물건들을 가지고 와서 단주 선인이 제작한 1회용 아공간 부적에 담아뒀다.

이런 날이 오기만을 기다리면서.

검선은 부적을 찢었다.

후두두두둑!

떨어지는 각종 물건, 방안에 가득 쌓였다.

검선이 하나하나 들어서 설명했다.

"선도 10알이 포장된 과일 바구니네. 이 중 6알은 하품, 3알은 중품, 1알이 상품이야."

정욱철과 금수호의 엉덩이가 들썩였다.

이고르도 꿀꺽 침을 삼켰다.

선도의 가치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호리병은 주선이 담근 신선주, 술병 자체도 보물이지. 크기가 작아 보여도 술 10말은 거뜬히 들어갈걸?"

10말이면 180리터.

"화선이 그린 그림이야. 집에다 걸어두면 심신의 안정과 평안이 찾아올 거네. 가끔 그림 안으로 들어가 풍경도 즐길 수 있고."

"대목 선인이 신목(神木)으로 튼튼하게 짠 의자와 탁자 세트도 있네. 이걸 이용해 공부하거나 업무를 보면 집중력과 기억력이 향상돼."

"환수계에서 자라는 차나무가 있지. 다선이 직접 따서 찻잎을 잘 볶아 만든 발효차 덩어리, 눈곱만큼 떼어내서 따듯한 물에 우려 마시면 피부가 깨끗해지고, 정력에도 좋다네."

"그리고 영약은 잘 알 테지. 이것들은 조금 특별한 영약이야. 공청 석유와 만년 설삼 등을 배합해서 만들었어. 모두 3알, 삼봉 선인의 태청단, 매화 선인의 자소단, 곤륜 선인의 청허단."

그 외에도 많은 물건이 있었다.

쇼호스트처럼 하나하나 들고 물건에 대해 간단한 설명을 이어가는 검선,

사람들은 그저 입만 떡 벌렸다.

진짜?

신선이 거짓말을 할 리는 없을 테고.

"자자, 지금부터 판매를 시작하지. 선도 과일 바구니부터, 현찰로 받겠네. 살 사람 있나?"

하지만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정욱철도, 금수호도, 이고르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제일 먼저 손을 든 사람은 삼한일보 사장.

사실 사고 싶은 마음은 딱히 없었다.

그래봐야 과일 아닌가.

하지만 저 복숭아 과일 바구니를 구매함으로써 검선 등 신선들과 친분을 쌓을 수 있으니까,

"전 삼한일보 사장입니다. 과일 바구니 1억, 1억에 사겠습니다."

검선과 신선들은 주먹을 꽉 쥐었다.

됐다.

첫 판매 성공.

가격도 예상을 넘었다.

10개에 1억, 개당 천만 원.

선계에서 독선에게 갖다주면 개당 만 원 쳐주는데.

여기선 무려 천 배였다.

"허허허, 좋은 가격이군. 그럼 이 선도는 삼한일보의 사장에게···,"

그때였다.

큰손이 움직였다.

"전 10억 드리죠."

리더스 클럽 오너 이고르가 손을 들고 말했다.

깜짝 놀라는 검선.

10억? 갑자기 10배로 뛰어?

"어어, 저, 정말인가?"

"지금 현찰로 뽑아서 드리···,"

말이 끝나기도 전에 정욱철이 끼어들었다.

"100억에 사겠습니다."

그러자 기절초풍하는 신선들.

"허어억!!!"

100억?

고작 선도 10알에 100억?

하지만 금수호 비서관이,

"110억."

누구보다 선도의 효능을 잘 아는 금수호.

참을 수 있나?

선도가 10개인데.

그러나 정욱철도 만만치 않았다.

"···120억."

"130억."

"140억."

으드득!

정욱철이 이를 갈며 금수호에게 쏘아붙였다.

"정녕 이렇게 나오실 겁니까?"

"돈 많은 사람이 사는 거지."

"국가 세금으로요?"

"어허! 의심이 지나치군, 황궁 내탕고에서 나오는 돈이야. 황제 폐하의 개인 재산이란 말이지. 그럼 자넨 무슨 돈으로? 혹시 비자금인가?"

"천만에요. 저도 제 개인 돈입니다만."

결국 두 고래의 싸움은 정욱철이 300억을 지르면서 끝났다.

금수호는 깔끔하게 포기했다.

어차피 둘 다 먹을 수는 없다.

황제 폐하와도 조금 전에 전화로 이야기를 끝냈다.

전력을 다해 신선주로 간다.

다른 다이아몬드 회원들도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감지했다.

300억을 지르고도 기쁨을 숨기지 못하는 정욱철.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으로 다음 경매를 준비하는 금수호 비서관.

뭔가 있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귀한 물건일지도.

다음으로 시작된 신선주 경매.

다른 회원들도 적극적으로 경매에 뛰어들었다.

"100억!"

"150억."

"200억."

"230억."

"250억."

.

.

.

검선과 신선들은 어질어질 정신이 혼미해져 쓰러질 지경.

이렇게 많은 돈을?

실로 초초대박이었다.

환호성을 지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다, 단주, 아공간 부적은 충분하게 가지고 왔소?"

"한 200장 챙겨왔으니 충분할 거요."

"번 돈은 공평하게 나눕시다. 이번에 쓸 돈은 들고 다니고, 나머지 돈은 부적 안에 넣어두고."

"독선에게 들키지 않는 게 중요하오. 이 일이 새어나가면?"

"어허! 그런 끔찍한 소릴!"

이게 진정한 인생 역전.

게이트 토토 따윈 아무것도 아니다.

누가 1등을 했던 신경 쓸 것도 없다.

※ ※ ※

며칠이 지났다.

태주는 구례 자택 지하 수련실에 있었다.

