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bnovel

26

=======================================

저 차원 너머 너머.

미테란 대륙이라는 곳이 있었다.

다양한 종족이 함께 공존하며 사는 세계

그중 인간사회는 풍부한 마나 덕분에 마법이 극도로 발달했다.

국가마다 마탑이 서너 개 이상씩 세워졌으며 왕족과 귀족 등, 지배계급은 전부 마법사들이었다.

전체 인구의 10%에 불과한 마법사들이지만, 지배층들은 태어나서 말을 배울 무렵 마법 주문부터 익힌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사회에서.

재능이 없으면 우격다짐으로, 재능이 있으면 더 좋고.

마법의 종류도 다양하다.

신성 마법, 흑마법, 화염, 냉기, 물, 바람, 전격, 정령···,

이 미테란 차원에도 신(神)이 있다.

하지만 신(神)은 하나가 아니다.

여러 신들이 만신계라는 곳에서 각 종족을 다스린다.

라넬리아는 인간 종족을 관장하는 신.

그녀를 섬기는 교황과 사제들도 마법사들.

그러나 라넬리아는 불만이 많았다.

지긋지긋할 정도로 미테란 인간사회는 지루했다.

마법화 사회에서 변화를 멈춰버렸기 때문이다.

천 년 전의 인간 문명과 현재의 인간 문명을 비교하면 어떤 모습일까?

소름 끼칠 정도로 똑같다.

인간들의 먹거리, 건축물, 입고 있는 옷,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만년이 지나도 그 모습 그대로일 것이다.

한마디로 정체된 세상.

공고화된 신분제, 뿌리 깊은 기득권층, 변화가 멈춘 사회.

이러니 권능을 숨기고 유희를 나간들 무슨 재미가 있겠나?

나가봤자 그게 그건데.

라넬리아는 고민했다.

어떻게 하면 미테란 대륙 인간 세상을 변화무쌍하고 활기 넘치도록 만들 수 있을까?

답은 하나다.

외부에서 수혈을 받아보는 것.

그녀는 세상이 하나가 아니라는 걸 안다.

미테란 대륙 말고도 다른 세상이 있다는 사실 말이다.

다른 세상의 문명을 미테란 대륙으로 가져와 이식시키면?

하지만 라넬리아는 미테란을 떠날 수 없었다.

신들의 신, 주신(主神)께 기도를 통해 애원을 해봤지만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다.

몰래 떠나는 것도 불가능하다.

차원을 이동하는 권능은 자신에게 없다.

주신이시라면 모를까?

그래서 포기하고 있던 참이었다.

욕심 많은 블랙 드래곤 파타갤라온이 자신도 신이 되겠다면서 차원 이동 마법을 창조해 미테란에서 도망치기 전까진.

라넬리안은 경악했다.

너무나 탐욕스러워서 균형자의 자격도 없던 놈이었는데.

자신조차 불가능한 차원 이동 마법을 성공시키다니.

라넬리안은 또 한 번 주신께 기도를 올렸다.

비록 자신은 차원을 이동하지 못할지라도 파타갤라온이 어디로 갔는지만은 알고 싶다고.

어찌 된 일인지 기도는 응답을 받았다.

주신께서 들어주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소망을 이루어 주신 것.

그리하여 그녀는 주신이 내리신 초월적 권능으로, 파타갤라온의 드래곤 하트를 매개로, 다른 세상을 간접적으로 경험할 수 있게 됐다.

그 과정에서 알게 된 몇 가지 사실들.

각양각색의 모습을 지닌 다른 세상과 파타갤라온이 차원 이동 마법을 성공한 원인.

우주에는 다른 세상뿐만 아니라 도플갱어처럼 똑같은 영혼의 지성체들도 여기저기 존재했다.

심지어 그들은 서로 영혼을 연결해 자신들을 인식하기까지 한다.

파타갤라온은 영혼 연결을 통해 차원 이동 마법을 성공시켰다.

탐욕의 본성을 못 이겨 영혼 포식 같은 극악한 일도 저질렀지만.

아무튼 라넬리안은 시간 날 때마다 파타갤라온이 무슨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지 관찰했다.

지구라는 차원도 그때 알게 됐다.

얼마나 변화무쌍한 세상인가?

원래는 마나가 없던 곳이었다.

그러다 뒤늦게 마나를 받아들였고, 그 여파로 멸망의 문턱까지 다다랐다가 가까스로 재기했다.

그들이 만들어낸 문명, 학문, 생활 양식, 모두가 새로웠다.

라넬리안은 욕심이 생겼다.

어떻게 하면 지구의 문화를 미테란에 접목할 수 있을까?

하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파타갤라온의 드래곤 하트를 통해 지켜보기만 할 뿐.

그러다 사건이 터졌다.

놈이 지구의 같은 영혼을 포식하고 중국이란 나라를 지배하려다, 인간이 만든 무시무시한 무기에 공격당해 깊은 잠에 빠지게 된 것.

그로 인해 간접적으로 관찰하는 것도 불가능하게 됐다.

라넬리안은 파타갤라온이 깨어나기만을 기다렸다.

한 100년 정도 지났을까?

그녀는 기상천외한 존재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먼저 파타갤라온은 죽었다.

신격을 가진 신선과 신격을 가진 원숭이에 의해.

그리고 김태주.

인간임에도 드래곤 하트를 몸에 이식해버린,

차원과 차원을 넘나들며 세상과 세상을 연결하는 권능을 지닌 인간.

심지어 만신계와 유사한, 이계 신들이 사는 선계라는 장소에도 방문했다.

아아아!

실로 경이적이었다.

인간이 어떻게 저런 힘을?

그렇다면 미테란 대륙은?

여긴 연결이 안 되나?

아니, 될지도 모른다.

김태주가 파타갤라온의 하트를 품었기 때문에 미테란도 연결될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제발 문을 열어줬으면.

그리하여 미테란 인간사회에도 지구의 문화가 전해졌으면,

하지만 그가 여는 문은 늘 똑같았다.

드래곤 하트의 힘을 사용할 때마다 간절히 바랐지만,

'하아, 제발.'

'아니, 거기 말고.'

'부럽네. 저런 것까지.'

'우리도 연결하고 싶어.'

이 간절한 갈망이 김태주란 인간에게 전해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 ※

용신의 능력.

바다의 지배자가 된 태주.

인도양과 대서양에도 들렀다.

용오름을 시전해 여의주의 힘을 뿌리니 수많은 마나 적합 생명체가 몰려왔다.

고래뿐만이 아니라 거북이, 문어 같은 생물들도 여의주의 은총을 입었다.

시간이 흐르고.

선박 운항 금지가 해제됐다.

다시 양산항에서 아메리카로 항해를 시작한 대형 컨테이너선.

"승선합시다."

"네!"

태주가 출항하는 배에 올라탔다.

기자 몇 명도 함께 탔다.

고래들이 배를 호위한다고?

이걸 어떻게 놓쳐?

뿌웅!

경적을 울리며 양산항을 떠나는 컨테이너선.

먼바다로 진입하자,

츠파파파팟!

컨테이너선 주위를 호위하듯 헤엄치는 생명체들.

"저, 저기!"

"고래다! 진짜 고래야!"

"와! ···미쳤다."

카메라 기자들이 그들을 촬영했다.

돌고래들은 촬영하기 좋게 점프하면서 날렵함을 과시했고.

"꾸이잇!"

"꾸잇!"

"꾸우우!"

그냥 헤엄만 치지 않았다.

어디서 찾았는지, 무시무시한 이빨을 자랑하는 변종 개복치 마수를 몰고 와서.

퉁! 퉁! 퉁!

대형 트럭만 한 개복치 마수가 마치 비치볼처럼 수면 위로 통통 튀어 올랐다.

여의주의 은총을 받은 고래들이 변종 개복치를 가지고 놀았다.

머리로 받고, 꼬리로 쳐올리고···,

짝짝짝짝!

배에 탄 사람들이 손뼉 치며 환호했다.

그러자 고래들은 더 화려하게 자신들의 힘을 뽐냈고.

생각보다 훨씬 강해진 바다의 수호자들.

이제 걱정은 완전하게 사라졌다.

아마 십 년 정도 지나면 바다 마수 밀집지대가 완전히 소탕될지도.

그런데 바로 그때!

최근에 컨테이너선 선장이 된 도민수가 태주에게 다가와.

"저어, 회장님."

"무슨 일이죠?"

"미, 밀항자가 발견되어서."

밀항자라니?

감히 누가 허가도 받지 않고 컨테이너선에?

"일단 구금해두세요. 이따가 심문하겠습니다. 무슨 목적으로 배에 탔는지."

"그, 그게, 구금이 불가능한 분들이라,"

뭐? '분'들이라니,

한 사람도 아니고, 도민수 선장이 존칭을 쓰고 있다면?

설마···,

"가보죠."

추측이 맞았다.

선장실에서 어색한 미소로 태주를 맞이하는 황제와 금수호 비서관.

"하아."

"···."

"···."

또 사고를 치셨구나.

선계에 신선들이 있다면 삼한엔 황제와 금수호가 있었다.

"아니, 난 가만히 있었는데, 수호가 고래를 가까이서 보고 싶다고 해서···,"

"폐하, 김회장이 믿겠습니까?"

태주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으니 제가 모셔다드릴게요."

"한 번만 봐주게. 국정은 별문제 없이 돌아갈 거야. 미리 얘기해두고 왔어. 조용히 쥐 죽은 듯 있을 테니, 제발."

난감하지만···, 하는 수 있나?

저렇게 사정하는데.

"알겠습니다. 될 수 있으면 얼굴 숨기고 다니세요."

"···고, 고맙네."

"그리고 아메리카에 도착하는 즉시 비행기 타고 삼한으로 가셔야 합니다."

"명심하지."

태주는 황제, 금수호와 잠시 이야기를 나눈 뒤, 컨테이너선에 마련된 자신의 거처로 돌아왔다.

선실은 아니었다.

선박 가장 아래에 적재한 빈 컨테이너 두 개를 합쳐 집처럼 꾸몄다.

이 안에서 할 일이 있다.

바로 게이트 오픈 연습하기.

이상하게도 게이트를 열게 된 이후부터 공유 창고 반짝임 간격이 길어지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하다.

직접 열어서 보낼 수 있는데, 공유 창고가 필요한가?

결국엔 몸이 넘어갈 정도가 되면 공유 창고 자체가 사라질지도 모른다.

뭐, 사라진다 해도 게이트 오픈 권능이 쭉 유지되면 별 상관없지만.

그러나 문제가 있다.

얼마든지 물건을 보낼 수 있지만 유지 시간이 짧고, 게이트 크기가 작다.

'열다 보면 더 좋아지겠지.'

시간도 늘리고 크기도 키우자.

이번에 열 곳은 천계 아파트 건설 공사 현장.

독선과는 미리 협의를 끝냈다.

현장에 직접 물품을 지원하겠다고.

한번 능력을 발현할 때마다 최선을 다했다.

드래곤 하트를 기반으로 독령, 선기, 여의주의 힘까지 다 끌어내어 신중하게 오픈했다.

더 크고, 더 오래가는 게이트를 만들겠다고 의식하면서.

지이이잉!

'좀 커졌나?'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이제 물건을 보내보자.

천계 아파트 공사가 마무리 단계.

먼저 인테리어 공사 자재들을 보냈다.

타일과 벽지, 바닥용 마루, 마감을 위한 몰딩 재료들.

더불어 건설 현장에 투입된 천계 신장과 지옥 모범 죄수들이 먹을만한 간식들.

쑤욱, 쑤욱, 쑤욱···,

잘도 들어간다.

물건들을 다 집어넣고 잠시 쉰 후에,

황천계에도 열고, 선계 기지국에도 열고, 환수계, 그리고 간간이 강호 무림의 사천 당가에도 보급품을 뿌렸다.

그러자 안에서도 물건이 넘어왔다.

툭툭, 데굴데굴.

당군악이 보낸 선도였다.

꼭 물건을 보낼 목적으로 열지 않았다.

열 수 있는 곳이라면 그냥 열었다.

그럴 때마다 이상한 환청은 계속 들렸고.

[제발···,]

[언제쯤···,]

[여기도···.]

태주는 무시했다.

이것만 들어서 완전히 알 수는 없지만···,

뭔가 느낌이 오긴 했다.

말하는 이의 의지가 섞인 메시지.

'아마도 다른 세상의 누군가가 연결을 바라는 것 같은데.'

이계의 용이 넘어왔던 세상일 수도.

그러나 그곳까지 신경 쓸 여유가 없다.

지구와 선계만으로도 바쁜 판에.

어딘지도 모르니 열 방법도 없다.

현재 열 수 있는 게이트에만 집중했다.

확실히 하면 할수록 늘었다.

초기 골프공 크기에서 핸드볼공, 축구공, 농구공···,

순간!

지이이이이잉!

비교적 큰 소리가 나면서···,

지름 50cm 이상은 될 것 같은 구멍이 오픈됐다.

"오!"

이를테면 개구멍.

이 정도면 사람도 들어가지 않을까?

서서 가지 않고 엉금엉금 기어서.

'들어가 보자.'

연 곳은 환수계의 구석진 곳.

가는 김에 일이삼백이도 데리고 오고.

태주는 차원 개구멍에 머리부터 집어넣었다.

약간의 저항감이 느껴졌지만,

쑤욱!

