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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0화

외도

내가 이설아와 협력하기로 한 이유는, 꽤 많다.

일단 그녀가 뭐 흑막은 흑막이니만큼, 처리해버릴까라는 생각을 하기도 했었는데.

여러가지 생각을 해본 결과, 전체적으로 봤을때 그녀가 대한민국을 쥐락펴락 하는게 더 유리할거 같다는 결론이 섰다. 원작에서 본 바로는 적당히 선을 지키면서 군림하니까.

그리고 특히, 그녀를 흑막으로 냅둔다면 내가 그녀를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사실 내가 할 수 있는건 해킹, 테러 이 두개가 끝이기에, 더 큰 힘을 위해서는 빌릴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건 이설아가 제격이고,

그렇게 내가 그녀와 협력을 맺고싶다는 제안을 했고.

일주일 뒤 그녀가 이를 승낙하면서, 히어로 빌런의 유착관계가 성릭되었다.

"음. 커피 맛이 좋네."

"후후, 당신, 은근 커피를 즐기실 줄 아네요. 이건 에스메랄다 스페셜 입니다. 굉장히 구하기 힘든 품종이라고요?"

그게 뭔데 임마.

그러나 여기서는 그냥 조용히 고개만 끄덕여줬다. 원래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가는법이거든. 에스...마틸다? 뭐, 그런것도 있나보지.

"근데 당신, 아까부터 아주 자연스럽게 반말하시네요?"

이설아는 나를 살짝 흘겨보며 그렇게 말했다.

아니, 뭐.

"이제 서로 동맹관계인데, 존댓말하는게 더 이상하지 않아? 너도 말 놔."

내가 그렇게 어깨를 으쓱이며 말하자, 눈을 샐쭉하게 뜨는 그녀.

"됐어요."

그렇게 말하며 팔짱을 끼는 이설아였다. 뭐, 원작으로 안거지만 쟤는 어차피 신하루한테만 말을 놓고 다른 모두에게는 존대를 쓴다. 딱히 새삼스러운 것도 아니라는 말.

하여튼, 그녀는 살짝 퉁명스러운 태도를 보이기는 해도 꽤나 고분고분하다. 정확히는 순순히 내 말을 따라준다고 해야겠지. 아마 저번에 내가 준 USB가 꽤 큰 효과를 발휘했을꺼다.

이설아. 내가 알기로 그녀는 이맘때쯤 재계를 정복하는데 집중하고 있을꺼다. 야망이 큰 그녀이니만큼, 다른 기업들을 열심히 집어삼키는데 주력하고 있겠지. 특히 한은그룹까지 망했 으니.

물론 그게 쉬운것만은 아니라 골머리를 앓고 있을 때, 짜잔! 내가 등장해서 그냥 답지를 줘버렸다. 앞으로 한 몇년은 더 굴러야 할 수 있을 것들을 내 USB에 담긴 정보들 가지고 다 해 결할 수 있겠지. 물론 정보들은 서은이를 써서 취합했다. 서은아 고마워.

어쨋든, 그녀는 내 작은 선물로 인해 나에 대한 경계심이 꽤나 줄어든 것 같다. 실제로 지금도 전보다 분위기가 훨씬 편하고, 아마 내가 정말로 그녀와 협력할 생각이라는 것과, 실제로 편먹으면 좋을거라는 계산이 서서겠지만.

"저기요. 다 적었으니 한번 읽어봐요."

내가 잠시 상념에 빠져있을 때, 앞쪽에서 그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부산 유성그룹 꼭대기층.

우리는 한쪽에 마련된 접견실에서, 서로 합의할 사항등을 정하고 있던 와중이다.

"어? 그래. 이게 기본 계약서야?"

"네. 어차피 나머지는 구두로 정할꺼니까 기본적인거만 적었어요."

펜으로 슥슥적은 그녀의 정갈한 필체로 적혀있는 내용.

대충 읽어봤더니, 요약하자면 '서로가 서로를 도와주자.' 라고 할 수 있겠다.

"정보 추가 제공. 그래. 내가 힘 닿는데 까지는 도와줄게. 어차피 이제 원팀인데 너가 잘되야 나도 좋으니까."

"진짜죠?"

"그래. 속고만 살았냐?"

눈을 반짝이는 그녀에게 나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역시. 정말 이때부터 야망 하나는 대단하구만. 자신의 꿈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태도, 멋지다. 그 꿈이 한국정복이라는게 좀 미스긴 한데....

"그리고 뭐, 추가하고 싶은 내용 있으면 지금 말해. 여기서 다 정하자고."

"그래요? 그럼... 앞으로 주에 한번은 저랑 만나요."

"뭐라고?"

"한주에 한번은 저랑 만나서 서로 정보공유 하자고요. 동맹이라면서요? 동맹이면 얼굴은 자주 봐야죠."

"...나보고 매주 한번씩 부산에 내려오라고?"

에반데.

내 부정적인 기색을 읽었는지, 그녀가 흥-거리며 말했다.

"싫으면 제가 서울로 올라가도 되고요."

우리가 맺은 계약은, 사실 단순하다.

나는 그녀가 대한민국을 정복하는 걸 돕고, 그녀는 나를 방해하려는 세력- 그게 정부는 협회든 간에- 전부 알려준다. 끝.

근데 이게 굳이 매주 얼굴만나서 할만한건가? 가끔만 만나도 충분할거 같은데?

한주에 한번은 오바고, 한달에 한번 만나자. 그럼 딱 되겠네."

"뭐가 딱 된다는 건가요? 말도안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황당하다는 듯 반문하는 그녀.

결국 우리는 의논끝에 2주에 한번 만나기로 합의됐다.

"....그래서, 대한민국 정복 프로젝트는 잘 진행되고 있고?"

"말도 마세요. 하아, 그냥 순순히 합병될것이지 어찌나 튕기던지..."

내가 은근슬쩍 요즘 어떻게 진행되고 있냐고 떠봤더니, 술술 말하는 그녀. 한탄섞인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래. 그랬구나.

그렇게 우리는 꽤 오래 대화를 나눴다. 아무래도 서로 속마음과 정체를 숨기고 겉으로는 반대로 활동한다는 공감대가 있어서인지, 말이 잘 통했다. 이건 또 예상치 못한 일이네.

그렇게 얼마나 대화를 나눴을까.

계속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나가던 우리는, 어느덧 신하루의 이야기에 도달했다.

"우리 하루... 하아. 맞다. 헉. 이거 정체 모르고 있던거 아니에요? 내가 실수로 유출해버린건가?"

"내가 그걸 모르겠어? 스타더스, 신하루, 다 안다."

"하긴, 당신이라면 알거라고도 생각했어요. 근데 말이에요..."

그녀는 거기까지 말하더니, 몹시 궁금하다는 듯 내쪽으로 고개를 가까이하고는 말했다.

"근데요... 이게 제가 예전부터 궁금했던건데, 왜 그렇게 스타더스한테 집착하는 거에요?"

"집착? 내가?"

"네. 당신이요."

내가 언제 집착했어. 음해다.

내가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다는 듯 뻔뻔한 태도를 취하자, 그녀는 눈웃음을 치더니 입을 열었다.

"당신, 딱 우리 하루를 표적삼아서 성장시켜줄려고 하는거 아니에요? 살짝 게임에서 대신 레벨업 시켜주는 그런 개념처럼 하는거 같던데. 빌런 활동도 그 개념의 연장선이고, 맞죠?"

얘 왜 이렇게 예리해?

내가 대답을 잠시 머뭇거리는 사이, 그녀는 어느새 일어나 내 옆으로 슬며시 다가왔다.

그러더니, 내가 앉아있는 옆 의자쪽으로 다가와 팔을 대는 그녀. 그러더니, 마치 나한테 속삭이듯 말하기 시작했다.

"솔직히 말해서, 스타더스가 전 좀 부럽더라구요. 알잖아요. 당신과 한번 싸울때마다 우리 하루 인기가 얼마나 증가하는지."

그녀는 그렇게 말하더니, 잠시 고개를 숙여, 아예 내쪽으로 몸을 기댔다.

늘어진 그녀의 하늘빛 머리칼이 내 앞을 가림과 동시에, 옆쪽에서 아까보다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듯 나한테 말을 하는 그녀.

"...그래서, 부탁하는건데. 저한테도, 테러해주시면 안되요? 우리 동료잖아. 아이시클 나와 한마디 하면서, 저한테도 해줘요. 응?"

이제는 아예 간드라지는 목소리로 나한테 속삭이는 그녀를 향해, 나는 얼굴을 돌렸다.

그러자, 서로 숨결이 맞닿을 정도로 가까운 거리에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이설아와 눈이 마주쳤다.

나를 향해 눈웃음을 치는 그녀의 얼굴이 내 시야를 가득 채우고, 점점 가까워지는 그녀를 향해 나도 모르게 손을 그녀쪽으로 올려.

이마를 딱~ 하고 때렸다.

"악!"

갑작스러운 공격에 이마를 부여잡고 물러나는 그녀.

얼굴은 빨갛게 물들고는 눈가에 눈물까지 보이는 그녀."이게 뭐하는거에요!"

세상 서럽다는듯 외치는 그녀를 향해, 나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뭐긴 뭐야. 정신 차리라는 의미지."

"뭔 소리에요! 이, 이거 성추행이에요. 신고할거야!"

"A급 히어로, 빌런한테 자기 집에서 성추행당해 충격. 기사거리 나겠다 그래."

여전히 눈에 살짝 눈물이 고인 채로 나를 째려보는 그녀를 향해, 나는 조용히 웃을 뿐이었다. 엄청 약하게 쳤는데 엄살은.

....그리고, 아마 그녀가 저렇게 오바하는 것도 부끄러워서일꺼다. 아니, 방금 분위기 뭐야? 대체 왜저러는지 모르겠다. 나를 편하게 대하는건 알겠는데, 갑자기? 유혹이라도 할려고 한 건가.

하긴, 귀도 빨개진거 보면 그게 맞는거 같다. 역시 아직은 어리숙하구만.

하여튼, 그녀의 제안이나 돌이켜보자.

테러. 아마 한다면 부산을 말하는거겠지?

"....그리고, 테러는 안돼."

"뭐? 왜요!"

나를 향해 쏘아붙이는 그녀.

왜냐니. 그야 내 테러는 스타더스에게만 허락되어 있으니까 그렇지.

그렇게 답을 하려던 나는, 생각해보니까 아이시클을 키워주는 것도 나쁘진 않겠단 생각이 들었다. 원작에서 그녀가 베헤모스 잡는걸 내가 대신 처리해버리는 바람에 파워업 이벤트가

날아갔으니, 어느정도 책임을 져줘야겠지.

.....근데, 그게 꼭 지금일 필요는 없잖아?

나는 말을 바꿔서 다시 말했다.

"...그래, 해줄게. 근데 지금은 안돼. 나중에."

"나중 언제요! 구체적인 계획을 잡아주세요."

그런건 없다.

나는 일단 빨리 말을 돌렸다.

"...그건 그렇고, 너 스타더스랑 친하지?"

"하루요? 친하죠. 근데 그게 갑자기 왜 나오는거죠?"

나는 그녀가 황급히 원래 주제로 돌아가려고 하기전에 말을 이었다.

"별건 아니고, 앞으로 하루 앞에서 내 욕좀 해줘."

"....네?"

그녀는 순간 내말을 이해하지 못했는지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그녀가 얼타는 순간을 놓치지 않고, 나는 쐐기를 박듯 말했다.

"지속적으로 내 뒷담화좀 까달라고."

"...왜요. 변태에요?"

뭐라는거야.

"그러니까, 하루가 당신을 의심하기 전에 미리미리 욕을 해서 확실히 빌런으로 인식시켜달라는 거에요?"

"그래."

"....어, 이게 통할거같지는 않은데요."

"아니야. 통해."

내가 누군가. 스타더스 전문가 아닌가.

나는 이게 먹힌다고 백프로 확신할 수 있다.

신하루가 누군가. 정의감으로 똘똘 뭉친 그녀 아닌가.

거기에 눈치도 별로 없고, 특히 친구들의 말에 잘 휩쓸리는 만큼 옆에서 자꾸 내가 극악무도한 빌런이라는걸 상기시켜주면 나를 의심하지도 않고 계속 적대하고 말거다.

비록 내 앞에있는 이설아는 의심스럽다는 표정이었지만말이다. 아니야, 날 믿어!

"...뭐 일단은 알았어요. 노력은 해볼게요."

"고맙다."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일어났다.

할거 다했네. 돌아가자.

내가 그렇게 일어나자, 다시 앞쪽에 앉아있던 이설아도 벌떡 일어나더니 말했다.

"가게요?"

"어. 다 정했잖아? 2주후에 다시 보자고, 번호도 교환했으니."

"...아니, 잠시만요! 그럼 제 테러는요?"

그건 언젠가 해줄게. 언젠가.

라고 말하려고 할때, 나는 잠시 번뜩이는 생각이 나를 스쳤다.

생각해보니까 곧 부산에 그 이벤트가 있지 않나?

그거라면.. 어쩌면.. 꼭 내가 안나서도...

나는 기존에 하려는 말을 바꿔 다시 말했다.

"그래. 좋아. 곧 연락할테니까, 받어. 알았지?"

"진짜죠? 조금 있다가 저도 해주는거죠?"

"진짜라니까. 속고만 살았다."

나는 좋아하는 아이시클을 보며 나도 모르게 웃으며 말했다.

아니, 히어로가 빌런한테 테러 좀 일으켜달라고 조르는 광경이라니.

이게 뭐야. 승부 조작도 아니고, 이게 바로 애들은 모르는 어른의 뒷세계라는거다. 원래 정치권도 지들끼리 앞에선 싸우는 애들 뒤에서는 형님아우 하면서 술한잔 기울이고 그러는거라고.

그렇게 추가 합의까지 끝난뒤, 나는 드디어 그곳을 떠날 수 있었다.

뭐, 잘풀린거 같네.

...근데 너무 잘풀린거 같은데?

***

"아가씨. 뭐 좋은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네? 아, 아무것도 아니에요."

다시 집으로 향하는 차의 뒷자리.

좌석에 기대 오늘의 일을 복기해보던 이설아는, 자신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는걸 느꼈다.

에고스틱. 그와의 만남은 아주 괜찮았다.

방송에서 봤을때는 그냥 미친놈일거라 예상했었는데, 직접 만나보니 생각보다 훨씬 괜찮은 사람이었다. 그녀가 깜짝 놀랄정도로,

특히 하루말고 오랜만에 대화가 통하는 사람이었다. 특히 하루와도 나눌 수 없는 얘기를 그는 다 이해해주니.

"....맘에 드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리며 눈을 반짝였다.

이설아. 그녀는 에고스틱이라는 이 남자가 몹시 마음에 들었다. 능력있고, 말도 잘 통하고, 신뢰도 간다. 한마디로, 꽂혔다.

자신의 안목에 절대적인 확신을 가진 그녀이니만큼, 그녀는 확신했다.

그래. 이 남자는 무조건 자기편으로 만들어야겠다. 그녀는 그렇게 정했다.

어린시절부터 갖기로 마음먹은건 어떠한 방법으로든 기어코 손에 넣은 그녀였기에, 그녀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렇게 어두운 차의 뒷자리에서.

하늘색 눈동자만이, 어둠 사이에서 반짝였다.

에고스틱. 그녀는 그를, 자기것으로 만들고 말겠다.

***

"....뭔가, 불안해."

신하루는 자기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어째서인지, 불안감이 해소되기는 커녕 점점 커지고있다.

뭐지.

제 91화

화다른 장소, 다른 인물

요즘 설아가 이상하다.

"에고스틱 그놈 정말 나쁜놈인거 같지 않아? 그런 사악한 놈이 팬카페까지 있다니, 정말 세상 말세인거 같아. 그치?"

"....응."

하루 그녀가 친구 설아의 집에서 같이 지낸지도 벌써 몇주.

요즘들어 계속되는 히어로 일에 잠시 지친 마음을 쉴겸 설아의 초대로 놀러오게 된 이곳 부산에서, 그녀는 대체로 설아와 함께 지내며 놀았다.

그리고, 어느날부터.

설아가 이상하게 에고스틱 욕을 많이 하기 시작했다.

"테러도 대체 몇번이나 한거야? 이거 완전 악질아니야. 피도 눈물도 없는 놈이라니까."

"..."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갑자기 에고스틱의 얘기를 자주 하는 자신의 친구의 모습을 보며 하루는 뭔가 모를 불편함을 느꼈다.

....확실히 그가 빌런은 맞지만, 그래도, 그래도...

그러나 차마 히어로인 그녀가 빌런을 조금이라도 두둔할 수는 없기에, 늘 그냥 조용히 고개를 끄덕일 뿐이었다.

"그 나쁜 새끼는, 그냥 사지를 찢어 죽여버려야해."

....그거는 좀.

"내가 봤을때 걔는, 자기만 생각하는 사이코패스일꺼야."

아닌데. 자기 목숨까지 걸고 나 구해줬었는데.

"어떻게 테러를 그렇게 몇백명을 상대로 일으켜? 순수악 그자체라니까."

....그래도 사망자는 아직 한명도 안나왔는데.

"그리고 보면 늘 하루 너만 부르잖아. 소름끼치지 않아?"

딱히...

그렇게 신하루는 늘 그런 대답을 속으로 삼킨 채, 고개만 끄덕일 뿐이었다.

그렇게 멍하니 설아네 집 벽면에 걸린 티비를 보고 있을때 쯤.

[특집! 에고스틱 심층 분석!]

흠칫.

갑자기 나온 뉴스 프로에 하루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 역시나.

"어! 저놈!"

소파 뒤에서 들려오는 설아의 목소리에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을 흘렸다.

아, 또 시작이겠구나.

*

영상 자체는 평범한 내용이었다.

대충 에고스틱이 공표한 에고스트림을 통해 알 수 있듯, 그가 앞으로 다른 빌런들과 연합하여 나올 확률이 높다는것.

그리고 테러를 일으키는 지역은 웬만하면 서울, 그리고 그를 상대할 히어로는 거의 무조건적으로 스타더스로 고정될거라는 예측.

뭐 내용 자체는 문제가 없었다.

옆에서 리모컨을 가진 채 계속해서 에고스틱 욕을 쏟아내는 설아가 문제였을뿐.

"....."

이쯤되면 하루 그녀도, 뭔가 이상하던걸 깨달았다.

갑자기 왜 이렇게 에고스틱에 집착하는거지? 무슨 계기로?

예전에 에고스틱 그에대해 상담했을때만 해도 크게 신경쓰지 말라며 무관심한 태도를 보여줬던 설아였다.

갑자기 하루아침부터 욕하는게 굉장히 이상했다.

그리고 더, 기묘한 것은.

"에고스틱이 아주 사악한 빌런인 이유가 저것만 봐도 나오는게 또 뭐냐면..."

그녀의 직감이 느끼기에.

설아가 하는 말에는, 딱히 진심이 느껴지지 않았다.

그게 제일 이상했다.

"..."

그렇게 하루는, 조용히 약간 가라앉은 눈동자로 설아의 말을 듣고있을 뿐이었다.

***

산골짜기에 박혀있는 큰집.

일명 에고스트림 본부, 더 빅하우스(王大家).

나는 그곳에서, 모두에게 선언하고 있었다.

"우리는 부산으로 내려간다."

"네?"

"부산은 너 혼자 저번에도 갔다왔잖아. 또?"

최세희가 이해가 안된다는듯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오빠. 부산에는 왜 가는데요?"

"테러하러."

내 심플한 대답에, 하은이는 이해가 안된다는듯 되물었다.

"테러를 부산에서 해요? 오빠 원래 서울에서 맨날 스타더스만 콕 찝어서 했잖아요."

"맞아요. 다인 오빠같은 스타더스 바라기가 다른 곳에서 한다고요?"

다들 믿을 수 없이 바라보는 모습.

아니, 내가 뭘. 내가 언제 이런 이미지가 된거지? 그렇게 말하니까 내가 막 스타더스한테 집착하는거 같잖아. 물론 내가 스타더스를 위해 사는건 맞기는 한데, 그렇다고 해서 막 스타더스만 하루종일 생각하고 그런건 아니다. 아니라니까.

하여튼, 나는 헛기침을 해서 분위기를 환기했다.

"봐봐. 다들 오해하고 있는데, 나는 딱히 스타더스만 막 그렇게까지 집착하고 그러는건 아니야."

"저... 다인씨, 그렇게 말씀하시기에는 스타더스 팬카페까지 운영하시고 있으시지 않으신가요?"

수빈씨가 내 말을 듣더니 황당하다는 듯 일침을 놓았다. 예리하군. 이럴때는 그냥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 말을 돌리는게 정답이다.

"크흠. 어쨋든, 그런 의미로 이번에는 스타더스 말고 다른 히어로가 있는 지역에도 한번 테러를 해보기로 결정했습니다."

이설아가 하도 졸라데가지고 한 것도 있지만, 내가 스타더스만 늘 저격하는건 아니라는걸 밝히는 의도도 있다. 악질우결충들이 너무 많아.

그리고, 지금 딱 타이밍이 좋기도 하고. 아마 곧 부산에 그놈들이 올테니까.

"그런 의미로 최세희, 너는 나랑 같이 간다."

"엥? 나?"

최세희는 손가락으로 자기를 가르키며 눈을 깜빡깜빡 거렸다. 아니, 나 참.

"당연히 너지. 우리중에 무력 가진게 너밖에 없는데, 당연한거 아니야?"

"아. 하긴, 글킨 하지."

최세희는 납득했다는 듯 머리를 까딱거렸다. 그렇게 휘날리는 그녀의 주황색 머리칼 사이로, 뒤에서 서은이의 부루퉁한 표정이 보였다.

"....나도 빨리, 해야지..."

뭐라고 중얼거리는데 불길할 따름이다.

그렇게 내가 서은이를 힐끔거리는 동안, 음음거리며 고개를 끄덕이던 최세희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 질문했다.

"아니, 근데. 나는 저번에도 테러하지 않았어? 이번에도 또 해?"

의문어린 그녀의 시선에, 손가락을 흔들었다. 그게 아니야.

"아니, 이번에는 우리가 직접 테러 안해."

"그럼?"

"당연히 다른 놈 시켜야지."

나는 씨익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내가 뭐라고 했었냐. 에고스트림. 빌런연합을 창설한다고 하지 않았어? 그러면 당연히 이제 다른 빌런들이랑 연합해야 하는 법이다.

정확히는 연합이 아니고, 사실상 내가 부려먹는게 되겠지만. 켈켈켈.

그렇게 속으로 사악한 생각을 하며, 나는 수빈씨에게도 말했다.

"그리고 수빈씨. 배 몰줄 아시죠?"

"네? 아, 큰 배는 잘 모르는데 작은 배라면 네, 어느정도."

"역시. 그럼 수빈씨도 이번에 저와 함께 가시죠."

나는 손을 튕기며 그렇게 말했다. 좋아, 모든 준비는 끝났다. 이제 이설아한테 연락만 하면 되겠네.

"바로 다음주, 저희는 부산으로 떠납니다."

그렇게 우리의 다음 테러가 결정되었다.

물론 부산가서 바로 테러를 할 수 있는건 아니고, 또 다른 빌런을 꼬시기 위해서 어느 정도 시간이 필요하겠지만은.

자, 이제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줄 필요가 있다. 내가 스타더스 바라기가 아니라는걸. 나는 모두의 테러리스트다! 스타더스를 조금 더 특별하게 생각하기는 하지만, 스타더스'만' 생각하는건 아니라는걸. 그리고 특히.

'빚, 갚은거지?'

...그날, 나를 향해 살짝 웃으며 그렇게 말하던 신하루의 얼굴이 자꾸만 떠올라서, 문제가 있다.

아무래도 한동안은 스타더스랑 거리를 둘 필요가 어느정도 있겠어.

테러나 준비하자.

***

"다음주요? 좋죠. 요트요? 훗, 절 뭘로 보시는거에요? 제가 유성그룹의 이설아에요. 최고급품으로 준비해놓을 테니까, 걱정말고 몸만 오세요."

"아 그리고, 제가 요즘 하루한테 당신에 대해 계속 나쁘게 말하고 있기는 한데, 이거 아무리 생각해도 효과 별로 없는거 같은데요? 그래도 그냥 하라고요? 흐응...."

"그럼 네, 알겠어요. 그때보죠."

그렇게 한참을 얘기하다가 전화를 끊은 이설아는, 자기 혼자 있는 사무실에서 홀로 웃었다.

이미 그녀의 머리속에서는 여러가지 주판이 튕겨지고 있었다. 이번에 에고스틱이 부산에서 일으킬 테러를 자신이 진압함으로서 얻을 인지도, 인기, 그에따른 영향력과 이미지에 상승.

"완벽하네."

이미 그녀는 에고스틱 그와의 통화 이후, 계획이 착착착 세워지고 있었다. 일단 하루는 며칠뒤에 집에 돌아간다고 했으니, 그 이후니까 상관없고... 그가 보내준 여러 자료를 이용하면 딱 될거같다.

그녀는 오랜만에 기분이 좋아졌다. 뭔가 계획대로 착착 되고있다. 이대로라면 몇년안에 어느정도 그녀가 목표한 바를 이룰수도 있겠고...

그렇게 이설아는 한결 마음이 가벼워진 상태로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니 그녀를 맞이해주는건, 그녀가 냉장고에 구비해둔 망고맛 아이스바를 먹고있던 하루의 모습이었다.

"하루야아~."

"으응? 앗."

이설아는 집에 도착하지마자 아이스크림을 문 채로 자기에게 손을 흔드는 하루를 껴안아버렸다.

하아. 하루의 가슴에 안기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기분이다.

"으응? 갑자기 왜그래?"

하루는 갑작스러운 포옹에 왜이러냐는 듯 당황해 하면서도, 자신을 떼어내지는 않고 그냥 그대로 가만히 자리에 서있었다.

사실, 설아는 하루의 이런점을 좋아했다. 히어로로써 활동할때는 누구보다 정의롭고 강인하게 빌런들에게 호통치며 나서지만, 사실 사석에서 알 수 있듯 하루는 원래 꽤 조용한 성격이다. 마치 안 까칠하고 착한 고양이같은 느낌? 그녀가 이렇게 껴안아도 딱히 큰 반항없이 조용히 있어주는것만 해도 그렇다는걸 알 수 있다.

MBTI도 사실 I, 그러니까 내성형이라고 했었나. 그런 생각을 하며, 그제서야 설아는 하루를 놔주었다. 여전히 의문가득한 시선으로 설아를 올려다보는 하루.

그런 그녀를 향해, 설아는 그저 웃으며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그냥. 요즘 기분 좋은 일이 있어서 좀 오버했네."

"....그래?"

하루는 그렇게 말하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렇게 그날 하루종일, 설아는 기분이 많이 좋아보였다. 살짝 입꼬리가 계속 올라가있고, 텐션도 높았고, 거기에 오랜만에 에고스틱을 욕하는걸 까먹은 듯 그에대한 언급을 하지 않기도 했다.

그리고 그런 자신의 친구의 모습을 보며.

하루는, 뭔가 점점 더 가슴이 답답해지는걸 느꼈다.

....대체, 왜인지는 전혀 모르는 채.

그렇게, 에고스틱이 처음으로 부산에서 테러를 일으킬 날이 점점 다가오고 있었다.

제 92화

화하이잭

대한민국 남쪽의 해안.

바닷물이 넘실거리는 그곳에서, 우리는 요트를 끌고 앞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휴우... 이게 낭만이지."

짠 냄새를 품은 바람이 얼굴을 때리고, 세찬 바다바람은 내 망토를 휘날리는 가운데.

우리는 목표로 삼은 곳을 향해 바다를 가로질렀다.

"야, 이수빈. 너 배 모는건 대체 어디서 배웠냐?"

요트 위에서 멍하니 있는건 심심한지, 키를 잡고있는 수빈씨에게 다가가 물어보는 최세희.

그리고 그런 그녀를 향해, 수빈씨는 별거 아니라는 듯 답했다.

