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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 이거 뭐냐????]

(유성기업 PMC 모집 광고)

유성기업 ㅅㅂ 이제는 하다하다가 능력자들도 모집하네ㅋㅋㅋㅋㅋ 기업들은 다 먹고 정치권도 먹었다는 소문 있던데 이제는 지들이 알아서 협회도 차리려고 하는거냐고ㅋㅋㅋㅋㅋㅋ

=[댓글]=

[이거 요즘 ㅅㅂ어딜가도 보임ㅋㅋㅋ 전국민한테 알리는게 목표인듯]

[유성기업의 대한민국 정복은 이제 시간문제다]

[아니 이거 정부에서 제재안함? 사실상 기업이 군사조직을 갖겠다는건데]

ㄴ[유성기업이 대한민국 먹은지가 언제인데ㅋㅋ]

ㄴ[걔네 말릴 사람 이제 한국에 없다 게이야...]

ㄴ[음모론 OUT]

[근데 ㅅㅂ 역시 유성이라 그런지 연봉 돌았네 저게 뭐임ㅋㅋㅋㅋ 이제 누가 협회가냐고ㅋㅋㅋ]

ㄴ[나 나름 쓸만한 능력 있는데 ㄹㅇ 지금 개땡긴다ㅋㅋㅋㅋㅋㅋ]

ㄴ[ㄹㅇㅋㅋ 시발 몇억은 못참지ㅋㅋㅋ]

ㄴ[능력자들 이정도로 대우해주는건 ㄹㅇ 처음인거같은데]

*

[유성기업이 능력자들을 모집중이라고 발표했습니다. 급변하는 국제정세와 혼란스러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능력자들로 이루어진 민간군사기업(PMC)을 만들겠다고 발표한 이설아 현 유성그룹 총괄 사장은, 강한 능력자들의 많은 지원을 부탁하며 '신원을 100프로 보장함과 동시에 역대 최고의 투자를 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면접 후 들어오게 되는 이들은 유성그룹에 의해 거두어져 한 식구가 되며, 집중관리와 개인별 맞춤 교육을 받음과 동시에 숙식을 비롯한 모든게 은퇴전까지 보장된다고 합니다. 거기에 기사에 따르면 연봉은 대략...]

조용한 시골집.

혼자 칼을 갈던 청년은, 빗소리를 배경으로 들려오는 라디오에 귀를 기울였다.

"....유성, 이라."

탁.

긴 칼을 갈던 그는, 이내 바닥에 검을 내려놓고 라디오에 볼륨을 좀 더 키웠다.

...사냥개로써 살육밖에 없던 인생.

능력을 저주하며 조용히 살던 그가, 처음으로 무언가에 관심을 가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다른 곳에선.

빗소리를 피해 건물 안에 숨어서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던 소녀도, 패스트푸드 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던 소년도.

모두가 하나 둘 천천히, PMC 라는 것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

"...와. 야. 대체 무슨 짓을 한거냐?"

"왜?"

"아니, 이 PMC인가 뭔가가 무슨 틀기만 하면 온군데에서 나와. 대체 홍보비를 얼마나 들인거야?"

"아... 그거 좀 많이 들었긴 했지."

"지금도 봐봐. 무슨 티비 채널 바꾸기만 하면 유성그룹이 능력자를 모집하고 있다는 얘기밖에 안나와."

최세희가 티비를 바라보며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뭐, 원래 처음이 중요한거니까. 이정도 어그로는 끌어야 본전을 뽑는다.

대충 그렇게 설명해 주고 있을 때, 옆에 앉아서 사과를 먹고있던 서은이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

"근데 오빠. 전 아직도 모르겠어요."

"뭐가?"

"숨어사는 능력자들이 많다 그래도, 과연 누가 저기에 참여할까요? 분명 싸움이 있을꺼라고 적어놨는데..."

서은이는 말끝을 흐렸다.

그래. 사실 말이 좋아 PMC지 누군가랑 목숨걸고 싸워야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을거라는건데 많이 참가하겠냐 이거지.

그런 그녀의 의문에, 나는 당연하다는 듯 답했다.

"당연히 몇명 없겠지."

"...네?"

"그래도 그 몇명이 어디야."

그래.

능력자 중 몇명이라도 건지면 어디인가. 특히 그중에서 원석이 있을 수도 있을텐데.

그리고 내 추측이지만, 아마도 들어올 애들중에는 벼랑 끝에 내몰렸을 애들도 많을거다. 그러니까 빌런 되기 일보직전일 그런 애들.

어차피 이제 1기고, 1기 애들이 성공하면 2기는 더 많아지고 그럴거다. 그리고 2기 교육은 1기한테 시키면? 그런식으로 자동화가 되는거지.

어차피 저 PMC 사업은 말만 유성기업이지, 사실상 전부 내꺼다. 내가 저기에 투자한 자본이 얼만데. 심지어 나중가면 유성으로부터 독립할 계획도 있다. 이설아랑 얘기도 끝났고.

한마디로 말하면 이제 이 PMC에 들어오는 애들은 전부 내 사조직의 일원이라는거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다는 소리지.

일단 얘네들 시간좀 들여 열심히 육성시켜놓으면 A급 빌런에서 B급 빌런까지는 사냥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어차피 지금 당장은 필요없고 나중 일이지만, 그래도 미리미리 키워놔야지. 1기 애들 정도는 내가 직접 신분 속이고 하나하나 가르칠 생각이다. 내 직속조직, 망고스쿼드... 아니, 에고스쿼드의 탄생이다. 지들만 모르겠지만.

하여튼 이건 이제 어느정도 됐다.

모집기한도 길게 잡아놨다. 난 미끼를 던져놨으니, 이제 나중에 수확하면 되겠지. 이제 한시름 놨으니 나머지는 모집 끝난 이후에 생각하면 된다.

그래. 뭐, PMC도 일단은 어느정도 끝났고.

이제는 다른걸 고민해야 될 때.

"...."

나는 책상에 앉아 팔로 얼굴 앞을 가린 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스타더스랑 마지막으로 테러에서 싸운게 언제지?

만난거 빼고 직접 싸운거만 따지면, 엄청 오래된거 같다.

그래. 와. 그때 해변에서 급조된 테러한게 마지막이네.

"....."

스타더스랑 마지막으로 테러를 한게 너무 오래되었다. 직접 실력체크를 한것도 옛날 일이고.

그래. 단적으로 말해서 난 지금.

스타더스가 보고싶었다.

"....쓰읍. 테러 뭘 하지."

어차피 스타더스는 나 보고싶어 하지도 않을테지만.

그래도, 내 히어로를 위해 테러 하나는 준비해놔야지.

그래도 내가, 그녀의 빌런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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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더스한테 마지막으로 테러를 한게 대체 얼마 전인지 모르겠다.

물론 저번에 미스트와 섀도우워커 싸움붙일 때 한번 만나기도 했고, 멀리서 본 적은 몇번 있긴 했지만.

그건 그냥 말그대로 보기만 한 것뿐, 직접 몸을 움직이며 만난건 정말 예전이다. 그 해변휴가가 마지막이었으니까.

즉, 나는 이제 슬슬 스타더스와 뜻깊은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소리.

그리고 당연히 그 뜻깊은 시간은, 테러고.

"뭘 하지..."

나는 자리에 앉아 의자에 등을 기대고, 가만히 고민했다.

물론 준비해 놓은 테러야 좀 있기는 한데...

"쓰읍..."

나는 마지막으로 봤던, 스타더스가 그 고릴라랑 싸우던 전투를 복기해봤다.

...역시 멀리서 봐서인지 잘 모르겠기는 하다만.

"확실히 훨씬 강해는 졌었지?"

그래. 그게 바로 키포인트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원작보다는 확실히 강해져있었다. 비교도 안될 정도로.

집에 돌아와서 예전에 적은 설정노트보니 그 불뿜는 고릴라에 관한 언급이 있더라고. 스타더스가 그야말로 발리다가 지구전으로 겨우겨우 잡았다고.

그때랑 비교하면, 지금은 정말 강해진거다.

그 고릴라놈이랑 조금 투닥투닥하더니 그냥 쓰러트려버렸으니까. 그야말로 감동 실화.

다만 문제는 정확히 얼마나 강해졌다는거냐 이거다.

다만 확실한건 내 생각보다 조금 더 강해진거 같긴 한데...

"흐음..."

나는 턱을 괴고 고민했다.

...사실 몇달 후에, 또 엄청난 빌런이 하나 나온다. 아예 지역 하나를 차지한 뒤에 개지랄을 하는 미친 놈이. 또 하도 강한 바람에 원작에서 걔 조진다고 또 한세월 걸렸다. 스타더스는 진한 피폐물 다시한번 찍으며 땅파고.

그래서, 그놈이 메인 빌런이었던만큼 그 빌런의 이름과 사는 곳까지 전부 알고있어서, 그냥 미리 죽이려했었다. 어차피 스타더스가 걔 못이길테니까.

다만...

"쓰읍... 가능... 하려나?"

이제 보니 잘하면 될거 같기도 하고.

아닐거 같기도 하고.

직접 붙어본 것도 아니니 애매했다.

그렇다고 바로 스타더스를 그 수렁에 집어넣자니 그건 좀 소리가 바로 나오고.

하여튼, 그래서 테러. 테러를 뭘 해야 하느냐.

이왕이면 스타더스의 실력도 명확히 체크해 볼 수 있는 그런거면 좋겠는데...

그렇게 테러도 고민하랴, PMC 시설 점검하랴 훌쩍 지나간 며칠.

여전히 고민하던 어느날, 서은이가 내 손을 잡고 또 지하실로 끌고왔다.

"또 그 로봇 병기 만들었다고?"

"로봇 병기라니, 슈트라고 불러줘요. 하여튼, 이번에는 진짜에요 오빠. 스타더스 정도는 가뿐히 이길 수 있다!"

또 자신만만하게 소리치는 서은이.

언제부터인건가 스타더스를 경쟁대상으로 삼던 그녀였기에, 딱히 새로울 것도 없었다.

다만 사실 바로 직전에 만든 슈트는 은근 강했어서 좀 놀란 기억이 난다. 물론 스타더스한테는 안됐지만, 그거야 지금 스타더스가 너무 강하다고니 그런거고...

그렇게 또 서은이는 지하실 문을 열었고.

그러자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오..."

"자! 어때요!"

허리에 손을 올리고 자신만만하게 서은이가 선보인 그것.

그 병기의 형태는, 전과는 달리 굉장히 이질적이어 보이는 무언가였다.

그전의 병기들이 사람 모양으로 생긴 육중한 슈트같은 거였다면, 이건 무슨 날아다니는 외계 기계처럼 보이는 모습.

금속으로 만들어진 커다란 원모양의 본체에, 아래 위로 팔만 4개가 붙어서 공중에 둥 둥 떠있는 이 병기.

"제 야심작, 일명 스타 디스트로이어에요!"

서은이는 뿌듯하다는 듯 이 거대한 병기를 보여주며 말했다.

아니 근데 딱봐도, 그냥 강하게 생겼다. 전이랑 디자인이 너무 이질적이긴 한데, 그래서 더 강해보이는 것 같기도 하고.

그렇게 내가 작게 감탄하자, 더욱 신이 난 것같은 서은이는 열심히 나한테 설명해줬다.

대충 이 금속들이 얼마나 내구성이 강한지, 어떤 첨단기술이 들어갔는지, 그리고 은월이의 마법까지 더해져 얼마나 대단해졌는지. 그 모든 것들을.

이런 대 스타더스용 슈트만 벌써 3번째 제작하다보니 나름 노하우가 쌓였나보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서은이가 귀엽게 재잘거리는걸 웃으며 들어줬다.

물론 내용은 별로 귀엽지 못했지만.

"...그래서 여기 원형의 몸통에 사람 하나 딱 들어가고, 여기서 조종하면 되는거에요! 은월이가 걸어준 마법으로 이쪽 이쪽은 강화하고, 그리고 몸통은 기본적으로 부유상태라 x축 y축 z축 다 자유자재로 이동 가능하고, 그리고 팔! 이쪽 팔에는 미사일이 달려있는데..."

그렇게 계속된 서은이의 말을 들을수록, 나는 은근 혹하는걸 느꼈다.

아니, 이건 진짜 꽤 잘만든거 같은데? 물론 실전 훈련을 해봐야 겠지만, 이정도면 스타더스 상대로도 은근 오래 버틸 수 있을거같다.

나는 새삼 내 앞에서 재잘재잘 말하는 서은이를 되돌아봤다.

...그래. 생각해보면 서은이도 원작에서 메인빌런 중 한명이었지. 그것도 엄청나게 강하던.

지금이야 이렇게 귀엽지만... 나랑 처음 만났을때도 꽤나 까칠했었다. 마음의 문을 열게 하기 위해 꽤나 애썼지. 그게 한 1년 걸렸었나.

"오빠?"

"응?"

"듣고 있어요?"

"어. 당연하지. 진짜 이번에는 엄청 잘 만든 것같다 서은아. 대박인데?"

"그쵸? 헤헤. 은월이랑 세희언니가 많이 도와줬어요!"

내 칭찬에 금새 기분이 좋아진 서은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며, 나는 다시 생각에 잠겼다. 근데 서은이 키도 이제보니 좀 큰거같기도 하고.

그렇게 서은이가 이번에는 기필코 이 병기가 스타더스를 쓰러트릴 수 있을거라고 자신하던 그때.

나는 순간, 무언가가 번득이듯 떠올랐다.

"....."

그렇게 생각을 정리하고 시간이 지난 뒤.

나는 조금있다가 서은이한테 물었다.

"서은아, 근데 어찌 되었던간에 이 병기가 스타더스를 쓰러트리기만 하면 되는거지?"

"네? 네! 뭐 그렇죠. 나중에는 아예 제가 탈 필요도 없이 무인으로도 개발해볼 생각인데..."

"그럼 이거 그냥 내가 몰아도 돼?"

".....넹?"

갑작스러운 내 말에 눈을 깜빡이는 서은이.

음, 이걸 어디서부터 설명해야 하려나.

***

지금까지 스타더스를 상대로 테러한지도 꽤 오래되었다.

물론 그것들 중에 내가 단둘이 오붓하게 싸운적은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대다수는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들이랑 같이 싸웠지.

그런 상황에서 안그래도 스타더스 전력을 체크하고 싶은 마당에, 서은이가 만든 병기를 보니 느낌이 빡 왔다.

어라? 내가 저거 타고 싸우면 스타더스 능력 체크 그냥 한방에 되겠는데?

거기에 나로써는 스타더스의 공격 패턴이나 싸움 습관같은걸 잘 아니, 더욱 완벽할거라는건 인지상정.

그래서 서은이한테 뭐 스타더스랑 오랜만에 단둘이 시간보내고 싶다 이런 말은 쏙 빼고, 대충 뒤에 2개를 대며 설득했더니 이내 서은이도 납득했다.

"음... 뭐, 오빠말도 일리가 있네요. 저걸로 이기기만 한다면야. 오히려 저보다 나을수도? 좋아요."

"고맙다 서은아."

"...근데 좀 걱정되긴 하네요. 그럼 이거 아직 완성본은 아니라 도색만 좀 더 하고... 오빠 탄다니까 더 개조좀 하고..."

그렇게 뭘 바쁘게 챙기던 서은이는, 이내 무언가를 추가하기 전 생각났다는 듯 나한테 물었다.

"아, 오빠. 그러면 이거타고 테러할때 누구랑 같이 할거에요? 은월이? 세희 언니나 자영언니?"

"음... 나 혼자 할거같은데."

"네? 혼자요?"

"어. 그리고 서은아, 그거 도색도 전이랑은 좀 다르게 해줘. 티 안나게."

"...네? 왜요?"

"아. 이번에 테러할때 에고스틱이랑 아무 상관없는 제 3자인척 하고 테러해보게. 어차피 거기 타면 얼굴도 안보이잖아?"

"???"

굉장히 당황하는 서은이. 아니, 이게 다 이유가 있다. 이게 내가 테러를 너무 자주하다 보니까 스타더스도 나한테 조금 익숙해졌을 수 있단말이지. 막 패턴도 파악되고.

그래서 이번에 그녀의 전력을 확실하게 체크해보기 위해서, 아예 처음보는 빌런인 것처럼 느끼게 해볼 생각이다. 내가 또 지금까지 사상자도 안내고 그런 전적이 있다보니, 아예 이런식으로 제 3자 컨셉으로 나가는게 그녀가 진심을 다하게 하는게 더 유리할 것 같기도 하고.

물론 그런 내 설명에 서은이는 딱히 납득한 눈치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강행했다. 이제 곧 전설의 '그 빌런'이 나오는데, 스타더스가 걔 상대할 수 있는지 제대로 체크하려면 이정도 오차도 용납할 수 없다.

물론 막판에는 들켜도 상관없다. 대충 전력 파악하고 짜잔! 사실 나지롱 하고 튀어버리면 되니까.

싸움 도중에 몇방 맞는거야, 내 맷집이면 충분히? 버틸 수 있을테고.

그렇게 나의 다음 테러가 결정됐다.

저 공중에 붕붕뜬 팔 4개짜리 슈트입고 에고스틱 아닌척 스타더스랑 싸우기. 당연히 나 혼자서.

물론 너무 위험하다고 반대의견이 좀 있긴 했지만, 결국엔 다들 수용하는 방향으로 갔다.

그렇게 준비한 뒤 몇주후.

테러의 날이 밝았다.

***

저번에 에고스틱이 메테엘한테 '제 히어로는 누구도 아닌 다름아닌 스타더스입니다.' 라고 선언한 이후.

자기도 모르게 나름 기분이 조금 나아졌던 신하루의 기분은, 다시 또 몇주가 지나자 안좋아지고 말았다.

"하아..."

히어로 협회의 사무실.

그곳의 책상 위에 널부러진 하루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어째 요즘따라 테러가 더 많아졌다. 빌런도 더 늘었고.

근데 그녀를 시름겹게 하는 진짜 문제는 그 많은 테러 중에서 에고스틱이 일으킨건 단 하나도 없었다는거.

사실상 에고스틱에게 모든 관심이 쏠려있던 신하루에게는, 힘빠지는 일이었다.

"...테러를 해야 조사를 하던가 뭘 하던가 하지."

신하루는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히어로가 빌런의 테러만을 기다리는 이상한 광경이었지만, 그걸 지적한 사람은 이곳에 아무도 없었다.

...날이 갈수록 신경쓰이고, 그와 함께한 예전의 기억들이 자꾸만 불현듯 떠오르고.

이게 진정 체포하고 싶은 강한 의지가 아닐까.

그렇게 오늘도 오지않는 그만을 기다리며 그녀는 사무실에 대기하고 있었다. 안그래도 어제 이 생각 저 생각에 잠을 설치느라 피곤해진 눈 주위를 매만지며.

그리고, 그러던 그때.

협회 직원이 또 어디선가 나타났다.

"스타더스님! 또 테러가 일어났습니다!"

"하아... 이번에는 누구에요?"

"자신을 카오스 디스트로이어라고 부르는 이상한 기계장치에 탄 인물인데, 현재 도시를 습격하고 있다고 합니다! B급 이하로는 상대가 안됩니다!"

"알겠어요. 지금 출동하겠습니다."

신하루, 스타더스는 팔을 한바퀴 움직여 힘을 풀며 일어난 다음, 창문을 박치고 날아올랐다.

...어차피 쓸데없는 놈의 쓸데없는 테러일텐데.

그냥 빠르게 밟아버리고 오자.

기계장치라. 그냥 박살내면 되겠지.

그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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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하하하하! 파괴, 또 파괴한다!]

"꺄아아아악!"

오늘도 바람 잘 날 없는 서울의 도심 한복판 어딘가.

온갖 이능력자들과 첨단과학이 교차하는 대한민국의 수도는, 이번에는 21세기 과학기술력의 알싸한 맛을 느끼느라 정신이 없었다.

도심 한복판에 둥둥 떠있는, 커다란 원형의 로봇.

기계로 이루어진 팔이 4개나 달려있는 그것은, 가운데에 빨간 빛을 내며 도시를 파괴하고 있었다.

[모두 경배하라, 이 카오스 디스트로이어가 구도시의 종말을 가져올테니!]

변조된 기계음을 내며 도시를 파괴하고 있는 그것.

바로 자신을 카오스 디스트로이어라고 소개하는, 정체불명의 새로운 빌런이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보이길 바라고 있었다.

"휴우... 이것도 못할 짓이구만."

병기 안.

나는 그곳의 조종석에서 한숨을 쉬었다.

서있는 사람 하나 간신히 딱 들어갈 좁은 공간.

그곳에서 나는, 열심히 서은이가 만든 이 로봇을 조종하느라 바빴다.

그리고 간간히 대사도 내뱉고.

[이 애송이들 따위로 나를 막을 수 있을거같으냐? 진정한 몰락은 이제부터다!]

나는 그렇게 말하며 괜히 또 옆에있는 건물 하나를 주먹으로 팍 쳤다.

대충 움푹 파여버린 건물.

안그래도 컨셉 잡는다고 이상한 말 하느라 힘든데, 스타더스도 빨리 빨리 안오니 고역이다.

아니, 왜 오라는 스타더스는 안오고 이상한 B급 히어로들만 오냐고.

내가 이 병기끌고 도심에 나타났을 무렵, 갑자기 어디서 B급 히어로들이 등장해서 좀 당황했었다. 물론 주먹 한방맞고 날아가더니 도망쳐버리긴 했는데, 바로 스타더스가 올 줄 알았던 나로써는 당황스럽기 이로말할 수 없던순간.

에고스틱 신분으로 테러할때는 테러 일으키면 바로 스타더스가 달려왔는데, 다른 신분으로 하니 A급 히어로라 그런지 보기도 힘들구만.

...아니 근데, 이 병기 딱 보기에도 빡세 보이지 않나? 왜 B급을 보내는거야.

하여튼 그렇게 나는 열심히 병기를 조작해 건물 몇개를 박살내고 있었다. 절대 에고스틱인 티 안나게, 계속 이상한 말을 던져주면서.

이번 테러는 오직 스타더스에 의한, 스타더스를 위한 전투.

정확히는 다음 메인 이벤트를 스타더스가 견딜 수 있을지, 그걸 확인하는 테러라고 할 수 있다. 우리 스타더스, 지금까지 내가 열심히 성장시켰는데. 얼마나 강해졌는지 보자.

근데 왜 안와.

그렇게 내가 하릴없이 건물 몇개 가지고 놀면서 스타더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

드디어.

그녀가 왔다.

"....네놈은 또 뭐냐."

구름 사이로 비춰오는 햇살.

그 아래에서, 긴 금발머리를 휘날리며 내려온 그녀.

스타더스.

여전히 보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덜컥하는 기분.

실로 오랜만에 직접 마주한 스타더스의 모습에 나는 순간 멈칫했지만. 다시 빠르게 평정을 되찾았다.

기억하자. 나는 오늘 스타더스와 처음 만난 악당이다. 나는 오늘 스타더스와 처음 만난 악당이다.

[하! 네가 그 스타더스라는 놈이냐? 실물로 보니 더욱 약해보이는군.]

"...지금이라도 투항하고 그 기계에서 나오면 불필요한 폭력은 하지 않겠다."

[웃기지도 않는 소리. 나와라!]

"...하아."

그녀가 늘 처음만난 빌런한테 하는 말을 들으며.

나는, 전투 준비를 했다.

그리고 똑같이 내 앞에서 떠서 주먹을 푸는 스타더스.

...뭔가 평소보다 차가운 기분이다. 요즘 컨디션이 안좋나?

하여튼. 뭔가 별로 긴장하지 않는 것 같아보이는 스타더스의 모습. 사실 그렇지. 생각해보면 나는 지금까지 스타더스가 수없이 쭉 상대해오던 흔하디 흔한 잡범같아 보일테니까.

그러나, 지금까지와는 좀 다를껄.

나를 향해 달려드는 스타더스를 보며, 나는 병기 안에서 나도 모르게 씨익 웃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스타더스랑 직접 맞선게 언제였지? 베히모스 얻은 그때였나?

그래. 그때는 비록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지만, 이제야 보여줄 수 있겠다.

상대의 전투패턴을 전부 꿰고있는 적이, 얼마나 무서울 수 있는지를.

자. 우리 하루. 얼마나 강해졌는지 한번 볼까?

***

또 새로운 빌런이 나타났다는 말을 들었을 때, 신하루는 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차피 그녀가 늘 상대하던, 새로울 것도 없는 빌런들. 눈에 띄게 강하지 않은 이상 그녀의 신경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특히, 에고스틱도 아니라면.

그렇게 스타더스, 그녀는 오늘도 테러가 일어나고 있다는 도심 한복판으로 나섰다.

비록 컨디션이 조금 안좋기는 했지만, 그래도 그보다는 빌런처단과 시민들의 안전이 훨씬 중요한법.

테러 소식을 듣고, 다른 히어로들이 당했다는 말을 들은 후 곧바로 출발한 그녀.

그런 그녀가 보게 된것은, 거대한 기계형태의 구에 팔이 4개가 달린 일종의 병기의 모습이었다.

뭐, 이런 류의 기계장치 끌고오는 빌런은 많이 봐서 익숙한 느낌.

물론 공중에 혼자 둥둥 떠있는 점과 기묘한 생김새가 조금 특이하기는 했지만, 그거 말고는 별다른 특이사항이 없었다.

자신이 건낸 경고에 하는 답변 역시 흔하디 흔한 다른 빌런들과 똑같았고.

다만.

".....?"

어쩐지, 저 기계와 목소리를 듣고보니 어쩐지 기시감이 느껴졌다.

물론 완전히 처음 보는 생김새였고, 빌런의 기계음섞인 목소리도 낯설었으나.

