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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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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주는 백서연과 만났다.

"잘 있었어요? 별일 없죠?"

"네, ···일은 잘 끝나셨어요?"

"덕분에,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혹시 어디···,"

기대감에 가득 찬 그녀의 눈빛.

"생각하신 게 맞아요. 선계에 갔다 왔어요."

"어머! 아, 아버지께선?"

"더 있다가 온답니다. 아주 살판이 났던데요."

사실 백홍표보다는 일이삼백이가 더 걱정.

환수계에 들러 잘 있는지 확인해보고 오려고 했는데,

독선이 알아서 한다고 했으니 믿어야지.

"오자마자 미안하지만 서연씨가 할 일이 있어요."

"무슨?"

"LTE 통신 기지국을 특정 장소에다 설치할 생각입니다."

"기지국이요? 그걸 왜···, 아! 설마?"

"그래요. 선계."

백서연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 지구에서 선계와 통신이 가능하도록 만들 겁니다."

"어음,"

선계는 다른 세상.

기지국 달랑 세운다고 연결이 되나?

하지만,

"방법을 찾았거든요. 먼저 통신회사와 접촉해주세요."

"네!"

그녀는 군말 없이 대답했다.

회장님이 된다고 했으니 무조건 될 것이다.

"웬만한 도시 하나는 커버할 수 있는 기지국을 설치하고 싶다고, 그리고 중계기도, 모든 비용은 제가 다 댄다고 하시고."

수첩을 들고 태주의 지시사항을 메모하는 백서연.

"기지국과 연결할 광케이블은 제 자택으로 빼달라고 하세요."

"그럼 기지국은?"

"흐음, 일단 그것도 자택에···, 아니, 먼저 어떻게 설치하는지 과정을 알았으면 하는데, 새 제품하고 중고 제품 둘 다 있으면 좋겠어요."

"아! 이해했습니다. 그러니까 학습용 설치 장비 따로, 실제 설치용 따로, 각각 두 개씩 준비하면 되겠네요."

"그리고 가입도 해둡시다. 제정원과 협의해서 신분증부터 만들고."

백서연과의 대화를 마친 후,

태주는 다시 자택 지하수련실로 왔다.

차원 구멍은 여전히 열려 있었다.

꽤 시간이 많이 지났는데.

마나 공급장치가 제 몫을 하고 있다는 의미.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편지도 두 통이나 와 있었다.

하나는 독선이 보낸 것.

- 일이삼백이는 잘 있네. 미호 선자가 잘 보살펴줄 거야. 그리고 조만간 귀곡과 갈홍을 지구로 파견할 테니, 적당한 때에 게이트 발생기를 작동해보세.

일이삼백이가 잘 있다니 다행.

밖에서 굴러들어온 놈이라 왕따 당하지 않을까 염려했는데.

염라의 편지도 있었다.

- 고맙네. 차원 구멍은 마음껏 열어둬도 돼.

'내가 더 고맙죠.'

황천계.

그것도 염라의 처소를 실험 현장으로 빌려 쓰고 있다.

입 싹 닦고 넘어가면 염치없는 짓이지.

쑤욱!

틈나는 대로 집어넣었다.

필터담배뿐만이 아니다.

잎담배, 시가, 혹은 여송연도 준비했다.

상당히 독해서 보통 입 안에서 연기를 굴려 가며 향을 즐기는 시가지만 염라대왕은 그냥 속 담배로 마구 들이마셔도 상관없을 터.

마음 같아선 아공간 가방에 가득 담아 공유창고로 보내고 싶지만, 독선이 그건 절대 안 된다고, 원칙은 지켜야 한다며 보내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그 와중에 선계에서 배송도 왔다.

들어있는 물건은 차원 게이트 발생기와 선계에서 귀곡이 제대로 만든 마나 공급장치.

발생기는 신선들을 불러들일 때 사용하면 되고, 마나 공급장치는 교체용이다.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사흘이 지나고···.

백서연이 구례 자택 정원으로 설치 기술자들과 기지국과 중계기 설치 장비를 한가득 싣고 왔다.

"이건 기존에 쓰던 중고 기계들입니다. 설치 시연을 위해 가져온 거고요."

"새 제품들은?"

"따로 올 겁니다."

개통에 대한 모든 절차는 그녀가 다 알아서 했을 것이다.

또한 광케이블도 자택 지하실까지 따로 빼놓았고.

'시작해야지.'

태주는 차원 구멍으로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답장이 바로 왔다.

- 차원 게이트 발생기 작동하게.

지하수련실 안에서,

화아악!

지이잉!

게이트가 열렸다.

치지지직, 치직!

몸을 옭아매는 빛의 사슬은 단번에 끊고.

스으읏!

귀곡과 갈홍이 게이트를 통해 나타났다.

"어서 오세요."

"반갑소. 태주 대협. 전엔 인사도 못 하고 떠나버려서."

"앞으로 볼 일이 많을 텐데요."

"하하하, 그렇지. ···기지국 장비들은? 어디 있소?"

"좀 쉬었다 하시죠."

"천만에! 바로 시작해야지. 신선이 다 검선 같을 거라고 여기지 마시오."

"맞소. 어차피 여기 오래 있을 수 있을 수 없으니 빨리 배워가야지."

하긴, 귀곡도 과거에 여기 왔을 땐 놀지도 않고 도서관에만 틀어박혀 있었다.

태주는 자택 정원으로 귀곡과 갈홍을 안내했다.

그러자 백서연이,

"환영합니다."

"그대가 백서연인가? 백천인의 수양딸?"

"네, 필요하신 거 있으면 뭐든 말씀해주세요."

"알았네. 며칠 신세 좀 지겠네."

이들은 선계 제일의 천재, 스페셜 리스트.

기지국과 중계기의 원리와 설치 방법을 익히기 위해 독선이 파견한 신선들.

금방 배워갈 것이다.

또 시간이 흘렀다.

태주와 당군악은 차원 구멍을 통해 편지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더불어 공유창고를 통한 물류 배송도 함께.

선계에 설치하게 될 장비들을 배송했다.

부피가 큰 것들은 공유창고에다, 작은 것들은 아공간 가방에 담아서.

제일 큰 건 기지국 안테나.

철탑이라고 해도 부품을 나누면 공유창고에 들어간다.

- 설치 장소는 어디로 하실 건가요?

- 멀티플렉스 꼭대기 층, 내가 살던 집에.

- 그럼 안테나도?

- 멀티플렉스 지붕에 세워야지.

- 그럼 살 집이 없어지는 거잖아요.

- 괜찮아. 아파트 완공되면 거기 들어가면 돼.

3일 정도의 시간이 소요됐다.

그동안 귀곡과 갈홍은 기지국 설치에 대한 모든 과정을 완벽하게 익혔고.

어느덧 선계로 가야 할 시간.

신선들이야 게이트가 없이도 때가 되면 자동으로 돌아간다.

"이만 가보겠소."

"네, 설치용 장비들은 선계에 다 보냈습니다."

스팟!

귀곡과 갈홍이 사라졌다.

태주는 지하수련실로 갔다.

차원 구멍은 여전히 열려 있었고.

'어디 보자. 마나 공급장치는?'

압축 비욘드 결정체가 에너지원이다.

잔여 마나량 수치 회로를 확인해보니 단 1% 닳지 않았다.

'생각보다 오래가겠네.'

이 정도면 실험 성공.

담배나 더 넣어주자.

어차피 곧 닫아야 하니까.

그리고 열흘 정도 지났을까?

차원 구멍에서 당군악의 편지가 도착했다.

- 기지국 설치 다 끝냈어. 통신 범위 확장 중계기는 나중에 천천히 설치해도 돼.

- 알겠습니다. 그럼 새로 구멍을 열게요.

역사적인 순간이 다가왔다.

새로운 차원 구멍은 멀티플렉스 꼭대기 층.

정신을 집중했다.

스스스슷!

마나가 한 점으로 모이고,

찌이잉!

기존 차원 구멍은 사라지고 새로운 구멍이 나타났다.

'드디어···,'

태주는 광케이블을 구멍 안으로 쑤욱! 넣었다.

※ ※ ※

선계(仙界).

멀티플렉스 꼭대기 층.

원래 당군악이 살던 집이었다.

가구와 가전제품은 온데간데없었다.

대신 기지국 장비들이 집안 전체에 놓였다.

지붕엔 대형 철탑도 우뚝 세워졌다.

신선들이 저게 뭐냐며 궁금해했지만 그냥 선계 와이파이 증폭기라고 둘러댔다.

기지국 안에 모인 당군악과 귀곡, 그리고 갈홍.

"구멍은 언제 열리는 거요?"

"잠시만 기다려···,"

바로 그 순간!

찌이잉!

바닥에 생겨난 작은 구멍.

"저기!"

"열렸군."

쑤욱!

광케이블도 나왔다.

이제 기지국 장비와 연결할 차례.

조심조심 도구를 이용해 광케이블 끄트머리에 커넥터를 꽂아서···,

딸깍!

빠지지 않게 잘 연결하고 전원을 올렸다.

위이이이잉!

장비에서 불이 반짝인다.

빨간빛에서 노란빛, 그리고 녹색빛.

지구 통신회사의 데이터가 광케이블로, 광케이블은 차원 구멍을 통과해 선계 기지국으로, 그리고 기지국은 선계에다 LTE 신호를 송출했다.

"어, 어서 해봅시다."

당군악은 스마트폰을 꺼내서 전원을 껐다가 켰다, 재부팅했다.

선계 전용 폰은 아니다.

지구에서 사용했던 폰.

지구에서 나오는 신호이기에 통신사 유심칩이 있어야 가능하다.

귀곡도 있다. 갈홍도 이번에 가서 만들어왔다.

요금?

태주가 대신 내주고 있어서 멤버십은 계속 유지되고 있으니까.

긴장되는 순간!

인터넷 검색용 어플, 초록창을 실행하니.

"되, 된다!"

"오! 정말 되는구려."

"세상에! 이런 천지개벽할 일이!"

이론이 결과로서 증명되는 순간.

당군악은 케톡을 열어 지구에 있는 태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독선] : 날세.

[태주] : 오! 됐네요.

[독선] : 하하하, 다 자네의 차원 구멍 덕분이지.

[태주] : 상위계 분들 명단이나 보내주세요. 제가 여기서 가입 처리하고 유심칩은 따로 보내드릴게요.

[독선] : 알았네.

이모티콘도 보내고.

귀곡과 갈홍을 톡방에 초대해 서로 대화도 나누고.

이제 남은 건···,

"독선, 신선들에겐 언제 알릴 거요?"

"···일단 비밀로 해둡시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오."

"맞소. 지구와 선계가 하나의 네트워크가 되면 우리 상위계의 존재가 낱낱이 까발려질 테니까."

당군악은 피식,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거야 이미 다 밝혀진 거 아니오?"

"하긴, 검선과 제천대성이 그 난리를 쳐댔는데, 비밀도 아니지."

"귀곡, 그대도 방송하지 않았소?"

"···으음, 옆에서 다 하길래."

"심지어 광고까지 찍은 마당에야."

그랬다.

이제 신선의 존재를 거의 다 안다.

물론 아직도 안 믿는 사람이 많다 해도.

"그럼 왜 비밀로 하려고? 혹시 통신예절 때문에 그러시오?"