"어디서? 그냥 집에서 인터넷으로 혼자 독학했는데?"

"...? 그게 말이 되냐?"

최세희가 믿을 수 없다는 말투길래, 뒤에있는 내가 한마디 해줬다.

"수빈씨 못하는게 없으시다. 기차랑 비행기도 몰 줄 알어."

"....뭐? 진짜?"

"응."

"아니... 하."

최세희는 어질어질 하다는 듯 머리를 붙잡았다. 세희야. 수빈씨는 우리랑 사는 세계가 다르셔. 이해하려고 하면 안돼.

그와 별개로, 서로 반말로 편하게 대화를 나누는 모습에서 볼 수 있듯, 둘이 전보다 훨씬 친해졌다.

이게 어떻게 된거냐면, 좀 이상하긴 한데 저번에 잡아온 한은그룹 연구원놈이랑 김선우를 탈탈탈 터는 과정에서 둘이 친해지게 되었다. 정확히는 저번 병기사건 이후, 한은그룹에 쌓인게 많은 서은이와 수빈씨의, 거기에 최세희까지 가세해 진득하게 괴롭힌 뒤 협회에 던져줬다.

얼마나 괴롭혔냐고? 음, 김선우 박사가 맛이 갔다는것만 알면 된다. 그러게 누가 인체실험 하래? 걘 내가 안 죽인걸 고맙게 여겨야 해.

하여튼. 우리의 현재 목표는 부산 아래쪽 바다에 있다.

목표는 단 하나.

"그래... 저기, 슬슬 보이네."

흐릿하게 낀 바다사이로, 슬며시 보이는 거대한 배.

마치 중세시대에 바이킹들이 쓴 것마냥 대포가 달려있고, 커다란 흰 돛이 위풍당당하게 걸려있는 배가, 시야에 보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배의 특별한점은.

"야, 뭐냐. 배가... 떠있어?"

그래.

배가 공중에 떠있다.

저 거대한 비행선이 오늘 우리가 하이재킹 할 일종의 해적선, 빌런의 배 엘리스(Alice)다.

*

한은그룹 거대 병기의 서울 공습 이후, 원작 [스타더스트!]에서는 서울이 초토화 되는걸 시작으로 점점 작품의 분위기가 어두워져간다.

그리고 작품의 분위기가 어두워지는 제일 큰 이유는 역시, 강한 빌런들의 계속되는 등장.

사실 그전까지만 해도, 빌런들이 다 고만고만 했다. 불가항력적인 재앙을 제외하고, 평균적인 빌런들은 다 만만했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때부터 분위기가 달라진다. 등장하는 빌런들이 강해진다. 스타더스 그녀가 감당하기 버거울정도로, 점점.

거기에 빌런들의 수마저 점점 많아진다. 질과 양 모두를 잡은 웰메이드 빌런들의 등장에 사회가 혼란해지는건 당연지사.

심지어 주로 서울에만 집중해서 테러를 일으키던 기존과는 다르게, 서울 외 지역에도 강한 빌런들의 하나 둘 등장한다. 바야흐로 춘추빌런시대.

원작에서는 이로 인해 스타더스가 점차 지쳐가며 작품의 분위기도 어두워지고, 본격적으로 피폐한 이야기가 시작된다...만.

나의 등장으로 이제 상당히 바뀌었다고 할 수 있다. 스타더스는 원작보다 더 빠르게 강해졌고, 애초에 앞으로도 내가 나서서 다양한 빌런들을 회유하거나 처리할 예정이니.

그리고 그 첫번째로.

우리는 부산을 조져버리는 빌런을 잡으러 왔다.

"와... 이게 뭐냐?"

최세희는 위를 올려다보며 혀를 내두르곤 말했다.

그래, 처음에 보게 되면 놀라운 광경이다. 거대한 비행선이 공중에 둥둥 떠서 진격하는 광경이라니.

바다를 가르는걸 넘어 바다 위에서 하늘을 가르는 전함의 모습에 감탄하던 최세희는, 이내 나를 돌아보더니 물었다.

"그래서. 계획이 뭐라고?"

"일단 저 위에있는 애들을 두들겨 패는거지."

나는 깔끔하게 그렇게 말했다. 두들겨패서 교화되면 우리편 되는거고, 아니면... 뭐, 고기밥 되야지.

"어쨌든, 자. 내 손 잡아. 수빈씨, 저희 갔다올게요."

"네. 여기서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다녀오세요."

"하아, 그래. 가자."

최세희는 주먹을 한번 휘두르며 손을 풀더니,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그대로 우리는, 저 비행선 위로 순간이동했다.

빌런 교정의 시간이 왔다.

***

저 비행선을 이끌고 노략질을 하는 놈들은 바로 총 3명으로 구성되어있는, 레피스단이란 놈들이다.

토끼 귀같은게 달려있는 오토바이 헬멧 비스무리한걸 전원이 쓴게 가장 큰 특징인 이들.

주로 다른 나라에서 대포달린 비행선을 이용해 해적질을 하던 이놈들의 원작에서 첫 등장은, 부산을 습격하는걸로 시작된다. 그때 당시는 아무런 준비가 안된 아이시클이 좀 털리고 만다. 물론 이번에는 다르겠지만.

하여튼, 거대한 비행선.

사방으로 펼쳐진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그곳에는, 세명의 인물이 있었다.

대충 가운데 있는 토끼귀가 달린 빨간색 헬멧을 쓴 놈이 서있었고, 그 옆에는 파란색과 노란색 모양의 똑같은 헬멧을 쓴 놈들. 지들끼리 수근수근 거리고 있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놈들의 뒤로, 사뿐히 내려앉은 우리 둘.

그렇게 우리가 내려앉은 쪽에서 삐그덕 하는 소리가 들리자, 놈들이 고개를 휙 돌려 우리쪽을 바라보았다.

"이게 무슨 소리야. 누구냐!"

그렇게 그들이 본 것은 검은 모자에 망토까지 휘날리고 있는 나와, 옆에서 주먹을 풀고 있는 최세희.

그런 우리 둘을 향해, 가운데 있는 놈이 소리쳤다.

"너네는 누구냐!"

나를 보자마자 소리치는 가운데 있는 놈.

나는 그에게, 하품을 하며 말해줬다.

"너네 보스다 이것들아."

"무슨 개소리냐! 블루! 옐로우! 침입자다, 전부 무기챙겨!"

"예쓰!"

"예쓰!"

그렇게 옆에있는 둘이 황급히 무기를 챙기기 시작했다.

나?

그걸 보면서, 나는 보따리에 싸온 야구방망이들을 염동력으로 띄울 뿐이었다.

그리고 옆에있는 세희는 주먹을 쥐고 스파크를 튀기는 와중에.

나는 우리를 향해 달려들 준비를 한 저들을 보며, 나도 모르게 씨익 웃음을 지었다.

역시 나쁜 놈들에게는 매가 약이지.

"모두 쳐!!!"

그렇게 가운데 있는 토끼헬멧을 쓴 놈의 샤우팅을 시작으로.

세명이 일제히 달려들며, 싸움이 시작되었다.

***

얼마후.

"자. 아까 뭐라고 했지?"

무릎을 꿇고 앉아있는 세명을 향해 나는 방망이를 바닥을 향해 툭툭 두들겼다.

"대장이 누구라고?"

"에고스틱님입니다아아앗!!"

"좋아, 좋아."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나와 최세희의 '사회화' 교육을 받은 빌런들은, 자신의 죄를 깨닫고 뉘우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가!

"야, 빨간색."

"네, 넵!"

제일 가운데 있던 빨간 토끼 헬멧을 쓴 애가 화들짝 놀라서 대답했다. 그래. 이렇게 대답이 빠릿빠릿하니 얼마나 좋아.

"그래. 이제 넌 우리 에고스트림이랑 한시적 동맹이다."

"네?"

"빌런연합, 에고스트림의 세컨드 파티라고. 알겠어 모르겠어."

"아..알겠습니닷!!!!"

나는 그렇게 빠따를 휘둘러 이들에게 원하는 정답을 이끌어냈다.

".....와, 진짜 이렇게 보니까 누가 빌런인줄 모르겠네."

뒤에서 내가 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최세희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야, 난 이미 빌런이거든?

"어쨌든 자. 에고스트림 가입을 환영한다!"

나는 그렇게 팔을 벌리며 큰 소리로 외쳤다.

빌런 특징 첫번째. 싸우고 나면 다 친구다. 비록 친구들이 내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기는 하지만, 아무튼 내 친구임.

그렇게 이 레피스인가 래빗인가 하는 놈들은 장장 몇시간에 걸친 나의 '사회화'에 완전히 정신적으로 굴복하고, 앞으로 착한 테러만 저지르겠다는 마음속 깊숙한 서약까지 했다. 효과 좋네.

이런 식으로 모든 준비를 마친 뒤, 나는 아이시클-이설아에게 연락했다.

"그래, 야. 부산침공 준비 완료했다. 대충 대포달린 비행선타고 도시 앞쪽에 빵야빵야 할 예정인데, 넌 어떻게 할래."

[...비행선이요? 당신은 참, 늘 기상천외한걸 들고 오시네요. 날짜는 언제로 하실건가요? 그럼 음... 시민들한테 미리 공습을 경고해 점수도 따고... 대충 제가 막는 모습을 보이면 이미지 상승에...]

"그리고 야, 좀 까리한 돛 하나 맞춰줘. 검은색으로."

[네? 뭐 알았어요. 그정도야. 그러면...]

그렇게 구체적인 테러날짜와 실행계획까지 모의한 나는, 이내 전화를 끊었다. 좋아. 이건 됐고.

이다음에는... 그래. 나는 여전히 무릎을 꿇은채 내 눈치를 보고있는 前빌런들을 향해 말을 던졌다.

"너네, 부산 습격하고 싶다고 했지?"

"네? 아닙니닷!!! 저희는 얌전히 돌아가겠습니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러지 말고, 너네 나랑 같이 일 하나 하자."

나는 그렇게 말하며 더 큰 미소를 지어주었다.

나의 환한 웃음에 바들바들 떠는 이 토끼빌런들.

우리, 친하게 지내야지?

이제 '파트너' 인데.

그렇게 나는 그들과 함께 테러를 준비했다.

대충 부산에 비행선끌고 가서 대포 몇발 쏴주면 그게 테러지.

어차피 아이시클과 짜고치는 고스톱이라, 별것도 없다. 그냥 방송각만 잘 나오게 하면 되는거지.

그렇게 결전의 시간이 밝았다.

***

부산 시내.

평화로운 그곳에서, 갑자기 사이렌이 울렸다.

위잉-. 위잉-.

그리고 곧, 도시 전역에서 울려퍼지는 목소리.

[아 아. 유성그룹에서 알려드립니다. 지금 현재 부산에 테러리스트들이 습격을 해오고 있습니다! 저희가 협회보다 먼저 알아채 급하게 연락 드립니다. 지금 당장 대피하세요!]

유성그룹에서 만들어진 모든 전자기기에서, 아이시클의 다급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시민들은 당황하면서도, 황급히 모두 대피하기 시작했고.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해운대 쪽에서 보이는 바다 지평선 너머, 무언가 거대한게 날아오고 있었다.

저게 하늘에 떠있다고는 믿을 수 없는 거대한 배.

남쪽에서 바다 위를 날아 위풍당당하게 날아오고 있는 그것.

그러한 거대한 비행선 위쪽에 달려있는건, 검은색의 커다란 돛.

그리고 거기에는, 큼지막하게 EGOSTREAM이라고 적혀있는 모습.

나는 그 배 맨 앞쪽 갑판 위에서, 팔짱을 끼고 망토를 휘날리며 저 멀리 보이는 부산을 내려다보고있었다.

"에고스틱님! 모든 준비 완료되었습니다!"

"보스! 대포들도 준비 완료입니다!"

"좋네 제군들. 당장 배를 더욱 빠르게 진격시키게!"

나는 그렇게 소리치며 부산의 넓은 도시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흠. 서울이 아닌 바닷가에서 테러를 일으키는건 또 신선하구만.

그렇게 나는 바닷바람을 맞아가며, 방송을 틀 준비를 했다.

자, 쇼를 시작해볼까.

***

[에고스트림 방송 ON]

[방송떴다ㄱㄱㄱㄱㄱㄱㄱㄱㄱ]

[오 ㅅㅂ비행선 뭐냐ㅋㅋㅋㄱㅋㄱㄱㅋㄱ]

[아니 배 ㅈㄴ까리하네ㅋㅋㅋㅋㅋ]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여기 부산 아니냐????]

[부산에 망고스틱 등장ㅋㅋㅋㅋㅋㅋ]

[부산 게이들아 서울직송 망고맛좀 봐라ㅋㅋㅋㅋ]

[아이시클 개같이 떡상 직전ㄷㄷ]

에고스틱이 등장했다는 말에, 자신도 모르게 바로 출동하려고 했던 신하루는 글을 읽고는 자기도 모르게 눈을 비비고 다시 봤다.

그러나 아무리 다시 봐도, 적혀있는 내용은 에고스틱이 서울이 아닌 부산에 출몰했다는 내용.

"테러를 일으킨 곳이... 여기가, 아니야?"

신하루는 자기도 모르게, 죽은 눈으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어째서?

제 93화

화비행선 공습

지평선 너머까지 펼쳐진, 끝없는 바다.

작렬하는 태양이 내뿜는 뜨거운 볕이 물에 반사되어 반짝거리는 그곳 위에서.

거대한 함선이, 둥실둥실 떠서 향해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의 갑판 맨 앞쪽.

정면에 펼쳐진 바다가 바로 눈앞에 있는 그곳에서.

나는 카메라를 향해 팔을 활짝 벌리고 소리쳤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에고스틱입니다!"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왜 이렇게 오랜만이냐ㅋㅋㅋㅋ]

[망고! 망고! 망고! 망고!]

[오빠 날 가져요 오빠 날 가져요 오빠 날 가져요 오빠 날 가져요]

[방송 시작하자마자 웃음벨이네ㅋㅋㅋㅋㅋ]

[아니 여기 어디임?? 바다 무엇???]

[배에 탄거같은데 왜 하늘이 보이냐]

[오늘은 또 무슨 이벤트냐고ㅋㅋㅋㅋㅋㅋ]

여전히 경각심이라고는 1도 없는 채팅창을 보며, 나는 미소지었다. 대체 언제부터 이렇게 된지는 모르겠는데... 뭐, 어쩔 수 없는건 어쩔 수 없는거지.

하여튼, 나는 바다를 등지고 팔을 벌린 채, 카메라를 향해 말을 이었다.

"여러분. 지난 방송에서 언급했듯, 제가 빌런들을 위한, 빌런들에 의한, 빌런 연합을 만들겠다고 한거 기억 나십니까? 에고스트림- 이라고, 제가 이름 붙였었죠."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 씨익 웃는 채, 내 옆에서 쭈뼜대던 토끼헬멧 3인방을 끌고 왔다.

"그런 의미로 소개합니다! 저희 에고스트림과 협력관계를 맺기로 하신 새로운 빌런분들입니다. 그런 의미로 시청자들한테 소개 한말씀 해주시죠!"

갑작스럽게 카메라가 자신들을 향하자, 화들짝 놀라는 3인방.

그러더니 이내, 가운데 있던 빨강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아, 안녕하세요... 저희는 레, 레, 레피스단이고요... 네, 어, 으, 아, 안녕하세요?"

무슨 면접관 앞에서 긴장한 신입사원마냥 달달달 떠는 1호.

아니, 빌런이란 놈들이 이렇게 쫄면 어떡해 이것들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

[웰케 긴장했냐ㅋㅋㄱㅋㅋㅋㅋ]

[안녕은 왜 2번 말하냐고ㅋㅋㅋ]

[아니 이게 빌런이야 초등학교 반장선거야 아ㅋㅋㅋㅋㅋㅋ]

[빌런이 아주 커여운wwwwwww]

[토끼헬멧 할짝이고 싶다]

[아니 캐릭터 존나 신선하네ㅋㅋㅋㅋ 뭐임?]

당연히 시청자들의 반응도 폭발적이었다.

무슨 학예회 나간 것도 아니고 이렇게 쫄면 어떡해?

이미 1호는 거기까지 말하고 정신이 나갔는지 멍하니 서있기만 하고 있다. 옆에 있는 2호랑 3호도 마찬가지.

안되겠다, 이거 내가 도와줘야겠구만.

나는 영혼이 나간채 멍하니 있는 1호에게 다가가, 어깨에 팔을 걸친다음 웃으며 카메라를 보고 말했다.

"하하하. 이 친구가 방송이 처음이라 좀 긴장한거 같네요. 우리 1호, 웃어야지? 하하하."

"하하..."

"이 친구들이 레피스단이라는 친구들인데, 이 멋진 비행선을 가지고 있길레 제가 꼬드겨 우리 에고스트림과 독점 계약을 맺게 했습니다. 바다에서 놀고있는데 이 비행선을 끌고 오는걸 제가 보았지 뭡니까. 그래서 제 권유로 에고스트림과 같은 편이 된거죠!"

"...하하하, 네. 그말이 맞습니다."

[아니ㅋㅋㅋㅋㅋ 왜이렇게 보니까 망고가 양아치같냐]

[아니 빌런 이름이 어떻게 1호ㅋㅋㅋㅋㅋ]

[아니 친구 맞어?? 아무리봐도 갱생당한 빌런같은데?]

[왜 저 1호란 놈 말할 때 영혼이 나간거같냐]

[웃어야지 ㅇㅈㄹㅋㅋㅋㅋㅋ]

[이게 n년차 방송선배의 조언?]

[딱보니까 쟤네가 저 비행선끌고 테러하려는거 에고스틱이 눈치챈 다음에 두들겨패고 '이건 제겁니다' 시전한거같은데 기분탓이냐?]

....어떻게 알았지?

어쨌든 이런 사소한 이야기는 넘어가고, 나는 오늘의 본론이나 꺼냈다.

"하여튼 마침 보니까 부산도 거의 코앞이네요! 네, 예상했던 분들도 계셨겠지만, 제 이번 테러는 부산 정복입니다. 해운대를 에고공화국으로 만드는 유쾌한 여정!"

그렇게 말을 하는 동안, 비행선은 어느새 부산의 항구 앞까지 둥둥 떠서 왔다.

그 앞에서 나는, 다시 한번 팔을 활짝 펼치며 입을 열었다.

"자! 부산은 이제 제겁니다. 대포 장전!"

"""옙 보스!"""

뒤에서 1,2,3호의 때창과 함께, 함선 벽쪽에 달려있는 포문들이 하나 둘 열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나는 외쳤다.

"발사!!!"

"""발사!"""

뒤쪽에서 들려오는 이들의 함성과 함께, 포문에서 대포알이 펑펑 도시쪽으로 쏘아지기 시작했다.

테러의 시작이었다.

그리고...

나는 카메라를 잠시 저쪽으로 치워버린 뒤.

조용히 입을 열고 중얼거렸다.

"그래. 지금 테러 시작한다. 사람들은 다 대피시켜놨지?"

내가 그렇게 중얼거리자, 이어폰쪽에서 들려오는 이설아의 웃음기 섞인 목소리.

[네, 당연하죠. 이미 유성그룹의 이름으로 다 대피시켜놨어요. 아마 이제 곧 정부보다 유능한 유성으로 기사가 나가겠죠, 후훗.]

"그래, 그래. 그리고 아마 습격은 여기 남쪽구역 여기만 당분간 할꺼거든? 넌 어떻게 할래."

[음... 갑자기 바로 등장해도 좀 그러니까, 조금 있다가 갈게요. 대충 남쪽은 아무도 없고 동남쪽에 아직 대피못한 인원들 몇명 남아있으니까, 거기 습격하실때쯤에 제가 나서면 될거 같은데요?]

"그래. 알아서 해라. 그럼 조금 있다가 보자고."

[네. 그때 봐요.]

그렇게 연락을 끊은 뒤, 나는 다시 배 아래를 바라보았다.

카메라가 비추고 있는 정경은, 공중에 떠있는 거대한 배에 의해 공격받고 있는 도시의 모습.

사람들은 영원히 모를거다. 이게 짜고치는 고스톱이라는 사실을.

애초에 테러의 시각과 개요를 전부 히어로와 사전에 상의하고 시작한, 일종의 거대한 대국민 사기극.

지금까지 내가 스타더스한테 일으킨 테러들은 전부 그녀를 성장시키는데 초점이 맞추어진 것들이라면, 이번 테러는 다르다.

내가 꼭 스타더스가 있는 서울에서만 테러를 일으키는건 아니라는걸 밝히는 의도이기도 하고, 이 레피스단과 협력해서 에고스트림을 확장시키는 의미이기도 하며, 아이시클의 인기 상승도 겸사겸사 도와주는 테러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이미 철저히 계획된 연극이라는 것.

이미 모든 실행 플랜도 다 짜놓았다. 대충 내가 도시에 빵야빵야 하고, 사람들마저 공격받기 직전 아이시클이 딱하고 나서서 사람들을 구하고 우리를 물리쳐 도시를 구한다.

뭐, 흠잡을데가 없이 깔끔한 일.

나는 그렇게 공중에 뜬 배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생각했다.

이렇게 바닷바람도 맞아가며 새로운 곳에서 하는 테러도 신선하고 좋지만.

역시, 스타더스랑 하는게 제일 좋기는 하다.

뭐, 지금은 아이시클에 집중해야 겠지만.

그렇게 나는 바닷가 쪽을 실컷 공격한 뒤, 더 안쪽으로 나아갔다.

이제야말로 본격적인 쇼지.

***

펑. 펑.

공격당하는 도시.

그리고 도망친 사람들.

"와... 저게 뭐시다냐."

도시를 그림자로 뒤덮는 거대한 비행선을 보며, 사람들은 입을 떡 벌렸다.

그리고 이제는, 사람들이 대피한 곳으로 다가오기 시작하는 비행선.

"으악!"

그리고 그들이 공격받기 직전.

피슈우우우웅.

갑자기 어디서 들려오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사람들의 앞으로, 거대한 얼음의 장벽이 나타났다.

그리고 뒤에서 들려오는, 어떤 여성의 외침.

"안심하세요 여러분! 제가 왔습니다!"

그리고 그들 앞으로 하늘색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등장한 여자는.

A급 히어로, 아이시클이었다.

사람들이 딱 공격받기 직전 절체절명의 위기에 등장한 그녀.

날아오는 대포에 얼음을 날려 공중에서 멈춰세운 그녀는, 이내 비행선을 향해 외치기 시작했다.

"에고스틱이라고 했나요? 지금 당장 폭격을 멈추세요! 아니면 당신은 무사하지 못할겁니다!"

그리고 그녀의 외침 후, 위쪽에서 들려오는 한 남자의 커다란 목소리.

[하하하! 그럴순 없죠. 당신이 바로 부산의 자랑이라는 아이시클이군요! 만나서 반갑습니다. 그러면 어디 한번 이것도 막아보시죠!]

그렇게 그의 외침과 동시에, 아이시클을 향해 폭탄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림도 없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폭탄들을 향해 얼음을 전방위적으로 발사해, 막아내기 시작한 그녀.

그러며 아이시클은 공중에 얼음 발판들을 만들어, 폴짝 폴짝 뛰어가며 비행선이 있는 위쪽을 향해 다가가기 시작했다.

[하하하! 그래요, 어디한번 와서 잡아 보시죠!]

"에고스틱! 당신을 제가 이 자리에서 쓰러트리겠습니다!"

어쩐지 연극마냥 과장된 두 히어로와 빌런의 대화를 끝으로.

한쪽에서는 얼음이, 한쪽에서는 폭탄이 난무하기 시작하며.

그렇게 부산의 상공에서,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

서울, 히어로 협회 본사.

그곳 최상층에 있는 협회장 사무실.

그 위에서, 협회장은 곤란한 얼굴로 자신의 앞에 서있는 금발의 여성을 바라보았다.

"그러니까, 스타더스. 지금 당장 부산으로 가겠다고?"

"네."

"....어, 지금 내가 보기에는 아이시클이 충분히 잘 상대하고 있는거 같은데, 굳이 가야겠나?"

"혹시나 모를 추가 인명피해를 막기 위해 아무래도 에고스틱 전문가인 제가 가는게 맞다고 봅니다. 설아 혼자서 상대하기에는 무리가 있을거 같기도 하고요."

살짝 가라앉은 눈으로 차분히 말하는 스타더스의 모습을 보며, 협회장은 자기도 모르게 텅 빈 머리를 긁적였다.

...아무리봐도 굳이 갈 필요는 없을거 같은데, 얘가 왜이러지.

제 94화

화계획된 연극

이번 테러의 메인 이벤트로 기획된 전투.

에고스틱 대 아이시클.

그 전투의 서막이 밝았다.

"하하하! 어디 한번 이것도 버텨보시죠!"

나는 그렇게 외침과 동시에, 배를 조작해 아이시클을 향해 대포를 몇발 더 날렸다.

펑-

펑-

커다란 발사소리와 함께, 그녀를 향해 떨어지는 무수히 많은 대포알들.

그렇게 자신을 날아오는 수십발의 포탄을 보며.

공중에서 잠시 멈춘 아이시클은, 이내 숨을 들이마쉬더니 전방향으로 얼음을 내뿜었다.

"흡!"

하늘색의 얼음들이 그녀의 몸을 감싸며 사방으로 뻗어나가고.

이내 그녀에게 날아오던 수많은 대포알들이, 전부 얼어붙어 중간에 멈추었다.

"오호..."

그리고 그런 광경을 보며, 나는 속으로 작게 감탄했다.

아이시클... 생각보다, 능력을 꽤 잘다루는데?

원작에서는 워낙 스타더스에게 초점이 집중되어있어 아이시클은 생각보다 언급이 적었는데, 이렇게 보니까 나름 잘 싸우는거 같다. 얼음을 내뿜는 능력도 시원시원하니 좋고.

어쨌든, 그게 지금은 중요한게 아니지.

나는 곁눈질로 채팅창을 확인했다.

[오 어케막은거냐]

[아니 아이시클 생각보다 잘싸우는데???]

[마 이설아도 나름 잘싸운다 안카나. 부산의 명물이데이]

[시원하게 얼음을 뿜어주는 재벌 3세 ㅗㅜㅑ]

[스타더스에 비해 존재감이 떨어져서 몰랐는데 ㄹㅇ얘도 나름 치는데?]

나름 아이시클에 대하여 호의적인 반응.

상황이 나쁘지 않게 흘러간다는걸 파악한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이고는 다시 전투에 집중했다.

어느덧 폭탄세례를 뚫고는 다시 공중에 얼음발판을 생성해가며 내가 탄 함선쪽으로 다가오는 그녀.

나는 그런 그녀를 향해 비릿하게 웃어주며 다시 외쳤다.

"흠, 꽤 하시는군요! 그럼 이건 어떻습니까. 가라, 1호!"

"흐엣?"

나는 옆에서 조작을 하고있던 1호에게 총을 쥐어주고 아이시클을 향해 던져버렸다.

아니, 사전연습 다 해놓고 이렇게 얼타면 어떻게?

"흐아아앗!"

내가 발휘한 염동력으로 공중에 둥둥 뜬 채 배밖으로 날아간 1호는, 이내 정신을 차리고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이시클에게 외쳤다.

"으, 으, 으아아아아!"

...외친다기보다는 어째 고함을 지르는거 같은데.

하여튼, 파이팅은 좋다. 그렇게 그는 기세넘치게 소리를 지르며 아이시클에게 돌격했다. 총을 우두두두 쓰면서.

"흥! 제가 이런거에 맞을거라고 생각하시나요?"

자신에게 총알의 세례가 날아오자, 팔을 X자로 크로스하고는 정면에 얼음을 생성하여 총알을 막는 아이시클.

그렇게 그녀는 총을 얼음으로 막아가며, 천천히 계속해서 앞으로 전진했다.

"으... 으아아아!"

그리고 끝내 아이시클의 코앞까지 도달한 1호는 결국 총을 붙잡고 얼음으로 둘러싸인 그녀를 직접 가격하려고 들었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총알이 날아오는걸 멈춘 틈을 타, 아이시클은 손을 뻗어 다가오는 1호에게 냉동빔을 쏘아버렸다.