뭐랄까...

저 기계 병기에 기시감이 느껴진다기 보다는, 그 안에 있는 사람이 뭔가...

직감적으로 무언가 이상함이 느껴졌으나.

'...피곤해서 그런가.'

거기서 더 나아가기에는, 그녀는 피로때문에 머리가 잘 안돌아갔다.. 이미 저 빌런이랑 싸우는데에 모든 정신을 쏟아부어도 모자랄 상태였으니.

그래, 어차피 쓰러트리면 알게 되겠지.

그렇게 신하루는 별 생각없이, 놈을 박살내기 위해 달려들었다.

그리고.

"윽."

자신의 공격을, 그 육중한 몸을 끌고도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피한 그것.

이내 그와 동시에 4개의 팔 중 하나가, 정확하게 그녀가 있는 곳으로 날아왔다.

이내 그걸 보자마자 바로 빠르게 위로 피한 그녀였으나.

"윽?"

마치 자신이 그쪽으로 이동할 줄 알았다는 듯, 또다른 팔이 그녀가 피한 쪽으로 휘둘러지고 있었다.

이내 회피와 동시에 가격당한 그녀.

애써 막아보았지만, 단단한 강철의 주먹을 예상치 못한 타이밍에 맞아버린 탓에 별 소용은 없었고.

그렇게 스타더스는, 주먹에 맞고 순간 튕겨져나갔다.

"크윽..."

허공에서 가까스로 멈춰서, 다시 위에서 몸을 똑바로 일으킨 그녀였으나.

이내 곧바로 그녀를 향해 달려오는 병기의 모습에, 판단할 틈도 없이 곧바로 몸을 세울 수 있었다.

이내 시작된 그것의 공격.

"으..."

마치 그녀가 어디로 피할지, 어떻게 공격하려 할지 전부 알고있다는 듯 공세를 이어가는 그것에, 그녀는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크하하하하! 어디, 이것도 피해 보시지!]

위이잉. 철컥. 위이잉. 철컥.

도시 위쪽 허공.

바람에 머리카락이 휘날려가는 그곳에서, 날아오는 수많은 미사일들.

당연히 하늘에서 마치 춤을 추듯 소형 미사일쯤이야 가뿐히 피한 그녀였으나, 이내 그렇게 펑 터지는 소리와 함께 퍼지는 연기 사이로 날아간 스타더스의 앞을 가로막은 것은.

전기로 파직거리며 날아오는 강철의 주먹이었다.

"크흑..."

가까스로 피했으나, 이제는 병기의 다른 팔에서 위이잉- 거리는 소리와 함께 날아오는 레이저.

그걸 피하고, 피하자 다시 피한 쪽으로 주먹이 날아왔으나.

스타더스는, 두번 당하진 않았다.

마치 급커브를 하듯, 순식간에 공중에서 방향을 바꾼 그녀는 이내 드디어 주먹을 쥐고 그 기계장치에 유효타를 넣는데 성공했고.

쾅.

그런 소리와 함께, 병기의 몸이 조금 튕겨져나갔다.

그러나.

'...단단하다.'

신하루는, 자신의 주먹에 느껴지는 통증을 느끼며 판단했다.

지금까지 이런류의, 슈트를 입은 빌런과 상대한 적은 꽤 많은 편이다. 특히 일반인이 능력자를 상대할 수 있는 방법은 이런거 밖에 없으니.

다만, 이번 빌런은 그중에서도 완성도가 한차원 다른 모습.

물론 자신한테 맞은 쪽이 살짝 파인걸로 보아 분명 타격은 들어간건 맞으나, 다른 빌런들이라면 아까 그 공격에 슈트가 부러져도 이상하지 않았다.

[고작 이거인가? 내 신세계의 방해물로는 턱없이 부족하군. 네놈부터 빠르게 해치워주마!]

굵은 기계음으로, 자신의 앞쪽에서 저렇게 말하는 그 병기.

대사 자체는 웬만한 3류 악당 뺨치는, 허세밖에 없는 유치하고 한심한 말투였으나.

스타더스, 그녀는. 이제 방심하지 않았다.

'...강하다.'

인정해야겠다. 강했다.

아니, 사실 따지고 보면 이때까지 싸워온 다른 적들에 비하면 그렇게까지 강한 편은 아니다.

다만.

'....말도 안돼.'

기묘할 정도로.

그녀 자신의 행동을, 저놈은 다 예측하듯 읽고 있다.

무엇을 할지, 어디로 갈지, 어떤 판단을 내릴지.

마치 다 알고있다는 듯이.

지금까지 이렇게 수많은 공방을 주고받는 동안.

저놈은, 아까 그 한방 말고는 단 한대도 맞지 않았다.

저 육중한 기계를 이끌고도, 단 한대도.

...대체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섬찟한 기분 속에서, 스타더스는 어두운 눈으로 판단을 내렸다.

'...무조건, 여기서 잡아야한다.'

대체 뭐하다 나타난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여기서 잡아야한다. 이번에 놓치면, 다음에는 얼마나 더 강해져 올지 모른다.

특히 자신의 전투습관을 꿰고있는 걸보면... 뭐하는 놈일지 무서울 정도.

그것은 마치 오만하게 선언하는 듯했다.

마치 자신이... 그녀의 카운터. 대적자. 천적이라고.

여기서 잡아야한다.

스타더스는, 속으로 되뇌이며 진지하게 임했다.

그녀에게 피곤한 기색은 더이상 보이지 않았다.

어떻게 해야, 저 빌런을 쓰러트릴 수 있을까 고민할뿐.

'....그래.'

그리고 그녀는, 하나의 판단을 더 마쳤다.

마치 자신을 읽고있다는 듯이 움직이는 저놈은, 나중되면 언제 어느순간에 자신의 카운터가 될지 모르므로.

오늘 여기서, 기회가 왔을때. 쓰러트려야한다.

어떻게든.

'...나한테 신경쓰이는 빌런은, 에고스틱이면 충분해.'

다른 이는 필요없다.

에고스틱말고, 그녀에게 그 어떤 다른 빌런도 의미 있지 않다.

저놈은, 오늘 여기서 처리한다.

그게, 저놈에게 있어서 죽음이라는 형태가 되더라도.

기필코, 여기서 놈을 끝낸다.

그렇게 스타더스 그녀 주위의 공기가 변하며.

그녀는 전보다 더 매섭게, 이를 악물고 병기를 향해 달려들었다.

***

테러를 일으킨 다음 느낀점 하나.

확실히, 스타더스는 강해졌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그녀에 대해 완벽히 꿰고있는 나는,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정도였지만.

'...쓰읍. 이정도면 다음 메인이벤트 참여할 수 있을거 같기도 하고...?'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열심히 그녀를 도발하며 맞서 싸웠다. 전력을 더 확실히, 정확하게 판단하기 위해.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흐른 뒤.

'...음?'

뭔가 달라졌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뭔가, 아까보다 더 잘싸우는거 같기도?

설마. 나랑 싸우는 동안에도 또 능력이 성장하고 있는건가?

'...이게 주인공이라는건가.'

나는 나도 모르게 기체 내에서 헛웃음을 지었다.

그래. 스타더스라면 그럴 수 있지.

뭐, 잘된 일이다. 어쩌다보니 일석이조가 됐네. 이번 기회에 성장도 시키고.

나는 그렇게 웃음을 지으며 더 기쁜 마음으로 싸움에 임했다.

그래 하루야. 오늘 좀 더 진화하고 가자!

그래, 그렇게 즐겁게 생각했었다.

쳐맞기 전까진.

"커헉."

[커헉.]

그렇게 전투가 얼마나 이어졌을까.

싸움 도중, 드디어 그녀의 제대로 된 주먹을 얻어맞은 나는, 순간 땅에 곤두박칠 쳐졌다.

...쓰읍. 존나 아프네. 내장이 꼬이는 기분.

순간 실수했다. 피할 수 있었는데.

아니, 근데 왜이렇게 아프게 차. 사람 잡겠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기체를 일으켰고.

그렇게 잠시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정면을 똑바로 응시한 상태에서야, 스타더스의 눈을 제대로 바라볼 수 있었다.

정확히는, 나를 거의 확실히 조지겠다는 듯 불타오르며 날아오는 스타더스의 눈을.

'...어라.'

나, 좆된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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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이번 테러는 그렇게 큰 의미를 두고 일으키지는 않았다.

그냥 오랜만에 스타더스도 직접 만나고 싶고, 겸사겸사 스타더스 실력도 한번 제대로 봐볼려고 한거지.

근데, 갑자기 스타더스가 저렇게 나올지는 몰랐다.

"하아... 하아..."

몇차례에 걸친 공방 뒤.

나는 잠시 자리에 떨어져서, 팔로 입쪽을 가린 채 거친 숨을 내쉬는 스타더스를, 병기 안에서 지켜봤다.

지쳐 보임에도, 두 눈만은 명확하게 내 쪽을 바라보며 이글이글 불타오르는 모습.

거의 내 첫테러 이후로 처음보는, 진심으로 이쪽을 박살내 버리겠다는 듯한 강인한 의지의 표정.

나는 그렇게 뜨겁게 불타오르는 스타더스의 표정을 보며, 좀 당황했다.

...아니, 왜 저래?

표정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아니, 어쩌면 저 표정은 정말로 이쪽을 처리하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다.

...진짜로 왜 저러지.

분명 내 처음 계획은 정체를 숨긴 채, 스타더스의 능력을 테스트 하려고 했던 것 뿐이다.

사실 정체 숨긴것도 그냥 뭐 하다보니 별 생각없이 객관적인 능력 체크를 위해 그렇게 한 것뿐.

그런데 어째, 반응이 꽤나 격렬했다.

'...생각해보자.'

자, 스타더스 입장에서는 어느날 처음보는 빌런이 갑자기 테러를 일으킨거다. 근데 그 빌런이 자신의 공격 패턴을 다 꾀고있고, 심지어 그녀를 압도하는 수준.

...그거 때문인가?

아무리봐도 그것 때문인거 같다. 정체를 숨겨서인지 경계심이 한층 강화된 느낌. 하긴, 그녀 입장에서는 하루아침에 갑자기 강력한 새로운 빌런이 등장한거니까.

그래서인지, 어쩐지 나를 진심으로 상대하는 그녀의 모습이었다.

이것까지는 의도하지 못했는데 상당히 당황스러운 부분. 순간 지금이라도 조종석을 열고 '짜잔! 사실 에고스틱이었답니다!' 라고 밝힌 다음에 튀어야 할지 고민하게 될 정도였다.

다만.

"으득."

나를 향해 주먹을 쥐고 또 날아오는 스타더스를 보면서 생각을 고쳤다.

그래. 이런 귀중한 성장이벤트를 놓칠 수는 없지.

일단 지금까지 봐서는 다음 메인 이벤트인 벰파이어 성 사건을 아슬아슬하게 깰 수 있을 능력은 되는거 같긴 한데, 오늘 여기서 또 성장하고 가면 확실히 깰 수 있지 않을까?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기체를 움직여 스타더스를 피한 뒤, 그녀에게 4개의 주먹 중 하나를 내질렀다.

이에 그걸 예상했다는 듯 갑자기 아래로 꺼지듯 날아가더니 뒤쪽에서 공격을 가하는 그녀.

처음보다 훨씬 나아진, 깔끔한 동작이었다.

근데 문제는 그걸 맞는게 나라는 거고.

"크헉."

[크헉. ...네녀석, 죽인다!]

아니, 무슨 주먹질이 기계장치를 때렸는데 안에 있는 나까지 타격이 가. 심지어 우리 베히모스도 복부에 둘러놨는데. 베히야, 좀 잘막아봐라.

'뀨잉?'

이제는 베히모스의 환청이 들릴 지경.

나는 골이 띵한걸 느끼면서도, 어떻게든 컨셉에 맞춰 말을 이었다.

근데 말을 할 틈도없이 쏟아지는 그녀의 공격. 나는 그걸 피하며, 서은이가 준비해 놓은 기능 여러개를 동시에 사용했다. 플라즈마 폭탄, 화염방사 뭐 이런거 말이다.

"쓰읍..."

말이 조종석이지 사실상 사람 들어갈 공간 겨우 있는 관같은 그곳. 나는 거기서 입가에 흐르는 피를 손을 꼼지락거려 겨우 닦았다.

...슬슬 몇방 더 맞으면 정말 몸에 무리가 갈거 같기는 한데, 뭐. 몇방 더 안맞으면 그만 아닐까?

[오늘 너는 이자리에서 쓰러진다. 내가 그렇게 정했다. 이 카오스 디스트로이어가, 네놈을 쓰러트려주마!]

싸움에서 중요한건 기선제압.

그래서 나는 그렇게 우렁차게 소리쳐줬다. 상황이 상황이었음에도, 어쩐지 손발이 오그라드는 느낌이었지만... 한번 컨셉을 잡았으니 끝까지 가야지.

그리고 내 그런 선언에.

스타더스 또한 진지한 얼굴로 머리카락을 슥 넘기더니, 간신히 들릴만한 목소리로 말했다.

"...역시, 여기서 처리해야..."

아니 시발 무섭게 왜그래요.

지금이라도 짜잔 에고스틱이에요 저는 도망갈거에요를 시전해야하나 진지한 고민이 들었으나, 사나이 다인. 한번 마음먹은건 끝까지 가기로 결정했다.

이제는 달릴 수 밖에 없어.

[죽어라!]

나는 그렇게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내뱉으며, 드디어 주먹에 노란 빛이 빛나기 시작하는 스타더스를 향해 달려들었다.

...나, 살아 돌아갈 수 있겠지?

***

위험은, 예기치 못한 순간 갑작스럽게 찾아온다.

물론 에고스틱처럼 사전에 나 테러할거에요 광고를 한 뒤 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다수는 정말 갑자기 찾아오는 법이다.

대표적으로 한은그룹의 베헤모스. 일명 검은 파도 사건. 정말 하루아침에 갑자기 튀어나와 서울을 거의 쓸어버릴 뻔했다. 그리고 월광무녀의 폭풍 사건도 있다. 그때도 어느날 저녁에 갑자기 등장했었지.

그리고 그런 때에 느꼈던 기분을.

신하루는, 지금 느끼고 있었다.

'....'

물론 상대가 그렇게 광범위한 인명피해를 입히고 있는건 아니지만, 그 강함만큼은 거의 필적한 지경.

애초에 신하루, 자신이 생각하기에 그녀는 이전보다 꽤나 강해졌다. 이미 협회장도, 이정도면 S급 중위정도의 실력인거 같다고 얘기하기도 했고.

그런 그녀를, 순수하게 근접전에서 압도하는 빌런이 등장했다. 그것도 저 육중한 기계장치를 이끌고.

그녀가 경각심을 느끼는 것도 당연.

그래서 그녀는 생각했다.

무조건, 여기서 잡아야한다.

자신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도 이정도로 그녀를 압박하는데, 나중에 데이터가 더 쌓여서 오면 감당 못할수도 있다. 심지어 기계공학자 같은데, 더더욱.

그래서 신하루는, 피곤을 억누르고 사력을 다해 그것과 맞서싸웠다.

눈에 진물이 날 지경으로, 머리를 싸우면서도 계속 굴리며.

위에, 아래, 오른쪽, 오른쪽.

마치 패턴을 익히듯, 차근차근 하나씩.

그렇게 처음에는 그것을 단 한대도 못맞추던 그녀는.

이내 하나씩 하나씩, 저 기계장치에게 유효한 타격을 주기 시작했다.

[크허억!]

...참고로 은근 타격감이 있었다.

한방 맞을때마다 무슨 세상 죽는 소리를 내며 날아가는 녀석.

물론 곧바로 다시 일어나기는 하지만, 그래도 확실히 유효타가 들어가고 있다는걸 입증하는 모습이었다. 쭉 이 페이스대로 가면, 놈이 도망치지 않는 한 이대로 쓰러트릴 수 있을거 같은 기분.

다만.

두근. 두근.

".....?"

그렇게 놈을 자꾸 한대씩 때릴때마다.

신하루는, 계속해서 무언가 불안감이 커지는게 느껴졌다.

무언가, 해서는 안될 짓을 하는 기분. 나중에 후회할 짓을 하고 있는거 같다는 직감. 그리고 그런 불길함에 점점 커지는 심장박동.

'...왜 이러지?'

그 이상한 느낌에, 신하루는 혼란스러울 지경이었다.

...그냥 새로 나타난 빌런을 공격하는 것일 뿐인데, 왜 이런 불안한 기분이 드는거지.

그리고 그런 싸한 느낌은, 싸움도중 놈을 한방 더 때리고 그가 신음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점차 증폭됐다.

...왜, 처음보는 빌런한테 이런 기분이 드는건지, 그녀는 정말 알 수 없었다.

피곤해서 그런건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있는 건가. 왜 이런 이상한 직감이 드는거지.

뭔가 불안감을 느낀 그녀가, 이에 대해 더 자세히 생각해 보려고 해도.

"크흑...."

펑. 펑.

자꾸만 쉴틈도 없이 날아오는 공격때문에, 차분히 제대로 된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계속되는 싸움에 지친 상태이기도 했고.

그래서 그냥 피곤해서 그런가- 라며 넘기려고 한 하루.

그러나 아무리 그럼에도, 이 까닭모를 찜찜한 기분은 쉽게 없어지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녀는 일단은 계속 싸웠다. 기분탓이라는 말도안되는 이유로 당장 나타난 빌런을 앞에 두고 딴 생각을 할 여유는 없었기에.

그렇게, 놈의 공격을 피해 발로 가격하는데 성공한 그녀.

순간적으로 저쪽으로 튕기듯 밀려난 그것은, 이내 다시 균형을 잡더니 이쪽으로 돌아왔다.

[크흐. 내가 이대로 끝날 거, 쿨럭, 같으냐? 너만은 내가 꼭 쓰러트려주마!]

그녀의 귀를 찌르듯 들어오는, 커다란 기계음.

듣는것만으로도 거슬리는 기계 음성이었으나, 그녀는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뭔가... 뭔가, 떠오를거 같기도...

그러나 그 생각은, 다시 또 그녀를 향해 날아온 저 병기에 의해 끊기고 말았다. 신하루 자신에 의해 팔 하나가 부러져, 세 팔을 들고 달려드는 그것.

척 보기에도 저것의 상태가 영 좋아보이지는 않는 모습이었지만, 그건 신하루 그녀 또한 마찬가지였다. 계속된 격렬한 싸움과 끊임없이 이어진 공방과 정신집중으로 눈에띄게 더 피로해진 그녀.

그렇게 더 생각할 틈도 없이 그녀는 계속 싸웠다.

...그래. 저걸 일단 쓰러트리고 나면 이 이상한 기분도 사라지겠지. 그리고 대체 뭐하는 놈인지 보고 나면, 모든 의문또한 풀릴거고.

신하루는 이를 악물었다.

...그래. 이상한거에 휘둘려서는 안된다. 자신의 목표는 저것을 박살내는 것, 그것뿐. 다른걸 생각할 틈은 없다.

두근. 두근.

경고하듯, 더욱 강해지는 심작박동.

그러나 그녀는 그걸 무시했다. 신하루. 그녀는 히어로다. 그리고 히어로는, 빌런을 앞에두고 다른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렇게 싸움이 이어지고.

기어코 놈의 팔을 하나 더 뜯어, 이제 두팔의 기계장치가 더덜더덜 떠있을때.

신하루는 이를 악물고, 마지막 일격을 날렸다.

이제, 여기서 이 지긋지긋한 싸움을 끝낸다.

그 생각과 함께 별처럼 밝은 빛이, 그녀의 주먹에 번쩍였고.

그대로.

—————————쾅.

[커허억-]

그녀의 마지막 한방이, 그 병기의 몸통 중앙에 꽂힘과 동시에, 놈은 혜성처럼 저 뒤로 날아가 옆의 건물 벽면에 그대로 꽂혀버렸다.

말그대로 무언가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벽에 쳐박힌 그것.

이내 모든 동력을 잃었다는 듯, 그것은 다시 땅쪽으로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쓰러졌다.

이내 힘을 잃고 그대로 땅에 너부러진 원형의 기계.

이내 두 기계팔을 축 늘어트린 채, 그것은 드디어 쓰러졌다.

"하아... 하아..."

그리고 그 앞에서.

신하루, 스타더스는. 간신히 숨을 내쉬며 한쪽 팔을 부여잡았다.

쓰러트렸다. 간신히 쓰러트렸다.

빌런을 잡는데, 성공했다.

그런데.

두근. 두근. 두근. 두근.

어째서, 심장이 이다지도 빨리 뛴다는 말인가.

왜, 이 불안하고 불길한 기분은 사라지지 않는단 말인가.

무언가, 큰 잘못을 했다는 기분이 자꾸만 든다는 말인가.

"...이상해."

뭔가, 이상하다.

아니야. 문제가 있을리가 없다. 자신은 새로이 등장한 빌런을 잡았을 뿐인걸.

...그래. 확인해보자.

그렇게 그녀는 비틀거리는 발걸음으로, 그 기계장치가 쓰러져 있는 곳을 향해 한걸음씩 발을 옮겼다.

한걸음, 한걸음. 걸을때마다 점점 커지는 이 불길한 감각.

그렇게 그것의 앞까지 도착한 스타더스.

그녀는, 불안한 기분을 애써 억누르며, 그것의 강철 판막 하나를 잡고 발로 고정한 뒤, 뜯어 보기로 했다. 안에는 사악한 빌런이 들어있을거라고 생각하며.

그렇게, 강철의 옆면을 뜯어낸 그녀가 보게 된 것은.

"...아...?"

"쿨럭. 안녕하세요, 스타더스씨. 하하.. 쿨럭."

피로 물든 안쪽에서, 복부를 부여잡은 채.

입가에 빨간 피를 흘리며, 각혈하는 와중에도 그녀를 향해 애써 웃어보이는 에고스틱의 모습이었다.

....아?

그리고, 그 순간.

스타더스의 눈이, 그대로.

원래의 빛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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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흑... 쿨럭."

개박살이 난 병기 안.

나는 그곳의 뒤에 기대, 쿨럭하고 피를 토했다.

쓰읍... 죽겠네.

나는 겨우 숨을 고른뒤, 어두운 기계 내부에서 잠시 몸을 살폈다.

딱봐도 좋지 못한 상태.

피가 철철 흐르는걸, 우리 베히모스로 어떻게든 지혈하고 있는 상태다.

...아니, 이게 나름 베히모스로 충격 좀 완화한건데도 이 정도면, 정통으로 맞았으면 진짜 좆됐겠는걸?

그래도 뭐, 결과적으로 살았으니 된 거 아닐까.

나는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피를 하도 쏟아서 머리는 잘 안돌아갔지만.

...사실, 이건 딱히 의도한게 아니다.

아니, 나는 그냥 대충 능력 딱 성장할때까지만 좀 싸우다가 이제 어느정도 됐으면 에고스틱인거 밝히고 '좀 색다르게 놀아봤는데, 재밌었네요. 이번에는 비록 제 패배였지만, 다음에는 다를겁니다!' 이러고 도망가려 했지. 이미 대사까지 다 짜놨었다.

근데 문제는 그... 내가 좀 몰입하다보니 스타더스 조금이라도 더 성장시켜보려다 도망가야 할 타이밍을 놓친 것도 있고.

스타더스의 필살기, 일명 스타-펀치의 시전 타이밍을 잘못 예측한 것도 있다. 아니, 예상치 못한 순간에 갑자기 빛이 번쩍하면서 주먹이 날아오는데, 이걸 어떻게 피해.

이미 그녀의 전투패턴을 다 꾀고 있는 나조차도 방심시킬 정도라니, 정말 이 짧은 순간에도 다이나믹하게 성장한거 같다.

스타더스... 난 너가 자랑스럽다...

"쿨럭."

쓰읍.

나는 피를 또 뱉고 생각에 잠겼다.

...어쨌든 일이 이렇게 됐으니, 이제는 대책을 생각해야 할 때.

나는 쓰러질거같은 정신을 억지로 붙잡고, 다음 일을 생각했다.

일단 지금 상태는 손가락하나 까딱하기도 힘들 정도.

지금 베히모스 조종하면서 지혈만 겨우 하고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순간이동을 쓰면...?

'좆되겠지.'

진짜 죽을 수도 있다. 특히 여기서 곧장 집으로 멀리멀리 순간이동한다? 패널티받고 과다출혈로 즉사다. 하율이 치유능력이 부활까지 커버 해주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어.

그러나. 아직 빠져나갈 구멍은 있다.

바로 존버전략.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들이 나 구하러 와줄때까지 존버를 타는거다. 애들아. 나 좆됐어. 살려줘.

물론 문제는 당장 언제올 줄 모른다는거. 그때까지는 여기서 시간을 끌어야 한다.

쓰읍... 아마 스타더스라면 바로 벽면부터 뜯고 내 정체를 확인하려 들텐데.

나는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내 몸을 다시 돌아봤다.

그래도 옷이랑 가면은 다 갖춰입은 상태. 이미 정체를 밝힐거라고 상정해놔서 이정도는 되어있다. 다만 이런 식으로 밝히게 될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지...

나는 피투성이가 된 옷을 슬쩍 바라본 뒤,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일단 어떻게든 입을 털어 시간을 끌어야한다. 스타더스가 나를 보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모르겠지만, 그 틈을 타 입을 털어 나를 쓰러트리지 못하게 해야한다.

...근데 이꼴이 된 나를 보고 스타더스는 무슨 반응을 보일려나. 아마 스타더스 전문가인 내가 봤을때, 소 뒷걸음질 하다 쥐 잡듯 어쩌다가 에고스틱 잡았다고 그냥 좋아할 것 같다는 기분. 오랜만에 스타더스가 웃는걸 볼 수도 있겠다.