"아하! 그렇구먼. 사이버 공간도 일종의 세상이나 마찬가지, 거기서도 사고를 치려면 얼마든지 칠 수 있으니까."

귀곡과 갈홍의 추측에 이번에도 아니라는 당군악.

"그대들은 지구를 너무 무시하는군. 거기 인터넷 공간에 미친놈들이 얼마나 많은데, 신선들이 비교나 되겠소? 악플에, 해킹에, 조리돌림에, 거긴 이미 난장판이오."

"아···."

"그, 그렇군."

그것도 맞는 말이다.

사이버 공간에선 신선들이 지구인보다 한 수 아래.

"비밀로 하는 이유가?"

"과금 정책을 손보려고, 규정은 만들어야 안 되겠소? 전파를 공짜로 쓰면 되나?"

"···어? 요금제 말인가?"

"당연하오. 선계 요금은 따로 받아야지. 코인도 너무 많이 풀려서 거둬들여야 할 필요가 있고."

"···."

귀곡과 갈홍은 속으로 혀를 내둘렀다.

실로 독마다운 생각이다.

이 상황에서 과금 정책을 고민하다니.

하지만 당분간 비밀로 할 거라는 독선의 계획은 순식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 ※ ※

푸다다다닥! 푸다닥!

검선(劍仙)이 오랜만에 할리 바이크를 타고 드라이브 중이었다.

탐스러운 선도가 열린 도원에도 가보고, 아파트 건설이 한창인 아파트 현장과 자미궁에도 가보고, 상시적인 게이트를 통해 황천계로 가서 지옥 구경도 하고,

돌고 돌아 멀티플렉스로 왔다.

공터에 주차한 후, 헬멧을 벗어 탑박스에 넣었다.

짧게 깎은 머리, 잘 정돈된 수염, 상 하의가 합쳐진 바이크 수트를 입고, 거기에 선글라스까지 착용하니, 멋진 미중년의 모습.

'역시 너무 짧아.'

열심히 도로를 건설했지만 다 돌아보는 데 1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지구에서 드라이브했다면 몇 날 며칠, 계속해서 돌아다닐 수 있었을 텐데.

'지구라, 또 언제 가나?'

좋은 날은 다 갔다.

당분간 지구에 갈 생각은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검선도 염치를 아는 신선.

2번이나 지구에 다녀왔는데, 어떻게 또 가나?

뭐, 솔직히 눈치 보는 성격은 아니지만 3번 내려가면 다른 신선들에게 맞아 죽을지도 모른다.

가지 않아도 견딜 만하다.

옛날 선계가 아니지 않나?

굳이 지구만큼은 아니라도 즐길 거리가 충분한 선계.

하지만 여전히 잊지 못했다.

라이브 방송을 통해 지구 시청자들과 만나고, 폭발적인 관심과 후원을 한 몸에 받고,

검선을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냈다.

그가 가진 스마트폰은 2개.

하나는 선계에서만 쓰는 폰.

다른 하나는 지구에서 사용했던 폰.

지금 꺼낸 스마트폰은 지구에서 라이브 방송할 때 쓰던 거였다.

태주 대협이 요금을 자동이체로 해놓았기 때문에 아직 멤버십이 살아있다.

'이때가 좋았지.'

자신의 전성기, 리즈 시절.

또 한 번 그 짜릿함을 맛볼 수 있을까?

검선은 폰 전원을 켜고, 너튜브 아이콘을 실행해봤다.

그런데?

"어라?"

희한하다.

이게 왜 되지?

그래서 무심코 라이브 생방송 시작 버튼을 눌렀는데,

[라이브 방송을 시작합니다.]

"···뭐?"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띠링···,

라이브 채널을 구독하고 있던 시청자들이 미친 듯이 들어왔다.

"헉! 무슨?"

└ 검하!

└ 떴다!!!

└ 와! 진짜 검선님이다.

└ 우주 최고의 스트리머!!!

└ 기다렸어요.

└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우리 신선님!

.

.

.

"어어어···,"

당황한 검선이 라이브 방송을 종료했다.

'내가 꿈을 꾸나? 아니면 지구에 있나?'

주위를 둘러봤다.

멀티플렉스가 보인다.

선계월드도 보인다.

지나가는 배달 분신체 배달 원숭이도 보인다.

'선계가 맞는데···,'

다시 스마트폰을 열어서, 다른 어플도 실행되는지 확인했다.

"허허!"

된다.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된다.

'왜?'

하지만 의문도 잠시.

이유가 중요한가?

라이브 방송이 된다는 게 중요하지.

검선은 이기어폰으로 스마트폰을 허공에 띄웠다.

거리와 각도를 신중하게 조절한 후에.

다시 방송 시작 버튼을 눌러.

[라이브 방송을 시작합니다.]

띠링, 띠링, 띠띠디디리링! 띠링···,

"다들 잘 지내셨소이까?"

└ 오! 된다.

└ 왜 방송 종료하셨어요?

└ 아까는 준비가 덜 돼서 그런 듯.

└ 오늘은 어떤 컨텐츠입니까? 궁금해요.

"하하하, 간단하게 갑시다."

스우우웅!

스마트폰이 검선을 중심으로 360도 공전하듯 한 바퀴 돌았다.

"보이시오? 여기가 바로 선계라오. 신선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 말이오."

└ 선계?

└ 정말?

└ 으흠, 놀이공원 아닌가?

└ 에이, 이건 아니다. 누가봐도 지구인데.

└ 바둑두는 신선들 어디 갔어?

순간!

때마침 지나가는 백홍표.

"오! 백천인도 보이는군. 아시려나 모르겠소. 행복마을 원장이라고 하던데, 선한 일을 많이 해서 천계에 일시적으로 잠시 머무르고 있는 백홍표 천인."

매우 친한 사이라는 듯 어깨동무를 하면서.

"아! 천계라고 하면 잘 모르겠군. 천국이나 천당을 떠올리면 이해될 거요."

어떤 상황인지 알 리 없는 백홍표가 카메라 앞에서 머쓱한 표정을 지었고.

└ ?

└ ??

└ ???

└ ????

.

.

.

채팅창은 난리가 났다.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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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계(仙界).

검선은 채팅창의 어마어마한 반응을 보며 매우 만족했다.

이로써 업적 달성.

선계에서 라이브 방송을 지구로 송출한 최초의 신선.

그래서 물 들어오는 김에 노 젓는다고, 백홍표 천인을 계속 인터뷰하는 중.

"폭탄을 옮기려다 그리되었다니, 참으로 눈물겨운 희생정신이었소. 참! 소문으론 완전히 사망한 것이 아니라는데?"

"네, 착오가 있었다고 들었습니다. 원래는 혼백으로 다시 제 몸에 돌아가야 하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아서 일단 새로운 몸을 받았습니다."

"쯧쯧, 황천계 하는 일이 다 그렇지."

"···이만 가봐도 되겠습니까? 전 바쁜 일이 있어서."

"아! 미안하오. 빨리 일 보시오. 시청자들에게 인사나 해주시고."

백홍표는 스마트폰에 꾸벅 인사하고 검선과 멀어졌다.

그런데 시청자가 누구지?

화면을 보니 너튜브 라이브 같은데, 설마 지구 시청자일 리는 없을 테고.

검선은 쉬지 않고 입을 놀렸다.

오디오의 공백이 생기면 안 되기 때문이다.

시청자들은 냉혹하다.

지루하면 바로 떠난다.

"여기서 황천계라고 함은 저승을 이야기하는 거요. 죽은 후에 오는 곳, 대부분 혼백은 환생하고, 죄인은 지옥으로, 아주 극소수는 천인이 되어 천계로···, 아!"

마침 누군가를 또 발견한 모양.

"강림! 이리 와 보시오."

"응? 왜 그러십니까? 검선님."

"나하고 인터뷰나 합시다."

"···뜬금없이 무슨?"

멀티플렉스에 들어가려다 검선의 부름에 엉거주춤 다가오는 강림.

"이자는 강림차사라고 부르오. 저승사자를 통솔하고 지옥을 관리하는 역할을 맡고 있지. 황천계 고위 공무원이라고 생각하면 되겠군."

강림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

"···지금 영화 찍는 겁니까?"

"그 비슷한 거지."

"아하! 나중에 지구로 가서 또 라이브 방송하려고 연습하는 거군요."

"흐음, 라이브 방송은 맞아."

"하하하, 재미있겠네요. 가상의 시청자들을 두고 하는 라이브라."

가상은 무슨?

실제 시청자들이 있는데.

└ 지옥이요?

└ 도저히 못 믿겠는데? 천국과 지옥이라니.

└ 나도, 도덕책에 나오는 동화도 아니고,

└ 에이, 사후 세계가 진짜 있겠어?

└ 있다고 쳐도 저긴 다른 세상이잖아. 우리와는 관계없지.

└ 그럼 백홍표님은?

└ 어음, 착오가 있었다는 말 못 들었냐?

검선이 채팅창을 슬쩍 보면서 강림에게 물었다.

"강림, 물어볼 것이 있소."

"네."

"왜 지구의 혼백이 황천계로 넘어오는 건지?"

"그야, 지구와 연결이 되고 있으니까요. 솔직히 그것 때문에 걱정이 태산입니다."

"걱정이라니?"

한숨을 푹 쉬면서 말을 이어가는 강림.

"천인분들은 이쪽으로 오시면 환영할 일이나, 지랄 맞은 지구 죄인들도 오고 있어서요. 그렇지 않아도 좁아터진 지옥인데."

"지구 죄인이라면···, 아! 폭탄 테러에 연관된 놈들?"

"그렇습니다. 후동평, 기무라, 츠치다, 일단은 이 세 놈인데, 앞으로 더 늘어날지도 모릅니다. 지구엔 마인이란 놈들도 수두룩하다고 하니."

또 폭발하는 채팅창.

특히 삼한 제국 국민들의 반응은 더욱 거셌다.

└ 진짜였어?

└ 기무라와 츠치다가 죽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지옥으로 갔다고?

└ 후동평은 누구야?

└ 마인보다 더 한 놈 있어, 정신 조작 각성자.

└ 와! 이거 동화 수준이 아니네.

└ 근데 지옥도 괜찮은 곳 같은데? 어쨌든 거기서도 내 기억 가지고 살아갈 수 있다는 말이잖아.

└ 재미없는 천국보다 지옥이 차라리 낫다는 말도 있지.

지옥이 좋다고?

착각도 정도가 있다.

검선이 비릿하게 미소 지으며 강림에게 물었다.

"헌데 지옥 가면 무슨 벌을 받소?"

"왜 그러십니까? 새삼스럽게···, 다 알고 계시면서."

"그냥 썰 좀 풀어 달라는 말이지."

"뭐, 간단하게 이야기하죠."

순간!

스슷!

지옥 관리인 모드로 들어간 강림의 표정이 음산하게 변했다.

공포영화에 나오는 악마의 모습.

그의 목소리마저 소름이 끼쳤다.

"먼저 지옥행 판결을 받으면 그들은 죄인의 몸을 받게 됩니다."

"어떤 몸이오?"

"아주 질기고 튼튼한 몸이지요."

"오! 좋은 거 아닌가?"

"대신 고통이란 감각에 특화된 몸이지요. 바늘로 살짝 찔러도 게거품을 물 정도로 민감한."