상반신이 들어갔다.

그러자 보이는 환수계의 풍경.

'되는구나.'

완전히 들어가진 않았다.

반쯤 들어가다 다시 몸을 뺐다.

순간 생각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나 말고 다른 사람들도 들어갈까?'

게이트 발생기가 아닌 자신이 직접 만든 문.

혹시 만든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건 아닌지, 다른 사람은 들어갈 수 없는 건 아닌지.

확인해보면 된다.

그럼 누굴 데리고 가나.

'여기가 구례였다면 서연씨나, 창훈이, 순철이를 데리고 갔을 텐데.'

선박에 승선해 있는 사람 중에서 골라보자.

그러나 선원들은 안 된다.

선박 운항에 맡은 바 임무가 있기에.

물론 한가한 사람도 있다.

바로 밀항자들.

황제와 금수호 비서관.

'일단 권유부터 해보고,'

무조건 간다고 할 테지만.

※ ※ ※

선계 멀티플렉스 기지국.

독선이 자리를 비우자마자 귀곡과 갈홍은 스마트폰을 켰다.

일단 계좌 확인부터.

"올랐소?"

"오늘까지 3연상이오."

전에 지구에 갔을 때, 귀곡은 도서관에만 있지 않았다.

신분증을 이용해 계좌 하나를 더 개설했다.

바로 증권사 주식 계좌.

들어있는 금액은 그리 크지 않았다.

겨우 3억 원 남짓.

검선과 원숭이가 라이브 방송 경쟁을 통해 어마어마한 후원금과 광고비를 벌었지만, 귀곡은 그에 미치지 못했다.

독선이 건들지 않은 이유였다.

하지만 돈이야 불리면 되지.

얼마 전에 지구의 기업 임원에게서 온 문자.

선계에서 서비스되는 모바일 통신이 유텔레콤이라는 걸 광고하면 안 되겠냐고.

돈을 불릴 기회였다.

그러라고 하고 즉시 주식 계좌로 돈을 이체해서, 유텔레콤 주식을 몽땅 사들였다.

발표 후 유텔레콤 주가는 연신 상한가를 찍었고.

"이제 팔 때가 된 것 같소."

"더 오를 여력이 있어 보이오만."

"아니, 너무 많이 올라서 수익 실현이 시작될 거요. 어깨 부근에서 파는 게 좋겠어."

스마트폰을 이용해 열심히 주식 공부를 해온 귀곡과 갈홍.

"이 회사는 어떻소? 그래프를 보니 꿈틀꿈틀 곧 치고 올라갈 기미가 보이오. 호재도 있고."

"쯧, 작전주 느낌이 강하게 나는데."

"작전주면 어떻소? 돈만 벌면 되지."

"개미들에게 피해가 갈지도 모르오."

"흐음."

"주식 토론방에 가서 경고나 해둡시다. 작전주 같으니 사지 말라고."

귀곡이 다른 회사 주식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이거 매입합시다. 고점에서 너무 떨어졌어."

"괜찮군. 특별한 악재도 없고, 반등이 강하게 오겠네."

돈이야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인터넷 세상에서 구독할 수 있는 컨텐츠들은 셀 수도 없이 수두룩하다.

뭐 어때?

주식거래가 불법도 아니고.

그래도 독선에겐 들키지 말아야지.

ⓒ 꾸찌꾸찌

=======================================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시끌벅적한 이슈라고 한다면 역시 컨테이너선을 호위하는 고래들에 관한 이야기였다.

사람들은 열광했다.

바다에 저렇게 고래들이 많이 살아남았나?

당연히 마수에 의해 멸종당했으리라고 생각했는데.

심지어 그 고래들이 인간을 도와주고 있었다.

대형 선박의 앞뒤 좌우에서 함께 헤엄치며 안전을 보장해준다.

누가 저렇게 만들었을까?

당연히 김태주 회장이겠지.

펫 테이머 능력까지 갖춘 모양.

하긴, 삼두백호도 테이밍했다는 소문도 돌았으니.

지금도 TV만 틀면 나온다.

티제이 해운 컨테이너 선박에 기자들도 같이 탑승해 매일매일 위성으로 생중계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난다, 고래!

└ 고뤠?

└ 하아, 누가 부장님들 데리고 왔어?

└ 고래는 우리의 친구.

└ 앞으로 고래 고기 처먹는 놈은 나한테 맞아 죽을 줄 알아라.

└ 고래 모양의 과자도 금지.

늘 비슷한 영상이라 지루할 법도 하지만 봐도 봐도 재미가 있었다.

간간이 고래들이 마수를 잡아서 가지고 노는 영상이 올라오기라도 하는 날엔 시청률이 폭발했다.

태평양으로 항해하는 컨테이너선만 아니었다.

대서양, 인도양 등등, 바다를 항해하는 모든 배에 호위들이 따라붙었다.

그동안 흑암철 하나만 믿고 가기엔 부족했었다.

효과가 영원할 거라는 보장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이젠 달라졌다.

엘리트 해양 마수도 씹어먹는 든든한 호위들.

비로소 바다는 안전해졌다.

그런데 한창 인터넷을 달구는 이슈는 호위 고래 말고도 하나 더 있다.

검선이 행한 일련의 행보들.

그가 지구에 방문한 이래, 말도 안 되는 사건들이 줄줄이 터졌다.

대표적인 것이 사하라 초원 거울 게이트에서 나타난 이계 괴수, 그리고 옛 중국 땅 무한에서 벌어졌던 비욘드 마수 레이드.

검선은 인간이라 여길 수 없을 정도의 초월적 무력으로 이계 괴수와 비욘드 마수를 자근자근 썰어버렸다.

이때 제천대성도 분신체와 본체를 통해 지구에 선을 보였고.

그 와중에 느닷없이 송출된 검선의 선계 인터뷰 방송.

신선들이 사는 선계, 그리고 천국과 지옥의 존재.

너무나 황당했다.

천국과 지옥이라고?

착한 일 하면 천국, 나쁜 짓 하면 지옥?

진짜 그런 단순한 권선징악의 세계가 존재하기나 할까?

특히 종교단체의 반발이 극심했다.

자신들의 교리에도 천국과 지옥이 나오지만 실상은 전혀 달랐다.

기존 종교인에게 있어 천국과 지옥의 기준은 선악(善惡)이 아니다.

오직 믿음에 의해서 결정된다.

믿음이 신실한 신도들은 천국으로.

불신자들은 지옥으로.

그런데 신앙심도 없는 일개 보육원 원장이 천국으로 올라갔다고?

거기에 강림차사라는 자가 나와 지옥의 존재까지 밝혔다.

처음엔 너무나 당황해서 아무런 생각도 하지 못했다.

반응이 너무나 폭발적이었으니까.

그렇게 어버버, 하고 있던 상황에서 실질적인 위협이 닥쳐왔다.

신도들이 이탈하기 시작한 것.

그 숫자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났다.

종교단체들은 대응에 나섰다.

이대로라면 다 죽는다.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종교인들은 여론을 주도할 목적으로 SNS와 게시판에서 댓글 부대 활동을 시작했다.

└ 헛소리하고 자빠졌네.

└ 사람을 바보로 아나? 천국과 지옥은 저런 데가 아니야.

└ 맞아! 어디서 애들 도덕책에나 나오는 유치한 이야기를.

└ 이단의 흉계입니다. 우린 지금 속고 있어요.

적절한 근거도 제시했다.

└ 선계라는 곳의 모습을 봐. 놀이공원이 있었잖아. 저게 무슨 선계야?

└ 그래, 자동차와 바이크도 다니던데?

└ 신선들이 아이스 아메리카노도 마시더라.

└ 그리고 무슨 신선이 삼한제국 언어를 써?

└ 신선뿐이냐? 강림이라는 차사도 삼한제국 말 유창하게 했잖아.

그러고 보니 이상하긴 하다.

도저히 선계라고 여길 수 없는 곳.

└ 솔직히 난 검선이란 사람이 신선이란 것도 못 믿겠어. 제천대성도 그렇고.

└ 그럼 뭔데?

└ 코스프레겠지. 아니면 조작 영상이던가. 그 정도 조작이야 기술적으로 충분하니까.

└ 백홍표 원장은?

└ 배우 하나 섭외해서 얼굴 똑같이 만들면 돼.

믿는 사람보다 안 믿는 사람이 더 많았다.

강하다는 건 의심할 여지가 없었지만, 강하다고 해서 그들이 신선과 제천대성이라는 게 증명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 뭐, 영상이 다 맞는다고 치자. 그래도 선계에 모바일 통신이 말이 되냐?

└ 하긴···,

└ 산에만 들어가도 LTE 신호가 먹통인데, 뭐? 선계?

└ 이로써 증명되는 거지. 선계에서 촬영한 것이 아니라 지구 어딘가에서 찍었다는 것.

└ 이번에 유텔레콤 주가가 상한가 친 것도 수상해.

모든 주장에 나름의 근거가 있었다.

└ 만약 조작이라면 주체는 누군데? 왜 이렇게까지?

└ 검선이란 사람이 김태주 회장하고 친하다는 거에 주목해보자고. 의심해볼 필요가 있어.

└ 네 말은 배후에 김태주 회장이 있다는 의미잖아. 그 양반이 굳이 그런 짓을?

└ 지구의 종교를 무력화시키고, 자신이 주도하는 단일 종교를 창시해서 세상을 장악하려는 움직임 아닐까?

└ 설마!

음모론들이 판을 쳤다.

그리고 잘 먹혀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천국과 지옥의 존재, 선계와 지구 간의 모바일 통신 연결은 황당하기 그지없었으니까.

※ ※ ※

태주도 인터넷과 SNS 공간에서 이런 논의가 있다는 걸 알았다.

오히려 바라던 바였다.

믿는 사람이 적으면 적을수록 좋다.

음모론자들에게 고마운 마음까지 들었다.

자신이 종교를 창시하려 한다는 주장은 너무 나갔지만.

사실 검선의 선계 라이브는 미처 선계 통신 규정을 세우기 전에 일어난 돌발적인 사건이었다.

애초 태주가 통신을 연결하려 했던 목적은 신선들의 유희였다.

지구에 방문하지 않아도 세상에서 일어나는 각종 사건과 다양한 컨텐츠를 실시간으로 보고 즐기게 하려던 의도.

그래서 방금 백서연이 회사 차원에서 유언비어에 대응하겠다고 알려왔을 때도 그러지 말라고 지시했다.

사람들이 믿어주지 않는 게 훨씬 더 편하다.

진짜라고 알려지면 되레 귀찮아진다.

태주는 선박 컨테이너 안에서 계속 차원 이동 게이트를 만들었다.

동시에 보급품도 보냈고.

들어갈 수 있다는 건 확인했다.

자신 말고 타인, 즉 평범(?)한 사람들도 들어갈 수 있을까?

이를 위해 몇 번 더 게이트 오픈 연습을 했다.

더 크고, 더 오래가는 게이트.

몇 번 하다 보니 또 커졌다.

이제 지름이 1m는 된다.

그 과정에서 머릿속에서 울리는 환청 같은 현상은 더 뚜렷해졌다.

뭐, 별수 있나?

참고 가야지.

순간!

똑똑.

컨테이너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리고,

벌컥!

문이 열리면서,

"김회장, 선장에게 들었네. 우릴 불렀다면서?"

"오! 여긴 선실보다 더 좋군. 진작 부를 것이지."

황제와 금수호가 왔다.

얼굴들이 좋아 보인다.

하루하루가 재미있나 보다.

그들에겐 태평양 항해가 꿈만 같았다.

번잡한 일상에서 벗어나 바다를 보며 멍도 때리고, 고래들과 교감도 나누고.

"저어, 다른 게 아니라···,"

"어서 말해보게."

"저하고 여행할 생각 없으세요?"

"응? 지금 하고 있잖아."

"지구 말고 다른 곳이오."

"···뭐?"

이게 무슨 말이지?

지구가 아니라면···,

"혹시?"

"네, 선계."

"으음,"

"어, 어떻게?"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행동으로 보여줘야지.

지이이잉!

컨테이너 내부에 차원 개구멍이 열렸다.

"헉! 세, 세상에···,"

"저 구멍은 대체?"

깜짝 놀라며 입을 떡 벌린 황제.

"저기로 들어가면 선계가 나옵니다."

"허허, 그랬군, 그랬어."

"원하시면 저하고 같이 갔다 오실래요?"

하지만 금수호 비서관은 떨떠름한 표정.

"사람이 들어가도 되는지 모르겠군."

목소리에도 우려가 섞였다.

"제가 해봤습니다. 별다른 문제는 없었어요."

"솔직히 자넨 인간이라 볼 수 없잖아. 우린 보통 사람이고."

"네? 저도 인간인데요?"

"···아닌 것 같은데?"

태주는 금수호의 걱정이 뭔지 알겠다.

다른 사람이라면 모를까, 삼한의 지배자 황제 아닌가.

만에 하나, 잘못되기라고 한다면···,

그러나 안전하다는 걸 확인했다.

좀 전에 바다에서 물고기 한 마리를 잡아다가 실험도 했다.

집어넣었다가 뺐다가.

물론 물고기는 파닥파닥 멀쩡했다.

"일단 내가 먼저 넘어 가보겠네. 그리고 괜찮은 것이 확실하면 그다음 폐하께서···,"

"이미 늦은 것 같습니다만."