...그리고 차라리 그게 다행이지, 잘못하면 괘씸하다고 여기서 갑자기 처리해 버리려고 할 수도 있다.. 물론 우리 하루는 빌런한테 즉결처형을 최대한 안하는 편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인생은 혹시 모르는 것. 역시, 무엇보다 내가 입터는게 중요해질거다.

나는 그렇게 잘 안돌아가는 머리로 대비를 단단히 하던 그때.

드디어 벽 너머 앞쪽에서 발소리가 들리더니, 누군가 내 앞에 서는게 느껴졌다.

이내 끼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뜯기기 시작하는 벽면. 서프라이즈 3초전인 상태.

그리고, 이내 밝은 햇볕이 어두운 공간에 들어오며.

스타더스의 모습이, 내 앞에 등장했다.

그와 동시에, 아래를 내려다보며 나와 눈이 마주친 스타더스.

"...아...?"

"쿨럭. 안녕하세요, 스타더스씨. 하하.. 쿨럭."

나는 그런 그녀를 보며, 애써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물론 중간에 그녀의 눈앞에서 피를 토하는 추한 모습을 보이는 불상사가 생기긴 했지만... 이정도는 넘어가주겠지.

머리에서도 피가 한줄기가 흐르고있어 눈앞이 잘 보이지가 않아 스타더스의 표정을 제대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그녀의 말은 들렸다.

"....아니야, 이럴, 이럴수가..."

...뭐가 아니야?

나는 의아한 기분에 억지로 초점을 맞춰 그녀의 상태를 확인해 보였다. 작게 떨리는 목소리로, 내 앞에서 혼자 뭐라고 중얼거리는 그녀. 음, 왜 저러는거지. 갑자기 로봇 안에서 내가 튀어나오니까 좀 당황했나?

저러는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일단 당장 나한테 달려들어서 쓰러트리지 않고 있다는건 큰 호재다. 입을 계속 털 수 있다는 소리지.

그래서 나는 애써 입을 열어, 그녀에게 작게 웃으며 말을 이었다.

"하하... 원래 이런식으로 정체를 밝히려던건, 쿨럭, 아니었는데. 어쩌다보니 이렇게 됐네요. 조금 장난좀 쳐볼려고 한건데... 쿨럭."

아니 시발. 계속 각혈이 나와서 말을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나는 그렇게 말을 하며, 빛에 익숙해져 조금 선명해진 눈으로 다시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

눈에 초점이 나간 채, 무슨 영혼이 나간 것처럼 입을 살짝 벌린 채 나만을 바라보고 있는 그녀.

잘 보니까 어째 손도 좀 떨리고있는거 같은 모습이다.

...진짜 뭐지..?

내가 의아함을 느낄 때쯤, 순간 그녀가 몸을 흠칫 떨더니, 다시 눈에 초점을 맞추고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며 내 앞으로 다가오기 시작했다.

"이, 일단 어떻게... 어떻게 해야. 그래 치, 치료를..."

그렇게 뭐라고 작게 중얼거리며 내 앞에 다가오는 그녀. 쓰읍, 잠깐. 왜 오는거야. 이대로 잡아가려는건가. 아니, 진짜 목숨걸고 순간이동이라도 해야되나.

그런 내 고민은, 다행이도 금방 끝날 수 있었다.

왜나하면, 거대한 보라색 마법진이 그녀와 내 사이에 나타남과 동시에 거대한 바람이 들이닥쳤기 때문에.

"크흑?"

순간적으로 불어닥친 강풍에 스타더스가 손으로 앞을 가리며 밀려나는 그 순간.

내 눈앞에 작은 마법진이 여러개 생기더니, 분홍색 구름과 함께 작은 누군가가 내 앞에 나타났다.

"오빠!"

검은색 머리와 대비되는 하얀 무녀복을 입은 채, 내 앞에서 폴짝 뛰어든 그녀. 은월이.

다행히 시간내에 와줬구나.

"쿨럭. 왔구나, 다행이다."

"오, 오빠... 몸 상태가... 어떡해요. 히잉."

나를 보자마자 울상을 짓는 은월이.

무릎을 꿇고 앉아 내 몸쪽을 붙잡고 글썽거리며 빠르게 나를 확인한 그녀는, 이내 내 몸을 옆에서 껴안았다.

"오빠, 바로, 바로 갈게요. 집으로."

"그래, 쿨럭. 가자."

"말하지마요! 피, 피 계속 나오잖아요. 일단 빨리..."

그렇게 정신없이 중얼거린 은월이는, 이내 허공을 몇번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우리 주위에 생기는 기하학적인 마법진들.

휴, 드디어 돌아가는구나.

진짜 어쩌다보니 큰일 날뻔했네. ...이 몸 꼬라지로 집 돌아가면 다들 어떤 반응을 보일지 벌써부터 아득하다. 걱정시켜서 미안할 따름.

그렇게 내가 생각하던 순간.

바람이 걷히고, 다시 스타더스의 모습이 내 눈앞에 보였다.

그리고 그런 스타더스의 모습을 확인한 은월이 역시, 나를 껴안은 채 이를 악물더니, 이내 나를 더욱 꽉 껴안은 채 스타더스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다행히도 빛이 나기 시작하며 작동되는 마법진들.

그 가운데에서, 나는 바닥에 쓰러져 스타더스를 바라보며 애써 미소를 지어보려 노력했다. 원래라면 엔딩 멘트도 날려줘야하는데, 정신 붙잡기도 힘들어서 거기까진 못하겠다...

그런 한가한 생각을 하며, 나는 스타더스를 마지막으로 바라보았다. 날 코앞에서 놓쳐서 좀 속상해할거 같은데...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간신히 스타더스를 바라봤다.

그렇게 확인한, 나를 내려다보는 스타더스의 표정은...

"....아."

손을 내쪽으로 뻗으며, 뭔가 절망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그녀.

아마 나를 코앞에서 놓치는게 그렇게나 아쉬운 모양이다.

하하... 역시 히어로 스타더스 답네.

내가 그런 생각을 함과 동시에, 바닥의 마법진에서 빛이 번떡였고.

순간 눈앞이 하얘짐과 동시에, 나는 정신을 잃었다.

...이정도면, 오래 버텼지.

그리고 그때는 몰랐지만.

이 광경은 전부, 한 방송사의 헬리콥터에 탄 기자의 카메라에 찍히고 있었다.

***

[[속보][1면]A급 빌런 에고스틱, 현재 중상... 생존 여부는 현재 확인 안돼...]

(피를 흘리며 쓰러져있는 에고스틱의 클로즈업 사진이 실린 기사 내용 전문)

아니 뭐임 시발

그 카오스 뭐시기인가 하는 빌런이 에고스틱이라는데????

지금 중상입었다는데 진짜 뭐냐

=[댓글]=

[???????????]

[ㅅㅂ 갑자기 뭔데]

[아니 이런게 어딨어 우리 망고 죽으면 안돼 갑자기 뭔데 아니 시발?]

[왜 밥먹고왔는데 뜬금없이 이런 소식이 에이 장난이지?]

ㄴ[장난 아니다 지금 신문사들 메인사이트에 전부 하나 둘 올라오는중]

ㄴ[진짜네ㅅㅂ]

[아니 왜 갑자기 방송도 안키고 이상한 로봇타고 나서더니 중상입고 오는데 망고야 왜!!!!]

*

갑작스럽게 언론에 보도된, 에고스틱의 중상 보도.

정말 뜬금없이 들려온 소식에, 대한민국은 술렁이기 시작하고, 에고스틱 팬층은 불타기 시작했다.

방송도 키지 않았기에, 카오스ㆍ디스트로이어가 에고스틱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그야말로 전무한 상황.

그렇게 에고스틱이 실시간 트렌드 1위를 차지하며, 대한민국이 뜨겁게 불타기 시작했고.

스타더스는 다음날, 협회에 출근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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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빈 공간.

그곳을 채우고있는 새하얀 빛.

그 기묘한 곳에서, 울려퍼지는 목소리.

아이야... 너만이... 할 수...

부탁한다.

부디... 이 세계를..

...미안하다.

그리고, 희미하게 들려온 마지막 말과 함께.

다시, 시야가 바뀌었다.

붉게 물든 하늘.

황폐해진 거리.

쓰러져있는 건물들.

'....빠....오빠!... 일어나...니!...빨리... 언니... 해봐...'

'...못해 ...못해요...아무것도...제...힘으론....'

그리고, 어디선가 들려오는 소음들.

그리고.

'쿨럭...죄...합니다....'

'...랍....세..째줄....꼭.... 제가 없이도... 부디...'

중얼거림과, 다시 들려오는 흐느낌.

'지...마...죽는거....니지?...흐...흐윽....'

'....'

'....미안...'

'안돼....포기...못해....못보..내....'

귀를 매우듯 사방에서 들려오는 찢어지는 소음.

무언가가 울부짖는 소리, 그와 동시에 밝아지는 하늘, 어두워지는 주위.

그리고.

끼이이이이이이이이이익.

"허억! 헉, 헉."

마지막에 그 찢어지는 소음과 함께, 나는 잠에서 일어났다.

일어나자마자 느껴지는건, 땀으로 젖은 몸.

하 시발, 또 개꿈 꾼거 같은데.

그렇게 내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고 있을때, 어디서 커다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윽."

갑자기 내 옆에서 느껴지는 무게감.

나는 머리를 부여잡은 채 겨우겨우 눈을 떴다.

"하아... 하아. 다인오빠, 드디어 일어나셨군요."

그리고 그 맞은편에는, 내 배 위에 손을 올리고 애써 미소짓는 하율이가 보였다.

"흐윽... 오빠..."

"아이고 서은아, 이제 오빠 괜찮아. 왜 또 울고그래."

"흑, 제, 제가 조금 더 잘 만들었으면 이런 일이 없었을텐데..."

갑자기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는 서은이.

거기에 내가 깨어났다는 소식에 저쪽편에 있던 모두들 다 모여서, 또 방안이 금새 북적북적해졌다.

그렇게 내가 깨어난걸 확인한 후에야 다들 안심했고.어느정도 진정되고 겨우겨우 서은이도 달랜 뒤.

일어나보니 좀 배고픈거 빼고는 몸이 멀쩡하다는걸 깨달은 나는, 수빈씨의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네? 제가 쓰러진지 벌써 5일이나 지났다고요?"

"맞아요. 다인씨, 다들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세요?"

약간 붉어진 눈으로, 수빈씨는 이례적으로 언성을 높인 채 지난 일들을 설명했다.

스타더스와 내가 치열하게 싸우는중, 나로부터 특별한 지시가 없어 계속 싸우는걸 걱정스럽게 지켜봤다고 했다. 그러다 불의의 순간에 내가 갑자기 스타더스의 필살기를 맞고 박살나니까 너무 놀라서 곧바로 달려온 것.

은월이가 빛의 속도로 날아가 바로 구해내서 겨우 산것이지, 아니였으면 정말 큰일날뻔했다고 수빈씨는 설명했다. 피투성이가 된 채로 기절해서 왔는데, 막 뼈 박살나고 내장 파열되고 그랬대나. 하율이가 안간힘을 써서 겨우 치유해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치료한 것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내가 또 일어나지 못한 것. 그렇게 다들 뜬눈으로 나를 지켰다고 그녀는 말했다.

"...오빠, 앞으로는 이제 어디든 혼자 못가요. 갈거면 앞으로 우리랑 가요. 알았죠?"

나를 붙잡고 부은 눈으로 그렇게 얘기하는 서은이.

그리고 드물게도, 옆에 멍하니 앉아있던 서자영도 거들었다.

"그래... 서은이 말이 맞아. 넌 너무 몸을 막 굴려."

내 팔을 손가락으로 쿡쿡 찌르며 그렇게 말하는 그녀. 옆에 앉아있던 최세희도 동의한다는 듯, 걱정스러운 시선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나는 앞으로는 몸을 함부로 안 굴리겠다는 약속을 병상에서 할 수밖에 없었다. 뭔가 벌써 몇번이나 한 약속같기도 한데...

하여튼 다시 얼마간 몸 좀 추스르고, 죽도 먹고. 다들 돌려보내고 좀 쉰 이후, 내 깜짝 서프라이즈 테러의 반응이 어땠는지 수빈씨에게 물었다. 마지막에 좀 처참히 깨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스타더스랑 용호상박으로 싸웠는데, 긍정적인 반응이 있지 않을까..?

그렇게 은근슬쩍 수빈씨한테 물었고.

그런 내 질문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네? 에고스틱 사망설이 돈다고요?"

나는 황당한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물었다.

아니, 왜 그런 개똥같은 낭설이...

내 그런 반응에, 옆에 앉아있던 서은이가 눈을 샐쭉하게 뜨더니 휴대폰을 두들기며 말했다.

"당연하죠 오빠. 오빠 다친게 방송국 카메라에 그대로 찍혔는데, 다들 그렇게 생각하지 않겠어요? 봐봐요."

서은이는 그렇게 말하며 내 앞에 자신의 휴대폰 화면을 보여줬다. 그곳에 실린건 한 기사.

[A급 빌런 에고스틱 중상... 에고스트림은 '노코멘트'. 네티즌들 사이에서 사망 의혹 잇따라...]

그 자극적인 제목 밑에 있는건, 한장의 사진.

멀리서 찍은걸 확대했는지 화질이 좀 구렸지만, 그래도 대충 내 모습과 흥건한 피는 아주 잘 보였다.

"지금 난리났어요 오빠. 사람들 막 다 오빠 죽은거 아니냐고."

"아니... 내가 그렇게 쉽게 죽겠어? 다들 왜 그런데."

"이번에는 진짜 죽을뻔 했다고요! 하아... 하여튼, 그래서 막 뉴스에도 나오고 난리에요."

"...그래?"

그렇게 서은이는 나한테 다른 것들도 몇개 더 보여주었다. 실시간 트렌드에 에고스틱 사망이 올라와 있다던지, 국내 유튜브 실시간 인기영상 1위를 아직도스타더스와 로봇탄 내 영상이 차지하고 있다던지 뭐 그런것들. 그냥 어이가 없을 지경.

....큰일인데.

나는 그걸보고 당황했다. 아니, 빌런이 뭐 테러하다 보면 다칠수도 있지. 그게 왜 죽었을 수도 있다는 식으로 논리가 비약하는거야. 빌런은 아무리 심하게 다쳐도 도망친 뒤에 다시 등장하면 말끔히 치료되어있는게 상식이잖아? 적어도 내가 본 히어로물에서는 다 그랬다.

하여튼 나도 내 폰을 찾은후 급히 여론을 검색해봤다. 실제로 에고스틱이 죽었다는 썰이 꽤 돌아다니는 모습. 심지어 에고스틱 팬카페는 막 활활 불타고 있다.

그리고 나는 이 사안을, 꽤나 심각하게 받아들였다.

...빌런이 부캐파서 놀다가 쳐맞고 죽었다? 이건 너무 이미지 실추잖아...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이 내가 죽었다고 진지하게 믿기 시작하면 또 새로운 빌런들이 등장할 수도 있다. 제 2의 에고스틱이 되겠다고. 원래 이 빌런판도 다 인지도 싸움이다. 인기끌기 어려운데, 내가 죽었다는 소문이 도는 이때가 어그로끌기 최적의 기회. 내 공백기에 무슨 일이 알 수가 없다. 특히 대한민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빌런이 나라는걸 생각하면 더더욱.

...그리고 당연히 아닐거라 생각하지만, 스타더스가 저걸 믿으면 좀 곤란해지기도 하고. 충분히 강해지기 전까지는 나를 주적으로, 그녀가 강해져야할 목표로 삼아야하는데 그런 내가 뜬금없이 죽으면 뭐가 되겠는가.

그렇게 대한민국 1위 빌런의 사망 의혹에 단체로 이상증세를 보이는 대한민국 국민들을 보며, 나는 결단을 내렸다.

"안되겠다. 바로 방송 하자."

"...방송이요? 지금?"

"그래. 그냥 나 살아있다는 것만 알리는 방송. 하도 난리나서 안되겠어."

나는 결단을 내렸다.

뜬금없이 터진 이 논란을 빠르게 끝내기로.

아니, 이번일은 그냥 뭐 별것도 아니고. 다음에 일어날 메인이벤트 맛보기 하나였는데 왜 이 난리가 난거야.

...물론 몸 상태가 이런데 무슨 방송이냐고 도끼눈을 뜨는 수빈씨한테, 의자에 앉아 말만 하는거라고 설득을 한 다음.

나는 카메라를 켜, 방송을 시작했다.

자, 장난도 여기까지다.

나 멀쩡하다고 이것들아.

***

에고스틱 사망의혹 첫 보도 이후.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일개 빌런의 사망 의혹 하나에 활활 불타고 있었다.

커뮤니티쪽은 에고스틱 팬카페 망고단과 스타더스 팬카페에 대치도 일어나며, 그야말로 난장판.

거기에 전문가들 또한 만약 에고스틱의 사망이 사실이라면 그에 의해 억제된 다른 빌런들의 범람과 해외 빌런들이 대한민국으로 침입해 올 수도 있다고 경고해, 일반인들도 이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거기에 리더를 잃은 에고스트림이 폭주하면 어떡하냐는 우려까지.

그리고 그렇게 무언가 폭발할 것만 같았던 그때.

그냥 갑자기, 뜬금없이 에고스틱의 방송이 켜졌다.

[안녕하십니까 여러분, 에고스틱입니다!]

정말 뜬금없이 켜진 방송.

그곳의 화면에는 멀쩡해보이는 에고스틱이 의자에 나른히 앉아, 말을 하는게 나왔다.

뭐 장난좀 쳐봤는데 실패했고, 앞으로는 이런 일 없이 꼭 이기겠다는 내용.

그리고 그 말만 하더니, 테러는 계속됩니다!라는 마지막 말을 끝으로 그냥 방송이 꺼졌다.

갑자기 켜져 갑자기 꺼진, 몇분 되지도 않은 방송.

그러나, 그 파급력은 어마무시했다.

[[속보]에고스틱 생존 보고... 건강에 이상 없어보여]

[에고스틱의 죽음, 낭설로 밝혀져...]

[에고스틱, '앞으로 테러 더 열심히 할 것.' 누리꾼들, 안심.]

그야말로 방송이 끝난지 몇분만에, 수없이 쏟아지기 시작한 기사들.

그렇게 단 몇시간만에, 에고스틱 사망 의혹 사건은 해프닝으로 깔끔하게 끝났다.

*

[자기가 에고스틱 죽었을거라고 한번도 생각도 한적 없으면 개추ㅋㅋㅋㅋㅋ]

그래 ㅅㅂ 우리 망고스틱이 그렇게 허무하게 쓰러질리가 없지ㅋㅋㅋㅋㅋㅋㅋ

의심 한번도 안했으면 개추ㅋㅋㅋㅋㅋㅋ

[좋아요]3884

=[댓글]=

[개추ㅋㅋㅋㅋㅋㅋㅋ]

[좋아요 올라가는 속도봐라 ㅅㅂㅋㅋㅋ 여기가 어제까지 망고 진짜 죽은거면 어캄? 올라오던데 맞냐? 가슴이 옹졸해진다...]

ㄴ[아ㅋㅋ 그건 걍 해본 말이었다고ㅋㅋㅋ]

[솔직히 이번 방송보고ㅈㄴ안심했으면 개추ㅋㅋㅋㅋㅋ]

ㄴ[ㄹㅇㅋㅋ]

ㄴ[망고스틱 얼굴보자마자 걍 미소지어짐ㅋㅋ]

ㄴ[진짜 망고 없으면 인생이 재미없어 절대안됨 ㄹㅇ... 삶의 의미가 반이 없어진다]

[빌런이 죽었다고 좋아하는 것도 아니고 살았다고 좋아하는건 대체 뭐냐고ㅋㅋㅋㅋ]

ㄴ[? 이번 사건은 A급 히어로가 S급 히어로한테 하극상 일으킨 사건인데 무슨 소리?????]

ㄴ[이녀석 별먼지카페 분탕종자 아님??]

ㄴ[갈!!!!!!! 자고로 신앙이란!!!]

*

그렇게 대한민국이 언제 난리 났냐는듯 다시 빠르게 안정을 되찾던 그때.

"....아."

어두운 방 안, 침대에 홀로 앉아있던 신하루는, 뉴스 기사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휴대폰을 떨어트렸다.

...다행.

"다행, 다행이다..."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약간 젖은 목소리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히어로가 빌런이 살아있다고 안심하는건, 평소에 그녀에게는 상상도 못할 일이었지만.

지금의 그녀는. 그런걸 생각할 정신이 없었다.

...그가 쓰러지지 않아서, 다행이다.

그녀는. 오직 그 생각만을 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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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더스 모르게 다른 빌런인척 덤볐다가 박살이 난 이후.

나는 집안의 한 방의 침대에 기대고 앉아, 계속 요양중이었다.

"음... 다네."

나름 밖의 숲이 촥 펼쳐져 보이는 뻥 뚫린 창가 앞.

그곳의 침대에서 블랙펄 밀크티를 마시던 나는, 가볍게 컵을 한번 흔들어 보았다.

달그락거리며 부딪히는 얼음들.

손끝에 닿는 차가운 얼음을 느끼며, 나는 빨대로 밀크티를 한잔 더 마셔보았다.

입안에 사악 퍼지는 달달한 맛.

"어때, 맛있지 않냐?"

"어. 오랜만에 단거 먹으니까 좋네."

빨대를 내 앞에서 물고 내게 묻는 최세희한테, 나는 그렇게 답해주었다.

그런 내 대답에 피식 웃는 최세희.

의자에 거꾸로 앉아 등받이에 팔을 올려 턱을 기댄채 내쪽을 보고있던 최세희는, 이내 시선을 살짝 돌리더니 눈을 살짝 찌푸린 채 입을 열었다.

"...아니 근데 서자영, 너는 왜 여기 누워있냐?"

"으응... 여기가 편하고 좋아."

침대 옆에서 내 이불을 안고 뒹굴거리고 있는 보라색의 무언가.

여기가 거실보다 더 편하다고 눌러앉아버린 내 말동무 서자영이다.

현재 내가 누워있는 침대는, 서은이와 수빈씨, 은월이까지 합세해 방 하나를 개조해서 만들어버린 치료실.

내가 자꾸 다쳐서 오니까 더이상 참을 수 없다며, 아예 방 하나를 공사해 만들어버렸다. 지하실에서 피로유지 장치 꺼내다 여기 이식하고, 볕 잘들라고 방에 창문 뚫어버리고, 등등.

그 결과 그게 마음에 든 서자영이 나보다 더 이곳을 잘 써먹고 있었다. 침대가 커서 2명이서 눕기도 충분하니 뭐. 나무늘보 키우는 기분으로 보고 있었다.

그렇게 뒹굴거리는 서자영을 슬쩍 보다가, 나는 최세희한테 슬쩍 찔러보았다.

"암만 생각해도 이제 난 괜찮은거 같은데..."

"안돼. 이번주까지는 쉬어."

그러자 단호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는 최세희.

아니, 나 일해야 하는데...

그래도 워낙 저렇게 강경하게 나와, 어쩔 수 없이 쉬기로 했다. ...사실 내가 쓰러진동안 최세희가 울고 난리쳤다는 얘기를 서자영한테 들은 뒤로는, 양심이 쿡쿡 찔리기도 했고.

하여튼 요즈음은 그렇게 평온하게 쉬면서 보내고 있었다.

계속 걱정했다며 내게 다시는 그러지 말라고, 조만간 찾아갈거라며 역정을 내던 이설아를 달래주고, 날 대신해 충격을 흡수하느라 반쯤 망가져 서은이에 의해 실험관 액체속에서 수복되고 있는 베히모스도 관찰하며, 그렇게 잘 쉬었다.

내 자의가 섞인건 아니긴 한데... 어쨌든.

"으음... 파인애플이 먹고싶다아..."

"파인애플?"

"파인애플 피자..."

"..."

옆에서 자꾸 이불에 입을 대고 이상한 말을 중얼거리는 서자영의 말을 라디오 삼아, 나는 생각에 잠겼다.

다름이 아니라 이제 슬슬 건강도 회복하고 나니, 보이는 것들이 있어서.

"...."

그래. 스타더스.

내가 이지경이 되면서까지 파악하려고 애쓴 스타더스의 능력에 관해서 생각해 볼 때다.

나는 밀크티를 한입 더 마시며 저번에 있었던 전투를 평가했다.

...일단 스타더스는 확실히 강해졌다. 심지어 내 예상보다 더.

원래 스타더스가 위기상황일수록 강해지는건 익히 알던 사실이지만, 그걸 감안하고도 꽤나 강했다. 애초에 나를 결국 쓰러트리기까지 했으니.

그래서 결론은?

바로 다음에 일어날 메인이벤트, 팬들 사이에서 일명 악마성 사건이라고 불리던 일이 그냥 일어나도록 내버려 둘거다. 원작의 스타더스는 못버텼어서 그냥 내가 미리 사전에 그냥 처리해서 테러 자체가 안일어나게 하려 했는데, 스타더스랑 직접 부딪혀 보니까 할 수 있겠더라고.

아마 이번 일을 겪고나면, 스타더스가 꽤나 강해질거라고 살짝 기대한다. 특히 다수전에서 강해질거라고.

...물론 원작에서 또 피폐를 찍던 스타더스의 모습이 뇌리에 박혀 살짝 불안하기는 한데, 그래도 지금의 스타더스는 다르니까 괜찮겠지.

하여튼, 그거는 뭐. 이제 가만히 기다리면 됐고.

나는 그보다, 더 중요한걸 떠올려보기로 했다.

