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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그래도 몸을 풀고 싶던 차였다.

검을 휘둘러 볼 기회가 많이 없어 얼마나 부족함을 느꼈는지 모른다.

이참에 검 좀 휘둘러야겠다.

'더, 더, 더 늘어나라.'

하이에나들이 토끼가 토실토실하게 살을 찌우는 것을 기다리듯.

나는 놈들이 군침을 참지 못하고 달려들게 하려 엉덩이를 실룩샐룩 흔들어 주기로 했다.

그로부터 며칠이 흘러.

[수험 번호 확인 중….]

[수험 번호 확인.]

[금강 1532]

[Clear!]

[Color: Red(24) → Blue(25)]

수험표가 청색으로 변화했다.

하이에나들이 사냥에 나서려 하고, 나는 토끼의 탈을 벗기로 했다.

"어흥! 아니, 크르르인가?"

[이명 '래빗'을 이명 '사자 새끼'로 교체하겠습니까?]

[예(선택) / 아니오]

중간 보스의 소꿉친구가 되었다 (42)

수험생의 자격을 묻는 자격시험.

자격시험은 단순히 수험생들에게 문제를 유추하고 해결하는 능력만 요구하는 게 아니다.

그 이상을 요구한다.

문제를 풀어 수험 번호를 띄우고, 가산점을 얻는 것에만 집중한다면 알아차리지 못하는 수가 있다.

"와, 쟤네 뭐냐? 청색이네."

"어제까지만 해도 적색이었는데, 하루 사이에 또 변했네."

"저기까지 어떻게 푼 거지?"

"남아 있는 문제가 줄어들수록 난이도가 올라가던데…."

길게는 일주일, 짧게는 하루 이내.

수험생들이 실기 시험 전날까지, 일주일 전부터 자유롭게 도전하는 시험의 핵심은 실기 시험 당일까지 최소 1개 이상 문제를 푼 수험표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에 있다.

그때까지 수험 번호는 확정이 아닌 미확정 상태에 있다.

실기 시험이 있는 날짜가 돼야, 그때 비로소 수험생이 착용하고 있는 수험표의 수험 번호에 따라 확정되는 것이다.

"그런데 맨날 둘이서만 다니네? 문제를 풀 때는 따로 행동하고."

"…."

즉, 실기 시험 전날까지 수험표의 소유권은 불분명한 셈이다.

그러니 상대의 수험표를 빼앗아서 착용하는 것도 불가능하지 않다.

자격시험의 맹점이었다.

문제를 푸는 것에 실패하거나 혹은 어느 시점부터 한계를 느낀 수험생들은 그 맹점에 주목해, 타인의 수험표를 갈취하는 것에 혹할 수밖에 없었다.

"몰래 따라가 볼까?"

"…."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

그러나 금강 아카데미에서 맹점을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다.

그럼에도 그대로 두었다는 것은 다분히 의도했다는 뜻이 된다.

"아, 저놈들도 움직이는데?"

"쳇, 우리가 먼저 노렸는데…."

"저놈들한테 빼앗길 수는 없지!"

애초 금강 아카데미는 수험표를 항시 몸에 달고 다니라고 설명하기까지 했다.

큼지막한 수험표가 눈에 띈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었을 텐데도.

결국 그것 역시 시험의 일부이자, 수험생에게 요구하는 바인 것이다.

게이트를 공략하고, 몬스터를 죽여 국가와 인류를 수호하는 헌터.

진정으로 그 헌터가 되고자 한다면 수험표쯤은 빼앗거나 사수할 만한 실력을 보이란 것.

그로 인하여 수험생들의 경계심은 실기 시험이 있는 날이 다가올수록 높아질 수밖에 없었다.

그런 보통의 수험생들과 달리….

"쟤네랑 다니는 애들은 없지?"

"내가 이틀 동안 지켜봤는데 없어. 쟤네는 둘이서만 다니더라고."

"아주 빼앗아 달라고 하는 꼴이네."

순하게 생긴 얼굴을 한 남자와 토끼 귀를 한 아인 여자는 버젓이 청색 수험표를 몸에 달고서 제23구역의 거리를 걷고 있었다.

마치 수험표를 빼앗길 걱정은 전혀 하지 않는다는 듯이.

타인의 수험표를 갈취하고자 하는 수험생들에게는 그들이 먹음직스러운 먹이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물론, 그들도 머리는 있었다.