"···응?"

"저길 보세요."

금수호는 구멍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황제가 넘어가고 있었다.

허리를 굽히고 쪼그려서 개구멍으로,

쑥!

"···환장하겠군."

그새를 못 참고.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더니.

자신도 허리를 굽혀 구멍 안으로 넘어갔다.

그리고 태주도 뒤를 따랐다.

※ ※ ※

지이이잉!

선계 월드 한쪽 구석에 개구멍 게이트가 열렸다.

황제가 먼저, 뒤를 이어 금수호, 태주까지 엉금엉금 기어 나왔다.

"여기가?"

"네, 선계 맞습니다."

확실히 라이브 방송에서 봤던 그곳이 맞았다.

선계 월드라는 놀이공원 말이다.

"잠시 이곳에서 구경이나 하고 계세요. 전 일이삼백이 데리고 올게요."

"우, 우리 둘이 있으라고? 그러다 누가 오면···,"

스팟!

순식간에 사라지는 태주.

어쩔 수 있나?

올 때까지 기다려야지.

황제와 금수호는 시골에서 갓 상경한 촌사람처럼 멀뚱멀뚱, 주위만 구경하고 있었다.

"도로가 쫙 뻗어있군."

"화강암을 잘라서 만든 것 같습니다."

"거참! 누가 여길 선계라고 여길까."

갑자기!

부우우웅!

선계 도로를 질주하는 대형 자동차 한 대가 그들의 앞을 지나쳤다.

"···자동차네."

"그러네요. 백두 자동차 같습니다만."

순간!

끼익!

멈춰 선 자동차.

그러더니 슬슬 후진하면서 위이잉, 창문이 내려갔다.

누구지?

창문에서 나이를 알 수 없지만 너무나 기품있고 아름다운 여인이 얼굴을 내비쳤다.

황제와 금수호는 바짝 얼어버렸다.

"너희들은 인간이 아닌가? 여긴 인간들이 함부로 올 수 없는 곳인데."

감히 쳐다볼 엄두도 안 나는 무시무시한 기운.

고개가 저절로 숙여졌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그, 그게···,"

뭐라고 말해야 하지?

대답할 엄두도 못 내고 있던 금수호가 황제의 옆구리를 쿡쿡 찔렀다.

"사, 사실은 김태주 회장을 따라서,"

"아하!"

뭔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여인.

"그럼 너희가 태주 대협의 지인이란 말이더냐?"

"네네, 매우 친한 사입니다."

"호호호, 알았다. 잘 놀다 가거라."

그러면서 조수석에 탄 또 다른 여인에게 말했다.

"월궁 선자야, 저들에게 선도 몇 개씩 주려무나. 배가 고플지도 모르니."

"네, 왕모님."

월궁 선자는 조수석에서 내려 황제와 금수호에게 각각 3개씩의 선도를 건넸다.

부우웅!

다시 출발하는 자동차.

그제야 몸이 풀린 황제와 금수호는 홀린 눈으로 자동차 꽁무니만 바라봤다.

"···후우."

"하아!"

진짜 무서웠지만 그래도 선도를 득템했다.

"···하나만 먹을까?"

"그럴까요?"

바로 그때!

"너흰 누구냐? 산 사람이 여길 왜?"

누군가 또 왔다.

검은색 옷과 하얀 얼굴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한 남자.

좀 전에 마주했던 여인과는 또 다른 공포심을 자아내고 있었다.

황제와 금수호는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

"···."

어디서 많이 본 얼굴인데.

라이브 방송이었나?

'설마 강림···,'

미치겠다.

도대체 김태주 회장은 언제 오는 거지?

※ ※ ※

지구.

사람들이 믿건 안 믿건 검선과 제천대성의 인기는 여전히 하늘을 찔렀다.

너튜브 동영상 해시태그에 #검선, #제천대성만 있어도 낭낭한 조회수가 보장될 정도.

그래서 그들의 인기를 밑에 깔고 조회수를 빨아먹으려는 너튜브 스트리머들도 엄청나게 많았다.

유럽제국의 너튜브 스트리머 루돌프도 그랬다.

그래서 그는 '검선과 제천대성의 발자취를 따라서' 라는 제목으로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는 중.

루돌프가 있는 곳은 지구 사하라 초원지대였다.

"바로 이곳이야. 검선이 최초로 자신의 힘을 드러낸 곳, 기억나? 이 부근에서 게이트가 열렸지."

└ 캬! 대단했었어. 그때 하늘에 뜬 검이 몇 개였더라?

└ 나도 지금 복습 중이다. 그 커다란 괴수들이 막 썰려 나갔잖아.

└ 제천대성은? 생각해보면 그 당시 제천대성은 검선에 비하면 조금 약하더라고.

└ 분신체였는데?

"맞아. 분신체였어. 그리고 제천대성의 진가는 중국 무한에서 충분히 보여줬고."

└ 김태주 회장도 좀 끼워줘라.

└ 맞아. 인간이면서도 그들에게 뒤지지 않았지.

└ 그래, 검선하고 제천대성과 같이 논다는 것만 해도 어딘데.

"김태주 회장이야 말할 필요도 없잖아. 내 방송 최종 목적이 그 사람과 인터뷰해보는 거고, 그래서 다음 행선지는 삼한제국의 구례야."

└ 되겠냐?

└ 만나지도 못할걸?

└ 꿈 깨라고.

└ 차라리 옛 중국 무한 땅에서 방송 한 번 해보는 게 어때?

"그것도 괜찮지. 하지만 교통편이 없잖아."

그런데,

└ 헤이, 루돌프, 카메라 렌즈에 먼지가 낀 것 같은데,

"먼지?"

└ 자꾸 눈에 거슬린다고, 렌즈나 한번 닦아봐.

"알았어."

루돌프는 극세사 천으로 액션캠 렌즈를 정성스럽게 문질렀다.

"이제 됐지?"

└ 아니, 아직 보이는데?

└ 그렇군. 나도 보여.

└ 저기 저쪽에 가느다란 선 말하는 거구나.

└ 렌즈에 금이 갔나 봐.

"에이, 이거 산 지 얼마 안 된 거야. 몇 번 촬영하지도 않았다고."

└ 흐음, 이상하네.

└ 루돌프, 카메라를 돌려봐.

"어디로?"

└ 왼쪽으로, 더더, 이제 앞으로 가봐. 카메라를 조금 더 들고, 그래, 거기!

그리고 루돌프도 목격했다.

"어?"

카메라 렌즈 문제가 아니었다.

실제로 하늘에 희미한 선 같은 것이 보였다.

'뭐지?'

허공에 생겨난 균열.

마치 크리스털 유리잔에 생긴 실금처럼 말이다.

'저긴···,'

루돌프는 저곳이 어딘지 알았다.

'게이트.'

소름 끼치는 대형 이계 괴수들이 폭포수처럼 쏟아냈던 게이트.

그게 처음 열린 곳이 바로 저기쯤이었다.

ⓒ 꾸찌꾸찌

=======================================

환수계.

미호 선자는 또 한 번 한숨을 푹 쉬었다.

"아니, 그걸 못해? 너 영수 맞기나 하는 거니?"

"냐앙."

"기운은 충분한데···, 아직 어려서 그런가?"

"냥!"

"나이 핑계 대지 마."

"냐앙···,"

영수와 환수들이 공통으로 가진 능력.

인간으로 변신할 수 있는 술법.

고된 수련을 거쳐 환수계로 승천하면 기본적으로 갖춰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놈은 고양이에서 백호, 백호에서 머리 3개 달린 거대 호랑이로만 변신할 수 있을 뿐, 제 몸을 인간으로 바꾸는 건 하지 못했다.

"넌 좀 간절할 필요가 있어."

"냥?"

"인간으로 변하면 얼마나 좋은 줄 모르지? 그놈들이 할 수 있는 건 우리도 다 할 수 있단 말이야. 인간인 척 몰래 살아갈 수도 있고···,"

"냐아아아?"

"간 빼먹으려고 변신하냐고? 죽을래? 사람 간 빼먹는 구미호는 여기 오지도 못해."

"냐난."

"알았어. 사과받아줄 테니까, 집중해서 한 번 더."

"냐앙!"

일이삼백이가 꼬리를 높게 치켜세웠다.

그동안 많이 배웠다.

변신이야 늘 하던 것 아니었나?

사람으로 변하지는 못했지만.

내부의 기운을 움직여 자신이 변하고자 하는 인간의 모습을 상상하면서.

펑!

"냐앙!"

됐다.

앞발은 손으로, 뒷발은 다리로.

비록 조막만 한 몸집일지라도 인간은 분명했다.

하지만,

"옴마!"

미호 선자는 놀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인간화에 성공한 것은 맞는데, 아직 어려서 어린아이의 모습으로 변한 것도 이해하는데···,

"머, 머리가 3개?"

이를테면 삼두인간, 삼두어린이.

"어머, 어머, 이걸 어째."

침착해야 한다.

실수가 있었을 것이다.

"다시 한번 변신해봐."

"냥!"

펑!

"···."

역시 똑같다.

어깨 위에 목이 3개.

"또, 또 해봐."

펑!

"계, 계속."

펑! 펑! 펑! 펑···.

미호 선자는 식은땀을 삐질삐질 흘렸다.

큰일 났다.

몇 번을 변신해도 달라지지 않았다.

삼두어린이라니.

어떻게 수습하지?

"···변신 풀어."

"냐앙."

펑!

"너 태주 대협 앞에선 절대로 변신하면 안 돼. 그리고 오늘 일은 절대 비밀이야."

"냥?"

"아니, 그냥 아예 변신 같은 거 꿈도 꾸지 마. 한 백 년 정도 더 살다가 나이 먹으면···,"

그때였다.

"일백아!"

이 목소린?

"냐아아아앙!"

일이삼백이가 빠르게 달려가 태주에게 폴짝 안겼다.

"잘 놀았니?"

"냥!"

"별일 없었고?"

"냐아아앙."

"아! 미호님께 많이 배웠다고? 뭘 배웠는데?"

일이삼백이와 미호 선자의 눈이 마주쳤다.

필사적으로 고개를 흔드는 미호.

"냐, 냐아아!"

"아하, 수련해서 강해졌단 말이지? 다행이다."

태주는 미호에게 감사의 의사를 표했다.

"미호님, 우리 일이삼백이 가르치고 보살펴줘서 감사합니다."

"어음, 그, 그게, 네네."

"혹시 필요한 거 있으시면?"

"아, 아뇨! 없어요. 괘, 괜찮아요."

"그래요? 생각나면 언제든 말하세요."

"···네."

일이삼백이도 찾았고,

그만 가볼까?

두 사람은 뭘 하고 있나 몰라.

데리고 가서 신선들에게 인사나 시켜야지.

※ ※ ※

당군악은 귀곡, 갈홍과 함께 선계 LTE 통신 규칙을 완성했다.

스마트폰을 개통하려면 누구나 필수적으로 교육을 받게 할 예정.

하나라도 어길 시엔 이용 정지 시키겠다는 엄포도 놓고.

유심칩 개통을 신청한 신선들과 천인들이 멀티플렉스 상영관에 모였다.

교육을 위해 당군악이 직접 나왔다.

1. LTE 서비스 지역은 선계에 한정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멀티플렉스 주변과 선계 월드요. 그 이외의 지역에선 서비스가 되지 않소. 황천계도, 천계도."

신선들은 받아들였다.

어차피 선계에서 놀 텐데.

2. 인터넷 및 SNS 공간에서 반드시 익명을 유지한다.

"네트워크가 연결되면 사이버 공간 안에서 많은 지구인과 접촉이 있을 거요. 그 상황에서 절대 자기 신분을 노출하지 맙시다. 굳이 신선이라고 밝힐 필요가 없잖소. 이건 황천계나 천계도 적용되오."

이건 불만이다.

신선이라 밝히지 말라고?

자랑질하지 말라는 뜻 아닌가.

그게 얼마나 재밌고 짜릿한데.

하지만 천인들은 달랐다.

해맑이를 비롯해서 상영관에 모인 천인들은.

"네!"

"절대로 안 밝힐게요오!"

"인터넷에선 지구인이죠."

역시 착하고 영민한 천인들.

당군악이 우려하는 바가 무엇인지 다 이해하고 있었다.

신선들이 천인들 반만 따라가도 얼마나 좋을까.

3. 유료 구독 서비스 가입에 제한은 없지만 불법다운로드나 사이버 범죄행위는 엄단한다.

"개통 즉시 선계 코인을 지구 환율로 따져서 계좌에 입금해주겠소. 부족하면 대출도 가능하오. 소정의 이자만 지불하면 되니까. 그러니 절대 불법 다운은 하지 맙시다."

큰 원칙은 3개.

당연히 세부 조항도 마련했다.

잔머리 굴리기로 따지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 신선들 아닌가.

혹시나 발생할지도 모를 상황을 가정해서 조목조목 세부 조항을 작성해 메시지로 배포했다.

검선은 따로 불러서 선계 라이브 방송 규정을 설명했다.

가장 걱정됐기 때문이었다.

"앞으로 라이브 방송은 금지하겠소. 녹화해서 선계 윤리 위원회 심의를 거친 후 너튜브에 올리시오."

"···현장감이 떨어지는데."

"현장감은 무슨, 그리고 후원받는 것도 금지요."