바로 내가 스타더스한테 맞고 쓰러진 그날의, 스타더스의 반응을.

"....."

"오, 갑자기 진지한 표정."

옆에서 서자영이 웅얼거리는걸 들으며, 나는 그날의 스타더스를 떠올려봤다.

'....아니야, 이럴, 이럴수가...'

그래.

내가 쓰러진 날 보였던 스타더스의 반응이, 뭔가 조금 이상했다.

난 나 보자마자 스타더스가 기뻐하면서 더 공격하던가, 아니면 바로 달려들어 잡아가던가 둘 중 하나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날 보자 굉장히 당황한 것 같은 그녀.

왜 당황한거지? 기뻐한 것도 아니고?

뭐, 빌런인 날 걱정했을리는 없고. 그냥 막 눈앞에서 숨넘어가게 생겼으니까 당황한건가? 정보를 더 캐네야하는데 먼저 죽으려해서?

이게 제일 그럴듯 한거같다.

...아니, 뭐 물론 이런 이유가 얘여도 당황할 수도 있기는 하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테러만 몇십번 일으키고 한번도 안잡힌 빌런이 뿅하고 눈앞에 피철철 흘리며 튀어나왔으니까 당황할 수 있지.

뭐, 별로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닐거다.

그렇게 나는 가볍게 생각하고 넘겼다.

그나저나, 지금쯤 스타더스는 뭐하고 있으려나. 눈앞에서 날 놓친걸 땅을차며 아쉽게 생각하고 있으려나?

아니지. 오히려 날 한방 먹였다고 꿀잠자고 있을수도?

나는 그런 생각을 할 뿐이었다.

***

에고스틱이 자신의 손에 의해 사방에 피를 흘린 채 쓰러져 힘 없이 웃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본 뒤.

신하루는, 한동안 악몽에 시달렸다.

...물론 사실 말이 악몽이지, 그렇게 막 잔인하고 끔찍한 꿈은 아니었다.

꿈의 내용은 대부분, 자신과 에고스틱의 예전 일들이었을 뿐이니까.

[스타더스씨. 당신은 할 수 있습니다. 일어나세요.]

포기한 자신을 진지하게 응원해주던 에고스틱.

[저한테 하나, 빚지신 겁니다.]

자신을 대신해 공격을 맞은 채 피흘리며 웃던 에고스틱.

[고생하셨습니다. 나머지는, 제가 맡도록 하죠.]

[...제 아치에너미를 위해서라면, 이정도는 해줘야되지 않겠습니까?]

이길 수 없는 적 앞에서 자신이 절망하고 있을 때, 뒤에서 다가와 쓰다듬으며 대신 나서던 에고스틱.

그렇게 꿈은, 그냥 지금까지 에고스틱과 함께한 장면들을 다시한번 보여줬을 뿐이다.

다만.

[....]

그 끝이 늘, 자신에 의해 배가 뚫린채 피를 가득 흘리며 아무말없이 싸늘히 쓰러져있는 에고스틱을 보여주며 끝났을 뿐이지.

그 꿈을 꾼 날이면, 신하루는 늘 전신이 땀으로 젖어 헉헉대며 깨고는 했다. 심장이 강하게 뛰는 채로.

그래도 다행히, 그 꿈은 에고스틱이 살아있다는 소식을 전한 뒤로는 완전히 사라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그녀의 컨디션도 완벽히 회복되었고.

"으으음..."

오랜만에 찾은 자신의 사무실.

그곳에서 신하루는, 따스한 햇볕을 맞아가며 기지개를 폈다.

...에고스틱도 지금 어딘가 있겠지.

걔도 나처럼 이렇게 같은 해 아래에서 햇볕을 받고 쉬고 있으려나.

무의식적으로 멍하니 그런 생각을 하던 신하루는, 스스로가 한 생각에 또 움찔 놀랐다.

...내가 왜 또 걔 생각을 하고 있지.

미쳤나봐.

에고스틱의 생존 방송을 본 이후, 다시 정상으로 돌아온 신하루는 요즘따라 기분이 오락가락 하고 있었다.

정확히는, 지난 5일간의 자신이 보여준 추태 때문에.

"...으. 그때 내가 왜 그랬지."

자신도 모르게 볼을 붉힌 채, 햇볕에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금발의 머리카락을 한손으로 꼬며, 신하루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아니, 에고스틱이 그런 일로 막 죽...고. 그럴리가 없잖아.

예전에 그 한은그룹 지하실에서 거의 심장까지 꿰뚫리고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살아난 애인데. 당연히 자기 기지에 모종의 치료시설이 있겠지.

에고스틱이 살아있다는 얘기를 듣자, 드디어 다시 이성적으로 돌아온 그녀.

그런 그녀는, 바로 며칠전의 자신을 기억할때마다 막 이불을 차게 되었다.

자신의 손에 의해 피를 흘리며 쓰러진 에고스틱을 본 이후, 그녀는 한동안 자기가 생각해도 좀 이상했었다.

에고스틱의 예전 영상들을 찾아 멍하니 보지를 않나.

'...아니겠지. 괜찮을거야.' 막 이런 말을 혼자 집에서 중얼거리고.

어느날은 막 이유없이 자신도 모르게 눈물 한방울이 떨어지고.

협회도 그냥 출근 안해버리고.

"으으..."

부끄러움에 머리를 쥐어잡던 그녀는,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그래, 뭐 그나마 다행이다.

협회장이나 직원들은 자신이 에고스틱이랑 싸우느라 너무 피곤해지고 따로 요양해서 출근 안한줄 알고 있으니까.

...에고스틱 생각하느라 안나갔다는건, 무덤까지 가져갈 고민이다.

"....."

물론 지금도... 자신에 의해 피를 흘린채 쓰러져있던 에고스틱 생각만 하면 순간 숨이 멎고 머리가 어지럽긴 했다.

그냥 테러를 하는 빌런을 쓰러트린거니, 문제없다... 라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에고스틱이, 그냥 빌런은 아니지...'

막 이런 생각이 들며, 침울해지는 그녀.

빌런한테 미안하고, 뭐 그런건 아니지만. 아니긴 하지만...

그녀는, 그런 생각을 하며 오늘도 여전히 여전히 자신도 모르게 땅을 팠을 뿐이었다.

그렇게 비틀비틀 집에 돌아간 그날 저녁.

그녀는 또, 꿈을 꿨다.

[당신만이, 저를 완성시킵니다.]

자신한테 그렇게 말하던 에고스틱의 모습.

[제 아치에너미를 위해서라면...]

웃으며 그녀가 그의 아치에너미라 말하던 에고스틱의 모습.

[제 히어로, 스타더스보다 약하시네요.]

방송에서 그렇게 당당하게 스타더스를 그의 히어로라고 말하던 에고스틱의 모습.

그리고, 장면이 바뀌고.

어느새 에고스틱은, 하늘색 머리카락을 가진 여자의 품에 안겨, 자신을 향해 비웃고 있었다.

[하. 그 빌런이 저인지도 모르고 막 죽이려고 했던게 무슨 제 아치에너미인가요.]

[스타더스, 당신은 이제 제 주적이 아닙니다. 제 히어로는... 이제 이, 아이시클이죠.]

[흐응. 미안해 하루야. 그렇게 됐어. 앞으로 에고스틱 관련된 테러는 다 내가 상대할게. 알겠지?]

하하하하하. 호호호호호.

그렇게 에고스틱과 그를 껴안은 이설아의 웃음소리가 사방에 울려퍼지면서.

신하루는, 잠에서 깼다.

"히익. 헉, 헉."

...아니. 이게 무슨 개꿈이야.

신하루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쥐어잡으며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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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하하! 그래. 나야 당연히 자네가 그렇게 쉽게 쓰러질리가 없으니 연출이라 생각했는데, 아리엘이 하도 난리쳐서 혹시나 한 바람에 내 한국으로 쳐들어가 자네의 복수를 해야하나 그런 생각까지 했지뭔가!]

"아이고, 아사장님. 제가 그렇게 쉽게 죽을 사람입니까? 하하하하! 말씀만으로도 고맙습니다만, 굳이 그러시지 않아도 됩니다. 언론은 늘 과장하고 부풀리니까요."

[그런거같네. 근데 참, 자네소식 어디서 보고 내 딸아이가 어찌나 놀랬는지 막 펑펑 울고 그랬지 뭔가. 자네를 보고싶어하는 눈치던데...]

"하하. 아리엘이요? 이거 제가 나중에 한번 찾아가봐야겠네요."

[그래, 언제든 놀러오게. 라티스시티는 늘 자네에게 열려있으니 말일세. 아 그리고, 듣기로는 곧 그 카테달인가 뭔가 하는 회의가 2번째로 열린다더군. 그때 보세 그려.]

-크하하하하!

그렇게 아틀라스의 호탕한 웃음을 끝으로, 전화는 끝이 났다.

"휴우..."

북대서양의 지배자 아틀라스와도 전화를 마친 나는,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한국에는 왜 쳐들어와. 복수는 무슨 복수.

앞으로는 수빈씨를 핫라인으로 지정해 나 유사시에 대신 연락받으라 해야겠다. 쓰읍.

근데 아리엘이라, 그녀가 나를 걱정해줬다는 말을 들은 이후, 나는 계속 무슨 생각이 들고 있었다.

흠. ...아리엘 에고스트림 영입, 진짜 잘하면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아틀라스의 허락이 있어야 겠지만...

내가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때쯤, 내 입에 뭐가 닿았다. 뭔가 하고 보니, 노란색 귤 한조각.

"으음?"

내가 아무 생각없이 입을 열자, 그 사이에 입 안으로 쏙 들어왔다. 씹어보니 새콤하니 맛있었다.

뭔가 하고 내려다보니, 침대에 엎드린 채 만화책을 읽고있는 서자영이 보였다. 한손으로는 귤 까먹으면서.

아마 자기 먹는사이 내 입에도 하나 넣어준 모양.

작은 손으로 꼼지락거리며 귤을 까는데, 그렇게 자기 먹으면서 하나씩 내 입에 넣어주었다. 후드소매가 너무 크니 손이 더 작아보이는거 같기도.

그렇게 나는 입에 들어온 귤을 우물거리며 생각했다.

...아니 근데, 얘 언제들어온거야?

"야. 너 언제부터 여기있었냐?"

"...너 전화하고 있을때 들어왔지. 눈치도 못채던데?"

서자영은 입에 귤을 우물거리며 그렇게 말했다.

...이상한데서 신출귀몰하네.

"알았어. 이제 나가자."

"으응? 나 이제 막 왔는데에..."

"아침 먹어야지."

"내 아침은 귤... 으아아..."

나는 그렇게 서자영을 염동력으로 들고 밖으로 나갔다. 참고로 처음에는 뒤척이더니 이제는 허공에서 엎드린채 만화책을 읽는 그녀.

...저러다 눈 나빠지지.

하여튼, 그렇게 나는 거실로 나왔다.

이제는 몸이 많이 괜찮아져서, 능력을 마음껏 써도 문제없다. 아마. 그리고 이렇게 가끔은 조금씩 써줘야 감도 안잃고.

...물론 당분간은 절대 밖에 나가서 막 테러하거나 몸쓰는 일 하지 말라고 수빈씨를 필두로 모두가 한 말이 있어 몸을 사리고 있기는 한데... 이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싶다.

"으음..."

거실로 나와보니 마침 소파에 기대 졸고있는 서은이가 보였다. 그리고 그런 서은이 어깨에 기대 같이 졸고있는 은월이까지.

"으음.. 오빠. 이상한거 타면 안되요... 지지."

...대체 무슨 꿈을 꾸는거야?

내가 서자영을 바닥에 내려놓은 후 옆에 털썩 앉자, 그제서야 부스스하게 눈을 뜨는 서은이.

"오빠... 하암... 잘잤어요?"

"으응.."

눈을 비비면서 일어나는 서은이와, 그에 맞추어 같이 깨는 은월이었다.

으으응...

그렇게 기지개를 피기 시작하는 서은이 옆에서, 나는 티비를 틀었다.

여전히 별 특별할거 없는 소식만 전하는 뉴스.

...그래. 아마 오늘까지가 이렇게 별일없이 대한민국이 평화로운 날이겠구만.

내일부터는, 난리가 날테니.

내일은 드디어, 드디어 메인이벤트가 시작되는 날.

아마 하룻밤 더 자고나면 시작할거다.

그 기묘하고도 거대한 테러가.

"으음..?"

비장하게 그런 생각을 하던 나는, 여전히 정신 못차리고 고개를 앞 뒤로 흔들며 졸고있는 서은이를 보며, 잠시 생각을 바꿨다.

...일단 다들 아침이나 먹고, 생각하자.

수빈씨는 주방에 있으려나.

나는 자리에 일어나면서, 그렇게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대충, 평화로운 하루를 보냈고.

다음날, 잠을 자고 일어나니.

드디어 사건이 터져있었다.

***

[여러분! 속보입니다! 현재 한국 종합무역센터가 의문의 빌런에 의해 새벽사이 점령되었다고 합니다! 협회는 현재 이곳 주변에 민간인들의 출입을 금하고 있습니다. 아... 보시다시피, 현재 건물의 상태가 좋지 못한 모습입니다!]

가로로 길게 세워진, 길다란 건물.

평상시에는 사람들로 가득한 그곳 주변의 거리가, 언제 그랬냐는 듯 텅 비어있었다.

그리고 그 중심에 놓여진 건물.

평소에는 그냥 가로로 길게 놓여진, 평범한 건물이었지만.

지금은, 굉장히 상황이 달랐다.

그으으으으으-

건물 주변에서 들려오는, 기묘한 귀곡성.

유리가 반사되어 반짝반짝 빛나던 건물은, 어느새 시컴한 어둠에 물들어 본래의 모습을 잃었다.

건물의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전부, 시커멓고 끈적한 어둠에 물든 모습.

그리고 마치 거대한 성인양, 그 끈적한 어둠들은 건물 위에 첨탑과 지붕을 꾸며 건물이 마치 어두운 성처럼 보이게 둔갑하고 있었다. 실상은 1층짜리에 지하가 넓은 건물이지만, 적어도 얼핏보면 겉보기에는 중세시대 성처럼 보이는 모습.

그래.

서울의 중심에 있던 복합쇼핑몰은, 새벽 사이에 순식간에 검게 물든 유사 악마의 성으로 변해버렸다.

"와... 오빠. 이게 뭐에요?"

티비로 그 광경을 지켜보다가 내게 묻는 서은이.

그리고 그런 그녀에게, 나는 짧게 대답해주었다.

"저게 악마성이야."

"...악마성?"

그래. 악마성.

[시커먼 어둠이 이곳을 잠식한 가운데, 협회는 사태를 파악하는데 모든 힘을 쏟고있다고 밝혔습니다. 아마 S급 빌런, 그 이상이 일으킨 테러로 추정되며...]

나는 그걸보며 혀를 찼다.

쓰읍. 결국 내가 미리 안 막았더니 원작과 똑같이 그대로 시작되는구만.

이번 분기의 메인 테러, 일명 악마성 사건이.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현실로 닥친 이 사태를 조용히 바라보았다.

낮인데도 불구하고 그곳의 주위만 마치 저녁인것처럼 우중충한 가운데, 검은색의 아우라만 주위에 음을하게 퍼져있는 모습.

아마 저 안쪽에, 놈이 앉아있겠지. 이 사건을 일으킨 악마화 능력자, 그놈이.

놈을 생각한 나는, 다시한번 원작의 내용을 떠올려보았다.

...악마성 테러.

서울의 복합쇼핑몰 한곳을 완전히 점령한 빌런, 일명 데몬즈라는 놈이 일으킨 테러다.

정확히는 저곳을 거점으로 삼고 안에서 자신의 능력으로 유사 악마의 생김새를 닮은 검은색 크리쳐들을 생성한 뒤, 그것들로 서울 정복을 노리는 녀석이 일으킨 일. 이제부터 저곳에 있는 검은색의 물질들로부터 유사 악마들이 깨어나기 시작할거다.

그리고 어느정도 숙성된 뒤, 다들 일제히 튀어나와 서울을 공격할테고. 물론 아직은 그러기까지 시간이 조금 남아있긴 하겠지만...

이번 테러의 특징은 일으킨 놈이 이전까지의 다른 빌런들과는 달리, 머리가 좀 돌아가는 놈이라는거. 물론 뒤에서 조용히 안하고 저렇게 동네방네 광고하면서 테러를 일으키는거 부터가 좀 마이너스기는 했지만, 쟤는 실제로 자신의 능력에 자신이 있으니까 그러는거다. 그리고 그 말대로 원작에서도 스타더스던 누구던 다 막아내는 모습을 보여줬고.

근데 뭐, 이런 얘기는 다 필요없고.

중요한건 이거다.

'...스타더스가 또 피폐물을 찍었었지."

놈을 잡으려면, 결국 악마성 안쪽 지하로 들어가는 수밖에 없다. 제일 안쪽에 놈이 떡하니 위치하고 있어서.

근데 이 테러를 일으킨 놈이, 자기 잡으러 오는 길을 편하게 깔아놨겠어? 당연히 지가 만든 모든 악마 크리쳐들을 도처에 깔아놨다. 거기에 미로처럼 길도 좀 꼬고. 함정도 설치하고.

즉, 마치 게임으로 따지자면 저곳은 일종의 거대한 던전과도 같다고 할 수 있다. 가는 길이 지랄맞게 어려운.

'.....'

그리고 이건, 월광교 전에 처음으로 나오는 군단형 빌런이기도 하다. 상대하려면 다수를 상대해야하는. 저 안쪽에 끈적한 어둠으로 만들어진 괴물들이 얼마나 돌아다니는데. 거기에 양도 많으면서 괴물들 하나하나가 강하기까지 하다. 여러모로 골때리는 설정.

그래서 나는 처음에, 걍 이런 일이 일어나기도 전에 이거 일으킨 빌런을 미리 처리하려고 했었다. 원작에서 스타더스가 이번 일로 하도 구르기도 하니까. 원작 스타더스는 워낙 약하기도 했고.

다만, 저번에 내가 로봇슈트 입고 나서서 스타더스와 직접 싸운 뒤에는, 생각이 바뀌었었다.

...이거, 지금의 스타더스 보면 가능할거 같기도 한데? 능력이 훨씬 강해져서?

당연하게도 스타더스가 이런 테러를 경험해보는건 그녀의 능력 향상 면에서 좋다. 히어로만화 주인공인만큼 그녀는 역경이 겪을수록 강해지니까. 그리고 내가 봤을때... 지금의 스타더스 정도면 충분히 가능할거 같기도 하고.

그래서 그냥 내버려뒀고.

결국 예정대로 테러가 일어났다.

그렇게 화면에는 음울한 악마성의 모습이 나오는동안.

그 으시시한 모습을 보던 서은이는, 나한테 걱정된다는듯 물었다.

"오빠, 우리가 뭐 할거 있어요? 저기 안에 엄청 위험해보이는데..."

"응. 아무것도 없어."

"네?"

"우리는 그냥 스타더스만 믿으면 돼."

의아한 시선을 보내는 서은이한테, 나는 그렇게 답해줬다.

나는 우리 스타더스 믿는다. 이제 충분히 강해졌으니, 저정도는 충분히 격파할 수 있을거야.

...있겠지?

"...."

아니 근데, 왜 이렇게 계속 걱정이 되지.

***

[속보입니다! 히어로 스타더스가 현재 검게 물든 종합무역센터, 통칭 '악마성' 내부로 진입했다고 합니다! 현재 동행없이 단독으로 들어갔다고 협회는 보도했으며...]

"쓰읍..."

"오빠. 왜 이렇게 다리를 떨어요?"

그로부터 몇시간 뒤.

나는 앵커의 말을 들으며, 계속 초조하게 소파에서 발을 까딱까딱 거렸다.

...아니, 뭔가 가면 갈수록 계속 더 불안해져서 그러지.

우리 여린 스타더스가 저 안에서 잘 해낼 수 있을까? 원작에서는 그렇게 개고생을 했었는데. 내가 잘못된 판단을 내린거 아닐까?

불안해, 너무 불안해.

그렇게 한참을 고민하던 나는.

이내 결심을 새우고, 자리에서 주먹을 쥔 채 벌떡 일어났다.

"그래. 안되겠어. 나도 저 안에 들어가야겠다."

"...뭐라고요? 오빠 미쳤어요?"

나 말리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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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어로.

히어로란, 시민들을 지키고 사회의 정의를 수호하는 존재.

그들에게 다른 이들과 다른 강력한 능력은, 전부 사람들을 지키고 악을 처단하기 위해 주어진거다. 라고 신하루는 생각했다.

즉 그런만큼, 히어로는 스스로한테 공정해야하고, 그 누구보다 악에대해 엄격해야한다. 다른 모든 사람들이 빌런에게 매력을 느껴도, 히어로만은 그 빌런을 공정한 잣대로 처단할 의무가 있다.

히어로에게 있어서 빌런은, 처리해야 하는 대상일 뿐이니까.

그러니.

지금 그녀의 생각은, 잘못된거다.

"....."

에고스틱.

신하루는 오늘도 평소와 다름없이, 그에대해 생각하고 있었다.

에고스틱은 나쁜놈인가?

그걸 묻는다면, 그녀는 그렇다고 답할 수 있었다.

그가 사람 수백명의 목숨을 저울에 놓고 벌였던 수많은 테러부터.

재판도 받지 않은 빌런들을 자기 멋대로 살인, 다른 빌런들을 모아 팀을 만들기까지.

나쁜놈이 맞다, 맞는데...

"하아..."

...왜 그가, 나쁜놈처럼 느껴지지 않는걸까.

히어로인 자신이, 이렇게 특정 빌런에게만 이런 생각을 가져도 되는건가.

물론 당연히 그녀가 그렇게 혼란스러운건 다 이유가 있었다. 에고스틱이 나쁜놈이지만, 나쁜짓만 한건 아니기때문. 사실 따지고보면 에고스틱이 죽인 민간인은 아직까지 없지만, 베히모스나 한은그룹, 월광교의 일을 따지면 오히려 구한 사람이 더 많다고 볼 수도 있는거 아닐까...?

"아니야, 내가 또 무슨 생각을..."

신하루는 이마를 짚으며 중얼거렸다.

그래, 그만 생각하자. 요즘 자꾸 꿈에 에고스틱이 나오는 바람에 머리가 이상해진거다.

에고스틱은 빌런이다. 자신이 잡아야하는 빌런.

오직 그것일 뿐이다.

그리고, 어차피.

'...그도 나를, 이제 적대할 수도 있으니까.'

신하루는 씁쓸히 웃으며 그렇게 속으로 생각했다.

...그렇지 않은가. 에고스틱을 보고 아치에너미라고 해놓고서는, 못알아본채 거의 그를 죽일뻔 했는데.

물론 시작은 뜬금없이 속이고 테러한 에고스틱이기는 하지만... 피투성이가 된 채 누워있던 그의 모습을 보면, 그런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신하루. 그녀는 에고스틱을 잡고 싶었던거지, 거의 반 죽여놓으려 한건 아니였으니.

"...."

다음에 볼때, 에고스틱이 자신을 이전보다 더 적대하더라도, 그녀는 감내할 것이다. 빌런이 히어로를 적대하는건 그야말로 당연한 일이니까. 오히려 지금까지 '그의 히어로'라며 적인 자신을 응원해주고, 자신 대신 칼빵을 맞아주고, 자신이 힘들때 대신 나서주던 에고스틱이 이상한거다.

다만.

그가 자신을 경멸하는 표정으로 볼거라고 생각하니까.

왠지, 마음이 아프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씁쓸하게 생각했다.

그래. 더이상 에고스틱 생각은 하지말자. 나는 히어로니까. 다른 빌런들로부터 대한민국을 지키는 것. 그것만 생각하자.

"스타더스씨. 여기 저번에 테러를 일으켰던 월광교에 대한 추가 조사결과가 나왔습니다."

"...아, 네. 알겠습니다. 확인해보죠."

그래, 이렇게 일이나 하자, 일.

그렇게 그녀는 마음을 다잡았고.

[속보, 한국 종합무역센터 빌런한테 점거... 악마의 성같은 외견으로 변해.]

마침내, 다른 테러가 찾아왔다.

좀 큰게.

***

한국 히어로 협회.

늘 잦은 테러로 인해 이제 어지간한 빌런들에게는 눈하나 꿈뻑도 안하는 이들이었지만.

지금의 그곳은,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이런 젠장! 사람들은 다들 대피했나?"

"네! 새벽사이 조금씩 조금씩 침식되었던 일이라 애초에 민간인들이 테러현장에 별로 없었던것으로 파악됩니다."

"휴, 그나마 다행이군... 이게 뭔일인가 그려."

이른 아침.

새벽사이 들려온 갑작스러운 소식에 헐레벌떡 출근한 협회장은, 한숨을 푹 쉬며 땀을 닦았다. 안그래도 요즘 더 빠질 머리카락도 없는 마당에, 얼마 남지않은 머리칼마저 다 빠질 기분.

그렇게 겨우 컨트롤센터의 자리에 앉은 그는, 이내 번뜩이고 생각났다는 듯 옆의 직원에게 약간의 희망을 가지고 물었다.

"그런데 말이다... 이 테러, 혹시 에고스틱이 일으킨거 일수도 있지 않은가?"

"이미 조사결과, 자칭 '데몬즈'라고 불리는 빌런의 단독 소행으로 보이고, 에고스트림이랑은 아무 관련이 없어보입니다."

"에휴, 젠장. 역시 내 인생이 그리 잘 풀릴리가 없지. 망했군, 이건 또 어찌해야하나."

협회장은 탄식을 하며 중얼거렸다.