"으아아아악!"

마지막 신음을 끝으로 꽁꽁얼은 얼음동상이 되어버린 1호.

아아... 그는 좋은 엑스트라였습니다.

나는 눈물을 훔치며 얼음동상이 된 그를 염동력으로 다시 배까지 옮겼다. 다 끝나고 녹여줘야지.

[1호ㅋㅋㅋㅋㅋㅋㅋ왜이리 불쌍하냐ㅋㅋㅋㅋㅋ]

[아니 취급이 ㅅㅂㅋㅋㅋㅋㅋ]

[1호좌 오늘 한거: 자기소개, 기합, 총질 단 3개후 얼음행...]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고 에고랑 아이시클이 싸우는 사이에 애꿎은 1호만 터졌네ㅋㅋㅋ]

[아이시클 어지간한 빌런은 얼음빔으로 다 해치울듯?ㅋㅋㅋㅋ]

[시원하게 가네ㅋㅋㅋㅋㅋ]

1호에게 조의를 표하는 채팅창.

1호가 갔으면, 당연히 다음은 뭐다?

"다음은 당신입니다! 2호씨, 출격!"

"네? 으, 으으. 알겠습니다! 으아아아아!!!"

그렇게 2호도 출격했고.

이내 잠시후 배 위에는 토끼 헬멧을 쓴 얼음동상 2개가 생겨버리고 말았다.

"쓰읍... 3호씨 당신은...."

나는 오들오들 떨며 나를 바라보는 노란색 토끼 헬멧을 쓴 3호를 보며, 생각을 바꿨다.

그래, 한명쯤은 배를 몰아야겠지.

"좋습니다! 좋아요, 아이시클씨. 제 충직한 부하들을 전부 쓰러트리셨군요!"

[아까까지만 해도 친구라더니 그새 부하로 격하당했네 ㅅㅂㅋㅋㅋㅋㅋ]

[친구ㅇㄷ?]

[역시 그냥 부하였던거냐고ㅋㅋㅋㅋ]

[하긴 친구를 적한테 날려버리는 놈이 어딨냐고ㅋㅋㅋ]

[망고단의 부하 토끼단...이거 아주 커엽네요]

[얼음동상 삽니다 선제시요]

[자기는 안나서고 부하들 먼저 보내는거 개악질이네ㅋㅋㅋㄱㅋ]

걱정하지마라, 지금 나선다.

이내 2호까지 쓰러트린 뒤 배가 있는 곳까지 막힘없이 달려오는 아이시클을 보며, 나는 드디어 발걸음을 옮겼다.

"대단합니다, 대단해요. 아무래도 이제는 제가 직접 상대를 해야겠군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망토를 펄럭이며 배에서 뛰어내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배의 갑판 주위에 이리저리 흩어져있는 수많은 무기들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나는?

여전히 허공에 가만히 뜬 채, 팔을 뻗어 아이시클을 향해 가르키고는 소리를 지를 뿐이었다.

"모두 쳐라!"

그렇게 내말이 끝남과 동시에, 아이시클을 향해 쏟아지는 수많은 무기의 공격들.

그리고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무기들을 보며 아이시클을 이를 악물고 같이 냉동빔을 사방으로 뿜어내며.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었다.

***

[아니 망고스틱 개얄밉네ㅋㅋㅋㅋ]

[ㄹㅇㅋㅋ자기는 가만히 서서 그냥 농락만하는]

[슬슬 아이시클이 안쓰러운ㅜㅜ]

[아이시클 지금 한 5cm 움직였나? 얼음으로 막는데 급급해가지고 움직이지를 못하네]

[망고 텐련아 좀 움직여!!]

쓰읍.

이 사람들이 정말, 염동력으로 이러는게 쉬운줄 아나보네.

염동력으로 이 많은 것들 드는게 얼마나 힘든줄 알어? 벌써 피 한사발 예약이라고.

그러나 일류악당은 자신이 얼마나 힘든지 내색하지 않는 법.

나는 가만히 서서 싱긋 웃으며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아이시클씨, 이게 전부입니까? 하하하! 제가 기대도 많이 했는데 이게 다라니 실망이 커요 커!"

나는 과장된 목소리로 팔을 허우적대며 그렇게 말했다. 여전히 몸을 얼음으로 감싼 채 내 무기폭격을 묵묵히 받아내고 있는 아이시클.

그렇게 시청자들마저 슬슬 아이시클이 불쌍하다고 수근거리기 시작할 때.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몸을 얼음으로 감싼 채 묵묵히 버티고만 있던 아이시클.

그러던 와중, 잠시 내 공격이 아다리가 안맞아 살짝 덜해진 그 순간.

그녀가, 갑자기 얼굴을 가리던 팔을 풀더니, 정면을 양해 얼음을 내뿜기 시작했다!

"으아!"

그녀의 기합과 함께, 내 공격을 받으며 비축해두던 힘을 정면으로 한순간에 뱉어버린 그녀.

평상시보다 훨씬 굵고 강력해보이는 냉동빔, 아니 숱제 파괴얼음광선이 내가 있는 비행선으로 쏘아졌고.

그걸 본 내가 급히 순간이동으로 도망쳤지만.

그 공격은 애초에 나를 목적으로 한게 아니었다.

파치지지지지징.

얼음의 파괴광선이 쏘아진 곳은 내가 있던 쪽이 아닌, 바로 비행선의 정면부분.

그녀의 농축된 힘이 배를 덮치자, 배의 앞부분은 그대로 얼어붙기 시작했다.

빠르게 배의 앞쪽을 뒤덮는 하늘색의 냉기로 흘러넘치는 얼음들.

"으악! 보스! 살려주세요!!! 배가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위쪽에서 키를 조작하던 3호의 울부짖음에 내가 뒤를 돌려 배를 바라보니.

비행성은 이미 앞부분이 거의 다 얼어붙은 채, 위태롭게 기우뚱 거리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그걸 보며 한방 먹었다는 듯, 이마를 탁 치고 아이시클한테 외쳐주었다.

"이럴수가! 뭘 노리시나 했더니, 제가 아닌 아예 본체인 이 비행선을 노리신 거였군요!"

나는 그렇게 말하며 허허, 웃으며 말을 흘렸다.

"이거, 제가 한방 먹었습니다 그려."

한방 먹기는 뭘 먹어. 애초에 처음부터 나와 그녀가 상의해서 나온거다. 배를 공격하는게 어떠냐.

그러나 이 사실을 시청자들이 알 리 만무. 그들은 우리의 예측대로, 뜨거운 성원을 보내주고 있었다.

[캬 이건 몰랐네]

[아이시클의 큰그림ㄷㄷㄷ]

[이게 그 성동격서인가 뭔가냐?]

[망고스틱 한방 먹은wwwwwwww]

[어어 저 배 막 넘어질꺼 같은데]

[근데 이와중에 3호 파들파들 떨고있는게 킬포네 ㅅㅂㅋㅋㅋㅋㅋ]

[저 배도 못쓰게 생겼는데 이제 어캄?]

어카긴 뭘 어케.

"에고스틱! 당신이 준비한 그 비행선은 이제 무용지물입니다. 이제 어떡하실건가요?"

멀리서 나를 향해 외치는 아이시클을 보며, 나는 씨익 웃었다.

"어떡하기는 뭘 어떡하겠습니까!"

이제 그 뭐냐.

"튀어야죠! 안녕히계세요!"

연극은 끝났다 이말이야.

나의 갑작스러운 런 소리에, 시청자들의 반응은 충격 그자체.

[????????]

[안돼!!! 이렇게 끝나는게 어딨어!!!!]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가지마]

[벌써끝? 벌써끝? 벌써끝? 벌써끝?벌써끝? 벌써끝? 벌써끝? 벌써끝?]

[스타더스랑 싸울때는 이렇게 빨리 끝나지 않았는데... 이게 다 아이시클이 상대라 그렇다...]

[원 모어 띵 어디갔음???? 이게 뭐임????]

[아니 이제 치킨 막 왔는데 이러는법이 어디써!!!]

미안. 그러는법이 여깄다.

하여튼, 시청자들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다시 비행선은 시동을 걸고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겁하게 도망가는건가요! 정정당당하게 싸우세요!"

"비겁하다니요! 정정당당한 후퇴입니다. 다음에는 이렇게 쉽게 물러서지 않을테니 각오하시길. 아, 참고로 쫓아오셨다가는 부산에 폭탄 몇십발 준비해놓은거 쏘는 수가 있으니 가만히 계시고요!"

"치잇..."

연기를 하다보니 물이 올랐는지 세상 아쉽다는 표정을 잘짓는 아이시클을 뒤로하고, 나는 카메라를 향해 작별인사나 던져주었다.

"그러면 여러분! 더 에고스트림 쇼는 여기서 마치겠습니다! 다들 안녕히계세요."

[가지마ㅏ]

그렇게 마지막 채팅을 끝으로, 카메라도 꺼졌고.

이내 여전히 웃으며 배위에 서있던 나는, 카메라가 꺼지자마자 뱃머리에 털썩 기대었다.

"아이고 힘들어..."

"당신, 괜찮나요?"

아까까지의 나를 적대하는 표정은 어디가고, 세상 걱정된다는 듯 나를 바라보는 아이시클.

그런 그녀를 향해, 나는 힘없이 대답할 뿐이었다.

"아이고... 좀 죽겠긴 한데, 괜찮아. 그보다, 너 나한테 이렇게 말해도 돼? 이거 찍히고 있는거 아니야?"

"훗. 저 이설아를 뭘로보는 건가요. 이쪽은 다 제 손바닥 위에 있으니, 걱정하지 마세요."

"그래? 그럼 다행이고."

"하여튼 에고스틱씨. 정말 고마워요. 벌써 제 이름이 당신과 함께 뉴스에 떴네요. 유성기업 주가도 벌써 꿈틀하고 있고요. 이거 효과가 너무 좋은데요?"

"그래. 실컷 고마워 해둬라. 자주는 못하니 기대하지 말고. 아 그보다, 우리 1호 2호 얼음좀 녹여줘."

"아? 알았어요."

그렇게 그녀가 손가락을 튕기자마자 사르르 녹는 얼음동상 2개.

그렇게 토끼단 3인방이 다시 모여 눈물겨운 상봉을 나눈 뒤, 배를 조작하기 시작했다.

이제 슬슬 속도를 내는 배.

"근데 너 얼음능력 생각보다 강하더라? 별 기대도 안했는데?"

"섭섭하네요. 제가 스타더스... 우리 하루한테 밀려서 그렇지, 저도 꽤 강하거든요? 다음에 한번 제대로 싸워봐요."

"그래 그래."

나는 피식 웃으면서 그렇게 답했다.

근데 생각해보니까, 이거 진짜 괜찮은거 맞나?

아까까지만 해도 서로 죽일 듯이 싸우던 히어로랑 빌런이 카메라가 꺼지자마자 언제 그랬냐는듯 하하호호 웃으며 떠드는 이 모습. 누군가 보기라도 한다면 정말 큰일날 수도 있겠어.

여전히 내 앞에서 재잘재잘 떠들고 있는 아이시클에게 이제 슬슬 헤어지자고 할 무렵.

그녀의 등 뒤 저 멀리서 무언가 이쪽으로 다가오는게 보였다.

잠깐, 저거 뭐야? 설마 대통령 그놈이 미사일 또 쏜건가? 정신 못차리고?

"야 잠깐."

"네?"

내가 그녀의 뒤를 바라보며 말하자마자, 무언가 이상하다는걸 눈치채고 바로 뒤를 돌아보는 이설아.

저거 진짜 미사일인가?

아니, 미사일이라기에는 너무 작은데.

...사람인가?

그렇게 내가 잠시 혼란에 빠져있는 사이에도 그 무언가는 이쪽을 향해 무섭게 날아왔고.

이내 육안으로도 볼 수 있을 정도가 되자, 나는 이쪽으로 다가오는 사람을 파악할 수 있었다.

이쪽으로 금발머리를 휘날리며 날아오고 있는 사람은 바로, 빨간 라텍스 옷을 입은 여자.

....스타더스?

"....아니, 잠깐, 쟤가 왜 여기서 나와?"

나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보아하니 이설아도 당황한 상태.

나는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기도 전, 일류 악당의 반사신경으로 빠르게 토끼단들에게 외쳤다.

예측할 수 없는 상황이 발생했을 때 쓰는

에고류 비기 제 36조-

대탈주(大脫走).

"야!!! 빨리 전속력으로 밟아!"

뭐가 뭔진 모르겠지만 일단 튀고보자!!

제 95화

화집착

이설아.

그녀에게 오늘은, 근래 들어 제일 기분이 좋은 날이었다.

그녀가 점찍은 남자 에고스틱과 함께 전국민이 보는 앞에서 테러를 진압하는 자신의 모습을 선보인 날.

기존에 지지부진하던 자신의 인지도와 명성도 단숨에 끌어올리고, 또한 아이시클과 에고스틱을 엮을 수 있는 최고의 기회.

거기에 테러 과정도 그와 함께 사전에 계획한 대로 흠잡을데 없이 마무리 한데다가, 벌써부터 자신의 회사의 주가도 오를 조짐이 보이는, 완벽한 하루였다고 볼 수 있다.

....테러 후의 에고스틱, 그가 자신의 생각보다 훨씬 지쳐보여 걱정된다는 것만 빼면, 정말 완벽했다고 할 수 있다.

그래. 그와 작별을 나누고 있을 때, 그녀와 에고스틱이 있던 곳으로 갑자기 그녀의 친구 스타더스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

꿀꺽.

이설아는 그녀에게 점차 다가오는 스타더스를 보며, 자기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이미 아까까지만 해도 자신과 웃고 떠들던 에고스틱은 배를 이끌고 서둘러 도망치고 있었다.

그리고 이설아 그녀는.

홀로 남아, 스타더스를 상대해야 했다.

그리고, 잠시 뒤 그녀의 코앞까지 날아온 하루.

그리고 그런 하루의 표정은.

"..."

그저 무표정할 따름이었다.

...굉장히 무섭게도.

'....서, 설마 들은건 아니겠지?'

그런 그녀의 표정을 본 이설아는 살짝 긴장하기 시작했다.

이설아가 하루와 친하게 지낸지도 벌써 몇년.

그렇게 오랫동안 하루의 옆을 지켜온 이설아도, 그녀가 이렇게 싸늘한 무표정을 짓는 건 거의 처음 봤다.

그러나 이설아가 누군가.

그녀도 나름 재계와 정치판에서 구른, 노련한 사람이다.

이런일로 당황한 기색을 내보이는건 하수.

그러니만큼, 이설아는 애써 웃으며 깜짝 놀랐다는 듯 하루에게 말을 건냈다.

"어머, 하루야! 무슨 일이야? 어떻게 알고 여기까..."

"둘이, 뭔 얘기했어?"

그리고 그런 이설아의 노력은, 말을 끊고 무표정하게 툭 던진 하루의 한마디에 의해 침몰하고 말았다.

그렇게 무심히 질문을 던진 신하루의 기색은 여전히 차분했으나, 이설아는 그 와중에도 평소와 다른 점을 찾아냈다.

....평소와 달리 가라앉은 눈, 그리고 하루가 냈다고는 믿을 수 없는 싸늘한 기색의 말.

슬슬 이설아는 평정심을 잃을 위기에 쳐했으나, 초인적인 노력으로 말을 더듬지 않고 여전히 웃는 채 답을 했다.

"응? 아, 봤구나? 별건 아니라 에고스틱 쟤가 도발하니까 그냥 맞상대 해줬던거지. 하하... 그나저나 하루야, 서울에 있지 않았어? 어떻게 부산..."

"웃고있던데?"

그리고 그런 이설아의 말은, 다시한번 신하루에 의해 끊기고 말았다.

"...둘이, 대화하면서, 웃고있던데?"

여전히 싸늘한 기색으로 가라앉은 채, 이설아를 바라보며 조용히 말하는 하루를 보며.

이설아는 영혼이 탈탈 털리는 느낌을 받으면서도, 간신히 입을 열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답했다.

"아 그거? 그냥 서로 비꼬면서 비웃듯이 말해서 그런가? 별거 아니야."

나름 자연스럽게 답했다고 생각한 이설아였으나.

자신의 눈은 보지 않은 채, 옆머리를 살짝 꼬아가며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신하루는, 이미 무언가를 느꼈다.

"..."

그리고 이내 조용히 이설아를 내려다보더니, 고개를 돌려 옆쪽을 바라보았다.

그렇게 신하루가 바라본 그곳에는, 멀리서 에고스틱이 탄 비행선이 열심히 멀어지고 있는 모습이 보였고.

그걸 확인하자마자, 신하루는 몸을 돌려 그쪽으로 날아갈 준비를 했다. 그 배까지 따라잡기 위해.

그리고 그녀가, 막 날아가기 직전.

허공을 박찬 그녀의 팔을, 누군가 잡아 탁 멈추었다.

".....?"

"하루야? 어디가?"

이설아. 그녀가 황급히 에고스틱을 향하여 가려는 스타더스를 잡았다.

그리고 그 순간.

이설아의 귀에는, 신하루가 한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싸늘한 한마디가 그녀를 파고들었다.

"놔."

그 순간적인, 거의 살기까지 느껴지는 말에 순간적으로 살짝 흠칫하여 팔을 놓칠뻔한 그녀였으나.

그래도 손을 놓치는 않고, 꿋꿋하게 서서 말을 이었다.

...이대로 하루를 보내줘서 에고스틱과 만나게 되면, 어떤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정말로.

자신이 그녀를 막아야 한다는 굳은 결심으로, 이설아는 침착하게 신하루에게 말했다.

"하루야. 아까 에고스틱 저놈이 자기를 쫓아오면 부산에 마저 폭격을 가한다고 했어. 쫓아가면 안될거 같아서 그래. 저 아래있는 사람들을 생각해야지! 그, 그치?"

초반에는 힘있게 말한 그녀였으나, 말이 이어질수록 점점 차가워지는 하루의 표정에 점차 말끝을 흐린 이설아.

그렇게, 여전히 이설아가 스타더스의 팔을 붙잡은 채, 불편한 침묵이 내려앉았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른 후.

신하루는 끝내 팔에 힘을 풀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네."

이내 그러면서 언제 표정을 굳혔냐는 듯, 다시 평소처럼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돌아온 하루.

그리고 그 틈을 틈타, 이설아가 다시 입을 열어 하루에게 제안했다.

"...그러면 하루야, 오해도 풀린거 같으니까 이만 돌아갈까?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어."

"그래. 아, 그리고 나는 사람들한테 모습을 보여봤자 좋을께 없으니 먼저 돌아갈께. 알았지?"

"으... 응."

그렇게 신하루는 이설아를 향해 슬쩍 웃음을 보이더니, 다시 허공을 박차 반대편, 도시가 있는 곳으로 순식간에 날아 사라져버렸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이설아는 그제서야 한숨과 함께 몸에서 한순간에 힘이 풀리며, 그녀가 서있던 얼음발판에 거의 주저앉고 말았다.

"하아... 진짜."

십년 감수했다.

태어나서 처음 본 하루의 놀랍도록 싸늘하고 차가운 표정에, 이설아는 순간 자신과 에고스틱의 관계가 들킨 줄 알고 긴장했다.

이 모든 테러가 다 자신과 에고스틱이 짜고 친 연극이라는걸 알게되면, 스타더스 그녀가 어떻게 나올지 상상도 안되는 상황.

그러나 다행히 돌아가는 분위기를 보면, 거기까지는 눈치채지 못한 것 같다. 아마 자신과 에고스틱이 웃으면서 대화하는 그것만 본 것 같은데.

"...어라?"

거기까지 생각한 이설아는, 뭔가 이상하다는걸 깨달았다.

고작 그거 때문에 저렇게 세상 무서운 분위기를 풍긴다고? 저정도로 싸늘한 표정을 지으며?

....하루는 원래 그런 애가 아닌데?

"잠깐... 이거 혹시...?"

그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을 이어간 이설아는, 무언가를 깨닫고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를 올렸다.

혹시, 하루가...

***

찬 바람이 불어닥치는, 바다 위.

신하루는 사람들이 모인 내륙을 피해, 바다를 가로지르며 날아가고 있었다.

"....."

서울에서 부산까지.

협회장을 설득해, 섀도우워커를 깨워 부산까지 한번에 이동하여 온 그녀.

그리고 그녀가 도착하자마자 본 것은.

테러가 다 끝난 직후, 웃으면서 떠들고 있던 에고스틱과 아이시클의 모습이었다.

으득.

그 모습을 다시 한번 떠올린 신하루는, 자기도 모른 채 이를 악물었다.

....그 광경을 떠올리기만 하면, 속이 부글부글 끓는건 왜일까.

"....그래."

시간이 좀 지난 후, 약간 진정한 하루는 숨을 들이 마쉬고 마음을 가라앉혔다.

...아까 설아에게도 너무 과민하게 반응한거 같네. 나중에 바로 사과해야겠다.

그러나.

그와 별개로.

그녀는 다시 한번, 풀어진 상태로 웃고있던 설아의 얼굴을 떠올렸다.

...어떻게 봐도, 빌런 앞에서 지을만한 표정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래. 그럴수도 있지.

에고스틱 그라면.

그런 설아를 마주보며 웃고있던 에고스틱의 얼굴 또한 다시한번 떠오르며.

자기도 모르게 얼굴이 다시 굳는걸 느끼며 신하루는....지금까지 에고스틱과 만났던, 이때까지의 일들이 플래시백 되는걸 느꼈다.

자신이 모든걸 포기하고 좌절하고 있을 때, 갑자기 연락하여 할 수 있다고, 그녀를 한 점 의심없이 믿는다는 듯 말하던 에고스틱의 목소리.

자신이 죽게 생기자, 스스로를 희생하여 자신을 구하고 상처를 끌어안은 채, 힘겹게 웃던 에고스틱의 표정.

자신이 허공에서 힘을 잃고 추락하자, 싸우다 말고 와 공중에서 자신을 껴안아 지켜주던 에고스틱의 품.

...그래.

그래. 어쩌면, 정말 어쩌면.

자신이 아닌 다른 약한, 순진한, 평범한 다른 여성이라면.

에고스틱에게, 넘어갔을 수도 있겠다.

그를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으면서, 자신 앞에서도 잘 하지 않던 웃음을 짓던 아이시클처럼.

그가 숨기고 있는 것들, 어쩌면 테러를 저지르는 이유에 대한 비밀들을 아무것도 모르면서 그렇게 바보처럼 웃던 그녀처럼.

"....하."

거기까지 생각한 신하루는,

그제서야.

자신의 마음을 깨달았다.

그래.

드디어 자신이 왜 그를 계속해서 떠올리게 되었는지 깨달았다.

그의 그런 수작질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건 자신뿐이다.

그가 무엇을 하든, 꿋꿋하게 그를 잡아넣을 수 있는건 자신뿐이다.

그의 그러한 행동들 사이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그의 비밀을 파헤칠 수 있는건 자신뿐이다.

그러니.

그는, 오직 자신만이 상대해야 한다.

오직 자신만이, 그를 상대할 수 있다.

"....."

에고스틱과 스타더스가 엮인지도 벌써 꽤나 되었다.

그렇게 그 사이 차곡차곡 누적된, 그를 만나며 느낀 감정들과 생각 그리고 추측들이 한 곳에 모여.

스타더스 안에서 에고스틱 그에 대한 하나의 결론이 내려졌다.

"에고스틱..."

에고스틱. 그는.

자신만이 상대할 수 있는.

자신만의.

그녀만의, 빌런이라는걸.

***

"아니... 뭐지?"

"왜 그러십니까 보스?"

스타더스를 피해 비행선을 이끌고 도망치던 나는, 무언가 등줄기를 찌르는 오싹함에 나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아니, 잠깐..."

뭔가 좆된거같은 기분이 드는데.

이거 뭐냐?

나는 까닭 모를 불안감에 몸을 떨었다.

요즘들어 뭔가 늘 갑자기 쎄할때가 있기는 했는데...

오늘따라 뭔가 그게 더 심한데?

"뭐냐...."

나는 그냥 그렇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

{스타더스트!}라는 히어로 만화를 기반으로 했던 이 세계의 장르가,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제 96화

화평화로운 일상

황폐해진 거리.

쓰러져있는 건물들.

'안돼....제발....어나....리...'

'....빠....오빠!... 일어나...니!...빨리...해봐....'

'...못...해요...아무것도...제...힘으론....'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음들.

그리고.

'쿨럭...죄...합니다....'

'...랍....세..째줄....꼭....'

중얼거림과, 다시 들려오는 흐느낌.

'지...마...죽는거....니지?...흐...흐윽....'

'....'

'....미안...'

'....포기...못해....못보..내....'

끼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으아악!"

하아, 하아.

나는 오밤중에 자다말고 깨어나 일어났다.

...아니, 시발. 지금 몇시야.

"...새벽 3시네."

나는 감긴 눈으로 중얼거렸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등은 땀으로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기억은 안나지만, 아무래도 악몽을 꾼거같은데.

이 나이먹고 악몽때문에 놀라서 일어나다니.

"하아...."

나는 나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다.

....무슨 마음속으로 나도 모르게 일종의 불안감을 느끼고 있나? 왜 이런 꿈을 꾸지.

생각해보니까 요즘들어 가만히 있다가도 계속해서 흠칫거릴때가 있기는 했다. 막 섬칫하고.

아무래도 진짜 기가 허한건가? 뭐 몸에 유령이라도 달라붙었나?

계속 이러면 다시 그 마녀님한테 찾아가서 퇴마라도 받아야겠다. 이 세계는 진짜 상상하는게 거의 다 있어서, 진짜 유령이 내 몸에 달라붙어 있는 걸수도 있어.

에휴. 근데 어쨌든, 잠은 이미 다잤네.

나는 고개를 들어 방 벽면에 있는 창을 바라보았다.

어둑어둑한 산들 사이로, 밝게 빛나고 있는 달만이 방을 비추고 있는 나의 방.

...어쩐지 갑자기 새벽감성이 느껴지는 밤이다. 남자가 제일 센치해지는 새벽 3시지.

아마 이 시각엔 나빼고 모두가 다 잠들어있을거다.

....그래, 이왕 일어나서 잠도 안오고 사람도 없는데.

그거나 미리 조금씩 적어놓을까.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불을 키고 책상에 걸터앉았다.

그리고, 책장에 꽂혀있던 책들 중 하나를 꺼냈다.

평범해보이는 다이어리에, 형이상학적인 도형들이 연녹색으로 그려져있는 이 책.

그래. 저번에 그 녹색마녀한테서 받은, 내 허락없이는 못 여는 노트다.

내 허락없이 열려면 내가 죽어야만 열리는.

"...흐음..."

그리고 나는 거기에.

앞으로 미래에 일어날만한 주요 이벤트들과, 막지 않으면 멸망의 단초가 될 수도 있을만한 일들을 하나씩 적기 시작했다.

그리고 중요한 설정도. 뭐 나중에 한번 일어나는 시간이 돌아가는 이벤트라던가, 죽었다가 부활하는 방법이라던가...

이런건 미리미리 다 적어두는게 좋다. 혹시나 사람 일이라는게 어떻게 될 지 모르니. 일류악당은 모든걸 미리미리 준비하는 법!

책의 제목은 대충 에고스트림 비상메뉴얼이라고 지으면 되겠지.

그렇게 밤새서 적다가 다음날 아침에 밥먹다가 졸아서 수빈씨한테 혼났다.

....나는 일하느라 늦게 잔건데, 너무 억울했다....

***

[저번 테러로 인하여 폭격을 당한 부산시의 지역들에 대하여 정부가 재개발을 허용했습니다. 십년만에 풀린 규제에 주민들은 들뜬 분위기입니다.]

평화로운 아침.

티비 소리만이 멀리서 들려오는 거실에서, 나는 멍하니 소파에 누워있었다.

"다인씨. 뭐하세요?"

"아. ..일광욕 하고있어요..."

따사로운 햇볕이 창에서 건너와 나를 비추는 소파에 누워 일광욕을 하고 있으니, 재충전을 하는 기분.