"후, 후원을 받지 말라니, 그런 어디서 돈을 벌라고? 아직 벌금도 채 내지 못했소."

절망적인 표정의 검선.

이러면 다 물거품이다.

벌금 완납은 고사하고, 시계 컬렉션, 자동차 컬렉션, 바이크 컬렉션, 각종 명품 컬렉션, 다 그림의 떡이 된다.

망연자실한 검선에게 당군악이 위로하듯 달래며 말했다.

"대신 조회수로 인한 수익은 인정해드리리다."

"오! 저, 정말이오?"

"날 못 믿소?"

"믿어야지! 독선 말을 안 믿으면 누구 말을 믿어?"

검선은 희희낙락하며 어디론가로 뛰어갔다.

아마 녹화 방송 준비를 하려는 거겠지.

그러자 귀곡이 걱정스러운 말투로.

"조회수 수입도 짭짤할 터인데, 검선의 조회수면 나머지 벌금은 금방 마련할 거요."

하지만 당군악은 걱정이 없었다.

"그땐 세금 때리면 되지."

"세금?"

"300억은 벌금이었잖소. 세금은 따로 매길 거요. 최고 세율로!"

"···아!"

"그리고 가끔 라이브 방송도 허용해주고, 라이브에 설마 실수가 없을까?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트집 잡아서 벌금도 부여할 계획이라오."

"···."

정말이지, 피도 눈물도 없는 지독한 독선.

귀곡은 절대 주식 계좌를 들키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바로 그때!

벌컥!

"와, 왔다! 왔소!"

신선 한 명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상영관 문을 박차고 들어오면서 외쳤다.

"왔다니? 누가?"

"황금 고블···, 아니, 태주 대협 말이오."

"저, 정말이오?"

"지금 1층에 있다니까. 얼빵하게 생긴 인간 두 놈을 데리고."

"어서 가봅시다."

우르르르,

몰려나가는 신선들.

당군악은 혀를 내둘렀다.

'해냈구나.'

태주가 기어코 사람이 드나들 만한 게이트를 열었다.

게다가 다른 사람까지 데리고 왔다고?

아무튼 내려가서 데리고 오자.

신선들에게 시달리기 전에.

※ ※ ※

황제와 금수호는 신선들에게 맡기고.

태주는 멀티플렉스 상영관 안에서 독선과 멀리 떨어져 앉은 채로 같이 있었다.

치지지직, 치직!

그럼에도 서로를 속박하는 빛의 사슬은 여전했지만 이젠 끌려갈 일도 없으니까.

염라대왕도 태주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강림에게 듣고 친히 행차했다.

그간 구멍을 통해 준 선물에 감사 인사도 할 겸.

그전까지 있었던 일들을 이야기하는 태주와 당군악.

그런데 옆에서 대화를 듣던 염라가 깜짝 놀랐다.

"흑암철을 두른 철갑선이 마수에게 공격받았다고?"

"네, 자칫하면 침몰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 그럼 흑암철의 효용성은 사라졌단 말인가?"

떨리는 목소리의 염라.

코인 수급처가 막힐 판이다.

태주가 염라를 안심시켰다.

"천만에요. 쓸데가 너무나 많은데요. 오히려 더 많이 필요합니다만."

"저, 정말?"

"아시잖아요. 진실이란 걸."

"흐음."

굳이 배를 만들지 않아도 쓰일 데가 많다.

당장 기차선로를 까는 데 사용해도 된다.

더구나 광석이 아닌 주괴로 제련되어 넘어오는 흑암철.

중간 가공 단계를 거칠 필요도 없다.

티제이 그룹이 건설과 철강, 중공업까지 소유한 터라 써도 써도 모자랄 판.

"다행이군. 다행이야."

그제야 안도하는 염라.

하마터면 흑암철을 팔아먹지 못할뻔했으니까.

그러다 갑자기 문득 생각났다는 듯 염라가 당군악에게 물었다.

"참! 여기서 지구와 실시간 통신이 가능해진 게 확실한가?"

"네, 선계에서는요. 하지만 황천계 연결은 아직 고려하고 있지 않습니다."

"잘 생각했네. 우린 이승과 거리를 둬야 할 필요가 있어. 우리 관리들에게도 유심칩인가, 뭔가 하는 거 주지 말게."

"네, 그럴 생각입니다."

그래도 호기심은 생기는 듯.

"나도 한번 해볼 수 있겠나? 보고 싶기는 하군."

"드리지요."

염라가 스마트폰을 받았다.

가지고 놀 동안 멀리서 태주에게 말하는 당군악.

"어쨌든 하던 이야기, 마저 하세. 게이트를 열 때마다 환청이 들린다고?"

"네, 머릿속에서 계속 앵앵거려요. 귀찮게끔."

"흐음, 드래곤 하트와 관계가 있을 듯한데."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하여튼 용왕을 믿어서는 안 되는 거였어. 내 만나면 단단히 따져야겠군."

"에이, 그러지 마세요. 여의주 덕분에 바다가 안전해졌는데."

"그거야 고맙긴 하지만···."

순간!

"응?"

스마트폰을 보다가 뭔가를 발견했는지, 살짝 눈을 치켜뜨는 염라.

"무슨 일입니까? 통신이 끊겼습니까?"

"그건 아니고, 아무래도 지구에 무슨 일이 생긴 것 같은데."

"네?"

"포털에 뉴스가 쫙 깔렸어. 한번 보게."

태주도 스마트폰 전원을 켜서 확인했다.

속보로 도배된 포털사이트.

사진과 동영상도 올라왔다.

이게 무슨 뜬금없는 소식?

"···균열?"

당군악도 자신의 스마트폰으로 기사와 영상을 확인했다.

"균열이라니, 저게 완전히 갈라지면 게이트 같은데, 검선과 자네가 닫아서 끝난 거 아니었나?"

"글쎄요. 그러긴 했는데, 솔직히 게이트가 맞는지도 의심스럽습니다. 그때와는 양상이 사뭇 달라서."

순간!

"가만! 이거 혹시?"

염라가 뭔가 떠올렸는지 눈살을 찌푸리면서 말했다.

"대왕님, 뭔가 아시는 거라도···,"

"2차 공습이군."

"네?"

2차 공습?

"귀곡과 갈홍이 마도 공학을 공부한답시고 다른 세상의 마공학자 자크 델루안의 기억을 더듬었을 때 알게 된 사실이 있네. 검선과 자네가 닫은 건 1차, 그리고 이번 것은 2차."

이어지는 염라의 설명.

"1차는 인위적이었지만 그를 통해 길이 생겨버린 셈이지. 길을 통해 2차가 오는 식이야. 1차보다 훨씬 크게, 자크 델루안의 세상도 2차 공습에서 망했고."

"아!"

과거, 인간 같지도 않은 빈센트 모레티를 무한공간에 넣어 선계에 왔을 때.

놈은 자폭할 의도로 다른 세상의 같은 영혼을 불러들여 영혼 합일을 시도했었다.

결과적으로 원플러스원.

자크 델루안까지 잡았다.

그리고 초혼령(招魂鈴).

죄인의 생전 기억을 들여다보는 황천계의 보패.

염라는 귀곡과 갈홍의 마도 공학 학습을 초혼령으로 도왔다.

빈세트와 자크의 기억을 불러내면서.

"사실 자크, 그놈의 세상은 만만한 수준의 문명이 아니었어. 고도로 발달한 마도 공학 문명아닌가?"

그랬다.

마도 공학의 얼마나 뛰어난 것인지, 게이트 발생기 하나만 봐도 안다.

어쨌든 미친 마도 공학자 자크 델루안이 감행한 무작위 차원 게이트 발생 실험, 게이트가 열린 1주일 동안 괴수들이 쏟아졌고.

"희생이 엄청났지만, 그쪽도 1차 공습은 충분히 막아냈네. 게이트를 닫아버렸지."

다들 끝난 줄 알았다.

2차 공습이 시작되기까지는.

"이성이라곤 하나도 없고, 파괴 본능만 남은 무지성체의 괴수들이라 그런지, 한번 맡은 다른 세상의 냄새를 집요하게 쫓은 거지."

이미 한번 열렸던 차원의 틈이었다.

무지성의 괴수들이 원래 그런 힘을 가진 놈들이었을까?

결국 저 스스로 문을 열고 자크 델루안의 차원을 재차 침략했다.

"애초에 길을 뚫지 않았다면 모르겠지만 이미 열렸던 터라···, 2차가 치명타였어. 더 강하고, 더 많은 숫자의 괴수들, 살아있는 건 모조리 죽여버렸어. 인간이든, 동물이든, 나무와 작은 풀뿌리까지."

으스스하다.

지구도 사실 1차 때 매우 위험했다.

검선이 지구에 왔었기에 망정이지.

당군악도 걱정이 태산.

"신선들을 지구로 파견해야겠군."

그러나,

"아뇨, 안 그러셔도 됩니다. 저 혼자면 충분해요."

"하지만 2차 공습이 더 무섭다고 하잖아. 자네 혼자로는 안 돼."

태주가 씨익 웃었다.

"저도 그때와는 꽤 달라졌죠."

맞다.

독령은 기본, 여의주와 드래곤 하트까지 품었는데.

달라도 너무 많이 달라졌다.

"그래도···,"

"저 못 믿으세요?"

"당연히 믿지. 믿기는 하지만, ···정 부담되면 제천대성의 털이라도 넉넉하게 챙겨줌세."

"현재 가진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허어."

태주는 당군악에게 대안을 제안했다.

"이러면 어떨까요?"

"뭘?"

"저 혼자 2차 공습을 처리하겠습니다. 대신 그 과정을 실시간으로 중계할게요."

"···라이브 방송 말인가?"

"공개 방이 아닌 비공개 방으로, 그럼 초대된 특정인만 방송을 시청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같이 즐기자는 말이죠. 서로 소통도 하고, 훈수도 두고···, 뭐, 위험한 일이 생기면 도움 요청도 가능하잖아요."

"오!"

좋은 생각이다.

태주의 상황을 실시간으로 지켜볼 수 있으니까.

또 위험한 순간이 닥치면 게이트를 열라고 해서 즉시 신선들을 투입할 수도 있고.

염라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차라리 처음부터 큰 화면으로 다 같이 보는 게 어떤가? 우리도 보고 싶어. 선계 월드 광장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서 스마트폰 영상을 4K 빔프로젝터로 쏘는 방법으로."

"좋은 생각입니다. 대왕님."

"그리고 맨눈으로 보면 재미가 없지. 팝콘과 콜라, 간식도 팔고, 야외 주점도 열어 술도 한잔하면서···,"

"흐음, 아예 축제 형식으로?"

"그것도 괜찮겠군."

뭐야?

왜 갑자기 일이 커져?

그냥 비공개 라이브 방송을 제안했을 뿐인데.

염라와 당군악은 신이 났다.

"대왕님, 이참에 게이트 토토 같은 것도 도입할까요?"

"토토? 그건 뭔가?"

"태주의 게이트 완전 공략 시점을 추측해서 돈을 거는 겁니다."

"오! 도박?"

이거 점점···,

"좋아! 빅 이벤트에 도박이 빠지면 되나! 허면 단위는? 시간 단위로 정할 건가? 아니면 분 단위로?"

"박진감을 위해선 초 단위까지 계산해야죠."

태주는 두 사람의 대화에 그저 입만 떡 벌리고 있었다.

게이트 토토.

그러니까 공략 시작과 끝나는 시간을 놓고, 도박한다고?

"어어,"

큰일이다.

일이 너무 커졌다.

2차 공습이고 뭐고, 이게 더 걱정.

"저어, 웬만하면 간단하게···,"

"간단이라니! 지구에 닥친 위협을 자네가 홀로 처리하는 건데, 최대한 거하게 축제를 준비할 거야."

"···."

이제 게이트 마수 걱정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괜히 방송한다고 했나?'

ⓒ 꾸찌꾸찌

=======================================

선계 월드에 덩그러니 남겨졌던 황제와 금수호.

서왕모를 만나 선도도 하사받고, 이후에 강림차사와도 만났다.

태주와 아는 사이라고 하니, 강림차사가 얼마나 살갑게 대하던지···.

제발 나쁜 짓 하지 말고 착하게 살라는 충고도 들었다.

태주 대협의 지인을 지옥으로 보내기는 싫다면서 말이다.

그리고 신선들과의 만남.

선계 멀티플렉스라는 곳에 도착하니, 우르르 몰려오는 신선들.

김태주 회장은 누굴 만나러 간다면서 또 사라졌고.

황제와 금수호의 본격적인 선계 탐방이 시작됐다.

가이드를 자처하는 신선들에 의해.

"먼저 삼한의 폐하께서 친히 선계에 방문하셨으니 황송할 따름이오."

"···네?"

황제는 당황했다.

이분들이 왜 이럴까?

신선들에게 황제라는 직책은 아무것도 아닐 텐데.

"하찮은 저희에게 어찌···. 말을 낮춰주십시오."

"어허! 그러면 되나요? 우리도 폐하의 국민들입니다. 보십시오. 삼한 국민임을 나타내는 신분증을, 제 이름도 있지 않습니까! 김태백."

"···네네, 김태백 신선님."

"김단주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저는 김철장입니다."

신선들도 속셈이 있었다.

태주가 게이트를 스스로 열어서 선계에 왔다.

게다가 두 명의 인간을 데리고.