"저런!"

검선의 적절한 리액션.

"내 장담하지요. 딱 10분이면 차라리 죽여달라고 애걸복걸할 겁니다. 그러나 쉽게 죽여줄까요? 1년이고, 10년이고, 100년이고, 날마다 끊이지 않는 고통이 육체와 정신을 갉아먹을 겁니다. 그리고 서서히 자아를 잃어가겠지요. 자신이 누구인지도, 왜 이런 고통을 받는지도 깨닫지 못할 테고."

그에 힘입어 신이 나서 떠드는 강림.

"물론 중간중간 제정신이 돌아오겠죠. 인간의 혼백이라는 것이 생각보다 질기거든요. 정신이 돌아오는 순간에 자아 정체성과 지옥에 떨어진 이유를 알게 되는 겁니다. 동시에 눈물을 펑펑 쏟으며 후회하겠죠. 그래봐야 별 소용도 없겠지만."

"그게 끝인가?"

"천만에요. 이제 본 빨래 시작이죠."

얼굴에 어린 귀기가 더 으스스해지면서.

"지옥은 하나가 아닙니다. 적응될 때쯤 상위 지옥으로 옮겨집니다. 계속해서···, 생각할 여유? 삶의 관조? 이딴 건 없어요. 오직 어떻게 하면 이 고통을 벗어날 수 있을까, 그것만 생각하게 됩니다. 그렇다고 시간이나 빨리 흘러갈까? 1시간이 1년처럼 느껴질걸요."

"그렇게 반복하다 보면 자아를 완전히 잃어버리게 되고 생전에 칠해진 죄의 색깔이 지워지면서 비로소 환생의 자격이 주어지게 되는 겁니다."

검선이 몸을 부르르 떨면서 물었다.

"무섭군. 나도 일전에 실수해서 지옥 갈 뻔한 적이 있는데, 주로 어떤 이들이 가나?"

"그야 나쁜 짓 한 놈들요."

"무조건?"

"물론 단순한 나쁜 짓 가지곤 어림도 없습니다. 혼백이 악으로 물들어 악취가 풍기는 죄인들만! 사실 자잘한 악업들은 선업과 퉁 치면서 사라지거든요. 빨래할 필요도 없이."

"아하! 결국 지옥의 목적은 세탁이었군."

"더러운 건 빨아서 써야죠."

갑자기 채팅창이 뚝 끊겼다.

신기하리만큼 누구도 글을 올리지 않았다.

"강림, 유익한 인터뷰였소. 주선에게 내 이름 달고 칵테일 한잔 드시오."

"헤헤, 그럼 뭐···,"

글이 올라오기 시작한 건 10초 정도 지난 후였다.

└ 난 절대 안 믿어.

└ 나도.

└ 신선과 제천대성까지는 믿어주겠는데 지옥은 아니지.

└ 아니, 그걸 믿었으면 지옥은 왜 못 믿어?

└ 안 믿는 게 아니라 믿고 싶지 않은 거겠지.

└ 난 믿는다. 천국 가려면 뭐부터 해야 하냐?

└ 이미 늦었을걸. 지옥에나 안 가길 기도해.

└ 웃기지 마라! 이렇게 된 이상 내 삶의 목적은 천인이다.

└ 되겠냐?

그렇게 강림을 보내고 난 뒤,

다시 검선의 레이더망에 걸려든 신선 한 명.

"어이! 종리 선인! 바쁘시오?"

"응? 검선이군. 선계 카페에서 만날 사람이 있어서."

"누구요?"

"하선고 년이 라떼 사달라고 자꾸 졸라대는 바람에···, 지가 해맑이인 줄 알아."

"쯧쯧, 자꾸 받아주면 버릇이 없어져."

"내 말이!"

그러면서 슬쩍.

"종리, 오랜만에 둔갑술이나 보여주시오."

"갑자기?"

"시청자들에게 선술이 어떤 건지 소개나 해주려고."

"뭐요? 시청자라니."

"이거 안 보이시오."

주위를 휙휙 날아다니는 스마트폰 화면을 자세히 살펴보는 종리 선인.

"···어?"

이게 대체?

"진짜요?"

"보시오. 지금 그대 이름도 언급되고 있구먼."

"으잉?"

└ 둔갑술? 종리 선인?

└ 폴리모프 비슷한 건가?

└ 뭐, 평범한 거잖아.

└ 종리 선인님 말고 차라리 제천대성님 보여주세요.

└ 맞아. 우리 투전승불님 어디 갔어?

종리 선인은 발끈했다.

아니, 비교할 데가 없어서···,

"내가 그깟 원숭이보다 못한 게 뭐 있다고!"

퍼펑! 퍼퍼펑!

작디작은 곤충에서, 쥐, 소, 토끼, 돼지, 염소 등등 연신 몸을 움직여 둔갑술을 펼치는 종리.

검선은 흐뭇했다.

약간만 충동질해도 이렇게 열심히 해주는 호구들.

이렇게 컨텐츠는 널려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선계 뿐인가?

황천계, 천계, 환수계, 요마계···,

어우, 생각만 해도 웅장해진다.

점점 시청자들이 몰려왔다.

후원도 엄청나게 터지고 있었다.

'다 내 돈이란 말이지?'

계좌도 개설되어 있으니 곧 있으면 입금도 될 테고.

이 돈으로 지구의 물건을 살 수 있다.

시계와 바이크, 스포츠카, 컬렉션 수집도 가능하다.

스마트폰으로 쇼핑하고, 배송 주소는 태주 대협의 자택으로, 나중에 따로 협의해서 선계 배송 대행을 의뢰하면?

'지구 쇼핑몰 직구의 시대가 열리겠군.'

그러나 곧 안색이 굳어졌다.

어차피 배송된다 해도 독선의 공유창고로 올 것이기 때문에.

그가 허락하지 않으면 지구 직구도 불가능하다는 의미.

'언젠간 되겠지.'

그나저나 어떻게 통신 연결이 이루어졌을까?

'뭐, 어쨌거나 알 필요가 있나?'

연결됐을 때 쉬지 말고 계속 노를 젓자.

쪽쪽 빨아먹어야지.

바로 그때!

"안녕하세요오! 검선니임!!!"

해맑 선녀가 나타났다.

"이런!"

검선은 당황했다.

해맑 선녀의 등장.

그녀는 상위계의 끝판왕.

나오기만 하면 지구의 인터넷망을 마비시킬 수 있는 킬러 컨텐츠.

하지만 너무 이르다.

아껴둬야 할 카드.

벌써 채팅창에 반응이 오고 있었다.

└ 여잔데?

└ 여자고 예쁜데?

└ 여자고, 예쁘면서, 귀여운데?

└ 여자고, 예쁘면서, 귀여움 장착에, 착하게 생겼는데?

카메라부터 돌리고,

스팟!

검선은 해맑을 피해 도망쳤다.

"왜 도망치세요오? 제가 싫어요오?"

"다, 다음에 봅시다."

└ 스톱!

└ 아니, 왜 도망치시나?

└ 검선님, 빨리 인터뷰해 주세요.

└ 얼굴만 보여주세요, 얼굴만!

└ 이럴 거면 저 여자분께 스마트폰 넘겨주던가.

검선이 라이브 방송으로 지구와 소통 중이라는 소문이 선계 전체로 퍼져나갔다.

그리고 이 짧은 시간 동안의 라이브 방송으로 지구 또한 난리가 났다.

※ ※ ※

태주는 검선의 라이브 채널을 구독하진 않았다.

일부러 안 한 것이 아니라, 그가 방송할 때 항상 같이 있었기 때문에 할 경황이 없었다.

그래서 검선의 선계 라이브 방송은 백서연을 통해 알게 됐다.

그것도 인터넷 랜선을 구멍에다 집어넣고 난 후, 1시간도 지나지 않은 시점에서.

"회장님!!!"

"어후, 깜짝이야. 무슨 일인데 그렇게 놀라서···,"

"이, 이거 보세요."

태주는 백서연이 건네주는 태블릿을 봤다.

"···엉?"

검선의 라이브 방송이었다.

백홍표 형님도 출현했다.

게다가 강림차사까지.

"녹화가 아니라 생 라이브라고요?"

"네! 맞습니다."

아니, 연결된 지 얼마나 됐다고?

진짜 검선은 여러모로 놀라운 신선이었다.

이렇게 될 거라고 예상 못 한 건 아니다.

언젠간 선계와 황천계, 그리고 천계, 환수계, 요마계 존재까지 다 알려지겠지.

그러나 너무 빠르다.

또한 어느 선까지 밝혀야 할지 논의도 하지 않은 상황.

상위계의 존재를 저렇게 까발리면 어떡하나?

'독선은 알까?'

그래서 메시지를 보내봤다.

[태주] : 독선님.

[독선] : 응? 왜 그러나?

[태주] : 혹시 이거 보셨어요?

띠링.

[태주] : 검선의 선계 라이브 채널(링크)

그러자,

[독선] : 하아, 이런 미친 작자가!

[태주] : 역시 큰일이죠?

[독선] : 당연히 큰일이지!

당군악의 분노가 그대로 느껴졌다.

[독선] : 요금도 안 내고 함부로 데이터를 사용해?

[태주] : 네?

[독선] : 아무리 유심칩이 있어도 이건 아니지. 선계 요금은 따로 책정되는 법인데.

[태주] : 어, 설마 그것 때문에 이렇게 화를 내시는 건가요?

[독선] : 응? 그럼 그거 말고 또 잘못된 것이 있나?

'···,'

할 말 없다.

검선의 잘못은 결국 이거였다.

요금 안 내고 무단으로 통신망을 사용한 죄.

'미치겠네.'

안 되겠다.

직접 나서서라도 최소한의 가이드라인은 그어줘야지.

[태주] : 검선님 문제는 제가 알아서 처리해도 될까요?

[독선] : 음? 마음껏 하게.

[태주] : 처리하고 나서 다시 연락드리죠. 선계 통신 규정에 대해서 이야기도 할 겸.

지금은 초기 단계

아무것도 안 하면 개판이 되어버린다.

해맑까지는 괜찮다고 쳐도···,

이러다 태상노군, 서왕모, 용왕, 염라, 상제까지 방송으로 내보이면?

'그건 절대 안 돼.'

그분들이 보통 존재들인가?

방송 출연만으로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태주에겐 지구도, 선계, 천계, 황천계도 다 같이 소중하다.

'죄송합니다. 검선님, 이 기회에 본보기가 되어주셔야겠어요.'

태주는 백서연에게 물었다.

"우리가 계약한 통신회사와 연락되죠?"

"네, 됩니다."

"거기 책임자에게 말 좀 전해주실래요."

"어떤?"

매우 가슴이 아프지만···,

"검선님 휴대폰, 정지시키라고, 지금 당장."

"어머? 정말요?"

"제가 허락할 때까진 절대 풀지 말라는 말도 덧붙여서."

"아, 알겠습니다."

어쩔 수 없다.

최소한의 안전장치는 마련해두고 서비스를 시작해야지.

※ ※ ※

검선이 선계에서 라이브 방송을 한다.

소문은 급속도로 퍼졌다.

"뭐? 선계와 지구가 인터넷으로 연결됐다고?"

"허허, 종리, 무슨 말도 안 되는 사실을 가지고."

"검선에게 사기당했군."