나는 어릴적부터 이렇게 햇볕을 가만히 맞는걸 좋아했다. 비타민D를 충전해야 하는 법이니.

"자, 여기 과일 좀 드세요."

"아. 감사합니다."

그와중에 수빈씨가 준 과일접시.

나는 거기서 참외를 하나 집어서 먹었다.

아삭하니 맛있네.

"아. 수빈씨. 근데 서은이는 아직도 아래에 있어요?"

"네. 세희도 같이 내려가있더라고요."

"그래요? 걔들은 대체 뭘하는지...."

요즘들어 둘이 자기들끼리 수근수근 거리더니 매일같이 지하실에 박혀있다.

서은이가 뭘 만들고 그걸 최세희가 옆에서 좀 도와주는거 같던데.... 에휴. 뭐 이상한 것만 안만들면 되지.

그건 그렇고...

나는 고개를 돌려 옆에있는 창 밖을 바라보았다.

거실 한쪽 벽에 통유리로 뻥 뚫려있는 창. 주변의 풍격이 탁 내려다보이는게 보기만해도 상쾌하다. 내가 처음에 이 집에 들어올때 제일 마음에 들었던거기도 하고.

그렇게 나는 멍하니 티비를 바라보며 전화를 기다리고 있었다.

티비에 흘러나오는 뉴스에서는 한창 나와 아이시클이 벌인 소동으로 시끌벅적했다. 한가지 특이점은 뉴스의 내용이 어째 아이시클이 얼마나 대단하고 능력있으며 스타더스에게도 결코 꿇리지 않는지를 앵커가 열과 성을 다해 설명하고 있다는거다.

....벌써 이설아가 방송국도 장악했나?

내가 그런 생각을 멍하니 할때쯤, 드디어 전화 벨이 울리기 시작했다.

휴대폰을 보니 화면에 딱 떠있는 '이설아'라는 세글자.

나는 그걸 보고 바로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어 그래. 여보세요?"

[하아, 이제서야 시간이 났네요. 미안해요. 하도 협회랑 기자들이 괴롭혀서 계속 바빴지 뭐에요. 타이밍 맞춰서 바로 추진해야 되는 일들도 있고...]

"그래 그래. 알았어. 너 시간 없는거야 내가 당연히 알지. 그건 그렇고, 빨리 그 얘기나 해봐. 어제 마지막에 스타더스, 그러니까 신하루가 갑자기 왔잖아. 어떻게 된거야?"

[...하아, 하루. 말도 마세요. 제가 당신과 저의 관계가 들킨줄 알고 얼마나 긴장했는데요.]

"들키진 않은거지?"

[다행히 네. 저희 둘이 웃는거까지는 봤는데, 뭐 더 자세히는 모르는거 같더라고요. 제가 그것도 어떻게 잘 둘러댔죠.]

"그건 그나마 다행이네. 아니 근데, 어떻게 온거래?"

[어떻게 오긴요. 섀도우 걔 시켜서 왔다네요.]

"...아니 그러니까, 왜 온거래? 올 이유가 딱히 없지 않나?"

내가 그렇게 말하자, 전화기 너머에서 그녀가 살짝 흐응-하며 웃는 소리가 들려왔다.

[...글쌔요? 그건 직접 생각해보세요. 저도 잘 모르겠으니까.]

"...아니, 야."

[하여튼 그게 중요한게 아니지 않나요? 미래에 대한 얘기나 해보자고요 우리. 앞으로는 뭘 하실 건가요?]

이설아는 그러더니 자연스럽게 말을 돌려 나한테 앞으로의 계획을 물어봤다.

...뭔가 이상하지만, 일단 한번은 그냥 넘어가줄까.

나는 그런 그녀에게 그저 순순히 답해줬다.

"뭘하긴. 이제야말로 내 빌런연합을 강화해야지. 에고스트림에 새로운 빌런들을 하나 둘씩 계속 늘리는데 집중할거야."

[...좋아요. 당신이 그러는 동안, 저는 마저 빠르게 정치권부터 장악해보도록 하죠.]

"....그건 꼭 빨리 안해도 될거 같은데."

[무슨 소리세요. 미리미리 해놔야 저번처럼 대통령이 당신한테 미사일을 쏘아버리는 그런 돌발사태가 안일어나죠. 다 당신을 위해서에요.]

나를 위해서는 무슨. 자기의 야망때문이겠지.

나는 그녀의 속보이는 멘트에 그저 피식 웃을 뿐이었다. 뭐, 그래도 저렇게 속보이는 말을 싫어하는건 아니다. 그게 이설아의 매력이기도 하고.

그렇게 우리는 조금 떠들었다. 대충 그녀가 언젠가 내 집에 놀러오겠다는 말등 아무래도 좋을 그런 얘기를 조금 더 하고, 시간이 지나고서야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전화를 끊기 전, 이설아는 넌지시 나에게 한마디를 던질 뿐이었다.

[....그리고 당신, 앞으로 웬만하면 당분간 테러는 스타더스한테 집중하는게 좋을거 같네요.]

"응? 뭐, 어차피 당분간은 스타더스한테 집중해서 할려고 했는데... 그건 왜?"

[...그냥요. 그게 아무래도 당신한테 좋을거 같네요. 그럼 끊어요.]

이설아는 거기까지 얘기한 뒤 전화를 끊어버렸다.

...뭐야. 싱겁게스리.

그렇게 통화가 끝나고,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창가쪽에 있는 베란다로 한번 나가보았다.

"흠..."

원작에서 스타더스는, 늘 고민거리가 생길때마다 자기 집의 창문을 열고 이렇게 기대서 생각하고는 했다.

...그래서 나도 한번 따라해봤다.

맑은 산공기와 바람을 맞아가며.

나는 난간에 팔을 기대, 계획을 생각해봤다.

"앞으로...."

다양한, 강력한 빌런들이 계속해서 끊임없이 튀어나올거다.

그리고 계속해서 피폐해지겠지. 스타더스가 혼자서 상대하기에는 벅찬, 다양한 능력을 지닌 적들이 계속해서 튀어나오니.

물론 이제 상황이 좀 달라졌다.

애초에 내가 있는만큼, 그 빌런들 중 일부는 타락하기 전에 내가 미리 에고스트림에 포섭하던가, 아니면 제거하던가 할거라 원작보다 상황이 훨씬 나을거다. 이번 테러에 주역 레피스단처럼.

그리고 특히, 스타더스도 많이 강해지기는 했고.

원작보다 훨씬 능력이 일찍 강화된만큼, 어지간한 빌런들을 상대로도 잘 버틸 수 있을거다.

뭐, 잘 풀리겠지.

근데 그건 그렇고.

나는 가만히 서서, 곰곰이 떠올려보았다.

스타더스가 왜 부산에 갑자기 달려왔을까?

사실 이설아가 이유를 알려줄거라 생각해서 별 고민을 하진 않았는데, 이제는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음...."

나는 잠시 생각하다가, 금방 결론을 내놨다.

뭐. 내가 그만큼 위협적이라고 느껴서 그런거겠지.

그게 아니고서야 다른 이유는 딱히 있을게 없다.

"좋은 일이네!"

나는 그렇게 결론을 내렸다.

나를 위협적으로 생각한다면 그만큼 좋다. 나를 아치에너미로 생각해야 나를 상대할때 더욱 진심으로, 전력을 다해 생각할테니.

나는 그렇게 홀가분한 마음으로 베란다를 닫고 거실로 돌아왔다.

거실로 돌아오자 보이는, 소파에 앉아있는 서은이. 지하실에서 돌아왔나보네?

서은이는 나를 보자마자, 기묘한 표정을 짓더니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오빠. 오빠 새로운 별명 생긴거 알아요?"

"또 뭐..."

"이거 봐봐요."

자신이 보던 폰을 나한테 건내준 서은이.

거기엔 내 팬카페에 게시글 중 하나가 화면에 써있었다.

*

[에고스타? 에고트라?]

다 꺼져ㅋㅋㅋㅋㅋㅋㅋ

<<<아이스망고>>>가 나가신다!!!

(아이시클과 에고스틱이 서로 웃으면서 싸우고 있는 사진)

(아이시클을 칭찬하는 에고스틱의 움짤)

=[댓글]=

[ㄹㅇㅋㅋ둘이 잘어올림ㅋㅋㅋ]

[오늘부터 아이스망고 무지성으로 지지한다]

[아이스망고 ㄹㅇ어감도 찰지네ㅋㅋㅋㅋㅋ]

[마 에고스틱 서울에서 그만놀고 부산으로 내려와라]

[망고스틱, 너는 서울보다 부산이 어올려!]

[스타더스<<<아이시클인거 같은면 개추ㅋㅋㅋ]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가요. 에고스틱의 상대는 스타더스입니다. 그는 에고스틱 전문가인 스타더스에게 맡기는게 당연한거 아닌가요? 엉뚱한 히어로랑 엮는건 옳지 않다 봅니다.]

ㄴ[@newday313 얘 왜 이렇게 부들거림?]

ㄴ[에고스타단 눈물의 저항중ㅋㅋㅋ]

ㄴ[스타더스 자택에서 검거]

ㄴ[프로필 보니까 성실회원이던데 에고스타단 이셨네 댓글단거 처음보는듯ㅋㄱㅋㅋㅋ]

ㄴ[청발태닝양아치에 정신을 못차리는wwww]

[아이스망고 ㅅㅂㅋㅋㅋㅋㅋ 오늘 간식은 이거다]

*

"오빠 오늘 간식은 아이스망고나 먹을래요?"

피식 웃으며 말하는 서은이를 보고 나는 이마를 짚었다.

...어째 갈수록 호칭이 점점 늘어나는 기분이야.

제 97화

화경매장

빌런의 삶은 굉장히 바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나처럼 빌런 연합을 만들겠다는 원대한 꿈을 가진 경우는, 특히.

일단 단순히 테러 하나 기획하는데도 시간이 굉장히 오래 걸린다. 거기에 또 다른 빌런들을 꼬신다? 와, 몸이 열개라도 부족할 지경.

테러도 만만치 않다. 해가 지고 나면 섀도우워커라는 미친 능력을 가진 히어로가 테러 시작 몇분만에 바로 진압하기 때문에, 시간이 낮으로 제한되는 것도 큰 문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밤이 악당들의 시간이 아닌건 아니다.

"휴우...."

어두운 서울의 어느 거리.

사람들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나는 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리고 약속한 시간이 되자, 코너쪽에서 나오는 헤드라이트.

검은색의 리무진이 내쪽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리고, 내 앞에서 멈춘 차.

그리고 그곳에서는, 정장을 입고 가면무도회에서 쓸법한 가면을 쓴 남성이 문을 열고 나와, 나에게 허리를 숙여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고객님. 확인 부탁드립니다."

나에게 그렇게 말하는 그를 향해, 나는 주머니에서 검은색과 금색이 섞인 티켓을 건냈다.

이설아를 괴롭혀서 힘들게 얻은, VVIP용 티켓.

잠시 그걸 확인하던 남성은, 이내 확인되었다는 듯 나를 향해 다시 정중히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확인되셨습니다. 자, 여기 타주시길 바랍니다."

리무진 뒷자석에 문을 열어준 남성을 따라, 나는 그곳에 들어갔다.

안쪽은 빨간색 가죽이 뒤덮은 모습.

나는 그곳에 앉아봤다. 음, 푹신하니 좋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이내 앞에 앉아있던 남자가 말과 동시에, 차가 조용히 출발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점점 속도를 내기 시작하는 차 안에서 내가 몸을 눕히자, 앞에있던 남성이 내게도 가면을 건내주었다.

"고객님. 고객님의 가면입니다. 착용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나도 중세시대 배경의 귀족나오는 드라마에서 나올거같은 가면을 하나 받았다.

...어차피 다들 기본적으로 인식저해를 하고있는걸로 알고있는데, 이게 의미가 있나?

그렇게 리무진은 텅빈 도로를 계속해서 달려, 서울 밖 어딘가로 향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동안 창밖을 보며, 그냥 멍때릴 뿐이었다.

지금 내가 가는 곳은 경매장.

그것도 한국에서는 처음으로 개최되는, 세계적인 불법 경매장이다.

...21세기 대한민국에 왜 아직까지 이런게 남아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원체 이 세계는 좀 하자가 있으니 그냥 넘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한참을 달려 도착한 어느 한적한 곳의 폐건물.

그리고 차는 그대로 건물 아래 주차장스러운 곳으로 내려갔고.

"내리시면 됩니다."

나는 그렇게 열린 리무진 바깥으로 내렸다.

그리고 직원에 도움을 받아 따라가자.

눈앞에, 새로운 풍경이 떠올랐다.

뻥 뚫린 커다란 공간, 화려하게 빛나는 샹들리에와 금색으로 수놓아진 벽지.

그리고, 화려한 가면을 쓴 다양한 사람들까지.

위쪽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생기가 도는 이곳에.

나또한 가면을 쓰고 양복을 입은 채, 당당히 입성했다.

이곳이 전세계에서 온갖 돈이 썩어넘치는 사람들이 모인다는, 엑스칼 경매장.

그와 동시에, 이 순간 어떤 빌런이 탄생하게 되는 비극적인 공간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막으러 왔다.

'...'

그렇게 나는 비장한 표정으로 곧 본격적인 경매가 벌어질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사실 비장한 일이라고 해봤자 돈지랄이 다이기는 한데, 아무튼.

*

그렇게 나는 내 자리를 찾아 앉았다.

어두운 공간에, 가운데 꾸며진 경매가 이루어질 무대를 중심으로 둥글게 좌석들이 계단형으로 있는, 그냥 딱 뮤지컬 극장같은 형태.

나는 거기 자리중 한곳에 앉아, 하품이나 했다.

언제 시작해.

"신사 숙녀 여러분, 환영합니다."

아. 지금 시작하네.

무대에 불이 켜지며, 사회자가 등장했다.

뭐라고 뭐라고 말하는데, 대충 흘려들었다. 뭐 역사와 전통이 깊은 경매가 어쩌구, 예술에 심미안이 있으신 고객들이 어쩌구, 오늘 들어오는 물품들은 굉장히 귀하기가 어쩌구....

그리고, 드디어 본격적인 경매가 시작되었다.

"오늘의 첫번째 물품입니다! 바로크 시대에 사용된 촛대로, 현재는 굉장히 구하기 어려운 물건입니다. 3000달러부터 시작하겠습니다!"

"3200! 3200 나왔습니다! 다른 분 계신가요? 3, 2, 1. 이대로 127번님께 낙찰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건 아주 귀중한 물품이죠. 이집트 정부에서 유출된 블랙리스트입니다. 선제시 받겠습니다."

"현재로써는 기록이 말살된 S급 빌런 켈러스의 모습이 찍힌, 세상에 몇안되는 희귀한 물품입니다. 10000달러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리고 무대가 시작되자, 본격적으로 판매되기 시작하는 상품들.

이곳이 바로 정부와 협회의 눈을 피해 팔 수 있는 귀중한 물건을 다 파는, 엑스칼 경매장이었다.

고대 유물부터 정부의 최신 문서까지 대충 돈되는건 다 판다는 이름값답게, 정말 별별 이상한거까지 다 파는 모습이다.

그리고 그걸 사는 사람들이 있다는게 더 신기하다. 다들 돈이 남아 도나벼.

하여튼, 이런 쓸데없는 물건들은 내 관심사가 아니다.

나는 자리에 앉아 차분히 기다렸다. 내가 원하는 물품이 나올때까지.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기다리던 물건이, 무대 위로 올라왔다.

"대한민국의 B급 히어로 스워디어가 생전에 늘 차고다니던 반지입니다. 그가 최후에 순간 흘린걸 저희가 입수했습니다. 6000달러부터 시작하겠습니다."

그래.

바로 저 반지.

원작에서 훗날 S급 빌런이 탄생하게 되는 모든 원흉이 되는 저 반지를, 내가 여기서 가로채가야 한다.

아직 아무도 저것의 가치를 모를때.

"7000달러 나왔습니다! 7000달러, 더 있으십니까?"

"7500! 7500 나왔습니다. 8000! 8000나왔습니다. 더 있으신가요?"

그렇게 나름 가열되는 경매장.

그리고 마침내, 저쪽편에 있는 육중한 사내가 손가락을 까딱했다.

"10000 나왔습니다! 10000! 더 없으신가요? 그러면 이대로 낙찰하겠습니다! 3, 2..."

그리고 사회자가 낙찰시키려던 그 순간.

무언가를 확인한 그의 눈이 커졌다.

"50000..! 50000 나왔습니다!"

갑작스럽게 5배가 뛰어버린 금액에, 사회자가 흥분에 젖어 외쳤다.

주위에서 무관심하게 관람하던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

갑자기 저 쓸데없어 보이는거에 돈을 태우는 미친놈이 누구인지 궁금해하는 모습.

여기서 5만을 부른 사람은, 당연히 나다.

상남자는 화끈하게 지르는 법.

옆쪽을 슬쩍 보니, 양복을 입은 남성이 부들대는 모습이 보인다.

쟤가 바로 처음에 만을 불러 낙찰당할 뻔한, 그리고 실제로 원작에서는 낙찰에 성공하는 놈.

VK기업의 사장 류진택. 그리고 미래의 S급 빌런중 하나다.

원작에서는 경매장에서 심심해서 사본 반지의 힘을 깨닫게 되고, 그걸 이용해 온갖 악행을 저지르는 놈.

그리고 이를 통해 얻은 수많은 힘으로 이설아의 인수합병 프로젝트에 상당한 방해가 되는 놈이다.

물론 이 반지를 내가 갖게 되었으니 이제 이루어지지 않을 미래지만.

심심해서 던져본거긴 하지만 그래도 뺐기니까 기분이 좀 상했는지, 놈은 소심한 반항을 해봤다.

"51000 나왔습니다 51000!"

응 좆까.

"100000!!! 십만 나왔습니다 십만! 더 없으신가요? 그러면 3, 2, 1... 십만에 낙찰되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무슨 B급 히어로가 쓰던 반지 하나에 1억을 태우는 내 모습을 보며 주변 사람들이 웅성거리는게 느껴졌다.

사회자는 아주 뻥튀기시켜서 파는데 성공해서인지 싱글벙글 기분이 좋아보였다.

나는 그렇게 소란스러운 실내 분위기를 보며 그저 피식 웃을 뿐이었다.

오늘 나온 모든 물건들중에 이게 제일 귀한건데 말이지.

아마 이 반지의 진실을 사람들이 알게 되었다면, 값어치가 십억 백억을 넘어 조단위로 올라갔을거다. 애초에 돈주고 살 수 있을만한게 아니거든.

여기있는 사람들 다들 자본금은 기본적으로 몇억씩 가지고 있을텐데 말이야.

하여튼, 볼일을 다본 나는 그냥 자리에서 일어났다. 딱히 더 볼건 없어 이제.

그렇게 옆쪽에서 부들거리고있는 놈을 피식 비웃어준 뒤, 나는 밖으로 나와 물건 먼저 수령했다.

가운데에 보라색 진주같은게 박혀있을 뿐인, 굉장히 평범해보이는 반지.

나는 그 반지를 케이스와 함께 주머니에 싸서 나온 채, 밖으로 나왔다.

휴우. 이걸로 하나의 목적은 달성했다.

....근데 집에는 어떻게 돌아가지.

***

어찌어찌 집으로 복귀해, 도착하자마자 쓰러져서 잔 이후, 다음날.

"오빠. 이게 대체 뭐길래 밤에 그난리 치면서 나갔던거에요?"

거실에서 반지를 슥삭슥삭 닦고있던 내게, 서은이가 굉장히 궁금하다는 듯 물었다.

"봉인의 반지."

"네?"

"우리 다음 테러는 이걸로 한다."

"....아니, 대체 이게 뭔데 그래요?"

"보면 알거야."

반지의 중앙에 박혀있는 보라색 알갱이.

나는 그곳을 시계방향으로 2번, 반시계방향으로 다시 한번 돌려봤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반지에서 빛이 번쩍하고-.

[....음? 누가 나를 깨운거지?]

반지에서, 중세시대에서나 입을법한 기사 갑옷을 입고 있는 반투명한 놈이 튀어나왔다.

".....이게 뭐에요?"

경악하는 서은이와, 아직도 어리둥절해 보이는 검은색 갑옷을 입고있는 놈.

혼란스러운 그 상황에서, 나는 덤덤히 이렇게 말할 뿐이었다.

"데스나이트."

[음? 나를 말하는겐가? 내 이름은 그런게 아닌 세인트 페트....]

"아니. 너 이름은 오늘부터 데스나이트다."

데스나이트가 어감이 더 멋지거든.

이제부터 너 이름은 데식이여.

제 98화

화작은 테러

에고스트림의 본부, 큰집 앞 숲에서 모두들 옹기종기 모여있었다.

바로 내가 데리고 온 이 데스나이트를 보기 위해서.

[아! 봉인에서 풀려나니까 좀 살거같구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중세시대에서나 볼거같은 투구와 갑옷으로 무장한 채, 투구를 달칵거리며 웃는 이놈.

회색의 갑옷 사이로 검은색의 영체가 보였다.

몸은 검은색의 영혼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게 갑옷을 입고있는 구조.

반지에 있던 봉인에서 풀려난게 신났는지 기뻐보이는 우리 데식이를 보고, 최세희는 굉장히 신기하다는 듯 나에게 물었다.

"아니. 이게 뭐야? 유령이야?"

"유령이라... 글쌔, 유령으로도 볼 수 있으려나?"

유령. 영혼. 사념. 사역마. 수호성.

뭐라고 부르든, 일단 이제는 인간이라고 부르기는 좀 힘들어 보인다.

만질 수는 있지만, 그뿐.

"....세상에, 이런게 있다니. 이게 대체 뭐죠? 이걸 잘 연구만 할 수 있다면..."

이와중에 서은이는 이과답게 눈을 빛내며 이 데스나이트를 분석하려 들고 있었다.

[하하하하! 다인이라고 했나? 나를 꺼내줘서 고맙네! 오랜만에 느끼는 자유는 참으로 달콤하고만. 내 보답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무엇이든 도와주지. 말만하게!]

자신의 갑옷을 손으로 쾅쾅 쳐가며 호언장담하며 말했다.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도와준대라. 어...

"어... 데식아. 딱히 너한테 시킬게 없는데?"

[데식이는 또 뭔가! 그런데, 뭐라! 시킬게 없다고?]

화들짝 놀라는 데스나이트.

그런 그를 보며, 나는 정말 그렇게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 처음부터 딱히 뭔 역할을 기대한게 아니었다.

그냥 나중에 빡세지는 빌런 한마리 미리 잡아놓을려고 했을 뿐이지, 별다른 의미는 없다고.

그리고 애초에. 내가 원작에서 봤을땐.

"너, 나와서 일정시간 이상 있으면 사라지지 않아?"

[그건 어떻게 알았지? 그래, 맞다. 이승에 조금 오래 돌아다니다 보면 기력이 금방 다하여 조금 쉬어야 한다. 그래도 지금은 쌩쌩하니, 몇시간은 더 버틸 수 있다!]

당당하게 말하는 데스나이트.

그래. 그래도 오래동안 반지에 갇혀있던 덕인지 지금은 기력이 만땅인거 같다.

그럼 한동안은 쟤 힘을 백프로 쓸 수 있다는 말인데...

잘 모르겠네. 생각을 안해봐서.

일단 반지 뺐고 안에 수호령 있는것만 확인한 다음에 다시 봉인할 생각이었다.

아니... 애초에 이렇게 말을 잘 들을줄은 몰랐지...

"흠. 그래. 나중에 부탁할게. 일단 들어가있자."

[뭐라고? 잠깐! 기다려보게! 내가 할 수 있는 으아아아아아!]

그렇게 데식이는 마지막 비명만을 남긴 채 다시 반지 안으로 쏘옥 들어갔다. 반지가 살짝 부웅부웅 울리는 느낌.

그리고 그를 다시 봉인하자마자 그때.

나는 갑자기 뭔가가 번쩍하고 떠올랐다.

그래.

이 데스나이트가 한번 활약하고 쿨타임이 긴 것만 빼면, 원작에서도 굉장히 강한 모습을 많이 보여줬다.

그러니까... 저렇게 협조적인 태도면.

내 빌런 연합 에고스트림에 그냥 신규 빌런으로 넣어버리면 그만 아닌가?

나는 이점을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래. 어차피 내가 메인으로 밀, 강력한 빌런들이 따로 있기는 하다. 근데 얘네들은 이제 완전히 새로 꼬시는거 부터 전부 다 해야해서 시간이 걸린다.

그래서 또 부산테러 이후 3개월 정도 테러 공백기가 있을거 같은데.

그냥 얘한테 외주를 줘버릴까?

내가 직접 카메라에 얼굴 비추지는 않고, 그냥 에고스트림 방송으로 쟤 테러시키고 그것만 송출하는거지.

어차피 에고스트림이라는 이름으로 방송이 나갈테니 사람들은 다 내 지시하에 일어나는 테러라는 것도 알꺼고, 에고스트림의 저력을 과시하는 효과도 낼 수 있고.

그리고 스타더스도 또 좀 훈련시켜주고.

어차피 이제 빌런들이 쏟아져나와서 어느정도 훈련은 되겠지만, 그래도 내가 정제한 강한 빌런이랑 싸우는건 좀 다른 느낌일꺼다.

정말 강해서 스타더스를 괴롭혔던 빌런들은 내가 다 따로 처리하거나 포섭하는 바람에, 애초에 남은 빌런들은 좀 상대적으로 약해서 스타더스 능력의 감 유지 정도에 그칠뿐, 강화까지는 못시켜줄거다.

오직 나만이, 그녀를 성장시킬수 있다. 하하하.

하여튼, 이 데스나이트도 원작에서는 후반부에 나름 S급 칭호까지 받았던 빌런이니만큼 능력은 꽤나 강하다.

그렇다면.

메인 테러까지는 아니여도, 미니 테러 같은 형식으로 내보낼까?

원래 메인만 계속 내보내면 질리는 법이다. 중간중간 분위기 환기용으로 가벼운 것도 있어야 하는법.

좋다. 다시 불러보자.

나는 다시 반지를 조작해 데스나이트를 꺼냈다.

[.....고맙다. 아아... 이 공기가 이렇게도 귀중한거였구나!]

반지에서 풀려나자마자 무릎을 꿇고 팔을 벌리며 햇볕을 향해 감격하는 데스나이트.

...아니아니. 얘가 이런 컨셉의 애가 아니었다니까? 분명 원작에서는 몇번 안하는 등장때 분명 과묵하고 진지했던걸로 기억하는데? 뭐지?

하여튼, 나는 만약 투구대신 눈이 있다면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을 놈한테 가서 말을 걸었다.

"너, 나랑 일하나 같이 할레?"

[좋다! 뭐든지 시켜만다오!!!]

"건물 좀 부수고, 능력자랑 싸우고 그런건데 어때. 아, 사람은 해치면 안돼."

[뭐라? 파괴? 전투?]

거기까지 말하고 숨을 들이마쉰 놈은, 갑자기 크하하하하 하고 웃으며 외쳤다.

[사나이라면 파괴와 전투를 거절하지 않는 법! 좋다! 내 당장 하도록 하지!!!]

새끼... 사나이의 로망을 좀 아는놈이었잖아?

내면에서 데식이에 대한 평가를 좀 올린 나는, 놈한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바로 그자세다. 사나이답게 나랑 한번 테러할 준비가 되었느냐!!!"

[그래!!! 뭔지는 모르겠다만 몸만 마음껏 움직일 수 있다면 나 세인트 페트...]

"데스나이트."

[...데스나이트. 나 데스나이트의 힘을 보여주지!]

"좋다!!!"

메인 테러 직전, 가볍게 한번 가보자고!!

"....오빠가 더 바보가 됐어."

서은이는 그렇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바보라니. 사나이라고 불러줘.

하여튼, 우리는 바로 다음 미니 테러 준비에 착수했다. 규모가 작은 만큼, 데스나이트한테 기본 상식과 해야할 말과 행동만 가르쳐주고나면, 바로가도 되겠는데...?