그럼 자신들도 언젠가는 건너갈 수 있다.

지구로 가서는 삼한제국에서 놀 거니까, 황제하고 친해져야지.

"여기 내 전화번호요. 잊어먹지 마시고 꼭 저장해 두시길, 그리고 폐하 번호도 좀···"

"드, 드리겠습니다."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멀티플렉스도 구경하고, 주선의 칵테일 바에서 술도 한잔 나누고, 도원도 관광하고, 천계 아파트 건설 현장에도 가고.

그 와중에 검선이 다가와서 조용히 속삭였다.

"황제, 오랜만이군."

"아, 검선님, 여기서 뵙습니다."

"내 자네에게 비밀리에 물어볼 게 있는데."

"물어보시지요."

"혹시 그···, 차명계좌 하나 만들 수 있나?"

"···네?"

차명계좌라니,

아니, 신선이 차명계좌가 왜 필요하다고?

"불법이란 건 나도 알고 있네. 하지만 악독한 신선 한 명 때문에 그동안 번 돈, 다 날릴 판국이라서 말이야."

"으음,"

"자넨 황제 아닌가. 그간의 정을 생각해서라도 차명계좌 하나 만들어줘. 거기에 돈을 넣어주면 더 좋고."

"지구에 가면 제정원에 이야기해서···,"

그때였다.

스으윽.

"···차명계좌?"

"히익!"

어느새 가까이 다가온 독선 당군악.

검선이 기절초풍했다.

"검선, 대체 제정신인가? 차명계좌?"

당군악이 추상같이 검선에게 호통쳤다.

"차명계좌를 만들어 돈이라도 빼돌린 셈이었소?"

"아, 아니, 내가 언제 그런 소릴 했다고,"

"그럼 잘못 들었단 말이오?"

"하하하,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

독선의 호통을 듣고 순식간에 몰려든 신선들.

빈틈이 생기면 물어뜯고 보는 승냥이 같은 그들이기에, 저마다 손가락질하며 검선을 비난했다.

"딱 걸렸군."

"캬! 역시 검선은 우리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아. 참 대단해."

"어떻게 차명계좌까지 생각했지?"

"어쩌면 대포폰에, 대포통장도 만들어 달라고 하겠어."

"이미 만들었을지도 모르오."

그러나 검선은 태연하게 대꾸했다.

"그냥 물어봤을 뿐인데? 물어보는 것도 죄인가?"

"저 뻔뻔한 얼굴 좀 보소."

"기가 차는군. 현행범인데도 부끄러운 기색이 없도다."

"황제! 저자의 신분증을 당장 말소시키시오. 삼한제국에 저런 범죄자가 있으면 안 되지."

"검찰을 시켜 저자의 계좌를 압수수색 하시오!"

"스마트폰도 조사해야지. 설마 사과폰은 아니겠지? 비번을 걸어 잠그기 전에 빼앗읍시다."

당군악은 한숨을 푹 쉬었다.

여지없이 드러난 신선들의 민낯.

태주의 지인인 황제와 금수호를 볼 면목이 없다.

그래서 둘에게 다가가서.

"미안하오. 그대들에게 못 볼 꼴을 보였어."

"괘, 괜찮습니다."

"아무튼 나하고 태주에게 갑시다. 지구에 일이 생겼소."

"네?"

깜짝 놀라는 황제와 금수호.

"지구에요?"

"그렇소. 이걸 보시오."

당군악은 황제에게 스마트폰을 건넸다.

사하라 초원에서 발견된 균열에 대한 기사.

"어어어, 또?"

"그때 끝난 것이 아니었어. 2차가 남아있었소."

황제와 금수호도 심각한 표정.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군요."

주위에 있던 신선들도 와서 스마트폰 기사를 봤다.

사하라 초원 균열 발생?

게이트로 변할지도 모른다니.

"이거 검선이 닫았다고 했던 그거 아니오."

"맞소. 어찌나 자랑질했는지 귀에서 피가 나올 지경이었지."

"그런데 또 열린다고?"

"쯧쯧, 여하튼 검선은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없어."

"라이브 방송으로 생난리를 치더니만,"

"뭐, 조회수만 쪽쪽 빨아먹은 거지. 후원도 무지하게 받았잖소."

"다 토해내시오."

검선의 얼굴이 붉어졌다.

"···내가 가서 다시 닫을 거요."

"웃기고 있네. 지구로 가려는 속셈을 모를 줄 아오?"

"아니, 난 순수한 마음에서···, 미, 믿어주시오."

"순수? 순수우? 흥! 지나가던 요괴가 웃겠소."

"차라리 주선이 금주한다는 소릴 믿고 말지."

"···."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저게 또 생길지 누가 알았나.

황제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달려온 백홍표도 이 사실을 알았다.

"지구에 큰일이 생겼다고요?"

당군악이 걱정하는 그를 달래듯 말했다.

"백천인, 걱정할 필요가 없네. 구례가 아니라 사하라 초원에서 터진 일이니까. 그리고 태주가 다 알아서 할 거야."

하지만 뉴스를 읽어보더니,

"저도 이참에 돌아가야겠습니다. 지구에 큰일이 생겼는데, 저만 선계에서 놀고 있으면 되나요? 마침 아이들도 보고 싶고 해서."

"알았네. 마음대로 하게."

그러자 독선 주위로 슬금슬금 모여드는 신선들.

"우, 우리도 같이 가면 안 되오?"

"태주 대협 도와줘야지."

"검선이 저지른 실수, 우리가 바로 잡겠소."

"믿어주시오! 잘 할 수 있다니까?"

하지만 씨알도 안 먹히는 당군악.

"우린 선계에서 할 일이 따로 있소만."

"할 일이라니?"

"축제 준비."

"응? 축제?"

"그게 뭐냐고 하면···,"

그리하여 당군악의 지휘 아래,

선계는 축제 준비에 들어갔다.

태주의 사하라 초원 게이트 솔로 레이드 라이브 방송.

신선들과 황천계 관리, 천계 천인과 신장들도 모두 참여하는 성대한 잔치가 예고됐다.

※ ※ ※

지이잉!

구례 태주의 자택 지하수련실에 게이트가 열렸다.

차례대로 빠져나오는 사람들, 고양이 한 마리도.

"이만 황궁으로 돌아가 보겠네. 삼한에서 일어난 사건은 아니지만 우리도 준비할 것이 있으면 해야지. 뭐 필요한 건 없나?"

"지금 사하라 초원에 사람들이 많이 있겠죠?"

"아마도···, 주로 너튜브 스트리머들일 걸?"

"위험하니까 다 돌려보내 주세요. 사람들이 많으면 제가 움직이기도 불편하고."

"알았네. 주변 국가와 협의해서 당장 처리하지."

황제와 금수호를 보내고,

"형님은?"

"서연이부터 만나볼 생각이야. 아이들도, 많이 걱정할 텐데."

백홍표도 보내고.

"너는···,"

"야앙?"

"이번엔 나하고 같이 가자."

"야아아아!"

"다치지 않도록 조심하고, 환수계에서 미호 선자에게 많이 배웠다면서?"

"···야, 야앙? 앙?"

"걱정 마. 부적 붙여 줄 테니까, 선도도 많이 먹여줄게."

슬슬 준비부터 해보자.

암기가 많아야 한다.

시간이 충분하다면 흑암철 가공해서 암기로 만들면 좋겠지만, 주괴 자체로 사용해도 쓸만하다.

'무한공간은 싹 비웠으니까.'

거기에 흑암철 주괴를 가득 담으면 된다.

'현재 균열 상황은?'

태주는 너튜브를 실행했다.

그러자 사하라 초원 실황이라는 제목의 방송들이 줄줄이 떠올랐다.

그중 하나를 골라서 들어가 보니.

'더 커졌네.'

허공에 새겨진 실금이 더 길고 굵어졌다.

그리고 균열 앞에 모인 사람들.

스트리머뿐만이 아니었다.

관광하려고 온 사람도 많았다.

방송국 기자들도 있었다.

'황궁에서 처리해준다고 했으니까···.'

바로 출발해야겠다.

언제 균열이 게이트로 변할지 모른다.

미리 가서 대기하고 있어야지.

※ ※ ※

태주는 모든 준비를 마치고 사하라 초원으로 출발했다.

혹시나 게이트 이동이 가능한지 시도해봤는데,

'안 열리는구나.'

차원과 차원을 넘나들 때만 유효한 듯.

그래서 그냥 만리비검을 이용했다.

쐐애애액!

한참을 비행하니 저 멀리 보이는 사하라 초원.

그리고 허공에 그어진 불길한 균열.

균열 주위가 새빨갛다.

겁화 지옥이라도 열린 것처럼.

태주는 하늘 꼭대기에서 정지 비행 중이었다.

밑으로 내려가 보려고 했지만.

'쯧, 여전히 사람이 많구나.'

모두 스마트폰 하나씩 들고 방송에 열중이었다.

하긴, 통제가 순조롭게 될 리 있나.

이럴 때는 실질적인 물리력이 필요한데, 사하라 초원이라는 여건상 군부대 개입도 어렵고.

그렇다면?

"일백, 아니 삼백아."

"니아?"

"가서 본체로 변신해서 사람들 좀 쫓아내."

"니아아앙?"

"아니, 겁만 주라고. 가능하면 멀리, 네 임무는 그거야."

"니앙!"

휘익!

삼백이가 용감하게 하늘에서 뛰어내렸다.

쓔우우웃!

스카이다이버처럼 밑으로 떨어지면서 지면에 가까이 접근하자.

펑!

순간!

"응?"

태주는 흠칫 놀랐다.

저 밑으로 떨어지는 작디작은 삼백이.

멀어서 자세히 확인하진 못해도,

"···사람 아닌가?"

그것도 키 작은 어린아이의 모습.

심지어 머리가···,

'3개?'

그런데 다시 펑! 하면서.

거대한 삼두백호가 되어 지상으로 떨어졌다.

'···잘못 봤나?'

그럴 것이다.

머리가 3개 달린 어린이로 변한 일이삼백이라니.

요즘 하도 환청에 시달린 나머지, 시각도 영향을 받아 헛것이 보이는 것 같다.

아무튼 일이삼백이가 본체 삼두백호로 변신해 사하라 초원 땅을 밟았다.

"크르르르르르르···,"

무시무시한 피어 발산.

쿵! 쿵! 쿵!

한 발짝씩 움직이자 땅이 진동했다.

"크러러렁!"

피어오르는 흙먼지, 그 사이로 보이는 거대한 삼두백호.

사람들이 혼비백산하면서 흩어졌다.

동시에 양몰이 하듯 일이삼백이는 카이로 전초 도시 쪽으로 사람들을 몰았고.

이제 조용해졌다.

태주는 적당한 장소에 천막을 치고 의자를 꺼냈다.

날이 어두워졌다.

고요한 초원의 밤.

아직 균열은 게이트로 변화하지 않았다.

'지금 부숴버릴 수는 없을까?'

무한공간에서 탈명비도를 꺼내,

츠피릿!

안 된다.

부딪치지 않고 그냥 지나간다.

게이트로 변하면 부술 수 있을 터.

'기다려보자.'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균열은 점점 그 크기를 키워나갔다.

일이삼백이는 시간 날 때마다 본체로 변신해 사람들이 초원으로 접근 못 하게 했다.

그동안 스마트폰으로 당군악과 소통하는 태주.

선계에서도 준비가 착착 진행되고 있단다.

대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마침내 초원에 당도한 지 닷새째.

찌끄더더더더더···,

몰려드는 기운.

요동치기 시작하는 균열.

때가 됐다.

태주는 스마트폰을 열어 비공개 라이브 방송을 실행해서 신선 및 지인들에게 라이브 초대 메시지를 보냈다.

시간이 흐르고,

- 독선님이 채널에 입장하셨습니다.

- 동빈님이 채널에 입장하셨습니다.

- 김곤륜님이 채널에 입장하셨습니다.

- 김해맑님이 채널에 입장하셨습니다.

- 금수호님이 채널에 입장하셨습니다.

.

.

.

태주의 독령 폰이 비행을 시작했다.

비교적 안전한 거리에서 현장의 모습을 실시간으로 찍었다.

일이삼백이는 본체로 변신해 게이트 공격 범위에서 밖에서 대기하는 중.

혹시라도 사람이 접근하는 걸 막기 위해서.

그리고 2차 공습 게이트 공략, 아니 게이트 토토 승부 예측 쇼가 시작됐다.

※ ※ ※

선계 월드 광장.

가설무대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

술법으로 빛을 가려 선계 월드 주위는 캄캄하다.

스크린에서 영화와 드라마가 쉬지 않고 상영됐다.

아직은 레이드가 시작되지 않았으니까.

선계 월드가 인파로 북적였다.

마치 야시장과도 같았다.

광장 중앙에 부스가 만들어졌다.

그 위에 걸린 대형 플래카드.

신청받는 사람은 하선고였다.

선술로 미래를 점치는 그녀.

당연히 도박 참여가 금지당했다.

대신 당군악이 거액의 코인으로 하선고를 고용했다.

"자자, 빨리 베팅 마감해. 공연, 아니 공략이 시작되면 접수 종료한다?"

눈치 싸움이 치열했다.

과연 태주 대협이 얼마나 빨리 게이트를 닫을까?

"1차 공습 당시 걸린 시간이 1시간 15분 34초였잖소."