그리고 그가 그렇게 십년은 더 늙어진 얼굴로 보고를 받을 때, 스타더스가 마침 도착했다.

"...."

어제도 이설아가 에고스틱을 껴안고 하하하하 호호호 웃는 꿈을 꿔서 별로 기분이 좋지 않던 스타더스.

협회장에게 인사한 후 자리를 잡은 그녀에 이어, 새벽에 호출되어 이것저것 하다가 협회 휴개실에서 눈을 붙이고있던 섀도우워커 또한 방금 자다 깬듯한 눈으로 흐느적거리며 도착했다.

그렇게 서울에서 활동하는 히어로들이 전부 도착한 후, 이어진 브리핑.

그곳에서 설명 담당을 맡은 안경 낀 프로페셔널해 보이는 직원이, 커다란 스크린을 가르키며 침착한 목소리로 말하기 시작했다.

"일단, 자신을 데몬즈라고 밝힌 빌런은 20-30대로 추정되며, 남성으로 추정됩니다. 남아있는 영상기록물들을 복원해봤을때 잘 보이지는 않지만, 철저히 계획된 일인 것 같고요."

그렇게 말하며 그는 그 빌런이 앞에 돌에다가 검은색의 끈적이는 무언가로 휘갈기듯 세겨놓은, '데몬즈 캐슬' 이라는 문구를 띄웠다.

"그가 통칭 악마성이라고 붙인거에서서 보이듯, 종합무역센터 지상의 건물 전체와 지하 시설들까지 전부 그가 생성한 검은색의 액체에 의해 침식당했습니다. 또한 마치 환영으로 만든 것같이 건물이 악마의 성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의 말이 끝나고 다시 바뀐 화면.

거기에는, 어두운 무언가에 잡아먹힌 길다란, 넓은 건물이 보였다. 그리고 그 위에 어둠으로 그려진 검은색의 뾰족한 첨탑을 가진 성의 모습.

번떡거리는 고층 빌딩 사이에서 혼자 이질적이게 놓여진 새까만 중세시대 성은, 그야말로 기괴하면서도 소름이 돋는 풍경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모두가 얼굴을 굳힐때.

직원은, 딱딱한 얼굴로 계속 설명을 이어갔다.

"현재 저 검은색의 끈적거리는 물질이 건물 내부와 지하 모든것에 있으나, 그것 자체는 인체에 닿는다고 해서 해를 끼치는건 아닌거같다고 합니다만... 문제는 저희 탐사팀이 파악한 바에 의하면, 그 검은색 액체에서 괴물들이 탄생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다시 스크린이 바뀌어 보이는 것은, 하나의 영상.

그곳에서는 악마성 아래 지하에 풍경을 담고있었다.

바닥에 쫙 깔린 검은색의 촉수들과, 어두운 분위기의 텅빈 그곳.

그리고 깜깜한 곳 한쪽편에서, 검은색 엑체로부터 무언가 기괴한 형상의 생명체들이 하나 둘 올라오며 형체를 갖추고 만들어지는 모습이였다.

다들 그 기묘한 광경에 사태의 심각함을 깨닫고 있을때.

협회 직원의 설명이 이어졌다.

종합무역센터 지상층이 악마의 성처럼 위협적인 생김새를 하고있기는 하지만, 실상은 환상이고 진짜는 구불구불 개미굴처럼 이어진 지하다.

굉장히 넓고 큰데다가 복잡하게 얽힌 저 지하에서 수많은 괴물들이 배양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고, 그것을 행하는 주체는 데몬즈라는 빌런인 것 같다.

그러니, 아마 저 빌런만 처리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거다. 그게 협회가 내린 결론이었다.

"쓰읍... 쯧. 하필 서울의 도시 한가운데서 일어난 일이라 미사일을 쏠 수도 없고 거기에 지하니... 곤란해졌구만."

협회장은 혀를 차며 중얼거렸고, 요원은 이에 고개를 끄덕이며 설명했다.

"네. 아마 현재로써 사건을 해결하는 제일 적합한 방법은 이 모든 사건을 일으키고 있는 빌런을 제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만... 저 지하 어딘가에 있는건 확실한데, 그게 어딘지는 직접 찾아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는 곤란하다는 듯 말을 이었다.

"해가 뜨기전 틈을 타 새벽사이 조사해본 결과로는,저 빌런의 검은색 물질이 섀도우워커씨의 능력을 방해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풀어말하면 나는 또 쓸모가 없다는거지. 하하하..."

퀭한 얼굴로 그렇게 자조적으로 중얼거린 그는, 이내 다크서클 가득한 눈으로 흐느적거리더니 등받이에 털썩 기댄채 고개를 숙였다.

한때 밤의 패황이라 불렸던 섀도우워커, 3연패.

그렇게 좌절한 그는 내버려두고.

결국 이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히어로는, 단 한명이었다.

"스타더스씨."

"알겠습니다."

스타더스, 신하루는 짧게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게도. 그녀가 나설 차례였기에.

그렇게 세부 일정이 조율되었다.

데몬즈는 곧바로 S급 빌런으로 공표됐고, 악마성이 된 무역센터 근처는 전부 일반인 출입금지가 되었다.

그렇게 몇시간 후, 을씨년스럽게 사람하나 없는 텅빈 거리에서.

그곳에 도착한 신하루는, 조용히 발을 내딛었다.

그녀의 목표는 악마성 지하에서 증식하는 괴물들을 보이는대로 처치하며, 제일 심층에 있을걸로 추정되는 데몬즈라는 놈을 제거하는 것.

한 심호흡한 그녀는, 이내 어두운 그곳으로 찬찬히 발걸음을 옮겼다.

자신과 괴물들, 그리고 데몬즈라는 빌런만이 있을 그 곳으로.

***

한편 그시각.

에고스트림 본부, 큰집.

"쟤 잡아!!!"

"오빠, 가만히 있어요!"

"....미안해요, 다인오빠."

"잠깐, 잠깐! 내 말 좀 들어봐. 그리고 은월아? 우리 그 마법진 그리는건 잠깐 멈추고 대화로 해결할까?"

내가 저 악마성 지하로 들어가겠다는걸 밝힌 직후, 우리 에고스트림 본부는 조금 떠들석해진 모습이었다.

...살려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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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축하고 어두운 건물의 내부.

그곳을, 신하루는 조용히 걷고있었다.

"...."

바닥에 깔린 끈적한 검은색의 무언가를 밟으며, 그녀는 계속 앞으로 나아갔다.

그렇게 본래 에스컬레이터였을 곳을 지나 그녀는 지하로 내려갔고.

본래 사람들로 북적였을, 넓고 뻥 뚫린 그곳의 공간은.

"...하아."

그야말로, 마치 지옥처럼 변해버렸다.

전기가 반쯤 나가 희미하게 깜빡깜빡하는 그곳.

늘 사람들로 북적북적 가득 차있는게 익숙한 장소가, 단 한명의 사람도 없이 텅 비어있는 모습은 그 자체로도 을씨년스러운 모습이였지만, 이번엔 그보다 더했다.

바닥에 쫙 깔린, 꿈틀거리는 검은색의 무언가.

정체를 알 수 없는 이것들은 바닥뿐만이 아니라 벽면, 그리고 천장까지 전부 차지하고 있었다.

마치 살아있는 것처럼도 보이는 모습.

이 넓은 공간이 저 검은색 촉수같은 것에 잠식당한 모습은, 일반인이라면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에 질려 벌벌 떨 광경이었지만.

신하루는, 그저 얼굴을 잠시 찡그리고 말뿐이었다.

'...검은색 촉수하니, 에고스틱과 함께했던 그날이 생각나네. 베히... 뭐였던거 같은데.'

심지어 잠시 예전 일도 떠올리며 옛생각에 잠긴 그녀.

물론 이곳은 적진 한복판이었던만큼, 그런 생각은 빠르게 털어버리고 다시 임무에 임했다.

이번 탐사의 목적은, 이곳에서 증식하고 있다는 괴물들을 최대한 제거하고 이 모든걸 일으킨 빌런을 사살하는 것.

물론 생포가 제일 좋겠지만, 상대가 너무 위험해보이는 관계로 그렇게 결정되었다.

'...이 빌런은, 넓은 영역 전체를 침식시키고 스스로 다른 생명체를 창조할 수 있어보인다는 점에서 이전의 다른 빌런들과는 궤도가 다릅니다. 외국의 비슷한 사례를 보면, 이런류의 빌런은 이 침식이 일주일 이상이 지난 다음에는 대체 어떤 일이 벌어질지...'

전문가의 말을 곱씹던 그녀는, 이내 계속해서 더 안쪽으로 발걺음을 옮겼다.

그리고 점점 더 깊숙히 들어갈 수록 보이는, 소름끼치는 광경들.

개미굴처럼 여러갈래로 뻗어진 지하의 백화점같은 공간또한, 전부 끈적한 검은색 무언가로 뒤덮여있는 상태.

보면 볼수록 무슨 공포영화와도 같은 광경에, 신하루의 표정은 갈수록 안좋아졌다. 특히 분명 무슨 괴생물체가 있다고 들었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텅 비어있으니 오히려 무서울 지경.

슬슬 뭔가 이상한 기분을 느낀 그녀는, 조금 더 속도를 높여, 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차라리, 무엇이든 일단 살아있는 것과 차라리 싸우는게 더 나을거같은 기분이다.

그렇게 신하루는, 점점 더 아래로 향했고.

그리고 그럴수록, 보이는 광경들은 점점 더 괴상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

본래 지도랑은 다르게, 아예 변질된 공간들.

이제는 단 한점의 틈도 남기지 않고, 모든 걸 다 먹어치워버린 검은색 물질들 사이에.

마치 중세시대에서나 쓰일법한, 이질적인 물건들이 하나 둘 나타나있었다.

고풍스러워보이는 거울, 촛대, 기괴하게 생긴 초상화까지.

드문드문 이질적이게 걸려있는 그것들은, 슬슬 분위기를 심상치 않게 하였고.

이내 얼굴을 굳힌채 아예 복도사이를 날아가던 신하루는 마침내, 보고말았다.

크르르-

검은색 액체 사이에서 솟아오르는, '그것'들을.

그것들은 마치, 작은 악마같이 생긴 모습이었다. 작은 머리, 달려있는 두 뿔, 그리고 날개까지. 다만 차이점이라면, 끈적하고 검은 것들로 몸 전체가 이루어져 있어서인지 얼굴같은 것이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 심지어 눈조차도 없었다.

마치 작은 사람들처럼 생긴 그것들은, 어느 공간 한곳을 빙빙둘며 배회하고 있었다. 검고 끈적이는 것들이 공간을 다 먹어치워, 빛조차도 희미한 그곳 속에서만.

그리고 그 한편에서 수상하게 부글거리는, 검은색 액체의 모습.

이상한 검은색의 돌기같은 무언가가 솟아올라와있는 그곳 앞에서, 부글거리는 액체 안에서 검은 촉수로 이루어진 팔이 튀어나왔다.

그로테스크한 광경 속.

그녀가 한발자국 더, 가까이 다가가자.

휘익-.

그순간, 소름끼치게도.

일제히 그 악마형상의 촉수덩어리들의 얼굴이, 그녀에게로 향했다.

"...."

그리고, 바로 그순간.

-끼에에에에에에엑!

그 방안에 있던 모든 악마들이, 그녀에게 달려들었고.

"쓰읍..."

그와 동시에 스타더스또한, 주먹을 쥐고 앞발을 내딛었다.

그래, 차라리 이렇게 싸우는게 낫다.

불명확한 공포보다는, 실제된 적이 더 나으니까.

그렇게, 그녀의 주먹이 악마의 머리통을 날렸다.

***

"허억... 허억..."

그로부터 얼마나 지났을까.

숨을 헐떡인 신하루는, 이내 고개를 들어 주위를 돌아봤다.

...더이상 보이지 않는 적들.

그리고, 난장판이 된 주변.

이내 한숨을 돌린 그녀는, 한숨과 함께 손에 묻어있는 검은색 물질들을 털어냈다.

...생각보다 강했지만, 그녀는 버텨냈다.

생긴게 귀신마냥 끔찍해서 그렇지, 유기체 비슷한 것마냥 당연히 주먹에 맞으면 쓰러지던 그것들.

물론 촉수같은 것들로 이루어진 주제에 생각보다 튼튼하고, 많은 개체가 함꺼번에 달려들어 동시에 처리하는게 어렵긴 했지만, 그래도 이전과는 다르게 많이 강해진 그녀는 상대할만 했다.

다만, 문제는 이러한 것들이 얼마나 더 있는지 모른다는 점.

"...."

그런생각을 하며 신하루는, 다시 주위를 둘러봤다.

아까 쓰러진 그 검은 악마들은, 다시 그 액체 속으로 마치 흡수되듯 사라진 모습.

그걸 확인한 그녀는 대신, 아까부터 저쪽에서 부글거리던 검은색 액체가 있던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 보인건 검은색 종양같은 무언가. 그리고 그 아래 까만 웅덩이에서 거의 반쯤 생성된 뿔달린 머리.

"쯧."

이내 그걸 차버려서 날려버린 그녀는, 잠시 그곳을 바라보며 분석했다.

...아무래도 이 불룩 솟아오른 검은색의, 마치 심장처럼 꿈틀거리는 이것 앞에서 악마들이 생겨나는 것 같다.

그런 판단을 마친 그녀는, 발에 힘을 실어 그 악마의 심장같은걸 그냥 차버렸고.

펑- 하는 소리와 함께 그대로 박살난 종양.

그리고 그 앞에 있던 웅덩이도.

-보글보글.

하는 소리와 함께, 끓어오르는걸 멈췄다.

그렇게 더이상 다른 악마가 올라오지 않는 것까지 확인하고 나서야, 신하루는 잠시 한숨을 돌렸다.

"휴우..."

...이 구역은, 대충 끝났나.

진이 빠져 어디라도 앉고 싶었던 그녀는, 당연하게도 주위가 전부 검은색 촉수로 뒤덮인 것을 확인하고는 깔끔히 포기했다.

그렇게 다시 아무도 없이 깜빡이는 빛만이 있는 어두운 텅 빈 공간에 홀로 남겨진 신하루.

그제서야 그녀는 자기가 있는 곳을 다시한번 확인했다.

무슨 분수같은게 있는, 지하의 넓은 만남의 광장.

물론 다 검은색 촉수로 뒤덮여있기는 했지만, 한때 이곳이 사람들로 북적였을걸 추측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윗층이 뻥 뚫려, 2층까지 보이는 공간이기도 했고.

그곳에서 혹시 다른 것들이 소리를 듣고 오는건 아닌가- 라며 주위를 둘러본 그녀는, 이내 아무도 오지 않자 홀로 가만히 서서 생각에 잠겼다.

"....."

그러자, 자연스래 굳어지는 그녀의 얼굴.

...이때까지 이곳으로 오고, 저 악마와같은 것들과 싸우기까지 한 그녀가 내린 결론은.

이게, 생각보다 훨씬 큰일이라는거다.

'...이정도의 능력이라.'

지금까지 그녀가 거친 공간은, 굉장히 많았다.

그리고 그 공간들이 전부 이 검은색 무언가로 뒤덮여있었고.

이 모든게 전부 한명이, 하룻밤사이에 만든 것.

그리고 그 악마와같은 것들.

그녀야 나름 몇분안에 빠르게 해치우기는 했지만, 자신이 상대하는데 꽤나 힘이 좀 들었다는건, 꽤 강하다는거다. 애초에 스타더스 자신이, 대한민국 모든 히어로들중에 제일 강했으므로.

그런데 그런 것들이 알아서 증식까지하고.

그 증식하는 괴물들이 이 넓은 지하에, 얼마나 깔려있을지도 모른다?

스타더스는, 순간 자기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대체, 이 모든 일을 일으킨 빌런은 얼마나 강한것인가.

그와 동시에 드는, 일종의 한탄.

대체 왜, 이런 빌런은 어디서 계속 나타나는거지.

대한민국은 평화로울 수 없는 저주라도 걸렸던말인가.

"...일단은, 저 악마놈들을 만드는 것같은 곳들을 최대한 처리하고, 빌런만 처리하면... 다 끝나겠지."

그렇게 그녀는 텅 빈 공간에서 홀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스스로를 설득하듯.

당연히, 아무런 응답도 돌아오지 않았다.

다만 그녀의 목소리만이, 텅 빈 공간에 메아리쳐질뿐.

...계속 가자.

그렇게 잠시 팔을 뻗어 근육을 푼 그녀는, 다시 더욱 깊숙한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푸른 눈으로, 약간 불안한 표정을 한 채 깊숙히 들어가던 그녀는, 이때까지만 해도 몰랐다.

그녀의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있는, 한쌍의 눈동자가 있었음을.

***

...쓰읍. 잘싸우기는 하는데, 그래도 좀 불안한 이 느낌.

지금이라도 내가 대신 최종보스 잡고 이 이벤트를 강제종료 시켜버려야하나.

[...아니, 오빠. 뭐 성장시켜야한다고 아니면 세계 다 망한다고 한건 오빠였잖아요?]

머릿속에서 울려퍼지는, 황당하다는 듯한 목소리.

아니, 그건 아는데. 스타더스가 실시간으로 고생하고 있는걸 보니 마음이 아프니까 그러지.

무역센터 지하 어딘가.

그곳의 검은 기둥 뒤에 숨어서 스타더스를 지켜보던 나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내 옆에서 둥둥 떠다니는 이상한 기계.

서은이가 만든 에고-서쳐라는 아무리봐도 해파리처럼 생긴 감시용 기계가 나와 함께하고 있었다.

'...그래도 아까 전투 보니까.'

원작보다는 확실히 더 잘싸우는 느낌. 확실히 이번에는 승산이 조금 있을수도.

근데 그건 그거고, 아니 씨발. 무서워 죽겠다. 무슨 사방이 다 검은색 액체괴물로 가득해.

원작에서도 무슨 납량특집 에피냐고 원성을 받았던 그곳에 실제로 있으니 심약한 나로써는 좀 쫄린채였다.

[하하! 여기는 마치 고향처럼 친근한 느낌이 드는구만! 내 저승에서 탈출하기 전에 말이야...]

...물론 나와 다르게 반지안에서 신나서 웅웅거리는 데스나이트 아재. 그렇게 그가 썰푸는걸 들으며, 나는 다시 한숨을 쉬었다.

겨우 에고스트림 멤버들을 설득해 이 지하로 내려온지 벌써 몇시간.

조마조만한 심정으로 혼자 담력테스트 하듯이 이 악마성 지하에 내려온 나는, 혹여 스타더스가 비명횡사할까봐 계속 숨어서 지켜보고 있었다.

근데, 뭐 나름 잘싸우는거 같다. 원작에서는 아까 그 소악마들과 싸우다가 다쳤었는데 그러지도 않았고.

그래. 그래도 다행힌건, 아마 이 페이스 대로라면 내가 뭐 혹여나 나서야 할일은 없을거같네!

나는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했었다.

그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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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렸을 적부터 공포영화를 딱히 싫어하진 않았다.

물론 갑자기 귀신이 까꿍하고 튀어나오면 좀 놀라긴 했지만, 그렇다고 벌벌 떨지는 않았다는 이야기.

특히 공포영화를 볼때는 영화보다 주위 사람들이 깜짝 놀라는게 더 재밌기도 했다. 저번에 다같이 공포영화를 밤에 거실에 불끄고 봤는데, 서은이가 깜짝 놀라서 거의 천장까지 점프하는게 영화보다 더 재밌었다.

하여튼, 결론은 내가 공포영화를 보고 딱히 쫄지는 않는다는거. 거기에 저번 한은그룹 지하에서 괴물들 틈바구니에서 걸으며, 더더욱 단련된 멘탈.

그리고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게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지경이었다.

왜냐고?

그야 여기가 그냥 공포영화 세트장 같거든...

어두운 지하.

무슨 끈적끈적한 검은 젤리같은게 온 사방 벽면에 붙어있는 곳 한가운데에서, 나는 혼자 서있었다.

아니, 정확히는 혼자는 아니지.

"...."

내 옆에서 혼자 공중에 붕붕 떠 따라오는 이 해파리같은 기계랑 같이 있으니.

이 위험한 악마성 아래에 갈거면 이거는 꼭 같이 갖고 가달라는 서은이의 부탁... 과 안 가져가면 울거같아보이는 반 협박에 같이 오게된 로봇이다.

특징은 카메라가 달려 이쪽의 상황을 우리 에고스트림 멤버들이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정도..? 물론 무슨 무기도 달려 호신용도 된다는데, 잘 모르겠다.

...참고로, 이곳까지 오기도 정말 쉽지 않았다.

아직 몸도 다 안나았는데 대체 어딜가냐고, 혼자 갔다가 또 다쳐서 돌아오는거 아니냐고 다들 걱정을 해가지고.

물론 걱정이 나를 집안에 감금시키겠다는 이상한 방향성으로 변하길래, 서둘러 설득하는 수밖에 없었다. 아니, 애초에 내가 저 빌런을 먼저 죽이려고 했었는데 설마 약점도 모르겠냐고.

물론 이 악마성이 외관 하나만큼은 무슨 게임으로 치면 최종보스가 있을 것만같은 무시무시한 비쥬얼이라 걱정하는건 이해는 하지만...

특히 수빈씨와 서은이가 보기에는 내가 무슨 호랑이굴로 혼자 들어가는 것처럼 보였나보다. 하긴, 내 말에는 늘 웃으며 고개만 끄덕이던 은월이와 하율이마저 반대했으니...

그래도 여러차례 설득한 끝에 겨우 빠져나올 수 있었다. 데식이 아재도 챙기고, 베히모스도 챙기고, 이 해파리달린 로봇도 챙겨간다는 조건으로.

"쓰읍... 그래서, 여기가 어디지."

[오빠. 일단 오른쪽으로 꺾어봐요.]

"그래?"

그렇게 나는 결국, 이 악마성 아래를 걸을 수 있었다.

...바닥이 찐득찐득하고 어두침침한게, 굉장히 마음에 안든다. 아니, 막 무서운건 아닌데... 좀 그래.

[...아니, 오빠. 근데 여기 왜 이렇게 귀신 나오게 생겼어요? 화면으로 봐도 무서운데요.]

두리번 두리번 거리는 서은이의 해파리 로봇과 함께 들리는 서은이의 말.

아니, 서은아. 귀신은 안나온단다. 악마가 나오지.

...뭐, 말이 악마지 그냥 생체조직이 엮인거니.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점차 안으로 들어갔고.

기괴하게 뒤틀린 지형들을 건너, 끝내 스타더스를 발견할 수 있었다.

"....."

음. 아직 무사하군.

그렇게 나는 스타더스를 직접 본 이후에야, 비로서 한숨 덜 수 있었다. 하. 원작에서 여기서 막 죽을 위기 몇십번씩 겪은거 생각하니까 불안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있어야지. 이렇게 눈으로 직접 보니 훨 났네.

그렇게 나는 몸을 숨긴채 먼저 2층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역시나 원작대로, 1층에서는 악마들이 등장했고.

이내 뒤늦게 스타더스가 도착해.

드디어 처음으로 전투가 벌어졌다.

"...흐음."

가운데가 뻥 뚫려있던 덕분에,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볼 수 있었던 나.

그렇게 몇분간 꽤나 치열했던 전투가, 끝내 스타더스의 승리로 끝이 났다.

조용히 몸을 털고 나가는 그녀.

원작보다 확실히 잘 싸우던 스타더스의 모습을 뒤에서 지켜보던 나는, 그제서야 긴장을 어느정도 풀었다. 그래, 그래도 이정도면 무난히 최종보스 전까지는 가겠네.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하니, 떠오른거 하나.

"...."

...음, 나. 괜히 왔나?

생각해보니까 여기까지 헐레벌떡 달려온건 좀 오바였나 싶다. 스타더스가 어련히 알아서 잘하겠지.

긴장이 풀리고 나니 드디어 돌아온 이성.

음, 불안감이 사라지고 나니까 좀 오버한게 아닐까 싶다. 갑자기 스타더스가 다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무작정 급발진해서 왔으니까.

....돌아갈까?

아무리봐도 내가 너무 과보호했던게 아닐까 싶다. 스타더스라면 어련히 잘할텐데.

[오빠? 가만히 서서 뭐해요?]

잠시 고민하던 나는, 이내 결정했다.

그래. 그래도 스타더스가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확인 정도는 해야지. 나중에 일 터지고 나서 후회해봤자 소용 없다. 미리미리 준비해놔야지.

...그렇게 생각하면, 지금보다 더 좋은 방법이 있지.

나는 그 생각과 함께, 스타더스가 향하는 곳으로부터 반대편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엥? 오빠 어디가요?]

갑작스러운 내 유턴에, 의아해하면서도 졸졸 따라오는 해파리 로봇.

갑자기 돌아가는 것처럼 보이는 내 모습에 서은이가 집에 오기로 결국 마음 굳힌거냐며 잘생각했다고 안심하는 해프닝이 있었지만, 내가 그게 아니라고 다시 설명하는 바람에 오해는 빠르게 풀렸다. ...조금 투덜거리긴 했지만.

그렇게 난 왔던 길을 다시 걸어올라갔다. 또 그 찐득한 검은색 액체괴물들을 밟으며.

...에혀. 순간이동이 있으면 뭐하나. 비축해야되서 평상시에는 잘 쓰지도 못하는데.

그렇게 사람하나 없는 검은 진액에 침식당한 문화센터를 가로질러, 나는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위로 향했다.

흠. 뭔가 이러니까 아포칼립스 세계에 떨어진거 같기도 한 기분이네. 사람하나 없는 파손된 백화점이라... 약간 좀비영화 감성.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하던 나는, 이내 주위를 돌아보며 혀를 찼다. ...확실히, 파워인플레가 진짜 곱창났다. 이게 뭐야 벌써. 예전에 몽키스패너같은 애들이 설치던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이렇게 강한 애들이 막 튀어나오고 있다. 예상대로.