"쯧쯧, 사기꾼 말을 믿소?"

답답하다는 듯 가슴을 탕탕 치면서 억울함을 호소하는 종리 선인.

"정말이오! 내 이 두 눈으로 똑똑히 봤다니까?"

"에이, 설마···,"

"가서 확인해보면 되지 않소."

맞다.

그러면 된다.

신선들이 우르르 몰려갔다.

검선은 선계 월드에 있었다.

이기어폰으로 스마트폰을 움직이면서 선계 월드를 소개하는 중.

"거, 검선! 어떻게 된 거요?"

"지구와 통신이 연결됐다는 소리가 들리던데?"

"사실이오?"

"해명을 요구하겠소."

비릿하게 미소 짓는 검선.

LTE 유심칩도 없는 딱한 인생들이 왔다.

"당연히 가지고 있지. 지금도 라이브 방송 중인데."

으스대는 검선의 말에,

"헉!"

"지, 진짜?"

"···증거는?"

못 보여 줄 것도 없다.

"까짓거, 보여주지."

할 만큼 했으니, 라이브 방송은 잠시 중단하고.

스우웅!

검선은 스마트폰을 신선들 가까이 날렸다.

그리고 탄지신통으로 화면을 터치하니,

"이, 이럴 수가?"

"세상에?"

"이게 된다고?"

"저 꽉 찬 신호 막대를 보시오."

"···검색창도 열려."

"어떻게?"

"내 폰은 안 돼."

"지구에서 개통한 폰만 되나?"

아아아!

선망의 눈초리가 쏟아진다.

얼마나 짜릿한가?

이것이 바로 당신들과 나의 눈높이다.

같은 신선이라도 격이 다르다는 말이다.

그때였다.

띠링!

폰에서 울리는 메시지 알림음.

"메시지도 왔군."

"빨리 읽어보시오."

"신용 대출 광고 아닌가? 김미영 팀장이 보낸."

"말로만 듣던 김미영씨?"

"허허, 신선이 스팸 메시지도 받고."

"부럽도다."

콧대가 하늘 꼭대기까지 치솟은 검선이 여유롭게 메시지를 읽어나갔다.

"어디 보자, 내용이···, 어?"

이게 뭐지?

[web발신]

[이용 정지 안내]

- 귀하의 휴대폰은 통신사 운영정책 기준을 위반해 정지될 예정입니다. -

- 위반 사유 : 부적절한 라이브 방송. -

"어어어···,"

신선들도 메시지를 읽었다.

"엥? 이용 중지?"

"운영정책 위반이라는데?"

"낄낄낄, 내 이럴 줄 알았다."

"암, 부적절하고말고. 원래 검선 자체가 부적절한 신선 아니었소?"

"부적절의 대명사라고나 할까, 지구 통신사도 알아볼 정도니."

"역시 검선이야. 최초의 스마트폰 이용 중지당한 신선이 됐어."

"업적 작 제대로군."

"꼴 좋다."

"어이쿠! 신호 없음 떴다!"

신선들의 조롱.

검선은 넋이 나갔다.

대체 왜?

검선이 최초로 달성한 또 하나의 업적.

스마트폰 이용 정지.

"실망 마시오. 잠시 행복했으면 됐잖소."

"이럴 게 아니라 독선을 찾아가 봅시다. 연유를 알아봐야지."

"그럽시다."

신선들은 망연자실한 검선을 뒤로하고 독선을 만나기 위해 또 우르르 떠나갔다.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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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제이 길드.

태주가 구례 바이오 단지와 보육원 안전을 위해 만든 무력 단체.

처음 제자로 받은 백창훈과 장순철을 중심으로 8명이 길드의 주축이다.

대부분이 백홍표가 거둔 보육원 아이들.

당연히 백홍표에 대한 존경심과 사랑은 매우 각별했다.

그래서 오늘도 백창훈과 길드원들은 병실을 지키고 있었다.

아버지에 대해 관심이 소홀해진 서연 누나와 김태주 회장님을 대신해서 말이다.

솔직히 불만이 없다면 거짓말.

김태주 회장님은 그렇다 쳐도 서연 누나가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친딸이나 마찬가지인데.

어쩔 수 없는 사정이 있다고 해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 와중에 백창훈은 길드원들과 함께 병실 안에서 그 라이브 영상을 봤다.

자신들에게 복마검법을 가르쳐 주셨던 검선님이 하시는 방송.

그런데?

'···선계?'

저기가 선계라고?

신선들이 사는 신화 속 장소?

다른 세상에서 오셨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순간!

"헉!"

"어?"

"아, 아버지?"

"왜 저기 계세요?"

검선과 대화를 나누는 낯익은 사람.

아버지였다.

헛것을 보나?

혹시 몰라 집중하고 봤다.

하지만 모습도, 행동도, 멋쩍어하는 표정도, 목소리도, 말투도 아버지의 것 그대로였다.

그럼 병실에 누워계신 이분은?

"···."

백창훈은 완전히 넋이 나갔다.

둔기에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엄청난 충격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천계에서 새로운 몸을 받으셨다니.

상상도 못 했다.

'가만!'

번뜩 든 생각.

'누나는 알고 있었을 거야. 회장님도.'

그제야 김태주 회장, 백서연, 두 사람의 행동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 ※ ※

아메리카 공화국 수도 캔자스시티, 백악관.

빌리 피트먼 대통령이 참모 보좌관 회의를 주재하고 있었다.

"추적 번호 L-03은 영혼 연결자가 아닌 걸로 밝혀졌습니다."

"···아니라고?"

"특수한 무술을 익힌 적합자였습니다. 하지만 마스터엔 미치지 못했습니다."

"그럼 T-13, 텍사스 그 여자는?"

"아쉽지만 그녀도···,"

"제기랄!"

CIA와 FBI가 공조해서 벌이고 있는 영혼 연결자 추적.

현재 백악관이 가장 중점적으로 펼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영혼 연결자들로 의심되는 사람들에게 접근해서 능력을 확인하고 정부 소속으로 영입하기 위해서.

삼한 제국을 보라.

김태주라는 영혼 연결자를 보유함으로써 세계 최강국으로서 발돋움했다.

무려 신선과 제천대성이라는 전설 속의 존재를 소환해내는 엄청난 권능의 소유자.

그뿐만이 아니다.

그가 이룬 업적들은 하나같이 세계를 뒤집어엎을 만한 것들이다.

생기불끈으로 엄청난 돈을, MRC로 마나 거부자들을 완치시켰고, 레이드용 도핑 물약으로 안전한 마수 레이드를 정착시켰으며, 해양 마수들이 두려워하는 금속으로 바다의 지배자가 됐다.

곧 있으면 항공모함을 바다에 띄울지도 모른다.

아메리카의 전신인 미국이란 나라가 차지했던 천조국이라는 명성은 삼한 제국에게 넘어갈 것이다.

유럽 제국에도 영혼 연결자가 있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알렉스 카이사르 황제와 빈센트 모레티라는 마도 공학자.

그럼 우리 아메리카는?

정말 영혼 연결자들이 한 명도 없을까?

그래서 찾아 나섰다.

하지만 죄다 허탕.

알고 보니 적합자거나, 각성 문양을 가린 각성자.

"무조건 찾아내야 해. 우리도 영혼 연결자 한 명 정도는 있어야지. 이대로라면 삼한과의 격차가 너무 벌어져."

"···네."

"노력해보죠."

그러나 참모들의 표정은 어두웠다.

열심히 해서 찾아낸들, 이미 격차는 벌어질 대로 벌어졌는데 어떻게 좁혀?

바로 그 순간!

지잉, 지잉, 지잉.

회의장에 울리는 진동음.

빌리 피트먼 대통령 폰에도 울렸다.

그가 스마트폰을 들어 확인하자 참모들도 따라서 잠금화면을 해제했다.

"또 신선 라이브 방송이군."

"그런 것 같습니다."

마수 잡는 컨텐츠는 아닌 것 같다.

간단한 인터뷰 영상.

왜 신선이 라이브 방송에 목을 매는지 솔직히 이해가 안 된다.

관심병인가?

"일단 통역해주게."

그리고 흘러나오는 이야기들.

"···."

"···."

"···."

방송이 끝나자 다들 얼어 붙어버렸다.

고요하게 침묵이 흐르는 회의장.

사후세계라고?

천국과 지옥이라니.

실제로 존재한다는 말인가?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패러다임 자체가 송두리째 변화되는 순간이다.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다.

사람들의 생활방식, 국가의 정책, 그리고 기존 종교 체계마저도.

※ ※ ※

삼한 제국 황궁.

황제와 금수호 비서관도 라이브 방송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후우,"

"쩝."

한동안 말이 없다가,

"사실이겠지?"

"전 진짜라고 봅니다. 신선이 거짓말을 할 이유가 없죠. 직접 만나보지 않았습니까?"

"하긴, 백원장도 확실하고."

"역시 착한 사람은 저렇게 복을 받나 봅니다."

신화의 현실화.

지구, 인간 사회는 이미 변화의 길에 들어섰다.

"나도 천계에 갈 수 있을까?"

"어림도 없습니다."

"이 새끼가! 고민 좀 하고 대답해라."

"폐하도 저도, 지옥에 안 가기만 기도하는 게 최선입니다."

"하, 쉽지 않아."

"쉽지 않죠."

삼한 제국은 피의 역사다.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 대제국을 건설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나?

"뭐, 착한 일도 많이 하셨잖습니까?"

"그게 내가 믿는 구석이기도 하지."

나름 성군이라고 칭송받는 류태현 황제였다.

인간 사회뿐만 아니라 지구 환경에도 도움이 되는 정책을 벌였다.

마수 토벌로 숲은 정화됐고, 강력한 친환경 정책으로 대기나 수질도 많이 개선됐다.

그래도 지옥행 판결이 떨어지면?

"김태주 회장은 아직 연락이 안 돼?"

"엄청 바쁜 모양이던데요?"

"계속해봐. 보고 싶다고 전해."

"네."

염치없지만 김태주 회장에게라도 빌붙어야지.

※ ※ ※

뉴서울 통신회사 유텔레콤에서 열린 긴급 임원회의.

"그러니까 선계에 서비스되는 모바일 통신이 우리 회사 거라고?"

"구례 지점에서 재차 확인했습니다. 광케이블 통신선도 김태주 회장 자택에 끌어다 줬고, 기지국 장비도 우리 회사가 사용하는 장비들입니다."

유텔레콤 최고 경영자의 눈빛이 번뜩였다.

이건 기회다.

사실 유텔레콤은 삼한 통신회사 중에서 점유율이 가장 낮다.

두 마리의 공룡들이 시장을 장악하고 있었고, 유텔레콤은 간신히 연명만 하는 수준,

그런데 선계에서 사용하는 통신이 유텔레콤이라니.

통신이 어떤 식으로 연결됐는지, 알 필요가 없다.

중요한 건 신선이 우리 회선을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대대적인 광고 준비해."

"광고라면?"

"신선들이 우리 회사 모바일 사용하는데, 알리지 않을 생각이었어?"

"아!"

"유텔레콤에겐 하늘이 준 기회야. 무려 신선들이 사용하는 모바일 이동 통신! 끝장나는 거지."

맞다.

선계에서도 LTE가 터진다는데, 이것보다 더 큰 광고효과가 또 있을까?