"검선과 태주 대협이 함께 손을 썼지. 지금은 혼자고."

"흐음, 이번은 혼자니까 넉넉잡아 3시간 이상 걸리겠군."

"아니야, 그때와 지금은 다르오. 태주 대협이 엄청나게 강해졌잖소."

"쩝, 그게 결정적인 변수긴 해."

"검선을 보시오. 한번 경험이 있던 그도 갈피를 못 잡고 있을 정도니."

과연 그랬다.

부스 앞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골똘히 고민 중인 검선.

등선한 이래 저처럼 진지한 검선은 처음이었다.

"이번에 전 재산을 밀어 넣었다지?"

"잘하면 선계 최초의 개인 파산 신선을 보겠네."

"검선뿐이오? 토토 안 되면 패가망신할 자들 수두룩하오."

"무조건 10명 안에 들어야 해."

신중해야 한다.

토토 용지는 인당 한 장.

딱 한 번의 기회.

상위계 존재들이 다 토토 용지 한 장씩 들고 있었다.

신선들은 물론, 황천계 관리, 천계 천인, 신장들, 환수계 영수.

심지어 서왕모, 태상노군, 용왕, 염라대왕, 옥황상제까지.

그때였다.

팟!

스크린에서 현재 나오던 영화가 종료되고,

대신 사하라 초원 상공의 균열 영상이 송출됐다.

"떴다!"

"초대 메시지가 왔네."

"곧 시작이야."

채널 입장이 시작됐고.

하선고가 천리전성으로 소리쳤다.

"야! 아직도 베팅 안 한 새끼들, 지금 빨리 신청해! 5분 안에 마감이야!"

잠시 후,

찌끄더더덩!

급속하게 커지던 균열이,

쩌어어억!

갈라지더니,

쑤수수수숙!

거대한 괴수들이 쏟아져 나왔다.

ⓒ 꾸찌꾸찌

=======================================

삼한 뉴서울 황궁.

황제 류태현이 금수호 비서관의 보고를 받았다.

"어땠나? 방송쟁이와 관광객들, 초원으로 접근 못 하게 했어?"

"일부 잡음이 있었지만, 각국 정부들에게 협조받았습니다. 카이로 전초 도시도 봉쇄 요청했고요."

세계 최강국으로 발돋움한 삼한 제국.

비록 해외일지라도 그 정도 힘은 쓸 수 있다.

"그래도 카메라 들고 숨어드는 미친놈 없겠지?"

"죽으려면 무슨 짓을 못 하겠습니까마는···,"

사실 황제도 가보고 싶었다.

궁금해서 미칠 지경.

하지만 김태주 회장이 절대 오지 말라고 했으니.

그때!

띠링! 띠링!

황제와 금수호의 스마트폰에서 동시에 울리는 메시지 알림음.

"응?"

"어?"

비공개 라이브 방송 초대 메시지였다.

"오! 김태주 회장이군."

"라이브 공략 방송 같습니다."

"어서 들어가 보세."

황제와 금수호는 링크를 타고 채널로 입장했다.

그러자 화면을 통해 보이는 모습.

찌끄더더더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갈라지는 균열.

곧 게이트로 변할 것 같다.

크기도 어마어마했다.

"···대단하군. 저렇게 크다니."

"어후, 1차 때보다 훨씬 커 보입니다."

채널엔 많은 사람이 들어왔다.

닉네임을 보니 거의 신선들.

- 흐흐, 이제 시작이군.

- 다들 몇 시간으로 베팅했소?

- 난 2시간 17분 34초.

- 2시간 31분 12초요.

- 1시간도 안 될 것 같은데?

- 에이, 아무리 태주 대협이라도 그건 아니지.

- 우리 해맑이는? 게이트 토토 했느냐?

- 안 알려줄 거예요오옴!

황제는 고개를 갸웃했다.

"베팅이라니?"

"글쎄요, 무슨 시간 가지고 하나 본데···,"

채팅창을 읽어보니 뭔지 알았다.

"···게이트 토토?"

아마 게이트가 닫히는 시간을 두고 상위계 존재들끼리 내기하는 듯했다.

최초 게이트에서 괴수가 나오는 순간이 시작, 게이트가 깨어지면 종료.

스톱워치를 사용해서 초 단위까지 계산한단다.

"재미겠군. 나도 베팅에 끼어들 방법이 없나?"

"선계에서 벌어지는 일이라···, 그럼 저하고 둘이서 하시죠."

"응? 자신 있나?"

"어차피 제가 이길 텐데요."

"하! 좋아. 판돈은 100억이야. 쫄리면 뒈지든지."

"콜!"

※ ※ ※

삼한의 구례 행복마을.

백홍표, 백서연, 그리고 티제이 길드원 등도 태주의 라이브 방송 초대 메시지를 받았다.

지구로 내려와 아이들과 인사하고, 그동안 못다 한 이야기하다가, 함께 모여서 스마트폰과 대형 TV를 연결해 라이브 방송을 시청하는 중.

"회장님은 무사하시겠죠?"

"···너희들이야 잘 모르겠지만 선계에서도 태주보다 강한 분들이 몇 없단다."

"엥? 정말요?"

"내가 가봐서 알아. 이야기도 들었고."

물론 검선이나 제천대성엔 살짝 미치지 못하겠지만.

"그런데 게이트 토토, 저건 뭐지?"

"토토면 도박이잖아."

"···신선들도 도박하시나?"

"에이, 그냥 재미 삼아 해보시는 거지. 설마 저분들이 진심으로 도박 같은 걸 하겠어? 그쵸? 아버지?"

"···."

백홍표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선계에 꽤 오래 머물러 봤기 때문에 잘 안다.

도박?

신선들에게 그 정도야 뭐,

심지어 매우 진심일 것이다.

자신의 전 재산도 밀어 넣는 분들도 계시겠지.

그리고···,

승부 조작할 기회가 생기면 서슴없이 해치울 것이고.

※ ※ ※

사하라 초원.

게이트가 완전히 열렸다.

째애애애애앵!

동시에,

최초 한 마리의 괴수가 게이트에서 빠져나왔다.

이제 시작.

'1차 때와 살짝 다른데.'

일단 게이트의 크기가 더 크다.

빠져나오는 괴수들은 크기가 큰놈부터 작은놈까지 다양했고.

생김새도 기괴망측하다.

하지만 걱정 없다.

자신도 달라졌다.

슈슈슈슈슈슛!

하늘 위에서 만들어지는 흑암철 먹구름.

'어떡할까?'

현재 태주가 고민 중인 사항은 게이트 공략 성공 여부가 아니다.

닫히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다.

다만 최선을 다해 빠르게 닫을 것이냐, 아니면 화려한 퍼포먼스 위주로 시간을 끌어가며 볼거리를 만들어 낼 것이냐.

태주는 곧 결정을 내렸다.

단순한 축제가 아니다.

게이트 토토가 걸렸다.

시간을 질질 끌면 게이트 토토에 돈을 베팅한 신선들이 승부조작이라며 딴지를 걸어올지도 모른다.

'그래, 최선을 다하자.'

잡음이 생기면 독선이 곤란해지니까.

쑤우우욱! 쑤욱, 쑤쑤수수수수수···,

게이트에서 물밀듯이 쏟아지는 다양한 크기의 괴수들.

태주가 무한공간에서 꺼낸 건 흑암철 주괴와 암기뿐만이 아니다.

제천대성의 털.

한 움큼 꺼내고, 또 한 움큼 꺼내서.

파팡! 파파파파파파팡! 팡팡팡팡!

사하라 초원에 무수한 분신 황금 원숭이들이 나타났다.

"우끼끼끼끼끼끼···!!!"

동시에 떨어지는 암기들.

푸푸푸푸푸푸푸푹!

그리고 게이트 쪽으로도,

태탱! 태태태태탱!

만천화우.

분신 원숭이.

그리고,

파주주주주죽!

용오름의 소용돌이가 태주에게 입혀졌다.

용의 현신(現身).

괴수들이 폭발하듯 터져 나갔다.

'이 정도면 한 시간도 안 걸리겠는데?'

그럴 것 같다.

괴수들은 나오자마자 만천화우와 독령의 독에 의해 녹아 내렸고, 용오름 소용돌이에 끌려와서 너덜너덜 찢겼다.

그리고 대규모 분신체 황금원숭이 군단.

조직적으로 움직이면서 비교적 크기가 작고 속도가 빠른 괴수들에게 달라붙었다.

'대부분이 2시간 이상을 예상한 것 같은데···, 1시간 이하에 베팅한 신선들도 있으려나?'

살짝 미안한 감도 들었지만,

어쩔 수 있나?

어차피 도박이 복불복, 운빨이지.

그때였다.

쩌저저저적!

째애애애앵!

'이 소리는?'

이미 열린 게이트 앞에 또 하나의 게이트가 열리고 있었다.

그리고 거기에서도 괴수들이 나왔다.

'···더블 게이트?'

게이트가 2개.

아무래도 시간이 좀 더 걸릴 것 같다.

※ ※ ※

선계(仙界).

신선들은 벌벌 떨리는 손으로 토토 용지를 꽉 움켜잡았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 보이는 게이트의 모습, 그 앞에 당당히 선 태주.

드디어 공략이 시작됐다.

흑암철 주괴와 암기가 초원의 하늘을 까맣게 뒤덮었다.

전보다 커진 게이트.

괴수들도 1차 때와는 다르다.

크기가 작고 빠른 놈, 크기가 거대하고 강력한 놈.

"이거 1시간은 더 걸릴 것 같은데."

"흐흐흐, 1시간 이하로 베팅한 자들은 똥줄이 타겠소."

"스톱워치는 눌렀나?"

"저기 전광판에 시간이 가고 있잖소."

"자자, 한잔하면서 느긋하게 봅시다. 1시간은 지나야 감이 오겠군."

그런데,

파파파팡! 팡팡!

화면에서 등장한 제천대성의 분신 황금원숭이들.

"···많네."

"하아, 원숭이를 생각 못 했어."

"그래봐야 분신이요. 1차 때도 있었잖아."

"맞소! 대세에 큰 영향은 주진 못할 거야."

하지만 황금원숭이에 이어,

츠파파파파파파!

사하라 초원에서 용오름이 솟아올랐다.

괴수들이 쭈욱 빨려가서 조각조각 잘렸다.

여의주의 힘을 빌린 태주였다.

"으음,"

"제기랄!"

"후우,"

"아니, 태주 대협은 왜 저렇게까지 열심히 해?"

"···어차피 닫을 거 느긋하게 하면 안 되나?"

2시간 이상에 베팅한 사람들의 얼굴에 불안함이 깃들었다.

하지만 1시간 이하로 베팅한 이들은 실실 웃으며 덩실덩실 춤을 췄다.

"내 예측이 적중했도다!"

"암! 여의주와 드래곤 하트까지 품었는데, 저 정도 게이트야 1시간 컷이지."

"으하하하! 나오는 족족 썰리는구나!"

"난 태주 대협을 믿고 있었다고!"

그렇게 끝난 줄 알았다.

더블 게이트가 발생하기 전까진 말이다.

찌끄더더더,

째애애애앵!

"어?"

"뭐?"

"왜···,"

"하나가 더 생겼어?"

"이거 반칙이야!"

1시간 컷을 예측했던 신선들이 얼어붙었고,

반면 2시간 내외로 예측했던 신선들이 환호했다.

"이럴 줄 알았다."

"암! 명색이 2차 공습인데, 저대로 끝나면 쓰나?"

"어이쿠! 좀 있으면 1시간 지나겠네. 아직 하나도 안 깨졌는데."

찌직! 찌지지직!

토토 용지가 구겨지고 찢겨 허공으로 흩날렸다.

"에이! 술이나 마십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게이트 하나 더 열렸으면 좋겠군."

"어허! 큰일 날 소릴!"

말이 씨가 되는 법이다.

※ ※ ※

사하라 초원.

예상하지 못한 더블 게이트.

그러나 전혀 문제가 없다.

공략에 걸리는 시간만 살짝 미뤄질 뿐.

독령의 기운은 남아돈다.

거기에 여의주의 힘, 또한 드래곤 하트까지.

태주는 무한공간에서 최상품 선도를 꺼내 으적으적 씹었다.

선기도 보충하고.

'일단 하나는 끝내놓자.'

균열 상태에선 질량이 없다.

그러나 게이트로 변하면 질량이 생겨 부술 수 있다.

선택과 집중.

처음에 열린 게이트부터.

먼저 무한공간엔 털들이 수북하게 쌓인 털을 잡아 뿌려서,

파파팡! 팡팡!

다시 분신들을 만들어냈다.

츠파파파파파!

게이트에 집중 호우가 내렸다.

괴수들은 보류하고 게이트부터 깨버린다.

틈이 생기자 괴수들이 태주에게 몰려들었다.

그러나 느려터진 놈들이다.

아무리 달려든들, 자신의 옷깃도 스치지 못할 것이다.

스팟! 파바밧!

환영미리보와 표홀질풍보.

공간을 삭제하면서 번쩍번쩍 사라졌다, 나타났다가.

태탱! 태태태탱! 탱탱탱탱!

게이트 가장자리를 쉴 새 없이 두드리는 주괴.

이윽고,

찌직, 찌지지직!

게이트 표면에 금이 가기 시작하면서,

와장창창창!

최초로 열린 게이트가 완전히 박살 났다.