...그나마 아직까지는 다들 약점이 확실해서 다행이지, 에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망토를 휘날린 채, 1층으로 다시 돌아왔다. 음, 이제야 검게 물든 창 사이사이로 좀 보이는 햇빛. 그래. 아까는 너무 어두웠어.

이렇게 다시 1층으로 돌아온 이유는 하나.

스타더스가 멀쩡한 것도 직접 봤으니, 이제는 컨트롤센터에서 관람해도 되겠지.

음산한, 뭐 튀어나오게 생긴 지하에 비해 지상층은 뭔가 텅텅 빈 느낌. 그냥 아무것도 없을 것처럼 생겼지만.

사실 이건 함정이다.

여기에 컨트롤센터가 숨겨져있거든.

그 생각을 하며 지상층 저 구석 어딘가로 걸어간 나는 끝내, 구석 어느쪽에 마치 아무것도 없어보이지만 잘 보면 희미하게 보일듯 말듯한 문을 기어코 찾아냈다.

그래. 여기란 말이지.

"이리 오너라!"

나는 그렇게 소리치며, 문을 그냥 발로 뻥 차서 열었다.

-크리엑?

그러자 보이는, 이상하게 생긴 괴물 몇마리.

아까 스타더스가 싸우던 그 악마 비슷하게 생긴 것들과는 다르게, 이번에는 무슨 골렘같이 생긴 검은 생명체들이 그 안에 있었고.

-크키에엑!

나를 본 그것들은, 이내 일제히 달려들었지만.

"홀리 펀치!"

-끄아아아아악?

그냥 내가 미리 준비해 놨던 홀리-십자가를 품에서 휘두르자, 다들 걍 녹아 없어졌다.

휴. 끝!

참 쉽죠?

[...진짜 한번 더 봐도 신기하네요. 오빠, 그건 원리가 뭐에요?]

"음... 과학과 마법의 산물?"

이제 근처에 스타더스도 없으니 말도 편하게 크게 한 나는, 주위를 휘적휘적 뒤져서 앉을만한 의자를 찾아냈다.

이상한 검은색 진액들을 닦고나서, 털썩 앉으니 살거같은 기분.

내 홀리-십자가는 의자옆에 놨다.

원작에서는 이번 임무가 최종적으로 작전 실패해, 악마들이 몇마리가 시중에 뿌려지면서 생태계에 숨어사는 바람에 걔네 잡겠다고 시간이 지난 후에야 개발되는 무기.

물론 나야 대충 그 원리를 알고있으니, 미리 준비해놓은 것들에 덩굴마녀라는 내 일기장에 마법 걸어줬던 그 여자를 다시 찾아가서 만들어놨던 무기다.

뭐, 굳이 십자가 모양일 필요는 없지만 감성이라는게 있으니...

하여튼, 내가 이곳에 들어온 이유는 하나.

여기가 이 악마성의 컨트롤센터기 때문.

그리고 그런 내 말을 입증하듯, 앞에는 수많은 모니터들이 붙어져 있었다. 화질이 좀 구리긴 한데... 어찌됐건 시시티비 비슷한것들로 아래 침식된 공간들이 다 보이는 모습.

참고로 이건 원래 있던게 아니다. 이 모든 사건을 일으킨 데몬즈라는 놈이 새로 만들었던거지. 지금은 방치됐지만.

".....얘가 난놈이기는 해."

나는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데몬즈. 앞으로 일어날 마지막 월광교 테러 전 최고의 임팩트를 보여준 이놈. 현세에 지옥을 강림시키겠다는 목적 하나로, 이 지랄을 다 준비한 놈이다. 그전까지의 머리보다는 능력부터 쓰던 다른 빌런들과는 다르게 어느정도 머리도 돌아가는 놈이고.

참고로 저놈은 지금 이곳 제일 깊숙한 곳에서 자체적으로 봉인에 갇힌 채 힘을 모으고 있다.

그리고 아마 저놈이 풀려나는 그날이, 대한민국에 지옥이 강림하는 날이겠지만...

'뭐, 어차피 원작에서도 그건 실패했으니까."

그래. 원작에서조차 저놈은 부활하는데 실패했다. 정확히는 반쯤 부활했는데, 스타더스와 협회가 혼신의 힘을 다해 겨우 막았지. 물론 악마 몇몇은 풀려났지만, 그래도 대한민국 망하는건 막았으니 된거 아닐까?

나는 그런 생각으로 등받이에 등을 기댔다.

그리고 어디에 숨겨져있는 조작 패널을 찾고 만져보니, 보이는 스타더스의 모습. 복도를 걷는 모양이다.

[...음, 이건 좋네요. 여기서 이러기만 하면 괜히 오빠가 위험해 질리도 없고.]

"그치?"

안심하는 듯한 서은이의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여기서 지켜보다가 뭔 일 터지면 내려가면 된다. 그리고 어차피.

'스타더스가 첫날은, 중간까지만 내려간 뒤 다시 돌아오니까.'

그래. 이번 이벤트는 거의 일주일 정도 걸리는 대형 이벤트. 스타더스또한 앞에 뭐가 있는지 모름으로, 굉장히 보수적으로 임한다. 계속된 전투로 지치기도 할테니.

즉, 아마 몇시간 뒤면 다시 돌아올꺼란 소리다. 그러니 나도 그때쯤 가면 되겠지.

나는 그렇게 마음을 편하게 먹었다.

그렇게 몇시간후.

"아니... 왜 계속 가는거야?"

나는 화면에 비친, 계속해서 밑으로 내려가는 스타더스의 모습을 보며 당황함에 중얼거렸다.

아니, 전투도 아까 이후로 많이 치뤘는데, 슬슬 재정비 해야지. 어디까지 내려가는거야.

나는 슬슬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쓰읍. 플랜 C를 써야하나.

[오빠... 또 무슨 생각을 하길래 그런 진지한 표정을...]

서은이는 그런 나를 보더니 그렇게 중얼거릴 뿐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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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내가 늘 이 세계를 살아가며, 매번 길잡이로 따르는게 바로 원작이다.

이 세계는 원작 만화를 기반으로 하고 있고, 나는 그걸 통해 이 세계의 미래를 알고있다.

즉, 어지간하면 원작에서 일어난 일은 거의 무조건 일어난다는 소리.

물론 원작과 이 세계는 하나의 차이가 있기는 하다.

그건 바로 원작에는 존재하지 않던, 에고스틱이라는 인물이 존재한다는거. 그래. 내가 원작과 이 세계의 유일한 차이다. 그거 빼고는 없고.

즉, 결론은 원작에서 일어나는 일들, 타이밍. 내가 따로 건드리지 않은 뭐 그런거는 웬만하면 전부 원작대로 흘러간다는 소리다. 빌런이 원작에서 이때쯤 처음 등장했다? 그러면 이 세계에서도 정확히 이때 등장한다. 특히 아예 내 영향력이 안미치는 해외는 완벽하게 원작에서 본대로 거의 다 흘러가고.

...근데, 물론. 내가 일으킨 것들로 인해 나비효과인지 뭔지가 생겼는지 가끔 원작과는 다른 일들이 벌어지기도 한다. 예전의 그 악어빌런이 예상보다 일찍 테러를 일으킨 거라던가, 월광교가 최종전에 쓰일 괴물을 미리 쓴다든가 뭐 그런 것들.

그래서 나는 그때 이후론 원작을 기반으로 계획을 짤 때, 혹여나 원작대로 안 흘러갈 가능성을 늘 어느정도는 대비해둔다. 물론 일어날 일이 거의 없으니 대충 러프하게 스케치만 해놓는 정도로. 당연히 왠만한 모든 일들은 플랜 A대로 흘러가니까.

그리고 지금.

나는 그 러프하게 짜놓은 플랜 B, C를 활용하게 될 위기에 처했다.

어둠에 잠식된, 건물의 시시티비 화면이 전부 보이는 그 방.

나는 그곳에서, 밑도 끝도 없이 지하로 내려가는 스타더스의 모습을 보며 깊게 고민하고 있었다.

"아니... 저러면 안된다니까?"

[뭐가 안돼요. 지금 신나게 아래로 내려가고 있는거 같은데.]

카메라가 달린 해파리 로봇이 화면을 보고 꿈틀거리며, 전하는 서은이의 말.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서은이의 반응과 다르게, 대충 미래를 아는 나는 이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이벤트는 저렇게 하루만에 된다고 해결되는게 아니다.

정확히는 스타더스가 거의 일주일정도는 고전하며, 협회에서 쉬었다 다시 찾아올때마다 바뀐 길에서 해매며면서 주위에 떨어진 모든 악마 생성장치를 다 박살내고 나서야 최종보스가 있는 방으로 향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스스로를 봉인하고 있는 빌런의 힘을 약하게 만든 상태에서야 겨우 상대가능한게 현실.

그런데 지금, 스타더스는 무작정 아래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아니, 원작에서는 안그랬으면서 왜 그래...

그 모든 광경을 참담한 심정으로 지켜보던 나는, 이내 다시 정신차리고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베스트는 그녀가 그 최종보스인 빌런이 있는 방안에 도착하기 전에 마음을 돌려먹고 다시 협회로 돌아가는 것.

그러나 지금 성큼성큼 정확하게 최종보스가 있는 곳으로 가는 루트로 잘 가고있는 그녀의 모습을 봤을때, 그럴 가능성은 좀 적어보였다.

즉, 그녀가 이대로 데몬즈가 있는 곳으로 오늘 안에 내려간다는 최악의 가정 하에 움직여야 한다는거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 스타더스가 데몬즈와 싸워서 이길 확률은..?

'...힘들거 같은데.'

아무리 스타더스가 원작보다 더 강해졌다고 해도, 지금 상황 자체가 원작보다 더 나빠졌다.

원작에서 데몬즈는 영양분인 다른 휘하들인 악마들이 거진 다 쓰러지면서 힘이 약해지기도 했고, 봉인도 반도 못풀어서 원래 능력의 절반정도로 약해졌다. 근데 그런 그마저도 원작의 스타더스는 못이겨서, 결국 악마 몇마리들이 펄럭펄럭 빠져나가게 되고.

거기다가 지금의 스타더스는 계속된 전투에 지친 상태다. 거의 쉬지않고 내려가고 있으니. 대체 왜 저러는건지는 모르겠다. 특히... 밑으로 내려갈수록 저 어두운 촉수들이 끊임없이 부정적인 생각을 속삭인다는걸 생각하면. 몸 상태가 별로 안좋을거 같다. 과연 저래서 싸울 수 있겠냐 이거지.

근데 물론 이건 내 생각일 뿐이고.

스타더스가 실제로 저 최종보스를 줘 팰수도 있다. 이번 싸움에서 한단계 더 성장할지도 모르는 일이고.

그걸 내가 함부로 막아도 되는걸까.

"...."

그렇게 악마성 지상층 한쪽에서.

나는 진지하게 고민을 했다.

지금이라도 내 홀리-십자가를 들고 최종보스 방으로 순간이동해 잘자고 있는 놈 심장에 말뚝박아서 이 사단을 끝낼지.

아니면 스타더스를 믿고, 지켜볼지.

그리고 나는 짧은 고민 후, 결단을 내렸다.

그래. 일단은 믿어보자.

나 스스로를 스타더스의 아치에너미라고 말하고 다녔는데, 내가 내 정적인 히어로를 응원하시 않아서야 되겠어?

물론, 질거 같기는 한데...

그래도, 싸우는 그 과정에서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거니까.

거기까지 생각한 나는, 일단은 나서지 않고 가만히 있기로 했다. 그래. 그리고 또 혹시나 스타더스가 마음을 돌려 협회로 돌아갈 수도 있는거니까.

다만 그래도, 미리 준비는 해놔야지.

나설 준비를.

나는 자리에 일어나면서, 서은이한테 말했다.

"서은아, 이거 지금 스타더스가 나오는 화면 가면에 띄워줄 수 있어? 그 해파리 기계 카메라랑 연동해서."

[어... 한번 해볼게요!]

그 말을 끝으로, 무언가 뚝딱뚝딱하더니.

이내, 가면을 쓴 내 눈쪽에서 스타더스의 모습을 담은 화면이 나오기 시작했다.

좋아, 이러면 이제 스타더스가 무사한지도 한눈에 확인 가능하고. 좋네.

그럼, 슬슬 미리 할일을 하러 가자.

나는 홀리-십자가를 챙겨들고, 서은이에게 말했다.

"서은아, 나 지금 집에 다시 잠시 들릴거거든?"

[엥? 왜요?]

"아무래도 내가 나서야 할 수도 있을거 같아서. 내 신성 폭탄이랑 홀리 캐논같은거 미리 다 챙겨놓자."

[아... 그거 창고 어딘가에 있을텐데, 찾고있을게요!]

서은이의 대답을 들은 이후, 나는 등을 돌려 다시 밖으로 빠져나왔다.

...잘하면 오늘 곧바로 다시 스타더스를 볼 수도 있겠네. 아무래도 내가 나서야 할거 같거든.

"좋아, 뭐. 이 기회에 또 저번에 스타더스한테서 탈탈 털려서 떨어진 내 이미지도 회복하면 되겠네."

나는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사람들이 무서워하는 빌런. 그게 되기 위해서는 어느정도 스스로의 강함을 증명해야 할 필요가 있다.

즉, 만약 스타더스가 데몬즈한테 지고 있는 상황이라면 내가 방송키고 난입해서 스타더스 대신 놈을 해치우면... 대충 내가 얼마나 강한지 증명되지 않을까? 뭐 나선거에 대한 변명이야 적당히 생각해두면 되고.

사실 내가 강한게 아니라 그냥 그 데몬즈라는 놈에 약점을 찌르는 무기를 가지고 있을 뿐이라 그런거지만, 이것도 적당히 넘어가기로 했다. 어차피 사람들은 몰라.

그렇게 나는 잠시 집으로 돌아와서 재정비 후, 다시 악마성쪽으로 향했고.

그렇게 해가 지고 나서, 내가 막 도착할 때쯤.

콰과과과과과과광-.

[감히, 누가 이 몸을 깨우는가 ------!!!]

천둥이 치는 소리와 함께, 악마성이 된 무역센터에 붉은 구름이 몰려들기 시작했고.

이내, 마치 판타지 게임의 마왕같은 비쥬얼을 가진 거대한 몸집에 무언가가, 붉은 창을 들고 건물 천장을 말그대로 박살내며 튀어나왔다.

"쓰읍... 결국 이렇게 되네."

몰려드는 검은색 안개, 하늘에서 내리치는 벼락, 솟구치는 먼지구름. 터지는 폭발음.

실시간으로 난장판이 되고있는 무역센터를 보며, 나는 근처 건물에서 한쪽 무릎을 꿇고 지켜보고 있었다.

끝내 봉인이 풀렸군. 예상하고는 있었지만, 이렇게 하루도 안되서 풀리는걸 보니 당황스러울 지경이다.

...근데 진짜 하루만에 풀렸는데, 이정도면 힘을 비축하기도 힘든 짧은 시간 아니야?

어쩌면, 가능성이 있을지도.

그리고 잠시뒤에 지하에서 튀어나온 스타더스.

화가 난듯 거대한 붉은 창으로 근처 건물들을 박살내던 데몬즈. 정확히는 마왕화 능력을 불완전하게 사용하는데 성공한 그것은, 붉은 눈빛으로 스타더스를 향해 소리쳤다.

[나를 깨운게 네녀석이냐 ------!!!]

[감히, 이 몸의 계획을, 망가트리다니....]

[너를, 지옥으로 보내주마ㅡ!]

대지를 울리듯 소리치는 녀석.

힘을 모았다가 대한민국 전체를 마계로 만들 생각이었는데, 좌초되자 몹시 분노하는 모습이다.

...그런데 진짜 스타더스가 전보다 훨씬 강해지기는 했어. 진짜 설마설마 했는데 하루만에 뚫어버리네.

[[속보]협회, 무역센터 인근에 1급 경보 발령, 일대 전부 접근금지]

[[현장사진]악마의 형상을 한 빌런 등장... 전문가들, S급들 중에서도 최상급의 능력자. 기도해야.]

[[실시간 영상]나타난 빌런과 함께 맞서 싸우는 스타더스... 패배시 서울 전체 위험에 빠질 수도 있어]

*

[좆됐다 좆됐다 좆됐다]

[나 서울 사는데 저거 뭐냐? ㅅㅂ 왜 마른하늘에 벼락이 치는데ㅋㅋㅋㅋㅋ]

[걍 시발 안그래도 작은 나라에 왜 저런것들이 계속 튀어나오는데ㅋㅋㅋㅋ 이건 누가 의도적으로 한국을 멸망시키려는 계략이다...]

[스타더스만 믿는다 별먼지야 제발... 한번만 이겨주세요...]

대충 기사 알림들과 방송사 채팅창을 보니, 다들 갑작스러운 소란에 난리가 난거 같다.

쓰읍. 비쥬얼은 진짜 역대급이긴 하네. 무슨 생김새만 보면 쟤가 원작의 최종 빌런인줄 알겠어. 실상은 월광교 전에 나타나는 중간 보스격 빌런인데.

그런 내 감상과는 다르게 주위는 벌써부터 마계 침식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스멀스멀 지상에 기어올라오는 검은 촉수들. 우리 베히모스가 친구생겼다고 좋아할 것만 같은 광경.

[...오빠, 이거 진짜 괜찮은거 맞아요? 쟤 너무 강해보이는데? 스타더스가 문제가 아니라 오빠가 걱정이에요...]

"걱정하지마 서은아. 지금은 진짜 다칠리 없어."

나는 불안해하는 서은이를 안심시켜줬다. 얘까지는 약점이 확실해서, 그것만 쓴다면 일반인인 하율이 동생 차윤이도 잘하면 쓰러트릴 수 있다.

다만 그런거 없이 쌩으로 이기기는 쉽지 않을거 같은데... 그래도, 혹시나!

그렇게 나는 옥상에 서서 전투를 지켜봤다.

여기서도 느껴질 정도로 엄청난 위압감을 내뿜고있는 녀석. 그리고 노란 머리를 휘날리며 그것에 맞서고 있는 스타더스,

검은색과 붉은색, 그리고 노란색 빛이 번쩍번쩍 하며어두운 밤하늘을 수놓았고.

그걸 지켜보던 나는, 점점 얼굴이 굳었다.

누가 봐도 스타더스가 밀리는 모습.

...스읍. 역시, 안되는건가.

그렇게 또 얻어맞고 구르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나는 침음을 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슬슬 나서야겠네.

그리고, 내가 그렇게 생각하던 그 순간.

"...어?"

번쩍-

[크아아아아아악 -----!!!]

멀리서도 보이는, 이를 악물고 주먹을 날리던 스타더스와.

처음으로 들린 놈의 고통스러운 비명소리와 함께.

한순간, 어두운 밤하늘에 마치 섬광이 터진거처럼, 노란 빛으로 밤하늘이 순간 밝아진 뒤.

콰과과과과과광. 무언가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데몬즈, 일명 마왕이 그대로 뒤로 날아갔다.

쾅. 쾅. 쾅.

그것에 맞고 박살나는 건물들.

"뭐야, 뭐야?"

그 모든 광경을 본 나는, 순간적으로 나도 모르게 혼잣말을 하며 몸을 앞쪽으로 뺐다.

그렇게 더 가까이서 보자, 더욱 잘 보이는 광경.

마치 거대한 에너지에 맞은 듯, 일자로 날아가있는 건물들과, 저쪽 한구석에 쳐박힌 마왕.

그래.

우리 스타더스가, 기어코 저 맷집도 좋은 마왕한테 한방 먹여줬구나.

[와....]

[방금 뭐냐?]

[별먼지! 별먼지! 별먼지! 별먼지! 별먼지!]

[이게 히어로고 이게 영웅이지ㅋㅋㅋㅋ]

연동해둔 채팅창이 희망으로 떠들석한걸 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박수를 칠 뻔했다. 그래. 믿고있었다고! 마 이게 우리 스타더스다!

그러나 그렇게 활발하던 채팅창은, 오래 가지 못했다.

[아 시발. 좆됐네.]

쓰러져있던 마왕이, 비틀거리면서도 다시 붉은 창을 들고 일어났기 때문.

그에 비해 우리 스타더스는 마지막 일격에 기력을 다했는지 한쪽편에 등을 기대고 간신히 숨만쉬고 있었다.

그렇게 무력해보이는 스타더스를 향해, 마왕이 한발자국씩 가까이 걸어오는 상황.

시청자들의 불안이 극에 다한 그때.

나는, 조용히 가면을 올리며 씨익 웃었다.

"그래... 스타더스. 고생했다. 나머지는 내가 처리할게."

다 된 밥에 숟가락 올리기. 실로 악랄한 빌런다운 행위. 모두가 공포에 떨게 당연...!

대충 판단을 마친 나는, 카메라를 들고, 홀리-웨폰을 들고 건물 옥상에서 그대로 뛰어내렸다.

자. 히어로의 시간은 갔다.

이제부터는, 악당의 시간이다.

"짜잔! 안녕하십니까, 에고스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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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성 지하.

스타더스는 그곳에서, 괴수들을 잡고 또 잡았다.

"헉... 헉..."

어두컴컴한 실내.

소름끼치게 끈적한 검은색 진액들이 공간을 둘러싸고, 축축한 습기가 공기를 갑갑하게 짓누르는 그곳에서.

스타더스는, 또다른 괴수와 싸워, 몸에 상처를 입고 나서도 계속해서 밑으로. 지하로 내려갔다.

마치, 불을 향해 쉼없이 날아가는 하루살이처럼.

"크흐..."

지나친 전투로 인해, 이미 몸 이곳 저곳이 욱씬욱씬 쑤시는 상황.

그러나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직감이 이끄는데로 계속해서 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것은 그녀가 가진 직감, 일종의 '초감각'이 그녀에게 지금 당장 지하로 내려가야만 한다고 경고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너는 어차피, 무엇하나 제대로 지킬 수 없는 애잖아?

"....."

그녀의 귓가에 들려오는, 어떤 목소리 때문이기도 했다.

점차 지하 깊숙한 곳으로 내려올 수록, 빛이 희미해지며 어둠이 짙어지기 시작했고.

검은색의 진액들이 벽에 한면도 남기지 않게 가득 채운, 그곳에서. 어떠한 목소리들이 마치 그녀의 머릿속에서 울려퍼지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악마의 속삭임처럼.

엄마도 잃고, 아빠도 잃고. 너의 부모님이 안계신게, 과연 이 세상 탓일까? 아니면 네 탓일까?

너 혼자 아무리 발버둥 친다고 해서, 이 세계가 과연 바뀔거같아? 넌 아무것도 못해. 누가 너를 이해해주겠어?

"닥쳐..."

스타더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발걸음을 계속해서 옮겼다.

...이것은 딱봐도 이 공간에 맺어진 일종의 저주. 아마 이 모든걸 일으킨 빌런이 만들어논거겠지.

그리고 그런 스타더스의 추측은, 정확히 맞았다.

침입자에게 극도로 부정적인 생각을 들게 해, 스스로를 저주하게 만드는 장치. 이 악마성을 만든 빌런, 데몬즈가 봉인되어 있는 그곳으로 침입자가 들어가지 못하게 걸어놓은 능력이니까.

그렇기에, 스타더스의 머릿속에 울려퍼지는 목소리는 결코 멈추지 않았다. 그녀를 쫓아내기 위해서.

이를 대충 눈치챈 스타더스도 이를 악물고서는, 어떻게든 피어오르는 생각을 무시하고 앞으로 나서려 했지만...

네가 결국 모두를 망가트리고 말거야. 생각해봐... 에고스틱. 그도 결국, 네가 스스로 망가트렸잖아?

과연 누가 너를 끝까지 좋아할까? 대중이 과연 너를 언제까지 좋아할까? 그들은 너의 행동 하나에 언제든 돌아설 수 있어. 에고스틱, 그만 해도 더이상 너를 좋아하겠어?

포기해. 어차피. 네가 이런다고 해서 알아줄 사람도 없어.

"...."

그렇게 이곳에 걸린 저주는, 스타더스의 내면에 묻어두었던 안좋은 기억들, 그리고 최근에 느꼈던 부정적인 생각들을 전부 끌어들였고.

그녀 안에 잠들어있던 어두운 생각들을 끊임없이 파해쳐, 그녀의 앞에 들이밀었다.

포기하라고, 당장 이곳에서 나가라고. 더이상 전진해봤자, 아무도 알아주지 못할거라고.

"....하."

그러나, 이 저주가 한가지 간과한게 있었다.

바로 스타더스의 정신력이, 남들과 같지 않다는 사실을.

그래서 침입자를 쫓아내기위해 만든 이 저주가, 오히려 역효과를 내고있다는 것이.

"....나도 알아."

스타더스는, 자기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그런데 어쩌라는건가. 다 알지만, 그냥 의도적으로 무시하는거다. 이 행동이 의미없던, 대중이 등 돌리던, 다 무슨 상관이라는 말인가.

그리고 뭐, 에고스틱이 이제 나를 증오한다고 해도, 그런건 중요하지 않다.

...아마도.

"에이씨."

또 드는 이런저런 부정적인 생각들에,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인상을 구긴 채 발걸음을 더 빠르게 놀렸다.

그래. 그녀는 발걸음을 늦추기는 커녕, 더욱 빠르게 밑으로 내려가고, 새로운 괴물과 맞닥트려 또 주먹을 쥐고 맞서 싸웠다.

그래.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부정적인 감정에 잠식된 순간, 모든 의욕을 잃고 드러누워버리는 사람과.