"야, 근데 쟤네 청색이잖아."

"그런데?"

"문제를 25개나 푼 것을 보면, 우리보다 강한 거 아닐까?"

"확실히…. 어쩌면 둘이 다니는 이유는 실력에 자신이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

두 사람의 실력은 잘 모르지만 며칠 동안 그들을 따라다닌 수험생들은 그들이 문제를 푸는 속도가 범상치 않다는 것을 파악하고 있었다.

그러니 그런 생각도 할 만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이제 2일밖에 남지도 않았는데, 우리가 뭘 따질 수 있는 팔자야?"

"수험 번호도, 가산점도 얻을 기회가 모처럼 왔는데 포기할 거야? 나는 그러고 싶지 않아."

"저놈들이 강하더라도 상관없어. 쪽수로 밀어붙이면 우리가 이겨."

"하긴, 우리만 노리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노리고 있지."

"합공하면 어떻게든 될 거야."

"누가 수험표를 소유할 것인지는 그때 가서 생각하면 돼."

"쟤네는 가는데, 너는 안 가냐?"

촉박한 시간, 압도적인 수, 비이성적인 동료 의식, 집단의식 등.

수험생들은 그런 요인에 떠밀려서 판단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이것을 기회로 보았다.

한편, 수험표는 돈이 됐다.

"나는 용돈 벌이나 하려고 왔는데? 합격에는 별로 관심 없어."

"청색은 얼마에 팔 수 있을까?"

"너는 얼마 받기로 했냐?"

"나? 의뢰한 사람이 돈이 많은지 꽤 두둑이 챙겨 준다더라고."

"진짜 돈이 많은 놈들은 그냥 수험표도 돈으로 사는구만."

수요가 있으면 공급이 있듯이.

매년 학원도시에서는 수험표를 돈벌이의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나타난다.

그들은 대개 헌터가 되겠다는 꿈에 부풀어 도시에 들어왔다가, 실력에 한계를 느끼고 절망하거나 다른 사람들에게 뒤처지게 된 부류였다.

그런데도 학원도시를 떠나지 못하고 밑바닥을 전전하는 부랑배들.

그들도 이 기회를 놓칠 리 없었다.

그렇기에.

"지금 골목으로 들어갔다!"

"저기는 막다른 길인데."

"인적이 드문 곳이기도 하고…. 지금 따라 들어가면 길을 막고 놈들을 포위할 수 있겠는데?"

적의 적은 아군이라고 했던가.

자연스럽게 이해관계가 일치한 부랑배들과 수험생들은 두 사람을 쫓았다.

두 사람은 그것도 알지 못한 채 제 발로 사람의 눈에 닿지 않는 골목길로 들어가 버렸다.

토끼가 굴속으로 들어간 꼴이다.

그들에게는 절호의 기회였다.

"멍청한 놈들."

토끼들을 사냥할 때가 다가왔다.

하이에나들은 대놓고 낄낄거렸다.

이내 골목길 주위를 포위한 그들은 제각기 금속패를 꺼냈다.

"디바이스 온(Device On)."

무기를 편하게 휴대할 수 있도록.

대격변으로부터 200년가량 흐른 인류는 마나 합금으로 제작한 무기를 손상 없이 완벽하게 압축하는 기술을 발명했다.

그 기술의 결정체가 디바이스다.

그들이 시동어를 읊조린 것으로, 금속패는 본연의 형태를 찾아 무기로 변화했다.

그렇게.

"먼저 빼앗는 사람이 임자다!"

저마다 무기를 거머쥔 그들이 냉큼 토끼 굴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러나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막다른 길이었다.

"이, 이게 무슨…."

"여기가 아니었나!?"

"누가 여기로 들어왔다고 했어!?"

"여기로 들어온 게 맞는데…."

"이 녀석들이 어디 간 거야?"

"얼른 찾아봐!"

땅으로 꺼지기라도 한 것처럼.

아무리 눈을 씻고 찾아보더라도 토끼들이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눈에 띄게 당황했다.

바로 그때였다.

"거기서 누구를 찾고 있는데?"

"…."

머리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별안간 들린 소리에 흠칫한 그들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나? 나는 여기 있는데."

"…."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벽 위.

토끼들이 산중왕이라도 된 것처럼 자신들을 오시하고 있었다.