"검선님에게 메시지 날려봐. 광고에 출연하실 생각 없냐고, 이미 청소기 광고 한번 해보셨잖아. 전화번호 확보하고 있지?"

그러자 난색을 표하는 임원.

"저어,"

"왜?"

"조금 전에 검선님 스마트폰이 중지되어서,"

"뭐? 어떤 미친 새끼가 감히 신선님 폰을 중지시켜?"

"기, 김태주 회장이 직접 요청했습니다."

"···."

그럼 할 말 없다.

그는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대신 김기국과 김오공님의 번호는 살아있습니다."

"그게 누군데?"

"김기국님은 검선님의 동료 신선으로 추정되는 분이시고, 김오공님은···,"

"···제천대성?"

"네!"

그렇단 말이지?

"그럼 김기국님과 김오공님에게 따로 연락을 취해. 정지되기 전에!"

"알겠습니다."

통신회사뿐만이 아니었다.

스마트폰 제조회사도,

"검선님 스마트폰 우리 회사 제품 맞지?"

"거의 확실해 보입니다."

"광고 집어넣어! 신선이 사용하는 스마트폰이라고."

"빠르게 진행하겠습니다."

바이크 만드는 회사도.

"광고 카피 제목은 할리 바이크, 선계를 달리다! 이걸로 가자고."

"검선님이 입었던 수트와 헬멧도 포함 켜서 신선룩 마케팅도 함께 준비하겠습니다."

"좋아. 진행시켜."

백두 자동차도.

"라이브 방송 때 잠깐 스쳐 갔던 자동차 말이야."

"맞습니다. 우리 겁니다."

"그냥 있을 거야?"

"설마요!"

이렇듯 비록 짧은 시간이지만 검선의 선계 라이브 방송은 지구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단순히 크다고 말할 수 없을 정도였다.

가히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정치계와 경제계, 학계, 언론들, 모든 이슈가 선계, 천계, 황천계 이야기뿐이었다.

가장 경악한 사람들을 따로 있었다.

바로 종교계였다.

사후세계의 실존.

아니, 뜬금없이 천국이 왜 저기서 나와?

기존의 교리가 모조리 부정당할 것이다.

신의 말씀이 적힌 경전은 쓰레기 취급을 받을 것이고, 자신들이 믿던 신은 가짜가 될 처지.

마나가 지구를 침범하고 마수와 마인들이 출현했을 때도, 신이 내린 시험이라며, 믿음만 유지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고 전파하면서 끈질기게 버텨왔는데.

지금은 빼도 박도 못한다.

완전히 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 ※ ※

태주는 독선과 서로 메시지도 주고받으면서 선계 모바일 이동 통신 규정에 관해 의논했다.

무분별한 라이브 방송 금지라던가, 황천계, 혹은 천계 주요 인물 사진 동영상 무단 촬영 금지, 천인들 노출 자제 등등.

[독선] : 신선들 등쌀에 미칠 지경이야! 빨리 유심칩을 달라면서.

[태주] : 이번 배송 신호가 뜨면 보내드리죠.

[독선] : 그래도 천천히 보내게. 그동안에 통신 규정 교육하면 되니까.

신선과 천인들의 신분증과 유심칩, 1차분은 준비되어 있다.

아직 안 만든 사람들도 많다.

나중에 2차로 신청을 받아서 개통시켜주면 되고.

[태주] : 검선님은 어떠세요?

[독선] : 식음을 전폐하고 집에 틀어박혀 있네.

[태주] : 아, 안타깝네요.

[독선] : 헹! 전혀 신경 쓰지 마. 검선이 어떤 자인데, 그깟 스마트폰 정지됐다고 실망할 위인이 아니야.

[태주] : 그래도,

[독선] : 동정심 유발 작전이지. 자네 귀에 들어가게 하기 위한 엄살 말이야. 내 맹세할 수 있어.

[태주] : 그렇다면 다행이고요.

사실 조만간에 풀어줄 생각.

검선도 이해했을 것이다.

이렇게 할 필요가 있다.

규정 위반 시, 언제 어느 때라도 폰 사용을 중지시킬 수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 말이다.

당군악과의 대화를 마치고, 태주는 자택 지하수련실에서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한번 살펴볼까?'

그동안 수련에 너무 무심했다.

선도와 천도의 기운이 섞인 독령, 거기에 여의주와 드래곤 하트까지 품었다.

조화로운 선기가 모두를 감싸 안았다고는 하지만 서로 이질적인 기운임은 분명하다.

제대로 자리 잡고 있는지 기초부터 점검할 필요가 있다.

혼원무상독령공을 운기했다.

먼저 독령부터.

선기와 독기과 조화롭게 융합되어 천천히 회전하는 독령.

태주가 가진 힘의 근본.

이젠 독령(毒靈)이 아니라 선령(仙靈)이라고 불러야될 정도.

마치 AI처럼 다른 기운을 관리하고 운용한다.

'다행히 안정적으로 돌아가는구나.'

독령은 별문제 없다.

다음은 여의주.

용의 기운이다.

사실 용왕의 시술이 있었지만 인간의 몸으로서는 그 힘을 완벽하게 구현하는 건 매우 어렵고 까다롭다.

일부의 힘만 가능하다.

호풍환우와 승천.

'뭐, 사실 그거만 해도 거의 신의 권능이나 다름없지.'

어떻게 인간이 바람과 구름을 부르고 비와 함께 하늘로 치솟아 올라가?

그런데 부작용도 있는 것 같다.

가끔 바다로 나가 여의주의 힘을 발산하고 싶은 충동.

해양을 다스리는 바다의 신(神), 용왕의 의지가 여의주에 담겼기 때문일까?

'이러다 내가 지구의 용왕이 되겠네.'

우습게도 가능성이 높다.

지구에서 여의주를 품고 있는 존재는 자신 말고는 없으니까.

마지막으로 드래곤 하트.

차원 게이트 개방 권능을 가진 이계 용의 정수,

무려 차원을 연결하는 권능이 담겨있다.

고작 구멍 하나라고 만만히 볼 것이 아니다.

게다가 발전할 여지도 충분하다.

용왕이 시술하면서 약간의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했으니까.

실제로 지금도 몸 안에서 드래곤 하트의 존재감이 점점 확실해졌고.

'구멍을 하나 더 열어봤으면 좋겠는데.'

태주의 눈에 들어온 기존 차원 구멍.

최초 개방은 자신의 마나로 직접 열었지만, 그 이후부터는 별도의 마나 공급장치에 의해 유지된다.

즉 자신이 특별히 뭔가를 하지 않아도 닫히지 않고 계속 열려있다.

그런데 마나 공급장치라고 다 되는 것이 아니다.

오직 비욘드 결정체로 만든 장치만 가능하다.

일반 결정체나 엘리트 결정체 마나 공급장치는 작동 자체가 안 된다.

'아마 드래곤 때문이겠지.'

비욘드는 이계 드래곤이 창조하고 지배했던 마수.

그래서 드래곤의 마나가 섞인 비욘드 결정체에만 반응하는 것일지도.

비욘드 결정체야 충분히 쓸만큼 많으니까.

'더 열어보자.'

만약 기존 구멍이 닫히면?

선계 인터넷이 끊길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시 구멍 만들어서 광케이블을 통과시키면 되잖아.'

태주는 정신을 집중했다.

그리고 동시에 드래곤 하트를 인식했다.

우우웅!

태주의 힘에 반응하는 드래곤 하트.

"···음."

처음 힘을 사용했을 때와 사뭇 다른 느낌이 왔다.

어쩐지 더 뚜렷하고 선명한 존재감.

'드래곤 하트만 남겨볼까?'

의도적으로 독령과 여의주의 기운을 차단했다.

오직 드래곤 하트만 의식했다.

우우우우우···,

몰려드는 마나.

'자, 이제 어디에 열지?'

생각나는 곳은 한 군데밖에 없다.

역시 황천계.

마나가 한점으로 집중됐다.

그리고,

지이잉!

대기가 일렁이면서 나타나는 차원 게이트.

그런데 바로 그때!

[하아···.]

"응?"

뭐지?

목소리가 들렸는데?

하지만 옆에 아무도 없다.

'···.'

희한하다.

똑똑히 들었다.

누군가가 탄식하듯 내뱉은, 안타까움이 섞인 한숨 소리를 말이다.

무슨 현상이지?

왜 느닷없이 한탄하는 소리가···,

'기분 탓인가?'

어쨌든 게이트를 열었으니 결과나 확인해보자.

"오!"

게이트가 두 개였다.

하나는 비욘드 결정체 마나 공급장치로 유지되는 기존 차원 구멍.

다른 하나는 자신의 드래곤 하트 마나로 새로 연 구멍···,

"와!"

다르다.

새로 연 건 구멍이라 하기엔 다소 큰 크기.

광케이블이 지나가는 구멍이 골프공만 한다면 이번의 것은 거의 핸드볼 공만 하다.

'크기가 커졌구나.'

발전 가능성을 증명하는 순간.

물론 지금도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크기이긴 하지만,

'앞으로 더 커질 수 있어.'

용왕의 시술은 헛되지 않았다.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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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천계 염라의 집무실.

전자동 안마의자에 앉아 최고급 시가의 끝부분을 커팅기로 잘라 불을 붙인 후, 한 모금 깊게 빨아들이는 염라.

"으으흠."

알싸한 맛과 구수한 향기.

위잉! 위이이잉!

쇼핑몰에서 구매한 5대의 공기 청정기가 동시에 돌아갔다.

시가 연기를 뿜으면서 염라는 자신의 집무실에 놓인 궤짝을 열었다.

"좋구나."

필터담배와 시가가 궤짝 가득 들어있었다.

이 정도면 1년은 족히 버틸 수 있을 터.

하지만 가슴이 너무너무 아프다.

줄어드는 담배를 눈으로 봐야만 하는 심정은 누구도 모를 것이다.

"쯧쯧, 일주일만 더 열어두지."

그때였다.

지이잉!

"헉!"

이 익숙한 소리는?

염라는 안마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디지? 어디에 열려···, 아!"

의외로 쉽게 발견했다.

왜냐하면 전에 열렸던 구멍보다 크기가 서너 배쯤 더 커졌기 때문이다.

"허허, 더 발전했구나."

꿀꺽.

염라는 마른침을 삼켰다.

기대된다.

설마 열리는 것만으로 끝?

순간!

쑤욱!

"오오오오!"

나온다.

쑤욱! 쑤욱! 쑤욱!

필터담배였다.

보루째로 나왔다.

들킬세라, 나오자마자 챙겼다.

궤짝 안에 바로바로 집어넣었다.

고급시가도 나오고, 재떨이와 라이터도 나오고, 재판할 때 쓰면 좋을 것 같은 선글라스에, 입이 심심할 때 먹는 박하사탕, 그리고···,

'금연 껌?'

이런 건 필요 없는데,

나중에 강림 주면 되겠다.

순간!

픽! 하고 사라지는 차원 구멍.

살짝 아쉽긴 하지만···,

'실로 놀라울 따름이야.'

비록 구멍이지만 다른 세상의 문을 열었다는 것만 해도 기절초풍할 노릇인데, 점점 실력이 늘고 있다.

언젠가는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만큼 충분한 문을 열 수 있을 터.

갑자기 번뜩 든 생각.