***

[아니 에고스타는 ㄹㅇ퇴물들이나 지지하는거 아님?]

새 술은 새 부대라고.

스타더스는 그만 놓아주자... 솔직히 말해서 지난 시간동안 너무 많이 엮였잖아?

아이시클<----새로운 시대의 물결. 이제는 받아들여라 미천한 중생들이여

아이스망고의 시대는 온다!!!!

=[댓글]=

[스타더스=퇴물 / 아이시클=혁신. 변화는 시작되었다]

[솔직히 스타더스랑 만담하는것 보다는 아이시클이랑 만담하는게 더 재밌긴 하더라ㅋㅋㅋ]

ㄴ[대화 별로 하지도 않았는데 무슨ㅋㅋㄱㅋㅋ]

[응 조강지처 스타더스 못잃어~ 애초에 망고는 빌런 데뷔를 스타더스한테 편지쓰면서 했어~]

ㄴ[정실 "스타더스" ㄹㅇ 반박불가지ㅋㅋㅋㅋ]

ㄴ[아이스망고단들 진짜 웃긴점: 스타더스랑 지금까지 한 테러는 5번이고 아이시클은 단! 1번인데! 자꾸 아이시클을 스타더스에 비빔ㅋㅋㅋ 응 5배 차이야~]

ㄴ[온동네 별먼지단들 다 집합했네ㅋㅋㅋㅋ]

ㄴ[대세를 봐야지... 최근 흐름은 아이시클이다ㄹㅇㅋㅋ]

ㄴ[부들대는 별먼지단들 다음테러도 부산에서 일어나면 ㄹㅇ볼만하겠네ㅋㅋㅋㅋ]

*

[하 진짜 우리 에고스틱 팬카페가 망했구나]

이제는 하다하다 망고랑 어떤 히어로가 제일 어올리는지 가지고 월드컵 열렸네ㅋㅋㅋㅋㅋ

무슨 ㅅㅂ 이얘기를 하루종일 하고있냐 질리지도 않음?

=[댓글]=

[ㄹㅇ... 이게 다 테러 안하고 방송도 안키는 망고스틱<<<< 얘때문임ㅋㅋㅋ]

ㄴ[ㄹㅇ 테러 일으키면 그 얘기 하느라 이런 쓸데없는 떡밥 안굴리지ㅋㅋㅋㅋ 다 우리 좆고스틱 때문이다]

ㄴ[에고스트림 사이트도 방송란도 만들어놓고 정작 방송을 안킴ㅅㅂ]

[ㄹㅇㅋㅋ 존나 한심함ㅋㅋㅋ 아 근데 대세는 아이스망고가 맞기는 함ㅇㅇ]

ㄴ[작성자][ㄹㅇㅋㅋ]

ㄴ[아니 작성자는 욕해놓고선 왜 찬성하고 앉아있냐ㅋㅋㅋㅋ]

ㄴ[아 월드컵이 ㅈ같긴 한데 일단 아이시클이 정실은 맞다고ㅋㅋㅋㅋ]

ㄴ[별먼지단 인정하시오! 에고스틱의 아치에너미는... 아이시클이다...]

*

"하... 진짜."

서울 히어로 협회.

자신의 사무실에서 앉아서 노트북을 보고있던 신하루는, 자기도 모르게 이를 갈았다.

습관처럼 에고스틱의 팬카페에 들어가 글들을 읽고 있는데, 저번부터 계속 말도안되는 이야기들이 올라와 그녀의 속을 끓어오르게 하고 있었다.

...무슨, 에고스틱의 맞상대, 아치에너미가 아이시클이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에고스틱. 그를 제일 잘 알고, 그를 제일 잘 이해하는건 자신이 유일한데, 어디서 아이시클이 나오는거지? 설아는 애초에 에고스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던 애인데. 저번에 설아가 자신한테 에고스틱 욕을 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이미 키보드에 손이 올라가 있었다. 다닥다닥. 댓글을 입력한 그녀.

[에고스틱을 제일 잘 이해하고 맞서는건 스타더스가 유일한데, 요즘들어 말도 안되는 소리들이 많네요.]

그렇게 엔터키를 치고 댓글까지 달았으나, 아까 본 말 때문인지 그녀의 마음은 살짝 불편해졌다.

[부들대는 별먼지단들 다음테러도 부산에서 일어나면 ㄹㅇ볼만하겠네ㅋㅋㅋㅋ]

"...."

설마.

에고스틱이 다음 테러도, 부산에서 일으키지는 않겠지?

그녀는 이제 질렸다고, 아이시클이랑만 상대하고. 그렇다면?

그녀의 눈빛은 그녀 자신도 모르게 어둡게 내려앉았다.

...설마, 그럴까.

그렇게 그녀가 약간 다운된 기분으로 다시 카페의 메인 화면으로 돌아갔을때.

그곳은 이미, 갑작스럽게 수많은 게시글들로 불타고 있었다.

[에고스트림 라이브 방송 ONㅋㅋㅋㅋㅋㅋㅋㅋ]

[뭐냐 저번 테러 이후로 시간 별로 지나지도 않았는데ㅋㅋㅋㅋㅋ]

[여기 서울이네ㅋㅋㅋㅋ 아이스망고단 개같이 멸망ㅋㅋㅋㅋㅋㅋ]

[스타더스 펀치! 스타더스 펀치! 스타더스 펀치! 스타더스 펀치! 스타더스 펀치! 스타더스 펀치!]

[드가자 드가자~]

"스타더스님! 서울 한복판에 또 테러가!"

그리고 잠시 뒤 협회 직원이 급하게 문을 열고 들어왔을때.

신하루는 이미 옷을 갈아입은 채, 창문으로 몸을 날리고 있었다.

입꼬리를 자기도 모르게 올린 채.

그래. 에고스틱이 서울에서 테러를 안할리가 없지.

역시 그의 상대는, 자신이다.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며, 사건 현장을 향해 하늘을 날았다.

이어폰으로는 급하게 위치를 말하는 협회 직원의 말을 들으며 창공을 가로지르며, 그녀는 생각했다.

에고스틱. 저번 로봇테러 이후로, 오랜만에 직접 마주하겠구나.

***

"오빠. 이번엔 밖에 안나가요? 왜 집에 있어요?"

"어차피 데스나이트가 다 상대할텐데 뭐. 카메라는 드론 띄웠으니까 괜찮아."

테러를 아예 100프로 외주맡기니 이렇게 편하네.

역시 집이 최고다.

"...팝콘이나 먹을까?"

어차피 내가 현장에 없다고 달라지는 건 딱히 없겠지 뭐.

제 99화

화분노

서울의 거리를 걷는 사람들은, 때때로 궂은 날씨에 불만을 표하곤 한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할때면 시민들은 단순히 걷는거에도 부담을 느낀다. 특히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번화가의 경우에는 특히.

거기에 가끔씩은 우박이나 태풍처럼 희귀하기 짝이없는 일이 벌어지면 사람들은 눈물만 주르륵 흘릴 뿐이다. 거리를 걷는게 노동이 되어버리니까.

그러나 서울 시민으로써, 거리를 걷다가 겪을 수 있는 제일 황당한 일중 제일을 꼽자면.

역시 마른 하늘에 날벼락마냥 갑자기 벌어지는 능력자들의 테러가 아닐까.

"꺄아아아아아아악!"

그리고 이태원의 한 거리.

하필 오늘 이시각에 이 거리를 걷던 사람들은, 황급히 혼비백산 도망치기 시작했다.

쾅. 쾅. 여기져기 부서지기 시작하는 가로수, 가로등, 소화전, 변압기, 팻말, 신호등.

그냥 거리에 솟아있는 모든것들이 베어지고 부서지며, 평화롭던 거리 한복판은 난장판이 되어버렸다.

"으아아악!! 나와!!"

사람들은 소리지르고. 주위의 건물들의 유리창도 박살나고, 이미 주인은 내려서 도망쳐버린 자동차도 허공을 가르고.

이 총체적 난관 가운데, 이 모든 사단을 일으키고 있는 무언가가 있었다.

[크하하하하하! 참으로 즐겁구나 즐거워!]

전신에 갑옷을 입고 투구를 쓴 채, 주위에 검은색 오오라를 일으키며 검은 대검을 휘두르는 무언가.

걷다가 봉변을 당한 행인들은 이미 화들짝 놀라며 도망쳤지만, 그는 그래도 홀로 거리에 남아 아직까지 대검을 휘두르며 테러를 이어가고 있었다.

[내 이름은.... 데스나이트!! 에고스트림 소속의, 죽음의 기사. 이 나를 상대할 자 누구인가!]

마치 쇠를 긁는듯한 목소리를 이용해 큰 소리로 외치며, 자신의 흉부 쪽 갑옷을 주먹으로 쾅쾅 치는 그.

아무도 없는 거리에서 그렇게 외쳐봐야 누가 들을까 싶지만, 사실 이 광경은 꽤나 많은 사람들이 보고 있었다.

드론 위 카메라로 찍어 송출하고 있는, 에고스트림 사이트에서 방송으로.

*

[데스나이트 등장ㅋㅋㅋㅋㅋㅋ]

[아니ㅋㅋㅋ 이게 한국이냐고 중세판타지냐고]

[에고스트림 멤버 맞네ㄷ 에고스틱의 빌런 연합 소속 두번째 빌런ㄷㄷ]

[에고스틱 ㄹㅇ 저런 빌런들은 어디서 구해오는거냐? 처음 보는구만ㅋㅋㅋㅋ]

[존나 쌔보이기는 하네ㅋㅋㅋ 근데 왜이렇게 말하는게 아재같냐?]

[아니 왜 갑옷안에 검은색 연기만 나고 몸이 안보이는거 같냐? 나 무서워]

[근데 다 좋은데 제일 중요한 망고스틱<<<얘는 어딨음?]

[아니 에고 어딨어?? '안녕하십니까 에고스틱입니다!'<---- 어디갔어??]

[딱 보니까 조금 있다가 나오겠지ㅋㅋㅋ 나는 믿는다]

*

그렇게 시청자들의 설왕설래가 계속되고, 자신을 데스나이트라고 밝힌 빌런이 계속해서 거리를 박살내고 있을 때.

마침내, 그녀가 날아왔다.

금발의 머리를 휘날리며, 먼지가 훝날리는 그곳에서 고요히 허공에 떠 데스나이트를 내려다보는 그녀, 스타더스.

그리고 그런 그녀를 확인한 데스나이트는, 무차별적으로 하던 파괴행위를 멈추고 이내 그녀를 향해 소리쳤다.

[호오. 너가 바로 '그'가 말했던 영웅, 스타더스구나!]

그렇게 소리친 그는, 이내 자신의 손을 갈무리하더니, 허공에서 검은 창을 맴돌아 자신의 손에 쥐었다.

불길한 검은색 오오라가 창끝에 맴도는 가운데.

그는 조용히 허공에 떠있는 그녀를 향해, 다시한번 소리쳤다.

['그'가 분명 나한테 너가 나를 막아세울거라고 말했지. 그러나 나! 세인트 페... 데스나이트가 너따위는 그저 가볍게 상대해주마!]

그리고 그 말과 함께 데스나이트는, 그녀를 향해 검은 창을 들고 달려들었다.

마치 죽음을 형상화 한듯한 기사가 검은색의 오오라를 풍기는 채, 거대한 창을 들고 달려오는 실로 위협적인 광경.

그리고, 그런 무시무시한 적과의 싸움을 바로 눈앞에 두고.

스타더스는 그저, 의문을 품을 뿐이었다.

'.....그래서, 에고스틱은 어딨지?'

***

콰앙. 콰앙.

마치 천지가 진동하는 것처럼 강하게 울려퍼지는 굉음이, 거리에서 울려퍼졌다.

[하하하하! 역시, 꽤나 강하군. 확실히 강해. 물론 나 데스나이트에 미칠 정도는 아니지만 말이야!]

주위 건물, 도로들의 파편들이 휘날리고 있는 가운데.

전투는 꽤나 막상막하로 계속되고 있었다.

다양한 사건들로 인해 능력이 꽤나 성장한 현재의 스타더스를 상대로도 잘 버티고 있는 새로운 빌런, 데스나이트.

그가 휘두르는 창을 피하고 공격을 박아넣어도, 갑옷의 맷집이 튼튼한지 꽤나 잘 맞서는 모습이었다.

오랜만에 상대하는, 꽤나 강력한 적.

계속해서 끊임없이 날고, 몸을 던져 공격하며 이루어지는 그와의 전투.

날아오는 창들을 전부 옆으로 쳐내고, 끊임없이 이어지는 연쇄적인 공격을 막고 또 자신도 공격해나가며, 전투를 이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 둘의 전투를 지켜보는 시청자들 또한 굉장히 흥미진진하게 전투를 지켜보고 있었다.

*

[와 저 데스나이트인가 뭔가 스타더스랑 막상막하네?]

[세계관 최강자들의 대결 ㄹㅇ뭐농...]

[에고스틱은 대체 어디서 저런 걸출한 애들만 뽑아오는거냐ㄷㄷ 빌런들의 왕 망고스틱...]

[근데 ㅅㅂ 에고스틱의 해설이 없으니 뭔가 2프로 아쉽네]

[에고스틱 어디감? ㄹㅇ 오늘 안나오는거 아니겠지?]

[ㄴㄴ무조건 나옴 애초에 지금까지 이런 테러방송에 안나온적이 없음]

[에고스트림 이름으로 하는데 나오겠지 중간에 올거다]

[스타더스가 왔는데 망고가 안올리가 없음 망고스타는 영원하다]

[에고스틱 안나오면 바지에 똥쌈]

[위에 채팅한 놈 캡쳐했다 ㅅㄱ]

*

그렇게 전투가 계속해서 이어져나갔다.

남들이 보기에는 손에 땀을 쥐는, 한치도 긴장을 놓을 수 없는 막상막하의 승부처럼 보이지만.

정작 싸움에 당사자인 스타더스는, 계속해서 한 생각만은 하고 있었다.

'....뭐야. 대체 에고스틱, 걔는 언제 오는거지?'

분명 에고스틱의 방송으로 이 광경이 송출되고 있었다. 그리고 저 빌런이 언급한 '그'도, 정황상 아무리 봐도 에고스틱이고.

그래서 그녀도 당연히, 너무나 당연히 에고스틱이 이곳에 있을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작 에고스틱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은 채, 그녀는 계속해서 이 갑옷을 입은 이상한 빌런과 소모적인, 의미없는 싸움만을 이어하고 있었다.

티잉-.

그리고 전투를 계속해서 하던 중, 저 데스나이트라는 자가 내건 진심의 일격을 그녀가 몸을 던져 튕겨냈고.

쿠웅. 공격이 서로 부딪히며, 둘의 몸은 반발력으로 인해 서로 반대편으로 튕겨져 나갔다.

[크하하하하! 에고스틱의 말이 맞았군. 자네는 상당히 강해. 나랑 막상막하로 겨루다니! 이런 상대는 거진 몇백년만이군.]

저 반대쪽에서 웃으면서 말하는 그 빌런을 보며, 그녀는 짜증이 솟구치는걸 느꼈다.

...그래, 그래서 에고스틱은 어딨냐고. 왜 너가 있는건데.

전투가 이렇게까지 오래 지속되는 동안, 아직까지도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 에고스틱의 모습에, 그녀는 기어코 그에게 소리쳐 물었다.

"그래서, 네가 말한 그 에고스틱은 어디있고 네놈 혼자 있는거냐?"

그리고 그런 그녀의 질문은, 에고스틱이 언제 나오나 하며 방송을 지켜보던 시청자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었다.

*

[ㄹㅇㅋㅋ망고스틱 보려고 보는건데 망고는 언제나오냐고~~~]

[속이 뻥!!!]

[이거보고 스타더스 지지하기로 결정했다]

[ㄹㅇ망고 ㅇㄷ? 저 이상한 틀딱 기사 아재 치워!!]

*

그렇게 시청자들도 데스나이트의 답변을 기다리는 가운데.

데스나이트는.

[그음? 에고스틱?]

그녀의 입에서 나온 에고스틱을 찾는 말에, 그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 손가락으로 투구를 긁적이더니 다시 크하하 웃으며 그렇게 외쳤다.

[에고스틱은 오늘 오지 않는다! 그의 말로는 나정도면 너를 상대하는데 충분할거라고 하더군! 크하하하하하하!]

그렇게 외치며 소리치는 그.

갑작스럽게 공개된 에고스틱 노쇼 소식에, 당연히 채팅창은 난리가 났다.

*

[?????????]

[뭐임 ㅅㅂ 이건 아니지]

[아니 에고스틱 방송에서 켜졌잖아 근데 에고스틱이 안온다니 이게 무슨 소리야]

[에반데]

[망고스틱 나와!!!!!]

[ㅋㅋㅋㅋㅋㅅㅂ 어쩐지 불길하더만]

[오늘 망고 없어? 오늘 망고 없어? 오늘 망고 없어?]

[어라? 화나네?]

[🔥🔥🔥🔥🔥🔥🔥🔥🔥🔥🔥]

[지금 싸우자는 거임?]

[아이시클=직접 배까지 끌고가서 테러 / 스타더스=그냥 딴놈한테 맡김 ㅋㅋㅋㅋㅋㅋ]

[분노 MAX🔥🔥🔥🔥🔥🔥🔥🔥🔥🔥🔥]

[선넘네....]

*

그렇게 채팅창이 정말로 불타는 와중에.

스타더스는 그저 가만히 서서, 고개를 숙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니까, 에고스틱은 오늘 안온다?

아. 뭐. 그럴 수 있지. 뭐 그게 중요한건 아니다.

다만 에고스틱의 방송이 켜졌기에 당연히, 너무나 당연히도 에고스틱이 나올 줄 알았을 뿐이지. 뭐, 다른 빌런이라고 해서 그게 중요한건 아니다. 어쨌든 그녀는 히어로고, 히어로는 그저 빌런을 무찌르고 시민들을 구하면 될 뿐, 다른건 중요하지 않다.

....그런데.

에고스틱 왜, 부산까지 가서는 자기가 직접 어디서 함선을 끌고 아이시클과 맞서면서 테러를 일으키더니.

자신을 상대로는 그냥 부하 하나를 띡 보낸건가?

[에고스틱은 오늘 오지 않는다! 그의 말로는 나정도면 너를 상대하는데 충분할거라고 하더군! 크하하하하하하!]

귓가에 울려퍼지는, 아까 전 저 빌런이 한 말.

뭐? 상대하는데 충분?

하. 하하하.

거기까지 생각이 닿은 그녀의 눈이, 깊게 가라앉았다.

그래. 자신의 속이 지금 이렇게나 끓어오르는 이유는, 에고스틱이 자신을 무시했기 때문이다. 아이시클은 직접 함선까지 이끌고 상대하면서, 자신한테는 부하 하나만 보내는 그러한, 자신을 무시하는. 마치 자신은 더이상 직접 상대할 필요도 없다는 듯한. 이제 그녀와는 볼장 다 봤다는 듯한, 그런 태도에.

"....."

으득. 그녀는 자신의 입술을 짖이겼다.

....그래, 직접 상대할 필요가 없다고? 저렇게 다른 빌런 시키는걸로 충분하다고?

그럼, 그렇지 않다는걸 보여주면 되겠네.

그리고 그녀가 그렇게 마음먹은 순간.

그녀 주위의 기색이, 변하기 시작했다.

***

"아니, 뭐지?"

소파에 누워 팝콘을 먹고있던 나는, 갑작스러운 광경에 몸을 벌떡 일으켰다.

"오빠, 왜요?"

"아니, 잠깐만."

나는 카메라에 잡힌, 스타더스 주위에 풍기는 묘한 기색과, 그녀 주변에 떠오르기 시작하는 작은 돌맹이들을 보며 입을 벌렸다.

저거, 아무래도 힘이 또 한번 각성할때나 일어나는 현상인데.

....쟤 왜 갑자기 혼자서 각성하고있냐?

제 100화

화데스나이트

데스나이트.

지난 수백년간 좁은 반지 안에 갇혀 잠만 자던 그는, 오랜만에 느끼는 자유를 마음껏 만끽하고 있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반지의 주인을 잘 만난 덕에.

[크하하하하하!]

그는 오랜만에, 전투다운 전투를 하고 있었다.

"하아... 하아..."

자신의 앞에서 숨을 버겁게 쉬며 싸우고 있는 여자가 바로, 에고스틱 그가 상대하라고 했던 스타더스라는 인물.

'어느정도 힘을 제약하고 싸워, 그리고 어느정도 진행되면 지는 척하고 튀고. 알았지?'

에고스틱이 말했던 주문사항을 다시한번 복기하며, 그는 창을 다시 잡았다.

오랜만에 하는 전투는 참으로 즐거웠다. 비록 힘을 어느정도 제한하기는 했지만, 그건 자신앞에 있는 저 여자도 마찬가지.

그렇기에 오히려 밸런스있는 전투가 이어질 수 있었다.

그렇게 전투가 제법 진행되고.

서로 튕겨져 나오며 잠시 서로 떨어져있을 때, 그는 스타더스에게 자신의 소감을 솔직하게 밝혔다.

[크하하하하! 에고스틱의 말이 맞았군. 자네는 상당히 강해. 나랑 막상막하로 겨루다니! 이런 상대는 거진 몇백년만이군.]

실제로 맞는 말이었다.

비록 힘을 어느정도 컨트롤하고 있는 상태라고 해도, 이정도도 못버티는 인간들이 부지기수였다.

즉, 자신의 힘을 이만큼이나 꺼내게 한 여자는, 제법 강하다는 뜻.

그렇게 경의의 의미를 담아 건낸 그의 말에, 앞에 있는 금발 여성을 눈을 찌부리더니, 그에게 다른걸 물었다.

바로 에고스틱은 어딨냐- 라는 것.

갑작스럽게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 데스나이트는 의아했지만, 이내 에고스틱 그가 자신한테 했던 말을 떠올려봤다.

'혹시라도 스타더스가 나 어딨냐고 찾을수도 있단 말이야? 내 방송으로 송출하는 거니까. 나 잡으려고 왔는데 너가 있는거니. 그럼... 그래. 그냥 '내 상대는 너다. 에고스틱은 오지 않을거다'. 이렇게만 말해.'

그래. 분명 그가 그런 말을 했었지

그의 지시사항을 기억한 데스나이트는, 이내 당당하게 큰 소리로 말해줬다. 약간 도발을 섞어서.

[에고스틱은 오늘 오지 않는다! 그의 말로는 나정도면 너를 상대하는데 충분할거라고 하더군! 크하하하하하하!]

그리고 그 순간.

앞에 서있던 스타더스라는 히어로의 분위기가, 갑자기 변하기 시작했다.

[...!]

수많은 전장을 상대해본 자신만이 느낄 수 있는, 급변하는 상대의 분위기.

아까까지는 적당히 상대하는 티가 나던 그녀에게서.

갑자기, 어머어마한 투지가 뿜어져나오기 시작했다.깊고 끈적한, 무언가가.

그녀의 주위에 공기가 소용돌이치며, 머리카락도 떠오르기 시작하는게 상황의 심상치 않게 돌아가고 있다는걸 보여줬다.

그리고 그런 상황에서.

데스나이트는 오히려, 큰소리로 웃었다.

[크하하하하하! 좋다! 그래, 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나와야지!]

달라진 그녀의 분위기에서, 그는 깨달았다. 지금부터는 저 스타더스란 여자도 전력을 내보낼 것이라는건.

갑자기 왜 그녀가 저러는지는 잘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쨌든 더 격렬한 싸움을 할 수 있다면 뭐든 좋은것.

좋다. 본격적인 전투는 지금부터다.

이제는 나 데스나이트도, 진심으로 승부를 봐야겠군. 더이상의 봐주기는 없다.

그렇게 마음먹은 데스나이트는, 이내 한쪽 팔로 자신의 가슴을 치며 그녀에게 소리쳤다.

[그래, 진정한 승부는 지금부터인가! 히어로 스타더스여 자, 와라! 내 전력을...]

그리고 그가 그렇게 말하던 순간.

눈 깜짝할 사이에, 스타더스는 자신의 앞에 날아와 있었다.

금발머리를 휘날리고, 한 손에 주먹을 쥔 채로.

아. 방심했군.

순식간에 자신의 앞에 다가온 그녀를, 데스나이트가 급하게 창으로 막으려던 순간.

"늦었어."

그런 짧은 중얼거림이 그에게 스쳤고.

그와 동시에, 그의 배 쪽에서 엄청난 충격이 느껴지며.

콰아아아앙.

그의 몸이 엄청난 속도로 뒤를 향해 튕겨져나갔다.

***

"...."

자신의 주먹을 탁탁 턴 스타더스는, 하늘로 떠올랐다. 자신이 날려버린 데스나이트라는 그놈이 있는 곳으로 향하기 위해서.

[쿨럭, 쿨럭. 크으으으....]

그녀의 주먹에 날아가버린 놈은, 저 반대쪽 건물의 외벽에 박힌 채 검은 연기를 쿨럭이고 있었다.

[크으. 이 내가 방심하다니... 쿨럭, 쿨럭. 인정하지. 나의 패배다.]

팔 다리의 갑옷을 추욱 늘어트린 채, 쓰러져있는 그.

순간 각성한 그녀의 주먹 한방에 날아가 빈사상태가 되어버린 그는, 몸이 박살났음에서도 여전히 웃으며 중얼거렸다.

그러더니 어느덧, 서서히 먼지로 변하기 시작하는 그.

그런 상황에서도 데스나이트는, 마지막으로 그를 내려다보는 그녀에게 최후의 대사를 날려주었다.

[이게 내 끝은 아니다. 어차피 나는 불사의 몸. 다시 돌아오는 그때는 방심하지 않을테니, 각오하라고. 크흐흐흐흐흐...]

그렇게 최후의 말을 남긴 그는, 끝내 마지막 투구까지 먼지가 되어, 바람에 휘날렸고.

이내 사람들은 모두 도망쳐 텅 빈, 치열했던 전투끝에 반파된 도심의 거리에는 스타더스만이 홀로 서 있게 되었다.

그렇게 끝내 사라져버린 데스나이트가 있던 곳을 바라보던 스타더스 그녀는,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에고스틱은 오지 않았다.

***

[에고스트림 새로운 멤버 故데스나이트씨 생전의 매드무비 한번 보시겠습니다]

(혼자서 원맨쇼로 거리를 다 파괴하시는 데스나이트.gif)

(스타더스를 상대로 도발하는 데스나이트.gif)

(준S급 히어로를 상대로 비등비등하게 싸우는 데스나이트.gif)

(검은색 창으로 스타더스를 공격하는 데스나이트.gif)

(계속되는 공격으로 스타더스를 압도하는 데스나이트.gif)

.

.

.

(스타더스 주먹 한방에 우주까지 날아가버리는 데스나이트.gif)

에고스트림 멤버중 최고의 G.O.A.T(Greatest Of All Time)였던 데스나이트씨... 당신의 희생을 잊지 않겠습니다.

묵념.

=[댓글]=

[벌써 그립다 데스나이트... 거기선 행복하니?]

[아니 안죽었다는데 왜 죽여ㅋㅋㅋㅋㅋㅋ 불사라고ㅋㅋㅋㅋ]

ㄴ[먼지가 되었는데 어케 살아나냐고ㅜㅜ]

ㄴ[진지: 영상 분석해보면 갑옷 안에 몸이 없는게 약간 영체과로 추정됨. 유럽쪽 히어로나 빌런보면 저런 애들 꽤 있음ㅇㅇ 아마 제한적 불사 맞을듯]

[아니 근데 꽤 잘 싸우다가 마지막에 왜 광탈함? 뭐임?]

ㄴ[스타더스가 능력 갑자기 각성한듯]

ㄴ[갑자기 왜????]