그때, 얼굴이 순하게 생긴 남자가 벽과 벽을 밟고 뛰어서는 별안간 골목길의 진입로로 뛰어내렸다.

"지금은 바로 눈앞에 있고."

"…."

형세가 역전되었다.

이제 빠져나갈 길이 없는 곳에 갇힌 쪽은 토끼들이 아닌 하이에나들이었다.

그러나 토끼가 길을 막았다고 해서 겁이 날 리 없었다.

그래 봤자 토끼일 뿐이다.

하이에나들이 주춤한 것도 잠시.

"해치워 버려!"

"저게 까불고 있어!"

정신을 차린 그들이 움직였다.

스물은 가뿐히 넘는 하이에나들이 토끼 1마리를 사냥하려는 모습은 아주 우습기 짝이 없었다.

물론, 그 토끼는….

"어흥."

생긴 것만 토끼였을 뿐이지만.

* * *

자신들이 유인당한 줄도 모르다니 멍청하기 짝이 없다.

그러나 멍청하기에 놈들은 자신과 상대의 역량도 가늠하지 못하고서 우리를 노리려고 한 것이리라.

'쪽수로 밀어붙이면 다인 줄 아나.'

일반인의 싸움이라면 모를까.

마나를 다루는 사람들의 싸움에서 숫자는 큰 의미가 되지 못한다.

1명의 영웅이 세상을 구하듯이, 강한 힘이 숫자를 압도한다.

어중이떠중이들로는 나나 연하늘을 당해 낼 재간이 안 된다.

그것을 알려 주기 위해.

"디바이스 온."

나는 포켓에서 금속패를 꺼냈다.

헌터들이 간편하게 휴대할 수 있게 무기를 압축한 디바이스.

무게는 줄지 않고 부피만 줄어든 디바이스는 시동어에 반응해 본연의 모습을 되찾았다.

나는 군청검을 뽑아 들었다.

직후.

휘이익!

내게 가장 먼저 달려든 놈이 크게 검을 휘둘렀다.

칼날에 고무 패킹이 붙어 있었다.

아마 맞아도 죽지는 않겠지만, 맞으면 꽤 아플 것 같았다.

물론, 맞을 생각은 없었지만.

'공격이 너무 단순하고 정직해.'

검술에 특색이 없다.

기초만 간단히 배운 느낌.

그런 검에 내가 당할 리 없다.

회피 본능에 의지할 필요도 없다.

내가 이명 래빗을 쓰지 않고, 수왕류의 위력을 올려 주는 사자 새끼를 사용한 이유도 그래서다.

현재 내 민첩 수치는 68.

군청검의 효과를 더하면 71.

민첩 수치 70대의 영역에 들어선 내게 그 공격은 느리게만 보였다.

간단히 스텝을 밟아 공격을 피한 나는 칼등으로 놈의 등허리를 쳤다.

"커헉!"

"이 자식이…!"

1명이 나가떨어지는 가운데.

그사이 달려든 놈이 뒤를 노렸다.

군청검을 휘두르기에는 조금 늦다.

그러나 군청검을 휘두를 것 없이, 검집으로 쳐 내면 된다.

"…!"

검집인 만큼 걱정 없이 휘두른다.

나는 놈의 뺨을 후려쳤다.

'얼굴이 돌아간 것 같은데….'

괜찮다, 저 정도로는 안 죽는다.

죽으면 뭐… 얼른 튀어야지.

한편, 놈들이 쓰러진 놈의 생사를 확인할 시간도 주지 않고 계속해서 달려들고 있었다.

"어차피 1명이야! 몰아붙여!"

"후우…."

20명이 넘는 놈들을 의식적으로 칼등으로 치는 것도 일이다.

나는 군청검에 마나를 불어넣었다.

역날검 모드로 전환한다.

칼날과 칼등의 위치가 바뀐다.

'이래야 싸우기 편해지지.'

이제야 좀 팰 맛이 나겠다.

나는 1명의 공격을 막은 동시에 2명의 공격을 피했다.

"…뭐!?"

놈들의 눈이 놀라서 커진다.

회심의 공격이었던 모양이다.

나한테는 느리게만 보였지만.

3명의 움직임은 세쌍둥이에 비해도 한참 모자랐다.

"커헉!"

한편, 역날검으로 전환한 군청검이 한 놈의 가슴께를 타격했다.