광케이블이 지나는 차원 구멍은 여전했다.

비욘드 결정체 마나 공급 장치가 겨우 1% 닳았다.

이 정도면 10년도 끄떡없겠다.

그리고 비욘드 결정체가 하나뿐인가?

2,000개가 넘는다.

'그나저나 신선님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조용하다.

자신의 카드라도 사용했다면 결제 메시지로 위치를 알 수 있을 텐데.

티제이 그룹 차원에서 언론과 SNS를 예의주시하는 중,

혹시나 신선님들로 인한 문제가 터지는지 알아보려고.

아직은 큰 문제가 없었다.

'자, 게이트를 열어보자.'

그동안 공유창고 반짝임이 없었다.

게이트를 통해 넘어갈 수 있는 판국에 더는 공유창고의 필요성이 사라진 것일 지도.

태주는 정신을 집중했다.

선계 멀티플렉스 앞마당을 상상하면서,

지이잉!

그러자 조금 터 커진 게이트.

이젠 허리만 살짝 굽히면 들어갈 수 있을 정도.

그런데?

[하아! 이번에도 다른 곳에 열었군요. 우리 미테란에도 열었으면 좋겠는데, 대화가 안 통하니 어쩔 수도 없고.]

뭐지?

이젠 환청 수준이 아니다.

음성도 뚜렷했고, 전달하고자 하는 의미도 명확했다.

[제게 주어진 시간은 여기까지네요. 주신께서 권능을 거두실 예정이셔서.]

"그래요?"

[네, 아무리 주신이라 하셔도, 차원과 차원을 넘어서 의사를 전달하는 권능은···, 에?]

당황한 듯한 반응.

[호, 혹시 제 목소리 들리나요?]

"맞습니다. 들립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저는 미테란 차원의 라넬리아라고 해요.]

"김태줍니다."

소통이 시작됐다.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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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테란 차원.

특이한 세상이었다.

규모 면에선 지구나 강호보다 훨씬 컸다.

다양한 지성체 종족들이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기에.

무한에서 비욘드 가디언들을 만들어, 옛 중국 땅을 망하게 했던 이계의 용도 이곳 출신이란 걸 알게 됐다.

이름은 블랙 드래곤 파타갤라온.

현재 소통을 나눌 수 있는 것도 놈이 가졌던 드래곤 하트 때문이고.

태주와 대화 중인 라넬리아는 미테란 인간 종족의 신(神).

신이라기 보기엔 조금 모자란 것도 같고, 이를테면 대천사 같은 느낌?

진짜 신은 따로 있었다.

예를 들어 천지신명같은.

신들의 신, 만물을 주재하는 법칙이자 창조주인 주신(主神) 말이다.

인간계의 신, 라넬리아는 걱정이 태산이었다.

퇴보하고 있는 인간 문명.

타 종족들은 날이 갈수록 번영하고,

가까운 미래에 인간은 멸망할지도 모른단다.

벌써 그런 조짐이 보인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세상의 문명을 이식해서라도 인간사회의 변화를 꾀하고 싶다는 것이 라엘리아의 의도.

[이대로라면 곧 다른 종족들에게 먹힐 거예요. 인간의 멸망은 이미 예정되어 있어요.]

"직접 나서면 되잖아요. 다른 세상의 문명을 이식할 필요 없이."

[제가 인간들에게 개입하면 다른 종족 신들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만신계 신들이 그렇게 사이좋은 건 아니랍니다.]

"아, 그런가요?"

[오히려 원수 같은 놈들이죠. 종족이 번영하는 것만큼 각 신들의 힘도 강해지거든요. 종족 대전쟁이 벌어질지도 몰라요. 그런 이유로 주신께서도 신들의 직접 개입을 금지하셨어요.]

"내가 하는 건 된다는 겁니까?"

[태주님은 인간이시니까요. ···아직은.]

"음."

이해는 한다.

안쓰럽기도 하다.

얼마나 속이 탔으면 다른 세상의 인간에게 부탁을 해왔을까?

솔직히 도와주고 싶긴 하지만···,

어떻게?

[태주님은 미테란 차원의 블랙 드래곤 파타갤리온의 하트를 가지셨잖아요. 그럼 미테란 대륙으로 차원 게이트를 열 수는 없는 건가요?]

"글쎄요."

게이트 여는 게 그리 쉬운 줄 아나?

가봤던 세상도 쉽지 않았는데,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어떤 곳인지도 모르는 세상에다 무작정 연다고?

[시간이 없어요. 제게 허락된 주신의 권능이 곧 사라질지도 몰라요.]

생각해보니 가능성이 있을 것 같기도 하고.

현재 라넬리아와 소통하고 있지 않나?

이 소통도 어떤 의미에선 차원과 차원의 연결이다.

태주는 시도해볼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다.

"그럼 제게 미테란 대륙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그래도 감은 잡아야 하니까."

[알겠어요. 먼저 우리 미테란 대륙은 하나의 큰 땅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 종족의 영역이 구분되어 있지만···,]

이어지는 그녀의 설명.

미테란, 파타갤라온의 고향, 그리고 인간사회.

머릿속에 미테란 세상의 모습이 점점 떠오른다.

라넬리아의 묘사를 바탕으로 태주의 상상력이 더해진 세상.

'열어보자.'

드래곤 하트의 힘이 쑥 빠져나갔다.

그리고,

지이잉!

열리는 게이트.

'해치웠나?'

[아뇨. 열리지 않았어요.]

"네, 저도 알고 있습니다."

열린 곳은 다른 세상의 인간계, 강호 무림.

"한 번 더 해볼게요. 라엘리아님도 조금 더 자세히 묘사를···,"

[알았어요. 열심히 해볼게요.]