부정적인 감정에 잠식된 순간, 이를 몰아내기 위해 오히려 하던 일을 더 열심히 하는 사람.

그리고, 스타더스는 명백한 후자의 사람이었다.

끼에에에에에엑!

"닥쳐."

쾅-.

지하 어딘가에 나타난, 가고일을 닮은 검은색 괴물을 또 쓰러트린 그녀는 파죽지세로 안으로 나아갔다.

그녀의 귓가에 들려오는 저주가 계속해서 그녀의 정신을 갉아먹는걸, 힘겹게 견디며.

그렇게 달려온 그녀는.

끝내, 최심층의 커다란 문앞에 도착할 수 있었다.

"....."

테러 이후 생겼을게 확실한, 이질적이게 거대한 문.

이제는 더이상 귓가에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상황.

이 안에 이 모든 일을 벌린 빌런이 있을거라 확신한 그녀는, 이내 문을 열어덪혔고.

끼이익-소리를 내며 열린 문 너머에는, 어떠한 커다란 방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방 한가운데 박혀 있는, 그녀보다 몇배는 큰 거대한 검은색의 심장모양의 무언가.

두근- 두근-

마치 살아움직이는 듯 두근거리며 꿈틀대는, 그 기묘한 광경에 스타더스의 눈매가 자연히 찡그려졌지만.

이내 그녀는 판단을 했다. 아, 뭔지는 몰라도. 이게 그 빌런과 연관이 있겠구나.

그렇게 생각을 마친 그녀는, 망설이지 않았다.

"스읍..."

그녀는 숨을 들이마쉬고는, 그대로 주먹을 들어 올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빛이 나는 주먹.

이 아래에서 수없이 많은 괴물들을 때려잡으며, 그녀가 얻은 잔재주였다. 자유자재로, 이 이상한 빛을 내는 힘을 주먹에 담기.

그렇게, 주먹을 든 그녀는 그대로 그것을 그 검은 심장을 향해 뻗었고.

콰아아아아아아앙-

"크흑..."

그것이 그대로 폭발함과 동시에, 그 안에서 엄청난 양의 어둠이 쏟아져나왔다.

마치 방을 꽉 채우듯 빠르게 쏟아지는, 검은색의 무거운 연기.

그렇게 순식간에 모든 빛을 잃은 방 안에선, 일종의 포효소리가 들렸다.

[크아아아아아아---!]

그와 동시에 용오름치는 어둠.

그렇게 위에서 무언가 박살나는 소리와 함께, 봉인에서 풀린 마왕의 영혼이 그대로 지상을 향해 다 박살내며 올라가버렸고.

마왕이 풀려났다. 너에게는 이제 끔찍한 고통만이 있을 것이다.

"콜록, 콜록."

먼지가 가득한 밑에서 남겨진 채 위를 올려다보던 스타더스 또한, 황급히 그것을 따라 지상을 향해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다시 위로 올라온 그녀.

밀폐되고 어둡기만 했던 지하에서 벗어나 오랜만에 맑은 공기를 맡은 그녀였지만, 그럴 틈도 없이, 눈 앞에 나타난 재앙을 상대해야 했다.

[감히, 누가 이 몸을 깨우는가 ------!!!]

달빛이 아래를 은은히 밝히는 밤하늘 아래, 모습을 보인 그것.

밤하늘 보다 어두운, 빨려들 것만같은 검은색의 형체를 가진, 마치 전신갑옷과 망토를 두른 것처럼도 보이는 그것은 이내 지상에서 포효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기기긱-거리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두 뿔이달린 머리로 고개를 돌리는, 마의 왕이 되다 못한 자.

이내 그것은 자신의 눈앞에 있는 스타더스를 보더니, 대지가 울릴정도로 크게 소리쳤다.

[나를 깨운게 네녀석이냐 ------!!!]

[너를, 지옥으로 보내주마ㅡ!]

"윽..."

이내 그것의 포효와 동시에 불어오는 강한 바람.

본능적으로 몸을 가린 그녀가 몸을 뒤로 뺌과 동시에, 붉은 창을 든 그것은 그녀를 향해 그 육중한 몸으로 돌진했다.

본능적으로 느껴지는 살기, 다시 머릿속을 침식하는 악마의 속삭임.

일반인이라면 정신을 잃을 그 상황에서도, 그녀는 고개를 들고 그 멸망을 형상화 한것만 같은 그것과 맞섰다.

...대체 대한민국 이 좁은 나라에 저런것들은 어디서 튀어나오나, 그런 생각을 하며.

"흐읍!"

그렇게 스타더스의 주먹이 빛을 발함과 동시에, 전투가 시작되었다.

그녀는 모든 힘을 끌어다가 싸웠다.

비록 몸은 계속된 전투로 인해 지쳤고, 정신은 마모됐지만 그녀는 굴하지 않았다.

그러나,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상대가 너무 강했다.

계속해서 밀리는 그녀, 끝없이 붉은 창을 휘두르며 그녀를 압박하는 마왕.

이대로 여기서, 포기해야되나?

아니지.

스타더스는 이를 악물었다.

지금까지 쌓아온 것들이 있고, 잃어온 것들이 있다.

여기서 모든걸 포기하려고 지금까지 달려온게 아니다.

그 소망을 담아, 모든 힘을 다해 그녀는 주먹을 휘둘렀다.

별보다도 밝은 빛이, 어둠을 몰아낼 빛이 그녀의 손끝에 번떡였다.

밤이 순간, 환해질정도로.

번쩍-

[크아아아아아악 -----!!!]

처음으로 듣는 놈의 비명소리와 함께, 그것은 저 멀리로 튕겨져나갔다.

그대로 벽에 부딪쳐 쓰러진 마왕.

그렇게 제대로 맞고 뻗어버린 그놈이었지만, 그렇다고 스타더스또한 정상인건 아니었다.

"쿨럭..."

박살나있는 건물들 사이.

그 가운데 주저앉아 있던 스타더스는, 지나친 능력사용의 부작용으로 반쯤 쓰러져있었다.

"하아... 하아..."

몸을 움직일 힘도 없는 채, 간신히 정신만 붙잡고 있는 그녀.

그녀는, 최선을 다했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도, 이 정도 위력이 되는 공격을 썼다.

그러나.

그녀는, 조금 부족했다.

"흐으..."

겨우겨우 무너진 벽 한쪽에 등을 기댄 채, 잘 안떠지는 눈으로 앞을 보던 스타더스는 눈앞의 광경에 헛웃음을 흘렸다.

...분명 쓰러트린줄 알았던 마왕이, 어느새 일어나 자신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붉은 창을, 땅에 끌면서.

하하. 비록 모든걸 쏟아부었지만, 여기까지인가.

쓰러진채 그런 생각을 하던 스타더스는, 어느새 이런 상황에 기시감을 느꼈다.

...그래. 사실, 지금과도 같은 상황이 처음은 아니다.

죽음이 눈앞에 다가오고있는 상황에서, 스타더스는 문득 무언가를 깨달았다.

그녀에게도 늘 위기란 있었다. 목숨이 위협받은 적도 있고, 감당못할 적을 만나 좌절한 상황이 있었고, 모든걸 놓고 포기한 순간이 있었다.

그러나 신기하게도 그럴때마다, 누군가가 그녀를 대신해 나타나줬었다. 자신의 목숨을 대신 막아주고, 좌절한 순간 나서주고, 포기한 순간 응원을 해준 누군가가.

...그러나, 과연 지금도 그때와 같다고 할 수 있을까. 나는 이미 그 누군가를 심하게 상처입히고, 또 무너트렸는데. 과연 그가 이번에도 나타날까.

당연히, 오지 않지 않을까.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그런 생각을 했었고.

그렇게 씁슬한 미소를 지으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적을 조용히 관조하던 순간.

쿵-.

눈앞에서.

마치, 당연하다는 듯.

누군가가, 이때까지와 같이 당연하다는 듯 자연스럽게 하늘에서 떨어졌다.

"흐음..."

땅에 착지하더니, 침음을 흘리다 자연스럽게 팔을 돌리며 스트레칭을 하기 시작하는, 눈앞에 갑자기 아주 자연스럽게 등장한 그의 모습.

검은 모자를 쓰고, 검은 망토를 두른 채, 가면으로 한쪽 얼굴을 가린 채 웃고있는 그의 모습은, 그녀에게는 그 누구보다도 익숙한 모습이었다.

"읏차... 아, 안녕하세요 스타더스씨. 저번에 보고 또 보네요. 아이고, 그런데 이번에 쓰러져있는건 스타더스씨 쪽이네요!"

자신을 향해 돌아보며, 웃는 그의 모습.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이곳에도 별 일이 일어나지 않고 있다는 마냥 무슨 마실 나온마냥 해맑게 웃으며 자신에게 말을 건내는 그. 에고스틱의 모습에, 스타더스는 자신도 모르게 웃었다.

"하하..."

"하여튼, 고생하셨는데 좀 쉬고 계세요. 제 아치에너미가 제가 아닌 다른 빌런한테 쓰러지는게 말이 되나요? 나머지는 대충 제가 처리해드리죠."

늘 그렇듯 말도 안되는 말을 하며 자신을 보며 씨익 웃고는, 등을 돌린채 멈춰있는 마왕을 향해 무기를 드는 그의 모습.

그러던 이내, 어느새 그가 챙겨온 카메라가 켜지고.

"짜잔! 안녕하십니까, 에고스틱입니다!"

밝게 웃는채 카메라를 향해 말하며, 검을 빼어든 채 마왕을 향해 걸어가는, 망토를 휘날리며 나아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스타더스는 자신도 모르게 옅은 미소를 지은채

조용히, 속으로 생각했다.

에고스틱은 빌런이다. 이는 모두가 알고있고, 협회에서 공인된 분명한 사실이다.

그래.

근데. 그런데 말이야.

이런 너를.

내가, 어떻게 싫어하겠어.

"어떻게... 그러겠어."

스타더스는 앞으로 나아가는 에고스틱의 뒷모습을 보며.

자신도 모르게, 그렇게 속삭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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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세계에서 악당이 되기로 결심했었다.

그 이유는 오로지, 스타더스를 지키기 위해서.

즉, 내가 빌런 컨셉을 지키려 하는 것도 전부, 스타더스를 위해서다.

그런데 스타더스를 위해 하는 빌런 컨셉때문에 스타더스를 지키지 못한다?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지. 완전히 주객전도 아니야.

그래서 내가, 지금 이 순간 이곳에 등장한 것이다.

아니, 컨셉이고 뭐고 스타더스 죽는건 막아야할거 아니야.

"짜잔. 안녕하십니까. 에고스틱입니다!"

그래서 나는 폐허가 된 마왕성 앞에서, 팔을 활짝 벌린 채 웃으며 그렇게 말했다.

음. 그리고 아무 반응이 없었다. 싸늘한 바람만이 내 망토를 스치고 지나갈 뿐. 쩝, 이래서 관중이 없는 공연은 서럽다니까.

근데 물론 그건 내 주위에 반쯤 쓰러진 스타더스와, 저 앞에 딱봐도 황당해하는거 같아보이는 마왕만 있어서 그런거고.

그냥 무지성으로 전국을 향해 생중계를 때리고 있는 채팅창에서는, 그냥 난리가 났다.

*

[?????????]

[시발ㅋㅋㅋㅋㅋㅋ 믿고 있었다고!!!!!]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틱!!! 에고스티익!!! 시발ㅋㅋㅋㅋㅋㅋ]

[아ㅋㅋ 히어로가 위험에 빠지면 빌런이 대신 나서는게 '상식' 아니야?]

[자기가 지금 눈물흘리며 동서남북으로 절하고있는 망고단이면 개추ㅋㅋㅋ 일단나부터ㅋㅋㅋㅋㅋ]

[이게 야쓰지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망끼얏호우~ 망끼얏호우~ 망끼얏호우~ 망끼얏호우~ 망끼얏호우~ 망끼얏호우~ 망끼얏호우~ 망끼얏호우~ 망끼얏호우~ 망끼얏호우~ 망끼얏호우~]

[이장면보고 제암이 나았습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S급 히어로 애플망고 개같이 입갤ㅋㅋㅋㅋ]

*

역시나 예상했던데로 미친듯이 불타고있는 채팅창.

쩝, 뭐. 미리 예측했기에 딱히 놀랍진 않았다. 오히려 이걸 어떻게 수습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만 좀 있었을뿐.

그리고 당연히 나는, 대책을 세워놨다.

"오랜만입니다 시청자 여러분! 이런 상황에서 또 뵙게되니 새롭네요."

나는 본격적으로 입을 털기 시작했다.

아무도 안물어본 그런 얘기를.

"아니, 다름이 아니라 집에서 쉬고있는데 갑자기 난리가 났지 뭡니까. 그것도 제가 일하는 곳에서요? 어이가 없어서 달려왔습니다. 아니, 남의 영업장을 이렇게 망쳐놓으면 어떡합니까?"

나는 폐허가 된 주위를 카메라를 돌려보며 그렇게 말했다. 아주 황당하다는 듯한 얼굴과 말투는 덤.

그리고 시청자들또한, 내 마음을 이해해주었다.

*

[네????]

[일하는 곳=테러하는 곳... 영업=테러하면 맞는 소리긴... 한가?]

[맞긴 뭐가 맞아 ㅅㅂㅋㅋㅋㅋㅋ]

[망고야 히어로가 부끄러워??]

[왜 스타더스 구하러 왔다고 대한민국 지키러 왔다고 말을 못해!!!]

[왜 다들 망고말 안들어줘 왜 우리 히어로한테 그거 하나 못해줘!]

[아! 맞죠~ 이거 완전 빌런이네요]

[그냥 다들 ㄹㅇㅋㅋ만 치라고ㅋㅋㅋㅋ]

*

...아닌가?

어쨌든, 그런게 중요한게 아니다. 어차피 이미지는 나중에 테러몇번 하면 다시 회복될테니, 일단은 뻔뻔하게 입을 터는게 중요하지.

그렇게 나는 빠르게 다음말을 이었다.

"하여튼,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어떤 빌런이 무슨 테러를 하던 상관 없다 이겁니다. 근데 예? 이지역 담당인 제 허락도 없이 이렇게 깽판은 곤란하죠. 그래서 어쨌든 결론이 뭐냐면..."

나는 거기까지 말한뒤, 씨익 웃은 채 저 앞쪽에 서있는 마왕을 손으로 가르키며 말했다.

"스타더스가 다 잡아놓은 저놈을, 제가 끝내겠다 이말입니다."

[.....하.]

나와, 뒤에 스타더스가 있는 쪽으로 천천히 창을 끌며 다가오고 있던 마왕.

이내 내가 하는 꼴을 보고있던 그것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그 순간.

[짐이, 우습게 보였구만.]

쿠웅-

'크흑...'

그것의 낮은 읊조림이 끝남과 동시에, 공기가 순식간에 무겁게 가라앉았다.

순간 숨을 못쉴정도로 온몸에 느껴지는 강한 압박감.

나는 그 속에서 순간 몸에 중심을 잃을 뻔한걸 간신히 버텨냈다.

...와, 시발. 스타더스는 지금까지 이걸 다 버티면서 싸웠다는건가? 심지어 이게 전보다 약해진 상태고?

내가 속으로 그런 생각을 하던 그 순간.

앞쪽에서, 귀를 찢는 포효소리가 내리치듯 울려퍼졌다.

[감히 누가, 이 몸 앞에 끼어드느냐-----!]

그리고, 그와 동시에.

집채만한 검은색 인영이, 내 앞으로 엄청난 속도로 달려왔다.

*

[꺄아아아아아아악]

[와 시발 근데 생각해보니까 망고가 저거 이길 수 있는거맞냐?]

[좆됐다 좆됐다 좆됐다]

[돔황챠~]

*

그렇게, 내가 에고스틱에서 에고 / 스틱이 되기 직전의 순간.

나는 미리 준비해놨던, 하얗게 빛나는 창같은 무언가를 꺼냈다.

그렇게 놈이 나를 향해 붉은 창을 휘둘렀고.

나는 그걸 빛나는 창을 세로로 집어, 창이 휘둘러지는 궤적에 그대로 갖다붙여.

그대로, 막았다.

체엥-

"크흐..."

[네.... 이놈-----!]

어두운 악마성 바로 앞.

그곳에서는, 붉은 빛과 하얀 빛이 불꽃을 튀기며 그대로 격돌했고.

이내 자신의 공격이 막힐 건지는 상상도 못했는지, 보이지 않음에도 얼굴이 찌푸려졌다는게 느껴지는 마왕의 앞에서.

나는 창을 든 팔을 밀어붙인채, 한쪽 입꼬리를 씨익 올리고 놈에게 말했다.

"왜... 이건 예상하지 못하셨나보죠?"

[크아아아아아ㅡ!]

치잉-

쾅.

이내 서로의 창이 다시 튕기며, 자신의 공격이 막힘에 당황한 마왕이 이성을 잃은 소리를 내며 뒤로 몸을 튕겨냈다.

...역시, 벌써 슬슬 마에 거의 다 잡아먹혔는지 점점 지능이 떨어져가는 모습. 확실히 스타더스가 오래 싸워준 덕분에, 나로써는 상대하기 훨씬 수월하다.

그렇게 놈이 나를 관찰하는동안, 나는 씨익 웃으며 빛나는 창을 손에서 휘둘렀다.

[.....]

그래도 완전히 이성을 잃은건 아닌지, 잠시 거리를 벌려 나를 탐색하고 있는 그놈.

그래, 당황스럽겠지. 갑자기 나와 단 한합을 맞붙었을 뿐인데 자기가 힘에서 밀린다는 느낌을 받았었을테니까. 그것도 약해보이는 나를 상대로.

근데 사실, 쟤보다는 내가 더 힘든 상황일거다. 아니, 난 원래 이렇게 직접 몸으로 싸우는 사람이 아니라고...

마치 아무렇지도 않았다는 양 웃으며 서있기는 하지만, 실상은 저놈이 자체적으로 휘날리는 살기와 위압감때문에 다리가 후들릴 지경. 사실 내가 원작의 파워인플레의 정점을 알리는 놈과 일대일로 맞붙는건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그러나, 나는 방법을 찾아냈다.

내 본래 능력만으론 안된다면... 템빨을 쓰면 되잖아?

나는 그렇게 하얗게 빛나는 창을 다시한번 꺼내들었다.

대-악마용 최종병기. 원작의 지식을 최대한 살려 만들어놨던, 놈의 약점이란 약점은 다 찔러버리는 자칭 마왕이란놈을 상대하는대에 최적인 신성한 무기.

나는 그걸 놈을 향해 가르키며, 그대로 입꼬리를 올린 채 소리쳤다.

"자, 겁쟁이처럼 간만 보시지 말고 들어와보시죠!"

시발 다 덤벼. S급 아이템을 얻은 나는 무적이다.

그런 내 도발에 당연하게도, 놈은 분노했다.

[하, 이제는 웬 피라미같은 놈이 내게 덤비는구나-!]

[사지를, 찢어발겨주마ㅡㅡㅡㅡ!!!!]

아주 무시무시한 말을 하며 다시 내게 달려드는 마왕.

그리고 그런 놈을 향해, 나또한 씨익 웃으며 놈을 향해 날아들었다. 그래, 앞으로 이런 기회가 또 오지도 않을텐데, 템빨맛 한번 최대한 누려봐야지. 내 홀리-스피어의 맛 좀 봐라.

그렇게 나는 나보다 두세배는 큰 놈과, 굉음을 내며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화려하게 튀는 붉은 불꽃과 하얀 불꽃들. 미친듯이 휘날리는 바람. 그리고 난리난 시청자들.

*

[와 시발ㅋㅋㅋㅋ 망고스틱 막타만 친다는듯 말해놓고서는 존나 잘싸우네ㅋㅋㅋㅋㅋ]

[S급 히어로 애플망고 진짜 미쳐날뛰는거 뭐냐고ㅋㅋㅋㅋ]

[에고스틱이 들고있는 저 빛나는 막대기 뭐임? 저거 존나 막 경건하고 신성한 느낌인데]

[라이트스틱을 든 에고스틱ㄷㄷㄷㄷㄷ]

[걍 일방적으로 이기고있는데 이거 맞음?ㅋㅋㅋㅋ]

*

그리고 나는, 마왕을 걍 줘패고 있었다.

"하하, 스타더스가 다 처리해놓은 덕분인지 너무 쉽군요!"

[크윽, 네이놈-----!]

내 창에서 나오는 공간을 뒤엎듯 계속해서 빛나는 성스러운 하얀 빛. 그걸 아주 정면에서 맞고있는 우리 마왕군은 좋아서 죽을려고 하는 지경이었다.

...물론, 나도 슬슬 분위기가 좋지 않았다. 썩어도 원작의 최강자중 하나이던 S급 빌런이라는건지 미친듯이 살기와 위압감을 퍼트리는 그놈. 거기에 무슨 정신조작도 가하는지 막 부정적인 생각이 들며 이상한 속삭임이 들리는 듯 했다.

그렇게 겉으로는 이미 약해진 놈을 거의 압도하는 듯 보였지만, 실제로는 나도 점점 위태로워지던 그 순간.

그리고.

물론 나는, 이 상황을 다 대비해두고 있었다.

[오빠, 준비됐어요!]

"그래?"

그렇게, 어느덧 귀에서 들려오는 서은이의 말.

이내 때가 임박했음을 깨달은 나는, 놈을 향해 창을 몇번 더 휘두르다가, 씨익 웃으면서 말했다.

"야."

[으아아아, 네이놈ㅡㅡㅡㅡ!]

"잘가라."

[....뭐라?]

거기까지 말한 나는, 마왕놈한테 빛나는 창을 휘두름과 동시에, 발로 걷어차며 놈에게서 떨어진 뒤.

허공을 가르며, 그대로 창을 놈에게 가르키며 외쳤다.

"쏴!"

[네!]

그와 동시에.

번쩍.

우리를 둘러싼 건물들의 옥상 위쪽에서, 무슨 하얀 빛. 정확히는 내가 미리 준비해둔 대-마왕용 최후병기. 일명 홀리-캐논이 사방에서 번쩍였고.

[....무슨!]

그렇게, 우리 마왕놈의 마지막 말을 끝으로.

핏.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하늘위 사방에서, 수많은 빛의 광선들이 놈을 향해 일제히, 엄청난 소리와 함께 내리꽂혔다.

[끄아아아아아아아ㅡㅡ!]

울부지는 마왕의 비명.

그리고 그 빛이 번쩍번쩍 터지는 광경을 보며, 나는 나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예술이야."

이게 아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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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 펑. 펑.

어두운 밤하늘을 수놓은, 수많은 빛들.

마치 섬광탄이 터지듯, 마왕이란 놈이 있던 자리는 하얀 빛으로 번쩍번쩍 터졌고.

[끄아아아아아악----!]

이에 맞추어, 아름다운 하모니도 들려왔다.

그래, 마왕이 녹는 소리 말이다. 홀리-캐논빔을 수십방 쳐맞고 있는데, 안녹고 배기겠어?

그렇게 무슨 나라 하나 멸망시킬 비쥬얼이었던 마계의 왕이 부글부글 녹고있는 동안, 나는 그 빛의 예술을 등지고 카메라를 향해 서 내 쇼를 지켜봐준 관객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크으으으으으르읅---- 으아---!]

*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ㅅㅂ]

[진짜 광기ㅋㅋㅋㅋㅋㅋㅋㅋㅋ]

[감사는 오히려 우리가 해야하는거 아님?ㅋㅋㅋ]

[아니 대체 저건 언제 준비한건데ㅋㅋㅋ]

[마왕놈 살살 녹는다~ (진짜 녹음)]

[(대충 제리가 인사하는 짤)]

[뭐임? 진짜 끝난거임? 이렇게 쉽게???]

*

그러던 중, 문득 채팅 하나가 보였다. 어허. 이렇게 쉽게라니. 이거 준비하는게 얼마나 힘들었는데.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마치 캠프파이어를 관람하듯 끄아악 거리면서 빛에 녹고있는 마왕을 지켜봤다. 역시, 약점이 확실해서 참 좋단말이야. 원작에서는 약점을 늘 사건 다 끝나고 알아차리는 바람에 아무 의미 없이 허무함만 남겼었지만... 그래도 이 세계에는, 다행히 그 지식을 전부 가지고있는 내가 있으니까.

나는 그렇게 달이 빛나는 밤하늘 아래, 운치있는 기분을 느끼며 마왕이 잘 녹는 모습을 구경했다.

...얘가 내 기억에는 아마, 이 페이즈의 마지막 중간보스급 빌런이자 거의 마지막으로 스케일 큰 이벤트일꺼다. 이제 이거 다음 메인이벤트가, 바로 기다리고 기다리던 월광교일꺼거든.

참 멀리도 걸어왔구만.

나는 나도 모르게 속으로 중얼거렸다.

갑자기 이 세계에 떨어졌을때는 대체 나보고 뭐 어쩌라는건가 싶었는데, 벌써 여기까지 왔다. 이제 다음 월광교 포탈 사건, 게이트 사건등 온갖 이름으로 불리는 그 테러만 막아내면, 이젠 정말 슬슬 쉴 수 있겠지. 물론 스타더스를 잘 키우고나서 얘기지만...

[.....난 ....크르륽, 돌아...올거다...]

"오, 이제 끝났나봅니다."

그렇게 상념에 잠겨있을 무렵, 어디선가 들려오는 마왕의 목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서은이한테 지시해 공세를 멈추게 한다음, 가까이 다가가보니, 마지막 유언을 남기고서 검은 웅덩이로 변한 마왕의 모습만이 보였다. 깔끔하게 갔네.