태주 대협의 권능이 이렇게 발전했다면, 자신은?

집무실과 지구는 차원 구멍으로 한동안 연결되어 있었다.

지금도 또 열렸고.

그렇다면 자신에게도 변화가 생기지 않았을까?

'···아닐 거야.'

별일이야 생기겠나?

얼마나 열려있었다고.

'해볼까?'

한번 알아보자.

염라는 지구를 상상하며 게이트를 열었다.

그러자.

지잉!

열리는 게이트.

"···."

너무 쉽게 된다.

"이, 이런!"

다시 한번.

지이잉!

의식만 하니 열린다.

지이잉!

크기도 자유롭다.

지이잉! 지이잉!

심지어 두 개나 열렸다.

"제기랄!"

이쯤 되면···,

'완전 연결이군.'

지구와 황천계 말이다.

※ ※ ※

선계 멀티플렉스 최상층 LTE 기지국.

당군악과 귀곡, 갈홍은 본격적인 서비스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선계는 중계기가 없어도 서비스 권역에 포함된다.

문제는 황천계와 천계, 그리고 여력이 되면 환수계까지.

선계에만 특정할 것인가? 아니면 다른 상위계에도 중계기를 설치할 것이냐.

"일단 선계에만 한정하는 걸로 합시다. 다른 계는 솔직히 부담이 많소."

"나도 그렇게 생각하오. 천인들이야 선계에 놀러 와서 사용하면 되니까."

"지옥의 모습을 라이브로 촬영해 내보내기라도 하면···,"

"쯧쯧, 그런 흉측한 곳을."

점차 단계적으로 넓혀갈 예정.

그리하여 충격을 완화해 나가야 한다.

지금도 검선의 무단 라이브 방송 때문에 지구가 발칵 뒤집혔는데.

"참! 검선의 방송 계획서 봤소?"

"검토했소이다."

라이브 방송에 집착하는 신선은 검선 말고 없다.

금지할 수는 없는 노릇이고.

타협점을 찾았다.

라이브 방송할 생각이면 가칭, '선계 심의 윤리위원회'의 허가를 맡으라고, 통과되면 정지를 풀어주겠다고.

그래서 검선이 작성한 방송 계획서가 도착했다.

- 벌크업이 건강은 아니다! 게스트 : 삼봉 선인

- 어때요, 참 쉽죠? 게스트 : 화선

- 먹뱉을 왜 하나요오오? 게스트 : 해맑 선녀.

- 세상에 나쁜 영수는 없다. 게스트 : 미호선자, 일이삼백이.

"이 정도면 뭐···."

다 통과시켜 주기로 했다.

"유심칩만 오면 정식 서비스가 가능하겠구려."

"신분증도 같이 오는 거요?"

"태주가 다 준비해놨다고 연락이 왔소. 다음 배송에 올 거요."

지구에서 폰을 개통하려면 신분증이 필요하다.

신선들과 일부 천인들이 지구용 이름을 신청해서 당군악에게 줬다.

당군악은 그 명단을 태주에게 메시지로 보냈고.

그런데,

"그런데 성(姓)이 왜 죄다 김가(金家)인지, 김화선에, 김태백, 김철장, 김대목, 김단주···, 다른 성 쓰면 안 되나?"

성씨뿐만이 아니다.

주소도 구례 태주의 자택.

"태주 대협 성을 따르려는 거겠지."

"그게 기분이 나쁘다는 거요. 김씨 망신시킬 일 있나."

"해맑 선녀도 김해맑으로 신청했던데?"

"뭐, 해맑이야 환영하는 바이지만."

순간!

지이잉!

"응?"

이건 또 무슨 소리?

"설마···,"

"오!"

"구멍이요. 이거 더 커졌는데?"

그럼 기존 구멍은?

당군악은 랜선이 들어오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아직 열려있다.

닫히지 않았다.

새로운 구멍이 열렸을 뿐.

그것도 크기가 훨씬 커진.

"능력이 더 강해졌군."

"역시···,"

"구멍에서 문으로 진화하려나 보오. 곧 사람이 드나드는 건 시간문제일 거요."

당군악은 귀곡과 갈홍에게 입단속을 시켰다.

"절대 다른 신선들이 알아선 안 되오."

"어허! 당연한 소릴!"

"생각만 해도 끔찍해."

통신도 가능하겠다, 시시때때로 졸라대겠지.

지구 문을 열어달라고.

그리고,

쑤욱!

구멍을 통해 나오는 물건들.

"뭐지?"

"유심칩이군."

"신분증도 있소."

"거참! 이젠 자잘한 물건들은 공유창고를 통하지 않아도 없겠어."

"아마 곧 공유창고 자체가 필요 없어질지도 모르지."

아무튼 선계 LTE 서비스는 바로 눈앞으로 다가왔다.

※ ※ ※

강호 무림 사천 당가.

당철휘는 강호 출정 준비를 끝마쳤다.

복수와 징벌의 시간.

이제 출정식만 남았다.

사실 하나의 가문이 자신의 근거지를 떠나 외부로 원정 나갈 때 가장 조심해야 할 사항이 무엇일까?

바로 빈집털이에 대비하는 것.

본진이 점령당하면 밖에서 백전백승을 거둔들 무슨 의미가 있겠나?

당철휘가 심혈을 기울인 부분이 바로 이것.

먼저 장로들과 당가 최정예 전투 병력 일부를 남겨뒀다.

아이들과 아녀자, 일꾼들을 지키기 위해서.

유사시, 안전을 기할 수 있도록 누구도 열 수 없게끔 강철문이 달린 석실도 만들었고 탈출로도 정비했다.

그리고 자택 곳곳에도 독 함정을 팠다.

원래 당가는 기문진식에도 명성이 높다.

들어올 땐 살아있겠지만, 나갈 땐 죽어서 나갈 것이다,

강호 원정 인원은 추리고 추렸다.

자신은 물론, 당가 직계들이 대거 포함됐다.

사실 소가주는 두고 가고 싶었지만 강호 경험도 시켜줄 겸 데려가기로 했고.

첫 번째 목적지는 진주 언가.

오대세가 중 당가와 끈끈한 동맹관계로 이루어진 가문.

당철휘의 아내도 언가 출신이다.

하지만 현재 남궁가와 팽가의 포위 공세에 말라가고 있는 중.

먼저 언가를 구한다.

자신 있다.

현재 자신이 입고 있는 보패.

원래는 무한주머니 기능만 있었지만, 아버지가 새로 주고 가신 절대장포는 이전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효능이 숨겨져 있다.

외부 공격을 방어하는 수단은 물론, 수화불침은 기본, 잠깐이지만 능공허도로 하늘을 날 수도 있다.

가히 보물 중의 보물.

이 절대장포를 입고 적에게 패한다면 바보 멍청이일 터.

당가의 연무장, 출정식 단상에 선 당철휘.

웅혼한 음성으로 당가의 식솔들에게 자신의 의지를 전했다.

"그동안의 평화가 당가의 본질을 잊히게 했다. 적들도, 그리고 우리마저도."

모두가 결의에 찬 표정.

"하지만 이젠 갚아줄 때다. 사천 당가가 어떠한 곳인지, 절대독마의 별호가 무슨 뜻인지, 똑똑히 각인시켜 주겠노라. 지금부터 강호는 두려움에 떨어야 할 것이다. 저들이 천시했던 암기와 독이···,"

바로 그때!

지이잉!

"음?"

"어!"

"헉!"

"저,저건?"

모두의 시선이 한곳으로 모였다.

연무장 허공에 이상한 구멍이 열렸다.

어린아이 머리통만 한 크기.

당철휘는 눈살을 찌푸렸다.

'대체 저건 뭐지?'

마교나 배교의 술법 같은 건가?

하지만 사이한 기운은 느껴지지 않고.

바로 그때!

후둑, 후두두둑!

구멍을 통해 물건들이 흘러나왔다.

마치 폭포처럼 쏟아져 내렸다.

후두두두둑! 후두두두두두두둑!

소가주 당군영이 떨어져 나온 물건을 하나 주웠다.

"이, 이건,"

틀림없다.

태상 가주, 아니 공자님께서 주셨던···,

"신선의 음식?"

그분께선 이걸 '초코바'라고 부르셨다.

"맞군. 매끈한 종이를 봐."

"와! 이, 이렇게나 많이?"

"다시 먹어보게 될 줄이야···,"

초코바 말고도 단맛이 가득한 사탕, 쫄깃한 캔디, 과자, 빵, 시원한 캔 음료···, 어마어마한 양이었다. 산처럼 쌓였다.

'아아아아!'

당철휘도 감격한 표정.

'어찌 아시고···,'

전쟁에 나서려면 이런 간이 식량은 필수.

매끄러운 껍질만 벗기면 먹기에도 간편하다.

당이 가득 들어있어 체력 보충에도 도움이 되고.

"어서 챙겨라! 신선께서 우릴 돌보신다."

신선의 보호를 받는 가문이다.

당가 무사들의 사기가 하늘을 찔렀다.

※ ※ ※

태주는 여전히 지하수련실에 있었다.

살짝 지친다.

마지막으로 하나 남았다.

당군악과의 영혼 연결로 알게 된 환수계의 위치.

지잉!

일이삼백이가 그곳에서 머무르고 있으니 잘 부탁한다는 의미에서.

보낼 물건은 반려동물용 건식, 습식 사료, 간식들.

모두 최고급품들이다.

사람이 먹는 것보다 더 비싸다.

전에 조금 챙겨 보냈지만 그걸로는 부족하다.

더 많이, 환수계 영수들이 모두 먹어도 배부를 만큼 충분하게.

그런데 거슬리는 것이 있다.

게이트를 열 때마다 자꾸만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황천계 구멍을 열 때는,

[하아···.]

선계 기지국에 유심칩과 신분증을 보낼 땐,

[아니···,]

사천 당가에 먹을거리를 보낼 때도,

[부럽···]

방금 환수계 구멍을 여는 순간에도,

[우리도···,]

'환청은 아닌 게 확실한데,'

어디서 들려오는 건지 모르겠다.

'드래곤 하트와 관련 있나?'

가능성이 높다.

차원 구멍을 열기 위해 하트의 힘을 끌어낼 때만 들렸으니.

어쩌면 드래곤이 죽을 때 남겼던 잔류 사념일 수도 있고.

하지만 적대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그저 안타까움과 부러움, 실망이 복합적으로 섞여 있는 감정?

기다리다 보면 알게 되겠지.

사라지거나, 혹은 구체적인 의사를 전달해오거나.

아무튼,

'좀 쉬자.'

연속적으로 차원 게이트를 여는 건 여간 힘든 게 아니다.

게다가 크기도 커져서 마나가 쭉쭉 빠진다.

가만히 눈을 감고 명상에 빠져들 무렵,

순간!

똑똑,

지하수련실 문을 노크하는 누군가.

"회장님, 들어가도 될까요?"

백서연이었다.

누구보다 바쁜 그녀였지만 언제나 표정이 밝았다.

특히 백홍표가 천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엔 항상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하지만 오늘 안색은 어둡다.

안 좋은 일이라도 생긴 모양.

"얼굴이 왜 그래요? 문제 있어요?"

"···조금 전에 티제이 해운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티제이 해운이라니.