자꾸 이야기를 듣다 보니 아까보다는 조금 더 구체적으로 떠오른다.

지이잉!

태주는 게이트를 열었다.

[아···,]

또 실패.

이왕 한 김에 될 때까지 해보자.

지이잉, 지이잉, 지이잉, 지이잉···,

실패, 실패, 실패, 실패···,

'이거 불가능하겠는데,'

괜히 힘만 빠졌다.

[안 돼요. 포기하지 마세요. 조금만 더 해봐요. 그럼 될지도···,]

라엘니아가 다급하게 소리쳤지만,

순간!

뚝!

끊겨버린 목소리.

"···라넬리아님?"

아예 들리지 않았다.

"여보세요?"

그녀가 앞서 말했던 것처럼 허락된 시간이 다 끝난 모양.

'흐음, 이대로 끝난 건가?'

사실 선계로 갈 수 있었던 것도 한 번에 되지 않았다.

수많은 절차와 과정들을 거쳤다.

독선과의 영혼 연결.

무한공간과 공유창고.

선도와 천도.

여의주와 드래곤 하트 등등.

이 중 하나라도 없었다면 절대 게이트를 열 수 없었을 터.

고작 의사소통만으로 가능했다고 여기는 게 이상할 정도.

'뭐, 어쩔 수 없지.'

아쉽긴 하다.

새로운 세상을 경험해보고 싶은 마음이 태주에겐 없을까?

하지만 안 되는데 어떡해.

'선계나 가봐야겠군.'

독선을 만나서 다른 세상의 신과 소통한 경험도 나누고.

※ ※ ※

그렇게 태주는 선계와 지구를 오고 갔다.

보름 정도가 지났을까.

지구에 있던 태주에게 신선들이 돌아갈 때가 되었다며 작별 인사한답시고 그를 만나러 왔다.

"잘 놀다 가오."

"···네."

깜짝 놀랐다.

몰라보게 달라진 신선들.

옷이며, 신발이며, 시계며, 죄다 명품만 걸치고 있었다.

대체 돈이 어디서 났길래.

광고를 찍지 않은 건 확실하고.

은행들도 털렸다는 소식이 없는데.

나중에 말해주겠지.

선계로 넘어가면 언제든 만날 수 있으니.

해맑 선녀와 하선고, 미호 선자도 충분히 만족한 표정.

들어보니 뉴서울 핫플레이스도 돌아다니고, 쇼핑도 마음껏 한 듯.

하선고는,

"태주 대협아. 이 명함들, 어디다 좀 버려주라."

"뭔데요?"

"몰라, 꼭 연락하라던데, 귀찮잖아."

헌팅 당했나?

어떤 놈들이 감히 신선을 꼬셔?

그런데 명함을 보니 다 연예 기획사.

"3장이나 받으셨네요. 매력이 있으셨나 보다."

"헹! 매력은 개뿔, 내 나이가 몇인데."

옆에 있던 미호 선자도.

"전 4장 받았어요. 제가 하선고님보다 더 인기가 있었나 봐요. 나이가 어려서 그런가?"

"지랄도 풍작이다. 요망한 여우 년아! 눈웃음 살살 치면서 먼저 어필한 주제에. 이러니 남자들 간이나 빼먹고 다니지."

"어머? 제가 언제 그랬다고요? 가만히 있어도 본연의 매력이 나오는걸."

"그래봐야 해맑이에겐 못 당해."

하선고가 해맑이를 가리키자.

"제가 왜요오?"

"해맑아, 너도 명함 받았잖아."

"맞아요오."

"몇 장이니?"

"나도 몰라요오, 주머니에 넣었는데요오."

"꺼내 봐."

우수수수수수!

해맑 선녀의 주머니에서 떨어지는 수십 장의 명함들.

"···와!"

언뜻 봐도 15장 이상은 되어 보였다.

이 정도면 삼한 연예 기획사 명함은 다 받은 듯.

태주도 욕심이 생길 정도.

미호 선자와 해맑 선녀를 영입해서 엔터테이너 사업을 하면?

무조건 성공이지.

※ ※ ※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사하라 초원에서 균열이 생기는 일은 없었다.

생겨봤자 박살 내면 그만이지만.

태주는 파주로 가서 정연희를 만났다.

DMZ 마수 밀집지대는 거의 소탕됐고, 파주도 대도시의 면모를 갖추면서 하루가 다르게 성장하고 있었다.

티제이 그룹 파주 공장 사장이자 치안과 경제 분야를 담당하고 있는 정연희.

아버지의 복수도 마쳤겠다, 또한 파주가 완전하게 제자리를 잡았으니.

"연희씨, 이제 우리 티제이 그룹에 얽매이지 않아도 됩니다."

"네? 무슨 말씀을···,"

"원래 백두 그룹분이시잖아요. 돌아가셔서 그룹을 승계하셔야죠."

"으음."

정연희는 마뜩잖은 표정.

"절 쫓아내시려고요?"

"하하하, 그런 뜻이 아닌 걸 잘 아시면서···,"

"아직 멀었어요. 백두 그룹으로 돌아가도 제자린 없어요."

"네?"

"할아버지가 너무 정정하시거든요. 회춘하셨다고 해야 하나. 머리카락도 까매졌고 이빨까지 새로 나셨어요. 태주씨가 얼마 전에 선도 복숭아를 주신 덕분에···,"

이건 무슨 말이지?

"내가 선도를 드렸다고요?"

"···아닌가요? 본가에 가기만 하면 선도 향기가 넘치던데, 한두 개가 아니에요. 제가 하나 달라고 해도 절대 안 주더라고요."

대체 선도를 어디서?

"···아!"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것이 있다.

어저께 황궁으로 갔을 때 폐하의 집무실에 풍겼던 익숙한 내음.