ㄴ[몰?루 근데 스타더스 보면 원래 싸우다가 능력 성장하고 그래서 이상한건 아님]

ㄴ[대화 나누다가 갑자기 공격한거보면 기습 타이밍만 노리고 있다가 성공한거같음ㅇㅇ]

ㄴ[아 그런거구나]

ㄴ[사실 스타더스가 각성한 이유는 그게 아니라 에고스틱이 안온다는 말을 듣고 삐져서라면? 우린 모두 착각하고 있는거라면?]

ㄴ[망상 멈춰!]

ㄴ[스타더스 음해 ㄴ]

*

[근데 에고스틱이 ㄹㅇ지리긴 하네]

처음에 무슨 빌런연합 만든다고 했을때 별 기대도 안했는데

그거 공표하고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라인업이 대단함

에고스틱(A급), 일렉트라(A급), 거기에 이번에 나온 데스나이트는 스타더스랑 비등비등한거 보면 S급 까지도 비비는거 같던데

이정도면 벌써 히어로 협회 거의 따라잡은거 아니냐?

스타더스=데스나이트

섀도우워커=에고스틱

아이시클=일렉트라

이렇게 잡으면 얼추 비슷한듯. 물론 아직까지는 밀리긴 하는데, 무서운건 멤버들이 앞으로도 여기서 더 늘어날거 같다는거임. 애초에 연합인만큼 이정도로 만족할리가 없고...

이제 조금만 더 있으면 빌런 연합이 히어로 연합보다 더 강해질거 같다는거임

결론: 좆됐다! 협회!

=[댓글]=

[에고스틱 ㄹㅇ지리긴 해. 이번 데스나이트만 봐도 스타더스에 비비는 능력+불사던데 대체 어디서 저런 애 구해왔나 싶음]

[곧있으면 협회 따라잡을듯ㅋㅋㅋㅋ]

[근데 이게 더 좋은거 아님? 빌런들 보면 테러할때 꼭 몇십명씩 죽어나가던데 앞으로 나올 빌런들 다 에고스틱네에 묶이면 오히려 대한민국이 더 안전해지는거 아니냐?]

ㄴ[진짜네]

ㄴ[발상의 전환ㄷㄷㄷ]

ㄴ[이거네ㅋㅋㅋ]

ㄴ[빌런 연합이 성장할수록 안전해지는 국가가 있다? 삐슝빠슝]

ㄴ[저희 망고단 일동은 에고스틱의 빌런연합 에고스트림의 성장을 응원합니다^^]

ㄴ[아ㅋㅋ 이게 애국이라고ㅋㅋㅋㅋ]

ㄴ[국내 애국자 카페ㄷㄷㄷ]

*

[에고스틱이 안나와서 서운했던 이번 테러... 의외로 확정된 것....truefact]

뭐긴뭐야 에고스타가 개같이 멸망했다는거지ㅋㅋㅋㅋ

부산은 에고스틱이 직접 나와서 테러하지만 서울은 뭐다? 바로 그냥 하수인 시켜버리기ㅋㅋㅋㅋㅋ

아ㅋㅋㅋㅋ 망고는 이제 스타더스 필요 없어한다고ㅋㅋㅋ 아이스망고가 되어버렸다고ㅋㅋㅋㅋ

서명하시오! 별먼지단!

에고스틱의...아치에너미는...아이시클이다...

=[댓글]=

[나 별먼지단인데 이거 맞음]

[나 스타벅스 지지하는데 정실은 아이시클이 맞는거같다]

ㄴ[스타더스야 ㅅㅂ]

[응 아니야ㅋㅋㅋ 정실 스타더스야 ㅈㄹ하지마ㅋㅋㅋ]

ㄴ[저런...울지말고 말해봐]

ㄴ[코이츠www 머가리가 단단히 깨진wwww]

[별먼지단이 ㅈ된 이유: 앞으로 다음 테러까지 아이스망고로 카페 게시글들 도배될예정ㄷㄷ]

ㄴ[이런게 현실일리가 없어!!]

***

"아이고... 에고스틱씨. 거기서 직접 안나가고 다른 빌런을 보내면 어떡해요?"

유성그룹 꼭대기층 사장실.

홀로 노트북으로 테러영상을 보던 이설아는, 데스나이트의 말에 표정을 굳힌 스타더스를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리던 그녀는, 영상 아래 [서울에는 직접 안나서고 부하만 보내는거 보면 이제 에고스틱의 아치에너미는 아이시클인듯ㄷㄷ]를 확인하고는, 살짝 멈칫했다.

흠흠, 뭐.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네.

그렇게 조용히 생각하던 그녀의 입꼬리는.

살짝, 올라가있었다.

제 101화

화앞으로의 계획

우리 에고스트림에는 이런 걸출한 인물도 있다!라는 쇼케이스 느낌으로 진행된 저번 테러.

데스나이트라는 인물을 사람들에게 소개시켜준 내 미니-테러는, 생각보다 큰 효과를 봤다.

뉴스에 에고스틱의 빌런연합의 위험성과 잠재성이 보도됨은 물론이요, 처음으로 에고스트림이라는 언급량이 나만큼이나 늘어나기 시작한 것.

저번 레피스단-데스나이트 2연속으로 이루어진 빌런 쇼케이스가 상당히 큰 반향은 일으킨 것은 확실. 이제 여기서 더더욱 강한 능력을 가진 빌런들이 한명 한명 추가될수록, 대한민국에서 아무도 무시할 수 없는 하나의 세력으로 인정받을 가능성이 크다.

근데, 그건 그렇고.

"아니.... 진짜 뭐지?"

나는 티비 영상을 계속 돌려봤다.

저번에 있었던 스타더스와 데스나이트와의 싸움.

분명 데스나이트와 비등비등하게 싸우던 스타더스는, 중반부터 갑자기 무슨 호랑이 기운이 샘솟았는지 각성해가지고 데식이를 가루로 만들어버렸다.

그 결과 데식이는 현재 반지에서 다시 휴식중이다. 본인은 만족했다는 듯 하지만...

물론 아직까지도 스타더스가 갑자기 각성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

대화를 하다가 갑자기 분노하던데... 뭐, 에고스틱이 안온다는 말을 듣고 그렇게까지 화나서 각성한거 같지는 않고, 아무래도 데식이의 '크하하하하!' 웃음소리를 듣고 빡이 친거 같다. 그게 아니고서야 설명이 안돼.

뭐, 하여튼. 나로써는 사실 나쁠건 없을 일이다.

스타더스가 빨리 강해지면 강해질수록 좋으니.

그런데....

"속도가... 너무 빠른데?"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아니, 콩나물도 아니고 무슨 혼자서 쑥쑥 강해져. 원작에서 빌빌대던 그 스타더스가 맞냐? 아직 2부 초중반쯤인데 벌써 거의 2부 후반정도로 강해졌다. 앞으로 나올 어지간한 빌런들은 다 때려잡을 정도로.

"흐으음..."

나는 턱을 기댄 채 골똘히 생각해봤다.

이대로라면... 페이스를 조금 늦춰도 괜찮을거같네.

그러면 아예 월광교 나오기 전까지는 쉴까?

그렇게 내가 생각을 계속할때 쯤, 방문에서 똑똑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수빈씨가 들어왔다.

"다인씨. 또 스타더스 찾아보시는거에요?"

그리고 그게 그녀가 내 컴퓨터에 띄워진 스타더스의 모습을 보고 맨 처음 한 말이었다.

세로눈을 하고 바라보는게 또 내가 스타더스 팬클럽 관리하고 있다고 생각하는거 같은데, 오해다. 이미 팬클럽용 자료는 다 관리 끝났고 지금은 순수하게 미래를 계획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 한마디에 지레 찔끔한 나는 항변을 하려고 하였으나, 그보다 수빈씨가 나에게 폰을 건네며 말을 먼저 거는게 빨랐다.

"다인씨, 여기 전화왔어요."

전화?

뭔가하고 봤더니 발신자는 이설아로 되어있었다.

내가 폰을 거실에 놓고왔구나.

건네다준 수빈씨한테 감사의 말을 전한 나는, 전화를 받아보았다.

"여보세요. 왜, 무슨 일이야?"

[저기요. 오늘 저희 만나기로 한 날인거 잊지 않으셨죠?]

".....응?"

뭐라고? 벌써 시간이 그렇게 됐나?

고개를 휙 돌려 달력을 확인한 나는, 오늘이 저번에 만났던 날로부터 2주가 되었다는걸 깨달았다.

"....아! 당연히 알고 있었지. 지금 준비하고 있었어."

[....아닌거같은데. 하여튼, 위치는 저번에 알려주신 거기니까 빨리 오세요. 알았죠?]

"그래, 그래."

그렇게 전화를 마친 나는, 나갈 준비를 했다.

오랜만에 이설아나 보고 와야지.

...사실 따지고보면 오랜만도 아닌거 같긴 한데, 하여튼.

***

잠시뒤.

나는 유성그룹 서울지부 꼭대기층, 사장실에 앉아있었다.

"아니. 어떻게 사장실이 부산이나 서울이나 똑같냐?"

나는 사장실에 들어와서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그런 내 모습을 보며, 피식 웃는 이설아.

"제가 당신만큼이나 남아도는게 뭐겠어요. 돈 좀 썼죠. "

이게 돈으로 가능한건가?

가구랑 서재 위치 하나까지 똑같은 그 모습을 보며 내가 신기해하고 있을 때, 그녀는 여전히 살짝 입꼬리가 올라간 채로 자리에서 일어나 내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서울에서 있을 시간이 많은 만큼 이왕이면 편하게 꾸며봤어요."

"서울엔 왜?"

"어머, 왜긴요. 당연히 먹어치워야 할... 인수해야 할 기업들이 다 여기 모여있으니까 그렇죠."

그렇게 말하며 세상 냉혹한 웃음을 짓던 그녀는, 언제 그랬냐는듯 다시 방긋거리며 말했다.

"그리고 그건 역시 당신 도움이 크고요. 당신이 넘겨준 자료 덕분에 인수가 상당히 쉬워지고 있어요."

"아, 그래. 그거 말이다. 여기 하나 더있어."

그말을 듣고 기억난 나는, 품에서 USB를 하나 더 찾아 그녀에게 건네주었다.

"자. 남은 기업들까지 전부 담은 마지막 파일."

"어머... 뭘 또 이런걸 다. 아직도 더 있으실 줄이야. 감사해요."

생긋 웃으며 받아가는 그녀.

나는 그녀를 향해 다시한번 강조해줬다.

"그게 마지막이니까, 나머지는 네가 알아서 해야된다. 알았지?"

"이미 주신것만으로도 충분해서, 괜찮아요. 근데 대체 이런건 어떻게 구하시는건가요? 제 아래 직원들도 이렇게까지는 못하는데."

은근히 내게서 정보를 캐려하는 그녀한테, 나는 피식 웃으며 답해줬다.

"나라고 만능은 아니야. 협회, 정부 이런쪽의 내부 연결망 쓰는 암호화 빡쎄게 걸린데 보안은 못뚫어."

정확히는 내가 아니라 서은이가 못하는 거지만.

하여튼 나는 그렇게 너스레를 떨며 답해줬다.

정작 그녀가 물은 '어떻게 했는지'에 대한 답변은 안해준 채.

"흐응...."

그리고 역시 눈치가 빠른 이설아답게, 내가 말을 돌리고 있다는걸 눈치챘다.

내 한발 빼는 대답에 턱을 괴고 나를 빤히 바라보는 그녀.

그러더니 살짝 웃으며, 그녀는 그렇게 말했다.

"에고씨. 저 당신 집에 놀러가도 돼요?"

"안돼."

"그럼 이름은. 본명은 알려주실 수 있나요? 매번 에고씨 이렇게도 좀 부르기도 민망한데 말이죠."

"그건 좀."

"그리고 그 가면좀 벗어주실 수 있나요? 거슬리는데."

"....."

그래.

내가 요즘들어 그녀와 만나는게 살짝 거북한건 다 이유가 있다.

자꾸 내 정체를 캐물을려고 한단 말이지.

내가 조용히 찻잔만 기울이며 입을 다물자, 계속해서 웃는 그녀는 나에게 물었다.

"에고씨. 저를 믿지 못하시나요?"

"당연히 믿지."

"그런데 왜, 스스로의 정체는 그렇게 꽁꽁 싸매고 알려주시지 않는건가요?"

눈을 샐쭉하게 뜬 채 묻는 그녀의 말에, 나는 그저 가만히 있을 뿐이었다.

....이설아에게 정체를 밝히는건 좀 리스크가 있다.

애초에 그녀가 나를 어느정도로 생각하는지 모르는 만큼, 조금 더 신중히 접근할 필요가 있다. 특히 미래에 흑막이 되는 그녀를 상대로는.

그러니 조금 더 간을 보다가 확실할 때쯤 알려주는게 맞겠지... 사실 쟤라면 이미 내 이름정도는 알 수도 있겠지만.

내가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을때.

이설아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났다. 뭐야. 쟤 왜저레?

그렇게 일어난 그녀는, 손을 책상에 둔 채 내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이젠 내 앞에 보이는건 그녀의 얼굴과 길게 늘어트려진 하늘색 머리카락뿐.

내가 눈만 꿈뻑이고 있을 때, 그녀는 내 눈을 정확히 마주보더니, 속삭이듯 말하기 시작했다.

"당신... 제가 당신을 배신할거 같나요?"

"저도 기본적으로 은혜를 아는 사람이에요. 서로 손을 잡았을 때 이미 마음먹었어요. 당신이랑은, 끝까지 함께해도 좋을거 같다고."

거기까지 말한 그녀는... 다시 머리를 뒤로 뺀 다음 손으로 턱을 누르며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

"제가 어느 정도로 당신을 위하는지 알아요?"

나를 바라보며 말하는 그녀에게, 나는 그제야 숨을 내쉬며 답해줬다.

"...글쎄. 어느정도인데?"

"당신을 위해서는 제 회사 총지분에 5프로도 포기할 수 있어요."

....그게 많은거냐?

내가 짜게 식은 눈길로 그녀를 바라보자, 그녀는 피식 웃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뭐, 그게 어느정도 의미인지 모르면 말고요. 하여튼 제가 당신을 배신하던가 그럴 일은 없을테니까, 조금 더 믿어주셨으면 좋겠네요. 살짝... 섭섭하니까."

마지막 말은 작게 웅얼거린 그녀는, 고개를 돌리더니 찻잔을 기울여 마셨다.

"....."

그런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는 잠시 생각했다.

...아직 우리가 그렇게까지 말할 관계는 아니지 않나?

어쨌든, 생각해보면 원작에서도 이설아가 자신을 믿고 따라와준 사람들은 전부 알뜰살뜰 챙겼다는 묘사가 있기는 했다. 흑막이 된 이후로도.

흠...

그렇게 내가 잠시 생각을 하고 있자, 어느새 원래 얼굴로 돌아온 그녀는 살짝 밝은 톤으로 다시 내게 물었다.

"그래서 당신. 다음에는 뭘 할 생각이에요? 그 데스나이트란 사람은 인상깊기는 하던데."

"다음에?"

거기까지 들은 나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는 살짝 침음했다.

....원래는 에고스트림 전력도 보여줄 겸 테러나 한번 더 할려고 했는데 말이야.

지금의 스타더스 상태를 보니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다. 이미 충분히 강한거 같은데 뭘 해? 조금 천천히 진행해도 될거 같다.

그럼 아마 그사건이 터지기 전까지는.

"글쎄. 아마 올해는 쭉 쉴거같은데."

"네? 그렇게나 오래요?"

깜짝 놀라는 그녀.

아니, 지금 벌써 가을인데 쉬면 얼마나 쉰다고.

....물론 왠지 내 팬카페가 또 난리가 날거 같기는 한데 뭐. 정 심심하면 영상이나 하나 올려나볼까.

하여튼 그렇게 몇마디 더 주고받은 나는,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당부했다.

"...그리고, 앞으로 스타더스랑 좀 친하게 지내."

너네 둘이 사이 안좋으면 큰일나.

그리고 좀 둘이 친해져야 나도 스타더스 근황같은걸 바로바로 전해듣지.

"저희 이미 친한데요?"

"좀 더 자주 만나고 막 그러면 좋겠다는거지."

"....뭐. 알겠어요."

"그래."

거기까지 말한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제 슬슬 가야지.

그리고, 떠나기전에.

나보고 잘가라고 한 뒤 뒤에서 날 바라보는 이설아 그녀에게, 나는 한마디 덧붙였다.

"그리고 앞으론... 다인이라 불러라."

"네?"

"내 이름. 다인이니까, 그렇게 부르고 싶으면 그렇게 부르라고."

"아... 네!"

잠시 멀뚱히 있다가 내 말을 이해하고서야 활짝 웃으며 대답하는 그녀를 마지막으로, 나는 그자리에서 나왔다.

....그래. 이정도까지는 괜찮겠지.

아마도.

***

"흐으... 아. 맞아."

에고스틱이 떠난 직후.

자기 자리에 앉아 홀로 실실 웃던 이설아는, 문득 정신을 차리곤 허리를 피고는 자세를 정돈했다.

그래. 이렇게 좋아하고만 있을 때가 아니다. 할 일은 해야지. 에고... 아니, 다인씨가 준 USB도 확인해 봐야되고.

다시금 정신을 차린 그녀는, 일에 착수하기 시작했다.

아. 그리고, 하루랑도 좀 더 친하게 지내라고 했었지.

잠시 생각에 빠진 그녀는, 피식 웃으며 휴대폰을 들었다.

그래. 하루랑 뭐, 오랜만에 친목을 다지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저번에 에고스틱 그와 관련해서 껄끄러운 일이 있었긴 하지만... 뭐, 자신이 좀 더 너그러운 마음으로 먼저 다가가야겠지.

하루 그녀는 에고스틱의 이름도 모르지만, 자신은 그의 본명을 알 뿐더러 직접 듣기까지 한 사이니까.

그렇게 묘한 여유로움을 품은 그녀는, 웃는 얼굴 그대로 휴대폰을 들고 하루에게 전화를 걸었다.

"어. 하루야, 뭐해?"

제 102화

화회동

"키에엑! 내가 바로 렙틸리언이다! 스타더스, 너따위는 나한테, 크아아아아악!"

"....말이 많아."

오늘도 서울의 도심에서 난동을 피우는 빌런을 주먹 한방으로 가볍게 처리한 후, 신하루는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은 바로, 자신의 친구 이설아와 오랜만에 만나기로 한 날.

자신과 같은 나이임에도, 사장으로서의 회사 운영과 아이시클로서 히어로 활동까지 동시에 하는 설아는 평소에 굉장히 바빴다.

그렇기에 부산에서 주로 활동하는 그녀가 오늘처럼 서울로 올라오는 날은 굉장히 흔치 않은 만큼, 오랜만에 만나러 가는 것이다.

....저번 부산에서의 일로 조금, 껄끄럽기는 했지만.

"휴우...."

그래. 그래도 그건 내가 잘못한 거니까.

괜한 오해를 하여, 히어로로써의 활동을 열심히 하고있는 설아를 괜히 겁박하는 모양새였다.

물론 아직까지도, 그렇다고 해서 빌런한테 그런 밝은 웃음을... 지을 수 있는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오늘 만나면, 에고스틱 그와 관련된 얘기를 좀더 해봐야지.

그리고, 사과도 먼저 해야겠지. 저번에 그날 이후로 만나지도 못해 제대로 못 전했으니까.

그런 생각을 안고, 신하루는 약속장소로 향하였다.

...약간의 어색함을 안고.

***

"어 하루야! 어서와, 오랜만이다 정말!"

그리고 그런 자신의 걱정과 다르게, 설아는 이전과 다를거 없는 밝은 미소로 자신을 맞아주었다.

그런 그녀의 태도에 오히려 죄책감이 쑤셔, 저번에 부산에서의 일을 다시한번 미안했다고 전한 하루였지만.

"응? 아 뭐 그런걸 가슴에 품고 그래. 충분히 그럴 수 있지. 나였어도 그랬을거야."

애초에 신경도 안썼다는듯 오히려 웃어넘기는 설아였다.

그렇게 저번에 있었던 일까지 푼 하루는 살짝 안심했고.

오랜만에 편한 마음으로 설아와 빙수를 먹어가며 이런저런 대화를 나눴다.

그리고, 다양한 주제에 관한 얘기를 한 둘은.

마침내, 그 주제로 이어지기 시재했다.

"아. 그리고, 에고스틱 말이야."

그렇게 그 이름이 설아의 입에서 나왔을 때, 하루는 자신도 모르게 긴장했다.

그녀가 그러던 말던, 계속해서 이어지는 설아의 얘기.

"저번에 처음으로 걔가 부산으로 내려오는 바람에 나랑 싸웠잖아."

"응...."

그말에 부산에는 직접 내려가면서 자신이 있는 서울에는 부하 하나 딸랑 낸 에고스틱이 떠올라 자기도 모르게 들고있던 찻잔을 꽉 움켜쥐었지만.

설아는 그런 기색을 못 눈치챘다는 듯, 계속해서 입을 열었다.

"그때 그거. 내가 에고스틱 걔랑 몆마디 나눴었거든? 그때 걔가 그러길 부산에 침공한 이유가 비행선이 이미 부산쪽에 있어서 그냥 심심풀이로 온거라고 하더라. 어이없지 않아? 무슨 테러가 장난인줄 아나봐, 그 빌런은."

"하하... 그래?"

그렇게 그녀의 말을 들어주던 하루는, 설아의 말중 한 대목에 집중했다.

....그러니까, 부산 테러는 그냥 심심풀이 삼아 즉흥적으로 했다는건가? 예전에 서울에서 할때처럼 계획적으로 한게 아니라?

그런 생각을 하며 그녀가 자기도 모르게 찻잔에 쥔 힘을 풀때.

설아는 거기서 한마디 말을 덧붙였다.

"그리고 하루야. 내가 만나보니까, 에고스틱 걔한테 딱히 엄청나게 신경 쓸 필요는 없겠던대?"

"응..?"

갑작스러운 말에 하루가 고개를 갸웃했다.

...신경 쓸 필요 없다니? 애초에 지금 한국에서 활동하는 모든 빌런들 중에서 에고스틱이 제일 영향력이 있지 않나.

그런 의구심으로 설아를 바라보자, 그녀는 그런 이유가 있다는 듯 대답했다.

"아니. 저번에 내 부산쪽 테러 일어나고 보니까, 민간인 피해는 진짜 거의 없더라고. 그럼 걔를 굳이 그렇게 신경쓸 필요가 있을까?"

"...그래도, 테러범인데."

"물론 그렇지만, 우리는 히어로잖아. 우리가 히어로로 활동하는 이유가 뭐야. 다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서 아니야? 그러니까 굳이 민간인 피해가 적은 에고스틱에 집중하기 보다는, 다른 빌런들에 더 집중하는게 어떨까 싶어."

"....."

그건 아닌거같은데...

신하루가 열심히 머릿속에서 반박거리를 떠올리고 있을 때, 설아가 일침을 가했다.

"네가 요즘 너무 에고스틱만 신경쓰는거 같아. 저번에도... 그랬고. 사실 에고스틱과 너가 서로 숙적? 비슷한 관계인건 알겠지만, 걔만 너무 신경쓰는 것도 안좋을꺼 같아."

그런 설아의 말에 살짝 찔린 하루는, 딱히 반박하지는 않고 조용히 빙수나 한입 더 먹었다. 자신이 부산까지 내려간거는 좀 오바했던게 맞으니, 딱히 반박하기도 그렇긴 하고.

그리고 그런 그녀의 기색을 읽은건지, 설아는 계속해서 말하기 시작했다.

에고스틱은 어차피 테러도 가끔 하는데, 그냥 그때만 신경쓰고 없을때는 딱히 경계 안해도 되지 않냐.

민간인 피해도 없는 빌런을 과도하게 잡으려고 모든 힘을 쏟아붓는건 낭비다.

길게 말한 그녀의 결론은, 에고스틱에만 너무 집중하지 말라는 거였다. 테러 주기도 길고 민간인 피해도 없으니까.

"....."

그런 설아의 말을 듣고, 솔직히 하루는 잘 공감하지 못했다. 애초에 에고스틱이 하는 행동들을 보면, 그를 신경쓰지 않는다는게 말이 되나?

근데 그것과는 별개로, 하루 자신이 에고스틱에 대해 너무 깊게 신경쓰고 있기는 했다. 설아가 거기까지 알고 해준 말은 아니겠지만.

최근들어 무슨 테러 속보만 올라오면 에고스틱인가?라는 생각이 제일 먼저 드니.

...그래. 어쩌면. 설아의 말대로 에고스틱에 관해서 지금보다는 조금 덜 신경쓰는 것이 맞을수도 있다. 솔직히 요즈음은 거의 빌런하면 에고스틱에 대해서만 생각하니. 다른 빌런들도 많은데.

그래서 하루는, 일단 알았다고 답해주었다.

"그래. 잘생각했어. 너무 한명한테만 매달리면 스트레스 받고 그러는거야."

그렇게 말하며 흐뭇하게 웃는 이설아.

그리고 그런 그녀를 보며, 하루는.

왜인지 모를 불편함을 느꼈다.

"응...."

저번에 에고스틱 앞에서 웃으며 떠드는 이설아를 본 이후로 느낀, 어떠한 직감.

그리고 사실. 오늘 만나고 나서 더욱더 커진 의심.

설아가 뭔가를 자신으로부터 숨기고 있다는 의심과, 저렇게 말하는 것도 다른 이유가 있을거 같다는 직감.

그러나 아무 근거도 없이 그러한 의심을 하는건 그저 억측일 뿐이기에, 하루는 그런 자신의 추측을 부정했다.

...그래. 친구로써, 그냥 자신에게 조언해 준거겠지. 에고스틱에 너무 과하게 매달리는 것도 보기 안좋으니까. 설아가 자신이 에고스틱이랑 멀어진다고 이득보는게 뭐가있다고.

설아는 자신의 친구니까, 그냥 자신을 위해 조언해 준것일 뿐이다. 다른 이유가 있을리 없다.

그렇게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린 하루는, 불안과 의심을 가슴한켠에 고이 묻고, 설아의 말대로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래. 이제 에고스틱에 대한 과도한 생각은 그만두자.

자신의 앞에서 여전히 미소짓고있는 설아를 보며, 하루도 그냥 작게 웃어주었다.

...여전히, 무언가 찝찝함은 조금 남겨둔 채.

***

하루가 떠난 후.

홀로 남은 이설아는, 의자에 기대어 에고스틱에게 작은 사과를 속으로 건냈다.

...미안해요, 다인씨. 근데 당신은 스타더스랑 친해지라고만 했지, 어떠한 방법으로 그러라고는 말 안했잖아?

작게 미소지은 그녀는, 남은 찻잔을 기울였다.

...사실, 자신은 알고있다. 에고스틱이 과하게 스타더스를 신경쓴다는 것을. 그리고 신하루 그녀또한, 최근들어 점점 에고스틱에 신경쓰기 시작한다는 것을.

그리고 그러다가, 둘의 관계가 너무 가까워지면? 하루가 에고스틱 그의 비밀을 알게되어 히어로와 빌런의 적대관계를 넘어, 마치 자신과 그의 관계처럼 되어버린다면?

...그건 별로 좋은일이 아니다. 둘은, 계속 적으로 남아있는게 좋다.

이설아 그녀는, 한번 점찍어둔것은 절대 빼앗기지 않는 그런 종류의 사람이었으니까.

그렇기에. 이번 기회에 하루가 에고스틱을 과하게 신경쓰고 있다는 점을 콕찝어, 거의 세뇌하듯 에고스틱에 대한 의심과 집착을 버리라고 반복해서 말해줬다. 하루는 원래 설아 자신의 말은 예전부터 잘 들었으니까.

마지막에 보니 어느정도 먹힌 눈치기에, 설아는 안심했다.

...어차피 다인 그가 올해는 테러를 안일으킬거라고 말한만큼, 계속 그를 기다리는것도 하루에게 안좋을것이다.

앞으로도 하루와 만날때마다 에고스틱 생각은 그만하라고 반복적으로 말해줘야겠다. 그게 다 하루를 위해서니까.

그런 생각을 하던 설아는, 다인이 올해 더이상 테러를 하지 않을거라고 했던 그말을 다시 상기해봤다.