뼈가 부러져서 숨 쉬기 힘들리라.

전투 불능이다.

나는 그런 놈에게서 시선을 떼며, 연계가 무너진 두 놈을 공격했다.

쿵!

타격감이 아주 좋다.

공격을 맞지 못한 놈이 옆에 있던 벽에 몸을 부딪쳤다.

그러더니 의식을 잃고 벽을 타고서 주르륵 주저앉는다.

꼭 마취총에라도 맞은 모양새.

사건의 시작인가.

'범인은 나고.'

그리고 그녀도 범인이었다.

"이게 까불고 있어!"

"협공해!"

검을 휘두르기에 공간이 비좁다.

그 틈을 노리고 오는 놈들을 피해, 벽면을 발로 차서 접하는 벽면으로, 다시 접하는 벽면을 발로 찬 나는 놈들의 뒤로 착지했다.

그러고는 놈들의 뒤통수를 때리며, 머리 위에서 놈들을 견제하고 있는 연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에어 불릿(Air Bullet)>

1계위(階位) 바람의 원소 마법.

연하늘이 검지손가락 끝에서 만든, 비살상의 탄환이 놈들을 노렸다.

그녀는 그렇게 나를 엄호하는 한편 놈들이 골목을 빠져나가지 못하게 상황을 통제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였다.

"이게 비겁하게…!"

"…!"

뒤늦게 가세한 것으로 보이는 놈이 연하늘의 뒤에서 나타났다.

연하늘이 마법으로 대응하기에는 거리가 너무 가까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체술도 단련한 그녀였다.

마법만 쓸 줄 아는 마법사와 달리, 무기를 다루는 것에도 능했다.

"디바이스 온."

"…뭐!?"

몸을 틀어 공격을 피한 연하늘.

어느새 그녀는 자신의 키보다도 큰 쇠망치를 한 손에 쥐고 있었다.

그 쇠망치를 휘두르자….

콰직!

위에서 무서운 소리가 울렸다.

나는 그녀의 쇠망치에 맞고 날아, 아래로 곤두박질치는 놈을 볼 수 있었다.

나는 곧장 지면에서 뛰어올랐다.

탁! 휘익! 퍽! 털썩!

놈의 머리가 바닥에 닿기 전에 몸을 회전시켜 옆구리를 걷어찬다.

그렇게 쓰레기봉투가 쌓인 곳으로 놈을 날려 버린다.

'이러면 죽지는 않겠지.'

나는 기괴한 자세로 속에 파묻힌 놈을 보고 혀를 내둘렀다.

연하늘은 나보다 더한 것 같다.

"고마워, 견우야."

"어… 그래."

그러고도 저리 태평하게 말하다니.

떨떠름한 얼굴을 한 나는 놈들을 마저 상대하기로 했다.

아직 수가 꽤 남았다.

조금 더 크게 날뛰어 줘야겠다.

나는 마나 회로를 달궜다.

파직!

"…스파크?"

"잠깐, 저건…!"

이미 깨달았어도 늦었다.

상대를 알고 건드렸어야지.

나는 놈들을 보며 히죽였다.

"신검… 도가…."

"잘못 맞으면 죽을 수도 있어."

푸른 마나가 스파크를 튕긴다.

벽뢰.

그것이 내 검을 휘감는다.

"그러니까 죽지 마, 날 위해."

<수왕류 공격식 제6형>

사자 난무

다만 눈앞의 적을 상대하기 위해 자유롭게 휘두르는 검술.

회전을 거듭할수록 강해지는 검이 놈들에게 쇄도했다.

* * *

"그러니까 죽지 마, 날 위해."

"…."

"응, 멋지더라. 정말…루…."

상황이 일단락되고 난 뒤.

아래로 내려온 연하늘은 보자마자 대뜸 비장한 얼굴로 말했다.

그녀의 입꼬리가 웃음을 참는 듯이 씰룩거리고 있었다.

"꼭, 드라마의 한 장면… 킥…."

"연, 하, 늘."

"꺄악! 뭐 하는 짓이야앙…!"

틀림없다.

연하늘이 나를 놀리고 있었다.

대놓고 놀림을 당하는데도 가만히 두고 보고 있을 내가 아니었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주물럭거리고, 토끼 귀를 세게 쥐었다.

"너어…."

"그러게 누가 놀리래?"