신선주 향기였다.

물어보니 전에 받았던 것을 지금까지 아껴 마시는 중이라고 했고.

하지만 분명히 봤다.

황제의 허리춤에 걸린 주선의 술호리병을.

그때는 비슷한 거구나 싶어서 그냥 넘겼는데.

'팔았구나. 선도도, 신선주도.'

생각에 잠긴 태주의 눈치를 보며 말을 이어가는 정연희.

"저 여기서 잘리면 갈 데가 없어요."

"연희씨 소유의 백두 호텔 있으시잖아요."

"그거야 지금 하는 일에 비하면 동네 구멍가게 수준이라."

"···."

뭐, 틀린 말도 아니지.

파주 공장 단지만 해도 가히 세계적인 수준.

현재 토벌된 DMZ 지역에 새로운 공장과 대규모 농장도 들어설 예정.

"티제이 그룹에 뼈를 묻겠다는 심정으로 열심히 일할게요."

"저야 너무 좋죠."

백서연과 쌍벽을 이룰 정도로 경영에 재능있는 그녀였다.

오히려 부탁하고 싶던 차였다.

'나중에 보상이라도 해줘야지.'

연봉 인상은 물론, 백서연과 함께 선계 구경을 시켜주는 것도 좋은 방법일 듯.

날 한번 잡자.

※ ※ ※

바다도 평온했다.

안전한 바닷길의 시대.

시범 삼아 흑암철을 덧대지 않은 선박을 출항시켜 봤는데, 예상대로 안전했다.

여의주의 힘을 받은 바다의 군대가 마수들의 공격을 방어하고 퇴치해버렸다.

그렇다면?

흑암철의 쓰임새를 변경할 때.

기찻길 선로를 깔면 된다.

새로운 시베리아 횡단 철도와 그리고 곧 있으면 삼한의 영토가 될 옛 중국 땅을 연결하는 철로.

태주는 토벌 상황도 알아볼 겸 만리비검을 타고 중국 땅과 시베리아를 돌아봤다.

이왕 온 김에 아버지가 계시는 시베리아 개척부대에 들렀다.

직접 만나진 않았다.

대신 아버지가 근무하는 부대의 사령관을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다.

영지도 없는 월급쟁이 장군이지만 오히려 그게 편한가 보다.

진급도 예정되어 있다니 더 잘됐지.

그리고 옛 중국 땅.

삼한 제국군에 의해 마수 밀집지대가 속속 토벌되고 있었다.

결국 인간은 마수와의 전쟁에서 승리했다.

반면 우려도 있었다.

마수들이 다 사라지면 대체 어디서 결정체를 수급할 것인가?

그동안 쌓아놓은 결정체가 있어 백 년도 끄떡없다지만, 언젠가는 고갈될 것이 뻔한 일.

그래서 마수 밀집지대 토벌은 신중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속도 조절이 필요하다는 의미.

더 나아가 옛 중국 땅의 몇몇 마수 밀집지대를 결정체 양식장으로 만들어 관리해야 한다는 말도 나왔다.

일리가 있다.

결정체 고갈로 다시 화석 연료의 시대로 돌아갈 수는 없으니까.

'이제 선계로 가볼까?'

상위계 존재들이 모두 참석하는 특별한 이벤트가 있을 예정.

지이잉!

선계로 가는 게이트가 열렸다.

게이트도 완전해졌다.

그냥 걸어서 들어가도 될 만큼 큰 크기였다.

그 때문인지 생겨난 변화.

시간이 많이 흘렀지만 공유창고의 반짝임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연결이 끊긴 건가?

알만하다.

10차선 고속도로가 뻥 뚫렸는데···, 샛길 따위는 없어도 된다.

다만 반짝이지만 않을 뿐이지 공유창고 구역은 여전히 남았다.

이건 언제 사라지려나.

※ ※ ※

선계(仙界).

태주가 멀티플렉스로 가까이 다가오자마자 헐레벌떡 뛰어오는 신선들.

"태주 대협!"

"크, 큰일 났소."

"글쎄 도, 독선, 독선이···."

신선들의 주저앉아 땅을 탕탕 치면서 하소연했다.

독선 당군악이 선계 물건 불법 반출과 불법 거래를 빌미 삼아 모든 신선들에게 과징금 100억씩 때렸다는 것.

'들켰구나.'

그럴 줄 알았다.

독선이라고 황제와 금수호, 정욱철과 친분이 없나?

물론 비밀로 약속했을 테지만 탄로 나는 건 시간문제였다.

"태주 대협이 중재해주시오. 내가 100억이 어디 있다고?"

"모바일 통신도 이용 정지 상태요. 바로 어제 너튜브 한 달 프리미엄 끊었는데."

"앞으로 선계 쇼핑몰만 이용하겠다고 맹세할 테니···,"

그래서 태주는 당군악을 만났다.

그와도 달라진 점이 있었다.

가까이 다가가도 빛의 사슬이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조금 찌지직거리다가 사라졌다.

간단한 스킨십도 전혀 문제가 없었다.

"놔둬. 그치들은 정신 좀 차려야 해. 생면부지의, 인연도 없는 사람들에게까지 선계 보패들을 팔아넘길 생각을 해? 제정신들이 아니야."

"···그래도."

"황제와 정욱철 회장이 경매 물품을 싹 쓸어갔기에 망정이지, 하나라도 다른 데 풀렸다면 어떡할 뻔했나."

"한 번만 봐주시죠. 너무 제재만 가하는 것도 좋지 않은 방법이잖아요."

당군악은 곰곰이 생각했다.

이참에 아주 혼쭐을 내주고 싶었지만.

"후우, 자네가 그렇게 이야기하니 할 수 없지. 알았네."