"난 돌아올거다... 라니."

피식.

나는 나도 모르게 웃었다.

응 아니야, 너 못돌아와. 저승에서 다시 잘 살어.

나는 그렇게 나름 엄청난 임팩트를 보여준 마왕에게 짧은 묵념을 보냈다. 봉인에서 풀리자마자 죽은게 좀 황당하긴 한데, 얜 어차피 원작에서도 결국 죽긴 죽잖아? 내가 없었어도 어차피 죽었을거다. 대한민국에 피해만 더 내고.

...근데 생각해보니까 웃기네. 달의 신 아래 있는 애들은 봉인당하고 풀리자마자 죽는게 전통인가. 이 마왕이란 놈도 그렇고, 원작에서 은월이도 그렇고.

뭐, 어쨌든 결론은 오늘 드디어 큰 산을 넘은거 같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죽은 마왕의 유해를 내 홀리-스피어로 뒤적였다. 역시나 보이는 월광석. 내 이럴줄 알았지. 월광교 이놈들은 안 끼는데가 없어.

대충 그걸 카메라 안보이게 몰래 창으로 박살낸 나는, 가루로 흩날리는 그걸 보고서야 고개를 돌렸다.

"네, 여러분! 이 이상한 남의 영업 공간 방해하는 아저씨도 잡았으니, 오늘의 방송은 여기까지입니다. 이런 질 낮은 테러와는 비교도 안되는, 고품격 테러로 돌아올테니 다들 긴장하시길 바라며 오늘 방송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네????????]

[안돼 왜 여기서 끝내!!!!!!!]

[도시 하나 박살내려는 빌런을 막자마자 쿨하게 퇴장하는... 이게... 빌런?]

[고품격 테러는 또 뭔데 ㅅㅂㅋㅋㅋㅋ]

[오늘도 이 빌런은 나라를 구했습니다]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망고스틱!]

[우리는 에고스틱의 시대를 살고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여전히 난리난 채팅창을 뒤로 한채, 나는 카메라를 끄고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했다. 쟤네는 어차피 며칠 불타다가 또 까먹을꺼니 상관없고... 아이고, 오늘 큰일했다 큰일했어. 오랜만에 몸썼더니 피곤해 죽겠네.

...근데 지금은 그게 문제가 아니지.

나는 일단 쓰러져있던 스타더스에게로 향했다. 아까 봤을때는 지친것만 빼고는 나름 멀쩡해 보였는데, 혹시 모르니까.

그렇게 돌아간 내 눈에 보인건, 여전히 아까 그자세 기대로 폐허의 벽 한쪽에 몸을 기댄채 누워있는 그녀. 눈을 감고있는걸 보니 정신을 잃은 모양이다. 잠깐, 설마 아니겠지?

혹시 모르는 만큼 나는 빠르게 달려가 땅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은 채 숨을 쉬는지부터 확인했다. 휴, 다행히 잘 쉬는 모습. 물론 당연한거지만, 혹시 모르는거니까. 잘못됐으면 저승이라도 내려가서 그녀를 구해와야하지 않겠는가.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쓰러진 채 숨을 새액새액 쉬고있는 그녀를 내려다보았다. ...어떻게 사람이 싸우다가 폐허에 흙투성이가 되도 이렇게 예쁠 수 있는지, 참으로 신기한 일이다. 이게 그 주인공 버프인가 뭔간가?

하여튼, 힘들었는지 기절까지 한 그녀. 원작 후반부에서 강해진 다음에는 아무리 힘을 써도 몸을 못움직일 뿐 정신을 잃은적은 없었는데, 오늘은 진짜 어지간히 힘들었나보다.

...하긴, 오늘 정말 고생하긴 했으니. 아침부터 무슨 에너지바 하나 먹으면서 지하에서 악마들 다 때려잡지를 않나, 거기에 저녁에는 마왕이랑 싸우지 않나. 다시한번 생각해도 이게 오늘 하루만에 그녀가 다 이루어냈다는게 믿겨지지가 않는다. 정말 원작이랑 많이 달라지기는 했네.

"...수고하셨습니다, 스타더스씨. 역시... 당신이네요. 하하."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며, 그녀에게 들리지 않을 말을 속삭이듯 전해주었다. 좋아, 이제 갈까. 몇십분안에 곧 협회 직원들도 올거같으니. 거기에 헬리콥터 소리도 들리는게 슬슬 방송국들도 상황 끝난거같으니 가까이 다가오는거 같고.

그렇게 서늘한 밤바람을 맞으며 일어나서 가려던 나는, 문득 폐허에 홀로 누워있는 스타더스가 눈에 밟혔다. ...안그래도 날도 쌀쌀한데, 이러고 있으면 감기 걸리는거 아니야? 물론 곧 협회가 오긴 하겠지만... 그동안은 어떻게. 걱정되는건 걱정되는거다.

잠시 고민한 나는, 이내 등에 망토를 벗어서 스타더스의 위에 덮어주었다. 뭐, 집에 망토는 많으니까.

물론 깨어났을때 그녀가 이걸보면 무슨 생각을 할까 싶긴 한데... 어차피 빌런 혐오적인 그녀의 사고회로라면 대충 내가 티베깅 하는거라고 생각할거 같으니 큰 문제는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못하고 여기서 누워있다고 조롱하는거냐!' 뭐 그렇게 생각하며 분노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며, 나는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은 뒤 다시 일어나 그녀를 등지고 발걸음을 옮겼다. 순간이동을 하러. 아으, 집가서 또 수액 맞아야겠네.

그 생각을 마지막으로, 나는 순간이동했고.

그렇게 바로 가버렸기에, 그때의 나는 몰랐다.

"...."

내가 떠난 뒤, 스타더스가 살짝 움직이더니.

-꼼지락.

자신의 위에 놓인 망토를 한손으로 꼬옥, 붙잡았다는 것은.

***

[충격! K-빌런 에고스틱, 또 대한민국을 지켜내다? 그의 의외에 능력에 네티즌들 '경악'! 우리는 에고스틱의 시대에 살고있다... 실시간 인기 영상 전부 에고스틱이 싹쓸이.]

[경악! 사실 에고스틱은 막타만 쳤을뿐?! 악마성 붕괴부터 마왕 제거까지, 홀로 모든걸 해낸 스타더스! "대한민국은 스타더스가 있기에 굴러갑니다." 익명의 협회관계자가 눈물을 흘리며 스타더스를 극찬한 이유는? 재조명받는 그녀의 선한 인성!]

오늘도 또 도시가 무너지고 나라가 망하는걸 겨우 겨우 막아낸 대한민국은, 또 다음날부터 바로 그 이슈로 뜨겁게 불타올랐다.

사실 나라가 망할뻔하다가 기적적이게 살아난게 한두번도 아닌데, 겪을때마다 늘 새롭고 짜릿한지 아주 미친듯이 기사를 뽑아내는 언론들. 물론 이번에 자칭 마왕이라는 놈의 스케일이 어마무시했기에, 따지고보면 당연하기도 했다. 서울 도심 한복판에 마왕이 강림하고, 검고 붉은 구름들이 모여들며 그의 붉은 안광이 번뜩이는 장면은 지금봐도 소름돋는다는 사람이 많았으니.

하여튼 결국 마왕도 죽고, 악마성으로 변했던 무역센터도 마왕이 죽자마자 그 검은색의 끈적이는 액체들이 싹 다 사라지며 다시 원래대로 돌아왔다. 물론 싸움으로 박살난 것들은 다시 지어야 하긴 하지만... 그래도 이정도면 선방한 셈.

그렇게 나라도 다시 평온을 되찾자, 사람들의 화제는 당연하게도 이 테러를 막아낸 에고스틱과 스타더스였다.

[[단독]월광무녀를 배출한 테러집단 '월광교'가 이번 테러에 관련있을 수도 있다? 채나영 기자의 독점 보도!]

물론 이번 테러의 진상을 밝히려는 참된 사람들도 있었지만, 대중은 이미 지나간 테러에는 별로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렇게 지상파는 빌런이라 초상권도 없는 불쌍한 에고스틱의 지금까지 영상들을 무한으로 틀어주고 있었고, 히어로와 협회의 인기가 오르는걸 귀신같이 파악한 협회장의 지시에 의해 역대까지의 스타더스 활약 영상들도 미친듯이 올라오고있었다.

거기에 팬카페인 망고단이든 별먼지단이든 서로 나란히 가입자수가 폭증하고, 아예 국회의원들은 바로 이슈를 물어서 스타더스를 S급으로 승격시킬걸 협회본사에 청원하자고 난리치고...

그렇게 혼란하던 시간이 계속되던 나날.

그러던 말던 그런 소란에서 멀리 떨어진, 평온한 큰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아... 이제 곧 2차 카테달 회의 시작이네?"

달력을 보기 전까지는.

아, 오랜만에 또 우리 전세계 S급 빌런들 보러 가야겠구만.

"아틀라스 아재, 다시 보겠네."

나는 사과 한조각을 바닥에 누워있던 서자영 입에 넣어주고, 나도 한입 먹은뒤에 중얼거렸다.

...재밌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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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

원작에서 나름 이름 좀 날리던 녀석이 그렇게 빛의 세례를 맞고 허무하게 인생 하직한 이후.

놈을 친히 다시 저승으로 돌려보내준 나는, 나름 한가하게 집안에서 지내고 있었다.

'...다인씨, 분명 무리하는건 아니라고 하시지 않으셨나요..?"

'...하하.'

물론 위험한 일 없다고 말하고는 마왕과 창들고 일대일 맞다이를 한 것에 대해 수빈씨의 걱정을 사기는 했지만... 결과적으로 몸 안다치고 이기고 돌아왔으니 된 거 아닐까?

'다인 형, 정말 멋졌어요!'

물론 차윤이는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그런말을 했었다. 이제 막 중학생이면서도 무슨 입시공부 하듯 열심히 공부만 하면서도 내 테러는 직관한 모양. 학교에서도 내 얘기를 애들이 종일 했다는 얘기를 들으니 이게 뭔가 싶기는 했었다. 빌런을 좋아하는 애들이라... 대한민국, 이대로 괜찮은가?

하여튼 또 나와 스타더스에 대해 이러쿵 저러쿵 떠들며, 이제는 시즌 4호 열애설을 펼치고 있는 채널들을 피해 나는 주로 해외 뉴스쪽에 티비를 맞추어놓고 있었다. 이쯤되면 이설아한테 연락해 방송국에 에고스틱 미화 보도금지 부탁할까 싶기도 한데... 뭐, 사실 결국은 스타더스만 날 싫어하면 되니 그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을거 같아 내비려 뒀다.

참고로 요즈음은 우리 PMC에 영입할 능력자들 고르는게 일. 은근 신청자가 많이 와서, 쓸만한 애들 고르는데 시간이 좀 걸리고 있었다.

그렇게 밖에 데스나이트가 가꾼 정원이나 거실에서 가끔 애들이랑 놀아주며 일하는게 요즘 주 업무. 빌런도 일해야지 사는 시대가 왔다고 할 수 있다.

물론 틈틈히 해외 소식을 확인하는 것도 당연한 일.

[현재 일본에서 제일 큰 빌런 조직인 삼협파가 정부군과 협회의 군사작전에 계속 패퇴하고 있다는 소식입니다.]

그렇게 뉴스를 백색소음 틀어놓듯이 놓고 일하던 중, 마침 내 이목을 끄는 얘기가 나왔다.

바로 옆나라 이야기. 거기에 뉴스에 나오는건, 바로 카테달 빌런 회의 멤버 얘기.

나는 바로 티비 소리를 키워, 더 자세히 얘기를 듣기 시작했다.

[일본의 일부를 장악하고 있는 빌런연합 삼협파는 최근에 계속 전술적으로 밀리며,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는데요. 이에 정부군은 '올해 안에 그들의 수장인 카타나, 그 여자를 잡을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있게 입장을 밝혔습니다.]

[그러나 막상 일본 국민들은 이에 대해 탐탁치 않아한다고 하는데요. '썩은 정부밑에 있을바에는 야쿠자 밑에 있겠다.'라고 답하는 응답비율이 상당히 높다고 합니다.]

그렇게 기자의 말이 끝나고.

나는 때마침 들려온 소식에, 잠시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역시, 원작대로 털리고 있네.'

일본.

한국이 스타더스와 섀도우워커라는 두 책임감 강한 히어로와, 정부를 꽉 잡아버린 이설아로 인해 나름 분열없이 안정되어있는 있는 것과는 다르게, 일본은 조금 불안정했다.

빌런집단인 야쿠자들의 모임, 삼협파가 나라 절반정도를 먹은 것. 그래서 늘 내분이 끊이지 않았다. 거기에 애초에 정부 자체도 썩어있는 바람에, 그냥 개판인 상황.

물론, 원작을 보면 이 상황도 오래가지 않는다.

나름 정부와 힘의 균형을 이루고 있던 삼협파가, 어느 순간을 기점으로 갑자기 정부에 밀리기 시작한 것.

그렇게 내 기억으로는 원작에서 결국 삼협파가 정부군에 의해 괴멸된다. 삼협파의 수장인 S급 빌런 카타나, 그 여자도 붙잡히고.

"....."

근데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그렇게 결국 나라를 다시 되찾은 일본 정부랑 협회가, 경쟁 세력도 없자 그냥 상상 이상으로 썩어버린 것.

애초에 저 카타나라는 여자가 빌런 연합을 만든 것도 이 썩어빠진 나라를 바꾸겠다는 명분이었다. 그만큼 썩어있던 정부로 인해, 삼협파가 없어진 뒤 나라가 다시 평온해지긴 커녕 그냥 골로 가버린다. 나중에 월광교 게이트 이후 한국을 도와주기는 커녕, 지네 나라 망하게 생겼다고 한국에 도움을 요청할 정도로.

"쓰읍..."

그래서 지금, 고민이 되는거다.

저대로 저 삼협파라는 야쿠자 놈들이 없어지는 것보다는, 차라리 살아있어서 정부 견제하게 하는게 낫지 않을까? 심지어 저 수장이 카테달 빌런회의에 참석도 하니, 나중에 어쩌면 우리 에고스트림이랑 협력 할 수도 있고. 카타나 그 여자가 나름 의리가 넘친다던데.

사실, 협회와 나름 잘 싸우던 삼협파가 갑자기 진 이유는 하나다.

'...배신자가 있었지.'

그래. 심지어 수장인 카타나, 그 여자의 왼팔이라고 불리던 핵심 세력이 배신해서 정부에 붙었다. 걔가 모든 정보를 협회에 스파이짓 해서 알려줬고. 사실 얘만 없었어도 밀릴리는 없었다.

...그래. 다음 회의에 카타나 그 여자를 만나면, 이 정도 정보는 따로 얘기해 줄까.

그리고 그런 생각을 한지 며칠 안돼서.

바로, 초대장이 날아왔다.

"오... 이게 그 초대장인가 뮌가야?"

거실.

갑자기 허공에 사뿐히 내려앉은, 하얀 편지를 다들 모여 신기하다는 듯 바라보고 있었다.

"음... 감회가 새롭네."

나도 편지지를 보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셀레스트의 편지. 저걸 약속된 날짜에 찢으면 그대로 카테달이 열리는 장소로 이동할 수 있다.

사실 저번에는 내가 아틀라스 아재의 빽으로 막판에 들어간 바람에 내께 없어서 아틀라스 아재의 수중기지까지 가서 같이 갔지만, 이제는 그럴 필요 없이 내 집에서 곧바로 쾌적하게 갈 수 있다는게 좋은점.

그런고로 아틀라스와는 그 회의장에서 따로 만나기로 했다.

'허허, 우리 딸이 자네를 보고 싶어하던데 안타깝게 됐구먼. 다음에 꼭 놀러오세.'

물론 사족이 좀 붙긴 했었지만. 하여튼 그때가서 보면 될거고.

그렇게 편지까지 받고, 드디어 약속된 날짜가 되었다.

"갔다올게."

"바이바이."

"오빠, 몸조심해요."

그렇게 나는 편지를 찢어버렀고.

그대로 몸이 이동하는 감각과 함께, 어디론가 빨려들어갔다.

***

카테달.

현재 S급 빌런들 중 1위라 평가받는 빌런, 셀레스트가 창시한 빌런연합 수장들의 회의.

세계에서 영향력을 꽤나 행사하는, 빌런연합의 수장들로 이루어진 이 회의의 특징. 그것은 서로가 정보를 하나씩 교류한다는 것이다.

다들 자기 밑에 S급 빌런을 몇명씩 둔 리더들인만큼 귀중한 정보를 하나씩은 갖고 있을 것. 그걸 서로 매 회의마다 모두와 공유해, 빌런들끼리 교류하자는게 셀레스트가 이 회의를 창시한 목적이라고 한다. 뭐 실상은 좀 다르긴 한데, 대충 그렇긴 하다.

어쨌든 전세계의 S급 빌런들이 한자리에 모인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으니 협회 견제도 되고 그런거지. ...물론 나는 아틀라스 아재 빽으로 온거긴 한데. 그게 중요한게 아니다.

'결과적으로, 여기서 영향력을 펼치는게 내 목표니까.'

스타더스가 지키는 대한민국에 이상한 애들이 침공오는걸 막으려면, 대충 여기서 내 몸집을 부풀릴 필요가 있다. 예를들어 아무도 모를 충격적인 미래를 미리 예견해... 마치 그걸 내가 일으킨 것처럼 착각하게 만든다던가. 뭐 그런식으로.

그리고 오늘이 아마, 내가 처음으로 중요한 정보를 푸는 날이 될꺼고.

"이쪽으로 와주시길."

"흠."

그런 내 짧은 생각을 끝으로, 나는 다시 현실로 돌아왔다.

눈앞에 펼져진 어두운 복도.

그 앞세서 나를 안내하는, 하얀로브를 쓴 셀레스트의 하얀 사제의 뒤를 따라 나는 원탁의 회의장으로 향했다.

그렇게 좀 걷고 원형의 문을 지나자, 바로 나온 뻥 뚫린 공간.

양옆 벽에 스테인글라스가 가득하고, 거대한 샹들리에 있는 이 곳. 카테달 본회의실에 나는 도착했다.

"음...."

좀 일찍 왔는지, 아직 다 차진 않은 모습. 아틀라스와, 회의의 주체자인 셀레스트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모습이다. 곧 다들 오겠지 뭐.

적당한데 자리나 잡고 앉아있자.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대충 양옆자리 비어있는 곳 아무데나 털썩 앉았다.

...조금 있으면 시작하겠네.

쓰읍, 잠깐. 근데 여기 막상 오고나니까 뭘 까먹은 기분이 드는데.

의자에 앉고보니 떠오른 생각에, 나는 곰곰히 생각을 복기해봤다. 가면도 썼고, 정보도 챙겼고. 뭐 잊은게 있나?

아, 맞다. 생각해보니까 오늘은 그 빨간 모히칸 머리가 안오겠구나?

나는 그제서야 놈을 기억해냈다.

하이킥인가 하이킨인가, 그 독일의 양아치같던 S급 빌런 놈. 저번에 나보고 A급이라고 시비걸길레 그냥 내 정보푸는 타이밍에 걔 보면서 독일에 뭔 일 생길테니 몸 조심해라? 이랬던 기억이 난다. 걔가 어차피 원작에서 이번 회의 전에 죽는 놈이었거든.

...지금쯤은 이 세상 사람이 아니겠구만.

불쌍한놈. 막상 죽게될 때 내가 한말 떠올리고 나때문에 죽는거라고 생각한건 아니겠지. 아니야, 너 그냥 원작에서 죽는 캐릭터야...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러고있자 마침 하얀 사제복을 입은 사람이 나한테 컵에 담긴 차를 내어주는 모습. ...이거 마셔도 되는거겠지? 셀레스트가 여기다 뭐 약같은거 넣어논거 아니야?

내가 그렇게 미심쩍어 하며 찻잔을 바라보던 그때, 한쪽편에 원형의 문이 열리며 새로운 빌런 수장이 들어왔다. 아틀라스 아재인가?

나는 그런 생각을 하며 고개를 들었고.

엥?

빨간 모히칸 머리를 한 그놈을 보고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니, 너 왜 살아있냐?

그리고 그놈을 본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걔또한 나와 눈이 마주치더니, 살짝 눈이 커지는 모습.

그러더니 그놈은 곧바로 발걸음을 옮겨, 나에게 다가왔다.

저벅저벅.

내 의자 앞에 바로 선 그놈.

그러더니 그는, 허리를 그대로 90도로 숙이며 내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형님!!!"

"..."

이건 또 뭔 상황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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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차 카테달 회의.

하이킨.

독일에서 S급 빌런으로 살던 그는, 셀레스트가 주최한 카데달 회의에 와서 살짝 긴장하고 있었다.

"...."

'...뭔가, 다들 강해보이는군.'

그도 그럴게, 그가 보기에 주위의 모든 빌런이 다 한능력 해보였기 때문.

거기에 그 유명한 셀레스트도 직접 만나고, 다른 빌런들의 자기소개도 듣고 난 뒤 그는 깨달았다.

...이러다가는, 묻힌다!

그런 경각심을 가지고 주위를 둘러보던 그때, 그는 어떤 한 사람을 보고는 멈칫했다.

'...에고스틱?'

검은 모자에 검은 망토를 한 남성, 에고스틱.

그는 저 빌런을 알았다. 언젠가 인터넷을 뒤적이다가 본 적 있는 생김세였기 때문.

'...자세히는 기억 안나지만, 그는 A급 빌런 아니였나?'

어째서 A급 빌런이 여기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하이킨은 빠르게 머리를 굴렸다. 그래, 쟤한테 왜 A급이 여기있냐고 시비를 걸어서 내 존재감을 밝혀야겠다. S급 밑에 A급이 있는건 당연한거잖아...?

그래서 그는, 에고스틱이 자기소개를 하는 타이밍을 타 철저히 계획하에 시비를 걸었다.

"네이놈!!!!!"

...물론 그는, 그 유명한 빌런인 아틀라스가 에고스틱과 친한거까지는 몰랐었다.

"뚫린 입이라고 아주 아무말이나 지껄이는구나! 감히 이 아틀라스의 친우한테 그따위 망발을 지껄여? 네이놈!!!"

"...아니, 거 참. 내가 뭐 틀린말 했습니까?"

물론 그에 굴하지 않고 마지막까지 빈정거려는 봤으나, 속으로 매우 당황한 하이킨이었다. ...아니, 어떻게 에고스틱, 이놈은 A급 주제에 저런 거물과 친분이 있는거지.

하여튼 결국 셀레스트의 제지로 그 소동도 끝났으니, 나름 평온하게 끝났다고 할 수도 있겠다. 자신의 시비에도 별로 동요하지 않고 의뭉스러운 미소만을 지은 에고스틱이 좀 묘하기는 했지만... 그뿐.

물론 그건 정보 공유 시간이 찾아오고, 에고스틱의 입이 열림으로써 산산히 깨졌다.

"...특히, 독일 사시는 분은 조심해주세요. 3개월안에, 어떤 비극적인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그를 보고 웃는 낯으로, 대놓고 그렇게 말한 에고스틱.

"이자식! 감히 나를 위협하는거냐!"

일단 그렇게 역정을 내고 본 하이킨이었으나, 바로 아틀라스의 맞불과 셀레스트에 의해 묻혔다.

그리고.

'....쯧. 그냥 A급의 헛소리 도발이겠지.'

그냥 그렇게 넘기려던 하이킨은, 뭔가 불길함을 느꼈다.

...과연 저게, 그냥 헛소리일까?

회의가 끝난 이후, 다시 독일로 돌아온 하이킨.

그는 그날 이후 계속 느껴지는 무언가의 찜찜함에 몸을 떨었다. 에고스틱, 만약 저놈이 진짜 뭔가를 알고 한소리라면...?

"보스, 뭐해?"

"쉿."

그렇게 일단 에고스틱에 대해 인터넷의 번역기까지 돌려가며 인터넷에서 정보를 검색한 후.

그의 안색은, 파렇게 질렸다.

"제기랄..."

...이게, A급이라고? 누가봐도 S급 그 이상인데?

아니. 애초에 에고스틱 밑에있는 S급 빌런만 몇명이다. 거기에 대한민국에 미치는 그의 영향력과, 그가 지금까지 해온 일들을 알면 알수록 더욱 불안감에 질린 하이킨.

거기에, 자신이 본 북대서양 전체를 지배하는 5대 빌런 중 한명인 아틀라스가 전적으로 에고스틱을 지지하는 모습까지...

하이킨의 본능은 직감적으로 경종을 올렸다.

S급 빌런 하이킨, 그가 누구인가. 독일에서 어엿한 빌런연합 하나를 아직까지 협회에 안잡히고 운영하고 있는 만큼, 눈치 하나는 있는 남자.

'....특히, 독일 사시는 분은 조심해주세요. 3개월안에, 어떤 비극적인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까요?'

".....쉣."

만약 에고스틱이 A급인척 코스프레한 S급을 넘어서는 막강한 빌런이라면? 만약 진짜 무언가를 알고 그에게 경고한거라면?

그렇게 하이킨은, 잠잘때도 침대에 무기를 놓고 자는등 장장 3개월을 공포에 떨며 낙엽소리 하나에도 흠칫하며 지냈고.

그렇게해서 그는.

살아남을 수 있었다.

"와.. 시발."

콰아아아아아앙.

방금까지만 해도 자신이 앉아있던 장소가, 그야말로 산산조각이 나있는 모습.

움푹 파인 땅과, 붉게 물든 흙토. 무슨 용암같은게 그곳에 흐르는 상태.

자신에게 느껴지는 뜨거운 열기를 느끼며.

그는, 결심했다.

...앞으로 에고스틱은 형님으로 모시자.