"치, 자기도 맨날 나 놀리면서."

"나는 되지만, 너는 안 돼."

"와, 내로남불."

연하늘이 어처구니없어했다.

그런 그녀에게 어깨를 으쓱인 나는 실랑이를 그만하기로 했다.

그러고는 우리에게 당하고 쓰러진 놈들을 내려다보았다.

"으으…."

곳곳에서 앓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정도로 놈들은 우리에게 심하게 당하고 만 것이다.

"우리가 아니라 견우 너 아니야? 따지고 보면 네가 펼친 검술 때문에 저렇게 된 거잖아."

"넌 쇠망치 안 휘둘렀어?"

"그래도 너보다는 적을걸?"

연하늘이 새침거린다.

그래 봤자 그녀가 나와 함께 싸우며 쇠망치를 휘둘렀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숨기려 해도 소용없다.

조금 전에 쓰레기 더미에 처박힌 놈의 상태는 거짓말을 하지 못한다.

어찌 됐든.

이제 뒤처리를 하기로 했다.

"하늘아, 물체를 띄우는 마법으로 이놈들의 수험표를 뗄 수는 없어?"

"바람의 원소 마법을 쓰면 가능해. 그런데 그건 왜?"

"왜긴. 당연히 우리를 노린 대가는 치러야 할 거 아니야."

"아, 응… 그렇구나. 너답네."

"마법으로 나한테로 오게 해 줘."

나는 연하늘에게 부탁했다.

연하늘은 떨떠름한 얼굴을 하면서도 군말을 표하지 않고 따랐다.

휘이잉!

돌연 주위로 바람이 휘몰아쳤다.

그녀의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바람이 쓰러진 놈들의 가슴에 부착된 수험표들을 뜯어냈다.

"아…."

"내, 내 수험표…."

놈들이 수험표를 붙잡으려고 했지만, 현재 그들의 힘으로는 어림도 없다.

머지않아 놈들을 떠난 수험표들이 하나둘 내게로 모여들었다.

"…."

수험표를 잃어버린 놈들의 시선이 모두 내게로 향했다.

나는 최대한 밝은 얼굴로 웃었다.

"남의 것을 뺏을 각오를 했다면, 당연히 뺏길 각오도 했겠지?"

"너, 너 뭘 하려고…."

"거기서 무력하게 지켜보도록 해."

"견우야, 그건 악역이나 하는…."

"나는 되고, 악역은 안 돼."

"응, 그래…."

수험표가 30개는 되는 것 같아서 한 팔로 끌어안아야 할 지경이었다.

나는 그 수험표들을 힘껏 던졌다.

휘이잉!

내가 뭐라고 말하지 않았음에도, 그녀가 눈치껏 바람을 띄워 주었다.

수험표들이 저 높이 날아올랐다.

그 후,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것들을 눈에 담은 나는 연속으로 검을 찔러 넣었다.

<수왕류 공격식 제12형>

사자 비승(獅子 飛昇)

쾌와 환을 조합한 검술.

몸이 흔들리지 않게 지면을 밟은 두 다리로 강하게 지탱하고.

검과 검을 쥔 팔에 마나를 실어 떨어지는 물체를 세차게 찌른다.

그 공격 횟수가 열두 번을 넘어가면.

크르르!

그동안 내가 흘린 마나가 응집해, 사자의 형상을 취하게 된다.

지금 그 사자가 드높이 솟구쳤다.

────!!

물리력을 지니게 된 사자의 형상이 수험표들을 집어삼켰다.

그대로 갈기갈기 찢겨 나간다.

"아아…."

"내, 내 수험표가…."

"어, 어떻게…."

"흑…."

반짝이는 가루가 흩날린다.

가루는 바닥에 내려앉지도 못하고 바람에 휘날려 어딘가로 날아갔다.

나는 그 광경에 망연자실해하는 놈들을 위로해 주기로 했다.

"시험도 보기 전에 탈락하게 된 거 진심으로 축하해."

"…."

"헌터 할 재능은 아닌 것 같던데, 일찍 탈락하게 됐으니까 다행이지? 앞으로 살길을 잘 찾기를 바랄게."

"흑…."

내 말에.

놈들은 감동하고 눈물을 흘렸다.

"와아…."

연하늘도 감탄했다.

* * *

그로부터 이틀이 흘러.

[수험 번호 확인 중….]

[수험 번호 확인.]