그러자 저쪽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살았다!!!"

"만세! 태주 대협 만세!!!"

"역시 대인배야."

"암! 같은 영혼이라도 격이 다르지."

천리신통 술법으로 엿듣고 있었던 모양.

당군악은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쨌든 왔으니 함께 행사장으로 가세."

오늘은 천계 아파트 준공식이 열리는 날.

준공식이 끝나면 천인들부터 입주가 시작될 것이다.

현장에 가봤더니.

"와! 많이 변했군요."

"그렇지? 거의 지구의 중소도시라고 해도 될 거야."

높게 올라간 아파트 10동.

상제, 염라, 용왕, 태상노군, 서왕모···, 모두 모였다.

이 아파트 단지는 시작일 뿐.

두 번째, 세 번째 단지도 그 옆에서 공사 중.

하나는 천인 2차 아파트 단지.

다른 하나는 천계 신장과 병사들을 위한 천군 아파트.

발전소도 건설할 예정.

마나 결정체로 깨끗한 에너지를 만드는 발전소.

"자, 가위 하나 들게. 테이프 커팅식 해야지."

태주는 가위로 테이프를 잘랐다.

하늘이 어두워지고 폭죽이 높이 올라갔다.

천계 밤하늘을 수놓은 화려한 불꽃.

그리고 시작된 잔치.

간이 탁자에 음식들이 놓였다.

먹고 마시며 서로 웃고 떠들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또한 모두가 행복했다.

※ ※ ※

계속 시간이 흘렀다.

태주의 일상은 변함이 없었다.

너무나 평화스러워서 문제였다.

정연희와 백서연 덕택에 회사는 그냥 놔둬도 알아서 잘 돌아갔다.

가끔 시간을 내어 마수 밀집지대를 소탕하거나, 제정원과 함께 마인 색출에 나서는 것이 전부.

그것도 안 하는 날엔 일이삼백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오늘도 심심하던 참이었다.

그래서 태주는 오랜만에 설악산으로 왔다.

울산 바위가 훤히 보이는 장소에 텐트를 치고, 캠핑용 의자에 앉아 일이삼백이와 시간을 보냈다.

'내가 습격을 당한 곳이 여기쯤이었지?'

여기 설악산에서 모든 것이 시작됐다.

태주에겐 의미가 남다른 장소.

마나 거부증으로 시한부 인생을 살다가, 새엄마의 사주를 받은 부대원들에게 공격당해 절벽으로 굴러떨어졌다.

동시에 연결된 다른 세상의 같은 영혼.

절벽은 기연을 부르는 장소였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혼자서 피식 웃다가, 아련한 표정을 짓다가.

짧은 기간 동안 너무 많은 일들을 이뤄냈다.

밤하늘에 빛나는 별.

어디선가에서 들려오는 풀벌레 소리.

선선히 불어오는 바람.

타닥, 소리를 내며 피어오르는 모닥불.

어느덧 일이삼백이도 그르릉, 코를 골며 잠에 빠졌고.

그때였다.

태주는 몸이 붕 떠오르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어?'

이거 익숙한 느낌인데.

바로 영혼 연결의 조짐.

'갑자기?'

당군악이야 게이트만 열면 만날 수 있는데 굳이 영혼 연결?

공유창고 반짝임도 중단됐지 않았나?

태주의 의식이 저 밤하늘 어디론가로 쭉 빨려 들어갔다.

동시에 다른 세상의 같은 영혼과 마주했다.

"아아아!"

그쪽에서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잔뜩 겁먹은 눈초리로.

금발에 파란 눈.

다소 허약해 보이는 앳된 청년.

눈과 눈이 마주쳤다.

이윽고 심령의 연결이 시작됐다.

경험과 기억, 지식이 서로 오고 갔다.

태주는 깨달았다.

지금 연결하는 다른 영혼은 당군악이 아니었다.

심지어,

'미테란 차원이구나.'

그곳이었다.

미테란 차원에도 자신과 같은 영혼이 존재했다.

그리하여 라엘리아의 소망이 이루어졌다.

비록 그녀가 원했던 직접 교류는 아니었지만.

"하하하하!"

크게 웃음을 터뜨리는 태주.

강호 무림과 선계도 아닌.

전혀 다른 세상에서 또 하나의 같은 영혼과 마주했다.

새로운 시작이었다.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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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테란 대륙엔 인간이 세운 수많은 국가가 존재한다.

제국과 왕국, 성국, 공국까지 합치면 셀 수가 없을 정도.

그중 카두인 왕국은 미테란 대륙에서도 꽤 강성한 국가, 그곳엔 테일즈 영지가 있다.

7서클의 마법사, 페론 테일즈 백작이 다스리는 곳이었다.

부유하기로 따지면 카두인 왕국에서 손꼽히는 영지.

동쪽엔 커다란 산맥, 북쪽에서 남쪽을 가로지르는 커다란 강과 비옥한 평야가 펼쳐진 곡창지대였다.

영지 인구도 많고, 농업을 비롯해 상공업도 발달했고, 영주관이 있는 중심 도시도 번화했다.

올해 20살의 청년 로디는 광산노동자였다.

15살부터 일했으니 꼬박 5년 동안 어둡고 습기 가득한 광산에서 곡괭이질만 했다.

15살 이전엔 행복하게 살았다.

부모님이 살아계셨을 적엔 말이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생긴 어머니의 병환.

아버지는 어머니의 약값과 치료비를 대기 위해 고리대금업자에게 돈을 빌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는 병을 극복하지 못하시고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께서도 남겨진 빚을 갚기 위해 광산노동자로 일하다가, 로디가 15살 되던 해에 돌아가셨고.

로디는 아버지의 빚을 승계받았다.