'됐어.'

이제 하나만 더 깨뜨리면 끝이다.

츠리리리리릿!

파파파파파파!

휘몰아치는 암기의 폭풍!

단번에 삭제되듯 사라지는 괴수들.

게이트도 잊지 않고 꼼꼼하게 챙기면서.

이제 하나 남은 게이트에도 실금이 생기려던 그때!

쩌저저저적!

째애애애앵!

'···또?'

다시 두 개.

심지어,

쩌저저저적!

째애애애앵!

3개.

쩌저저저적!

째애애애앵!

4개.

쩌저저저적!

째애애애앵!

그리하여 게이트가 총 5개.

"···후우!"

이러다 하루 종일 걸리겠다.

※ ※ ※

선계(仙界).

처음엔 예상대로 들어맞는 듯했다.

2개였던 게이트가 1개로 줄어들면서 2시간 내외로 게이트가 공략될 줄 알았다.

그런데 저게 뭔가?

느닷없이 5개로 늘었어?

"아···,"

"이러면 안 되는데."

"후우,"

시청하던 이들의 표정이 모두 썩었다.

2시간 근처에서 베팅한 자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5개가 열렸으니, 최소 5시간, 아니 그보다 더 걸릴지도.

김삼봉, 김매화, 김곤륜, 무림계 삼 신선도 발을 동동 굴렀다.

그들이 베팅한 시간은 2시간 50분 근처.

전 재산을 몽땅 집어넣었는데, 이러다간 알사탕 하나 못 사 먹게 생겼다.

"큰일 났소. 빈털터리 직전이오."

"그대만 그런가? 나도 마찬가지지."

"아아아."

얼굴이 환해지는 신선도 있었다.

검선이었다.

검선은 표정이 매우 밝았다.

제천대성에게 큰소리 떵떵 치는 검선.

"어떤가? 내 촉이 기가 막히지 않나? 거의 하선고 수준이지."

"으흠, 다행이긴 하나···, 또 변수라도 생기면."

"변수는 무슨! 걱정하지 마, 빌린 돈 이자까지 쳐서 갚을 테니."

"흐음, 제발 그렇게 되길 빌고 있소. 망하면 우린 끝장이오."

"어허! 어디서 부정 탈 소릴!"

자신의 돈은 물론, 제천대성에게 거액의 코인도 빌려서 게이트 토토에 싹 다 밀어 넣었다.

모든 변수를 다 고려했다.

심사숙고해서 베팅한 시간이 5시간 43분 52초.

사실 되면 되고, 안 되면 말고였다.

먹더라도 크게 먹어야지.

이보다 긴 시간에 베팅한 사람은 아무도 없을 터.

게이트 완료 시간에 가장 가깝게 예측하면 된다고 했으니, 설령 하루가 꼬박 걸린다고 해도 자신의 승리.

1등이니 배당률이 엄청날 것이다.

5배? 아니 10배 이상 터질지도.

"흐흐흐, 이런 게 인생 역전이지."

아니, 선생(仙生) 역전이라 해야 하나?

컬렉션 완성이 눈앞에 보였다.

돋 걱정 없이 살아보자.

'판돈은 다 내 거야.'

한편 염라는 기분이 찝찝하다.

자신도 돈을 잃게 생겼다.

2시간 중반대에 꽤 많은 액수를 밀어 넣었는데.

무리하게 큰돈을 베팅한 이유.

이게 다 흑암철 때문.

지구 마수들이 지옥의 기운에 적응하면서 흑암철이 지닌 고유의 가치가 위협당했다.

물론 태주는 철, 그 자체로도 가치가 있다고 했지만, 지구는 철이 없나?

대체제가 충분하다.

언젠가는 흑암철의 판로가 막힐 날이 올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 한 번 크게 벌어보려고 게이트 토토에 거액을 베팅했다.

결과적으로 폭망이 눈앞으로 다가왔고.

'쯧쯧, 이러면 나가린데.'

황천계 관리들도 절망적인 표정.

사자와 차사, 판관들 모두 그랬다.

'꼴을 보아하니 다 잃었네.'

옆에서 입꼬리 씰룩거리는 검선과는 완전히 대조됐다.

검선은 땄다고 확신하는 모양.

정말이지, 얄미워 죽겠다.

자신이 돈 잃은 것보다 검선 놈이 돈을 따는 게 더 기분 나쁘다.

당군악도 표정이 썩 좋지는 않았다.

게이트 토토 때문이 아니다.

애초에 베팅하지도 않았다.

'5개라···,'

태주가 감당할 수 있을까?

아직 도움 요청은 오지 않았다.

화면에서 보고 있지만 지친 기색도 안 보인다.

게이트 5개도 충분하다는 느낌.

'대견하군.'

어쩌면 자신보다 더 강할지도 모른다.

이대로 믿고 가면 좋겠지만.

'···불안해.'

과연 저 5개의 게이트가 끝일까?

하나인 줄 알았던 게이트가 2개로 늘어났다.

그 더블 게이트마저도 5개로 늘었다.

저게 마지막일 가능성보다 게이트가 또 늘어날 가능성이 더 크다.

거의 확신에 가깝다.

무조건 늘어날 것이다.

5개가 10개가 되고, 10개가 20개가 될지도.

그럼 태주의 부담은 계속 가중될 것이고.

당군악의 눈에도 검선의 얼굴이 보였다.

스크린을 보며 실실 쪼개는 검선 말이다.

웃어?

태주는 저렇게 고생하는데 웃어?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저 망할···,'

그런데,

검선을 째려보는 또 한 사람.

염라였다.

당군악과 염라의 눈이 마주쳤다.

당군악을 바라보는 염라.

염라를 바라보는 당군악.

동시에 고개를 돌려 검선을 같이 노려보기도 하고.

이심전심(以心傳心).

서로의 생각이 오고 갔다.

그리고 당군악이 고개를 끄덕였다.

염라도 끄덕였다.

순간!

염라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당군악을 보며 크게 소리쳤다.

"독선! 베팅 적중 조건이 뭐였나?"

"그야 게이트 닫히는 시간이지요."

"무슨 일이 일어나도 닫히면 끝이란 말인가? 예를 들어 외부의 개입이 있다거나···,"

"상관없습니다. 무조건 게이트가 닫히면 그 시간으로 결과가 확정됩니다."

"그렇군."

이해했다는 듯 잠시 말을 멈추더니.

"난 돈을 잃은 것 같으니까, 이만 황천으로 돌아가겠네."

"아쉽지만, 살펴 가십시오."

상위계 사람들도 염라를 안쓰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그도 돈을 잃었구나.

하긴, 대세가 기울었는데 집에 가서 일찍 발 닦고 자는 게 현명한 선택일지도.

염라는 황천계로 가는 문을 열었다.

지이이이잉!

시커멓고 커다란 문이었다.

바로 그때!

염라가 눈을 동그랗게 뜨며 당황한 척 외쳤다.

"어이쿠! 그만 손이 미끄러졌군!"

손이 미끄러졌다니?

"황천계로 가는 문을 열려고 했는데 그만 지구로 가는 문을 열고 말았어. 허허, 내가 이런 실수를 하다니!"

이건 또 무슨 소리?

확실하게 들은 거 맞아?

지구로 가는 문이라고?

그러자 대형 스크린에 나타난 화면.

만천화우와 여의주의 힘으로 괴수들과 분전하는 태주.

사하라초원 2차 공습 공략 현장.

하늘이 아닌 지면에 보이는 또 다른 형태의 게이트.

염라가 여기 연 것과 똑같이 크고 시커멨다.

침묵이 흘렀다.

꿀걱,

누군가 침 삼키는 소리.

지구에 문이 열렸단 말이지?

이걸 통과하면 저기로 간다는 말이지?

제일 먼저 행동을 개시한 건 무림계 삼 신선이었다.

김곤륜이 운룡대팔식으로 먼저 넘어갔다.

쑥!

김삼봉이 제운종으로,

쑥!

김매화가 암향보로,

쑥!

이젠 눈치 볼 것도 없었다.

쑤수수수숙!

염라가 연 문을 통해 정신없이 넘어가는 신선들.

검선은 넋이 나갔다.

뭐지?

대체 왜?

그제야 염라와 당군악이 나누던 대화가 떠올랐다.

외부의 개입이든 뭐든, 게이트가 닫히기만 하면 확정이라던.

"···이런 싯파아알!!!"

검선이 지른 분노의 외침이 선계 축제 현장에 크게 울려 퍼졌다.

ⓒ 꾸찌꾸찌

=======================================

사하라 초원 상공에 열린 5개의 게이트.

따라서 튀어나오는 괴수도 5배 이상 늘었다.

끝도 없이 나왔다.

자크 델루안의 세계가 멸망한 이유를 알겠다.

이러니 고도로 발달한 마도 공학으로도 감당이 안 됐겠지.

이제 장기전을 준비해야 할 때.

태주는 용오름을 풀었다.

힘은 효율적으로, 낭비하지 않고 꼭 필요할 때만.

만천화우도 남발하면 안 된다.

괴수보다는 게이트 위주로 공격한다.

만리비검도 적극적으로 사용하면 좋을 터.

저절로 날아다니는 보패, 치고 빠질 때 이만한 것이 없다.

츠핏! 츠피릿!

일섬(一閃)은 신령비도로.

비폭(飛瀑)은 유엽비도로.

위험한 순간이 오면 제천대성의 털도 뿌려주고.

이런 장기전은 자신 있다.

독령은 물론 여의주, 드래곤 하트도 그 자체로 기운 덩어리.

불안한 마음도 없진 않다.

과연 5개로 끝일까?

게이트가 10개가 되면? 20개가 되면?

그럼 자신도 장담할 수 없다.

결국 누군가의 힘을 빌릴 수밖에.

'···차원 게이트 여는 것도 염두에 둬야겠어.'

검선님이나 제천대성님 중 한 분만 넘어오셔도 저깟 괴수 따윈 바로 끝장난다.

그 와중에 독령 폰이 하늘을 날아다니며 현장의 상황을 자세하게 촬영하고 있었다.

다들 보고 있을 것이다.

선계와 황천계, 천계가 함께 한다고 생각하니, 불끈 힘이 솟는다.

얼마든지 열려보라지.

'겨우 5개 정도로···,'

그런데 바로 그때!

지이이이잉!

'응?'

무슨 소리지?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렸는데.

'하나, 둘, 셋, 넷, 다섯.'

허공에 열린 건 여전히 5개.

괴수가 나오는 게이트는 아니다.

소리부터 달랐다.

안 열렸나?

이것도 환청?

"···어."

새로 열린 게이트가 하나 있긴 하다.

하지만 하늘이 아닌 지상에.

'어디서 많이 본 형태인데···,'

염라대왕이 여는 문과 비슷하다.

'아니, 똑같아.'

그가 문을 연 것이 틀림없다.

잠시 후,

쑤욱!

"태주 대협! 내가 왔소."

저분은···,

"곤륜 선인님?"

"으하하하하! 우리가 함께 합을 맞춰볼 날이 오다니, 이제 걱정하지 마시오."

혼자가 아니었다.

삼봉 선인과 매화선인도.

"여기가 지구로구나. 쓰읍, 냄새 좋고!"

"거, 쓸데없는 짓 말고 게이트나 부숩시다."

왜 넘어오셨을까?

"우리가 온 건 태주 대협 때문이 아니라오. 염라가 검선 한 방 먹여주려고 단단히 벼르고 있던 터라,"

"네?"

문을 연 것과 검선이 무슨 상관이길래.

"이야기가 기니 나중에 합시다."

비록 검선엔 미치지 못하지만, 이분들도 검으로 등선한 신선들, 당연히 이기어검은 기본으로 탑재되어 있었다.

츠피리리릿!

셀 수도 없이 많은 무형의 검강이 초원의 하늘을 수놓았다.

푸푸푹! 푸푸푸푸푹!

무형의 검강에 소멸하는 괴수.

무림계 삼 신선이 함께하면 검선에 뒤지지 않았다.

그들뿐만이 아니었다.

쑥! 쑤쑤쑤쑥!

"안녕하시오!"

"이야! 여기가 지구로군. 드디어 첫 경험이야."

"지금 몇 시지? 공략 시간 맞춰야 하는데."

"허허, 그게 중요하오? 여긴 선계가 아니라 지구잖소."

"그렇지. 기회와 약속의 땅. 토토 따위야···,"

"흐흐흐, 빨리 처리하고 놀러나 갑시다."

"좋지!"

계속 나왔다.

선계에 모든 신선이 다 넘어온 것 같다.

검선과 제천대성만 빼고.

각자의 특기를 살리며 게이트 공략에 나서는 신선들.

호풍환우를 비롯해, 불과 얼음, 흙과 돌···,

판타지 소설 원소 마법과 비슷한 신선의 술법이 전투 현장에서 화려하게 펼쳐졌다.

싸움에 능하지 못한 신선이라고 해도 격체전력(隔體傳力)으로 자신의 선기를 다른 신선들에게 전했다.

마치 보조 배터리처럼.

태주에게도 선기가 마구마구 밀려왔다.

아아아!

힘이 넘쳐난다.

만천화우를 무한정으로 사용해도 독령 마를 일 없다.

콰콰콰콰!

와장창창!

눈 한번 깜빡하는 사이에 게이트 하나가 소멸했다.

신선들만 왔나?