[금강 1532]

[Clear!]

[Color: Blue(29) → Black(30)]

나와 연하늘은 모든 문제를 풀어 수험표를 검은색으로 변화시켰다.

그리고 다시 날짜가 바뀌며 실기 시험을 보는 날이 다가왔다.

[수험 번호가 확정되었습니다!]

[도견우 – 금강 1532]

[Color: Black(30)]

[시험 장소를 고지합니다.]

중간 보스의 소꿉친구가 되었다 (43)

개문

우리가 학원도시에 입국한 이후로 어느덧 일주일이 지났다.

그 기간은 같은 방을 쓰는 것에 조금이나마 익숙해지게 했다.

어디까지나 조금이나마.

우리가 5년을 알고 지냈다고 하나,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다 보면 지금까지 몰랐던 부분도 발견하고, 배려하는 법도 달라지기 마련이다.

성별이 다른 남녀 간에는 특히.

그러다 보니 여러 사건이 있었다.

'그래도 뭐… 나쁘지는 않았어.'

어떻게 보면 일주일은 나와 그녀가 서로에 대해 훨씬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해 준 시간이었다.

우스운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5년간 알고 지낸 것보다 일주일을 함께 지낸 시간 동안 더 많은 것을 알게 된 것 같다.

물론, 일주일을 함께 지낸 데에는 5년의 시간이 밑받침해 주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런 의미에서.

"내가 빗질해 줄까?"

"뭐?"

실기 시험이 찾아온 날의 아침.

금강 아카데미로 떠날 준비를 마친 나는 화장대 앞에 앉아 머리를 빗던 연하늘에게 물었다.

그러자 거울에 비친 그녀가 뜬금없다는 얼굴을 했다.

"갑자기 왜?"

"네가 머리 빗는 것을 볼 때마다 나도 한번 해 보고 싶었거든. 그동안 같이 산 기념으로 해 봐도 될까?"

"같이 산 기념이랑 빗질하는 거랑 아무 연관성도 없는 것 같은데…. 게다가 같이 살았다니, 누가 듣고 오해하면 어떡하려고?"

"왜? 같이 산 건 맞잖아."

"같이 지낸 거지."

"그거나, 그거나."

"나한테는 엄청 다르거든? 그리고 같이 살았다고 과거형으로 말하면 우리가 이혼이라도 한 것 같잖아. 아직 우… 결혼도 안 했는데!"

"아무도 그렇게 생각 안 할…."

"나는 하거든?"

"나는 가끔 네가 이해가 안 돼."

"견우야."

"왜?"

"오히려 내가 하고 싶은 말이야. 나는 가끔 네가 이해가 안 돼."

빗질을 멈추고 한숨을 푹 쉬고는, 거울 속의 나를 노려보는 연하늘.

아무래도 우리가 같이 산 일주일은 어떤 의미도 되지 못한 듯싶다.

"그럼 같이 잔 걸로 타협하자."

"…저기, 그게 더 오해의 소지가 될 거라고는 생각 안 하니?"

"근데 다 맞는 말이잖아."

"같이 잔 거 아니야, 산 거 아니야. 그냥 같이 지낸 걸로 타협하자."

"그거나, 그거나."

"달라, 달라, 엄청 다르거든?"

예전에 그녀가 빌려준 책이 있다.

그 책에서는 여자를 수성인으로, 남자를 화성인으로 비유했었던가.

그때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그녀와 단어 하나로 의견이 갈리니 이제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남자와 여자 사이엔 보이지 않는, 화성과 수성이 떨어져 있는 것만큼 이해할 수 없는 거리가 존재하는 게 틀림없다.

비단 남녀 사이만 그런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만한 거리를 좁혀야만 하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안 돼?"

"내 머리는 장난감이 아니거든?"

"나 빗질 잘하는데. 예은이 머리도 몇 번 빗겨 준 적이 있거든. 묶는 것도 잘하고."

"흐음… 그러니?"

"몽실이 털도 내가…."

"내가 토끼야?"

"너는 연하늘이지."

"후우…. 그렇게 빗고 싶어?"

"당근이지."

그런데도 내가 강하게 밀어붙이면 연하늘은 어쩔 수 없다는 얼굴로 허락해 주고는 했다.

결국 나를 흘깃 째려본 연하늘이 손에 쥔 빗을 들어 올렸다.