아버지가 일했던 마정석 광산이 그의 일터, 광산의 소유주는 테일즈 가문이었다.

지금은 20살의 성인이 되었지만 겉으로 보면 아직 어린 소년의 모습.

워낙에 못 먹어서 그렇다.

한창 성장기에 광산으로 끌려와, 하루 흑빵 두 덩어리에 귀리죽만 먹고 일했으니.

그런데 오늘은 그것도 못 먹게 생겼다.

광산 감독관 얀스가 막대기로 로디의 머리를 쿡쿡 찌르며 비아냥거렸다.

"제대로 일도 못 하는 주제에, 밥을 달라고?"

"···이틀 동안 굶었어요. 곡괭이를 들 힘도 없어서,"

쫙!

얀스는 로디의 뺨을 후려쳤다.

비쩍 마른 몸이 휙! 날아갔다.

"이 벌레 새끼야."

무지막지한 발길질이 로디에게 가해졌다.

반항조차 할 수 없다.

경험상 그러면 더 맞는다.

퍽! 퍽! 퍽! 퍽!

"으윽, 윽! 윽!"

"밥만 축내는 게으름뱅이 주제에! 가서 할당량을 채워오든가, 아니면 굶어 뒈지든가."

감독관 얀스.

원래 이놈도 빚에 팔려 온 광산노동자였다.

하지만 피도 눈물도 없는 악독한 성품으로 마정석 광산 관리자의 눈에 들어 감독관이 된 개 같은 놈.

으드득!

로디는 두 손으로 머리를 보호하며 이빨을 앙다물었다.

할당량을 채우지 못했다고?

천만에!

충분히 채웠다.

그러나 사사건건 트집을 잡아 자신을 괴롭혔다.

왜 이렇게 못살게 구는 걸까?

사실 답은 단순하다.

얀스는 잠시 폭행을 멈추고 숨을 헐떡이며 입을 열었다.

"헉헉, 오늘 밤 내 방으로 찾아오면 흰 빵에 따뜻한 고기 스튜를 맛볼 수 있을 거야. 어때? 생각 있어?"

징그러운 눈초리로 로디의 몸 구석구석을 훑어보는 감독관 얀스, 놈은 남색가였다.

'씨발 새끼!'

진짜 죽여버리고 싶다.

힘만 있다면.

더 이상 발길질이 없자 고통을 꾹 참고 아픈 몸을 일으킨 로디.

다시 곡괭이를 잡고는,

"···할당량 채워오겠습니다."

"낄낄낄, 멋대로 해봐. 아무리 용을 써도 네 팍팍한 인생은 그대로일 테니까."

그래, 그렇게 될지, 안 될지 끝까지 가보자.

어둑해진 초저녁.

로디는 다시 갱도 안으로 들어갔다.

미테란 대륙은 마나가 풍부한 세상.

그래서 마나가 결정화 상태로 변해 땅속에 묻혀있다.

대륙 곳곳에 분포되어 있다.

워낙 많아서 최하급과 하급은 캐내지도 않는다.

최소한 중급과 상급, 최상급만 상품으로 판매된다.

마정석 광산은 일당도 너무나 박해서 일하려는 사람들도 별로 없다.

중노동이지만 벌이는 시원찮으니 광부들이 가장 기피하는 데가 마정석 광산, 일하러 오는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강제로 끌고 오는 수밖에.

그런 이유로 테일즈 마정석 광산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거의 빚에 팔려 온 반노예들이었다.

로디도 그랬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광산노동자 중에 자신과 비슷한 케이스가 많았다.

노동자들에게 돈을 빌려준 고리대금업자가 같았다.

아버지를 광산으로 보내고, 자신마저도 광산에 팔아버렸던 그놈 말이다.

그 고리대금업자가 테일즈 백작 가문 소속이란 소문도 있었다.

어떤 방법으로든 빚을 지게 해 강제로 광산에 투입하는 방식으로 노동자들을 모았겠지.

쾅쾅쾅쾅!

로디는 갱도 제일 안쪽에서 채광을 시작했다.

어차피 정상적인 방법으로 이 광산을 벗어나는 건 불가능하다.

'반드시 탈출한다.'

탈출 말고는 답이 없다.

그렇지 않으면 굶어 죽거나, 감독관 얀스의 애첩 신세가 될 터.

쾅쾅쾅쾅!

로디는 배고픔도 잊고 곡괭이질에 열중했다.

순간!

쿡! 데구르르.

"오!"

어둠 속에서도 반짝반짝 빛나는 주먹만 한 돌.

"최상급이야."

아무리 마정석이 흔하다지만 최상급까지 그런 건 아니다.

최상급은 귀해서 가격이 꽤 나간다.

주머니에 고이 모셔두고.

'이 정도면 할당량은 충분해.'

운이 좋다.

오늘은 밥을 먹을 수 있겠다.

그때였다.

찌지지직,

투두두둑!

갑자기 위에서 떨어지는 돌 조각.

"···어?"

뭔가 갈라지는 소리.

쩌저저저저저저저···,

"이런!"

로디는 땅으로 굴러 갱도 벽에 바짝 붙었다.

동시에,

와르르르르, 무너지는 갱도.

"제기랄!"

어쩐지 운이 좋더라니.

※ ※ ※

광산 감독관 얀스는 갱도가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뭐? 무너졌다고?"

"네, 받침목이 너무 오래되어 썩어버린 것 같습니다."

"안에 사람이 있었나?"

"수소문해보니 로디가 야간작업하러 들어간 걸 본 사람이 있었습니다."

"하아, 씨발!"

골치가 아프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는 얀스.

"구조대 투입합니까?"

"미쳤어? 고작 애새끼 하나 때문에 구조대를 보내? 그 시간에 다른 광맥 찾아서 갱도 하나 더 뚫는 게 낫지."