미호 선자도 염라가 연 문을 넘었다.

"캬악!"

나오자마자 괴수만큼 거대한 몸집의 여우로 변한 미호 선자, 아홉 개의 꼬리가 부채처럼 펼쳐졌다.

"카오오오우우!!!"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이 괴수들의 몸을 갈랐다.

서걱! 콰직!

미호 선자의 포효를 들었는지,

쿵쿵쿵쿵!

저 멀리서 흙먼지를 일으키며 달려오는 일이삼백이.

위험해질까 돌려보내려 했지만···,

'잘 싸우네.'

개과 여우, 고양이과 삼두백호.

같은 영물이라서 그런지 죽이 척척 맞았다.

게이트에서 나오는 족족 사라지는 괴수들.

그 와중에 철장 선인의 망치가 빙그르르 회전하며 날아가 게이트 가장자리를 강타했다.

와장창!

아무리 실금이 가 있었다고는 하나, 한 방에 부서지는 게이트.

"봤소? 내가 이정도요."

"이미 다 깨진걸, 막타 치고 생색내기는."

"허허! 한 번 더 보여줘야 하나?"

하나가 더 깨졌다.

남은 건 3개.

전세는 확연하게 기울었다.

그래서 연이어 하나가 또 부서졌다.

와장창!

2개 남았다.

"동시에 깨버립시다."

게이트 집중 공격.

괴수들도 대폭 줄어서 위협조차 되지 않았고.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쩌저저저적!

째애애애앵!

쩌저저저적!

째애애애앵!

쩌저저저적!

째애애애앵!

.

.

.

균열 단계도 거치지 않고 무지막지하게 열리는 게이트.

"···씨발!"

무려 10개였다.

'이거 언제까지 깨야 하는 거야?'

어쩔 수 있나?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죽어라 깨는 수밖에.

그때였다.

태주의 눈에 들어온 한 사람.

"···아!"

저분이 왜?

여기 있으면 안 되는데.

※ ※ ※

검선은 염라에게 강하게 항의했다.

"승부조작이오!"

"실수라니까."

"···하! 좋소. 실수라고 칩시다. 헌데 언제까지 문을 계속 열어둘 거요?"

"닫으려고 했는데, 잘 안 닫혀."

"가증스럽도다. 인간의 선악을 심판하는 판관의 수장이 어찌 승부조작 같은 치졸한 짓을."

"이게 선악과 무슨 관계인가? 그리고 승부조작이면 내가 넘어갔지, 눈이 있으면 봐. 우리 사자와 차사, 판관들은 단 한 명도 넘어가지 않았잖아."

"···."

실제로 염라는 황천계 관리들에게 복지부동을 지시했다.

문이 열려도 절대 넘어가지 말 것을,

나중에 빠져나갈 구멍은 만들어야 하니까.

검선은 치밀어오르는 분노로 머리가 터져 나갈 지경.

스크린에서 나오는 태주의 라이브 방송.

게이트가 줄줄이 깨어지고 있었다.

이러다간 30분 안에 공략이 완료될 터.

'확! 깽판을 쳐버려?'

하지만 뒤통수가 따갑다.

자신을 매섭게 노려보는 누군가.

아마 독선이겠지.

넌 왜 안 넘어가냐는 듯.

눈 마주치지 말자.

전 재산이 걸렸다.

얼굴에 철판이라도 깔아야 한다.

태주 대협이 위험하면 또 모를까.

저렇게 잘 싸우고 있는데.

"컴컴!"

그러나 제천대성은 독선의 따가운 눈초리를 이길 수 없었던 모양.

슬며시 발걸음을 옮겨 문 안으로 들어가려 했는데.

덥석!

검선은 제천대성의 어깨를 잡고 고개를 흔들었다.

'자존심도 없소? 포기할 건가?'

'이대로라면 우린 다 죽을 거요. 배달 사업을 못 할 수도 있소.'

'우리가 건 돈이 얼만데? 참아봅시다.'

'끄응,'

'독선에게 찍혔기 때문에 어차피 망했어. 돈이라도 건지세. 끝까지 버텨보자고.'

망연자실한 표정의 제천대성.

검선에게 코인만 안 빌려줬어도···.

그때였다.

쩌저저저적!

째애애애앵!

"응?"

"오!"

보인다.

스크린을 통해서.

무려 10개 이상의 게이트가 새롭게 열리는 광경.

검선은 감격했다.

천지신명께서 도와주시나?

"시간이 얼마나 지났소?"

"저기···,"

제천대성이 전광판을 가리켰다.

눈을 돌려 보니 2시간 35분 22초.

희망이 보인다.

판세를 보니, 게이트 열리는 것이 심상치 않다.

이번에 열린 10개도 마지막이 아닐지도 모른다.

'아직 대세는 나한테 있어.'

그런데 뒤통수가 따갑다 못해 뜨겁다.

독선의 분노가 여실히 느껴졌다.

'참자, 참아.'

표정 관리도 하고.

참는 자에게 복이 있다.

'제발 3시간만 더···,'

한편 상제는 염라와 독선, 검선과 제천대성의 신경전을 보며 혀를 끌끌 찼다.

"제천대성이야 그렇다 쳐도, 검선 저자는 어떻게 등선한 거요? 서왕모께선 알고 있소?"

"저는 몰라요. 선계 최고의 수수께끼랍니다."

"그럼 태상노군, 그대의 생각은?"

"그야 천지신명이 의도하신 거겠죠. 생각해보십시오. 검선이 등선하지 않고 강호에 남아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아아아."

생각해보니 끔찍하긴 하다.

어쨌거나 상제는 신경 쓰지 않고 그냥 즐기기로 했다.

딱!

시원한 캔맥주 하나 따서 쭉 들이키고,

"캬!"

다음으로 찐득한 버터를 양껏 발라 구운 오징어 다리를 입에 넣으니.

"허허, 이게 진짜 천국이지."

선계만큼 지루한 천계였다.

물론 착한 천인들이라 불평하진 않았지만 늘 미안했다.

잘 먹고 잘 살면 뭐 하나?

재미가 있어야지.

그러나 태주 대협 때문에 비로소 천국다운 천계로 변했다.

상제는 다시 대형 스크린으로 눈을 돌렸다.

영화보다 더 생생한 액션활극.

게이트가 10개로 늘어났지만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설령 100개가 생긴다 해도.

저 정도도 처리 못 하면 신선 자격 없지.

태주 대협은 물론, 다채로운 선술과 술법을 뽐내는 신선들, 오랜만에 구미호 본체로 활약하는 미호 선자, 지구의 영물인 머리 3개 달린 호랑이.

그리고 괴수들이 쏟아져 나오는 흉흉한 현장에서 머리에 꽃을 달고 초원을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해맑이···, 어? 해맑이?? 해맑이???

푸웁!

상제는 마시던 맥주를 뿜었다.

"으어어어, 해, 해맑이가 왜 저, 저기 있어?"

이렇게 황당할 데가.

그러자 탁탑신장이.

"조, 좀 전에 신선들이 우르르 넘어갔을 때, 해맑 선녀도 호기심에 같이 따라 넘어간 듯합니다."

"허허,"

넘어간 것 탓할 마음은 없다.

중요한 건 해맑이가 저 위험한 곳에 방치되어 있다는 것.

상제는 고래고래 고함쳤다.

천계의 군대, 천군 신장들과 병사들에게.

"뭣들 하느냐! 빨리 넘어가서 해맑이를 보호하거라!"

"네!!!"

우르르르르르!

그리하며 천군 대병력이 줄을 지어 염라의 지구 문을 넘었다.

이로써 천군까지 참전.

검선은 그 모습을 멍하니 지켜봤다.

실낱같던 희망의 끈이 끊어지는 순간.

넘어가는 천군들의 숫자가 대충 계산해도 수천 명이다.

빠른 태세 전환이 필요하다.

자존심 같은 건 내다 버리고.

검선은 슬며시 품에서 토토 용지를 꺼냈다.

그리고 독선의 눈앞에서 찌익, 찢어버렸다.

"커험,"

한번 헛기침을 하고 난 후,

"도, 독선, 걱정하지 마시게. 나도 당장 넘어가서 처리하고 오리다."

당군악은 싸늘한 표정으로 대꾸했다.

"안 넘어가도 될 것 같은데···,"

"어허! 무슨 소리요! 게이트가 20개, 아니 100개 될 줄 누가 알고, 원숭아, 너도 게으름 피울 생각 말고 넘어가자."

"지금 이렇게 말할 시간에 벌써 넘어갔겠···,"

스팟!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지구 문안으로 사라지는 검선과 제천대성.

당군악은 피식 웃었다.

미워하고 싶지만 도저히 미워할 수 없는 검선이었다.

※ ※ ※

해맑 선녀를 제일 먼저 발견한 것은 태주.

신선들이 게이트 괴수들을 몰아붙이고 있다지만 여긴 위험하다.

그래서 재빨리 가까이 다가가 그녀를 보호하면서,

"해맑 선녀님."

"아! 태주니임! 여기도 꽃이 있어요오. 처음 보던 꽃이예요오."

해맑은 사하라 초원에 피어난 작은 풀꽃을 가리켰다.

"네, 예쁜 꽃이네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한 후.

태주는 무한공간에서 남아있던 제천대성의 털을 모조리 꺼내 뿌렸다.

파파파팡! 파파파파팡! 파파파파파···,

셀 수도 없이 마구마구 불어나는 대규모 분신체들.

태주가 내린 지시는 해맑 선녀의 보호.

"저기, 꽃들이 더 많습니다. 가볼까요?"

"넵!"

현장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유도하자.

해맑은 벌떡 일어나 도도도도, 빠르게 달려갔다.

동시에 그녀의 주위를 에워싸고 함께 달리는 분신체 황금원숭이들.

지구도 해맑의 방문을 환영하는 듯, 그녀가 뛰어가는 초원 벌판에 아직 피지 않은 꽃들이 저절로 피어났다.

태주는 흐뭇하게 미소지었다.

바로 그때!

쑤수수수수숙!

게이트에서 줄을 지어 나오는 엄청난 숫자의 사람들.

'천군들도?'

천군들은 저마다 갑옷과 병기로 중무장하고 있었다.

탁탑신장이 태주를 발견했다.

동시에 분신 원숭이들과 함께 뛰어가는 해맑이도 봤다.

"태주 대협."

"네, 신장님."

"선녀님을 부탁하오. 저것들은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테니."

"알겠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탁탑은 천군비마를 소환해서 하늘로 훨훨 날아 게이트로 돌진했다.

천군들도 합세했다.

그리고 뒤를 이어 나온 검선과 제천대성.

"···태, 태주 대협."

"하하, 아, 안녕하시오."

"오! 오셨군요."

"조금 늦었네. 우리 몫을 다 할 테니 염려 말게나."

"제가 여의봉으로 10분 안에 끝내드리지요."

검선과 제천대성도 합류했다.

게이트 10개?

깨어지는 건 순식간이었다.

마지막 발악을 하려는 듯.

우웅! 쩌저저저적! 째애애애앵!

다시 20개 이상의 게이트가 사하라 초원 상공에 생겨났지만.

와장창창! 와장창! 채채챙!

생성되는 즉시 깨져버렸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 ※ ※

선계(仙界).

당군악은 사하라 초원에 게이트가 완전하게 사라진 걸 스크린을 통해 확인하고 나서야,

꾹!

스톱워치를 눌렀다.

최종 공략 시간은 3시간 3분 3초.

무사히 잘 끝났다.

결과도 만족했다.

그렇다면 1등은 누굴까?

100배 이상의 배당을 차지할 행운의 당첨자는?

하선고에게 물어보려고 하니 이미 사라진 뒤였다.

당연히 지구로 넘어갔겠지.

베팅 명단을 기록한 태블릿을 열어서 직접 확인했다.

1등은?

사실 안 봐도 뻔했다.

'해맑 선녀로군.'

그럴 줄 알았다.

어느 누가 천인이 가진 천운(天運)을 이길 수 있을까.

그런데 베팅 금액이 많이 아쉽다.

선계 코인으로 겨우 1코인.

해맑다운 베팅이었다.

'한 100코인쯤 벌었네.'

이러면 안 되는데,

아무리 배율이 낮더라도 9등, 10등이 해맑이보다 더 벌겠다.

당군악은 보는 사람이 없는지 주위를 둘러봤다.

그러고는 숫자 1 옆에다 동그라미 몇 개 더 적었다.

'이정도는 받아야지.'

염라의 문은 여전히 열려있었다.

잠시 후, 문을 통해 꾸역꾸역 돌아오는 사람들.

죄다 임무를 완수하고 돌아오는 천군들.

상제가 탁탑신장에게 물었다.

"해맑이는?"

"선녀님께선 지구에 좀 머무르시겠답니다."

"그래?"

"네, 태주 대협이 걱정하지 말라고 해서 저희만 돌아왔습니다."

"알겠다."

천군들도 다 귀환했고.

하지만 나머지 신선들은 돌아오지 않았다.

예상은 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칠까.

독선에게 물어보는 염라대왕.

"독선, 이만 문을 닫아버릴까?"

"흐음,"

넘어가서 강제로 싹 다 데려오고 싶은데.

···뭐, 그래도 열심히 수고했으니,

"네, 닫아주십시오."

신나게 놀다 오라지.

태주가 번거롭긴 하겠지만.

ⓒ 꾸찌꾸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