가져가라는 신호였다.

"알았어. 대신 잠깐만 하는 거다? 너 때문에 머리를 다시 고치느라고 시험장에 늦을 수도 있으니까."

"그래, 알았어. 빗질을 잘못한다고 머리가 망가지는 일은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래도 혹시 모르는 일이잖아."

연하늘이 건네는 빗을 받으며 나는 그녀의 등 뒤에 섰다.

흘러내린 머리카락에 손을 대자, 토끼 귀가 움찔하는 게 보였다.

"머리 안 망쳐. 긴장하지 마."

"누가 긴장을 했다고 그래…."

"아, 그래? 그럼 빗는다."

손바닥 위에 얹은 머리카락이 무척이나 부드럽다.

언제 봐도 드는 생각이지만, 연하늘의 이름처럼 연하늘색을 품은 머리카락은 신비롭기만 했다.

그런 그녀의 머리카락을….

"아…. 안 아프게 잘하네?"

나는 조심스럽게 빗질했다.

내게 머리칼을 맡기는 것에 은근히 긴장하고 있던 그녀가 차츰 몸에서 힘을 풀어 갔다.

"어때? 시원하지?"

"시원하다는 표현이 좀 그렇지만 잘하기는 잘하네."

"그런데 흰머리가 좀 많네?"

"…뭐?"

"아, 너는 원래 이런 머리였지?"

"깜짝이야…. 장난치지 마."

"네, 네."

그렇게 단장을 마치고.

우리는 금강 아카데미로 향했다.

* * *

금강 아카데미를 지원한 수험생이 워낙 많다 보니, 1차 실기 시험은 여러 장소에서 진행된다.

당연히 아무 시험 장소를 찾아가 실기 시험을 응시할 수는 없었고, 수험 번호에 따라서 배정된 곳으로 찾아가야 했다.

"부지가 넓어 길을 잃고 헤맬 걱정도 하고 있었는데, 다행히 시험장으로 가는 방향을 잘 표시해 놨네."

"음, 어디 보자. 우리는…."

"수양관은 저기네. 가자."

공교롭게도 우리는 같은 장소에서 실기 시험을 치르게 됐다.

금강 아카데미에 도착한 우리는 아카데미 측에서 안내하는 길을 따라 걸음을 옮겼다.

실기 시험 장소로 가까워질수록, 정문 앞에서부터 우글거리던 인파도 점점 줄어들었다.

이윽고 수양관에 들어섰다.

"…."

"…많이도 있네."

수양관 105호.

실기 시험 장소로 발을 들인 나는 먼저 온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그들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그런데 꽂히는 시선이 강렬했다.

"견우야…."

"겁먹지 마. 뭘 겁먹고 그래?"

"그게 아니라 조심하라는 거야."

"나도 알고 있어."

연하늘은 그 시선을 느낀 것인지 살며시 내 옷깃을 붙잡았다.

그녀를 가리듯 앞으로 나선 나는 저들의 시선이 유독 우리에게 머무르는 이유를 찾으려고 했다.

곧 그 이유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우리 수험표 때문인가.'

나와 연하늘은 모든 문제를 풀어 수험표를 검은색으로 물들였다.

그러다 보니 다른 수험생들에게 관심을 받게 된 것이다.

한편 그들이 간간이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오기도 했다.

"30문제를 다 풀었다고?"

"와, 검은색…."

"아씨, 왜 하필이면 저런 놈들이랑 같은 곳에 배정된 거야?"

"쟤네랑 엮이면 안 되겠다."

놀람, 감탄, 한탄 등.

수험생들은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들 중에는 우리에 대해 아는 부류도 있는 듯했다.

"검은색이면 명가의 사람일 텐데, 대체 누구지?"

"잠깐, 토끼 귀를 한 아인이면… 칠색의 마녀님의 제자 아니야?"

"칠색의 마녀한테 제자가 있었어? 나는 처음 듣는데…."

"야, 칠색의 마녀가 우리 친구냐? 이제 헌터가 될 거라면 이명 뒤에다 '님' 자를 붙일 줄 알아야지."

"그러고 보니 그 마녀님의 제자도 이번에 아카데미에 응시할 거라고 마도관에서 들은 적이 있어. 젠장, 금강 아카데미에 지원했구나."

"그럼 그 옆에 있는 애는 누구지? 쟤도 검은색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