"···알겠습니다."

얀스도 가만히 있을 수는 없다.

감독관으로서 보고는 해야 하니까.

그래서 광산 본부로 테일즈 백작가에서 파견 나온 관리인을 찾아갔다.

관리인은 무려 3서클의 마법사.

얀스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어, 어르신."

"무슨 일이냐?"

"갱도 하나가 사고로 무너졌습니다."

"피해는?"

"광부 한 명이 안에 갇혔는데···,"

"그딴 건 관심도 없다. 내가 묻는 건 마정석 생산량이다. 차질이 있진 않겠지?"

"괘, 괜찮습니다. 충분합니다."

마법사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을 이었다.

"만약 문제가 생기면 각오해야 할 거다."

"광부들을 쥐어짜서라도 생산량을 맞추겠습니다."

"그럼 가봐."

"네!"

잘됐다.

얀스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관리소 사무실을 나왔다.

'하필 로디 새끼가, ···아깝게 시리.'

얼굴이 반반해서 마음에 드는 놈이었다.

조금만 더 괴롭혔으면 스스로 자신의 방을 찾아왔을 텐데.

그게 가장 아쉬웠다.

※ ※ ※

로디는 슬며시 눈을 떴다.

"끄응,"

갱도는 무너졌지만 로디가 피한 곳은 안전했다.

'···살았구나.'

하지만 입구로 나가는 길은 크고 작은 돌덩이로 인해 완전히 막혔다.

꼼짝없이 갇혀버렸다.

'구조대가 오려나?'

부정적이다.

광산 관리자 입장에선 무너진 갱도를 복구하는 것보다 다른 갱도를 하나 더 파는 것이 훨씬 싸게 먹힐 것이다.

"으아아아아아아!"

크게 한번 소리쳐 봤다.

"살려줘!!!"

하지만 들려오는 건 메아리뿐.

"···."

이대로 끝?

천만에!

로디는 이빨을 꽉 깨물었다.

반드시 살아나갈 방법을 찾는다.

그런데 저 돌덩어리들을 어떻게 치우지?

'일단 기다려보자.'

혹시라도 구조대가 올지도 모르니까.

버티고 또 버텼다.

시간이 얼마나 지났는지도 몰랐다.

그나마 무너진 것이 토사가 아닌 돌덩어리라 작은 구멍을 통해 공기가 들어와 숨은 쉴 수 있었다.

또 스스로 빛을 발하는 최상급 마정석 덕택에, 어두운 곳에서도 시야 확보가 가능했고.

지금 로디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갈증과 배고픔.

갱도에 들어올 때 허리춤에 차고 왔던 물도 이미 다 마셨다.

먹을 것이 있긴 하다.

갱도 안에 듬성듬성 나 있는 붉은 동굴 버섯.

그러나 독버섯이다.

배고프다고 이걸 먹기라고 하는 날엔···,

'그 자리에서 죽을 거야.'

로디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한 번씩 살려달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질러봤지만 응답은 들려오지 않았다.

희망은 점점 사라져갔다.

결국 드러누워 버렸다.

눈을 뜨고 있는지, 감고 있는지도 분간할 수 없었다.

절망적이었다.

고작 스무 살 인생.

죽음만이 남았다.

지금까지의 삶이 주마등처럼 스쳐 갔다.

비교적 안정적이었던 유년 시절, 하지만 어머니가 병에 들고난 후부터 빚 때문에 가세는 기울기 시작했고.

부모님을 원망하지 않는다.

그분들은 최선을 다해 살아오셨다.

'마나의 축복이라도 받았다면.'

미테란 인간 중 소수만이 가지는 마나의 자질.

그랬다면 마법사로서 영지 혹은 왕국의 관리가 될 수 있었을 텐데.

하지만 로디는 재능이 없었다.

슬슬 눈이 감긴다.

어디론가 빨려 들어가는 의식.

이것이 죽음일까?

그때였다.

"···헉!"

로디는 눈을 번쩍 떴다.

뭐지?

죽을 때가 되어서 환각을 보나?

처음 보는 사람이 바로 눈앞에 있었다.

아니 눈앞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혹시 죽은 자의 영혼을 수거해간다는 사신 그림 리퍼인가?

그럼 낫을 들고 있어야 할 텐데.

그와 눈이 마주쳤을 때 로디는 깨달았다.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아아아!"

저 사람은 바로 자신이었다.

다른 세상의 같은 영혼말이다.

'김태주.'

그의 경험과 기억이 머릿속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지구 삼한제국, 파주 영지의 장남, 군인, 설악산, 영혼 연결, 혼원무상독령공, 선계, 신선, 선도와 천도, 여의주와 드래곤 하트···, 뭐?

'무슨 말도 안 되는!'

블랙 드래곤 파타갤라온이라니.

주신의 종복이자 균형의 수호자, 세계 최강의 생명체.

9서클 마법사마저도 감당할 수 없다는 드래곤의 하트를 몸에다 품었다고? 그걸로 차원 게이트를 열어?

게다가,

"···세, 세상에,"

라넬리아.

인간의 신.

같은 영혼 김태주는 감히 신과 대화를 나눴다.

심지어 위대한 라넬리아가 그에게 아쉬운 소리로 부탁을 했다.

제발 차원 게이트를 열어달라고.

'이럴 수가.'

하지만 의심할 여지가 없이 명백했다.

사실이라 해도 너무나 어이가 없다는 것이 문제.

'참! 이럴 때가 아니지.'

생각은 나중에.

로디는 자신이 무엇을 먼저 해야 하는지 깨달았다.

벌떡 상체를 일으키면서 바닥을 더듬어 날카로운 돌조각을 주웠다.