...그때, 그렇게 말하는 그의 표정은 분명, 그때까지 휴식을 한다기 보다는 무언가 대비한다는 것처럼 느껴졌다.

살짝 굳었던 얼굴과, 한톤 낮았던 목소리.

사업가의 눈으로 그런 그의 태도를 파악한 설아는, 그저 추측만 할 뿐이었다.

...대체 내년에 무슨 일이 벌어질 것이기에, 그 말을 한 순간 그의 표정이 살짝 굳었을까?

***

"신도 여러분, 대교주님의 말씀이 있겠습니다."

어둔운 공간.

그곳에서, 늙은이의 쇳소리가 강당을 가득 울렸다.

"에...우리 자랑스러운 월광교인 여러분. 오늘도 영원한 달이 강림하기를 기다립니다."

"드디어 세계에 우리의 빛나는 달을 선보일 날이 머지 안남았습니다."

"타천사들과 소악마들이 지배하는 이 세상을, 달빛으로 정화시킬 날이! 우리의 믿음을 보여줄 날이! 드디어 잡혔습니다 여러분!"

"다음해 밤하늘을 커다란 달이 채우는, 월신(月神)님이 오셔 제일 음기(陰氣)가 강할 그날! 달의 무녀가 직접 저 우매한 배교도들에게 징벌을! 내릴것입니다!"

"월광(月光)이여, 영원하라!"

"""""월광! 월광! 월광! 월광!"""""

노인의 말을 끝으로, 수천명이 내지르는 함성이 그 공간을 가득 울리며.

그곳의 벽에 붙어있는 보라색빛의 촛불만이, 바람에 맞어 넉없이 흐트러질 뿐이었다.

서울 어딘가, 아무도 모르는 장소에서.

멸망의 기운이,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었다.

***

"슬슬 그 새끼들 지랄 시작하겠구만."

[이봐 다인. 갑자기 무슨 소린가?]

"그런게 있어."

대한민국을 넘어 전세계에 멸망을 바라는 사이비종교 놈들.

아마 슬슬 그놈들도, 나설 준비를 하기 시작할거다.

"하... 이놈의 피폐 트리거 가득한 세상. 빨리 다 치우고 은퇴하던가 해야지."

무슨 한방에 세계를 피폐물로 만드는 애들이 잡초처럼 뽑아도 뽑아도 튀어나오냐...

힘들어 죽겠네.

나는 그런 의미로 스타더스 팬카페나 들어갔다.

힐링할 방법은.... 이것밖에 없어....!!

[다인. 자네는 왜 대체 그 여자만 맨날 찾아보는건가?]

데식이의 말은 가뿐히 무시했다.

내 유일한 취미생활에 태클걸지 않아줬으면 좋겠어.

제 103화

화마법진

[뉴스입니다. 오늘 서울 도심 지하철역에 테러리스트가 등장하여 시민들을 혼란에 빠트리는 일이 있었죠. 다행히 히어로 스타더스가 제때 등장해 사상자없이 범인을 검거했다고 합니다. 자세한 소식 남상민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우리 에고스트림이 임시휴업 했다고 해서, 대한민국이 평온해지는건 결코 아니다.

애초에 이제 원작에 초반부를 확실히 벗어난 만큼, 중반부로 진입하는 시기기에 본격적으로 빌런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원작대로라면 지금쯤 스타더스는 이리 구르고 저리 구르며 피폐물을 찍고 있어야 겠지만... 어, 내가 너무 강화시켜 놔서인지 다른 빌런들을 쉽게쉽게 잡는 모습이다.

사실상 이제 내 에고스트림 말고는 스타더스의 적수가 없어보이는 상황.

사실 정말 강한 빌런들은 내가 미리 영입하던가 제거하는 만큼, 남은 애들은 당연히 어중이 떠중이들 일수밖에 없다. 그만큼 내 빌런연합에 있는 이들은 보석같은 알짜배기라 할 수 있다.

원작 만화에서도 특별히 강해 스타더스를 압박하며, 다른 빌런들과는 다른 유니크함을 가진 그들은 지금 뭘하고 있냐.

"서은아, 세희야. 대체 누가 밥을 먹을때 콩을 그렇게 가려먹니? 하율이랑 차윤이 봐봐, 이렇게 먹어야지."

밥먹을때 콩을 가려먹고 있다고 혼나고 있다.

슬픈 눈으로 그릇 한쪽에 모아둔 콩을 주워먹고 있는 저 둘. 아니, 서은이는 그렇다고 쳐도 최세희 쟤는 그나이먹고 콩을 가려먹으면 어떡해?

....물론 나는 밥을 덜때 처음부터 콩을 적게 덜어 저런 불상사를 피할 수 있었다. 콩은 못참지.

하여튼 이렇게 평범해 보이는 식탁이지만, 여기 있는 인원들은 정말 다들 범상치가 않다.

일단 나만 해도 미래에 일어날 모든 일을 알고있는 사람이요, 내 옆에서 콩을 꾸역꾸역 먹고있는 서은이는 천재 해커, 최세희는 A급 빌런이다.

거기에 맞은편에 앉아있는 하율이는 대한민국에는 하나뿐인 힐러.

수빈씨야 혼자서 컴퓨터도 하고 온갖 운송수단은 다 조작할 수 있는 만능이고, 저 뒤에서 마당 쓸고있는 데스나이트만해도 원작에선 S급 빌런이었다.

정말 지금만 보더라도 가슴이 웅장해지는 라인업.

심지어 협력관계를 맺고있는 덩굴마녀나 레피스단도 껴보면, 음. 역시 내가 이 세계에서 지금까지 한게 헛된게 아닌거같다. 이런 세상에서는 무조건 사람이 제일 중요하거든. 특별한 사람이.

"다 먹었습니다!"

"나도."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밥을 비우고서는 일어나는 서은이와 최세희.

"오빠. 오늘 밤에 나간다고 했죠?"

"어."

"그럼 난 그때까지 세희언니랑 지하실에 있을께요. 그때 불러요!"

"어. 그래라."

거기까지 말하고는, 부리나케 지하실 쪽으로 달려가는 둘이다.

"하아... 쟤들은 언제까지 저럴건지."

그런 모습을 보며 한숨을 푹 내쉬는 수빈씨.

그럴만도 하다. 저 둘은 저번부터 거의 매일같이 지하실에 박혀있으니. 밥먹는 시간빼고는 뭔가를 뚝딱뚝딱 만들고 있다.

...처음에는 그냥 어련히 잘하겠지 하고 냅뒀는데, 점점 시간이 길어지니 나도 의구심이 들기는 한다. 특히 수빈씨한테도 숨기고 둘이서만 쑥덕쑥덕하니 의구심이 날로 커지는 중.

그래도 뭐, 일단은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솔직히 저렇게 대놓고 뭔가를 꾸미는데 이상한걸 만들고 있겠어? 아마 서프라이즈로 뭔가 유용한걸 만들어 줄거라 기대하고 있다.

"잘먹었습니다!"

밥을 다먹은 차윤이. 일어나자마자 마당으로 나가 청소하는 데스나이트를 돕는 참으로 착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근데 사실. 데식이 쟤는 저기 굳이 청소할 필요도 없는걸 반지안에만 있는건 갑갑하다며 뛰쳐나온거라...

그래도 뭐. 둘이 친해진거 같으니 다행이지.

그렇게 식탁에 남은건 수빈씨와 나, 그리고 이제 고3이라 그런지 얼굴이 퀭해진 하율이었다.

"하율아. 요즘 공부는 잘돼가?"

"으으... 말도 마세요. 쉽지 않네요..."

점차 수능이 가까워지자 부쩍이나 피곤해보이는 하율이다. 하긴. 그전까지는 공부랑 거의 담을 쌓고 살았을텐데 이제와서 하기가 쉽지 않겠지.

그래도 서울대 나온 수빈씨가 도와주고 있으니 최소한 어느정도는 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든다.

이 집에 같이 사는 한명한명을 돌아본 나는,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모든걸 스타더스를 위해 바치기로 결심하고, 멸망을 막는 미래만을 생각하며 달려온 나날이지만.

한명 한명 계속 모으다니보니, 이제는 내 곁에도 나를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아졌다.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이설아도 떠올리게 되었다.

....걔도 나를 좀 마음에 들어하는거 같던데.

사실 왜인지도 잘 모르겠다. 그냥 선물해준 정보들이 마음에 들어서 그런건가? 워낙 야망이 넘치는 이설아다 보니 그런걸 수도 있다.

다만 내가 걔에 대해서는 확실히 아는게 없는만큼, 조금 관계를 조심히 쌓고있기는 하다.

그래도 너무 호의적이기에 이름까지는 알려줬더니, 요즘은 집에 놀러가게 해달라고 징징거려서 큰 문제다.

...아마 다음 메인이벤트 이후로는 한번 초대해줘도 될거같기도 하고. 솔직히 그때가되면 나를 어느정도 배신할 생각은 안할거라 기대한다.

하여튼,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지.

이제는 내년 초에 일어날 또다른 메인 이벤트를 준비해야한다.

월광교 놈들이 일으킬 그짓을 막기위해.

***

월광교(月光敎).

다른 차원에 있는 달의 신이 세계에 강림해 이 세상을 정리하고 신세계로 만들거라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믿는 사이비 종교다.

....라고 말하고 싶기는 하나. 문제는 저게 어느정도 맞는 말이라는거다. 실제로 달의 뭐시기 신 비스무리한게 있기는 하거든. 거기에 다른 차원 같은것도 실제로 있고. 원작 세계관이 이모양이다.

결론적으로 이들은 달의 신을 직접 강림시켜 이 세계를 멸망시키려고 하는 미친놈들이다. 특히 그 교주놈이 제정신이 아니기도 하고.

원작에서 한은그룹 놈들이 1페이즈의 메인빌런이었다면, 그 이후 이 월광교놈들이 이번 2페이즈의 메인 빌런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중반부터 달의 무녀라는, 역대급으로 약점이 전혀 없는 여자를 앞세워서 안그래도 한은그룹 놈들때문에 반쯤 망한 서울을 확실히 망쳐놓는다. 그것도 여러번에 걸쳐.

당연히 스타더스가 막으려고 애썼지만, 지금의 스타더스로도 못이길 걔를 원작의 스타더스가 이길수 있을리 만무. 온갖 마법진과 달의 마법이라는 특수한 힘으로 무장한 그놈들은 막강했다. 스타더스가 겨우겨우 무찌를 방법을 알고 보내버렸을 때는, 이미 서울이 망했을 정도로.

거기다가 이놈들의 악랄함은 차원을 찢어버려 이차원의 괴물들이 지구로 쏟아지기 시작했다는 건데, 그건 지금 당장 급한 문제는 아니다. 문제는 바로 몇개월뒤에 달의 무녀가 첫번째 테러를 저지른다는 거지.

그래.

당장 몇달 후. 서울 한복판에서 대규모 테러가 일어난다.

월광교의 달의 무녀라는 여자가 일으키는, 첫번째 테러.

처음을 시작으로 거의 열번에 가까운 테러를 하는 그녀는, 혼자 몇번의 테러로 서울을 완전히 망가트리는데 성공한다. 마법적인 폭풍과도 같은걸 서울 한복판에 일으켜서.

왜 히어로들이 바로 처음부터 걔를 막지 못했냐고 하면 단순하다.

바로 테러에 앞서 몇달, 몇년전부터 월광교 애들이 서울에 깔아둔 마법진들 때문.

자신들의 달의 마법을 일으키는 마법진부터 히어로들의 능력을 약화시키는 마법진에 가까이 다가오면 기억을 잃게 만드는 마법진 등, 아주 도핑빨로 그 누구도 막을 수 없게 철저한 준비로 서울을 붕괴시킨다.

그걸 나중에서야 안 협회가 결국 마법진이 안그려진 곳으로 달의 무녀를 몰아서 죽이는데 성공하긴 하지만... 그때가서는 너무 늦었다. 이미 서울은 망했는걸.

그러니까, 그 마법진에 대한 준비는 미리 해둬야 한다는거다. 누가? 내가.

그런 이유로 지금 이 늦은 시각에, 나는 서울의 거리 한복판에 서있다. 서은이와 최세희랑 함께.

"그러니까, 뭘 찾는다고?"

"마법진."

"마법진?"

무슨 뜬금없는 소리냐는 듯 얼굴을 찌푸리는 최세희.

나는 그런 그녀에게, 초보자도 알 수 있게 친절히 설명해줬다.

"이 지역 전반에 걸쳐, 위성사진으로 봐야 보일 정도로 커다란 마법진이 그려져있어. 그리고 엄, 그걸 우리가 찾아야돼."

"....마법진이 뭔데요 오빠?"

옆에서 비슷하게 알쏭달쏭 해보이는 서은이.

마법진이라...

"그냥 일종의 초능력인데, 발동시키면 그 마법진이 그려진 동네에 일종의 버프가 걸린다고 보면 돼."

사실 초능력은 아니다. 이건 달이랑 관련된 마법이고, 초능력은 완전히 다른 범주기 때문.

근데 여기서 해와 달과 별에대한 종교적 얘기를 줄줄이 설명해주기는 곤란하니, 그냥 그렇게 얘기하기로 했다.

"그걸 누가 그렸다고요?"

"월광교라고, 곧 여기서 테러를 일으킬 놈들이라 마법진을 그려놨을거야. 그걸 미리 찾아놔야돼."

"...아니, 그건 히어로들이 해야되는거 아니에요?저희같은 빌런이 아니라?"

"이제와서 그걸 따지기는 무의미하지 않니? 그냥 찾아보자. 원의 테두리를 찾으면 돼. 너무 커서 선처럼 보이겠지만."

"근데 지금 밤인데? 그게 보일까?"

"사람이 없으니까 오히려 좋아. 그리고 서은아, 가져왔지? 그래. 이거 끼면 밝게 빛나는거 찾으면 되니까 더 쉬울거야.."

모두에게 야간투시 안경을 준 나는, 슬슬 시간이 되어서 외쳤다.

"자, 출발!"

"...이걸로 찾을 수 있나 싶어요."

서은이의 투덜거림을 뒤로하고, 우리는 수색에 나섰다.

도시 한복판에서 마법진을 찾아서.

...이거, 오늘내에 하나라도 찾을수는 있으려나.

***

그리고 얼마 뒤.

[오빠, 비슷한거 찾은거 같은데요?]

"진짜? 어디보자."

서은이의 말에 그쪽으로 달려간 나는, 이내 드디어 찾고 말았다.

흙바닥에 길게, 마치 낙서처럼 쭉 뻗어져있는 미묘하게 기울어진 선. 그리고 그 안에 있는 특수한 기호들까지.

"그래! 내가 지금쯤이면 놈들이 만들어놨을 줄 알았지! 잘했다 서은아!"

"꺅! 오빠 내려줘요오오오오."

서은이를 번쩍들고 공중에서 몇번 돌려준 나는, 헤롱헤롱해하는 애를 뒤로하고 마법진의 기호를 분석해봤다.

이 삼각형 안의 역삼각형이 아마...히어로들 능력을 억제시키는 장치였던거 같은데.

"좋아! 이제 몇개만 더 찾으면 된다. 힘내자!"

"아니. 이게 끝이 아니였어?"

어. 좀 많아.

걔네들이 도핑을 좋아해가지고.

그렇게 우리는 몇날 며칠에 걸쳐 서울을 수색해, 커다랗게 그려진 마법진 몇개를 더 찾아냈다.

"....솔직히 제가 봤을때 스타더스 걔는 오빠한테 절해야 해요. 완전 그 여자가 해야할 거 오빠가 다해주고 있잖아."

"하하."

나는 투덜거리는 서은이의 머리를 조용히 쓰다듬어줄 뿐이었다.

그렇게 슬슬.

다음 메인 이벤트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스타더스고 아이시클이고 심지어 밤에 일어남에도 불구하고 섀도우워커마저 속수무책으로 당하는, 그 날이.

그리고 동시에 에고스틱 라이브방송 복귀일일 그날 말이다.

제 104화

화히어로는 강하게 키우는 것이다

월광교주(月光敎主) 천월황(泉月黃).

달의 신을 믿는 월광교를 창시한 교주로, 새로운 차원을 지구와 연결해 이세계의 신과 괴물들을 불러 현재의 지구를 정리하고 신세계를 만들려는 인물이다.

원작에서는 달의 무녀를 시켜 서울을 쑥대밭으로 만들어 자신의 인지도를 높인 뒤, 기어이 연구끝에 차원문을 열어 이차원의 괴물을 강림시킨다.

그리고 그 시발점이 달의 무녀의 첫번째 테러.

그 이후로도 몇번에 걸쳐 수없이 월광교주의 손에 이용당해 테러를 한 그녀는, 끝내 마지막에 스타더스의 손에 사망하게 된다.

그리고 이장면에서 달의 무녀의 비밀이 밝혀지게 되는데.

그녀또한, 월광교주의 손에 이용당한 피해자였을 뿐이었다는 것.

'쿨럭. 그냥, 죽여주세요....'

매번 그녀가 일으킨 마법의 폭풍에 가까이 접근조차 못하던 스타더스는, 마지막에서야 모든 디버프 마법진을 파괴하고 폭풍의 눈 한가운데 도착한다.

그리고 그 가운데 있던 사람은, 월광교주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던 달의 무녀였다.

자신은 사람들을 해치고 싶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월광교주에 의해 지금껏 테러를 해온 그녀는 끝내 스타더스에게 자신을 죽여달라고, 자신을 죽여야만 이 모든일이 끝난다고 말한다.

그 결과 스타더스가 끝내 그녀를 죽이며, 서울을 반파시킨 테러는 마침내 끝이 난다.

그리고 그렇게 달의 무녀가 죽었다는걸 들은 월광교주의 반응은.

'그래? 그럼 이제 서울 외 지역까지는 정복하지 못하겠군.'

이였다고 한다.

애초에 달의 무녀, 그녀를 한번도 사람으로 대한 적 없이 그저 생체병기로 다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

하여튼, 이 에피소드는 팬들로부터 가장 큰 비판을 받은 것들 중 하나다.

히어로들은 아무것도 못한채 무력하게 썰리고, 심지어 달의무녀는 한번도 아니고 두번 세번 네번 다섯번 끝도없이 나오며, 심지어 결말마저 찝찝하다. 서울은 이미 망했고 달의 무녀는 불쌍하게 죽었으며 월광교는 버젓이 잘 살아있다. 거기에 주인공인 스타더스는 에피소드가 진행되는 내내 무력하다가 마지막에는 그냥 우울증에 빠지는 등, 팬들을 각혈하게 하는 고구마가 한 가득이었기 때문.

그래도 나름 마지막에 서울을 다시 재건한다는 희망찬 모습으로 끝났으나, 그뿐.

읽는 내내 눈물만 나오는 에피소드였다 이말이다.

차라리 전에 한은그룹 거대병기 에피소드는 이슈 몇권으로 끝나기라도 했지, 이 에피소드는 십몇권 잡아먹었다. 무려 몇달 내내 스타더스가 구르는 것만 봤다고. 스타더스의 팬으로써 눈물이 마를 일 없는 나날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얘기가 좀 다르지.

"오빠, 이 마법진들은 어쩔거에요?"

"일단은 그냥 냅두자."

원작에서는 협회가 미국에 사정사정해서 아메리칸 엑소시스트 데려와서 없애버렸지만.

다만 나한테는 국내 협력인원이 있다.

덩굴마녀씨. 당신만 믿겠습니다.....!!

그렇게 달의 무녀 공략에 가장 필요한 조건인, 마법진들의 위치까지 밝혀낸 나는 한시름 놨다.

이거까지 족치고 나면 한동안 피폐 트리거는 피한거지? 그런거지?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제일 중요한게 있다.

바로 달의 무녀, 그녀를 웬만하면 내가 데려가는 것.

"...."

원작에서 그녀가 스타더스한테 자신을 죽여달라고 말할 때, 눈물 콧물 한바가지 쏟은 나로써는 당연한 얘기다. 걔는 좀 행복해질 필요가 있어...!!

일단 나한테는 신의 힐러 이하율이 있으니 월광교주가 그녀한테 걸어놓은 저주도 어느정도 해결이 될거다.

***

그렇게 이런 저런 준비를 하다보니, 시간이 순식간에 흘렀다.

마법진에 대한 준비도 거의 다 끝났다. 전부 주술적으로 조작해 모든 기능에 나를 예외처리 하는 식으로. 나혼자만 치트모드라는게 이런건가?

일단은 나만 예외로 처리했다. 혹시 모르니까.

물론 이 동안도 온갖 빌런들이 서울에 쏟아져나왔지만, 전부 다 한방에 끝나버렸다.

아니 스타더스가 내 예상보다 훨씬 강해져서, 그냥 어떤 빌런이든 공평하게 한방에 잡고있다고.

아니, 스타더스가 너무 힘겨워하는걸 보고 싶은게 아니었긴 하지만. 이정도는 예상하지 못했다.

...저러면, 그냥 히어로로써 무뎌질텐데.

어느정도 독기가 있어야되는 법인데, 요즘보면 그냥 먼치킨 주인공이 되어버린 스타더스를 보며 나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이대로는 안된다. 긴장감이라는게 없잖아.

...그래. 아무래도 다음엔...

그렇게 이런저런 생각을 해가며 준비하고 스타더스 팬카페도 관리하면서 시간을 보내는 등 오랜만에 일상을 즐겼다.

그러다보니 벌써 그날이 다가왔다.

"잘보고 와라."

"네 다인오빠."

"하율아. 다 챙겼어? 뭐 빠트린거 없지? 수험표 다시 확인해봐. 신분증이랑. 시계도 챙겼지?"

"네 언니. 다 챙겼어요."

하율이가 수능을 보러 갔다왔다.

...솔직히 말해서 이 세계에 대학이 무슨 의미가 있고, 또 수능 점수도 그냥 해킹할 수 있는데 굳이 이렇게 고생할 필요가 있나 싶었지만, 하율이가 자기 손으로 무언가를 한번 이루고 싶다고 해서 원하는대로 해줬다.

결과는 뭐 평소 실력만큼 나왔다. 평소 실력보다 야악간 높게. 수능끝난 날은 다들 모여 축하파티를 했다.

그렇게 평범하지만 원래 세계관이 어땠는지를 생각하면 꽤나 소중한, 그런 시간을 가졌다.

"오빠. 편안해요?"

"어. 좋다."

"근데 오빠 팬들은 별로 편안해 보이지 않던데요."

*

[에고스틱<<<언제옴??????]

더이상의 분노를 참을 수 없다.

지금 하는걸 봐서는 4분기에도 안올거 같다. 내년에나 올거같다고

대체 평균 테러주기가 4.2개월인게 말이 되는가?

당장 망고스틱을 대려와서 매주 테러를 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댓글]=

[ㅇㅈ합니다]

[지지합니다...이자를, 국회로~~!]

ㄴ[틀익 2점]

[ㄹㅇㅋㅋ 주간 테러 ㅇㄷ?]

[이거 경찰에 제보하면 이 카페 사람들 전부 국가내란죄로 체포된다네요ㄷㄷ]

ㄴ[국내 반역자 모임 카페ㄷㄷ]

[그것보다 테러가 없으니까 하루종일 아이스망고vs스타더스 얘기만 하는게 문제임...]

ㄴ[정실은 아이스망고다]

ㄴ[아닌데 별먼지인데?]

ㄴ[첩스타단ㅋㅋㅋ]

ㄴ[에고트라단은 다 죽었냐? ㅅㅂㅜㅜ]

ㄴ[일렉트라가 뭔데 씹덕아]

ㄴ[ㅅㅂ내 댓글에서 싸우지마 무친련들아]

*

"...서은아. 대체 그건 왜보는거니? 제발 그만봐."

"싫어요. 에고스트림 소속 천재 해커랑 관련된 얘기가 나올때까지 계속 볼거에요."

"....그렇지만, 그게 나올리가 없잖아?"

애초에 서은아, 너는 한번도 방송에 얼굴 비춘적도 없는걸?

내가 그렇게 말하자, 점차 부풀어지는 서은이의 볼.

"그러니까, 그게 문제에요! 제가 오빠곁에 제일 오래 있었는데, 사람들이 저만 모르는게 말이 되요?

"서은아... 이게 꼭 대중한테 노출되는게 좋은 것만은 아니야."

"됐어요. 지금 제가 만들고있는... 아니, 아니에요. 어쨌든 나중에 두고봐요."

거기까지 말한 서은이는 지하실로 내려갔다.

뭔데? 뭘만드는건데? 나 너무 불안해.

거기에 몇주 후 상쾌해진 얼굴로 지하실에서 나온 뒤, 더이상 지하실에 들어가지 않는 서은이를 보니 불안감은 부쩍 커졌다. 대체 뭘만든거야?

물어봐도 월광교 사태가 마무리되고 나서야 말해주겠다는 말만 들었을 뿐이다. 불길하단 말이지...

하여튼 시간이 흘러, 해가 바뀌었다.

서늘하던 가을은 어느새 두꺼운 옷 없이는 나갈 수도 없는 겨울이 되었고.

그리고 곧.

월광교의 첫번째 테러가 다가올 날이 되었다.

"협회장에게. 첫눈이 내리는 날, 서울 시내에 테러가 있을 예정입니다. 미리 준비시켰다가 대피시켜 주시길 바랍니다.... 자. 이렇게 쓰면 되겠지."

"야. 대체 누가 요즘 편지를 쓰냐?"

"어허. 이건 편지가 아니라 밀서야 밀서."

자고로 밀서란 익명으로 보내야 의미가 있는 법.

대충 이렇게 쓰고 협회에 보내면, 어지간해서는 주의를 할거다. 장난편지라고 생각하지 않는 이상은.

사실 내 이름을 팔면 바로 먹히긴 할텐데, 솔직히 내가 월광교의 테러 날짜까지 맞추면 좀 이상하잖아? 그래서 그냥 이런식으로 보낸거다. 나중가면 어련히 알아서 자기들끼리 내부고발이었다고 생각하겠지 뭐.

하여튼, 나는 기다렸다.

원작에서 나왔던, '첫눈이 내린 날 월광교가 일으킨 첫번째 테러.' 거기서 언급된, 첫 눈이 오는 날을.

그리고, 마침내.

서울에 눈이 내리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모두 첫눈을 기념했고.

그렇게 그날 저녁.

콰아아아아아앙.

드디어, 테러가 벌어졌다.

***

[현재 서울시내 한복판에 원인을 알 수 없는 기현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거대한 분홍빛의 토네이도 같은것이 서울 시내 한복판을 차지하고 있는 와중에, 스타더스와 아이시클, 섀도우워커마저 가세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뚫는데 곤경을 겪고있다고 합니다!]

대한민국 히어로들이 총출동한, 희귀하게도 밤에 일어난 테러.

평소에는 섀도우워커에 의해 한방에 진압되는 테러지만, 이번에는 그뿐만이 아닌 나머지 2명이 붙었음에도 전혀 막지를 못하고 있다.

"오빠. 저기 난리났는데 안가봐요?"

"야. 너 뭐 마법진인가 뭔가 저거 막으려고 알아놨던거 아니였어?"

산골짜기 어딘가, 에고스틱내 큰집.

티비에서는 서울에서 벌어진 테러를 다루는 와중에, 서은이와 최세희가 소파에 누워있는 나를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바라보았다.

"아 그거. 난 이번에 나서는거 아니야."

나는 여전히 소파에 누운 채 그렇게 말해주었다.

아니, 그 생각해보니까 첫 테러부터 내가 나서면 달의 무녀가 죄책감 느낄 틈도 없겠더라고.

그러니까 좀 때려부스고 한 두세번째에 나서야? 달의 무녀를 꼬시는게 좀 더 쉽지 않을까?

그리고...

"스타더스도 이번 기회에, 나말고도 상대하기 힘든 적을 만나봐야지."

어차피 스타더스는 지금 실력으로 쟤를 못이긴다. 그것도 온갖 마법진 효과가 살아있는 상태에선.

그러니 이번 기회에 스타더스의 능력뿐만 아니라 정신력도 조금, 아주 조금은 성장시켜야 겠다고 결정했다.