설마,

"우리 컨테이너선이 미국에서 양산항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해양 엘리트 마수에게 공격받았습니다."

뭐?

태주는 흠칫 놀랐다.

"선원들은요? 안전합니까?"

"인명피해는 없습니다. 선박 옆면이 마수 공격으로 손상되긴 했지만 구멍도 뚫리지 않았어요."

다행이다.

큰일 날뻔했다.

"공격받은 원인은 밝혀냈나요? 선박에 붙인 흑암철 철판이 떨어졌다거나."

"흑암철 철판은 건조 당시와 다를 게 없습니다."

"그런데도 마수가 공격을 해왔단 말이죠?"

"공격해온 해양 마수는 크라켄, 대형 변종 오징어입니다. 촉수로 컨테이너선을 휘감아오다 뜻대로 안 되니까 다시 사라졌다고 합니다."

커다란 컨테이너선이기에 힘에 부친 모양.

흑암철 영향도 있을 테고.

원인이 뭘까?

태주는 잠시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적응되었군요."

"네?"

"흑암철 말입니다. 처음엔 접근도 못 했지만, 시간이 흐르자 깨달은 거죠."

"깨닫다니, 뭘요?"

"무서운 거 말고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아!"

"이번 공격도 그걸 확인하는 차원 같아요."

그렇다면 이번 공격이 끝은 아닐 것이다.

"서연씨."

"네, 회장님."

"일단 모든 선박에 운항 중지 명령 내리세요. 그리고 공격받은 장소가 어딘지 좌표 찍어서 제게 보내주시고."

"알겠습니다."

아무래도 직접 가 봐야겠다.

감히 마수 따위가 내 배를 공격해?

공격받은 곳은 해양 엘리트 마수 변종 크라켄의 영역일 것이다.

일단 그놈부터 죽여버린다.

※ ※ ※

쐐액!

만리비검이 날았다.

태주는 GPS 좌표를 이용해 컨테이너 선박이 공격받은 지점으로 왔다.

'여기군.'

해양 엘리트 변종 크라켄의 영역.

사실 물의 저항이나 수압 때문에 바닷속에서 움직이는 건 태주로서도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그건 여의주를 품기 전에 해야 했을 걱정이고.

지금은···,

바다의 신 용왕.

전대 용왕이 품었던 보물인 여의주.

우우웅!

여의주가 가진 DNA 때문일까.

바다로 진입하자마자 이미 여의주의 울림이 시작됐다.

태주가 여의주를 인식했다.

그러자 드래곤 하트와는 전혀 다른 신령한 기운이 태주를 감싸왔다.

과거 승천 당시 경험했던 것처럼.

쭈쭉!

정수리에서 빛이 솟구쳐 올랐다.

쭈죽! 쭈주주주주죽!

스파파파파!

세찬 바람이 불고,

스르르르륵!

먹구름이 몰려오더니,

우르릉! 꽈과광!

천둥 번개가 친다.

후둑, 후두둑!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거센 비가 내렸다.

이 모든 것이 태주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태주는 용이 되었다.

진짜 용이 아닌 바다 회오리, 즉 용오름으로.

콰콰콰콰콰!

태주와 한 몸이 된 용오름이 바다를 휩쓸었다.

하지만 승천이 목적은 아니다.

용오름의 진로는 하늘이 아닌 바닷속이었다.

ⓒ 꾸찌꾸찌

=======================================

태주는 용오름과 결합해서 바다 밑으로 잠수했다.

엘리트 해양 마수부터 처리하자.

콰콰콰콰콰콰!

소용돌이가 된 용이 물살을 가른다.

물의 저항과 수압은 문제도 되지 않았다.

호흡도 매우 순조롭다.

육지에서 움직이는 것 같다.

'어디 보자···,'

서북쪽에서 느껴지는 강한 마기.

'저기군.'

컨테이너 선박을 습격한 그놈이 맞을까?

'오!'

잘 찾아온 것 같다.

해양 마수 밀집지대.

눈앞에 보이는 엄청난 숫자의 변종 오징어 크라켄 무리들.

노멀 마수라도 크기가 거대했다.

작은 배들은 다리로 휘감아서 물속으로 끌고 갈 수 있을 만큼.

엘리트는 훨씬 더 크다.

준비운동 삼아서 일반 마수들부터.

콰콰콰콰!

수중 용오름이 변종 크라켄 군락지를 돌파했다.

먼저 독령이 마기를 탐색해 목표를 지정했다.

그러고 나서 여의주의 힘이 펼쳐졌다.

용오름이 일으킨 물살들이 날카로운 갈고리가 되어 변종 크라켄의 몸을 찍었다.

콰콱! 콱! 콱! 콱···,

크라켄들이 용오름 중심으로 끌려왔다.

파지지지짓!

회오리 물살에 갈가리 찢겨나가는 크라켄.

독령이 목표를 지정하고 여의주의 힘이 해결한다.

평범한 바다 생물들은 건들지도 않았다.

용오름이 바다 마수 밀집지대를 휩쓸었다.

그 많던 크라켄들이 오징어 물회처럼 잘게 잘게 썰렸다.

순간!

파파파파파!

저 멀리서 정신없이 도망치는 대형 변종 크라켄.

'엘리트네.'

확실히 크긴 크다.

컨테이너 선박을 휘감을 정도로 말이다.

수파!

시야가 까맣게 변했다.

도망치면서 먹물을 발사한 듯.

'흐음,'

강한 독 기운도 느껴졌다.

오랜만에 맛보는 새로운 독.

'별미야.'

독기만 쫙 빨아들이고.

다시 콰콰콰콰콰!

변종 엘리트 크라켄의 공포가 느껴졌다.

힘의 차이를 알아차린 모양.

그러나 살려둘 생각은 없다.

까불지 않고 흑암철 배를 피해 다녔다면 살아남을 수도 있었겠지만.

콰콰콰콰콰!

아무리 빠르게 도망간들, 드릴처럼 수중을 가르는 소용돌이를 떨쳐낼 수 있을까?

용오름이 창이 되어 대형 오징어의 몸을 관통했다.

푸욱!

회전해서 한 번 더.

푸욱!

엘리트 크라켄이 조각조각 흩어졌다.

그리고 떨어지는 엘리트 마나 결정체.

이왕 온 김에 전리품 정도는 챙겨가야지.

이번에도 독령이 목표물을 지정했다.

바다 밑바닥에 깔린 수많은 개수의 결정체들을.

'수납.'

무한공간에 넣겠다고 의식하니,

주르르륵!

결정체들이 끌려와 자동으로 무한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이거 재밌네.'

오랜만에 마수 레이드였다.

그것도 바닷속에서.

다 여의주 덕분.

여기까지 왔는데 크라켄만 잡고 떠날 수 있나?

바다는 넓다.

마수 밀집지대는 셀 수도 없고.

콰콰콰콰!

용오름이 물속을 질주했다.

이동하다가 마기가 느껴지면 방향을 틀어 마수를 소탕하고, 엘리트도 잡고, 결정체도 수거하고···,

솔직히 독령과 드래곤 하트는 쓰임새가 확실했지만···, 여의주는 별다른 효용성이 없을 줄 알았다.

기꺼해야 호풍환우?

그건 신선이 된 태주도 가능했다.

규모의 차이가 있다 해도.

그러나 비로소 바다에서.

여의주의 쓰임새를 깨달았다.

태주는 여의주로 인해 지구 바다의 지배자가 되었다.

하지만 태평양은 넓고도 넓다.

태평양뿐인가?

대서양은? 인도양은?

'어우, 생각만 해도···,'

정신이 아득해진다.

태주는 용오름을 풀고 잠시 바다 위에 올라섰다.

여의주의 힘으로 수면에서 앉을 수도, 걸을 수도 있다.

'어떡한다?'

현재 걱정하는 건 하나.

바다를 지나는 선박들의 안전 운항.

'더는 배를 띄우지 못할 수도.'

마수들이 흑암철에 적응하기 시작했다.

아직은 엘리트뿐이지만 노멀 마수들도 적응할지도 모른다.

물론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여전히 흑암철은 가치가 있다.

배를 건조할 때 흑암철 철판을 덧대는 게 아니라 통짜로 만들면 효과가 더 뛰어나겠지.

혹은 혼자서 열심히 해양 마수 밀집지대를 공략하거나.

문제는 걸리는 시간.

최대한 빠르게 해결해야 한다.

'다른 사람들과 상의를 해봐야겠어.'

머리를 맞대면 수가 생길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때!

"어?"

촤아아아악!

저 멀리서 파도를 가르며 다가오는 지느러미들이 보였다.

'저놈들은?'

고래 무리였다.

돌고래, 범고래, 혹등고래, 향유고래, 귀신고래, 대왕고래···,

숫자만 해도 수백, 수천 마리.

까마득하게 바다를 뒤덮었다.

또한 그들에게서 마나의 향기가 진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수는 아니구나.'

적의가 느껴지지 않았다.

어떤 놈들인지 알만하다.

마나의 침범.

그로 인해 인간은 변해버렸다.

일반인, 적합자, 각성자, 그리고 마인.

자연 생태계도 인간 사회와 다를 바 없다.

마나에 적응하면 일반 동식물.

마나에 변이되면 변종 마수나 변종 식물.

그렇다면 사람들처럼 동식물에게도 각성자와 적합자가 없을까?

당연히 있다.

마수가 아니면서도 마나를 가득 품어 평범함을 벗어난 생물들, 인간으로 따지면 적합자.

또한 적합 단계에서 각성해 능력을 품으면 각성 생명체, 즉 영물, 일이삼백이나 아메리카 공화국의 타이탄 화이트 이글처럼.

바다도 마찬가지.

대부분은 마나에 적응한 일반 바다 생명체지만, 그중에 적합 해양 생물과 영물 각성 해양 생물도 존재한다.

바로 저들처럼.

마나에 적응해 몸속에 받아들인 적합 고래들.

개중엔 심상치 않은 힘을 가진 놈들도 몇몇 섞여 있었다.

'영물급도 있구나.'

왜 저 고래들이 자신에게 다가오고 있을까?

심지어 자신의 주위를 빙글빙글 돌았다.

이유는 곧 알게 됐다.

여의주의 공능 때문이었다.

고래들에게서 느껴지는 감정.

친밀감, 호의, 그리고 복종.

"뀨잇!"

"꾸이!"

"꾸웃!"

소리를 내자 그들이 말하고자 하는 뜻도 알았다.

'···왕? 내가?'

고래들은 자신을 왕으로 칭하고 있었다.

바다의 왕, 즉 용왕 말이다.

"···하하하,"

갑자기 기분이 묘해지네.

'가만!'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

이 고래들에게도 마수들은 적.

서로 죽고 죽이는 앙숙 관계.

"날 도와줄래?"

응답이 왔다.

명령만 내리라고, 시키는 대로 하겠다고.

"마수들에게서 인간의 배를 보호해줄 수 있어?"

그러자,

"뀨웅!"

"뀽!"

"뀨우우웃!"

걱정하지 말란다.

이 한 몸 바쳐 보호하겠단다.

"좋아! 그렇다면···,"

콰콰콰콰콰!

태주는 다시 용오름을 소환했다.

동시에 퍼져나가는 기운,

"꾹!"

"꾸이이이잇!"

"꾸구국!"

수천 마리의 고래들이 수면 위로 뛰어올랐다.