'무한공간 술법진부터 그려야 해.'

다른 세상의 같은 영혼, 김태주가 그러라고 했다.

그의 선기(仙氣)가 영혼 연결로 생겨난 통로를 통해 로디에게 전해졌다.

선기를 이용해 돌조각으로 상처를 내는 식으로, 양 손바닥에 무한공간 술법진을 그리는 로디.

'빨리! 연결이 끊기기 전에.'

시간이 없다.

선기는 모자라지 않게 충분히 공급됐다.

무서운 집중력으로 마정석이 발하는 빛에 의지해 술법진을 그렸다.

그리고 드디어···,

'완성했구나.'

술법진이 완성됐다.

동시에,

핏!

하고 끊긴 연결.

"휴."

아슬아슬했다.

로디는 그대로 바닥에 누워버렸다.

힘이 빠질 대로 빠진 상태.

하지만 정신을 차려야 한다.

영혼 연결로 얻은 경험과 지식, 그리고 무한공간.

그걸 발판삼아서 현재 처한 위기를 극복해내야 한다.

로디는 무한공간부터 확인했다.

광활한 크기였다.

실로 엄청났다.

고위급 마법사들만이 지닌다는 아공간 마법은 이에 비하면 작은 주머니 정도.

'공유창고도 생겼구나.'

이것이 핵심이다.

김태주, 선계의 신선 당군악, 그리고 자신, 미테란 차원의 로디, 이 셋만이 가질 수 있는 권능.

마법?

그까짓게 뭐라고!

당장 김태주와 당군악의 혼원무상독령공(混元無常毒靈功)만 제대로 익혀도 9서클 마법사 따윈 한 줌의 독수로 만들어 버릴 수 있다.

새삼 자랑스러웠다.

자신이 김태주와 같은 영혼이라는 사실이.

생각난 김에 혼원무상독령공부터 익히자.

독정(毒精)을 생성하는 것이 관건.

'독이 필요한데···,'

그거야 얼마든지 있다.

붉은 동굴 버섯 말이다.

또한 무너져 폐쇄된 갱도.

공기도 통하고 있으니 완벽한 폐관 수련실 아닌가.

로디는 갱도 구석에 나 있는 독버섯을 채취했다.

혼원무상독령공을 얻은 이상, 자신에게서 독은 식량이요, 영약이다.

둥그런 버섯 갓을 왕창 뜯어서 입에 넣고.

"윽!"

쓰다.

벌써 독 기운이 퍼지는 것 같다.

로디는 혼원무상독령공의 구결을 떠올렸다.

독기가 혈맥으로 흐른다.

독버섯을 입에다 더 쑤셔 넣고.

많이 먹으니 배고픔도 사라졌다.

독기가 단전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뭉치기 시작했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다.

실패할 염려도 없다.

독정을 만들만한 독이 있으면 쉽다.

마침내!

"아!"

로디는 느꼈다.

단전에 생성된 콩알만한 기운을.

'독정을 만들어냈어.'

혼원무상독령공 1성.

'이걸로는 부족해.'

아직은 완전하지 않다.

꾸준한 독의 공급이 없으면 흩어질 수도 있다.

로디는 갱도를 샅샅이 뒤져 독버섯을 찾아냈다.

계속 먹었다.

물론 혼원무상독령공도 운용하고.

시간이 빠르게 흘렀다.

어림잡아 일주일은 지난 것 같다.

독버섯도 다 먹었다.

혼원무상독령공 1성은 완성된 상태.

허기와 갈증은 변함이 없었다.

신공을 얻은 건 다행이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위기.

무너진 갱도에서 나가야 한다.

하지만,

'나갈 수 있을까?'

로디는 갱도를 막고 있는 바윗덩이를 손으로 옮겨봤다.

작은 것은 움직이지만 커다란 것은···,

'아직 무리야.'

어떡하지?

먹을 것은 해결해야 하는데···,

그때였다.

찌르르르!

머릿속에서 울리는 신호.

'설마?'

이 신호가 뭔지 알았다.

혹시 보냈을까?

뭐라도 들어있으면 좋겠는데.

무한공간을 열어보는 로디.

반짝반짝 빛나는 공유창고.

'있네.'

천만다행.

태주님이 보내셨다.

갖가지 모양과 크기의 암기들.

아공간 가방도 두 개나 들어있었다.

그 안에 든 음식물들.

햄과 치킨, 통조림, 더불어 큼지막한 선도까지.

같은 영혼인 태주님은 현재 자신이 가장 필요한 물건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아시는 것 같다.

'···이렇게나 많이?'

심지어 지구에서 채집한 독물들과 복용 방법이 적힌 설명서, 스마트폰도.

너무나 고마웠다.

이 귀한 물건들을 아낌없이 주다니.

그럼 자신은?

보답할 물건이 없을까?

있는 거라곤 갱도가 무너지기 전에 캐낸 최상급 마정석.

'이거라도···,'

로디는 공유창고에 마정석을 집어넣었다.

그러자 다시 빛이 꺼진 공유창고.

먹을 것이 생겨서 그런지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갈증도 났다.

무한공간에서 선도를 꺼내.

와그작!

"음음."

미치도록 향긋한 내음.

선기의 기운이 마른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 듯 온몸으로 퍼진다.

날아갈 것 같다.

지금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

자극적인 음식도 땡겼다.

태주님께서 보내주신 치킨 한 상자와 콜라도 꺼낸 로디.

먼저 닭다리 하나를 들어서 씹으니,

바삭!

잘게 부서지는 튀김옷.

"으음···,"

이렇게 황홀할 수가.

역시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 경험은 차이가 크다.

콜라도,

꿀꺽꿀꺽,

단번에 다 마셨다.

"꺼억!"

트림이 절로 나왔다.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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