요즘 보니까 빌런들을 거의 주먹 한방에 해결하는게, 이러다가는 '시시해졌다.' 이러면서 나태해질수도 있다고.

솔직히 그녀 기준으로 상대하기 힘들었던건 마지막 비행기 테러때가 유일하지 않았나?

그러니까. 지금까지 내가 원작에 비해 극단적으로 절망을 느낄만한 요소를 줄였으니까. 이번에만.

"하루야... 딱 한번. 아니 두번만, 좀 이길 수 없는 적을 상대해보자."

좌절감이 히어로를 키우는 것이다!

딱 한번만... 굳세어라.... 스타더스!

"미안하다..."

아니 근데 한번정도는 견딜 수 있을꺼야.

나는 우리 스타더스 믿어!

***

"아니! 내 어둠능력이, 왜 안통하는거야!!!"

"하아, 섀도우. 좀, 좀 조용히 해봐요. 헉... 헉. 와. 큰일났네. 어쩌지... 어? 하루야, 너 울어?"

"...."

제 105화

화그녀의 절망

에고스틱의 빌런연합 소속인 데스나이트와 마지막으로 싸운 이후.

스타더스, 신하루는. 나름대로 평온한 삶을 보내고 있었다.

'내 이름은 파프리카나! 너를 파프리카로 만들어주으아아아아아악!!!'

가끔씩 튀어나오는 쫄쫄이 입은 정신병자들은, 주먹 한방으로 처리해주고.

'제 이름은 셀레스티언. 스타더스, 당신을 쓰러트리러 왔습니다. 후후, 당신을 여기서 꺾어드리죠!'

...

'....흑흑, 죄송합니다. 살려주세요... 아악! 때리지마세요! 이거 과잉집행이야!'

특수한 능력을 가진 채 덤벼오는 빌런들도, 전부 공평하게 주먹 한방에 처리하며.

"....."

그렇게 아무 무리없이 기계처럼 빌런을 제거하며 사는, 평온한 삶을 살고 있었다.

"...하아."

....그리고 그녀는 그런 일상이 반복되며.

점점 자신이, 무뎌지는걸 느꼈다.

[A급 빌런 에고스틱의 빌런연합이 마지막으로 데스나이트를 출범시킨 이후, 다시 한동안 잠행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이제 전문가들 사이에선 에고스트림은 분기당 한번씩 테러를 일으킨다는게 정설이 되었는데요. 철규씨, 올해 안에 에고스틱이 테러를 일으킬거라고 보시나요?]

[아, 그건 예측할 수 없지요. 사실 매분기테러도 그저 네티즌들 사이에서 근거없이 떠도는 낭설이거든요 이게. 사실 에고스틱이 일으키는 테러를 보면 굉장히 불규칙적입니다. 다만, 지금까지 그의 테러 주기를 보면 이런 패턴은 확실히 존재하긴 합니다.]

[그게 뭔가요?]

[바로 너무 오래 방송에 나오지 않았다면, 슬슬 잊혀지기 시작할때쯤 다시 빵! 하고 나온다는겁니다. 그리고 그가 판단하는 오랜시기라는게 대략 3개월에서 4개월 사이로 추정되고요. 즉, 언제 올지는 모른다. 단, 대략 삼사개월동안 오지 않았다면 그때는 무조건 나온다 이겁니다.]

[아하. 그러니까 테러가 일주일 간격으로 일어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직전 테러와 비교해 4개월을 넘기진 않는다는 건가요?]

[바로 그겁니다. 그리고 여기서 주목할점은, 그게 꼭 테러는 아니라는겁니다. 자기의 빌런 소개든, 아니면 다른 빌런의 테러를 인터셉트하는 방식이든 어떠한 방법으로도 등장할 수 있죠.]

[결론적으로 저희가 확실히 에고스틱은 이전에 볼 수 있다! 라는 시기는 언제인가요?]

[올해 말이나 내년 초. 그전에는 오고, 그때까지 오지 않는다면 그 시기에는 무조건 나올겁니다.]

삑-

티비에서도 가끔씩 흘러나오는 에고스틱의 이야기.

그리고 그의 이야기가 나올 때면, 하루는 조용히 채널을 돌렸다.

...사실 나오자마자 돌렸다기에는 볼거 다보고 채널을 바꾸기는 했지만, 아무튼.

그녀는 요즘 잡빌런들을 처리해가며, 의도적으로 에고스틱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그런 자신의 의지를 대변하듯, 그녀는 최근들어 단 한번도 에고스틱의 팬카페에 들어가지 않았다.

"..."

물론, 이제는 습관이 되어 자기도 모르게 북마크를 눌러 들어갈 때도 있었지만. 그때도 인기글만 한번 슥 훑어보고 나올뿐 다른 일은 하지 않았다.

'하루야. 너 너무 에고스틱에만 몰두하는거 아니야?'

자신의 친구 이설아가 해줬던 말을 듣고 그녀가 깨달은 것.

그래. 자신이 지금까지 너무 에고스틱에 대해서만 생각하고 있었다. 일상생활에 지장이 갈 정도로.

사실 따지고 보자면 그도 하나의 빌런.

세상에 빌런이 얼마나 많은데, 테러 하고 있지도 않는 빌런이 지금쯤 뭘하고 있을지 생각하는건 시간낭비일 뿐.

그렇게 그녀는 에고스틱에 대한 생각을 줄여나갔다.

그는 테러를 안할때 무엇을 하고 있을까, 라는 생각도.

그의 이름은 무엇이고, 평소에는 어떻게 지낼까, 라는 생각도.

대체 어째서 테러를 일으키는 것일까, 라는 생각도.

왜 처음부터 그렇게 자신만을 콕찝어서 테러를 한걸까, 라는 생각도.

왜 빌런이면서 신하루 자신을 응원하고, 또 자신을 위해서 몸을 던지는지도.

전부, 전부.

그녀의 마음 속 깊은 곳에 꽁꽁 묶어서, 더이상 생각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는 지금 테러를 일으키고 있지 않다.

그가 모습을 보이질 않을 때는 어차피 마땅히 잡을 방법도 없으니, 굳이 나타나지 않는 그를 신경쓰기 보다는 다른 할일을 하는 것이다.

...라고, 이성적으로 생각은 하긴 했지만.

"하아...."

그래도 역시.

에고스틱이 없으니, 일상은 평온하게. 다른 말로는 무료하게. 흘러갔다.

이제는 자신의 능력도 많이 강해져, 다가오는 모든 빌런들이 그냥 샌드백으로 보일 지경.

오직 에고스틱만이 자신이 전력을 다하게 만든다는걸 다시 한번 상기하게 된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새해만을 기다렸다.

'...내년에는, 올려나.'

그리고 그렇게, 한해가 지났다.

***

그렇게 결국 그해 끝까지, 에고스틱은 오지 않은 채 평온하게 흘러갔고.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

"그래. 이 편지. 첫눈이 내리는 날 서울에서 테러가 일어날꺼라는 제보인데, 솔직히 장난으로 보낸거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혹시 모르니 그날은 대비를 단단히 해두도록."

그리고, 정기 히어로 협회 회의에서 나왔던 말.

그때 있었던 제보대로, 실제로.

첫눈이 내리는 서울 저녁.

콰아앙.

서울 한복판에서 실제로 테러가 일어났다.

그걸 듣자마자 신하루는 혹시 에고스틱의 테러인가 했지만, 방송이 켜지지 않은 걸 보니 그럴리는 만무.

살짝 그녀가 김이 샜었을 때, 협회는 이미 섀도우워커가 출동했으니 딱히 걱정하지 말라는 말을 전해줬다. 밤에 테러를 일으키는 놈은 오랜만이라고, 웃으며.

지금까지 저녁에 일어난 테러를 섀도우워커가 단기간에 처리하지 못한 적이 없는 만큼, 그녀는 슈트를 입으면서도 생각했다. 아마 도착했을 즈음이라면 이미 사건이 끝났을거 같다고.

그러나.

막상 현장에 도착했을때의 전황은, 상당히 달랐다.

소리를 지르며 대피하는 수많은 시민들. 속절없이 부숴지는 건물들.

"으아악!! 내 능력이 왜!! 안통하냐고!!"

휘이이이이이이잉.

기괴한 분홍빛과, 엄청난 강풍이 들어닥치는 폭풍으로 가득 찬 도시의 밤하늘.

그 앞에서, 섀도우워커는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으며 이성을 잃고 비명을 지르고 있었고.

불길한 분홍빛만이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는 그 상황을 보며. 신하루는 그제서야 깨달았다.

무언가, 잘못된거같다.

***

첫눈을 만끽하던 평화로운 도심이, 이렇게 망가지기 시작한건 오래되지 않았다.

그저 평소와 같이 잔잔하던, 도심의 거리 한복판에 어떤 하얀 도복을 입은 여자가 걸어들어 오더니.

휘이잉-

갑자기 그녀를 중심으로, 분홍빛의 폭풍이 불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후, 갑작스럽게 엄청난 속도로 빠르게 회전하는 분홍빛 토네이도.

휘이잉-

콰아아아아아앙.

갑자기 육안 멀리서도 보이는 분홍색 회오리의 등장에, 이미 테러에 익숙해진 시민들은 비명을 지르며 빠르게 도망치기 시작했고.

도심에 비명소리와 사이렌 울려퍼짐을 시작으로, 평화로운 밤은 점차 커지는 거대한 분홍빛 토네이도로 물들었다.

마치 몽환적인 CG처럼, 삭막한 회색의 도심 한복판에 도시 전체를 집어삼킬듯이 커지는 분홍빛 토네이도와.

점차 허공에 하나 둘 생기기 시작하는 보라색의 별모양 무언가.

그리고 태풍이 사람들을 더이상 서있기도 힘들게 함과 동시에, 갑작스럽게 태풍 사이사이에 생겨난 보라색 별들이

물리력을 가진채 날아다니며 도심을 마구잡이로 파괴하기 시작했다.

콰앙.

콰앙.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된 저녁의 도시.

그러나 사람들은 생각보다 당황하지 않았다.

밤에 일어난 테러니까.

저녁 한정으로 무적인 섀도우워커가 다 처리해 줄꺼니까.

그리고 지금, 그 섀도우워커는.

"으아악!"

그 분홍빛 태풍 앞에서, 무력하게 머리를 쥐어뜯으며 길길이 날뛰고 있을 뿐이었다.

***

"그러니까. 저 분홍색 태풍에 가까이가면 힘이 약해진다고요?"

"그래. 아예 내 비기인 그림자이동도 안된다고!"

분홍빛으로 물든 서울의 도심.

경고의 편지대로 협회가 미리 요원과 하급 히어로들을 도심 곳곳에 대기시켜둔 덕분에 민간인들은 미리 다 대피한 그곳에서, 히어로들은 거리에 서서 심각하게 회의를 하고 있었다.

열변을 토하는 섀도우 앞에서, 고개를 갸우뚱하는 아이시클.

"아니. 진짜 그 정도라고요?"

"그래. 이상하게 저 태풍의 중심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점점 힘이 빠지며 능력도 사용이 안된다. 저 공중에서 날아다니는 보라색 별모양 구체에 한방 맞으면 몸이 튕겨져 나간다고."

"...큰일났네."

부산에 있다가 섀도우워커에 의해 서울로 올라온 아이시클은, 도심을 점거한 분홍빚 태풍을 보며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밤의 섀도우워커를 이길 상대라면, 애초에 자신이 상대가 될까?

"맞다. 스타더스, 하루는요?"

"일단 가보겠다고 안으로 들어갔어."

그리고 섀도우가 그렇게 말한 순간.

쿵.

저 분홍빛 태풍 안쪽에서, 스타더스가 무엇에 부딪힌 양 튕겨져나와 지면에 추락했다.

"하루야!"

입가에 흐르는 피를 닦으며 일어나는 스타더스를 향해 아이시클이 깜짝놀란 채 서둘러 그녀를 향해 다가갔고.

"괜찮아? 너..."

서둘러 그녀를 진찰하던 아이시클은, 이내 스타더스의 눈을 마주치고는 식겁했다.

저 태풍쪽을 바라보는 스타더스의 눈.

그 눈이 거의 불타듯, 독기로 가득 차있었다.

"비켜. 한번 더 해볼께.."

"어. 어..."

마치 씹어먹듯 내뱉는 그녀의 말에 뒤로 물러난 이설아.

그리고 그녀를 지나쳐, 스타더스는 태풍 속으로 들어갔고.

고민하던 아이시클도 그녀의 뒤를 따라 들어갔다.

***

'또야.'

빌런이 일으킨 태풍 속으로 진입한 신하루는 이를 악물었다.

긴 머리카락이 미친듯이 날리며, 눈을 뜨고 걷기도 힘들 정도로 휘몰아치는 강풍.

그리고 기묘하게도 이 안에만 들어오면 급속도로 약해지는 그녀의 힘.

"흐윽."

신하루는 눈을 겨우겨우 떠가며, 그녀를 향해 맹렬히 날아오는 커다란 보라색 별모양의 무언가를 간신히 주먹으로 쳐냈다.

쾅. 쾅.

넓은 도심이 분홍색 바람에 뒤덮였고.

그 사이를 정체를 알 수없는 보라색 별들이 떠다니며 그녀를 향해 날아오는 상황.

그리고 그녀가 몇번의 시도끝에 그걸 다 뚫고 겨우겨우 중심쪽으로 접근하면.

지이이이잉-

보이지 않는 안쪽 어딘가에서, 보라색 광선같은게 쏘아지는 것이다.

-콰과광

"크윽..."

가슴 앞에 팔을 X자로 하여 버텨봤지만, 약해진 그녀가 버틸 수 있을리 만무.

결국 그녀는 반동을 이기지 못하고 튕겨져 나왔다.

"꺄아아아악!"

옆에서 같이 들리는 설아의 비명소리.

온갖 공격에 간신히 뒤로 튕겨진 둘은, 숨을 헐떡였다.

여전히 섀도우워커는 태풍을 뚫어보겠다고 끙끙 애쓰는 가운데.

신하루는, 이를 악물었다.

그래. 요즘 너무 평온하다 했다.

왜 몰랐을까? 이 세상은 악의로 가득 차있고.

그녀보다 강한 적은 어디에선가 늘, 도사리고 있다는걸.

저 앞에 빌런이 있고, 도시를 파괴하고 사람들을 해치고 있는데도.

자신은 아무것도 못한다는 절망감.

지금까지 모든 빌런들을 주먹 한방에 해결하며 자만했던 지난 세월들에 대한 벌일까?

에고스틱이 비행기를 떨어트렸을 때 이후로 처음으로 느끼는 좌절과 무력감이 그녀를 가득 채웠다.

그리고 지금은, 그녀의 옆에서 힘을 내라고 말해줄 에고스틱도 없다.

그리고 저 빌런은, 에고스틱처럼 웃으면서 물러나지는 않을거다.

그리고 당연히, 에고스틱은 지금 나타나지 않았다.

그녀는 이를 더욱 세게 악물었다.

이건 실전이다.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야, 그녀는 다시한번 깨닫게 되었다.

에고스틱은 지금까지 나를 봐주고 있던 거구나.

그와 한 테러는, 그냥 장난이었구나.

진짜 테러란, 이런거였었지.

"...큰일났네. 어쩌지... 어? 하루야, 너 울어?"

그리고 자신의 옆에서 말을 건 설아의 말에, 그제서야 그녀는 현실로 되돌아왔다.

"...무슨 소리야?"

설아의 말에 그녀는 무슨 소리인가 하고 얼굴에 손을 갖다대었고.

그녀는 그제서야 느꼈다.

자신의 볼을 타고 그녀도 모르는 사이, 눈물 한줄기가 흘러내리고 있었다는걸.

***

"아이고!!! 흑흑흑 하루야아!! 내가 미안하다!! 지금 갈께!!"

"오빠 미쳤어요? 진정해요!"

"야 왜 이래! 앉아!"

"다인씨 진정하세요! 오늘은 지켜만 보신다면서요!"

티비를 보다가 나도 모르게 눈물을 홍수처럼 쏟으며 자리에서 일어나는 나를, 옆에있던 일행들이 강제로 붙잡았다.

아니! 우리 스타더스가 울고있는데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 애가 속상해서 울고있잖아!!

"안돼! 스타더스야아 내가 간드아아!!!"

"언니! 이제 어쩔 수 없어요. 오빠한테 전기좀 쏴봐요!"

"놔! 난 갈거... 그아아아아아악!"

제 106화

화어두운 밤

분홍빛의 폭풍이 서울의 도심을 박살낸지도 벌써 몇시간.

月光

어두운 저녁 하늘에, 분홍색으로 빛나는 두 글자의 한자가 쏘아지는걸 마지막으로.

이 모든 사건을 일으킨 빌런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버렸다. 그녀가 불러일으킨 분홍빛 기운과 함께.

그리고, 그 빌런이 떠난 자리에선 히어로들만이 남아있었다.

"내가, 이 내가... 밤에... 이렇게 무능하다니.... 이건 말도 안된다고오!! 으아아아... 그냥 나가 죽어야겠다. 왜 살지?"

구석탱이 한쪽에서 쭈구려 앉아 혼자 땅을 파고 있는 섀도우워커.

"아니.. 다인씨는 왜 전화를 안받는거야? 하아... 좀...."

그리고 다른 한쪽에서 휴대전화를 얼굴에 갖다댄 채, 초조한 표정으로 누군가한테 전화를 걸며 중얼거리는 아이시클.

그리고 그 한가운데.

누구보다 침통한 표정으로, 그 빌런이 떠난 자리를 바라보는 스타더스가 있었다.

"..."

폐허가 되어버린, 그 빌런이 있던 자리.

오늘 낮까지만 해도 사람들로 번창하던 이 도시가, 단 하룻밤만에 이렇게 망가졌다.

그렇게 아무도 없는 쓸쓸한, 잔해만 나뒹구는 이곳에서.

신하루는 주먹을 쥐고, 이를 악물었다.

....도시가 박살난게 문제가 아니다. 건물들이야 다시 지으면 되는거니까.

문제는, 이렇게까지 하면서도 저 빌런을 잡지 못했다는 것.

그리고 월광, 이라는 단어만 하늘에 쏜 채 사라진 저 빌런은 아마 높은 확률로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것.

그리고 제일 큰 문제는.

저 빌런이 다시 돌아와 테러를 일으킬 때, 자신은 그때도 여전히 이를 막지 못할것 같다는 거였다.

"....."

그 사실을 다시금 자각한 순간.

정말 형용할 수 없는, 그런 절망감이 그녀에게 쏟아졌다.

저 빌런은 아마 돌아오겠지.

그리고 또 사람들을 해치고, 삶의 터전을 파괴할거다.

그리고 자신은 여전히 이렇게 무능력하게 있겠지.

그런 생각을 하던 그녀는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다.

이런 좌절감을 예전에도 느낀적이 있었다.

그러나 그때는, 누군가가 자신을 북돋아 주었었다.

그리고 어떨때는, 스스로 직접 나서서 사전에 막아주곤 했다.

그리고 그때는 잘 몰랐었지만.

그가 자신의 생각보다 큰 힘이 되었던거라는걸.

그가 없다면, 얼마나 일이 끔찍하게 흘러가는지.

그가 없는 이 순간에서야, 그녀는 깨달았다.

"....."

그리고.

이번엔 그가 오지 않는 다는걸 깨달은 그녀는.

아마 다음번에도 오지 않을 것 같다는걸, 깨달은 그녀는.

그 사실이, 자기도 모르게 서러워서.

전혀 서러워 할 일이 아니지만, 자기도 모르게 그래서.

그저 어두운 밤하늘 아래 서, 앞에 펼쳐진 폐허를.

멍하니.

계속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

[테러 이후 밤하늘을 밝힌 月光(월광), 무슨 의미?]

[몇시간동안 계속된 테러, 히어로들은 어째서 막지 못했나.]

[[단독]섀도우워커 현재 집에서 칩거하고 있는걸로 밝혀져...]

[협회. 비상상황시 시민들이 안전하게 대피할 수 있는 비상대책메뉴얼 확립 예고. '이번 사건의 근본적인 해결은 되지 않는다'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월광이라 밝힌 무녀복을 입은 여성의 정체는? 협회 통칭 월광무녀, 그녀의 정체를 찾아서.]

서울의 한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든 핑크 폭풍 사태.

범인의 정체도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오직 월광. 이 두글자밖에 알려지지 않은 이 사건은, 대한민국을 뒤집어놨다.

이미 빌런의 테러에도 꽤나 익숙해진 한국이 이정도로 뒤집어진 이유는 단 하나.

A급 히어로 3명이 달라붙었는데도, 이기지 못했기 때문.

그것도 그중 한명은 밤에 한해서는 거의 무적으로 일컬어지는 섀도우워커였기 때문에, 시민들의 충격은 더 컸다.

하늘이 도와서인지 사상자는 많지 않았지만, 다음에도 이럴꺼라는 확신은 만무.

3명의 히어로 모두 사라진 상황에서, 협회가 대응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고 언론에 말하고는 있지만, 그게 끝이였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들끓고 있었고.

그건 커뮤니티들 또한, 예외가 아니었다.

*

[아니 ㅅㅂ 월광무녀인가 뭔가 쟤가 그렇게 쌔냐?]

얼굴 잘 보이지도 않네.

혼자서 도시 전체를 무슨 분홍색 토네이도 같은걸로 물들인건 그렇다 쳐도.

어떻게 스타더스랑 섀도우워커가 달려들었는데도 짐?

애초에 섀도우워커가 어떻게 진거냐 이해가 안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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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애초에 섀도우 걔 그 빌런이 있는 곳까지 접근도 못했다는데? 걍 쪽도 못쓰고 당했음]

[전문가들 말로는 그 무녀인가 뭔가가 히어로들 능력을 약화시키는 무언가를 가졌을 확률이 높대더라]

ㄴ[그럼 ㅅㅂ 혼자서 태풍도 일으키고 별도 쏘고 무력화 능력까지 있다고? 그걸 어케이김?]

ㄴ[그러니까 못이긴다고 지랄 난거잖아 지금]

ㄴ[심지어 전자기기도 근처에서는 안통한다는 얘기도 있음ㅋㅋㅋ]

[이지경이면 해외에서 S급 히어로 빌려와야 하는거 아니냐?]

ㄴ[무력화 능력이라 아무도 안온다는거 같던데... 거기에 애초에 스타더스는 거의 S급이고 섀도우는 밤에는 사실상 S급인데도 털린거보면...]

[그냥 좆된듯]

*

[이시각... 제일 그리운 사람...]

부산에서 호텔테러 있을때 혼자서 한방에 처리한 '그사람'

미친 거대 지렁이가 기어다닐때 미리 다리 부숴둔걸로 막은 '그 사람'

한은그룹이 미쳐서 거대 로보트로 서울 침공할때 탈취해서 막은 '그 사람'

이 시대 최고의 GOAT

"망고스틱" 그리우면 우리... 개추 눌러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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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아아... 꽃이 지고서야 봄인 줄 알았습니다...]

[S급 히어로 애플망고 돌아와 제발]

[에고스틱 ㄹㅇ 어디감? 에고스쿼시인가 스쿼드인가에 빨리 저 여자좀 캐스팅해서 데려가!!!]

[하 시발 이번 테러로 집 부숴졌는데 피해 보상금 신청 할 데가 없더라... 에고스틱은 매번 해줬는데]

ㄴ[애초에 ㅅㅂ해주는게 이상한거 아니냐? ㅋㅋㅋㅋ]

[에고스틱이 테러할 때가 제일 좋았지]

[하 망고야 진짜 눈딱감고 한번만 도와주면 안되냐? 스타더스 섀도우워커 아뭐시기 다 망하고 이제 남은게 너밖에 없다....]

ㄴ[아니 ㅅㅂㅋㅋㅋ 에고스틱은 빌런이야 이새끼야 정신차려!!]

ㄴ[에고스틱이 이번 테러에 끼어들면 저 월광무녀인가 뭔가를 도와주겠지 왜 히어로를 도와주겠냐]

***

어. 도와줄 예정이야.

"하아... 그냥, 다음 테러때 바로 나설까?"

"오빠. 분명 2번까지는 그냥 가만히 있는다음에 3번째 테러때 나선다면서요? 왜이래요?"

"아니... 크흑! 우리 스타더스가 저렇게 고생하는데 내가 어떻게 가만히 지켜만 보고 있겠니!"

"다인씨... 그래도 일단 마법진들중에 저 빌런의 능력을 강화시키는거는 부숴놔가지고 피해도 적잖아요."

"그래. 야, 너가 전부터 계속 뭐라 말했냐. 스타더스 쟤 성장시킬려면 이게 꼭 필요한 과정이라며. 원래 4번은 냅둘꺼 2번으로 줄인거라며. 근데 한번하면 뭔소용이냐?"

"알았어... 알았어."

나는 항복의 의미로 두손을 들고 소파에 털썩 등을 기댔다.

그래. 이게 고통스럽지만 꼭 필요한 과정이기는 하다. 요즘 스타더스가 한방순삭 하는거 보면, 정말로 이렇게 구를 기회가 흔치않은 만큼 뽕 뽑아먹어야 하는건 사실. 거기에 마법진도 내가 따로 관리하고 있으니, 난이도 조절까지 가능하기에 다시 돌아오지 않을 안전한 성장찬스다.

다만, 하루가 구르는 모습을 보니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이게 된다는게 문제인데... 에휴. 그래. 앞으로 한번만 참자.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있을 때쯤, 하율이가 내 방쪽에서 폰을 들고는 나에게로 다가왔다.

"다인오빠. 이설아라는 사람한테서 계속 전화오는데요?"

"아니. 걔 아직도 그래? 그냥 전원 꺼버려."

"그래도 되는거에요?"

머리를 기울이며 의문을 표하는 하율이에게,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결국 꺼져버리는 휴대폰.

어쩔 수 없다. 애초에 이설아 쟤한테 진실을 얘기하면, 신하루가 감각적으로 이설아 안의 여유를 눈치챌 수도 있기 때문.

3번째 테러는 내가 직접 나서서, 멈출것이라는걸 전해주면 이설아 마음이 편해서 좋긴 하겠지만, 그래도 안되는건 안되는거다. 사실 이설아가 원작의 북쪽으로 올라가 베히모스 때려잡는 이벤트가 사라진만큼, 이번 기회에 쟤도 성장해도 나쁠게 없으니.

...근데, 물론 이번 사태가 다 끝난 이후에 한소리 들을거 같긴 하지만.

"...하아."

티비에 나오는 스타더스의 이를 악문 표정을 보며, 나는 또 한숨을 삼켰다.

미안하다 하루야. 내가 다다음번에는 꼭 갈게.

그러니까, 다음번까지만 참자. 알겠지?

"크흑!!"

"하아... 이제 이번 일 끝날때까지 얘 계속 이러는거냐? 큰일났네..."

옆에서 최세희가 뒷목잡고 쓰러지는걸 들으며, 나는 티비에 집중했다.

스타더스의 열성 팬으로써, 앞으로의 시간은 정말 끔찍할거 같은 예감이 들 뿐.

에혀.

***

그렇게 그 사건 이후로도, 시간은 계속해서 흘러갔다.

스타더스 사진 정리해가며 팬카페에 올릴때 또 눈물 한바가지 쏟고.

스타더스가 폐관수련하고 있다는 말 듣고는 또 쏟고. 하루야, 너가 그래봤자 못이겨!

협회가 대응책과 비상대피요령을 다시한번 시민들에게 전달하고.

월광이라는 의미가 월광교라는, 베일에 싸인 종교와 관련이 있는게 아닌가... 라는 말이 나오기 시작하며.

내가 협회에 또 한통의 편지를 쓰고 난 이후, 얼마지나지 않아.

결국 또다시.

서울 한복판에서, 거대한 분홍색 소용돌이가 등장하며.

월광교, 달의 무녀의 두번째 테러가 시작되었다.

"아이고!! 하루야!!!"

"오빠... 제발..."

그리고 신하루랑 친구들은 또 탈탈 털리고 있었다.

가슴이 미어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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