여의주의 힘이 듬뿍 담긴 물살이 그들을 어루만졌다.

아주 소량에 불과하지만 여의주의 씨앗이 고래들에게 심어졌다.

여의주의 힘은 바다 용신의 은총이나 다름없다.

고래들은 더 강해졌다.

다른 세상의 용궁 병사처럼 말이다.

엘리트 마수도 무리 없이 상대할 수 있을 것이다.

"앞으로도 쑥쑥 성장해라."

용오름이 사라지고 태주는 천천히 밑으로 내려왔다.

스스슷!

어느새 다가온 범고래 한 마리가 태주를 떠받쳤다.

"고마워."

"뀨웃!"

이제 집으로 가 볼까?

태주의 생각을 알아차린 듯, 삼한제국 쪽으로 방향을 잡은 각성 범고래.

츠파파파팟!

태주를 등에 태운 범고래가 쏜살같이 헤엄쳤다.

수천 마리의 고래들이 그 뒤를 따랐다.

이제 선박 항해는 안전해질 것이다.

배를 호위할 경호 부대가 생겼으니까.

※ ※ ※

삼한제국 양산항.

갑작스러운 선박 운항 중지.

제국 정부로서도 그냥 지켜만 볼 수 없었다.

삼한뿐 아니라 세계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사안.

가까스로 바닷길을 복원했는데, 해양 마수가 공격을 해왔다고?

그래서 황제와 금수호가 직접 양산까지 내려왔다.

이번에 공격받은 대형 컨테이너선을 바라보면서.

"엘리트 크라켄이군."

"빨판 크기만 해도 엄청나네요."

선박 옆면에 크라켄 빨판 흔적이 보였다.

공격을 당해 두껍고 단단한 철판이 움푹 파였다.

"쯧, 적응한 게 틀림없어."

"엘리트니까요. 꽤 영리한 놈들이지 않습니까."

"후우, 대책을 세워야 할 텐데."

"선박 전체를 흑암철로 만들어버리면···,"

"일시적인 해결책일 뿐이야. 시간이 지나면 또 적응할걸?"

황제는 걱정이 태산이다.

이대로 가다간 또 바닷길이 끊긴다.

"김회장은?"

"글쎄요. 백서연 사장 말로는 바다로 나갔다는데,"

아마 이 사태를 일으킨 주범인 엘리트 크라켄을 토벌하기 위해 나간 거겠지.

당연히 잡을 것이다.

비욘드도 때려잡는 김태주 회장 아닌가.

바닷속 전투가 아무리 까다롭다고 하더라도.

그러나 그는 혼자다.

혼자서 어떻게 저 넓은 바다를 감당하나?

"흑암철 잠수함을 건조해서 토벌에 나서볼까요?"

"턱도 없어. 느려터진 어뢰나 수중 미사일로는 엘리트 마수를 못 잡아. 과거에 겪어봤잖아."

"그렇긴 하죠."

그때였다.

콰콰콰콰콰콰!

항구에 모인 사람들이 깜짝 놀랐다.

"헉!"

"저, 저게 뭐야?"

"으아아아···,"

저 멀리서 양산항으로 밀려오는 대형 쓰나미.

뜬금없이 쓰나미라니.

"지진 예보가 있었나?"

"아뇨, 없었습니다."

"그럼 저 해일은···, 아!"

가만히 보니 해일은 아니다.

해일이라고 여겨질 만큼 커다란 바다 생명체들이 무시무시한 속도로 다가왔다.

"···마수?"

"이런!"

웨이브라도 터진 모양.

해양 마수인지라 육지로 올라오진 못하겠지만.

이건 쓰나미보다 더 끔찍하다.

"항구에 정박해있는 배들이 위험합니다. 다 침몰당할 수도 있어요. 대응해야 합니다."

"어떻게?"

"···으음."

그런데?

"어?"

"응?"

"무슨···,"

"와!"

츠파파파파파!

선두에서 치고 나오는 마수, 아니 자세히 보니 흔한 범고래였다.

사실 범고래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 위에 사람 한 명이 타고 있었다.

무슨 아틀란티스의 용사도 아니고.

"기, 김태주 회장?"

"맞는 것 같은데요?"

"왜 저기 있어?"

"저도 모르죠."

해일이 멈췄다.

아니, 고래들이 항구로 다가오지 않고 멀리서 대기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태주가 탄 범고래는 양산항 가까이 근접했고.

"꾸이잇!"

슈우우웃!

고래 등 위에서 뛰어올라 항구로 내려선 태주.

황제와 금수호가 헐레벌떡 뛰어갔다.

"김회장!"

"어떻게 된 일인가?"

태주는 씨익, 웃으면서.

"경호원들 영입했습니다."

"···엉? 무슨?"

"저 고래들이요. 우리 배들을 마수에게서 지켜줄 겁니다."

"지, 지켜준다고?"

다른 사람이 이렇게 말했다면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며 면박을 줬겠지만,

"선박을 지키기 위해 고래들을 데리고 왔단 뜻인가?"

"네."

"의사소통이 가능했다고?"

"가능하니까 같이 왔죠."

"그럼 선박 운항은···,"

"곧 재개될 겁니다."

"허어!"

황당한 표정의 황제와 금수호.

"참! 전 바쁜 일이 있어서."

"어, 어딜?"

"바다가 태평양뿐인가요? 대서양도 가 보고, 인도양도 가봐야죠."

"···."

진짜 사람 맞나?

이쯤 되면 신(神) 아니야?

※ ※ ※

선계에서도 LTE 서비스 준비 작업이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기본적인 규정은 세워놨다.

위반 시 이용 정지시킬 수 있다고 말해뒀고.

그러나 본격적인 서비스를 시작하기 전에 먼저 처리해야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환율 공시.

통신이 시작되면 여러모로 돈 들어갈 일이 많아진다.

유료 서비스 결제나, 게임 현질, 컨텐츠 구독 등등.

이건 선계 코인으로 불가능하다.

선계 코인을 삼한의 화폐로 바꾸어야 한다.

그래서 당군악은 신선들을 모아놓고,

"오늘부터 기준 환율은···, 선도 하나당 삼한 돈 만 원이요."

잘못 들었나?

뜨악한 표정의 신선들.

"선도 하나에 만 원?"

"이런 식으로 후려친다고?"

"지구에 직접 팔아도 100만 원은 받겠소."

"에이, 500은 받겠지."

"그, 그런가?"

사실 10억, 100억이라도 살 사람이 널렸겠지만.

"절대 안 돼. 내 선도를 그렇게 헐값에 바꿀 수는 없소."

"나도!"

"동감이오!"

"단결 투쟁합시다."

하지만 독선이 가소롭다는 듯.

"만 원이 적다고? 한 달이면 30만 원, 연봉 3백 6십 5만 원인데?"

"쯧쯧, 하루 두시간만 알바해도 그보다는 더 벌겠군."

"그 사람들이야 열심히 일해서 가치를 창출하기라도 하지. 그대들은 맨날 놀고먹으면서 하루에 따박따박 선도 하나씩 받잖소."

"그거야···,"

"신선놀음도 분수가 있지, 불한당들도 아니고 말이야."

신선들의 눈이 시뻘게졌다.

"이이익! 안돼! 절대 그렇게는 못 해!"

"아주 악덕이군!"

"공정거래 위원회에 재소하겠소."

당군악은 곰곰이 생각하더니.

"알겠소. 환율 10만 원으로 올려드리지."

그제야 표정이 풀린 신선들.

"흐음, 뭐 그 정도면···,"

"진작 그랬어야지."

"그래도 부족하지만 우리가 양보하겠소."

"언제부터 바꿀 수 있소? 내가 선도가 100개 정도 있는데, 환전하면 천만 원인가?"

그러나.

"대신 서왕모와 논의해서 선도 지급 규정을 바꿀 생각이오. 예전처럼 한 달에 선도 하나 지급으로 돌아갑시다."

"···뭐? 그런 법이!"

"억울하면 서왕모에게 가서 따지시오."

당군악은 매몰차게 등을 돌렸다.

순간!

"자, 잠깐!"

턱!

그의 어깨를 짚어오는 신선.

"생각해보니 환율 만원이면 아주 적당한 것 같소."

"맞아. 우리가 생각이 짧았어."

"허허허, 그렇지. 선도 2개면 너튜브 프리미엄 한 달 요금은 나오니까."

"웹소설 하루에 100편이나 볼 수 있잖소."

"웹툰도 30편 이상 보겠네."

환율 문제는 일단락됐고.

처리해야 할 문제가 더 있다.

이미 지구의 돈을 많이 번 자들.

계좌에 억대 이상의 돈이 꽂혀있는 두 사람.

검선과 제천대성.

당군악은 먼저 제천대성을 불렀다.

"그동안 사업해서 코인 많이 번 걸로 아는데···,"

"마, 맞습니다만."

"세금은 한 푼도 안 냈고."

"으음, 세금도 있단 말이오?"

"당연하오! 수익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말도 모르시오?"

"그럼 얼마나···,"

제천대성의 지구 계좌에 꽂힌 돈은 50억 정도.

"세금은 삼한의 화폐로 50억."

"···."

"대신 코인은 건들지 않으리다."

"···."

날강도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어쩔 수 있나?

달라는 대로 줘야지.

"···전액 납부하겠소."

"잘 생각했소이다."

그다음으로 검선.

이용 정지를 당해 풀 죽은 모습으로 당군악의 눈치만 슬슬 보고 있었다.

"검선, 그대가 준 방송 계획서도 읽어봤소. 아주 맘에 들었소."

"오! 열심히 작성한 보람이 있구려."

검선의 안색이 살짝 밝아졌다.

"허면 이용 정지는 언제···?"

"사실 그 문제 때문에 만나자고 했는데, 무단 라이브 방송으로 천계와 황천계의 존재를 까발리는 바람에 상제와 염라가 화가 단단히 났소."

"···으음."

"태주도 중간에 끼여 매우 곤란한 처지고,"

"하아!"

사실 염라와 상제는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그래서 말인데, 우리도 보여줘야 할 필요가 있소."

"무엇을?"

"불법 라이브 방송을 엄단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우겠다는 의지 말이오."

"그, 그럼?"

"우리 식구 감싸기라는 인상을 주면 안 되오. 솔선수범 벌금을 내주셔야겠소이다. 그럼 염라와 상제도 이해할 거요,"

"얼마를 내야 하는지?"

검선은 제천대성보다 돈이 더 많다

두 번이나 지구에 다녀왔고, 라이브 방송도 세 번이나 했고, 청소기 광고비도 포함해서.

계좌에 꽂힌 돈만 150억.

"삼한 화폐로 추징금 300억 원만 냅시다."

"헉! 내, 내가 그 돈이 어디 있다고? 계좌에도 150억뿐이오."

"걱정하지 마시오. 방송해서 갚으면 되지 않소."

"으음."

"아니면 벌금 안 내고 방송하지 말던가. 이용 정지도 한참 있어야 풀릴 거요."

"···내겠소."

거둬들인 돈은 죄다 태주에게 보내야지.

귀곡의 계좌는 건들지 않기로 했다.

그동안의 노고도 있고 하니.

책만 읽는 샌님이 뭘 하겠나?

기껏해야 E북 결제나 하겠지.

ⓒ 꾸찌꾸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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